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신앙  2008년 12월 14일 [제12권 50호]   ◆ 매주 발행 ◆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너희는 길에 서서 보며 옛적 길 곧 선한 길이 어디인지 알아보고 그리로 행하라. 너희 심령이 평강을 얻으리라' 하나, 그들의 대답이 '우리는 그리로 행치 않겠노라' 하였으며"(렘 6:16).

 

 

옛신앙

 

Old-time Fait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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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옛신앙'이란, 옛부터 하나님의 선지자들과 주의 사도들이 가졌던 신앙, 오직 정확 무오(無誤)한 하나님 말씀인 신구약 성경에만 근거한 신앙, 오늘날 배교와 타협의 풍조에 물들지 않는 신앙을 의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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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위기 강해:                                            소 제

[2:1] 누구든지 소제의 예물을 여호와께 . . . .

레위기 2장은 소제(素祭 grain offering)에 대한 규정이다. ‘소’(素)라는 말은 ‘채식’이라는 뜻이다. ‘소제’는 ‘곡물제사’라는 뜻이다. 하나님께서는 “누구든지 소제의 예물을 여호와께 드리려거든 고운 가루로 예물을 삼아” 드리라고 말씀하셨다. 레위기 1장에 규정된 번제가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을 상징하였다면, 소제는 그의 생애를 상징하였다고 보인다. ‘고운 가루’ (fine flour)는, 자신을 부정하시고 온유하고 겸손한 마음으로 하나님 아버지의 뜻에 온전히 순종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흠 없는 인격을 상징하였다고 보인다.

하나님께서는 그 고운 가루 위에 기름을 붓고 또 그 위에 유향을 놓으라고 말씀하셨다. 기름은 성경에서 빈번히 사용된 대로 하나님의 영을 상징할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성령의 충만한 기름부음을 받은 자로서 하나님 아버지의 명하신 일을 완수하셨다. 선지자 이사야는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 예언하기를, “주 여호와의 신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내게 기름을 부으사 가난한 자에게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게 하려 하심이라. 나를 보내사 마음이 상한 자를 고치며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갇힌 자에게 놓임을 전파하며 여호와의 은혜의 해와 우리 하나님의 신원(伸冤)의 날을 전파하여 모든 슬픈 자를 위로하되”라고 하였다(사 61:1-2).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전도사역을 시작하실 때 나사렛 회당에서 모인 사람들 앞에서 이 성경 구절을 읽으시고 이 말씀이 오늘날 이루어졌다고 말씀하셨다(눅 4:16-21).

소제에 놓는 유향은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과 사역의 향기, 곧 예수 그리스도의 흠 없는 인격과 온전한 순종 사역의 향기를 나타낼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과 사역은 성령의 충만한 역사 가운데 아름다운 향기를 발하였다. 소제는 그것을 상징하였다고 보인다.

뒤에 레위기 5:11에 보면, 하나님께서는 고운 가루로 속죄제물을 삼게 하실 때 그 위에 기름과 유향을 두지 않게 하셨다. 그것은 속죄제물이 대리형벌과 저주의 죽음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여기의 소제는 예수 그리스도의 의롭고 아름다운 인격과 삶을 상징하며 그것은 향기로운 제물이므로,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이 소제에 기름과 유향을 두어 좋은 냄새를 내게 하셨다고 본다.

[2-3절] 아론의 자손 제사장들에게로 . . . .

제사 드리는 자는 소제물을 제사장에게 가져온다. 2절을 다시 번역하면, “아론의 자손 제사장들에게로 가져 올 것이요 그[제사 드리는 자]는 그 고운 기름 가루 한 줌과 그 모든 유향을 취할 것이요 제사장은 그 기념물을 단 위에 불사를지니 이는 화제라. 여호와께 향기로운 냄새니라”(MT, KJV, NASB). 소제물은, 번제물과 달리, 단지 제물의 일부인 기름 섞은 고운 가루 한 줌과 그 모든 유향만 취해 기념물로 단 위에 불살랐다. 소제물의 남은 것은 아론과 그 자손들에게 돌려야 하였고 그것은 여호와의 화제(火祭) 중에 지극히 거룩한 것이었다.

