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신앙 2007년 1월 14일 [제11권 2호] ◆ 매주 발행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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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너희는 길에 서서 보며 옛적 길 곧 선한 길이 어디인지 알아보고 그리로 행하라. 너희 심령이 평강을 얻으리라' 하나, 그들의 대답이 '우리는 그리로 행치 않겠노라' 하였으며"(렘 6:16). |
옛신앙
Old-time Faith www.oldfaith.net |
'옛신앙'이란, 옛부터 하나님의 선지자들과 주의 사도들이 가졌던 신앙, 오직 정확 무오(無誤)한 하나님 말씀인 신구약 성경에만 근거한 신앙, 오늘날 배교와 타협의 풍조에 물들지 않는 신앙을 의미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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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1-884 서울 마포구 합정동 364-1
합정동교회 김효성 목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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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오전설교: 소망을 하나님께 두자 디모데전서 4:7-10, "미쁘다 이 말이여 모든 사람들이 받을 만하도다. 이를 위하여 우리가 수고하고 진력하는 것은 우리 소망을 살아 계신 하나님께 둠이니." 사람들은 새해가 되면 희망에 대해 말한다. 우리는 소망이라는 말을 쓴다. 성도의 소망은 무엇인가? 우선, 성도는 소망을 땅에 두지 말아야 한다. 왜냐하면 땅의 것들은 다 쇠하여지고 없어지기 때문이다. 구약성경 전도서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헛되며 해 아래 있는 모든 수고가 헛되다고 말했다. 그 책에는 '헛되다'는 말(헤벨)이 38번이나 나온다. 시편 39:5-6에서 다윗은 이 세상의 삶을 그림자 같다고 말했다. 야고보서를 쓴 야고보는 인생의 삶을 안개라고 비유하였다(약 4:14). 사도 바울은 고린도전서 15:19에서 그리스도인의 바라는 것 곧 소망이 이생이 아니라고 말했다. 사도 요한은 요한일서 2:15-17에서 이 세상의 것들이 다 지나가기 때문에 그것을 사랑하지 말라고 교훈했다. 이와 같이, 성경은 하나님을 경외하고 구주 예수를 믿어 구원받은 우리 성도들이 소망을 땅에 두지 말 것을 가르쳤다. 우리 가운데 소망을 땅에 두는 자가 있다면 그는 성경의 교훈을 모르는 자이다. 성경을 통해 하나님의 교훈을 받은 자라면 소망을 땅에 두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소망을 땅에 두지 말자. 그 대신, 성도는 소망을 하나님께 두어야 한다. 그것이 성경 전체가 강조하며 가르치는 바이다. 세상의 삶의 허무함을 강조한 전도서는 그 결론에서 "일의 결국을 다 들었으니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 명령을 지킬지어다. 이것이 사람의 본분이니라"고 말했다. 사람이 허무한 세상에서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 명령을 지키는 것만 의미 있고 가치 있는 일이라는 뜻이다. 시편 39편에서 다윗은 인생의 삶을 그림자 같다고 말한 후에, "주여 내가 무엇을 바라리요. 나의 소망은 주께 있나이다"고 고백하였다(시 39:7). 