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신앙 2009년 11월 15일 [제13권 46호] ◆ 매주 발행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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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너희는 길에 서서 보며 옛적 길 곧 선한 길이 어디인지 알아보고 그리로 행하라. 너희 심령이 평강을 얻으리라' 하나, 그들의 대답이 '우리는 그리로 행치 않겠노라' 하였으며"(렘 6:16). |
옛신앙
Old-time Faith www.oldfaith.net |
'옛신앙'이란, 옛부터 하나님의 선지자들과 주의 사도들이 가졌던 신앙, 오직 정확 무오(無誤)한 하나님 말씀인 신구약 성경에만 근거한 신앙, 오늘날 배교와 타협의 풍조에 물들지 않는 신앙을 의미합니다. |
121-884
서울 마포구 합정동 364-1 합정동교회 김효성 목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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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오전설교: 장로의 직분과 자격 디모데전서 3:2, "감독은 책망할 것이 없으며." 목자 없는 양들은 위험하고 불행할 것입니다.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좋은 목자가 없는 교인들은 위험하고 불행할 것입니다. 역사상, 교회는 세 가지 형태가 있었습니다. 첫째, 감독교회는 성직자들이 교회를 다스리는 형태입니다. 천주교회, 성공회(감독교회) 등이 그런 형태입니다. 둘째, 회중교회는 교인들이 스스로 교회를 운영하는 형태입니다. 침례교회 등이 그런 형태입니다. 셋째, 장로교회는 교인들이 목사와 장로들을 세워 그들로 하여금 교회를 다스리고 운영하게 하는 형태입니다. 이것은 대의정치(代議政治) 형태입니다. 장로라는 직분은 구약시대로부터 있었고(출 19:7) 예수님 당시에도 있었습니다(마 26:3). 신약교회가 세워졌을 때, 사도들은 각 교회에 장로들을 세웠습니다. 사도행전 14:22-23에 보면, 사도 바울은 제자들의 마음을 굳게 하여 이 믿음에 거하라 권하였고 또 우리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려면 많은 환난을 겪어야 할 것이라고 말하였으며, 각 교회에서 장로들을 택하여 금식 기도하며 그들을 주님께 부탁하였습니다. 사도행전 20:17에 보면, 사도 바울이 밀레도에서 사람을 에베소로 보내어 교회의 장로들을 초청하여 모이게 하였는데, 사도행전 20:28에 보면, 그는 그들에게, "너희는 자기를 위하여 또는 온 양떼를 위하여 삼가라. 성령이 저들 가운데 너희로 감독자를 삼고 하나님이 자기 피로 사신 교회를 치게 하셨느니라"고 말하였습니다. 그는 장로들을, 성령께서 하나님의 양떼의 감독자로 세우셔서 교회를 다스리게 하신 자들이라고 증거하였습니다. 장로와 감독은 동일한 직분을 가리킵니다. 여기에 장로의 직분이 무엇인지 그 의미가 나타나 있습니다. 장로는 하나님의 교회와 교인들을 돌보며 감독하는 목양적 직분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베드로전서 5:1-2에서, 사도 베드로는 장로들을 양무리를 치는 자들이라고 표현합니다. 빌립보서 1:1에 보면, 빌립보 교회에는 성도들, 감독들, 집사들, 이 세 부류의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이 말씀은 하나님께서 신약교회에 감독과 집사라는 중요한 직분들을 주셨다는 사실을 증거합니다. 장로교 헌법 제3장 제2조에 보면, "교회에 항존할[항상 있어야 할] 직원은 다음과 같으니 장로(감독)(행 20:17, 28; 딤전 3:7)와 집사요, 장로는 두 반이 있으니 (1) 강도(講道)와 치리를 겸한 자를 목사라 일컫고 (2) 치리만 하는 자를 장로라 일컫나니 이는 교인의 대표자이다"라고 쓰여 있습니다. 장로교회의 '장로'라는 말뜻은 목사와 장로를 포함하는 개념입니다. 