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신앙 2008년 12월 7일 [제12권 49호] ◆ 매주 발행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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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너희는 길에 서서 보며 옛적 길 곧 선한 길이 어디인지 알아보고 그리로 행하라. 너희 심령이 평강을 얻으리라' 하나, 그들의 대답이 '우리는 그리로 행치 않겠노라' 하였으며"(렘 6:16). |
옛신앙
Old-time Faith www.oldfaith.net |
'옛신앙'이란, 옛부터 하나님의 선지자들과 주의 사도들이 가졌던 신앙, 오직 정확 무오(無誤)한 하나님 말씀인 신구약 성경에만 근거한 신앙, 오늘날 배교와 타협의 풍조에 물들지 않는 신앙을 의미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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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1-884 서울 마포구 합정동 364-1
합정동교회 김효성 목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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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위기 강해: 번 제 [1:1-2] 여호와께서 회막에서 모세를 부르시고 . . . . 여호와께서는 회막에서 모세를 부르시고 그에게 말씀하셨다. 회막 곧 성막을 건립한 후에는 하나님께서 회막에서 모세와 말씀하셨다. 회막은 그 이름의 뜻대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과 만나시는 장소이었다. 하나님께서는 회막에서 이스라엘 백성을 위해 모세에게 말씀하셨다. 회막은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한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을 만난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제사에 대해 명령하셨다. ‘제사’는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께 드리는 ‘예물’(코르반)이었다. 하나님께서는 먼저 생축 곧 소나 양 같은 가축으로 예물을 삼는 것에 대해 말씀하셨다. [3절] 그 예물이 소의 번제이면 . . . . 하나님께서는 먼저 번제(燔祭 burnt offering; 올라)에 대해 교훈하셨다. 번제는 역사상 가장 오래된 제사이다. 아담의 아들 아벨이 하나님께 드린 제사는 번제이었을 것이다(창 4:4). 또 노아는 홍수 후 방주에서 나와 하나님께 번제를 드렸다(창 8:20). 본장에 보면, 번제로 드릴 수 있는 제물은 소나(3절), 양이나 염소나(10절), 또는 산비둘기나 집비둘기(14절)이었다. 하나님께서는 먼저 소의 번제에 대해 말씀하셨다. 제사하는 자는 흠 없는 수소를 회막 문에서 여호와 앞에 열납되도록[받아지도록] 드려야 했다. ‘흠 없는 수컷’은 죄 없으신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豫表)한다. 예수 그리스도는 죄를 알지도 못하신 자시요(고후 5:21) 죄가 없으신 자이시다(히 4:15). 죄가 없는 자이어야 속죄 제물이 될 수 있다. 죄인은 자기의 죄 때문에 죽어야 하므로 남을 위한 속죄 제물이 될 수 없기 때문이다. [4절] 그가 번제물의 머리에 안수할지니 . . . . 제사 드리는 자는 자기가 가져온 번제물의 머리에 안수해야 했다. “그리하면 열납되어[받아들여지고] 그를 위하여 속죄가 될 것이다.” 