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신앙  2007년 4월 15일 [특별109호]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너희는 길에 서서 보며 옛적 길 곧 선한 길이 어디인지 알아보고 그리로 행하라. 너희 심령이 평강을 얻으리라' 하나, 그들의 대답이 '우리는 그리로 행치 않겠노라' 하였으며"(렘 6:16).

 

 

옛신앙

 

Old-time Fait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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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옛신앙'이란, 옛부터 하나님의 선지자들과 주의 사도들이 가졌던 신앙, 오직 정확 무오(無誤)한 하나님 말씀인 신구약 성경에만 근거한 신앙, 오늘날 배교와 타협의 풍조에 물들지 않는 신앙을 의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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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대사회문제:                         주사파 출신 대거 포진

[김성욱, "盧정권 내 主思派출신 대거 포진," 미래한국, 2006. 8. 10, 2쪽; 객원기자.]

북한의 핵도발을 유발한 노무현정권의 親北행태는 정권 내에 소위 주사파(金日成주의자)들이 대거 포진해 있다는 사실에서 그 연유를 찾을 수 있다.

프리존미디어 강길모 부사장은 지난 9월 20일 자유민주주의학회 증언을 통해 "과거 자신은 金日成주의 혁명조직인 '反美청년회'를 통해 대한민국을 전복하려는 기도를 해왔다"며 "주사파들은 확실하고, 확고한 사상적 이념을 가지고 법조계·언론계·정치판에 들어가 대한민국을 얼치기 좌파세상으로 만들어왔다"고 말했다.

그는 "盧정권 내 우상호·오영식 열린우리당 국회의원, 문용욱 청와대 제1부속실장, 이은희 前청와대 제2부속실장, 김만수 前청와대 대변인, 여택수 前청와대 제1부속실 행정관 등이 교양의 대상이었다"며 "우리는 위대한 수령 金日成동지를 찬양했었다"고 증언했다.

청와대 제1부속실과 제2부속실은 각각 대통령과 영부인의 일거수 일투족을 살펴 보좌하는 최측근에 해당한다. 강 부사장 증언대로라면 대통령과 영부인이 모두 주사파 출신들에 의해 둘러 싸여 있었다는 것이 된다. 최근 이은희 前청와대 제2부속실장은 청와대를 나와 한국원자력문화재단 이사장직에 지원했다. 한국원자력문화재단은 지난 7월 국회의장 비서실장으로 임명된 박금옥 前이사장의 후임을 뽑기 위해 9월 15일까지 공모를 실시했으나, 이 前실장이 사실상 내정돼 있다는 설이 흘러나오고 있다.

강 부사장은 주사파 출신들에 대해 "아직도 자신의 생각을 근본적으로 바꾸지 않았다는 데 문제가 있다. 과거의 생각을 유지하는 것이 권력에 가까워질 수 있고, 기득권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실제 주사파로 언급된 인물 중 우상호열우당 의원의 경우, 지난 9월 21일 북한의 공개처형에 대한 데일리NK와의 전화인터뷰에서 "그 나라 고유한 사법체계를 거론하기는 어렵다"며 노코멘트를 요청했다고 한다. 김일성에 대한 과거 시각과 김정일에 대한 현재 시각에 큰 변화가 없다는 반증이다.

강 부사장은 反美청년회 등이 87년 전국대학생협의회(전대협) 결성을 주도했다고 증언했다. 실제 전대협이 反美청년회와 같은 金日成주의 지하조직에 장악되고 지도됐다는 사실은 전향자들에 의해 수차 입증된 바 있다.

'주사파에 장악된 전대협의 실체 수사결과' 등 복수의 안기부 수사 결과 역시 이를 증명한다. 이들 결과에 따르면, 이인영(제1기), 오영식(제2기), 임종석(제3기)등 역대 전대협 의장 및 간부들은 모두 주사파 지하조직이 전대협에 침투시킨 조직원들이었다고 밝히고 있다.

