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신앙  2009년 09월 27일 [제13권 39호]   ◆ 매주 발행 ◆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너희는 길에 서서 보며 옛적 길 곧 선한 길이 어디인지 알아보고 그리로 행하라. 너희 심령이 평강을 얻으리라' 하나, 그들의 대답이 '우리는 그리로 행치 않겠노라' 하였으며"(렘 6:16).

 

 

옛신앙

 

Old-time Fait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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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옛신앙'이란, 옛부터 하나님의 선지자들과 주의 사도들이 가졌던 신앙, 오직 정확 무오(無誤)한 하나님 말씀인 신구약 성경에만 근거한 신앙, 오늘날 배교와 타협의 풍조에 물들지 않는 신앙을 의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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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일오전설교:                          내가 검을 주러 왔노라

  마태복음 10:34, "내가 세상에 화평을 주러 온 줄로 생각지 말라. 화평이 아니요 검을 주러 왔노라."

정상적인 사람들 가운데서 싸우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사람들은 보통 조용하고 평화로운 것을 원하며 다툼과 싸움을 원치 않습니다. 그런데 본문 34절에서 예수께서는 "내가 세상에 화평을 주러 온 줄로 생각지 말라. 화평이 아니요 검을 주러 왔노라"고 이상한 말씀을 하셨습니다.

예수께서 화평을 주러 오신 분이 아니십니까? 그는 과연 하나님과 죄인들을 화목케 하려고 이 세상에 오신 구주이십니다. 사도 바울은 로마서 5:10에서 "우리가 원수 되었을 때에 그 아들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으로 더불어 화목되었다"고 말했습니다. 또 그는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를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고 또 우리에게 화목하게 하는 직책을 주셨다고 증거하였습니다(고후 5:18-19).

그런데 왜 주께서는 본문에서 검을 주러 오셨다고 말씀하신 것입니까? 그것은 신앙생활의 절대적 성격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고 따르며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주로 시인하며 따르는 길은 그를 우리의 생활에 첫자리에 모시는 것이기 때문에 절대적 성격을 가지며, 그것은, 둘 중에 하나를 택해야 할 경우 그 외의 사람들이나 사물들을 버릴 수밖에 없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예수께서는, "내가 온 것은 사람이 그 아비와, 딸이 어미와, 며느리가 시어미와 불화하게 하려 함이니 사람의 원수가 자기 집안 식구리라. 아비나 어미를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는 내게 합당치 아니하고 아들이나 딸을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도 내게 합당치 아니하니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참으로 인정하고 믿고 따르며 섬긴다면, 우리에게는 하나님을 섬기는 일보다 더 중요한 일이 없어야 하고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는 것이 없어야 하고 그의 말씀보다 더 들어야할 말이 없어야 할 것입니다.

평소에 온 가족이 다 하나님 중심으로 산다면 문제가 없지만, 만일 가족 중 한 사람이 하나님 섬기는 것보다 세상의 다른 일을 더 중요하게 여기고 또 그것을 요구할 때는, 우리는 둘 중의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갈림길에 놓입니다. 그런 경우에 우리가 누구를 택하며 무엇을 택하느냐 하는 것은 우리가 하나님을 참으로 하나님으로 알고 인정하고 섬길 의지가 있느냐 하는 문제에 직결됩니다. 그때 그가 하나님을 선택한다면, 그는 그 가족과 간격이 생기고, 그 가족이 그보다 윗사람일 경우는, 미움도 받고 핍박도 받을 수 있을 것입니다.

다시 말해, 신앙의 문제 때문에 가족 간에 갈등이 생기고 다툼이 생긴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주께서는 아버지와 아들이, 어머니와 딸이, 시어머니와 며느리가 불화하게 된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온 가족이 다 진실히 하나님을 공경하고 믿고 따르는 가정은 그런 일이 없겠지만, 과거에 우리나라에서는 이런 싸움을 하며 핍박을 당하며 신앙생활을 했던 성도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오늘날도 우리가 바르게 믿지 않으려면 몰라도, 바르게 믿어보려면 그런 갈등과 핍박이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디모데후서 3:12에서, "무릇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경건하게 살고자 하는 자는 핍박을 받으리라"고 말했니다.

