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신앙  2009년 08월 23일 [제13권 34호]   ◆ 매주 발행 ◆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너희는 길에 서서 보며 옛적 길 곧 선한 길이 어디인지 알아보고 그리로 행하라. 너희 심령이 평강을 얻으리라' 하나, 그들의 대답이 '우리는 그리로 행치 않겠노라' 하였으며"(렘 6:16).

 

 

옛신앙

 

Old-time Faith

www.oldfaith.net

   '옛신앙'이란, 옛부터 하나님의 선지자들과 주의 사도들이 가졌던 신앙, 오직 정확 무오(無誤)한 하나님 말씀인 신구약 성경에만 근거한 신앙, 오늘날 배교와 타협의 풍조에 물들지 않는 신앙을 의미합니다.

121-884 서울 마포구 합정동 364-1 합정동교회  김효성 목사,
02-334-9874,  Fax: 02-337-4869,  E-mail:
oldfaith@oldfaith.net


  주일오전설교:                          전도합시다

[성경본문] 디모데후서 4:2,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전도는 주께서 그의 제자들과 신약교회에 명하신 가장 중요한 명령입니다(마 28:19; 막 16:15; 행 1:8). 전도는 예수 그리스도의 사명이었습니다(막 1:38). 주께서는 그 사명을 이제 교회에 맡겨두셨습니다.

오늘 본문은 전도의 사명에 대해 증거합니다. 이 본문과 다른 여러 성경말씀들에 근거하여, 오늘 아침 저는 우리가 무엇을 전해야 하는지, 왜 전해야 하는지, 어떻게 전해야 하는지 증거하기를 원합니다.

첫째로, 우리는 무엇을 전해야 합니까? 본문 2절에서 사도 바울은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고 말합니다. 우리는 말씀을 전해야 합니다. 그 '말씀'이 무엇입니까? 그 말씀은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말씀입니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전서에서 그 말씀을 '십자가의 도(道)'라고 말했습니다. '도'라는 말(로고스)이 '말씀'이라는 그 단어입니다. 그는, "십자가의 도(道)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얻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고 말했습니다(고전 1:18).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말씀을 '십자가의 도'라고 부른 것은 그 말씀의 중심적 내용이 그가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셨다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은 고린도전서 1:22-24에서 "유대인은 표적을 구하고 헬라인은 지혜를 찾으나 우리는 십자가에 못박힌 그리스도를 전하니"라고 말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음이 중요한 것은 그것이 죄인들을 위한 속죄의 죽음이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은 고린도전서 15장에서 그가 전한 복음의 요점을 증거하면서 "내가 받은 것을 먼저 너희에게 전하였노니 이는 성경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장사 지낸 바 되었다가 성경대로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셨다"(3-4절)고 하였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해 죽으셨다"--이것이 우리가 전해야 할 말씀의 주요 내용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의 진리에 근거하여 죄사함이 있고 영생과 천국에 들어가는 복이 뒤따릅니다. 그러므로 예수께서는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느니라"고 외치셨고(마 4:17), 또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요 3:16).

사람이 죄를 회개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죄사함과 의롭다 하심을 얻고 영생을 얻으며 천국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이것이 말씀의 요점이며 성경에 계시된 기독교가 전하는 복음의 요지입니다.

물론, 말씀 속에는 하나님의 모든 뜻이 포함됩니다. 그러므로 본문은 "범사에 오래 참음과 가르침으로 경책하며 경계하며 권하라"고 말합니다. 전도는 그것에 연관된 하나님의 모든 진리를 가르치고 죄를 책망하고 경계하고 바른 교훈으로 권면하는 것을 당연히 포함합니다. 그러므로 주께서는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마 28:19-20).

본문 3절에 '바른 교훈'이라는 말이 나오고, 4절에는 '진리'라는 말이 나옵니다. 이것은 4절의 '허탄한 이야기'와 대조됩니다. 세상에는 십자가의 말씀, 바른 교훈, 진리만 있지 않고 잘못된 교훈들, 비진리들, 허탄한 이야기들이 많이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그것들을 경계합니다. 우리는 바른 말씀을 전하는 동시에, 잘못된 말들을 경계해야 합니다. 우리는 성경에 계시된 하나님의 진리만 충실히 전해야 합니다.

