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신앙 2009년 07월 12일 [제13권 28호] ◆ 매주 발행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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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너희는 길에 서서 보며 옛적 길 곧 선한 길이 어디인지 알아보고 그리로 행하라. 너희 심령이 평강을 얻으리라' 하나, 그들의 대답이 '우리는 그리로 행치 않겠노라' 하였으며"(렘 6:16). |
옛신앙
Old-time Faith www.oldfaith.net |
'옛신앙'이란, 옛부터 하나님의 선지자들과 주의 사도들이 가졌던 신앙, 오직 정확 무오(無誤)한 하나님 말씀인 신구약 성경에만 근거한 신앙, 오늘날 배교와 타협의 풍조에 물들지 않는 신앙을 의미합니다. |
121-884
서울 마포구 합정동 364-1 합정동교회 김효성 목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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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오전설교: 보물을 하늘에 쌓아두라 [성경본문] 마태복음 6:19-34 마 6:20, “오직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하늘에 쌓아두라.” 사람은 왜 이 세상에 태어나며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하는 것입니까? 어린아이들은 왜 학교에 다니며 12년, 16년, 혹은 그 이상을 배우는 것입니까? 사람은 왜 취직하고 돈을 벌어야 합니까? 또 그 번 돈은 무엇을 위해 써야 하는 것입니까? 인간의 삶에 있어서 참으로 가치 있는 일은, 인생의 삶의 목적은 무엇입니까? 이런 질문들은 근본적인 질문임에도 불구하고, 세상 사람들이 쉽게 대답할 수 있는 것들이 아닙니다. 그러나 성경은 이 중요한 모든 질문에 대해 분명하게 대답합니다. 오늘 본문도 그 중에 하나입니다. 오늘 본문은 주께서 인간의 삶에 있어서 중요한 물질 문제에 대해 가르치신 말씀입니다. 주께서는 우리의 보물을 땅에 쌓아두지 말고 하늘에 쌓아두라고 말씀하셨고, 우리의 보물이 있는 곳에 우리 마음도 있다고 하셨고, 또 사람이 재물과 하나님을 겸하여 섬길 수 없다고 하셨습니다. 주께서는 또 의식주 문제로 염려치 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의 교훈은 인생의 삶의 목표와 가치관과 직접 관계되고, 우리의 경건생활과도 직접 관계됩니다. 주께서는 세상에 두 부류의 사람들이 있음을 보이십니다. 하나는 보물을 땅에 쌓아두는 자들입니다.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땅에 쌓아두지 말라”는 그의 말씀은 많은 사람들이 그들의 보물을 땅에 쌓아두고 있음을 암시합니다. 많은 사람들의 삶의 목표는 돈을 버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은 은행이나 주식이나 펀드나 부동산 등에 돈이 저축되는 것을 목표와 기쁨으로 삼고 살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들은 그 재산이 늘면 기뻐하고 그것이 줄면 슬퍼합니다. 그런데 주께서는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땅에 쌓아두지 말라. 거기는 좀과 동록이 해하며 도적이 구멍을 뚫고 도적질하느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오늘날의 좀과 동록은 주식시장이 크게 흔들려 주식값이 폭락하고 펀드에 큰 손실이 오며 부동산 값이 떨어지는 것 등일 것입니다. 또 각종 사기꾼들이 교묘하게 재산을 빼앗아 가기도 합니다. 주께서는 또, “네 보물 있는 그 곳에는 네 마음도 있느니라. 눈은 몸의 등불이니 그러므로 네 눈이 성하면 온 몸이 밝을 것이요 눈이 나쁘면 온 몸이 어두울 것이니 그러므로 네게 있는 빛이 어두우면 그 어두움이 얼마나 하겠느뇨?”라고 말씀하셨고, 또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할 것이니 혹 이를 미워하며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며 저를 경히 여김이라.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고 하셨습니다(마 6:21-24). 