야고보서의 저자 야고보도 인간의 일생을 안개와 같다고 한 후에 "너희가 도리어 말하기를 주의 뜻이면 우리가 살기도 하고 이것 저것을 하리라 할 것이거늘"이라고 말하였다(약 4:15). 사도 요한도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치 말라고 교훈한 후에 결론적으로 "이 세상도, 그 정욕도 지나가되 오직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이는 영원히 거하느니라"고 말했다(요일 2:17). 주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썩는 양식을 위하여 일하지 말고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을 위하여 하라"고 말씀하셨고 "하나님의 보내신 자를 믿는 것이 하나님의 일이니라"고 하셨다(요 6:27-29). 성도의 소망은 하나님뿐이다. 그러므로 시편 73편의 저자는, "하늘에서는 주 외에 누가 내게 있으리요. 땅에서는 주밖에 나의 사모할 자 없나이다. 내 육체와 마음은 쇠잔하나 하나님은 내 마음의 반석이시요 영원한 분깃이시라"고 고백하였다. 또 사도 바울은, "우리의 잠시 받는 환난의 경한 것이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의 중한 것을 우리에게 이루게 함이니 우리의 돌아보는 것은 보이는 것이 아니요 보이지 않는 것이니 보이는 것은 잠간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함이니라"고 말했다(고후 4:16-18). 성도는 지금 눈에 보이지 않지만 장차 하나님이 주실 영원한 영광의 세계를 소망하며 그렇기 때문에 고난의 현실도 낙심치 않고 잘 이겨 나가는 것이다. 하나님께 소망을 둔다는 것이 무엇을 말하는가? 그것은 하나님이 예비하신 천국과 영생과 부활, 그리고 그것들을 가져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을 소망한다는 말이다. 베드로전서 1:3-4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나님이 그 많으신 긍휼대로 . . . 우리를 거듭나게 하사 산 소망이 있게 하시며 썩지 않고 더럽지 않고 쇠하지 아니하는 기업을 잇게 하시나니 곧 너희를 위하여 하늘에 간직하신 것이라"고 말했다. 천국은 썩지 않고 더럽지 않고 쇠하지 않는 그 기업이다. 디도서 1:2은 성도의 소망인 영생을 "거짓이 없으신 하나님이 영원한 때 전부터 약속하신 것"이라고 하였다. 또 고린도전서 15:19-22은 몸의 부활이 성도의 바라는 소망이라고 말한다. 디도서 2:13은 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스런 재림이 그리스도인의 복스러운 소망이라고 말했고 요한계시록 22:20은, "이것들을 증거하신 이가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속히 오리라 하시거늘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라고 말한다. 이와 같이, 소망을 하나님께 둔다는 것은 하나님이 약속하신 천국과 영생과 부활, 그리고 그것들을 가져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을 믿고 소망하는 것을 말한다. 성도는 세상에서 소망을 땅에 두지 않고 하나님께 두고 살기 때문에 경건하게 살아야 한다. 오늘 본문에서 사도 바울은 성도의 경건한 삶을 교훈하면서 그 이유로 성도가 소망을 하나님께 둔다는 사실을 말했다. 본문을 다시 번역하면, "망령되고 허탄한 신화를 버리고 오직 경건에 이르기를 연습하라. 이는 육체의 연습은 약간의 유익이 있으나 경건은 범사에 유익함이니 현재와 장래의 생명의 약속이 있느니라. 미쁘다, 이 말이여 전적으로 받을 만하도다. 이는 이를 위하여 우리가 수고하고 모욕을 당함이니, 이는 우리 소망을 살아계신 하나님께 둠이니라. 