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신앙 2009년 12월 6일 [제13권 49호] ◆ 매주 발행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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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너희는 길에 서서 보며 옛적 길 곧 선한 길이 어디인지 알아보고 그리로 행하라. 너희 심령이 평강을 얻으리라' 하나, 그들의 대답이 '우리는 그리로 행치 않겠노라' 하였으며"(렘 6:16). |
옛신앙
Old-time Faith www.oldfaith.net |
'옛신앙'이란, 옛부터 하나님의 선지자들과 주의 사도들이 가졌던 신앙, 오직 정확 무오(無誤)한 하나님 말씀인 신구약 성경에만 근거한 신앙, 오늘날 배교와 타협의 풍조에 물들지 않는 신앙을 의미합니다. |
121-884
서울 마포구 합정동 364-1 합정동교회 김효성 목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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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오전설교: 바다 위로 걸어오심 [성경본문] 마태복음 14:22-33 [22-23절] 예수께서 즉시 제자들을 재촉하사 자기가 무리를 보내는 동안에 배를 타고 앞서 건너편으로 가게 하시고 무리를 보내신 후에 기도하러 따로 산에 올라가시다. 저물매 거기 혼자 계시더니.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여자와 아이 외에 오천 명을 먹이신 놀라운 신적 기적을 행하신 후에, 예수께서는 즉시 제자들을 재촉하여 자기가 무리를 보내는 동안에 배를 타고 앞서 갈릴리 바다 건너편으로 가게 하셨습니다. 그는 무리를 다 보내신 후에 기도하러 따로 산에 올라가셨습니다. 날이 저물었고 그는 산에 혼자 계셨습니다. 사람으로 오신 예수님은 기도하셨습니다. 신성을 가지신 그가 기도하셨다면 우리는 얼마나 더 기도해야 하겠습니까? 비록 우리들 속에 하나님의 영 곧 성령께서 계시지만, 우리의 몸과 마음은 심히 연약하여 하나님의 위로와 힘이 늘 필요합니다. 기도하는 자는 그것을 얻을 것입니다. 모세는 말하기를,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서 우리가 그에게 기도할 때마다 우리에게 가까이 하심과 같이 그 신의 가까이 함을 얻은 나라가 어디 있느냐?"고 했습니다(신 4:7). 다윗은, "기도를 들으시는 주여, 모든 육체가 주께 나아오리이다"고 고백했습니다(시 65:2). [24절] 배가 이미 육지에서 수리나 떠나서 바람이 거슬리므로 물결을 인하여 고난을 당하더라. 제자들이 탄 배는 바다 가운데 있었습니다. "육지에서 수리나 떠나서"라는 구절은 헬라어 전통본문에는 "바다 가운데 있어"라고 되어 있습니다(KJV). '수리(數里)'라는 말의 '리'(스타디온)는 약 180미터를 가리킵니다. 갈릴리 바다는 긴네렛 바다(민 34:11) 혹은 게네사렛 호수(눅 5:1)라고 불리는 타원형 바다인데, 남북의 직경은 대략 약 21킬로미터 즉 합정동에서 안양이나 군포까지이며, 동서의 직경은 대략 약 11킬로미터 즉 합정동에서 성수동이나 뚝섬까지입니다. 제자들이 탄 배는 바다 가운데서 거센 바람과 흉흉한 물결로 인해 어려움을 당하고 있었습니다. 바로 전날 놀라운 떡 기적을 체험했던 제자들이 아직 그 기적의 감격이 생생한 그때에 어려운 일이 생겼습니다. 바다는 항상 안정이 없습니다. 세상은 바다와 같습니다. 세상은 항상 안정이 없고 미래를 예측하기 어렵습니다. 평안과 환난이 번갈아 찾아오며 질병과 사고 같은 어려운 일들이 생깁니다. [25절] 밤 사경에 예수께서 바다 위로 걸어서 제자들에게 오시니. 예수께서는 밤 사경에 바다 위로 걸어서 제자들에게 오셨습니다. 밤 사경(四更)은 새벽 3시부터 6시를 가리킵니다. 주께서는 밤새 산에 계셨고 새벽녘에 제자들에게 오신 것입니다. 그는 철야기도를 하셨다고 보입니다. 그는 많이 기도하는 본을 우리에게 보여주셨습니다. 예수께서는 바다 위로 걸어서 제자들에게 오셨습니다. 그것은 그가 어려움을 당한 제자들을 외면치 않고 찾아오셨음을 나타냅니다. 그는 어려운 일을 당하는 우리도 외면치 않고 찾아오실 것입니다. 본문은 그가 바다 위로 걸어오셨다고 증거합니다. 우리는 성경의 증거가 진실한 증거임을 믿습니다. 