이 말씀은, 우리의 물질관이 우리의 가치관이며 우리의 영적 시력(視力)의 문제이며 이것은 결국 우리가 누구를 혹은 무엇을 섬기는가 하는 문제임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우리가 보물을 땅에 쌓아둔다면 우리는 땅의 것들에 가치를 두고 사는 자가 분명합니다. 그러나 땅의 것들이 무엇입니까? 그것들은 지나가는 것들입니다. 우리는 어느 날 죽을 것입니다. 우리는 어느 날 이 세상의 모든 것을 다 놓고 떠날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허무한 것들에 가치를 두고 사는 자는 영적인 눈 곧 영안(靈眼)이 어두운 자입니다. 재물은 우리가 이용하는 것이며 우리가 다스려야 할 대상이지 우리가 섬길 대상은 아닙니다. 땅에 보물을 쌓는 자는 결국 하나님 대신에 재물을 섬기는 자입니다. 재물에 가장 큰 가치를 두고 사는 것은 재물을 섬기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께서는,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할 것이니 혹 이를 미워하며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며 저를 경히 여김이라.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사람이 하나님을 섬긴다면 내세와 천국에 소망을 두고 하나님의 계명을 생명같이 여기며 지킬 것이지만, 하나님을 섬기는 자가 아니기 때문에 땅의 허무한 것들을 크게 여기고 거기에 삶의 가치와 목표를 두고 사는 것입니다. 또 주께서는 오늘 본문에서 이런 사람이 의식주의 문제를 늘 염려하며 산다고 암시하십니다. 주께서는 “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마 6:31-32). 하나님을 모르고 하나님 없이 사는 자들은 불확실한 미래를 항상 염려할 것입니다. 온 우주를 홀로 다스리시고 인간의 생사화복을 주장하시는 살아계신 하나님을 모르는 자는 자신이 모든 문제의 주인이 되어 홀로 염려하고 고민하는 것입니다. 그는 재물을 많이 가지고 있어도 그것을 지키느라고 걱정하고 또 재물이 없어도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지를 걱정합니다. 그것은 하나님을 모르는 자들의 당연한 모습입니다. 세상에 두 부류의 사람들 중에, 보물을 땅에 쌓아두는 자들 말고, 다른 한 부류는 보물을 하늘에 쌓아두는 자들입니다. 주께서는 오늘 본문 20절에서, “오직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하늘에 쌓아 두라. 거기는 좀이나 동록이 해하지 못하며 도적이 구멍을 뚫지도 못하고 도적질도 못하느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보물을 하늘에 쌓아둔다는 것은 무엇을 가리킵니까? 우리는 우리의 보물을 어떻게 하늘에 쌓아둘 수 있습니까? 보물을 하늘에 쌓는다는 것은 우리의 재물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하나님의 일을 위해 쓰는 것을 말합니다. 누가복음 12:33에 보면, 주께서는, “너희 소유를 팔아 구제하여 낡아지지 아니하는 주머니를 만들라. 곧 하늘에 둔 바 다함이 없는 보물이니 거기는 도적도 가까이 하는 일이 없고 좀도 먹는 일이 없느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전도와 구제를 위해 쓰는 돈이 하늘에 쌓아두는 돈입니다. 하나님께서 구약 율법에서 이스라엘 백성의 십일조를 레위 지파 사람들의 생활비로 쓰이게 하셨던 것과 같이, 그는 오늘날도 성도들의 정성스런 헌금을 통해 전도자들에게 생활비와 활동비를 주시고 또 교회 안의 가난한 자들을 돕게 하십니다. 예수께서 갈릴리 지방의 각 성과 촌에 두루 다니시며 하나님의 나라를 선포하시며 그 복음을 전하실 때에 열두 제자들이 함께하였고 또 악귀를 쫓아내심과 병고침을 받은 어떤 여자들 곧 일곱 귀신이 나간 자 막달라인이라 하는 마리아와 또 헤롯의 청지기 구사의 아내 요안나와 또 수산나와 다른 여러 여자들이 함께하여 자기들의 소유로 그들을 섬겼습니다(눅 8:1-3).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는 자들을 물질로 섬기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섬기는 일이며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입니다. 주께서는, “너희를 영접하는 자는 나를 영접하는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마 10: 40). 빌립보서 4:18에서, 바울은 빌립보 교인들이 보낸 선물을 “[하나님께서] 받으실 만한 향기로운 제물이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 것”이라고 증거하였습니다. 