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신앙 2007년 8월 05일 [제11권 31호] ◆ 매주 발행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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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너희는 길에 서서 보며 옛적 길 곧 선한 길이 어디인지 알아보고 그리로 행하라. 너희 심령이 평강을 얻으리라' 하나, 그들의 대답이 '우리는 그리로 행치 않겠노라' 하였으며"(렘 6:16). |
옛신앙
Old-time Faith www.oldfaith.net |
'옛신앙'이란, 옛부터 하나님의 선지자들과 주의 사도들이 가졌던 신앙, 오직 정확 무오(無誤)한 하나님 말씀인 신구약 성경에만 근거한 신앙, 오늘날 배교와 타협의 풍조에 물들지 않는 신앙을 의미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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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1-884 서울 마포구 합정동 364-1
합정동교회 김효성 목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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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오전설교: 얍복 강변에서의 씨름 [창세기 32:1-2] 야곱이 그 길을 진행하더니. . . 야곱이 라반과 헤어지고 고향으로 가고 있었을 때, 한 곳에서 하나님의 사자들이 그를 만났다. 야곱은 그들을 보며 이는 하나님의 군대(마카네)라고 불렀고 그 땅 이름을 마하나임(마카나임)이라 했다. 마하나임은 '두 군대'라는 뜻으로 야곱의 가족들과 하나님의 사자들의 두 무리를 가리킨 것 같다. 이 신비한 사건은 하나님께서 야곱의 일행과 함께하시고 그들을 지켜주실 것을 암시한다. [3-5절] 야곱이 세일땅 에돔 들에 있는 . . . . 야곱은 세일땅 에돔 들에 있는 형 에서에게 먼저 사자들을 보내며 형에게 문안하게 하였다. 그는 그들에게 "너희는 이같이 내 주 에서에게 고하라. 주의 종 야곱이 말하기를 내가 라반에게 붙여서 지금까지 있었사오며 내게 소와 나귀와 양떼와 노비가 있사오므로 사람을 보내어 내 주께 고하고 내 주께 은혜받기를 원하나이다 하더라 하라"고 말했다. 그는 형을 '내 주 에서', '내 주'라고 불렀고 자신을 '주의 종[당신의 종] 야곱'이라고 표현하였다(4, 5절). 이 말들은 그의 겸손해진 마음을 보인다. [6-8절] 사자들이 야곱에게 돌아와 가로되 . . . . 그런데 그 사자들은 돌아와 에서가 400인을 거느리고 주인을 만나러 온다고 보고하였다. 야곱은 심히 두렵고 답답하였다(차랄). 사람은 어려운 일을 당하면 좁은 공간에 갇힌 것 같은 답답한 심정을 가진다. 야곱은 하나님께서 명하시고 보장하신 길을 떠났음에도 불구하고 어려운 일을 당하였다. 그는 우선 자기와 함께한 종들과 양들과 소들과 약대들을 두 떼로 나누었다. 에서가 와서 한 떼를 치면 남은 한 떼라도 피하게 하기 위함이었다. [9절] 야곱이 또 가로되 . . . . 그렇게 한 후 그는 하나님께 기도하였다. 원문에 보면, 본절은 그가 하나님의 이름을 부른 것이다: "나의 조부 아브라함의 하나님, 나의 아버지 이삭의 하나님, 전에 내게 네 고향, 네 족속에게로 돌아가라. 내가 네게 은혜를 베풀리라고 명하신 여호와여." 야곱은 아브라함과 이삭으로부터 내려오는 하나님의 언약의 복을 기억했다. 하나님께서는 그 복을 야곱에게도 약속하셨었다(창 28:13-14). [10절] 나는 주께서 주의 종에게 베푸신 . . . . 