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신앙  2009년 12월 20일 [제13권 51호]   ◆ 매주 발행 ◆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너희는 길에 서서 보며 옛적 길 곧 선한 길이 어디인지 알아보고 그리로 행하라. 너희 심령이 평강을 얻으리라' 하나, 그들의 대답이 '우리는 그리로 행치 않겠노라' 하였으며"(렘 6:16).

 

 

옛신앙

 

Old-time Fait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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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옛신앙'이란, 옛부터 하나님의 선지자들과 주의 사도들이 가졌던 신앙, 오직 정확 무오(無誤)한 하나님 말씀인 신구약 성경에만 근거한 신앙, 오늘날 배교와 타협의 풍조에 물들지 않는 신앙을 의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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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일오전설교:                     가나안 여인의 간청

 [성경본문] 마태복음 15:21-31

느 날 예수께서는 두로와 시돈 지방으로 들어가셨습니다. 두로와 시돈 지방은 이스라엘 북서쪽 국경지역입니다. 그 지역은 원래 이스라엘 백성에게 주시기로 약속된 땅이었습니다(수 13:6). 가나안 여인 하나가 그 지경에서 나와서 소리질러 말했습니다. "주 다윗의 자손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내 딸이 흉악히 귀신들렸나이다." 마가복음에 보면, 그는 헬라인이었고 수로보니게 족속이었습니다(막 7:26). 그가 소리지른 것은 그에게 간절한 소원이 있었기 때문이며 또 그 기회를 놓칠 수 없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 여인은 예수님을 "주 다윗의 자손이여"라고 불렀습니다. 오늘 본문은 그가 예수님을 '주여'라고 세 번이나 불렀다고 기록합니다(22, 25, 27절). '주여'라는 말은 매우 높은 존칭어입니다. 이것은 신적 호칭입니다. 구약성경의 '여호와'라는 하나님의 이름은, 사도 시대에 널리 사용되었다고 보는 헬라어 70인역 성경에서 '주'라고 번역되었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주님'이라고 고백합니다. 사도 바울은,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얻으리라,"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고 말했습니다(롬 10:9, 13). 또 그는,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 . .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게 하셨다"고 말했습니다(빌 2:9-11).

또 '다윗의 자손'이라는 말은 메시야라는 뜻입니다. 예레미야 23:5은,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보라 때가 이르리니 내가 다윗에게 한 의로운 가지를 일으킬 것이라. 그가 왕이 되어 지혜롭게 행사하며 세상에서 공평과 정의를 행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므로 신약성경은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세계[족보]라"(마 1:1)는 말로 시작되는 것입니다.   

그 가나안 여인 속에는 예수가 메시야라는 믿음이 있었던 것입니다. 그것은 참으로 놀라운 일이었습니다.

그 여인은 예수께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내 딸이 흉악히 귀신들렸나이다"라고 외쳤습니다. 육신적 질병도 불행이지만, 정신적 질병도 큰 불행이었습니다. 특히 귀신으로 인한 정신적 질병은 더욱 그러하였습니다. 그 여인은 그의 딸의 병의 치료는 인간의 힘으로는 어찌 할 수 없었기 때문에, 또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이 아니고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였기 때문에, 더욱이 자신은 하나님의 은혜를 받을 자격이 없는 죄인이라고 인정하기 때문에,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라고 부르짖었을 것입니다. 모든 인간은 죄인이며 하나님의 징벌을 받을 수밖에 없는 존재입니다. 하나님의 긍휼이 아니고서는 하나님 앞에 감히 설 자도 없고 하나님의 도우심을 얻을 자도 없습니다.

그런데 예수께서는 한 말씀도 대답지 않으셨습니다. 그는 가나안 여인의 마음을 시험하시고 그의 믿음을 점검하시고 모든 사람들에게 증거가 되게 하시려 한 듯합니다. 제자들은 그에게 와서 요청하였습니다. "그 여자가 우리 뒤에서 소리를 지르오니 보내소서." 예수께서는 대답하셨습니다. "나는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 외에는 다른 데로 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였노라." 예수께서 세상에 보냄을 받으신 궁극적 목적은 온 세상의 택함받은 자들을 다 구원하시는 것이지만, 그의 일차적 사명은 이스라엘 백성의 잃어버린 양들을 구원하는 것이었습니다.

