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신앙 2009년 07월 5일 [제13권 27호] ◆ 매주 발행 ◆ |
||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너희는 길에 서서 보며 옛적 길 곧 선한 길이 어디인지 알아보고 그리로 행하라. 너희 심령이 평강을 얻으리라' 하나, 그들의 대답이 '우리는 그리로 행치 않겠노라' 하였으며"(렘 6:16). |
옛신앙
Old-time Faith www.oldfaith.net |
'옛신앙'이란, 옛부터 하나님의 선지자들과 주의 사도들이 가졌던 신앙, 오직 정확 무오(無誤)한 하나님 말씀인 신구약 성경에만 근거한 신앙, 오늘날 배교와 타협의 풍조에 물들지 않는 신앙을 의미합니다. |
121-884
서울 마포구 합정동 364-1 합정동교회 김효성 목사, |
||
주일오전설교: 음란을 멀리할 것 [성경본문] 마태복음 5:27-30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창조하실 때 한 남자와 한 여자를 창조하여 부부가 되게 하셨고 가정을 이루게 하셨습니다. 이와 같이, 성(性)은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것이며 하나님의 창조 질서에 속한 아름다운 것입니다. 성경은 “네가 젊어서 취한 아내를 즐거워하라. 그는 사랑스러운 암사슴 같고 아름다운 암노루 같으니 너는 그 품을 항상 족하게 여기며 그 사랑을 항상 연모하라”고 말합니다(잠 5:18-19). 그러나 인간이 범죄하고 타락한 이후, 성(性)의 오용 혹은 남용이 나타났습니다. 죄악된 인간 사회는 성도덕이 문란한 사회가 되었습니다. 이 문제는 사람들의 매우 중요한 문제들 중의 하나입니다. 음란은 인간의 대표적인 죄악입니다. 주께서는 이 세상을 “악하고 음란한 세대”라고 표현하셨습니다(마 12:39). 옛날에 하나님께서 하늘로부터 유황불비를 내려 멸망시키셨던 소돔과 고모라 성의 대표적인 죄는 음란의 죄, 특히 동성애의 죄악이었습니다(창 19:1-13, 24-25). 또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서 나와 하나님의 약속하신 가나안 땅에 들어가고자 하였을 때, 가나안 땅 원주민인 일곱 족속들은 심히 죄악되었고 하나님의 심판과 징벌을 받아야 했었는데, 그들의 대표적인 죄는 첫째 우상숭배와 둘째 음란이었습니다. 그들의 음란한 풍조의 현실은 레위기 18장에 자세히 증거되어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 땅에 들어온 후에, 여호수아가 죽고 그들이 다시 영적으로 부패하였을 때, 그들의 대표적 죄악도 그 두 가지, 즉 우상숭배와 음란이었습니다. 그것은 사사기 17-18장과 19장에 자세히 증거되어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셔서 시작된 신약시대, 즉 사도 시대의 대표적인 죄악도 여전히 우상숭배와 음란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은 로마서 1장에서 인간의 죄에 대해 증거하면서, 첫째 우상숭배의 죄를 들었고(롬 1:21-23, 25), 둘째 음란의 죄 특히 동성애의 죄를 들었습니다(롬 1:24, 26-27). 성경에 예언된 말세의 대표적 죄도 음란입니다. 요한계시록 17, 18장은 큰 음녀의 출현과 멸망에 대해 예언합니다. 그 큰 음녀는 마지막 날 나타날 배교적 교회를 가리킬 것입니다. 그 음녀는 땅의 왕들과 음행하고 땅에 거하는 자들로 그 음행의 포도주에 취하게 하였다고 묘사되며 또 “땅의 음녀들과 가증한 것들의 어미”라고 불립니다(계 17:2, 5). 말세는 음란한 세상이 될 것이라고 예언된 것입니다. 성경의 이러한 예언은 오늘날 이루어지고 있다고 봅니다. 오늘날의 대중매체들, 특히 영상매체들, 즉 TV, 비디오, 영화, 인터넷, 심지어 핸드폰까지도 온갖 음란물들의 전달도구가 되어 있습니다. 오늘날에는 여자들도 자신의 몸을 드러내기를 부끄러워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초미니스커트와 파진 옷 등으로 나타난 여자들의 노출 욕구는 이전보다 더욱 노골화되었고 시대적 풍조와 유행이 되었습니다. 