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신앙 2009년 08월 16일 [제13권 33호] ◆ 매주 발행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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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너희는 길에 서서 보며 옛적 길 곧 선한 길이 어디인지 알아보고 그리로 행하라. 너희 심령이 평강을 얻으리라' 하나, 그들의 대답이 '우리는 그리로 행치 않겠노라' 하였으며"(렘 6:16). |
옛신앙
Old-time Faith www.oldfaith.net |
'옛신앙'이란, 옛부터 하나님의 선지자들과 주의 사도들이 가졌던 신앙, 오직 정확 무오(無誤)한 하나님 말씀인 신구약 성경에만 근거한 신앙, 오늘날 배교와 타협의 풍조에 물들지 않는 신앙을 의미합니다. |
121-884
서울 마포구 합정동 364-1 합정동교회 김효성 목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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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오전설교: 강하고 담대하라 [성경본문] 여호수아 1:6, "마음을 강하게 하라. 담대히 하라. 하나님의 종 모세가 죽은 후에, 하나님께서 모세의 수종자 여호수아에게 이스라엘 백성을 이끌고 요단강을 건너 약속의 땅 가나안으로 들어가라고 명하실 때, 그는 그에게 마음을 강하게 하고 담대히 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호수아는 모세가 남겨둔 일, 곧 하나님께서 명하신 가나안 땅 취하는 일을 위해 마음을 강하게 하고 담대히 하는 것이 필요하였습니다. 후에, 하나님의 사람 다윗도 죽을 날이 가까웠을 때, 그 아들 솔로몬에게 "너는 힘써 대장부가 되라"고 유언을 하였는데(왕상 2:2), 그 말은 "너는 강하고 남자다워라"는 뜻입니다. 왕위를 이어받은 젊은 왕 솔로몬에게 강하고 담대한 마음이 필요하였습니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 교인들에게 "깨어 믿음에 굳게 서서 남자답게 강건하여라"고 교훈하였고(고전 16: 13), 에베소 교인들에게도 "너희가 주 안에서와 그 힘의 능력으로 강건하라"고 교훈하였습니다(엡 6:10). 고린도 교인들에게도, 에베소 교인들에게도 강하고 담대함이 필요하였습니다. 사도 바울은 또 젊은 목회자 디모데에게도 "내 아들아, 그러므로 네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은혜 속에서 강하라"고 교훈하였습니다(딤후 2:1). 디모데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파하는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 강하고 담대함이 필요하였습니다. 어찌 구약시대의 여호수아와 솔로몬, 신약시대의 고린도 교인들과 에베소 교인들, 또 디모데에게만 강하고 담대함이 필요했겠습니까? 이 세상은 고통스런 일이 많은 세상입니다. 생존경쟁이 심하며, 원치 않는 질병이 있고 예기치 못한 사고가 있고, 정신적으로, 도덕적으로, 육체적으로, 경제적으로 마귀의 시험이 많습니다. 게다가, 인생은 몸도 마음도 연약한 존재입니다. 우리가 이 험한 세상을 잘 살아가려면 강하고 담대한 마음이 필요합니다. 하나님을 모르는 세상 사람들도 담대함과 용기를 미덕으로 생각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하나님의 계명을 생명처럼 여기고 지키며 살려고 하는 신약성도들에게는 더욱 강하고 담대함이 필요합니다. 용기와 담력이 없다면, 우리는 심신이 아파서 누울 것입니다. 오늘 우리에게는 강하고 담대함이 필요합니다. 성경에 보면, 역사상 용감한 성도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여호수아는 용감하게 가나안 땅을 취하는 임무를 잘 수행하였습니다. 그것이 여호수아서의 내용입니다. 솔로몬은 용감하게 이스라엘을 잘 통치하였습니다. 솔로몬 시대에 이스라엘 백성은 평화와 번영을 누렸습니다. 다니엘과 세 친구들은 용감하게 믿음을 지켰고 하나님의 계명을 어기는 왕의 명령을 단호히 거절하였습니다. 