그는 모든 사람 특히 믿는 자들의 구주시니라." 바울은 경건한 삶이야말로 모두가 전적으로 받을 만한 삶이며 그가 수고하는 것과 모욕을 당하는 까닭은 바로 이것 때문이라고 말한다. 즉 성도의 경건한 삶은 사도의 수고의 목표이며 고난의 이유이었다. 경건이 무엇인가? 경건은 하나님 앞에 사는 것을 가리킨다. 경건한 삶이란 항상 하나님을 의식하고 하나님과 교제하며 동행하는 삶이다. 그것은 옛날 에녹이 걸었던 삶이며(창 5:21-24) 또 노아가 걸었던 삶이다(창 6:9). 그것은 가장 중요한 일이며 복된 일이다. 본문에서 사도 바울은 "경건에 이르기를 연습하라"고 말한다. '연습하라'는 원어(귐나제)는 '훈련하라'는 뜻이다. 경건은 훈련이 필요하다. 개인적으로 날마다 규칙적으로 성경을 읽고 기도하는 것은 훈련이 필요하다. 주일마다 교회에 출석하는 것도 훈련이 필요하다. 가정예배를 규칙적으로 드리는 일도 훈련이 필요하다. 무슨 일이든지 처음에는 좀 힘들지만 잘 훈련하면 쉬워진다. 경건 생활도 그러하다. 본문에서 사도 바울은 경건의 유익에 대해서도 말한다. 그는 육체의 연습은 약간의 유익이 있으나 경건은 범사에 유익함이니 현재와 장래의 생명의 약속이 있다고 말한다. 현재의 생명의 약속은 육신의 건강과 경제의 안정의 약속을 가리킬 것이고, 장래의 생명의 약속은 내세 즉 천국과 영생의 약속을 가리킨다. 잠언 3:7-8, "스스로 지혜롭게 여기지 말지어다. 여호와를 경외하며 악을 떠날지어다. 이것이 네 몸에 양약이 되어 네 골수로 윤택하게 하리라." '양약'이라는 원어(리푸스)는 '건강' 혹은 '치료'라는 뜻이다. 경건하게 살면 몸도 건강해질 것이다. 마태복음 6:33,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이 모든 것'이란 의식주의 필요를 가리켰다. 경건하면 경제 문제도 안정될 것이다. 베드로후서 1:10-11은 경건하게 살면 확실히 천국에 들어가고 복된 영생을 누릴 것이라고 말한다. 말씀을 마친다. 우리는 소망을 땅에 두지 말자. 육신의 쾌락이나 물질에 소망을 두지 말자. 왜냐하면 그것들은 다 지나가고 쇠하여지고 없어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것들은 다 허무한 것들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소망을 하나님께 두자. 하나님은 영원하시며 하나님의 약속은 신실하고 그의 뜻을 행하는 자는 영원한 천국과 영생의 영광을 누릴 것이기 때문이다. 또 우리는 소망을 하나님께 두기 때문에 경건하게 살자. 우리는 아브라함 같은 신앙의 선진들처럼 경건하게 살자. 그들은 이 세상의 삶을 나그네의 삶으로 알았고 하나님만 의지하였고 그의 약속의 땅을 소망하였고 그의 뜻에 전적으로 순종하며 살았다. 하나님은 그들을 위해 영광스런 천국을 예비하셨다(히 11:8-10, 13-16). 우리도 그들처럼 하나님께 소망을 두고 경건하게 살자. ----------------------------------------------------------------------- 지난오후설교: 자녀 교육 자녀들을 바르게 키우는 일은 하나님의 명령이며 하나님을 믿는 모든 부모들의 당연한 의무이다. 우선, 자녀는 부모에게 어떤 존재인가? 자녀는 단지 부모가 만든 존재가 아니고 하나님께서 주신 선물이다. 성도의 자녀는 하나님의 기업이요 상급이다(시 127:3). 그러나 자녀는 성숙한 인격자로가 아니고 매우 미성숙한 자로 출생한다. 그러므로 자녀에게는 부모의 바른 교육이 필요하다. 잘 교육을 받지 못한 자녀는 부모의 기쁨과 자랑이 아니고 부모의 근심거리가 되기도 한다(잠 10:1). 자녀 교육은 누구에게 맡겨진 일인가? 하나님께서는 부모에게 자녀 교육의 책임을 맡겨주셨다. 신명기 6:6-7, "오늘날 내가 네게 명하는 이 말씀을 너는 마음에 새기고 네 자녀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며 . . . 