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신앙  2005년 9월 11일 [제9권 37호]   ◆ 매주 발행 ◆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너희는 길에 서서 보며 옛적 길 곧 선한 길이 어디인지 알아보고 그리로 행하라. 너희 심령이 평강을 얻으리라' 하나, 그들의 대답이 '우리는 그리로 행치 않겠노라' 하였으며"(렘 6:16).

 

 

옛신앙

 

Old-time Fait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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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옛신앙'이란, 옛부터 하나님의 선지자들과 주의 사도들이 가졌던 신앙, 오직 정확 무오(無誤)한 하나님 말씀인 신구약 성경에만 근거한 신앙, 오늘날 배교와 타협의 풍조에 물들지 않는 신앙을 의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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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오전설교:                                   위로부터 난 지혜

야고보서 3:13, "너희 중에 지혜와 총명이 있는 자가 누구뇨? 그는 선행으로 말미암아 지혜의 온유함으로 그 행함을 보일지니라."

지혜는 사람에게 귀하고 가치 있는 덕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지혜를 원할 것이며 아무도 어리석은 자가 되기를 원치 않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지혜가 많으신 분입니다. 사람은 본래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지혜롭게 창조되었으나 죄를 범함으로 그 지혜를 잃어버렸습니다. 그러므로 이제 지혜를 얻는 사람은 유익을 얻고 복과 평강을 누릴 것이지만, 미련한 자는 유익을 얻지 못하고 도리어 해와 화를 당하게 될 것입니다.

성경은 지혜가 참으로 귀하고 가치 있는 덕임을 강조합니다. 잠언 3:13-18은 말하기를, "지혜를 얻은 자와 명철을 얻은 자는 복이 있나니 이는 지혜를 얻는 것이 은을 얻는 것보다 낫고 그 이익이 정금보다 나음이니라. 지혜는 진주보다 귀하니 너의 사모하는 모든 것으로 이에 비교할 수 없도다. 그 우편 손에는 장수가 있고 그 좌편 손에는 부귀가 있나니 그 길은 즐거운 길이요 그 첩경은 다 평강이니라. 지혜는 그 얻은 자에게 생명 나무라. 지혜를 가진 자는 복되도다"라고 합니다. 이와 같이, 성경은 지혜를 은이나 정금보다 낫고, 진주보다 귀하며 인간이 사모하는 모든 것보다 더 귀한 것으로 평가하고 지혜에 따라오는 복은 장수(長壽), 부귀[부요와 존귀], 즐거움, 평강[평안], 그리고 생명 나무 즉 영원한 생명이라고 말합니다.

또 잠언 4:7-9도 말하기를, "지혜가 제일이니 지혜를 얻으라. 무릇 너의 얻은 것을 가져 명철을 얻을지니라. 그를 높이라 그리하면 그가 너를 높이 들리라. 만일 그를 품으면 그가 너를 영화롭게 하리라. 그가 아름다운 관을 네 머리에 두겠고 영화로운 면류관을 네게 주리라"고 합니다. 즉 지혜는 귀한 것 중에 가장 귀한 것, 즉 제일 귀한 것이며 지혜는 지혜를 얻는 자를 존귀케 하고 영화롭게 한다고 성경은 말하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성경은 지혜를 이 세상에서 가장 귀한 덕으로 말합니다. 사실, 성경이 말하는 이 지혜는 하나님을 알고 그의 은혜로 구원받는 것을 포함합니다. 즉 그것은 구원의 지혜를 포함합니다.

오늘 본문은 지혜에 두 종류가 있다고 말합니다. 하나는 땅에 속한 지혜요, 다른 하나는 위로부터 난 지혜입니다. 첫째로, 땅에 속한 지혜가 있습니다. 본문 15절은 "이러한 지혜는 위로부터 내려온 것이 아니요 세상적이요 정욕적이요 마귀적이니"라고 말합니다. '이러한 지혜'라는 앞 절에서 말한 교인들 가운데 있었던 독한 시기와 다툼을 가진 마음을 가리킵니다. 야고보는 당시의 교인들이 가졌던 그런 지혜를 세상적이라고 말합니다. '세상적'이라는 말은 이 땅에 속한 것, 이 세상에 속한 것이라는 뜻입니다. 그것은 세속적 지혜, 현세적 지혜를 말합니다.

