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신앙  2009년 09월 6일 [제13권 36호]   ◆ 매주 발행 ◆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너희는 길에 서서 보며 옛적 길 곧 선한 길이 어디인지 알아보고 그리로 행하라. 너희 심령이 평강을 얻으리라' 하나, 그들의 대답이 '우리는 그리로 행치 않겠노라' 하였으며"(렘 6:16).

 

 

옛신앙

 

Old-time Fait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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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옛신앙'이란, 옛부터 하나님의 선지자들과 주의 사도들이 가졌던 신앙, 오직 정확 무오(無誤)한 하나님 말씀인 신구약 성경에만 근거한 신앙, 오늘날 배교와 타협의 풍조에 물들지 않는 신앙을 의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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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일오전설교:                          거짓 선지자를 삼가라

[성경본문] 마태복음 7:15-26

주께서는 오늘 읽은 본문에서 "거짓 선지자들을 삼가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참 선지자 즉 참 목사는 하나님께 속한 자이며, 하나님께서 보내신 자이며,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며, 하나님의 일을 행하고 그의 뜻을 이루는 자입니다. 그러나 거짓 선지자 즉 거짓 목사는 마귀에게 속한 자이며, 하나님께서 보내신 자가 아니며,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지 않으며, 하나님의 일을 행하지 않는 자입니다.

거짓 선지자 즉 거짓 목사는 마귀에게 속한 자입니다. 사도 요한은 "사랑하는 자들아, 영을 다 믿지 말고 오직 영들이 하나님께 속하였나 시험하라. 많은 거짓 선지자가 세상에 나왔음이니라"고 말하였습니다(요일 4:1). 또 거짓 선지자 즉 거짓 목사는 하나님께서 보내신 자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선지자 예레미야를 통해 거짓 선지자들에 대해 "내가 보내지 아니하였어도 달음질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렘 23:21). 또 거짓 선지자 즉 거짓 목사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예레미야를 통해 "그들이 만일 나의 회의에 참여하였더면 내 백성에게 내 말을 들려서 그들로 악한 길과 악한 행위에서 돌이키게 하였으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렘 23:22). 그들은 바른 교훈과 진리를 버리고 허탄한 이야기들이나 하는 자들이 거짓 선지자 즉 거짓 목사입니다(딤후 4:3-4).

주께서는 거짓 선지자들이 "양의 옷을 입고 너희에게 나아오나 속에는 노략질하는 이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겉과 속이 다르다는 것입니다. 겉으로 드러나는 말이나 표정은 그럴 듯한데, 그 속의 사상, 마음, 의향, 의도, 동기, 인격은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다. 참 선지자와 거짓 선지자, 참 목사와 거짓 목사의 차이는 결국 그가 참으로 양들을 위하는가, 아니면 자기 자신의 이익만 위하는가의 차이입니다. 거짓 선지자, 즉 거짓 목사는 실상 양들을 해치는 이리입니다.

그러면 참 선지자와 거짓 선지자, 참 목사와 거짓목사는 어떻게 분별합니까? 본문 16-20절을 다시 읽어보겠습니다. "그의 열매로 그들을 알지니 가시나무에서 포도를, 또는 엉겅퀴에서 무화과를 따겠느냐? 이와 같이 좋은 나무마다 아름다운 열매를 맺고 못된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나니 좋은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을 수 없고 못된 나무가 아름다운 열매를 맺을 수 없느니라. 아름다운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혀 불에 던지우느니라. 이러므로 그의 열매로 그들을 알리라." 주께서는 참 선지자와 거짓 선지자, 참 목사와 거짓 목사를 그의 열매로 알 수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열매'는 행위를 가리킵니다. 그것은 정직하고 선하고 진실한 행위를 가리킵니다.

물론, 정통적 신앙사상은 기본적이며 필수적입니다. 그래서 사도 요한은 "하나님의 영은 이것으로 알지니 곧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체로 오신 것을 시인하는 영마다 하나님께 속한 것이요 예수를 시인하지 아니하는 영마다 하나님께 속한 것이 아니니 이것이 곧 적그리스도의 영이니라"고 말했습니다(요일 4:2-3).