이 말씀을 강론할 것이[라]." 에베소서 6:4, "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고 오직 주의 교양과 훈계로 양육하라." 자녀 교육의 책임은 일차적으로 교회나 세속 학교에 있지 않고 부모에게 있다. 그것도, 어머니에게가 아니고 아버지에게 있다. 부모는 자녀에게 무엇을 가르칠 것인가? 부모는 자녀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이든지 가르쳐야 한다. 잠언 22:6, "마땅히 행할 길을 아이에게 가르치라. 그리하면 늙어도 그것을 떠나지 아니하리라." '마땅히 행할 길'이란 인생의 본분을 말한다. 그것은 하나님을 경외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의롭고 선하게 사는 것이다. 그것은 다 성경에 교훈되어 있다. 성경은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한 책이다(딤후 3:16). 자녀 교육의 내용은 한마디로 성경 말씀이다. 우리는 성경 말씀으로 자녀를 교훈해야 한다. 에베소서 6:4, "너희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고 오직 주의 교양과 훈계로 양육하라." 부모가 자녀에게 성경을 성실히 가르치면 자녀에게 필요한 내용이 그 속에 다 들어 있다. 성경의 주요 내용은 하나님을 경외하고 섬기고 순종하는 것이다. 그것이 경건 생활이다. 신명기 6:5, "너는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 잠언 1:7,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식의 근본이어늘 미련한 자는 지혜와 훈계를 멸시하느니라." 경건 생활의 기본은 하나님께 예배드리고 기도하고 찬송하고 성경을 읽는 것이다. 부모는 아이의 출생 때부터 그를 안고 기도하며 찬송가를 들려주고 6개월부터는 성경 이야기를 들려주며 2살부터는 쉬운 성경구절을 암송시키고 5살부터는 자신이 성경을 직접 읽게 하고 7살부터는 규칙적으로 성경을 읽고 기도하게 하는 것이 좋다. 또 부모는 가정예배를 통해 성경의 모든 말씀을 가르쳐야 한다.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요구하시는 가장 중요한 것은 죄를 회개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이다. 사람은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야 천국에 들어갈 수 있다(요 3:5-6). 사람은 자신이 죄인임을 깨닫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때 구원을 얻는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은 어디에서든지 하나님께 대한 회개와 주 예수 그리스도께 대한 믿음을 전파하였다(행 20:21). 하나님께서 성경을 주신 목적도 거기에 있다(딤후 3:15). 또 성경의 주요 내용은 의(義)이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모든 죄를 버리고 의롭게 살기를 원하신다. 디모데후서 3:16,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하나님의 말씀에 복종하는 것이 의이다. 부모가 하나님의 말씀에 복종하면서 자녀도 복종하도록 키워야 한다. 그러므로 성경은 교회의 감독은 "자기 집을 잘 다스려 자녀들로 모든 단정함으로 복종케 하는 자라야" 한다고 하였다(딤전 3:4). 성경이 가르치는 이상적 인격은 그 외에도 예절, 고운 말씨, 양보심, 겸손과 인내, 단정함, 성실함 등의 덕을 포함한다. 또 부모는 자녀의 지식과 감정과 의지의 건전한 발달을 위해서도 노력해야 할 것이다. 