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신앙 2009년 11월 29일 [제13권 48호] ◆ 매주 발행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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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너희는 길에 서서 보며 옛적 길 곧 선한 길이 어디인지 알아보고 그리로 행하라. 너희 심령이 평강을 얻으리라' 하나, 그들의 대답이 '우리는 그리로 행치 않겠노라' 하였으며"(렘 6:16). |
옛신앙
Old-time Faith www.oldfaith.net |
'옛신앙'이란, 옛부터 하나님의 선지자들과 주의 사도들이 가졌던 신앙, 오직 정확 무오(無誤)한 하나님 말씀인 신구약 성경에만 근거한 신앙, 오늘날 배교와 타협의 풍조에 물들지 않는 신앙을 의미합니다. |
121-884
서울 마포구 합정동 364-1 합정동교회 김효성 목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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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오전설교: 떡 기적 (마태복음 14:13-21) 예수께서는 분봉왕 헤롯 곧 헤롯 안디바가 세례 요한의 목을 베어 죽였다는 소식을 듣고 배를 타고 떠나 빈들로 가셨습니다. 무리들은 듣고 여러 마을들로부터 걸어서 그를 좇아왔습니다. 백성들은 세례 요한이 옳았고 헤롯이 잘못이라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헤롯의 세력을 거스를 수 없었습니다. 그때 백성들은 참 선지자 요한을 잃은 허전함을 가지고 예수께로 더욱 모여들었을 것입니다. 예수께서는 나오사 큰 무리를 보시고 불쌍히 여기셨습니다. 왜냐면 그들이 의롭고 선한 목자가 없는 근심하고 방황하는 양들처럼 보였기 때문일 것입니다. 주께서는 그들 중에 있는 병자들을 고쳐 주셨습니다. 병자들을 고쳐주시는 것이 예수님의 주된 임무는 아니지만, 그는 병자들을 불쌍히 여기시고 그의 신적 능력으로 그 병들을 고쳐주셨습니다. 저녁이 되어, 제자들은 그에게 나아와 말했습니다. "이 곳은 빈들이요 때도 이미 저물었으니 무리를 보내어 마을에 들어가 먹을 것을 사먹게 하소서." 예수께서는 말씀하셨습니다. "갈 것 없다. 너희가 먹을 것을 주어라." 제자들이 말하였습니다. "여기 우리에게 있는 것은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뿐이니이다." 그것은 한 아이가 가지고 있었던 음식이었고 그 아이는 그것을 예수님을 위해 드렸던 것 같습니다(요 6:8-9). 예수께서는 "그것을 내게 가져오라"고 말씀하시고 무리를 명하여 잔디 위에 앉히시고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사 하늘을 우러러 축사하시고 떡을 떼어 제자들에게 주셨고 제자들은 무리에게 주었습니다. 제자들과 무리들은 다 배불리 먹었고 남은 조각을 열두 바구니에 차게 거두었습니다. 먹은 사람은 여자와 아이 외에 약 오천 명이었습니다. 원문에는 '약'(호세이)이라는 말이 있습니다(KJV, NASB). 여자와 아이들을 포함하면 만 명이 넘었을 것입니다. 본문의 내용은 분명히 떡 기적 사건입니다. 그것은 기적이었습니다. 그것은 다르게 해석할 여지가 없는 기적 사건입니다. 구약시대에 엘리사 때에도 비슷한 사건이 있었습니다(왕하 4:42-44). 우리가 엘리사 시대의 사건을 문자적으로 참되다고 보아야 하듯이, 우리는 예수님의 떡 기적도 문자적으로 참되다고 보아야 합니다. 그것을 다르게 해석하려는 것은 성경을 왜곡하는 것이며 성경이 증거하는 바를 부정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분명히 불신앙입니다. 마태복음 15:32-38에는 예수께서 행하신 또 하나의 떡 기적 사건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 사건도 비교적 자세하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성경은 이처럼 두 번이나 떡 기적 사건을 기록했습니다. 또 게다가, 마태복음 16:9-10에 보면, 예수께서는 얼마 후 제자들에게, "떡 다섯 개로 오천 명을 먹이고 주운 것이 몇 바구니며 떡 일곱 개로 사천 명을 먹이고 주운 것이 몇 광주리이던 것을 기억지 못하느냐?"고 말씀하시며 그 두 번의 떡 기적 사건을 회상시키셨습니다. 