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신앙  2008년 11월 30일 [특별142호]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너희는 길에 서서 보며 옛적 길 곧 선한 길이 어디인지 알아보고 그리로 행하라. 너희 심령이 평강을 얻으리라' 하나, 그들의 대답이 '우리는 그리로 행치 않겠노라' 하였으며"(렘 6:16).

 

 

옛신앙

 

Old-time Faith

www.oldfaith.net

   '옛신앙'이란, 옛부터 하나님의 선지자들과 주의 사도들이 가졌던 신앙, 오직 정확 무오(無誤)한 하나님 말씀인 신구약 성경에만 근거한 신앙, 오늘날 배교와 타협의 풍조에 물들지 않는 신앙을 의미합니다.

121-884 서울 마포구 합정동 364-1 합정동교회  김효성 목사,
02-334-9874,  Fax: 02-337-4869,  E-mail:
oldfaith@oldfaith.net


현대사회문제:                           삐라의 진실  

[강철환, “삐라의 진실,” 조선일보, 2008. 10. 29, A30쪽.]

김일성․김정일 정권의 반세기가 넘는 세습독재가 가능했던 것은 무자비한 공포독재에 기인하지만, 중요하게는 주민들이 외부와 소통하는 것을 완전하게 단절시키는 데 성공했기 때문이다.

과거 구 공산국가들도 공산당에 의한 무지막지한 독재를 실시했지만 라디오까지 통제한 나라는 드물다. 북한에서는 라디오는 물론 그 어떤 것이라도 외국 서적이나 영상물들을 유통시키거나 본 자는 극단적 처벌을 받는다.

햇볕정책이 초기에 일부에서나마 공감을 얻은 것은 햇볕을 통해 봉쇄된 북한 내부를 뚫을 수 있다는 기대감 때문이었다. 하지만 햇볕정책 주창자들은 김정일 정권의 본질을 파악하지 못했다.

같은 공산국가지만 중국과 동유럽 국가들이 개혁 개방을 통한 대변혁의 시대를 맞게 된 것은 공산당 내에 아주 작은 민주주의가 작동했기 때문이다. 공산당 정치국 위원들이 나름대로의 권한을 가지고 정책을 논의하고, 여기서 결정된 정책을 수령이 승인하고 집행하는 이른바 공산당의 정상적 시스템이 가동된 국가는, 궁핍하지만 최소한 굶어 죽지는 않았다.

공산당이 지배하는 국가지만 지도자가 공산당을 사유화하거나 일방적으로 지도하는 스탈린과 마오쩌둥(毛澤東)의 우상숭배 독재가 잠시 나타난 적도 있기는 하다. 하지만 황장엽 전 노동당 비서는 “현재의 김정일 정권을 스탈린 시대와 비교하지만 그것은 잘못됐다. 스탈린은 사람들을 마구 죽이기는 했지만 최소한 당내의 토론을 막지 않았고, 마오도 가족을 후계자로 세울 생각은 추호도 안 했다”고 했다.

그는 현재의 김정일 체제는 과거 공산당 역사에서는 찾아 볼 수 없는 ‘사이비 봉건교주 국가’로 규정했다. 햇볕정책이 실패할 수밖에 없었던 것은 북한을 정상적인 공산주의 국가로 착각했기 때문이다. 서독이 동독에 지원한 현금과 식량이 공산당이 독식할 수 없는 구조하에서 동독인들의 삶의 질을 높이는 데 사용됐다면, 남한의 대북 지원은 철저하게 김정일 개인과 그 권력을 지탱하는 군대로 흘러 들어갔다는 차이가 있다.

동독인들은 통일 전에도 마음대로 서독의 TV와 라디오를 보고들을 수 있었지만 북한에서 남한 방송을 청취하다 잡히면 정치범 수용소에 가야 한다. 지난 10년간 수만 명의 남한 사람들이 북한을 다녀왔지만 그것은 준비된 대남요원들과의 만남이었을 뿐, 단 한 명의 북한주민들과도 소통할 수 없었다. 최근 북한이 먼저 제의해 열리는 남북군사실무회담에서 북측 관계자들이 ‘삐라’문제를 거론하면서 광분하는 것은 통일전선부가 최선을 다해 만들어 놓은 모기장 전략이 삐라 앞에서 속수무책 무너지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하나부터 열까지 거짓으로 만들어진 정일 위원장에 대한 모든 진실이 담긴 ‘삐라’는 휴전선에 밀집한 군인들과 북한에서 가장 바깥 세상에 깜깜하기로 소문난 황해도 농민들에게 큰 충격을 주고 있다.