임종석이 소속된 '자민통'이라는 조직은 90년 8월 중순 한탄강 소재 민박촌에서 각 대학 총학생회장 등에 출마할 88학번 6명의 MT에서 김일성에 대한 충성맹세를 했던 것으로 나온다(당시 임종석은 89년 임수경 入北사건으로 구속 中). '자민통' 조직원들이 당시 "김일성 수령님만세! 김정일 지도자 동지 만세!"를 부른 후 선언했던 결의문과 맹세문은 아래와 같다.

"위대한 수령님 김일성동지와 우리의 지도자 김정일 비서의 만수무강과 한민전의 영도 아래 이 한 목숨 끊어질 때까지 투쟁하겠다는 결의 결단으로 나아가자"(강령 中). "위대한 수령 김일성 장군님을 따라 숨통이 끊어지는 그날까지 죽음으로 혁명을 사수하며 조국과 민족이 완전히 해방되는 그날까지 열사 헌신하겠습니다"(규약 中).

주사파에 장악됐던 전대협 출신들은 現정권 실세로 부상했다. 열우당 내에는 12명의 국회의원(1기: 이인영·우상호·김태년·이철우 前의원, 2기: 오영식 ·백원우·정청래·최재성, 3기: 임종석·복기왕·이기우·한병도)이 배출됐다. 인터넷매체 데일리안은 2004년 11월 18일 350여 명의 청와대 직원 중 80여 명 가까이가 전대협 출신이라고 보도했었다. 기존 언론 등을 통해 확인된 대통령 측근의 전대협 출신들은 아래와 같다.

김은경 대통령직속 지속가능발전위비서관, 서양호 대통령직속 동북아시대위 자문위원, 최인호 청와대 국내언론비서관, 김성환 청와대 정책조정비서관, 송인배 청와대 시민사회수석실 행정관, 김만수 前청와대 대변인, 여택수 前청와대제1부속실 행정관, 한주형 前청와대 국민제안비서관실 행정관, 유송화 前청와대 균형인사비서관실 행정관, 이승 前청와대 홍보기획비서관실 행정관, 강현우국회의장 기획총괄비서관, 이재경 열우당 원내공보실장.

최인호 청와대 국내언론비서관은 국보법철폐-미군철수-연방제 등 북한의 대남노선을 주장해 온 전국연합 내 부산연합 조직국장(93-95)을 지냈으며, 김창수통일부 사회문화교류본부 협력기획관(3급. 내정) 역시 전국연합 정책실장, 민화협 정책실장 등을 지냈다.

전대협 출신들은 과거의 이념적 세례로부터 자유로울까? 2004년 9월 17일 시사저널이 미디어리서치 의뢰해 전대협동우회 회원 202명을 조사한 바에 따르면, 전대협 출신들은 북한을 가장 호감이 가는 나라(39.1 %)로 꼽았고 그 뒤로 중국(20.85), 미국(6.9%), 러시아(4.5.%), 일본(1.0%)을 들었다. 일반 국민이 미국(38.3 %), 중국(23.8%), 북한(10.6%). 일본(9.7%), 러시아(4.9%)를 들었던 것과 큰 차이를 보이는 대목이다.

  "金대중·盧무현 安保위기 초래 장본인"

[김필재, "YS, '金대중·盧무현 安保위기 초래 장본인,'" 미래한국, 2007. 1. 13, 10쪽.]

김영삼 전 대통령은 "한국은 6·25 이후 최대의 안보 위기 상황을 맞고 있으며 이 사태를 초래한 장본인은 김대중과 노무현"이라며 현 집권세력을 겨냥해 직격탄을 날렸다. 그는 1월 8일 오후 민주동지회 신년 하례회에서 이같이 밝히고 "김대중·노무현 집권 이후 지난 9년은 민주주의의 심각한 후퇴와 혼란의 시기였으며, 이들의 가장 큰 죄는 북한의 김정일 공산 독재에 대한 국민의 경계심과 안보의식을 허물어 버린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이어 "두 사람이 퍼다 준 엄청난 돈으로 김정일이 핵실험을 했다"면서 "국민의 세금으로 나라를 핵 위기에 몰아넣은 것은 용서할 수 없는 반역행위"라고 비판했다.

