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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수기 강해

김효성 목사

 2018년 1월 11일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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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말

우리는 신구약 66권의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이며 우리의 신앙과 생활에 정확무오한 유일의 법칙임을 믿는다. 이것은 16세기 개신교 종교개혁의 유산을 받은 모든 개신교회들의 공통적 신념이다. 누구든지 무엇을 주장하려면 성경에 근거해서 주장해야 하고 누구든지 무슨 이의를 제기하려면 성경에 근거해서 제기해야 할 것이다.

성경은 개인의 신앙생활뿐 아니라, 또한 교회의 목회 전반, 목사의 설교나 지교회 혹은 전체 교회의 모든 활동에도 유일한 규범이다. 우리는 성경을 제쳐놓고 무슨 활동을 계획하거나 수행해서는 안 될 것이다. 오늘날처럼 영적으로 혼란한 시대, 다양한 풍조와 운동이 많은 시대에, 우리는 여전히 성경으로 돌아가 성경이 무엇을 말하는지 묵상하기를 원하며 성경에 계시된 하나님의 모든 뜻을 알기를 원한다. 성경의 참된 교리와 교훈이 최종적 권위이기 때문이다.

민수기도 모세가 쓴 책이다. 민수기 1:1은 “이스라엘 자손이 애굽 땅에서 나온 후 제2년 2월 1일에 여호와께서 시내 광야 회막에서 모세에게 일러 가라사대”라고 증거한다. 우리는 구약성경의 처음 다섯 권의 책이 모세의 저작임을 믿는다. 그것은 구약성경 전체와 정통 유대교의 전통과 예수 그리스도 자신과 그의 사도들에 의해 밝히 증거된다(출 24:4; 34:27; 민 33:1-2; 신 31:9; 수 1:7-8; 8:31-35; 왕상 2:2; 왕하 14:6; 대하 34:14; 스 6:18; 느 8:1; 13:1; 단 9:11-13; 말 4:4; 마 19:8; 막 12:26; 요 5:46-47; 7:19; 행 3:22; 롬 10:5 등).

모세는 구약의 처음 다섯 권을 쓰기에 가장 적합하고 충분한 자격자이었다. (1) 그는 고대 세계에서 매우 찬란한 문화를 가졌던 애굽 18왕조 때에 궁중 교육을 받았으므로 책을 쓸 수 있는 충분한 훈련을 받았다. (2) 그는 조상들로부터 하나님의 계시와 족장들의 행적에 대한 풍부한 내용을 구전(口傳)으로 전달받을 수 있었다. (3) 그는 애굽에서 40년간과 시내 반도에서 40년간 생활했으므로 그 지역의 지형과 기후에 대한 상당한 지식을 갖고 있었다. (4) 광야생활 40년은 오경보다 몇 배의 부피의 책을 쓸 수 있는 충분한 시간이었다. (5) 고고학적 발굴에 의하면, 모세 시대는 여인들이 화장실 물품까지 기록할 수 있을 정도로 언어가 발달된 문화를 가지고 있었다.

민수기의 히브리어 성경 명칭베미드바르(‘광야에서’)이다. 민수기는 애굽에서 나온 이스라엘 백성의 광야 40년간의 역사이다. ‘민수기’라는 명칭은 고대 헬라어 70인역(ajriqmoiv, ‘수(數)들’)과 영어성경의 명칭('Numbers')을 따른 것이다. 그것은 본서에 나오는 두 번의 인구조사 때문에(민 1, 26장) 붙여진 이름일 것이다.

민수기의 특징적 진리는 ‘인간의 전적 부패성’이다. 이스라엘의 광야 40년간의 역사는 불신앙, 원망, 불평, 불순종의 반복된 역사이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징벌하셨고 그들은 광야에서 유리하며 방황하였다. 1-10장은 시내 광야에서의 일들, 11-21장은 모압 평지까지의 역사, 그리고 22-36장은 모압 평지에서의 일들을 증거한다. 

본문 혹은 각주에 자주 사용된 약어

KJV

영어 King James Version.

NASB

영어 New American Standard Version.

NIV

영어 New International Version.

LXX

고대 헬라어 70인역.

Syr 

고대 수리아어역.

It 

고대 라틴어역.

Vg

고대 라틴어 Vulgate역.

BDB

Brown-Driver-Briggs, Hebrew Lexicon of the O. T.

KB

Koehler-Baumgartner, Lexicon in Veteris Testamenti Libros.

Langenscheidt 

Karl Feyerabend, Langenscheidt's Pocket Hebrew Dictionary to the Old

Testament.

Holladay 

William L. Holladay, A Concise Hebrew and Aramaic Lexicon of the

Old Testament.

Poole

Matthew Poole, A Commentary on the Holy Bible

JFB

Jamieson, Faussett, Brown의 주석.

NBD

The New Bible Dictionary. IVP.

NBC

The New Bible Commentary. IVP

  

제목 차례

 1장: 첫 번째 인구조사        

 2장: 진영들의 배열    

 3장: 레위 지파의 인구조사      

 4장: 레위 지파의 임무     

 5장: 의심의 소제     

 6장: 나실인          

 7장: 족장들의 봉헌예물  

 8장: 레위인의 성별      

 9장: 불기둥, 구름기둥  

10장: 은나팔        

11장: 백성의 불평과 메추라기     

12장: 미리암의 비방     

13장: 가나안 정탐        

14장: 원망과 징벌      

15장: 여러 법들      

16장: 고라 일당의 반역       

17장: 아론의 싹난 지팡이   

18장: 레위 지파의 직무와 보수   

19장: 부정 제거의 물      

20장: 모세의 실수    

21장: 불뱀 사건       

22장: 모압 왕이 발람을 청함     

23장: 발람이 이스라엘을 축복함  

24장: 발람이 이스라엘을 세 번째 축복함

25장: 모압 여자들과 음행함  

26장: 두 번째 인구조사          

27장: 여호수아를 후계자로 세움  

28장: 각종 절기의 예물 (1) 

29장: 각종 절기의 예물 (2)  

30장: 서원에 대한 법 

31장: 미디안에 대한 보복   

32장: 세 지파가 요단 동편 땅을 얻음   

33장: 광야 노정   

34장: 가나안 땅의 경계   

35장: 도피성    

36장: 여자 상속자의 결혼 문제  

 

1장: 첫 번째 인구조사

민수기 1장은 첫 번째 인구조사의 일을 증거한다.

[1-4절] 이스라엘 자손이 애굽 땅에서 나온 후 제2년 2월 1일에 여호와께서 시내 광야 회막에서 모세에게 일러 가라사대 너희는 . . . .

이스라엘 자손이 애굽 땅에서 나온 후 제2년 2월 1일에 여호와께서 시내 광야 회막에서 모세에게 말씀하셨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자손이 애굽에서 나오던 달을 한 해의 첫 달로 삼으라고 명령하셨고(출 12:2) 그들은 그 달 14일에 유월절을 지켰었다. 또 그들은 애굽에서 나온 후 제2년 1월 1일에 성막을 건립하였다(출 40:2, 17). 그리고 한 달 후 제2년 2월 1일 시내 광야 회막에서 하나님의 명령이 모세에게 떨어졌다. 회막(會幕, 오헬 모에드)은 ‘만남의 천막’이라는 뜻으로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이 만나는 곳이었다. 회막이 세워진 후에는 하나님께서 회막에서 모세에게 말씀하셨다(레 1:1; 민 1:1; 7:89).

하나님의 명령은 인구조사에 관한 것이었다. 그는 말씀하시기를, “너희는 이스라엘 자손의 모든 회중 각 남자의 수(로쉬)1)를 그들의 가족과 종족을 따라 그 명수대로 계수할지니 이스라엘 중 20세 이상으로 싸움에 나갈 만한 모든 자를 너와 아론은 그 군대대로 계수하되 매 지파의 각기 종족의 두령 한 사람씩 너희와 함께 하라”고 하셨다. 인구조사의 총책임은 모세와 아론이며2) 각 지파의 대표인 열두 명의 족장들이 그들을 도와 그 일을 행할 것이며 그 대상은 20세 이상의 남자로서 싸움에 나갈 만한 모든 자들이었다.

