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신앙  2009년 06월 14일 [제13권 24호]   ◆ 매주 발행 ◆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너희는 길에 서서 보며 옛적 길 곧 선한 길이 어디인지 알아보고 그리로 행하라. 너희 심령이 평강을 얻으리라' 하나, 그들의 대답이 '우리는 그리로 행치 않겠노라' 하였으며"(렘 6:16).

 

 

옛신앙

 

Old-time Fait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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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옛신앙'이란, 옛부터 하나님의 선지자들과 주의 사도들이 가졌던 신앙, 오직 정확 무오(無誤)한 하나님 말씀인 신구약 성경에만 근거한 신앙, 오늘날 배교와 타협의 풍조에 물들지 않는 신앙을 의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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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일오전설교:                           마귀의 시험

마태복음 4:1-11, “그 때에 예수께서 성령에게 이끌리어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러 광야로 가사 . . . .”

인류의 타락은 첫사람 하와가 마귀의 시험에 넘어진 데서 비롯하였습니다. 그러나 구주 예수 그리스도는 마귀의 시험을 물리치셨습니다. 마귀는 지금도 살아 역사하며 온 세상을 미혹하고 거짓된 사상과 부도덕과 음란풍조를 조장하고 특히 교회를 부패시키고 성도들을 죄에 빠뜨리려고 활동합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잘 믿어 보려고 하면 마귀는 우리를 더 넘어뜨리고 범죄케 하려고 여러 가지 시험을 합니다.

예수님은 전도사역을 시작하시기 전에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셨습니다. 오늘 읽은 본문은 그 사건을 기록합니다. 예수님은 성령에 이끌리어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시려 광야로 나가셨습니다. 거기서 밤낮으로 40일 동안 금식하신 후 배가 몹시 고프셨습니다. 그때 마귀는 예수님에게 접근하여 세 가지를 시험하였습니다.

첫째로, 마귀는 예수님께 돌로 떡덩이를 만들라고 시험하였습니다.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하나님의 본질과 속성을 가지고 계시므로, 돌로 떡덩이를 만들려면 하실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마귀에게 대답하기를, “기록되었으되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 하였느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마귀의 시험을 성경말씀 곧 하나님의 말씀으로 물리치셨습니다. 성경말씀은 성령의 검입니다(엡 6:17). 그것은 마귀를 물리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무기입니다. 예수님이 인용하신 말씀,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는 말씀의 뜻이 무엇입니까? 떡, 즉 밥이나 빵은 육신의 양식입니다. 밥이나 빵은 육신의 생명을 위해, 육신의 생존을 위해 필수적입니다.

그러나 밥이나 빵은 영원한 생명을 주지는 못합니다. 인간의 삶이 참으로 무엇입니까? 인간의 삶이 육 신의 생명뿐이라면, 사람이 죽을 때 그는 허무한 자가 되고 말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사람이 영생하는 존재로 창조되었음을 알려줍니다. 사람은, 비록 죄 때문에 죽게 되었지만, 구원을 받아 영생의 복을 누릴 수 있습니다. 사람은 밥이나 빵으로는 영생하지 못하지만, 영원하신 하나님의 말씀으로는 영생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을 어겨가면서 떡을 구해서는 안 됩니다. 영의 생명을 병들게 하고 위태하게 하면서 육의 생명을 위해서는 안 됩니다. 사람은 돌로 떡을 만들어 먹어서는 안 되며 위법하게 돈을 벌어서는 안 됩니다.

수고하며 일하며 사는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담에게, “너는 종신토록 수고하여야 그 소산을 먹으리라”고 말씀하셨고(창 3:17), 또 “네가 얼굴에 땀이 흘러야 식물을 먹으리라”고 하셨습니다(창 3:19). 또 하나님께서는 안식일 계명을 주시면서 “엿새 동안은 힘써 네 모든 일을 행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또 잠언은 우리에게 게으르지 말고 부지런하게 살라고 교훈합니다. 잠언 10:4은, “손을 게으르게 놀리는 자는 가난하게 되고, 손이 부지런한 자는 부하게 되느니라”고 말합니다.

