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신앙  2009년 1월 4일 [제13권 1호]   ◆ 매주 발행 ◆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너희는 길에 서서 보며 옛적 길 곧 선한 길이 어디인지 알아보고 그리로 행하라. 너희 심령이 평강을 얻으리라' 하나, 그들의 대답이 '우리는 그리로 행치 않겠노라' 하였으며"(렘 6:16).

 

 

옛신앙

 

Old-time Fait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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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옛신앙'이란, 옛부터 하나님의 선지자들과 주의 사도들이 가졌던 신앙, 오직 정확 무오(無誤)한 하나님 말씀인 신구약 성경에만 근거한 신앙, 오늘날 배교와 타협의 풍조에 물들지 않는 신앙을 의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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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위기 강해:                                            속건제(贖愆祭)

레위기 5장은 속건제(贖愆祭)에 대한 규정이다. 13절까지를 속죄제에 대한 규정의 계속으로 보는 견해도 있으나, 5:1-6:7을 속건제에 대한 규정으로 본다(NASB). 원문 성경은 한글성경 6:8부터가 6:1이다. ‘속건제’라는 원어(아솸)는 ‘죄책’(guilt) 즉 죄에 대한 법적 책임 곧 죄값이라는 뜻이다. ‘건’(愆)이라는 한자는 ‘허물’이라는 뜻이다. 속건제는 속죄제처럼 속죄의 뜻을 나타내지만, 속죄제보다 죄값과 보상(報償)의 의미가 강조되는 것 같다.

[5:1-6] 누구든지 증인이 되어 맹세시키는 소리를 듣고도 . . . .

레위기 5장과 6:1-7에 의하면, 속건제를 드리는 경우는 모두 여섯 가지 경우이다. 첫째는, 증언을 회피한 경우이다. 누구든지 증인이 되어 맹세시키는 소리를 듣고도 그 본 일이나 아는 일을 진술치 아니하면 죄가 있고 그 허물이 그에게로 돌아갈 것이다. 묵비권은 세상에서는 통용될지 몰라도 하나님 앞에서는 죄가 된다. 성도는 하나님 앞에서 들은 것과 본 것과 아는 것을 진실하게 말해야 한다.

둘째는, 부정한 것을 만졌을 경우이다. 누구든지 부정한 들짐승의 사체(死體)나 부정한 가축의 사체나 부정한 곤충의 사체들, 무릇 부정한 것을 만졌으면 부지중에 즉 알지 못하고 했을지라도 그 몸이 더러워져 허물이 있을 것이요 혹시 부지중에 사람의 부정에 다닥쳤는데 즉 접촉했는데 그 사람의 부정이 어떤 부정이든지 간에 그것을 깨달을 때에는 허물이 있을 것이다.

셋째는, 헛맹세를 했을 경우이다. 누구든지 무심중에 즉 생각 없이 입으로 맹세를 발하여 악을 하리라 하든지 선을 하리라 하면 그 사람의 무심중에 맹세를 발하여 말한 것이 어떠한 일이든지 깨닫지 못하다가 그것을 깨달을 때에는 그 중 하나에 허물이 있을 것이다.

이와 같이, 이런 세 가지 경우에 범죄한 사람은 자신의 죄를 자복하고 하나님께 속건제를 드려야 했다. 제물은 어린 암양이나 암염소이었다. 6절에 이것을 ‘속죄제’라고 표현한 것을 보면 속건제나 속죄제는 그 의미상 큰 차이가 없었다. 이 경우는 평민의 속죄제와 동일하였다(레 4:27-35). 제사장은 그의 허물을 위해 속죄해야 했다.

[7-10절] 만일 힘이 어린양에 미치지 못하거든 . . . .

