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신앙 2007년 9월 09일 [제11권 36호] ◆ 매주 발행 ◆ |
|||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너희는 길에 서서 보며 옛적 길 곧 선한 길이 어디인지 알아보고 그리로 행하라. 너희 심령이 평강을 얻으리라' 하나, 그들의 대답이 '우리는 그리로 행치 않겠노라' 하였으며"(렘 6:16). |
옛신앙
Old-time Faith www.oldfaith.net |
'옛신앙'이란, 옛부터 하나님의 선지자들과 주의 사도들이 가졌던 신앙, 오직 정확 무오(無誤)한 하나님 말씀인 신구약 성경에만 근거한 신앙, 오늘날 배교와 타협의 풍조에 물들지 않는 신앙을 의미합니다. |
|
121-884 서울 마포구 합정동 364-1
합정동교회 김효성 목사, |
|||
지난오전설교: 요셉이 팔림 [창세기 37장 1-2절] 야곱이 가나안 땅 곧 . . . . 본장은 야곱이 가나안 땅 곧 그 아버지 이삭이 우거하던 땅에 거할 때 이루어진 사건을 증거한다. 요셉이 17세이었을 때 그는 형들 특히 아버지의 첩 빌하와 실바의 아들들, 즉 단과 납달리 그리고 잇사갈과 스불론과 더불어 양을 쳤는데 그 때 그들의 잘못을 아버지에게 고하였다. 형들은 때때로 잘못을 행했고 그것을 감추었던 것 같다. 그것은 실상 아버지를 속이는 것이었다. 요셉이 그것을 아버지께 고한 것은 그의 정직함을 보인다. 부정직한 자는 악을 크게 여기지 않는다. [3-4절] 요셉은 노년에 얻은 아들이므로 . . . . 야곱은 요셉을 여러 아들들보다 더 사랑하였다. 그것은 그가 하란에서 14년을 지난 91세 때 그를 얻었기 때문이다. 더욱이, 그는 그의 사랑하던 아내 라헬이 낳은 아들이었고 그 어머니 라헬은 그가 여섯 살 때 그 동생 베냐민을 출산한 직후 죽었다. 요셉은 어머니의 사랑을 받지 못하고 자랐다. 그래서 야곱은 그를 더욱 사랑했고 그에게 채색옷을 지어 입혔다. '채색옷'이라는 원어(케소네스 팟심)는 '긴 옷'이나 '색동옷'을 뜻한다. 형들은 야곱의 이런 편애 때문에 요셉을 미워했고 그에게 친근한 말을 하지 않았다. [5-8절] 요셉이 꿈을 꾸고 . . . . 요셉은 어느날 그가 꾼 꿈을 말했다. "우리가 밭에서 곡식을 묶더니 내 단은 일어서고 당신들의 단은 내 단을 둘러서서 절하더이다." 형들은 "네가 참으로 우리의 왕이 되겠느냐? 참으로 우리를 다스리게 되겠느냐?"고 말하며 그 꿈과 그 말을 인해 그를 더욱 미워하였다. [9-11절] 요셉이 다시 꿈을 꾸고 . . . . 요셉은 다시 한 꿈을 꾸고 말했다. "내가 또 꿈을 꾼즉 해와 달과 열 한 별이 내게 절하더이다." 아버지는 그 꿈을 듣고 "나와 네 모와 네 형제들이 참으로 가서 땅에 엎드려 네게 절하겠느냐?"고 말하며 그를 꾸짖었다. 그 형들은 요셉을 시기하였으나 그 아버지는 그의 말을 마음에 두었다. 요셉이 꾼 꿈은 예사롭지 않았다. 그것도 두 번씩이나 비슷한 뜻을 보이는 꿈이었다. 이 일로 인해 요셉은 '꿈꾸는 자'라고 불리웠다(19절). 오늘날 하나님께서는 성경을 통해 자신을 계시하시지만, 옛날에는 꿈이 하나님의 계시의 한 방법이었다. 꿈을 꾼 요셉에게는 아무 잘못이 없었다. 그것은 하나님이 주신 꿈이었다. 그 꿈은 요셉에게 삶의 어떤 힘이 되었을 것이다. 그에게 꿈은 "네가 크게 되리라"는 하나님의 음성이며 하나님이 주신 비젼이었을 것이며 그것은 그의 삶의 목표가 되었을 것이다. 요셉은 하나님을 경외하고 하나님이 주신 꿈을 기대하며 살았을 것이다. 사람의 어릴 때의 꿈은 어른이 되어 허상(虛像)이 되는 경우가 많지만 그래도 꽤 힘이 된다. 하물며 하나님께서 주신 꿈은 얼마나 더 그러하였겠는가. 