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신앙  2009년 02월22일 [제13권 8호]   ◆ 매주 발행 ◆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너희는 길에 서서 보며 옛적 길 곧 선한 길이 어디인지 알아보고 그리로 행하라. 너희 심령이 평강을 얻으리라' 하나, 그들의 대답이 '우리는 그리로 행치 않겠노라' 하였으며"(렘 6:16).

 

 

옛신앙

 

Old-time Faith

www.oldfaith.net

   '옛신앙'이란, 옛부터 하나님의 선지자들과 주의 사도들이 가졌던 신앙, 오직 정확 무오(無誤)한 하나님 말씀인 신구약 성경에만 근거한 신앙, 오늘날 배교와 타협의 풍조에 물들지 않는 신앙을 의미합니다.

121-884 서울 마포구 합정동 364-1 합정동교회  김효성 목사,
02-334-9874,  Fax: 02-337-4869,  E-mail:
oldfaith@oldfaith.net


레위기 강해:                                  자녀 출산 후 정결법

[12:1-5]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일러 가라사대 . . . .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말하라. 여자가 임신하여 아들을 낳으면 그는 이레 동안 부정(不淨)하리니 곧 생리할 때와 같이 부정할 것이며 여덟째 날에는 그 아이의 포피를 자를 것이요 그 여자는 33일 동안 피를 정하게 해야 하리니 정결케 되는 기한이 차기까지는 어떤 성물(聖物)도 만지지 말며 성소에 들어가지도 말지니라. 또 여자가 딸을 낳으면 그는 두 이레 동안 부정하리니 생리할 때와 같을 것이며 66일 동안 피를 정하게 해야 할지니라.”

[6-8절] 자녀간 정결케 되는 기한이 차거든 . . . .

하나님께서는 계속하여 산모(産母)가 정결케 되는 규례를 말씀하셨다. “자녀간 정결케 되는 기한이 차면 그 여자는 번제물로 1년된 어린양과 속죄제물로 집비둘기 새끼나 산비둘기를 취해 회막문의 제사장에게로 가져갈 것이요 제사장은 그것을 여호와 앞에 드려 그 여자를 위해 속죄할지니 그리하면 산혈이 깨끗하리라. 이는 자녀간 출산한 여자에 대한 규례이니라. 그 여자의 힘이 어린양에 미치지 못하면 산비둘기 둘이나 집비둘기 새끼 둘을 가져다가 하나는 번제물로, 하나는 속죄제물로 삼을 것이요 제사장은 그를 위하여 속죄할지니 그가 정결하리라.”

본장은 여인이 자녀 출산 후 정결케 되는 법을 규정한다. 본장의 내용은 몇 가지 진리를 보인다. 첫째로, 본장은 인간의 죄성(罪性)에 대해 증거한다. 자녀를 출산한 여인은 속죄(贖罪)가 필요한 자로 간주된다. 2절, “여자가 임신하여 아들을 낳으면 그는 이레 동안 부정(不淨)하리니 곧 생리할 때와 같이 부정할 것이며.” 5절, “딸을 낳으면 그는 두 이레(두 주간) 동안 부정하리니 생리할 때와 같을 것이며 66일 동안 피를 정하게 해야 하리라.” 또 6-8절은 자녀간 정결케 되는 기한이 차면 그 여자가 번제물과 속죄제물을 회막문의 제사장에게로 가져갈 것이며 제사장이 그 여자를 위해 제사를 드림으로 그 여자가 속죄함을 받아야 했고 그래야 그가 정결함을 얻을 것이라고 말했다.

왜 여자가 자녀를 출산하면 속죄가 필요한가? 속죄가 필요하다는 말은 그의 출산 행위가 죄가 된다는 뜻을 내포한다. 여자의 자녀 출산이 죄인가? 자녀 출산의 행위는 하나님의 창조 질서가 아닌가? 출산은 하나님께서 복 주신 아름다운 일이 아닌가? 그렇다. 분명히 그렇다. 그러나 본문은 출산이 죄악된 일이며, 그래서 속죄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그것은 인간의 원죄 때문에, 즉 출산된 아기가 죄의 본성을 가진 죄인으로 출산되기 때문이라고 보인다.