그는 바다 위로 걸어오셨습니다. 그것은 그의 신적(神的) 속성을 나타냅니다. 그것은 육체를 가진 인간이 할 수 없는 일입니다. 그것은 오직 신적 속성과 신적 능력을 가진 분만 하실 수 있는 일입니다. 사람들은 기적을 믿을 만하지 못한 일이라고 의심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께서 만드신 신비한 세계 속에 살고 있고 세상의 모든 것들은 신비합니다. 우리가 천지만물을 창조하신 전능하신 하나님을 알 때 우리는 모든 것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오늘날 무거운 비행기가 공중에 떠다니고 무거운 배가 바다에 떠다니는 것을 봅니다. 우리는 그것이 부력(浮力)이나 힘 때문이라고 설명합니다. 힘이 있으면 비행기가 하늘에서 떠다닐 수 있고 배가 바다 위에서 떠다닐 수 있습니다. 이와 같이, 우리는 하나님의 전능하신 힘이 예수께서 바다 위로 걸으실 수 있게 하셨음을 믿을 수 있습니다. [26-27절] 제자들이 그 바다 위로 걸어오심을 보고 놀라 유령이라 하며 무서워하여 소리지르거늘 예수께서 즉시 일러 가라사대 안심하라. 내니 두려워 말라. 제자들은 예수께서 바다 위로 걸어오심을 보고 놀랐습니다. 성경은 그가 바다 위로 걸어오셨다고 다시 한번 언급합니다. 이처럼 성경의 증거는 모호하지 않고 분명합니다. 성경은 예수께서 바다 위로 걸어오셨다고 말합니다. 제자들은 그가 바다 위로 걸어오심을 보고 놀랐습니다. 그것은 인간의 이성과 상식을 넘어서는 광경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그를 보고 놀라 유령이라고 하며 무서워 소리질렀습니다. 인간은 자기보다 큰 힘 앞에서 자신의 무력함을 알 때 두려움을 느낍니다. 제자들은 그런 놀람과 두려움을 가졌습니다. 예수께서는 즉시, "안심하라. 내니 두려워 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는 즉시 제자들에게 자신을 알리셨습니다. 그는 잠시라도 제자들을 놀라게 하려고 오신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거센 바람과 세찬 물결로 인해 고난당하는 제자들을 도우려고 오신 것이었습니다. [28-29절] 베드로가 대답하여 가로되 주여, 만일 주시어든 나를 명하사 물 위로 오라 하소서 한대 오라 하시니 베드로가 배에서 내려 물 위로 걸어서 예수께로 가되. 그때에 베드로는, "주여, 만일 주시어든 나를 명하사 물 위로 오라 하소서"라고 감히 청하였습니다. 베드로는 그 누구보다도 용감하였고 하나님의 능력을 믿고 예수님의 신성(神性)을 믿는 믿음을 가지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는 주님의 신성을 확인하고 체험해 보려는 모험적인 마음까지 가지고 있었습니다. 예수께서는 베드로의 요청을 허락하시며 그에게 "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전통본문은, 베드로가 예수께 가려고 물 위로 걸어갔다고 기록합니다. 베드로는 사람들 중에 아마 유일하게 물 위로 걸어본 자입니다. 비록 잠시 동안이었으나, 그것은 그에게 또하나의 놀라운 체험이었습니다. [30-31절] 바람을 보고 무서워 빠져 가는지라. 소리질러 가로되 주여, 나를 구원하소서 하니 예수께서 즉시 손을 내밀어 저를 붙잡으시며 가라사대 믿음이 적은 자여, 왜 의심하였느냐 하시고. 그런데 베드로는 얼마 걷지 못하여 거센 바람을 보고 무서워 빠져 갔습니다. 전통본문에는 '거센'이라는 말이 들어 있습니다. 베드로는 거센 바람을 보고 무서워 바다에 빠져 들어갔습니다. 사람은 어려운 현실을 볼 때 그것이 너무 크게 보여서 믿음을 잃기 쉽습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항상 하나님을 바라보고 예수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그러나 그때 베드로는 "주여, 나를 구원하소서" 하며 소리질렀고 예수께서는 즉시 손을 내밀어 그를 붙잡아주셨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부르짖어 기도할 때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기도를 응답하시고 곤란 중에 있는 우리를 도우실 것입니다. 주께서는 베드로에게 "믿음이 적은 자여, 왜 의심하였느냐?"고 말씀하셨습니다. 