사도 베드로는 장차 거짓 교사들, 즉 거짓 목사들이 출현할 것에 대해 예언하며 이단과 부도덕이 그들의 특징이라고 증거하였습니다. 베드로후서 2:1-3에서 그는, 그들이 멸망케 할 이단을 가만히 끌어들여 자기들을 사신 주를 부인하는 자들이며, 호색하는 자들 즉 음란한 자들이며, 탐심을 품고 이익을 구하는 자들이라고 말했습니다.

교회의 감독들 즉 장로들은 도덕성을 가진 자이어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말하기를, "감독은 책망할 것이 없으며 한 아내의 남편이 되며 절제하며 근신하며 아담하며 나그네를 대접하며 가르치기를 잘하며 술을 즐기지 아니하며 구타하지 아니하며 오직 관용하며 다투지 아니하며 돈을 사랑치 아니하며 자기 집을 잘 다스려 자녀들로 모든 단정함으로 복종케 하는 자라야 할지며 (사람이 자기 집을 다스릴 줄 알지 못하면 어찌 하나님의 교회를 돌아보리요) 새로 입교한 자도 말지니 교만하여져서 마귀를 정죄하는 그 정죄에 빠질까 함이요 또한 외인에게서도 선한 증거를 얻은 자라야 할지니 비방과 마귀의 올무에 빠질까 염려하라"고 하였습니다(딤전 3:2-7).

또 그는 집사들이나, 그 아내들 즉 장로와 집사의 아내들에 대해서도, "이와 같이 집사들도 단정하고 일구이언을 하지 아니하고 술에 인박이지 아니하고 더러운 이를 탐하지 아니하고"라고 말했고 또 "여자들[장로와 집사의 아내들]도 이와 같이 단정하고 참소하지 말며 절제하며 모든 일에 충성된 자라야 할지니라"고 말하였습니다(딤전 3:8-13).

윤리적 건전성은 중생한 모든 성도에게 요구되는 표입니다. 사도 요한은 그의 서신에서 적그리스도 즉 이단에 대해 분명하게 정죄한 동시에 성도의 윤리적 표에 대해 분명하게 강조하였습니다. 그는 말하기를, "하나님께로서 난 자마다 죄를 짓지 아니하나니 이는 하나님의 씨가 그의 속에 거함이요 저도 범죄치 못하는 것은 하나님께로서 났음이라. 이러므로 하나님의 자녀들과 마귀의 자녀들이 나타나나니 무릇 의를 행치 아니하는 자나 또는 그 형제를 사랑치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께 속하지 아니하니라"고 하였습니다(요일 3:9-10).

신자에게 행위는 참으로 중요합니다. 주께서는 오늘 본문에서 행위를 매우 강조하십니다. 그는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것은 구원얻는 신앙이 행위로 증거되는 신앙인 것을 증거하신 것입니다. 행위가 수반되지 않는 신앙고백, 행위로 증거되지 않는 신앙고백은 죽은 신앙고백입니다. 그것은 천국에 들어가지 못할 신앙고백입니다.

이것은 야고보의 말과도 같습니다. 야고보는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라," "영혼 없는 몸이 죽은 것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니라"고 말했습니다(약 2:17, 26).

신자가 행해야 할 하나님의 뜻은 무엇입니까? 사도 요한은 그것을,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그의 계명대로 서로 사랑하는 것이라고 요약합니다(요일 3:23).

주께서는 본문에서 거짓 선지자들, 즉 거짓 목사들 중에 은사주의자들이 많으므로 거짓된 은사주의에 대해 경계해야 할 것을 암시하셨습니다. 그는,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치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그때에 내가 저희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거짓된 목사들 중에 은사주의자들이 많습니다. 은사주의는 사람이 미혹되기에 쉬운 사상입니다. 사탄은 말세에 거짓된 은사주의를 많이 사용하여 교회를 혼란시키고 신자들을 미혹시킵니다.

주께서는 말세의 징조를 말씀하시면서 "거짓 그리스도들과 거짓 선지자들이 일어나 큰 표적과 기사를 보이어 할 수만 있으면 택하신 자들도 미혹하게 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마 24:24). 사도 바울도 데살로니가후서에서, "악한 자의 임함은 사단의 역사를 따라 모든 능력과 표적과 거짓 기적과 불의의 모든 속임으로 멸망하는 자들에게 임하리라"고 말하였습니다(살후 2:9-12).

