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신앙  2009년 03월29일 [제13권 13호]   ◆ 매주 발행 ◆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너희는 길에 서서 보며 옛적 길 곧 선한 길이 어디인지 알아보고 그리로 행하라. 너희 심령이 평강을 얻으리라' 하나, 그들의 대답이 '우리는 그리로 행치 않겠노라' 하였으며"(렘 6:16).

 

 

옛신앙

 

Old-time Fait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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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옛신앙'이란, 옛부터 하나님의 선지자들과 주의 사도들이 가졌던 신앙, 오직 정확 무오(無誤)한 하나님 말씀인 신구약 성경에만 근거한 신앙, 오늘날 배교와 타협의 풍조에 물들지 않는 신앙을 의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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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위기 강해:                                 피의 속죄

 

[17:1-4] . . . 무릇 이스라엘 집의 누구든지 소나 어린양이나 염소를 진 안에서 잡든지 진 밖에서 잡든지 먼저 회막문으로 끌어다가 여호와의 장막 앞에서 여호와께 예물로 드리지 아니하는 자는 피흘린 자로 여길 것이라. 그가 피를 흘렸은즉 자기 백성 중에서 끊쳐[끊어]지리라.

여호와께서는 모세를 통해 아론과 그 아들들과 이스라엘 백성에게 명령을 또 하나 주셨다. 그것은 짐승제물을 하나님 앞에 드릴 때 오직 회막문 앞에 와서만 하라는 명령이었다(Poole). 3-4절을 다시 번역하면, “무릇 이스라엘 집의 누구든지 소나 어린양이나 염소를 진 안에서 죽이거나 진 밖에서 죽이고, 여호와의 장막 앞에서 여호와께 예물로 드리기 위해 회막문으로 가져오지 않는 자는 피흘린 자로 여길 것이라. 그가 피를 흘렸은즉 자기 백성 중에서 끊어지리라.” 이스라엘 백성이 소나 양이나 짐승의 고기를 먹고자 하면 어디에서나 죽여 먹을 수 있었다. 신명기 12:15,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주신 복을 따라 각 성에서 네 마음에 즐기는 대로 생축[가축]을 잡아 그 고기를 먹을 수 있나니 곧 정한 자나 부정한 자를 무론하고 노루나 사슴을 먹음같이 먹으려니와.” 그러나 각종 제물에 대해서는 오직 회막문 앞에서만 그것을 죽이게 하였다. 그것은 아마 제사의 변질을 막고 제사가 제사장만을 통해 바르게 이루어지게 하시기 위함이었을 것이다. 이 법은 엄격하여 이 법을 어기는 자는 그 백성 중에서 끊어질 것이라고 경고되었다. 성경에 자주 나오는 ‘그 백성 중에서 끊어진다’는 말은 사형이나 출교, 혹은 하나님의 직접적 징벌을 의미한다고 본다.

[5-9절] 그런즉 이스라엘 자손이 들에서 잡던 희생을 회막문 여호와께로 끌어다가 제사장에게 주어 화목제로 여호와께 드려야 할 것이요 제사장은 그 피를 회막문 여호와의 단에 뿌리고 그 기름을 불살라 . . . .

그러므로 이스라엘 자손은 들에서 드렸던 화목제를 회막문 여호와께로 끌어다가 제사장에게 주어 여호와께 드려야 했고 제사장은 그 피를 회막문 여호와의 단에 뿌리고 그 기름을 불살라 여호와께 향기로운 냄새가 되게 해야 했다. 또 하나님께서는 그들이 전에 음란하게 섬기던 ‘숫염소 귀신들’(세이림)(NASB, BDB)에게 다시 제사하지 말라고 명하셨다. 이것은 그들이 대대로 지킬 영속적 규례이었다. 또 하나님께서는 무릇 이스라엘 집 사람이나 혹시 그들 중에 우거하는 타국인이 번제나 다른 제사를 드릴 때 회막문에 가져와 여호와께 드리지 아니하면 그는 백성 중에서 끊어질 것이라고 경고하셨다.

