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신앙  2009년 04월 12일 [제13권 15호]   ◆ 매주 발행 ◆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너희는 길에 서서 보며 옛적 길 곧 선한 길이 어디인지 알아보고 그리로 행하라. 너희 심령이 평강을 얻으리라' 하나, 그들의 대답이 '우리는 그리로 행치 않겠노라' 하였으며"(렘 6:16).

 

 

옛신앙

 

Old-time Fait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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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옛신앙'이란, 옛부터 하나님의 선지자들과 주의 사도들이 가졌던 신앙, 오직 정확 무오(無誤)한 하나님 말씀인 신구약 성경에만 근거한 신앙, 오늘날 배교와 타협의 풍조에 물들지 않는 신앙을 의미합니다.

121-884 서울 마포구 합정동 364-1 합정동교회  김효성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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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위기 강해:                                여러 가지 법들 (1)

[19:1-2]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일러 . . . .

여호와께서는 모세를 통해 이스라엘 온 회중에게 “너희는 거룩하라. 나 여호와 너희 하나님이 거룩함이니라”고 말씀하셨다. 하나님의 거룩하심은 그가 모든 죄와 불결로부터 떠나 계심을 의미한다. 하나님은 거룩하신 하나님, 곧 공의로우시고 선하시고 진실하신 하나님이시다. 그에게는 불의와 악과 거짓이 전혀 없으시다.

하나님께서 거룩하시기 때문에 하나님의 백성된 우리도 거룩해야 한다. 우리는 하나님만 경외하고 우상을 숭배치 말아야 하고 안식일을 준수해야 한다. 우리는 부모를 공경해야 하며 살인하지 말고 간음하지 말고 도적질하지 말아야 하고 거짓증거하지 말고 남의 것을 탐내지 말아야 한다. 우리는 오직 정직함과 선함과 사랑과 진실함으로 행하며 현재 가진 것으로 만족하며 살아야 한다.

[3절] 너희 각 사람은 부모를 경외하고 . . . .

하나님께서는 특히 “너희 각 사람은 부모를 경외하라”고 말씀하셨다. 그것은 십계명의 제5계명의 정신이다. 하나님께서는 십계명에서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너의 하나님 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 네 생명이 길리라”고 말씀하셨다(출 20:12). 사람은 그의 부모를 공경하고 높이고 경외하고 두려워해야 한다.

성경은 “너 낳은 아비에게 청종하고 네 늙은 어미를 경히 여기지 말지니라”고 말하고(잠 23:22), 또 “자녀들아 너희 부모를 주 안에서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이것이 약속 있는 첫계명이니 이는 네가 잘 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고 말한다(엡 6:1-3). 성경은 실상 우리가 모든 사람을 공경하고 상대를 서로 먼저 존경해야 한다고 가르친다(벧전 2:17; 롬 12:10).

하나님께서는 또 “나의 안식일을 지키라”고 말씀하셨다. 원문에는 “나의 안식일들을 지키라”고 되어있다. ‘안식일들’이라는 말은 주간 안식일 외에 구약 율법에 규정된 여러 안식일들을 가리킨다. 레위기 23장과 민수기 28-29장을 보면, 주간 안식일 곧 제7일 안식일 외에, 연중(年中)에 일곱 안식일들이 있다. 그것은 무교절의 첫날과 일곱째 날, 맥추절, 나팔절(7월 1일), 속죄일(7월 10일), 초막절의 첫째 날과 여덟째 날 등 일곱이다. 안식년과 희년을 포함하면, 구약의 율법에는 모두 열 개의 안식의 날 혹은 해가 있다. 주간 안식일과 연중 안식일들은 ‘성회’로 모이며 아무 일도 노동도 하지 말아야 했다.