주께서는, "아비나 어미를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는 내게 합당치 아니하고 아들이나 딸을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도 내게 합당치 아니하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가족보다 그를 사랑하라고 하신 것입니다. '나보다' '나보다'라는 말씀과 '내게' '내게'라는 말씀은 예수님이 우리에게 절대적 존재이심을 뜻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구주와 주님, 우리의 왕, 우리의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우리의 최상의 공경과 사랑과 헌신으로 섬겨야 할 대상이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십계명의 제1계명에서 "너는 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네게 있게 말지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출 20:3).

우리에게는 하나님 외에 하나님처럼 가치 있는 자가 없어야 합니다. 만일 우리의 삶에 하나님 외에 또는 하나님보다 하나님처럼 가치 있는 자가 있다면, 그것은 일종의 우상입니다. 우상숭배는 하나님께서 가장 미워하시는 죄악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제2계명에서 우상숭배를 금하신 후, 또 말씀하시기를, "나 여호와 너의 하나님은 질투하는 하나님인즉 나를 미워하는 자의 죄를 갚되 아비로부터 아들에게로 삼사 대까지 이르게 하거니와 나를 사랑하고 내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는 천 대까지 은혜를 베푸느니라"고 하셨습니다(출 20:4-6).

모세는 신명기 6장에서 우리와 우리의 가족들이 어떻게 하나님을 최선을 다해 사랑해야 할 지를 분명하게 말하기를, "이스라엘아 들으라.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오직 하나인 여호와시니 너는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 오늘날 내가 네게 명하는 이 말씀을 너는 마음에 새기고 네 자녀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라"고 하였습니다(신 6:4-9). 우리 자신뿐 아니라, 우리의 자녀들까지도 온전한 사랑으로 하나님을 사랑하며 섬겨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하나님, 곧 우리가 최선의 사랑과 공경으로 섬기고 따라야 할 대상이십니다. 그래서 시편 73편 저자는, "하늘에서는 주 외에 누가 내게 있으리요. 땅에서는 주밖에 나의 사모할 자 없나이다"고 고백하였던 것입니다(시 73:25). 그러므로, 하나님을 섬기는 일과 우리 가족들의 일이 충돌할 때, 참된 성도가 하나님을 택하고 우리 가족을 택하지 않는 것은 옳은 일이며, 가족들 간의 갈등과 다툼, 심지어 미움당함이나 핍박당함은 불가피한 일이며 각오해야 할 일인 것입니다.

예수께서는 본문에서, "또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지 않는 자도 내게 합당치 아니하니라. 자기 목숨을 얻는 자는 잃을 것이요 나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잃는 자는 얻으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자기 십자가를 지고 주를 따르라는 말씀은 자기를 부정하고 죽을 각오를 하고 주를 따르라는 뜻입니다. 예수께서는 마태복음 16:24에서는 "아무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십자가는 죽음의 형틀입니다. 사형수는 사형장으로 갈 때 자기 십자가를 지고 갑니다. 십자가를 지는 것은 죽으러 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주께서는 우리가 하나님과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따를 때 자기 자신을 부정해야 한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성도가 가족들보다도 하나님을 귀히 여기고 따르며 섬겨야 하듯이, 성도는 자기 자신보다도 하나님을 귀히 여기고 따르며 섬겨야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자기라는 것 때문에 하나님을 바르게 섬기지 못합니다. 많은 사람들은 하나님의 말씀보다 자신의 생각을 앞세웁니다. 그들은 하나님 말씀을 순종하기보다 자기 생각과 취향, 또 자기 판단과 계획을 따라 하루하루 살아갑니다. 그러나 실상 그것은 하나님을 섬기고 있다기보다 자신을 섬기고 있는 것입니다. 이 경우, 자기라는 것은 일종의 우상입니다. 자기 자신이라는 것이 하나님보다 더 높고 더 권위 있고 더 가치 있고 더 귀한 존재가 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들이 정말 하나님을 섬기는 자였다면, 그들은 자신 생각과 취향, 자기 판단과 계획보다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순종했을 것입니다.