그 여자는 예수께 와서 절하며 "주여, 저를 도우소서"라고 말했습니다. '절한다'는 원어는 '경배한다'는 뜻도 있습니다(KJV). 그 여자는 예수님을, 자기를 도우실 수 있는 신적인 존재로 여겼음이 분명합니다. 그래서 그는 "주여, 저를 도우소서"라고 말한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도우실 수 있는 분이십니다. 왜냐하면 그는 하나님이시며 신적 본질과 속성을 가지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예수님을 '참 하나님'(요일 5:20)이시요 '크신 하나님'(딛 2:13)이라고 부릅니다. 또 골로새서 2:9은, "그 안에는 신성(神性)의 모든 충만이 육체로 거하신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그에게 "자녀의 떡을 취하여 개들에게 던짐이 마땅치 아니하니라"고 대답하셨습니다. 그는 이스라엘 백성을 하나님의 자녀들에, 이방인들을 개들에 비유하셨습니다. 그것은 영적 특권에 있어서 사실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을 모든 민족들 가운데서 특별히 선택하셔서 친 백성이 되는 언약을 맺으셨습니다. 또 도덕적으로도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그의 계명들을 순종치 않는 이방인들은 인간의 자격을 상실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 여인은 자존심이 몹시 상할 만도 한대 다시 말했습니다. "주여, 옳소이다마는 개들도 제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먹나이다." 그는 예수님께 대하여 "주여"라고 세 번째로 부릅니다. 또 그는 주의 말씀을 부정하지 않고 "옳다"고 긍정하였습니다. 믿음은 자신의 무지함과 무가치함, 자신의 허무함과 가련함, 특히 자신의 죄악됨을 인정하는 데서 시작합니다. 자존심은 자기를 높이는 마음입니다. 그러나 인간은 실상 자존심을 지킬 만큼 그런 고상하고 가치 있는 존재가 아닙니다. 왜냐하면 인간은 죄인이며 허무한 존재이며 하나님의 진노 아래 있기 때문입니다. 모든 좋은 것이 다 하나님께로부터 왔고 하나님의 은혜일 뿐입니다. 만물이 다 하나님의 것입니다(시 24:1).

그 여인은 "개들도 주인의 상의 부스러기를 먹나이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는 자신을 부정하고 주님께 겸손하게, 간절하게 요청하였습니다. 참 믿음은 겸손한 믿음, 자신을 부정하는 믿음입니다. 자기를 긍정하고 자기를 신뢰하는 것은 하나님을 신뢰하는 마음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은 자신을 부정하는 데서 출발해야 합니다.

그 여인의 놀라운 간청의 말을 들은 예수께서는, "여자야, 네 믿음이 크도다. 네 소원대로 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여자의 믿음은 참으로 큰 믿음이었습니다. 주께서는 그것을 확인하셨고 그것을 무리들 앞에서 보이셨고 증거하셨습니다.

주께서 "네 소원대로 되리라"고 말씀하시자, 바로 그 시각 그의 딸은 고침을 받았고 건강의 회복을 얻었습니다. 이것은 기적이었습니다. 이 기적은, 예수께서 신적 권능을 소유하신 분, 곧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하나님이심을 증거했습니다. 그는 각종 병자들을 고쳐주셨습니다. 그는 귀신을 쫓아내주셨습니다. 그는 인간의 영육의 질병, 곧 심신의 문제를 고쳐주셨습니다.

마태는 이 사건을 기록한 후 30-31절에서 주께서 갈릴리 호수가의 산에서 자기에게 모인 무리들 중의 병자들을 고치신 일을 기록하며 증거하였습니다. 그는 그 본문에서 벙어리가 말하고 불구자가 건전케 되며 절뚝발이가 걷고 소경이 보았다고 기록합니다. 우리는 이 기록이 진실한 증거임을 믿습니다. 또 성경은 무리들이 그의 하시는 일들을 보고 놀랐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다고 기록합니다.

이 가나안 여인 사건을 통해 우리는 몇 가지 교훈을 얻습니다. 무엇보다 첫째로, 우리는 예수님을 믿고 확신합시다. 이방 여인인 그 가나안 여인은 예수님을 '주님'으로 알았고 또 '다윗의 자손' 즉 메시야라고 불렀고 그 앞에 엎드려 절하며 경배하였습니다. 그는 예수께서 자기 딸을 괴롭히는 귀신을 쫓아내실 줄을 믿었습니다. 그는 비록 이방인이었지만, 예수님의 그 동안의 전도 사역을 보았거나 들음으로써 그가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 즉 신적 구주이심을 믿었던 것입니다.