매튜 풀은 그의 주석에서, “그 여자가 불결한 것은, 임신이나 출산에 있는 어떤 불결 때문이 아니고, 출산과 임신 때로부터의 인간 본성의 보편적이고 뿌리 깊은 부패성을 나타낸다”고 말했다. 안드류 보나도 그의 주석에서 “여인은 아이의 출산으로 불결하게 된다. 왜 그런가? 왜냐하면 그 아이는 죄인으로 즉 지옥의 상속자로 출산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를 낳은 여자는 불결하다고 간주된다”고 말했다.

본장은 인간이 어릴 때부터 참으로 죄인임을 보인다. 산모가 7일 동안 부정한 것은 인간의 죄책과 죄성이 충만함을 보인다. 모든 인간은 하나님 앞에서 영원한 정죄와 지옥 형벌을 받을 만한 죄인이며 그 죄성과 부패성은 매우 뿌리 깊고 심각하여 치료 불가능하다. 인간은 전적으로 부패되었고 전적으로 무능력해져 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의 마음의 계획하는 바가 어려서부터 악하다”고 노아에게 이미 말씀하셨다(창 8:21). 욥은 “누가 깨끗한 것을 더러운 것 가운데서 낼 수 있으리이까? 하나도 없나이다”라고 말했고(욥 14:4), 다윗은 성령의 감동 가운데 “내가 죄악 중에 출생하였음이여 모친이 죄 중에 나를 잉태하였나이다”라고 고백했다(시 51:5). 하나님께서는 선지자 예레미야를 통해 “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한 것은 마음이라”고 말씀하셨다(렘 17:9). 사도 바울도 증거하기를,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나니 이는 하나님의 법에 굴복치 아니할 뿐 아니라 할 수도 없음이라. 육신에 있는 자들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느니라”고 하였다(롬 8:7-8). 인간은 심히 죄악되다.

둘째로, 본장은 죄인이 할례를 통해 하나님의 백성이 될 수 있음을 증거한다. 죄인인 어린아이는 난 지 8일 만에 할례를 받아야 했다. 제8일에 할례를 받아야 했던 것은 산모와 아이가 다 7일 동안 부정하였기 때문이다. 할례는 인간이 죄인인 것을 전제한다. 할례는 언약의 표이었고 그것은 죄인이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구원 원리이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할례의 언약을 주심으로 그 자손들이 하나님의 백성이 되게 하셨다. 창세기 17:9-14에 보면,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그런즉 너는 내 언약을 지키고 네 후손도 대대로 지키라. 너희 중 남자는 다 할례를 받으라. 이것이 나와 너희와 너희 후손 사이에 지킬 내 언약이니라. 너희는 양피[포피]를 베어라. 이것이 나와 너희 사이의 언약의 표징이니라. 대대로 남자는 집에서 난 자나 혹 너희 자손이 아니요 이방 사람에게서 돈으로 산 자를 무론하고 난 지 팔일 만에 할례를 받을 것이라. 너희 집에서 난 자든지 너희 돈으로 산 자든지 할례를 받아야 하리니 이에 내 언약이 너희 살에 있어 영원한 언약이 되려니와 할례를 받지 아니한 남자 곧 그 양피를 베지 아니한 자는 백성 중에서 끊어지리니 그가 내 언약을 배반하였음이니라.”

