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신앙  2007년 2월 18일 [제11권 7호]   ◆ 매주 발행 ◆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너희는 길에 서서 보며 옛적 길 곧 선한 길이 어디인지 알아보고 그리로 행하라. 너희 심령이 평강을 얻으리라' 하나, 그들의 대답이 '우리는 그리로 행치 않겠노라' 하였으며"(렘 6:16).

 

 

옛신앙

 

Old-time Fait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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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옛신앙'이란, 옛부터 하나님의 선지자들과 주의 사도들이 가졌던 신앙, 오직 정확 무오(無誤)한 하나님 말씀인 신구약 성경에만 근거한 신앙, 오늘날 배교와 타협의 풍조에 물들지 않는 신앙을 의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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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오전설교:                                           롯과 헤어짐

[창세기 13장 1-2절] 아브람이 애굽에서 나올새 그와 그 아내와 모든 소유며 롯도 함께하여 남방으로 올라가니 아브람에게 육축과 은금(銀金)이 풍부하였더라.

아내를 빼앗겼다가 하나님의 긍휼의 도우심으로 다시 찾은 아브람은 그 아내와 모든 소유와 롯과 함께 애굽에서 나와 남방으로 올라갔다. '남방'(네겝)은 유대 나라와 애굽 나라 사이의 넓은 지역, 즉 유대 땅에서 볼 때 남쪽 지역을 가리킨다. 아브람은 애굽의 왕에게 양과 소와 암수 나귀와 약대를 얻었기 때문에(창 12:16) 육축이 풍부하였고 또 은금도 많았다. 아브람은 물질적으로 부요하였다.

[3-4절] 그가 남방에서부터 발행하여 벧엘에 이르며 벧엘과 아이 사이 전에 장막 쳤던 곳에 이르니 그가 처음으로 단을 쌓은 곳이라. 그가 거기서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더라.

아브람은 벧엘에 이르렀고 벧엘과 아이 사이, 즉 전에 하란에서 이곳 가나안 땅에 와 장막을 치고 처음 하나님께 단을 쌓았던 곳에서 하나님의 이름을 불렀다. '하나님의 이름을 불렀다'는 말은 하나님께 경배하며 찬송하고 기도했다는 뜻이다. 아브람은 하나님께 단 쌓기를 힘썼고 하나님께 경배하며 찬송하고 기도하기를 힘썼다.

[5-7절] 아브람의 일행 롯도 양과 소와 장막이 있으므로 그 땅이 그들의 동거함을 용납지 못하였으니 곧 그들의 소유가 많아서 동거할 수 없었음이라. 그러므로 아브람의 가축의 목자와 롯의 가축의 목자가 서로 다투고 또 가나안 사람과 브리스 사람도 그 땅에 거하였는지라.

아브람과 롯은 각각 소유물이 많아 그 곳에 함께 거하기 어려웠고 게다가 아브람의 가축의 목자들과 롯의 가축의 목자들이 서로 다투기도 하였다. 사람은 더불어 살고 서로 화목하고 사랑하며 살아야 하지만, 때때로 제한된 땅과 음식물로 인해 다툼이 생긴다. 가난과 불편함을 참고 이기는 것이 사랑이며 성숙한 인격이지만, 사람들은 이기적이고 자기중심적인 생각을 버리지 못하고 서로 다툰다.  

[8-9절] 아브람이 롯에게 이르되 우리는 한 골육이라. 나나 너나, 내 목자나 네 목자나 서로 다투게 말자. 네 앞에 온 땅이 있지 아니하냐? 나를 떠나라. 네가 좌하면 나는 우하고, 네가 우하면 나는 좌하리라.

아브람은 조카 롯에게 우리가 한 골육이니 서로 다투지 말고 헤어지자고 제안하였다. 함께 있으면서 서로 다투지 않고 서로 이해하며 서로 위하고 사랑한다면 가장 이상적이겠지만, 사람의 연약성 때문에 때때로 그것이 불가능하다. 그래서 좋은 사람들 간에도 부득이 서로 헤어지는 것이 필요한 때가 있다. 그러나 함께 있으면서 서로 다투는 것보다 헤어져서 서로 위할 수 있다면 그것이 더 나을 것이다.