김정일 정권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진실이 북한주민들에게 알려지는 것이다. 하지만 북한주민들에게도 진실을 알 권리가 있다. 때문에 냉전체제와 햇볕정책을 뛰어넘는 남북관계의 성패는 북한주민들과의 소통을 어떻게 해결하는가에 달려 있다.

민간단체를 향해 북에 풍선 보내는 것을 자제하라고 쓸데없는 걱정이나 할 것이 아니라, 북한정권에 라디오를 들을 수 있는 초보적인 자유를 먼저 줄 것을 요구하는 당당한 정부가 돼야 한다. 이명박 대통령에 대해서 온갖 입에 담지 못할 폭언을 국가 언론을 통해서 자행하는 북한에 대한 강력한 비판을 남한이 먼저 해야 하고, 소통의 자유야말로 진정한 ‘우리 민족끼리’임을 북한측에 요구해야 한다.

 

‘평양의 신(神)’ 앞에

남(南)도 엎드리자고?

[류근일, “‘평양의 신(神)’ 앞에 남(南)도 엎드리자고?” 조선일보, 2008. 11. 25, A30.]

유엔 총회 제3위원회가 북한 인권결의안을 또 통과시켰다. 우리 정부도 51개 제안국의 하나로 참여했다. 노무현 정부 때에 비하면 현격한 발전적 현상임에 틀림없다. 결의안은 ‘북한 내의 조직적이고 심각한 인권침해’에 대한 우려, ‘인권 침해자에 대한 독립적인 사법기관의 처벌’ 요구, 그리고 ‘외국인 납치 문제 해결’ 촉구 등을 담고 있다.

이런 소식을 들으면서 느끼는 것은 그러나, 그런 결의안을 백 번 통과시켜도 한국 사회 일각의 경우는 ‘쇠귀에 경 읽기’ 아니냐는 것이다. ‘북한 인권? 또 그 소리…’ ‘수구냉전 세력의 상투적인 선전전(戰)’이라는 식이다. 민주화 이후에 와서도 남한의 인권에 대해서는 그토록 열을 내는 국가인권위원회도, 일부 지식인들도, 일부 단체들도, 여야 ‘똑똑이'들도, 모두가 그저 ’남의 일‘이란 표정이다. 그러나 북한 인권문제라는 것이 과연 그렇게 별것 아닌 것인가? 이 문제를 따지기 위해선 2006년 1월 25일 유럽 평의회(Council of Europe)가 스트라스부르에서 어떤 결의안을 채택했는지 알아보아야 한다.

유럽 평의회는 그때 소련권 붕괴 15주년을 맞아 전체주의적 공산주의의 80여 년간에 걸친 인권유린을 규탄하는 결의안을 통과시켰다. 그것은 일찍이 뉘른베르크 전범재판이 나치스의 인권유린을 단죄한 것과 비견되는 것이었다. 결의안은 “공산주의는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범죄적인 행위를 통치구조에 내포(內包)시켰다”고 했다. 바로 개별적 집단적 학살, 집단수용소의 처형, 굶겨 죽이기, 강제 이주(移住), 고문, 노예노동, 소수민족 박해, 종교탄압, 양심․표현․언론․출판의 자유 박탈 등이 그것이다.

이 점에서 “나치즘과 공산주의는 본질적으로 서로 다를 바가 없다"는 것이 유럽 평의회의 진단이었다. 청소년 동원, 선전선동, 세뇌교육, 병영화(兵營化), 개인숭배, 반대자 제거… 등 모든 점에서 양자는 똑같다는 것이다. 자유민주주의와 사회민주주의가 계승한 유럽의 계몽사상이 그처럼, 볼셰비즘을 나치즘에 대한 것과 똑같은 강도로 규탄한 것은 너무나 당연했다.