사람들 중에는 이런 지혜가 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사람들 중에는 돈 버는 지혜가 뛰어난 사람들이 있습니다. 또 사람들 중에는 출세하고 성공하는 길을 아는 지혜를 가진 사람이 있습니다. 누가복음 16장에 보면, 예수께서는 불의한 청지기 비유를 하시면서 이 세대의 아들들이 자기 시대에 있어서는 빛의 아들들보다 더 지혜롭다고 말씀하셨습니다(눅 16:8). 이런 지혜는 세상적 지혜, 땅에 속한 지혜입니다.

그러나 이와 대조적으로, 둘째로, 위로부터 난 지혜가 있습니다. 본문 15절은 '위로부터 내려온 지혜'를 암시하고, 17절은 "위로부터 난 지혜"에 대해 말합니다. 위로부터 난 지혜는 하나님께서 주시는 지혜입니다. 하나님은 지혜의 하나님이십니다. 그는 지극히 지혜로우신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모든 지혜의 근원이십니다. 그 지혜의 하나님께서 주시는 지혜가 위로부터 난 지혜입니다. 잠언 2:6은 여호와께서 사람들에게 지혜를 주신다고 말합니다. 이 지혜가 위로부터 난 지혜요 참지혜이며 가장 가치 있다고 성경이 말하는 지혜입니다.

땅에 속한 지혜와 위로부터 난 지혜는 각각 그 특성이 다릅니다. 오늘 본문은 그 특성을 증거합니다. 우선, 땅의 지혜의 특성은 무엇입니까? 본문 14절은 땅의 지혜의 특성이 독한 시기와 다툼이라고 말합니다. 또 16절도 그 특성을 시기와 다툼이라고 말하며 또 거기에 요란 곧 무질서와 모든 악한 일이 있다고 말합니다. 하나님은 어지러움의 하나님이 아니시고 질서와 화평의 하나님이시므로(고전 14:33) 하나님이 주시는 참지혜는 시기와 다툼과 무질서를 만들지 않고, 또 하나님은 선하신 하나님이시므로 하나님이 주시는 참지혜는 악을 행치 않고 선만 행합니다. 그러나 땅에 속한 지혜는 시기와 다툼을 만들고 무질서하고 악을 행합니다.

본문 15절은 땅에 속한 지혜에 대해 "이러한 지혜는 위로부터 내려온 것이 아니요 세상적이요 정욕적이요 마귀적이니"라고 말합니다. '세상적'이라는 말은 이 땅에 속한 것이라는 뜻입니다. 땅에 속한 지혜의 관심은 오직 이 세상뿐입니다. 그러나 이 세상의 모든 것들은 결국 썩어질 것들이며 실상 허무한 것들이 아닙니까? 구약성경 전도서는 이 사실을 강조하여 말하기를,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라고 했습니다(전 1:2).

또 본문은 땅에 속한 지혜를 '정욕적'이라고 말합니다. '정욕적'이라는 원어(프쉬키케)는 '육신적'이라는 뜻입니다. 그것은 타고난, 죄악된 인간 본성에서 나온 것이라는 뜻입니다. 땅에 속한 지혜는 본질적으로 인간의 죄악된 본성에서 나왔기 때문에 악하고 또 기회 있는 대로 악을 도모하는 악한 지혜입니다.

또 본문은 땅에 속한 지혜를 '마귀적'이라고 말합니다. 그것은 악령들에 이끌림을 받는 지혜, 불경건하고 악하고 더럽고 거짓된 정신에 이끌림을 받는 지혜라는 뜻입니다. 이것이 땅에 속한 지혜입니다. 그것은 세상적이고 육신적이고 마귀적입니다. 그것은 결코 하나님을 기쁘시게 못하며 오히려 하나님을 노엽게 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면 위로부터 난 지혜, 하나님이 주시는 지혜는 어떤 특성을 가집니까? 그것은 본문 17절이 잘 말합니다. "위로부터 난 지혜는 첫째 성결하고 다음에 화평하고 관용하고 양순하며 긍휼과 선한 열매가 가득하고 편벽과 거짓이 없나니."

위로부터 난 지혜는, 첫째로, 성결합니다. 하늘의 지혜는 죄악되지 않습니다. 그것은 거룩하고 깨끗하며 의롭습니다. 성경에 계시된 하나님의 뜻과 하나님의 말씀에 어긋나는 것은 참지혜가 아닙니다. 참지혜는 거룩하고 의롭습니다.

둘째로, 그것은 화평합니다. 하늘의 지혜를 가진 자들 가운데는 다툼과 싸움이 없고 시기와 질투가 없습니다. 시기와 질투, 다툼과 싸움은 세상적, 육신적, 마귀적 지혜에서 나옵니다. 참지혜는 화평합니다.

