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신앙 2005년 12월 04일 [제9권 49호] ◆ 매주 발행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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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너희는 길에 서서 보며 옛적 길 곧 선한 길이 어디인지 알아보고 그리로 행하라. 너희 심령이 평강을 얻으리라' 하나, 그들의 대답이 '우리는 그리로 행치 않겠노라' 하였으며"(렘 6:16). |
옛신앙
Old-time Faith www.oldfaith.net |
'옛신앙'이란, 옛부터 하나님의 선지자들과 주의 사도들이 가졌던 신앙, 오직 정확 무오(無誤)한 하나님 말씀인 신구약 성경에만 근거한 신앙, 오늘날 배교와 타협의 풍조에 물들지 않는 신앙을 의미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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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1-884 서울 마포구 합정동 364-1
합정동교회 김효성 목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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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오전설교: "아내의 의무" 디도서 2:4, 5, "저들로 젊은 여자들을 교훈하되 그 남편과 자녀를 사랑하며 근신하며 순전하며 집안일을 하며 선하며 자기 남편에게 복종하게 하라." '아내의 의무'라는 문제를 생각할 때, 남편의 의무에 대해서도 말해야 균형이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물론 그렇습니다. 사실, 성경은 아내든 남편이든 모든 사람이 하나님을 경외하며 좋은 사람이 되라고 가르칩니다. 하나님의 일차적인 뜻은 사람의 구원이지만, 그 구원의 목적하는 바는 결국 이 세상에서도 좋은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좋은 사람이란 하나님을 경외하는 경건과 믿음을 가지고 하나님의 계명대로 의롭고 선하게 살고 자기의 할 일을 근면하고 성실하게 하는 사람입니다. 죄는 불경건과 악이요, 의는 경건과 선과 사랑입니다. 넓게는, 아내의 의무와 남편의 의무도 그 범위 안에 듭니다. 결국, 예수님 믿고 구원받아 좋은 사람이 되는 성도는 가정에서 좋은 아내도, 좋은 남편도 될 것입니다. 남편은 자기 아내를 사랑하고 자녀들을 사랑하고 자신을 위해 그리고 가정을 위해 자기 재능에 따라 바깥일을 성실히 행하라고 성경은 가르칩니다. 남편은, 아내가 보통 '우리 집 바깥 양반'이라고 부르는 것과 같이, 바깥일을 책임진 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아내의 의무는 무엇입니까? 오늘 이 시간 저는 저의 개인적 생각을 말하려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이 이 문제에 대해 무어라고 말하는지 말하고자 합니다. 성경은 우리의 신앙과 생활의 정확무오한 유일의 규칙이기 때문에 성도는 성경의 교훈대로 살아야 합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뜻이요 복된 길입니다. 첫째로, 아내의 의무는 집안일을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맨 처음 여자를 만드실 때 남편을 돕는 자가 되게 하기 위해 만드셨습니다. 창세기 2:18, "여호와 하나님이 가라사대 사람의 독처하는 것이 좋지 못하니 내가 그를 위하여 돕는 배필(돕는 자, helper)을 지으리라 하시니라." 