첫 번째 시험에서, 마귀는 예수님에게 돌로 떡을 만들라는 위법한 요구를 하였지만, 예수님은 그 시험을 잘 물리치셨습니다. 그는 떡이 사람의 육신을 위해서 필요하다는 것을 아시지만, 사람은 단지 육신의 생명만 가진 존재가 아니고 영혼이 있는 존재이며 그 영혼은 하나님의 모든 말씀으로 산다는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또 그는 사람이 하나님의 말씀을 거슬러 떡을 구하려 해서는 안 된다는 것도 암시하셨습니다. 사람은 위법한 방법으로 돈을 벌려 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정직하고 성실하게, 정정당당하게, 땀 흘려 일함으로써 돈을 벌고 밥을 먹어야 합니다.

둘째로, 마귀는 예수님을 거룩한 성으로 데려다가 성전 꼭대기에 세우고 거기에서 뛰어내리라고 시험하였습니다. 마귀는 이번에 성경을 인용하면서, 그러면 천사들이 너를 받들어 발이 돌에 부딪히지 않게 할 것이라고 말하였습니다.

마귀는 성경을 인용하였습니다. 마귀도 때때로 성경을 인용합니다. 그것은 이단들에게서 볼 수 있는 일입니다. 이단들도 성경을 인용합니다. 그러나 그들은 성경을 바르게 인용하지 않고 자기에게 편리한 대로 인용합니다. 그들은 성경의 바른 뜻과 전체적인 뜻을 말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성경을 바르게 해석하지 않고 바르게 적용하지도 않습니다. 그것은 성경의 오용이며 왜곡입니다.

마귀의 이 시험의 내용은 기적주의를 부추기는 것입니다. 그것은 종교적 시험입니다. 기적을 행하는 것은 사람들의 관심을 끌고 사람들에게 높임을 받는 일입니다. 오늘날 많은 교인들이 기적주의에 물들어 있는 것 같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신비주의, 은사주의를 추구합니다. 사람들은 병고침을 기대하고, 방언하기를 원하고 심지어 예언하기를 원합니다. 그들은 기도의 응답으로 기적을 체험하기를 소원합니다.

예수님께서 성전 꼭대기에서 뛰어내리셔도, 천사가 그를 지켜 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마귀의 제안을 거절하셨습니다. 왜 그러셨습니까?

예수님은 마귀에게 대답하시기를, “또 기록되었으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는 성경에 ‘또 기록된 말씀,’ 즉 성경의 전체적인 말씀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모든 뜻을 알아야 합니다. 성경에 제시된 하나님의 뜻은 기적주의가 아닙니다. 기적은 역사상 간혹 일어났습니다. 그래서 기적인 것입니다. 기적이 빈번히 일어나면 기적이 아닐 것입니다.

우리는 일상적인 일을 기적이라고 부르지 않습니다. 소가 풀을 먹고 우유를 내지만, 그것을 기적이라고 부르지 않습니다. 사과나무가 사과를 열지만, 그것을 기적이라고 부르지 않습니다. 우리는 그것을 자연법칙이라고 부릅니다. 그러나 사실상 자연법칙은 매우 신비로운 것이며 기적 같은 것입니다. 자연법칙은 하나님의 일반적 섭리입니다.

예수님의 대답은 무엇입니까? 예수님이 인용하신 성경은, 하나님의 뜻은 하나님을 시험치 말라는 것이라는 내용입니다. 성전 꼭대기에 올라갔으면 기적을 구하며 뛰어내릴 것이 아니고, 사닥다리를 타고 조심하며 내려와야 할 것입니다.

기적은 언제나 가능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뜻은 일반적으로 자연법칙을 무시하지 않는 것입니다. 학생이 공부를 해야 성적이 오르지 공부하지 않고 기도만 하면 성적이 오르지 않을 것입니다. 사업가가 열심히 뛰어야 돈을 벌지, 기도하며 기적이나 요행만 바란다면 돈을 벌 수 없을 것입니다. 병자는 의술과 약을 무시하지 말고 의사 선생님께 가서 진료를 받고 약의 처방을 받아야 병고침을 받을 것입니다. 이런 것들이 하나님의 일반적인 뜻입니다.

기독교는 미신적이지 않습니다. 기독교는 사람의 정상적 사고방식, 정상적 생활을 장려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기적을 믿지만, 기적은 일상적인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말씀을 전달하거나 확증함이 필요했던 사도시대 같은 때에 주신 특별한 것이었습니다.

우리는 기적을 믿지만, 기적주의에 떨어져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성전 꼭대기에서 아래로 뛰어내리려 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시험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자연법칙을 존중하고 정상적인 삶을 귀히 여기며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을 사용해야 합니다.