야곱은 "나는 주께서 주의 종에게 베푸신 모든 인자와 모든 진실을 조금이라도 받을 자격이 없나이다. 이는 내가 내 지팡이만 가지고 이 요단을 건넜더니 지금은 두 떼나 이루었음이니이다"라고 기도하였다. 야곱은 과거에 자신이 이기적이었고 거짓되었음을 깨닫고 있었던 것 같다. 하나님께서는 무자격한 야곱에게 넘치는 자비를 베푸셨고 진실하게 약속을 이행하셨다. 그는 지팡이만 가지고 요단강을 건넜으나 하나님께서는 약속대로 그를 지키셔서 지금은 두 떼나 이루었다. [11-12절] 내가 주께 간구하오니 . . . . 야곱은 특히 하나님께서 형 에서의 손에서 자기를 구원해주실 것을 기도한다. '처자들'이라는 원어는 '자녀들을 가진 어머니'라는 뜻이다(영어성경들). 그는 형이 와서 자기와 자기 가족들을 칠까봐 두려워하고 있다. 또 그는 "내가 정녕 네게 은혜를 베풀어 네 씨로 바다의 셀 수 없는 모래같이 많게 하리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기억하며 그것을 그의 기도의 근거로 아뢴다. 어려울 때 우리의 할 일은 기도뿐이다. 시편 50:15, "환난 날에 나를 부르라. 내가 너를 건지리니 네가 나를 영화롭게 하리로다." 기도는 모든 문제의 최선의 해결책이다. [13-15절] 야곱이 거기서 경야하고 . . . . 야곱은 밤을 지낸 후 그의 소유물 중에서 형 에서를 위해 예물을 준비하였다. 야곱이 구별한 예물은 모두 아홉 떼이었다. 그것은 첫째 암염소 200, 둘째 수염소 20, 셋째 암양 200, 넷째 수양 20, 다섯째 젖 나는 약대 30과 그 새끼, 여섯째 암소 40, 일곱째 황소(수소) 10, 여덟째 암나귀 20, 그리고 아홉째 수나귀 10이었다. 본문에 맨 마지막의 '새끼나귀'라는 원어(아이르)는 '수나귀'를 가리킨다(BDB). [16-21절] 그것을 각각 떼로 나눠 . . . . 야곱은 그것을 각각 떼로 나눠 종들의 손에 맡기고 자기보다 앞서 건너가며 각 떼로 거리가 뜨게 하였다. 또 그는 앞선 자가 형 에서를 만날 때 그가 물으면 앞엣것은 주의 종 야곱의 것이요 '나의 주'(원문) 에서에게로 보내는 예물이오며 야곱도 우리 뒤에 있나이다라고 말하라고 일러주었다. 또 그는 뒤따라가는 모든 종들도 같은 말을 하라고 했다. 그것은 그가 예물들로 형의 감정을 푼 후 대면하면 형이 혹시 그를 받으리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잠언 18:16, "선물은 그 사람의 길을 너그럽게 하며 또 존귀한 자의 앞으로 그를 인도하느니라." [22-26절] 밤에 일어나 . . . . 그러나 야곱은 그 밤에 편히 잠을 잘 수 없었던 것 같다. 그는 밤에 일어나 두 아내와 두 여종과 열한 아들을 인도하여 얍복 나루를 건너게 하였고 또 그의 소유물들도 그렇게 하였다. 그에게는 많은 두려움과 염려가 있었던 것 같다. 그는 이제 홀로 남았다. 무슨 중요한 일을 결단할 때 우리는 때때로 하나님 앞에 홀로 있게 된다. 그런 점에서 인생은 고독한 존재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야곱과 함께 계셨다. 그 밤에 어떤 사람이 야곱 곁에 있었고 그와 날이 새도록 씨름을 하였다. '씨름한다'는 말(아바크)은 성경에서 이 곳에서만 나온다. 이것은 비유적인 말이 아닐 것이다. 야곱의 환도뼈, 즉 넓적다리의 연결부분이 위골된 것을 보면 그것은 실제의 씨름이었던 것 같다. 그러나 그것은 영적인 의미가 담긴 사건이었다. 야곱은 그가 하나님의 사자임을 알았던 것 같다. 그러므로 그는 그에게 자신을 축복해줄 것을 간절히 소원하였다. 그 사람은 그의 끈질긴 요청을 이기지 못하였다. 그래서 그는 야곱의 환도뼈를 쳤고 야곱은 그 씨름에서 환도뼈가 위골되었다. 날이 새려했으므로 그가 가기를 원했지만, 야곱은 "당신이 내게 축복하지 아니하면 가게 하지 아니하겠나이다"라고 말하며 그에게 끈질기게 매달렸다. [27-28절] 그 사람이 그에게 이르되 . . . . 마침내 그 사람은 야곱의 이름을 물었고 그 이름을 고쳐주었다. 