목사는 설교와 치리를 겸한 장로이며, 장로는 치리만 하는 장로입니다. 에베소서 4:11-12에 보면, 부활 승천하신 주께서는 교회에 사도, 선지자, 복음 전하는 자, 목사와 교사 등의 직분을 주셨는데, 그것은 성도들을 온전케 하며 봉사의 일을 하게 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게 하시기 위함이었습니다. 목사와 교사는 한 직분이며 목사를 가리킵니다. 디모데전서 5:17에 "잘 다스리는 장로들을 배나 존경할 자로 알되 말씀과 가르침에 수고하는 이들을 더할 것이니라"고 말할 때에 '말씀과 가르침에 수고하는 이들'도 목사들을 가리킵니다. 교회의 주인은 누구입니까? 목사입니까? 장로입니까? 아니면 교인입니까? 교회의 주인은 목사나 장로나 교인들 그 누구도 아닙니다. 교회의 주인은 오직 하나님과 주 예수 그리스도뿐이십니다. 목사는 하나님께서 교회에 보내신 종이며, 치리 장로들은 목사와 협력하여 교회를 돌아보는 일꾼들이며, 교인들은 하나님의 양들입니다. 장로교회는 하나님께서, 교인들을 통해 세운 목사로 하여금, 교인들을 통해 대표자로 뽑힌 장로들과 협력하여, 하나님의 양들인 교인들을 돌보며 교회를 다스리고 운영하게 하셨다고 믿습니다. 이렇게 중요한 장로의 직분을 얻을 자격자는 누구입니까? 디모데전서 3장과 디도서 1장은 장로의 자격에 대해 교훈합니다. 그 교훈에 의하면, 장로는 우선 책망할 것이 없는 자이어야 합니다. 사상적으로는 물론이고, 인격과 삶에 있어서 그러해야 합니다. 그것은 모든 성도에게 본이 되는 인격적 성숙함을 의미합니다. 장로교 헌법에 '무흠 5년'이라는 말은 최소한의 규정입니다. 장로는 5년이 아니라 그 이상이라도 큰 흠이 없는 자이어야 할 것입니다. 또 장로는 한 아내의 남편이어야 합니다. 결혼생활의 순결은 확실히 도덕성의 한 중요한 요소입니다. 장로는 또 절제하는 자이어야 합니다. '절제하다'는 원어(네팔리오스)는 '깨어 있다, 자제심이 있다'는 뜻입니다. 장로는 자신의 생각이나 욕심, 또는 세상적인 일에 빠져 있지 않고, 자신을 절제할 수 있는 자이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장로는 또 근신(謹愼)하는 자이어야 합니다. '근신하다'는 원어(소프론)는 '건전한 정신을 가지다, 사려 깊다'는 뜻입니다. 장로는 건전한 정신을 가진 자, 사려 깊은 자이어야 합니다. 장로는 또 아담한 자이어야 합니다. '아담하다'는 원어(코스미오스)는 '품행이 단정하고 좋다, 존경할 만하다'는 뜻입니다. 장로는 품행이 단정하고 좋으며 존경할 만한 자이어야 합니다. 장로는 또 나그네를 대접하는 자이어야 합니다. 그는 이기적이지 않고 선하고 너그럽고 후한 인격이어야 합니다. 장로는 또 가르치기를 잘하는 자이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장로는 주일학교 교사의 경험을 상당 기간 가진 자이어야 할 것입니다. 장로는 또 술을 즐기지 않는 자이어야 합니다. 술은 사람을 방탕하고 실수하게 하기 때문에 성도는 술을 금하고 피해야 한다고 봅니다. 장로는 또 구타하지 않고 관용하고 다투지 않는 자이어야 합니다. 즉 장로는 온유하고 양순하고 참을성이 있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장로는 또 돈을 사랑치 않고 더러운 이를 탐하지 않는 자이어야 합니다. 돈 사랑은 신앙성장에 큰 장애물이며 인격의 결함입니다. 장로는 또 자기 집을 잘 다스리고 자녀들로 모든 단정함으로 복종케 하는 자이어야 합니다. 교회는 하나님의 가족들이 모인 큰 집입니다. 교회의 치리자가 되려면 먼저 가정의 좋은 치리자이어야 합니다. 장로는 또 새로 입교한 자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왜냐하면 사람이 믿음과 인격의 준비 없이 중요한 직분을 맡으면 교만해지기 쉬워서 자신에게도 교회에도 해가 되기 때문입니다. 장로는 또 세상 사람들에게도 좋은 평판을 가진 자이어야 합니다. 그래야 장로로 봉사할 때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지 않을 것입니다. 