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신앙 2009년 11월 22일 [제13권 47호] ◆ 매주 발행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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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너희는 길에 서서 보며 옛적 길 곧 선한 길이 어디인지 알아보고 그리로 행하라. 너희 심령이 평강을 얻으리라' 하나, 그들의 대답이 '우리는 그리로 행치 않겠노라' 하였으며"(렘 6:16). |
옛신앙
Old-time Faith www.oldfaith.net |
'옛신앙'이란, 옛부터 하나님의 선지자들과 주의 사도들이 가졌던 신앙, 오직 정확 무오(無誤)한 하나님 말씀인 신구약 성경에만 근거한 신앙, 오늘날 배교와 타협의 풍조에 물들지 않는 신앙을 의미합니다. |
121-884
서울 마포구 합정동 364-1 합정동교회 김효성 목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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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오전설교: 씨를 뿌리기와 추수하기 요한복음 4장에 보면, 주께서는 그의 전도 활동의 초기에 사마리아 지방 수가성에서 한 사마리아 여인에게 전도하셨는데, 그때는 추수하기 넉 달 전이었습니다. 주께서는 제자들에게 "너희가 넉 달이 지나야 추수할 때가 이르겠다 하지 아니하느냐?"고 말씀하셨습니다(35절). 유대 땅의 첫 추수는 봄에 하므로, 주께서 말씀하신 때는 오늘 우리의 달력으로 12월 초쯤 될 것이며 한참 추울 때이었습니다. 주께서는 "너희가 넉 달이 지나야 추수할 때가 이르겠다 하지 아니하느냐?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눈을 들어 밭을 보라. 희어져 추수하게 되었도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주께서는 분명히 영적인 추수에 대해 말씀하셨습니다. 주님의 관심은 영적인 추수, 곧 영혼 구원에 있었습니다. 주께서는 "거두는 자가 이미 삯도 받고 영생에 이르는 열매를 모으나니 이는 뿌리는 자와 거두는 자가 함께 즐거워하게 하려 함이니라. 그런즉 한 사람이 심고 다른 사람이 거둔다 하는 말이 옳도다. 내가 너희로 노력지 아니한 것을 거두러 보내었노니 다른 사람들은 노력하였고 너희는 그들의 노력한 것에 참여하였느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뿌리는 자'는 구약의 선지자들과 세례 요한을, '거두는 자'는 예수 그리스도와 사도들, 그리고 신약의 목사들과 성도들을 가리킬 것입니다. 또 씨는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 복음의 말씀입니다. 많은 목사들과 전도자들이 말씀을 뿌렸고 또 뿌리고 있고, 많은 목사들과 전도자들이 영혼들을 구원해냈고 또 구원해내고 있습니다. 유대 땅의 추수는 3대 절기 때에 행해집니다. 무교절 때에는 보리 추수가 행해집니다. 그 기간 중 1월 16일이 보리 초실절[보리 첫열매의 절기]입니다. 맥추절 때에는 밀 추수가 행해집니다. 수장절(收藏節) 때에는 포도주와 기름과 열매들의 저장이 이루어집니다. 구약의 3대 절기는 곡식과 열매 추수의 의미뿐 아니라, 영적인 뜻도 있었습니다. 보리 초실절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상징하였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부활의 첫열매가 되셨습니다. 맥추절은 성도들의 구원을 상징하였습니다. 맥추절은 오순절이라고도 하는데, 그 날 성령께서 오셨고 영혼 구원의 전도 사역이 본격적으로 시작되고 신약교회가 세워졌습니다. 수장절(收藏節)은 구원받은 성도가 광야 같은 이 세상의 생활을 마치고 천국 곡간에 들어가는 것을 상징합니다. 성도는 이 세상에서의 삶 가운데서 항상 하나님께 감사해야 합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범사에 감사하라"고 교훈합니다(살전 5:18). 