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신앙  2009년 02월 8일 [제13권 6호]   ◆ 매주 발행 ◆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너희는 길에 서서 보며 옛적 길 곧 선한 길이 어디인지 알아보고 그리로 행하라. 너희 심령이 평강을 얻으리라' 하나, 그들의 대답이 '우리는 그리로 행치 않겠노라' 하였으며"(렘 6:16).

 

 

옛신앙

 

Old-time Fait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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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옛신앙'이란, 옛부터 하나님의 선지자들과 주의 사도들이 가졌던 신앙, 오직 정확 무오(無誤)한 하나님 말씀인 신구약 성경에만 근거한 신앙, 오늘날 배교와 타협의 풍조에 물들지 않는 신앙을 의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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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위기 강해:                                 나답과 아비후의 죽음

[10:1-5] 아론의 아들 나답과 아비후가 . . . .

레위기 10장은 아론의 아들 나답과 아비후가 죽은 사건을 기록한다. 이것은 아론과 그 아들들이 제사장 직무를 수행한 지 얼마 안 되어서 생긴 일인 것 같다. 제사장들은 저녁과 아침에 회막의 등불을 켤 때와 정리할 때 아마 향로에 불을 담아(민 16:18) 향단에서 하나님의 정하신 향기로운 향을 살라야 했다(출 30:7-9). 그 불은, 꺼지지 않게 항상 간수되었던(레 6:9, 12, 13) 번제단의 불을 사용했을 것이다. 그 불은 영원한 지옥 불을 상징하는 동시에 속죄의 불이었다고 본다. 그 불 외에 다른 불로 향을 살라서는 안 되었던 것 같다.

그런데 어느 날 아론의 아들 나답과 아비후는 각기 향로를 가져다가 여호와께서 명하시지 않은 다른 불을 담아 여호와 앞에서 분향하였다. ‘다른 불’이라는 원어(에쉬 자라)는 ‘이상한 불’(KJV, NASB, BDB)이라는 뜻이며, ‘공인되지 않은 불’(NIV)이라고 번역되기도 한다. 그 때 불이 여호와 앞에서 나와 그들을 삼켰고 그들은 여호와 앞에서 즉시 죽었다. ‘여호와 앞에서’라는 말은 하나님께서 임재하신 회막 혹은 성소 앞에서라는 뜻일 것이다. 하나님께서 행하신 일은 참으로 두려운 일이었다.

모세는 아론에게 말하였다. “이는 여호와의 말씀이라. 이르시기를 나는 나를 가까이 하는 자 중에 내가 거룩하다 함을 얻겠고 온 백성 앞에 내가 영광을 얻으리라 하셨느니라.” 아론은 잠잠하였다. 모세는 아론의 삼촌 웃시엘의 아들 미사엘과 엘사반을 불러 그들에게 “나아와 너희 형제들을 성소 앞에서 진 밖으로 메어 가라”고 말했다. 그들은 나아와 모세의 명대로 그들을 옷 입은 채 진 밖으로 메어 나갔다.

[6-11절] 모세가 아론과 그 아들 엘르아살과 . . . .

모세는 아론과 그의 남은 아들들 엘르아살과 이다말에게 말했다. “너희는 머리를 풀거나 옷을 찢지 말아서 너희 죽음을 면하고 여호와의 진노가 온 회중에게 미침을 면케 하라.” 아론과 그 아들들은 그들의 죽음을 일반 사람들처럼 애도할 수 없었다. 거룩한 제사장 직분이 그들에게 있었기 때문이었다. 모세는 또 그들에게 “오직 너희 형제 이스라엘 온 족속이 여호와의 치신 불로 인해 슬퍼할 것이니라. 여호와의 관유가 너희에게 있은즉 너희는 회막문에 나가지 말아서 죽음을 면할지니라”고 말했다. 그들은 모세의 명대로 하였다.