디도서 1장에 보면, 장로는 또 제 고집대로 하지 않는 자이어야 하고, 급히 분내지 않는 자이어야 하며, 선을 좋아하고 의로우며 거룩한 자이어야 하며, 또 참된 말씀의 가르침을 그대로 지키는 자이어야 합니다. 그래야 교인들을 바른 교훈으로 권면할 수 있고 또 거슬러 말하는 자들을 책망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또 디모데전서 3:11은, "여자들도 이와 같이 단정하고 참소하지 말며 절제하며 모든 일에 충성된 자라야 할지니라"고 말하는데, 여기에 '여자들'은 장로들과 집사들의 아내들을 가리킵니다. 장로의 아내는 단정해야 합니다. '단정하다'는 원어(셈노스)는 '인품이 좋다, 존경할 만하다'는 뜻입니다. 또 장로의 아내는 참소하지 않는 자이어야 합니다. 참소하는 것은 근거 없이 남을 비난하는 것을 가리킵니다. 또 장로의 아내는 절제하는 자이어야 합니다. '절제한다'는 말은 앞에 장로의 자격에도 나온 말로서 '깨어 있고 자제심이 있다'는 뜻입니다. 또 장로의 아내는 모든 일에 충성된 자이어야 합니다. 이상의 내용이 장로의 자격에 대한 성경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장로교 헌법은 장로의 자격에 대해, 정치 제5장 제3조에 "만 35세 이상된 남자 중 입교인으로 흠 없이 5년을 경과하고 상당한 식견과 통솔력이 있으며 디모데전서 3:1-7에 해당한 자로 한다"고 규정하였습니다. 장로의 자격은 한마디로 인격적 성숙을 가리킵니다. 그것은 대단히 높은 수준처럼 보이지만, 실상 그렇지 않습니다. 그것은 지극히 정상적인 신앙생활의 내용입니다. 이것은 모든 성도의 성화의 목표입니다. 장로교 헌법은 장로의 선거 방법에 대해서는, 정치 제13장 제1조에 "치리 장로와 집사는 각 지교회가 공동의회 규칙에 의하며 선거하되 투표 3분의 2 이상의 찬성을 요한다. 단, 당회가 후보를 추천할 수 있다"고 규정합니다. 담임목사와 당회는, 지난 주일에 발표한 대로, 기도 중에 심사숙고하여 성심으로 그리고 상당히 엄격한 잣대로 두 명의 후보를 추천하였고, 오늘 공동의회는 무흠한 세례교인들의 분별력을 사용하여 성실히 투표함으로 장로로 세울 자들을 확정할 것입니다. 우리는 오늘날 속화된 교회들의 풍조를 따르지 말고 성경 교훈대로 장로들을 세움으로 바른 교회, 좋은 교회를 만듭시다. 또 우리는 장로의 자격요건들이 우리 모두의 성화의 목표임을 깨닫고 책망할 것이 없는, 존경할 만한, 선하고 모범적인 인격이 되기를 성령 안에서 힘씁시다.
이사야 강해: 이스라엘의 패역 [30:1-2]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화 있을진저 . . . . 1-2절에서 선지자는,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화 있을진저 패역한 자식들이여. 그들이 계교를 베푸나 나로 말미암아 하지 아니하며 맹약을 맺으나 나의 신으로 말미암아 하지 아니하였음이로다"라고 말한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을 '패역한 자식들'이라고 부르셨다. '패역한'이라는 원어(소르림)는 '완고한, 반역적인'이라는 뜻이다.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께 순종하지 않고 거역하는 자들이었다. '계교를 베푼다'는 말은 '의논한다'는 뜻이다. '맹약'이라는 원어(맛세카)는 '덮개'(Vg, KJV) 혹은 '맹약(盟約)'(LXX, NASB, NIV)이라는 뜻이다. '덮개를 덮는다'는 뜻이라면 환난의 위험을 덮는다는 뜻일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의 백성임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을 의지하며 하나님의 영의 감동 가운데 환난에 대처할 방법을 의논하거나 외국과 조약을 맺지 않았다. 그들은 하나님 없이 행했다. 하나님께서는 또, "그들이 바로의 세력 안에서 스스로 강하려 하며 애굽의 그늘에 피하려 하여 애굽으로 내려갔으되 나의 입에 묻지 아니하였으니 죄에 죄를 더하도다"라고 말씀하신다. 그들은 하나님께 묻지 않고 애굽 왕 바로의 세력을 의지하고 애굽의 그늘에 피하려고 하였다. 그들은 어려운 현실 속에서 하나님께 기도하거나 하나님의 도움을 구하지 않고 오직 인간적인 방책을 구하였던 것이다. 