[5-19절] 너희와 함께 설 사람들의 이름은 이러하니 르우벤에게서는 스데울의 아들 엘리술이요 시므온에게서는 수리삿대의 아들 슬루미엘이요 유다에게서는 암미나답의 아들 나손이요 잇사갈에게서는 수알의 아들 느다넬이요 스불론에게서는 헬론의 아들 엘리압이요 요셉 자손에게서는 에브라임에 암미훗의 아들 엘리사마와 므낫세에 브다술의 아들 가말리엘이요 베냐민에게서는 기드오니의 아들 아비단이요 단에게서는 암미삿대의 아들 아히에셀이요 아셀에게서는 오그란의 아들 바기엘이요 갓에게서는 드우엘의 아들 엘리아삽이요 납달리에게서는 에난의 아들 아히라니라 하시니 그들은 회중에서 부름을 받은 자요 그 조상 지파의 족장으로서 이스라엘 천만인의 두령이라. 모세와 아론이 지명된 이 사람들을 데리고 2월 1일에 온 회중을 모으니 그들이 각기 가족과 종족을 따라 20세 이상으로 그 명수를 의지하여 자기 계통을 말하매(잇얄레두)[가계(家系)를 말하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하신 대로 그가 시내 광야에서 그들을 계수하였더라.

5-19절은 각 지파의 대표자인 열두 족장들의 이름을 증거한다.

[20-25절] 이스라엘의 장자 르우벤의 아들들에게서 난 자를 그들의 가족과 종족을 따라 20세 이상으로 싸움에 나갈 만한 각 남자를 그 명수대로 다 계수하니 르우벤 지파의 계수함을 입은 자가 46,500명이었더라. 시므온의 아들들에게서 난 자를 그들의 가족과 종족을 따라 20세 이상으로 싸움에 나갈 만한 각 남자를 그 명수대로 다 계수하니 시므온 지파의 계수함을 입은 자가 59,300명이었더라. 갓의 아들들에게서 난 자를 그들의 가족과 종족을 따라 20세 이상으로 싸움에 나갈 만한 자를 그 명수대로 다 계수하니 갓 지파의 계수함을 입은 자가 45,650명이었더라.

[26-31절] 유다의 아들들에게서 난 자를 그들의 가족과 종족을 따라 20세 이상으로 싸움에 나갈 만한 자를 그 명수대로 다 계수하니 유다 지파의 계수함을 입은 자가 74,600명이었더라. 잇사갈의 아들들에게서 난 자를 그들의 가족과 종족을 따라 20세 이상으로 싸움에 나갈 만한 자를 그 명수대로 다 계수하니 잇사갈 지파의 계수함을 입은 자가 54,400명이었더라. 스불론의 아들들에게서 난 자를 그들의 가족과 종족을 따라 20세 이상으로 싸움에 나갈 만한 자를 그 명수대로 다 계수하니 스불론 지파의 계수함을 입은 자가 57,400명이었더라.

[32-37절] 요셉의 아들 에브라임의 아들들에게서 난 자를 그들의 가족과 종족을 따라 20세 이상으로 싸움에 나갈 만한 자를 그 명수대로 다 계수하니 에브라임 지파의 계수함을 입은 자가 40,500명이었더라. 므낫세의 아들들에게서 난 자를 그들의 가족과 종족을 따라 20세 이상으로 싸움에 나갈 만한 자를 그 명수대로 다 계수하니 므낫세 지파의 계수함을 입은 자가 32,200명이었더라. 베냐민의 아들들에게서 난 자를 그들의 가족과 종족을 따라 20세 이상으로 싸움에 나갈 만한 자를 그 명수대로 다 계수하니 베냐민 지파의 계수함을 입은 자가 35,400명이었더라.

[38-43절] 단의 아들들에게서 난 자를 그들의 가족과 종족을 따라 20세 이상으로 싸움에 나갈 만한 자를 그 명수대로 다 계수하니 단 지파의 계수함을 입은 자가 62,700명이었더라. 아셀의 아들들에게서 난 자를 그들의 가족과 종족을 따라 20세 이상으로 싸움에 나갈 만한 자를 그 명수대로 다 계수하니 아셀 지파의 계수함을 입은 자가 41,500명이었더라. 납달리의 아들들에게서 난 자를 그들의 가족과 종족을 따라 20세 이상으로 싸움에 나갈 만한 자를 그 명수대로 다 계수하니 납달리 지파의 계수함을 입은 자가 53,400명이었더라.

[44-46절] 이 계수함을 입은 자는 모세와 아론과 각기 이스라엘 종족을 대표한 족장 12인이 계수한 자라. 이같이 이스라엘 자손의 그 종족을 따라 20세 이상으로 싸움에 나갈 만한 자가 이스라엘 중에서 다 계수함을 입었으니 계수함을 입은 자의 총계가 603,550명이었더라.

20-46절까지는 르우벤 지파부터 납달리 지파까지 열두 지파에서 20세 이상으로 싸움에 나갈 만한 남자들의 수가 603,550명이었다고 증거한다. 레위 지파는 제외되었고, 그 대신 요셉 지파가 에브라임 지파와 므낫세 지파 둘로 계수되었다. 40년 광야 생활이 지난 후에 이스라엘 백성은 모압 평지에서 또 다시 인구조사를 하는데, 민수기 26장에 증거되어 있는 두 번째 인구조사의 총수는 601,730명으로서 처음 인구조사의 총수와 비슷했고 단지 1,820명이 적었다.

[47-54절] 오직 레위인은 그 조상의 지파대로 그 계수에 들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일러 가라사대 레위 지파만은 너는 계수치 말며 그들을 이스라엘 자손 계수 중에 넣지 말고 그들로 증거막과 그 모든 기구와 그 모든 부속품을 관리하게 하라 그들은 그 장막과 그 모든 기구를 운반하며 거기서 봉사하며 장막 사면에 진을 칠지며 장막을 운반할 때에는 레위인이 그것을 걷고 장막을 세울 때에는 레위인이 그것을 세울 것이요 외인이 가까이 오면 죽일지며 이스라엘 자손은 막을 치되 그 군대대로 각각 그 진과 기 곁에 칠 것이나 레위인은 증거막 사면에 진을 쳐서 이스라엘 자손의 회중에게 진노가 임하지 않게 할 것이라. 레위인은 증거막에 대한 책임을 지킬지니라 하셨음이라. 이스라엘 자손이 그대로 행하되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하신 대로 행하였더라.

레위 사람들은 그 징집 가능 인원의 총수에서 제외되었고 레위인들은 증거막(미쉬칸 하에둣)[10계명이 든 법궤의 장막]과 그 모든 기구와 그 모든 부속품을 관리하고 운반하고 봉사하고 장막 사면에 진을 치고 그것을 지키고 외인의 접근을 금지하는 의무와 책임을 가졌다. 레위 지파의 직무는 4장에서 자세히 증거될 것이다. 외인이 가까이 오면 죽이라고 명령되어 있다. 하나님께서는 그런 제도를 통해 자신의 거룩하심을 증거하셨다. 죄인은 대속제물의 피가 없이는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 가까이 나아갈 수 없었다.

 


2장: 진영들의 배열

민수기 2장은 20세 이상의 건강한 남자만 약 60만명이 넘는, 큰 군대와 같은 이스라엘 자손들이 광야에서 진영들로 나누어 거하고 질서 정연하게 행진하였음을 증거한다.

