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신앙 2006년 2월 19일 [특별78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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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너희는 길에 서서 보며 옛적 길 곧 선한 길이 어디인지 알아보고 그리로 행하라. 너희 심령이 평강을 얻으리라' 하나, 그들의 대답이 '우리는 그리로 행치 않겠노라' 하였으며"(렘 6:16). |
옛신앙
Old-time Faith www.oldfaith.net |
'옛신앙'이란, 옛부터 하나님의 선지자들과 주의 사도들이 가졌던 신앙, 오직 정확 무오(無誤)한 하나님 말씀인 신구약 성경에만 근거한 신앙, 오늘날 배교와 타협의 풍조에 물들지 않는 신앙을 의미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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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1-884 서울 마포구 합정동 364-1
합정동교회 김효성 목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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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의 윤리적 부패: 호주 연합교회의 타락 [David W. Cloud, Friday Church News Notes, 25 July 2003; Christian News, 28 July 2003, p. 20.] 2003년 7월 17일 호주연합교회(the Uniting Church in Australia) 총회는 현행적인 남녀 동성애 성직자를 용납하기로 압도적인 표수로(75%) 공식적으로 결정했다. 그 결정은 1997년 이후 제기된 논쟁의 결론이었다. 호주연합교회는 1977년 회중교회, 감리교회, 장로교회가 연합한 교회로서 호주에서 세 번째로 큰 교단이며 30만 명의 회원을 가지고 있다. 미 복음주의 루터교회의 동성애 포용 [Christian News, 18 August 2003, p. 3.] 미 복음주의 루터교회(ELCA) 본부에는 동성애 가족들이 있다. 여성위원회의 지도자와 목회 분과장인 미쉘 밀러(Michelle Miller) 목사는 그의 동성애짝인 루터란(The Lutheran)지 간사 쥴리 세빅(Julie Sevig)과 살고 있다. 동성애 애인 때문에 남편과 두 아이를 버렸던 매리 알빙(Mary Albing) 목사는 미네아폴리스의 한 교회의 청빙을 받았다. 남녀 동성애자, 성전환자 목사들의 목회지를 돕는 '특별한 후보자 프로젝트'라는 단체는 30명의 회원들 중 12-15명이 드러나게 ELCA 교회들에서 목회하고 있다고 자랑한다. 카나다 연합교회의 동성애 옹호 [David Cloud, Friday Church News Notes, 22 August 2003; Christian News, 8 September 2003, p. 24.] 2003년 8월 카나다 연합교회(the United Church of Canada)의 제38차 총회는 연방정부가 동성애 '결혼'을 승인하라고 촉구하였다. 카나다 연합교회는 1988년에 드러난 동성애자들을 안수한 첫번째 교단이었고 1992년에는 동성애자 연합 축복의식을 승인하였다. 