여호와께서는 또 아론에게 말씀하셨다. “너나 네 자손들이 회막에 들어갈 때에는 포도주나 독주를 마시지 말아서 너희 사망을 면하라. 이는 너희 대대로 영영한 규례라. 그리하여야 너희가 거룩하고 속된 것을 분별하며 부정하고 정한 것을 분별하고 또 여호와가 모세로 명한 모든 규례를 이스라엘 자손에게 가르치리라.” 그것은 지당한 말씀이었다. 제사장들은 하나님의 거룩한 일을 분별하여 수행할 자들로서 포도주나 독주에 취해 하나님의 거룩한 일을 어그러뜨려서는 안 되었다. 나답과 아비후의 실수는 술취함과 관련이 있었던 것 같다.

[12-15절] 모세가 아론과 그 남은 아들 . . . .

모세는 또 아론과 그 남은 아들들 엘르아살과 이다말에게 말했다. “여호와께 드린 화제 중 소제의 남은 것은 지극히 거룩하니 너희는 그것을 취하여 누룩을 넣지 말고 단 곁에서 먹되 이는 여호와의 화제(火祭) 중 네 응식(應食)과 네 아들의 응식인즉 너희는 그것을 거룩한 곳에서 먹으라. 내가 명령을 받았느니라. 흔든 가슴과 든 뒷다리는 너와 네 자녀가 너와 함께 정결한 곳에서 먹을지니 이는 이스라엘 자손의 화목제물 중에서 네 응식과 네 자손의 응식으로 주신 것임이니라. 그 든 뒷다리와 흔든 가슴을 화제의 기름과 함께 가져다가 여호와 앞에 흔들어 요제를 삼을지니 이는 여호와의 명령대로 너와 네 자손의 영원한 응식이니라.” 하나님께서는 소제의 남은 것들과 화목제물 중 든 뒷다리와 흔든 가슴을 그들의 응식(應食)으로 주셨음을 다시 강조하셨다.

[16-20절] 모세가 속죄제 드린 염소를 찾은즉 . . . .

모세가 속죄제로 드린 염소를 힘써 찾았으나(원문) 그것은 이미 불살라졌었다. 모세는 아론의 남은 아들 엘르아살과 이다말에게 노하여 말했다. “이 속죄제물은 지극히 거룩하거늘 너희가 어찌하여 거룩한 곳에서 먹지 아니하였느뇨? 이는 회중의 죄를 담당하여 그들을 위해 여호와 앞에 속하게 하려고 너희에게 주신 것이니라. 그 피를 성소에 들여오지 아니하였으니 그 고기는 너희가 나의 명한 대로 거룩한 곳에서 먹었어야 할 것이니라.” 모세가 노한 것은 정당한 이유가 있었다. 모세의 말대로 그들은 그 고기는 성소 뜰에서 먹어야 했었다.

그러나 아론은 모세에게 이렇게 대답하였다. “오늘 그들이 그 속죄제와 번제를 여호와께 드렸어도 이런 일이 내게 임하였거늘 오늘 내가 속죄제의 고기를 먹었더면 여호와께서 어찌 선히 여기셨으리요?” 아론은 그들이 범죄하였기 때문에 그들이 하나님의 입장에서 속죄제물의 고기를 먹는 상징을 행하는 것이 합당치 않다고 여겼던 것 같다. 모세는 그 말을 듣고 좋게 여겼다.

레위기 10장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우리는 하나님께서 성경에 명하신 대로 행하자. 본장은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해 이런 저런 일들을 명하셨다고 증거한다. 1절, “아론의 아들 나답과 아비후가 각기 향로를 가져다가 여호와의 명하시지 않은 다른 불을 담아 여호와 앞에 분향하였더니.” 본문은 하나님께서 아론과 그 아들들에게 어떤 불로 하나님 앞에 분향해야 할 것인지에 대해 명령하셨음을 보인다. 그러나 나답과 아비후는 하나님의 명하시지 않은 다른 불을 담아 분향하는 잘못을 범했다.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통해 그의 뜻을 나타내셨다. 아론과 그 아들들은 모세의 명대로 행하였다. 모세의 명령은 곧 하나님의 명령이었다.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해 모든 규례를 이스라엘 자손에게 주셨고 제사장들은 그 규례들을 이스라엘 자손에게 가르쳐야 했다. 구약 제사의 모든 규례는 하나님의 명령이었다. 이스라엘 백성이나 아론과 그 아들들은 다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해 주신 명령을 지켜야 했다(5, 7, 11, 15, 18절).