만일 힘이 어린양에 미치지 못하면 그 죄를 속하기 위해 산비둘기 둘이나 집비둘기 새끼 둘을 여호와께로 가져가되 하나는 속죄제물을 삼고 하나는 번제물을 삼아 제사장에게로 가져가야 했다. 이 속건제는 속죄제물과 번제물로 드린다는 뜻일 것이다. 제사장은 속죄제물을 먼저 드리되 그 머리를 목에서 비틀어 끊고 몸은 아주 쪼개지 말며 속죄제물의 피를 번제단 곁에 뿌리고 그 남은 피는 단 밑에 흘려야 했다. 이것은 속죄제이다. 그 다음 것은 규례대로 번제로 드려야 했다. 제사장이 그의 범과를 위해 속죄한즉 그가 사함을 얻을 것이다.

[11-13절] 만일 힘이 산비둘기 둘이나 집비둘기 둘에도 . . . .

만일 힘이 산비둘기 둘이나 집비둘기 둘에도 미치지 못하면 그 죄를 인해 고운 가루 에바 10분의 1을 예물로 가져와 속죄제물로 드려야 했다. 1에바는 약 22리터이었다. 에바 10분의 1은 약 2.2리터이다. 이것은 속죄제이기 때문에 그 위에 기름을 붓지 않고 유향도 놓지 말아야 했다. 속죄제는 소제와 달리 죄의 형벌의 의미가 있었다. 그는 그것을 제사장에게 가져갈 것이요 제사장은 그것을 기념물로 한 움큼을 취해 번제단 위 여호와의 화제물 위에 불사를 것이다. 이것이 속죄제이었다. 제사장은 그가 이것들 중 하나를 범하여 얻은 허물을 위해 속한즉 그가 사함을 얻을 것이다. 그 나머지는 소제물같이 제사장에게 돌릴 것이다.

[14-16절]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일러 . . . .

속건제를 드릴 네 번째 경우는, 성물에 대해 잘못을 범했을 때이다. 그것은 오늘날 각종 헌금이나 교회의 거룩한 물건들에 관계될 것이다. 여호와께서는 모세에게 말씀하시기를, 누구든지 여호와의 성물에 대하여 그릇 즉 실수로 범과하였거든 여호와께 속건제를 드리되 네가 지정한 가치를 따라 성소의 세겔로 몇 세겔 은에 상당한 흠 없는 숫양을 떼 중에서 끌어다가 속건제로 드려서 성물에 대한 범과를 갚되 그것에 5분의 1을 더하여 제사장에게 줄 것이요 제사장은 그 속건제의 숫양으로 그를 위하여 속한즉 그가 사함을 얻으리라고 하셨다.

[17-19절] 만일 누구든지 여호와의 금령중 . . . .

다섯째 경우는, 하나님의 금하신 계명을 범하는 경우이다. 그것은 앞에 언급한 성물에 관한 법들뿐 아니라, 하나님의 계명 전반에 관한 것일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계속 명하시기를, 만일 누구든지 여호와의 금령중 하나를 부지중에 범하여도 허물이 있고 벌을 당할 것이며 그는 네가 지정한 가치대로 떼 중 흠 없는 숫양을 속건제물로 제사장에게로 가져올 것이며 제사장은 그의 부지중에 그릇 곧 실수로 범한 허물을 위해 속한즉 그가 사함을 얻을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이것은 속건제이다. 그는 실로 여호와 앞에 범죄하였었다.

[6:1-7]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일러 가라사대 . . . .

