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신앙  2008년 1월 06일 [제12권 1호]   ◆ 매주 발행 ◆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너희는 길에 서서 보며 옛적 길 곧 선한 길이 어디인지 알아보고 그리로 행하라. 너희 심령이 평강을 얻으리라' 하나, 그들의 대답이 '우리는 그리로 행치 않겠노라' 하였으며"(렘 6:16).

 

 

옛신앙

 

Old-time Fait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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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옛신앙'이란, 옛부터 하나님의 선지자들과 주의 사도들이 가졌던 신앙, 오직 정확 무오(無誤)한 하나님 말씀인 신구약 성경에만 근거한 신앙, 오늘날 배교와 타협의 풍조에 물들지 않는 신앙을 의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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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오전설교:                                      모세야 모세야

[출애굽기 3장 1-2절] 모세가 그 장인 . . . .

미디안 광야에 약 40년간 거하면서 모세는 그 장인 미디안 제사장 이드로의 양무리를 쳤다. 하나님의 하시는 일은 사람 보기에 더딘 것 같을 때가 있다.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들어 쓰시고자 하실 때 40년을 기다리셨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는 조급한 마음을 버리고 믿음과 인내심을 가져야 한다. 모세는 그 기간 믿음의 훈련을 받았고 겸손의 훈련을 받았고 인내의 훈련을 받았을 것이다.

어느날 그가 양무리를 광야 서편으로 인도하여 하나님의 산 호렙에 이르렀다. 그때 여호와의 사자가 떨기나무 불꽃 가운데서 그에게 나타나셨다. 본문에서 여호와의 사자는 여호와 하나님 자신과 동일시 된다(4, 5, 7절). 하나님께서는 구약 시대에 천사나 사람의 모습으로 종종 나타나셨다. '떨기나무'(세네)는 일반적으로 나무의 원줄기와 가지들의 구별이 분명치 않은 나무(灌木), 예를 들어 진달래 같은 나무를 가리키는 말이다. 본문의 떨기나무는 아마 검은 딸기나무 같은 가시나무일 것이라고 한다(BDB).

모세가 보니 떨기나무에 불이 붙었으나 가지들이 타서 없어지지 아니하였다. 그것은 신기한 광경이었다. 불이 붙었으나 타서 없어지지 않는 떨기나무는 이스라엘 민족을 상징하는 것 같다. 떨기나무가 보잘것없는 평범한 나무이듯이, 이스라엘 민족은 보잘것없는 평범한 민족이었다. 그러나 지금 이스라엘 백성은 불 같은 고난을 당하고 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백성은 신기하게도 망하지 않고 있었다.

[3-4절] 이에 가로되 내가 돌이켜 가서 . . . .

모세는 그곳을 향해 눈을 돌리며 "가서 그 큰 광경을 보리라. 떨기나무가 어찌하여 타지 아니하는고?"라고 말했다. 그때 여호와께서는 그가 보려고 돌이켜 오는 것을 보셨다. 하나님께서는 떨기나무 가운데서 그를 부르셨다. "모세야 모세야."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어떻게 아셨는가? 그러나 실상 그는 모든 사람을 아신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개인적으로 부르신다. 그는 후에 엘리 제사장 때에 성소 안에서 "사무엘아 사무엘아"라고 어린 사무엘을 부르셨다(삼상 3:10). 그는 후에 자신을 핍박하던 바울을 "사울아 사울아"라고 부르셨다(행 9:4). 하나님께서 부르시는 음성을 들은 모세는 즉시 하나님께 "내가 여기 있나이다"라고 대답하였다.

[5-6절] 하나님이 가라사대 . . . .

하나님께서는 "이리로 가까이 하지 말라. 너의 선 곳은 거룩한 땅이니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고 말씀하셨다. 하나님께서 임재하신 곳은 어디나 거룩한 곳이다. 흙과 먼지가 묻은 신을 벗으라고 말씀하신 것은 세상적이고 죄악된 생각과 생활방식을 버리라는 뜻일 것이다. 하나님과 대면하는 자들은 먼저 자신을 성결케 해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또 "나는 네 조상의 하나님이니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니라"고 말씀하셨다. 이 표현은 15, 16절에도 나온다. 우리가 섬기는 하나님은 우리의 경건한 조상들이 섬기던 하나님이시다. 기독교는 하루아침에 된 종교가 아니고 인류 역사 시초로부터 계시된 종교이다. 하나님과 경건한 열조들 간에는 언약이 있었고 그들을 통해 계시된 진리들이 있었다. 그것이 성경이다. 모세는 하나님 뵈옵기를 두려워하여 얼굴을 가리웠다.