셋째로, 그것은 관용합니다. '관용하다'는 원어(에피에이케스)는 '온유하다, 친절하다'는 뜻입니다. 참지혜는 결코 사납거나 거칠지 않습니다. 사납고 거친 것은 육신의 죄성이요 마귀적 속성입니다. 참지혜는 온유하고 친절합니다.

넷째로, 그것은 양순합니다. '양순하다'는 원어(유페이데스)는 '순종적이다, 유순하다'는 뜻입니다. 참지혜를 얻은 자들은 하나님의 뜻에 겸손히 순종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는 것, 하나님의 말씀으로 길들여지지 않는 것은 땅에 속한 지혜입니다. 참지혜는 순종적이며 유순합니다.

다섯째로, 그것은 긍휼과 선한 열매들이 가득합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지혜를 가진 자는 남을 긍휼히 여기고 선한 마음을 가지고 선한 말과 행실이 가득합니다. 거기에는 미움이나 악한 마음이 없습니다. 사람이 마음으로 긍휼과 선을 품으면 그의 말도, 그의 행실도 선하게 나오는 법입니다.

여섯째로, 그것은 편벽되지 않습니다. 하늘의 지혜는 공평하고 공정합니다. 자기의 이권에 따라 악도 선이 되고 선도 악이 되는 것은 세상적, 육신적, 마귀적 지혜의 모습입니다. 참지혜는 성경의 진리대로 선은 항상, 어느 때든지 선이고 악은 항상, 어느 경우든지 악이라고 판단하는 지혜입니다. 자기 가족이니까, 자기 친구니까, 악도 묵인되거나 두둔되는 일은 결코 없습니다.

일곱째로, 그것은 거짓이 없습니다. 참지혜는 거짓됨이나 가장(假裝)과 위선이 없고 진실합니다. 그러나 세상적, 육신적, 마귀적 지혜는 자기의 이익에 따라 말을 바꾸고 판단을 바꾸는 이기적이고 기회주의적입니다.

한마디로, 위로부터 난 지혜, 즉 하나님께서 주시는 지혜는 도덕적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도덕적 속성을 본받은 것입니다. 그 지혜는 모든 불의와 악을 미워하고 거룩하고 화평하고 온유하고 유순하며 남을 긍휼히 여기고 선한 말과 행동을 하고 공정하고 진실합니다. 그러므로 본문 18절은 그런 지혜를 가진 자들은 의와 화평의 열매들을 맺는다고 말합니다.

그러면 참지혜를 얻는 방법은 무엇입니까? 오늘 본문은 그것에 대해서 언급하지 않고 단지 암시합니다. 그것은 '위로부터 내려온 지혜'(15절), '위로부터 난 지혜'(17절)라는 말에 암시되어 있습니다. 참지혜는 하나님이 주시는 지혜, 하나님께서 주셔야 비로소 받을 수 있는 지혜입니다(잠 2:6).

그러므로 참지혜를 얻으려면 무엇보다 먼저 하나님께 간구하며 사모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기도를 응답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구할 것들 중에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이 지혜입니다. 잠언 2:4, 5은 말하기를, "은을 구하는 것같이 그것을 구하며 감추인 보배를 찾는 것같이 그것을 찾으면 여호와 경외하기를 깨달으며 하나님을 알게 되리니"라고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참지혜를 간절히 사모하는 자에게 그것을 주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 참지혜를 구하며 간절히 사모하십시오.

또 성경은 우리가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즉 하나님을 알고 그를 인정하고 그를 두려워함으로 참지혜를 얻는다고 말합니다. 잠언 9:10은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혜의 근본이요 거룩하신 자를 아는 것이 명철이니라"고 말합니다.

또 성경은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함으로 참지혜를 얻는다고 말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참지혜를 주시기 위해 성경책을 주셨습니다. 잠언 1:1-5은 말하기를, "다윗의 아들 이스라엘 왕 솔로몬의 잠언이라. 이는 지혜와 훈계를 알게 하며 명철의 말씀을 깨닫게 하며 지혜롭게, 의롭게, 공평하게, 정직하게 행할 일에 대하여 훈계를 받게 하며 어리석은 자로 슬기롭게 하며 젊은 자에게 지식과 근신함을 주기 위한 것이니 지혜 있는 자는 듣고 학식이 더할 것이요 명철한 자는 모략을 얻을 것이라"고 합니다. 잠언 성경의 목적은 지혜를 주는 것입니다. 그 책은 하나님을 경외하고 도덕적이게 사는 것 즉 경건하고 의롭고 선하고 진실하게 사는 것이 지혜임을 강조합니다.