성경은 유대인의 청년이셨던 역사적 인물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증거합니다. 성경은 이를 위해 기록되었고 우리가 그를 믿을 때 영생을 얻습니다(요 20:30-31).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믿는 자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얻습니다(요 1:12). 인간이 하나님의 자녀의 존귀와 특권을 얻는 것은 정말 놀라운 권세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믿고 확신합시다.

둘째로, 우리는 무슨 문제든지 간절히 주께 구하십시다. 가나안 여인은 주님께 소리질러 구하였습니다. 그는 "주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라고 외쳤습니다. 또 그는 "주여, 저를 도우소서"라고 말했습니다. 그는 자존심을 버렸습니다. 가나안 여인은 개들이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먹듯이, 이방인인 자기에게도 하나님의 긍휼과 은혜의 부스러기라도 주시기를 간청했습니다. 그 여인의 믿음은 컸습니다. 그는 큰 믿음을 가지고 소원을 간절히 아뢰었고 응답을 얻었습니다. 우리도 우리의 소원을 주님께 간절히 구하십시다.

셋째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문제의 해결을 얻읍시다. 가나안 여인의 문제는 그의 딸이 흉악히 귀신들린 것이었습니다. 그것은 인간의 힘으로 또는 의학적인 방법으로 고칠 수 없는 질병이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밖에 고쳐주실 자가 없었습니다. 그 여인은 하나님께서 긍휼이 많으시며 예수께서 그의 소원을 들어주시고 그를 도와주실 수 있는 분임을 믿었습니다. 그는 예수께 나아왔고 그의 도움을 간청하였고 응답을 받았습니다. 그의 딸은 그 흉악히 귀신들린 질병으로부터 고침을 받았습니다. 우리는 주 안에서 문제해결을 얻읍시다.

 

 이사야 강해:                        하나님의 심판

 [33:1-2] 화 있을진저, . . .

1절에서 선지자는, "화 있을진저, 너 학대를 당치 아니하고도 학대하며 속임을 입지 아니하고도 속이는 자여. 네가 학대하기를 마치면 네가 학대를 당할 것이며 네가 속이기를 그치면 사람이 너를 속이리라"고 말한다. 이것은 앗수르에 대한 심판 경고의 말씀이다. 앗수르는 이스라엘을 학대하였고 속였었다. 그러나 이제 하나님께서 앗수르에 대해 벌하실 것이다. 앗수르는 하나님의 재앙을 받을 것이다.

2절에서 선지자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은혜를 베푸시기를 간구한다. 그는 말하기를, "여호와여, 우리에게 은혜를 베푸소서. 우리가 주를 앙망하오니 주는 아침마다 우리의 팔이 되시며 환난 때에 우리의 구원이 되소서"라고 한다. 인생의 소망은 하나님께 있다.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푸시고 환난 때에 구원의 팔이 되지 않으신다면, 우리는 세상의 환난들과 원수 마귀의 권세를 이길 수 없다. 그러므로 우리는 선지자 이사야처럼 하나님을 앙망하며 그에게 은혜를 구하며 구원을 요청해야 한다.

[3-4절] 진동시키시는 소리로 인하여 . . . .

3-4절에서 선지자는, "진동시키시는 소리로 인하여 민족들이 도망하며 주께서 일어나심으로 인하여 열방이 흩어졌나이다. 황충의 모임같이 사람이 너희 노략물을 모을 것이며 메뚜기의 뛰어오름같이 그들이 그 위로 뛰어 오르리라"고 말한다. 하나님께서 앗수르를 심판하기 위해 일어나실 때 민족들은 도망하며 열방들은 흩어질 것이다. 사람들은 그들의 노략물을 취하기 위해 마치 메뚜기들이 뛰어오름같이 그들 위에 뛰어오를 것이다.

[5-6절] 여호와께서는 지존하시니 . . . .

5-6절에서 선지자는 하나님의 높으심과 의로우심, 그리고 하나님 안에서 누릴 평안에 대해 증거한다. 그는, "여호와께서는 지존하시니 이는 높은 데 거하심이요 공평과 의로 시온에 충만케 하심이라. 너의 시대에 평안함이 있으며 구원과 지혜와 지식이 풍성할 것이니 여호와를 경외함이 너의 보배니라"고 말한다. 하나님께서는 온 세상에 홀로 지극히 높으신 통치자이시다. 그는 공평과 의로 특히 시온을 통치하실 것이다.