가난한 자들을 구제하는 것도 하나님을 섬기는 일입니다. 주께서는 “너는 구제할 때에 오른손의 하는 것을 왼손이 모르게 하여 네 구제함이 은밀하게 하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너의 아버지가 갚으시리라”고 말씀하셨는데(마 6:3-4), 가난한 자들을 구제하는 것이 하나님과 무슨 상관이 있기에 하나님께서 갚아주시는 것입니까? 예, 상관이 있습니다. 구제는 하나님의 기쁘신 뜻입니다. 신명기 15:11은 “땅에는 언제든지 가난한 자가 그치지 아니하겠으므로 내가 네게 명하여 이르노니 너는 반드시 네 경내 네 형제의 곤란한 자와 궁핍한 자에게 네 손을 펼지니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이 칠칠절 즉 맥추절에 하나님께 자원하는 예물을 드리고 그 자녀들과 종들과 그 성에 거하는 레위인들과 나그네들과 고아들과 과부들이 함께 하나님 앞에서 즐거워하게 하셨습니다(신 16:9-11).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그의 뜻을 실행하는 자들에게 보상하시는 것입니다. 심지어 잠언은 “가난한 자를 불쌍히 여기는 것은 여호와께 꾸이는[꾸어드리는] 것이니 그 선행을 갚아 주시리라”고 말하였습니다(잠 19:17). 이와 같이, 하늘에 보물을 쌓는 자, 즉 전도와 구제를 위해 물질을 사용하는 자는 진정으로 하나님을 섬기는 자입니다. 그는 하나님과 재물 둘 중에 하나님을 섬기는 자입니다. 그는 재물에 노예가 아니고 재물을 지배하고 다스리며 바로 사용하는 자입니다. 또 그는 영안이 밝은 자입니다. 땅의 허무한 것에 눈먼 자가 아니고 하나님과 그의 뜻을 이해하고 천국을 바라보며 영원한 세계의 영광을 아는 자입니다. 또 이런 자는 땅의 것들을 염려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주께서는, “묵숨을 위하여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몸을 위하여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고 하셨던 것입니다(마 6:25, 31, 34). 그가 의식주의 문제를 염려치 않는 것은 하나님을 믿고 그의 섭리를 믿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모르고 하나님 없이 사는 자들은 물질 문제로 염려하고 불확실한 미래를 염려하지만, 하나님의 섭리를 믿는 자는 그것들을 염려하지 않습니다. 주께서는 공중의 새와 들의 백합화를 들어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세상만물의 창조자이시며 지구상의 수없이 많은 새들을 다 먹이시고 기르십니다. 새들을 기르시는 이는 천부(天父) 즉 하늘에 계신 하나님 아버지이십니다. 그것들은 먹을 것을 심지도 않고 거두지도 않고 창고에 모아 들이지도 않지만, 하늘 아버지께서 그것들을 기르십니다. 인간은 공중의 새들보다 더 귀하지 않습니까? 실상, 누가 염려한다고 그의 생명을 한 시간이라도 더 연장할 수 있습니까? 또 들의 백합화들을 생각해도 그렇습니다. 그 꽃들은 스스로 수고도 아니하고 길쌈[천을 짜는 모든 수공의 일]도 아니하였지만, 솔로몬의 영광보다 더 아름다운 꽃을 피우고 있습니다. 오늘 있다가 내일에는 아궁이에 던지우는 들풀도 하나님께서 이렇게 아름답게 입히시는데, 하물며 우리 인생들이겠습니까! 온 우주와 그 안의 모든 생물들은 하나님의 섭리 안에 있습니다. 우리가 공중의 새들과 들의 백합화들을 생각한다면, 하늘에 계신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어떻게 먹이시고 어떻게 입히실 것인지 잘 알 수 있습니다. 물론 이 교훈은 우리가 게으르게 놀아도 하나님께서 먹을 것과 입을 것을 풍성히 주실 것이라는 뜻은 아닙니다. 성경은 우리가 게으르지 말아야 할 것을 교훈하였습니다. 우리는 성실하고 근면하게 우리의 일들을 하며 살아야 합니다. 그러나 내일의 의식주의 문제를 염려하지 말고 하나님을 믿고 일해야 합니다. 주께서는 결론적으로 말씀하시기를, “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천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 너희는 먼저 그의[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한다는 것은 믿음으로 살고 순종으로 사는 것을 말합니다. 나라는 통치권, 의는 순종을 나타냅니다. 그것은 물론 보물을 하늘에 쌓는 것 곧 전도와 구제를 위해 돈을 쓰는 것도 포함합니다. 말씀을 맺겠습니다. 