[7-8절]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 . . .

하나님께서는 애굽에 있는 이스라엘 백성의 고통을 정녕히 보고 그들의 부르짖음을 듣고 그들의 근심과 고통을 알고 내려오셔서 그들을 애굽인의 손에서 건져내어 아름다운 땅, 젖과 꿀이 흐르는 땅, 곧 가나안 족속, 헷 족속, 아모리 족속, 브리스 족속, 히위 족속, 여부스 족속의 땅에 이르려 하셨다. '이르려 한다'는 말은 '이르게 하려 한다'는 뜻이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내 백성'이라고 부르셨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선택하신 백성 곧 언약의 백성임을 나타낸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의 고통과 부르짖음을 동정하시며 긍휼히 여기셨다. 구원은 하나님의 긍휼에서 비롯된다(딤후 1:9). 아름다운 땅,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은 장차 임할 복되고 영광스런 천국을 예표한다.

[9-10절] 이제 이스라엘 자손의 . . . .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자손의 부르짖음이 그에게 도달했고 애굽 사람들이 그들을 괴롭히고 학대하는 것도 보셨기 때문에 이제 모세를 바로에게 보내어 하나님의 백성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게 하실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하나님께서는 고통받는 이스라엘을 긍휼히 여기셨고, 모세를 통해 그들을 구원해내시기를 원하셨다. 긍휼의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구원을 시작하시고 이루실 것이다.

[11-12절] 모세가 하나님께 고하되 . . . .

모세는 하나님께 "내가 누구관대 바로에게 가며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리이까?"라고 대답하였다. 그는 자신의 무자격함과 무능력함을 느끼며 대답한 것일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말씀하셨다. "내가 정녕 너와 함께 있으리라. 네가 백성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낸 후에 너희가 이 산에서 하나님을 섬기리니 이것이 내가 너를 보낸 증거니라." 사람은 무자격하고 무능력하지만, 하나님께서 그와 함께하시면 무슨 일이든지 할 수 있다.

[13-14절] 모세가 하나님께 고하되 . . . .

모세는 하나님께 말했다. "내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가서 너희 조상의 하나님이 나를 너희에게 보내셨다고 말하면 그들이 내게 묻기를 '그의 이름이 무엇이냐?'라고 하리니 내가 무엇이라고 그들에게 말하리이까?" 사람의 이름은 그의 인격 곧 그 자신을 나타낸다. 하나님의 이름은 하나님 자신을 나타낸다.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나는 스스로 있는 자니라"라고 말씀하셨다. 또 그는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스스로 있는 자가 나를 너희에게 보내셨다'고 말하라"고 말씀하셨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을 '스스로 있는 자'라고 말씀하셨다. "나는 스스로 있는 자니라." '스스로 있는 자'라는 원어(에예)는 '나는 있다'라는 뜻이다. 하나님은 누가 만든 자가 아니고 처음부터 그냥 계신 분이시다. 그로부터 모든 창조세계가 시작되었고 이스라엘과 인류의 구원역사가 시작되었고 이루어졌고 또 이루어질 것이다.

[15절] 하나님이 또 모세에게 이르시되 . . . .

하나님께서는 또 모세에게 말씀하시기를,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말하기를, '여호와 너희 조상의 하나님 곧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께서 나를 너희에게 보내셨다'고 하라. 이것은 나의 영원한 이름이며 대대로 기억할 나의 표니라"고 하셨다. 본절은 앞절의 '스스로 있는 자'라는 말과 '여호와'라는 말이 연관되어 있음을 보인다. '여호와'라는 말은 '있다'라는 원어(하와)에서 나온 말이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영원자존하시고 불변하심을 나타내는 이름이라고 본다.

[16-18절] 너는 가서 이스라엘 장로들을 . . . .

하나님께서는 모세가 가서 이스라엘 장로들을 모으고 말하기를, "여호와 너희 조상의 하나님 곧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이 내게 나타나 이르시되 내가 정녕 너희를 돌아보았고 너희가 애굽에서 당한 일을 보았노라. 내가 말하였거니와 내가 너희를 애굽의 고난 중에서 인도하여 내어 젖과 꿀이 흐르는 땅 곧 가나안 족속, 헷 족속, 아모리 족속, 브리스 족속, 히위 족속, 여부스 족속의 땅으로 올라가게 하리라고 하셨다"고 하였다. 그들은 모세의 말을 들을 것이다. 16절에 '권고한다'는 원어(파카드)는 '방문한다, 돌본다, 돌아본다'는 뜻이다. 하나님께서는 또 모세가 장로들과 함께 애굽 왕에게 말하기를, "히브리 사람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우리에게 임하셨은즉 우리가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 희생을 드리려 하오니 사흘길쯤 광야로 가기를 허락하소서"라고 하라고 말씀하셨다.