출애굽기 31장에 보면, 안식일은 하나님께서 주신 영원한 언약의 표이며 그 날에는 아무 일도 하지 말아야 했고 그 날을 더럽히는 자는 반드시 죽임을 당해야 했다(13-17절). 에스겔 20장에 보면, 선지자 에스겔은 이스라엘 백성이 범한 죄들을 열거하면서 그들이 하나님의 안식일을 더럽혔음을 반복해서 강조하였다(13, 16, 21, 24절). 안식일은 세상의 일들, 곧 직업상의 일들이나 육신적 오락들을 중단하고 오직 하나님께 예배드리기 위해 공적 집회로 모이는 날이다.

[4절] 너희는 헛것을 위하지 말며 . . . .

하나님께서는 또 “너희는 헛것을 위하지 말며 너희를 위하여 신상들을 부어만들지 말라. 나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니라”고 말씀하셨다. ‘헛것’이라는 원어(엘릴림)는 ‘우상들’을 가리킨다. 우상들을 위하지 말고 신상들을 부어만들지 말라는 것은 십계명의 제2계명에 명령된 바이다. 하나님 대신에 하나님처럼 위하는 것, 하나님 대신에 하나님처럼 귀하게 여기는 것, 혹은 하나님보다 더 귀하게 여기는 것이 다 우상이며, 그것을 위하는 자들이 다 우상숭배자들이다. 하나님을 섬기는 자와 우상을 섬기는 자는 명백히 구분된다.

오늘날에는 돈이나 육신의 쾌락을 하나님처럼 혹은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는 우상숭배자들이 많고 심지어 교인들 중에도 있는 것 같다. 교회생활에서 자기 절제가 도무지 없는 자들이 있다. 하나님을 섬기며 하나님께 예배드리기 위해서가 아니고 자기 흥미를 위해 교회에 드나드는 자들이 있다. 그들은 예배에나 성경말씀을 듣고 배우는 일에 인내심이 없고 자기 절제심이 없다. 그들은 하나님 경외함이 없고 단지 육신적 재미와 흥미를 추구하는 자들이다. 그들은 부모 공경이나 부모 교훈을 귀찮게 생각하고 자신의 재미만 구하는 철없는 아이들과 같다. 우리는 참으로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을 섬기는 자가 되자.

[5-8절] 너희는 화목제 희생을 여호와께 . . . .

하나님께서는 또 “너희는 화목제물을 여호와께 드릴 때 열납되도록 드리라”고 말씀하셨다. 화목제물은 감사와 서원과 자원의 뜻으로 드리는 제물이었다. 레위기 7장에 보면, 그 제물은 규례대로 드려져야 했다. 감사의 화목제물은 드린 그 날에 먹어야 했고 그 이튿날에 먹어서는 안 되었다. 서원이나 자원의 화목제물은 이튿날에 먹을 수 있었으나 제3일에는 먹지 말고 불태워야 했다. 하나님께서는 “그 제물은 드리는 날과 이튿날에 먹고 제3일까지 남았거든 불사르라. 제3일에 조금이라도 먹으면 가증한 것이 되어 열납되지 못하고 그것을 먹는 자는 여호와의 성물 더럽힘을 인하여 죄를 당하리니 그가 그 백성 중에서 끊어지리라”고 말씀하셨다.

[9-10절] 너희 땅의 곡물을 벨 때에 . . . .

하나님께서는 또 “너희 땅의 곡물을 벨 때에 너는 밭 모퉁이까지 다 거두지 말고 너의 떨어진 이삭도 줍지 말며 너의 포도원의 열매를 다 따지 말며 너의 포도원에 떨어진 열매도 줍지 말고 가난한 사람과 타국인을 위하여 버려 두라. 나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니라”고 말씀하셨다. 이 법은 레위기 23장이나 신명기 24장에도 나온다(레 23:22; 신 24:19-22). 신명기 24장에는, “네가 밭에서 곡식을 벨 때에 그 한 뭇을 밭에 잊어버렸거든 다시 가서 취하지 말고 객과 고아와 과부를 위하여 버려두라. 그리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 손으로 하는 범사에 복을 내리시리라. 네가 네 감람나무를 떤 후에 그 가지를 다시 살피지 말고 그 남은 것은 객과 고아와 과부를 위하여 버려두며 네가 네 포도원의 포도를 딴 후에 그 남은 것을 다시 따지 말고 객과 고아와 과부를 위하여 버려두라. 너는 애굽 땅에서 종 되었던 것을 기억하라. 이러므로 내가 네게 이 일을 행하라 명하노라”고 말한다(19-22절).

