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신앙 2009년 03월22일 [제13권 12호] ◆ 매주 발행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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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너희는 길에 서서 보며 옛적 길 곧 선한 길이 어디인지 알아보고 그리로 행하라. 너희 심령이 평강을 얻으리라' 하나, 그들의 대답이 '우리는 그리로 행치 않겠노라' 하였으며"(렘 6:16). |
옛신앙
Old-time Faith www.oldfaith.net |
'옛신앙'이란, 옛부터 하나님의 선지자들과 주의 사도들이 가졌던 신앙, 오직 정확 무오(無誤)한 하나님 말씀인 신구약 성경에만 근거한 신앙, 오늘날 배교와 타협의 풍조에 물들지 않는 신앙을 의미합니다. |
121-884
서울 마포구 합정동 364-1 합정동교회 김효성 목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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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위기 강해: 속죄일
[16:1-5] 아론의 두 아들이 여호와 앞에 나아가다가 죽은 후에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시니라. . . . 제사장 아론의 두 아들 나답과 아비후가 여호와 앞에 나아가다가 죽은 후에(레 10장), 여호와께서는 모세에게 말씀하셨다. “네 형 아론에게 이르라. 성소의 휘장 안 법궤 위 속죄소 앞에 무시로 들어오지 말아서 죽음을 면하라. 내가 구름 가운데서 속죄소 위에 나타남이니라.” 지성소와 속죄소는 지극히 거룩한 곳이며 하나님의 임재가 나타나는 곳이었다. 천지만물을 창조하시고 온 세상을 홀로 다스리시는 살아계신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의 성막 지성소의 속죄소 위에 구름 가운데서 시시때때로 나타나셨다. 이것은 하나님의 놀라운 특별계시의 사건이며 이스라엘 백성에게 주신 특권이었다. 하나님께서는 또 아론이 성소에 들어오려면 자신을 위해 수송아지로 속죄제물을 삼고 숫양으로 번제물을 삼고, 물로 몸을 씻고 거룩한 옷들, 즉 세마포 속옷과 세마포 고의[바지]를 입고 세마포 띠를 띠며 세마포 관을 쓰고, 또 이스라엘 자손의 회중에게서 속죄제물을 위해 숫염소 둘과 번제물을 위해 숫양 하나를 취하라고 말씀하셨다. [6-10절] 아론은 자기를 위한 속죄제의 . . . . 하나님께서는 또 아론이 자신을 위한 속죄제물의 수송아지를 드려 자신과 가족을 위해 속죄하고 또 백성을 위해 두 염소를 취해 회막문 여호와 앞에 두고 제비뽑되 하나는 여호와를 위하고 하나는 ‘아사셀을 위하여’ 하라고 말씀하셨다. ‘아사셀’이라는 원어(아자젤)는 ‘내어놓는 염소’(scapegoat)(KJV, NASB)라는 뜻이다. 하나님께서는 또 아론이 여호와를 위해 제비 뽑은 염소를 속죄제물로 드리고 또 아사셀 즉 ‘내어놓는 염소’로 제비 뽑은 염소는 산 대로 여호와 앞에 두었다가 그것으로 속죄하고 ‘내어놓는 염소’로 광야로 보내라고 하셨다. 이것은 나병 환자의 정결법 때에 산 새 한 마리를 들에 놓았던 것처럼 죄의 완전한 제거를 상징하였다고 본다. [11-16절] 아론은 자기를 위한 속죄제의 . . . . 아론은 먼저 자신과 가족들을 위한 속죄제의 수송아지를 드려야 했다. 