아브람은 롯에게 "네가 좌하면 나는 우하고, 네가 우하면 나는 좌하리라"고 말했다. 아브람은 롯에게 선택권을 주었다. 그는 양보심을 발휘했다. 사람의 다툼은 대체로 욕심 때문에 온다. 야고보는, "너희 중에 싸움이 어디로, 다툼이 어디로 좇아 나느뇨? 너희 지체 중에서 싸우는 정욕으로 좇아 난 것이 아니냐? 너희가 욕심을 내어도 얻지 못하고 살인하며 시기하여도 능히 취하지 못하나니 너희가 다투고 싸우는도다"라고 말했다(약 4:1-2). 그러나 하나님을 바라며 그 나라에 소망을 둔 자는 잠시 있다가 없어질 세상 것 때문에 너무 기뻐하거나 너무 슬퍼하지 않고 세상 사람처럼 다투지 않는다. 사람은 세상 욕심을 버리고 하나님만 보화로 알 때 세상 것을 양보할 수 있다.

[10절] 이에 롯이 눈을 들어 요단 들을 바라본즉 소알까지 온 땅에 물이 넉넉하니 여호와께서 소돔과 고모라를 멸하시기 전이었는 고로 여호와의 동산 같고 애굽 땅과 같았더라.

롯은 눈을 들어 요단 들을 바라보았다. 요단 들은 사해로 이어지는 요단강 주위의 지역을 가리킨다. 소알은 소돔과 고모라의 이웃 도시이었고 사해 남단에 위치했던 것 같다. 요단 들은 소알까지 비옥하였다. 그 곳은 소돔과 고모라의 멸망 후에는 황폐해졌으나 그 당시에는 비옥하여 여호와의 동산 곧 에덴 동산 같고(창 2:8; 사 51:3; 겔 28:13) 애굽 땅과 같았다. 에덴 동산에는 강의 근원이 있어서(창 2:10) 비옥하였고 애굽 땅도 풍부한 나일 강을 인해 매우 비옥하였다.

[11-13절] 그러므로 롯이 요단 온 들을 택하고 동으로 옮기니 그들이 서로 떠난지라. 아브람은 가나안 땅에 거하였고 롯은 평지 성읍들에 머무르며 그 장막을 옮겨 소돔까지 이르렀더라. 소돔 사람은 악하여 여호와 앞에 큰 죄인이었더라.

롯은 요단 들을 택했고 아브람을 떠나 동쪽으로 옮겨 갔다. 그는 그 장막을 옮겨 소돔까지 이르렀다. 소돔 사람은 하나님 앞에 큰 죄인이었다고 본문은 말한다. 죄도 하나님 앞에서 큰 죄가 있고 작은 죄가 있다. 사람이 약해서 실수로 혹은 알지 못하고 짓는 죄는 작은 죄이지만, 고의적으로 혹은 도전적으로 짓는 죄는 큰 죄이다. 사람의 양심은 고의적인 죄를 어느 정도 통제하지만, 죄가 반복되고 양심이 무디어지면 사람은 고의적인 죄를 담대히 짓게 된다. 소돔 사람들은 큰 죄인이었다.

롯이 요단 들을 택하고 소돔 성 가까이에 장막을 친 것은 신앙적이지 못했다. 그는 물이 넉넉한 땅이라는 현실적 유익만 생각하여 그 곳을 택했고 그가 살 곳이 그의 경건 생활에 얼마나 유익할지에 대해서는 생각지 않았다. 만일 그가 바른 생각을 했다면, 그는 죄악된 환경을 멀리했을 것이다. 죄악된 곳에는 하나님의 재앙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브람은 롯과 달리 가나안 땅에 거하였다. 그 땅은 하나님의 약속이 있는 땅이었다(창 12:7). 그는 얼마 전 기근 때문에 그 땅을 떠나 애굽으로 내려갔다가 큰 낭패를 경험했다. 그것은 그의 잘못된 판단 때문이었다. 그러나 이제 그는 그 약속의 가나안 땅에 거하였다.