셋째로, 마귀는 예수님께 자기에게 절하면 세상의 영광을 주겠다고 시험하였습니다. 세상 영광을 얻게 하겠다는 시험은 사람에게 매우 큰 시험입니다. 사람들은 누구나 세상 영광을 좋아하는 것 같습니다.

사람들은 세상에서 부자가 되고 세상에서 높은 사람, 다른 사람들의 부러움을 사는 사람이 되려고 합니다. 사람들은 세상에서 멋 있는 삶, 고상하고 품위 있는 삶을 살고 싶어하고 그런 삶을 꿈꿉니다. 많은 사람들은 하나님을 믿지 않지만, 그 대신 세상적 영광의 가치, 세상적 성공의 가치를 믿습니다. 세상 영광만 얻을 수 있다면, 자기 영혼이라도 팔 각오를 가진 자들이 많이 있는 것 같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세상 영광만 얻는다면 하나님을 섬기는 것 대신 마귀를 섬긴다 하더라도 나쁠 것이 없다고 보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이 시험에서 “사탄아 물러가라. 기록되었으되 주 너의 하나님께 경배하고 다만 그를 섬기라 하였느니라”고 대답하셨습니다.

사람이 하나님만 섬겨야 한다는 것은 하나님의 계명들 중 첫 번째 계명입니다. 사람은 하나님을 세상과 바꾸어서는 안 됩니다.

세상은 하나님과 비교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세상은 하나님의 피조물에 불과합니다. 또 세상은 낡고 시들고 쇠하여지는 것입니다(시 102:26-27; 벧전 1:24-25). 그러므로 세상과 하나님을 바꾸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요 죄악된 일입니다. 사람은 창조주 하나님, 섭리자 하나님, 심판자 하나님, 우리의 영적 부모이신 하나님을 섬겨야 하고 하나님만 섬겨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영광만 사모해야 하며 천국의 영광을 가장 가치 있게 여겨야 합니다. 바울은, “우리의 돌아보는 것은 보이는 것이 아니요 보이지 않는 것이라”고 하였습니다(고후 4:18). 가룟 유다는 은 30에 주님을 배신하였고, 데마는 세상을 사랑하여 사도 바울을 버리고 떠나갔지만(딤후 4:10), 성경은 우리에게 이 세상을 사랑하지 말라고 교훈하며(요일 2:15),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자신을 부정하고 나를 따르라”(마 16:24)고 가르치셨습니다. 우리는 하나님만 섬기며 천국만 소망하며 예수님을 따라가야 합니다.

마귀는 예수님께 세 가지 시험을 하였습니다. 마귀는 오늘 우리에게도 비슷한 시험을 할 것입니다. 우리는 마귀의 시험을 조심해야 합니다.

첫째로, 우리는 육신의 생명만 위하고 영혼을 위하지 않게 하는 시험을 조심합시다. 또 돈을 벌되 부당한 방법으로 벌게 하는 시험을 조심합시다. 우리는 영혼의 양식인 성경말씀을 사모하며 정직하고 정당한 방법으로 땀 흘리며 근면하게 일함으로써 돈을 벌어야 합니다.

둘째로, 우리는 기적주의의 시험을 조심합시다. 우리는 결코 하나님을 시험하지 말고, 하나님의 일반적 섭리를 믿고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을 다해야 합니다. 우리는 정상적이고 인격적인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셋째로, 우리는 세상 영광을 구하여 마귀에게 굴복하는 시험을 조심합시다. 우리는 세상 영광을 위해 우리 영혼을 마귀에게 내어주는 자가 되지 말아야 합니다. 이 세상의 모든 것이 결국 헛된 것임을 인정하고 성경의 교훈대로 천국에 소망을 두고 하나님만 섬기며 그의 계명에만 순종하며 사는 경건하고 의롭고 선하고 진실한 자가 되어야 합니다.

 

레위기 강해:                               절기들 (2)

[23:23-25]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일러 . . . .

23-25절에서,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7월 1일, 곧 7월 월삭을 안식일로 삼고 나팔을 불어 기념하며 성회로 모이라고 명하셨다. 또 그 날에는 아무 노동도 하지 말고 여호와께 화제를 드리라고 하셨다. 이것이 나팔절이다. 이 날은 안식일로 불린다. 이것은 1년에 일곱 절기들의 일곱 안식일들(무교절 2번, 맥추절 1번, 나팔절 1번, 속죄일 1번, 초막절 2번) 중의 하나이다. 그 날에는 아무 노동도 하지 말아야 하였다. 또 이 날은 하나님 앞에 거룩한 집회로 모이는 날이다.

