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신앙 2009년 10월 11일 [제13권 41호] ◆ 매주 발행 ◆ |
||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너희는 길에 서서 보며 옛적 길 곧 선한 길이 어디인지 알아보고 그리로 행하라. 너희 심령이 평강을 얻으리라' 하나, 그들의 대답이 '우리는 그리로 행치 않겠노라' 하였으며"(렘 6:16). |
옛신앙
Old-time Faith www.oldfaith.net |
'옛신앙'이란, 옛부터 하나님의 선지자들과 주의 사도들이 가졌던 신앙, 오직 정확 무오(無誤)한 하나님 말씀인 신구약 성경에만 근거한 신앙, 오늘날 배교와 타협의 풍조에 물들지 않는 신앙을 의미합니다. |
121-884
서울 마포구 합정동 364-1 합정동교회 김효성 목사, |
||
주일오전설교: 다 내게로 오라 마태복음 11:28,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오늘은 마태복음 11:20-30까지의 내용을 생각해보겠습니다. 예수께서 권능을 가장 많이 베푸셨던 갈릴리 북쪽 마을들의 사람들이 회개치 않았습니다. 주께서는 특히 고라신, 벳새다, 가버나움 등의 마을들을 언급하시며 책망하셨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형식적으로 섬겼던 자들임에 틀림없었습니다. 그 갈릴리 마을들의 사람들은 무지하고 교만하며 마음이 매우 완악했습니다.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이루어진 많은 기적들을 보고도 회개할 줄 몰랐습니다. 주께서는 그들이 이방인들보다도 못하다고 책망하셨습니다. 주께서는, 그가 두로와 시돈 지방의 이방인들에게 그의 권능을 보였더라면, 그들이 벌써 베옷을 입고 재에 앉아 회개하였을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또 주께서는, 그가 소돔과 고모라 성 사람들에게 그의 권능을 보였더라면, 그 성들이 오늘날까지도 멸망치 않고 남아 있었을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주께서는 그들에게 "화가 있을 것이라"고 선언하셨습니다. 예수님의 기적을 직접 보고도 믿지 않는 그들의 죄는 큽니다. 그것은 하나님을 믿지 않는 죄입니다. 불신앙은 큰 죄입니다. 그들의 불신앙은 눈으로 하나님의 능력을 보고도 믿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사람은 기적을 본다고 믿음이 생기지 않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주께서는 요한복음 6장에서 "아버지께서 내게 주시는 자는 다 내게로 올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요 6:37). 하나님께서 예수께 주시는 자들은 다 주께로 올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께 주시는 자들'이라는 표현은 하나님의 선택을 의미합니다. 구원은 하나님의 선택에서 시작됩니다. 하나님의 선택을 받은 자들이 예수 그리스도께로 올 수 있으며, 그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수 있습니다. 예수께서는 또,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이끌지아니하면 아무라도 내게 올 수 없으니 오는 그를 내가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요 6:44). 사람은 하나님의 이끌리심을 받아야 예수 그리스도께로 올 수 있습니다. 예수께 나왔다는 것은 이미 하나님의 은혜를 받았다는 증거입니다. 예수를 믿었다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를 받았다는 표시입니다. 사도 바울은 증거하기를, "우리는 십자가에 못박힌 그리스도를 전하니 유대인에게는 거리끼는 것이요 이방인에게는 미련한 것이로되 오직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지혜니라"고 하였습니다(고전 1:23-24). 세상 사람들에게 십자가의 복음은 어리석게 보이지만, 하나님의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그것이 구원의 소식이 됩니다. 믿음은 하나님의 은혜로 부르심을 받을 때 생기는 것입니다. 바울은 또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치 못하게 함이니라"고 말하였습니다(엡 2:8-9). 구원은 사람의 선한 행위에 근거하지 않고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데에 근거합니다. 