이런 풍조는 남자들의 성적 욕구를 더 자극하며 현대 사회를 더욱 음란한 사회로 만들 것입니다. 그러면 음란죄가 무엇입니까? 음란은, 우리가 아는 대로, 부부관계를 벗어난 성행위를 가리킵니다. 부부관계를 벗어난 모든 성행위가 다 음란입니다. 결혼한 남자나 여자가 다른 여자나 남자와 잘못된 성관계를 가지는 것이 음란입니다. 부부가 아닌 남녀가 성관계를 가지는 것도 음란입니다. 결혼 전에 혹은 결혼 관계 밖에서 가지는 성관계도 음란입니다. 또 근친상간의 행위도 음란이며, 또 동성간의 성관계도 음란입니다. 돈이나 선물을 주고받으며 행하는 성관계(매춘)도 음란입니다. 또 짐승과의 관계도 음란입니다. 성경은 이 모든 일들을 명백하게 정죄합니다(레 18장). 오늘 본문에서 주님께서는 이런 음행과 간음, 즉 결혼 관계 밖에서 이루어지는 성행위뿐 아니라, 마음의 간음에 대해서 말씀하셨습니다. 본문 28절을 다시 봅시다.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여자를 보고 음욕을 품는 자마다 마음에 이미 간음하였느니라.” 마음으로 이웃을 미워하는 것이 살인에 해당하듯이, 마음으로 음욕을 품은 것은 간음과 동일한 잘못입니다. 마음으로 음욕을 품는 것은 실제적 간음으로 발전할 것입니다. 그것은 다윗의 실수에서 잘 드러납니다(삼하 11:2). 사람의 마음은 그의 영혼의 좌소이기 때문에, 우리가 마음을 지키지 않으면 우리는 실수하고 범죄하게 될 것입니다. 음란이 간음의 행위뿐 아니라, 마음에 음욕을 품는 것도 포함된다는 것을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는 우리의 마음을 음란에 내어주지 말고 정결하게 보존해야 합니다. 오늘 본문에서, 주께서는 음란죄에 대해 엄하게 경고하셨습니다. 그는 본문에서, “만일 네 오른눈이 너로 실족케 하거든 빼어 내버리라. 네 백체 중 하나가 없어지고 온 몸이 지옥에 던지우지 않는 것이 유익하며, 또한 만일 네 오른손이 너로 실족케 하거든 찍어 내버리라. 네 백체 중 하나가 없어지고 온 몸이 지옥에 던지우지 않는 것이 유익하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주께서는 음란죄에 대해 지옥의 형벌로 경고하셨습니다. 그는 사람이 그 죄로 인해 온 몸이 지옥에 던지운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주께서는 지옥에 대해 여러 번, 분명하게 말씀하셨습니다. 마태복음 10:28에서, 그는 “몸은 죽여도 영혼은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에 멸하시는 자를 두려워하라”고 분명하게 말씀하셨습니다. 주께서 지옥에 대해 가장 자세히 증거하신 곳은 마가복음 9:43-49입니다. 이와 같이, 지옥은 주께서 친히 선언하시고 경고하신 내용입니다. 우리 중 그 누구도 주의 말씀을 변경할 권한이 없습니다. 사도 바울도 음란한 사람은 천국에 들어갈 수 없다고 증거하였습니다(고전 6:9-10). 요한도 요한계시록에서 음란한 자가 지옥에 들어갈 것이며 천국에서 제외될 것이라고 밝히 증거하였습니다(계 21:8; 22:15). 오늘 본문에서, 주께서는 차라리 오른 눈이 없거나 오른손이 없는 것이 두 눈과 두 손을 다 가지고 범죄하여 지옥 가는 것보다 낫다고 말씀하십니다. 마가복음 9:45에서는 발에 대해서도 언급하셨습니다. 우리가 두 눈과 두 손과 두 발을 다 가지고 그것으로 범죄하여 지옥에 갈 것이라면, 차라리 한 눈이 상하고 한 손과 한 발이 상하여 범죄치 않고 지옥 가지 않는 것이 훨씬 더 낫다는 것은 명백한 일입니다. 그러면, 음란죄에 대한 성도의 대책은 무엇입니까? 우리는 어떻게 하면 지옥에 들어갈 이 음란죄를 짓지 않을 수 있습니까? 첫째로, 우리는 분명한 삶의 목표를 가져야 하겠습니다. 사람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창조되었습니다. 이사야 43:7에서 하나님께서는 인간을 “내가 내 영광을 위하여 창조한 자”라고 부르셨습니다. 