요셉의 꿈은 그가 그 꿈을 꾼 17살 때부터 애굽의 총리가 된 30살 때까지 13년간의 긴 고난의 과정을 이기는 힘이 되었을 것이다. [12-17절] 그 형들이 세겜에 가서 . . . . 그 형들이 세겜에 가서 아버지의 양떼를 칠 때 야곱은 요셉에게 "가서 네 형들과 양떼가 다 잘 있는 여부를 보고 돌아와 내게 고하라"고 명하였다. 요셉은 즉시 아버지의 명에 순종하였다. 요셉은 헤브론에서 세겜까지 직선거리로 약 75킬로미터 이상인 거리를 갔고 거기서 형들을 찾지 못하고 방황하다가 어떤 사람에게 물어 도단까지 약 20킬로미터를 더 갔다. 요셉은 아버지의 명을 완수하기 위해 충실하였다. 요셉은 착하고 성실한 아들이었다. [18-20절] 요셉이 그들에게 가까이 오기 전에 . . . 그가 그들에게 가까이 오기 전에, 형들은 그를 멀리서 보고 죽이기를 꾀하여 서로 말했다. "꿈꾸는 자가 오는도다. 그를 죽여 한 구덩이에 던지고 우리가 말하기를 악한 짐승이 그를 잡아먹었다 하자. 그 꿈이 어떻게 되는 것을 우리가 볼 것이니라." 누가 주동자인지는 몰라도 형제들 대부분이 동참했던 것 같다. 동생에 대한 그들의 미움은 그를 죽이려는 계획에 동참케 하였다. [21-22절] 르우벤이 듣고 . . . . 맏형 르우벤은 그들의 말을 듣고 요셉을 그들의 손에서 구원하려 하여 "우리가 그 생명은 상하지 말자"고 반대했다. 서모와 통간하는 큰 죄를 범했던 그는 자신의 부족을 느꼈던 것 같고 악한 일을 반대하였다. 그러나 동생들이 그의 말을 들으려 하지 않자 그는 "피를 흘리지 말라. 그를 광야 그 구덩이에 던지고 손을 그에게 대지 말라"고 타협안을 내놓았다. 그는 그들의 손에서 요셉을 구원하여 아버지께로 돌리려 했다. 창세기 42:22에 보면, 후에 그들이 애굽에서 옛날 자신들의 악행을 기억하며 후회했을 때 르우벤은 동생들에게 "내가 너희더러 그 아이에게 죄를 짓지 말라고 하지 아니하였느냐? 그래도 너희가 내 말을 듣지 아니하였느니라"고 말했다. [23-25절] 요셉이 형들에게 이르매 . . . . 요셉이 그들에게 오자 그들은 그가 입은 채색옷을 벗겼다. 그들은 그 옷을 싫어했었다. 그들은 그를 잡아 물이 없는 빈 구덩이에 던져 넣었다. 인간은 참 악한 존재이다. 아버지의 뜻을 따라 그 먼 곳까지 찾아온 동생을 형들이 죽이려 했으니 이렇게 악할 수가 없다. 그들은 동생을 구덩이에 던진 채 앉아서 음식을 먹었다. 미움은 참으로 무서운 악이다. 미움은 동생을 구덩이에 던져넣어 잔인하게 굶겨 죽게 하였다. 그런데 마침 그 때 그들은 길르앗에서 향품과 유향과 몰약을 약대들에 싣고 애굽으로 내려가는 이스마엘 상인들을 보았다. [26-28절] 유다가 자기 형제에게 이르되 . . . . 유다는 형제들에게 "우리가 우리 동생을 죽이고 그의 피를 은닉한들 무엇이 유익할까. 그를 이스마엘 사람에게 팔고 우리 손을 그에게 대지 말자. 그는 우리의 동생이요 우리의 골육이니라"고 말했고 형제들은 그의 말을 들었다. 굶겨죽이는 것보다는 덜한지 몰라도 동생을 팔아넘기자는 유다의 제안도 악한 것이었다. 후에 율법에 규정된 대로, 사람을 납치하고 파는 것은 사형에 해당하는 큰 악이다(출 21:16). 그 때 미디안 사람 상인들이 지나가고 있었다. 미디안 사람 상인들은 이스마엘 상인들 속에 속해 있었던 것 같다. 야곱의 아들들은 요셉을 구덩이에서 끌어올리고 은 20개에 그를 이스마엘 사람들에게 팔았다. 은 20개는 20세겔을 가리킬 것이다. 레위기 27:5에 보면, 5세부터 20세까지의 남자의 값이 20세겔이었다. 요셉은 은 20세겔에 종으로 팔려갔다. 이스마엘 상인들은 요셉을 데리고 애굽으로 내려갔다. [29-32절] 르우벤이 돌아와서 . . . . 형제들 중 르우벤 외에는 누구 하나 요셉을 위하지 않았던 것 같다. 