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신앙  2009년 08월 09일 [제13권 32호]   ◆ 매주 발행 ◆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너희는 길에 서서 보며 옛적 길 곧 선한 길이 어디인지 알아보고 그리로 행하라. 너희 심령이 평강을 얻으리라' 하나, 그들의 대답이 '우리는 그리로 행치 않겠노라' 하였으며"(렘 6:16).

 

 

옛신앙

 

Old-time Fait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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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옛신앙'이란, 옛부터 하나님의 선지자들과 주의 사도들이 가졌던 신앙, 오직 정확 무오(無誤)한 하나님 말씀인 신구약 성경에만 근거한 신앙, 오늘날 배교와 타협의 풍조에 물들지 않는 신앙을 의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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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일오전설교:                           심은 대로 거두리라

[성경본문] 갈라디아서 6:7,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

밭에 콩을 심으면 콩이 나고 팥을 심으면 팥이 납니다. 심은 대로 거둡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정하신 자연의 법칙입니다. 심은 대로 거둔다는 진리는 인간의 삶에도 적용됩니다. 이 공의의 보응 원리는 성경 전체에 흐르고 있는 진리입니다.

본문은 사도 바울의 교훈입니다.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는다는 은혜의 복음을 강조한 그가 본문에서 공의의 보응이라는 진리를 여전히 증거한 것입니다. 그는, "스스로 속이지 말라. 하나님은 만홀히 여김을 받지 아니하시나니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고 말합니다. 심은 대로 거둔다는 진리는,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받은 성도들에게도 여전히 중요한 진리입니다.

본문은 "자기의 육체를 위하여 심는 자는 육체로부터 썩어진 것을 거두고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는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두리라"고 말합니다. '썩어진 것'이라는 말은 '썩는 것'이라는 뜻입니다. 자기의 육체를 위해 심는 자는 썩는 것을 거두고, 하나님의 성령을 위해 심는 자는 영생을 거둘 것입니다.

첫째로, 본문은 '자기 육체를 위해 심는 자'에 대해 말합니다. 자기 육체를 위해 심는다는 말은 무슨 뜻입니까? 성경에서 '육체'나 '육신'이라는 말은 의식주의 욕구뿐 아니라, 죄악된 욕심을 포함합니다. 자기 육체를 위해 심는다는 말은 땅의 허무한 것을 위해 살고 죄악된 것을 위해 산다는 뜻을 다 포함합니다. 그것은 허무하고 죄악되고 멸망하는 것들입니다.

구약의 전도서는 세상의 모든 것, 해 아래 있는 모든 것이 허무한 것임을 이미 잘 증거하였습니다. 전도서 초두에서 전도자는,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 사람이 해 아래서 수고하는 모든 수고가 자기에게 무엇이 유익한고"라고 말합니다(전 1:2-3).

선지자 이사야도 외치는 자에게 "모든 육체는 풀이요 그 모든 아름다움은 들의 꽃 같다"고 외치라고 말합니다(사 40:6-8). 주 예수께서도 세상의 모든 일들을 '썩는 양식을 위해 일하는 것'이라고 표현하시며, "썩는 양식을 위하여 일하지 말고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을 위하여 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요 6:27).

인간이 육신의 본성에 이끌려 살면 죄를 짓게 됩니다. 그것은 인간 본성이 부패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사도 베드로는, "사랑하는 자들아, 나그네와 행인 같은 너희를 권하노니 영혼을 거슬러 싸우는 육체의 정욕을 제어하라"고 말하였습니다(벧전 2:11).

사도 바울도 말하기를, "너희는 성령을 좇아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 육체의 소욕은 성령을 거스르고 성령의 소욕은 육체를 거스르나니 이 둘이 서로 대적함으로 너희의 원하는 것을 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 너희가 만일 성령의 인도하시는 바가 되면 율법 아래 있지 아니하리라. 육체의 일은 현저하니 곧 음행과 더러운 것과 호색과 우상숭배와 술수와 원수를 맺는 것과 분쟁과 시기와 분냄과 당 짓는 것과 분리함과 이단과 투기와 술취함과 방탕함과 또 그와 같은 것들이라. 전에 너희에게 경계한 것같이 경계하노니 이런 일을 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것이라"고 하였습니다(갈 5:16-21).