바울은 “몸은 음란을 위하지 않고 오직 주를 위한다”고 말했고(고전 6:13), 또 “너희는 너희의 것이 아니라 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 그런즉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고 하였습니다(고전 6:19-20). 우리는 삶의 분명한 목표를 가질 때, 음란을 멀리하고 거룩하고 선한 삶을 살 수 있습니다. 둘째로,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우리의 행위를 삼가야 합니다. 시편 119:9, 11은 “청년이 무엇으로 그 행실을 깨끗케 하리이까? 주의 말씀을 따라 삼갈 것이니이다,” “내가 주께 범죄치 아니하려 하여 주의 말씀을 내 마음에 두었나이다”라고 말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에 두고 행함으로 음란을 멀리할 수 있습니다. 셋째로, 우리는 성령을 따라 행해야 합니다. 갈라디아서 5:16은 “너희는 성령을 좇아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고 말합니다. 우리는 성령을 따라 행함으로 음란을 멀리할 수 있습니다. 넷째로, 결혼한 자는 좋은 부부 관계를 유지해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음행의 연고로 남자마다 자기 아내를 두고 여자마다 자기 남편을 두라. 남편은 그 아내에게 대한 의무를 다하고 아내도 그 남편에게 그렇게 할지라. 아내가 자기 몸을 주장하지 못하고 오직 그 남편이 하며 남편도 이와 같이 자기 몸을 주장하지 못하고 오직 그 아내가 하나니 서로 분방하지 말라. 다만 기도할 틈을 얻기 위하여 합의상 얼마 동안은 하되 다시 합하라. 이는 너희의 절제 못함을 인하여 사단으로 너희를 시험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라”(고전 7:1-5)고 교훈했습니다. 다섯째로, 우리는 보는 것, 듣는 것, 만지는 것을 조심해야 합니다. 다윗의 범죄는 보는 데서 시작했습니다. 보는 것은 마음과 감정을 자극합니다. 우리는 보는 것, 듣는 것, 만지는 것을 조심해야 합니다. 여섯째로, 우리는 남녀가 함께 있는 것을 피해야 합니다. 순결함을 지켰던 요셉은 보디발의 아내가 날마다 그에게 동침하기를 청했으나 그 여자의 말을 듣지 않았고 그와 함께 있지도 않았고 또 그 여자가 그의 옷을 잡고 동침하기를 요구할 때 그는 자기 옷을 그 손에 버리고 도망하였습니다(창 39:10, 12). 그것이 지혜로운 처신입니다. 남녀는 함께 있는 것을 피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예루살렘 성전에서 무리를 가르치실 때,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은 간음 중에 잡힌 한 여자를 끌고 와서 가운데 세우고 말했습니다. “선생이여, 이 여자가 간음하다가 현장에서 잡혔나이다. 모세는 율법에 이러한 여자를 돌로 치라 명하였거니와 선생은 어떻게 말하겠나이까?” 예수께서는 일어나 말씀하셨습니다.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 그들은 주의 말씀을 듣고 양심의 가책을 받아 어른으로 시작하여 젊은이까지 하나씩 하나씩 나갔고 단지 예수님과 그 가운데 섰는 여자만 남았습니다. 그때 예수께서는 일어나 여자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노니 가서 다시는 죄를 범치 말라”(요 8:11). 예수님은 우리를 정죄하러 세상에 오신 것이 아니고, 우리를 구원하러 오셨습니다.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과거가 아니고, 지금 어떠하며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입니다. 주께서는 오늘도 우리에게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노니 가서 다시는 죄를 범치 말라”고 말씀하실 것입니다. 예수님은 죄인들을 용서하시고 용납하시고 다시 기회를 주십니다. 아직 기회가 있을 때, 우리는 모든 죄를 회개하고 예수 믿고 구원받고 경건하고 거룩하고 선하게 살기를 결심하며 실천하십시다.