하나님의 언약은 죄인들을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 곧 성도가 되게 하는 방법이었다. 그것의 내면적 뜻은 죄사함을 통한 구원이다. 할례는 죄를 정결케 하는 뜻이 있었다. 그것은 중생(重生, 거듭남)을 상징한다. 사도 바울은 말하기를, “우리 구주 하나님의 자비와 사람 사랑하심을 나타내실 때에 우리를 구원하시되 우리의 행한 의로운 행위로 말미암지 아니하고 오직 그의 긍휼하심을 좇아 중생(重生)의 씻음과 성령의 새롭게 하심으로 하셨나니 성령을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풍성히 부어 주셨다”고 하였다(딛 3:4-6).

구약시대의 할례의 의미는 신약시대에 세례의 의미와 같다. 골로새서 2:11-12, “또 그 안에서 너희가 손으로 하지 아니한 할례를 받았으니 곧 육적 몸[죄의 몸]을 벗는 것이요 그리스도의 할례니라. 너희가 세례로 그리스도와 함께 장사한 바 되고 또 죽은 자들 가운데서 그를 일으키신 하나님의 역사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 안에서 함께 일으키심을 받았느니라.” 할례나 세례는 외적인 표에 불과하고, 그것이 상징하는 내면적 의미는 회개와 믿음으로 말미암은 죄사함의 구원이다.

셋째로, 본장은 남녀의 구별에 대해 증거한다. 본장은 여자가 남자 아이를 출산하면 7일간 부정하고 33일 후에 산혈이 깨끗할 것이며 그가 여자 아이를 출산하면 14일간 부정하고 66일 후에 산혈이 깨끗할 것이라고 말한다. 왜 남자 아이와 여자 아이의 구별을 두는가? 그것은 남녀의 구별을 보인다. 또 그 구별은 창조 질서에 근거할 뿐 아니라 죄에 대한 징벌의 의미도 있다.

하나님께서는 여자를, 남자를 돕는 자로 창조하셨다. 여자는 남자를 돕는 자로 창조되었다. 남자와 여자는 창조 때부터, 즉 하나님의 창조 계획에서부터 구별되었다. 또 인간의 타락 시에, 여자는 남자를 범죄케 하는 자가 되었다. 창세기 3:6, “여자가 그 나무를 본즉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기도 한 나무인지라. 여자가 그 실과를 따먹고 자기와 함께한 남편에게도 주매 그도 먹은지라.”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아담에게 말씀하시기를, “네가 네 아내의 말을 듣고 내가 너더러 먹지 말라 한 나무 실과를 먹었은즉 땅은 너로 인하여 저주를 받고 너는 종신토록 수고하여야 그 소산을 먹으리라”고 하셨다(창 3:17).

그러므로 성경은, 남자와 여자가 하나님 앞에서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동등한 구원의 특권을 누리지만, 세상에서와 교회에서의 그 역할에 있어서 구별이 있음을 분명히 증거한다. 고린도전서 11:7-10, “남자는 하나님의 형상과 영광이니 그 머리에 마땅히 쓰지 않거니와 여자는 남자의 영광이니라. 남자가 여자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여자가 남자에게서 났으며 또 남자가 여자를 위하여 지음을 받지 아니하고 여자가 남자를 위하여 지음을 받은 것이니 이러므로 여자는 천사들을 인하여 권세 아래 있는 표를 그 머리 위에 둘지니라.” 에베소서 5:22-24, “아내들이여 자기 남편에게 복종하기를 주께 하듯하라. 이는 남편이 아내의 머리됨이 그리스도께서 교회의 머리됨과 같음이니 그가 친히 몸의 구주시니라. 그러나 교회가 그리스도에게 하듯 아내들도 범사에 그 남편에게 복종할지니라.” 디모데전서 2:11-14, “여자는 일절 순종함으로 종용히 배우라. 여자의 가르치는 것과 남자를 주관하는 것을 허락지 아니하노니 오직 종용할지니라. 이는 아담이 먼저 지음을 받고 이와가 그 후며 아담이 꾀임을 보지 아니하고 여자가 꾀임을 보아 죄에 빠졌음이니라.” 고린도전서 14:34-38, “모든 성도의 교회에서 함과 같이 여자는 교회에서 잠잠하라. 저희의 말하는 것을 허락함이 없나니 율법에 이른 것같이 오직 복종할 것이요 만일 무엇을 배우려거든 집에서 자기 남편에게 물을지니 여자가 교회에서 말하는 것은 부끄러운 것임이라. 하나님의 말씀이 너희에게로부터 난 것이냐? 또는 너희에게만 임한 것이냐? 만일 누구든지 자기를 선지자나 혹 신령한 자로 생각하거든 내가 너희에게 편지한 것이 주의 명령인 줄 알라. 만일 누구든지 알지 못하면 그는 알지 못한 자니라.”