성도가 세상의 어려운 현실만 보면 하나님을 믿는 믿음을 잃고 하나님을 의심하기 쉽고 또 그럴 때에 시험에 빠져 범죄하기 쉽습니다. [32-33절] 배에 함께 오르매 바람이 그치는지라. 배에 있는 사람들이 예수께 절하며 가로되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로소이다 하더라. 예수께서는 베드로와 함께 배에 오르셨습니다. 그러자 바람이 그쳤습니다. 그것도 신기한 일입니다. 이것도 우리에게 좋은 교훈이 됩니다. 아무리 어려운 현실이 와도 우리가 예수님과 함께 있고 또 예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면 우리는 평안을 얻을 것입니다. 배에 있는 사람들은 예수께 나아와 절하였습니다. '절한다'는 원어(프로스퀴네오)는 '경배한다'(worship) (KJV, NASB, NIV)는 뜻입니다. 또 사람들은 그에게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로소이다"라고 말했습니다. 그것은 바른 고백이었습니다. 제자들을 돕기 위해 바다 위로 걸어오신 예수님, 베드로에게 물 위로 걸어오라고 말씀하신 예수님, 물에 빠지는 그를 붙잡아주신 예수님, 바람을 그치게 하신 예수님, 그는 단순한 인간이 아니셨습니다. 그런 일들은 인간이 할 수 없는 일들이며, 오직 하나님만 하실 수 있는 일들입니다. 예수께서는 하나님의 아들 곧 신성(神性)을 가진 하나님이셨습니다. 말씀을 맺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로 믿고 확신합시다. 바다 위로 걸어오실 수 있는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성경의 진실한 증거들에 근거하여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십시오. 또 그를 믿고 죄사함과 영생을 얻으십시오. 또 우리는 어려운 일들이 많은 세상을 사는 동안 하나님과 예수님만 믿고 의지하며 살아갑시다. 세상의 현실은 제자들이 배를 타고 갈릴리 바다를 건너다 거센 바람과 흉흉한 풍랑을 만난 것과 비슷합니다. 바다가 항상 불안정하듯이, 세상도 그러합니다. 그러나 예수께서 제자들을 위해 물 위로 걸어서라도 오셨듯이, 우리의 구주와 주님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항상 우리에게 오실 것이며 우리를 결코 버려두지 않으실 것입니다. 선지자 이사야를 통해 하나님께서는 말씀하시기를, "두려워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니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니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 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사 41:10), "너는 두려워 말라. 내가 너를 구속(救贖)하였고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 네가 물 가운데로 지날 때에 내가 함께할 것이라. 강을 건널 때에 물이 너를 침몰치 못할 것이며 네가 불 가운데로 행할 때에 타지도 아니할 것이요 불꽃이 너를 사르지도 못하리라"(사 43:1-2)고 하셨습니다. 또 우리가 베드로처럼 고난의 현실을 보고 무서워하며 믿음을 잃고 의심하며 물에 빠져 들어갈 때라도 주께 부르짖으면, 주께서는 즉시 손을 펴서 우리를 붙들어 주실 것입니다. 시편 50:15은, "환난 날에 나를 부르라. 내가 너를 건지리니 네가 나를 영화롭게 하리로다"고 말하였습니다. 또 주께서 우리와 함께 또 우리가 주님과 함께 배에 오르면 바람이 그칠 것이며 평안을 얻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 안에,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 참 평안이 있습니다. 주께서는 제자들에게,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고 말씀하셨습니다(요 14:27). 그러나 우리는 또한 하나님을 굳게 믿고 기도하기를 힘써야 합니다. 우리 주님께서 친히 산 기도, 철야기도를 하셨습니다. 그는 많은 시간을 기도하셨습니다. 베드로는 곤란 중에 주님께 "주여, 나를 구원하소서"라고 부르짖었고 주님은 즉시 그를 도와주셨습니다. 우리도 고난의 현실을 이기는 길은 기도밖에 없습니다. 기도는 하나님을 믿고 그와 동행하며 그의 능력을 체험하는 길입니다. 우리는 기도하기를 힘씁시다.