레위기 강해: 기업 회복의 법 [25:23-28] 토지를 영영히 팔지 말 것은 . . . . 23-55절은 대략적으로 기업 회복의 법에 대한 내용이다. 23절에서, 하나님께서는 “토지를 영영히 팔지 말 것은 토지는 다 내 것임이라. 너희는 나그네요 우거하는 자로서 나와 함께 있느니라”고 말씀하신다. 이것은 기업 회복의 법에 기초가 되는 진리이다. 우주 만물이 다 하나님의 소유이다. 하나님은 그 주인이시요 소유주이시다. 그러므로 토지 곧 땅은 하나님의 것이다. 우리의 소유권은 엄격히 말해 위탁적인 개념일 뿐이다. 인생은 나그네와 우거하는 자에 불과하고 우리가 이 세상을 떠날 때 그 모든 것을 다 놓고 떠날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토지를 영영히 팔지 말라고 명하신 것이며, 희년이라는 기업 회복의 제도를 주신 것이다. 그러므로 25절에서, 하나님께서는 “너희 기업의 온 땅에서 그 토지 무르기를 허락할지니 만일 너희 형제가 가난하여 그 기업 얼마를 팔았으면 그 근족이 와서 동족의 판 것을 무를 것이요”라고 말씀하신다. ‘무르기’라는 원어는 ‘되사기, 되찾기’라는 뜻이다. 가난한 사람이 그의 기업의 일부를 팔았을 경우, 가까운 친족은 그를 위해 그것을 사서 되찾게 해야 하였다. 또 26절에서, 하나님께서는 “만일 그것을 무를 사람이 없고 자기가 부요하게 되어 무를 힘이 있거든 그 판 해를 계수하여 그 남은 값을 산 자에게 주고 그 기업으로 돌아갈 것이니라”고 말씀하신다. 그것을 판 사람이 그것을 살 여유가 생기면 그것을 되살 수 있었다. 또 27절에서, 하나님께서는 “그러나 자기가 무를 힘이 없으면 그 판 것이 희년이 이르기까지 산 자의 손에 있다가 희년에 미쳐 돌아올지니 그가 곧 그 기업으로 돌아갈 것이니라”고 말씀하신다. 살 힘이 없는 가난한 사람이라도 희년이 되면 팔았던 기업을 다시 찾을 수 있었다. [29-31절] 성벽 있는 성내의 가옥을 . . . . 29-31절에 보면, 집의 경우, 성벽이 있는 성안의 집과 성벽이 둘리지 않은 촌락의 집의 규례가 달랐다. 사람이 성벽 있는 성안의 집을 팔았으면, 판 지 만 1년 안에는 되살 수 있었다. 그러나 그 기간 안에 되사지 못하면, 그 집은 산 사람의 소유로 확정되어 영영히 그의 소유가 되며 희년에 돌려보내지 않아도 된다. 그러나 성벽이 둘리지 아니한 촌락의 집은 나라의 토지와 같이 되살 수도 있고 희년에 돌려보내어야 하였다. [32-34절] 레위 족속의 성읍 . . . . 32-34절에는, 레위 족속의 집에 대해 규정한다. 레위 족속의 성읍의 집은 레위 사람이 언제든지 되살 수 있고 만일 레위 사람이 되사지 못하면 그 기업된 성읍의 판 집은 희년에 돌려보내어야 한다. 왜냐하면 레위 사람의 성읍의 집은 이스라엘 자손 중에서 얻은 기업이기 때문이었다. 또 그 성읍의 들의 사면 밭은 레위인의 영원한 기업이므로 팔 수 없었다. [35-38절] 네 동족이 빈한하게 되어 . . . . 35-38절에서,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이 가난한 이웃에 대해, “네 동족이 빈한하게 되어 빈손으로 네 곁에 있거든 너는 그를 도와 객이나 우거하는 자처럼 너와 함께 생활하게 하라”고 명하셨다. 이스라엘 백성은 객이나 우거하는 자를 돕듯이 가난한 이웃을 도와야 했다. 