은사주의적인 거짓 목사들은 마지막 날 주 앞에 말하기를,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치 아니하였나이까?"라고 할 것입니다. 그들은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하였다고 말합니다. 요한계시록 13장에는, 말세에 은사주의자들이 큰 이적을 행하되 심지어 사람들 앞에서 불이 하늘로부터 땅에 내려오게 하고 우상에게 생기를 주어 우상으로 말하게도 할 것이라고 예언되어 있습니다(계 13:13, 15).

그러나 거짓된 은사주의자들은 그들의 행위 때문에 정죄될 것입니다. 마지막 날 주께서는 그들에게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알지 못했으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고 말씀하실 것입니다. 주님의 정죄의 기준은 그들의 행위입니다. 오늘날 참 목사와 거짓 목사를 분별하는 기준은 그의 사상과 더불어 그의 행위입니다. 그에게 의와 정직과 거룩의 행위가 있는가, 선함과 자비와 사랑, 진실의 행위가 있는가?--그것이 분별하는 잣대가 됩니다. 여기에 다시 한번 더 행위의 중요성이 나타납니다.

마지막으로, 주께서는 행위의 중요성을 하나 더 말씀하셨습니다. 그것은 순종의 행위가 환난을 이기는 길이라는 것입니다. 24-27절을 다시 봅시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는 자는 그 집을 반석 위에 지은 지혜로운 사람 같으리니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히되 무너지지 아니하나니 이는 주초를 반석 위에 놓은 연고요, 나의 이 말을 듣고 행치 아니하는 자는 그 집을 모래 위에 지은 어리석은 사람 같으리니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히매 무너져 그 무너짐이 심하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 하나님의 말씀, 곧 성경말씀을 듣고 행하는 자는 자신의 집을 견고하게 짓는 지혜로운 건축자와 같습니다. 그는 비가 내리고 홍수가 나고 바람이 몹시 심하게 불 때, 즉 환난의 날에도 무너지지 않고 믿음으로 살아갈 것입니다. 그러나 순종의 행위가 없는 자는 환난의 날에 그의 신앙생활이 무너지고 말 것입니다.

말씀을 맺겠습니다. 우리는 거짓 선지자들, 즉 거짓 목사들을 조심합시다. 주께서는 그의 재림 직전에 많은 거짓 선지자들이 나타날 것을 예언하셨습니다. 성경은 사도 시대부터 이미 많은 이단들이 교회 안에 들어왔음을 증거합니다(요일 2:18-19; 4:1, 3; 벧후, 유, 요이). 우리는 그들의 사상뿐 아니라, 특히 그들의 행위를 통해 그들을 분별해야 합니다.

주께서는 이런 교훈에 더하여, 선한 행위의 중요성을 강조하셨습니다. 첫째로, 선행은 구원의 증거가 됩니다.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행위는 구원의 증거입니다. 우리는 믿음으로 구원을 받으나, 행위로 그 구원을 확증합니다. 사도 바울도 우리가 육신대로 살면, 즉 죄성을 따라 죄만 지으며 살면 반드시 죽을 것이다, 즉 구원받지 못한다고 경고했습니다(롬 8:13). 둘째로, 선행은 환난을 이기는 길입니다. 주의 말씀 곧 성경말씀에 순종하며 의와 선을 행하는 자는 자기의 집을 견고하게 짓는 지혜로운 건축자와 같습니다. 그는 환난 날에도 낙심치 않고 굳게 설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의 행위를 항상 점검하며 힘써 의와 선을 행하기를 결심합시다.

 

이사야 강해:                             예루살렘에 대한 경고

[22:1-4] 이상(異像) 골짜기에 관한 경고라. . . .

본장은 "이상(異像, vision) 골짜기에 관한 경고라"는 말로 시작된다. '이상 골짜기'는 예루살렘을 가리킨다. 예루살렘은 선지자들을 통해 이상 중에 주신 하나님의 말씀을 많이 받았던 성이었다. 그러나 이제 그 성이 범죄하고 패역하여 마침내 멸망할 것이다.