그러므로 부모는 자녀에게 좋은 책 읽기, 좋은 음악 듣기, 양치질, 손 씻기, 옷 입기, 식사 태도, 규칙 생활, 적당히 운동하기 등도 가르칠 필요가 있다. 부모는 자녀를 어떻게 교육시킬 것인가? 첫째로, 부모는 자녀를 부지런히 가르쳐야 한다. 신명기 6:6- 7, "오늘날 내가 네게 명하는 이 말씀을 너는 마음에 새기고 네 자녀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며 집에 앉았을 때에든지 길에 행할 때에든지 누웠을 때에든지 일어날 때에든지 이 말씀을 강론할 것이며." 사람은 미련한 존재이어서 반복적 교육이 바른 인격의 형성에 유익하다. 자녀와의 계속적 대화도 필요하다. 또 부모는 자기 자녀를 쉽게 또 자주 남의 손에 맡기지 말아야 한다. 아이는 나쁜 본을 쉽게 받고 짧은 시간에라도 나쁜 것을 많이 배우기 때문이다. 부모로서 자녀 교육보다 더 중요한 일은 없다. 자녀 교육은 부모에게 가장 큰 의무이다. 둘째로, 부모는 자녀를 구체적으로 가르쳐야 한다. 잠언 22:6, "마땅히 행할 길을 아이에게 가르치라. 그리하면 늙어도 그것을 떠나지 아니하리라." 부모는 자녀의 실생활을 주목하고 감시하고 지도해야 한다. 예를 들어, 그가 학교에서 돌아오는 시간은 언제인지, 어울리는 친구는 누구인지, 노는 장소는 주로 어디인지, 좋아하는 책이나 일은 무엇인지, 즐겨보는 텔레비젼 프로나 컴퓨터 게임은 무엇인지, 남녀 관계는 어떤지 등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자녀의 잘못은 즉시 고쳐주어야 하고 잘한 일은 칭찬하고 격려해야 한다. 부모는 자녀가 구체적 상황에서 성경 교훈을 스스로 적용할 수 있도록 훈련시켜야 한다. 셋째로, 자녀 교육을 위한 가장 좋은 방법은 부모의 모범이다. 주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내게 배우라'고 말씀하셨다(마 11:29). 사도 바울은 교인들에게 "나를 본받는 자 되라"고 말했다(고전 4:16; 11:1; 빌 3:17). 또 그는 디도에게 '범사에 네 자신으로 선한 일의 본을 보이라'고 가르쳤다(딛 2:7). 어린아이는 백지 상태와 같아서 선악간 흉내를 잘 낸다. 그러므로 아이가 부모의 좋은 모범을 많이 볼수록 좋은 인격자가 되는 데 유익하다. 그러므로 부모는 먼저 모범된 삶을 살아야 한다. 예컨대, 그들은 먼저 경건하고 깨끗하고 선하고 겸손한 삶을 살아야 한다. 또 그들은 자제심과 인내심에 있어서도 모범을 보여야 한다. 부모가 남을 욕하거나 거짓말을 하면 자녀도 같은 행동을 할 것이다. 아빠가 엄마를 구타하면 자녀도 폭력적인 사람이 될 것이다. 넷째로, 부모는 필요할 때는 자녀에게 벌을 주고 매도 때려야 한다. 자녀가 잘못할 때 벌주지 않고 자유로이 내버려두는 것은 바른 교육이 아니다. 그것은 자녀를 사랑하는 것이 아니고 오히려 그의 인격을 병들게 하고 그를 망하게 하는 일이다. 잠언 13:24, "초달을 차마 못하는 자는 그 자식을 미워함이라. 자식을 사랑하는 자는 근실히[늦기 전에] 징계하느니라." 잠언 20:30, "상하게 때리는 것이 악을 없이 하나니 매는 사람의 속에 깊이 들어가느니라." 잠언 22:15, "아이의 마음에는 미련한 것이 얽혔으나 징계하는 채찍이 이를 멀리 쫓아내리라." 잠언 23:13-14, "아이를 훈계하지 아니치 말라. 채찍으로 그를 때릴지라도 죽지 아니하리라. 그를 채찍으로 때리면 그 영혼을 음부[지옥]에서 구원하리라." 잠언 29:15, "채찍과 꾸지람이 지혜를 주거늘 임의로 하게 버려두면 그 자식은 어미를 욕되게 하느니라." 그러나 부모가 자녀에게 부당한 책망이나 벌을 주는 것은 오히려 역효과를 가져오므로 조심해야 한다. 에베소서 6:4, "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라]." 골로새서 3:21, "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격노케 말지니 낙심할까 함이라." 