레위기 6:1-7은 속건제에 대한 규정의 계속이다. 히브리어 성경은 한글성경 6:8부터가 6:1이다. 속건제의 여섯 번째 경우는, 거짓 증거나 거짓 맹세를 했을 경우이다. 여호와께서는 모세에게 말씀하시기를, 누구든지 여호와께 신실치 못하여 범죄하되 곧 남의 물건을 맡거나 전당 잡거나 강도질하거나 늑봉 즉 강탈하고도 사실을 부인하거나 남의 잃은 물건을 얻고도 사실을 부인하여 거짓 맹세하는 등 사람이 이 모든 일 중에 하나라도 행하여 범죄하면 이는 죄를 범하였고 죄가 있는 자이며 그 빼앗은 것이나 강탈한 것이나 맡은 것이나 얻은 유실물이나 무릇 그 거짓 맹세한 물건을 돌려보내되 곧 그 본래의 물건에 5분의 1을 더하여 돌려보낼 것이며, 그 죄가 드러나는 날에, 다시 번역하면, ‘속건제를 드리는 날에’(KJV, NASB, NIV) 그 주인에게 줄 것이요, 그는 또 그 속건제를 여호와께 가져오되 네가 지정한 가치대로 떼 중 흠 없는 숫양을 속건제물을 위해 제사장에게로 끌어올 것이며 제사장은 여호와 앞에서 그를 위하여 속죄한즉 그는 무슨 허물이든지 사함을 얻으리라고 하셨다.

속건제 규정을 다시 요약하면, 속건제는 속죄제와 같이 속죄의 뜻을 가졌으나, 죄값과 보상의 의미가 더 강조된 것 같다(15-16, 18절; 6:5). 또 속건제는 특별히 특정한 죄들에 대한 속죄의 경우에 드리도록 규정된 것 같다. 본문에 나오는 예들은 여섯 가지이다. 첫째, 증언을 회피한 경우, 둘째, 부정해진 경우, 셋째, 헛맹세를 한 경우, 넷째, 성물을 범한 경우, 다섯째, 하나님의 금령중 하나를 어긴 경우, 여섯째, 거짓 증거나 거짓 맹세한 경우이었다. 속건제의 제물은 처음 세 경우에는 어린 암양이나 암염소이었고, 집이 가난한 자들에게는 산비둘기 둘이나 집비둘기 둘로도 가능했고, 그것도 힘든 자들은 고운 가루 에바 10분의 1로도 가능했다. 그 속죄제는 기름과 유향을 넣지 않았다. 나머지 세 경우들에는 지정된 가치대로 숫양을 드리고 또 5분의 1을 더해 제사장에게 드리기도 했다.

속건제 규정이 주는 교훈은 무엇인가? 그것은 무엇보다 죄는 죄책이 있음을 보인다. 속죄는 그 죄책의 보상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 사역은 우리의 죄책을 보상하신 것, 즉 죄값을 지불하신 것이었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은 에베소 장로들에게, “너희는 자기를 위하여 또는 온 양떼를 위하여 삼가라. 성령이 저들 가운데 너희로 감독자를 삼고 하나님이 자기 피로 사신 교회를 치게 하셨느니라”고 말했다(행 20:28).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자기 피로 신약교회 곧 예수 믿는 우리 모두를 사셨다.

사도 바울은 또 고린도전서 6:19-20에서도 말하기를, “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너희는 너희의 것이 아니라 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 그런즉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고 하였다. 우리의 몸은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흘리신 피값으로 사신 바된 몸이다. 그러므로 우리의 몸은 우리의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것이며 예수 그리스도의 것이며,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의와 선의 도구로 살아야 할 몸이다.

사도 바울은 디모데전서 2:6에서도 또 말하기를, “그가 모든 사람을 위하여 자기를 속전(贖錢)으로 주셨으니 기약이 이르면 증거할 것이라[증거될 것이었느니라]”고 말했다. 우리의 죄값을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다 지불하셨다. 그가 우리의 죄의 형벌을 친히 담당하셨다. 우리의 무거운 죄짐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제거되었다. 우리는 죄로부터, 죄의 형벌과 공포로부터 자유케 되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오직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만 굳게 믿고 의지하자.