우리는 음식을 대할 때마다 하나님께 감사하며 음식을 들어야 합니다(마 14:19). 이 세상은 어려운 일이 많은 세상이지만, 우리가 이만큼 평안 가운데, 건강하게 생존한다는 것 자체가 감사한 일입니다. 올 한 해도 우리는 개인적으로, 가정적으로, 교회적으로, 국가적으로, 세계적으로 하나님께 감사한 일들이 많은 줄 압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먹을 것과 입을 것과 거처할 곳을 주셨습니다. 주께서는 말씀하시기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목숨을 위하여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몸을 위하여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 목숨이 음식보다 중하지 아니하며 몸이 의복보다 중하지 아니하냐?"고 하셨고, 또 "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마 6:25, 31).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먹을 것과 입을 것을 주셨고 또 주실 것입니다. 그는 우리를 결코 버리지 않으실 것입니다. 또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이만큼 건강을 주셨고 일할 곳을 주셨고 약간의 수입이 있게 하셔서 아직까지 굶지 않고 살게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가정을 주셨고 우리의 자녀들이 평안 가운데 살게 하셨습니다. 또 신종 플루가 이렇게 유행하는 시대에도 하나님께서 우리의 건강을 이만큼 지켜주셨고 또 신종 플루에 걸렸던 식구들도 다시 건강케 하셨습니다. 이 모든 것들이 감사한 일들입니다. 우리는 교회적으로도 감사할 일들이 많습니다. 우리 교회는 어려운 시대에도 교회로서 할 일들을 행해 왔습니다. 교회는 연초에 예산을 세운 대로 양주의 은혜와 진리 교회 신경민 목사님, 신림동 성은교회 배대동 목사님, 안성 대림중앙교회 안준원 목사님, 정신장애우사역의 정희순 전도사님, 동중리교회 박흥수 목사님, 우크라이나의 최광순 선교사님, 과테말라의 강 일 선교사님, 그리고 칠레의 자라 선교사님 등 국내외의 개척교회와 선교사역에 매월 후원금을 보냈습니다. 또 교회는 올해에도 현재까지 교회 밖으로 성경강해 등 책자들을 무료 보급한 약 100권 포함하여 1,017권 보급하였고, 기독교교리개요 중문판 1,000부와 기독교 윤리 중문판 1,000부를 인쇄하여 1,498권을 무료 배포하였습니다. 또 로마서 강해 중문판도 번역하였습니다. 또 교회는 낡은 봉고차를 교체하였고(2100만원) 예배당 지붕 도색과 외벽 발수제 공사를 하였고(1500만원), 중고등부실과 유초등부실의 냉난방기를 교체하였습니다(476만원). 교회는 이 모든 일들을, 하나님의 은혜로 어려움 없이 행하였습니다. 특히, 올해는 하나님께서 임국환 강도사님의 흑색종 질병을 은혜 중에 치료하여주셨고, 또 우리 교회에 은혜를 주셔서 여섯 명의 권사님을 세우게 하셨고, 또 두 명의 장로님을 택하게 하셨습니다. 또 사회적으로도, 우리나라가 세계적 금융위기와 경제침체 속에서도 그 위기를 극복하고 이만큼 조금씩 회복의 기미를 보이기 시작한 것은 하나님의 크신 긍휼과 성도들의 간절한 기도의 응답이라고 믿습니다. 또 온 세계에 태풍과 홍수, 지진과 가뭄 등의 자연재해와 전쟁 등의 재난이 많은 한 해이었지만, 우리나라가 이만큼 평안 중에 지난 것도 하나님의 크신 긍휼과 은혜라고 믿습니다. 또 북한의 공갈 협박과 과격한 친북좌파 세력들의 선동 책략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가 이만큼 사회적 안정을 누리는 것도 하나님의 긍휼과 은혜입니다. 우리는 무엇보다 우리와 다른 이들의 구원을 항상 감사해야 합니다. 우리와 우리의 형제들과 교우들이 예수 믿은 것은 하나님의 놀라운 기적입니다. 이것은 우리가 감사해야 할 이유들 중에 가장 중요한 것입니다. 지옥 형벌을 받아야 마땅했던 우리 같은 죄인들을 하나님께서 긍휼히 여기셔서 예수 믿게 하셨고 천국과 영생과 부활의 약속을 주셨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알게 되고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알게 된 것은 우리에게 가장 크고 귀한 일이며 늘 하나님께 감사해야 할 이유입니다. 