[1-2절] 여호와께서 모세와 아론에게 일러 가라사대 이스라엘 자손은 각각 그 기와 그 종족의 기호 곁에 진을 치되 회막을 사면으로 . . . .

여호와께서는 모세와 아론에게 “이스라엘 자손이 각각 그 기와 그 종족의 기호 곁에 진을 치되 회막을 사면으로 대하여 치라”고 명하셨다. 2절 끝에 ‘대하여’라는 원어(민네게드)는 ‘좀 떨어져서, 약간 거리를 두고’라는 뜻이다(BDB, KJV, NASB, NIV).

[3-9절] 동방 해 돋는 편에 진 칠 자는 그 군대대로 유다의 진기(陣旗)에 속한 자라. 유다 자손의 족장은 암미나답의 아들 나손이요 그 군대는 계수함을 입은 자 74,600명이며; 그 곁에 진 칠 자는 잇사갈 지파라, 잇사갈 자손의 족장은 수알의 아들 느다넬이요 그 군대는 계수함을 입은 자 54,400명이며; 또 스불론 지파라, 스불론 자손의 족장은 헬론의 아들 엘리압이요 그 군대는 계수함을 입은 자 57,400명이니, 유다 진에 속한 군대의 계수함을 입은 군대의 총계가 186,400명이라. 그들은 제1대로 진행할지니라.

이스라엘 자손의 진들은 크게 넷으로 나뉘었다. 각 진마다 깃발(데겔)을 달았다. 그것이 진기(陣旗)이었다. 동쪽을 맡은 제1진기는 유다 진기로서 유다 지파, 잇사갈 지파, 스불론 지파로 구성되었다. 그들은 다 야곱의 아내 레아의 아들들의 자손들이다. 제1진기의 총수는 186,400명이었다.

[10-16절] 남편에는 르우벤 군대의 진기(陣旗)가 있을 것이라. 르우벤 자손의 족장은 스데울의 아들 엘리술이요 그 군대는 계수함을 입은 자 46,500명이며; 그 곁에 진 칠 자는 시므온 지파라, 시므온 자손의 족장은 수리삿대의 아들 슬루미엘이요 그 군대는 계수함을 입은 자 59,300명이며; 또 갓 지파라, 갓 자손의 족장은 르우엘의 아들 엘리아삽이요 그 군대는 계수함을 입은 자 45,650명이니, 르우벤 진에 속한 계수함을 입은 군대의 총계가 151,450명이라. 그들은 제2대로 진행할지니라.

남쪽을 맡은 제2진기는 르우벤 진기로서 르우벤 지파, 시므온 지파, 갓 지파로 구성되었다. 그들은 다 레아의 두 아들과 그의 여종 실바의 아들의 자손들이다. 제2진기의 총수는 151,450명이었다.

[17절] 그 다음에 회막이 레위인의 진과 함께 모든 진의 중앙에 있어 진행하되 그들의 진 친 순서대로 각 사람은 그 위치에서 그 기를 따라 앞으로 행할지니라.

그 다음에 회막이 레위인의 진과 함께 모든 진의 중앙에 있었다.

[18-24절] 서편에는 에브라임의 군대의 진기(陣旗)가 있을 것이라. 에브라임 자손의 족장은 암미훗의 아들 엘리사마요 그 군대는 계수함을 입은 자 40,500명이며; 그 곁에는 므낫세 지파가 있을 것이라, 므낫세 자손의 족장은 브다술의 아들 가말리엘이요 그 군대는 계수함을 입은 자 32,200명이며; 또 베냐민 지파라, 베냐민 자손의 족장은 기드오니의 아들 아비단이요 그 군대는 계수함을 입은 자 35,400명이니, 에브라임 진에 속한 계수함을 입은 군대의 총계가 108,100명이라. 그들은 제3대로 진행할지니라.

서쪽을 맡은 제3진기는 에브라임 진기로서 에브라임 지파, 므낫세 지파, 베냐민 지파로 구성되었다. 그들은 다 라헬의 아들들과 손자들이다. 제3진기의 총수는 108,100명이었다.

[25-31절] 북편에는 단 군대의 진기(陣旗)가 있을 것이라. 단 자손의 족장은 암미삿대의 아들 아히에셀이요 그 군대는 계수함을 입은 자 62,700명이며; 그 곁에 진 칠 자는 아셀 지파라, 아셀 자손의 족장은 오그란의 아들 바기엘이요 그 군대는 계수함을 입은 자 41,500명이며; 또 납달리 지파라, 납달리 자손의 족장은 에난의 아들 아히라요 그 군대는 계수함을 입은 자 53,400명이니, 단의 진에 속한 계수함을 입은 군대의 총계가 157,600명이라. 그들은 기를 따라 후대로 진행할지니라 하시니라.

북쪽을 맡은 제4진기는 단 진기로서 단 지파, 아셀 지파, 납달리 지파로 구성되었다. 그들은 라헬의 여종 빌하의 아들 둘(단, 납달리)과 레아의 여종 실바의 아들 하나(아셀)의 자손들이다. 제4진기의 총수는 157,600명이었다.

[32-34절] 이상은 이스라엘 자손이 그 종족을 따라 계수함을 입은 자니 모든 진의 군대 곧 계수함을 입은 자의 총계가 603,550명이었으며 레위인은 이스라엘 자손과 함께 계수되지 아니하였으니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하심과 같았느니라.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하신 대로 다 준행하여 각기 가족과 종족을 따르며 그 기를 따라 진 치기도 하며 진행하기도 하였더라.

이와 같이, 이스라엘 자손들 중에 싸움에 나갈 만한 20세 이상의 남자들의 총수는 603,550명이었다. 만일 노인들과 여인들과 아이들을 포함하면, 이스라엘 자손들의 수는 200만명 이상이었을 것이다.

민수기 1-2장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하나님께서는 회막에서 모세에게 말씀하셨다. 회막을 짓기 전에는 시내산에서 말씀하셨었다(출 19:19). 그러나 회막을 지은 후에는 회막에서 말씀하셨다(레 1:1; 민 1:1; 7:89). 구약의 회막은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한다. 요한복음 2:21, “예수는 성전된 자기 육체를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십자가 공로와 의를 힘입어 하나님을 만나며 그와 교제한다. 예수 그리스도는 ‘말씀’이라고 불리셨다(요 1:1). 그의 말씀은 은혜와 진리가 충만한 말씀이었다. 그 말씀은 신약성경, 특히 복음서들에 기록되어 있다. 오늘날 사람들은 신약성경을 통해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수 있다.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다(눅 16:29; 딤후 3:16).

또 구약의 성막은 신약교회를 상징하는 뜻도 있다. 고린도전서 3:16,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거하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뇨?” 교회는 사도 바울의 증거대로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터 위에 세움을 입었고(엡 2:20) 진리의 기둥과 터이다(딤전 3:15). 물론 이것은 바른 교회를 가리킨다. 바른 교회는 성경의 바른 교훈을 가지고 있고 그것을 증거한다. 그것은 하나님의 음성이다. 하나님께서는 오늘날 바른 교회의 성경적 교훈을 통해 말씀하신다.

둘째로, 이스라엘 백성은 광야에서 회막을 중심으로 진을 치고 진행하였다. 회막은 이스라엘 자손의 모든 진의 중앙에 있었다(민 2:17). 그것은 우리가 하나님 중심, 예수 그리스도 중심, 성경 중심, 바른 교회 중심으로 살아야 함을 보인다. 우리의 신앙생활은 하나님 중심, 예수 그리스도 중심, 성경 중심, 바른 교회 중심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그것이 하나님의 뜻이다. 신구약성경은 구원에 이르는 지혜를 주는 책이며(딤후 3:15) 또 바른 교회를 통해 주시는 성경적 교훈은 우리의 신앙과 생활의 지침이 되고 우리에게 위로와 기쁨이 된다. 그러므로 우리는 사시고 참되신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를 사랑함같이 신구약성경과 바른 교회를 사랑하고 성경 중심, 교회 중심으로 살아야 한다.