본장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우리는 인간의 죄악됨을 깨닫자. 인간은 날 때부터 죄인이다. 인간은 원죄(原罪)를 가진 존재이다. 그러므로 우리의 자녀들은 중생(重生, 거듭남)의 구원이 필요하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니고데모에게,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고 말씀하셨다(요 3:3, 5).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 자신이 모든 죄를 버리고 구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죄사함의 구원을 받고 성경의 모든 교훈을 힘써 지킬 뿐 아니라, 또한 우리의 자녀들에게도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의 복음과 하나님의 의(義)의 말씀인 성경을 힘써 가르쳐야 한다.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말씀으로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다(딤후 3:16).

둘째로, 우리는 우리 자신이 마음의 할례를 받았는지 스스로 질문하고 대답하자. 구약의 할례는, 신약의 세례와 같이, 구원 언약의 표시이었다. 사람은 마음으로 믿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을 받는다(롬 10:10). 오늘날 예수 믿고 구원받는 자들은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는다. 주 예수께서는 “믿고 세례를 받는 사람은 구원을 얻을 것이요 믿지 않는 사람은 정죄를 받으리라”고 말씀하셨다(막 16:16). 여러분은 마음의 할례를 받으셨는가? 여러분은 참으로 죄사함의 구원을 받으셨는가? 여러분은 하나님의 언약 안에 들어오셨는가?

셋째로, 우리는 남녀의 구별을 인식하자. 성경은, 남자나 여자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동등한 구원의 특권을 누리지만, 세상과 교회 안에서 남녀의 구별이 있음을 증거한다. 여자는 남자를 돕는 자로 창조되었다. 가정의 질서는 유지되어야 한다. 그것은 하나님의 뜻에 복종하는 것이요 그것 없이는 가정의 참 행복도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남자는 남자의 역할을 다하고, 아내를 자기 몸같이 사랑하자. 또 여자는 자기 위치를 알고 그 위치를 지키고 그 역할을 다하며, 남편에게 복종하자.

이사야 강해:                                  앗수르 왕의 오는 날

본문은, 하나님께서 지금 유다를 보호하시지만, 장차 아하스의 악에 대해 보응하실 것을 증거한다.

[7:17] 여호와께서 에브라임이 유다를 떠날 . . . .

선지자 이사야는 하나님의 뜻을 선포하기를, 장차 여호와께서 에브라임 곧 북방 이스라엘이 유다를 떠날 때부터 당하여 보지 못한 날을 아하스와 그의 백성 곧 유다 백성과 그의 아비 집 곧 다윗 왕가에 임하게 하실 것이며 그것은 곧 앗수르 왕의 오는 날이라고 말했다.

그는 ‘여호와’께서 그 재앙 곧 앗수르 왕이 오게 하실 것이라고 말했다. 복과 화는 다 하나님께 달려 있다. 하나님께서는 개인과 국가에 복을 주기도 하시고 재앙을 내리기도 하신다. 하나님께서는 주권적 섭리자이시다.