[14-17절] 롯이 아브람을 떠난 후에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눈을 들어 너 있는 곳에서 동서남북을 바라보라. 보이는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 영원히 이르리라. 내가 네 자손으로 땅의 티끌 같게 하리니 사람이 땅의 티끌을 능히 셀수 있을진대 네 자손도 세리라. 너는 일어나 그 땅을 종과 횡으로 행하여 보라. 내가 그것을 네게 주리라.

롯이 떠난 후, 하나님께서는 아브람에게 말씀하셨다. 그가 어떻게 말씀하셨는지 본문이 말하지 않지만, 구약 시대에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방법은 직접 나타나시든지, 환상 중에나 밤에 꿈에 나타나셔서 말씀하시는 것이었다(민 12:6).

하나님은 아브람에게 두 가지 말씀을 주셨다. 첫째는 가나안 땅을 그와 그 자손에게 주시겠다는 말씀이다. 이것은 창세기 12:7에 기록된 대로 "내가 이 땅을 네 자손에게 주리라"는 말씀의 반복이었다. 본문 14 -15절에 보면, 하나님께서는 "너는 눈을 들어 너 있는 곳에서 동서남북을 바라보라. [이는] 보이는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 영원히 이르리라[이를 것임이니라]"고 말씀하셨고, 또 17절은 "너는 일어나 그 땅을 종과 횡으로 행하여 보라. [이는] 내가 그것을 네게 주리라[줄 것임이니라]"고 말씀하셨다. 하나님께서는 가나안 땅이 그와 그 자손들에게 약속된 땅임을 재확인시켜 주셨다.

둘째는 그의 자손을 땅의 티끌같이 많게 하시겠다는 말씀이다. "내가 네 자손으로 땅의 티끌 같게 하리니 사람이 땅의 티끌을 능히 셀 수 있을진대 네 자손도 세리라." 창세기 15:5에 보면, 하나님께서는 그를 이끌고 나가셔서 "하늘을 우러러 뭇별을 셀 수 있나 보라," "네 자손이 이와 같으리라"고 말씀하셨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람의 자손들을 땅의 티끌같이, 하늘의 별같이 많게 하시겠다고, 즉 수적으로 번창케 하시겠다고 말씀하셨다.

[18절] 이에 아브람이 장막을 옮겨 헤브론에 있는 마므레 상수리 수풀에 이르러 거하며 거기서 여호와를 위하여 단을 쌓았더라.

아브람은 헤브론에 있는 마므레 상수리 수풀 부근에 장막을 치며 거기서 하나님께 단을 쌓았다. 그것은 그가 짐승을 죽여 제사를 드렸음을 뜻한다. 그것은 하나님의 긍휼로 받는 죄사함과 하나님께 대한 참된 헌신과 전적 순종의 각오를 상징한다. 아브람은 하나님을 섬기는 경건한 삶을 살았다. 그것은 인간의 합당한 삶이요 복된 삶이다.

본장에서 우리는 몇 가지 교훈을 받는다. 첫째로, 우리는 아브람에게서 양보심을 배운다. 그는 조카 롯에게 "네가 좌하면 나는 우하고, 네가 우하면 나는 좌하리라"고 말했다. 이것은 세상적인 욕심을 버리고 오직 하나님을 보화로 삼은 자만 할 수 있는 말이다. 실상 세상의 모든 것은 헛되다. 사람이 세상 것에 욕심을 내면 다투지만, 하나님과 천국에 가치를 두면 모든 것을 양보할 수 있고 조건 없이 사랑할 수 있다.

둘째로, 우리는 가나안 땅에 거해야 한다. 우리는 롯과 같이 현실적 이익을 따라 불경건하고 죄악된 세상으로 나아가지 말고,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땅에 거해야 한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 거하고(요 15:4) 성경적 교훈과 믿음 안에 거하고(행 14:22; 골 1:23) 참 교회 안에 거하는 것을 말한다. 우리는 천국을 향해 가는 순례자들의 쉼터인 참 교회를 세우고 가꾸며 참 교회 안에서 교훈을 받고 믿음으로 살자.