[19-20절] 내가 아노니 강한 손으로 . . . .

하나님께서는 또 모세에게 "내가 강한 손으로 치기 전에는 애굽 왕이 너희의 가기를 허락지 아니하다가 내가 내 손을 들어 애굽 중에 여러가지 이적으로 그 나라를 친 후에야 그가 너희를 보낼 것을 안다"고 말씀하셨다. 이스라엘 백성의 구출은 하나님의 기적의 손길로만 가능한 일이다. 그것이 다음 몇 장에 나오는 10가지 재앙이다.

[21-22절] 내가 애굽 사람으로 이 백성에게 . . . .

하나님께서는 또 "내가 애굽 사람으로 이 백성에게 은혜를 입히게 할지라. 너희가 갈 때에 빈손으로 가지 아니하리니 여인마다 그 이웃 사람과 및 자기 집에 우거하는 자에게 은 패물과 금 패물과 의복을 구하여 너희 자녀를 꾸미라. 너희가 애굽 사람의 물품을 취하리라"고 말씀하셨다. '취한다'는 원어는 '약탈하다'는 뜻이다. 이것은 그들의 오랫동안의 종살이, 즉 고생과 학대받음에 대한 보상이었을 것이다.

본장은 몇 가지 교훈을 준다. 첫째로, 이스라엘의 구원을 주도하시는 자는 다른 그 누구도 아니고 오직 하나님이시다. 이스라엘의 하나님, 곧 성경에 계시된 하나님은 영원하신 하나님이시다. 그는 스스로 계신 자, 곧 여호와 하나님이시다. 그가 맨처음에 천지만물을 창조하셨고 또 그가 만드신 세상을 홀로 섭리하신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정하신 때에 그의 방법으로 이스라엘을 구원하셨고 또 우리 모두를 구원하셨다. 그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나타나셨고 그를 부르셨고 그와 함께하실 것을 약속하셨고 그의 능력과 기적으로 그의 뜻을 이루실 것이다. 우리의 구원은 오직 하나님께 달려 있다. 그러므로 로마서 9:16은 "그런즉 원하는 자로 말미암음도 아니요 달음박질하는 자로 말미암음도 아니요 오직 긍휼히 여기시는 하나님으로 말미암음이니라"고 말했다.

둘째로, 이스라엘의 구원은 하나님의 긍휼과 언약에 근거하였다. 하나님께서는 자기 백성의 고통을 정녕히 보셨고 그 부르짖음을 들으셨고 그 우고(憂苦)를 아셨다(7절). 이스라엘의 부르짖음이 하나님께 도달하였다(9절). 하나님께서는 고통받는 이스라엘을 돌아보셨다(16절). 또 하나님의 긍휼은 조상들에게 주신 언약에 근거하였다. 그래서 그는 자신을 그들의 조상의 하나님,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으로 부르셨다(6, 15절). 우리의 구원은 하나님의 전적인 긍휼에 근거한다. 디모데후서 1:9,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사 거룩하신 부르심으로 부르심은 우리의 행위대로 하심이 아니요 오직 자기 뜻과 영원한 때 전부터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주신 은혜대로 하심이라."

셋째로, 하나님께서는 준비된 인물을 부르신다. 모세는 미디안 광야에서 40년간이나 오랫동안 준비되었다. 미디안 광야는 그에게 믿음의 훈련장, 겸손의 훈련장, 인내의 훈련장이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때에 하나님의 방법으로 일꾼을 부르신다. 하나님의 일을 위한 일꾼을 부르시는 것은 전적으로 하나님 소관이시다. 모든 직분은 궁극적으로 하나님께로 말미암는다(막 3:13- 15; 고전 12:4-6; 엡 4:1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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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오후설교:                          기드온의 300명 용사

[사사기 7장 1-3절] 여룹바알이라 하는 . . . .

미디안과의 전쟁에서 기드온을 따르는 무리가 많았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이 너무 많으므로 미디안을 이스라엘의 손에 붙이지 않겠다고 말씀하셨다. 왜냐하면 그들이 하나님을 거슬러 자긍하며 우리가 우리를 구원하였다고 말할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기드온에게, 모인 무리 중에 두려워 떠는 자는 돌아가라고 말하게 하셨고 2만 2천명이 돌아갔고 1만명이 남았다. 그 1만명은 하나님과 이스라엘을 위해 용기를 가진 자들이었다.

[4-8절] 여호와께서 또 기드온에게 이르시되 . . . .