그러나 요셉을 팔 때 르우벤은 거기 없었다. 그러나 그것도 하나님의 섭리이었다. 요셉은 애굽에 팔려가야 했다. 르우벤이 돌아와서 구덩이에 이르러 요셉이 없는 것을 보고 옷을 찢고 아우들에게로 와서 "아이가 없도다. 나는 나는 어디로 갈까" 하며 괴로워했다. 그러나 요셉은 벌써 애굽으로 팔려간 후이었다. 그들은 요셉의 채색옷을 취하고 수염소를 죽여 그 옷을 피에 적시고 그 옷을 그 아버지에게 가져와 말했다. "우리가 이것을 얻었으니 아버지의 아들의 옷인가 아닌가 보소서." 그들은 그들의 악한 행동을 이렇게 숨기려 했다. 죄인인 인생은 악한 데 영리하다. [33-35절] 아비가 그것을 알아보고 . . . . 야곱은 그것을 알아보고 "내 아들의 옷이라. 악한 짐승이 그를 먹었도다. 요셉이 정녕 찢겼도다" 하고 말하며 자기 옷을 찢고 굵은 베로 허리를 묶고 여러 날 동안 그 아들을 위해 애통하였다. 그는 사랑하는 아들이 얼마나 두려움과 고통 중에 죽었을까 생각하며 괴로워했을 것이다. 또 자기가 괜히 아들을 심부름보냈다고 자책했을 것이다. 모든 자녀가 그를 위로했으나 그는 위로를 받지 않았고 "내가 슬퍼하며 무덤에 내려 아들에게로 가리라"고 말하며 울었다. 야곱의 생은 고생이 많았다. 20년 하란 생활은 수고로웠고 외삼촌 라반에게 큰 압박을 받았었다. 돌아오는 길에 그는 에서 때문에 매우 긴장했었다. 세겜에서 그는 딸 디나가 강간당하는 괴로운 일도 경험했다. 벧엘을 지나오면서 사랑하는 아내 라헬이 죽었고 맏아들 르우벤이 서모 빌하와 통간하는 비극도 경험했다. 거기에 더해, 그는 이제 사랑하는 아들 요셉이 짐승에게 찢겨 죽었다고 생각하는 큰 고통을 당하고 있는 것이다. 하나님은 야곱을 이렇게 철저히 고난으로 훈련시키셨다. 야곱에게 고난은 세상의 애착을 다 끊어버리고 하나님만 바라보게 하는 은혜의 방편이었다. [36절] 미디안 사람이 애굽에서 . . . . 요셉을 산 미디안 상인은 애굽에서 바로의 신하 시위대장 보디발에게 요셉을 팔았다. 하나님의 작정은 이렇게 이루어져 가고 있었다. 창세기 37장이 주는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본장은 인간의 죄성을 생생하게 증거한다. 요셉의 형들은 자기 잘못을 인정하고 고치려 하기보다는 그것을 아버지께 고하는 요셉을 미워했고 죽이려 하였고 마침내 은 20개에 그를 팔아넘겼다. 우리는 우리의 부족과 죄를 인정하고 철저히 회개하자. 형제를 미워하는 것은 곧 살인하는 것이다(요일 3:15). 우리는 형제를 미워하지 말고 서로 사랑하는 사람이 되자(롬 12:10). 둘째로, 본장은 요셉을 향한 하나님의 작정하신 뜻이 신기하게 이루어짐을 보인다. 요셉은 정직한 양심을 가졌고 확실히 하나님의 계시적 꿈을 받았고 부모의 분부에 즐거이 충실히 순종하는 자이었다. 그러나 그는 형들의 미움을 받았고 죽이려 함을 당했고 마침내 애굽의 종으로 팔려갔다. 그의 모든 꿈은 좌절되었고 고난의 어두움이 그를 삼킨 것 같았다. 그러나 요셉에게 꿈으로 계시된 하나님의 뜻은 이렇게 이루어지고 있었다. 그는 애굽에 종으로 팔려가야 했다. 우리는 하나님의 계시의 말씀 안에서 삶의 목표를 정하고, 믿음과 정직함으로 살고, 고난 중에도 낙심치 말고 하나님의 작정된 때까지 인내하자. 성경은 우리에게 "소망 중에 즐거워하며 환난 중에 참으라"고 교훈한다(롬 12:12). 셋째로, 본장은 야곱이 고난을 통해 신앙 훈련을 받았음을 증거한다. 그는 사랑하는 아내 라헬도 잃어버렸고 사랑하는 아들 요셉도 잃어버렸다. 그는 세상에서 모든 좋은 것들을 다 잃어버렸다. 