옛신앙  2005년 5월 15일 [제9권 20호]   ◆ 매주 발행 ◆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너희는 길에 서서 보며 옛적 길 곧 선한 길이 어디인지 알아보고 그리로 행하라. 너희 심령이 평강을 얻으리라' 하나, 그들의 대답이 '우리는 그리로 행치 않겠노라' 하였으며"(렘 6:16).

 

 

옛신앙

 

Old-time Fait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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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옛신앙'이란, 옛부터 하나님의 선지자들과 주의 사도들이 가졌던 신앙, 오직 정확 무오(無誤)한 하나님 말씀인 신구약 성경에만 근거한 신앙, 오늘날 배교와 타협의 풍조에 물들지 않는 신앙을 의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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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오전설교:                              " 네 부모를 공경하라"

출애굽기 20:12,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너의 하나님 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 네 생명이 길리라.”

“네 부모를 공경하라”는 말씀은 하나님께서 주신 십계명에 명시된 계명입니다. 그것은 인간 관계의 여섯 가지 계명들 중 첫번째 계명이며 약속 있는 계명입니다. 그것은 인간 관계의 윤리 중에 아마 가장 중요한 내용이며 또한 복된 내용입니다.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너의 하나님 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 네 생명이 길리라.”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네 부모를 공경하라”고 명령하셨습니다. ‘공경하라’는 말(ד, 캅베드)은 ‘무겁게 여기라, 중시(重視)하라, 크게 여기라, 높게 여기라, 존경하라’는 뜻입니다. 성경은 이와 비슷하게 ‘경외하라, 두려워하라’는 말도 사용합니다. 레위기 19:3, “너희 각 사람은 부모를 경외하고[경외하라.]”

자녀가 그 부모를 공경해야 할 이유는 무엇보다 그것이 하나님의 명령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우주의 근원이며 모든 도덕의 근원이십니다. 하나님께서는 “네 부모를 공경하라”고 명령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부모를 공경치 않고 멸시하는 것은 큰 죄입니다. 특히 부모를 치고 저주하고 거역하고 순종치 않는 것은 사형받을 큰 죄요 저주받을 죄입니다.

출애굽기 21:15, 17, “자기 아비나 어미를 치는 자는 반드시 죽일지니라,” “그 아비나 어미를 저주하는 자는 반드시 죽일지니라.” 레위기 20:9, “무릇 그 아비나 어미를 저주하는 자는 반드시 죽일지니 그가 그 아비나 어미를 저주하였은즉 그 피가 자기에게로 돌아가리라.” 신명기 21:18-21, “사람에게 완악하고 패역한 아들이 있어 그 아비의 말이나 그 어미의 말을 순종치 아니하고 부모가 징책하여도 듣지 아니하거든 그 부모가 그를 잡아가지고 성문에 이르러 그 성읍 장로들에게 나아가서 그 성읍 장로들에게 말하기를 우리의 이 자식은 완악하고 패역하여 우리 말을 순종치 아니하고 방탕하며 술에 잠긴 자라 하거든 그 성읍의 모든 사람들이 그를 돌로 쳐 죽일지니 이같이 네가 너의 중에 악을 제하라. 그리하면 온 이스라엘이 듣고 두려워하리라.” 잠언 30:17, “아비를 조롱하며 어미 순종하기를 싫어하는 자의 눈은 골짜기의 까마귀에게 쪼이고 독수리 새끼에게 먹히리라.” 아, 두려운 저주의 말씀입니다!

자녀가 부모를 공경해야 할 이유는 실상 그것이 부모의 은혜에 대한 보답이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부모를 통해 이 세상에 왔습니다. 물론 하나님은 우리의 존재의 근원이시지만, 하나님께서는 자녀들이 부모를 통해 세상에 태어나게 하셨습니다. 아빠 없이 세상에 출생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존재가 가치 있는 것이라면, 나의 존재를 세상에 있게 한 부모님은 가치 있는 분이십니다. 더욱이 나를 1년간 뱃 속에 두시고 고통 중에 나으시고 어른이 되도록 양육하신 어머니의 사랑은 실로 큽니다. 부모님이 우리를 위해 쏟으신 사랑과 하신 수고는 참으로 큰 것입니다. 그것은 사람이 자녀를 낳아서 길러볼 때 알게 됩니다. 사람은 남에게 받은 은혜를 잊어버리기 쉽지만, 잊지 않고 보답해야 합니다. 이와 같이, 자녀들은 부모님의 은혜에 보답하는 마음으로 부모를 공경해야 합니다.