하나님께서는 또 말씀하시기를, “너는 그에게 이자를 취하지 말고 네 하나님을 경외하여 네 형제로 너와 함께 생활하게 할 것인즉 너는 그에게 이자를 위해 돈을 꾸어주지 말고 이익을 위해 식물을 꾸어주지 말라. 나는 너희 하나님이 되려고 또는 가나안 땅을 너희에게 주려고 애굽 땅에서 너희를 인도하여 낸 너희 하나님 여호와니라”고 하셨다. 이스라엘 백성은 자기 동족에게 이자를 받고 돈을 꾸어주지 말아야 했다. 고리대금은 물론, 저리대금도 합당치 않았다. 가난한 자를 돕고자 하면, 그냥 주든지 아니면 무이자로 빌려주어야 했다. [39-43절] 네 동족이 빈한하게 되어 . . . . 39-43절에서,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동족이 가난하여 남의 종이 되는 경우에 대해 말씀하셨다. “네 동족이 빈한[가난]하게 되어 네게 몸이 팔리거든 너는 그를 종으로 부리지 말고 품꾼이나 우거하는 자같이 너와 함께 있게 하여 희년까지 너를 섬기게 하라. 그 때에는 그와 그 자녀가 함께 네게서 떠나 그 본족에게로 돌아가서 조상의 기업을 회복하리라. 그들은 내가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바 나의 품꾼인즉 종으로 팔리지 말 것이라. 너는 그를 엄하게 부리지 말고 너의 하나님을 경외하라.” 이스라엘 백성은 자기에게 종으로 팔려온 동족을 종처럼 엄하게 부리지 말고, 품꾼이나 우거하는 자같이 대하여 일을 시켜야 했다. 그러나 희년이 되면 그의 신분뿐 아니라, 그의 모든 기업은 회복이 될 것이다. 출애굽기 21:1이나 신명기 15:12에 보면, 히브리 종은 6년간만 일하고 제7년에는 자유롭게 나갈 수 있었다. 그러나 그 동안 만일 희년이 끼면 그는 그 해에 자유를 얻게 될 것이다. 또 희년에는 단지 그의 신분뿐 아니라, 그의 모든 기업이 회복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또, 이스라엘 백성이 그가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그의 품꾼이므로 다른 사람의 종으로 팔려서는 안 된다고 말씀하신다. ‘나의 품꾼’이라는 원어는 ‘나의 종들’이라는 뜻이다.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의 종들이다. 그러므로 그들은 사람의 종이 되어서는 안 된다. 그들은 오직 하나님께 순종하는 자가 되어야 한다. 오늘날 신약교회의 백성도 똑같다. [44-46절] 너의 종은 남녀를 무론하고 . . . . 44-46절에서,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이 그들 주위의 이방인들 중에서는 영구적인 종을 얻을 수 있으나, 이스라엘 동족 중에서는 그렇게 하지 말고 또 동족인 종은 엄하게 부리지 말라고 명하신다. 옛 시대에 종은 주인의 소유이었고 필요하다면 살 수 있었고 또 산 종들은 영원한 종이 되어 자녀의 기업으로 줄 수 있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은 동족에게는 그렇게 하지 말아야 하였다. [47-53절] 너희 중에 우거하는 이방인은 . . . . 47-53절에서,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이 가난하여 그들 가운데 우거하는 이방인에게 팔려 종이 된 경우 그 형제 중 하나나 삼촌이나 사촌이나 그의 근족이 그의 종의 신분을 속량하라고 명하신다. 