신앙생활은 결국 헛된 세상의 것을 버리고 하나님과 영원한 영광의 천국을 소유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주께서는 "아무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고 말씀하셨다(마 16:24). ---------------------------------------------------------------------- 지난오후설교: 4. 자유주의 신학은 이단이다(2) 자유주의 신학은 이단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성경의 핵심적 교리들을 부정하기 때문이다. 그것은 대표적 자유주의 신학자들의 책들에서 확인할 수 있다. 지난 시간에 이어, 자유주의 신학이 성경의 핵심적 진리들을 부정한다는 사실을 몇 가지 더 살펴보자. 자유주의 신학은 사람의 영혼이 불멸하다는 성경에 전제된 기본적 진리를 부정한다. 예를 들어, 라인홀드 니이버는 비극을 넘어서라는 그의 책에서, "영혼 불멸이라는 개념이 몸의 부활보다 더 믿을 만하다는 선입견은 단지 교회 안에 있는 헬라 사상의 유산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또 폴 틸리히는 그의 조직신학에서 "인간의 자연적 특질로서의 불멸성은, 비록 그것이 플라톤의 교리일 수는 있어도, 기독교적 교리는 아니다"라고 말했다. 오스카 쿨만은 영혼 불멸인가 죽은 자의 부활인가라는 그의 책에서, "널리 받아들여지고 있는 이 개념[영혼의 불멸]은 기독교에 대한 가장 큰 오해들 중의 하나이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성경은 사람의 영혼의 불멸을 밝히 증거한다. 첫째, 사람의 죽음에 대한 묘사이다. 성경은 사람의 죽음을 영혼이 몸을 떠나 하나님께로 가는 것으로 묘사한다(전 3:20-21). 둘째, 사람의 죽은 후 상태에 관한 말씀이다. 누가복음 16:19-31의 부자와 나사로의 이야기는 사람이 죽은 후에도 의식을 가지고 있음을 잘 증거한다. 셋째, 부활에 관한 말씀이다. 성경이 증거하는 죽은 자의 부활은 사람의 영혼의 불멸을 전제한다. 넷째, 심판에 관한 말씀이다. 히브리서 9:27,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 영혼 불멸은 성경적 진리이다. 또 자유주의 신학은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再臨)을 부정한다. 예를 들어, 칼 바르트는 하나님의 말씀과 사람의 말이라는 그의 책에서 "그리스도의 부활이나 그의 재림은 동일한 것인데 역사적 사건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또 라인홀드 니이버는 비극을 넘어서라는 그의 책에서 "기독교 교리 중 그리스도의 재림에 대한 소망보다 더 속임과 착각으로 인도한 교리는 없다"고 썼다. 폴 틸리히도 그의 조직신학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을 하나의 상징으로 보았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은 성경의 근본적 교리이다. 주 예수께서는 친히 자신의 재림에 대해 밝히 증거하셨다(마 24:30). 바울은 그리스도의 재림에 대해 명백히 증거했고, 특히 데살로니가전서와 후서에서 그는 매 장에 주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에 대해 언급했다. 사도 베드로는 말세에 주의 재림을 부정하는 거짓 교사들이 나타날 것을 경고하였다(벧후 3:3-4). 사도 요한은 주 예수의 재림과 그 전에 있을 사건들을 예언한 책을 저술했고 자신의 재림을 증거하신 주의 말씀에 간절히 화답하는 말로 그 책을 마쳤다(계 22:20).