김 전 대통령은 노 대통령을 겨냥해 "이 추운 날 눈보라 속에서 전방을 지키는 우리 자식들이  '군대에서 썩고 있다'는 것이냐"고 반문한 뒤, "군 통수권자로서 도저히 해선 안 되는 비정상적 망발이다. 지금 국민이 바라는 것은 단 하나, 그 입을 닫게 해달라는 것"이라며 맹비난했다. 아울러 그는 "전작권 단독행사를 서둘러 한미연합사를 해체하려는 것도 독재자 김정일만 이롭게 하고 국가안보에는 치명적인 이적 행위"라며 "평화를 가장해 전쟁을 부추기는 이적 행위는 반드시 단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편, 대선과 관련해 그는 "올해 1년은 과거 어느 때보다 국가 장래에 중대한 해이고, 국민이 정신 바짝 차려야 하는 우리 역사의 분기점"이라며 "김정일·김대중·노무현과 가까운 세력에게 준엄한 심판을 내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 날 행사에는 한나라당 대권 주자인 이명박 전 서울시장과 손학규 전 경기도지사를 비롯해 황장엽 전 북한 노동당 비서, 박관용·김수한 전 국회의장, 이규택·안경률 의원, 서석재 전 의원 등 전·현직 정치권 인사 500여명이 참석했다.

 준전시 행동요령 12개항

[조갑제, "準戰時 행동요령 12개항," 미래한국, 2006. 10. 14, 3쪽; 월간 조선 편집인.]

휴전상태인 한반도에서 김정일이 핵실험을 한 것은 일종의 전쟁범죄행위이다. 그 핵무기를 쓸 곳은 한국뿐이기 때문이다. 그가 준전시(準戰時) 상황을 만들었으니 한국도 그런 식으로 대응하는 수밖에 없다. 국가위기時엔 비상시의 논리가 통용된다.

첫째, 우선 한국의 김정일 하수인들을 합법적으로 제거해야한다. 청와대, 정부, 국회로 들어가 김정일의 대한민국 파괴 지령을 수행하고 있는 자를 그냥 두고는 김정일의 핵무장에 대응할 수가 없다. 내부의 적(敵)을 제거해야 외부의 적(敵)을 막을 수 있다.

둘째, 특히 대통령 주변과 권력층 핵심부에 틀어박혀 있는 '386주사파'. 즉 김정일추종공산주의자출신들을 가려내어야 한다. 대한민국 타도를 맹세했던 자들이전향도 하지 않고 좌파권력을 타고 앉아 공무원이 되도록 허용한 것은 국가적 자살행위였다. 국가적 검증장치를 재가동시켜 反국가적 인물들을 법에 따라서 공직에서 추방해야 한다.

셋째, 국민들의 분노와 불안은 김정일-김대중-노무현에게 집중되어야 한다. 이 3人이 핵개발의 공범이고 7000만 민족의 불행이다. 진정한 민족주의는 이 세 명의 민족반역자를 무력화(無力化)시켜 민족번영의 길을 다시 여는 것이다. 김대중, 노무현 씨의 대남(對南)적화공작 동조행위는 반드시 사법처리되어야 한다. 4大적화노선인 핵개발, 보안법폐지, 한미(韓美)연합사 해체, 연방제에 호응한 두 사람을 그대로 두고 핵무장한 김정일과 대결하겠다는 것은 이완용을 지도자로 모시고 독립운동하겠다는 것과 같다.

넷째, 금강산관광과 개성공단 사업은 대북(對北)현금지원 창구가 되어 김정일의 핵무장을 도왔다. 정부가 하지 않으면 국민들이 나서서 금강산 관광을 거부하고 개성공단 사업을 중단시켜야 한다.

다섯째, 국군은 이적(利敵)대통령의 反국가적 反헌법적 명령을 맹목적으로 추종함으로써 스스로 국군의 방어력을 약화시키고 있는 일에 대하여 심각한 반성과 고민을 해야 한다. 국군은 헌법5조를 읽고서 우선 韓美연합사 해체 논의를 중단시켜야 한다.