주의 제자들은 주님의 가르치심대로 핍박과 순교를 무릅쓰고 그를 따랐고 하나님의 말씀을 모든 사람에게 전파하였습니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후서 11장에서 자신이 전도사역을 하면서 많은 고난을 당하였음을 간증하였다(고후 11:23-27). 또 그는 "나의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 증거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고 말했다(행 20:24). 이런 사람들은 다 강하고 담대한 마음을 가지고 살았던 용감한 성도들입니다. 그러면 신약성도가 강하고 담대한 마음을 가지고 용감하게 살 수 있는 근거가 무엇입니까? 첫째로, 우리의 담대함의 근거는 하나님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여호수아에게, "내가 모세와 함께 있던 것같이 너와 함께 있을 것임이라. 내가 너를 떠나지 아니하며 버리지 아니하리라," "마음을 강하게 하고 담대히 하라. 두려워 말며 놀라지 말라.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너와 함께 하느니라"(수 1:5, 9)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여호수아와 함께하심이 그의 담대함의 근거이었습니다. 다윗도 그가 쓴 시편들에서 그의 평안과 담력의 근거가 하나님임을 자주 간증하였습니다. 시편 3편에서 그는, "내가 누워 자고 깨었으니 여호와께서 나를 붙드심이로다. 천만인이 나를 둘러치려 하여도 나는 두려워 아니하리이다"고 고백했고(시 3:5-6), 시편 4편에서 그는, "내가 평안히 눕고 자기도 하리니 나를 안전히 거하게 하시는 이는 오직 여호와시니이다"고 하였습니다(시 4:8). 성도의 담대함의 근거는 우리와 함께하시는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담대함의 근거이기 때문에 우리는 항상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묵상하며 그에게 기도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여호수아에게, "너는 마음을 강하게 하고 극히 담대히 하여 나의 종 모세가 네게 명한 율법을 다 지켜 행하고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말라. 그리하면 어디로 가든지 형통하리니 이 율법책을 네 입에서 떠나지 말게 하며 주야로 그것을 묵상하여 그 가운데 기록한 대로 다 지켜 행하라. 그리하면 네 길이 평탄하게 될 것이라. 네가 형통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수 1:7-8). 다윗도 아들 솔로몬에게 "너는 힘써 대장부가 되라"고 말한 후, "네 하나님 여호와의 명을 지켜 그 길로 행하여 그 법률과 계명과 율례와 증거를 모세의 율법에 기록된 대로 지키라. 그리하면 네가 무릇 무엇을 하든지 어디로 가든지 형통할지라"고 말하였습니다(왕상 2:2-3). 또 우리가 하나님께 기도드리는 것도 그와 동행하는 방법입니다. 모세의 고백대로,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그에게 기도할 때마다 우리에게 가까이 하십니다(신 4:7). 시편은, 성도들이 환난과 고통 중에 하나님께 부르짖어 기도함으로 그의 도우심을 체험한 기도와 간증의 시들입니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은 빌립보 교인들에게,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고 말합니다(빌 4:6-7). 하나님은 우리의 담대함의 근거이시며, 그러므로 우리는 그의 말씀을 주야로 묵상하며 지키고 그에게 늘 기도드립니다. 둘째로, 우리의 담대함의 근거는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그의 피로 죄씻음을 받고 의롭다 하심을 받았습니다. 우리는 의는 예수 그리스도밖에, 그의 십자가 공로밖에 없습니다. 이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하나님 아버지께 담대히 나아가며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하나님께 기도하며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하나님을 섬기며 사랑하며 따릅니다. 