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신앙  2007년 4월 15일 [제11권 15호]   ◆ 매주 발행 ◆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너희는 길에 서서 보며 옛적 길 곧 선한 길이 어디인지 알아보고 그리로 행하라. 너희 심령이 평강을 얻으리라' 하나, 그들의 대답이 '우리는 그리로 행치 않겠노라' 하였으며"(렘 6:16).

 

 

옛신앙

 

Old-time Fait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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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옛신앙'이란, 옛부터 하나님의 선지자들과 주의 사도들이 가졌던 신앙, 오직 정확 무오(無誤)한 하나님 말씀인 신구약 성경에만 근거한 신앙, 오늘날 배교와 타협의 풍조에 물들지 않는 신앙을 의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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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오전설교:                             디베랴 바닷가에서 나타나심

요한복음 21:1, "그 후에 예수께서 디베랴 바다에서 또 제자들에게 자기를 나타내셨으니 나타내신 일이 이러하니라."

본문은 부활하신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세 번째 나타나신 사건이며 요한복음에 기록된 부활의 증거들 중 여섯 번째의 증거입니다(14절). 이것은 제자들이 그의 말씀대로 부활하신 그를 디베랴 바다 즉 갈릴리 바다에서 처음 뵙는 것이었습니다. 그들은 예수께서 부활하신 후 며칠 되지 않아서 갈릴리로 갔던 것 같습니다. 주께서 부활하신 새벽, 여인들이 그의 무덤에서 만났던 천사는 그가 그들보다 먼저 갈릴리로 가실 것이라고 말했습니다(마 28:7; 막 16:7). 또 그들이 돌아오는 길에 주께서는 여인들에게 나타나셔서 "가서 내 형제들에게 갈릴리로 가라 하라. 거기서 나를 보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마 28:10).

디베랴 바닷가에서 나타나신 주님은 그의 제자들에게 자신의 부활을 확실하게 증거하셨습니다. 여기에 기록된 사건은 제자들의 환상이나 환각이 아니고 여러 사람들이 함께 본 확실한 사건이었습니다.

장소는 디베랴 바닷가이었고 시간은 새벽이었습니다(4절). 거기에 있었던 제자들은 베드로, 도마, 나다나엘, 세베대의 두 아들들인 요한과 야고보, 그리고 다른 제자 둘, 도합 7명이었습니다(2절).

그들은 물고기 잡으러 간다고 나선 베드로를 좇아 배에 올랐으나 그 밤에 아무것도 잡지 못했는데, 새벽에 어떤 사람이 바닷가에 서서 "애들아, 너희에게 먹을 것이 있느냐?" 하고 물었고 "그물을 배 오른편에 던지라"고 일러주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그물을 배 오른편에 던지자 그물을 들 수 없을 정도로 고기가 많이 잡혔습니다(6절).

놀라운 일입니다. 기적입니다. 이것은 마치 주께서 처음 베드로를 부르실 때와 비슷한 기적이었습니다. 그 때에도 베드로가 밤새도록 고기를 잡지 못했으나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으라"는 주의 말씀에 순종하여 두 배에 차서 잠기도록 많은 고기를 잡았었습니다(눅 5:4-6). 베드로는 그 때의 일이 기억났을 것입니다.

주께서는 이 날 새벽에도 고기가 있는 곳을 잘 알고 계셨습니다. 이 기적은 예수님의 신성(神性)의 표적이었습니다. 그것은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증거합니다.

예수님의 사랑하시는 제자 요한은 베드로에게 "주님이시다"라고 말했고 베드로는 벗고 있다가 주님이라는 말을 듣고 겉옷을 두른 후에 바다로 뛰어내려 주님께로 헤엄쳐 갔습니다. 다른 제자들은 육지에서 거리가 불과 약 200규빗, 즉 약 90미터쯤이었기 때문에 작은 배를 타고 고기 든 그물을 끌고 왔습니다.