하나님께서는 구약 시대에 모세와 선지자들을 통해, 또 신약 시대에 예수 그리스도와 사도들을 통해 말씀하셨다(히 1:1-2). 오늘 우리는 신구약 성경을 통해 하나님의 명령을 듣는다. 성경 말씀은 사람들의 말이 아니고 하나님의 말씀이다. 우리는 그 말씀을 읽고 듣고 믿고 순종해야 한다(신 4:2; 마 28:20; 딤후 3:16; 살후 2:15).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다. 우리는 성경의 모든 명령과 교훈을 다 믿고 다 소망하고 다 행하자.

둘째로, 우리는 속죄의 은혜를 기억하자. 17절, “이[속죄제물]는 회중의 죄를 담당하여 그들을 위하여 여호와 앞에 속하게 하려고 너희에게 주신 것이니라”(원문). 본문은 속죄제물이 ‘회중의 죄를 담당하여 그들을 위하여 여호와 앞에 속하게 하려고 제사장들에게 주신 것’임을 증거한다. 하나님께서는 구약 시대에 이스라엘 백성을 위해 속죄의 제사제도를 주셨다. 구약 제사의 핵심적 의미는 속죄이었다. 구약의 제사 제도는 이스라엘뿐 아니라, 만세 전에 택하신, 지금 온 세상에 흩어져 있는 하나님의 백성을 위한 것이었다. 그것은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 사람으로 세상에 오셔서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이루실 속죄 사역을 상징하며 예표하였다.

예수께서는 온 세상을 위한 속죄제물이시다(요 1:29; 요일 2:2). 예수께서는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고 오셨다(마 20:28).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 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다”(갈 3:13). 속죄는 기독교 복음의 핵심이다.

속죄가 없으면 구원도 없다. 하나님의 택한 백성도 다른 자들과 다를 바 없이, 똑같이 죄인이었고 죄성을 가진 자들이다. 그들도 역시 하나님의 계명 앞에서 부족한 죄인들에 불과하다. 사람의 구원이 율법의 행위로 말미암는다면 구원 얻을 자는 세상에 아무도 없었을 것이다. 그러므로 속죄가 필요하였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셔서 우리를 위해 속죄의 죽음을 죽으셨다. 그것은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이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음으로 속죄함을 얻었다. “우리의 의는 이것뿐, 예수의 피밖에 없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속죄의 은혜를 항상 기억하고 구주 예수 그리스도만 굳게 믿고 의지하자.

셋째로, 우리는 잘못된 방법으로 하나님을 섬기지 말자. 1, 2절을 다시 보자. “아론의 아들 나답과 아비후가 각기 향로를 가져다가 여호와의 명하시지 않은 다른 불을 담아 여호와 앞에 분향하였더니 불이 여호와 앞에서 나와 그들을 삼키매 그들이 여호와 앞에서 죽은지라.” 나답과 아비후가 향로에 담았던 ‘다른 불’은 하나님께서 명하시지 않은 불이었다. 그들의 문제점은 거룩하신 하나님을 하나님의 뜻과 그의 거룩한 규례를 따라 섬기지 않고 인간의 생각과 방법대로 섬기려 한 데 있었다. 하나님은 엄위하신 분이시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그 행위를 용납지 않으셨고 노하셨고 그들을 분향하는 그 자리에서 즉시 죽게 하셨다(삼하 6:6-7; 행 5:1-10 참조).