[10-13절] 무릇 이스라엘 집 사람이나 . . . .

하나님께서는 또 이스라엘 백성에게 피를 먹지 말라고 명령하셨다. 그는 말씀하시기를, “무릇 이스라엘 집 사람이나 그들 중에 우거하는 타국인 중에 어떤 피든지 먹는 자가 있으면 내가 그 피 먹는 사람에게 진노하여 그를 백성 중에서 끊으리니 육체의 생명은 피에 있음이라”고 하셨다. 본장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피를 먹지 말라고 하신 명령을 반복해 기록한다(10, 12, 14절). 또 피를 먹지 말아야 할 이유는 피가 생명이기 때문이라고 말씀하셨다(11, 14, 14절).

이 명령을 하시면서, 하나님께서는 피가 죄를 속(贖)한다는 귀한 진리를 밝히 증거하셨다. 11절, “이는 육체의 생명은 피에 있음이라. 내가 이 피를 너희에게 주어 단에 뿌려 너희의 생명을 위하여(알 나프쇼세켐)[너희의 영혼들을 위하여] 속하게 하였나니 [이는] 생명이 피에 있으므로(반네페쉬)[생명 때문에] (ASV, NASB) 피가 죄를 속하느니라.”

하나님께서는 피를 먹지 말라는 명령을 다시 강조하셨다. “그러므로 내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말하기를 너희 중에 아무도 피를 먹지 말며 너희 중에 우거하는 타국인이라도 피를 먹지 말라 하였나니 무릇 이스라엘 자손이나 그들 중에 우거하는 타국인이 먹을 만한 짐승이나 새를 사냥하여 잡거든 그 피를 흘리고 흙으로 덮을지니라.”

[14-16절] 모든 생물은 그 피가 생명과 일체라. 그러므로 내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르기를 너희는 어느 육체의 피든지 먹지 말라 하였나니 모든 육체의 생명은 그 피인즉 무릇 피를 먹는 자는 끊쳐지리라. . . .

하나님께서는 피를 먹지 말아야 할 이유로서 피가 생명임을 다시 강조하셨다. “모든 생물은 그 피가 생명과 일체라. 그러므로 내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르기를 너희는 어느 육체의 피든지 먹지 말라 하였나니 모든 육체의 생명은 그 피인즉 무릇 피를 먹는 자는 끊어지리라. 무릇 스스로 죽은 것이나 들짐승에게 찢겨 죽은 것을 먹은 자는 본토인이나 타국인이나 물론하고 그 옷을 빨고 물로 몸을 씻을 것이며 저녁까지 부정하고 그 후에 정하려니와 그가 빨지 아니하거나 몸을 물로 씻지 아니하면 죄를 당하리라.”

우리는 피를 먹지 말라는 법을 포함하여 모든 의식법이 신약 시대에는 폐지되었다고 믿는다.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19:3은 모든 의식법들이 신약 아래서 폐지되었다고 진술하였다. 골로새서 2:16-17, “그러므로 먹고 마시는 것과 절기나 월삭이나 안식일을 인하여 누구든지 너희를 폄론[판단]하지 못하게 하라. 이것들은 장래 일의 그림자이나 몸은 그리스도의 것이니라.” 사도행전 15장에 기록된 예루살렘 총회의 결정 중에 이방인 신자들에게 우상의 제물과 피와 목매어 죽인 것을 멀리하라는 규례는 유대인들과 이방인들이 섞여 있는 초대교회를 위한 임시적 조치였다고 이해해야 할 것이다.