셋째로, 우리는 하나님께 단을 쌓는 생활을 힘써야 한다. 아브라함의 경건한 삶은 모든 성도에게 본이 된다. 하나님께 예배드리고 성경 말씀을 묵상하고 기도하며 하나님과 교제하고 동행하는 삶은 복된 삶이다(시 1: 1-3; 마 6:33). 하나님은 그것을 요구하시며 그것은 생명의 길이다.

이 세 가지 교훈은 결국 한가지이다. 그것은 하나님 중심으로 살고 하나님만 보화로 여기며 사는 것이다. 그런 자는 세상 것을 다 양보할 수 있고 바른 믿음과 참 교회 안에 거할 것이다. 세상은 참으로 헛되며 세상의 모든 것은 잠시 후에 지나가고 말 것이다. 그러나 천국은 영원하다. 욥기는 "네 보배를 진토에 버리고 오빌의 금을 강가의 돌에 버리라. 그리하면 전능자가 네 보배가 되시며 네게 귀한 은이 되시리라"고 말한다(22:24-25). 우리는 하나님만 보화로 바로 깨닫고 경건하게 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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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오후설교:                                   찬미의 제사

히브리서 13:15, "이러므로 우리가 예수로 말미암아 항상 찬미의 제사를 하나님께 드리자. 이는 그 이름을 증거하는 입술의 열매니라."

찬송은 성도의 신앙생활의 매우 중요한 부분이다. "예수로 말미암아 항상 찬미의 제사를 하나님께 드리자. 이는 그 이름을 증거하는 입술의 열매니라."

우리의 찬송의 대상은 삼위일체 하나님이시다. 우리 하나님은 유일하신 하나님이시요 세상에서 가장 위대하신 자이시다. 그는 온 세상의 창조자시며 지극히 영화로운 하나님이시다. 그러므로 다윗은 시편 8편에서 "여호와 우리 주여 주의 이름이 온 땅에 어찌 그리 아름다운지요. 주의 영광을 하늘 위에 두셨나이다"고 고백했다(시 8:1).

요한계시록 4:10-11에 보면, 24장로들은 보좌에 앉으신 하나님 앞에 엎드려 영원토록 살아계신 그에게 경배하고 자기들의 면류관을 그의 보좌 앞에 던지며 말하기를, "우리 주 하나님이여 영광과 존귀와 능력을 받으시는 것이 합당하오니 주께서 만물을 지으신지라. 만물이 주의 뜻대로 있었고 또 지으심을 받았나이다"라고 하였다.

또 요한계시록 5:13에 보면, 사도 요한은 하늘 위에와 땅 위에와 땅 아래와 바다 위에와 또 그 가운데 모든 만물이 "보좌에 앉으신 이와 어린양에게 찬송과 존귀와 영광과 능력을 세세토록 돌릴지어다"라고 찬송하는 소리를 들었다. 우리의 찬송의 대상은 창조주 하나님과 주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그는 지극히 높으신 삼위일체 하나님이시다.

우리가 하나님을 찬송할 이유는 무엇인가? 이사야 43:7, 21은 "무릇 내 이름으로 일컫는 자 곧 내가 내 영광을 위하여 창조한 자를 오게 하라. 그들을 내가 지었고 만들었느니라," "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의 찬송을 부르게 하려 함이니라"고 말한다. 이 구절은 인간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하나님을 찬송하기 위해 창조되었으며 찬송이 하나님께서 인생을 만드신 목적이요 우리가 이 세상에 태어나 사는 목적, 즉 우리의 존재 목적이라고 말한다.

그러므로 인간은 본래부터 자기를 위해 살지 말고 세상의 헛된 것을 위해 살지 말아야 했다. 우리가 노래부르는 것도, 악기연주하는 것도 자기 만족을 위해, 자기 성공을 위해 하지 말아야 했다. 우리의 노래는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이어야 했고 우리의 악기 연주는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이어야 했다.