하나님께서는 가난한 자들과 소외된 자들을 긍휼히 여기신다. 그것이 선(善)이며 하나님의 마음이다. 우리가 하나님의 백성이라면, 그러한 선한 마음을 품어야 한다. 사도 바울은 디모데에게, “네가 이 세대에 부한 자들을 명하여 마음을 높이지 말고 정함이 없는 재물에 소망을 두지 말고 오직 우리에게 모든 것을 후히 주사 누리게 하시는 하나님께 두며 선한 일을 행하고 선한 사업에 부하고 나눠주기를 좋아하며 동정하는 자가 되게 하라”고 교훈하였다(딤전 6:17-18).

[11절] 너희는 도적질하지 말며 속이지 말며 . . . .

하나님께서는 또 “너희는 도적질하지 말라”고 말씀하셨다. 그것은 십계명의 제8계명에 해당한다. 성경은 우리가 자기 것과 남의 것을 구분해야 함을 명하고 남의 것에 손을 대는 것을 도적질로 간주한다. 부모의 것과 자식의 것도 구분되고 공적인 것과 사적인 것도 구분된다. 그 구분선을 상대방의 동의 없이 임의로 넘는 것이 도적질이다.

하나님께서는 또 “[너희는] 속이지 말며 서로 거짓말하지 말라”고 말씀하셨다. 그것은 십계명의 제9계명 즉 ‘거짓증거하지 말라’는 계명에 해당한다. 우리는 남을 속이지 말고 서로 거짓말하지 말아야 한다. 사도 바울은 “그런즉 거짓을 버리고 각각 그 이웃으로 더불어 참된 것을 말하라. 이는 우리가 서로 지체가 됨이니라,” “너희가 서로 거짓말을 말라”고 교훈한다(엡 4:25; 골 3:9).

거짓말하는 자는 지옥에 던지울 것이며 천국에 들어가지 못할 것이다. 요한계시록 21:8은 “그러나 두려워하는 자들과 믿지 아니하는 자들과 흉악한 자들과 살인자들과 행음자들과 술객들과 우상숭배자들과 모든 거짓말하는 자들은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 참여하리니 이것이 둘째 사망이라”고 말하고, 요한계시록 22:15은 “개들과 술객들과 행음자들과 살인자들과 우상숭배자들과 및 거짓말을 좋아하며 지어내는 자마다 성[새 예루살렘성=천국] 밖에 있으리라”고 말한다.

[12절] 너희는 내 이름으로 거짓 맹세함으로 . . . .

하나님께서는 또 “너희는 내 이름으로 거짓 맹세함으로 네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하지 말라. 나는 여호와니라”고 말씀하셨다. 이것은 “너는 너의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지 말라. 나 여호와는 나의 이름을 망령되이[헛되이] 일컫는 자를 죄 없다 하지 아니하리라”고 말씀하신 십계명의 제3계명에 해당한다(출 20:7). 우리는 하나님의 이름을 두려운 마음으로, 진실되이, 진지하게 사용해야 한다. 엄숙한 맹세의 자리에서 하나님의 이름을 거짓되이 사용하는 것은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하는 큰 죄악이다.