하나님께서는 앗수르 왕을 부르실 것이다. 앗수르 왕은 누구인가? 그는 유다 왕 아하스가 도움을 요청했던 자이었다. 열왕기하 16장에 보면, 아하스는 앗수르 왕 디글랏 빌레셀에게 사자를 보내어 말하기를, “나는 왕의 신복이요 왕의 아들이라. 이제 아람 왕과 이스라엘 왕이 나를 치니 청컨대 올라와서 나를 그 손에서 구원하소서”라고 말하였고, 여호와의 전과 왕궁 곳간에 있는 은금을 취하여 앗수르 왕에게 예물로 보내었었다(왕하 16:7-8).

그러나 유다 나라는 장차 그 앗수르에게 화를 당할 것이다. 열왕기하 18장에 보면, 히스기야 왕 14년에 앗수르 왕 산헤립은 올라와 유다 모든 견고한 성읍들을 쳐서 취하였고 유다 왕 히스기야는 라기스로 사자를 보내어 앗수르 왕에게 말하기를, “내가 범죄하였나이다. 나를 떠나 돌아가소서. 왕이 내게 지우시는 것을 내가 당하리이다”라고 하였다. 또 앗수르 왕이 은 300달란트와 금 30달란트를 정하여 유다 왕 히스기야에게 내게 하므로, 히스기야는 여호와의 전과 왕궁 곳간에 있는 은을 다 주었고 또 그 때에 여호와의 전 문의 금과 자기가 모든 기둥에 입힌 금을 벗겨 모두 앗수르 왕에게 주었다(왕하 18:13-16). 유다 나라에 이런 치욕적인 일이 마침내 일어났었다.

[18-19절] 그 날에는 여호와께서 . . . .

본문은 그 날에 여호와께서 애굽 하수의 먼 지경의 파리와 앗수르 땅의 벌을 부르실 것이며, 그들이 와서 거친 골짜기와 바위틈과 모든 가시덤불과 모든 초장 혹은 물웅덩이들에 앉을 것이라고 말했다.

본문에는 ‘그 날에’라는 말이 여러 번 나온다(18, 20, 21, 23절). 그 날은 하나님의 심판하시는 날, 그의 진노하시는 날, 그의 재앙의 날이다. 하나님께서 정하신 심판의 날이 있다. 인류 역사는 하나님의 작정한 시간표대로 진행된다. 물론, 우리는 성경에 계시된 바와 같이 인간의 선한 노력이 하나님의 작정하신 바를 이루는 방편이라고 믿는다.

하나님께서는 애굽과 앗수르를 파리와 벌로 비유하셨다. 그것은 그들 침략군들의 수가 많고 신속하고 피할 수 없을 정도로 공격적이고 그로 인한 고통과 해가 매우 클 것을 암시한다. 적군들은 거친 골짜기와 바위틈과 가시덤불과 초장 등 모든 곳에 들어와 그 곳들을 점령할 것이다. 그 땅에는 그들을 피하여 숨을 곳이 거의 없을 것이다. 모든 땅은 그들로 인해 고통을 당하고 황폐케 될 것이다.

[20절] 그 날에는 주께서 하수 저편에서 . . . .

본문은 그 날에 주께서 하수 저편에서 세내어 온 삭도 곧 앗수르 왕으로 유다 백성의 머리털과 발털을 미실 것이요 수염도 깎으시리라고 말한다. 유다 왕 아하스는 앗수르를 의지했으나 이처럼 유다 나라는 장차 앗수르에게 큰 화를 당할 것이다. 이사야 10:5에서는 하나님께서 앗수르 사람들을 그의 진노의 막대기와 몽둥이라고 표현하셨으나, 본문은 앗수르 왕을 세내어 온 삭도 곧 면도칼이라고 표현하였다. 머리털이나 발털이나 수염은 사람들이 소중히 여기는 부분이다. 그러나 침략자들은 와서 그 털들을 다 밀어버릴 것이다. 유다 나라는 머리부터 발끝까지, 곧 존귀한 자로부터 비천한 자까지 다 노략하고 짓밟을 것이다. 장차 유다는 큰 낭패를 당할 것이다.