그런 후 그는 향로를 취해 여호와 앞 번제단 위에서 피운 불을 그것에 채워 지성소에 들어가 법궤 앞에 두고, 두 손에 곱게 간 향기로운 향을 채워 가지고 아마 다시, 즉 두 번째로 휘장 안에 들어가서 여호와 앞에서 향을 살라 그 향의 연기로 증거궤 위 속죄소를 가리게 해야 했고 그래야 그가 죽음을 면할 수 있었다. 또 그는 수송아지의 피를 취하여 다시, 즉 아마 세 번째로 휘장 안 지성소에 들어가 손가락으로 ‘속죄소 동편에’ 즉 ‘속죄소 위의 앞쪽에’ 뿌리고 또 손가락으로 그 피를 ‘속죄소 앞에’ 일곱 번 뿌려야 했다. ‘피를 일곱 번 뿌리는 것’(14절, 19절)은 완전한 속죄를 상징한다. 또 그는 백성을 위한 속죄제물인 염소를 잡아 그 피를 가지고 다시, 즉 아마 네 번째로 휘장 안에 들어가서 그 수송아지 피로 행함같이 속죄소 위와 속죄소 앞에 뿌려야 했다. 이렇게 그는 이 날 지성소에 세 번 혹은 네 번 들어가 속죄제사를 드림으로써 자신과 이스라엘 자손을 위해 속죄하고, 또 그들의 부정(不淨)과 그 범한 모든 죄를 인해 지성소를 위해 속죄하고 또 그들의 부정(不淨)한 중에 있는 회막을 위해 그같이 해야 했다. [17-19절] 그가 지성소에 속죄하러 들어가서 . . . . 아론이 지성소에 속죄하러 들어가서 자신과 그 가족들과 이스라엘 온 회중을 위해 속죄하고 나오기까지 누구든지 회막에 있어서는 안 되었다. 아론은 속죄제사를 마친 후 여호와 앞 번제단으로 나와서 그것을 위해 속죄하되 그 수송아지의 피와 염소의 피를 취하여 번제단 귀퉁이 뿔들에 바르고 또 손가락으로 그 피를 그 위에 일곱 번 뿌려 이스라엘 자손의 부정(不淨)에서 단을 성결케 해야 했다. [20-22절] 그 지성소와 회막과 단을 위하여 . . . . 아론은 지성소와 회막과 번제단을 속죄[정결케]하기를 마친 후에 두 손으로 산 염소의 머리에 안수하여 이스라엘 자손의 모든 불의와 모든 죄를 고하고 그 죄를 염소의 머리에 두어 미리 정한 사람에게 맡겨 광야로 보낼 것이며 그 사람은 염소가 그들의 모든 불의를 지고 무인지경(無人之境) 즉 한적한 곳에 이르면 그 염소를 광야에 놓아주어야 했다. 이것은 죄의 완전한 제거를 상징하였다고 본다. [23-28절] 아론은 회막에 들어가서 . . . . 아론은 회막에 들어가서 지성소에 들어갈 때에 입었던 세마포 옷을 벗어 거기 두고 거룩한 곳에서 물로 몸을 씻고 자기 옷을 입고 나와서 자신의 번제와 백성의 번제를 드려 자신과 백성을 위해 속죄하고 속죄제물의 기름을 제단에 불살라야 했고, 또 ‘염소를 아사셀에게 보낸 자’ 즉 ‘내어놓는 염소를 보낸 자’도 옷을 빨고 물로 몸을 씻은 후에 진에 들어와야 했다. 또 속죄제 수송아지와 속죄제 염소는 그 피를 성소로 들여와 속죄하였으므로 그 가죽과 고기와 똥을 진밖으로 내어다가 불살라야 했고, 불사른 자는 옷을 빨고 물로 몸을 씻은 후에 진에 들어와야 했다. [29-31절] 너희는 영원히 이 규례를 . . . . 하나님께서는 또 이스라엘 백성에게 명하셨다. “너희는 영원히 이 규례를 지킬지니라. 7월 곧 그 달 10일에 너희는 스스로 괴롭게 하고 아무 일도 하지 말되 본토인이든지 너희 중에 우거하는 객이든지 그리하라. 이 날에 너희를 위하여 속죄하여 너희로 정결케 하리니 너희 모든 죄에서 너희가 여호와 앞에 정결하리라. 이는 너희에게 큰 안식일인즉 너희는 스스로 괴롭게 할지니 영원히 지킬 규례라.” 이것이 매년 이스라엘 달력으로 7월 10일(현대 달력으로 9월 말)에 지켜야 할 ‘속죄일’ 규례이다(레 23: 26-32). 하나님께서는 “너희는 [속죄일에] 스스로 괴롭게 하라”고 명하셨다. ‘괴롭게 하라’는 원어(테안누)는 ‘자신을 겸손히 낮추라’을 뜻으로서(NASB) 금식하며 자신의 죄를 회개하는 것을 의미하였다고 본다(BDB, Amplified Bible). 또 그 날은 ‘큰 안식일’이라고 불렸다. ‘큰 안식일’이라는 원어(솹밧 솹바손)는 ‘휴식의 안식일’(a sabbath of rest), ‘엄숙한 휴식의 안식일’(a sabbath of solemn rest)이라는 뜻이다. [32-34절] 그 기름 부음을 받고 위임되어 . . . . 