또 이 모든 것이 우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구원은 하나님의 전적 은혜이며 우리가 믿게 된 것도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예수께서는 또, "천지의 주재이신 아버지여, 이것을 지혜롭고 슬기 있는 자들에게는 숨기시고 어린아이들에게는 나타내심을 감사하나이다. 옳소이다. 이렇게 된 것이 아버지의 뜻이니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예수를 믿는 것이 세상적 지혜나 인간적 지혜로 되는 것이 아님을 보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천지의 주관자이시며 모든 일을 그의 원하는 대로 행하실 수 있고 행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는 믿음의 도, 구원의 도를 지혜롭고 슬기 있는 자들에게는 숨기시고 어린아이들에게는 나타내시기를 기뻐하셨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구원의 방법이며 하나님의 뜻입니다. 그러므로 사람이 어린아이 같은 마음가짐을 가져야 믿음을 가질 수 있습니다. 예수께서는 다른 곳에서,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돌이켜 어린아이들과 같이 되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마 18:3). 어린아이들은 대체로 단순하고 순진하며 간사함이 없습니다. 어린아이들은 또 어른들에게서 볼 수 있는 의심이나 회의주의도 없습니다. 믿음을 가지려면 너무 철학적이서는 안 됩니다. 좀 상식적이어야 합니다. 기독교의 처음 전파자들인 주의 제자들은 깊은 철학적 사색을 통해 무엇을 전하려 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단순히 자신들이 보고 들은 것을 전했습니다. 사도 요한은 "태초부터 있는 생명의 말씀에 관하여는 우리가 들은 바요 눈으로 본 바요 주목하고 우리 손으로 만진 바라"고 말하였습니다(요일 1:1). 베드로와 요한은 유대인들의 공회에서 말하기를, "하나님 앞에서 너희 말 듣는 것이 하나님 말씀 듣는 것보다 옳은가 판단하라. 우리는 보고 들은 것을 말하지 아니할 수 없다"고 하였습니다(행 4:19-20). 그들은, 나사렛 사람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인 증거는 그가 행하신 기적들과 부활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들은, 그가 많은 기적들을 행했다는 사실을 친히 보았던 목격자이었고 그의 부활도 그러했기 때문에, 고난과 박해를 당하면서도 주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였고 믿고 추종하였습니다. 그들은 철학적인 접근방식으로 무엇을 전달한 것이 아니고 상식적인 접근방식으로 무엇을 전달하였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상식적인 방법으로 전달된 예수 그리스도일지라도 그를 믿는 것은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되어집니다. 그래서 주께서는 오늘 본문에서, "내 아버지께서 모든 것을 내게 주셨으니 아버지 외에는 아들을 아는 자가 없고 아들과 또 아들의 소원대로 계시를 받는 자 외에는 아버지를 아는 자가 없느니라"고 또 말씀하신 것입니다. 인간은 죄로 인해 영적으로 어두워져 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은혜로 심령을 밝혀주신 자들만 예수 그리스도를 알게 되고 하나님을 알게 되며 믿고 구원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죄인들의 구주로 세상에 오셨습니다. 비록 무지한 유대인들이 그를 알지 못하였고, 심지어 그의 많은 기적들을 보고도 그를 믿지 못하였지만, 예수 그리스도, 그는 인류를 죄의 무거운 짐으로부터 구원하기 위해 오신 구주이십니다. 죄가 세상의 근본 문제이며, 죄가 인류의 근본 문제입니다.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롬 3:23). "죄의 삯은 사망이요"(롬 6:23). 인류는 죄 때문에 불행한 삶을 살고 있고 그들의 마지막은 죽음이며 그 후에는 지옥의 형벌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죄문제의 해결자로 오셨습니다. '예수'라는 이름은 그가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할 자이시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입니다(마 1:21). 