[4-7절] 네가 화덕에 구운 것으로 . . . .

본문 4-7절은 소제의 세 가지 종류에 대해 말한다. 첫째는 화덕에 구운 것으로 드리는 소제이다. 그것은 고운 가루에 기름을 섞어 만든 무교병(누룩을 넣지 않고 만든 떡)이나 기름을 바른 무교전병(누룩을 넣지 않고 얇게 만든 떡)으로 드리는 것이다. 둘째는 번철에 부친 것으로 드리는 소제이다. 그것은 고운 가루에 누룩을 넣지 않고 기름을 섞어 조각으로 나누고 그 위에 기름을 붓는 것이다. 셋째는 솥에 삶은 것 혹은 프라이팬에 구운 것으로 드리는 소제이다. ‘솥에 삶은 것’이라는 원어(마르케쉣)의 뜻에 대해서는 두 가지 견해가 있다. 하나는 ‘삶는 솥’이라는 견해이고(BDB, NIV), 다른 하나는 ‘굽는 팬’이라는 견해이다(KB, LXX, KJV). 이 말은 솥에 삶은 것이라는 뜻이든지, 팬에 구운 것이라는 뜻일 것이다.

[8-10절] 너는 이것들로 만든 소제물을 . . . .

제사 드리는 자는 이것들로 만든 소제물을 여호와께로 가져다가 제사장에게 줄 것이며 제사장은 그것을 제단으로 가져다가 그 소제물 중에서 기념할 것을 취하여 제단 위에 불살라야 했다. 이것은 화제(火祭)이며 여호와께 향기로운 냄새이었다. 소제물의 남은 것은 아론과 그 자손들에게 주었고 그것은 여호와의 화제(火祭) 중에 지극히 거룩한 것이었다.

[11-12절] 무릇 너희가 여호와께 드리는 . . . .

하나님께서는 모든 소제물에 누룩을 넣지 못하게 하셨고 또 누룩이나 꿀을 여호와께 화제로 드려 사르지 못하게 하셨다. 누룩이나 꿀은 처음 익은 열매로는 하나님께 드려질 수 있지만, 향기로운 냄새를 위해서는 제단에 올리지 말아야 했다. 누룩은 성경에서 죄와 부패성을 상징한다. 또 꿀은 육신적 쾌락을 상징할 것이다. 소제물이 되신 예수 그리스도는 죄가 없으셨고 육신적 즐거움을 구하지도 않으셨다. 그는 거룩한 생애를 사셨고 하나님 아버지의 뜻에 순종하여 고난의 길을 걸으셨다. 우리도 예수 그리스도의 이런 삶을 본받아야 한다.

[13절] 네 모든 소제물에 소금을 치라. . . .

또 하나님께서는 “네 모든 소제물에 소금을 치라”고 명하셨고 또 “네 하나님의 언약의 소금을 네 소제에 빼지 못할지니 네 모든 예물에 소금을 드릴지니라”고 말씀하셨다. 성경에서 소금은 맛과 불변성을 상징한다고 본다. 소금의 가장 중요한 역할은 짠맛이다. 음식에는 소금을 치지 않으면 맛이 없고 적당히 소금을 쳐야 맛이 난다. 소금의 중요한 또 다른 역할은 썩는 것을 막는 것이며, 이런 점에서 소금은 불변성과 영속성의 상징물로 사용된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불변적 언약을 ‘소금 언약’이라고 부르셨다. 민수기 18:19,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께 거제(擧祭, 드는 제물)로 드리는 모든 성물은 내가 영영한 응식(應食)으로 너와 네 자녀에게 주노니 이는 여호와 앞에 너와 네 후손에게 변하지 않는 소금 언약이니라.” 소제에 소금을 치는 것은 이 두 가지 뜻, 곧 소제의 음식에 맛을 내게 하며 또 이것이 하나님의 불변적 언약의 한 내용임을 나타내는 뜻이 다 있다고 본다.