1절부터 12절까지에서, “나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니라”는 말씀이 세 번 나오며(3, 4, 10절), “나 여호와 너희 하나님”이라는 말씀이 한번(2절), 또 “나는 여호와니라”는 말씀이 한번 나온다(12절). 이 말씀들은 하나님께서 영원하신 참 하나님 곧 창조자와 섭리자이심과, 그가 모든 율법을 명하신 명령권자이심과, 또 자기 백성의 보호자시요 관리자이심을 증거한다. 하나님의 백성된 우리는 우리의 섭리자시요 보호자시요 관리자이신 하나님 때문에 인간적, 세상적 염려와 걱정을 버릴 수 있고 참된 평안을 누린다.

레위기 19:1-12의 본문에는 여러 가지 교훈이 나와 있다. 본문에 기록된 순서대로 보면, 먼저 우리는 모든 죄악과 불결을 버리고 거룩하자. 우리를 택하시고 구원하신 하나님께서 거룩하시므로 우리도 모든 말과 행실에 있어서 거룩하고 깨끗한 자가 되어야 한다(벧전 1:15-16).

우리는 주의 날을 거룩히 지키자. 이 날 세상의 일들을 쉬고 오락을 금하며 오전에도, 오후에도 공예배로 교회에 모여 하나님을 섬기며 성경말씀을 읽고 묵상하며 배워야 한다. 우리는 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하지 말고 오직 권하여 주의 재림의 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더욱 모이기를 힘써야 한다(히 10:25).

우리는 부모를 공경하고 경외하자. 이것이 하나님의 뜻이며 성경의 교훈이고, 하나님 아버지를 기쁘시게 하는 일이며 하나님의 자녀들이 이 세상에서도 잘되고 복을 받는 길이다.

우리는 돈과 육신적 쾌락을 포함하여 우상을 섬기지 말자. 말세의 풍조는 사람들이 자기를 사랑하고 돈을 사랑하고 육신의 쾌락을 사랑하는 것이지만(딤후 3:1-5), 우리는 그런 풍조를 배격하고 그런 자들에게서 돌아서고 자기를 부정하고 자기를 절제하고 하나님의 모든 말씀을 믿고 순종하고 인내함으로써 선한 열매를 맺는 자가 되어야 한다.

또 우리는 가난한 자들을 배려하자. 성경은 “가난한 사람을 학대하는 자는 그를 지으신 이를 멸시하는 자요 궁핍한 사람을 불쌍히 여기는 자는 주를 존경하는 자니라”고 말한다(잠 14:31).

우리는 도적질하지 말자. 우리는 내 것과 남의 것을 구분해야 하고 남의 것을 취하는 자가 되지 말고 도리어 가난한 자를 구제할 수 있도록 손으로 수고하여 선한 일을 해야 한다(엡 4:28). 또 우리는 서로 거짓말하지 말자. 우리는 서로 지체가 된 것을 깨닫고 모든 거짓을 버리고 서로 참된 것을 말해야 한다(엡 4:25).

또 우리는 하나님의 이름을 두려운 마음으로 진실하게 사용하자. 우리는 오직 하나님만 섬기며 그의 모든 계명들에 순종해야 한다.

 

이사야 강해:                                  메시야 시대

[11:1] 이새의 줄기에서 한 싹이 나며 . . . .

이사야는 “이새의 줄기에서 한 싹이 나며 그 뿌리에서 한 가지가 나서 결실할 것이라”고 예언한다. 이것은 메시야께서 다윗의 자손으로 오실 것을 예언한 것이다. 메시야를 다윗의 자손이라고 표현하지 않고 다윗의 아버지인 이새의 자손이라고 표현한 것은 메시야의 비천한 출생을 암시하는 것 같다. 이새는 가난하고 비천한 신분의 사람이었다. 다윗은 동료 신하들에게 “왕의 사위 되는 것을 너희는 경한 일로 보느냐? 나는 가난하고 천한 사람이로라”고 말했었다(삼상 18:23).