또 우리는 모든 죄를 버리고 하나님의 계명과 교훈을 순종하여 의와 선만 행하자. 오늘 본문에 예를 든 것과 같이, 우리는 증언을 회피하는 죄를 짓지 말자. 우리는 교회의 유익을 위하여 우리의 증언이 필요한 때는 언제나 우리가 들은 것, 우리가 본 것, 우리가 아는 것을 진실하게 증언해야 한다. 또 우리는 세례 서약이나 결혼 서약이나 임직 서약에 있어서 진실해야 하고 그것을 진실하게 지켜야 한다. 또 우리는 하나님께 드릴 혹은 드린 헌금을 도적질해서는 안 되며 교회 물건을 자기 것처럼 사용하거나 자기 것으로 취해서도 안 된다. 또 우리는 거짓 증언을 하거나 거짓 맹세를 해서는 안 된다. 우리는 항상 진실한 말만 해야 한다. 하나님께서 미워하시는 것은 죄이다. 우리가 조심해야 할 것은 죄뿐이다. 우리는 모든 죄를 버리고 의와 선만 행하는 자가 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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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야 강해:                                     하나님의 포도원

[5:1] 내가 나의 사랑하는 자를 위하여 . . . .

선지자 이사야는, “내가 나의 사랑하는 자를 위하여 노래하되 나의 사랑하는 자의 포도원을 노래하리라. 나의 사랑하는 자에게 포도원이 있음이여 심히 기름진 산에로다”라고 말한다. ‘포도원’은 이스라엘 족속을 가리키며(7절) ‘심히 기름진 산’은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라고 묘사된 가나안 땅을 가리킨다(출 3:8, 17; 13:5; 33:3; 레 20:24 등).

선지자 이사야는, ‘나의 사랑하는 자’라는 말을 세 번이나 하였다. ‘나의 사랑하는 자’는 하나님을 가리킨다. 그는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고백한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을 경외할 뿐 아니라 또한 사랑해야 한다. 신명기 6:5은 “너는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고 말한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말씀하시기를, “아비나 어미를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는 내게 합당치 아니하고 아들이나 딸을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도 내게 합당치 아니하고 또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지 않는 자도 내게 합당치 아니하니라”고 하셨다(마 10:37-38). 사랑하는 것이 무엇인가? 그것은 좋아하는 것, 기뻐하는 것, 즐거워하는 것, 믿고 의지하는 것, 오래 참고 기다리는 것, 겸손히 순종하는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을 사랑해야 한다.

[2절] 땅을 파서 돌을 제하고 극상품 포도나무를 심었었도다. 그 중에 망대를 세웠고 그 안에 술틀을 팠었도다. 좋은 포도 맺기를 바랐더니 들포도를 맺혔도다.

선지자 이사야는 계속 말하기를, “땅을 파서 돌을 제하고 극상품 포도나무를 심었었도다. 그 중에 망대를 세웠고 그 안에 술틀을 팠었도다”라고 한다. ‘극상품 포도나무’는 이스라엘 사람들 곧 유다 사람들을 가리켰다(7절). 그들은 하나님께서 선택하신 경건한 아브라함의 자손들이다. 그들은 하나님의 은혜를 받은 족속이다. 땅을 파서 돌을 제거하고 망대를 세우고 술틀을 파듯이, 하나님께서는 가나안 땅에 거주했던 우상숭배적이고 음란한 원주민들을 멸망시키시고 이스라엘 백성을 그 곳에 정착하게 하셨다.

선지자 이사야는 하나님께서 좋은 포도 맺기를 바라셨으나 그들이 들포도를 맺었다고 말한다. ‘들포도’라는 원어(베우쉼)는 본래 ‘악취나는 무가치한 것들’이라는 뜻이다. 들포도는 그들의 불경건함과 부도덕함을 가리킨다. 그것은 7절에 말한다. “그들에게 공평을 바라셨더니 도리어 포학이요 그들에게 의로움을 바라셨더니 도리어 부르짖음이었도다.”

[3-4절] 예루살렘 거민과 유다 사람들아 . . . .