번제물의 머리에 안수하는 것은 제사 드리는 자의 죄를 그 제물에게 돌리는 것, 즉 죄책의 전가(轉嫁)를 의미한다. 죽어야 할 자는 제물이 아니고 제물을 드리는 사람이다. 그러나 제물은 그 사람의 죄를 지고 죽임을 당하는 것이다. 그것이 속죄(贖罪)의 원리이다. “그리하면 . . . 그를 위하여 속죄가 될 것이라.” 이와 같이, 번제의 기본적 의미는 속죄이다. 속죄의 개념은 대리적 형벌을 통한 하나님의 공의의 만족이다. 죄인은 속죄를 통하지 않고는 하나님께 나아갈 수 없다. [5절] 그는 여호와 앞에서 그 수송아지를 . . . . 제사 드리는 자는 여호와 앞에서 그 수송아지를 죽이고 아론의 자손 제사장들은 그 피를 가져다가 회막 문앞 단 사면에 뿌려야 했다. 본장에서 ‘그는’(4, 5, 6, 9절)은 제사 드리는 자를 가리킨다. 제사 드리는 자는 자기가 드릴 제물을 제 손으로 직접 죽여야 했다. 이 일을 통해 그는 짐승이 자신을 대신하여 죽는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을 것이다. 아론의 자손 제사장들은 번제물의 피를 가져다가 회막 문앞에 있는 번제단 사면에 뿌려야 했다. 피는 곧 생명이며, 피 흘림은 죽음을 상징한다. 죄의 값은 죽음이며 제물의 피 흘림은 속죄(贖罪)를 상징하였다. 예수 그리스도의 피는 많은 사람의 죄사함을 위하여 흘려졌다(마 26:28). 누구든지 그를 믿는 자는 죄사함을 얻고 구원을 얻는다. 피가 제단 사면에 뿌려져야 했다. ‘단 사면에’라는 원어는 ‘번제단 위 사방에’라는 뜻일 것이다(KJV). ‘뿌린다’는 원어(자라크)는 ‘듬뿍, 풍부하게 뿌린다’는 뜻이다.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양손과 양발, 머리와 옆구리에서 피를 줄줄 흘리셨다. 성막의 기구들은 위에서 보면 십자가 모양이며 그것의 밑부분은 번제단이다. 십자가 위에서 흘리신 피는 십자가 밑에, 곧 번제단 위 사방에 듬뿍 뿌려질 것이었다. [6절] 그는 또 그 번제 희생의 가죽을 벗기고 . . . . 제물을 드리는 자는 그 번제물의 가죽을 벗기고 각을 떠야 했다. 가죽을 벗기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겉옷과 속옷까지 벗김받으실 것을 예표한 것 같다. 예수께서는 십자가 위에서 옷 벗김을 당한 채 수치스런 죽음을 죽으셨다. ‘각을 뜬다’는 말은 여러 조각들로 자르는 것을 말한다. 예수께서는 여러 조각으로 잘리는 고통을 받으셨다. [7-8절] 제사장 아론의 자손들은 단 위에 불을 . . . . 제사장들은 가죽을 벗기고 조각들로 자른 번제물과 머리와 기름을 번제단 위 불 위에 있는 나무에 벌여 놓아야 했다. 불은 지옥의 형벌을 상징할 것이다. 죄의 값은 죽음이요 지옥의 형벌을 포함한다. 죄인은 영원한 지옥 형벌을 피할 수 없다. 그런데 지옥 형벌을 받아야 할 죄인 대신, 속죄 제물이 번제단 위에서 불태워지는 것이다. 물론 이것은 상징이요 예표(豫表)이다. 그 실체는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십자가 대속 사역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를 대신하여 십자가 위에서 하나님의 진노의 잔을 마셨다. 그것은 단순히 육체의 고난과 죽음 정도가 아니고, 죄인을 대신한 하나님의 공의의 형벌이었다. 그것은 지옥 형벌의 잔이었다. 십자가에 달리신 그에게 하나님께서는 일반 순교자에게 베푸신 은혜와 위로조차도 주지 않으셨다. 그는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라고 부르짖으셨다.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진노의 불을 쏟으셨다. 비록 그의 고통은 여섯 시간에 불과했지만, 그것은 많은 사람들의 모든 죄에 대한 하나님의 공의의 형벌을 당하신 큰 고통 곧 지옥 형벌의 고통이었다. [9절] 그 내장과 정갱이를 물로 씻을 것이요 . . . . 우리 본문에 ‘그는’이라는 말이 생략되어 있지만, 제사 드리는 자는 제물의 내장과 다리들을 물로 씻을 것이며 제사장은 그 전부를 단 위에 불살라 번제를 삼아야 했다. 