하나님은 아모스 선지자를 통해 이스라엘을 책망하며 말씀하시기를, "네 노래 소리를 내 앞에서 그칠지어다. 네 비파 소리도 내가 듣지 아니하리라," "너희는 흉한 날이 멀다 하여 강포한 자리로 가까워지게 하고 상아상에 누우며 침상에서 기지개 켜며 양떼에서 어린양과 우리에서 송아지를 취하여 먹고 비파에 맞추어 헛된 노래를 지절거리며 다윗처럼 자기를 위하여 악기를 제조하며 대접으로 포도주를 마시며 귀한 기름을 몸에 바르면서 요셉의 환난을 인하여는 근심치 아니하는 자로다"라고 하셨다(암 5:23; 6:3-6).

하나님은 무의미한 자기 만족적 노래와 악기 연주를 기뻐하지 않으신다. 하나님의 백성인 우리는 더더욱 그런 헛된 노래를 부르지 말아야 한다. 우리는 우리의 목소리와 악기 연주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고 하나님을 찬송하는 일을 위해 사용해야 한다.

더욱이, 우리는 하나님의 크시고 놀라우신 긍휼로 구원받았기 때문에 하나님을 찬송해야 한다. 찬송은 우리를 구원하신 하나님의 구원의 목적이었다. 에베소서 1:4-6, 13-14,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이는 그의 사랑하시는 자 안에서 우리에게 거저 주시는 바 그의 은혜의 영광을 찬미하게 하려는 것이라," "그[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도 진리의 말씀 곧 너희의 구원의 복음을 듣고 그 안에서 또한 믿어 약속의 성령으로 인치심을 받았으니 이는 우리의 기업에 보증이 되사 그 얻으신 것을 구속(救贖)하시고 그의 영광을 찬미하게 하려 하심이라."

구원이 무엇인가? 그것은 죄로 인해 영원한 지옥 형벌을 받을 자들이 죄사함을 받아 천국 백성이 된 것이 아닌가. 우리의 과거의 죄들은 심히 추하고 악하였으나 하나님께서는 주홍같이 붉은 죄를 눈과 같이 희게 씻어주셨다(사 1:18). 찬송은 하나님의 그 놀라운 구원의 은혜에 대한 지극히 당연한 응답이요 보답이다. 우리는 하나님께 찬송을 드려야 할 이유가 있는 자이다. 우리는 항상 기뻐하며 하나님을 찬송할 이유를 가진 자이다.

우리는 어떤 방법으로 하나님을 찬송해야 하는가? 첫째로, 찬송은 마음에서 우러나서 해야 한다. 마음이 없이, 소리로만 하는 찬송이라면, 하나님께 영광이 되지 못하며 다른 사람의 심령에 참된 감동을 주지도 못할 것이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은 우리에게 "시와 찬미와 신령한 노래들로 서로 화답하며 너희의 마음으로 주께 노래하며 찬송하라"고 교훈했다(엡 5:19).

둘째로, 찬송은 기쁨과 즐거움으로 해야 한다. 야고보는 "너희 중에 고난 당하는 자가 있느냐 저는 기도할 것이요 즐거워하는 자가 있느냐 저는 찬송할지니라"고 말했다(약 5:13). 찬송은 즐거울 때 나오는 것이다. 하나님과 그 은혜를 즐거워하는 자마다 찬송할 것이다.

그러므로 시편 47:1은 "너희 만민들아 손바닥을 치고 즐거운 소리로 하나님께 외칠지어다"라고 말한다. 기쁨이 북받쳐 손바닥을 치며 찬송하라는 뜻이다. 또 시편 149:2-3, 5은 "이스라엘은 자기를 지으신 자로 인하여 즐거워하며 시온의 자민은 저희의 왕으로 인하여 즐거워할지어다. 춤 추며 그의 이름을 찬양하며 소고와 수금으로 그를 찬양할지어다," "성도들은 영광 중에 즐거워하며 저희 침상에서 기쁨으로 노래할지어다"라고 말한다.