그것은 하나님을 경외하며 섬기는 자들의 바른 태도가 아니었다. 그것은 죄에 죄를 더하는 일이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패역한 그들에게 "화 있을진저 패역한 자식들이여"라고 선언하신 것이다. [3-5절] 그러므로 바로의 세력이 . . . . 3-5절에서 하나님께서는, "그러므로 바로의 세력이 너희의 수치가 되며 애굽의 그늘에 피함이 너희의 수욕이 될 것이라. 그 방백들이 소안에 있고 그 사신들이 하네스에 이르렀으나 그들이 다 자기를 유익하게 못하는 민족을 인하여 수치를 당하리니 그 민족이 돕지도 못하며 유익하게도 못하고 수치가 되게 하며 수욕이 되게 할 뿐임이니라"고 말씀하신다. 소안은 애굽의 옛 수도 라암셋을 가리킨다(출 12:37). 그들이 의지한 애굽 왕 바로의 세력은 그들에게 수치와 수욕이 될 것이다. 애굽은 그들에게 아무런 도움과 유익을 주지 못할 것이다. [6-7절] 남방 짐승에 관한 경고라. . . . 6-7절에서 선지자는, "남방 짐승에 관한 경고라. 사신들이 그 재물을 어린 나귀 등에 싣고 그 보물을 약대 제물 안장에 얹고 암사자와 수사자와 독사와 및 날아다니는 불뱀이 나오는 위험하고 곤고한 땅을 지나 자기에게 무익한 민족에게로 갔으나 애굽의 도움이 헛되고 무익하니라. 그러므로 내가 애굽을 가만히 앉은 라합이라 일컬었느니라"고 말한다. 6절에 '남방 짐승에 관한 경고'라는 원어(맛사 바하모스 네게브)는 문자적으로는 '남방의 혹은 남방으로 가는 짐승들의 무거운 짐'이라는 뜻이다. 그러나 '무거운 짐'이라는 원어(맛사)는 이사야서에서 '경고,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뜻으로 자주 사용되었다(사 13:1; 15:1; 17:1 등). 본문은 문맥적으로 '남방으로 가는 짐승들의 무거운 짐'이라는 뜻도 되고, '남방으로 가는 짐승들에 대한 경고'라는 뜻도 되는 것 같다. 여기에 '남방'은 애굽을 가리킬 것이다(단 11장). 본문은 유대의 지도자들이 어린 나귀 등에 많은 보물을 싣고 광야를 지나 애굽에 내려가 도움을 청하였으나 그들의 수고는 헛되게 될 것이라고 말한다. 애굽은 가만히 앉은 라합이 될 것이다. '라합'은 '바다짐승'을 가리킨다. [8-9절] 이제 가서 백성 앞에서 서판에 . . . . 8절에서 선지자는, "이제 가서 백성 앞에서 서판에 기록하며 책에 써서 후세에 영영히 있게 하라"고 말한다. 책의 필요성과 유용성이 여기에 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뜻을 성경에 쓰게 하셔서 후대의 사람들이 이 책을 통해 하나님의 뜻을 배우게 하셨다. 9절에서 선지자는, "대저 이는 패역한 백성이요 거짓말하는 자식이요 여호와의 법을 듣기 싫어하는 자식이라"고 말한다. 이스라엘 백성의 심령은 심히 부패되어 있었다. 그들은 하나님께 순종하지 않았다. 그들의 마음은 비뚤어져 있었고 반역적이었다. 그들은 거짓말을 잘하는 자들이며 하나님의 법을 듣기 싫어하는 자들이었다. [10-11절] 그들이 선견자에게 이르기를 . . . . 10-11절에서 선지자는 또, "그들이 선견자에게 이르기를 선견하지 말라. 선지자에게 이르기를 우리에게 정직한 것을 보이지 말라. 부드러운 말을 하라. 거짓된 것을 보이라. 너희는 정로(正路)를 버리며 첩경에서 돌이키라.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자로 우리 앞에서 떠나시게 하라 하는도다"라고 말한다. 이스라엘 백성은 선지자와 선견자, 즉 하나님께서 보내시고 세우신 설교자에게 하나님의 바른 말씀을 전하지 말라고 말하며 정직한 말을 하지 말고 부드러운 말, 즉 그들의 귀에 듣기 좋은 말, 아첨하는 말을 하라고 요구하였다. 또 그들은 거짓된 것을 보이라고 말하였다. 그들은 또 선지자에게 정로(正路) 즉 바른 길, 바른 노선을 버리라고 말하며 하나님을 그들 앞에서 떠나시게 하라고 말하였다. 그들은 하나님의 바른 말씀을 듣기 싫어하였다. 이와 같이, 이스라엘 백성은 설교자의 설교내용까지 간섭하고 비평하고 판단하고 반대한 것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하나님 앞에 대단히 큰 죄악이었다. [12-14절] 이러므로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자 . . . . 