유엔 총회 제3위원회의 북한 인권 결의안도 유럽 평의회의 그런 정신을 직선적으로 이어받는 것이다. 결의안 자체도 유럽 평의회가 많이 추진해 왔다. 이에 대해 북한은 ‘존엄한 우리 체제’에 대한 도전이라고 반발했다. 나치스들도 뉘른베르크 재판에 대해 '존엄한 우리 체제' 운운하며 반발했을까? 존엄? 존엄이란 무엇인가? 수용소 군도(群島)의 '완전통제 구역'을 운영하는 것이 존엄하다는 뜻일까?

그러나 북한 당국자는 당사자인 만큼 그들이 반발하는 것은 어쩔 수 없다. 문제는 한국의 일부도 북한이 신성시하는 개인숭배 체제에 대해 민간인들도 시비해선 안 된다고 공언하고 있다는 점이다. 남북 간의 ‘상호비방 금지’ 합의에 따라 남한의 시민사회도 김정일 폭정과 인권말살에 함구해야 한다는 식이다. 이것은 정말 무서운 이야기다. 대한민국 헌법상의 양심의 자유, 표현의 자유를 외면하는, 그래서 우리가 향유하는 민주적 기본질서를 경시하는 언동이기 때문이다.

남북 간의 원만한 대화를 위해 당국자들이 말을 신중히 해야 할 필요는 물론 있다. 그러나 시민사회도 북한 사람들이 신처럼 여기는 김정일을 비판해선 안 된다니, 그렇다면 예컨대 언론의 정당한 비판도 일괄 ‘비방’으로 몰아 금지시켜야 할 판인가? 그런 그들이 북한 관영매체가 대한민국 60년사를 일관되게 ‘사대매국’이라고 비방하는 데 대해서는 과연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하다.

북한 인권 운동가들도 대북 전단지 내용을 되도록 정제된 문구로 다듬을 필요는 있다. 그에 대한 당국의 우려와 자제 요청에도 그만한 고충은 있을 것이다. 그러나 민간단체들의 헌법적 권리를 ‘고압가스 관리법’으로 제약하자는 일부의 발상은 ‘잔꾀’ 수준이다. 그러려면 아예 유엔이 ‘불가침의 김정일’을 건드리는 것도 ‘고압가스’로 막아 보시지….

 

순교당한 북한 기독교인

모두 3만명 넘어

[김창범, “순교당한 북한 기독교인 모두 3만명 넘어,” 미래한국, 2008. 11. 1, 2쪽; 편집위원.]

6․25전쟁이 끝난 후 현재까지 최소 1만 5,000여 명의 북한 기독교인들이 신앙을 이유로 처형당한 것으로 최근 월간조선(10월호)이 보도했다. 이러한 사실은 이반석 목사(모퉁이돌 선교회 총무)의 미국 풀러신학대 목회학박사 학위 논문인 “북한 지하교회에 대한 선교학적 이해”란 제목의 글에서 밝혀진 것으로 지난 9월 말 미국 선교학회에서 공식적으로 발표된 바 있다.

이반석 목사는 이 논문에서 모퉁이돌 선교회 총무로서 사역하면서 북한 지하교회와 관련한 여러 문헌과 국방부 자료, 탈북민들의 증언 등을 종합한 결과 1953년 이후 지금까지 기독교 신앙을 이유로 북한에서 처형된 북한 기독교인 수가 모두 1만 5,657명으로 확인되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 숫자는 제한된 경로를 통해 일부를 확인한 것일 뿐 파악되지 않은 경우가 더 많을 것으로 보여 최소한 3만 명 이상의 기독교인이 순교했을 것으로 그는 추정했다. 1958년 ‘중앙당집중지도사업’을 통해 처형된 기독교인을 비롯하여 파악되지 않은 처형 사례가 상당수에 이른다는 분석이다.