이 말씀은 그 두 번의 떡 기적 사건을 한번 더 확증합니다. 사람이 하나님을 믿고 그의 능력을 믿는다면 그의 행하신 기적을 믿는 일에 아무런 어려움이 없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단지 말씀으로 천지만물을 창조하신 전능하신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창 1장). 또 구약성경은 모세를 통해, 엘리야와 엘리사를 통해, 또 다니엘과 세 친구들에게 놀라운 기적들이 일어났음을 증거합니다. 우리가 성경을 진실한 증거의 책으로 믿는다면, 우리가 성경이 증거하는 기적들을 믿는 일은 그렇게 어렵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께서는 기적을 믿지 못했던 사두개파 유대인들에게 "너희가 성경도, 하나님의 능력도 알지 못하는 고로 오해하였도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마 22:29). 그러면 떡 기적 사건은 어떤 의미를 가집니까? 첫째로, 예수께서 행하신 떡 기적 사건은 그가 하나님의 아들 곧 하나님이심을 증거합니다.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5천명 이상, 만 명 이상을 먹인다는 것은 이성적으로, 상식적으로 불가능한 일입니다. 그것은 오직 하나님의 능력으로만 가능합니다. 우리는 어떻게 한 알의 씨가 수천 혹은 수만 개의 곡식을 만들어 내는지 그 이치를 알지 못하지만 그것을 경험하며 살고 있습니다. 우리는 어떻게 한 마리의 물고기가 수천 혹은 수만 개의 알을 낳아 많은 물고기들을 만드는지 그 이치를 알지 못하지만 그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그것은 다 창조주 하나님께서 주신 신비한 법칙에 의해 그렇게 됩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께는 능치 못함이 없습니다. 하나님은 전능하신 신(神)이십니다. 하나님의 천사는 아브라함에게 "여호와께 능치 못한 일이 있겠느냐? 기한이 이를 때에 내가 네게로 돌아오리니 사라에게 아들이 있으리라"고 말하였습니다(창 18:14). 경건한 욥은 "주께서는 전능하시오며 무슨 경영이든지 못 이루실 것이 없는 줄 아나이다"라고 말했습니다(욥 42:2). 예레미야는, "주 여호와여, 주께서 큰 능과 드신 팔로 천지를 지으셨사오니 주에게는 능치 못한 일이 없으시니이다"라고 고백하였습니다(렘 32:17). 떡 기적은 하나님의 능력으로만 가능합니다. 예수께서 떡 기적을 행하신 것은 그가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증거합니다. 예수님은 분명히 사람으로 사셨지만, 그는 또한 하나님이셨습니다. 그는 사람으로 오신 하나님이셨습니다(요 1:14). 그러므로 성경은 그를 '참 하나님'(요일 5:20), '크신 하나님'(딛 2:13)이라고 부릅니다. 우리는 떡 기적을 통해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확신합니다(요 20:30-31). 둘째로, 떡 기적은 하나님께서 일용할 양식을 공급해주실 수 있음을 증거합니다. 창조주 하나님은 온 세계의 생물들을 기르시고 먹이시는 섭리자이십니다. 그는 땅의 각종 들짐승도, 공중의 각종 새들도, 바다의 각종 물고기들도 다 기르시고 먹이십니다(시 104: 25-29). 욥기 38:41에 보면, 하나님께서는 욥에게, "까마귀 새끼가 하나님을 향하여 부르짖으며 먹을 것이 없어서 오락가락할 때에 그것을 위하여 먹을 것을 예비하는 자가 누구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배고픈 까마귀 새끼 한 마리의 부르짖음을 외면치 않으시고 먹을 것을 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모세가 하나님께 "나와 함께 있는 이 백성의 보행자가 60만명이온데 주의 말씀이 1개월간 고기를 주어 먹게 하겠다 하시오니 그들을 위하여 양떼와 소떼를 잡은들 족하오며 바다의 모든 고기를 모은들 족하오리이까?"라고 반문하였을 때,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여호와의 손이 짧아졌느냐? 네가 이제 내 말이 네게 응하는 여부를 보리라"고 대답하셨습니다(민 11:21-23). 온 세계의 모든 생물들에게 먹을 것을 주시는 하나님께서는 우리 인생에게, 특히 자기 백성된 우리에게 먹을 것을 주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께서는 제자들에게 기도를 가르치시면서 "오늘날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소서"라고 기도하라고 가르치셨습니다(마 6:11). 