이 날은 특별히 나팔을 부는 날이다. 이것은 사람들로 하여금 앞으로 오는 한 중대한 절기를 기억케 하는 뜻이 있었다. 그 중대한 절기는 7월 10일 속죄일이다. 속죄일은 기독교의 핵심인 속죄를 증거하는 절기이다. 나팔절은 이스라엘 백성으로 하여금 속죄일이 중대한 날임을 암시하며 그 날을 엄숙히 준비시키는 절기이었다. 기독교가 전하는 내용은 한마디로 속죄이다. 사도 바울은 말하기를, “유대인은 표적을 구하고 헬라인은 지혜를 찾으나 우리는 십자가에 못박힌 그리스도를 전하니 유대인에게는 거리끼는 것이요 이방인에게는 미련한 것이로되 오직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지혜니라”고 하였다(고전 1:22-24). 속죄의 주님은 복음의 핵심이다.

[26-32절]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일러 . . . .

26-32절에서,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또 말씀하셨다. “7월 10일은 속죄일이니 너희에게 성회라. 너희는 스스로 괴롭게 하며 여호와께 화제(火祭)를 드리고 이 날에는 아무 일도 하지 말 것은 너희를 위해 너희 하나님 여호와 앞에 속죄할 속죄일이 됨이니라. 이 날에 스스로 괴롭게 하지 아니하는 자는 그 백성 중에서 끊어질 것이라. 이 날에 누구든지 아무 일이나 하는 자는 내가 백성 중에서 멸절시키리니 너희는 아무 일이든지 하지 말라. 이는 너희가 그 거하는 각처에서 대대로 지킬 영원한 규례니라. 이는 너희의 쉴 안식일이라. 너희는 스스로 괴롭게 하고 이 달 9일 저녁 곧 그 저녁부터 이튿날 저녁까지 안식을 지킬지니라.”

이 날은 속죄일(욤 학킵푸림)이다. 이 날도 안식일이며 아무 일도 하지 말아야 하였고 성회로 모여야 하였다. 이 날은 ‘쉴 안식일’(솹밧 솹바손)이라고 불렸다(32절). 이 말은 출애굽기 31:15에서는 ‘큰 안식일’이라고 번역되었다. 이스라엘 백성은 7월 9일 저녁부터 10일 저녁까지 안식을 지켜야 하였다.

특히 이 날은 ‘스스로 괴롭게 하는’ 날이었다. ‘괴롭게 한다’는 원어(인나)는 ‘금식함으로 자신을 낮춘다, 괴롭힌다’는 뜻이라고 한다(BDB). 속죄일은 금식일이었다. 이 날의 규례는 엄격하여 누구든지 이 날에 자신을 괴롭게 하지 않으면 백성 중에서 끊어질 것이다. 그 날에 금식하며 자신을 괴롭히고 낮추는 것은, 그 날이 메시야의 고난을 예표한 날이기 때문이다.

속죄일은 참으로 의미심장한 날이다. 그 날은 그리스도의 대속사역을 상징한 날이다. 속죄는 성경의 핵심 진리이다. 사도 바울은 “우리는 십자가에 못박힌 그리스도를 전한다”고 말하였다(고전 1:23). 또 그는,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구속(救贖)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고 말하였다(롬 3:23-24). 여기에 기독교 복음의 진수(眞髓)가 있다.

속죄일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죄를 단번에 완전히 담당하심을 상징하고 예표한다. 그것은 구약성경이 예언하는 바이다. 선지자 스가랴는 예언하기를, “이 땅의 죄악을 하루에 제하리라”고 하였다(슥 3:9). 천사 가브리엘은 다니엘에게 “네 백성과 네 거룩한 성을 위하여 70이레로 기한을 정하였나니 허물이 마치며 죄가 끝나며 죄악이 영속(永贖)되며 영원한 의(義)가 드러나며 이상과 예언이 응하며 또 지극히 거룩한 자가 기름부음을 받으리라”고 말하였다(단 9:24).