히브리서에 보면, "그러므로 우리가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고 권면하였고, 또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예수의 피를 힘입어 성소에 들어갈 담력을 얻었도다"고 말합니다(히 4:14-16; 10:19).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담대함의 근거이십니다. 셋째로, 우리의 담대함의 근거는 우리 속에 거하시는 성령이십니다. 성령은 하나님의 영이시며 특히 능력의 영이십니다. 주 예수께서는 승천하시기 전에 제자들에게,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고 말씀하셨는데(행1:8), 성령께서 오순절에 제자들에게 내려오셨고, 그 이후 성령께서는 신약성도들 속에 오셔서 영원히 거하십니다(요 14:16-17).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닙니다(롬 8:9). 성령은 능력의 영이시며 성령께서 그들 속에 영원히 거하시는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다 능력을 소유한 자들입니다. 성령과 그 능력은 우리의 담대함의 근거가 됩니다. 그런데 성도는 때때로 용기와 담대함을 잃어버리고 연약 가운데 떨어집니다.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그것은 죄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미 율법에서 이스라엘 백성이 그의 계명을 어기고 범죄하면, "내가 너희를 치리니 너희가 너희 대적에게 패할 것이요 너희를 미워하는 자가 너희를 다스릴 것이며 너희는 쫓는 자가 없어도 도망하리라," "너희 남은 자에게는 그 대적의 땅에서 내가 그들의 마음으로 약하게 하리니 그들은 바람에 불린 잎사귀 소리에도 놀라 도망하기를 칼을 피하여 도망하듯 할 것이요 쫓는 자가 없어도 엎드러질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레 26:17, 36). 다윗은 시편 5편에서 "주는 죄악을 기뻐하는 신이 아니시니 악이 주와 함께 유하지 못한다"고 증거합니다(시 5:4). 그러므로 우리가 죄를 지으면 즉시 하나님께 고백하고 뉘우치고 버려야 합니다. 삼손은 나실인 서약을 어기고 머리에 삭도를 댐으로 힘을 잃었지만, 회개하며 마지막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간구할 때 하나님께서는 그 기도를 들으셨고 그의 원수를 갚을 큰 힘을 다시 주셨습니다(삿 16:28-30). 의인은 일곱 번 넘어질지라도 다시 일어납니다(잠 24:16). 실수도 있고 징계도 있을지라도, 그는 다시 일어납니다. 우리는 강하고 담대하십시다. 어떻게 그것이 가능합니까? 하나님은 우리의 힘이십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고 기도함으로 그의 능력을 체험합니다. 또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의가 되시고 힘이 되십니다. 또 우리 속에 영원히 거하시는 성령께서 우리의 힘이 되십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따르는 자들은 강하고 담대할 수 있는 근거를 이미 가지고 있습니다. 주 안에서 강하고 담대하십시오. 그러나 한가지만 조심해야 합니다. 그것은 죄에 떨어지지 말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죄는 우리를 연약하게 만듭니다. 범죄하면 우리는 두려워 떨게 됩니다. 죄는 짓는 순간에는 즐거워 보일지 모르나, 그 결과는 쓰고 고통스럽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죄를 멀리해야 합니다. 범죄했다면, 즉시 고백하고 일어나야 합니다. 우리는 실패자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공로를 의지하며 그의 보혈로 씻음받고 다시 힘을 내어야 합니다. 신앙생활은 우리가 죄와 마귀와 세상과 싸우는 전쟁입니다. 이 전쟁에서 지면 죽음입니다. 우리는 이 전쟁에서 반드시 이겨야 하고 또 이길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구원은 결코 실패치 않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정말 예수를 믿고 따른다면, 강하고 담대하게 주를 따릅시다.