우리는 하나님을 섬길 때 하나님께서 정해주신 방법대로, 또 참된 믿음과 진실함으로 해야 한다. 하나님의 일은 하나님의 방법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하나님을 섬기는 방법은 성경에 분명하게, 또 자세하게 기록되어 있다. 성경은 우리의 신앙생활의 정확무오한 유일의 법칙이다. 우리는 이 책의 진리와 교훈에 가감치 말아야 한다(신 4:2; 계 22:18-19). 우리는 잘못된 방법으로, 즉 성경과 상관 없이, 성경을 거슬러, 우리의 주관적 생각과 방식으로 하나님을 섬기려 해서는 안 된다. 다른 불은 안 된다. 우리는 오직 성경에 계시된 바른 사상과 바른 방법으로 하나님을 믿고 섬기며 순종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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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야 강해:                                      연기나는 두 나무토막

[7:1-2] 웃시야의 손자요 요담의 아들인 . . . .

유다 왕 웃시야의 손자요 요담의 아들인 유다 왕 아하스 때에 아람 왕 르신과 르말리야의 아들 이스라엘 왕 베가가 올라와서 예루살렘을 쳤으나 이기지 못하였다. 어떤 사람이 다윗 집에 고하기를 “아람이 에브라임과 동맹하였다”고 하였으므로, 왕의 마음과 그 백성의 마음이 나무들이 바람에 흔들림같이 흔들렸다. 이전에 다윗 때는 이스라엘이 아람을 지배하기도 하였었다. 또 다윗 집에는 하나님께서 보호하신다는 약속이 있었다. 그러나 이제 원수들의 거대한 세력 앞에서 유다 왕은 두려워 떨고 있다. 그는 하나님의 보호하심에 대한 확신이 없었다. 그것은 그의 마음이 죄로 인해 약해졌기 때문이었다.

[3-4절] 때에 여호와께서 이사야에게 . . . .

그러나 그 때에 여호와께서는 선지자 이사야에게 소망의 말씀을 주셨다. “너와 네 아들 스알야숩은 윗못 수도 끝 세탁자의 밭 큰길에 나가서 아하스를 만나 그에게 이르기를 ‘너는 삼가며 종용하라. 아람 왕 르신과 르말리야의 아들이 심히 노할지라도 연기 나는 두 부지깽이 그루터기에 불과하니 두려워 말며 낙심치 말라.’” 유다 왕 아하스는 악한 왕이었으나 하나님께서는 아하스에게 위로와 격려의 말씀을 주신 것이었다. 그것은 유다의 경건한 자들을 위한 위로와 격려이었고 또한 하나님의 긍휼로 악인들에게 회개의 기회를 주신 일이었을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이사야가 그 아들 스알야숩과 함께 아하스를 만나게 하셨다. 스알야숩은 ‘남은 자가 돌아온다’는 뜻으로 그 이름 자체가 이스라엘 백성에게 소망과 위로가 되었다.

하나님께서 이사야를 통해 아하스에게 주신 말씀의 내용은, 아람 왕 르신과 르말리야의 아들 이스라엘 왕 베가를 두려워하지 말라는 것이었다. “너는 삼가며 종용하라. 아람 왕 르신과 르말리야의 아들이 심히 노할지라도 연기 나는 두 부지깽이 그루터기에 불과하니 두려워 말며 낙심치 말라.” 하나님께서는 그 왕들이 ‘연기 나는 두 부지깽이 그루터기’ 즉 연기 나는 두 나무토막에 불과하다고 표현하셨다. ‘연기 나는 두 나무토막’은 화덕에서 불타는 나무가 아니다. 그것은 화덕에서 꺼내져, 불이 꺼져 가는, 그래서 연기만 많이 나는 나무이다. 아람과 이스라엘의 세력은 꺼져 가는, 연기 나는 나무토막에 불과하다. 그것은 그들이 앗수르 왕에게 패망할 것을 암시한다. 그러므로 유다 왕은 그들을 두려워 말고 그들로 인해 낙심치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5-9절] 아람과 에브라임 왕과 . . . .