[14-16절] 너는 첫 이삭의 소제를 여호와께 . . . .

하나님께서는 첫 이삭의 소제는 그것을 볶아 찧은 것으로 소제를 드릴 것을 명하셨다. 볶아서 찧는다는 것 외에는 다른 소제의 규례와 동일하다. 첫 이삭은 볶아서 찧어야 잘 찧어질 것이다.

레위기 2장의 소제에 대한 규정은 오늘날 우리에게 무슨 교훈을 주는가? 첫째로, 우리는 소제를 통해 우선 하나님께서 주신 곡물들에 대해 감사를 드려야 할 것이다. 곡물은 인간이 세상에서 살아가는 데, 육신의 생명을 유지하는 데 필수적이다. 우리는 창조주와 섭리자이신 하나님께서 주신 일용할 양식에 대해 항상 그에게 감사드려야 한다.

둘째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온전한 순종과 의를 깨달아야 할 것이다. 고운 가루와 같이, 예수께서는 자신을 부정하시며 온유하고 겸손한 마음으로 하나님 아버지의 뜻을 온전히 순종하셨다. 그는 흠이 없는 인격자이셨다. 그는 성령의 충만함으로 율법의 의를 온전히 이루셨다. 그는 종과 같이 낮아지셨고 십자가에 죽기까지 아버지께 복종하셨다(빌 2:6-8). 로마서 5:18-19, “그런즉 한 범죄로 많은 사람이 정죄에 이른 것같이 의(義)의 한 행동으로 말미암아 많은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받아 생명에 이르렀느니라. 한 사람의 순종치 아니함으로 많은 사람이 죄인된 것같이 한 사람의 순종하심으로 많은 사람이 의인이 되리라.” 하나님께서 보내주신 구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마다 죄사함과 의롭다 하심을 얻고 영생을 얻는다. 이것이 성경이 계시하는 구원이다.

셋째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의와 순종을 본받자. 고운 가루는 흠과 점이 없는 의로운 인격을 상징한다고 본다. 우리는 죄가 없는 예수 그리스도, 죽기까지 하나님 아버지의 뜻에 순종하신 그를 본받자. 우리는 모든 죄를 다 버려야 한다. 양심에 거리끼는 죄는 다 청산해야 한다. 회개는 청산을 동반해야 한다. 회개는 입으로 하는 것이 아니고 행동으로 하는 것이다. 회개는 우리의 가정에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빌립보서 4:8-9, “종말로 형제들아, 무엇에든지 참되며 무엇에든지 경건하며 무엇에든지 옳으며 무엇에든지 정결하며 무엇에든지 사랑할 만하며 무엇에든지 칭찬할 만하며 무슨 덕이 있든지 무슨 기림이 있든지 이것들을 생각하라. 너희는 내게 배우고 받고 듣고 본 바를 행하라. 그리하면 평강의 하나님이 너희와 함께 계시리라.” 우리는 의와 순종을 본받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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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야 강해:                                     유다의 멸망을 예언함

[3:1-3] 보라 주 만군의 여호와께서 . . . .

원문에는 1절 초두에 ‘왜냐하면’이라는 말이 있다. 이것은, 앞절에서 “인생을 의지하지 말라”는 말씀에 대한 이유로 그것은 수에 칠 가치가 없기 때문이라고 한 말씀에 대한 이유를 보인다. 그 이유는, ‘주 만군의 여호와’ 곧 주권적 섭리자 하나님께서 예루살렘과 유다의 의뢰하는 것을 제하여 버리실 것이며 그 중에는 각 방면의 훌륭한 사람들도 포함될 것이기 때문이다.

선지자는 말하기를, “보라 주 만군의 여호와께서 예루살렘과 유다의 의뢰하며 의지하는 것[곧 의지하는 모든 것들]을 제하여 버리시되 곧 그 의뢰하는 모든 양식과 그 의뢰하는 모든 물과 용사와 전사와 재판관과 선지자와 복술자와 장로와 오십부장과 귀인과 모사와 공교한 장인과 능란한 요술자를 그리 하실 것이며”라고 하였다. 선지자는 유다 백성이 의지했던 것들을 열거하였다.