자녀가 부모를 공경해야 할 다른 한 이유는 그것이 사회의 질서에 기초가 되기 때문입니다. 가정은 사회의 기본 단위입니다. 사회의 질서는 자녀가 가정에서 부모를 공경하는 데서부터 시작됩니다. 가정에서 자녀가 부모를 무시하고 불순종하면 그 가정은 파괴되고 그런 가정들로 구성되는 사회는 멸망하고 말 것입니다. 그러므로 십계명에는 부모 공경에 대해서만 명시했지만, 이 계명은 사회의 각 부분에서 아랫 사람이 윗사람을 존중하고 순종할 일을 순종해야 할 것을 보이는 여러 명령을 대표합니다. 예를 들어, 성경은 사람이 자기의 부모뿐 아니라 다른 노인들도 공경하고, 또 종들이 주인들에 대해서도 공경하라고 말하고, 또 성도들이 세상 위정자들에 대해서도 공경하고 순종하라고 말합니다.

레위기 19:32, “너는 센 머리 앞에 일어서고 노인의 얼굴을 공경하며 네 하나님을 경외하라. 나는 여호와니라.” 디모데전서 6:1, 2, “무릇 멍에 아래 있는 종들은 자기 상전들을 범사에 마땅히 공경할 자로 알지니 이는 하나님의 이름과 교훈으로 훼방을 받지 않게 하려 함이라. 믿는 상전이 있는 자들은 그 상전을 형제라고 경히 여기지 말고 더 잘 섬기게 하라. 이는 유익을 받는 자들이 믿는 자요 사랑을 받는 자임이니라. 너는 이것들을 가르치고 권하라.” 로마서 13:1, 2, “각 사람은 위에 있는 권세들에게 굴복하라. 권세는 하나님께로 나지 않음이 없나니 모든 권세는 다 하나님의 정하신 바라. 그러므로 권세를 거스리는 자는 하나님의 명을 거스림이니 거스리는 자들은 심판을 자취하리라.” 베드로전서 2:13, 14, “인간에 세운 모든 제도를 주를 위하여 순복하되 혹은 위에 있는 왕이나 혹은 악행하는 자를 징벌하고 선행하는 자를 포장하기 위하여 그의 보낸 방백에게 하라.” 부모 공경은 사회의 질서에 기초입니다.

자녀가 부모를 공경해야 할 다른 한 이유는 그것이 하나님께서 정하신 노인들의 생활 보장의 방법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자녀들이 노 부모님을 봉양하도록 뜻하셨습니다. 어릴 때는 부모님이 돌보지만, 커서는 늙으신 부모님을 돌봅니다. 어른이 된 자녀들이 노 부모님을 공경할 때, 어린 자녀들은 그것을 본받게 됩니다. 노 부모님을 잘 봉양하는 어른들은 그들이 늙고 힘이 없을 때 그들의 자녀들이 그들을 잘 봉양하게 될 것입니다. 자녀들은 본 것이 있어야 더 잘 실천할 것입니다. 내가 부모님을 공경치 않으면 내 자녀들도 나를 공경치 않을 것입니다. 자녀들을 통해 노인들을 돌보시는 것이 하나님의 방법입니다.