추수의 계절 그리고 추수 감사의 계절에, 우리는 특히 오늘 본문에 주께서 말씀하신 바와 같이, 영적 추수에 대한 생각을 해야 하겠습니다. 물질적 추수와 육신적 평안보다 더 중요한 것은 영적 추수입니다. 그것은 전도의 일을 가리킵니다. 전도는 추수입니다. 마태복음 9:37-38에 보면, 주께서는, "추수할 것은 많되 일꾼은 적으니 그러므로 추수하는 주인에게 청하여 추수할 일꾼들을 보내어 주소서 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께서는 전도를 가장 크게 여기셨습니다. 주께서는 "나의 양식은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며 그의 일을 온전히 이루는 이것이니라"고 말씀했는데(요 4:34), '하나님의 일'이란 영혼을 구원하는 전도의 일을 가리킵니다(요 6:29, 39-40). 그러므로 주께서는 또, "우리가 다른 가까운 마을들로 가자. 거기서도 전도하리니 내가 이를 위하여 왔노라"고 말씀하셨습니다(막 1:38). 또 주님의 마지막 부탁도 전도의 일이었습니다. 부활하신 주께서는,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고 말씀하셨고(마 28:19-20), 또한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고 하셨습니다(막 16:15). 씨를 뿌리기와 추수하기는 다 한가지입니다. 그것은 전도하는 일입니다. 믿지 않는 가족들을 구원하기 위해 우리는 기회 있는 대로 말씀을 전해야 합니다. 우리의 이웃 사람들을 구원하기 위해 우리는 기회 있는 대로 말씀을 전해야 합니다. 수요전도대로 모여 예배당 주위에 가가호호 전도지를 꽂고 전도해야 합니다. 또 우리가 교회로 모일 때마다, 아직 구원받지 못한 분들이 구원받기 위해 우리는 기도해야 합니다. 또 우리는 한 사람이 한 사람씩 전도하기 위해 힘써야 할 것입니다. 전도는 말과 행위로 하는 것입니다. 전도는 사람에게 관심을 두고 사람을 만나며 사랑을 베풀면서 해야 할 것입니다. 전도에는 눈물의 기도와 수고가 있어야 할 것입니다. 시편 126:5-6은,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는 자는 기쁨으로 거두리로다. 울며 씨를 뿌리러 나가는 자는 정녕 기쁨으로 그 단을 가지고 돌아오리로다"라고 말하는데, 그것은 전도의 눈물과 수고를 말할 것입니다. 오늘 추수감사절을 맞아, 우리는 한 해를 돌아보며 하나님께 감사를 올립시다. 우리는 개인적인 감사의 일들을 생각하며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고, 가정적인 감사의 일들을 생각하며 감사를 드립시다. 이 어려운 시대에 아직까지 우리가 이만큼 살고 있는 것 자체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또 우리는 교회적인 감사의 일들을 생각하며 감사를 드립시다. 특히 임 강도사에게 건강 주신 것을 다시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고 또 우리 교회에 여섯 명의 권사님과 두 명의 장로님이 선택되게 하신 것도 하나님께 감사를 드립시다. 또 우리는 사회적인, 또 세계적인 감사의 일들을 생각하며 하나님께 감사를 드립시다. 우리는 우리의 생활의 모든 부분에 나타나신 하나님의 긍휼과 은혜를 생각하며 하나님께 감사를 드립시다. 우리는 무엇보다 우리와 다른 이들의 구원을 인해 하나님께 감사를 드립시다. 이것은 우리가 어떤 힘든 상황, 어떤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하나님께 항상 감사할 수 있는 이유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은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고 말했습니다(살전 5:18). 끝으로, 이 추수의 계절에 우리는 영적 추수에 대해 생각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심고 뿌리고 거두는 일, 즉 전도하는 일을 힘써야 하겠다는 결심을 합시다. 우리는 전도의 일을 중요하게 여기고 우리의 생애에 이 일을 위해 힘쓰는 성도, 눈물로 기도하며 전도하는 성도가 됩시다.