그들이 의지하며 의뢰했던 첫 번째 것은 식품들이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이 의뢰하는 모든 양식과 그 의뢰하는 모든 물을 제하여 버리실 것이다. 양식과 물은 인간의 생존에 필수적인 것인데 하나님께서는 그것들을 제하여 버리실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그들이 의지하며 의뢰했던 두 번째 것은 군대이다. 군대는 국가적 안전에 필수적인 것인데,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용사와 전사를 제하여 버리실 것이라고 하셨다.

그들이 의지하며 의뢰했던 세 번째 부류는 사회의 지도자들이다. 사회의 지도자들 속에는, 재판관 곧 방백들과, 종교인들 곧 선지자와 복술자와 ‘능란한 요술자’들과, 또 장로들과 50부장들과 귀인들[존귀한 자들]과 모사들이 포함되는데,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제하여 버리실 것이다. 그들이 의지하며 의뢰했던 네 번째 부류는 기술자들이다. 하나님께서는 공교한 장인들을 제하여 버리실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오늘날도 세상 사람들은 식품들, 군대와 군사력, 사회의 지도자들과 인재들, 기술자들과 과학자들을 의지하고 의뢰한다. 심지어 오늘날 교인들 중에도 돈이나, 건강이나, 세상적 지혜나, 학벌과 학력이나, 기술 등을 자랑하고 의지하는 자들이 있다. 그러나 그것들은 하나님께서 제거하실 때 다 없어질 요소들이다. 우리는 세상의 것들을 자랑하거나 의지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만 자랑하고 의지해야 한다.

[4-7절] 그가 또 아이들로 그들의 방백을 . . . .

4절에 ‘그가’라는 말은 원문에는 ‘내가’라고 되어 있다(MT, KJV, NASB, NIV). 이와 같이 구약의 선지자는 종종 성령의 비상한 감동 가운데 하나님의 입장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였다.

선지자는 하나님께서 예루살렘과 유다 나라에 사회적 혼란을 주실 것이라고 말한다. 우선, 사회에 지도자들이 없어질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아이들로 그들의 방백을 삼으시며 적자들[어린아이들]로 그들을 다스리게 하실 것이다. ‘적자들’이라는 원어(타알룰림)는 ‘변덕스러움, 자유분방함’이라는 뜻으로 ‘변덕스런 아이들’(NASB)이라고 번역할 수 있다. 어른들에게 바른 지도를 받아야 할 어린아이들이 도리어 어른들을 다스린다고 하니 얼마나 혼란한 일이겠는가?

또 백성은 서로 학대하며 각기 이웃을 해칠 것이며, 예절이 없고 무질서할 것이다. “아이가 노인에게, 비천한 자가 존귀한 자에게 교만할 것이다.” 나이든 자를 존중하고 존경할 자를 존경하는 것은 사회의 기본적 질서이다. 그것은 십계명의 제5계명에 내포된 바이다. 그러므로 레위기 19:32, “너는 센머리 앞에 일어서고 노인의 얼굴을 공경하며 네 하나님을 경외하라.” 베드로전서 2:13-17, “인간에 세운 모든 제도를 주를 위하여 순복하되 혹은 위에 있는 왕이나 혹은 악행하는 자를 징벌하고 선행하는 자를 포장하기 위하여 그의 보낸 방백에게 하라. 곧 선행으로 어리석은 사람들의 무식한 말을 막으시는 것이라. 자유하나 그 자유로 악을 가리우는 데 쓰지 말고 오직 하나님의 종과 같이 하라. 뭇사람을 공경하며 형제를 사랑하며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왕을 공경하라.” 그러나 유다 사회는 기본적 예절과 질서를 저버렸다.

그러므로 유다 사회에는 아무도 지도자 되기를 원치 않을 것이다. 6-7절, “혹시 사람이 그 아비의 집에서 그 형제를 붙잡고 말하기를 너는 의복이 오히려 있으니 우리 관장이 되어 이 멸망을 네 수하에 두라 할 것이면 그 날에 그가 소리를 높여 이르기를 나는 고치는 자가 되지 않겠노라. 내 집에는 양식도 없고 의복도 없으니 너희는 나로 백성의 관장을 삼지 말라 하리라.”