자녀는 어떻게 부모를 공경해야 합니까? 우선, 자녀는 부모를 크게 여기고 무겁게 여기고 높게 여기고 중시(重視)하고 존경해야 합니다. 그것이 공경한다는 말의 뜻입니다. 또 성경은 자녀가 부모를 경외해야 한다고 표현했습니다(레 19:3). 부모를 공경하라는 말에는 물론 부모를 경홀히 여기지 말라는 뜻이 들어있습니다. 신명기 27:16, "그 부모를 경홀히 여기는 자는 저주를 받을 것이라 할 것이요 모든 백성은 아멘 할지니라.“ 잠언 30:17, ”아비를 조롱하며 어미 순종하기를 싫어하는 자의 눈은 골짜기의 까마귀에게 쪼이고 독수리 새끼에게 먹히리라.“ 또 부모를 공경하라는 말에는 부모를 구박하거나 때리거나 저주하지 말라는 뜻도 들어있습니다. 잠언 19:26, ”아비를 구박하고 어미를 쫓아 내는 자는 부끄러움을 끼치며 능욕을 부르는 자식이니라.“ 출애굽기 21:15, ”자기 아비나 어미를 치는 자는 반드시 죽일지니라.“ 출애굽기 21:17, ”그 아비나 어미를 저주하는 자는 반드시 죽일지니라.“

자녀는 또한 부모에게 순종해야 합니다. 부모를 공경하는 자는 그의 말씀을 크게 여기고 순종할 것입니다. 모세의 율법에는 완악하고 패역하며 부모에게 순종치 않고 방탕하고 술에 잠긴 자녀는 동네 장로들에게 말하여 돌로 쳐 죽이라고 규정하였습니다(신 21:18-21). 잠언 13:1, “지혜로운 아들은 아비의 훈계를 들으나 거만한 자는 꾸지람을 즐겨 듣지 아니하느니라.” 잠언 23:22, “너 낳은 아비에게 청종하고 네 늙은 어미를 경히 여기지 말지니라.” 물론 자녀들은 주 안에서 부모에게 순종해야 합니다. 에베소서 6:1, “자녀들아 너희 부모를 주 안에서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 ‘주 안에서’라는 말은 ‘하나님의 진리 안에서’ 즉 ‘성경 말씀 안에서’라는 뜻입니다.

부모를 공경하는 자는 또한 부모를 기쁘시게 할 것입니다. 잠언 10:1, “지혜로운 아들은 아비로 기쁘게 하거니와 미련한 아들은 어미의 근심이니라.” 잠언 17:25, “미련한 아들은 그 아비의 근심이 되고 그 어미의 고통이 되느니라.” 잠언 23:25, “네 부모를 즐겁게 하며 너 낳은 어미를 기쁘게 하라.” 참 지혜는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 계명을 행하는 것이요 그 계명 속에는 부모를 공경하라는 계명이 있습니다.

부모를 공경하는 자는 또한 부모에게 물질적으로도 보답할 것입니다. 디모데전서 5:4, “만일 어떤 과부에게 자녀나 손자들이 있거든 저희로 먼저 자기 집에서 효를 행하여 부모에게 보답하기를 배우게 하라. 이것이 하나님 앞에 받으실 만한 것이니라.” 자녀에게 주기만 하면 그 자녀는 부모를 섬길 줄 모르는 자가 될 것입니다. 그것은 부모가 자녀에게 잘못 가르치고 있는 것입니다. 물론 먼저 부모가 자신의 부모를 섬김으로써 본을 보여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또한 부모는 자기 자녀에게도 효도하는 법을 가르쳐야 합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복된 명령입니다. 그것이 자녀에게 복이 됩니다. 독일 속담에 “한 부모는 열 자녀를 가르치지만, 열 자녀는 한 부모를 섬기지 못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효도는 내버려두면 저절로 되지 않습니다. 자녀는 부모의 은혜에 보답하기를 배우고 실천해야 합니다. 자녀들은 부모님을 자주 문안하고 방문할 때는 빈 손으로 가지 말고 작은 선물이라도 들고 가십시오. 또 자신의 형편을 따라 작은 용돈이라도 부모님께 규칙적으로 드리기를 힘쓰십시오.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너의 하나님 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 네 생명이 길리라.” 이것은 하나님의 중요한 명령이며 약속 있는 명령입니다. 오늘날 세상에 가정 윤리가 점점 무너져간다 할지라도, 성도의 가정은 달라야 합니다. 네 부모를 공경하라는 것은 하나님의 명령입니다. 시대가 변해도, 그 명령은 변함이 없습니다. 자녀가 부모를 공경하는 것은 실상 자녀가 부모에게 받은 은혜에 대한 당연한 보답입니다. 또 자녀가 부모를 공경하는 것은 인류 사회의 질서에 기초가 됩니다. 그것은 또한 하나님이 정하신 노인들의 생활 보장의 방법이기도 합니다.