 

 

3장: 레위 지파의 인구조사

민수기 3장은 레위 사람들의 1개월 이상된 자들의 수가 22,000명임과 또 그들의 직무와 진을 친 위치를 증거한다.

[1-4절] 여호와께서 시내산에서 모세와 말씀하실 때에 아론과 모세의 낳은 자가 이러하니라. 아론의 아들들의 이름은 장자는 나답이요 다음은 아비후와 엘르아살과 이다말이니 이는 아론의 아들들의 이름이며 그들은 기름을 발리우고 거룩히 구별되어 제사장 직분을 위임받은 제사장들이라. 나답과 아비후는 시내 광야에서 다른 불을 여호와 앞에 드리다가 여호와 앞에서 죽었고 무자하였고 엘르아살과 이다말이 그 아비 아론 앞에서 제사장의 직분을 행하였더라.

1-4절은 아론의 아들들은 네 명이었는데, 그 중 처음 두 아들은 하나님의 명하지 않은 다른 불을 하나님 앞에 드리다가 하나님 앞에서 죽었음을 언급한다(제사장은 3명만 남음). 그것은 하나님의 두려우심을 증거한다. 성경에는 이런 일들이 종종 기록되어 있다. 사무엘상 6:19에 보면, 벧세메스 사람들은 하나님의 궤를 들여다 보았기 때문에 50,070명이 죽었다. 사무엘하 6:6-7에 보면, 웃사는 하나님의 궤를 수레에 싣고 옮기다가 나곤의 타작마당에 이르러 소들이 뛰므로 손을 들어 하나님의 궤를 붙들었다가 즉사하였다.

[5-10절] 여호와께서 또 모세에게 일러 가라사대 레위 지파로 나아와 제사장 아론 앞에 서서 그에게 시종하게 하라. 그들이 회막 앞에서 . . . .

여호와께서는 모세에게 또 말씀하셨다. “레위 지파로 나아와 제사장 아론 앞에 서서 그에게 시종하게 하라. 그들이 회막 앞에서 아론의 직무와 온 회중의 직무를 위하여 회막에서 시무하되 곧 회막의 모든 기구를 수직(守直)하며 이스라엘 자손의 직무를 위하여 장막에서 시무할지니 너는 레위인을 아론과 그 아들들에게 주라. 그들은 이스라엘 자손 중에서 아론에게 온전히 돌리운 자니라. 너는 아론과 그 아들들을 세워 제사장 직분을 행하게 하라. 외인이 가까이 하면 죽임을 당할 것이니라.”

하나님께서는 레위 지파 사람들의 기본적 역할을 명하셨다. 그것은 제사장들을 수종하는 역할이었다. 제사들과 성막 예배의 일들은 제사장들에게 맡겨진 일이었는데, 레위인들은 제사장들을 도와 그 일들을 받들게 하였던 것이다. 그들은 회막의 모든 기구들을 지키는 일들을 해야 하였다.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너는 레위인을 아론과 그 아들들에게 주라. 그들은 이스라엘 자손 중에서 아론에게 온전히 돌리운 자니라”고 말씀하셨다. ‘온전히 돌리운’이라는 원어(네수님 네수님)는 ‘주어진 주어진’이라는 뜻으로 ‘주어진’이라는 말을 반복함으로써 ‘전적으로, 온전히 주어졌음’을 나타낸다. 레위인들은 성막 봉사의 일을 위해 전적으로 바쳐진 자들이다.

10절에 “외인이 가까이 하면 죽임을 당할 것이니라”는 말씀은 참으로 두렵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얼마나 두려우신 분이시며 또 그의 일들이 얼마나 거룩한 것인지를 잘 나타낸다. 죄인들은 하나님 앞에 함부로 나아갈 수 없다. 오직 하나님께서 구별하신 자들만 나아갈 수 있다. 구약의 제사장은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하고 레위인은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거룩하게 된 신약성도를 상징한다고 본다.

[11-13절]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일러 가라사대 보라, 내가 이스라엘 자손 중에서 레위인을 택하여 이스라엘 자손 중 모든 첫 태에 . . . .

여호와께서는 또 모세에게 말씀하셨다. “보라, 내가 이스라엘 자손 중에서 레위인을 택하여 이스라엘 자손 중 모든 첫 태에 처음 난 자를 대신케 하였은즉 레위인은 내 것이라. 처음 난 자는 다 내 것임은 내가 애굽 땅에서 그 처음 난 자를 다 죽이던 날에 이스라엘의 처음 난 자는 사람이나 짐승을 다 거룩히 구별하였음이니 그들은 내 것이 될 것임이니라. 나는 여호와니라.”

열 가지 재앙 중 마지막 재앙인 장자를 치시는 재앙 때에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자손들은 면제받게 하셨다. 이스라엘의 장자들은 하나님의 특별한 은혜를 받은 자들이었다. 그러므로 그들은 하나님께 바쳐진 자들이 되었다. 이러한 내용은 출애굽기에 나오는 율법에 기록되어 있다. 출애굽기 13:2, “이스라엘 자손 중에 사람이나 짐승이나 무론하고 초태생은 다 거룩히 구별하여 내게 돌리라. 이는 내 것이니라.”

민수기 8:16-17에서도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그들은 이스라엘 자손 중에서 내게 온전히 드린 바된 자라. 이스라엘 자손 중 일절 초태생 곧 모든 처음 난 자의 대신으로 내가 그들을 취하였나니 이스라엘 자손 중에 처음 난 것은 사람이든지 짐승이든지 다 내게 속하였음은 내가 애굽 땅에서 그 모든 처음 난 자를 치던 날에 내가 그들을 내게 구별하였음이라.” 이와 같이, 레위인들의 구별은 이스라엘 백성의 첫 아들들을 대신하는 뜻이 있었다.

[14-20절] 여호와께서 시내 광야에서 모세에게 일러 가라사대 레위 자손을 그들의 종족과 가족을 따라 계수하되 1개월 이상의 남자를 다 계수하라. 모세가 여호와의 말씀을 좇아 그 명하신 대로 계수하니라. 레위의 아들들의 이름은 이러하니 게르손과 고핫과 므라리요, 게르손의 아들들의 이름은 그 가족대로 이러하니 립니와 시므이요, 고핫의 아들들은 그 가족대로 이러하니 아므람과 이스할과 헤브론과 웃시엘이요, 므라리의 아들들은 그 가족대로 말리와 무시니 이는 그 종족대로 된 레위인의 가족들이니라.

14-39절까지는 하나님께서 레위 자손들의 1개월 이상된 남자들의 수를 세라고 명하신 것과 그 명령대로 그 수를 센 것과 그들의 진 친 위치와 직무에 대해 증거한다. 레위의 아들들은 게르손과 고핫과 므라리, 세 명이었다.

[21-26절] 게르손에게서는 립니 가족과 시므이 가족이 났으니 이들이 곧 게르손의 가족들이라. 계수함을 입은 자의 수효 곧 1개월 이상 남자의 수효 합계가 7,500명이며 게르손 가족들은 장막 뒤 곧 서편에 진을 칠 것이요 라엘의 아들 엘리아삽은 게르손 사람의 종족의 족장이 될 것이며 게르손 자손의 회막에 대하여 맡을 것은 성막과 장막과 그 덮개와 회막 문장과 뜰의 휘장과 및 성막과 단 사면에 있는 뜰의 문장과 그 모든 것에 쓰는 줄들이니라.

게르손의 자손들은 7,500명이었고, 회막 뒷쪽 곧 서쪽에 진을 쳤고, 성막과 덮개, 휘장 등을 맡았다.