그러므로 아내의 첫번째 임무는 자기 남편을 돕는 일, 즉 내조(內助)하는 일입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뜻이며 성경적인 견해입니다. 그러므로 시편 128:3은 아내를 표현하기를, "네 집 내실(內室)에 있는 네 아내"라고 했습니다. 성경의 아내상(像)은 집 안에서 집안일을 하는 주부입니다. 잠언 31:10-31의 긴 부분은 '현숙한 여인'에 대해 말합니다. 여기에 묘사된 현숙한 여인은 모든 여성의 모범과 같습니다. 성경에 여성에 대해 이렇게 길게 묘사한 곳은 다른 어디에도 없습니다. 거기에 보면, 10절에 현숙한 여인 혹은 아내는 진주(진주들, 홍옥들 rubies)보다 더 귀하다고 말합니다. 11, 12절에는 그런 자의 남편의 마음은 그를 믿으며 그런 자는 살아 있는 동안 그 남편에게 선을 행하고 악을 행치 않는다고 말합니다. 13, 14절은 그가 양털과 삼을 구하며 부지런히 손으로 일하며 또 먼 데서 양식을 가져온다고 말합니다. 15절은 그가 밤이 새기 전에 일어나서 그 집사람에게 식물을 나눠주며 여종에게 일을 정하여 맡긴다고 말합니다. 27절에는 그가 그 집안일을 보살피고 게을리 얻은 양식을 먹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다시 말해, 잠언의 이 본문은 지혜와 부지런함으로 집안일을 행하는 여인의 모습을 묘사하는 것입니다. 그런 자가 현숙한 여인이며 성경적 아내상입니다. 오늘 읽은 디도서 2:4, 5도 아내의 이 의무에 대해 말합니다. 거기에 보면, 특히 젊은 아내는 그 남편과 자녀들을 사랑하며 집안일을 해야 할 것이라고 말합니다. 집안일들, 가정의 일들, 가사의 일들은 일차적으로 아내의 몫입니다. 바깥일이 남편의 의무인 것처럼, 집안일은 아내의 의무입니다. 집안일은 재미없는 일이며 해도해도 끝이 없는 일이며, 흔히 말하듯이, 해도 표가 안 나며 안 하면 표가 나는 일이지만, 여자가 결혼하여 아내가 되면 집안일은 일차적으로 그의 의무입니다. 이 의무를 다 하는 여성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둘째로, 아내의 의무는 자녀들을 출산하고 양육하는 것입니다. 창세기 1:27, 28에 보면, 하나님께서 맨 처음에 사람을 남자와 여자로 창조하시고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말씀하시기를,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고 하셨습니다. 그 하나님의 뜻은 유효기한이 지났거나 취소되지 않았습니다. 여전히 자녀를 많이 출산하는 것(多産)은 하나님의 기쁘신 뜻이며 하나님의 복입니다. 시편 127:3-5은 "자식은 여호와의 주신 기업이요 태의 열매는 그의 상급이로다. 젊은 자의 자식은 장사[장수]의 수중의 화살 같으니 이것이 그 전통(화살통)에 가득한 자는 복되도다. 저희가 성문에서 그 원수와 말할 때에 수치를 당치 아니하리로다"라고 말합니다. 자녀 출산과 양육은 여자의 특권이며 의무입니다. 자녀 출산과 양육은 여자가 할 수 있는 매우 중요하고 선한 일입니다. 산아 제한은 하나님의 뜻에 역행(逆行)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뜻을 불순종하는 일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건강이 극도로 약하다든지 경제적으로 심각히 어려운 처지에 있다든지 하는 부득이한 경우가 아니라면, 출산은 장려되어야 합니다. 오늘날 젊은 부부들이 자녀 양육의 수고로움이나 자녀교육비의 부담 때문에 출산을 기피하는 것은 선한 일이 아니라는 것이 확실합니다. 물론, 오늘날 우리 나라에서 자기 수입에 비해 지나치게 많이 사교육비를 지출하는 풍조는 극히 비정상적인 풍조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믿고 섬기는 성도들은 자녀교육도 분수에 맞게 해야 하고, 자녀교육비 부담 때문에 출산을 기피하지도 말아야 합니다. 