이사야 강해: 애굽에 대한 경고 [19:1-4] 애굽에 관한 경고라. . . . 본장은 1절 말씀대로 "애굽에 관한 경고"이다. 하나님께서는 심판자로서 빠른 구름을 타고 애굽에 임하실 것이다. 또 그가 심판을 시행하시면 애굽의 우상들은 그 앞에서 떨 것이다. 우상들은 참 하나님 앞에서 그 헛됨과 허무함이 드러날 것이다. 또 우상들을 섬겼던 애굽 사람들의 마음도 녹을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또 애굽에 내전(內戰)이나 내란(內亂)이 일어나게 하실 것이다. 죄악된 세상의 한 특징은 서로 미워하고 싸우는 것이다. 그러나 애굽 사람들은 그 사회적 혼란이 하나님의 징벌인 줄을 알지 못하고 오히려 정신이 쇠약해지고 마술적 우상숭배에 더욱 빠질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또한, "내가 애굽인을 잔인한 군주의 손에 붙이리니 포학한 왕이 그들을 치리하리라. 주 만군의 여호와의 말씀이니라"고 말씀하신다. 본문에 예언된 '잔인한 군주'는 주전 670년에 애굽을 통일했다고 알려진 심히 포학했던 군주 프싸메티쿠스든지, 혹은 역시 포학하였다고 알려진 그의 아들 느고(주전 616-597년에 통치)를 가리켰을 것이라고 한다. [5-10절] 바닷물이 없어지겠고 . . . . 하나님께서는 또 나일강을 마르게 하실 것을 예언하신다. 강들에서는 악취가 날 것이다. 또 나일강이 마름으로 그 주위의 밭들에서 농사하는 농부들과 나일 강에서 고기 잡는 어부들이 탄식할 것이다. 10절에 '기둥'이라는 원어는 '기둥 혹은 귀족들'이라는 뜻이든지, '직조공들'이라는 뜻이라고 한다. 애굽 땅에는 하나님의 심판으로 인해 마실 물과 먹을 음식이 없어지고 입을 옷과 일할 직장도 없어질 것이다. [11-15절] 소안의 방백은 지극히 어리석었고 . . . . 하나님께서는 또 애굽의 방백들이 무능하게 될 것을 예언하신다. '소안'은 애굽의 옛 수도이었다. 그 도시는 이스라엘 백성이 살던 고센 땅에 있었다(시 78: 43). 그 성은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서 나올 때 출발했던 곳인 라암셋과 동일한 도시라고 생각되곤 하였다(출 12:37). 소안의 방백들, 즉 애굽 왕실의 방백들은 지극히 어리석었고 바로의 가장 지혜로운 모사들의 계획은 미련하였다. 하나님께서는 또 그가 애굽에 대해 정하신 뜻 곧 애굽에 대해 계획하신 바에 대해 말씀하신다. 그것은 애굽의 심판에 대한 계획이었다. 애굽의 지혜자들이라도 그것을 알지 못하였다. 하나님께서는 또 소안과 놉의 방백들 가운데 '사특한' 혹은 '뒤틀린, 일그러진' 마음을 섞으셨기 때문에 그들이 애굽으로 매사에 잘못 가게 하였다. 왕의 참모들이 좋은 조언을 하지 못하면 나라가 바르게 진행할 수 없다. 오늘날도 마찬가지다. 대통령의 참모들이나 장관들이 좋은 계획을 세우지 못하면 나라가 잘 될 수 없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이 모든 일을 섭리하신다. [16-17절] 그 날에 애굽인이 부녀와 같을 것 . . . . 하나님께서는 또 애굽 사람들이 두려워 떨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그는 "그 날에 애굽인이 부녀와 같을 것이라. 그들이 만군의 여호와의 흔드시는 손이 그 위에 흔들림을 인하여 떨며 두려워할 것이며 유다의 땅은 애굽의 두려움이 되리니 이는 만군의 여호와께서 애굽에 대하여 정하신 모략을 인함이라. 그 소문을 듣는 자마다 떨리라"고 말씀하신다. 애굽 사람들의 두려워함은 하나님께서 그들 위에 손을 흔드시기 때문이다. 애굽 사람들은 유다 땅을 두려워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그가 '애굽에 대하여 정하신 계획'에 대해 다시 말씀하신다. 세상의 모든 일은 하나님의 주권적 작정과 섭리에 의해 이루어진다. [18-22절] 그 날에 애굽 땅에 가나안 방언을 . . . . 그러나 본장 끝부분에서 하나님께서는 애굽 땅에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가 임할 것을 예언하신다. 그는, "그 날에 애굽 땅에 가나안 방언을 말하며 만군의 여호와를 가리켜 맹세하는 다섯 성읍이 있을 것이며 그 중 하나를 장망성이라 칭하리라"고 말씀하신다. '가나안 방언으로 말하는 것,' '만군의 여호와를 가리켜 맹세하는 것'은 애굽 사람들이 하나님께로 돌아와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을 섬기게 될 것을 예언하신 것이다. 애굽 안에 다섯 성읍이나 하나님을 알게 될 것이다. 