그들이 육지에 올라와 보니 숯불이 있고 그 위에 생선이 놓였고 떡도 있었습니다. 예수께서는 "지금 잡은 생선을 좀 가져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베드로가 그물을 육지에 끌어 올리니 가득히 찬 큰 고기가 일백 쉰 세 마리나 되었으나, 그물이 찢어지지 아니하였습니다.

예수께서는 그들에게 "와서 조반을 먹으라"고 하셨고, 제자들은 그가 주님이신 줄 알았기 때문에 "당신이 누구시니이까?" 하고 감히 묻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예수께서는 오셔서 떡을 가져다가 그들에게 주셨고 생선도 주셨습니다. 이것은 신기한 아침 식탁이었습니다.

부활하신 예수께서는 이와 같이 제자들에게 자신의 부활을 확실하게 증거하셨습니다. 그는 제자들이 기적을 체험케 하셨고 제자들에게 말씀하셨고 그들과 대화하셨으며 음식을 함께 드셨습니다. 제자들은 주의 부활을 확실히 보았습니다. 주께서는 확실히 부활하셨습니다.

15절부터 17절은 식사 후 주께서 베드로와 대화하신 내용입니다. 그 대화에서 주께서는 베드로에게 두 가지를 확실케 하셨습니다.

첫째는 베드로의 사랑입니다. 주께서는 베드로에게 세 번이나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라고 물으셨습니다. 그것은 그가 며칠 전 주님을 세 번이나 부인했던 일을 생각나게 했을 것입니다(마 26:69-75; 막 14:66-72; 눅 22:56-62). 그러나 주께서는 베드로를 사랑하셔서 찾아오셨고 그를 용서하며 용납하셨습니다.

베드로는 주님께 "주여 그러하외다. 내가 주를 사랑하는 줄 주께서 아시나이다"라고 대답했습니다. 주께서 세 번째 같은 질문을 하셨을 때, 그는 "주여 모든 것을 아시오매 내가 주를 사랑하는 줄을 주께서 아시나이다"라고 대답하였습니다.

베드로의 중심은 주를 믿고 따르며 그를 사랑했습니다. 그는 주께 대해 제일 먼저 바른 신앙을 고백했었고(마 16:16), 많은 제자들이 주를 떠나갔을 때에도, "주여 영생의 말씀이 계시매 우리가 뉘게로 가오리이까? 우리가 주는 하나님의 거룩하신 자신 줄 믿고 알았삽나이다"라고 고백했었습니다(요 6:68-69).

우리를 위해 죽으시고 다시 사신 주님, 우리를 위해 십자가의 수치와 치욕과 극심한 고통을 당하신 주님을 우리도 사랑해야 하겠습니다. 친구를 위해 자기 목숨을 버리신 가장 큰 사랑으로 우리를 사랑하신 주 예수님을 우리도 사랑해야 하겠습니다.

둘째로, 주께서는 베드로에게 사명을 확실케 해주셨습니다. 그는 처음부터 사람을 낚는 어부 곧 전도자로 부름을 받았습니다(마 4:19; 눅 5:10). 이제 주께서는 다시 그 사명을 재확인시키십니다. 주께서는 그에게 "내 어린양을 먹이라" "내 양을 먹이라"고 세 번이나 반복하여 말씀하셨습니다. 그것은 전도와 양육 즉 목회의 사명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구원하신 후 우리가 선한 일에 열심하는 친 백성이 되기를 원하십니다(딛 2:14). 구원받은 모든 성도는 자신의 몸을 하나님께 거룩한 산 제물로 드려야 합니다(롬 12:1). 하나님께서는 우리 각자에게 재능과 은사와 직분을 주십니다. 로마서 12:4-6은 말하기를, "우리가 한 몸에 많은 지체를 가졌으나 모든 지체가 같은 직분을 가진 것이 아니니 이와 같이 우리 많은 사람이 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이 되어 서로 지체가 되었느니라. 우리에게 주신 은혜대로 받은 은사가 각각 다르니"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깨달아 선한 일에 힘써야 합니다.