그것은 화제(火祭) 곧 제물을 불로 태우는 제사이었다. ‘그 전부를 단 위에 불사르라’는 것은 번제의 특징이다. 번제는 제물 전체를 불사르는 제사이다. 다른 제사들은 제물의 일부분만 불사르고 나머지는 제사장들이나 제사 드리는 자가 먹었다. 그러나 번제는 제물 전부를 불태워 드려야 했다. 이것은 온전한 희생을 가리킨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희생을 예표한다. 예수 그리스도는 십자가에서 우리를 위해 자신의 전부를 희생하셨다. 그의 죽음은 번제이었다. 그에게 남은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는 십자가 위에서 그의 몸과, 물과 피와 생명을 우리를 위해 내어주셨다. 그것이 우리에게 속죄가 되었고 구원이 되었다. 여기에 기독교가 있고 기독교의 독특성이 있다. 죄인들을 위하여 속죄 제물이 되신 분은, 하나님께서 죄인의 구주로 보내신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밖에 없다. 예수 그리스도는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우리의 구속(救贖), 우리의 의, 우리의 거룩, 우리의 영생이 되셨다. 또 불태워진 번제물은 “여호와께 향기로운 냄새”가 되었다. 하나님은 잔인하신 하나님이신가? 하나님은 잔인하게 짐승을 죽여 피 흘리고 불태워 죽이는 것을 보고 기뻐하는 하나님이신가? 아니다. 여기에 거룩하고 귀한 사실, 곧 죄인을 긍휼히 여기시는 하나님의 은혜로운 처분이 있다. 무수히 많은 짐승들이 사람을 위해 희생되었다. 그것은 인간을 죄와 형벌로부터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공의와 사랑이었다. 불태워진 제물은 단순히 짐승이 아니요 장차 오실 예수 그리스도, 이미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하였다. 십자가 위에서 대속의 죽음을 죽으신 중보자는 단순히 사람이 아니고, 바로 하나님의 독생자요 하나님 자신이셨다. 이것은 하나님의 잔인함이 아니요 우리가 감당할 수 없는 그의 은혜와 사랑이었다. 죄로 더러워지고 허무하게 된 존재인 인생이 무엇이기에 창조주 하나님께서 이런 놀라운 일을 행하신 것인가? 아, 이것이 참으로 놀랍고, 감사한 일이 아닌가? [10-13절] 만일 그 예물이 떼의 양이나 . . . . 10-13절은 양이나 염소의 번제, 곧 양이나 염소로 드리는 번제에 대한 말씀이다. 규정은 소의 번제와 같다. 단지, 짐승을 잡는 곳이 “단 북편에서 여호와 앞에서”라고 표현되었다. 그것은 소의 경우도 마찬가지이었을 것이다. [14-17절] 만일 여호와께 드리는 예물이 . . . . 14-17절은 새의 번제, 즉 산비둘기나 집비둘기로 드리는 번제에 대한 교훈이다. 이것은 경제적 형편이 어려운 사람을 배려한 규정이다(레 5:7; 12:8). 새의 번제물은, 제사장이 그것을 단으로 가져다가 그 머리를 비틀어 끊고 단 위에 불사르고 피는 단 곁에 흘려야 했고 멱통[먹이 주머니]과 그 깃털들(KJV, NASB)은 제하여 단 동편 재 버리는 곳에 던지고 또 그 날개 자리에서 그 몸을 찢되 아주 찢지 말고 제사장이 그것을 단 위 불 위의 나무 위에 살라 번제를 삼아야 했다. 레위기 1장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우리는 우리를 위해 번제물이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감사하자. 구약의 번제는 우리의 죄와 형벌을 담당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하였다. 예수 그리스도는 죄 없는 사람으로서 우리의 죄를 담당하셨다. 그의 피 흘리신 죽음은 우리에게 속죄가 되었다. 레위기 17:11에서, 하나님께서는 “육체의 생명은 피에 있음이라. 