12-14절에서 선지자는, "이러므로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자가 말씀하시되 너희가 이 말을 업신여기고 압박과 허망을 믿어 그것에 의뢰하니 이 죄악이 너희로 마치 무너지게 된 높은 담이 불쑥 나와 경각간에 홀연히 무너짐 같게 하리라 하셨은즉 그가 이 나라를 훼파하시되 토기장이가 그릇을 훼파함같이 아낌이 없이 파쇄하시리니 그 조각 중에서, 아궁이에서 불을 취하거나 물웅덩이에서 물을 뜰 것도 얻지 못하리라"고 말씀하셨다. 12절에 '허망'이라는 원어(날로즈)는 '간교함'이라는 뜻이다(BDB, NASB). 이스라엘 백성은 선지자를 통해 선포되는 하나님의 말씀을 업신여기고 도리어 압박과 간교함을 믿고 의지하였기 때문에 갑자기 멸망이 그들에게 임할 것이다. 그것은 마치 높은 담이 갑자기 불쑥 나와 순식간에 무너짐과 같고, 토기장이가 그릇을 아낌없이 부숨과 같을 것이다. 그러나 얼마나 철저히 부서졌는지 깨진 조각 중에 아궁이에서 불을 취하거나 물웅덩이에서 물을 뜰 만한 조각도 없을 것이다. [15절] 주 여호와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자가 . . . . 15절에서 선지자는, "주 여호와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자가 말씀하시되 너희가 돌이켜 안연히 처하여야 구원을 얻을 것이요 잠잠하고 신뢰하여야 힘을 얻을 것이어늘 너희가 원치 아니하였도다"고 말한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여러 번 기회를 주셨고, 그들에게 죄에서 돌이키고 조용히 하나님을 의지하라고 말씀하셨지만, 그들은 하나님의 요청을 거절하였고 그의 경고를 무시하였다. [16-17절] 이르기를 아니라 우리가 말 타고 . . . . 16-17절에서 선지자는, "[그들이] 이르기를 아니라 우리가 말 타고 도망하리라 한 고로 너희가 도망할 것이요 또 이르기를 우리가 빠른 짐승을 타리라 한 고로 너희를 쫓는 자가 빠르리니 한 사람이 꾸짖은즉 천 사람이 도망하겠고 다섯이 꾸짖은즉 너희가 다 도망하고 너희 남은 자는 겨우 산꼭대기의 깃대 같겠고 영 위의 기호 같으리라 하셨느니라"고 말한다. 이스라엘 백성은 자신들이 말한 대로 급히 도망할 것이며 다 뿔뿔이 흩어져 남은 자가 산꼭대기의 깃발같이 될 것이다. 본문에서 얻는 하나님의 진리는 무엇인가? 첫째로, 우리는 사람이나 세상의 것들을 의지하지 말자. 이스라엘 백성은 애굽 왕 바로와 그의 힘을 의지하였다. 그러나 그것은 헛되고 무익한 일이었다. 성경은 우리에게 사람을 의지하지 말라고 말하며(사 2:22) 또 은금을 의지하지 말라고 말한다(잠 11:4; 겔 7:19; 습 1:18). 그것들은 우리에게 완전한 도움이 되지 못하며, 어떤 때는 전혀 도움이 되지 못한다. 하나님께서 그것들을 헛되게 하시면 그것들은 언제나 헛된 것이 된다. 그러므로 우리는 사람들이나 세상 것들을 의지하지 말자. 둘째로, 우리는 패역하지 말자. 이스라엘 백성은 패역하였다. 그들의 마음은 비뚤어져 있었고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고 불순종하였다. 그들은 하나님 없이 무슨 일을 의논하고 계획하였다. 그들은 하나님의 법을 듣기 싫어하였고 선지자에게 정직한 것을 보이지 말고 부드러운 말을 하며 정로를 버리며 하나님을 그들 앞에서 떠나시게 하라고 요구하였다. 그들은 악하고 패역한 자들이었다. 우리는 패역하지 말자. 셋째로, 우리는 하나님만 의지하고 그의 말씀을 순종하자.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잠잠히 하나님만 의지하고 그의 법을 좋아하고 바른 말씀, 곧 인생의 정로를 걷기를 원하신다. 우리는 늘 하나님 앞에서 살며 그의 말씀인 성경책을 주야로 읽고 묵상하며 실천해야 한다. 건강 문제, 경제 문제 등 세상에 만가지 시험과 환난이 있어도 늘 회개하며 하나님만 의지하고 그의 말씀만 붙들고 행하면, 우리는 항상 승리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