요한복음 21장의 내용을 통해 우리는 몇 가지 교훈을 얻습니다. 첫째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확신합시다. 그로 말미암아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 구주 되심, 그의 승천과 재림,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영광스런 천국과 영생을 확신해야 하겠습니다.

둘째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사랑합시다.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는 바로 우리의 많은 죄와 허물을 인해, 바로 우리를 위해 십자가의 수치와 치욕과 극심한 고통의 죽음을 당하셨습니다. 그는 우리를 위해 죽으셨고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우리는 그의 사랑을 잊지 말고 참으로 그를 사랑합시다.

셋째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 일합시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어떤 재능과 은사와 직분을 주셨든지 간에, 그 재능, 그 은사, 그 직분을 따라 선한 일을 위해 힘써야 하겠습니다. 사도 바울은 "저가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으심은 산 자들로 하여금 다시는 저희 자신을 위하여 살지 않고 오직 저희를 대신하여 죽었다가 다시 사신 자를 위하여 살게 하려 함이니라"고 말했습니다(고후 5:15). 베드로는 주의 양을 먹이는 것이 사명이었지만, 우리의 사명은 무엇입니까? 우리는 그 일을 찾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그 일에 충성해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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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오후설교:                            도마에게 주신 교훈

요 20:29, "보지 못하고 믿는 자들은 복되도다."

부활하신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처음 나타나셨을 때 열두 제자 중 하나인 도마는 거기 없었습니다. 다른 제자들이 그에게 "우리가 주를 보았노라"고 말하자, 도마는 "내가 그 손의 못자국을 보며 내 손가락을 그 못자국에 넣으며 내 손을 그 옆구리에 넣어 보지 않고는 믿지 아니하겠노라"고 대답했습니다.

도마의 반응은 이지적인 사람의 당연한 반응일 것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이성적, 경험적 사고를 합니다. 이런 사고로는 죽은 자의 부활이 이해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믿어지지 않는 것입니다. 그가 십자가 위에 여섯 시간이나 달려 있었고 모든 피가 다 빠져 나갔고 그래서 심장이 멎었는데, 어떻게 다시 살아난다는 말입니까? 아마 피가 굳었고 뇌 세포가 죽기 시작했는데, 어떻게 다시 회생할 수 있단 말입니까?

부활하신 주께서는 8일 후에 제자들에게 다시 나타나셨습니다. 주께서는, 역시 문들이 닫혔는데 들어오셔서 그들 가운데 서셨고 제자들에게 다시 평강을 기원하셨습니다. 그러신 후, 그는 도마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네 손가락을 이리 내밀어 내 손을 보고 네 손을 내밀어 내 옆구리에 넣어보라. 그리하고 믿음 없는 자가 되지 말고 믿는 자가 되라." 그는 믿음 없는 도마를 위해 다시 나타나신 것이었습니다. 그는 그에게 믿음을 주시기를 원했습니다.

도마는 부활하신 주님을 보고 그에게 "나의 주시며 나의 하나님이시니이다"라고 말했습니다(요 20:28). 믿음 없던 도마에게 믿음이 생겼습니다. 그는 부활하신 주님을 직접 보고 확인했습니다. 그의 의심은 안개 걷히듯이 사라졌습니다. 그는 예수님의 주님 되심과 하나님 되심을 담대히 고백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주님이시요 하나님이십니다. 부활은 그것을 위해 한 증거입니다.