인간의 죄악된 본성을 따라 행하는 일들은 다 허무하고 죄악되며 멸망에 이를 것입니다. 노아 시대 사람들이 그러했습니다. 예수께서는, "노아의 때와 같이 인자의 임함도 그러하리라. 홍수 전에 노아가 방주에 들어가던 날까지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장가들고 시집가고 있으면서 홍수가 나서 저희를 다 멸하기까지 깨닫지 못하였으니 인자(人子)의 임함도 이와 같으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마 24:37-39).

음란했던 소돔-고모라 성도 그랬습니다. 예수께서는 말씀하시기를, "또 롯의 때와 같으리니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사고 팔고 심고 집을 짓더니 롯이 소돔에서 나가던 날에 하늘로서 불과 유황이 비 오 듯하여 저희를 멸하였느니라"고 하셨습니다(눅 17:28-29).

사사기 1장에 보면, 유다 지파가 가나안 정복을 했을 때 베섹에서 아도니 베섹을 잡아 엄지손가락과 엄지발가락을 끊었는데, 그때 아도니 베섹은 말하기를, "옛적에 칠십 왕이 그 수족의 엄지가락을 찍히고 내 상 아래서 먹을 것을 줍더니 하나님이 나의 행한 대로 내게 갚으심이로다"라고 하였습니다(삿 1:7). 살아계신 하나님은 공의로 갚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세상에 하나님의 공의의 보응이 있습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를 배신하고 원수들에게 넘겨주었던 가룟 유다는 자신의 악한 행위를 후회하며 자기가 받았던 은 30을 성소에 던져 넣고 물러가서 스스로 목매어 죽었습니다(마 27:3-5). 또 성경은 그가 몸이 곤두박질하여 배가 터져 창자가 다 흘러나왔다고 증거합니다(행 1:18). 그것은 하나님의 보응이었습니다. 물론 최종적으로 회개치 않은 악인들은 영원한 지옥불에 던지울 것입니다.

둘째로, 본문은 '성령을 위해 심는 자'에 대해 말합니다. 성령을 위해 심는다는 말은 무슨 뜻입니까? 그것은 성령의 감동을 따라 살며 성령으로 육신의 죄성을 이기는 것을 가리킵니다. 성령을 위해 심는 자는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둡니다. 이것은 행위로 영생을 얻는다는 뜻이 아닙니다. 영생은 하나님의 은혜로 주 예수를 믿음으로 얻지만, 예수 믿고 은혜로 영생 얻은 자들은, 육체를 위해 살거나 범죄하는 자가 아니고 성령을 위해 살고 선한 열매를 맺는 자라는 뜻입니다.

사도 바울은 로마서에서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고 말하면서, "너희가 육신대로 살면 반드시 죽을 것이로되 성령으로써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리니 무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그들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증거하였습니다(롬 8:13-14). 또 바울은, "너희는 성령을 좇아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 육체의 소욕은 성령을 거스르고 성령의 소욕은 육체를 거스르나니 이 둘이 서로 대적함으로 너희의 원하는 것을 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고 말합니다(갈 5:16-17).

그는 또,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니 이 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 박았느니라. 만일 우리가 성령으로 살면 또한 성령으로 행할지니 헛된 영광을 구하여 서로 격동하고 서로 투기하지 말지니라"고 말하였습니다(갈 5:22-26).

성령을 위해 사는 것은 성령의 감동을 받아서 믿음으로 사는 것을 말합니다. 예수께서는 "썩는 양식을 위하여 일하지 말고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을 위하여 하라"고 말씀하셨고, "하나님의 보내신 자를 믿는 것이 하나님의 일이니라"고 하셨습니다(요 6:27-29).

성령을 위해 사는 것은 또 성령을 따라 하나님의 모든 계명에 순종하며 사는 것, 곧 경건하고 의롭고 선하게 사는 것을 가리킵니다. 그것은 성경을 읽고 기도하며 교회로 모이기를 힘쓰며 헌금하며 전도하며 선을 행하며 봉사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사도 바울은,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피곤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 그러므로 우리는 기회 있는 대로 모든 이에게 착한 일을 하되 더욱 믿음의 가정들에게 할지니라"고 교훈하였습니다.

일찍이, 에녹은 하나님과 동행하는 경건한 삶을 살다가 하나님이 부르셔서 죽음을 보지 않고 하늘로 올렸습니다. 창세기 5장은 "에녹이 하나님과 동행하더니 하나님이 그를 데려 가시므로 세상에 있지 아니하였더라"고 기록합니다(창 5:21-24).