여섯째, 진정한 自主국방정신은 김정일의 핵무장을 기필코 우리 힘으로 저지한다는 책임감에서 출발한다. 우리가 일전불사(一戰不辭)의 의지를 가져야 국제사회의 도움을 요구할 수 있다. 전쟁을 각오하지 않고는 김정일의 핵무기를 해체시킬 수 없다. 일곱째, 김정일의 전쟁범죄행위를 은폐해주기 위한 종김(從金)세력의 평화운동이 반역행위였음을 폭로해야 한다. 이들의 소위 '민족공조'는 '민족반역공조'였음이 핵실험으로 증명되었고 이들의 自主는 김정일에 대한 사대(事大)굴종을 덮기 위한 위장이었다. 여덟째, 한나라당과 대통령 지망자들은 구경꾼 입장에서 벗어나 구국(救國)투쟁에 앞장서야 한다.이 투쟁의 성적표가 대통령 선거에 반영될 것이다. 북핵(北核)위기를 구경만 하는 정치인들은 역사의 무대에서 퇴장당할 것이다. 아홉째, 국가위기와 북한의 핵무장을 부른 6·15 반역선언을 폐기하고 이 음모를 기획했던 자들에 대한 전면적 수사가 있어야 한다. 열번째, 戰時엔 중립지대가 없다. 민족 구성원 모두가 핵무장한 김정일 편인가, 核을 갖지 않는 대한민국 편인가를 선택해야 한다. 적과 동지로 갈라야 한다. 이념은 어려운 것이 아니다. 국가공동체의 이해관계에 대한 자각(自覺)이다. 대한민국의 이해관계는 敵과 동지를 명확히 하는 데서 출발한다. 김정일의 핵무장을 용인하고 지원한 자는 공동체의 敵이다.

열한번째, 핵무장한 敵에게 이길 수 있는 거의 유일한 방법은 대응핵무장이다. 우리가 핵무장하겠다고 해야 중국이 김정일과 핵무기 제거를 진지하게 검토할 것이다.

열두번째, 한국인이 애국애족심을 발휘하면 김정일은 결국 핵을 끼고 죽을 것이고 한반도는 새 세상을 맞을 것이다. 먹구름 틈으로 瑞光(서광)이 비친다.

 북한군 특수부대 광주사태 개입했었다

[임천용, "북한군 특수부대 光州사태 개입했었다," 미래한국, 2006. 12. 30, 5쪽.]

(편집자 주: 북한군 특수부대 출신의 탈북자 모임인 '자유북한군인연합'(대표 임천용·전 교도지도국 19여단 2대대·계급 상위)은 20일 오전 서울 정동 세실레스토랑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지난 80년 발생한 5·18 광주사태 당시 북한군 개입의 실상을 낱낱이 공개했다. 아래는 이날 기자회견을주최한 임천용 씨의 증언을 요약한 것이다.)

김일성, 김정일은 기회가 있을 때마다 심복들에게 "연방제 통일은 평화적 방법으로 가능할지 모르나 남조선 혁명은 폭력적 방법이 아니고는 불가능하다. 평화적 방법은 환상에 지나지 않는다"고 강조해왔다. 남한 내 친북세력들이 미군 기지를 공격하며 미군철수를 주장하는 집회나 4·19나 광주봉기처럼 민주·평화·자주를 외치는 격렬한 시위가 전국을 뒤 덮을 때 민주·애국투사들을 구한다는 명분으로 무력 개입한다는 전략이다. 역대 남한에서 벌어진 크고 작은 불행한 사건들에는 빠짐없이 북한이 직·간접적으로 개입해 왔다.

5·18광주민주항쟁의 경우 북한군정예 특수부대가 투입되었다. 다음은 김일성이 76년 8월, 그리고 80년 5월 대남공작원들에게 내린 비밀지령의 전문이다.