북한은 1953년부터 1972년까지 교회말살정책을 전개했고 이 기간에 희생된 기독교인이 1만897명에 달하는 것으로 파악됐다고 한다. 이후 북한에서는 기독교를 비롯한 모든 종교의 자취가 사실상 사라졌다.

하지만 ‘중앙당집중지도사업’ 등 북한의 혹독한 종교말살정책에도 불구하고 북한에서 기독교의 생명이 아주 끊어진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그 신앙의 생명이 끈질기게 이어지고 있음을 1972년 이후 북한 지하교회 활동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고 한다.

확인된 바에 의하면 1972년부터 1988년까지 은밀한 지하교회 활동이 계속되었고 이 기간에 모두 299명이 처형을 당해 지하교회는 더욱 지하로 숨어 들어갈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1995년까지 7년간 기독교인 순교자수는 두 배 이상 증가해 741명에 이르렀는데 소위 ‘네트워크’ 조직으로 지하교회가 다시 성장하였기 때문이라고 한다. ‘네트워크’란 지도자 아래 개별적 라인을 구성하여 그룹별로 조직화된 것을 말한다.

1995년부터 북한 지하교회는 급변하기 시작했다. 중국에서 활발하게 일어난 기독교가 여러 경로를 통해 북한에 전해졌기 때문이다. 화교와 조선족에 의한 성경보급과 복음전도가 활발했다. 이 기간에 순교당한 기독교인은 3,720명에 달했는데 순교자수가 크게 증가한 것은 북한 기독교의 교세도 커졌다는 반증이다.

탈북민들의 증언에 의하면 적발된 지하교인들은 대부분 잔인하게 처형되었다고 한다. 1973년 11월 30일 함경남도 신흥군에서 벌어진 공개처형 장면은 차마 형언하기 어려울 정도다.

“안전원들이 달려들어 세 명의 노인들을 끌어다 철판 위에 눕히고 머리를 압축판 쪽으로 밀어 넣었다. 군중 속에서 선정적인 외침이 나왔다. ‘저 인간쓰레기들을 인민의 이름으로 처단하라!’ 작동 구령과 함께 25톤급 프레스가 서서히 작동하기 시작했다. 압축판이 노인들의 머리를 향해 조여들고 있었다. 잠시 후, 두개골이 터지는 소리와 함께 뇌수와 선혈이 사방으로 튀었다.”

논문은 지역별 순교자 통계를 통해 지하교회가 북한 전역에 걸쳐 퍼져 있음을 입증하고 있다. 가장 많은 기독교인이 적발된 곳은 평안북도로서 총 9,444명이 처형됐다. 그 가운데 상당수가 1958년 ‘중앙당집중지도사업’ 시기 전후에 희생된 것으로 알려졌다.

함경북도의 경우는 초기에 32명에 불과했던 순교자가 1995년 이후 2,111명으로 급증했다. 이것은 중국 접경지역을 통해 기독교가 유입되었다는 증거이다. 특히 평균 150명 단위의 ‘네트워크’ 규모로 적발된 수가 1,310명에 달하는 것으로 볼 때 지하교회의 조직화가 상당히 진전됐음을 알 수 있다.

지하교회 네트워크는 현재 꾸준히 확장되고 있으며 개인과 가족 중심의 기독교 신앙은 소수에 불과한 것으로 밝혀지고 있다. 지금까지 209명의 개인이 적발된 반면 그룹이나 네트워크를 통해 적발된 지하교인은 각각 6,677명과 8,628명으로 나타났기 때문이다. 이것은 북한사회에서 기독교의 대중화가 급속하게 이루어지고 있음을 보여주는 매우 주목할 만한 현상이다.

이반석 목사는 논문에서 북한 기독교를 역사적으로 볼 때 1995년이 가장 중요한 시기인 것으로 평가했다. 1995년 이전에는 6․25전부터 신앙을 지켜온 고(高)연령층이 지하교회의 주축을 이루었으나 1995년 이후는 중국을 여행하고 온 40대 미만의 젊은 세대의 활동이 두드러졌다고 한다. 다시 말해 1995년은 ‘폐쇄’를 지향하는 북한체제에도 불구하고 ‘개방’의 욕구로 가득한 젊은 세대에 의해 북한 기독교의 중심축이 교체된 시기였다는 말이다.