기름 부음을 받고 위임되어 아버지를 대신하여 대제사장의 직분을 행하는 제사장은 세마포 성의(聖衣)를 입고 지성소를 위해 속죄하며 회막과 번제단을 위해 속죄하고, 또 제사장들과 백성의 회중을 위해 속죄해야 했다. 이것은 이스라엘 백성이 영원히, 즉 오랫동안 지켜야 할 규례이었다. 이스라엘 백성은 자신들의 모든 죄를 위해 1년 1차씩 속죄해야 했다. 아론은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하신 대로 행하였다. 1년 1차씩 온 백성의 모든 죄를 위해 속죄했던 이 속죄일 규례는 예수 그리스도의 ‘단번 속죄’의 진리를 예표한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십자가 위에서 자신을 드려 단번에 많은 사람들, 즉 하나님의 택하신 백성의 속죄를 이루셨다. 히브리서는 이것을 ‘단번에’라는 말로 증거하였다(에파팍스 3번, 하팍스 2번)(히 7:27; 9:12, 26, 27; 10:10). 히브리서 7:27, “저가 저 대제사장들이 먼저 자기 죄를 위하고 다음에 백성의 죄를 위하여 날마다 제사 드리는 것과 같이 할 필요가 없으니 이는 저가 단번에 자기를 드려 이루셨음이니라.” 9:12, “염소와 송아지의 피로 아니하고 오직 자기 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사 단번에 성소에 들어 가셨느니라.” 10:10, “이 뜻을 좇아 예수 그리스도의 몸을 단번에 드리심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거룩함을 얻었노라.” 메시야의 단번 속죄의 진리는 이미 구약에서도 예언된 바이었다. 다니엘 9:24, “네 백성과 네 거룩한 성을 위하여 70이레로 기한을 정하였나니 허물이 마치며 죄가 끝나며 죄악이 영속(永贖)되며 영원한 의(義)가 드러나며 이상(異像)과 예언이 응하며 또 지극히 거룩한 자가 기름부음을 받으리라.” 스가랴 3:9,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가 너 여호수아 앞에 세운 돌을 보라. 한 돌에 일곱 눈이 있느니라. 내가 새길 것을 새기며 이 땅의 죄악을 하루에 제하리라.” 본장의 교훈은 무엇인가? 본장은 예수 그리스도의 완전한 속죄 사역을 예표한다. 대제사장은 1년 1차 온 백성의 모든 죄를 위해 속죄제사를 드려야 했다. 하나님께서는 ‘내어놓는 염소’를 통해 모든 죄가 완전히 제거되었음을 증거하셨다. 구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과연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우리를 위해 완전한 속죄를 이루셨다. 그는 우리의 의로움과 거룩함이 되셨다(고전 1:30). 예수 그리스도의 완전한 속죄로 인해 우리는 많은 은택을 누린다. 첫째로, 우리는 믿음으로 죄사함과 의롭다 하심을 얻었다. 율법을 행함으로 얻을 수 없었던 죄사함과 의롭다 하심의 은혜를 우리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얻었다. 로마서 3:21-24, “이제는 율법 외에 하나님의 한 의가 나타났으니 율법과 선지자들에게 증거를 받은 것이라. 곧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모든 믿는 자에게 미치는 하나님의 의니 차별이 없느니라.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구속(救贖)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 둘째로, 우리는 하나님과 화목을 누린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에게 마음의 참 평안을 주셨다(마 11:28). 