주일오후설교: 하나님께로 돌아오라 [31:1-3] 도움을 구하러 애굽으로 내려가는 . . . . 1절에서 선지자는, "도움을 구하러 애굽으로 내려가는 자들은 화 있을진저. 그들은 말을 의뢰하며 병거의 많음과 마병의 심히 강함을 의지하고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자를 앙모치 아니하며 여호와를 구하지 아니하도다"라고 말한다. 이스라엘 백성은 앗수르의 예상되는 침공 앞에서 하나님께 대한 믿음을 잃어버렸다. 그들은 마땅히 거룩하신 하나님을 의지하며 사모해야 했으나 하나님을 사모하지도 의지하지도 않았고, 도리어 애굽의 말과 병거와 마병을 의지하며 그 도움을 구하기 위해 애굽으로 사신들을 파송하였던 것이다. 그것은 큰 불신앙이며 큰 죄악이었다. 2-3절에서 선지자는, "여호와께서도 지혜로우신즉 재앙을 내리실 것이라. 그 말을 변치 아니하시고 일어나사 악행하는 자의 집을 치시며 행악을 돕는 자를 치시리니 애굽은 사람이요 신이 아니며 그 말들은 육체요 영이 아니라. 여호와께서 그 손을 드시면 돕는 자도 넘어지며 도움을 받는 자도 엎드러져서 다 함께 멸망하리라"고 말한다. 하나님은 마음에 정하신 바를 실패치 않고 다 이루시는 지혜로운 섭리자이시다. 그는 자기 백성의 불경건과 불신앙에 대해 징벌하실 것이다. 그는 모세의 율법에 경고한 대로 행하실 것이다. 그는 악을 행하는 자의 집이나 그를 돕는 자의 집도 치실 것이다. 그는 애굽이 사람이며 신이 아니고 그 말들이 육체이며 영이 아님을 나타내실 것이다. 여호와께서 일어나 그 손을 드시면, 즉 그가 심판을 행하시면, 돕는 애굽도, 도움을 받는 이스라엘도 다 엎드러지며 다 함께 멸망할 것이다. 하나님 대신에 애굽을 의지하는 자들은 다 멸망할 것이다. [4-5절] 여호와께서 이같이 내게 이르시되 . . . . 4-5절에서 선지자는, "여호와께서 이같이 내게 이르시되 큰 사자나 젊은 사자가 그 식물을 움키고 으르렁거릴 때에 그것을 치려고 여러 목자가 불려왔다 할지라도 그것이 그들의 소리로 인하여 놀라지 아니할 것이요 그들의 떠듦을 인하여 굴복지 아니할 것이라. 이와 같이 나 만군의 여호와가 강림하여 시온산과 그 영(嶺) 위에서 싸울 것이며 새가 날개치며 그 새끼를 보호함같이 나 만군의 여호와가 예루살렘을 보호할 것이라. 그것을 호위하며 건지며 넘어와서 구원하리라 하셨나니"라고 말한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을 짐승 중 가장 용맹스런 큰 사자나 젊은 사자에 비유하셨다. 그것이 먹이를 움키고 으르렁거릴 때 그것을 치려고 불려온 여러 목자들은 이방나라의 왕들을 가리켰다. 만군의 하나님, 곧 하늘의 천군천사들을 자유로이 사용하시는 능력의 하나님께서는 시온산과 그 언덕들 위에서 즉 이스라엘 땅을 위해 싸우실 것이다. 그는 어미새가 그 강한 본능을 따라 그 새끼를 보호함같이 예루살렘을 보호하실 것이다. 그는 자기 백성을 건지며 구원하실 것이다. [6-9절] 이스라엘 자손들아, 너희는 심히 거역하던 자에게로 . . . . 6절에서 선지자는, "이스라엘 자손들아, 너희는 심히 거역하던 자에게로 돌아오라"고 말한다. 이것은 선지자들의 핵심적 설교내용이다. 이것은 이스라엘 나라의 역사가 '하나님을 심히 거역한 역사'이었음을 보인다. 하나님의 택하심을 입고 많은 사랑을 받은 그들이었지만, 그들은 하나님을 심히 거역하였다. 모세는 신명기 9장에서 이스라엘의 광야생활을 세 마디로 요약하였는데, 그것은 첫째로 목이 곧고, 둘째로 항상 거역하고, 셋째로 하나님을 속히 떠난 것이라고 말했다. 그것이 인류의 현재 모습이기도 하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 거역하던 자들에게 "돌아오라"고 말씀하신다. 그는 그들에게 다시 기회를 주신다. 그는 택한 백성들을 구원해 내기를 원하신다. 그는 그의 뜻하신 바를 이루실 것이며 결코 그의 뜻을 실패치 않으실 것이다. 7절에서 선지자는, "너희가 자기 손으로 만들어 범죄한 은우상, 금우상을 그날에는 각 사람이 던져버릴 것이라"고 말한다. 