선지자는 "네가 지붕에 올라감은 어찜인고"라고 말한다. 예루살렘 거민들이 적군들의 침입을 확인하기 위해 지붕에 올라갈 것이라는 뜻이다. 선지자는 또 "훤화하며 떠들던 성, 즐거워하던 고을이여, 너의 죽임을 당한 자가 칼에 죽은 것도 아니요 전쟁에 사망한 것도 아니며 너의 관원들은 다 함께 도망하였다가 활을 버리고 결박을 당하였고 너의 멀리 도망한 자도 발견되어 다 함께 결박을 당하였도다"라고 말한다. 떠들며 즐거워하던 쾌락의 성에 멸망의 재앙이 임할 것이다. 성의 거민들과 관원들은 전쟁을 피해 도망쳤다가 '활을 버리고' 혹은 '활 없이' 결박을 당할 것이며 죽임을 당할 것이다.

선지자는, "이러므로 내가 말하노니 돌이켜 나를 보지 말지어다. 나는 슬피 통곡하겠노라. 내 딸 백성이 패멸하였음을 인하여 나를 위로하려고 힘쓰지 말지니라"고 말한다. 그는 유다와 예루살렘의 멸망을 인해 슬피 통곡할 것이며 위로받기를 원치 않는다.

[5-7절] 이상의 골짜기에 . . . .

선지자는, "이상의 골짜기에 주 만군의 여호와께로서 이르는 분요와 밟힘과 혼란의 날이여, 성벽의 무너뜨림과 산악에 사무치는 부르짖는 소리로다. 엘람 사람은 전통을 졌고 병거 탄 자와 마병이 함께하였고 기르 사람은 방패를 들어내었으니 병거는 너의 아름다운 골짜기에 가득하였고 마병은 성문에 정렬되었도다"라고 말한다.

예루살렘 성에 분요와 밟힘과 혼란의 날이 올 것이다. 그것은 "주 만군의 여호와께로서 이르는" 날이다. 예루살렘의 멸망은 하나님께서 내리시는 심판이며 징벌인 것이다. 성벽은 무너지고 사람들의 부르짖는 소리는 산악을 진동시킬 것이다. 선지자는 엘람 사람들과 기르 사람들에 대해 말한다. 엘람과 기르는 앗수르 사람들이나 바벨론 사람들을 가리킬 것이다. 엘람은 티그리스강 하류 동쪽 지역이다. 그들 침략군의 병사들은 예루살렘의 골짜기에 가득할 것이다.

[8-11절] 그가 유다에게 덮였던 것을 벗기매 . . . .

선지자는 "그가 유다에게 덮였던 것을 벗기매 이 날에야 네가 수풀 곳간의 병기를 바라보았다"고 말한다. '그'는 하나님을 가리키는 것 같다. '덮였던 것'이란, 방어 요새들을 가리키는 것 같다(NASB). 후에 앗수르 왕 산헤립은 올라와 유다의 모든 견고한 성을 쳐서 취하였다(사 36:1). '수풀 곳간의 병기'는 '삼림의 궁궐의 병기'라는 뜻으로 솔로몬이 지은 '레바논 삼림의 궁(왕상 7:2)에 있는 병기들'을 가리키는 것 같다. 삼림의 궁의 병기를 바라본다는 말은 그것들을 의지한다는 뜻일 것이다.

선지자는 또, "너희가 다윗 성의 무너진 곳이 많은 것도 보며 너희가 아래 못의 물도 모으며 또 예루살렘의 가옥을 계수하며 그 가옥을 헐어 성벽을 견고케도 하며 너희가 또 옛못의 물을 위하여 두 성벽 사이에 저수지를 만들었느니라"고 말한다. 유다 백성은 예루살렘 성의 무너진 곳들을 보수하고 저수지도 만드는 등 방어태세를 정비하였다. 심지어 가옥들의 일부를 헐어 성벽을 견고케 하였다. 선지자는 또 말하기를, "그러나 너희가 이 일을 하신 자를 앙망하지 아니하였고 이 일을 옛적부터 경영하신 자를 존경하지 아니하였느니라"고 말한다. 이것이 그들의 문제점이었다. 그들은 성의 수비에만 힘쓰고 이 일을 행하신 자, 이 일을 옛적부터 경영하신 자, 즉 이 모든 일을 주권적으로 작정하시고 섭리하시는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았다. 우리는 세상의 모든 일을 작정하시고 섭리하시는 하나님을 믿고 의지해야 한다.

[12-14절] 그 날에 주 만군의 여호와께서 . . . .