3절 이하는 하나님의 친 음성이다. 선지자 이사야는 하나님의 특별한 감동 속에 하나님의 친 음성을 대언(代言)한다. 하나님께서는 말씀하시기를, “예루살렘 거민과 유다 사람들아 구하노니 이제 나와 내 포도원 사이에 판단하라. 내가 내 포도원을 위하여 행한 것 외에 무엇을 더할 것이 있었으랴. 내가 좋은 포도 맺기를 기다렸거늘 들포도를 맺음은 어찜인고”라고 하신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모든 좋은 것을 다 주셨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에게 좋은 열매 맺기를 원하셨다. 그러나 하나님의 많은 은혜를 받은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향해 패역하였고 불순종하였다. 이스라엘의 역사는 인간의 전적 부패와 무능력을 증거한 역사이었다. 그러므로 선지자 예레미야는 “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한 것은 마음이라”고 말했다(렘 17:9).

[5-6절] 이제 내가 내 포도원에 어떻게 . . . .

하나님께서는 이제 심판을 선언하신다. 그는 “이제 내가 내 포도원에 어떻게 행할 것을 너희에게 이르리라. 내가 그 울타리를 걷어 먹힘을 당케 하며 그 담을 헐어 짓밟히게 할 것이요 내가 그것으로 황무케 하리니 다시는 가지를 자름이나 북을 돋우지 못하여 질려와 형극이 날 것이며 내가 또 구름을 명하여 그 위에 비를 내리지 말라 하리라”고 말씀하신다. 이스라엘의 국경선이 무너지며 예루살렘 성벽이 무너지고 외국 군대가 침공해 들어오고 이스라엘을 멸망시킬 것이다. 이스라엘 땅은 황무하게 될 것이다. 들판에는 가시나무와 엉겅퀴만 날 것이며, 비조차 내리지 않아 들판이 황량할 것이다.

[7절] 대저 만군의 여호와의 포도원은 이스라엘 족속이요 그의 기뻐하시는 나무는 유다 사람이라 그들에게 공평을 바라셨더니 도리어 포학이요 그들에게 의로움을 바라셨더니 도리어 부르짖음이었도다.

선지자는 포도원의 비유를 분명하게 설명한다. 여호와의 포도원은 이스라엘 족속을 가리키고 그의 기뻐하시는 포도나무는 유다 사람을 가리켰다. 좋은 포도는 공평과 의로움을 가리키고, 들포도는 피흘림과 부르짖음을 가리켰다. ‘포학’이라는 원어(미스파크)는 ‘살륙, 피흘림’이라는 뜻이다. 원문에서 ‘공평’(미슈파트)과 ‘포학’(미스파크), ‘의로움’(체다카)과 ‘부르짖음’ (체아카)은 비슷한 발음으로 대조를 이룬다. 이스라엘 사회의 도덕은 땅에 떨어졌다. 불의와 불법으로 인한 탄식과 고통의 부르짖음이 컸다. ‘좋은 포도’는 공평과 의, 사랑과 진실의 도덕성을 가리킨다. 그것이 인간이 창조된 본래의 하나님의 형상이며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이며 성령의 열매이다. ‘들포도’는 살륙과 피흘림, 미움, 거짓, 사악함을 가리킨다.

이사야 5:1-7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우리는 선지자처럼 하나님을 사랑하자.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것은 하나님을 좋아하고 하나님을 기뻐하고 즐거워하며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고 오래 참고 기다리며 겸손히 순종하며 즐거이 섬기는 것이다. 신명기 6장에서 모세는 교훈하기를, “이스라엘아 들으라.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오직 하나인 여호와시니 너는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고 하였다(신 6:4-5).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그의 계명들 중 가장 큰 계명이다. 예수께서는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라고 말씀하셨다(마 22:37-38). 우리는 참으로 하나님을 사랑하는가?