둘째로, 우리는 왜 전해야 합니까?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을 전해야 할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것은 하나님의 심판과 영원한 지옥 형벌이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 1절에서 사도 바울은 "하나님 앞과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실 그리스도 예수 앞에서 그의 나타나실 것과 그의 나라를 두고 엄히 명한다"고 말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온 세상의 심판주로서 다시 나타나실 것입니다. 그는 모든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실 것입니다. 모든 사람은 다 하나님 앞에 서게 될 것입니다. 이 세상은 최종적으로 천국과 지옥으로 나뉠 것입니다. 지옥은 참으로 두려운 곳입니다. 그곳은 영원한 형벌의 장소입니다.

사도 바울은 로마서 1장에서 "하나님의 진노가 불의로 진리를 막는 사람들의 모든 경건치 않음과 불의에 대하여 하늘로 좇아 나타난다"고 말했습니다(롬 1:18). 주께서는, "몸은 죽여도 영혼은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에 멸하시는 자를 두려워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마 10:28). 또 그는, "만일 네 손이 너를 범죄케 하거든 찍어버리라. 불구자로 영생에 들어가는 것이 두 손을 가지고 지옥 꺼지지 않는 불에 들어가는 것보다 나으니라. 만일 네 발이 너를 범죄케 하거든 찍어버리라. 절뚝발이로 영생에 들어가는 것이 두 발을 가지고 지옥에 던지우는 것보다 나으니라. 만일 네 눈이 너를 범죄케 하거든 빼어버리라. 한 눈으로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두 눈을 가지고 지옥에 던지우는 것보다 나으니라. 거기는 구더기도 죽지 않고 불도 꺼지지 아니하느니라. 사람마다 불로서 소금 치듯함을 받으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막 9:43-49).

누가복음 16장에 보면, 주께서 말씀하신 부자와 나사로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 이야기는 악인이 죽은 후에 지옥에 들어감을 잘 증거합니다. 한 부자가 있었습니다. 그는 비싸고 아름다운 옷을 입고 날마다 호화로이 즐기며 살았습니다. 그 부자의 문 앞에는 나사로라는 이름의 한 거지가 온몸에 헌데를 앓으며 누워 부자의 상에서 떨어지는 것으로 배불리려 하였고 심지어 개들이 와서 그 헌데를 핥았습니다.

마침내 그 거지는 죽어 천사들에게 받들려 천국에 아브라함의 품에 들어갔습니다. 어느 날 부자도 죽었는데, 그는 지옥에 들어갔습니다. 그는 지옥에서 고통 중에 멀리 천국에 아브라함의 품에 있는 나사로를 보고 말하였습니다. "아버지 아브라함이여, 나를 긍휼히 여기사 나사로를 보내어 그 손가락 끝에 물을 찍어 내 혀를 서늘하게 하소서. 내가 이 불꽃 가운데서 고민하나이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대답하였습니다. "얘 너는 살았을 때에 네 좋은 것을 받았고 나사로는 고난을 받았으니 이것을 기억하라. 이제 저는 여기서 위로를 받고 너는 고민을 받느니라. 이뿐 아니라 너희와 우리 사이에 큰 구렁[간격]이 끼어 있어 여기서 너희에게 건너가고자 하되 할 수 없고 거기서 우리에게 건너올 수도 없게 하였느니라."

부자는 다시 말하였습니다. "구하노니 아버지여, 나사로를 내 아버지의 집에 보내소서. 내 형제 다섯이 있으니 저희에게 증거하게 하여 저희로 이 고통 받는 곳에 오지 않게 하소서." 아브라함은 말했습니다. "저희에게 모세와 선지자들이 있으니 그들에게 들을지니라." 부자는 말하였습니다. "그렇지 아니하니이다, 아버지 아브라함이여. 만일 죽은 자에게서 저희에게 가는 자가 있으면 회개하리이다." 아브라함은 다시 말했습니다. "모세와 선지자들에게 듣지 아니하면 비록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는 자가 있을지라도 권함을 받지 아니하리라."

이 이야기에서 증거된 대로, 악인들에게는 그들의 죄에 상응하는 지옥의 형벌이 있을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구원이 필요하며 전도가 필요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심판이 있고 영원한 지옥 형벌이 있기 때문에, 우리는 구주 예수 그리스도를 전해야 하는 것입니다.