[21-22절] 그 날에는 사람이 한 어린 암소와 . . . .

본문은 그 날에 사람이 한 어린 암소와 두 양을 기를 것이며 그것들이 내는 젖이 많으므로 뻐터를 먹을 것이며 그 땅 가운데 남아 있는 모든 사람이 뻐터와 꿀을 먹을 것이라고 말한다. 사람이 한 어린 암소와 두 양을 기른다는 말은 가난한 생활을 묘사할 것이다. 황폐한 유다 땅에 남은 사람들은 가난할 것이다. 사람들의 수가 적기 때문에 우유와 버터가 많을 것이며 그래서 모든 사람이 뻐터와 꿀을 먹을 것이다. 그러나 이 말은, 농사나 장사가 되지 않으므로 곡식, 과일, 고기 등을 먹지 못하고 주로 뻐터와 꿀만 먹는다는 뜻도 가질 것이다.

[23-25절] 그 날에는 천 주에 은 일천 개의 . . . .

본문은 그 날에 포도나무 천 그루에 은 일천 개의 가치 되는 포도원마다 찔레와 가시나무들이 날 것이라고 말한다. 이전에 많은 포도 수확으로 큰 소득을 올렸던 포도원이 장차 가꿀 일손이 없어서 찔레와 가시나무들만 무성할 것이다. 또 본문은 온 땅에 찔레와 가시나무들이 있으므로 사람들이 살과 활을 가지고 그리로 갈 것이라고 말한다. 그것은 사람들이 짐승을 사냥하기 위해서이든지 아니면 짐승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서일 것이다. 본문은 또 보습으로 갈던 산에도 찔레와 가시나무들 때문에 두려워서 그리로 가지 못할 것이요 그 땅은 소를 놓으며 양의 밟는 곳이 되리라고 말한다. 이전에 밭과 포도원이었던 땅은 더 이상 밭 농사나 포도 농사를 하지 못하고 황폐하게 방치될 것이다.

본문이 주는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우리는 하나님의 심판을 두려워하자. 이스라엘의 죄악은 이스라엘로 멸망케 하였고, 유다의 죄악도 유다로 패망의 길로 나가게 할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심판을 두려워하고 죄를 짓지 말자. 우리는 특히 하나님 앞에서 고의적인 죄를 짓지 말고 그의 심판을 두려워하자.

둘째로, 우리는 하나님의 주권적 섭리를 믿자. 본문에는 ‘그 날에’라는 말이 반복되어 있다. ‘그 날’은 하나님의 작정된 심판의 날이다. 그 날에 하나님께서는 앗수르 왕을 불러오실 것이다. 세계 역사는 하나님의 주권적 섭리의 손 안에 있다. 하나님께서 작정하신 날이 있고 하나님께서 작정하신 일이 있다. 우리 개인을 향해서도, 또 우리 가정이나 우리 교회나 우리 국가나 온 세계를 향해서도 그러하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주권적 섭리를 믿자(잠 3:5-6; 16:3).

셋째로, 우리는 하나님만 소망하자. 하나님의 주권적 섭리를 믿는 자는 하나님만 소망하게 될 것이다. 이스라엘의 소망은 하나님 중심으로 사는 데 있다. 그들이 하나님을 저버리고 그의 계명을 저버리고 자기 뜻대로 산 것이 불행의 원인이었다. 그러나 그들이 하나님께로 돌아와 하나님만 의지하고 하나님만 소망하며 그의 계명에 귀를 기울이고 힘써 행한다면 그들은 평안과 형통을 누릴 것이며, 징벌 아래 있다 할지라도 머잖아 회복의 날을 보게 될 것이다. 하나님 안에 평안과 영생이 있다. 우리는 모든 불경건과 불신앙과 모든 죄악을 회개하고 다 버리고 오직 하나님만 의지하며 소망하고 그의 계명에 순종하며 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