일찌기 1964년 그 교회의 주일학교 공과는 그리스도의 처녀 탄생과 부활을 의문시했고 창세기의 처음 11장은 신화이며 노아는 방주를 만들지 않았고 다윗은 거인 골리앗을 죽이지 않았다고 주장했었다. 1997년 그 교회의 총회장 빌 핍스(Bill Phipps)는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이 아니며 그를 숭배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서양에서의 기독교의 퇴조 [Christian News, 8 September 2003, p. 2.] 영국 사람들은 약 27퍼센트만 주일에 교회에 가고 서독은 14퍼센트, 덴마크와 노르웨이는 5퍼센트, 스웨덴, 아이슬란드, 핀란드는 4퍼센트만 교회에 다닌다고 한다. 이러한 침체의 핵심적 이유는 자유주의 신학이다. ------------------------------------------------------------------------ 현대사회문제: "우리의 밥은" [정진성, "우리의 밥은," 미래한국, 2006. 1. 23, 9쪽; 탈북민의 시, 자유북한방송.] 고난의 행군시기/ 풀뿌리마저 캐내어/ 북한의 산들은 모두/ 하얗게 벗겨졌다/ 두꺼운 나무껍질을 삶아먹자니/ 양잿물을 섞지 않으면 안 되었던 그때/ 우리 여인들의 손은/ 얼마나 떨리었으랴/ 우리는/ 쌀을 잊은 지 오랬다/ 그래서 우리의 밥은 나무다/ 껍질이다/ 우리의 밥은/ 산에서 자란다/ 바위를 헤치고 자라서/ 먹기엔 너무도 아프다/ 아파도 먹어야만 한다/ 두꺼운 나무껍질/ 슬픔을 끊는 물에 삶아내어/ 꺼내선 죽도록 망치로 때리고/ 또 끊이고 또 때리고/ 그래도 목을 죄는 밧줄 같아/ 마지막엔 양잿물을 섞으면/ 마침내 반죽되는 나무껍질/ 그것도 밥이라고/ 그릇에 담기라고/ 우리는 밥을 빚는다/ 한줌 속에 나무를 빚는다/ 오 그러면/ 그 몇 덩이/ 우리의 눈물덩인가/ 볼수록 꽉 메는 목구멍/ 그 몇 덩이도 없어/ 그런 밥도 없어/ 먹고사는 전 세계 목숨들이여/ 이 나라엔 산이 모두 벗겨지고도/ 그러고도 나무가 모자라/ 수백만이 굶어죽었다. 좌파(左派)가 가장 먼저 피해 입을 것 [김범수, "김정일 세상되면 左派가 가장 먼저 피해 입을 것," 미래한국, 2006. 1. 23, 9쪽; 김정일-성혜림 관계 발설로 정치범 된 탈북민 김영순 씨.] "한때 영웅대접을 받던 북한의 예술인들이 어떤 비참한 최후를 맞았는지 아십니까. 김정일 세상이 되면 남한에서도 그에 찬동(贊同)하는 좌파들이 가장 먼저 제거 대상이 될 겁니다." 전설적인 무용수 최승희(崔承憙)의 제자이며 김정일의 '부인'으로 알려져 있는 성혜림과 중·고등학교(高女中) 동창생이기도 한 김영순 씨(69)는 북한체제 하에서 영욕(榮辱)의 삶을 살았던 북한사(史)의 산 증인이다. 김일성의 항일연군 동료로 한국전쟁 당시 25세의 나이에 인민군 사단참모장을 지냈던 오빠의 덕으로 김 씨는 어린 시절부터 북한 최고위층과 교류하며 그들의 삶과 영락(零落)의 과정을 가까이서 목격할 수 있었다. 그런 그가 지난 12일 본지와의 인터뷰에 응했다. "자신들의 이름을 잃고 오직 한 사람(김정일)을 위해 목숨을 바쳐야 하는 북한인민들의 기막히고 애처로운 현실을 알리기 위해서"였다. "김일성, 김정일은 자신들을 가장 잘 아는 사람들을 체계적으로 죽였습니다. 연안파를 비롯해 항일한 사람들이나 1950년 전쟁의 공로자들을 요덕수용소 등지로 보냈습니다. 자신들의 내막을 가장 잘 알고 있거나 '함께 혁명을 했다'며 자신들의 권위를 위협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기영 등 노장(老將)들의 처단과정을 가까이서 수없이 목격했습니다." 