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신앙  2009년 12월 13일 [제13권 50호]   ◆ 매주 발행 ◆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너희는 길에 서서 보며 옛적 길 곧 선한 길이 어디인지 알아보고 그리로 행하라. 너희 심령이 평강을 얻으리라' 하나, 그들의 대답이 '우리는 그리로 행치 않겠노라' 하였으며"(렘 6:16).

 

 

옛신앙

 

Old-time Fait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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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옛신앙'이란, 옛부터 하나님의 선지자들과 주의 사도들이 가졌던 신앙, 오직 정확 무오(無誤)한 하나님 말씀인 신구약 성경에만 근거한 신앙, 오늘날 배교와 타협의 풍조에 물들지 않는 신앙을 의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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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일오전설교:                     장로의 직무와 권위

 [성경본문] 사도행전 20:28

오늘 본문은 사도 바울이 에베소 교회의 장로들에게 준 교훈입니다. 저는 오늘 이 말씀과 또 성경 다른 곳의 말씀들에 근거하여 장로로 임직받는 이들에게와 그들을 장로로 세우는 회중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교훈을 전하고자 합니다.

우선, 장로의 직무가 무엇입니까? 본문을 다시 보면, "너희는 자기를 위하여 또는 온 양떼를 위하여 삼가라. 성령이 저들 가운데 너희로 감독자를 삼고 하나님[주 하나님]이 자기 피로 사신 교회를 치게 하셨느니라"고 말합니다. 본문은 교회 장로를 '양떼의 감독자' '교회를 치는 자'라고 말합니다. 교회는 구원받은 성도들의 모임이며 그 성도들은 하나님의 양떼입니다. 장로는 그들을 감독하고 가르치며 돌보는 자입니다. 즉 목양자(牧羊者)인 것입니다. 베드로전서 5:2에서, 사도 베드로도 장로들을 '하나님의 양무리를 치는 자'라고 말하였습니다. 장로의 직무는 목사와 협력하여 목양(牧羊)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장로의 권위는 무엇입니까? 하나님께서는 교회에 두 가지 권위를 주셨습니다.

첫째로, 하나님께서는 교회에 말씀의 권위를 주셨습니다. 마태복음 16장에 보면, 주님께서는 베드로의 신앙고백을 들으신 후에 말씀하시기를,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 내가 천국 열쇠를 네게 주리니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고 하셨습니다(마 16:18-19). 주께서 베드로에게 주신 천국 열쇠, 즉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이고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는 그 열쇠는 말씀의 권위를 가리킨 것입니다.

교회는 주께서로부터 말씀 전파의 명령과 권위를 받았습니다. 주께서는 제자들에게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마 28: 18-20). 그러므로 사도 바울은 교회를 '진리의 기둥과 터'라고 불렀습니다(딤전 3:15). 또 그는 디모데에게 "하나님 앞과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실 그리스도 예수 앞에서 그의 나타나실 것과 그의 나라를 두고 엄히 명하노니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라. 범사에 오래 참음과 가르침으로 경책하며 경계하며 권하라"고 말했습니다(딤후 4:1-2). 하나님께서는 교회에 말씀 전파의 권위, 설교와 교훈의 권위를 주셨습니다.

둘째로, 하나님께서는 교회에 치리와 권징의 권위를 주셨습니다. 그것은 교회가 교인들 개개인이 하나님의 말씀대로 바르게 믿고 행하는지 살피고 지도하고 훈련시키고 그렇지 못할 때는 적절한 책망과 징벌을 주는 것을 말합니다.