또 논문은 북한의 기독교 인구에 대해 현재 나타난 기독교인은 모두 1,000여 지하교회에서 13만 5,000명이 활동하는 것으로 집계했다. 이것은 북한 조선그리스도교연맹(조그련)이 공식 발표한 1만 2,000명을 훨씬 넘는 숫자이다. 그러나 기독교인 수는 추정에 불과할 뿐 단정할 수는 없으나 급속히 증가하고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는 주장이다.

그리고 북한에서의 전도는 은밀한 개인전도가 가장 많고 중국여행이나 라디오, 비디오, 성경책, 직접 계시 등을 통해 이루어지고 있다고 한다. 북한이 종교말살을 획책하지만 중국을 통한 문화의 접촉을 통해 전해지는 기독교 복음의 물줄기는 결코 막을 수 없음을 다시 확인시켜준 셈이다.

월간 조선은 미래한국신문이 특종 보도한 남포 기독교인 처형사건(7월 23일자)을 보도하면서 북한 지하교회의 수난과 지하교인들의 울부짖음을 전했다. 특히 모퉁이돌 선교회의 이삭 목사는 “오늘도 북한 지하교인들은 ‘우리 여기 있어요. 우리를 도와주세요’라고 대한민국을 향해 부르짖고 있다”고 했다.

KAL 진실 뒤집으려 김현희씨

테러해 온 국정원․TV들

[사설: “KAL 진실 뒤집으려 김현희씨 테러해 온 국정원․TV들,” 조선일보, 2008. 11. 27, A31쪽.]

1987년 대한항공(KAL) 858기 폭파사건의 범인 김현희씨는 지난달 이동복 북한민주화포럼 대표에게 73쪽의 자필 편지를 보내 “노무현 정부 때 국가정보원이 MBC․KBS․SBS 방송 3사를 동원해 KAL기 사건이 조작됐다는 의혹을 부풀리는 공작을 꾸몄다”고 밝혔다. 김씨는 “방송과 인터뷰하라는 국정원 지시를 거부한 뒤 살던 곳에서 추방돼 5년째 도피생활을 하고 있다”고 했다. 2003년 11월 MBC PD수첩을 시작으로, SBS, 이듬해 KBS가 ‘김현희는 안기부가 조작한 인물’의 가능성을 담은 방송을 내보냈다.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 같은 단체도 기자회견을 갖고 의혹을 제기했다.

김씨는 편지에서 “(노무현 정부 출범 첫해인) 2003년 10월 국정원 모 직원으로부터 ‘국정원 내부가 시끄러우니 외국으로 이민가라’고 권고받았는데, 국정원 담당관으로부터 수차례 MBC PD수첩에 출연하라는 요청을 받았지만 완강히 거부한 게 큰 화근이 됐다”고 했다. 김씨는 “방송 3사 기자들이 일제히 집 주변을 취재하기 시작했고 결국 사는 곳이 노출돼 어느 날 새벽 아이들을 업고 피신해야 했다”고 밝혔다.

MBC PD수첩은 2003년 11월 18일 ‘16년간의 의혹, KAL 폭파범 김현희의 진실’을 내보내며 ‘김현희는 북한 공작원이 아니다’고 주장해 온 사람들에게 수백 만 시청자들 앞에 서는 무대를 만들어줬다. 지난 4월 미국 쇠고기의 광우병 의혹을 만들어낼 때와 비슷한 선동방식이다. PD수첩이 나간 지 닷새 뒤인 11월 23일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이 기자회견을 갖고 이른바 ‘7대 의혹’을 제기했다. 11월 29일엔 SBS ‘그것이 알고 싶다’도 같은 내용을 다뤘고 KBS는 이듬해 5월 ‘일요스페셜’에서 2부작으로 다른 방송들이 전한 내용을 확대해서 보도했다. 김씨를 향해 국정원과 방송 3사, 각종 단체들이 총공세를 편 것이다.