그러나 주께서는 그에게 "너는 나를 본 고로 믿느냐? 보지 못하고 믿는 자들은 복되도다"고 말씀하셨습니다(요 20:29). 이것은 모든 시대의 신자들에게 주시는 말씀입니다. 기독교 2천년 역사는 예수님을 보고 믿은 역사가 아니고 보지 않고 믿은 역사입니다. 예수님을 보지 못하고도 믿은 수천만의 신약 교인들은 복됩니다. 그 중에 속한 저와 여러분도 복됩니다. 그러므로 베드로는 "예수를 너희가 보지 못하였으나 사랑하는도다. 이제도 보지 못하나 믿고 말할 수 없는 영광스러운 즐거움으로 기뻐하니 믿음의 결국 곧 영혼의 구원을 받음이라"고 썼습니다(벧전 1:8-9).

우리는 도마 같은 의심과 불신앙을 버리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확신합시다. 예수님의 부활을 믿으면 어떻게 됩니까? 우리가 예수님의 부활을 믿으면 그의 승천과 재림을 믿을 수 있고, 그의 하나님의 아들 되심과 그의 구주 되심, 또 그의 대속 사역을 다 믿을 수 있습니다. 또 그를 믿는 자마다 구원을 얻습니다.

그러므로 요한은 요한복음을 쓰면서 "예수께서 제자들 앞에서 이 책에 기록되지 아니한 다른 표적도 많이 행하셨으나 오직 이것을 기록함은 너희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 함이요 또 너희로 믿고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고 썼습니다(요 20:30-31). 우리는 주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확신하고 그를 믿고 구원을 받으며 천국과 영생을 확신하고 그의 재림을 소망하며 기쁘고 즐겁게 그를 섬기며 절대 순종함으로 그를 따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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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오후설교:                             이혼, 별거, 재혼

결혼은 하나님께서 정하신 신성한 제도이다. 그것은 일평생 동안 유지해야 할 관계의 시작이다. 그러나 오늘날 여러 가지 이유로 이혼이 많이 이루어지고 있다. 이혼은 가능한 것인가? 가능하다면 그것은 어떤 경우에 가능한 것인가? 또 별거는 바람직한 것인가? 또 이혼한 성도는 재혼할 수 있는가?

일반적으로 말해, 결혼은 일평생 동안 유지하고 성실히 지켜야 할 언약 관계이다. 사람은 결혼을 할 때도 신중히 해야 하지만, 결혼한 후에는 그 결혼 관계를 성실히 지켜야 한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이혼을 미워하신다. 말라기 2:16, "여호와가 이르노니 나는 이혼하는 것과 학대로 옷을 가리우는 자를 미워하노라." 마태복음 19:6, "이러한즉 이제 둘이 아니요 한 몸이니 그러므로 하나님이 짝지어 주신 것을 사람이 나누지 못할지니라."

그러면 이혼은 어떤 경우에도 불가능한가? 그렇지는 않다고 본다. 물론, 성격적 혹은 인격적 결함, 경제적 문제, 질병, 자녀를 낳지 못함, 집안 상호간의 문제 등이 이혼의 합당한 이유가 될 수는 없다. 그러나 다음 몇 가지 경우는 이혼의 합당한 경우일 것이다.

첫째로, 상대가 간음을 행했을 경우이다. 마태복음 5:32,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음행한 연고 없이 아내를 버리면 이는 저로 간음하게 함이요." 마태복음 19:9,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누구든지 음행한 연고 외에 아내를 내어버리고 다른 데 장가드는 자는 간음함이니라." '음행'이라는 말(포르네이아)은 부당한 성관계 일반을 가리키는 말로서 이 경우는 결혼한 사람이 행하는 간음을 가리킨다(Thayer). 즉 상대가 간음을 행했을 때 정당한 이혼이 가능하다는 뜻으로 이해된다.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은 "약혼 후에 범한 간음이나 음행은, 결혼 전에 발견될 때, 순결한 편에서 약혼을 취소할 정당한 이유가 된다. 결혼 후 간음의 경우에는, 순결한 편이 이혼 소송을 제기하는 것과, 이혼 후 범죄한 편이 죽었다는 듯이 다른 사람과 결혼하는 것은 정당하다"고 진술했다(24:5).