하나님께서는 이사야에게, 아하스에게 말할 것을 계속 말씀하셨다. “아람과 에브라임과 르말리야의 아들이 악한 꾀로 너를 대적하여 이르기를 ‘우리가 올라가 유다를 쳐서 그것을 곤하게 하고 우리를 위해 그것을 파하고 다브엘의 아들을 그 중에 세워 왕을 삼자’ 하였으나 주 여호와의 말씀에 이 도모가 서지 못하며 이루지 못하리라.” 아람 왕과 이스라엘 왕은 동맹을 맺고 유다를 쳐서 파하고 다브엘의 아들을 왕으로 세우자는 계획까지 세웠지만, 그 계획은 서지 못하며 이루지 못할 것이다. 왜냐하면 세상의 모든 일은 하나님의 허락이 있어야 세워지고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는 한 국가의 흥망성쇠와 온 세계의 역사를 주관하시는 주권적 섭리자이시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는 또 “대저 아람의 머리는 다메섹이요 다메섹의 머리는 르신이며 에브라임의 머리는 사마리아요 사마리아의 머리는 르말리야의 아들이라도 65년 내에 에브라임이 패하여 다시는 나라를 이루지 못하리라”고 말씀하셨다. “65년 내에 에브라임이 패하여 나라를 이루지 못하리라”는 말씀은 무슨 뜻인가? 그것은 북방 이스라엘 나라의 멸망과 그 백성이 포로로 잡혀가는 일을 가리킨 것 같다.

이스라엘 왕 베가 때에(주전 733년경) 앗수르 왕 디글랏 빌레셀 3세(주전 744-727년경)는 이스라엘 백성을 포로로 잡아갔다. 열왕기하 15:29, “이스라엘 왕 베가 때에 앗수르 왕 디글랏 빌레셀이 와서 이욘과 아벨벳마아가와 야노아와 게데스와 하솔과 길르앗과 갈릴리와 납달리 온 땅을 취하고 그 백성을 사로잡아 앗수르로 옮겼더라.” 또 이스라엘의 마지막 왕인 호세아 때에(주전 722년경) 이스라엘은 앗수르 왕 살만에셀 5세(주전 727-722년경)에게 망하였고 포로로 잡혀갔다(왕하 17:1- 6). 그리고 후에 앗수르 왕 에살핫돈(주전 681-669년경) 때에 앗수르 왕은 사람들을 앗수르 지역에서 옮겨 사마리아 여러 성들에 두었고(왕하 17:24) 이로써 나라 회복의 가능성을 완전히 없애려 하였다. 65년의 기간이 무엇을 가리키는지 정확히 모르나, 아하스 2년(주전 740년경) 때로부터 에살핫돈이 므낫세 왕을 포로로 잡아간 때(주전 675년경; 대하 33:11)까지의 기간이 대략 65년이 된다.

그러나 유다 왕 아하스는 선지자로 전달된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하나님을 의지하는 대신에 앗수르 왕을 의지했고 다메섹 신(神)들을 의지했다. 역대하 28:16, 23, “그 때에 아하스왕이 앗수르 왕에게 보내어 도와주기를 구하였으니,” “[아하스 왕은] 자기를 친 다메섹 신들에게 제사하여 가로되 ‘아람 열왕의 신들이 저희를 도왔으니 나도 그 신에게 제사하여 나를 돕게 하리라’ 하였으나 그 신이 아하스와 온 이스라엘을 망케 하였더라.”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결론적으로 말씀하셨다. “만일 너희가 믿지 아니하면 정녕히 굳게 서지 못하리라 하셨다 할지니라.” 하나님께서는 아하스와 유다 백성에게 참된 믿음, 굳건한 믿음이 필요함을 분명하게 말씀하셨다.

이사야 7:1-9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사람은 범죄하면 약해진다. 유다 왕 아하스는 악한 왕이었다. 아하스는 16년 통치하는 동안 하나님 보시기에 정직히 행치 아니하고 이스라엘 열왕의 길로 행하며 또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자손 앞에서 쫓아내신 이방 사람의 가증한 일을 본받아 자기 아들을 불 가운데로 지나가게 하였다(왕하 16:2-4; 대하 28:1-4). 그 결과, 아하스와 유다 나라는 영육으로 매우 약해졌다. 그들은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는 자들이며 나라임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을 바로 섬기지 않았던 북방 이스라엘과 이방 나라 아람 연합군의 침공 앞에 이제 두려워 떨고 있는 것이다. 성도가 범죄하면 몸도 마음도 약해지고 하나님의 보호하심과 도우심을 확신치도 못하게 된다.