로마서 5:1은 “그러므로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었은즉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으로 더불어 화평을 누리자”라고 말한다. 우리는 예수의 피를 힘입어 성소에 들어갈 담력을 얻었고(히 10:19)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해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가(히 4:16) 하나님과 교제한다. 셋째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의와 성령의 도우심으로 성화(聖化)를 이룬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주신 완전한 의와 성령의 내주(內住)하심은 그리스도인의 성화(聖化)의 원동력이다. 로마서 6:17-18, 22,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너희가 본래 죄의 종이더니 너희에게 전하여 준 바 교훈의 본을 마음으로 순종하여 죄에게서 해방되어 의에게 종이 되었느니라,” “이제는 너희가 죄에게서 해방되고 하나님께 종이 되어 거룩함에 이르는 열매를 얻었으니 이 마지막은 영생이라.” 갈라디아서 5:16, “내가 이르노니 너희는 성령을 좇아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 우리는 예수의 의와 성령 안에서 거룩함을 힘써 이루자.
이사야 강해: 이스라엘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 [9:8-12] 주께서 야곱에게 말씀을 보내시며 . . . . 본문은 이스라엘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를 증거한다. 선지자 이사야는 먼저 이스라엘 백성의 교만함을 지적한다. 그는 주께서 야곱에게 말씀을 보내셨고 그것을 이스라엘에게 임하게 하셨으므로 모든 백성 곧 에브라임과 사마리아 거민이 그것을 알 수 있었지만, 그들이 교만하고 완악한 마음으로 말하기를 “벽돌이 무너졌으나 우리는 다듬은 돌로 쌓고 뽕나무들이 찍혔으나 우리는 백향목으로 그것을 대신하리라”고 하였다고 말한다. ‘완악한’이라는 원어(고델)는 ‘거만한’이라는 뜻이다. 이스라엘 백성은 참으로 교만하였다. 선지자는 이제 그들에게 하나님의 진노가 있을 것을 선언한다.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르신의 대적을 일으켜 그를 치게 하시며 그 원수들을 격동시키시리니 앞에는 아람 사람이요 뒤에는 블레셋 사람이라. 그들이 그 입을 벌려 이스라엘을 삼키리라. 그럴지라도 여호와의 노가 쉬지 아니하며 그 손이 여전히 펴지리라.”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의 원수들인 아람 사람들과 블레셋 사람들을 격동시켜 이스라엘을 삼키게 하실 것이다. 그러나 이 모든 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노가 쉬지 않으실 것이다. [13-17절] 이 백성이 오히려 자기들을 . . . . 선지자는 또 “이 백성이 오히려 자기들을 치시는 자에게로 돌아오지 아니하며 만군의 여호와를 찾지 아니하도다”라고 말한다. 이것은 그들의 무지와 완악함이다. 사람이 실수하고 범죄할 수는 있어도 그 실수와 죄를 깨닫고 인정하고 회개하고 떠나는 것이 중요하다. 