내가 이 피를 너희에게 주어 단에 뿌려 너희의 생명을 위하여 속하게 하였나니 생명이 피에 있으므로 피가 죄를 속하느니라”고 말씀하셨다.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의 죽음은 우리의 의, 우리의 구원, 우리의 영생이 되었다. 우리는 번제물 되신 구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감사하자. 둘째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본받아 하나님께 온전히 헌신하자. 번제의 특징은 제물 전체를 단 위에 불살라 드리는 것이다(9, 13절).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를 위해 자기 전부를 희생시키셨다. 그는 우리를 위한 번제물이 되셨다. 그것은 우리에게 온전한 헌신의 본이 된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본받아 우리의 몸을 하나님께 온전히 드리자(롬 12:1; 고후 5:15).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본받아 하나님께 온전히 헌신하자. 셋째로, 우리는 하나님께 향기로운 냄새가 되는 삶을 살자. 번제는 하나님께 향기로운 냄새가 되는 제사이었다(9, 13, 17절).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를 위해 향기로운 제물이 되셨다(엡 5:2). 우리의 헌신의 삶, 선한 봉사의 삶은 하나님 앞에 향기로운 냄새가 된다(빌 4:18). 우리의 선한 삶이 하나님께 향기로운 냄새가 되게 하자. ---------------------------------------------------------------------------------------- 이사야 강해: 여호와의 날 [2:12] 대저 만군의 여호와의 한 날이 . . . . 선지자 이사야는 본절에서, 앞절에서 그가 “그 날에 눈이 높은 자가 낮아지며 교만한 자가 굴복되고 여호와께서 홀로 높임을 받으시리라”고 말한 것에 대한 이유를 말한다. 그것은 “만군의 여호와의 한 날이 모든 교만자와 거만자와 자고한 자에게 임하여 그들로 낮아지게 할” 것이기 때문이다. ‘만군의 여호와’는 하늘의 군대인 천군 천사들의 섬김을 받으시는 여호와라는 뜻이다. 천사들은 하나님의 뜻을 수행하는 자들이며 특히 그의 심판의 수종자들이다. 여호와의 날이 올 것이다. 그 날은 하나님의 심판의 날이요 진노와 징벌의 날이다. 선지자는 “그 날이 모든 교만한 자들과 거만한 자들과 자고한 자들에게 임하여 그들로 낮아지게 할 것이라”고 말한다. 교만은 인간의 가장 큰 죄이며 가장 근본적인 죄악이다. 하나님 없는 세상 사람들의 특징은 교만이다. 그들은 인간을 만물의 척도로 본다. 그들의 삶에는 하나님이 기준이 아니고 사람이 기준이다. 교만은 하나님 대신 자신을 높이는 것이다. 교만한 자는 자기 주관, 자기 주견, 자기 고집만 내세운다. 또 그것은 불순종으로 나아간다. 하나님을 부정하고 대적하는 인간 중심의 사상은 사상적 교만이며, 선을 행하고 자신을 자랑하는 것은 도덕적 교만이다. 성경을 좀 읽는 자, 기도를 좀 하는 자는 신앙적 교만, 영적 교만에 빠지기 쉽다. 하나님께서는 교만한 자를 미워하시고 물리치시고 낮추신다. 실상, 인간은 아무것도 아니다. 인간은 세상을 만든 자가 아니다. 자기 자식도 자기가 만든 것이 아니고 단지 낳았을 뿐이며 조물주의 도구가 된 것뿐이다. 인간은 자기의 존재 목적도 스스로 알지 못하고 죽음 후의 일도 알지 못한다. 인간은 세상의 기원도, 세상의 종말도 알지 못한다. 인간은 질병 앞에서나 죽음 앞에서 심히 무능하다. [13-16절] 또 레바논의 높고 높은 . . . . 