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은 사도신경에 고백된 대로 모든 정통 기독교회가 고백하는 진리이다. 또 자유주의 신학은 죽은 자의 부활을 부정한다. 예를 들어, 라인홀드 니이버는 비극을 넘어서라는 책에서, "물론 몸의 부활이라는 개념은 문자적으로 참될 수 없다"고 썼다. 판넨베르크는 사도신경이라는 그의 책에 "이런 식으로 죽은 자의 부활 개념의 긍정적 타당성을 인식하고 주장함은 우리가 그것의 상징적이고 비유적인 성격에 관해 분명히 이해한다는 조건에서 가능할 뿐이다"라고 썼다. 그러나 죽은 자의 부활은 성경이 밝히 가르치는 진리이다. 의인들은 부활하여 천국에서 영생을 누릴 것이며 악인들은 부활하여 지옥에서 영원한 형벌을 받을 것이다. 예수께서는 의인과 악인의 부활을 분명히 증거하셨다(요 5:28-29). 그는 또 부활을 부정하는 사두개인들에게 "너희가 성경도 하나님의 능력도 알지 못하는 고로 오해하였도다"고 책망하셨다(마 22:29). 사도 바울은 모든 사람의 부활을 믿었다. 사도행전 24:15, "저희의 기다리는 바 하나님께 향한 소망을 나도 가졌으니 곧 의인과 악인의 부활이 있으리라 함이라." 그는 고린도전서 15장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에 근거하여 죽은 성도들의 영광스러운 부활을 논증하였다. 또 자유주의 신학은 마지막 심판과 지옥을 부정한다. 예를 들면, 라인홀드 니이버는 인간의 본질과 운명이라는 그의 책에서, "현대 기독교 안에 있는 감상적인 도덕 의식이 아마 심판 개념의 중요성을 일소했을 것이다"라고 썼다. 폴 틸리히는 그의 조직신학에서, "보통 사람들은 '영원한 정죄'에 대해 말한다. 그러나 이것은 신학적으로 유지될 수 없는 단어들의 결합이다. . . . 그러므로 '영원한 정죄'라는 말은 신학 용어에서 제거되어야 한다. . . . 사람은 존재의 기반으로부터 결코 잘리워버리지 않으며, 심지어 정죄의 상태에서도 그러하다," "[천국과 지옥은] 상징들이지 장소들의 묘사가 아니다"라고 썼다. 그러나 마지막 심판의 진리는 성경의 기본 진리이다. 성경은 마지막 심판에 대해 밝히 증거한다. 주께서는 마지막 심판에 대해 밝히 증거하셨다. 마태복음 13:39-40, "추수 때는 세상 끝이요, 추수꾼은 천사들이니, 그런즉 가라지를 거두어 불에 사르는 것같이 세상 끝에도 그러하리라." 사도 바울은 하나님의 복음을 해설하면서 하나님의 마지막 심판을 증거하였다. 로마서 2:5-6, 16, "진노의 날 곧 하나님의 의로우신 판단이 나타나는 그 날에 임할 진노를 네게 쌓는도다.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그 행한 대로 보응하시되," "곧 내 복음에 이른 바와 같이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사람들의 은밀한 것을 심판하시는 그 날이라." 또 히브리서 저자는 영원한 심판에 관한 교훈이 그리스도의 도(道)의 초보에 속하며 그런 교훈의 터를 다시 닦지 말고 완전한 데 나아가라고 교훈하였다(히 6:1-3). 사도 요한은 요한계시록 20:11-15에서 마지막 대심판에 대해 증거하였다. 또 지옥 교리는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입에서 나온 진리이다. 마태복음 10:28, "몸은 죽여도 영혼은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에 멸하시는 자를 두려워하라." 특히 마가복음 9:43-48에는 주께서 지옥에 대해 증거하신 내용이 분명하게 기록되어 있다. "만일 네 손이 너를 범죄케 하거든 찍어버리라. 