실상, 인간이 무엇입니까? 인간의 자기라는 것이 무엇입니까? 자기는 참 허무한 존재가 아닙니까? 모든 육체는 풀과 같고 그 모든 영광은 풀의 꽃과 같으며 풀은 마르고 꽃은 떨어집니다(벧전 1:24). 인간은 그렇게 오래 살지 못하는 존재입니다. 코에 호흡이 있으니까 살아 있는 것이지, 그 호흡이 그칠 때, 인간은 죽은 자가 됩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영생의 선물이 없다면, 인간은 참 허무한 존재입니다.

또 인간은 참 연약한 존재입니다. 몸에 병이 들거나 사고가 나서 병상에 누워보면 깨닫게 됩니다. 몸만 그런 것이 아니고 마음도 그렇습니다. 또 도덕성도 그렇습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이 속사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지만, 우리 속에 죄의 법이 있어 우리를 죄 가운데로 끌고가는 연약한 존재임을 경험합니다(롬 7:22-24). 믿지 않는 사람은 말할 것도 없습니다. 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한 것이 인간의 마음입니다(렘 17:9).

이런 허무하고 연약하고 죄악되며 무능력한 자기를 사람이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고 더 섬기려 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합당치 않은 일입니다.

주께서는 "자기 목숨을 얻는 자는 잃을 것이요 나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잃는 자는 얻으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은 우리가 주를 따르려면 우리의 목숨을 내어놓고 따라야 한다는 것을 가리킵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일은 절대적 추종입니다.

예컨대, 그리스도인은 주일에 교회로 모여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일을 세상의 그 어떤 일보다도 크게 여기고 중요하게 여겨야 합니다. 몸이 아파 병원에 입원했다든지, 직장에서 일직 당번이 되었다든지 하는 것은 부득이한 일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은 주일에 자신의 즐거움을 위해 놀러가지 않습니다. 또 그는 주일에 가족과 친척의 결혼식 등의 경조사에 참여치 않으며, 직장의 회식이나 선후배 혹은 동료의 친교 모임 같은 데도 참석치 않습니다.

물론, 우리가 그렇게 하면 친지들이나 동료들에게 따돌림을 당하며 심지어 미움과 핍박을 당할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을 섬기는 일을 세상의 그 무엇보다 크게 여기고 중요하게 여기기 때문에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일을 빼먹고 다른 일을 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 전날 상대방에게 겸손히 양해를 구해야 합니다. 또 우리는, 다른 기회들에, 그들 앞에서 흠 없이 처신하고 또 이기적으로 행치 말고 범사에 사랑으로 행해야 하고 또 힘있는 대로 그들을 대접해야 할 것입니다.

성경의 많은 인물들이 다 그런 절대적 신앙, 하나님 중심의 신앙, 순교적 신앙을 가지고 살았습니다. 여호수아와 엘리야와 미가야가 그러하였고(수 24:14- 15; 왕상 18:21-22; 22:13-14), 다니엘과 그의 세 친구들이 그러하였습니다(단 3:16-18; 6:10). 또 사도 바울이 그러하였습니다(갈 1:10; 5:11; 6:14; 행 20:24). 그들은 다 자신을 부정하고 자기 생각과 세상 영광을 버리고 하나님을 따른 자들이었습니다.

하나님과 죄인들을 화목케 하기 위해 오신 주께서는 또한 우리에게 검을 주러 오셨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하나님만 가장 크게 여기는 절대적인 신앙, 순교적인 신앙을 요구하십니다. 주를 따르는 길은 때때로 가족들 간에, 친척들 간에, 친구들과 동료들 간에 갈등을 일으키고 심지어 미움과 핍박을 가져옵니다. 가족들이 우리의 원수가 될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과 주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의 삶에 첫자리에 모시고 오직 그를 믿고 인정하고 사랑하고 섬기며 따라야 합니다. 우리는 참으로 주를 따르는 자가 됩시다.

 

  이사야 강해:                              하나님의 구원을 찬송함

[25:1] 여호와여, 주는 나의 하나님이시라. . . .