여성이 여러 명의 자녀들을 낳아서 경건하고 도덕적이게, 훌륭하게 키운다는 것은 하나님의 나라를 위하여 또 이 세상 사회나 국가를 위하여 얼마나 중요하고 귀한 일을 하는 것인지 알아야 합니다. 성경이 남녀의 구별을 말할 때 여성의 지위가 남성보다 낮아보이지만, 훌륭한 남자들의 배후에는 훌륭한 어머니들이 있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성경 디모데전서 2:15도 그런 뜻으로 말씀하기를, "그러나 여자들이 만일 정절로써 믿음과 사랑과 거룩함에 거하면 그 해산함으로 구원을 얻으리라[그 지위의 회복을 얻으리라]"고 했습니다. 셋째로, 아내의 의무는 여성의 덕성(德性)을 가지는 것입니다. 여성의 덕성이 무엇입니까? 앞에서 인용한 잠언 31:10은 '현숙한 여인'에 대해 말합니다. 여기에 '현숙한'이라고 번역된 히브리어 카일은 '힘'이라는 뜻으로 '현숙한 여인'은 직역하면 '힘 있는 여인, 힘 있는 아내'입니다. 여기에서 힘은 육신의 건강이나 생활력도 포함하겠지만, 일차적으로 내면적인 힘, 즉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말미암는 지혜의 힘, 인격의 힘, 도덕성의 힘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30절에는 "고운 것[켄, 매력, charm]도 거짓되고 아름다운 것도 헛되나 오직 여호와를 경외하는 여자는 칭찬을 받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영어 성경들은 '현숙한 여인'이라는 말을 '덕스러운 여인'(KJV), '훌륭한(excellent) 아내'(NAS), '고상한 인격의 아내' (NIV) 등으로 번역합니다. 잠언 본문에, 현숙한 아내는 평생토록 남편에게 선을 행하고 악을 행치 않고 집안일을 부지런히 행하며 주위의 가난한 자들을 돌보는 여인으로 묘사되어 있습니다(12, 15, 20절). 여성의 가치성은 육체적 매력이나 미모에 있지 않고 그 경건함과 지혜와 도덕성과 성실성에 있다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여성의 덕성을 가르친 다른 중요한 성경 구절들은 디모데전서 2장과 베드로전서 3장입니다. 디모데전서 2:9-11은 이렇게 말합니다. "또 이와 같이 여자들도 아담한 옷을 입으며 염치와 정절로 자기를 단장하고 땋은 머리와 금이나 진주나 값진 옷으로 하지 말고 오직 선행으로 하기를 원하라. 이것이 하나님을 공경한다 하는 자들에게 마땅한 것이니라. 여자는 일절 순종함으로 종용히 배우라." 이 성경은 여성이 사치하거나 낭비하지 말고 외적 단장을 힘쓰지 말고 오직 선행과 순종으로 단장하라고 가르칩니다. 또 베드로전서 3:3-5은 이렇게 말합니다. "너희 단장은 머리를 꾸미고 금을 차고 아름다운 옷을 입는 외모로 하지 말고 오직 마음에 숨은 사람을 온유하고 안정한 심령의 썩지 아니할 것으로 하라. 이는 하나님 앞에 값진 것이니라. 전에 하나님께 소망을 두었던 거룩한 부녀들도 이와 같이 자기 남편에게 순복함으로 자기를 단장하였나니." 이 성경도 여성이 사치하거나 낭비하지 말고 외적 단장을 힘쓰지 말고 오직 온유하고 안정된[조용한 혹은 평온한] 심령과 순종으로 단장하라고 말합니다. 종합하여 보면, 이런 성경 구절들은 여성들이 경건함 가운데 사치와 낭비를 멀리하고 검소하고 절약적이게 살며 온유함과 조용함과 순종하는 덕을 가져야 할 것을 분명하게 교훈하고 있습니다. 말씀을 정리해봅시다. 사람이 범죄한 이후, 사람의 인격은 병들고 악화되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구원 곧 죄씻음과 새 생명 주심은 새로운 삶을 가능케 합니다. 그것은 본래대로의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좋은 사람, 선한 사람이 되어 선한 일을 많이 하게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성경이 명확히 계시하고 교훈하는 바입니다. 