불구자로 영생에 들어가는 것이 두 손을 가지고 지옥 꺼지지 않는 불에 들어가는 것보다 나으니라"(43절). 그 외에도 그는 마태복음 25:41, 46에서 '영영한 불' '영벌'에 대해 증거하셨다. 사도 바울은 데살로니가후서 1:9에서 '영원한 멸망의 형벌'에 대해 증거하였다. 사도 요한은 요한계시록 21:8에서 악인들이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 참여할 것을 증거하였다. 이와 같이, 마지막 심판과 지옥에 대한 진리는 두려운 진리이지만, 분명히 성경적 진리이며 주 예수 그리스도의 권위로 인쳐진 진리이다. 그러므로 그 누구도 주께서 말씀하신 이 진리들을 부정하거나 변경하려 해서는 안 된다. 이러한 진리를 부정하거나 변경하는 것은 분명히 이단이다. 결론적으로, 자유주의 신학은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成肉身)과 처녀 탄생, 그의 기적들, 그의 속죄 사역, 그의 부활, 사람의 영혼의 불멸,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 죽은 자들의 부활, 마지막 심판과 지옥 등 기독교의 핵심적 진리들을 부정한다. 그러므로 자유주의 신학은 확실히 이단이다. 기독교의 핵심적 진리들을 부정하는 사상은 확실히 이단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자유주의 신학이 이단임을 바르게 인식하고 그 사상을 용납하지 말고 단호히 배격해야 하고, 그런 사상을 가진 자들과 교제하지도 말아야 한다. 그런데 오늘날 많은 교회들이 자유주의 신학을 포용하고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교회를 분별해야 하고 성경의 교훈대로 교제를 조심해야 한다. 디도서 3:10, "이단에 속한 사람을 한두 번 훈계한 후에 멀리하라." 요한이서 10-11, "누구든지 이 교훈을 가지지 않고 너희에게 나아가거든 그를 집에 들이지도 말고 인사도 말라. 그에게 인사하는 자는 그 악한 일에 참예하는 자임이니라."
◈ 우리나라의 이념적 안정을 위해 기도합시다. ----------------------------------------------------------------------- ◈ 우리는 성경의 근본 교리들을 보수하고, 자유주의 신학과 천주교회의 배교를 포용하는 타협과, 은사운동의 혼란을 반대하고, 또 그런 자들과 교제하는 자들도 책망하기를 원한다. 우리는 오늘날도 성경 말씀의 정로(正路)를 붙들고 그 길로 가는 교회들이 부흥 발전하기를 기도하며, 또 그런 자들과 교제하기를 원한다. ----------------------------------------------------------------------- ♣ www.oldfaith.net에 올려져 있는 현대교회문제와 현대교회문제 자료집 및 옛신앙지(특별호) 등의 자료들을 참고하십시오.
전화: (02) 334-8291, 팩스: (02) 337-4869 ◈ 책 안내 ●김효성, 신약성경강해. 1192면. 18,000원(송료 포함). ●김효성, 현대교회문제 자료집. 330면. 4,000원(송료 포함). ●김효성, 기독교 교리 개요. 96쪽. 1,000원 ●김효성, 기독교 교리 개요(중국어 역). 96쪽. [추천하는 책] ◆ 김효성, 공산주의 비평. 28쪽. 무료. ◆ 김성욱, 대한민국 적화보고서. 355쪽. 13,000원. ◆ 이상돈, 위기에 처한 대한민국. 559쪽. 18,000원. --오늘 우리 사회의 이념적 문제를 잘 증거한 책!!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