본장 11절에 증거된 피의 속죄 개념은 우리의 구원에 직접 관계되는 매우 중요한 개념이다. 피의 중요성은 하나님께서 에덴 동산에서 아담과 하와에게 가죽옷을 입혀주실 때부터 암시되었고, 그 후 아벨이 양의 첫새끼로 드린 제물을 하나님께서 받으셨을 때도 증거되었다. 인류역사 초기로부터 행해진 번제는 피의 중요성을 암시하였다. 모세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제사제도는 피의 중요성을 증거한다. 제사장은 제물의 피를 단에 뿌리고 또 지성소 휘장이나 속죄소에도 일곱 번 뿌려야 했다.

이 속죄의 피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대속사역을 예표한 것이었다. 예수 그리스도는 십자가에 못박혀 피 흘려 죽으셨다. 그의 속죄사역은 피 흘리신 사역이었다. 그는 십자가에 달리시기 전날 밤 제자들과 함께 유월절 저녁식사를 하실 때 포도즙잔을 나누시며, “이것은 죄사함을 얻게 하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고 말씀하셨다(마 26:28). 예수 그리스도의 피는 많은 사람의 죄사함을 이루는 속죄의 피이며 이것이 하나님의 구원의 방법이었다.

사도 바울은 피의 속죄를 밝히 증거하였다. 로마서 3:23-25,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구속(救贖)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 이 예수를 하나님이 그의 피로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는 화목제물[유화제물]로 세우셨으니 이는 하나님께서 길이 참으시는 중에 전에 지은 죄를 간과하심으로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려 하심이니라.” ‘그의 피로 인해 믿음으로 말미암는’이라는 구절을 옛날 영어성경(KJV)은 ‘그의 피를 믿음으로 말미암는’이라고 번역하였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는 것은 그의 속죄의 피를 믿는 것이다.

히브리서 9:12은,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염소와 송아지의 피로 아니하고 오직 자기 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사 단번에 성소에 들어가셨느니라”고 증거한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음은 자신의 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신 제사이었다. 그는 속죄제물로 죽으셨다. 그를 믿는 우리 모두는 그의 속죄제사로 말미암아 죄씻음과 의롭다 하심의 구원을 얻었다. 그러므로 히브리서 9:22은 “피흘림이 없은즉 사함이 없느니라”고 말하였고, 히브리서 10:19은 우리가 “예수의 피를 힘입어 성소에 들어갈 담력을 얻었다”고 증거하였다.

사도 베드로는, 베드로전서 1:18-19에서, “너희가 알거니와 너희 조상의 유전한 망령된 행실에서 구속(救贖)된 것은 은이나 금같이 없어질 것으로 한 것이 아니요 오직 흠 없고 점 없는 어린양 같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한 것이니라”고 증거하였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흘리신 피는 흠 없고 점 없는 어린양 같은 보배로운 피이었다. 그 피가 우리의 추하고 더러운 모든 죄를 깨끗이 씻어주셨다.

사도 요한은 요한일서 1:7에서 “저가 빛 가운데 계신 것같이 우리도 빛 가운데 행하면 우리가 서로 사귐이 있고 그 아들 예수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라고 말하였다. 또 그는 요한계시록에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사랑하셔서 그의 피로 우리 죄에서 우리를 씻으셨다(계 1:5)(전통본문)고 증거하였고, 또 그는 환상 중에 24장로들이 예수께서 “일찍 죽임을 당하사 각 족속과 방언과 백성과 나라 가운데서 사람들을 피로 사서 하나님께 드리시고 저희로 우리 하나님 앞에서 나라와 제사장을 삼으셨음”을 노래하는 광경을 보았다고 증거하였다(계 5:9-10).