예수는 구원자라는 뜻입니다. 예수께서는 구원자로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사도 바울은, "미쁘다 모든 사람이 받을 만한 이 말이여, 그리스도 예수께서 죄인을 구원하시려고 세상에 임하셨다 하였도다. 죄인 중에 내가 괴수니라"고 말했습니다(딤전 1:15). 오늘 본문에서, 예수께서는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죄는 인간에게 무거운 짐을 가져다 주었습니다. 사람은 죄 때문에 얼굴에 땀흘리며 일해야 하고 여자들은 고통스런 출산을 해야 했습니다. 인생의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삶은 죄 때문에 비롯되었습니다. 그러나 죄문제의 해결은 인간의 근원적인 무거운 짐의 해결이 됩니다. 구주 예수께서는 바로 이 일을 위해 오셨고 이 일을 이루셨던 것입니다. 한 걸음 더 나아가서, 예수께서는 인격의 훈련에 대해서도 말씀하셨습니다. 그는 말씀하시기를,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러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것은 인간성의 훈련, 즉 성품과 품성의 훈련에 대한 교훈입니다. 그것은 구체적으로 온유와 겸손의 훈련에 대한 교훈입니다. 예수님은 온유하고 겸손한 인격이십니다. 구원받은 성도들은 예수님의 성품을 본받고 인격 훈련을 받아 예수님처럼 온유하고 겸손한 자가 되어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구원의 변화를 에베소서 4장에서 증거하기를, "너희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좇는 옛 사람을 벗어버리고 오직 심령으로 새롭게 되어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고 말하였습니다(엡 4:22-24). 구원받은 성도의 목표는 이 세상에서도 의롭고 거룩한 인격자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때 법적으로는 의롭다 하심을 얻었고 단번에 거룩해졌습니다. 그러므로 구원받은 성도는 의와 거룩을 행동 원리로 삼고 살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성경은, "너희는 모든 악독과 노함과 분냄과 떠드는 것과 훼방하는 것을 모든 악의와 함께 버리고 서로 인자하게 하며 불쌍히 여기며 서로 용서하기를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용서하심과 같이 하라"고 교훈합니다(엡 4:31-32). 예수께서는,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러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는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신앙생활에는 멍에가 있습니다. 어떤 규칙이 있습니다. 해야 할 일들이 있고 하지 말아야 할 일들이 있습니다. 우리는 성경말씀을 규칙적으로 읽고 그 모든 교훈을 순종해야 합니다. 또 우리는 성경이 죄라고 가르치는 것들은 무엇이든지 하지 말아야 합니다. 신앙생활은 주의 멍에를 메는 길입니다. 주를 믿고 따르는 길은 주의 멍에를 메고 주를 배우는 길입니다. 우리 육신에는 죄의 성향이 있기 때문에 우리가 자기 절제를 하지 않으면 죄에 떨어지고 헛된 일에 떨어질 수 있습니다. 우리는 죄짓는 일에 대해서는 언제나 '아니요'라고 단호하게 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고전 9:25; 벧전 2:11). 주께서는 "그러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의 멍에는 결코 무겁지 않습니다. 성도가 주일을 거룩히 지키는 일이나, 매일 성경을 읽고 기도하는 일이나, 가정예배를 드리는 일이나, 새벽기도의 단을 쌓는 일이나, 소득의 십일조를 헌금하는 일 등은 결코 무거운 짐이 아닙니다. 그것들은 다 성도가 즐거이 할 수 있는 일입니다. 주께서는 우리가 예수님을 믿을 때 평안을 주시지만, 우리가 그의 멍에를 메고 그를 본받을 때 더욱 평안을 주십니다. 우리가 믿음으로 살고 순종으로 살 때, 우리는 더 큰 평안을 체험할 것입니다. 모든 사람은 하나님의 은혜를 받아야 합니다. 어두운 마음이 밝아지고 완고한 마음이 부서져서 성경 말씀이 단순히 믿어져야 합니다. 모든 사람은 구주 예수께로 나아와 죄사함을 받고 평안을 얻어야 합니다. 또 구원받은 모든 성도는 날마다 예수님의 온유와 겸손을 본받는 인격 훈련을 받아야 하며, 그럴 때 그는 더 풍성한 평안을 누릴 것입니다.