[27-32절] 고핫에게서는 아므람 가족과 이스할 가족과 헤브론 가족과 웃시엘 가족이 났으니 이들이 곧 고핫 가족들이라. 계수함을 입은 1개월 이상 모든 남자의 수효가 8,600명인데 성소를 맡을 것이며 고핫 자손의 가족들은 성막 남편에 진을 칠 것이요 웃시엘의 아들 엘리사반은 고핫 사람의 가족과 종족의 족장이 될 것이며 그들의 맡을 것은 증거궤와 상과 등대와 단들과 성소에서 봉사하는데 쓰는 기구들과 휘장과 그것에 쓰는 모든 것이며 제사장 아론의 아들 엘르아살은 레위인의 족장들의 어른이 되고 또 성소를 맡을 자를 통할할 것이니라.

고핫의 자손들은 8,600명이었고, 회막 남쪽에 진을 쳤고, 증거궤, 상, 등대, 단들 등 성막 기구들을 맡았다. 레위인들의 합계의 수를 볼 때(29, 46절 참조), 레위 자손들의 총수가 22,000명인 것을 생각할 때(39, 46절), 고핫 자손들의 수는 아마 8,300이었을 것이며 필사상의 실수로 8,600명으로 표기된 것으로 추측된다(카일, 박윤선).3)

[33-37절] 므라리에게서는 말리 가족과 무시 가족이 났으니 이들이 곧 므라리 가족들이라. 그 계수함을 입은 자 곧 1개월 이상 남자의 수효 총계가 6,200명이며 아비하일의 아들 수리엘이 므라리 가족과 종족의 족장이 될 것이요 이 가족은 장막 북편에 진을 칠 것이며 므라리 자손의 맡을 것은 성막의 널판과 그 띠와 그 기둥과 그 받침과 그 모든 기구와 그것에 쓰는 모든 것이며 뜰 사면 기둥과 그 받침과 그 말뚝과 그 줄들이니라.

므라리의 자손들은 6,200명이었고, 회막 북쪽에 진을 쳤고, 성막의 널판, 띠, 기둥 등을 맡았다.

[38절] 장막 앞 동편 곧 회막 앞 해 돋는 편에는 모세와 아론과 아론의 아들들이 진을 치고 이스라엘 자손의 직무를 대신하여 성소의 직무를 지킬 것이며 외인이 가까이 하면 죽일지니라.

회막 앞쪽 곧 동쪽에는 모세와 아론과 아론의 아들들이 진을 쳤고 성소의 직무를 지켰다. 외인이 가까이 하면 죽이라고 명령되었다.

[39절] 모세와 아론이 여호와의 명을 좇아 레위인을 각 가족대로 계수한즉 1개월 이상 남자의 수효가 22,000명이었더라.

이렇게 모세와 아론이 여호와의 명을 좇아 레위인을 각 가족대로 계수한즉 1개월 이상 남자의 수효가 22,000명이었다.

[40-43절] 여호와께서 또 모세에게 이르시되 이스라엘 자손의 처음 난 남자를 1개월 이상으로 다 계수하여 그 명수를 기록하라. 나는 여호와라. 이스라엘 자손 중 모든 처음 난 자의 대신에 레위인을 내게 돌리고 또 이스라엘 자손의 가축 중 모든 처음 난 것의 대신에 레위인의 가축을 내게 돌리라. 모세가 여호와께서 자기에게 명하신 대로 이스라엘 자손 중 모든 처음 난 자를 계수하니 1개월 이상으로 계수함을 입은 처음 난 남자의 명수의 총계가 22,273명이었더라.

40-43절은 이스라엘 자손 중 1개월 이상된 모든 처음 난 남자들의 수의 합계가 22,273명이었음을 증거한다.

[44-51절]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일러 가라사대 이스라엘 자손 중 모든 처음 난 자의 대신에 레위인을 취하고 또 그들의 가축 대신에 레위인의 가축을 취하라. 레위인은 내 것이라. 나는 여호와니라. 이스라엘 자손의 처음 난 자가 레위인보다 273인이 더한즉 속하기 위하여 매명에 5세겔씩 취하되 성소의 세겔대로 취하라. 한 세겔은 20게라니라. 그 더한 자의 속전을 아론과 그 아들들에게 줄 것이니라. 모세가 레위인으로 대속한 이외의 사람에게서[사람의] 속전을 받았으니 곧 이스라엘 자손의 처음 난 자에게서 받은 돈이 성소의 세겔대로 1,365세겔이라. 이 속전을 여호와의 말씀대로 아론과 그 아들들에게 주었으니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하심과 같았느니라.

레위 지파 사람들은 이스라엘 자손 중 모든 처음 난 자를 대신한 것이므로 그들과 상쇄하니 이스라엘 자손 중 처음 난 자들의 수가 273명이 더 많았다.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그들의 매 명당 5세겔씩 계산하여 이스라엘 자손의 처음 난 자들에게서 속전을 받아 아론과 그 아들들에게 주라고 명하셨고 모세는 그대로 하였다.

민수기 3장에서 우리는 몇 가지 교훈을 찾는다. 첫째로, 하나님은 참으로 두려우신 분이시다. 아론의 두 아들 나답과 아비후는 다른 불을 드리다가 하나님 앞에서 즉사하였다. 또 외인이 회막에 가까이 하면 죽임을 당할 것이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은 지식의 근본이다(잠 1:7). 우리는 하나님께서 참으로 두려우신 분이심을 알고 언제나 조심하며 우리 마음대로 살지 말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자.

둘째로, 우리는 회막의 의미를 알자. 회막은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한다. 히브리서 9:9, 11-12, “이 장막은 현재까지의 비유니,” “그리스도께서 장래 좋은 일의 대제사장으로 오사 . . . 자기 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사 단번에 성소에 들어가셨느니라.” 히브리서 10:19-20, “우리가 예수의 피를 힘입어 성소에 들어갈 담력을 얻었나니 그 길은 우리를 위하여 휘장 가운데로 열어 놓으신 새롭고 산 길이요 휘장은 곧 저의 육체니라.” 제물의 피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흘리신 피를 상징한다. 회막과 제사제도는 속죄의 필요성을 증거한다. 죄인은 하나님 앞에 그냥 나아갈 수 없다. 오직 중보자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의 피가 아니고서는 아무도 거룩하신 하나님께 나아갈 수 없다.

셋째로, 레위인들만 제사장들을 수종들고 회막 봉사의 일들을 할 수 있었다. 레위인들은 이스라엘의 처음 난 자들을 대신하였고 하나님의 특별한 소유이었고 회막 봉사의 일을 위해 바쳐진 자들이었다. 외인들은 회막에 접근하면 죽임을 당하였다. 신약 성도들, 특히 직분자들은 제사장들이요 레위인들이다. 그러므로 신약교회의 모든 직분자들은 속죄신앙 없이 봉사하지 말고, 확실한 속죄신앙을 가지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하나님을 섬기며 충성하자. 우리는 거룩한 제사장들이며 성전의 일을 받드는 레위인과 같다는 생각을 가지고 봉사하자.

 

 

4장: 레위 지파의 임무

이스라엘 백성의 종교생활에는 회막 곧 성막이 매우 중요하였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代贖) 사역을 상징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 사역은 모든 죄 문제의 해결이 되었다. 그것이 없었다면, 아무도 구원을 얻지 못했을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을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었으며(요 3:16)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졌다(요 5:24).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는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었다(롬 3:21-24).

이 의미심장한 성막의 봉사는 레위인들에게만 맡겨진 일이었다. 레위인들은 하나님의 특별한 소유가 된 자들이었다. 그들은 이스라엘 백성의 첫 아들들을 대신한 자들이었다(민 3:12-13). 외인은 성막의 일을 할 수 없었고 외인은 성막에 접근할 수도 없었다(민 3:10, 38). 민수기 4장은 이 레위인들의 직무를 좀더 자세히 증거한다.