자녀들은 부모를 공경하고 크게 여기고 높게 여기고 존경하고 두려워해야 합니다. 부모를 경홀히 여기거나 구박하거나 구타하거나 저주해서는 안됩니다. 그것은 큰 죄, 사형받을 큰 죄입니다. 또 자녀들은 부모님께 순종해야 합니다. 또 자녀들은 부모님을 기쁘시게 해야 합니다. 또 자녀들은 부모님께 물질적으로도 보답해야 합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부모를 공경하는 것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일이요 하나님께서는 그런 자녀들에게 이 세상에서의 복도 약속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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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일오후설교:                                "행위언약"

사람에 관한 또 하나의 중요한 사실은, 하나님께서 첫사람 아담에게 한 명령을 주신 것이었다. 창세기 2:16, 17,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에게 명하여 가라사대 동산 각종 나무의 실과는 네가 임의로 먹되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 하시니라.” 이것은 하나님께서 다른 피조물들에게는 주시지 않고 오직 사람에게만 주신 독특한 명령이었다. 이것은 사람이 자유 의지를 가지고 순종 혹은 불순종을 선택할 수 있는 인격적 존재임을 증거한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다루시는 방법은 언약(계약)의 방법이었다. 성경은 구약과 신약, 즉 언약의 책이다. 성경에 계시된 하나님의 언약은 두 가지인데, 행위언약과 은혜언약이다. 하나님께서 아담에게 주신 처음 명령을 흔히 ‘행위언약’이라고 부른다.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7:2은 말하기를, “사람과 맺으신 [하나님의] 첫번째 언약은 행위언약이었는데, 그 언약에서 아담 자신의 완전한 순종을 조건으로 그와 그 안에서 그의 후손들에게 생명이 약속되었다”고 했다.

이 첫 명령을 ‘행위언약’이라고 부르는 까닭은 그 명령이 언약의 요소들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즉 그 명령에는 언약의 두 당사자, 언약의 조건, 언약의 내용, 언약의 벌칙 등이 있다. 그러므로 호세아 6:7에는 “저희가 아담처럼(םאָ 케아담) 언약을 어겼다”고 말했다. 이 말씀은 하나님의 이 첫 명령이 하나의 언약이었음을 증거한다. 또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하나님의 은혜언약은 행위언약을 전제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우리가 행위로 구원을 받을 수 없었기 때문에 구주 예수께서 오셔서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에 죽으셨다. 즉 은혜언약은 행위언약의 실패에 근거한 것이었다. 또한 로마서 5:15-21의 아담과 그리스도의 대조는 행위언약을 전제하며 행위언약의 개념을 증거한다. 그 구절은, 한 사람 아담이 인류를 대표하였으므로 그의 죄가 온 인류의 죄가 되었으나, 한 사람 그리스도가 모든 택함받은 자들을 대표하였으므로 그의 의의 행위가 모든 택함받은 자들의 의가 되었다는 것을 대조적으로 증거하는 것이다. 즉 한 사람 아담이 온 인류의 대표의 위치에 있었던 사실은 행위언약을 증거하는 것이다.

행위언약의 요소들을 좀더 살펴 보자. 언약의 두 당사자는 하나님과 아담이었다. 물론, 그 하나님의 언약은 일방적이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일방적으로 하신 명령이며 하나님의 주권적 조치이었다. 행위언약의 당사자인 하나님과 아담의 관계는 삼중적이었다. 피조물인 아담은 창조주 하나님께 절대 순종해야 할 위치에 있었다. 이것은 본질적 관계이었다.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본질적 관계 위에 약속의 한 명령을 주심으로 그와 언약을 맺으셨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자신을 낮추심으로써만 가능한 관계이었다. 그러나 하나님의 언약은 단지 아담 개인과의 언약이 아니고, 인류 전체와의 언약이었다. 아담은 이 언약에서 온 인류를 대표한 언약의 대표자로 서 있었다.