신약성경도 메시야의 단번 속죄를 밝히 증거한다. 히브리서에는 ‘단번에’라는 말이 다섯 번 나온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많은 사람들의 속죄를 단번에 이루셨음을 증거한다. 히브리서 9:12, “염소와 송아지의 피로 아니하고 오직 자기 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사 단번에 성소에 들어가셨느니라.” 히브리서 10:10, “이 뜻을 좇아 예수 그리스도의 몸을 단번에 드리심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거룩함을 얻었노라.” 또 신약성경은 그리스도의 고난을 항상 기억하라고 교훈한다. 이것이 성찬식이다.

[33-44절]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일러 . . . .

33-44절에서, 하나님께서는 연중 3대 절기들 중 세 번째의 절기인 초막절에 대해 말씀하셨다. 초막절은 수장절(收藏節)이라고도 하는데, 7월 15일부터 7일간 지키는 절기이다. 또 첫날(7월 15일)과 제8일(7월 22일)은 안식일이며 성회로 모여야 하였고 특히 제8일은 ‘거룩한 대회’라고 불렸다.

그 날은 연중 일곱 절기들 중에 가장 많은 제물을 하나님께 드리는 절기이었다. 민수기 29장에 보면, 초막절에 번제로 드리는 숫송아지가 모두 71마리, 숫양이 15마리, 1년된 숫양이 105마리이며, 속죄제로 드리는 숫염소가 모두 8마리이다(민 29:13-38).

초막절 혹은 수장절은 토지 소산 거두기를 마친 후에 드리는 추수감사의 절기이었다. 초막절 때에는 이미 곡식 추수는 끝난 때이었고 포도주와 기름과 열매들을 수확하는 때이었다. 그것은 즐거운 절기이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너희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7일 동안 즐거워할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그들이 수고는 하였지만, 그들에게 곡식과 포도주와 기름과 열매들을 주신 이는 하나님이시다. 그들은 하나님의 모든 복주심을 인하여 기뻐하며 감사해야 하였다.

이스라엘 백성은 초막절에 7일 동안 초막에 거해야 하였다. 그것은 그들의 조상들이 애굽에서 나와 광야에서 40년 동안 장막을 치며 살았던 때를 회상하는 뜻이 있었다. 이스라엘의 40년 광야생활은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한 기간이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만나와 메추라기를 공급해주셨고, 불기둥과 구름기둥으로 인도해주셨고 그들을 모든 위험에서 보호해주셨다. 그들은 광야생활 동안 하나님의 공급하심과 인도하심과 보호하심을 체험하였다.

초막절은 몇 가지 영적 교훈을 준다. 초막절은 우선 추수감사의 의미를 가진다. 초막절은 또 이 세상의 삶이 광야 같은 나그넷길임을 알게 한다. 초막절은 또 우리가 천국만 소망하며 살아야 함을 보인다.

위기 23:23-44에서, 우리는 몇 가지 교훈을 얻는다. 첫째로, 우리는 나팔을 불듯이 속죄의 복음을 널리 전하자. 고린도전서 1:22-25, “유대인은 표적을 구하고 헬라인은 지혜를 찾으나 우리는 십자가에 못박힌 그리스도를 전하니 유대인에게는 거리끼는 것이요 이방인에게는 미련한 것이로되 오직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지혜니라. 하나님의 미련한 것이 사람보다 지혜 있고 하나님의 약한 것이 사람보다 강하니라.”

둘째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고난과 대속(代贖)의 은혜를 기억하자. 고린도전서 11:23-26, “내가 너희에게 전한 것은 주께 받은 것이니 곧 주 예수께서 잡히시던 밤에 떡을 가지사 축사하시고 떼어 가라사대 이것은 너희를 위하는 내 몸이니 이것을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 하시고 식후에 또한 이와 같이 잔을 가지시고 가라사대 이 잔은 내 피로 세운 새 언약이니 이것을 행하여 마실 때마다 나를 기념하라 하셨으니 너희가 이 떡을 먹으며 이 잔을 마실 때마다 주의 죽으심을 오실 때까지 전하는 것이니라.” 성찬식으로 주의 고난을 기억하자.

셋째로, 우리는 이 세상에서의 복을 하나님께 감사하고 기뻐하지만, 이 세상이 광야 같은 나그넷길임을 알고 오직 하나님만 바라고 천국만 소망하자. 고린도후서 4:18, “우리의 돌아보는 것은 보이는 것[물질세계]이 아니요 보이지 않는 것[천국]이니 보이는 것은 잠깐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함이니라.” 우리의 본향은 천국이다! 오직 천국을 소망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