이와 같이 성경은 피의 속죄를 증거한다. “육체의 생명은 피에 있음이라. 내가 이 피를 너희에게 주어 단에 뿌려 너희의 생명을 위하여 속하게 하였나니 생명이 피에 있으므로 피가 죄를 속하느니라.” 제물의 피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흘리신 속죄의 보혈을 예표하였다. 우리는 예수그리스도의 속죄의 보혈을 믿자. 또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과 그리스도의 은혜를 깨닫고 그를 위해 거룩하고 순종하는 삶을 살자. 고린도후서 5:15, “저가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으심은 산 자들로 하여금 다시는 저희 자신을 위하여 살지 않고 오직 저희를 대신하여 죽었다가 다시 사신 자를 위하여 살게 하려 함이니라.”

 

 

이사야 강해:                                  앗수르에 대한 심판

[10:1-4] 불의한 법령을 발포하며 . . . .

선지자는 이스라엘 사회가 매우 불법하다는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한다. “불의한 법령을 발포하며 불의한 말을 기록하며 빈핍한 자를 불공평하게 판결하여 내 백성의 가련한 자의 권리를 박탈하며 과부에게 토색하고 고아의 것을 약탈하는 자는 화 있을진저.” 이스라엘의 지도자들은 백성을 위해 봉사하기커녕 옳지 않은 법령을 공포하였고 가난하고 빈핍한 자들을 불공정하게 판결하며 그들의 권리를 박탈하고 과부의 소유물이나 고아의 소유물을 강제로 빼앗았다. 그러니 그런 자들에게 어떻게 하나님의 진노가 선포되지 않겠는가?

하나님의 율법은 공의와 선과 진실을 명한 법이었다. 출애굽기 23:6은 “너는 가난한 자의 송사라고 공평치 않게 하지 말며 거짓 일을 멀리하며 무죄한 자와 의로운 자를 죽이지 말라. 나는 악인을 의롭다 하지 아니하겠노라”고 말했다. 레위기 19:15도 “너희는 재판할 때에 불의를 행치 말며 가난한 자의 편을 들지 말며 세력 있는 자라고 두호하지 말고 공의로 사람을 재판할지니라”고 말했다. 또 잠언 14:31은, “가난한 사람을 학대하는 자는 그를 지으신 이를 멸시하는 자요 궁핍한 사람을 불쌍히 여기는 자는 주를 존경하는 자니라”고 말한다.

불의와 악이 가득한 이스라엘 사회에 대해, 선지자는 징벌을 선포한다. “너희에게 벌하시는 날에와 멀리서 오는 환난 때에 너희가 어떻게 하려느냐? 누구에게로 도망하여 도움을 구하겠으며 너희 영화(榮華)를 어느 곳에 두려느냐? 포로된 자의 아래에 구푸리며 죽임을 당한 자의 아래에 엎드러질 따름이니라. 그럴지라도 여호와의 노가 쉬지 아니하며 그 손이 여전히 펴지리라.” 그들은 재앙의 날에 누구에게 도움을 청하러 도망칠 수 없고 다 포로로 잡혀가고 죽임을 당할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진노는 그 정도로 그치지 않을 것이다.

[5-6절] 화 있을진저, 앗수르 사람이여 . . . .

하나님께서는 이방 나라를 그의 진노의 도구, 심판의 도구로 사용하셨다. 하나님께서는 앗수르를 그 도구로 사용하셨다. 그래서 그는 앗수르를 ‘나의 진노의 막대기’라고 부르셨고, 또 “그 손의 몽둥이는 나의 분한(忿恨)이라”고 말씀하셨다. 또 그는 “내가 그를 보내어 한 나라[한 불경건한 나라]를 치게 하며 내가 그에게 명하여 나의 노한 백성을 쳐서 탈취하며 노략하게 하며 또 그들을 가로상의 진흙같이 짓밟게 하려 하였다”고 말씀하셨다. ‘한 나라’라는 원문(고이 카네프)은 ‘한 불경건한 나라’(BDB, NASB)라는 뜻이다. 그것은 이스라엘 나라를 가리켰다. 하나님께서는 불경건한 이스라엘 나라를, 앗수르 나라를 도구로 사용하여 치셨다. 그것은 하나님의 심판이었다. 세상 역사는 하나님의 섭리의 역사이다. 하나님께서는 온 세상을 다스리시며 세상 나라들을 하나님의 섭리의 도구, 심판의 도구로 사용하신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앗수르를 심판의 도구로 사용하셨던 것은 그들이 의로웠기 때문이 아니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앗수르 사람들의 악함에 대해서도 이제 진노를 선언하신다.