평양종합예술학교 1기 졸업생으로 최승희에게 사사(師事)한 김 할머니는 그동안 잘 알려지지 않은 최승희의 최후에 대해서도 털어놓았다. 세계적 무용가로 북한을 조국으로 택했던 '인민의 영웅'도 사상과 공산수령독재 앞에서는 한낱 도구에 불과했다. "최승희 선생이 죽은 곳은 평남의 북창관리소(정치범수용소)입니다. 1967년 3,000여 명의 예술인이 참여하는 공연에서 중(승려)을 등장시키는 등 자본주의적 요소를 포함시켰다는 것이 직접적 이유였어요. 그 외에도 예술인으로서 개인 우상화가 광적으로 벌어지는 현실에서 견뎌낼 수 없었을 겁니다. 남편 안막(安漠)과 딸 안성희도 함께 끌려가 강제노동과 영양실조로 죽음을 맞이했어요." 김영순 할머니 자신도 1970년 10월 요덕수용소에 끌려가 8년 간 인간 이하의 비참한 삶을 살아야 했다. 국가 최고위 간부만을 대상으로 하는 외국여행자 상점의 책임안내원으로 근무하며 이른바 최고 특권층의 삶을 영유하던 시기, 학창 시절부터 절친했던 성혜림과 김정일의 내연관계를 발설한 것이 이유였다. 김 할머니는 수용소 안에서 노부모와 막내아들을 영양실조와 사고로 잃었다. 처음 4년 간은 공포와 충격이 얼마나 심했던지 젊은 나이에 생리마저 멈췄다고 한다. "수용소 안에는 단지 김일성 목에 혹이 달렸다고 말했다가 들어온 사람, 김일성 얼굴이 든 신문으로 장판을 했다고 온 사람, 가족이 교회 장로나 목사라는 이유로 온 사람 그리고 나처럼 김정일의 가정사에 대해 언급했다가 들어온 사람도 많았습니다. 수두룩한 사람들이 동상이나 영양실조로 죽어 나갔지요." 광복 직후 명성을 떨쳤던 만담가 신불출(申不出)도 '말실수'때문에 요덕수용소에 끌려 왔다가 1967년 영양실조로 죽었다고 한다. 김 할머니는 자신이 그러한 지옥에서 살아 나올 수 있었던 것이 "오로지 살기 위해 '성난 사자'보다 더 열심히, 미친 여자처럼 일해 노동과제를 100%이상 수행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그가 속했던 요덕수용소 용평리 지구에서 살아 나온 것은 그가 유일했다. 그러나 그나마 살아남은 아들은 이후 탈북 과정에서 북한 보위부에 잡혀 고문으로 죽었다. 한편 김 할머니의 남편은 일본에 파견된 간첩출신인 신광수의 모함에 의해 1970년 7월 '영원히 못나오는 곳'으로 끌려갔으며 이후 전혀 소식을 모른다고 한다. 어린 아들들을 둔 젊은 부인이 하루아침에 영문도 모른 채 과부가 돼도 하소연 할 곳이 없는 곳이 북한이었다. 신광수는 이후 남파됐다가 붙잡혀 복역하다가 2000년 김대중 정권 때 비전향 장기수로 북한에 귀환했다. "잃어버린 과거와 인생을 생각하면 분노할 수밖에 없습니다. 김일성, 김정일이 정해주는 운명 안에서 살다가 어느 날 배신자가 되어 가족마저 잃고 아무 것도 남지 않은 현실을 바라보면 지금도 잠을 설칩니다. 그래도 말년에 대한민국에 살면서 자유의 맛을 보게 된 것이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이지요. 마지막까지 능력과 힘을 다해 활동할 겁니다." 김영순 할머니는 현재 탈북자 출신의 정선산 감독과 함께 뮤지컬 '요덕스토리'를 준비중이다. 그가 안무를 맡았고 또한 직접 무대에 선다고 한다. "지금도 밤에 협박전화가 걸려오기도 합니다. 현재의 남한정권 아래서 내가 북한체제 하에서 겪었던 일들을 상세히 밝힌다면 박해를 받겠죠." 김 할머니는 북한수령독재체제가 만들어낸 한반도 역사의 암울한 상징이며 그 가운데에서도 삶의 희망을 잃지 않는 불굴의 정신과 하나님 은혜의 표적이었다. 