또 그는, "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천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 너희는 먼저 그의[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마 6:31-33). 셋째로, 떡 기적 사건은 우리에게 자족 생활을 암시한다고 봅니다. 그 당시 일반사람들의 식생활은 오늘날같이 풍성치 않았던 것 같습니다. 그들에게는 떡과 물고기면 충분하였고, 또 주께서는 남은 조각들도 다 거두게 하셨습니다. 성경은 자족 생활을 가르칩니다. 디모데전서 6:7-8은, "우리가 세상에 아무것도 가지고 온 것이 없으매 또한 아무것도 가지고 가지 못하리니 우리가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있은즉 족한 줄로 알 것이니라"고 말합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잘 먹고 잘 입으라고 가르치지 않습니다. 더 많이 가지려는 마음이 탐심입니다. 탐심은 물질이나 자기 자신을 숭배하는 일종의 우상숭배입니다(골 3:5). 우리는 하나님을 믿고 부지런히 살고 탐심을 품지 말고 사치하거나 낭비하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는 돈에 노예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디모데전서 6:9-10은, "부하려 하는 자들은 시험과 올무와 여러가지 어리석고 해로운 정욕에 떨어지나니 곧 사람으로 침륜과 멸망에 빠지게 하는 것이라.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되나니 이것을 사모하는 자들이 미혹을 받아 믿음에서 떠나 많은 근심으로써 자기를 찔렀도다"라고 말합니다. 모범적인 삶은 경건하고 선한 삶입니다. 우리는 성경말씀대로 하나님을 섬기며 경건하게 살아야 합니다. 개인적으로 성경을 읽고 항상 기도하며 성수주일하고 공예배들에 참석하는 것을 가장 귀히 여기십시오. 또 우리는 전도하는 일과 선한 봉사의 일들에 힘써야 합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뜻이며 그것이 의미 있고 가치 있는 삶입니다. 말씀을 맺습니다. 우리는 떡 기적을 통해 몇 가지 교훈을 얻습니다. 첫째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확신합시다. 떡 기적 사건은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증거합니다. 사람은 예수님을 믿을 때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영생을 얻습니다(요 1:12; 3:16). 여러분,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확신하고 영생을 얻으십시오. 둘째로, 우리는 일용할 양식을 공급해주시는 하나님을 믿고 삽시다. 우리가 하나님을 믿고 그의 뜻에 순종하며 살기만 하면,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먹을 것과 입을 것을 주십니다(마 6:33). 우리는 어려운 시대에도 내일 일을 염려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만 믿고 열심히 삽시다. 셋째로, 우리는 자족하며 살고 경건하고 선하게 삽시다. 탐심은 죄악입니다. 우리는 부요하기를 구하지 말고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있으면 만족하며 살아야 합니다. 돈을 더 많이 벌려는 생각을 버리고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있으면, 그 외에는 경건생활에 힘쓰고 선한 봉사생활에 힘쓰며 사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며 의미 있고 가치 있는 삶입니다.