6절은, "그는 너희 시대의 안정이시며 구원들과 지혜와 지식의 보화이시리로다"는 뜻이다(원문, NASB, NIV). 지존하신 통치자 하나님을 모신 백성은 복되다. 하나님은 우리의 평안과 안정이시며 구원이시고 지혜와 지식이시다. 여호와를 경외함이 우리의 보배이다. 여호와를 경외함이 지혜이며, 그 지혜는 잠언 3:13-18에 증거한 대로 은과 정금이나 진주보다 낫고 그 좌우에 장수와 부귀가 있고 그 길에 기쁨과 평강이 있으며 마침내 영생에 이르는 가장 귀한 보배이다.

[7-9절] 보라 그들의 용사가 밖에서 . . . .

7-9절에서 선지자는 유다 나라의 당할 곤란과 혼란을 예언한다. 그는, "보라 그들의 용사가 밖에서 부르짖으며 평화의 사신들이 슬피 곡하며 대로가 황폐하여 행인이 끊치며[끊이며] 대적이 조약을 파하고 성읍들을 멸시하며 사람을 생각지 아니하며 땅이 슬퍼하고 쇠잔하며 레바논은 부끄러워 마르고 사론은 사막과 같고 바산과 갈멜은 목엽을 떨어치는도다"라고 말한다.

'그들의 용사들'과 '평화의 사신들'은 이스라엘의 용사들과 사신들을 가리킨다고 본다. 그들은 앗수르와의 전쟁에서 패배하고 큰 고통을 당할 것이다. 그들이 기대했던 애굽의 도움도 얻지 못할 것이다. 이스라엘 땅은 앗수르와의 전쟁으로 인해 황폐케 될 것이다. 사론은 이스라엘 북부에 있는 갈멜산 남쪽의 비옥한 목초 지역인데, 그곳이 사막과 같이 황폐케 될 것이다. 바산과 갈멜의 나무들도 그 잎들을 떨어뜨릴 것이다.

[10-13절]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 . . .

10절에서 선지자는,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내가 이제 일어나며 내가 이제 나를 높이며 내가 이제 지극히 높이우리라"고 말한다. 하나님께서는 '이제'라는 말(앗타)을 세 번이나 반복해 사용하셨다. 그것은 그의 심판의 확고한 의지를 보인다. 그가 잠잠하실 때는 악한 자들이 활개쳤으나, 이제 그가 일어나실 것이다. 그는 일어나 이방인들을 벌하실 것이며 지극히 높임을 받으실 것이다.

11-13절에서 선지자는 다시 앗수르 사람들을 향해 말한다. "너희가 겨를 잉태하고 짚을 해산할 것이며 너희의 호흡은 불이 되어 너희를 삼킬 것이며 민족들은 불에 굽는 횟돌 같겠고 베어서 불에 사르는 가시나무 같으리로다. 너희 먼데 있는 자들아, 나의 행한 것을 들으라. 너희 가까이 있는 자들아, 나의 권능을 알라."

'너희'는 앗수르 사람들을 가리킨다고 본다. "너희가 겨를 잉태하고 짚을 해산할 것이라"는 말은 앗수르 사람들의 침략 계획이 헛수고가 될 것을 가리킨다고 본다. 또 "너희의 호흡은 불이 되어 너희를 삼킬 것이라"는 말은 불을 붙일 때 '후' 하고 숨을 불어 내쉬듯이 앗수르 사람들이 이스라엘을 삼키려고 숨을 내쉬었지만, 도리어 그것이 그들을 삼키는 불이 되었다는 뜻이라고 본다. 그들의 유다 침공은 도리어 자기들의  멸망을 초래하게 될 것이다. 그것은 앗수르 왕 산헤립 때에 그들이 예루살렘을 침공하였다가 한 밤에 군사 18만 5천명이 죽었고 왕은 고국으로 돌아가 아들들의 칼에 죽임을 당하였던 일에서 이루어졌다고 보인다(왕하 18-19장; 사 36-37장).

[14-16절] 시온의 죄인들이 두려워하며 . . . .

14절에서 선지자는, "시온의 죄인들이 두려워하며 경건치 아니한 자들이 떨며 이르기를 우리 중에 누가 삼키는 불과 함께 거하겠으며 우리 중에 누가 영영히 타는 것과 함께 거하리요 하도다"라고 말한다. 유다 땅에도 의인들과 악인들이 있었다. 그 날에 '시온의 죄인들'은 하나님의 불같은 심판을 목격하고 두려워 떨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평소에 그런 두려움을 가지고 하나님을 알고 죄를 멀리해야 했었다.