마태복음 18:15-18에 보면, 주께서는 제자들에게 교훈하시기를, "네 형제가 죄를 범하거든 가서 너와 그 사람과만 상대하여 권고하라. 만일 들으면 네가 네 형제를 얻은 것이요 만일 듣지 않거든 한두 사람을 데리고 가서 두세 증인의 입으로 말마다 증참케 하라. 만일 그들의 말도 듣지 않거든 교회에 말하고 교회의 말도 듣지 않거든 이방인과 세리와 같이 여기라.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무엇이든지 너희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무엇이든지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고 하셨습니다. 그것은 치리와 권징의 권위입니다. 그것은 땅위의 교회에 주신 신성한 권위입니다. 주님께서는 교회가 그 권위를 바르게 사용하면 그것이 천상에서까지 효력이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성경은 하나님께서 이런 권위, 즉 말씀 전파의 권위와 치리와 권징의 권위를 교회 전체, 즉 교인들 전체에게 주셨다고 말합니다. 신약 교회 안에는 육신적으로 아론의 자손들이나 레위 자손들이 따로 있지 않습니다. 베드로전서 2:9은 모든 신자들이 하나님의 택하신 족속이며 왕 같은 제사장들이며 거룩한 나라이며 그의 소유된 백성이라고 말합니다. 우리의 중보자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뿐이십니다. 오늘날에는 하나님께서 은혜를 주시는 대로 또 적절한 훈련을 통해서 누구든지 다 말씀 전파자가 될 수 있고 교회의 직분자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에 더하여, 성경은 교회에 주신 권위를 실제로 행사할 목사와 장로에 대해 말합니다. 에베소서 4:11에 보면, 승천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교회에 목사를 주셨다고 말합니다. 주께서 신약 교회에 목사를 주셨습니다. 또 오늘 본문에는 성령께서 장로들을 감독자로 세워 자기 피로 사신 교회를 치게 하셨다고 말씀합니다. 목사와 장로는 주께서 세우시고 성령께서 세우시는 자들입니다. 목사와 장로는 단지 교인들이 선택하여 청빙하거나 추천하고 뽑고 세우는 것이 아닙니다. 목사와 장로들은 하나님께서 보내시고 세우시는 자들입니다. 여기에 목사와 장로의 직분의 권위가 있습니다. 목사와 장로의 권위는 하나님께서 주신 직분으로부터 나오는 것입니다.

그러면, 장로들에게 주는 교훈은 무엇입니까? 오늘 본문은 두 가지 교훈을 줍니다. 첫째는, 양떼를 감독하고 치라는 것이며, 둘째는, 자기를 위해 또 온 양떼를 위해 조심하라는 것입니다.

첫째로, 장로의 직분을 받는 자는 그 직분이 목양의 직분임을 알고 목양의 직무를 다해야 할 것입니다. 장로는 목사와 함께 교회를 감독하고 양떼를 치는 목양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오늘 안수받고 임직받는 분들을 교회의 목자로 부르시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저와 함께 양들을 치는 좋은 목자가 되어야 합니다.

베드로전서 5:1-4에서 베드로는 장로들이 목양할 때 가져야 할 태도를 교훈했습니다. "너희 중 장로들에게 권하노니 나는 함께 장로된 자요 그리스도의 고난의 증인이요 나타날 영광에 참여할 자로라. 너희 중에 있는 하나님의 양 무리를 치되 부득이함으로 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의 뜻을 좇아 자원함으로 하며, 더러운 이를 위하여 하지 말고 오직 즐거운 뜻으로 하며, 맡기운 자들에게 주장하는 자세를 하지 말고 오직 양 무리의 본이 되라. 그리하면 목자장이 나타나실 때에 시들지 아니하는 영광의 면류관을 얻으리라."

교회를 감독하고 양떼를 칠 때 가져야 할 태도는 세 가지입니다. 첫째, 부득이함으로[억지로] 하지 말고 자원함으로 해야 합니다. 목양의 일은 하나님의 일입니다. 그것은 이 세상의 그 어떤 일보다 귀하고 가치 있는 일입니다. 그러므로 장로들은 이 일을 자원함으로 해야 합니다. 둘째, 더러운 이익을 위하여 하지 말고 즐거운 뜻으로 해야 합니다. 목사와 장로의 일은 물질적 대가를 바라고 하는 일이 아닙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또 교회의 유익을 위하여 하는 순수한 봉사입니다. 셋째, 양들에게 주장하는 자세로 하지 말고 양들의 본이 되어야 합니다. 주께서는 제자들에게 겸손을 강조하며 교훈하시기를, "너희 중에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고 너희 중에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너희 종이 되어야 하리라"고 하셨습니다(마 20:26-27). 교만은 무서운 죄악입니다. 우리는 항상 교인들 앞에 겸손하게 섬기는 종들이 되어야 하고 또 양들에게 본이 되어야 합니다.