진지(陣地)장악 끝내고 평원(平原)으로 [김상철, "陣地장악 끝내고 平原으로," 미래한국, 2006. 1. 30, 1쪽.] 감사원이 개정사학법 철폐투쟁을 벌이고 있는 사학에 대해 일괄 전면감사 착수를 발표하였다. 국세청은 경제5단체가 노동권의 강화만 추진하는 국가인권위원회 폐지를 주장한 다음 날 116개 대기업에 대한 일제 세무감사 단행을 발표하였다. 검찰총장, 경찰청장의 도중 하차 후 국가권력기관마다 정치적 중립성을 잃고 정권의 의도대로 움직이고 있다. 대통령이 방송연설로 양극화(兩極化)문제를 부각시킨 직후 대권주자 정동영은 “군 병력을 절반으로 줄여 양극화해소 재원을 마련하자”는 기막힌 제안을 내놓았다. 또 다른 대권주자인 김근태는 북한의 ‘반보수 대연합’지시에 발맞춰 ‘범민주 대연합’을 내세웠고, 여기에 지지율 높은 대권주자인 고건이 합세했다. 김대중 전대통령은 북한의 노예통제적 수령독재 체제를 그대로 유지시키면서 그 위에 남북연합기구를 만드는 ‘통일1단계’로 진입시키기 위해 김정일과 회담하겠다고 공언하고 있다. 현재의 남??북이 하나의 나라가 되면 ‘공동국가원수’격인 김정일과 그 체제에 대한 비판은 억제, 금지될 것이고, 북한 뿐 아니라 남한에도 수령독재 사상이 통용될 것인 만큼 자유가 크게 제한될 것이다. 형식상 하나 된 한국에 미국이 관여, 개입할 여지가 근본적으로 없어지므로 한미동맹은 완전해체되고, 주한미군 철수로 대한민국의 안보는 무장해제가 될 것이다. 대통령은 북한에 대하여 “결혼을 예상하고 대화하는 사람”에 비유한 바 있고, 총리는 최근 “통일을 대비하는 개헌논의”의 필요를 제기했고, 정동영은 통일부 장관 당시 헌법상 영토조항 개정을 검토해야 한다고 주장했고, 남북장관급 회담에서는 북측대표단을 동지라고 불렀다. 문희상은 열린우리당 의장으로서 북한의 조선노동당과의 ‘당 대 당 협력’을 주장했다. 그리고 ‘반제(反帝)민족민주통일론’자로서 김일성에 경의를 표해온 이종석이 통일부장관으로 통일 외교 안보의 사령탑에 앉게 되었고, 남한 내의 북한 공작기구라고 할 ‘전국연합’을 집행위원장으로 장기간 이끌면서 주한미군 철수, 이라크파병 반대, ‘수구세력’ 타도에 앞장서 온 황인성이 청와대 시민사회수석비서관으로 앉아 사회요소요소를 치밀하게 조정 통제하고 있을 것이다. 학교들은 反대한민국 사상의 나팔수격인 전교조들에 의해 좌지우지되고, 언론들은 ‘수구냉전’의 비난을 받을까 두려워 이 정권의 속성은 드러내지 않고 도리어 진보를 가장한 친공(親共)사상과 평화를 위장한 안보해체 음모를 선전해주고 있다. 신좌파 안토니오 그람씨의 이론대로 사회 전 분야의 진지전(陣地戰)에서 승리를 굳힌 후 드디어 평원(平原)을 점령하기 위해 행진해 들어오는 이 세력의 정체는 무엇인가? 한마디로 종김(從金)세력이다. 더 이상 진보도 좌경도 아닌, 김정일에 대해 한마디 비판도 아니하고 그의 지시만 따르는 김정일의 졸개들이요, 사상의 근저에 약자(弱者)사랑을 빙자한 편가르기 증오와 정의를 빙자한 권력만능주의에 사로잡힌 세력이 아닐 수 없다. 이 ‘종김세력’이 대한민국의 평원을 진입해오고 있는 이 때 누가 나서 이를 막을 수 있을 것인가? 이들의 점령이 끝나간다 싶으면 바로 김정일의 군대가 덮쳐와 대한민국은 파멸을 맞고 말 것인데 사람들은 개인의 안일에 빠져 있다. 누가 나서 이에 대항해 싸우며, 누가 승리의 확신을 가지고 이 싸움을 이끌며, 누가 이를 지원할까? 오, 주여, 도우소서. 전교조 적화(赤化)세력에 속아 온 교육 [김성욱, "전교조 赤化세력에 속아 온 교육," 미래한국, 2006. 1. 30, 5쪽.] 