자녀가 부모의 교훈을 어기고 잘못을 범할 수 있으나 부모가 그것을 지적할 때 즉시 그 잘못을 인정하고 그것을 뉘우치고 그것을 버리고 새 출발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 우리와 하나님과의 관계도 똑같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은 그들을 치시는 하나님께로 돌아오지 않았고 만군의 여호와이신 하나님을 찾지 않았다. 그러므로 선지자는 하나님의 진노와 심판을 선언한다. “이러므로 여호와께서 하루 사이에 이스라엘 중에서 머리와 꼬리며 종려가지와 갈대를 끊으시리니 머리는 곧 장로와 존귀한 자요 꼬리는 곧 거짓말을 가르치는 선지자라.”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의 장로들과 존귀한 자들을 친히 끊으실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그는 하루 사이에 그들을 죽이실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선지자 이사야는 “백성을 인도하는 자가 그들로 미혹케 하니 인도를 받는 자가 멸망을 당하는도다”라고 말한다. 백성을 인도하는 자들의 역할은 참으로 중요하다. 그들이 백성을 잘못 인도하면 그 백성은 잘못된 길로 가고 마침내 멸망을 당하게 될 것이다. 또 선지자는 “이 백성이 각기 설만(褻慢)하며 악을 행하며 입으로 망령되이 말한다”고 지적한다. ‘설만(褻慢)하다’는 원어(카네프)는 ‘불경건하다’는 뜻이다(NASB, NIV, BDB). ‘망령되이’라는 원어(네발라)는 ‘어리석은 것’이라는 뜻이다. 이스라엘 백성은 다 불경건하며 악을 행하였고 입으로 어리석은 것을 말하였다. 선지자는 또 말하기를, “그러므로 주께서 그 장정을 기뻐 아니하시며 그 고아와 과부를 긍휼히 여기지 아니하시리라”고 한다. 하나님은 자비와 긍휼이 풍성하신 하나님이시지만, 사람들이 그를 두려워하지 않고 고의적으로 악을 행할 때 그는 그들을 기뻐하지 않으시고 그들을 긍휼히 여기지도 않으실 것이다. 비록 고아와 과부라 할지라도 악을 행하는 자는 하나님의 긍휼을 입을 수 없을 것이다. 선지자는 또 “그럴지라도 여호와의 노가 쉬지 아니하며 그 손이 여전히 펴지리라”고 선언한다. 하나님의 진노는 참으로 두려운 것이다. [18-21절] 대저 악행은 불태우는 것 같으니 . . . . 선지자 이사야는 하나님의 진노를 불에 비유한다. 그는 “대저 악행은 불태우는 것 같으니 곧 질려와 형극을 삼키며 빽빽한 수풀을 살라서 연기로 위로 올라가게 함과 같은 것이라. 만군의 여호와의 진노로 인하여 이 땅이 소화되리니 백성은 불에 타는 섶나무와 같을 것이라”고 말한다. 소돔 고모라는 하늘의 불로 멸망을 당했다. 성경은 하나님의 진노를 불에 자주 비유한다. 나훔 1:6, “누가 능히 그 분노하신 앞에 서며 누가 능히 그 진노를 감당하랴. 그 진노를 불처럼 쏟으시니 그를 인하여 바위들이 깨어지는도다.” 마침내 하나님의 최종적 진노의 형벌은 지옥 불못이다. 지옥은 ‘꺼지지 않는 불’이며(막 9:43) 거기는 구더기도 죽지 않고 불도 꺼지지 않을 것이다(막 9:44, 46, 48). 선지자는 하나님의 징벌을 선언하기를, “사람이 그 형제를 아끼지 아니하며 우편으로 움킬지라도 주리고 좌편으로 먹을지라도 배부르지 못하여 각각 자기 팔의 고기를 먹을 것이며 므낫세는 에브라임을, 에브라임은 므낫세를 먹을 것이요 또 그들이 합하여 유다를 치리라”고 한다. 이스라엘은 굶주림 속에서 서로의 것을 빼앗으며 또 그들은 연합하여 유다를 칠 것이다. 선지자는 또 “그럴지라도 여호와의 노가 쉬지 아니하며 그 손이 여전히 펴지리라”고 부언한다. 본문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우리는 하나님의 진노를 두려워하자. 