레위의 세 아들은 고핫과 게르손과 므라리이었고, 그 세 자손들에게 각각 임무가 다르게 주어졌다. 우선, 그들은 30세부터 50세까지 봉사할 수 있었다. 본장에는 일곱 번이나 “30세부터 50세까지”라는 표현이 나온다(3, 23, 30, 34, 39, 43, 47절). 다른 지파들이 싸움에 나갈 만한 연령인 20세 이상과는 달랐다. 30세는 경건성과 인격성을 고려한 것 같으며, 50세는 체력의 일반적 노쇠를 고려한 것 같다.

요셉은 애굽의 총리가 될 때에 30세이었다(창 41:46). 다윗도 30세에 왕이 되었다(삼하 5:4). 예수께서도 가르치심을 시작할 때에 30세쯤 되셨다(눅 3:23). 30세는 사람이 어느 정도 사려 깊은 생각을 하고 자기 판단을 하는 나이인 것 같다. 그것은 공적인 일을 할 만한 나이이며 하나님의 일을 하는 데도 그러하다고 보인다.

[1-20절] 여호와께서 또 모세와 아론에게 일러 가라사대 레위 자손 중에서 고핫 자손을 그들의 가족과 종족을 따라 총계할지니 곧 30세 이상으로 50세까지 회막의 일을 하기 위하여 그 역사에 참가할 만한 모든 자를 계수하라. 고핫 자손이 회막 안 지성물에 대하여 할 일은 이러하니라. 행진할 때에 아론과 그 아들들이 들어가서 간 막는 장을 걷어 증거궤를 덮고 그 위에 해달의 가죽으로 덮고 그 위에 순청색 보자기를 덮은 후에 그 채를 꿰고, 또 진설병의 상에 청색 보자기를 펴고 대접들과 숟가락들과 주발들과 붓는 잔들을 그 위에 두고 또 항상 진설하는 떡을 그 위에 두고 홍색 보자기를 그 위에 펴고 그것을 해달의 가죽 덮개로 덮은 후에 그 채를 꿰고, 또 청색 보자기를 취하여 등대와 그 등잔들과 그 불집게들과 불똥 그릇들과 그 쓰는 바 모든 기름 그릇을 덮고 등대와 그 모든 기구를 해달의 가죽 덮개 안에 넣어 메는 틀 위에 두고, 또 금단 위에 청색 보자기를 펴고 해달의 가죽 덮개로 덮고 그 채를 꿰고, 또 성소에서 봉사하는 데 쓰는 모든 기명을 취하여 청색 보자기에 싸서 해달의 가죽 덮개로 덮어 메는 틀 위에 두고, 또 단의 재를 버리고 그 단 위에 자색 보자기를 펴고 봉사하는 데 쓰는 모든 기구 곧 불 옮기는 그릇들과 고기 갈고리들과 부삽들과 대야들과 단의 모든 기구를 두고 해달의 가죽 덮개를 그 위에 덮고 그 채를 꿸 것이며, 행진할 때에 아론과 그 아들들이 성소와 성소의 모든 기구 덮기를 필하거든 고핫 자손이 와서 멜 것이니라. 그러나 성물은 만지지 말지니 죽을까 하노라. 회막 물건 중에서 이것들은 고핫 자손이 멜 것이며 제사장 아론의 아들 엘르아살의 맡을 것은 등유와 분향할 향품과 항상 드리는 소제물과 관유며 또 장막의 전체와 그 중에 있는 모든 것과 성소와 그 모든 기구니라. 여호와께서 또 모세와 아론에게 일러 가라사대 너희는 고핫 족속의 지파를 레위인 중에서 끊어지게 말지니 그들이 지성물에 접근할 때에 그 생명을 보존하고 죽지 않게 하기 위하여 너희는 이같이 하여 아론과 그 아들들이 들어가서 각 사람에게 그 할 일과 그 멜 것을 지휘할지니라. 그들은 잠시라도 들어가서 성소를 보지 말 것은 죽을까 함이니라.

본장의 1-20절에 보면, 이스라엘이 행진할 때에 먼저 아론과 그 아들들 곧 제사장들은 성소에 들어가 증거궤(법궤), 진설병의 상(떡상), 등대, 금단(분향단), 모든 기명, 그리고 단(번제단) 등을 청색(6, 7, 9, 11, 12절), 홍색(8절), 또는 자색(13절) 보자기들로 싸고 해달(타카쉬)[돌고래](BDB, NASB)의 가죽으로 덮었다. ‘청색’이라는 원어(테켈렛)는 ‘보라색’(BDB)이나 ‘보라빛 자주색’(KB)에 가깝다고 한다. 해달[돌고래]의 가죽도 고대 헬라어역에 의하면 그 색이 히아신스색(일종의 보라색)이라고 한다.

보라색, 홍색(붉은 색), 자색(자주색)은 공통적으로 피를 상징하는 것 같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피를 상징할 것이다. 성막의 중심은 예수 그리스도이시요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의 중심은 십자가에서 이루신 대속 사역이다. 성경이 밝히 증거하는 대로,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그의 피로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는 화목제물로 세우셨다(롬 3:25). 예수께서는 염소와 송아지의 피로 아니하고 오직 자기 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사 단번에 성소에 들어가셨다(히 9:12). 피흘림이 없으면 사함도 없을 것이다(히 9:22).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피를 힘입어 성소에 들어갈 담력을 얻었다(히 10:19).

제사장들이 성소의 기구들을 다 덮은 후에, 고핫 자손들은 그것들을 메어 운반해야 하였다. 그러나 주의해야 할 점이 하나 있었다. 그것은 본문 15절과 20절에 기록되어 있는 대로 성물을 만지지 말고 보지도 말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만일 그들이 성물을 만지거나 보면 그들은 죽을 것이었다. 그것은 참으로 두려운 규례이었다.

그것은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나타내는 규례이다. 하나님은 거룩하시다. 하나님의 거룩하심은 도덕적으로 순결하시다는 것뿐 아니라, 하나님의 존재 자체가 피조세계와 비교할 수 없이 초월해 계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는 피조물인 우리가 감히 접근할 수 없는 분이시다. 그는 우리가 호기심으로라도 함부로 그에 대해 변론할 수 없는 분이시다. 그러므로 그는 십계명에서 “너는 너의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지 말라. 나 여호와는 나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는 자를 죄 없다 하지 아니하리라”고 말씀하셨다(출 20:7).

시내산에서 이스라엘에게 자신을 나타내신 하나님은 엄위하시고 두려우신 하나님이셨다. 하나님께서 시내산에 내려오실 때에 그는 산 사면으로 경계를 정하여 이스라엘 백성이 그 산에 오르거나 그 경계를 범하지 못하게 명하셨다. 또 그는 그 명령을 어기는 사람은 죽임을 당할 것이라고 경고하셨다. 시내산은 연기가 자욱하였고 크게 진동하였고 나팔소리가 점점 크게 울렸다. 하나님께서는 불 가운데서 그 산꼭대기에 내려오셨다(출 19:10-21).

하나님의 거룩하심의 신비는 우리가 하나님을 다 알지 못하고 또 다 알 수 없다는 사실에서도 증거된다. 욥기 11:7은 “네가 하나님의 오묘를 어찌 능히 측량하며 전능자를 어찌 능히 온전히 알겠느냐?”고 말하고, 욥기 36:26은 “하나님은 크시니 우리가 그를 알 수 없다”고 말하고, 욥기 37:23은 “전능자를 우리가 측량할 수 없다”고 말한다. 시편 145:3은 “여호와는 광대하시니 . . . 그의 광대하심을 측량치 못하리로다”고 말한다.