이 예언은 메시야의 인성(人性)과 그의 낮아지심을 나타낸다. 예수님의 모친 마리아는 아기 예수를 출산하고 40일이 지나 결례(潔禮)를 행하는 날에 예루살렘에 올라가 비둘기 한 쌍으로 제사하려 하였는데(눅 2:24), 그것은 가정의 경제적 형편이 어려웠음을 나타낸다. 보통 출산한 여인은 1년된 어린양으로 속죄제를 드렸으나 가난한 경우는 비둘기로 드렸다(레 12:6-8). 예수 그리스도는 가난한 가정에서 출생하셨고 비천한 종의 모습으로 세상에 오셨다.

[2절] 여호와의 신 곧 지혜와 총명의 신이요 . . . .

이사야는 “여호와의 신 곧 지혜와 총명의 신이요 모략과 재능의 신이요 지식과 여호와를 경외하는 신이 그 위에 강림하시리라”고 예언한다. ‘신’이라는 원어(루아크)는 ‘영’(靈)이라는 뜻이다. ‘여호와의 신’은 ‘여호와의 영’ 곧 성령을 가리킨다. ‘강림하신다’는 원어(누아크)는 ‘머무르다’(rest upon)는 뜻이다. 성령께서는 메시야 위에 머무르실 것이다. 성령은 지혜와 총명의 영이시며 모략과 권능의 영이시며 지식과 여호와를 경외하는 영이시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영’이라는 말은 ‘여호와를 경외케 하는 영’이라는 뜻일 것이다.

과연 예수께서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실 때에 성령께서는 그 위에 비둘기처럼 내려오셨다. 마태복음 3:16은 “예수께서 세례를 받으시고 곧 물에서 올라오실새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성령이 비둘기같이 내려 자기 위에 임하심을 보셨다”고 증거한다. 그러나 실상 예수께서는 본래부터 신성(神性)을 가진 자로서 사람이 되셨다. 사도 요한은 증거하기를,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라”고 하였다(요 1:14).

본절은 메시야의 신성(神性)을 예언한 것이다. 메시야께는 성령의 충만함이 있을 것이다. ‘메시야’라는 말은 ‘기름부음을 받은 자’라는 뜻이며 그것은 성령의 충만한 부음을 가리킨다. 골로새서 2:9은 “그 안에는 신성(神性)의 모든 충만이 육체로 거하셨다”고 말한다.

[3-5절] 그가 여호와를 경외함으로 즐거움을 . . . .

선지자 이사야는 또 예언하기를, “그[메시야]가 “여호와를 경외함으로 즐거움을 삼을 것이며 그 눈에 보이는 대로 심판치 아니하며 귀에 들리는 대로 판단치 아니하며 공의로 빈핍한 자를 심판하며 정직으로 세상의 겸손한 자를 판단할 것이며 그 입의 막대기로 세상을 치며 입술의 기운으로 악인을 죽일 것이며 공의로 그 허리띠를 삼으며 성실로 몸의 띠를 삼으리라”고 말한다. ‘즐거움을 삼는다’는 원어(하리코)는 ‘냄새를 낸다, 알아차린다, 향기를 낸다’는 뜻이며 또 ‘기뻐한다’고 번역되기도 한다(BDB, NASB, NIV). 옛날 영어성경은 ‘지혜를 얻게 한다’고 번역했는데(KJV), 그것이 더 나아 보인다.

이 예언은 메시야의 사역의 한 면을 증거한다. 즉 메시야께서 오셔서 공의의 심판자로 일하실 것을 증거한다. 메시야께서는 눈에 보이는 대로 심판하지 않으시고 귀에 들리는 대로 판단치 않으실 것이다. 즉 그는 사람을 외모로 심판하지 않으실 것이다. 그는 공의로 가난한 자들을 심판하시고 정직으로 겸손한 자들을 판단하실 것이다. 그러므로 그의 앞에는 억울한 일이 없을 것이다. 그러나 악한 자들은 그가 공의로 보응하시는 심판을 두려워해야 한다. 그것은 그가 그의 입의 막대기로 세상을 치시며 그의 입술의 기운으로 악인들을 죽이실 것이며 공의와 정직으로 심판을 시행하실 것이기 때문이다.