둘째로, 오늘 본문은 장로들이 자신을 위해 또한 온 양떼를 위해 조심하라고 교훈합니다. '삼가라'는 말은 '조심하라'는 뜻입니다. 장로된 자들은 자신을 위해 항상 조심하며 또 양들을 위해 조심해야 합니다. 조심하는 것은 말씀과 기도로 깨어 있고 자신을 성찰하며 죄를 짓지 않고 죽도록 충성하는 것을 가리킵니다. 신앙생활은 깨어 죄 짓지 않고 믿음과 순종으로 사는 생활입니다. 또 주께서는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면류관을 네게 주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계 2:10). 장로들은 자신의 구원을 위해 또 온 양떼를 위해 항상 조심해야 하고 죽도록 충성해야 합니다.

그러면 장로들과 관계하여, 하나님께서 교인들에게 주시는 교훈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한마디로 장로들을 사랑하고 존경하고 복종하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성경에 계시된 하나님의 분명한 뜻입니다.

'서로 사랑하라'는 것은 주께서 우리에게 주신 새 계명입니다. 또 에베소서 5:21은, "그리스도를 경외함으로 피차 복종하라"고 교훈합니다. 우리는 누구든지 상대방을 존중하고 피차 복종해야 합니다. 그것이 그리스도인의 사랑이며 예절입니다. 이와 같이, 서로 사랑하고 피차 복종함은 성도의 기본적 의무입니다.

그러나 거기에 더하여, 성경은 교인들이 장로들을 사랑하고 존경하고 복종하라고 교훈합니다.

데살로니가전서 5:12-13은, "형제들아, 우리가 너희에게 구하노니 너희 가운데서 수고하고 주 안에서 너희를 다스리며 권하는 자들을 너희가 알고 저의 역사로 말미암아 사랑 안에서 가장 귀히 여기며 너희끼리 화목하라"고 말합니다. 이 말씀에 '너희 가운데서 수고하고 주 안에서 너희를 다스리며 권하는 자들'은 목사와 장로들을 가리킵니다. 교인들은 목사와 장로들을 사랑 안에서 가장 귀히 여겨야 합니다.

디모데전서 5:17은, "잘 다스리는 장로들을 배나 존경할 자로 알되 말씀과 가르침에 수고하는 이들을 더할 것이니라"고 말합니다. 교인들은 장로들을 존경해야 하며, 또 잘 다스리는 장로들과, 말씀과 가르침에 수고하는 목사들을 더욱 존경해야 합니다.

히브리서 13:17은, "너희를 인도하는 자들에게 순종하고 복종하라. 저희는 너희 영혼을 위하여 경성하기를 자기가 회계할 자인 것같이 하느니라. 저희로 하여금 즐거움으로 이것을 하게 하고 근심으로 하게 말라.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유익이 없느니라"고 말합니다. 여기에서도 '교인들을 인도하는 자들'은 역시 목사와 장로들을 가리킵니다. 교인들은 목사와 장로들에게 순종해야 합니다. 목사와 장로들이 성경에 위배되는 말이나 행동을 하지 않는 한 복종해야 합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뜻이며 교회의 질서입니다.

말씀을 맺겠습니다. 우리 모든 교우들은 장로의 직무가 무엇이며 그 권위가 무엇인지 바르게 알도록 하십시다. 또 장로로 임직받는 분들은 장로의 직무가 양떼를 감독하고 돌보며 인도하는 목양의 직무임을 인식하고 최선을 다하십시오. 이 일을 억지로 하지 말고 자원함으로 하고, 더러운 이익을 위해 하지 말고 즐거운 마음으로 하고, 양들에게 주장하는 자세로 하지 말고 양들의 본이 되십시오. 또 교인들은 성경의 교훈대로 장로들을 주 안에서 사랑 가운데서 존경하고 복종하십시오.

 

 

       주일오후설교:                         메시야의 통치

[32:1-4] 보라 장차 한 왕이 의로 통치할 것 . . . .

선지자는, "보라 장차 한 왕이 의로 통치할 것이요 방백들이 공평으로 정사(政事)할 것이며 또 그 사람은 광풍을 피하는 곳, 폭우를 가리우는 곳 같을 것이며 마른 땅에 냇물 같을 것이며 곤비한 땅에 큰 바위 그늘 같으리라"고 말한다.

이 말씀은 메시야와 신약교회를 예언한 것이라고 본다. 메시야는 의의 왕으로 오실 것이었다. 이사야 9:6-7은 이미 예언하기를, "이는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 바 되었는데 그 어깨에는 정사(政事)를 메었고 그 이름은 기묘자라, 모사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평강의 왕이라 할 것임이라. 그 정사와 평강의 더함이 무궁하며 또 다윗의 위에 앉아서 그 나라를 굳게 세우고 자금 이후 영원토록 공평과 정의로 그것을 보존하실 것이라. 만군의 여호와의 열심이 이를 이루시리라"고 하였었다.