사무엘상 6:19-20에 보면, 후에 벧세메스 사람들은 여호와의 궤를 들여다 보았기 때문에 50,070명이 하나님의 치심으로 죽임을 당하였고, 사무엘하 6:6-7에 보면, 다윗이 하나님의 궤를 새 수레에 싣고 다윗 성으로 모셔오려고 했을 때 나곤의 타작 마당에 이르러서 소들이 뛰므로 수레를 몰던 웃사가 손을 들어 하나님의 궤를 붙들었다가 그 자리에서, 즉 그 궤 곁에서 즉사하였다. 그것은 하나님의 거룩함을 범한 자들이 어떻게 죽임을 당했는지를 보이는 사건들이었다.

[21-28절] 여호와께서 또 모세에게 일러 가라사대 게르손 자손도 그 종족과 가족을 따라 총계하되 30세 이상으로 50세까지 회막 봉사에 입참하여 일할 만한 모든 자를 계수하라. 게르손 가족의 할 일과 멜 것은 이러하니 곧 그들을 성막의 앙장들과 회막과 그 덮개와 그 위의 해달의 가죽 덮개와 회막 문장을 메이며 뜰의 휘장과 및 성막과 단 사면에 있는 뜰의 문장과 그 줄들과 그것에 사용하는 모든 기구를 메이며 이 모든 것을 어떻게 맡아 처리할 것이라. 게르손 자손은 그 모든 일 곧 멜 것과 처리할 것에 아론과 그 아들들의 명대로 할 것이니 너희는 그들의 멜 짐을 그들에게 맡길 것이니라. 게르손 자손의 가족들이 회막에서 할 일이 이러하며 그들의 직무는 제사장 아론의 아들 이다말이 감독할지니라.

21-28절에 보면, 게르손 자손들은 성막의 앙장[휘장], 덮개, 해달(돌고래) 가죽 덮개 등을 운반하는 임무를 맡았다.

[29-33절] 너는 므라리 자손도 그 가족과 종족을 따라 계수하되 30세 이상으로 50세까지 회막 봉사에 입참하여 일할 만한 모든 자를 계수하라. 그들이 직무를 따라 회막에서 할 모든 일 곧 그 멜 것이 이러하니 곧 장막의 널판들과 그 띠들과 그 기둥들과 그 받침들과 뜰 사면 기둥들과 그 받침들과 그 말뚝들과 그 줄들과 그 모든 기구들과 무릇 그것에 쓰는 것이라. 너희는 그들의 맡아 멜 모든 기구의 명목을 지정하라. 이는 제사장 아론의 아들 이다말의 수하에 있을 므라리 자손의 가족들이 그 모든 사무대로 회막에서 행할 일이니라.

29-33절에 보면, 므라리 자손들은 성막의 널판들, 띠들, 기둥들, 받침들 등을 운반하는 임무를 맡았다.

[34-49절] 모세와 아론과 회중의 족장들이 고핫 자손들을 그 가족과 종족대로 계수하니 30세 이상으로 50세까지 회막 봉사에 입참하여 일할 만한 모든 자 곧 그 가족대로 계수함을 입은 자가 2,750이니 이는 모세와 아론이 여호와께서 모세로 명하신 대로 회막에서 종사하는 고핫인의 모든 가족 중 계수한 자니라. 게르손 자손의 그 가족과 종족을 따라 계수함을 입은 자는 30세 이상으로 50세까지 회막 봉사에 입참하여 일할 만한 모든 자라. 그 가족과 종족을 따라 계수함을 입은 자가 2,630명이니 이는 모세와 아론이 여호와의 명대로 회막에서 종사하는 게르손 자손의 모든 가족 중 계수한 자니라. 므라리 자손의 가족 중 그 가족과 종족을 따라 계수함을 입은 자는 30세 이상으로 50세까지 회막 봉사에 입참하여 일할 만한 모든 자라. 그 가족을 따라 계수함을 입은 자가 3,200명이니 이는 모세와 아론이 여호와께서 모세로 명하신 대로 므라리 자손들의 가족 중 계수한 자니라. 모세와 아론과 이스라엘 족장들이 레위인을 그 가족과 종족대로 다 계수하니 30세 이상으로 50세까지 회막 봉사와 메는 일에 입참하여 일할 만한 모든 자 곧 그 계수함을 입은 자가 8,580명이라. 그들이 그 할 일과 멜 일을 따라 모세에게 계수함을 입었으되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하신 대로 그들이 계수함을 입었더라.

34-49절은 30세 이상으로 50세까지의 레위인들의 수를 증거한다. 고핫 자손들은 2,750명, 게르손 자손들은 2,630명, 므라리 자손들은 3,200명, 성막 봉사를 맡은 레위인들은 도합 8,580명이었다.

본장은 우리에게 몇 가지 교훈을 준다고 본다. 첫째로, 우리는 성막이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함을 깨닫고 특히 예수 그리스도의 피를 믿자. 성막에는 보라색, 홍색, 자색 천이 사용되었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피를 상징할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의 중심은 십자가에서 이루신 대속 사역이다. 예수께서는 자기 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사 단번에 성소에 들어가셨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피를 힘입어 성소에 들어갈 담력을 얻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의 피를 믿자. 그것이 우리의 구원이 된다. 우리의 의는 이것뿐 예수의 피밖에 없다.

둘째로, 우리는 지식과 인격에 있어서 준비된 일꾼이 되자. 30세는 일반적으로 복음 진리와 사명에 대한 상당한 깨달음, 분별력, 판단력을 가지는 나이라고 보여진다. 우리는 하나님의 일을 위해 준비된 자들인가? 신약 성도들은 다 제사장들이요 레위인들이다. 우리는 영적인 어린아이들로 살지 말고 일할 만한 나이가 된 자로 살아야 할 것이다. 하나님의 아들께서 천국으로부터 이 세상에 오셔서 우리 같은 비천한 자들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셨다면, 우리는 하나님을 위해 어떻게 살아야 할지 너무 분명하다. 우리는 하나님을 위해 준비된 일꾼이 되자.

셋째로, 우리는 하나님을 두려움으로 섬기자. 레위인들은 성막의 일을 수종들기는 하였지만, 성물을 만지거나 보거나 해서는 안 되었다. 하나님은 거룩하신 분이시다. 그는 피조세계로부터 초월해계신 분이시다. 우리는 하나님의 존재와 그의 뜻을 다 알지 못하며 또 다 알 수 없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이 얼마나 크신 분이심을 깨달아야 한다. 히브리서 12:28은 그러므로, 우리가 “경건함과 두려움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섬기라”고 교훈한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감히 나아갈 수 있지만, 항상 두려운 마음으로 그를 섬기자.

 

 

5장: 의심의 소제

민수기 5장은 세 가지 내용을 기록한다. 첫째는 진을 성결케 하라는 명령이며, 둘째는 죗값을 온전히 갚으라는 법이며, 셋째는 의심의 소제, 곧 질투의 소제에 관한 법이다.

[1-4절]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일러 가라사대 이스라엘 자손에게 명하여 모든 문둥병 환자와 유출병이 있는 자와 주검으로 부정케 된 . . . .

1-4절은 진을 성결케 하라는 명령이 기록되어 있다. 여호와께서는 모세에게 말씀하셨다. “이스라엘 자손에게 명하여 모든 문둥병[나병] 환자와 유출병이 있는 자와 주검으로 부정케 된 자를 다 진 밖으로 내어 보내되 무론남녀하고 다 진 밖으로 내어 보내어 그들로 진을 더럽히게 말라. 내가 그 진 가운데 거하느니라.” 나병은 가장 무서운 악성 전염병이었다(레 13장). 유출병은 사람의 생식기에서 피나 고름이 나오는 병이었다(레 15장). 사람의 죽은 시체를 만진 자는 7일간 부정(不淨)하였다(민 19:11, 13). 이상 세 부류의 사람들은 진 밖으로 내어 보내져야 하였다. 그 까닭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의 진 가운데 거하시기 때문이었다. 위의 세 부류의 사람들을 진영 밖으로 내어 보낸 것은 위생적 의미와 상징적 의미가 있었다고 본다. 위생적으로는 그것이 병의 전염을 예방하는 뜻이 있어 보인다. 또 상징적으로는 나병이나 유출병 등은 사람의 불신앙, 교만, 이기심 등의 죄악성을 상징하였다고 본다. 교회는 거룩해야 한다. 이스라엘 자손은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신 대로 그같이 행하여 그들을 진 밖으로 내어 보내었다.