죄악된 시대에 살았던 노아도 하나님을 경외하며 그와 동행하며 그의 계명대로 의롭게 살았고 그의 명령을 다 순종하여 방주를 건립함으로써 그와 그의 가족만 홍수 심판에서 피할 수 있었습니다(창 6:8-9, 22; 7:5). 그러므로 사도 베드로는 하나님께서 "옛 세상을 용서치 아니하시고 오직 의를 전파하는 노아와 그 일곱 식구를 보존하시고 경건치 아니한 자들의 세상에 홍수를 내리셨다"고 말하였습니다(벧후 2:5).

또 선지자 엘리야는, 바알 선지자 450명과 아세라 선지자 400명을 대항하여 외로이 진리의 싸움을 싸웠지만(왕상 18:19, 20-22; 19:10), 하나님께서는 갈멜산의 대결에서 하늘에서 불이 내리게 하셔서 여호와 하나님의 참되심과 살아계심을 증거하셨고(왕상 18:37- 39) 또 그의 말년에 그를 산 채로 하늘로 불러 올리셨습니다(왕하 2:11).

우리는 성령의 감동과 인도하심을 따라 경건하고 의롭고 선한 삶을 힘써야 할 것입니다. 그것이 성령을 위해 심는 것입니다. 우리는 성령의 감동과 인도하심을 따라 삶으로써 육신의 죄악된 본성을 극복해야 합니다. 그것이 영생에 이르는 자의 삶입니다.

셋째로, 그러면 구원받은 성도가 자기 육체를 위해 심는 자와 같이 육신의 욕심과 죄악된 본성을 따라 살면 어떻게 되는 것입니까? 그것은 성도의 외도(外道)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본문에서 "스스로 속이지 말라. 하나님은 만홀히 여김을 받지 아니하시나니"라고 말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중심을 보시고 다 아시며 우리의 모든 행위를 살피시고 판단하시고 공의로 보응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연약과 죄에 떨어진 성도를 징계하고 훈련시키십니다. 이스라엘 백성의 역사는 외도(外道)의 역사이었고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징계하셨고 그들은 혹독한 훈련을 받아야 했습니다. 그것이 구약의 민수기에 기록된 이스라엘의 광야 생활 곧 불신앙과 원망과 징계가 반복된 생활이었고, 또 사사기에 기록된 반복된 실패의 역사이었습니다. 이스라엘의 왕국 시대도 결국 외도(外道)와 징벌로 끝났습니다. 이스라엘의 역사는 모든 연약한 성도들에게 거울이 됩니다.

신약성경 히브리서는 신약 성도들에게도 하나님의 징계가 있음을 증거합니다. 우리가 예수 믿고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을 얻었어도 죄에 떨어지고 죄 가운데 산다면, 우리는 하나님의 징계를 받을 것입니다. 히브리서는, "징계는 다 받는 것이거늘 너희에게 없으면 사생자요 참 아들이 아니니라"고 말합니다(히 12:8). 성도가 죄를 짓고 있는 데도 징계가 없다면, 그는 구원받지 못한 자이며 중생치 못한 자라는 뜻입니다. 징계는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하는 자녀라는 증표입니다.

그러므로 구원받은 성도의 신앙생활은 끊임없이 죄와 싸우는 전투의 삶이며 넘어졌을 때마다 진심의 눈물로 뉘우치며 회개하고 그 죄를 버리는 삶입니다. 또 구원받은 성도의 신앙생활은 하나님의 계명을 순종하여 의와 선을 행하는 삶입니다. 또한 구원받은 성도의 신앙생활은 하나님의 징계를 통해 단련받는 생활입니다. 그는 하나님의 징계와 고난을 잘 참음으로써 자라갑니다. 그의 믿음은 이전보다 더 굳세어지고, 그의 교만과 높은 마음은 부서져 겸손한 인격으로 변화되고, 그는 죄를 떠나고 죄를 멀리하는 거룩한 인격이 됩니다. 그것이 성도의 성화 과정인 것입니다.

사람은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둡니다. 자기의 육체를 위해 심는 자는 썩는 것 곧 허무하고 죄악된 것, 장차 심판받을 것을 거두고, 성령을 위해 심는 자는 영생을 거둘 것입니다. 예수 믿고 구원받은 성도는 육신의 욕심과 죄악된 본성을 따라 살지 않고 성령의 감동과 인도하심을 따라 경건하고 의롭고 선한 삶을 삽니다.