그 중 하나는 '장망성'(이르 하헤레스)이라 불릴 것이다. 이 도시는 하나님께서 고대의 중요한 도시인 '헬리오폴리스'(혹은 '온'이라고 부르는 도시)의 뜻인 '태양성'(이르 하케레스)을 빗대어 말씀하신 것이라고 보인다. 즉, '태양성'이 멸망하는 도시가 되고, 후에 하나님을 경외하는 도시로 거듭날 것을 암시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또, "그 날에 애굽 땅 중앙에는 여호와를 위해 제단이 있겠고 그 주위에는 여호와를 위하여 기둥이 있을 것이요 이것이 애굽 땅에서 만군의 여호와를 위하여 표적과 증거가 되리니 이는 그들이 그 압박하는 자 때문에 여호와께 부르짖겠고 여호와께서는 한 구원자, 한 보호자를 보내사 그들을 건지실 것임이라"라고 말씀하신다. '보호자'라는 원어는 '위대한 자, 우두머리, 대장'이라는 뜻이다. '한 구원자, 대장'은 신적인 구주를 암시한다. 애굽 땅 중앙에 하나님을 섬기는 단이 있을 것이다. 애굽은 하나님을 섬기는 나라로 변화될 것이다. 이것은 로마제국시대에 애굽의 알렉산드리아가 기독교 세계의 한 중요한 도시가 되었을 때 성취되었다고 보인다. 하나님께서는 또, "여호와께서 자기를 애굽에 알게 하시리니 그 날에 애굽인이 여호와를 알고 제물과 예물을 그에게 드리고 경배할 것이요 여호와께 서원하고 그대로 행하리라. 여호와께서 애굽을 치실 것이라도 치시고는 고치실 것인 고로 그들이 여호와께로 돌아올 것이라. 여호와께서 그 간구함을 들으시고 그를 고쳐주시리라"고 말씀하신다. 하나님은 두려운 심판자이시지만, 또한 죄인들을 치료하시는 구원자이시다. 애굽은 하나님의 긍휼과 은혜의 구원을 받을 것이다. [23-25절] 그 날에 애굽에서 앗수르로 통하는 . . . 하나님께서는 또, "그 날에 애굽에서 앗수르로 통하는 대로가 있어 앗수르 사람은 애굽으로 가겠고 애굽 사람은 앗수르로 갈 것이며 애굽 사람이 앗수르 사람과 함께 경배하리라. 그 날에 이스라엘이 애굽과 앗수르로 더불어 셋이 세계 중에 복이 되리니 이는 만군의 여호와께서 복을 주어 가라사대 나의 백성 애굽이여, 나의 손으로 지은 앗수르여, 나의 산업 이스라엘이여, 복이 있을지어다 하실 것임이니라"고 말씀하신다. '셋이'라는 말은 '세 번째가 되고'라는 뜻이다. 하나님께서는 이방 세계에 생명 얻는 회개와 구원의 은혜를 주실 것이다.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는 이스라엘뿐 아니라, 애굽을 포함한 이방나라들에도 전해질 것이다. 이방인들이 하나님의 백성으로 불리고 하나님을 섬기는 특권을 누릴 것이다. 신약교회는 하나님의 크신 구원의 은혜를 입은 자들의 모임이다. 세계복음화는 하나님의 뜻이다. 본장은 우리에게 몇 가지 교훈을 준다. 첫째로, 우리는 하나님의 심판을 두려워하자. 하나님은 온 세상의 창조자이실 뿐만 아니라, 온 세상의 섭리자이시다. 그는 이방나라들도 그의 뜻대로 다스리신다. 특히 그는 심판자이시다. 애굽에 대한 심판은 하나님의 주권적 작정과 섭리 안에서 이루어진다. 그는 심판자로서 빠른 구름을 타고 애굽에 임하신다. 그는 애굽인을 격동시켜 서로 분쟁케 하시며, 애굽인들의 정신을 쇠약케 하시며 그들의 계획을 파하시며, 강물을 마르게 하시고 초목을 시들게 하신다. 그는 사람의 지혜와 계획을 어리석게 만드신다. 우리는 하나님의 심판을 믿고 심판자 하나님을 참으로 두려워하자. 둘째로, 우리는 하나님의 구원을 감사하자.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과 더불어 애굽과 앗수르를 긍휼히 여기시며 치료하시며 구원하실 것이다. 이방나라 애굽에도 가나안 방언을 말하는 자들이 있고 하나님의 이름으로 맹세하는 자들이 있을 것이다. 애굽 땅 중앙에 하나님을 위한 제단이 세워질 것이다. 애굽 사람들은 압박자로 인해 하나님께 부르짖을 것이며 하나님께서 한 구원자, 한 위대한 지도자를 보내실 것이다. 그가 신적 구주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이제 하나님의 복음이 온 세계에 전파되고 이방인들이 충만하게 교회 안으로 들어오고 있다. 우리도 그들 중에 속한다. 우리는 하나님의 이 놀라운 구원의 은혜를 감사하자. 셋째로, 우리는 하나님만 힘써 섬기자. 하나님은 온 세상의 창조자이시요 세상의 모든 일을 작정하시고 섭리하시는 자이시다. 우리는 이제 하나님만 섬기며 그의 계명만 즐거이 순종하자. 그것이 인생의 정로이며 그것이 평강과 행복과 영생의 길이다. 우리는 하나님만 섬기자. ◈배교와 타협과 혼란의 시대에 바른 길을 붙들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