[비밀지령 1] "남조선에서 노동자들이 드디어 들고 일어났습니다. 사북 탄광의 유혈사태는 반세기에 걸친 식민지 통치의 필연적 산물이며 인간 이하의 천대와 멸시 속에서 신음하던 노동자들의 쌓이고 쌓인 울분의 폭발입니다. 남조선 혁명가들과 지하혁명 조직들은 이번 사북 사태가 전국으로 확산되도록 적극 불을 붙이고 청년학생들과 도시 빈민 등 각계각층의 광범한 민중들의 연대 투쟁을 조직 전개해 더 격렬한 전민 항쟁으로 끌어올려야 합니다."

[비밀지령 2] "결정적 시기가 포착되면 지체 없이 총 공격을 개시해야 합니다. 전국적인 총파업과 동시에 전략적 요충지대 곳곳에서 무장봉기를 일으켜 전신 전화국, 변전소, 방송국 등 중요 공공시설들을 점거하는 동시에 단전과 함께 통신 교통망을 마비시키고 임시혁명정부의 이름으로 북에 지원을 요청하는 전파를 날려야합니다. 그래야 남과 북의 전략적 배합으로 혁명적 대 사변을 주동적으로 앞당길 수 있습니다."

김일성의 이 같은 비밀지령과 80년 5월을 전후한 북한군의 움직임 등 제반 상황은 광주사태에 분명히 북한군이 개입됐음을 보여준다. 5·18사태 당시 함경남도에 위치해 있던 우리 부대는 전투동원상태에 진입하라는 참모부의 명령을 받고 완전 무장한 상태에서 신발도 벗지 못한 채 24시간 진지를 차지하고 광주사태에 대해 긴급속보를 전해 들으면서 20여일 이상 출전 명령을 기다리고 있었다. 정치부 비 편제 서기로 자주 동원됐던 나는 나중에야 당시 제10군단장이었던 여병남과 7군단 참모장이었던 김두산의 대화를 통해 특수부대 1개 대대가 광주에 침투했었고 희생도 많았지만 공로가 컸다는 말을 들을 수 있었다. 그로부터 얼마 후 북한군 특수부대 지휘관들 사이에서는 광주에 특수부대가 침투했었다는 말이 공공연한 비밀로 나돌았다.

북한군 4군단 70정찰대대 전투원으로 복무했던 이덕선 씨에 따르면 광주봉기당시 2군단 정찰대대를 모토(motto)로 하고 각 특수부대들에서 선발한 최정예 전투원 1개 대대가 해상을 통해 남파됐으며 그중 3분의 2가 희생되고 나머지 인원이 다 귀대했다는 것이다.

통상 북한 당국은 남파돼서 임무를 수행하고 귀대하거나 임무수행 중 사망한 공작원 또는 전투원에게 공화국 영웅 칭호와 함께 각종 훈장을 수여하는데 그 수는 1년에 불과 열손가락 안에 꼽히는 정도였다. 이덕선 씨에 따르면 80년에 2군단 75정찰대대에서만 41명의 공화국 영웅이 배출됐고 타 부대들에서 21명, 도합 62명의 영웅이 나왔다고 한다. 북한의 경우 평화시기에는 남파간첩이나 전투원이 아니면 공화국 영웅 칭호를 받는 일이 거의 없음을 감안할 때 한 해 동안에 62명의 전투영웅이 탄생했다는 것은 대남침투 관련 거대 작전이 있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외에도 당시에는 국군에 없었던 카빈소총이나 M1 소총에 맞은 시신이 수십 여 구라든가, 봉기자(시민군)들이 정부군의 탱크와 장갑차를 탈취해 진압군을 공격했다든가, 신원이 확인되지 않은 시신이 있는 등 아직 밝혀지지 않은 문제들이 너무나도 많다.

북한에서의 체험과 이상의 근거들만 가지고도 광주민주항쟁에는 분명히 북한군이 개입됐다고 확신한다. 대남적화통일 야망을 실현하기 위해 신성한 민주시위를 유혈 폭동으로 몰아간 김일성·김정일 부자의 제물로 바쳐졌을지도 모르는 5·18광주 민주화 영령들에게 심심한 애도의 뜻을 표하면서 광주 사태의 진상은 반드시 밝혀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특무기관망은 살아 있다

[히구치 즈네하루, "공산주의는 소멸했지만 특무기관 망(網)은 러시아에 살아 있다," 제군, 2007. 2월호; 미래한국, 2007. 2. 3, 15쪽에서 발췌, 요약함.]