둘째로, 우리는 좋은 열매를 맺자. 잠언 8:13,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은 악을 미워하는 것이라. 나는 교만과 거만과 악한 행실과 패역한 입을 미워하느니라.” 잠언 16:6, “인자와 진리로 인하여 죄악이 속하게 되고 여호와를 경외함으로 인하여 악에서 떠나게 되느니라.” 하나님을 참으로 경외하고 사랑하는 자는 악을 멀리 떠나며 그의 계명을 생명같이 지킬 것이다. 하나님의 계명의 요점은 사랑이다. 그러므로 좋은 열매를 맺는다는 것은 거룩과 의와 사랑과 진실의 인격과 삶을 가리킨다.

그것은 인간이 본래 지음받았던 하나님의 형상의 내용이다. 에베소서 4:22-24, “너희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좇는 옛사람을 벗어버리고 오직 심령으로 새롭게 되어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 그것은 성령의 열매이다. 갈라디아서 5:22-23,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니 이 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 우리는 의와 사랑과 진실의 좋은 열매를 맺는 자들이 되자.

셋째로, 우리는 들포도를 맺는 자들과 그 포도원은 결국 망하고 황폐케 됨을 기억하자. 좋은 열매 없는 나무는 찍힐 것이다. 마태복음 3:10, “이미 도끼가 나무 뿌리에 놓였으니 좋은 열매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어 불에 던지우리라.” 요한복음 15:2, “무릇 내게 있어 과실을 맺지 아니하는 가지는 아버지께서 이를 제해 버리시고 무릇 과실을 맺는 가지는 더 과실을 맺게 하려 하여 이를 깨끗케 하시느니라.” 불의와 미움과 악과 거짓을 행하는 자들은 세상에서도 또 영원히 멸망하게 될 것이다.

 

 현대사회문제:                금성출판사 교과서문제

금성출판사가 출판한 근현대사 교과서는 서울지역에만 124개 고등학교가 사용하고 있고 전국적으로 870개교가 사용하고 있다고 한다. 반국가교육척결국민연합(상임지도위원: 고영주 김진성 김진홍 김홍도 박세직 법 철 서경석 서정갑 이동복 이상주 조갑제 최광)은 다음과 같은 성명서를 발표했다.

1. 금성출판사의 역사교과서는 대한민국의 약점만 캐고 북한정권의 잘못은 덮어주기 위하여 쓰여진 ‘아주 나쁜 책’입니다.

2. 금성교과서는 “민족정신에 토대를 둔 새로운 나라의 출발은 수포로 돌아갔다”고 대한민국 건국에 대해 악담(惡談)하면서, 민족반역자 김일성에 대해선 “사회주의 국가건설이란 이념적 명분을 가지고 있었으며 대중의 지지를 받았다”고 미화합니다.

3. 금성교과서는 국민의 반대 속에서 대한민국이 건국된 것처럼 조작하기 위하여 제헌의회 선거에서 투표율이 95%나 되었다는 점은 생략해버린 ‘아주 나쁜 책’입니다.

4. 금성교과서는 공산주의자들이 일으킨 1946년 10월 폭동을 ‘민중봉기’라고 미화하면서 경찰과 우익의 무력진압만 강조하고, 공산폭도들의 경찰관 학살은 언급도 하지 않습니다.

5. 금성교과서는 우리가 먹고 사는 토대가 되어 있는 중화학공업 건설을 ‘노동집약의 공해 사업을 들여온 것’이라고 험담하면서, 개혁개방을 거부함으로써 300만 동포를 사실상 굶겨 죽인 북한정권에 대해서는 “세계변화에 대응하여 부분적인 개방정책으로 경제적 어려움에서 벗어나기 위해 애쓰고 있다”고 과장합니다. [조선일보, 2008. 11. 19, A30쪽 하단광고.]이사야 4장은 시온의 회복에 대해 증거한다. 이사야 1장부터 39장까지는 주로 심판에 대한 선언이다. 그러나 심판의 선언 가운데서도 본장과 같이 회복이나 위로의 메시지가 중간중간에 나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