언약의 조건은 순종이었다. 그 순종은 하나님의 뜻에 대한 완전하고 무조건적인 순종이어야 했다. 이 원리는 구약의 도덕법에서 다시 강조되었고 신약에서도 다시 확증되었다. 신명기 27:26, “이 율법의 모든 말씀을 실행치 아니하는 자는 저주를 받을 것이라.” 갈라디아서 3:10, “무릇 율법 행위에 속한 자들은 저주 아래 있나니 기록된 바 누구든지 율법 책에 기록된 대로 온갖 일을 항상 행하지 아니하는 자는 저주 아래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 야고보서 2:10, “누구든지 온 율법을 지키다가 그 하나에 거치면 모두 범한 자가 되나니.”

이 순종의 명령은 시험의 일정한 기간에 제한되었을 것이다. 만일 그 시험이 일정한 기간에 제한되지 않았다면, 아담은 비록 그 기간 동안에 범죄치 않았다 할지라도 우리가 장차 누릴 것과 같은 영생 즉 다시는 죽을 수 없는 영생을 누리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구원 역사는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다시 잃어버릴 수 없는 완전한 생명을 주시기를 의도하였음을 보이며, 그 의도는 일정한 시험 기간을 요구한다.

언약의 내용은 생명, 곧 영원한 생명이었다. 이것은, “먹으면 정녕 죽으리라”는 벌칙의 경고 속에 암시되어 있다. 만일 아담이 하나님의 정하신 시험 기간 동안 하나님의 금하신 열매를 먹지 않았다면, 그는 영원히 살았을 것이었다. 하나님이 약속하신 생명이 아담이 본래 소유한 생명과 다른 점은 무엇인가? 그것은 약속된 생명이 다시 범죄하거나 죽을 수 없는 생명이라는 데 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약속하신 생명은 아담이 이미 소유한 생명보다 더 영광스러운 생명이었다.

언약의 벌칙은 죽음이었다. 그 죽음은, 성경 전체가 증거하는 대로, 영적 죽음 곧 하나님과 분리됨과, 육신적 죽음 곧 영혼과 몸의 분리와, 영원적 죽음 곧 둘째 사망이라고 불리우는 지옥 형벌을 다 포함한다.

언약의 표는 생명나무이었다. 동산 중앙에 있었던 생명나무는 약속된 생명을 상징하였다. 생명나무의 열매 자체가 어떤 효능을 가졌었는지는 확실치 않으며, 사람이 타락 전에 그 열매를 먹었는지도 단정키 어렵다. “그가 그 손을 들어 생명나무 실과도 따먹고 영생할까 하노라”는 창세기 3:22의 말씀은 문자적으로 혹은 풍유적으로 해석될 수 있을 것이다.

하나님께서 첫사람 아담과 맺으신 행위언약은 오늘날도 유효한가? 행위언약의 영속성의 문제는 이중적으로 관찰된다. 우선, 행위언약은 구원의 방법으로서는 폐지되었다. 세상에 율법의 행위로 의롭다 하심을 얻을 자는 아무도 없다. 사람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는다. 로마서 3:21, 22, “이제는 율법 외에 하나님의 한 의가 나타났으니 . . . 곧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모든 믿는 자에게 미치는 하나님의 의니 차별이 없느니라.” 로마서 10:4, “그리스도는 모든 믿는 자에게 의를 이루기 위하여 율법의 마침이 되시니라.” 믿는 자는 이제 은혜 아래 있고, 율법 아래 있지 않다. 로마서 6:14, “죄가 너희를 주관치 못하리니 이는 너희가 법 아래 있지 아니하고 은혜 아래 있음이니라.”