남녀를 막론하고, 모든 사람은 하나님을 경외하고 경건하게 살아야 하며 세상의 헛된 것에 의미와 가치와 소망을 두지 말고 오직 하나님과 천국에 두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 현실에 충실해야 합니다. 이제는 하나님의 계명대로 의롭고 선하게 살고 죄 짓지 말아야 하며 각자의 일에 충실하고 근면해야 합니다. 남편은 아내를 사랑하고 자기 일, 일반적으로 바깥일을 잘 감당하고 게으르지 말아야 합니다. 아내의 의무는 무엇입니까? 성경은 아내의 의무에 대해 무어라고 말합니까? 첫째로, 아내는 남편을 돕는 자로서 집안일을 부지런히 해야 합니다. 그는 남편의 좋은 내조자가 되어야 합니다. 둘째로, 아내는 자녀들을 출산하고 양육해야 합니다. 결혼하지 않았거나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혼자가 된 경우, 여성도 사회 활동을 할 수 있고 또 어떤 경우는 부득이 해야 하겠지만, 아내로서는 최선의 일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결혼한 여성은 하나님의 명하신 기본적 의무, 즉 남편을 내조하는 일과 자녀들을 출산하고 양육하는 일에 지장되지 않는 범위에서만 사회 활동을 해야 할 것입니다. 셋째로, 아내는 경건함 가운데 사치와 낭비를 멀리하고 검소하고 절약적이게 살며 온유함과 조용함과 순종의 덕을 가져야 합니다. 온유와 겸손은 남자에게도 필요한 덕인데, 여성에게 그 덕이 없다면 그것은 큰 부족이요 결함입니다. 우리 모두는 자신의 인간적 생각대로나 세상 사람들의 생각이나 유행이나 풍조대로 살지 말고 오직 하나님의 뜻대로, 성경의 교훈대로 살아가는 자가 되십시다. ------------------------------------------------------------------------------------ 교리강해: "성화(聖化)" 죄인들을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구원은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세 단계로 되어 있다. 구원의 과거적 단계는 중생과 칭의(稱義)이며 그것은 예수 믿는 자들에게 이미 이루어졌다. 구원의 현재적 단계는 성화(聖化)이며 그것은 예수 믿는 자들 속에서 지금 진행 중이다. 구원의 미래적 단계, 곧 구원의 완성은 영화(榮化)이다. 성화(聖化, 거룩하여짐; sanctification)가 무엇인가? 성화는 예수 그리스도와 성령으로 말미암아 거듭나고(重生) 의롭다 하심을 받은(稱義) 자들이 그 인격과 삶에 있어서 실제로 거룩해지는 과정을 가리킨다. 소요리문답 제35문답, "성화란 하나님의 값없으신 은혜의 일인데, 그것으로 우리는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전인(全人)이 새로워지고, 죄에 대해 점점 더 죽고 의에 대해 살 수 있게 됩니다." 성화는 전인(全人)이 새로워지는 것, 즉 영육 전체, 지정의(知情意)의 전 인격, 전 생활이 죄에 대해 점점 더 죽고 의에 대해 사는 것이다. 죄는 죄책과 부패성으로 구성된다. 칭의는 우리의 죄책이 법적으로 제거되는 것이지만, 성화는 칭의에 근거하여 우리의 부패성이 실제로 극복되는 과정이다. 또 칭의는 객관적인 사건이지만, 성화는 내면적인 사건이다. 그것은 인격과 삶의 변화의 문제이다. 성화는 사람의 인격과 삶의 실제적 변화이다. 그것은 그리스도께서 이미 십자가 위에서 이루시고 성령께서 적용하신 법적 의(義)를 성도들이 인격과 삶에서 실제로 나타내는 것이다. 성도들은 법적으로 이미 의롭다 하심을 받았고 거룩해졌다. 그러므로 그들은 실제로도 의롭고 거룩하고 선한 삶을 살아야 한다. 데살로니가전서 5:23, "평강의 하나님이 친히 너희로 온전히 거룩하게 하시고 또 너희 온 영과 혼과 몸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강림하실 때에 흠 없게 보전되기를 원하노라." 성화는 하나님의 형상의 회복이다. 하나님의 형상의 주요 내용은 지식과 도덕성이다. 