선지자는, "여호와여, 주는 나의 하나님이시라. 내가 주를 높이고 주의 이름을 찬송하오리니 주는 기사를 옛적의 정하신 뜻대로 성실함과 진실함으로 행하셨음이라"고 말한다.

이것은 선지자의 개인적 찬송이다. 그는 여호와 하나님을 자신의 하나님으로 고백한다. 그는 그를 높이고 그의 이름을 찬송한다. 그가 하나님을 찬송하는 까닭은, 하나님께서 기이한 일을 옛적의 정하신 뜻대로 성실함과 진실함으로 행하셨기 때문이다. 그것은 자기 백성 이스라엘을 구원하신 일을 가리킨다. 그것은 옛부터 그가 계획하시고 작정하신 바이었고 그의 열조들에게 약속하신 바이었다.

[2-3절] 주께서 성읍으로 무더기를 이루시며 . . . .

선지자는 또, "주께서 성읍으로 무더기를 이루시며 견고한 성읍으로 황무케 하시며 외인의 궁성으로 성읍이 되지 못하게 하사 영영히 건설되지 못하게 하셨으므로 강한 민족이 주를 영화롭게 하며 포학한 나라들의 성읍이 주를 경외하리이다"라고 말한다.

이스라엘을 핍박하는 앗수르나 바벨론의 성읍들을 황폐케 하는 일은 어느 누구도 상상할 수 없는 일들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것들을 무더기가 되게 하시고 황폐케 만드실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이 놀라운 일들이 이루어질 때 강한 민족들, 포학한 나라들이라도 하나님의 위엄과 능력을 인정하고 그를 두려워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다니엘 2:44에서 로마 시대에 그가 한 영원한 나라를 세우실 것이며 그가 모든 세상 나라를 쳐서 멸망시키실 것을 예언하셨다.

[4-5절] 주는 포학자의 기세가 . . . .

선지자는 또 말한다. "주는 포학자의 기세가 성벽을 충돌하는 폭풍과 같을 때에 빈궁한 자의 보장이시며 환난당한 빈핍한 자의 보장이시며 폭풍 중에 피난처시며 폭양을 피하는 그늘이 되셨사오니 마른 땅에 폭양을 제함같이 주께서 외인의 훤화를 그치게 하시며 폭양을 구름으로 가리움같이 포학한 자의 노래를 낮추시리이다."

'보장(保障)'이라는 말은 '방어물'이라는 뜻이다. '빈궁한 자,' '환난당한 빈핍한 자'는 하나님의 백성을 묘사하는 말이다. 폭풍이 성벽에 충돌하듯이 포학자의 기세가 몰려올 때 하나님께서는 가난하고 고난당하는 자기 백성을 지키시고 보호하신다. 그는 폭풍 중의 피난처와 같고 폭양을 피하는 그늘과 같으시다. 낯선 이방인들의 떠드는 소리들은 마른 땅에 폭양과 같이 위협적이었으나 하나님께서는 그것들을 그치게 하실 것이며, 뙤약볕을 구름으로 가리움같이 포학한 자들의 떠드는 소리를 낮추실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인생의 모든 환경여건을 홀로 주장하시고 인도하신다.

[6-8절] 만군의 여호와께서 이 산에서 . . . .

선지자는 또, "만군의 여호와께서 이 산에서 만민을 위하여 기름진 것과 오래 저장하였던 포도주로 연회를 베푸시리니 곧 골수가 가득한 기름진 것과 오래 저장하였던 맑은 포도주로 하실 것이라"고 말한다.

이것은 세계적인 구원과 회복을 암시한다. '이 산'은 '예루살렘 산'을 가리킨다. 이것은 신약교회와 장차 이루어질 영광스런 천국을 상징할 것이다. '만민'은 이방인들과 유대인들을 다 포함할 것이다. "기름진 것과 오래 저장하였던 포도주로 연회를 베푸시리니 곧 골수가 가득한 기름진 것과 오래 저장하였던 맑은 포도주로 하실 것"이라는 그 연회는 예수님의 비유들에 자주 등장하는 천국 잔치일 것이며(마 22:2; 눅 13:29; 14:16). 그 잔치는 이미 신약교회에서 시작되었다.