선지자는 하나님의 날이 “레바논의 높고 높은 모든 백향목과 바산의 모든 상수리나무와 모든 높은 산과 모든 솟아오른 작은 산과 모든 높은 망대와 견고한 성벽과 다시스의 모든 배와 모든 아름다운 조각물에 임하리라”고 말한다. “레바논의 높고 높은 모든 백향목과 바산의 모든 상수리나무”는 이웃 나라의 교만한 지도자들을 가리켰을 것이다. “모든 높은 산과 모든 솟아오른 작은 산”은 교만한 이웃 나라들을 가리키고, “모든 높은 망대와 견고한 성벽”은 그들의 강한 방어성들을 가리켰을 것이다. “다시스의 모든 배와 모든 아름다운 조각물”은 물질적 부요를 가리켰을 것이다. ‘조각물’이라는 원어는 ‘보물들, 조각품들’이라는 뜻이다. [17-18절] 그 날에 자고한 자는 굴복되며 . . . . 선지자는 “그 날에 자고한 자는 굴복되며 교만한 자는 낮아질” 것이라고 말한다. 하나님께서는 교만한 자를 미워하신다(잠 6:16-17; 8:13).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교만한 자를 물리치신다. 교만한 자는 망하고 만다. 잠언 16:18,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요 거만한 마음은 넘어짐의 앞잡이니라.” 잠언 18:12. 선지자는 또 “여호와께서 홀로 높임을 받으실 것이요”라고 말한다. 하나님은 온 우주의 주권자이시며 왕이시다. 하나님은 홀로 영광을 받으시기에 합당하신 자이시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을 알자. “그러므로 우리가 여호와를 알자. 힘써 여호와를 알자(호 6:3). 우리는 하나님이 인생의 목적이며 최고의 가치 곧 가장 귀한 분이심을 알자. 우리는 오직 하나님만 의지하고 하나님만 높이고 하나님만 따르자! 시편의 히브리어 명칭은 ‘찬양들’이라는 뜻이다. 시편의 주요 내용과 결론은 하나님을 찬송하는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만 높이며 찬양해야 한다. 로마서 11: 36, “이는 만물이 주에게서 나오고 주로 말미암고 주에게로 돌아감이라. 영광이 그에게 세세에 있으리로다. 아멘.” 요한계시록 5:13, “내가 또 들으니 하늘 위에와 땅 위에와 땅 아래와 바다 위에와 또 그 가운데 모든 만물이 가로되 보좌에 앉으신 이와 어린양에게 찬송과 존귀와 영광과 능력을 세세토록 돌릴지어다 하니.” 우리는 하나님만 높이며 따르자. 선지자는 또 “우상들은 온전히 없어질 것이라”고 말한다. 우상은 사람이 고안해낸 것이다. 그것은 사람이 교만 속에서, 무지 속에서, 자기 뜻대로, 자기 원하는 대로 만들어낸 헛된 것이다. 시편 115:4-8, “저희 우상은 은과 금이요 사람의 수공물이라. 입이 있어도 말하지 못하며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며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하며 코가 있어도 맡지 못하며 손이 있어도 만지지 못하며 발이 있어도 걷지 못하며 목구멍으로 소리도 못하느니라. 우상을 만드는 자와 그것을 의지하는 자가 다 그와 같으리로다.” 오늘날의 우상도 마찬가지다. 예를 들어, 돈은 유익하나 돈 우상은 헛되며, 세상의 부귀, 영광, 권세, 명예는 좋아 보이나 실상 다 헛된 우상들이다. 육신의 쾌락도 확실히 헛된 우상이다. 그것은 환난 날에 아무 소용이 없다. 에스겔 7:19, “그들이 그 은을 거리에 던지며 그 금을 오예물같이 여기리니 이는 여호와 내가 진노를 베푸는 날에 그 은과 금이 능히 그들을 건지지 못하며 능히 그 심령을 족하게 하거나 그 창자를 채우지 못하고 오직 죄악에 빠뜨리는 것이 됨이로다.” [19-21절] 사람들이 암혈과 토굴로 들어가서 . . . . 여호와의 날에, “사람들은 암혈[바위굴]과 토굴[땅굴]로 들어가서 여호와께서 일어나사 땅을 진동시키시는 그의 위엄과 그 광대하심의 영광을 피할 것이라”고 선지자는 말한다. 두려운 날이 다가올 것이다. 그는 또, “사람들은 숭배하려고 만들었던 그 은 우상과 금 우상을 그 날에 두더지와 박쥐에게 던질 것이라”고 말한다. 우상들이 쓸모 없고 무가치하고 무익하고 무능한 것임이 드러났기 때문에 사람들은 그것들을 다 던져버릴 것이다. 그들은 바위굴과 험악한 바위틈에 들어가서 여호와께서 일어나사 땅을 진동시키시는 그의 위엄과 그 위대하심의 영광을 피할 것이다. 