그러나 다른 한편, 행위언약은 하나님의 공의의 법으로서는 영원하다. 그것은 하나님께 대한 사람의 순종의 기본적 의무를 보이고, 하나님의 뜻을 거역하고 불순종하는 자들, 즉 택함받지 못한 자들에 대한 하나님의 최종적 심판의 정당성을 증거해 준다. ‘죄의 값은 죽음이라’는 대 명제는 폐기될 수 없는 진리이다.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로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얻은 것은 하나님의 아들 예수께서 우리의 모든 죄의 형벌을 짊어지셨고 우리를 위해 완전한 순종과 완전한 의가 되셨기 때문이다. 그러나 마지막 심판 때에 그 공의의 법은 믿지 않는 죄인들, 회개치 않은 죄인들을 심판할 것이다. 죄인들은 그 공의의 법에 따라 영원한 지옥 불못에 던지울 것이다. 하나님의 공의의 법는 결코 폐지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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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사회문제:                                 북핵 위기와 워싱턴의 소문

[허용범, 조선일보, 2005. 5. 12, A30쪽.]

“심상치 않다. 미국이 방향을 결정한 것 같다. 북한을 치는 쪽으로…”. 며칠 전 한 전직 정보분야 관리가 조용히 전화를 걸어왔다. 그는 “미국은 북한이 핵무장하는 것을 더 이상 좌시할 수 없는 상황에 몰린 것 같다”고 말했다. 북한의 핵개발 의도가 실제 핵무기를 갖는 데 있다는 것이 거의 명백해졌기 때문이다. “설마 한국이 있는데 북한을 칠 수 있을까” 기자가 반론을 제기하자 그는 10년 전에도 미국은 북한의 반격을 가정하고 북폭(北爆) 계획을 짰다는 사실을 상기시켰다.

놀랄 일은 아니다. 요즘 북한 핵문제를 둘러싸고 워싱턴에서 오가는 대화들이 늘 이렇다. 전쟁 얘기는 공공연하게 오간다. 지난 3일엔 미국 국가정보위원장까지 한반도 전쟁 가능성을 거론했다. 그는 청문회에 나와 “한반도에서 전쟁이 일어나면 매우 격렬하고 파괴적이 될 것이며, 사전경고도 거의 없이 일어날 수 있다”고 했다.

경제인들은 동물적 감각으로 위기를 느끼고 있다. 시장은 더 민감하다. 지난달 22일 월스트리트저널이 북한 핵실험 준비설을 보도하자 뉴욕의 주가지수는 즉시 곤두박질쳤다. “미국의 세계적인 투자분석회사들은 이미 분석을 끝냈을 것이다. 북한이 핵 실험을 하면 한국 경제는 어떻게 될지, 세계 경제는 어떻게 될지… 아직도 그걸 안 했다면 직무유기지.”

워싱턴에서 일하는 한 한국 금융전문가의 말이다. 북한 핵실험은 한국 경제에 파국적 상황이 될 수 있다는 게 그의 시각이었다. “적대 세력 간 전력(戰力)이 절대적으로 불균형한 곳에 누가 투자를 하고 공장을 짓겠느냐”고 그는 말했다. 이 금융전문가와 1시간여 만나는 동안 절반 이상이 북한 핵위기 얘기로 채워졌다.

모든 사람들이 북한을 입에 달고 다닌다. 지난달 28일 부시 대통령이 나서 김정일 위원장에 대해 ‘폭군’ ‘위험한 사람’이라고 지칭한 이후 미 행정부에선 하루도 빠짐없이 대북 비난이 나왔다. 앤드루 카드 백악관 비서실장이 나서고, 칼 로브 부실장이 TV 카메라 앞에서 작심한듯 김정일을 공격했다. 미국 언론들도 놀랐다.

국무부 대변인단의 말은 외교적 언사의 교과서다. 그 국무부 대변인단의 입에서 북한에 대해 설득 조의 어법을 들어본 게 언젠가 싶다. “북한은 6자 회담에 복귀하는 것만이 유일한 해결책이다” “북한의 핵포기 거부는 국제사회로부터 자신의 고립을 심화시킬 뿐이다”는 말은 경고를 넘어 통첩의 뉘앙스에 가깝다.

“이 모든 것이 무엇을 의미하느냐”는 게 지금 워싱턴 사람들의 최대 화두다. “미국이 북한을 공격할까” “유엔 안보리에 가면 해결이 되나” “미국이 6자 회담에 마음을 접은 게 아닐까” “미국이 인공위성으로 무엇을 봤을까”….