사도 바울은 디모데에게 "또 네가 어려서부터 성경을 알았나니 성경은 능히 너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느니라"고 말했습니다(딤후 3:15). 예수 그리스도를 알고 그를 믿음으로 죄씻음과 영생의 구원을 얻는 것은 가장 귀하고 중요한 지혜입니다. 그 지혜는 성경을 통해 얻을 수 있습니다.

시편 119:98-100에 보면, 시편 저자는 고백하기를, "주의 계명이 항상 나와 함께하므로 그것이 나로 원수보다 지혜롭게 하나이다. 내가 주의 증거를 묵상하므로 나의 명철함이 나의 모든 스승보다 승하며 주의 법도를 지키므로 나의 명철함이 노인보다 승하니이다"라고 했습니다. 이와 같이, 참지혜는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얻습니다.

특히 참지혜는 하나님의 말씀을 실천함으로 얻습니다. 앞에 인용한 시편의 말씀도 "주의 법도를 지키므로 나의 명철함이 노인보다 승하니이다"라고 고백했습니다. 예수께서도 산 위에서 무리들에게 여러 말씀으로 가르치신 후 결론적으로 말씀하시기를, "그러므로 누구든지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는 자는 그 집을 반석 위에 지은 지혜로운 사람 같으리니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히되 무너지지 아니하나니 이는 주초를 반석 위에 놓은 연고요, 나의 이 말을 듣고 행치 아니하는 자는 그 집을 모래 위에 지은 어리석은 사람 같으리니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히매 무너져 그 무너짐이 심하니라"고 했습니다(마 7:24-27).

행함이 없는 지혜는 그 자체가 가짜입니다. 참지혜는 선을 행함으로 증거되고 확인됩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 13절도, "너희 중에 지혜와 총명이 있는 자가 누구뇨? 그는 선행으로 말미암아 지혜의 온유함으로 그 행함을 보일지니라"고 말합니다.

말씀을 마칩니다. 우리는 먼저 지혜를 구별해야 하겠습니다. 땅에 속한 지혜와 위로부터 난 지혜를 구별할 줄 알아야 하겠습니다. 세상적 지혜를 하나님의 지혜로 착각하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오늘 본문 14절은 "너희 마음 속에 독한 시기와 다툼이 있으면 자랑하지 말라. 진리를 거스려 거짓하지 말라"고 말합니다. 이것은 우리 속한 독한 시기와 다툼이 있으면 그것은 세상적, 육신적, 마귀적 지혜를 가진 것이지 위로부터 난 지혜, 즉 하나님의 지혜를 받은 것이 아님을 알라는 뜻입니다. 우리는 우리 속에 하나님이 주신 참지혜가 있는지, 아니면 단지 세상적, 육신적, 마귀적  지혜가 있을 뿐인지 분명히 분별해야 할 것입니다.

두 종류의 지혜가 분별이 된다면, 그 다음 우리는 하나님께서 주시는 지혜, 위로부터 나는 참지혜를 사모하며 그 지혜를 얻고 충만히 얻어야 하겠습니다. 하나님의 참지혜를 사모합시다. 참지혜를 사모하는 자가 그 지혜를 얻을 것입니다. 또 하나님을 경외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열심히 읽고 묵상합시다. 하나님께서 지혜를 주시는 방편이 성경책입니다. 또 하나님의 말씀을 배운 대로, 또 배운 만큼 성실히 실천합시다. 참된 경건, 거룩과 의, 선함, 사랑, 긍휼, 겸손, 진실을 힘써 실천합시다. 우리가 이렇게 경건과 의와 선을 행할 때 우리는 점점 지혜로운 자가 될 것입니다.