하나님께서는 만명도 아직 많다고 말씀하시며 그들을 물가로 데려 내려가게 하셨다. 거기서 물을 마시는 모습에 따라 두 부류가 나뉘었다. 하나는 손으로 물을 움켜 입에 대고 혀로 핥아 마시는 자들인데, 조심성이 있는 자들이며 그들의 수는 300명이었다. 나머지 9,700명은 무릎을 꿇고 마셨는데, 그것은 조심성이 없음을 드러낸다.

하나님께서는 그 300명으로 그들을 구원하시며 미디안 사람을 그의 손에 붙이시기를 원하셨다. 남은 백성은 자기 처소로 돌려보내게 하셨다. 기드온은 하나님의 지시대로 하였다. 그는 하나님을 믿었고 순종했다. 믿음이 없다면 그렇게 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를 따른 300명도 믿음과 용기와 일치된 마음이 있었던 것 같다. 그들은 두려워하지 않았다. 그들은 "어떻게 300명으로 저 큰 미디안 군대와 싸운단 말인가?" 하고 불평하며 그를 떠나지 않았다.

[9-14절] 이 밤에 여호와께서 기드온에게 . . . .

그날 밤 하나님께서는 기드온에게, "일어나 내려가서 적진을 치라. 내가 그것을 네 손에 붙였느니라"고 말씀하셨다. 그러나 기드온 속에는 두려운 마음이 있었다. 하나님께서는 기드온으로 하여금 미디안 진에 들어가 한 군사의 하는 말을 엿듣게 하셨다. 그것은, 한 사람이 보리떡 한 덩어리가 미디안 진으로 굴러 들어와 한 장막에 이르러 그것을 쳐서 무너뜨렸다는 꿈 이야기이었다. 그 말을 들은 다른 사람이 "그것은 이스라엘 사람 기드온의 칼이다. 하나님이 미디안 모든 군대를 그의 손에 붙이셨다"고 말했다. 하나님께서는 미디안 군인들 가운데 두려운 마음을 심어주셨다. 그것은 기드온에게 확신을 주었다.

[15-20절] 기드온이 그 꿈과 해몽하는 . . . .

기드온은 그 꿈과 해몽하는 말을 듣고 하나님께 경배하고 이스라엘 진중에 돌아와 "일어나라. 여호와께서 미디안 군대를 너희 손에 붙이셨느니라"고 말했다. 그는 그 전쟁에서 한 방책을 세웠다. 그는 300명을 세 대로 나누고 각 손에 나팔과 빈 항아리를 들리고 항아리 안에는 횃불을 감추게 하고 그들에게 말했다. "너희는 나만 보고 나의 하는 대로 하되 내가 그 진 가에 이르러서 하는 대로 너희도 그리하여 나와 나를 좇는 자가 다 나팔을 불거든 너희도 그 진 사면에서 또한 나팔을 불며 이르기를 여호와를 위하라, 기드온을 위하라 하라." 기드온과 그들을 따른 100명은 2경 초, 즉 밤 10-11시경에 미디안 진 가에 이르렀다. 보초병이 교대하는 시간이었다. 그 시간은 군인들이 피곤하여 쉴 시간이며 마음이 해이해질 시간이었다. 기드온의 군대는 나팔을 불며 손에 가졌던 항아리를 부수었다. 세 대가 다같이 나팔을 불며 항아리를 부수고 좌수에 횃불을 들고 우수에 나팔을 들어 불며 외쳤다. "여호와와 기드온의 칼이여." 작전은 지시대로 잘 행해졌다.

[21-23절] 각기 당처에 서서 . . . .

미디안 진을 사면으로 에워쌌기 때문에 그 온 적군은 달음질하고 부르짖으며 도망하였다. 그 300명이 나팔을 불 때 여호와께서 그 온 적군으로 자기들끼리 서로 칼날로 치게 하셨으므로 적군이 도망하였고 이스라엘 사람들은 납달리와 아셀과 므낫세에서부터 모여서 미디안 사람을 쫓았다.

[24-25절] 기드온이 사자를 보내어 . . . .

또 기드온은 에브라임 온 산지에 사자를 보내어 내려와서 미디안 사람을 치고 그들을 앞질러 요단 나루턱을 취하라고 요청하였고 이에 에브라임 사람들이 다 모여 요단 나루턱을 취하고 또 미디안 두 방백 오렙과 스엡을 사로잡아 죽였고 기드온에게로 나아왔다.