선지자는 또, "이 산에서 모든 민족의 그 가리워진 면박(面 )과 열방의 그 덮인 휘장을 제하실" 것이라고 말한다. 이것은 신약시대에 이방인들에게 하나님의 지식이 열리고 하나님께 나아가는 길이 열릴 것을 암시하는 것 같다. '면박'(面 )은 한자의 정확한 발음이 '면파'이며, '얼굴가리개'를 가리킨다. 고린도후서 4:6, "어두운데서 빛이 비취리라 하시던 그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빛을 우리 마음에 비취셨느니라." 히브리서 10:19- 20,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예수의 피를 힘입어 성소에 들어갈 담력을 얻었나니 그 길은 우리를 위하여 휘장 가운데로 열어 놓으신 새롭고 산 길이요 휘장은 곧 저의 육체니라."

선지자는 또, "사망을 영원히 멸하실 것이라. 주 여호와께서 모든 얼굴에서 눈물을 씻기시며 그 백성의 수치를 온 천하에서 제하시리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셨느니라"고 말한다.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으로 말미암아 천국에서 이루어질 복된 일들을 보인다.

요한복음 11:25-26, "예수께서 가라사대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

요한계시록 21:4,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씻기시매 다시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음이러라."

[9-12절] 그 날에 말하기를 . . . .

선지자는 또, "그 날에 말하기를 이는 우리의 하나님이시라. 우리가 그를 기다렸으니 그가 우리를 구원하시리로다. 이는 여호와시라. 우리가 그를 기다렸으니 우리는 그 구원을 기뻐하며 즐거워하리라 할 것이라"고 말한다. 하나님께서 만민을 위해 연회를 베푸시는 그 날에 구원받은 모든 사람들은 하나님을 찬송할 것이다. 그들은 하나님의 구원, 즉 세상의 회복을 기다리며 기다렸었다. 이제 하나님의 구원이 그들에게 이루어졌고 그들은 그 구원을 기뻐하며 즐거워하는 것이다.

선지자는 또 말한다. "여호와의 손이 이 산에 나타나시리니 모압이 거름물 속의 초개의 밟힘같이 자기 처소에서 밟힐 것인즉 그가 헤엄치는 자의 헤엄치려고 손을 폄같이 그 속에서 그 손을 펼 것이나 여호와께서 그 교만과 그 손의 교활을 누르실 것이라. 너의 성벽의 높은 보장을 헐어 땅에 내리시되 진토에 미치게 하시리라." 모압은 세상 나라의 한 예로 언급된 것 같다. '거름물'은 '거름더미,' '초개'는 '지푸라기'를 가리킨다. '자기 처소에서'라는 원어(타크타우)는 '그 아래서'라는 뜻이 아마 더 낫다(KJV, NIV). 하나님께서는 세상 나라를 멸망시키시며 그 교만과 그 손의 교활함을 파하실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구원 사역을 찬송하자. 주께서는 재림하실 때 모든 민족을 자기 앞에 모으시고 세상의 모든 악인들을 심판하실 것이다(마 25:31-33). 주께서는 세상 나라를 다 멸하실 것이다. 세상 나라는 그리스도의 나라가 될 것이다(계 11:15). 우리는 세상에서 구원받아 예수 그리스도의 나라에 들어온 것을 감사하며 찬송하자(골 1:13; 벧전 2:9).

또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보호하심을 믿자. 그는 폭풍 중에 피난처이시며 폭양을 피하는 그늘이시다(4절). 그러므로 우리는 오직 믿음으로만 살고 순종으로만 살자. 하나님의 계명을 힘써 지키며 서로 사랑하자.

또 하나님의 천국 잔치에 참여하는 특권을 감사하며 기뻐하자. 천국은 한 왕이 자기 아들을 위해 혼인잔치를 베푼 것과 같다(마 22:2). 천국은 신약교회 속에서 이미 시작되었다. 우리는 이미 천국의 기쁨과 평안과 영생을 시식(試食)하고 있다. 우리는 이 복을 감사하며 기뻐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