특히, 우리는 우리의 온유하고 선한 말과 행실로 그 지혜를 나타내어야 하겠습니다. 본문 13절 말씀대로, "너희 중에 지혜와 총명이 있는 자가 누구뇨? 그는 선행으로 말미암아 지혜의 온유함으로 그 행함을 보일지니라." 성경은 우리가 경건하고 거룩하고 의롭고 선하고 온유하고 화평한 말과 행실로 하나님께서 주신 참지혜를 다른 이들에게 보여주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지혜를 받았다면, 말과 행위로 그것을 나타내고 증거해야 합니다.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입니다. 우리가 참으로 하나님의 백성이라면, 우리는 선한 말과 행위로 그것을 증거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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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일오후설교: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 사역

예수 그리스도의 제사장직의 중심은 속죄 사역이다. 속죄의 진리는 하나님의 복음의 핵심이다. 고린도전서 1:23, "우리는 십자가에 못박힌 그리스도를 전하니." 고린도전서 15:3, (복음의 내용) ". . . 성경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박형룡 박사는 말하기를, "속죄 교리는 기독교 신앙의 중심이며 초점이다"라고 하였다.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 사역은 왜 필요하였는가? 그것은 궁극적으로 하나님의 기쁘신 뜻에 기인하였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기쁘신 뜻 가운데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의 모든 죄를 대속하셨다. 갈라디아서 1:4은 말하기를,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곧 우리 아버지의 뜻을 따라 이 악한 세대에서 우리를 건지시려고 우리 죄를 위하여 자기 몸을 드리셨으니"라고 하였다.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 사역은 하나님의 공의와 사랑 때문에 필요하였다. 첫째로, 그리스도의 속죄 사역은 하나님의 공의 때문에 필요하였다. 하나님의 공의는 죄인들의 죄에 대한 형벌을 요구한다. 출애굽기 34:7, ". . . 형벌 받을 자는 결단코 면죄하지 않고." 신명기 27:26, "이 율법의 모든 말씀을 실행치 아니하는 자는 저주를 받을 것이라." 어떤 이는 사람의 구원을 위해 그리스도의 속죄가 반드시 필요하지 않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하나님의 공의는 우리의 구원을 위해 그리스도께서 우리 대신 우리 죄의 형벌을 받으셔야 했음을 증거한다. 그리스도께서 우리 대신 죄의 형벌을 받지 않으셨다면, 우리에게 구원의 가망성은 없었다.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이 하나님의 공의를 만족시키는 속죄의 죽음이었음을 분명히 증거한다. 로마서 3:25, 26, "이 예수를 하나님이 그의 피로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는 화목제물로 세우셨으니, 이는 하나님께서 길이 참으시는 중에 전에 지은 죄를 간과하심으로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려 하심이니 곧 이 때에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사 자기도 의로우시며 또한 예수 믿는 자를 의롭다 하려 하심이니라." 갈라디아서 3:13,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 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 기록된 바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 아래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 고린도후서 5:21, "하나님이 죄를 알지도 못하신 자로 우리를 대신하여 죄를 삼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저의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둘째로, 그리스도의 속죄 사역은 또한 하나님의 사랑 때문에 필요하였다. 예수께서 십자가 위에서 속죄의 죽음을 죽으신 것은 하나님의 사랑의 절정적 표현이었다. 요한복음 3:16,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로마서 5:8,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요한일서 4:9, 10,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이렇게 나타난 바 되었으니 하나님이 자기의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심은 저로 말미암아 우리를 살리려 하심이니라.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위하여 화목제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니라."

속죄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성경은 그것을 네 개의 단어로 표현한다. 첫번째 단어는 '제사'다.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을 '제사'라고 표현한다. 히브리서 10:12, "오직 그리스도는 죄를 위하여 한 영원한 제사를 드리시고 하나님 우편에 앉으사." 구약 제사의 기본적 의미는 제물이 죄인의 죄를 대신 담당하는 것이었다. 그것을 속상(贖償, expiation; 죄책과 형벌의 보상)이라고 부른다. 레위기 1:4, "그가 번제물의 머리에 안수할지니 그리하면 열납되어 너를 위하여 속죄가 될 것이라." 속죄일의 아사셀 염소에 대한 규례는 안수가 죄의 전가를 의미함을 증거한다. 레위기 16:21, 22, "아론은 두 손으로 산 염소의 머리에 안수하여 이스라엘 자손의 모든 불의와 그 범한 모든 죄를 고하고 그 죄를 염소의 머리에 두어 미리 정한 사람에게 맡겨 광야로 보낼지니 염소가 그들의 모든 불의를 지고 한적한 곳에 이르거든 그는 그 염소를 광야에 놓을지니라." 이 '산 염소'는 '아사셀'이라고 불리웠는데(레 16:10), 그것은 '내어놓는 염소'라는 뜻으로서 죄의 완전한 제거와 용서를 상징하였다.