우리는 육신의 욕심과 죄악된 본성을 따라 살지 맙시다. 우리가 예수 믿고 구원을 얻었다고 생각할지라도 육신대로 산다면, 멸망하고 말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를 참으로 믿는 자가 아닐 것입니다.

우리가 정말 예수를 믿는다면, 정말 구원을 받은 자라면, 우리는 성령을 따라 행함으로 우리의 육신의 욕심과 죄악된 본성을 극복해야 합니다. 우리는 성령을 따라 경건하고 의롭고 선한 삶을 살아야 합니다.

또 우리는 하나님의 징계를 가볍게 여기거나 멸시하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징계는 참으로 무섭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징계를 받을 때에도 우리는 낙심치 말고 그 징계를 달게 받음으로써 인격의 성숙과 성화(聖化)를 이루어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더욱 믿음 있는 자가 되고 더욱 겸손한 자가 되고 더욱 거룩한 자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이사야 강해:                             구스에게 주는 메시지

구스는 애굽의 남쪽, 곧 나일강 상류지역의 나라이었고, 이 지역은 오늘날 수단의 동북부이다. 구스는 고대에 매우 강대한 나라이었고, 비록 한때 애굽의 지배를 받기도 하였으나, 애굽을 지배하기도 하였다.

[18:1-3] 슬프다, 구스의 강 건너편 .. . .

선지자는 구스에 대해 예언한다. "슬프다, 구스의 강 건너편 날개치는 소리나는 땅이여, 갈대배를 물에 띄우고 그 사자를 수로로 보내며 이르기를, 너희 경첩한[빠른] 사자들아, 너희는 강들이 흘러 나누인 나라로 가되 장대하고 준수한 백성 곧 시초부터 두려움이 되며 강성하여 대적을 밟는 백성에게로 가라 하도다"라고 말한다.

창세기 10장에 보면, 구스는 함의 맏아들이며 그 형제는 미스라임(애굽의 시조)과 붓과 가나안이었다. 구스는 스바, 하윌라, 삽다, 라아마, 삽드가를 낳았고 마지막으로 니므롯을 낳았는데, 니므롯은 고대의 강력한 군주이었고 그의 나라는 시날 땅의 바벨과 에렉과 악갓과 갈레에서 시작되었으며 그가 그 땅에서 앗수르로 나아가 니느웨와 르호보딜과 갈라와 레센을 건축하였다(창 10:6-12).

선지자는 구스를 '구스의 강 건너편 날개치며 소리나는 땅'이라고 표현한다. 본문의 '구스의 강'은 나일강 상류이다. 나일강은 세계에서 가장 긴 강이다. 그 길이가 총 6,695킬로미터라고 한다. '날개치며 소리나는 땅'이라는 표현은 '날개 그늘 아래 있는 땅'(KJV) 즉 비교적 평안한 땅이라는 뜻이든지, 혹은 '날개 치는 땅'(NASB, NIV) 즉 무역이 활발한 땅이라는 뜻일 것이다. 구스는 주전 2,000년에 이미 존재했던 나라로서 고대에 지중해와 근동과 아프리카 문명의 교류가 이루어진 중심지의 역할을 하였고, 구스인들은 농업, 예술, 정치, 종교, 금속 공업 등의 지식을 나누었고 또 무역의 중심지이었다고 한다.

선지자는, "슬프다, 구스의 강 건너편 날개치는 소리나는 땅이여, 갈대배를 물에 띄우고 그 사자를 수로로 보내며 이르기를, 너희 경첩한 사자들아, 너희는 강들이 흘러 나누인 나라로 가되 장대하고 준수한 백성 곧 시초부터 두려움이 되며 강성하여 대적을 밟는 백성에게로 가라 하도다"라고 말한다. 나일강은 애굽뿐 아니라, 구스 사람들에게로 연결하는 수로(水路) 즉 주요 통로이었던 것 같다. 나일강 하류에 자생하는 파피러스 나무는 배를 만드는 좋은 재목이었다고 한다.

선지자는 구스를 '강들이 흘러 나누인 나라'라고 표현한다. 구스는 나일강의 큰 두 지류가 합치는 곳이다. 오늘날 그 두 지류를 백나일강과 청나일강이라고 부른다. 그것은 오늘날 수단이라는 나라에 있다. 선지자는 또 구스를 '장대하고 준수한 백성 곧 시초부터 두려움이 되며 강성하여 대적을 밟는 백성'이라고 표현한다. 과연, 구스는 고대에 일찍부터 힘이 있고 번성한 나라이었다.