이사야 강해: 환난 중에 주를 앙모함 [26:12] 여호와여, 주께서 우리를 위하여 . . . . 선지자는, "여호와여, 주께서 우리를 위하여 평강을 베푸시오리니"라고 말한다. '베푼다'는 원어(솨파스)는 '세운다, 정한다'는 뜻이다. 선지자는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위해 평강을 확실히 베푸실 것을 믿는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평강을 주실 수 있는 분이시다. 사도 바울은 데살로니가 성도들에게 "평강의 주께서 친히 때마다 일마다 너희에게 평강을 주시기를 원하노라"고 기원하였다(살후 3:16). 선지자는 또, "주께서 우리 모든 일을 우리를 위하여 이루심이니이다"라고 말한다. 이 말씀은 하나님의 평강을 기대하는 그의 믿음의 이유를 보인다. 그 이유는, 하나님께서 우리의 모든 일을 섭리하시며 그것을, 우리를 위해, 즉 우리의 유익을 위해, 우리의 구원과 성화를 위해 행하시고 이루시기 때문이다. 로마서 8:28은,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고 말한다. [13-14절] 여호와 우리 하나님이시여, . . . 선지자는 또, "여호와 우리 하나님이시여, 주 외에 다른 주들이 우리를 관할하였사오나 우리가 주만 의뢰하고 주의 이름을 부르리이다"라고 말한다. '주 외에 다른 주들'이란 이방 나라의 왕들을 가리킨다. '주만 의뢰하고'라는 원어는 '오직 주로 말미암아'라는 뜻이다. 선지자는 이스라엘 백성이 이방 나라의 왕들의 지배를 받았을 때에도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하나님만 의지하며 하나님의 이름을 부를 것이라고 고백한다. 또 선지자는 말하기를, "그들은 죽었은즉 다시 살지 못하겠고 사망하였은즉 일어나지 못할 것이니 이는 주께서 벌하여 멸하사 그 모든 기억을 멸절하셨음이니이다"라고 한다. '그들'은 이방 나라의 주들을 가리킨다. 하나님께서는 이방 나라들의 왕들을 벌하실 것이며 그들은 다 죽을 것이며 그들의 기억은 없어질 것이다. [15절] 여호와여, 주께서 이 나라를 더 크게 . . . . 선지자는 또, "여호와여, 주께서 이 나라를 더 크게 하셨고 이 나라를 더 크게 하셨나이다. 스스로 영광을 얻으시고 이 땅의 모든 경계를 확장하셨나이다"라고 말한다. '이 나라'는 이스라엘 나라를 가리킨다. 하나님께서는 장차 확실히 이스라엘 나라를 더 크게 하실 것이며 그 땅의 모든 경계를 확장하실 것이며 이로 인해 영광을 얻으실 것이다. 이것은 영적 이스라엘인 신약교회가 온 세상에 확장될 것을 보인다. [16절] 여호와여, 백성이 환난 중에 주를 . . . . 선지자는 또, "여호와여, 백성이 환난 중에 주를 앙모하였사오며 주의 징벌이 그들에게 임할 때에 그들이 간절히 주께 기도하였나이다"라고 말한다. 이스라엘 백성은 범죄함으로 하나님의 징벌을 받았고 온 세계에 뿔뿔이 흩어졌지만, 그 환난 중에 하나님을 앙모하였으며 하나님의 징벌이 임하였을 때 간절히 하나님께 기도하였다. '간절히 기도하였다'는 원어(차쿤 라카쉬)는 '속삭이는 기도를 쏟아 부었다'는 뜻이다. 이스라엘 백성은 포로생활 중에서, 부자유스럽고 힘든 상황 속에서도 조용한 소리, 속삭이는 기도를 하나님 앞에 쏟아 부었던 것이다. [17-18절] 여호와여, 잉태한 여인이 . . . . 선지자는 또, "여호와여, 잉태한 여인이 산기가 임박하여 구로하며 부르짖음같이 우리가 주의 앞에 이러하니이다"라고 말한다. 이스라엘 백성이 포로생활 중에 하나님께 갈급히 부르짖은 기도는 마치 잉태한 여인이 산기가 다 되어 산통으로 부르짖음과 같았다. 또 선지자는 말하기를, "우리가 잉태하고 고통하였을지라도 낳은 것은 바람 같아서 땅에 구원을 베풀지 못하였고 세계의 거민을 생산치 못하였나이다"라고 한다. 