[8-12절] 예루살렘이 멸망하였고 . . . .

8절은 “예루살렘이 멸망하였고 유다가 엎드러졌음은”이라고 말한다. 8-12절은 유다와 예루살렘의 멸망의 이유를 말한다. 8절의 ‘멸망하다’는 원어(카솰)는 ‘비뚤거리다’는 뜻이다. 그것은 패망하기 전의 모습을 묘사한다. 유다는 비뚤거리다가 엎드러져 멸망할 것이다.

“그들의 언어와 행위가 여호와를 거슬러 그 영광의 눈을 촉범하였음이라.” ‘촉범(觸犯)하다’는 말은 ‘격노케 하다’는 뜻이다. 그들은 말과 행위로 범죄하였다. 그들은 말로 하나님께 범죄하였다. 말은 사람의 마음의 표현이다. 사람은 마음에 쌓은 대로 말한다. 유다 백성은 불신앙적인 말과, 불평, 원망, 비방의 말을 하였다. 또 그들은 행위로도 하나님께 범죄하였다. 그들은 우상숭배하였고 살인과 음행에 빠졌다.

“그들의 안색이 스스로 증거하며 그 죄를 발표하고 숨기지 아니함이 소돔과 같으니.” 그들의 얼굴이 그들의 죄를 증거했다. 사람의 죄는 그의 얼굴로도 증거된다. 사람은 죄를 감추기가 어렵다. 양심적인 사람일수록 그렇다. 죄는 즉시 토해내고 회개하고 청산하고 새 출발하는 것이 좋다. 회개는 빠르면 빠를수록 좋다. 그러나 그들은 회개치 않았다. 더욱이, 그들은 소돔 사람들처럼 그 죄를 숨기지 않고 공공연하게 드러내기까지 하였다. 그들은 뻔뻔스런 죄를 범하였던 것이다.

특히 지도자들의 잘못이 컸고 결정적이었다. 백성이 잘못을 해도 지도자가 바로 서면 사회는 상당히 바르게 유지될 것이지만, 지도자가 잘못을 하면 그 사회는 가망이 없다. 가정도 교회도 마찬가지이다. 12절, “내 백성을 학대하는 자는 아이요 관할하는 자는 부녀라. 나의 백성이여 너의 인도자가 너를 유혹하여 너의 다닐 길을 훼파하느니라.” 12절 원문을 다시 번역하면, “내 백성을 몰아대는 자는 변덕스런 아이같이 행하며 부녀들이 관할하는도다. 나의 백성이여, 너를 인도하는 자들이 너를 곁길로 인도하고 너의 길의 방향을 혼란케 하도다.”

하나님께서는 악에 대한 보응을 선언하셨다. “그들의 영혼에 화가 있을진저. 그들이 재앙을 자취하였도다. 너희는 의인에게 복이 있으리라 말하라. 그들은 그 행위의 열매를 먹을 것임이요 악인에게는 화가 있으리니 화가 있을 것은 그 손으로 행한 대로 보응을 받을 것임이니라.” 의인과 악인에게는 각 사람이 행한 행위에 대한 공의로운 보응이 임할 것이다. 사람은 그 행한 대로 복과 재앙을 받을 것이다.

이사야 3:1-12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우리는 하나님만 의지하자. 우리는 인간적인 것, 세상적인 것, 곧 돈, 건강, 지식, 명예, 기술 등을 의지하지 말자. 왜냐하면 그런 것은 하나님께서 없애실 때 다 없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하나님만 의지하고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만 믿고 지키며 소망하자.

둘째로, 우리는 우리가 이제까지 누린 평안과 질서를 감사하고 사모하자. 죄는 지도자의 부재(不在)를 가져오고 서로 미워하고 예절도 질서도 없는 사회를 만들지만, 경건과 의는 지도자가 있게 하고 서로 사랑함을 실천하며 질서 있는 사회를 만든다. 그럴 때 국가적으로는 진실한 자들이 대통령과 국회의원이 되려 할 것이며, 또 교회적으로는 성숙한 인격자들이 장로 되기를 사모하며 목사 되기를 지망할 것이다.