선지자는 또 말한다. "그 날에 주 만군의 여호와께서 명하사 통곡하며 애호하며 머리털을 뜯으며 굵은 베를 띠라 하셨거늘 너희가 기뻐하며 즐거워하여 소를 잡고 양을 죽여 고기를 먹고 포도주를 마시면서 내일 죽으리니 먹고 마시자 하도다." 하나님께서는 그 재앙 앞에서 그들이 통회자복하기를 명하셨으나 그들은 오히려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였고 "내일 죽으리니 먹고 마시자"라고 말하였다. 이것이야말로 육신주의요 쾌락주의이다. 이것은 하나님을 아는 성도답지 못한 모습이다. 그러므로 만군의 여호와께서는 선지자의 귀에 말씀하셨다. "진실로 이 죄악은 너희 죽기까지 속하지 못하리라." 그들의 육신주의, 쾌락주의는 사함받지 못하는 큰 죄로 간주되었다.

[15-19절] 주 만군의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 . . .

유다의 멸망은 왕의 부패뿐 아니라, 고위 공직자의 부패에도 기인하였다. 전능하신 주 하나님께서는, 유다의 국고를 맡고 왕궁을 다스리는 자인 셉나를 책망하신다. 그는 교만하였다. 그는 마치 임금처럼 자기를 위해 바위에, 높은 곳에 자기의 묘실을 팠다. 그것은 그에게 합당치 않은 일이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그를 그 관직에서 쫓아내시며 그의 지위를 낮추실 것이며, 그를 힘있게 붙잡아 맹렬히 던져 포로되게 하실 것이며, 이방나라에서 죽고 수치를 당하게 하실 것이다.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는 교만한 자를 물리치신다.

[20-24절] 그 날에 내가 힐기야의 아들 . . . .

하나님께서 셉나 대신에 힐기야의 아들 엘리아김을 불러 셉나의 관직을 그에게 주고 또 유다를 다스리는 권세를 주실 것이다. 그는 그의 직책을 견고케 하실 것이며 그로 그 아버지 집에 영광의 보좌가 되게 하실 것이다. 그의 크고 작은 친척들이 그로 인해 영광을 누릴 것이다. 하나님께 모든 주권이 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높이기도 하고 낮추기도 하시며 세우기도 하고 폐하기도 하신다. 그는 교만한 자를 물리치시고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베푸신다.

[25절] 만군의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 . . .

선지자는 또 "만군의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그 날에는 단단한 곳에 박혔던 못이 삭으리니 그 못이 부러져 떨어지므로 그 위에 걸린 물건이 파쇄되리라 하셨다 하라. 나 여호와의 말이니라"고 말한다. 이것은 교만한 고위 관리였던 셉나의 패망에 대해 다시 말씀한 것 같다. 지금 권세를 누리는 셉나는 마침내 멸망하게 될 것이다.

본장은 몇 가지 교훈을 준다. 첫째로, 우리는 육신주의와 쾌락주의를 버리자. 하나님께서는 예루살렘의 멸망을 작정하시고 선포하셨고 그들에게 통회자복하기를 원하셨다. 그러나 그들은 이 모든 일을 작정하시고 섭리하시는 하나님을 앙망하지 않았고 통회자복하기커녕 먹고 마시며 기뻐하고 즐거워하였다. 우리는 이런 육신주의, 쾌락주의를 버리자.

둘째로, 우리는 하나님의 주권적 작정과 섭리를 믿자. 유다 백성은 성의 방어에만 급급하고 예루살렘의 멸망을 작정하고 섭리하시는 하나님을 앙망하지 않았고 그를 존경하지 않았고 하나님을 잘 알지 못하였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을 알고 그를 믿자. 우리는 나라의 전쟁과 평안, 사람을 관직에서 쫓아내심과 세우심이 다 하나님의 주권적 손 안에 있음을 알자. 우리는 하나님께서 창세 전에 모든 일을 작정하셨고 때가 되어 이루시는 자이심을 알고 하나님의 주권적 작정과 섭리를 믿자.

셋째로, 우리는 고난 중에 통회자복하며 하나님만 의지하고 하나님의 말씀만 순종하자. 우리는 하나님의 징책의 손길과 우리의 부족을 깨닫는 데 민감하여 깨닫는 즉시 통회자복하며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의만 의지하고 하나님의 말씀 곧 성경말씀만 순종하자.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양심에 거리낌 없이 경건하고 정직하고 선하고 진실하게만 살자.

 

◈배교와 타협과 혼란의 시대에 바른 길을 붙들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