사무엘하 6:14에 보면, 다윗 왕은, 사모하며 찾았던 하나님의 법궤를 시온성으로 모셔 올 때 너무 기뻐서 하나님 앞에서 힘을 다하여 춤을 추었다. 우리는 하나님의 크고 놀라운 은혜를 묵상하며 깨달으며 인정하며 감사하며 기뻐할 때 참된 찬송을 부를 수 있다.

셋째로, 우리는 우리의 목소리와 악기로 하나님을 찬송해야 한다. 하나님께 찬송하는 것은 우리의 목소리로 하며 악기 연주를 통해서도 한다. 시편 149:1, 3은 "할렐루야 새 노래로 여호와께 노래하며 성도의 회중에서 찬양할지어다," "소고와 수금으로 그를 찬양할지어다"라고 말한다. 시편 150:3-5은 "나팔 소리로 찬양하며 비파와 수금으로 찬양할지어다. 소고 치며 춤 추어 찬양하며 현악과 퉁소로 찬양할지어다. 큰 소리 나는 제금으로 찬양하며 높은 소리 나는 제금으로 찬양할지어다"라고 말한다.

사람의 목소리는 아주 훌륭한 악기와 같다. 사람의 목소리의 가장 중요한 용도는 하나님을 찬송하는 일이다. 사람은 하나님을 찬양하기 위해 지음을 받았기 때문이다. 목소리를 단지 자기를 위해서만 또 썩어질 양식을 위해서만 쓰고 또 그것을 심지어 남을 욕하고 비방하는 데 쓰는 것은 하나님께서 사람을 창조하신 원래의 목적을 저버리는 것이다. 그러므로 야고보는 하나님을 찬송하는 입으로 형제를 저주하는 것은 성도에게 마땅치 않은 일이라고 말했다(약 3:9-10).

넷째로, 우리는 가장 아름답게 찬송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 우리는 찬송의 연습이 필요하다. 훌륭한 가수들이나 악기 연주자들은 자신의 명성을 위해 피나는 노력을 한 자들이다. 세계적인 음악가나 연주자는 저절로 되는 것이 아니고 많은 연습을 한 자들이다. 그들의 세계적 명성은 어릴 때부터 많은 시간 연습을 거듭한 결과이다.

우리 하나님은 세상에서 가장 위대하신 분이시다. 찬송은 세상에서 가장 위대하신 하나님께 올리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힘써 연습하여 가장 아름다운 찬양으로 하나님께 드리도록 해야 할 것이다.

찬송은 하나님께 올리는 노래이다. 우리 하나님은 온 세상에서 가장 위대하신 분이시다. 찬송은 세상에서 가장 위대하신 분이신 하나님께 올리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로 그를 찬송케 하시기 위해 우리를 창조하셨다. 찬송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창조하신 목적이며 우리의 존재 목적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며 그를 찬송함으로써 이 세상에 태어난 목적을 이루어야 할 것이다. 또한 찬송은, 영원한 지옥 형벌을 받아야 마땅했던 우리를 구원하신 하나님의 놀라우신 은혜에 대한 합당한 응답이다. 영원한 형벌의 처소인 지옥으로부터 영광과 영생의 천국으로 구원받은 사실을 깨닫는 자마다 기뻐 찬송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는 하나님을 찬송하되, 마음에서 우러나서, 기쁨과 즐거움으로, 또 많이 연습하여 가장 아름답게 찬송해야 할 것이다.

◈ 우리나라의 이념적 안정을 위해 기도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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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성경의 근본 교리들을 보수하고, 자유주의 신학과 천주교회의 배교를 포용하는 타협과, 은사운동의 혼란을 반대하고, 또 그런 자들과 교제하는 자들도 책망하기를 원한다. 우리는 오늘날도 성경 말씀의 정로(正路)를 붙들고 그 길로 가는 교회들이 부흥 발전하기를 기도하며, 또 그런 자들과 교제하기를 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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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효성, 신약성경강해. 1192면. 18,000원(송료 포함).

김효성, 현대교회문제 자료집. 330면. 4,000원(송료 포함).

  [추천하는 책]

◆ 김성욱, 대한민국 적화보고서. 355쪽. 13,000원.

--오늘 우리 사회의 이념적 문제를 잘 증거한 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