사람은 범죄함으로 이 하나님의 형상을 잃어버렸었다. 그러나 그는 구원을 통해 그것을 회복하는 것이다. 사람에게 있어서 평생의 성화의 정도는 별로 크지 않은 듯하지만, 지식과 깨달음의 차원에서 그것은 상당히 진전된다. 성도들은 일생의 성화 과정을 통해 무엇보다 자신의 죄악성과 무능함, 그리고 하나님의 크신 은혜와 긍휼을 깨닫는다. 물론 그는 그것과 함께 거룩함과 의로움, 선함과 사랑과 진실함 등의 도덕성에 있어서도 상당한 열매를 맺을 것이다. 레위기 11:45,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지어다"(레 19:2 등). 에베소서 1:4,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 . ." 골로새서 3:10, "새 사람을 입었으니 이는 자기를 창조하신 자의 형상을 좇아 지식에까지 새롭게 하심을 받는 자니라." 에베소서 4:22- 24, "(받았으니) 곧 옛 생활방식에 관하여 너희가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옛 사람을 벗어버리고 오직 심령으로 새롭게 되어 하나님을 따라 참된 의와 거룩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는 것이라"(원문 직역). 데살로니가전서 4:3, "하나님의 뜻은 이것이니 너희의 거룩함이라." 베드로전서 1:15, "오직 너희를 부르신 거룩한 자처럼 너희도 모든 행실에 거룩한 자가 되라." 성화는 성경에서 때때로 예수 그리스도를 본받는 것이라고 표현된다. 에베소서 4:13, 15,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리니," "오직 사랑 안에서 참된 것을 하여 범사에 그에게까지 자랄지라. 그는 머리니 곧 그리스도라." 에베소서 5:2,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사랑하시며 우리를 위하여 자신을 버리사 향기로운 예물과 제사로 하나님께 드리셨음같이 너희도 사랑으로 행하라"(원문 직역). 골로새서 3:13, "피차 용서하되 그리스도께서 너희를 용서하신 것과 같이 너희도 그리하고." 베드로전서 2: 21, "그리스도도 우리를 위하여 고난을 받으사 우리에게 본을 끼쳐 그 자취를 따라 오게 하려 하셨느니라." 성화는 점진적이다. 중생은 영적 출생이며 성화는 영적 성장이다. 사람이 출생한 후 자라듯이, 성도는 영적으로 중생한 후에 점점 성화된다. 중생(重生)과 회개와 칭의는 단회적(單回的)이며 즉각적이지만, 성화는 중생에서 시작되어 일평생 동안 계속되는 점진적 과정이다. 야곱의 생애를 흔히 성화에 비교하듯이, 성도의 일생은 성화의 훈련 과정이다. 채소가 자라려면 단지 수개월이 필요하나 참나무는 백 년이 필요하듯이, 성도들의 성화는 오랜 기간과 많은 훈련들이 필요하다. 성화는 매우 더디어 보인다. 그러나 구원받은 성도는 점점 더 죄에 대해 죽고 의에 대해 산다. 성도는 왜 성화되어야 하는가? 우리가 성화되어야 할 근본적인 이유는 성화가 구원의 당연한 열매이기 때문이다. 갓난아기가 자라는 것은 당연한 일이며 정상적인 일이다. 기형아가 아니라면, 아기는 자라게 마련이다. 영적으로도 똑같다. 성화는 반드시 중생, 회개, 칭의를 따른다. 각 사람의 성화의 정도는 다를지라도 성화 없는 구원이란 있을 수 없다. 로마서 6:22, "이제는 너희가 죄에게서 해방되고 하나님께 종이 되어 거룩함에 이르는 열매를 얻었으니 이 마지막은 영생이라." 히브리서 12:14, "모든 사람으로 더불어 화평함과 거룩함을 좇으라. 이것이 없이는 아무도 주를 보지 못하리라." 하나님의 구원은 결코 실패치 않는 구원이다. 요한계시록 2-3장에 나오는 '이기는 자'라는 말은 성도들 가운데 이기는 자가 있고 지는 자가 있음을 의미하는가? 중생하고 칭의함을 받은 자들 가운데 성화에 실패하는 자가 있을 수 있는가? 그렇지 않다. 참으로 중생한 자, 참으로 믿고 의롭다 하심을 받은 자는 세상을 이길 것이다. 요한일서 5:4, "대저 하나님께로서 난 자마다 세상을 이기느니라. 