한국에서 파견나온 우리 정부기관의 한 관리는 자기가 워싱턴에서 2년여 일하는 동안 지금처럼 북한 핵문제에 긴장해 본 적이 없다고 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제가 과민반응하는 것일까요? 정작 한국의 시장에서는 미동도 없고 사람들은 천하태평처럼만 보이니…”. “글쎄요.” 답답하고 우울한 것은 기자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북핵 문제 해결에 주도적 역할을 하겠다던 우리 정부는 뭘 어떻게 하려는 거죠?” 기자는 요즘 한국 관리들을 만나면 대개 이런 답변 없는 질문을 던지곤 한다.

통일연대 등, 북 ‘3대공조’ 일제히 추종

[김성욱 기자의 글; 미래한국, 2005. 3. 12, 3쪽.]

국내 운동권의 친북(親北)행태가 맹목적 종북(從北)수준에 이르고 있다. 북한이 민족자주공조, 반전평화공조, 통일애국공조의 소위 ‘3대공조’를 올해의 조국통일과업으로 제시하자, 국내 운동권이 이를 추종하고 나선 것이다.

북한은 올해 1월 1일 신년사(노동신문, 조선인민군보, 청년전위 등 3개 신문 공동사설)에서 기존의 ‘민족공조’ 구호에서 한발 나가 ‘민족자주공조, 반전평화공조, 통일애국공조’라는 소위 ‘3대공조’의 구호를 급조, “이것이 올해의 조국통일운동에 나서는 구호”라고 내세웠다. 북한이 ‘2005년 자주통일원년, 미군철수원년’ 구호와 함께 ‘3대공조’ 구호의 선전을 강화하면서, 통일연대 등 운동권 단체들도 기존의 ‘민족공조’ 구호를 ‘3대공조’ 구호로 변경하고 나셨다.

지난 3월 1일 통일연대는 성명을 통해 ‘우리에겐 민족자주공조, 반전평화공조, 통일애국공조라는 3대공조의 굳은 약속이 있다. 민족자주공조만세, 반전평화공조만세, 통일애국공조만세’라고 주장하는 등 각종 성명 등을 통해 3대공조를 역설하고 있다.

소위 민족해방(NL)계열 여타 운동권단체들의 북한추종양상은 크게 다르지 않다. 이적단체 범민련남측본부도 지난 3월 2일 “민족자주공조, 반전평화공조, 통일애국공조의 기치 아래 미군강점 60돌을 맞는 올해를 기어이 자주통일원년으로 미군철수를 높이 들고 자주통일원년, 주한미군철수원년으로 만들어내겠다는 절절한 의지가 온 겨레의 맥 속에 힘차게 뛰고 있다”는 등 역시 3대공조를 강조하고 있다.

2005년 사업목표를 자주통일원년, 미군철수원년으로 설정하고 있는 한총련 역시 지난 2월 14일 “민족자주공조, 반전평화공조, 통일애국공조의 3대공조 기치 높이 단결하여 투쟁하는 우리민족의 자자통일 지향은 막을 수 없다”고 강조했다.

이 밖에도 전국연합, 전국농민회총연맹(전농), 사월혁명회, 한총련, 찬청 등의 단체들도 지난 1월 30일 민족민주일꾼수련회 등에서 3대공조를 결의하고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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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는 성경의 근본 교리들을 보수하고, 자유주의 신학과 천주교회의 배교를 포용하는 타협과, 은사운동의 혼란을 반대하고, 또 그런 자들과 교제하는 자들도 책망하기를 원한다. 우리는 오늘날도 성경 말씀의 정로(正路)를 붙들고 그 길로 가는 교회들이 부흥 발전하기를 기도하며, 또 그런 자들과 교제하기를 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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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www.oldfaith.net에 올려져 있는 현대교회문제와 현대교회문제 자료집 및 옛신앙지(특별호) 등의 자료들을 참고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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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 안내

김효성, 현대교회문제 자료집. 330면. 5,000원(송료 포함).

● 김효성, 현대교회문제: 배교, 타협, 혼란

● 조영엽, 왜 열린 예배는 잘못되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