교훈과 책망은 항상 정당해야 하고 자녀도 그것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 또 부모 자신이 잘못했을 때는 자녀 앞에서 그 잘못을 인정해야 한다. 부모는 자신도 완전한 자가 아니며 단지 하나님 앞에서 성실히 노력하는 자라는 것을 알려주어야 한다. 부모가 자녀에게 벌을 줄 때 다음 몇 가지의 점을 참고하면 좋을 것이다: ① 부모는 단순히 권위 의식을 가지고 자녀에게 위압적으로 대하거나 자기 감정과 기분을 따라 큰 소리로 야단치거나 손으로 머리를 때리는 등의 행동을 하지 말아야 한다. ② 실수와 고의적 잘못을 구별해야 하며, 잘못을 행한 경우도 먼저 그것에 대해 설명하여 아이로 하여금 이해케 한 후에 벌을 주어야 한다. ③ 매는 엄하고 아프게 때려야 하며 반복적 잘못은 더 엄하게 벌해야 한다. ④ 벌은 일관성이 있어야 한다. 즉 동일한 잘못에 대해서는 항상 벌을 주어야 하며 벌을 줄 때는 부모가 하나가 되어야 한다. ⑤ 아이는 벌을 뒤로 미루면 잊어버리기 때문에, 심지어 사람들이 많은 곳에서라도 아이를 조용한 곳으로 데리고 나가서 즉시 벌을 주어야 효과가 있다. ⑥ 부모는 벌을 줄 때 사랑과 침착한 심령을 가져야 하며 벌을 준 후에는 함께 기도하고 아픈 마음을 달래주고 아픈 곳을 싸매 주어야 한다.1) 마지막으로, 자녀 교육은 하나님의 은혜로 되며 인간편에서는 궁극적으로 기도밖에 없다. 경건한 히스기야왕에게서 악한 므낫세가 날 줄을 누가 알았으며, 또한 악한 므낫세에게서 경건한 손자 요시야가 날 줄을 누가 알았겠는가? 사람이 교육은 하지만, 궁극적으로 하나님께서 은혜를 주시지 않으면 그 교육이 다 소용이 없다. 사람은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을 받고 하나님의 은혜로 온전한 인격이 된다. 그러나 바른 교훈과 징계는 사람을 변화시키는 일반적 방법이다. 아이의 마음에는 미련한 것이 얽혔으나 징계하는 채찍이 이를 멀리 쫓아내며(잠 22:15) 채찍과 꾸지람이 아이에게 지혜를 주며(잠 29:15) 상하게 때리는 것이 악을 없이 하며(잠 20:30) 그를 채찍으로 때리면 그 영혼을 지옥에서 구원할 것이다(잠 23:14). 바른 교육은 효과가 있고 그 효과는 지속적이다. 세 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는 속담은 일리가 있다. 어릴 때 바로 배운 것은 커서도 그 사람 속에 역사한다. 시편 71:17, "하나님이여 나를 어려서부터 교훈하셨으므로 내가 지금까지 주의 기사를 전하였나이다." 잠언 22:6, "마땅히 행할 길을 아이에게 가르치라. 그리하면 늙어도 그것을 떠나지 아니하리라." 그러므로 부모가 자녀에게 줄 수 있는 가장 크고 귀한 유산은 성경 말씀으로 바르게 교육하는 것이다.
1) 김복년, "그리스도인 가정의 자녀 교육," 1996년 7월 24일 합정동교회 유치부 자녀교육세미나에서. ◈ 우리나라의 이념적 안정을 위해 기도합시다. ----------------------------------------------------------------------- ◈ 우리는 성경의 근본 교리들을 보수하고, 자유주의 신학과 천주교회의 배교를 포용하는 타협과, 은사운동의 혼란을 반대하고, 또 그런 자들과 교제하는 자들도 책망하기를 원한다. 우리는 오늘날도 성경 말씀의 정로(正路)를 붙들고 그 길로 가는 교회들이 부흥 발전하기를 기도하며, 또 그런 자들과 교제하기를 원한다. ----------------------------------------------------------------------- ♣ www.oldfaith.net에 올려져 있는 현대교회문제와 현대교회문제 자료집 및 옛신앙지(특별호) 등의 자료들을 참고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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