레위기 26장에 보면, 하나님께서는 선언하시기를,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의 법을 거슬러 범죄할 때, “내가 그들의 마음으로 약하게 하리니 그들은 바람에 불린 잎사귀 소리에도 놀라 도망하기를 칼을 피하여 도망하듯 할 것이요 쫓는 자가 없어도 엎드러질 것이라. 그들은 쫓는 자가 없어도 칼 앞에 있음같이 서로 천답하여[발로 짓밟아] 넘어지리니 너희가 대적을 당할 힘이 없을 것이요”라고 하셨다(레 26:36-37). 아하스와 유다가 그러하였다. 범죄한 사울의 모습도 그러하였었다(삼상 28:5). 성도가 범죄하면 약해진다. 잠언 28:1, “악인은 쫓아오는 자가 없어도 도망하나 의인은 사자같이 담대하니라.” 그러므로 우리가 담력을 얻으려면 죄를 철저히 회개하고 의를 행하고 믿음과 순종으로 살아야 한다.

둘째로, 하나님의 허락 없는 인간의 계획은 다 헛되다. 아람은 이스라엘과 동맹하여 유다를 침공하고 정복하려 계획하였다. 그들은 새로운 왕까지 내정하였다. 그러나 본장 7절에, “주 여호와의 말씀에 이 도모가 서지 못하며 이루지 못하리라”고 말씀했다. 세상의 모든 일은 하나님의 주권적 섭리의 손에 달려 있다. 그러므로 시편 127:1-2에는, “여호와께서 집을 세우지 아니하시면 세우는 자의 수고가 헛되며 여호와께서 성을 지키지 아니하시면 파수꾼의 경성함이 허사로다. 너희가 일찍이 일어나고 늦게 누우며 수고의 떡을 먹음이 헛되도다”라고 말씀하였다.

누가복음 12장에 기록된 예수님의 비유, 어리석은 농부의 이야기는 한 좋은 예이다. 풍년을 맞은 그 농부는 곡간을 헐고 더 크게 짓고 모든 곡식을 쌓아두고 평안히 쉬고 먹고 마시며 즐거워하려고 생각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어리석은 자여 오늘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러면 네 예비한 것이 뉘 것이 되겠느냐?”고 말씀하셨다(20절). 그러므로 야고보는 “너희가 도리어 말하기를 주의 뜻이면 우리가 살기도 하고 이것저것을 하리라 할 것이거늘 이제 너희가 허탄한 자랑을 자랑하니 이러한 자랑은 다 악한 것이라”이라고 말했다(약 4:15). 우리는 하나님의 허락하심이 없는, 사람의 모든 계획들이 다 헛됨을 깨닫자.

셋째로, 우리는 오직 하나님만 믿자. 9절, “만일 너희가 믿지 아니하면 정녕히 서지 못하리라.” 아하스는 앗수르를 의지하려 하였었다(왕하 16:7).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만 믿고 의지하자. 다윗은 시편 20편에서, “혹은 병거, 혹은 말을 의지하나 우리는 여호와 우리 하나님의 이름을 자랑하리로다”고 말하였다. 그것이 하나님을 아는 자들의 마음가짐이다. 이사야는 말하기를, “주께서 심지가 견고한 자를 평강에 평강으로 지키시리니 이는 그가 주를 의뢰함이니이다. 너희는 여호와를 영원히 의뢰하라. 주 여호와는 영원한 반석이심이로다”고 하였다(사 26:3-4).

우리는 하나님의 주권적 섭리만 믿자. 우리는 개인의 생사화복이나 단체와 국가의 흥망성쇠가 다 하나님의 섭리에 달려 있음을 알자. 우리는 세계 역사도 다 하나님의 섭리 안에 있음을 알자. 우리는 하나님만 믿고 의지하자. 우리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룸을 믿는다(롬 8:28). 사도 바울은 고난 중에도 부끄러워하지 않고 하나님을 굳게 의뢰하였다(딤후 1:12). 우리는 오직 하나님과 그의 모든 말씀과 약속만 믿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