그는 희년까지의 연수를 따라 그의 몸값을 주고 그를 속량해야 한다. 물론 종이 된 자 자신이 부요하게 되면 스스로 자신을 속량할 수도 있다. 또 그의 주인은 그를 품꾼같이 여길 것이며 그를 엄하게 부려서는 안 되었다. [54-55절] 그가 이같이 속하지 못하면 희년에 . . . . 54-55절에서,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의 종이 속량되지 못한 경우에는, 희년에 그가 자유함을 얻을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또 그는 이스라엘 자손을 하나님께서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그의 품꾼(에베드), 곧 ‘그의 종’임을 강조하셨다.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의 종들이며, 그러므로 그들은 사람들의 종이 되어서는 안 되었다. 23-55절의 본문을 요약하면, 첫째, 토지는 하나님의 것이며 영영히 팔지 말아야 하였다. 둘째,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종이며 그러므로 사람의 종이 되지 말아야 하였다. 셋째, 가난한 자들을 배려하는 규례들이 있었다. 우선 동족인 종은 엄하게 부리지 말고, 이자를 위해 돈을 빌려주지 말며, 또 그의 친족은 가난한 사람의 기업이나 종의 신분을 속량해야 하며, 그렇지 못하면 희년에 다 회복이 된다는 것 등이다. 23-55절의 본문의 교훈은 분명하다. 첫째로, 우리는 토지가 하나님의 것이며 우리는 나그네임을 알자. 우리는 이 세상 사는 동안 이 세상의 삶이 나그넷길이요 우리의 본향은 천국임을 잊지 말고 기억하자. 역대상 29:15, “주 앞에서는 우리가 . . . 나그네와 우거한 자라.” 둘째로, 우리는 하나님의 종임을 알고 사람의 종이 되지 말자. 우리는 하나님의 종, 그리스도의 종이다. 로마서 6:18, 22, “죄에게서 해방되어 의에게 종이 되었느니라,” “이제는 너희가 죄에게서 해방되고 하나님께 종이 되어 거룩함에 이르는 열매를 얻었으니 이 마지막은 영생이라.” 고린도전서 6:19-20, “너희는 너희의 것이 아니라 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 그런즉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 고린도전서 7:22-23, “주 안에서 부르심을 받은 자는 종이라도 주께 속한 자유자요 또 이와 같이 자유자로 있을 때에 부르심을 받은 자는 그리스도의 종이니라. 너희는 값으로 사신 것이니 사람들의 종이 되지 말라.” 우리는 사람의 종이 되지 말고, 오직 하나님의 종으로 살자. 셋째로, 우리는 가난한 교우들을 배려하자. 우리는 우리의 책임 아래 있는 믿는 형제들을 엄하게 부리지 말자. 우리가 윗사람일 경우에 아랫사람들을 배려하자. 우리는 믿는 교우들 간에 이자를 받고 돈을 빌려주지 말자. 또 교회 안의 어려운 이들을 돌아보자. 우리는 기회 있는 대로 모든 사람에게 착한 일을 하되 더욱 믿음의 가정들에게 하자(갈 6:1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