그는 "네 이름을 다시는 야곱이라 부를 것이 아니요 이스라엘이라 부를 것이니 이는 네가 하나님과 사람으로 더불어 겨루어 이기었음이니라"고 말했다. 그는 야곱이라는 이름을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으로 바꿔주었다. 야곱은 '그가 발꿈치를 잡는다, 그가 속인다'라는 뜻을 가지고(KB), 이스라엘은 아마 '그가 하나님과 겨룬다'는 뜻일 것이다. 그것은 그 사자의 설명대로 야곱이 하나님과 사람들로 더불어 겨루어 이겼음을 나타낸다. 야곱은 하나님의 복을 사모한 간절함으로 에서나 라반을 이겼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사자도 이겼다. 호세아 12:3-4은 "야곱은 태에서 그 형의 발뒤꿈치를 잡았고 또 장년에 하나님과 힘을 겨루되 천사와 힘을 겨루어 이기고 울며 그에게 간구하였으며"라고 증거한다. 야곱은 간절하고 끈질긴 기도로 하나님의 응답을 받았고 인간 관계의 모든 복잡한 일들에서 승리하였다. [29-32절] 야곱이 청하여 가로되 당신의 이름을 고하소서. . . . 그 사람은 자신의 이름을 알려주지 않고 야곱을 축복하였다. 그러나 야곱은 그가 하나님의 사자임을 알았다. 그는 그 곳 이름을 브니엘 곧 하나님의 얼굴이라고 불렀고 "내가 하나님과 대면하여 보았으나 내 생명이 보전되었다"고 말했다. 그가 브니엘을 지날 때 해가 돋았고 그는 그 환도뼈로 인해 절었다. 본문은 이 사건으로 인해 이스라엘 사람들이 오늘날까지 환도뼈 힘줄을 먹지 않는다고 기록한다. 창세기 32장은 우리에게 무엇을 교훈하는가? 첫째로, 본문은 성도가 하나님의 명령과 보장하심 속에서 행함에도 불구하고 때때로 어려운 일들이 있음을 보인다. 시편 34:19은 "의인은 고난이 많으나 여호와께서 그 모든 고난에서 건지시는도다"라고 말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경적으로 바르게 살려고 함에도 불구하고 어려운 일이 있을 때 낙심치 말자. 둘째로, 본문은 어려운 문제가 있을 때 우리가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이 기도임을 보인다. 야곱이 가족과 소유물을 두 떼로 나누거나 형을 위해 예물을 아홉 떼나 준비하는 것이 참 해결책이 되지 못한다. 오직 하나님의 응답과 도우심만이 참 해결책이 된다. 기도는 우리가 직면한 모든 문제들의 최선의 해결책이다. 어려운 일이 있을 때 기도하자. 셋째로, 본문은 우리에게 끈질긴 기도가 필요함을 가르쳐준다. 야곱의 승리의 비결은 끈질긴 씨름, 축복하지 않으면 가게 하지 않겠다는 간절한 사모함이었다. 예수께서는 우리에게 '강청함'의 기도 즉 끈질긴 기도와, 낙망치 않고 항상 하는 기도를 가르쳐주셨다(눅 11:8; 18:1, 7). 그것이 어려운 문제 속에서 하나님의 응답을 받고 승리하는 비결이다. ---------------------------------------------------------------------- 지난오후설교: 기독교 윤리의 목적과 원동력 기독교 윤리의 목적은 무엇인가?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었다면, 율법을 지키는 것은 무슨 목적에서인가? 우리가 율법을 지키는 것은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를 얻기 위해서나 구원의 어떤 공로를 이루기 위해서가 아니다. 우리의 윤리 생활은 의를 이루기 위한 율법주의적 차원의 행위가 아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를 위해 의를 이루셨다(롬 10:4). 우리가 율법을 지키는 것은 단지 그리스도께서 법적으로 이루신 의를 실제로 삶 속에서 적용하고 나타내는 것뿐이다. 즉 의의 실천이다. 도덕법은 하나님의 도덕적 속성에 근거하고 그것을 반영하는 것이므로 영속적이며 신약 아래서도 지켜져야 한다. 믿음과 행위는 밀접히 연관되어 있다.