주일오후설교: 하나님의 긍휼하심 [30:18-19] 그러나 여호와께서 기다리시나니 . . . . 선지자는 말한다. "그러나 여호와께서 기다리시나니 이는 너희에게 은혜를 베풀려 하심이요 일어나시리니 이는 너희를 긍휼히 여기려 하심이라. 대저 여호와는 공의의 하나님이심이라. 무릇 그를 기다리는 자는 복이 있도다. 시온에 거하며 예루살렘에 거하는 백성아, 너는 다시 통곡하지 않을 것이라. 그가 너의 부르짖는 소리를 인하여 네게 은혜를 베푸시되 들으실 때에 네게 응답하시리라." 하나님의 진노와 심판이 경고되어 있으나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의 회개를 기다리신다. 하나님의 심판은 공의를 시행하시는 것이지만, 그것이 끝이 아니다. 심판은 하나님의 본심이 아니다(애 3:33). 그러므로 하나님을 기다리는 자는 복이 있다(18절). 시온에서 추방되었던 그 백성이 다시 시온에 거하게 되고 통곡하던 백성이 다시는 통곡하지 않는 자들이 될 것이다. 그것은 그들이 고난 중에서 회개하며 부르짖는 소리를 하나님께서 들으셨기 때문이다. [20-22절] 주께서 너희에게 환난의 떡과 . . . . 선지자는 또 말한다. "주께서 너희에게 환난의 떡과 고생의 물을 주시나 네 스승은 다시 숨기지 아니하시리니 네 눈이 네 스승을 볼 것이며 너희가 우편으로 치우치든지 좌편으로 치우치든지 네 뒤에서 말소리가 네 귀에 들려 이르기를 이것이 정로(正路)니 너희는 이리로 행하라 할 것이며 또 너희가 너희 조각한 우상에 입힌 은과 부어만든 우상에 올린 금을 더럽게 하여 불결한 물건을 던짐같이 던지며 이르기를 나가라고 하리라."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주시는 은혜는 본문에 두 가지로 증거되었다. 첫째로,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참 스승들, 곧 참 선지자들을 끝까지 주실 것이다. 그들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이것이 정로(正路) 곧 바른 길, 바른 노선이다"라고 외칠 것이다. 둘째로, 하나님께서는 그들이 모든 금은 우상들을 버리게 하실 것이다. 그들의 죄는 우상숭배의 죄이었다. 그러므로 그들의 회복은 경건의 회복 곧 모든 우상을 버리고 살아계신 참 하나님께로 돌아와 그 분만 섬기는 것이다. 순수한 경건의 회복은 구원의 본질이다. [23-26절] 네가 땅에 뿌린 종자에 주께서 . . . . 선지자는 또 말한다. "네가 땅에 뿌린 종자에 주께서 비를 주사 땅 소산의 곡식으로 살찌고 풍성케 하실 것이며 그 날에 너의 가축이 광활한 목장에서 먹을 것이요 밭가는 소와 어린 나귀도 키와 육지창으로 까부르고 맛있게 한 먹이를 먹을 것이며 크게 살륙하는 날 망대가 무너질 때에 각 고산(高山), 각 준령(峻嶺)에 개울과 시냇물이 흐를 것이며 여호와께서 그 백성의 상처를 싸매시며 그들의 맞은 자리를 고치시는 날에는 달빛은 햇빛 같겠고 햇빛은 칠 배가 되어 일곱 날의 빛과 같으리라." 선지자는 회복된 이스라엘의 모습을 본문에서 물질적 풍요로움으로 묘사한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적절한 비를 주셔서 그들에게 추수할 곡식과 양식이 풍성케 하실 것이다. 밭가는 소와 나귀까지도 겨를 까부른 곡식을 먹을 것이다. 또 앗수르와 바벨론이 멸망하는 날, 곧 그 망대들이 무너질 때, 높은 산들과 언덕들에도 시냇물들이 흘러 땅들이 비옥해질 것이라고 말한다. 또 선지자는 회복된 이스라엘 땅을 달빛이 햇빛 같고 햇빛은 일곱 배나 밝은 빛이 될 것이라고 묘사한다. 그것은 장차 이루어질 새 하늘과 새 땅의 영광을 가리키는 것 같다(계 21:23). [27-29절] 보라 여호와의 이름이 . . . . 27절 이하에서 선지자는 앗수르에 대한 심판을 예언한다. 앗수르와 바벨론에 대한 심판은 이스라엘에게 구원과 회복이 될 것이다. 앗수르 왕과 바벨론 왕은 사탄의 표상이다. 악의 세력들의 배후에는 사탄이 있다. 그러나 최종적으로 하나님께서는 사탄과 악의 세력들을 다 멸하실 것이며, 택한 백성을 위해 새 세계를 주실 것이다. 선지자는 말하기를, "보라 여호와의 이름이 원방에서부터 오되 그의 진노가 불붙듯하며 빽빽한 연기가 일어나듯하며 그 입술에는 분노가 찼으며 그 혀는 맹렬한 불 같으며 그 호흡은 마치 창일하여 목에까지 미치는 하수 같은즉 그가 멸하는 키로 열방을 까부르며 미혹되게 하는 재갈을 여러 민족의 입에 먹이시리니 너희가 거룩한 절기를 지키는 밤에와 같이 노래할 것이며 저를 불며 여호와의 산으로 가서 이스라엘의 반석에게로 나아가는 자같이 마음에 즐거워할 것이라"고 한다. 본문은 앗수르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와 심판을 묘사한다. 여호와의 이름이 원방에서부터 온다는 표현은 장소적으로도 멀리, 파사로부터 아니 하늘로부터이며, 시간적으로도 멀리, 아직 상당한 후의 일임을 가리킨다. 하나님의 진노가 불붙듯하시며 빽빽한 연기가 일어나듯하실 것이다. 그 입술에는 분노가 차셨고 그 혀는 태워 삼키는 불 같으실 것이다. 