[7-11절] 그의 뜻은 이 같지 아니하며 . . . .

앗수르는 하나님의 도구로 쓰임을 받았었으나, 하나님의 보시기에 바르지 못했다. 앗수르는 하나님께서 뜻하신 이스라엘의 침공과 탈취로 만족하지 않았다. 그들의 뜻과 마음의 생각은 하나님의 뜻과 생각과 달랐다. 그들은 여러 나라들을 파괴하며 멸절시키려 하였고 심지어 유다까지도 침공하려 하였다. 그들은 자랑하듯이 말하기를, “나의 방백들은 다 왕이 아니냐? 갈로는 갈그미스와 같지 아니하며 하맛은 아르밧과 같지 아니하며 사마리아는 다메섹과 같지 아니하냐? 내 손이 이미 신상을 섬기는 나라에 미쳤나니 그 조각한 신상이 예루살렘과 사마리아의 신상보다 우승하였느니라. 내가 사마리아와 그 신상에게 행함같이 예루살렘과 그 신상에게 행치 못하겠느냐?”고 하였다.

[12-14절] 이러므로 주 내가 나의 일을 시온산과 예루살렘에 다 행한 후에 앗수르 왕의 완악한 마음의 열매와 높은 눈의 자랑을 벌하리라. . . .

하나님께서는 여러 나라들을 침략하려는 앗수르 사람들의 그 욕심과 교만을 미워하셨다. 그는 말씀하시기를, “이러므로 주 내가 나의 일을 시온산과 예루살렘에 다 행한 후에 앗수르 왕의 완악한 마음의 열매와 높은 눈의 자랑을 벌하리라”고 하셨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을 ‘주’(아도나이)라고 표현하셨다. 그것은 하나님 자신이 온 세상의 소유자시요 통치자시라는 뜻이다. 하나님은 주님이시요 왕이시다. 그는 주권적 섭리자이시다. 시온산과 예루살렘, 즉 유다 나라에 대한 그의 일, 곧 유다를 징계하시는 일을 행하시는 이도 하나님이시다. 그러나 그는 이제 그 일을 다 행하신 후에 앗수르 왕의 완악한 마음의 열매와 높은 눈의 자랑을 벌하시겠다고 선언하신다.

‘완악한 마음’이라는 원어(고델 레밥)는 ‘거만한 마음’이라는 뜻이다(BDB, NASB, NIV). 앗수르는 마음이 교만했고 높은 눈으로 자랑하였다. 그들은 말하기를, “나는 내 손의 힘과 내 지혜로 이 일을 행하였으니 나는 총명한 자라. 열국의 경계를 옮겼고 그 재물을 약탈하였으며 또 용감한 자같이 위에 거한 자를 낮추었으며 나의 손으로 열국의 재물을 얻은 것은 새의 보금자리를 얻음 같고 온 세계를 얻은 것은 내어버린 알을 주움 같았으나 날개를 치거나 입을 벌리거나 지저귀는 것이 하나도 없었다”고 하였다. 교만은 큰 죄악이다.

[15-19절] 도끼가 어찌 찍는 자에게 스스로 자랑하겠으며 . . . .

선지자는 이제 앗수르에게 그들의 교만과 자랑이 합당치 않다고 말한다. “도끼가 어찌 찍는 자에게 스스로 자랑하겠으며 톱이 어찌 켜는 자에게 스스로 큰 체 하겠느냐? 이는 막대기가 자기를 드는 자를 움직이려 하며 몽둥이가 나무 아닌 사람을 들려 함과 일반이로다.” 앗수르는 하나님의 손의 도끼나 톱과 몽둥이에 불과하였다.