본장은 무엇보다 전쟁의 승리가 하나님께 있음을 교훈한다. 하나님께서는 군사들의 수가 많을 때 원수들을 그들의 손에 붙이지 않으셨다. 그것은 그들이 하나님을 거슬러 자긍하고 자기들의 손이 자기들을 구원했다고 말할 것이기 때문이었다. 본장은 하나님께서 미디안 사람들을 기드온의 손에, 또 이스라엘 군대의 손에 붙이셨다고 말한다(9, 15절). 그 전쟁에서 이스라엘의 승리는 전적으로 하나님의 개입하심으로 이루어졌다. 기드온의 300명의 군사들이 나팔을 불 때 하나님께서는 그 온 적군으로 자기들끼리 칼날로 서로 치게 하셨다. 그 전쟁은 군사력으로 이긴 것이 아니고, 확실히 하나님의 역사로 이겼다. 전쟁의 승리는 하나님께 있다. 우리는 이 진리를 깨닫고 세상에서의 여러 가지 영적 싸움에서 언제나 하나님만 의지하고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유지하고 하나님께만 순종해야 한다. 그래야 승리할 수 있다.

그러나 본문은 또한 인간편에서도 몇 가지 준비가 필요함을 보인다. 우선, 우리는 두려워하는 마음을 버려야 한다. 그것은 믿음 없음을 나타낸다. 두려워하는 자는 전투에 도움이 되지 않고 오히려 방해가 될 뿐이다. 또한 우리는 조심성을 가져야 한다. 우리는 전투에서 항상 깨어 근신해야 한다. 또 우리는 하나님의 지시에 대해 믿음으로 항상 순종해야 한다. 인간적으로 이해가 안 되고 불가능해 보이는 일이라도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이면 가능한 일이다. 또 우리는 솔선수범해야 한다. 기드온은 병사들에게 '나 하는 대로 따라 하라'고 말했다. 우리는 말만 하고 실천이 없는 자가 되지 말고 모범을 보이는 자가 되어야 한다. 또 우리는 지혜롭고 민첩하고 부지런해야 한다. 승리가 작정된 전투지만, 기드온은 300명의 군사를 세 대로 나누었고 나팔과 빈항아리를 준비했고 밤 2경 초에 작전을 개시했다. 또 그는 에브라임 온 산지에 사자들을 보내어 미디안 사람들을 치고 그들을 앞질러 요단 나루턱을 취하게 하였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이지만, 인간편에서 우리가 해야 할 의무가 있다. 우리는 하나님을 의지하며 우리가 해야 할 몫을 다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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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교회문제:                                 노르웨이 루터교의 동성애관

노르웨이 루터교 총회는 치열한 격론 끝에 동성애 성도에 대한 안수를 인정하는 법안을 투표로 결정했다고 한다(기독교보, 2007. 11. 24, 8쪽). 그러나 이러한 결정은 하나님의 말씀을 정면으로 어기는 배교적 결정이다. 성경은 동성애를 큰 죄로 간주하며 정죄한다. 우리가 동성애자들을 사랑하며 구원의 길로 이끌어야 하지만, 동성애는 하나님 앞에서 큰 죄임을 깨우쳐야 한다. 동성애자는 그 동성애의 죄로부터 구원을 얻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하나님의 영원한 지옥 형벌을 면할 수 없다.

   북한 정치범 50-100만명

영국의 크리스천 투데이는 북한 오픈도어 선교회의 최근 조사를 인용, 북한에 최소 8곳에 정치범 수용소가 있으며 수감자 수가 50-100만명에 달한다고 보도했다. 또 그 선교회는 "선교회의 북한 네트워크를 활용해서 알아본 결과, 적어도 20만명의 지하교회 교인들이 북한에 있으며 40만명에서 많게는 100만명에 가까운 인구가 하나님을 영접한 기독교인들"이라고 한다(기독교보, 2007. 10. 27, 7쪽).

◈ 배교와 타협과 혼의 시대에 바른 길을 붙들자.

◈ 우리나라의 이념적 안정을 위해 기도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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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효성, 현대교회문제. 178면. 4,000원(송료 포함).

김효성, 신약성경강해. 1192면. 18,000원(송료 포함).

김효성, 기독교윤리. 225면. 4,000원(송료 포함).

김효성, 현대교회문제 자료집. 330면. 4,000원(송료 포함).

김효성, 기독교 교리 개요. 96쪽. 1,000원

김효성, 기독교 교리 개요(중국어 역). 96쪽.

  [추천하는 책]

◆ 김효성, 공산주의 비평. 28쪽. 무료.

◆ 김성욱, 대한민국 적화보고서. 355쪽. 13,000원.

◆ 이상돈, 위기에 처한 대한민국. 559쪽. 18,000원.

--오늘 우리 사회의 이념적 문제를 잘 증거한 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