그는 멸하는 키로 열방을 까부르실 것이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은 거룩한 절기를 지키는 밤에와 같이 노래하며 저[피리]를 불 것이며 여호와의 산으로 가서 이스라엘의 반석 되신 하나님께로 나아가는 자같이 마음에 즐거워할 것이다. 앗수르의 멸망은 이스라엘에게 기쁨과 구원과 해방이 될 것이다. 궁극적으로 사탄의 멸망은 성도들에게 기쁨과 평안이 될 것이다. 그때 성도들은 기뻐하며 노래할 것이다. [30-33절] 여호와께서 그 장엄한 목소리를 . . . . 선지자는 또 말한다. "여호와께서 그 장엄한 목소리를 듣게 하시며 혁혁한 진노로 그 팔의 치심을 보이시되 맹렬한 화염과 폭풍과 폭우와 우박으로 하시리니 여호와의 목소리에 앗수르가 낙담할 것이며 주께서는 막대기로 치실 것인데 여호와께서 예정하신 몽둥이를 앗수르 위에 더하실 때마다 소고를 치며 수금을 탈 것이며 그는 전쟁 때에 팔을 들어 그들을 치시리라. 대저 도벳은 이미 설립되었고 또 왕을 위하여 예비된 것이라. 깊고 넓게 하였고 거기 불과 많은 나무가 있은즉 여호와의 호흡이 유황 개천 같아서 이를 사르시리라." 하나님의 진노는 장엄한 목소리, 혁혁한 진노, 그 팔의 치심, 맹렬한, 태워 삼키는 불, 폭풍과 폭우와 우박 등으로 묘사되신다. 여호와의 목소리에 앗수르가 낙담할 것이라고 '앗수르'를 구체적으로 언급한다. 앗수르에 대한 심판은 '예정하신 몽둥이' 곧 '예정하신 형벌의 몽둥이'(BDB)로 치시는 것이라고 말한다. 33절의 '도벳'은 '힌놈의 아들들의 골짜기'라는 곳으로 우상숭배자들이 자기 아들들을 몰렉에게 제물로 불태워 바친 가증한 곳이었다. 그곳은 지옥을 상징하였다. 본문은 도벳이 이미 설립되었다고 말한다. 지옥은 만세 전에 작정된 곳이다. 그곳은 앗수르 왕을 위해 예비된 곳이다. 앗수르 왕은 사탄의 표상이다. 그곳은 깊고 넓은 곳이다. 지옥은 깊고 넓은 장소이다. 거기에 불과 많은 나무가 있고 여호와의 호흡은 유황 개천 같아서 그것을 사를 것이다. 지옥은 불과 유황으로 타는 영원한 형벌의 장소이다. 예수께서는 '지옥 꺼지지 않는 불'에 대해 밝히 말씀하셨고, 또 "거기는 구더기도 죽지 않고 불도 꺼지지 아니하느니라"고 말씀하셨다(막 9:43-48[전통본문]). 18-33절에서 얻는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를 기다리며 오직 정로(正路)로 행하자. 하나님은 공의의 하나님이시지만 또한 은혜의 하나님이시다. 무릇 그를 기다리는 자는 복이 있다(18절).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에게 환난의 떡과 고생의 물을 주셨으나 정로를 지시하는 스승도 끝까지 주셨다(20-21절). 우리는 하나님만 바라며 성경말씀 안에서 바른 길, 바른 노선을 붙들고 오직 그 길로만 가자. 둘째로, 우리는 모든 우상을 버리자. 구약교회의 가장 큰 죄악은 우상숭배이었다. 구원은 우상을 버리고 하나님께로 돌아와 오직 그를 섬기는 것이다. 장차 하나님의 은혜를 받을 이스라엘은 그들이 조각한 우상에 입힌 은과 부어만든 우상에 올린 금을 더럽게 하여 불결한 물건을 던짐같이 던질 것이다(22절). 우리는 하나님보다 더 가치 있게 여기는 것들이나 또는 하나님처럼 가치 있게 여기는 것들을 다 버리자. 우리는 돈이라는 우상, 쾌락이라는 우상, 자기라는 우상을 다 버리자. 셋째로, 우리는 외적 여건, 곧 육신적, 물질적, 환경적 여건을 염려치 말자. 하나님께서는 회복될 이스라엘에게 적절한 비와 풍성한 소산을 주실 것이다(23-24절). 우리는 육신적 건강, 물질적 여유, 환경적 평안 등을 염려할 것이 없다. 우리가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면 하나님께서는 이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실 것이기 때문이다(마 6:33). 넷째로, 우리는 오직 하나님의 진노를 두려워하자. 본문은 하나님의 공의의 진노에 대해 여전히 증거한다. 앗수르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은 이스라엘에게 구원과 회복과 기쁨이 될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공의의 심판 자체는 참으로 두려운 것이다. 그것은 역사상 노아 홍수 심판, 소돔과 고모라 심판 등에서 이미 증거되었다. 하나님의 마지막 심판과 지옥 형벌은 여전히 남아 있다. 우리는 하나님의 진노를 두려워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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