셋째로, 우리는 어떻게 전해야 합니까? 전도에는 어떤 특별한 기술이 필요합니까? 아닙니다.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전하는 것이며 우리 속에 계신 성령께서 힘주시고 도우셔서 감당하는 것입니다. 전도는 어떤 기술로 하는 것이 아니고 오직 은혜로, 믿음으로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에 근거하여 몇 가지 생각할 점이 있다고 봅니다. 우선, 우리에게 기본적으로 모범된 행실이 필요합니다. 오늘 본문의 교훈은 디모데후서 3:16-17에서 이어지는 교훈입니다. 사도 바울은 앞장에서 성경이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책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며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하고 모든 선한 일을 행하기에 온전케 한다고 말했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디도서 1:9에서 교회의 장로들이, "미쁜 말씀의 가르침을 그대로 지켜야 하리니 이는 능히 바른 교훈으로 권면하고 거스려 말하는 자들을 책망하게 하려 함이라"고 말했습니다.

우리는 평소에 경건하고 선한 생활을 해야 합니다. 우리는 남에게 악을 행치 말고 거짓말을 하지 말고 이기적이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는 항상 겸손하고 친절하며 사랑을 베푸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러지 않고서는, 우리가 하나님의 진리와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 그리고 새 삶을 전한다는 것이 무의미할 것입니다.

또, 본문은 우리가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라"고 말합니다. 전도는 전도하는 시간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고 우리가 접촉하고 사귀는 모든 사람에게 언제나 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항상 사람들에게 예수님을 소개하고 교회를 소개하고 교회로 초청해야 합니다.

또, 본문은 "범사에 오래 참음으로" 하라고 말합니다. 아기를 출산하고 양육하는 일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듯이, 영혼을 구원하고 양육하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것은 많은 인내가 필요합니다. 죄로 죽은 영혼을 살리고 병든 인격을 고치고 온전하게 만드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만 가능하고 또 많은 교훈과 훈련이 필요합니다.

또, 본문은 고난과 어려움을 각오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3절로 5절은, "때가 이르리니 사람이 바른 교훈을 받지 아니하며 귀가 가려워서 자기의 사욕을 좇을 스승을 많이 두고 또 그 귀를 진리에서 돌이켜 허탄한 이야기를 좇으리라. 그러나 너는 모든 일에 근신하여 고난을 받으며 전도인의 일을 하며 네 직무를 다하라"고 말합니다.

전도의 어려움은 교회 밖에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물론 교회 밖에 있는 무신론자들, 반기독교 운동가들, 공산주의자들, 또는 이슬람교도들 같은 이방종교인들의 핍박도 많았습니다. 그러나 기독교 역사를 보면, 교회 안에 있는 잘못된 신앙을 가진 자들, 예를 들어, 로마 천주교인들, 이단종파 사람들, 타락한 교권주의자들이 참된 신앙을 가진 성도들을 많이 핍박하였습니다.

오늘날도 점점 세속적인 교회지도자들, 교회연합주의자들, 교회 안에 실용주의적 풍조를 조장하는 자들이 참된 목사들과 성도들을 핍박하는 때가 오고 있습니다. 신약성경 요한계시록 13장은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시기 직전에 배교적인 교회가 나타나 적그리스도와 결탁하고 그것에 항거하는 진실한 성도들을 죽이고 물건을 사고 파는 일도 못하게 핍박할 것이라고 예언하였습니다.

전도는 안팎으로 고난과 어려움이 있는 일입니다. 구약시대의 선지자들과 신약시대의 사도들은 다 고난과 핍박의 길을 갔습니다. 사도 바울은 많은 고난을 당하며 복음을 전했습니다. 디모데후서 3장에서 그는, "나의 교훈과 행실과 의향과 믿음과 오래 참음과 사랑과 인내와 핍박과 고난과 또한 안디옥과 이고니온과 루스드라에서 당한 일과 어떠한 핍박받은 것을 네가 과연 보고 알았거니와 주께서 이 모든 것 가운데서 나를 건지셨느니라. 무릇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경건하게 살고자 하는 자는 핍박을 받으리라"(10-12절)고 증거하였습니다.