주일오후설교: 하나님을 찬송하자 본문 에베소서 5:19은 시와 찬미와 신령한 노래들로 서로 화답하며 마음으로 주께 노래하며 찬송하라고 말한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찬송하라고 교훈하셨다. 찬송은 우리가 힘써야 할 중요한 일이다. 사람들은 여러 가지 가사에 곡을 붙여 노래한다. 노래는 자기 감정의 표현이며, 세상 노래는 대체로 자기 만족을 위한 것이다. 심지어, 부패한 이스라엘 백성도 사치하며 안이한 생활을 하고 배불리 먹으며 헛된 노래를 불렀다. 그러나 그들은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긍휼과 사랑의 마음, 즉 가난하고 헐벗고 굶주리는 형제와 이웃의 고난을 인해 근심하는 마음은 전혀 없었다. 그러므로 아모스 선지자는 말하기를, "너희는 흉한 날이 멀다 하여 강포한 자리로 가까워지게 하고 상아 상에 누우며 침상에서 기지개 켜며 양떼에서 어린양과 우리에서 송아지를 취하여 먹고 비파에 맞추어 헛된 노래를 지절거리며 다윗처럼 자기를 위하여 악기를 제조하며 대접으로 포도주를 마시며 귀한 기름을 몸에 바르면서 요셉의 환난을 인하여는 근심치 아니하는 자로다"라고 지적하며 책망하였다(암 6:3-6). 그러나 찬송과 성도의 영적 노래는 세상 노래와 다르다. 찬송은 하나님의 이름을 높이며 감사하는 노래이다. 또 성도의 영적 노래들은 고백과 기도, 감사와 간증, 격려와 교훈의 내용들이다. 그것들은 다 신앙적이고 영적인 것들이다. 찬송과 성도의 영적 노래들은 다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목적을 가지고 있다. 그것들은, 자기 감정에 도취하여 자기 만족을 위해 부르는 노래가 아니다. 그것들은 하나님 앞에서 부르는 것이며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고 그를 기쁘시게 하기 위해 부르는 것이다. 그러므로 성경은 성도가 부르는 찬송을, 하나님께 드리는 제사이며 입술의 열매라고 말한다. 히브리서 13:15는, "이러므로 우리가 예수로 말미암아 항상 찬미의 제사를 하나님께 드리자. 이는 그 이름을 증거하는 입술의 열매니라"고 말하였다. 하나님께 찬송을 부르는 것과 하나님 앞에서 노래를 부르는 것은 다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는 것과 같다. 구약시대에는 날마다 짐승의 제물을 죽여서 하나님께 제사를 드려야 했다. 그러나 신약시대에는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셨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항상 찬송을 하나님께 올림으로써 제사를 드리는 것이다. 신약시대에는 찬송이 곧 예배요 제사이다. 찬송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창조하신 목적이요 또 우리의 입을 만드신 목적이다. 이사야 43:21은, "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의 찬송을 부르게 하려 함이니라"고 말한다. 우리의 입은 음식이나 먹고 나쁜 말, 더러운 말, 남의 마음을 상하게 하는 말을 하라고 만드신 것이 아니고, 일차적으로 하나님을 찬송하라고 만드신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께 찬송을 올려야 한다. 우리의 찬송의 대상인 하나님은 천지만물을 지으시고 우리를 지으신 창조주 하나님이시며, 또 우리를 죄와 지옥 형벌로부터 건져주시고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값없이 주신 구주이시다. 시편 96:1-5은, "새 노래로 여호와께 노래하라. 온 땅이여, 여호와께 노래할지어다. 여호와께 노래하여 그 이름을 송축하며 그 구원을 날마다 선파할지어다. 그 영광을 열방 중에, 그 기이한 행적을 만민 중에 선포할지어다. [이는] 여호와는 광대하시니 극진히 찬양할 것이요 모든 신보다 경외할 것임이여. [이는] 만방의 모든 신은 헛것이요 여호와께서는 하늘을 지으셨음이로다"라고 말한다. 하나님은 창조주시요 구원자이시며,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을 찬송해야 한다. 시편 103:1-5은, "내 영혼아, 여호와를 송축하라. 내 속에 있는 것들아, 다 그 성호를 송축하라. 내 영혼아, 여호와를 송축하며 그 모든 은택을 잊지 말지어다. 