예수께서는 선택된 자들을 위하여 한 영원한 속죄 제사를 드리심으로 그들의 죄책과 형벌을 담당하셨고, 하나님의 공의를 만족시키셨다. 고린도후서 5:21, "하나님이 죄를 알지도 못하신 자로 우리를 대신하여 죄를 삼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저의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갈라디아서 3:13,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 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 기록된 바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 아래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

성경이 그리스도의 속죄를 표현하는 두 번째 단어는 '구속'(救贖)이다. '구속'이라는 단어는 속전(贖錢)을 내고 건져낸다는 뜻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십자가의 죽으심으로 선택된 자들의 죄값을 다 지불하시고 그들을 사셔서 그들의 죄책과 형벌로부터 건져내셨다. 마태복음 20:28,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代贖物)로 주려 함이니라." 사도행전 20:28, "하나님이 자기 피로 사신 교회." 로마서 3:24,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구속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 고린도전서 6:19, 20, ". . . 너희는 너희의 것이 아니라 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 그런즉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 디모데전서 2:6, "그가 모든 사람을 위하여 자기를 속전(贖錢)으로 주셨으니." 디도서 2:14, "그가 우리를 대신하여 자신을 주심은 모든 불법에서 우리를 구속(救贖)하시고 우리를 깨끗하게 하사 선한 일에 열심하는 친백성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성경이 그리스도의 속죄를 표현하는 세 번째 단어는 '유화'(宥和, propitiation)이다. '유화'란 진노를 가라앉힌다, 누그러뜨린다는 뜻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십자가의 죽으심으로 우리의 죄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를 가라앉히셨다. 로마서 3:25, "이 예수를 하나님이 그의 피로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는 화목제물[유화제물](힐라스테리온)로 세우셨으니." 히브리서 2:17, "이는 하나님의 일에 자비하고 충성된 대제사장이 되어 백성의 죄를 구속하려(유화하려) 하심이라." 요한일서 2:2, "저는 우리 죄를 위한 화목제물[유화제물]." 요한일서 4:10, "오직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위하여 화목제[유화제물]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니라."

성경이 그리스도의 속죄를 표현하는 네 번째 단어는 '화목'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우리와 하나님과의 적대 관계를 좋은 관계로 회복시키셨다. 로마서 5:10, "우리가 원수되었을 때에 그 아들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으로 더불어 화목되었은즉." 로마서 5:11, "이제 우리로 화목을 얻게 하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고린도후서 5:18,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를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고 화목하게 하는 직책을 주셨으니." 에베소서 2:16, "또 십자가로 이 둘[유대인과 이방인]을 한 몸으로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려 하심이라."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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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교회문제:                       미국의 개신교인들의 신앙관

[David W. Cloud, Friday Church News Notes; Christian News, 5 January 2004, p. 3.]

바나 설문조사에 의하면, 미국의 주류 개신교인들의 오직 2%만 성경적 세계관을 가지고 있다. 성경적 세계관이란 "절대적인 윤리적 진리들이 존재하며 그러한 진리가 성경에 의해 규정되어 있다는 것을 믿는 것과 다음 여섯 가지의 특정한 종교적 견해들에 대한 확고한 믿음"으로 정의되는데, 그 여섯 가지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죄 없는 삶을 사셨다는 것, 하나님께서는 전능하시고 전지하신 우주의 창조자이시며 오늘날도 여전히 그것을 통치하신다는 것, 구원은 하나님의 선물이며 노력하여 얻을 수 없다는 것, 사탄은 실제하다는 것, 크리스챤은 그리스도에 대한 그들의 믿음을 다른 사람들과 나누어야 할 책임이 있다는 것, 그리고 성경은 그것의 모든 가르침들에 있어서 정확하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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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는 성경의 근본 교리들을 보수하고, 자유주의 신학과 천주교회의 배교를 포용하는 타협과, 은사운동의 혼란을 반대하고, 또 그런 자들과 교제하는 자들도 책망하기를 원한다. 우리는 오늘날도 성경 말씀의 정로(正路)를 붙들고 그 길로 가는 교회들이 부흥 발전하기를 기도하며, 또 그런 자들과 교제하기를 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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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www.oldfaith.net에 올려져 있는 현대교회문제와 현대교회문제 자료집 및 옛신앙지(특별호) 등의 자료들을 참고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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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효성, 현대교회문제 자료집. 330면. 5,000원(송료 포함).

● 김효성, 현대교회문제: 배교, 타협, 혼란

● 조영엽, 왜 열린 예배는 잘못되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