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얻는 것은 율법을 행함에 있지 않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되지만(롬 3:28), 의롭다 하심을 얻은 성도는 죄를 버려야 하고(마 3:8; 눅 13:3; 고전 6:9) 의와 선을 행해야 한다(요일 3:10).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다(약 2:17, 26). 또 그 믿음이 죽은 것이라면 그의 구원 확신도 헛될 것이다. 이와 같이, 구원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얻지만, 선행은 구원의 증거이며 열매이다. 물론 구원받은 자의 행위는 하나님의 도덕적 표준이나 그리스도의 이루신 완전한 의에 비교하면 보잘 것이 없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의 행위는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代贖) 사역에 무엇을 첨가하는 행위가 아니다. 우리는 이미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의롭다 하심을 얻었고 그 의는 우리가 무엇을 첨가할 것이 없는 완전한 의이다. 우리의 거룩하고 선한 생활은 하나님께서 이미 주신 완전한 의에 합당하게 살아드리는 것에 불과하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이런 삶을 요구하신다. 또 이러한 삶은 하나님께 영광이 되고 그리스도의 복음의 진리성을 증거하는 것이 되며 죄악되고 부도덕한 세상에 빛이 될 것이다. 기독교 윤리의 원동력은 무엇인가? 혹시 기독교 윤리는 불가능한 이상(理想)이 아닌가? 구약 시대에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의 율법을 지키지 않고 거역한 역사나 신약교회의 부패의 역사, 특히 현대 교회의 배교적 현실을 볼 때, 성경적 윤리가 불가능한 이상(理想)이 아닌가 하고 의문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기독교 윤리는 불가능한 이상(理想)이 아니다. 그리스도인은 윤리적 생활을 할 수 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자기 형상대로 의롭게 만드셨고 의로운 법을 지키도록 명령하셨다. 이스라엘에게 주신 십계명은 하나님의 도덕적 속성에 근거한 계명이었다. 하나님의 지으신 모든 사람, 특히 하나님의 백성된 우리는, 하나님의 도덕적 속성을 본받아 거룩하고 의롭고 선하고 진실한 삶을 살아야 한다(레 11:45; 마 5:48). 그러나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그 의로운 법을 지키지 못하였다. 구약의 전 역사는 사람의 전적인 부패성과 무능력을 보여준다. 어찌할 수 없는 죄인! 그것이 구약성경의 결론이다. 그러나 신약 시대가 되어 하나님의 백성은 윤리적 원동력이 되는 새로운 원리들을 갖게 되었다. 그것은 우리에게 의로운 삶을 실제로 가능케 하는 원리들이다. 그것은 첫째로 예수 그리스도의 의(義)와 새 생명이며, 둘째로 성령의 내주(內住)하심이다. 오늘날 교회의 배교(背敎)는 성경에 예언된 바이다. 그러나 신약 교회에는 하나님의 뜻대로 선한 생활을 실천하는 수많은 진실한 성도들이 있다. 첫째로, 그리스도인의 윤리적 생활의 원동력은 예수 그리스도의 의(義)와 새 생명이다. 구원받은 성도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代贖)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하심을 얻었다(롬 3:24). 이 의는 우리로 율법의 정죄와 공포를 극복하게 하는 힘이 된다. 죄는 더 이상 우리에게 위협적이지 못하다. 그것은 우리가 율법 아래 있지 않기 때문이다(롬 6:14). 