그러므로 선지자는 앗수르에게 하나님의 심판을 선포한다. “그러므로 주 만군의 여호와께서 살찐 자로 파리하게 하시며 그 영화(榮華)의 아래에 불이 붙는 것같이 맹렬히 타게 하실 것이라. 이스라엘의 빛은 불이요 그 거룩한 자는 불꽃이라. 하루 사이에 그의 형극과 질려[가시와 엉겅퀴]가 소멸되며 그 삼림과 기름진 밭의 영광이 전부 소멸되리니 병자가 점점 쇠약하여 감 같을 것이라. 그 삼림에 남은 나무의 수가 희소(稀少)하여[적어서] 아이라도 능히 계산할 수 있으리라.”

본문의 교훈은 분명하다. 첫째로, 우리는 하나님만 경외하며 의지하고 섬기며 순종하자. 그는 온 세상에 유일하신 하나님이시며 주님이시다. 그는 주권적 섭리자이시다(5-6, 12, 16절). 세상의 모든 사람이 경배하며 섬길 자는 오직 여호와 하나님뿐이다. 이사야 45:5-7, “나는 여호와라. 나 외에 다른 이가 없나니 나밖에 신이 없느니라. 너는 나를 알지 못하였을지라도 나는 네 띠를 동일 것이요 해 뜨는 곳에서든지 지는 곳에서든지 나밖에 다른 이가 없는 줄을 무리로 알게 하리라. 나는 여호와라. 다른 이가 없느니라. 나는 빛도 짓고 어두움도 창조하며 나는 평안도 짓고 환난도 창조하나니 나는 여호와라. 이 모든 일을 행하는 자니라.”

사도 요한은 그의 첫 번째 서신에서 “아비들아 내가 너희에게 쓰는 것은 너희가 태초부터 계신 이를 앎이요”라고 썼다(요일 2:13). 예수께서는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의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라고 기도하셨다(요 17:3). 우리는 태초부터 계신 하나님,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을 더욱 알고 그를 믿고 섬기며 순종하자.

둘째로, 우리는 의롭고 선하게만 살자. 하나님께서는 모든 불의와 악을 미워하신다. 특히 그는 가난하고 궁핍한 자를 멸시하고 학대하는 것을 미워하시고, 또 그는 높은 마음, 교만한 마음, 자랑하는 마음을 미워하신다(1-2, 12절). 그는 겸손한 마음으로 서로 사랑하라고 교훈하셨고, 또 가난하고 궁핍한 자들을 불쌍히 여기고 돌아보라고 교훈하셨다.

잠언 18:12은, “사람의 마음의 교만은 멸망의 선봉이요 겸손은 존귀의 앞잡이니라”고 말했고, 잠언 14:31은 “가난한 사람을 학대하는 자는 그를 지으신 이를 멸시하는 자요 궁핍한 사람을 불쌍히 여기는 자는 주를 존경하는 자니라”고 말하였다. 우리는 겸손한 마음으로 선을 행하자.

예수께서는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러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라”고 말씀하셨다(마 11:29). 또 그는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 줄 알리라”고 말씀하셨다(요 13:34-35).

사도 바울은 “너희는 모든 악독과 노함과 분냄과 떠드는 것과 훼방하는 것을 모든 악의와 함께 버리고 서로 인자하게 하며 불쌍히 여기라”고 교훈했고(엡 4:31-32), 또 “마음을 같이하여 같은 사랑을 가지고 뜻을 합하며 한 마음을 품어 아무 일에든지 다툼이나 허영으로 하지 말고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각각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라”고 했다(빌 2:2-3). 우리는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사랑과 선을 실천하자.

◈ 배교와 타협과 혼란의 시대에 바른 길을 붙들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