중·고등 교과서의 편향된 역사서술과 전교조의 친북반미(親北反美) 이념성향을 비판하고 이에 대한 해결방안을 모색하기 위한 ‘교과서 왜곡문제에 관한 국민大토론회’가 한나라당 여의도연구소 주최로 18일 국회의원회관 소회의실에서 열렸다. ‘교과서 포럼’ 상임대표 박효종 서울대 교수는 “한 나라의 교과서는 헌법 못지않게 정치공동체의 뿌리가 되는 기본가치를 담고 있다. 다만 헌법은 공동체구성원 모두에게 구속력을 가진 ‘법적 규범’인 반면 교과서는 차세대 예비시민들을 대상으로 한 ‘교육적 전범(典範)’의 역할을 하고 있을 뿐”이라며 말문을 열었다. 朴 교수는 이어 “현행 중·고등 교과서는 △대한민국 ‘건국(建國)’에 대해 단정(單政)을 찬성하는 특정 권력지향세력의 집권이라는 ‘에피소딕(episodic, 우연적)한 사건’ 정도로 치부하고 △‘근대화(近代化)’를 ‘왜곡된 근대화’로 폄하하며 △실패한 북한의 ‘우리식 사회주의 체제’에 대해 지나칠 정도로 우호적 평가를 하는 등 ‘분단이데올로기’와 ‘통일이데올로기’에 함몰된 채 사실왜곡·축소·생략·일방적 평가를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朴 교수는 북한을 소위 내재적 접근방식으로 파악하고 있는 예로 금성출판사 국사교과서에 실린 루이제 린저의 북한기행문, “김일성의 교시는 곳곳에서 인용되며 거기에 인민들은 늘 귀를 기울이고 있다”는 글을 인용하기도 했다. 전교조 비판활동을 벌여 온 전남 삼호서중학교 정재학 교사는 “전교조는 학생을 ‘학생동지’라 부를 만큼 혁명적 극렬성을 띠어왔지만, 국민들은 그동안 참교육이라는 미명에 속아 정체를 모르고 있었다”고 비판했다. 정 교사는 “전교조는 노동운동으로 끌어들인 교사를 모아 그들의 궁극적 목표인 미군철수와 연방제 통일을 위해 학생들에게 친북·좌익 교육을 시키고 있다”며 “우리 교육은 교육의 순수성을 잃고 전교조를 비롯한 적화세력들에 의해 소위 ‘학생동지’가 만들어지고 있다”고 강조했다. 정 교사는 이어 “전교조는 그들의 목표 달성을 위해 노동자·농민의 민중운동과 연대를 강화, 민중혁명으로의 전환을 요구하고 있다”며 “전교조는 이번 WTO홍콩 불법시위집회에서도 13명의 전교조 교사를 파견하는 등 시위집회를 폭력으로 이끌어갔다”고 말했다. 토론자들은 이밖에도 현행 중·고등 교과서가 ① 자유민주주의관의 왜곡 및 훼손, ② 대한민국의 정통성 부정, ③ 자학적 대한민국관, ④ 분열, 투쟁, 혁명의 역사관 주입, ⑤ 북한체제에 대한 내재적, 중립적, 우호적 평가, ⑥ 통일지상주의의 확산과 연방제 통일방안의 선호, ⑦ 반미 확산 의도와 친중 성향의 강화, ⑧ 反시장·反기업 논리의 확산, ⑨ 反세계화 경향의 강화 등의 문제점을 가지고 있다고 비판했다. '전국연합' 등 친북운동권의 남북연방제 [김성욱, "北사회주의 혁명역량에 가세·결집," 미래한국, 2006. 2. 13, 2쪽.] 재야운동권연합체 '민주주의민족통일전국연합(전국연합, 상임의장 오종렬)'은 91년 출범 이래 남북연방제를 주장해 왔는데, 구체적으로 국가보안법 철폐·주한미군 철수 및 6·15공동선언 2항의 실현인 ‘낮은단계의 연방제’ 구현 → 자주적 민주정부 수립 후 1민족 1국가 2제도 2체제의 ‘연방통일조국건설’이라는 시나리오를 제시하고 있다. 전국연합은 2001년 9월 22~23일 충북보람원수련원 ‘민족민주전선일꾼전진대회’에서 ‘3년의 계획, 10년의 전망: 광범위한 민족민주전선 정당건설로 자주적 민주정부 수립하여 연방통일조국 건설하자’는 소위 ‘9월테제’를 채택했었다. ‘9월테제’는 소위 ‘군자산의 약속’이라는 별칭이 붙여져 있다. 