[6-9절] 그때에 이리가 어린양과 함께 거하며 . . . .

선지자 이사야는 또 메시야의 오심과 그의 사역의 결과로 이 땅 위에 평화의 세계가 이루어질 것을 예언한다. “그때에 이리가 어린양과 함께 거하며 표범이 어린 염소와 함께 누우며 송아지와 어린 사자와 살찐 짐승이 함께 있어 어린아이에게 끌리며 암소와 곰이 함께 먹으며 그것들의 새끼가 함께 엎드리며 사자가 소처럼 풀을 먹을 것이며 젖먹는 아이가 독사의 구멍에서 장난하며 젖뗀 어린아이가 독사의 굴에 손을 넣을 것이라. 나의 거룩한 산 모든 곳에서 해됨도 없고 상함도 없을 것이니 이는 물이 바다를 덮음같이 여호와를 아는 지식이 세상에 충만할 것임이니라.”

메시야의 오심으로 이루어질 새 세계의 특징은 한마디로 평화이다. 거기에는 악한 짐승들이 없을 것이다. 모든 짐승들은 성질이 온순해질 것이다. 그러므로 그때는 세상에 상함과 해됨이 더 이상 없을 것이며, 그것은 세상에 하나님의 지식과 경외함이 충만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 예언은, 만일 그것이 문자적 의미라면, 천년왕국에서 이루어질 것이며, 만일 비유적, 영적 의미라면, 신약시대나 천국의 모습을 가리킨 것일 것이다. 그 예언은 영적으로 이미 이루어지고 있다.

이사야 11:1-9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우리는 하나님께서 보내신 구주 예수 그리스도를 감사하며 그를 굳게 믿고 의지하자. 예수께서는 이사야서에 예언된 메시야로 이 세상에 오셨다. 사도 바울은, “미쁘다 모든 사람이 받을 만한 이 말이여 그리스도 예수께서 죄인을 구원하시려고 세상에 임하셨다 하였도다. 죄인 중에 내가 괴수니라”고 말했다(딤전 1:15). 우리 모두는 구주 예수 그리스도를 진심으로 믿고 따르자.

둘째로, 우리는 장차 예수 그리스도께서 공의로 심판하실 것을 알자. 하나님께서는 공의로 온 세상을 심판하실 것이며(롬 2:6-8) 아들 예수를 심판자로 세우셨다. 예수께서는 “아버지께서 심판을 다 아들에게 맡기셨다”고 말씀하셨다(요 5:22). 또 사도 바울은 하나님께서 모든 사람들에게 회개를 명하셨고 “정하신 사람으로 하여금 천하를 공의로 심판할 날을 작정하시고 이에 저를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신 것으로 모든 사람에게 믿을 만한 증거를 주셨음이니라”고 말했다(행 17:30-31). 그러므로 이 지식을 가진 우리는 죄를 멀리하고 의롭고 선하게 살아야 한다.

셋째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으로 이루어질 평화의 새 세계를 사모하며 소망하자. 평화의 새 세계는 영적으로는 이미 시작되었다. 구원받은 성도들은 죄인들이 거룩한 의인들로 변화된 자들이다. 그들은 평안을 얻었고 또 화평케 하는 사신으로 부름을 받았다. 그러나 우리의 성화가 불완전하듯이 지상의 교회는 여전히 불완전하다. 그러나 장차 주의 재림으로 이루어질 천년왕국이나 천국에서 이 예언은 충만하게 이루어질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약속대로 의(義)가 충만한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며(벧후 3:13) 그 세계를 사모하며 소망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