메시야는 땅 위에서도 자기 백성에게 '바람과 광풍을 피할 곳'이 되신다. 바람과 광풍은 세상에서 당하는 환난과 재앙들, 특히 악인들로 인해 받는 학대와 핍박을 포함한다. 예수 그리스도는 유대인의 왕으로 오셨다(마 2:2). 그는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우리를 위해 의를 이루셨고 또 장차 의의 심판자로 다시 오실 것이다(살후 1:6-9; 딤후 4:8). 또 그는 지금도 자기 백성들을 악한 자들로부터 보호하신다.

선지자는 또, "보는 자의 눈이 감기지 아니할 것이요 듣는 자의 귀가 기울어질 것이며 조급한 자의 마음이 지식을 깨닫고 어눌한 자의 혀가 민첩하여 말을 분명히 할 것이라"고 말한다. 메시야의 시대에 사람들은 영적으로 눈이 열리고 귀가 열릴 것이다. 그들은 하나님과 메시야에 대한 지식을 갖게 될 것이다. 또 그들의 조급하고 어리석은 마음은 지식을 깨닫고 그들의 어눌한 혀는 민첩하여져 분명한 말을 할 것이다. 그들은 하나님을 찬송하고 하나님께 기도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다른 이들에게 전할 것이다.

[5-8절] 어리석은 자를 다시 존귀하다 칭하지 . . . .

선지자는 메시야의 시대에 의와 불의, 지혜와 어리석음이 분명하게 구별될 것이라고 말한다. 그는 "어리석은 자를 다시 존귀하다 칭하지 아니하겠고 궤휼한 자를 다시 정대(正大)하다 말하지 아니하리라"고 말한다. '존귀하다'는 원어는 '고상하다'는 뜻이다. '궤휼한 자'라는 원어는 '악당'이라는 뜻이며, '정대하다'는 원어는 '고상하다,' '너그럽다'(KJV, NASB)는 뜻이다. 메시야 시대에는 어리석은 자를 고상하다고 말한다거나 악당을 너그럽다고 말하지 않을 것이다.

선지자는, "이는 어리석은 자는 어리석은 것을 말하며 그 마음에 불의를 품어 간사를 행하며 패역한 말로 여호와를 거스리며 주린 자의 심령을 비게 하며 목마른 자의 마시는 것을 없어지게 함이며 궤휼한 자는 그 그릇이 악하여 악한 계획을 베풀어 거짓말로 가련한 자를 멸하며 빈핍한 자가 말을 바르게 할지라도 그리함이니라"고 말한다. '간사(奸邪)'라는 원어는 '불경건'(NASB)이라는 뜻이며, '패역한 말'이라는 원어는 '잘못된 말'(KJV, NASB)이라는 뜻이다. '그릇'이라는 원어는 '그의 그릇들, 그의 무기들(NASB), 그의 기구들'이라는 뜻이다. 어리석고 악한 자들은 어리석은 것을 말하고 그 마음에 불의를 품고 불경건한 일을 행하고 잘못된 말로 여호와를 거스르며 주린 자의 심령을 비게 하며 목마른 자의 마시는 것을 없어지게 하며 그의 무기들 혹은 기구들이 악하여 악한 계획을 베풀어 거짓말로 가난하고 불쌍한 자를 죽인다.

그러나 선지자는 또 말하기를, "고명한 자는 고명한 일을 도모하나니 그는 항상 고명한 일에 서리라"고 말한다. '고명한'이라는 원어는 '고상한'이라는 뜻이다. 그것은 경건하고 의롭고 선한 자들을 가리킨다. 참된 성도들은 의와 선을 구별하며 행할 것이다.

[9-11절] 너희 안일한 부녀들아, 일어나 . . . .

선지자는 다시 이스라엘 백성의 안일함을 지적하며 책망하고 심판을 선언한다: "너희 안일한 부녀들아, 일어나 내 목소리를 들을지어다. 너희 염려 없는 딸들아, 내 말에 귀를 기울일지어다. 너희 염려 없는 여자들아, 일년 남짓이 지나면 너희가 당황하여 하리니 포도 수확이 없으며 열매 거두는 기한이 이르지 않을 것임이니라. 너희 안일한 여자들아 떨지어다. 너희 염려 없는 자들아 당황하여 할지어다. 옷을 벗어 몸을 드러내고 베로 허리를 동일지어다."