선지자는 또 "세상의 모든 거민, 지상에 거하는 너희여, 산들 위에 기호를 세우거든 너희는 보고 나팔을 불거든 너희는 들을지니라"고 말한다. 구스의 멸망에 대한 소식은 그 당시에 온 세계의 모든 거민들에게 알려질 만한 뉴스거리이었다. 구스에게 빠른 사자를 보내어 그들의 멸망에 대한 소식을 전하라는 말은 구스 사람들의 회개를 촉구하는 뜻이 있고, 또 아울러 유다 사람들이 구스를 부러워하거나 의지하지 말라는 뜻도 들어 있다고 본다.

[4-6절]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 . . .

선지자는 또 말하기를,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내가 나의 처소에서 종용히 감찰함이 쬐이는 일광 같고 가을 더위에 운무 같도다. 추수하기 전에 꽃이 떨어지고 포도가 맺혀 익어 갈 때에 내가 낫으로 그 연한 가지를 베며 퍼진 가지를 찍어버려서 산의 독수리들에게와 땅의 들짐승들에게 끼쳐주리니 산의 독수리들이 그것으로 과하(過夏)하며 땅의 들짐승들이 다 그것으로 과동(過冬)하리라 하셨음이니라"고 한다.

선지자는 심판자 하나님을 자기 처소인 하늘에서 죄인들을 조용히 감찰하시는 자로 묘사한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쬐이는 햇볕같이 또 가을 더위에 이슬을 머금은 구름처럼 그들의 행위를 주목하시며 그들에게 언제라도 징벌을 내리실 수 있다.

선지자는, 하나님께서 마침내 갑자기 추수 직전에 꽃이 떨어지듯이, 포도가 익어갈 즈음에 낫으로 그 가지를 베어버리듯이, 그래서 산의 독수리들이나 땅의 들짐승들에게 주어 그것들이 여름을 나고 겨울을 나게 하시듯이, 그들을 심판하시고 징벌하실 것이라고 말한다. 하나님의 심판은 인간이 예측할 수 없이 갑작스럽게 온다.

[7절] 그 때에 강들이 흘러 나누인 나라의 . . . .

선지자는 또, "그 때에 강들이 흘러 나누인 나라의 장대하고 준수하며 시초부터 두려움이 되며 강성하여 대적을 밟는 백성에게서 만군의 여호와께 드릴 예물을 가지고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을 두신 곳 시온산에 이르리라"고 말한다.

선지자는 구스를 '강들이 흘러 나누인 나라'라고 말하면서, 그 나라 백성을 '장대하고 준수하며 시초부터 두려움이 되며 강성하여 대적을 밟는 백성'이라고 다시 표현한다. 또 그는 이 강대하고 역사 깊은 나라가 멸망할 때 그 백성이 만군의 여호와께 예물을 드리기 위하여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을 두신 시온산에 이를 것이라고 예언한다. 하나님의 구원 역사가 구스 땅에도 임할 것이다.

본장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우리는 세상 세력을 의지하지 말자. 아무리 강대한 나라 구스라 할지라도(2, 7절) 하나님께서 그를 파하실 것이다. 시편 20:7, "혹은 병거, 혹은 말을 의지하나 우리는 여호와 우리 하나님의 이름을 자랑하리로다." 이사야 2:22, "너희는 인생을 의지하지 말라. 그의 호흡은 코에 있나니 수에 칠 가치가 어디 있느뇨?" 둘째로, 우리는 심판자 하나님을 바라보자. 하나님은 그의 처소 하늘에서 조용히 온 세상을 감찰하신다(4절). 그는 잠잠하신 듯하나 다 보고 감찰하시고 그의 정하신 때에 갑자기 악인들을 공의로 심판하시고 보응하시고 징벌하신다. 이 세상에서 그의 심판을 피할 자는 아무도 없다. 셋째로, 우리는 하나님만 경외하고 그를 힘써 섬기자. 구스를 패망케 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다(5절). 그는 온 우주에서 홀로 영광을 받으실 자이시다. 전도서 12:13은, "일의 결국을 다 들었으니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 명령을 지킬지어다. 이것이 사람의 본분이니라"고 말한다. 우리는 창조자, 섭리자 하나님만 경외하고 그의 계명을 힘써 지키자.

◈배교와 타협과 혼란의 시대에 바른 길을 붙들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