둘째로, 신앙적 이유로 나뉘는 경우이다. 고린도전서 7:15, "혹 믿지 아니하는 자가 갈리거든 갈리게 하라. 형제나 자매나 이런 일에 구속 받을 것이 없느니라. 그러나 하나님은 화평 중에서 너희를 부르셨느니라." 이 말씀은 믿지 않는 남편이나 아내가 믿는 문제 때문에 믿는 자와 헤어지기를 원한다면 그렇게 하라는 교훈이다. 하나님과의 관계는 가족 관계보다도 더 중요하다. 같이 살기를 원하면 같이 살고 또 가능하면 같이 살려고 노력해야 하지만, 신앙 문제 때문에 나뉘기를 원하면 거절할 것이 없다는 뜻이다.

셋째로, 고의적으로 상대를 버린 경우이다. 이것은 남편 혹은 아내가 일방적으로 상대를 버리고 떠난 경우이다. 이것은 버림을 받은 쪽의 문제가 아니다. 물론 상대가 떠나는 데는 상당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과연 이혼의 합당한 이유인지 생각해야 한다. 그러므로 남편 혹은 아내가 일방적으로 상대를 버리고 떠난 경우 이혼은 불가피할 것이다.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24:6은 진술하기를, "비록 사람의 부패성은 하나님께서 결혼에서 짝지어 주신 자들을 부당하게 나누려는 변론들을 궁리하기 쉬울지라도; 간음이나, 혹은 교회나 국가 위정자가 치료할 방법이 없는 고의적 버림 외에는 아무것도 결혼의 속박을 해소할 충분한 원인이 되지 못한다. 이러한 경우에는, 공적이며 질서 있는 소송 절차가 준수되어야 하며, 당사자들이 그들 자신의 사건에서 그들 자신의 의지와 판단에 버려두어져서는 안 된다"고 했다. 신앙고백서는 '교회나 국가 위정자가 치료할 방법이 없는 고의적 버림'의 경우를 이혼의 합당한 사유에 포함하였다.

그 외에, 구타나 학대 등의 심히 비인간적인 고통을 당하는 경우나 전쟁으로 인한 분리의 경우도 이혼이 가능하지 않겠는가 생각된다. 결혼은 사람을 위해 있는 것이지, 사람이 결혼을 위해 있는 것이 아니며, 또 하나님은 사람의 행복을 원하시며 사람의 큰 심적, 육적 고통을 동정하시기 때문에, 극히 부득이한 경우 가능하리라고 본다.

이와 같이, 이혼은 원칙적으로 없어야 하지만, 부득이 몇 가지 경우 가능하다고 본다. 그렇지만 이혼은 사사로이 당사자들에게 맡겨져서는 안 되고 교회와 사회의 합법적 절차를 따라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앞에 인용한 신앙고백의 진술대로, 그것을 위해, "공적이며 질서 있는 소송 절차가 준수되어야 하며" 당사자들의 "의지와 판단에 버려두어져서는 안 된다."

부부가 별거하는 문제도 이혼의 원리와 비슷하다. 부부의 별거는 바람직하지 않다. 하나님의 정하신 결혼 이유들 중에는 음행의 방지라는 이유가 있다. 고린도전서 7:5, "서로 분방하지 말라. 다만 기도할 틈을 얻기 위하여 합의상 얼마 동안은 하되 다시 합하라. 이는 너희의 절제 못함을 인하여 사단으로 너희를 시험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라." 그러므로 부부는 이 악하고 음란한 세상에서 시험에 떨어지지 않도록 항상 함께 있어야 하고 그것이 정상적인 생활이다.