회개는 죄를 청산하는 것이며 인간의 죄 중에 대표적인 죄는 우상숭배의 죄이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구원하고자 하실 때, 그들이 하나님께로 돌아올 때, 그들은 자기 손으로 만들었던 그래서 그것 때문에 크게 범죄하였던 은우상과 금우상을 다 던져버릴 것이다. 우상의 청산이야말로 구원의 시작이며 구원받은 증표이다. 8절에서 선지자는 또, "앗수르는 칼에 엎더질 것이나 사람의 칼로 말미암음이 아니겠고 칼에 삼키울 것이나 여러 사람의 칼로 말미암음이 아닐 것이며 그는 칼 앞에서 도망할 것이요[칼을 피하지 못할 것이요] 그 장정들은 복역하는 자가 될 것이라"고 말한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에 위협이 되는 앗수르 나라도 치실 것이다. 그 나라는 사람들의 칼에 엎드러지고 삼키울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칼에 멸망당할 것이다. 하나님께서 열국의 칼을 사용하실 것이나, 그것은 하나님께로부터 나온 일이며 하나님으로 말미암은 일이다. 앗수르의 군사들은 정복자들에 의해 강제노역을 당할 것이다. 9절에서 선지자는, "그의 반석은 두려움을 인하여 물러가겠고 그의 방백들은 기호를 인하여 놀라리라. 이는 여호와의 말씀이라. 여호와의 불은 시온에 있고 여호와의 풀무는 예루살렘에 있느니라"고 말한다. '그의 반석'은 앗수르 왕을 가리킬 것이다. '물러간다'는 원어(아바르)는 본문에서는 '멸망하다'는 뜻이다(BDB). 하나님께서는 예루살렘을 지키시고 거기로부터 열국을 불로 사르실 것이다. 본장의 교훈은 무엇인가? 본장은 도움을 구하러 애굽으로 내려가지 말고 말과 병거와 마병을 의지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을 의지하라고 말한다. 하나님은 복과 재앙을 내리시는 자이시다. 하나님을 대적할 수 있는 자는 세상에 아무도 없다. 그러므로 인생은 다 하나님께로 돌아와야 한다. 특히 하나님의 택한 백성들, 하나님께서 부르시는 모든 자들은 다 하나님께로 돌아와야 한다. 그들은 모든 우상을 다 버려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열국의 심판자이시다. 세상 나라들은 다 망할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께 기도 드려야 하며 오직 하나님만 섬겨야 한다. 신명기 28장에 증거된 율법의 기본 원리는,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지켜 행하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모든 복, 즉 육신적, 물질적, 사회적 복을 주실 것이라는 약속과,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지켜 행하지 않으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모든 재앙을 내리실 것이라는 경고이다. 하나님은 우리 개인의 생사화복과 국가의 흥망성쇠를 주관하신다. 또 하나님께서는 성경의 여러 곳들에서, 아니 성경 전체에서 자신의 절대적 주권을 증거하셨다. 신명기 32:39은, "이제는 나 곧 내가 그인 줄 알라. 나와 함께 하는 신이 없도다. 내가 죽이기도 하며 살리기도 하며 상하게도 하며 낫게도 하나니 내 손에서 능히 건질 자 없도다"라고 말한다. 이사야 50:15, 17은, "보라 그에게는 열방은 통의 한 방울 물 같고 저울의 적은 티끌 같으며 섬들은 떠오르는 먼지 같으니," "그 앞에는 모든 열방이 아무것도 아니라. 그는 그들을 없는 것같이, 빈 것같이 여기시느니라"고 말한다. 우리는 우리 개인과 가정뿐 아니라, 우리의 사회와 국가도 하나님의 긍휼을 입기를 위해 기도해야 한다. 디모데전서 2:1-2, "그러므로 내가 첫째로 권하노니 모든 사람을 위하여 간구와 기도와 도고와 감사를 하되 임금들과 높은 지위에 있는 모든 사람을 위하여 하라. 이는 우리가 모든 경건과 단정한 중에 고요하고 평안한 생활을 하려 함이니라." 우리는 하나님께 기도하고 하나님을 바로 섬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