우리는 율법의 체계에서 벗어났다(롬 7:6; 갈 3:24-25; 5:1). 이것은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이다. 여기에 그리스도인의 윤리적 새 삶의 동기가 있다(롬 12:1; 고후 5:15; 엡 4:1). 의는 또한 생명이다.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은 성도는 또한 새 생명을 얻은 자이다. 새 생명은 곧 새 생활의 씨앗이다. 그러므로 요한일서 3:9은 "하나님께로서 난 자마다 죄를 짓지 아니하나니 이는 하나님의 씨가 그의 속에 거함이요 저도 범죄치 못하는 것은 하나님께로서 났음이라"고 말한다. 그리스도인이 새 생활을 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은 새 생명의 씨를 가졌기 때문이다. 구원받은 성도의 영혼의 성향은 근본적으로 변화되었다. 구원받기 전에는 죄만 즐거워하던 그가 구원받은 후에는 죄를 미워하고 의를 소원하는 자가 되었다. 옛 죄악성이 남아 있는 것은 사실이다. 옛 죄악성이 이 새로워진 성향을 거스려 싸움을 일으키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이 싸움에서 옛 죄악성은 패배할 수밖에 없다. 그 까닭은, 그리스도인이 완전한 의와 영원한 새 생명을 소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인은 은혜로 받은 그 의와 새 생명 때문에 항상 새 힘을 얻는다. 일곱 번 넘어져도 다시 일어날 수 있는 힘을 얻는 것은 바로 이 의와 새 생명 때문이다(롬 7:24-25). 그리스도인의 승리는 이미 보장되어 있다. 그리스도인은 윤리적 삶을 살 수 있도록 구원함을 얻었다(롬 8:28-30). 둘째로, 그리스도인의 윤리적 생활의 원동력은 성령의 내주(內住)하심이다. 하나님께서는 신자를 의롭다고 하시고 그 속에 새 생명을 심어주실 뿐 아니라, 그 의와 생명이 열매를 맺도록 성령으로 그 속에 거하셔서 도우신다. 성령의 내주하심은 신약 성도들이 누리는 놀라운 하나님의 복과 특권이며 은혜이다. 이 복은 구약성경에 이미 예언되어 있었다. 에스겔 36:26-27, "또 새 영을 너희 속에 두고 새 마음을 너희에게 주되 너희 육신에서 굳은 마음을 제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줄 것이며 또 내 신[성령]을 너희 속에 두어 너희로 내 율례를 행하게 하리니 너희가 내 규례를 지켜 행할지라." 이 예언대로 성령께서 오순절에 강림하셨고 성도들 속에 보혜사 곧 위로자와 격려자로 오셔서 영원히 거하신다(요 14:16). 성도들 속에 거하시는 성령께서는 그들의 윤리적 생활, 곧 육신의 죄성을 이기고 경건하고 의롭고 선하게 사는 삶을 지도하시고 도우신다. 로마서 8:4, 13-14, "육신을 좇지 않고 그 영[성령]을 좇아 행하는 우리에게 율법의 요구를 이루어지게 하려 하심이니라," "너희가 육신대로 살면 반드시 죽을 것이로되 영[성령]으로써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리니 무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그들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 갈라디아서 5:16, "내가 이르노니 너희는 성령을 좇아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 물론, 성도들의 윤리적인 삶에는 그들 자신의 성실한 노력이 요구된다(살전 4:1; 벧후 1:5-7, 10). 특히, 하나님께서 우리를 도덕적으로 온전케 하시려고 성경을 주셨으므로 우리는 온전함을 위해 성경 말씀을 가까이 해야 한다. 시편 119:9, 11, "청년이 무엇으로 그 행실을 깨끗케 하리이까. 주의 말씀을 따라 삼갈 것이니이다," "내가 주께 범죄치 아니하려 하여 주의 말씀을 내 마음에 두었나이다." 