"자유롭고 평등하고 억압 없는 천년왕국 건설을 지향하는 공산주의는 비공산국 인텔리들의 환상 속에서나 존재했다. 현실의 러시아혁명(1917년 11월 7일)은 '미리 배반된 혁명'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러시아혁명 후 혹독한 특무기관(비밀경찰과 첩보조직)이 창설됐다. 1917년 11월 8일에는 NKVD(내무인민위원부)가, 12월 20일에는 '반혁명·투기·사보타지·직권남용에 대한 투쟁비상위원회'가 설치 결정되었다. 레닌이 지도하는 볼셰비키는 만인이 공포에 떠는 초법적인 체제를 혁명 발족과 동시에 만들어냈던 것이다."

"표방하는 평등주의와 달리 1922년 8월 제12차 러시아 공산당대회에서 특권계급이 제도화되었다."

"근년에는 미국의 루즈벨트 정부(1933. 3-1945. 4)에 공산주의자나 그 동조자 다수가 잠입해 있었고 트루만 정부(-1953. 10)에도 이어졌다는 것은 각종 사료(史料)로 알려져 거의 상식이 되었다."

1941년 7월 미국은 첩보기관으로 OSI(전략조정관 사무국)를 설치했고 OSI는 1942년 6월 육군성으로 이관돼 OSS(전략임무국)으로 개칭되었다. 그러나 그 기관은 소련 스파이국(Office of Soviet Spies)으로 불릴 정도로 이중 스파이의 소굴이었다. 이런 이유로 FBI국장 J. 애드가 후버는 OSS를 증오하고 있었다.

OSS 폐지(1945년 9월 결정) 후에 우여곡절 끝에 CIA가 발족했는데(1947년 9월) 적지 않은 요원이 구 OSS요원이고 공산당 관계자가 여전히 섞여 있었다.  

소련은 스탈린 사후 특무기관(FSB, 구KGB)이 제1권력기관이 돼 있었다. 브레즈네프 이후 "소련 공산당은 거대 범죄조직으로 전락했고 정상으로 기능하고 있는 기관은 KGB뿐이었으므로 모든 실권은 완전히 KGB로 옮아가버리고 공산당은 결정을 추인하는 역할만을 했다고 한다." 구 소련 특권계급은 민주화 과정에서 국유재산을 통째로 사물화하여 지금은 과점집단(寡占集團)으로 바뀌어 있다고 한다. 중국과 북한은 소련형 특무기관이 만들어진 나라들이며 그 요소는 지금도 살아 숨쉬고 있다.

◈ 우리나라의 이념적 안정을 위해 기도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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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안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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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효성, 현대교회문제 자료집. 330쪽. 5000원(우송료 포함).

김효성, 신약성경강해. 1192쪽. 20,000원(우송료 포함).

김효성 역,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 75쪽. 1,000원(우송료 포함).

김효성, 공산주의 비평. 28쪽. 700원(우송료 포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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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본주의'는 성경의 근본교리들을 보수하고 자유주의 신학과 에큐메니칼 운동과 은사운동을 배격하고, 또 자유주의자들이나 포용주의자들과 교제하는 신복음주의 혹은 타협적 복음주의에 반대하는 입장과 노선을 가리킨다. ● 많은 사람들이 근본주의라는 말을 잘못 이해하고 비난하는 것 같으나, 오늘날 기독교계의 배교와 타협과 혼란의 상황에서 근본주의는 바른 입장을 적절히 표현하며 이 말 외에 오늘날 성경적 바른 입장을 표현할 만한 좋은 말이 없다고 본다. ● 그러므로 우리는 한국에도 근본주의적 교회들과 교단들이 있어야 하고 또 자유주의적 한국기독교회협의회[NCC]나 신복음주의적 한국기독교총연합회[한기총], 또 근래에 구상되는 '한국교회연합'과 같은 잡동사니와 구별되는 근본주의적 초교파 협의체가 매우 필요하다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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