그는 아마 이스라엘 백성을 두고 '안일한 부녀들' '염려 없는 딸들'이라는 표현을 여러 번 사용하였다. '당황하여 하다'는 말은 '곤란을 당하다'는 뜻이다. 안일한 이스라엘 백성은 오래지 않아서 큰 곤란을 당할 것이다. 그들은 포도 수확이 없을 것이며 열매를 거두지도 못할 것이다. 그들은 옷을 찢어 몸을 드러내고 베로 허리를 동이며 슬퍼하고 탄식할 것이다.

[12-15절] 좋은 밭을 위하며 . . . .

선지자는 계속 말하기를, "좋은 밭을 위하며 열매 많은 포도나무를 위하여 가슴을 치게 될 것이니라. 형극[가시]과 질려[찔레]가 내 백성의 땅에 나며 희락의 성읍, 기뻐하는 모든 집에 나리니 대저 궁전이 폐한 바 되며 인구 많던 성읍이 적막하며 산과 망대가 영영히 굴혈이 되며 들나귀의 즐겨하는 곳과 양떼의 풀 먹는 곳이 될 것임이라"고 말한다. 사람들은 좋은 밭의 곡식을 얻지 못하고 열매 많던 포도나무의 수확도 얻지 못하므로 슬퍼할 것이다. 예전에 기쁨이 넘쳤던 성읍들은 이제 적막하기만 하고 가시덤불과 찔레나 나고 들나귀가 뛰놀며 양떼가 풀을 먹는 황폐한 곳이 될 것이다.

그러나 15절에서 선지자는, "필경은 위에서부터 성신을 우리에게 부어주시리니 광야가 아름다운 밭이 되며 아름다운 밭을 삼림으로 여기게 되리라"고 말한다. 원문은, "위에서부터 성령을 우리에게 부어주시며 광야가 아름다운 밭이 되고 아름다운 밭을 삼림으로 여기게 될 때까지 그러하리라"고 말한다(KJV, NASB, NIV). 이것은, 광야같이 쓸쓸하고 황폐한 이스라엘 땅이 아름다운 밭이 되고 울창한 삼림같이 될 메시야 시대에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성령을 부어주실 것을 예언한 것이다. 이것은 선지자 에스겔의 예언과도 일치한다(겔 36:27; 39:29).

[16-20절] 그 때에 공평이 광야에 거하며 . . . .

선지자는 의로 통치하시는 메시야 시대를 다시 묘사한다. 그는, "그때에 공평이 광야에 거하며 의가 아름다운 밭에 있으리니 의의 공효는 화평이요 의의 결과는 영원한 평안과 안전이라. 내 백성이 화평한 집과 안전한 거처와 종용히 쉬는 곳에 있으리라"고 말한다. 메시야 시대는 의의 시대요 평안과 안전함이 있는 시대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의가 되시고 우리에게 참 평안을 주셨다. 고린도전서 1:30, "예수는 하나님께로서 나와서 우리에게 지혜와 의로움과 거룩함과 구속함이 되셨으니." 요한복음 14:27,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

그러나 선지자는 또, "먼저 그 삼림은 우박에 상하고 성읍은 파괴되리라"고 말한다. 이것은 하나님의 나라의 회복 전에 먼저 하나님의 심판이 있을 것을 보인다. 이스라엘 나라와 유다 나라도 그들의 죄악들 때문에 멸망을 당할 것이며, 앗수르나 바벨론 같은 이방 나라들도 그들의 죄악들 때문에 멸망을 당할 것이다. 하나님의 공의의 심판 후에야, 하나님의 나라의 참된 회복이 이루어질 것이다. 그러므로 선지자는 또 "모든 물가에 씨를 뿌리고 소와 나귀를 그리로 모는 너희는 복이 있느니라"고 말한다.

본장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우리는 의의 왕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며 의지하고 그 안에 거하자. 둘째로, 우리는 선악을 분별하고 고상한 삶을 살자. 셋째로, 우리는 안일한 삶을 버리고 늘 깨어 근신하자. 넷째로, 우리는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아 의와 평안을 누리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