이스라엘 백성은 산고의 부르짖음 같은 기도를 올렸으나 그 기도는 온 세상에 흩어진 자들에게 구원이 되지 못하였었다. [19절] 주의 죽은 자들은 살아나고 . . . . 선지자는 그러나 소망의 소식을 전한다. 그는, "주의 죽은 자들은 살아나고 우리의 시체들은 일어나리이다"라고 말한다. '주의 죽은 자들'이라는 표현은 하나님의 백성을 가리킨다. 이스라엘 백성 중에는 이미 죽은 자들도 있고 지금 살아 있어도 죽은 자와 같이 사는 자들도 있을 것이다. "우리의 시체들은 일어나리이다"라는 원어는 "그들은 나의 시체와 함께 일어나리이다"라는 뜻이다. 선지자는 이스라엘 백성의 부활과 회복을 믿으며 그 중에 자신의 부활도 포함시킨다. 선지자는 또, "티끌에 거하는 자들아, 너희는 깨어 노래하라. 주의 이슬은 빛난 이슬이니 땅이 죽은 자를 내어놓으리로다"라고 말한다. 구약성경의 이 본문은 멸망했던 이스라엘의 회복과 더불어 종말론적인 부활을 예언한다고 본다. 다니엘 12:2도 "땅의 티끌 가운데 자는 자 중에 많이 깨어 영생을 얻는 자도 있겠다"고 말하였다. 신약성경은 부활의 진리를 밝히 증거한다(요 5:28-29; 고전 15:51). [20-21절] 내 백성아, 갈지어다. . . . 선지자는 또, "[그러나] 내 백성아, 갈지어다. 네 밀실에 들어가서 네 문을 닫고 분노가 지나기까지 잠깐 숨을지어다. 보라, 여호와께서 그 처소에서 나오사 땅의 거민의 죄악을 벌하실 것이라. 땅이 그 위에 잦았던 피를 드러내고 그 살해당한 자를 다시는 가리우지 아니하리라"고 말한다. 지금 부활의 때가 된 것은 아니다. 아직 세상에는 환난이 있을 것이며 먼저 하나님의 심판이 온 세상에 임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장차 땅의 거민들의 죄악을 벌하실 것이다. 심판자께서는 땅 위에 흘려졌던 의인들의 피흘림에 대해 철저하게 보응하실 것이다. 그러므로 선지자는 성도들이 밀실에 들어가서 문을 닫고 하나님의 분노가 지나기까지 잠깐 숨어 있으라고 말한다. 밀실은, 세상과 분리된 곳이며, 하나님과 밀접한 교제를 나누는 곳이며, 하나님의 보호가 있는 곳이다(매튜 풀). 성도는 대환난 시대에 밀실에 들어가서 문을 닫고 잠깐 숨어 있어야 한다. 그 때 그들은 세상 사람들과 무분별하게 교제하지 말고 성경을 읽고 기도하기를 힘써야 한다. 세상의 환난은 길어 보여도 영원한 천국에 비교하면 '잠깐'에 불과할 것이다. 본문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우리는 하나님께서 평강을 주실 것이며 모든 일을 우리의 유익을 위하여 섭리하실 것을 믿자. 하나님은 평강의 주님이시며 우리의 삶의 구체적인 현실 가운데서 평강을 주실 수 있고 주시는 주님이시다. 참된 평강은 하나님께서만 주실 수 있고 우리 주님 예수께서만 주실 수 있다(요 14:2; 롬 1:7). 또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모든 일들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게 하시는 섭리자이시다(롬 8:28). 둘째로, 그러므로 우리는 환난 중에도 하나님만 의지하고 소망하자. 하나님께서는 장차 자기 백성을 회복시키실 것이며 그의 죽은 자들을 영광스럽게 부활시키실 것이다. 이와 같이, 신약성도들도 이 세상에서 환난 중에 낙심치 말고 하나님만 의지하고 소망하자(롬 12:12; 10:35-37). 셋째로, 우리는 환난 시대에 밀실에 들어가 잠깐 숨자. 우리는 믿지 않는 자와 멍에를 같이하지 말고 성경적 교제의 원리를 지키고, 성경을 읽고 묵상하며 기도함으로써 하나님과 밀접한 교제를 힘쓰자. 그러한 삶은 하나님의 보호하심이 있는 삶이며 승리하는 삶이 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