세상을 이긴 이김은 이것이니 우리의 믿음이니라." 로마서 8:30, "또 미리 정하신 그들을 또한 부르시고 부르신 그들을 또한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 하신 그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로마서 8:35-37,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핍박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 . . .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리라." 성도가 성화되어야 할 또 하나의 중요한 이유는 우리가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대속(代贖)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너무 큰 은혜, 즉 너무 귀하고 완전하고 영광스러운 구원을 받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성도의 삶의 목표는 그 하나님의 은혜에 보답하여 이제는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고 죄 짓지 말고 오직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만 살고 그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만 행하는 것이다. 로마서 8:12,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빚진 자로되 육신에게 져서 육신대로 살 것이 아니니라." 로마서 12:1, 2,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 이는 너희의 드릴 영적 예배니라.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고린도전서 6:19, 20, "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너희는 너희의 것이 아니라. 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 그런즉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 고린도후서 5:14, 15,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강권하시는도다. 우리가 생각건대 한 사람이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었은즉 모든 사람이 죽은 것이라. 저가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으심은 산 자들로 하여금 다시는 저희 자신을 위하여 살지 않고 오직 저희를 대신하여 죽었다가 다시 사신 자를 위하여 살게 하려 함이니라." 성화는 필수적 과정이므로 성도는 자신의 성화를 위해 분발해야 한다. ----------------------------------------------------------------------- 현대사회문제: "서독의 동독 지원, 제대로 알기나 하나" [김현호, "서독의 동독 지원, 제대로 알기나 하나," 조선일보, 2005. 11. 15, A35쪽.] 통일부가 내년 예산에서 ‘북한인권문제 개선 노력’ 사업비로 잡은 액수는 4,500만원이다. 국제인권회의 참관이나 인권단체들의 발간물 구입 등에 쓰이는 돈이다. 통일부나 정부 차원에서 북한인권 문제와 관련해 사용하는 전체 예산은 물론 이것보다 훨씬 많다. 탈북자 지원에도 수백 억 원이 들어간다. 그래도 통일부의 ‘북한인권 개선 노력’ 비용은 국회가 보기에도 너무 적었던 모양이다. 국회 통일외교통상위원회는 “북한인권 문제에 더 적극적으로 나서라”며 2억 원을 늘려 주었다. 정부가 북한 인권을 위해서는 특별히 할 일도 없다고 생각하고 그래서 예산 확보에도 크게 신경을 쓰지 않고 있음을 보여주는 한 단면이라고 할 만하다. 