그러나 이혼의 경우와 같이, 부득이한 경우, 부부의 별거는 가능할 것이다. 사도 바울은 교훈하기를, "혼인한 자들에게 내가 명하노니 (명하는 자는 내가 아니요 주시라.) 여자는 남편에게서 갈리지 말고 (만일 갈릴지라도 그냥 지내든지 다시 그 남편과 화합하든지 하라.) 남편도 아내를 버리지 말라"고 하였다(고전 7:10-11). 또 잠언의 세 구절들은 그런 일에 대해 말한다. 잠언 21:9, "다투는 여인과 함께 큰 집에서 사는 것보다 움막에서 혼자 사는 것이 나으니라." 잠언 21:19, "다투며 성내는 여인과 함께 사는 것보다 광야에서 혼자 사는 것이 나으니라." 잠언 25:24, "다투는 여인과 함께 큰 집에서 사는 것보다 움막에서 혼자 사는 것이 나으니라."

성도가 재혼(再婚)하는 것은 가능한가? 가능하다고 본다. 성도가 재혼이 가능한 경우는 두 가지일 것이다. 첫째는 결혼한 상대가 죽었을 경우이다. 로마서 7:2-3, "남편 있는 여인이 그 남편 생전에는 법으로 그에게 매인 바 되나 만일 그 남편이 죽으면 남편의 법에서 벗어났느니라. 그러므로 만일 그 남편 생전에 다른 남자에게 가면 음부(淫婦)라 이르되 남편이 죽으면 그 법에서 자유케 되나니 다른 남자에게 갈지라도 음부가 되지 아니하느니라." 고린도전서 7:39, "아내가 그 남편이 살 동안에 매여 있다가 남편이 죽으면 자유하여 자기 뜻대로 시집갈 것이나 주 안에서만 할 것이니라." 이것은 남편의 경우나 아내의 경우에 다 해당한다.

둘째는 정당한 이혼이 이루어진 경우이다. 하나님은 사람의 연약함을 아신다. 그러므로 정당한 이혼이 이루어진 경우에 재혼하는 것은 가능한 일이며 죄가 아니라고 본다. 마태복음 5:32,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음행한 연고 없이 아내를 버리면 이는 저로 간음하게 함이요, 또 누구든지 버린 여자에게 장가드는 자도 간음함이니라." 이 말씀은 정당하지 않은 경우 재혼이 간음의 죄가 되지만 정당한 이혼의 경우에는 재혼이 죄가 아니라는 것을 의미할 것이다.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은 진술하기를, "약혼 후에 범한 간음이나 음행은, 결혼 전에 발견될 때, 순결한 편에서 약혼을 취소할 정당한 이유가 된다. 결혼 후 간음의 경우에는, 순결한 편이 이혼 소송을 제기하는 것과, 이혼 후 범죄한 편이 죽었다는 듯이 다른 사람과 결혼하는 것은 정당하다"고 했다(24:5).

물론 재혼도 신중히 결정해야 하며 또 공적으로 이루어져야 하고, 재혼한 자는 그것을 남은 평생 지키려고 성실히 노력해야 할 것이다. 우리는 결혼 제도를 통해 이 세상에서 범죄치 않고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삶을 이루어야 할 것이다.

◈ 우리나라의 이념적 안정을 위해 기도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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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성경의 근본 교리들을 보수하고, 자유주의 신학과 천주교회의 배교를 포용하는 타협과, 은사운동의 혼란을 반대하고, 또 그런 자들과 교제하는 자들도 책망하기를 원한다. 우리는 오늘날도 성경 말씀의 정로(正路)를 붙들고 그 길로 가는 교회들이 부흥 발전하기를 기도하며, 또 그런 자들과 교제하기를 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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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효성, 신약성경강해. 1192면. 18,000원(송료 포함).

김효성, 현대교회문제 자료집. 330면. 4,000원(송료 포함).

  [추천하는 책]

◆ 김성욱, 대한민국 적화보고서. 355쪽. 13,000원.

--오늘 우리 사회의 이념적 문제를 잘 증거한 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