그 날에 하나님의 위엄과 위대하심의 영광이 나타날 것이며 사람들은 그것을 보고 심히 두려워 떨 것이다. [22절] 너희는 인생을 의지하지 말라. . . . 선지자는 결론적으로 “너희는 인생을 의지하지 말라. 그의 호흡은 코에 있나니 수에 칠 가치가 어디 있느뇨?”라고 말한다. ‘의지하지 말라’는 원어(키들루)는 ‘끊으라’는 뜻이다. 그것은 문맥적으로 볼 때 사람을 높이고 자랑하고 의지하는 것을 끊으라는 뜻으로 이해된다. 선지자는 인생의 호흡이 코에 있으며 수에 칠 가치가 없다고 말한다. 인간은 그의 모든 대단하게 보이는 것들이 그가 죽으면 그것으로 끝나고 다 헛되게 된다. 그러므로 인간을 의지하거나 높이고 자랑하지 말라고 말한 것이다. 이사야 2:12-22까지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우리는 교만을 버려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교만한 이스라엘을 치실 것이다. 그것은 여호와의 날이 임할 때 나타날 것이다. 그 날은 심판과 진노와 징벌의 날이다. 하나님께서는 교만한 모든 사람들을 낮추실 것이다. 교만은 인간의 죄들 중에서 가장 근본적인 죄이다. 교만은 불신앙과 불순종으로 나아간다. 하나님께서는 교만을 매우 미워하신다. 교만한 자는 망하고 만다. 교만한 자는 패망하고 거만한 마음을 가진 자는 넘어진다고 성경은 말한다. 우리는 신앙적 교만, 영적 교만도 버리고 경계해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교만한 자를 물리치시고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베푸신다. 우리는 결코 교만하지 말자. 우리는 모든 교만을 버리자. 둘째로, 모든 헛된 우상을 버리자. 하나님의 심판 날이 오면 우상들은 온전히 없어질 것이다. 사람들은 자기가 경배하려고 만들었던 은 우상과 금 우상을 두더지와 박쥐에게 던질 것이다. 우상들은 사람들의 기도를 듣지 못하고 그들에게 아무 도움을 주지도 못한다. 현대적 우상도 마찬가지이다. 현대인은 인간의 이성이나, 돈이나, 세상적 부귀 영화나, 육신적 쾌락을 하나님보다 더 가치 있게 여기며 살지만, 그것들은 일종의 우상이다. 우리는 그 모든 우상을 다 버려야 한다. 그것들은 하나님의 심판의 날에 헛된 것임이 드러날 것이기 때문이다. 그것들은 참으로 허무한 것들이다. 우리는 모든 우상을 버리자. 셋째로, 우리는 오직 하나님만 의지하고 하나님만 높이자. 교만한 자들은 다 낮아질 것이다. 우상들은 다 없어질 것이다. 모든 교만한 자들과 우상숭배자들은 하나님의 진노의 심판의 날에 하나님의 위엄과 그 위대하심 앞에 두려워 떨며 피할 것이다. 그러므로 선지자는 결론적으로 인생을 의지하지 말라고 말한다. 인생은 수에 칠 가치가 없다고 그는 말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제 오직 하나님, 곧 전지전능하시고 공의롭고 선하시고 영원히 살아계신 하나님만 의지하고 높이자. ----------------------------------------------------------------------------- ◈ 배교와 타협과 혼돈의 시대에 바른 길을 붙들자. ◈ 우리는 성경의 근본적 교리들을 보수하고, 자유주의 신학과 천주교회를 포용하는 배교와 타협, 또 은사운동의 혼란을 반대하고 또 그런 자들과 교제하는 자들도 책망하기를 원한다. 우리는 성경 말씀의 정로(正路)를 붙들기를 원하며 또 그런 자들과만 교제하기를 원한다. 하나님께서 오늘날도 바른 교회들을 부흥시키시기를 기도한다. ----------------------------------------------------------------------------- ♣ www.oldfaith.net에 올려져 있는 현대교회문제와 현대교회문제 자료집 및 옛신앙지(특별호) 등의 자료들을 참고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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