김씨는 “MBC와 SBS는 나의 출연 거부가 못마땅했는지 거주지를 촬영해 노출시켰다”고 했다. 그는 신분과 거주지가 노출되면 언제든 북한의 공격을 받을 수 있는 인물이다. 실제로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전처(前妻) 성혜림의 언니 아들로 남한에 귀순해 북한 체제를 공개 비판했던 이한영씨는 1997년 북한 공작원으로 추정되는 인물에게 살해됐다.

노무현 정부가 만든 각종 과거사 위원회도 김씨를 가만두지 않았다. 2005년 국정원 ‘과거사발전위’, 2007년엔 ‘진실화해위원회’가 김씨를 조사하려 했지만 응하지 않았다고 한다. 김씨는 “이미 사법부가 세 번이나 재판한 것을 과거사발전위가 4심을 하고 진실화해위가 5심을 하는 행위는 인민재판이나 다름없다”고 했다.

1987년 사건 당시 김씨를 집중 조사했고 이후 줄곧 김씨를 보호 감독해 온 국정원이 정권 코드에 맞추겠다며 지난 5년 동안 이런 일을 벌여 왔던 것이다. 노무현 정권 5년 동안 벌어진 ‘과거사 뒤집기’의 광풍이 남긴 부끄러운 흔적이다.

김씨가 편지에서 주장한 내용이 사실인지를 규명하는 작업을 즉각 시작해야 한다. 무엇보다 먼저 막대한 국가 예산으로 운영되는 국정원과 노무현 정권 등장 이래 우후죽순(雨後竹筍)처럼 돋아나 국민 세금을 빨아먹었던 과거사위원회가 정권과 코드를 맞추기 위해 연약한 한 여성을 박해해 왔던 ‘권력 테러’의 진실이 명확히 밝혀져야 한다. 그리고 그 총대를 앞장서 메 온 방송 3사는 스스로 진실을 밝히고 사과해야 마땅하다.

◈ 우리나라의 이념적, 경제적 안정을 위해 기도합시다.

 ------------------------------------------------------------------------

책 안내

입금 후에 전화주시면, 다음날 보내드립니다.

전화: 02-334-8291, 계좌: 농협 373-02-123067 김효성

책 가격은 송료가 포함된 금액입니다.

● 김효성, 현대교회문제. 176쪽. 3,000원.

현대교회의 교리적, 윤리적 주요 문제들에 대해 논평함.

● 김효성, 자유주의 신학의 이단성<신간>. 171쪽. 3,000원.

현대 자유주의 신학에 관한 자료들의 모음집. 

● 김효성, 현대교회문제 자료집. 330쪽. 4,000원.

● 김효성, 기독교 윤리. 224쪽. 4,000원.

● 김효성, 신약성경강해. 1192쪽. 18,000원.

● 김효성, 에스겔 강해. 246쪽. 2,000원.

● 김효성, 창세기 강해. 414쪽. 5,000원.

● 김효성, 여호수아 강해. 130쪽. 2,000원.

● 김효성, 아가서 강해. 87쪽. 1,000원.

www.oldfaith.net에 올려진 자료들을 참조하세요. 

---------------------------------------------------------------------------------

'근본주의'는 성경의 근본교리들을 보수하고 자유주의 신학과 에큐메니칼 운동과 은사운동을 배격하고, 또 자유주의자들이나 포용주의자들과 교제하는 신복음주의 혹은 타협적 복음주의에 반대하는 입장과 노선을 가리킨다. ● 많은 사람들이 근본주의라는 말을 잘못 이해하고 비난하는 것 같으나, 오늘날 기독교계의 배교와 타협과 혼란의 상황에서 근본주의는 바른 입장을 적절히 표현하며 이 말 외에 오늘날 성경적 바른 입장을 표현할 만한 좋은 말이 없다고 본다. ● 그러므로 우리는 한국에도 근본주의적 교회들과 교단들이 있어야 하고 또 자유주의적 한국기독교회협의회[NCC]나 신복음주의적 한국기독교총연합회[한기총], 또 근래에 구상되는 '한국교회연합'과 같은 잡동사니와 구별되는 근본주의적 초교파 협의체가 매우 필요하다고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