15-16절에서 선지자는, "오직 의롭게 행하는 자, 정직히 말하는 자, 토색한 재물을 가증히 여기는 자, 손을 흔들어 뇌물을 받지 아니하는 자, 귀를 막아 피 흘리려는 꾀를 듣지 아니하는 자, 눈을 감아 악을 보지 아니하는 자, 그는 높은 곳에 거하리니 견고한 바위가 그 보장이 되며 그 양식은 공급되고 그 물은 끊치지[끊이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고 말한다.

의인들은 하나님이 계신 높은 곳에 거할 것이다. 선지자는 의인들을, "의롭게 행하는 자, 정직히 말하는 자, 남의 것을 강제로 빼앗은 재물을 가증히 여기는 자, 누가 뇌물을 주려 할 때 손을 흔들며 거절하는 자, 남을 죽이려는 계획에 대해 귀를 막아 듣지 않는 자, 악한 일에 대해 눈을 감아 보지 않는 자"라고 표현하였다. 이것이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삶이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모두가 거룩하고 의롭고 선하고 진실하기를 원하신다. 물론,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은 우리가 첫째로 해야 할 일이다. 하나님께서는 이런 의인들에게 평안과 안전을 주시고 또 일용할 양식의 공급함을 주신다. 이것은 주께서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마 6:33)고 말씀하신 것과 같다.

본문이 주는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우리는 하나님을 알자. 이것이 가장 중요하다. 앗수르 사람들은 하나님을 알지 못하였다. 그래서 그들은 이웃 나라들을 학대하고 속였다. 그러나 높은 곳에 계신 하나님께서는 일어나 악한 자들을 심판하실 것이다. 그들의 인간적 계획들은 다 헛되게 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불같이 그들에게 임하실 것이며, 마침내 홀로 높임을 받으실 것이다. 하나님을 아는 것이 지혜요 보배이다. 이것은 성경 전체에 흐르는 대 진리이다. 우리는 하나님을 알자. 더 깊이 알자. 하나님의 살아계심과 어떻게 공의로우심과 그의 심판과 구원의 의지를 알자.

둘째로, 우리는 하나님 안에 거하자. 선지자는 환난의 시대에 하나님을 의지하며 그에게 기도하고 그의 은혜와 구원과 도우심을 간구하였다. 하나님은 지존하시며 의로우신 통치자이시며 그 안에 평안과 안정이 있고 구원이 있다. 하나님을 아는 자는 하나님을 의지하고 하나님 안에 거하며 그의 말씀의 교훈 안에 거한다. 신앙생활은 하나님 안에 거하는 생활이다. 하나님 안에 거하는 것은 그를 경외하며 믿고 의지하며 섬기고 사랑하며 그의 모든 계명과 교훈에 순종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뜻은 우리가 유일하신 참 하나님이신 여호와를 마음을 다해 사랑하고 섬기며 순종하며 사는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 안에 거하자(요 15:3-5). 믿음과 순종으로만 살자.

셋째로,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의롭고 선하게만 살자. 사람들은 결국 의인과 악인으로 나뉜다. 남을 학대하고 속이는 악인들은 하나님의 벌을 받을 것이다. 하나님은 일어나 그들을 징벌하시며 불같이 사르실 것이다. 죄인들은 두려워 떨 것이다. 그러나 의롭게 행하는 자, 정직히 말하는 자, 남의 물건을 빼앗는 일을 가증히 여기는 자, 손을 흔들어 거절하며 뇌물을 받지 않는 자, 귀를 막아 피 흘리려는 꾀를 듣지 않는 자, 눈을 감아 악을 보지 않는 자는 하나님과 함께 높은 곳에 안전하게 거할 것이며 하나님은 그들의 견고한 바위와 보호자가 되실 것이다. 또 그들은 양식과 물의 부족이 없을 것이다.

하나님의 뜻은 우리가 의롭고 선하게 사는 것이다. 로마서 6:13, "너희 지체를 불의의 병기로 죄에게 드리지 말고 오직 너희 자신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산 자같이 하나님께 드리며 너희 지체를 의의 병기로 하나님께 드리라." 로마서 8:13, "너희가 육신대로 살면 반드시 죽을 것이로되 영[성령]으로써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리니 무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그들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 에베소서 5:8-9, "너희가 전에는 어두움이더니 이제는 주 안에서 빛이라. 빛의 자녀들처럼 행하라. 빛의 열매는 모든 착함과 의로움과 진실함에 있느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