말씀을 맺겠습니다. 전도는 신약교회에 부여된 최대의 사명입니다. 그것은 모든 성도에게 주어진 임무입니다. 하나님의 뜻은 이 복음이 온 세상에 전파되는 것입니다. 이 전도의 일을 위해 오늘날도 개척전도자들과 선교사들이 곳곳에서 수고하고 있습니다. 우리도 이웃 사람에게, 예수께서 우리 죄를 대속하신 구주이시며 그를 믿으면 죄사함과 영생을 얻고 천국에 들어감을 전하며 그를 참된 교회로 인도해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심판과 지옥 형벌이 있음을 알고 안타까운 마음을 가지고 사람들에게 전도합시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죄에 대해 얼마나 노하시는지 사람들에게 알게 합시다. 우리는 지옥을 향해 가고 있는 저 불쌍한 영혼들을 위해 전도합시다.

영혼을 죄에서 구원하며 회개시키고 예수 믿게 하는 일은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면 아무도 할 수 없는 어려운 일입니다. 또 말세에는 바른 교훈을 싫어하는 풍조가 교회 안팎으로 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오래 참고 고난과 어려움을 각오하며 전도하는 일을 항상 힘씁시다.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써 말씀을 전파합시다.

 

이사야 강해:                             애굽과 구스가 사로잡힐 것

[20:1] 앗수르 왕 사르곤이 군대장관을 . . . .

하나님께서 선지자 이사야에게 본장의 말씀을 주신 때는 앗수르 왕 사르곤이 군대장관을 아스돗으로 보내어 아스돗을 쳐서 취하였던 해이었다. 앗수르 왕 사르곤은 사르곤 2세로서 주전 722년부터 705년까지 통치했던 인물로 알려진다. 그는, 주전 722년 이스라엘을 침공하여 멸망시켰던 앗수르 왕 살만에셀 5세(주전 727-722)의 왕위를 빼앗고 그를 이어 왕이 된 자이었다.

그는 군대장관을 아스돗으로 보내어 그것을 쳐서 취하였다. 본문에 '군대장관'이라는 말(타르탄)은 '앗수르의 야전사령관 직함'이라고 한다(BDB). 아스돗은, 앗수르에서 애굽으로 이어지는 고대의 중심도로인 해안 도로(Via Maris)에서 블레셋의 첫 주요 도시이다. 주전 713년 아스돗이 앗수르를 배반하였고 다른 도시들도 동참하였으며, 애굽은 그들에게 도움을 약속하였다. 그러나 주전 711년 앗수르는 아스돗을 점령하였다. 그것은 앗수르의 애굽 침공이 임박하였음을 의미하였다. 발굴된 조각문에, 사르곤은 "내가 아스돗으로 나아가 포위하고 정복하였다"고 기록하였다.

아스돗이 앗수르 왕에게 점령된 때 하나님께서 이사야에게 말씀하셨다. 하나님께서는 역사 속에서 특별한 사건 때에 자신의 뜻을 알리셨다. 오늘날에는 하나님께서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통해 인간의 삶의 모든 상황에 대한 하나님의 일반적인 뜻을 알려주신다. 신구약성경은 우리의 믿음과 행위에 대한 정확무오한 법칙이다.

[2-4절] 곧 그 때에 여호와께서 아모스의 아들 . . . .

아스돗이 앗수르에게 점령된 때에 여호와께서는 이사야에게 말씀하셨다. "갈지어다. 네 허리에서 베를 끄르고 네 발에서 신을 벗을지니라." 즉 겉옷을 벗고 신을 벗으라는 명령이었다. 그것은 부끄러운 내용의 이상한 명령이었다. 그러나 이사야는 하나님의 명령에 그대로 즉시 순종하였다. 그는 그 명령대로 벗은 몸과 벗은 발로 행하였다.

하나님께서는 그 명령에 대해 설명하셨다. 그는, "나의 종 이사야가 3년 동안 벗은 몸과 벗은 발로 행하여 애굽과 구스에 대하여 예표와 기적이 되게 되었느니라"고 말씀하셨다. 그는 또, "이와 같이 애굽의 포로와 구스의 사로잡힌 자가 앗수르 왕에게 끌려갈 때에 젊은 자나 늙은 자가 다 벗은 몸, 벗은 발로 볼기까지 드러내어 애굽의 수치를 보이리라"고 말씀하셨다. 그것은 애굽과 구스 사람들이 앗수르와의 전쟁에서 패함으로 포로로 잡혀 끌려갈 것을 상징적으로, 예표적으로 보여주신 것이다. '3년 동안'이라는 말은 이 예언이 3년 안에 이루어진다는 뜻으로 보인다. 이사야가 3년 동안 벗은 몸과 벗은 발로 행하는 것은 애굽과 구스 사람들에게 또 유대인들에게 확실한 교훈이 될 것이다.