하나님께서는 아람 사람들과 블레셋 사람들을 일으켜 교만한 이스라엘을 치실 것이다. 또 그는 하루 사이에 이스라엘의 지도자들과 거짓 선지자들을 멸망시키실 것이다. 그는 청년들을 기뻐하지 않으시고 고아와 과부를 긍휼히 여기지 않으실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불로 섶나무를 태우듯이 그들을 태우실 것이다. 그는 그들이 서로의 것을 빼앗게 하실 것이다. 하나님의 진노의 심판은 이렇게 무서울 것이다. 그러나 본문에 더 두려운 말씀은 12, 17, 21절에 반복해 나오는 말씀이다. 12절, “그럴지라도 여호와의 노가 쉬지 아니하며 그 손이 여전히 펴지리라.” 17절, “그럴지라도 여호와의 노가 쉬지 아니하며 그 손이 여전히 펴지리라.” 21절, “그럴지라도 여호와의 노가 쉬지 아니하며 그 손이 여전히 펴지리라.” 하나님은 긍휼의 하나님이시지만, 한번 그가 노하시면 그는 악인을 철저하게 징벌하실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진노를 두려워하자. 우리는 하나님의 진노를 피해야 한다. 둘째로, 우리는 교만을 버리고 하나님께로 돌아오자. 그것이 하나님의 진노를 피하는 길이다. 이스라엘의 문제는 교만이었다. 9절, “그들이 교만하고 완악한 마음으로 말하기를.” 교만은 그 자체가 큰 죄악이며 멸망의 길이다. 교만은 모든 인생의 문제이다. 사람은 교만한 마음 때문에 자기 중심적으로 살고 하나님의 뜻에 복종치 않는다. 교만한 이스라엘은 자기를 치시는 하나님께로 돌아오지 않았고 하나님을 찾지도 않았다(13절). 그러나 그것은 큰 잘못이었다. 우리는 죄를 지적받을 때 그것을 욕으로 여기지 말고 깨닫고 회개하고 하나님께로 돌아와야 한다. 이사야 31:6, “이스라엘 자손들아 너희는 심히 거역하던 자에게로 돌아오라.” 예레미야 3:14, 22,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배역한 자식들아 돌아오라. 나는 너희 남편임이니라,” “배역한 자식들아 돌아 오라. 내가 너희의 배역함을 고치리라.” 요한계시록 3:19, “무릇 내가 사랑하는 자를 책망하여 징계하노니 그러므로 네가 열심을 내라. 회개하라.” 우리는 교만한 마음을 버리고 하나님께로 돌아오자. 셋째로, 우리는 인도자를 잘 만나야 한다. 16-17절, “백성을 인도하는 자가 그들로 미혹케 하니 인도를 받는 자가 멸망을 당하는도다. 이 백성이 각기 설만하며[불경건하며] 악을 행하며 입으로 망령되이[어리석은 것을] 말하니.” 우리가 만일 잘못된 인도자를 만나면 우리는 잘못된 길로 가기 쉬울 것이다. 구약 시대에 거짓 선지자들은 헛된 평안을 선포하였다. 예레미야 6:14, “그들[선지자들]이 내 백성의 상처를 심상히[대수롭지 않게] 고쳐주며 말하기를 평강하다 평강하다 하나 평강이 없도다.” 예수께서도 거짓 선지자들, 즉 거짓 목사들의 출현을 예언하시며 그들을 경계하라고 교훈하셨다. 마태복음 24:11, 24, “거짓 선지자가 많이 일어나 많은 사람을 미혹하게 하겠으며,” “거짓 그리스도들과 거짓 선지자들이 일어나 큰 표적과 기사를 보이어 할 수만 있으면 택하신 자들도 미혹하게 하리라.” 우리는 그들의 전하는 말과 선한 행실을 보고 그들이 참된 목사인지 여부를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또 믿음 안에서 앞선 자들이나 교회의 직분을 받은 자들은 말과 행실에 있어서 다른 이들에게 본이 되어야 하고 다른 이들의 신앙 생활과 교회 생활에 유익을 주고 덕을 세우는 자들이 되어야 할 것이다. ◈ 배교와 타협과 혼란의 시대에 바른 길을 붙들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