우리는 보물을 땅에 쌓아두는 허무하고 어리석은 자가 되지 말고, 보물을 하늘에 쌓아두는 지혜로운 자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의 보물이 있는 곳에 우리 마음도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뜻과 영원한 세계를 바라보는 영안을 가져야 합니다. 우리는 참으로 하나님을 섬기는, 하나님만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그럴 때 우리는 의식주 문제로, 또 내일 일을 위해, 염려치 않을 수 있습니다. 우리는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해야 합니다. 우리는 믿음으로 살고 순종으로 살아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그의 일을 위해, 즉 전도와 구제를 위해 돈을 벌고 돈을 쓰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레위기 강해: 복(福)과 화(禍) 레위기 26장은 복과 화를 선포한 말씀이다. 율법은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과 맺는 언약의 형식이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이 그 언약의 말씀을 지키면 복을 얻을 것이지만, 그 언약의 말씀을 어기면 화를 당할 것이라고 경고하셨다. 이 말씀의 내용은 하나도 어려운 것이 없다. 그 내용을 지키느냐 안 지키느냐의 문제가 있을 뿐이다. [1-2절] 너희는 자기를 위하여 우상을 . . . . 1-2절에서, 하나님께서는 10계명의 제2계명과 제4계명을 말씀하셨다. “너희는 자기를 위하여 우상을 만들지 말지니 목상이나 주상을 세우지 말며 너희 땅에 조각한 석상을 세우고 그에게 경배하지 말라. 나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임이니라. 너희는 나의 안식일을 지키며 나의 성소를 공경하라. 나는 여호와니라.”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 땅 원주민들의 우상들을 받지 말고 하나님의 안식일을 구별하여 하나님만 섬기는 것은 기본적으로 중요한 일이었다. 오늘 신약교회 성도들도 현대적 우상들을 버리고 주일을 구별하여 하나님만 섬겨야 한다. [3-13절] 너희가 나의 규례와 계명을 . . . . 3-13절에서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이 그의 명령을 지키면 복을 얻을 것이라고 선포하신다. 3-6절에서 그는 이스라엘 백성이 그의 명령을 준행하면 그들에게 씨 뿌릴 때에나 곡식 거둘 때에 비를 주셔서 1년 먹을 양식을 풍족하게 주실 것이며 또 사회적 안정과 평안을 주셔서 그들을 두렵게 할 자가 없고 사나운 짐승이나 전쟁의 칼도 없을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7-8절에서 그는 특히 그들이 적은 군사들을 가지고도 많은 적군들을 물리칠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이스라엘의 군사적 힘은 그들의 율법 순종의 생활에서 얻을 복이었다. 9-10절에서 그는 그의 언약을 이행하는 이스라엘 백성을 번성케 하고 창대케 할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11-13절에서 그는, “내가 내 장막을 너희 중에 세우리니 내 마음이 너희를 싫어하지 아니할 것이며 나는 너희 중에 행하여 너희 하나님이 되고 너희는 나의 백성이 될 것이니라”고 말씀하신다. 이 말씀은 참으로 놀라운 특권을 보인다. 일찍이 이 세상에 조물주 하나님께서 이렇게 하신 민족이 있었는가? 하나님께서 자기 장막을 어느 민족 중에 세우셨는가? 하나님께서 어느 민족 중에 행하셨는가? 이 세상 어디에 하나님께서 그들의 하나님이 되시고 그들이 하나님의 백성이 된 민족이 있는가? 그런데 그는 이스라엘의 율법 순종에 이 놀라운 특권과 복을 약속하셨다. [14-39절] 그러나 너희가 내게 청종치 . . . . 그러나 14-39절에서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이 그의 명령을 어기면 화를 당할 것이라고 선포하신다. 14-16절에서 그는 ‘놀라운 재앙’ 즉 ‘갑작스런 재앙’ 으로 경고하셨다. 하나님께서는 친히 그들을 폐병과 열병 등의 무서운 질병으로 눈이 어둡고 생명이 쇠약케 하실 것이다. 그들이 추수한 곡식을 대적들에게 다 빼앗기게 되므로 그들의 농사의 수고도 헛되게 될 것이다. 17절에서 그는 주위의 나라들을 대적으로 일으켜 그들을 치게 하실 것이며 그들은 그 전쟁에서 패하고 대적들에게 다스림을 당할 것이다. 18절에서 그는 만일 그들이 하나님의 징벌을 받으면서도 깨닫지 못하고 회개치 않는다면, 그들의 죄 때문에 그들을 철저히 징벌하실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19-20절에서 그는 그들의 교만을 징벌하시고 농사가 잘 되지 않을 것을 말씀하신다. 