[5-6절] 그들이 그 바라던 구스와 . . . .

하나님께서는 또, "그들이 그 바라던 구스와 자랑하던 애굽을 인하여 놀라고 부끄러워할 것이라. 그 날에 이 해변 거민이 말하기를 우리가 믿던 나라 곧 우리가 앗수르 왕에게서 벗어나기를 바라고 달려가서 도움을 구하던 나라가 이같이 되었은즉 우리가 어찌 능히 피하리요 하리라"고 말씀하셨다.

본문의 '그들'과 '이 해변 거민'은 이스라엘 땅에 거주하는 자들 곧 유대인들과 블레셋 사람들을 가리킬 것이다. 그들은 애굽과 구스를 바라고 의지하며 자랑하였다. 그들은 애굽을 믿었고 앗수르 왕에게서 벗어나기를 바라며 애굽으로 달려가서 도움을 구하였다. 특히 하나님의 백성인 유대인들이 하나님 대신에 애굽과 구스를 의지하였다. 이것은 하나님께 대한 불신앙의 죄악이었다.

그러나 이제 애굽과 구스가 앗수르에게 패망할 때에 그들은 놀라고 부끄러워할 것이며 피할 곳을 몰라 당황해 할 것이다. 그들은 늦게나마 애굽과 구스가 참으로 사람들이 의지하고 자랑할 만한 대상이 되지 못함을 깨닫게 될 것이다.

본장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하나님께서는 자기 백성이 하나님 대신 사람이나 세상의 것을 의지하는 것을 기뻐하지 않으시고 노여워하신다. 하나님을 경외치 않는 블레셋 사람들은 몰라도, 하나님을 경외하는 유대인들은 애굽이나 구스를 의지하지 말아야 하였다. 우리는 땅에 있는 모든 것이 우리가 참으로 의지하고 소망할 만한 것이 못됨을 인정해야 한다. 우리가 세상의 것들을 의지한다면 하나님께서는 그것을 노여워하시고, 우리는 어느 날 그것들 때문에 크게 낙망하게 될 것이다.

둘째로, 하나님께서는 자기 백성이 하나님 대신 의지하는 것을 폐하신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잘못 의지하는 세상의 것이 얼마나 허무한 것인가를 깨우쳐 주신다. 그것은 하나님의 은혜이다. 우리가 의지하던 것이 무너질 때 우리에게 큰 충격과 낙망이 되겠지만, 그것은 오히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은혜이다. 우리는 처음부터 세상의 것들을 의지하지 말고 세상의 것들이 헛되다는 것을 알았어야 하였다.

셋째로, 그러므로 우리는 이 세상의 것들을 의지하지 말고 하나님만 의지하며 살자. 이것은 새로운 진리가 아니고 인생이 본래부터 가져야 했던 진리이다. 인생은 하나님을 떠나서 살 수 없는 존재이다. 인생은 창조될 때부터 하나님을 의지하며 그의 계명에 순종하며 살아야 하는 존재이었다. 이제라도, 우리는 그 사실을 깨닫고 하나님께로 돌아와야 한다. 그것은 인생의  정로로 돌아오는 것이다.

주께서는 제자들에게 "아무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고 말씀하셨다(마 16:24). 또 주께서는, "무릇 내게 오는 자가 자기 부모와 처자와 형제와 자매와 및 자기 목숨까지 미워하지 아니하면 능히 나의 제자가 되지 못하고 누구든지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지 않는 자도 능히 나의 제자가 되지 못하리라"(눅 14:26-27)고 말씀하셨고, 또 "이와 같이 너희 중에 누구든지 자기의 모든 소유를 버리지 아니하면 능히 내 제자가 되지 못하리라"(눅 14:33)고 하셨다. 우리는 허무한 세상의 것들을 의지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만 의지하며 살자.

 

◈배교와 타협과 혼란의 시대에 바른 길을 붙들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