저가 네 모든 죄악을 사하시며 네 모든 병을 고치시며 네 생명을 파멸에서 구속하시고 인자와 긍휼로 관을 씌우시며 좋은 것으로 네 소원을 만족케 하사 네 청춘으로 독수리같이 새롭게 하시는도다"라고 말한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죄를 사하셨고 우리의 병을 고치셨으며 우리의 생명을 구하셨다. 그는 우리에게 모든 좋은 것들을 주셨다. 우리는 하나님의 모든 은택을 잊지 말아야 하며 그것들을 인해 항상 하나님께 감사의 찬송을 올려야 한다. 찬송은 가사가 중요하다. 찬송가 가사는 우리가 무엇을, 또 왜 찬송하는지 분명히 표현된 것이어야 하고, 그 내용이 복음적이고 성경적이어야 한다. 찬송은 곡도 중요하다. 찬송가 곡은 경건하고 안정적이고 아름다워야 한다. 우리는 하나님께 가장 아름답고 거룩한 것으로 경배하며 찬송해야 한다. 시편 96:8-9은, "여호와의 이름에 합당한 영광을 그에게 돌릴지어다. 예물을 가지고 그 궁정에 들어갈지어다. 아름답고 거룩한 것으로 여호와께 경배할지어다"라고 말한다. 우리는 경박하고 속된 방식으로 하나님을 섬기거나 찬송하고 노래해서는 안 되며 오직 경건하고 아름다운 곡으로 해야 한다. 현대기독교음악(CCM)과 복음성가는 너무 세상 노래를 본받고 있다. 그것은 경건하거나 안정적이지 않고 육감적이고 혼란스럽다. 현대기독교음악(CCM)과 복음성가는 전혀 절제됨이 없다. 그것이 과연 하나님을 위한 것인가? 그것은 단순히 인간의 자기 도취와 자기 만족을 위한 것이 아닌가? 오늘날 많은 젊은이들과 교인들은, 세상 유행가와 비슷하고 록 음악과 비슷한 이런 노래들을 생각 없이 따라가고 있다. 그것은 조심해야 할 일이다. 우리는 경건한 찬송가들을 좋아해야 한다. 또 찬송은 마음으로 불러야 한다. 진심으로 부르지 않는 찬송은 찬송이 아니다. 하나님께서는 단지 우리의 아름다운 목소리를 원하시는 것이 아니고 우리의 믿음의 마음, 사랑의 마음을 원하신다. 우리가 진심으로 하나님을 믿고 감사하며 진심으로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는다면, 우리의 찬송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할 것이다. 찬송은 우리의 진심의 감사를 하나님께 올리는 것이다. 시편 100:4은, "감사함으로 그 문에 들어가며 찬송함으로 그 궁정에 들어가서 그에게 감사하며 그 이름을 송축할지어다"라고 말한다. 성도의 찬송은 감사한 마음으로 부르는 것이어야 한다. 사도 바울도 말하기를, "그리스도의 말씀이 너희 속에 풍성히 거하여 모든 지혜로 피차 가르치며 권면하고 시와 찬미와 신령한 노래를 부르며 마음에 감사함으로 하나님을 찬양하라"고 하였다(골 3:16).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를 깨닫고 예수 믿고 구원받은 모든 성도는 감사한 마음으로 하나님께 찬송을 올릴 수 있다. 또 찬송은 기쁘고 즐거운 마음으로 불러야 한다. 우리가 하나님을 기뻐하고 그가 우리 같은 죄인을 구원하셨음을 기뻐할 때 우리는 참된 찬송을 부르게 될 것이다. 말씀을 맺는다. 우리는 세상 노래를 분별하고 조심하고 차라리 멀리해야 한다. 그것은 실상 헛된 노래들, 허무한 노래들이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헛된 노래들에 빠지기를 원하지 않으신다(암 6:5). 그 대신, 우리는 찬송 부르기를 힘써야 한다. 찬송은 하나님께서 인간을 창조하신 목적이며(사 43:21) 사람의 입술을 지으신 목적이기도 하다. 우리는 우리의 입이 해야 할 첫 번째의 일이 하나님을 찬송하는 것임을 기억하자. 찬송은 하나님께 드리는 제사요 입술의 열매이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모든 은택을 인해, 특히 구원의 은혜를 인해 하나님께 감사하며 찬송해야 한다. 우리는 감사한 마음과 기쁘고 즐거운 마음으로 하나님을 찬송해야 한다. 우리는 특히 현대기독교음악(CCM)과 복음성가들을 조심해야 한다. 그것은 거의 세상풍조를 따른 세상적 노래이다. 그것의 곡은 유행가와 별로 다를 바가 없다. 그것은 경건하지 못하고 안정적이지 못하다. 우리는 그런 유의 노래들을 경계해야 한다. 그것은 성도들의 감정을 세속적이게 만든다. 우리는 좀더 경건하고 안정적인 노래들을 좋아해야 한다. 우리는 옛날부터 불러왔던 좋은 찬송가들을 즐겨 불러야 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