21-22절에서 그는, 만일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계속 듣지 않으면,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철저하게 징벌하셔서 들짐승들을 보내어 그들의 자녀들과 육축들과 인명들을 잃게 하실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23-26절에서 그는 만일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계속 듣지 않으면,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철저하게 징벌하셔서 전쟁과 무서운 질병과 양식의 부족으로 치실 것이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그들은 저울에 달아 주는 떡을 먹을 것이며 먹어도 배부르지 않을 것이다. 27-29절에서 그는 또 만일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계속 듣지 않으면,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극심한 굶주림 때문에 자기 아들과 자기 딸의 고기를 먹는 처참한 지경에 떨어지게 하실 것이다. 30-33절에서 그는 그들의 산당과 태양주상을 파괴하실 것이며 그의 마음이 그들을 싫어하실 것이며 그들의 성읍들과 그들의 성소들이 황폐케 되고 그들이 이방나라들에 흩어지게 하실 것이다. 34-35절에서 그는 그들이 평안할 때 율법에 규정된 7년마다 지킬 땅의 안식을 지키지 않았으므로 그들이 대적의 땅에 포로로 잡혀가 있는 동안 그 땅이 황폐한 중에 안식을 누릴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36-39절에서 그는 이스라엘이 열국 앞에서 심히 쇠약해지며 쇠잔해질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40-46절] 그들이 자기 죄와 그 열조의 죄와 . . . . 그러나 40-45절에서 하나님께서는, 만일 이스라엘 백성이 그 잡혀간 나라에서 자신과 그 열조의 죄를 깨닫고 회개하면 그가 그의 언약을 기억하여 그들을 돌아보겠다고 약속하셨다. 본장에서 우리가 얻는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의를 감사하자. 하나님의 율법은 우리의 온전한 순종을 요구한다. 복과 저주는 온전한 순종 여부에 달려 있다. 그러나 우리는 연약하고 부족한 죄인이다. 율법의 행위로 하나님 앞에서 의롭다 하심을 얻을 자가 세상에 아무도 없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영원한 저주를 받을 만한 존재들이었다.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의가 되셨고 우리는 그 안에서 의롭다 하심을 얻었다. 로마서 3:24,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구속(救贖)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사실을 감사하며 힘을 내어 더욱 의롭게 살자. 둘째로, 우리는 율법을 힘써 순종하자.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었지만, 하나님께서는 실제적으로도 우리가 율법 지키기를 원하신다. 우리는 죄에게서 해방되고 의에게 종이 되었다(롬 6:18). 성경은 우리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한 책이다(딤후 3:16). 우리는 성경의 모든 말씀을 믿고 순종하자. 우리가 율법을 순종할 때, 우리는 율법에 약속된 하나님의 모든 복, 즉 풍성한 양식, 환경적 평안, 신체적 건강, 하나님의 동행하심 등의 복을 감히, 즐거이 기대할 수 있다. 셋째로, 우리는 혹 연약하여 범죄했을 때 즉시 회개해야 한다. 우리는 주의 징계를 경히 여기지 말고 그에게 꾸지람을 받을 때 낙심치 말아야 한다. 주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를 징계하시기 때문이다(히 12:5-6). 우리는 병들었을 때 자신을 반성하며 혹 기억나는 죄가 있으면 고백하면서 병 낫기를 위해 기도해야 한다(약 5:15-16). 주께서는 라오디게아 교회의 사자에게 “무릇 내가 사랑하는 자를 책망하여 징계하노니 그러므로 네가 열심을 내라. 회개하라”고 말씀하셨다(계 3:19). ◈ 배교와 타협과 혼란의 시대에 바른 길을 붙들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