디모데후서 3:16-17,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하기에 온전케 하려 함이니라." ----------------------------------------------------------------------- 현대사회문제: 미군철수→ 순식간 남한 적화 [김정은, "미군철수 → 군사교류 확대 → 순식간 남한 赤化," 미래한국, 2007. 7. 11, 10쪽.] "전국적 총파업과 동시에 전략적 요충지대의 도처에서 무장봉기를 일으켜 전신, 전화, 발전소, 방송국 등 중요한 공공시설을 점거함과 동시에 전력의 공급 중단과 함께 통신, 교통망을 마비시키고 임시혁명정부의 이름으로 북조선에 지원을 요청하는 전파를 날려야 한다." 소설 나의 사랑 클레멘타인(이재 著, 한강출판사 刊, 2007)은 '비정규전을 통한 적화' 시나리오를 경고하고 있다. 소설은 2007년 말에서 2008년 10월을 배경으로, 한반도에 대선이 치러지지 않는다는 가정 하에 진행된다. 야당 후보 두 사람을 합한 지지율이 90%를 넘고, 정상적인 방법으로 여당이 재집권할 가능성이 희박해진 상황에서 야당 단일후보가 피습을 당해 대통령 선거가 무산된다. 이 같은 상황에서 남북정부는 조선인민군 창건기념일인 4월 25일을 기념하여 북한군 1개 사단과 1개 특수부대가 판문점을 통과하여 자유로를 거쳐서 서울 한복판인 광화문 네거리에서 기념행사를 갖기로 합의한다. 기념행사를 앞두고 대통령은 "남북간군사교류를 확대한다"는 담화를 발표하고 대통령직을 사임한다. 소설에는 기념행사와 함께 땅굴을 통하여 북한군이 남한으로 쏟아져 들어오고, 주요 우익인사에 대한 암살 및 방송국이나 한전 등 주요 시설물을 점거하는 장면이 등장한다. 남한 내 친북인사들에 대한 대대적인 숙청과, 미국의 해상봉쇄로 원자재가 부족해지는 상황은 한반도에서 벌어질 수 있는 '최악의 시나리오'에 가깝다. 이와 함께 최근 국내 월간지에 보도된 한국군 군복 17만점 북한 유출설이 화제다. 월간조선 5월호는 "2003년경 중국에서 제작된 한국군 군복이 품질에 하자가 발생해 납품이 미뤄지는 과정에서, 중국현지 생산업체가 이 군복을 북한에 팔아넘겼다"는 내용의 문건과 함께 사실관계를 방증할 수 있는 증언을 보도했다. 기사는 "2003년 비밀해제 된 '위협과 균형'이라는 미군 전쟁시나리오에 따르면 한반도에 전면전이 일어날 경우 최소 5만여명의 북한 특수군이 한민연합군 후방에 침투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전하고 있다. ◈ 우리나라의 이념적 안정을 위해 기도합시다. ----------------------------------------------------------------------- ◈ 우리는 성경의 근본 교리들을 보수하고, 자유주의 신학과 천주교회의 배교를 포용하는 타협과, 은사운동의 혼란을 반대하고, 또 그런 자들과 교제하는 자들도 책망하기를 원한다. 우리는 오늘날도 성경 말씀의 정로(正路)를 붙들고 그 길로 가는 교회들이 부흥 발전하기를 기도하며, 또 그런 자들과 교제하기를 원한다. ----------------------------------------------------------------------- ♣ www.oldfaith.net에 올려져 있는 현대교회문제와 현대교회문제 자료집 및 옛신앙지(특별호) 등의 자료들을 참고하십시오.
전화: (02) 334-8291, 팩스: (02) 337-4869 ◈ 책 안내 ●김효성, 신약성경강해. 1192면. 18,000원(송료 포함). ●김효성, 현대교회문제 자료집. 330면. 4,000원(송료 포함). ●김효성, 기독교 교리 개요. 96쪽. 1,000원 ●김효성, 기독교 교리 개요(중국어 역). 96쪽. [추천하는 책] ◆ 김성욱, 대한민국 적화보고서. 355쪽. 13,000원. --오늘 우리 사회의 이념적 문제를 잘 증거한 책!!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