당시 오종렬 상임의장은 “자주적 민주정부를 수립하고 연방통일조국을 실현하는 힘은 우리 위대한 민중들에게 있지만 그들의 힘을 하나로 모으는 것은 굳건한 민족민주전선이다… 식민지 지배질서가 온전하고 있는 우리 사회에서 전민중의 전면적 항쟁은 미국의 식민지배와 분단장벽을 허물고 자주와 민주, 통일의 새 세상을 안아올 수 있는 지름길이다”며 소위 식민지배상태에 있는 남한을 해방, 남북연방제로 통일하자고 주장했다. 이 대회에서 발표된 자료집은 소위 ‘낮은단계의 연방제를 거친 후 자주적 민주정부를 수립해 연방통일조국을 건설할 것’을 주장하고 있다. ‘낮은단계 연방제’에 대해서는 △평화협정 체결을 통한 주한미군 철수 △국가보안법 철폐로 남북 연대(連帶)·연합(聯合) 합법화 △남북 제(諸)정당사회단체 연석회의를 통한 민족통일기구 구성 등이 기초가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연방통일조국 건설’에 대해서는 △북한의 ‘사회주의혁명역량’과 미국의 ‘제국주의세력’의 대결에서 사회주의혁명역량이 승리하고 남한 내 ‘민족민주전선역량’과 ‘친미예속세력’의 대결에서 민족민주전선역량이 승리한 뒤 △남한 내 ‘민족민주전선역량’의 반제투쟁이 북한의 ‘사회주의혁명역량’이 승리의 기선을 잡은 반제전선에 가세(加勢)·결집(結集)하는 양상으로 전개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전국연합은 이를 위해 지난해 사업목표로 “6·15공동선언 5돌, 광복 60년, 미군점령 60년을 맞아 2005년을 자주통일의 원년, 주한미군 철수 원년으로 맞이하자”고 결의했고, 2004년 사업목표로 “미제(美帝)식민 지배체제의 결정적 해체, 6·15선언이행을 앞당겨 연북(連北)·연공(連共)의식의 대고조 이룰 것, 사대매국(事大賣國)세력 한나라당 박살, 국보법·이적(利敵)규정·주적(主敵)규정철폐”등을 결의한 바 있다. 특히 전국연합은 국보법철폐에 대해 “하나의 악법을 없애는 투쟁에 그치지 않는다”고 전제하며 “친미수구세력을 척결하는 투쟁” “친미수구세력의 생명줄을 끊어 놓는 투쟁” “친미수구세력을 사회적으로 매장해 버리는 투쟁” 등(2005년 1월 14기 대의원대회 자료집 등)으로 정의해 왔다. 한마디로 전국연합이 주장하는 남북연방제통일은 국보법철폐, 주한미군철수 및 소위 친미수구세력으로 표현되는 보수우파세력을 척결 또는 매장한 뒤 북한의 소위 사회주의혁명역량에 가세·결집(結集) 내지 연북(連北)·연공(連共)하는 통일방식을 가리킨다. 즉 남한의 좌파세력이 북한의 공산세력에 가세·결집·연북·연공하는 통일방식이라는 설명이다. 운동권과 정치권 일부에서 주장하는 남북연방제통일 방식이 북한의 대남적화통일방식과 다를 바 없다는 주장이 나오는 것은 이 때문이다. 북한연구소 김창순 이사장은 “북한이 대남적화통일을 포기하지 않고 있는 상황에서 6·15공동선언의 현실화, 즉 북한과의 연방제통일은 공산화로 가는 전초 단계가 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청와대·국회 포진한 '전국연합' 출신들 [김성욱, "청와대·국회 포진한 ‘전국연합’ 출신들" 미래한국, 2006. 2. 13, 2쪽.] 연방제통일을 주장해 온 ‘전국연합’ 전현직간부들은 국회의원 등 공직자로 다수 진출해 있는 상황이다. 현직간부로 공직에 진출해 있는 이들은 천영세(전국연합 상임지도위원, 前전국연합 공동의장, 민노당 국회의원), 강기갑(전국연합 대의원, 민노당 국회의원), 김금수(전국연합 상임지도위원, 노사정위 위원장·사법제도개혁추진위원회 민간위원), 이창복(전국연합 상임지도위원, 경기대 관선이사장), 김상근(전국연합 상임지도위원, 법무부 감찰위원회 위원장, 前민주화보상심의위원회 위원장), 정동익(전국연합 감사,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감사·민주화보상심의위원회 위원), 김이경(전국연합 통일위원장, 민주화보상심의위원회 위원) 씨 등을 들 수 있다. 