셋째로, 우리는 죄짓지 말고 말과 행위로 의롭게만 살자. 죄는 멸망을 가져온다. 그러므로 말과 행위로 죄짓지 말자. 우리는 불평과 원망, 및 비방의 말을 버리자. 특히 교회의 모든 직분자들은 바르게 행해야 한다. 어떻게 행하는 것이 바르게 행하는 것인가? 성경대로 사는 것이 바르게 행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 모든 성도들은 성경을 열심히 읽고 성경을 열심히 배우고 성경의 교훈대로 살고자 힘써야 한다.

마태복음 3:7-10, “요한이 많은 바리새인과 사두개인이 세례 베푸는데 오는 것을 보고 이르되 독사의 자식들아 누가 너희를 가르쳐 임박한 진노를 피하라 하더냐? 그러므로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고 속으로 아브라함이 우리 조상이라고 생각지 말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나님이 능히 이 돌들로도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게 하시리라. 이미 도끼가 나무 뿌리에 놓였으니 좋은 열매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어 불에 던지우리라.” 하나님의 참된 백성된 자마다 모든 죄를 청산하고 오직 의를 행해야 하고, 모든 미움을 버리고 오직 사랑을 실천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하나님의 징벌을 피할 수 없다. 우리는 말과 행위로 죄짓지 말고 의롭게만 살아가자. 그것이 평강과 형통과 영생의 길이다.

 

[17-18절] 그 날에 자고한 자는 굴복되며 . . . .

선지자는 “그 날에 자고한 자는 굴복되며 교만한 자는 낮아질” 것이라고 말한다. 하나님께서는 교만한 자를 미워하신다(잠 6:16-17; 8:13).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교만한 자를 물리치신다. 교만한 자는 망하고 만다. 잠언 16:18,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요 거만한 마음은 넘어짐의 앞잡이니라.” 잠언 18:12.

선지자는 또 “여호와께서 홀로 높임을 받으실 것이요”라고 말한다. 하나님은 온 우주의 주권자이시며 왕이시다. 하나님은 홀로 영광을 받으시기에 합당하신 자이시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을 알자. “그러므로 우리가 여호와를 알자. 힘써 여호와를 알자(호 6:3). 우리는 하나님이 인생의 목적이며 최고의 가치 곧 가장 귀한 분이심을 알자. 우리는 오직 하나님만 의지하고 하나님만 높이고 하나님만 따르자!

시편의 히브리어 명칭은 ‘찬양들’이라는 뜻이다. 시편의 주요 내용과 결론은 하나님을 찬송하는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만 높이며 찬양해야 한다. 로마서 11: 36, “이는 만물이 주에게서 나오고 주로 말미암고 주에게로 돌아감이라. 영광이 그에게 세세에 있으리로다. 아멘.” 요한계시록 5:13, “내가 또 들으니 하늘 위에와 땅 위에와 땅 아래와 바다 위에와 또 그 가운데 모든 만물이 가로되 보좌에 앉으신 이와 어린양에게 찬송과 존귀와 영광과 능력을 세세토록 돌릴지어다 하니.” 우리는 하나님만 높이며 따르자.

선지자는 또 “우상들은 온전히 없어질 것이라”고 말한다. 우상은 사람이 고안해낸 것이다. 그것은 사람이 교만 속에서, 무지 속에서, 자기 뜻대로, 자기 원하는 대로 만들어낸 헛된 것이다. 시편 115:4-8, “저희 우상은 은과 금이요 사람의 수공물이라. 입이 있어도 말하지 못하며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며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하며 코가 있어도 맡지 못하며 손이 있어도 만지지 못하며 발이 있어도 걷지 못하며 목구멍으로 소리도 못하느니라. 우상을 만드는 자와 그것을 의지하는 자가 다 그와 같으리로다.”