반대로 정부는 대북 지원을 위해선 늘 돈타령이다. 북한 지원에 쓰일 내년도 남북협력기금을 올해보다 78.8% 늘어난 1조 2,632억 원으로 잡았다. 쌀·비료 지원과 개성공단 건설에 들어가는 비용은 별도다. 정부 재정만으로는 늘어난 남북기금을 충당할 수 없어 이 가운데 4,500억 원은 다른 정부기금에서 빌려 쓰기로 했다. 빚을 내서라도 북한을 돕겠다는 것이다. 대북 지원을 늘릴 때마다 현 정권은 서독의 동독지원 규모를 들고 나와 “우리는 아직도 많이 부족하다”고 말한다. 서독의 동독 지원 대부분이 서독 주민이 동독 친지들에게 보낸 금품과 서독 주민들의 동독 고속도로 통행료였다는 사실은 일단 접어두자. 그러나 서독은 화해와 지원의 상대에게도 인권문제에 대해서는 딱 부러지게 비판했다는 사실까지 외면해서는 곤란하다. 서독 사민당은 1959년 고데스베르크 전당대회에서 이런 내용을 담은 강령을 채택했다. “공산주의자들은 자유를 철저하게 억압하고 있다. 그들은 인권 및 개인과 인민들의 자결권을 침해하고 있다. 이제는 공산국가의 인민들까지도 그들의 권력기구에 대항하는 경우가 늘어나고 있다. 거기에서도 자유에 대한 갈망이 자라나고 있다. 어떤 체제도 그것을 억누를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공산주의 독재자들은 인민들의 어깨 위에 자유를 더욱 위협할 경제·군사력을 건설하고 있다.” 이런 사민당의 반공노선을 확립한 주역은 집권 후 동독과의 화해정책을 추진한 빌리 브란트였다. 2차대전 후 사민당을 재건해 초대 당수를 지낸 쿠르트 슈마허는 동독정권을 “빨간 칠을 한 파시스트”라고 불렀다. 사민당의 이런 자세는 당의 이념적 정체성에 대한 서독 국민들의 의혹을 씻어냈고, 그래서 사민당 정부의 대(對)동독 화해정책도 힘을 얻을 수 있었다. 브란트 정부는 서독 내 공산주의자들의 공직 임명을 금지하는 연방 차원의 기준을 정하는 등 대동독 화해정책에 따라 일어날 수 있는 내부의 혼란 요인도 정리해 나갔다. 한국의 집권당 정강정책에 북한의 인권탄압을 비판하는 내용이 한 구절이라도 있는가. 그러면서 한국의 집권세력은 ‘대한민국은 아예 태어나지 말아야 했고, 태어났더라도 일찌감치 북한에 무력 점령당했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의 인권을 위해선 팔을 걷어붙이고 나선다. 국회 국방위원회의 용역보고서가 “북한의 변화보다 먼저 남한이 급변사태를 맞을지도 모른다”고 걱정하는 것도 무리가 아닌 것이다. 이런 상황에선 대북 지원에 대한 국민적 지지도 떨어질 수밖에 없다. 도덕성을 잃은 대북 정책은 점차 생명력도 잃어가게 마련이다. 정부는 이 달 중으로 예정된 유엔 총회의 북한인권개선 결의안 표결에서부터 달라진 모습을 보여주어야 한다. ◈ 나라를 위해, 위정자들을 위해 기도합시다. ----------------------------------------------------------------------- ◈ 우리는 성경의 근본 교리들을 보수하고, 자유주의 신학과 천주교회의 배교를 포용하는 타협과, 은사운동의 혼란을 반대하고, 또 그런 자들과 교제하는 자들도 책망하기를 원한다. 우리는 오늘날도 성경 말씀의 정로(正路)를 붙들고 그 길로 가는 교회들이 부흥 발전하기를 기도하며, 또 그런 자들과 교제하기를 원한다. ----------------------------------------------------------------------- ♣ www.oldfaith.net에 올려져 있는 현대교회문제와 현대교회문제 자료집 및 옛신앙지(특별호) 등의 자료들을 참고하십시오.
전화: (02) 334-8291, 팩스: (02) 337-4869 ◈ 책 안내 ●김효성, 신약성경강해. 1192면. 20,000원(송료 포함). ●김효성, 현대교회문제 자료집. 330면. 5,000원(송료 포함). ● 김효성, 현대교회문제: 배교, 타협, 혼란 ● 조영엽, 왜 열린 예배는 잘못되었는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