함세웅 씨는 지난해 10월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이사장으로 선임되면서 홈페이지에 올라 있는 ‘전국연합’ 상임지도위원 명단에서 삭제됐다. 그는 99년이래 3년여에 걸쳐 덕성여대에 관선이사로 활동해 온 데 이어 최근에는 세종대 관선이사로 파견된 소위 ‘문제’ 사학의 ‘단골’이사로 활동하고 있다. ‘전국연합’의 전직간부출신들은 열린우리당과 청와대에 많이 진출해 있다. 지난해 11월 15일 대통령비서실 시민사회수석(차관급)으로 임명된 황인성 씨는 90년대 집행위원장 자격으로 ‘전국연합’을 이끌었던 인물이다. 그는 2002년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 창립 당시 사무국장으로 공직에 진출했고, 2004년 4월에는 대통령비서실 시민사회비서관으로 발탁됐었다. 지난 총선 당시 열우당 부산 해운대 기장甲공천을 받았던 최인호 씨는 전대협 부의장 출신으로 1993 ~1995년 ‘전국연합’ 산하 부산연합 조직국장을 역임했다. 그는 총선에서 떨어진 후 지난해 4월 대통령비서실부대변인으로 임명됐다. 열우당 경기 고양일산을 공천을 받은 김두수 씨는 1996~1998년 ‘전국연합’ 정치국장을 역임했다. 낙선 후 대 통령 직속 동북아경제중심추진위원회 자문위원으로 일하고 있다. 이인영 의원은 전대협 1기 의장 출신으로 1997년 ‘전국연합’ 조직국장을 역임했고, 우상호 의원은 전대협 부의장 출신으로 1992년 ‘전국연합’ 부대변인을 역임했다. 임종인 의원은 1992~1995년 ‘전국연합’ 대변인을, 이기우 의원은 1991년 ‘전국연합’ 경기남부 조직부장을, 유선호 의원은 1992~1993년 ‘전국연합’ 인권위원을, 최규성 의원은 1991년 ‘전국연합’ 제도정치위원장을 역임했다. 김희선 의원의 경우 1991년 조국통일범민족연합남측본부 준비위원을 거쳐 1992년 ‘전국연합’ 통일위원장을 역임했다. ------------------------------------------------------------------------
전화: (02) 334-8291, 팩스: (02) 337-4869 ●김효성, 현대교회문제 자료집. 330면. 5,000원(송료 포함). ● 김효성, 현대교회문제: 배교, 타협, 혼란 ● 조영엽, 왜 열린 예배는 잘못되었는가? --------------------------------------------------------------------------------- ◈ '근본주의'는 성경의 근본교리들을 보수하고 자유주의 신학과 에큐메니칼 운동과 은사운동을 배격하고, 또 자유주의자들이나 포용주의자들과 교제하는 신복음주의 혹은 타협적 복음주의에 반대하는 입장과 노선을 가리킨다. ● 많은 사람들이 근본주의라는 말을 잘못 이해하고 비난하는 것 같으나, 오늘날 기독교계의 배교와 타협과 혼란의 상황에서 근본주의는 바른 입장을 적절히 표현하며 이 말 외에 오늘날 성경적 바른 입장을 표현할 만한 좋은 말이 없다고 본다. ● 그러므로 우리는 한국에도 근본주의적 교회들과 교단들이 있어야 하고 또 자유주의적 한국기독교회협의회[NCC]나 신복음주의적 한국기독교총연합회[한기총], 또 근래에 구상되는 '한국교회연합'과 같은 잡동사니와 구별되는 근본주의적 초교파 협의체가 매우 필요하다고 믿는다. ♣ www.oldfaith.net에 있는 자료들을 참고하십시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