오늘날의 우상도 마찬가지다. 예를 들어, 돈은 유익하나 돈 우상은 헛되며, 세상의 부귀, 영광, 권세, 명예는 좋아 보이나 실상 다 헛된 우상들이다. 육신의 쾌락도 확실히 헛된 우상이다. 그것은 환난 날에 아무 소용이 없다. 에스겔 7:19, “그들이 그 은을 거리에 던지며 그 금을 오예물같이 여기리니 이는 여호와 내가 진노를 베푸는 날에 그 은과 금이 능히 그들을 건지지 못하며 능히 그 심령을 족하게 하거나 그 창자를 채우지 못하고 오직 죄악에 빠뜨리는 것이 됨이로다.”

[19-21절] 사람들이 암혈과 토굴로 들어가서 . . . .

여호와의 날에, “사람들은 암혈[바위굴]과 토굴[땅굴]로 들어가서 여호와께서 일어나사 땅을 진동시키시는 그의 위엄과 그 광대하심의 영광을 피할 것이라”고 선지자는 말한다. 두려운 날이 다가올 것이다. 그는 또, “사람들은 숭배하려고 만들었던 그 은 우상과 금 우상을 그 날에 두더지와 박쥐에게 던질 것이라”고 말한다. 우상들이 쓸모 없고 무가치하고 무익하고 무능한 것임이 드러났기 때문에 사람들은 그것들을 다 던져버릴 것이다. 그들은 바위굴과 험악한 바위틈에 들어가서 여호와께서 일어나사 땅을 진동시키시는 그의 위엄과 그 위대하심의 영광을 피할 것이다. 그 날에 하나님의 위엄과 위대하심의 영광이 나타날 것이며 사람들은 그것을 보고 심히 두려워 떨 것이다.

[22절] 너희는 인생을 의지하지 말라. . . .

선지자는 결론적으로 “너희는 인생을 의지하지 말라. 그의 호흡은 코에 있나니 수에 칠 가치가 어디 있느뇨?”라고 말한다. ‘의지하지 말라’는 원어(키들루)는 ‘끊으라’는 뜻이다. 그것은 문맥적으로 볼 때 사람을 높이고 자랑하고 의지하는 것을 끊으라는 뜻으로 이해된다. 선지자는 인생의 호흡이 코에 있으며 수에 칠 가치가 없다고 말한다. 인간은 그의 모든 대단하게 보이는 것들이 그가 죽으면 그것으로 끝나고 다 헛되게 된다. 그러므로 인간을 의지하거나 높이고 자랑하지 말라고 말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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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배교와 타협과 혼돈의 시대에 바른 길을 붙들자.

우리는 성경의 근본적 교리들을 보수하고, 자유주의 신학과 천주교회를 포용하는 배교와 타협, 또 은사운동의 혼란을 반대하고 또 그런 자들과 교제하는 자들도 책망하기를 원한다. 우리는 성경 말씀의 정로(正路)를 붙들기를 원하며 또 그런 자들과만 교제하기를 원한다. 하나님께서 오늘날도 바른 교회들을 부흥시키시기를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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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효성, 현대교회문제. 176쪽. 3,000원.

현대교회의 교리적, 윤리적 주요 문제들에 대해 논평함.

● 김효성, 자유주의 신학의 이단성<신간>. 171쪽. 3,000원.

현대 자유주의 신학에 관한 자료들의 모음집. 

● 김효성, 현대교회문제 자료집. 330쪽. 4,000원.

● 김효성, 기독교 윤리. 224쪽. 4,000원.

● 김효성, 신약성경강해. 1192쪽. 18,000원.

● 김효성, 에스겔 강해. 246쪽. 2,000원.

● 김효성, 창세기 강해. 414쪽. 5,000원.

● 김효성, 여호수아 강해. 130쪽. 2,000원.

● 김효성, 아가서 강해. 87쪽. 1,000원.

● 김효성, 다니엘 강해<신간>. 90쪽. 1,000원.

● 김효성, 출애굽기 강해<신간>. 90쪽. 1,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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