[5-10절] 여호와께서 또 모세에게 일러 가라사대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르라. 남자나 여자나 사람들이 범하는 죄를 범하여 여호와께 . . . .

5-10절은 죗값을 온전히 갚으라는 법이다. 여호와께서는 또 모세에게 말씀하셨다.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르라. 남자나 여자나 사람들이 범하는 죄를 범하여 여호와께 패역하여 그 몸에 죄를 얻거든 그 지은 죄를 자복하고 그 죗값을 온전히 갚되 오분지 일을 더하여 그가 죄를 얻었던 그 본주에게 돌려 줄 것이요 만일 죗값을 받을 만한 친족이 없거든 그 죗값을 여호와께 드려 제사장에게로 돌릴 것이니 이는 그를 위하여 속죄할 속죄의 숫양 외에 돌릴 것이니라.” 이 법은 사람의 죄는 그 값을 온전히 갚아야 사하여짐을 보인다. 또 그 죗값을 받을 사람이 없으면 하나님께 드려 제사장에게 돌려야 하였다. 이스라엘 자손이 제사장에게 가져오는 모든 성물은 그의 것이 된다. 각 사람이 하나님을 위해 구별한 물건은 제사장의 것이 되고 누구든지 제사장에게 주는 것은 그의 것이 되었다.

[11-15절]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일러 가라사대 이스라엘 자손에게 고하여 그들에게 이르라. 만일 어떤 사람의 아내가 실행(失行)하여 . . . .

11-31절은 의심의 소제, 원문의 뜻으로는 질투의 소제에 관한 법이다. 여호와께서는 모세에게 말씀하셨다. “이스라엘 자손에게 고하여 그들에게 이르라. 만일 어떤 사람의 아내가 실행(失行)하여[곁길로 가서] 남편에게 범죄하여 타인과 정교(情交)를 하였으나[어떤 사람이 그와 동침하였으나] 그 남편의 눈에 숨겨 드러나지 아니하였고 그 여자의 더러워진 일에 증인도 없고 그가 잡히지도 아니하였어도 그 더러워짐을 인하여 남편이 의심이 생겨서 그 아내를 의심하든지, 또는 아내가 더럽히지 아니하였어도 그 남편이 의심이 생겨서 그 아내를 의심하거든, 그 아내를 데리고 제사장에게로 가서 그를 위하여 보리 가루 에바 10분지 1을 예물로 드리되 그것에 기름도 붓지 말고 유향도 두지 말라. 이는 의심의 소제요 생각하게 하는 소제니 곧 죄악을 생각하게 하는 것이니라.”

이스라엘의 광야 생활에서 여러 가지 법들이 필요하겠지만, 이 법도 매우 중요한 법으로 간주되었다. 가정이라는 단위는 사회의 구성요소로서 매우 중요하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의 혼자 있는 것이 좋지 못하다고 여기셔서 그의 갈빗대로 여자를 만드셨고 결혼하여 가정을 이루게 하셨다. 결혼은 인간의 행복의 기본적 조건이었다. 물론 고린도전서 7:26, 38은 독신도 가능하다고 가르치며 주께서 말씀하신 대로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자는 다 우리의 형제, 자매, 모친이지만(마 12:50), 결혼은 분명히 하나님께서 만드신 복된 제도이다.

그런데 결혼이 잘 유지되기 위해서는 부부의 순결이 매우 중요하다. 본문에 7번 나오는 ‘의심’이라는 원어(루아크 킨아)는 ‘질투 정신, 질투심’이라는 뜻이며, 3번 나오는 ‘의심하다’는 원어(킨네)는 ‘질투하다’는 뜻이다(BDB, KJV, NASB). 본문은 질투의 소제에 대한 규례이다. 그것은 부부의 순결 문제에 관계된다.

우리는 본문에서 몇 가지 진리를 묵상케 된다. 첫째로, 본문의 법은 간음하지 말라는 제7계명을 전제한다. 간음하지 말라는 계명은 매우 포괄적인 법이다. 그것은 인간의 성이 부부 관계에서만 허용되고 그 외에는 금지됨을 보인다. 결혼 전 혹은 결혼 외의 성 관계는 다 음행과 간음으로 정죄된다. 매춘(賣春)이나 동성애도 정죄된다.

인간의 죄들 중에 간음과 음행은 대표적인 죄들 중의 하나이다. 주께서는 사람의 마음에서 나오는 악을 열거하면서 살인과 간음과 음란 등의 순서로 말씀하셨다(마 15:19). 고린도전서 6:9-10은, 불의한 자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한다고 말하면서 음란하는 자를 첫째로 꼽았다. 갈라디아서 5:19-21은 죄악된 육체의 일 17가지를 열거하면서 간음, 음행, 더러운 것, 호색을 첫째로 꼽았다.

우리는 간음하지 말아야 한다. 이것은 하나님의 계명이며 인간의 기본적인 윤리이다. 우리는 모든 종류의 음란을 조심해야 한다. 우리의 가정이 행복하려면, 우리의 가정이 정말 하나님의 평안을 이 땅 위에서 누리려면, 우리는 음행을 멀리해야 한다.

둘째로, 본문의 법은 부부관계의 사랑과 행복이 상대의 순결성에 대한 신뢰에 있음을 보인다. 부부관계의 사랑과 행복은 상대의 순결성에 대한 신뢰에 있다. 간음은 이혼의 정당한 사유가 된다(마 5:32). 본문은 의심의 소제, 곧 질투의 소제에 대해 말한다. 원문에 ‘질투’라는 말을 한글개역성경은 ‘의심’이라는 말로 번역하였다. 영어성경들은 대체로 ‘질투’(jealousy)라는 말로 번역한다(KJV, NASB). 부부가 상대방의 사랑과 순결을 신뢰할 때는 질투심이 생기지 않을 것이지만, 그것을 의심할 때는 질투심이 생길 것이다. 그래서 의심이라는 의미도 담겨 있다고 볼 수 있지만, 원문의 뜻은 질투심이다.

질투의 소제는 두 가지의 경우에 드리게 규정되어 있다. 하나는, 어떤 사람의 아내가 다른 남자와 정을 통하였으나 그 남편의 눈에 숨겨 드러나지 않았고 그 여자의 더러워진 일에 대해 증인도 없고 그가 현장에서 발각되지 않았어도, 남편이 의심과 질투심이 생겨서 그 아내를 의심하고 질투하는 경우이고, 또 다른 하나는 그 아내가 다른 사람과 정을 통하거나 더럽히지 않았어도 그 남편이 그 아내에 대해 의심과 질투심이 생겨서 그를 의심하고 질투하는 경우이다.

전자는 물증은 없으나 그 다른 남자에 대한 아내의 표정을 통해서나 또는 남편을 대하는 태도의 변화를 통해서 짐작할 수 있는 경우일 것이다. 그것은 남편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물론 바깥에 숨겨둔 애첩에 대해서는 알기 어렵겠지만, 만일 주위의 사람인 경우는 두 사람이 같이 있을 때에 그들의 표정만 보아도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사람은 마음의 감정이나 양심의 가책이 그 얼굴이나 행동에서 조금이라도 드러나기 마련이다. 그러나 본인이 극구 부인하기 때문에 마음에 질투의 불이 붙어 오르는 경우이다.

또는 그 아내가 남편에 대한 마음이 변함이 없고 다른 사람과 정을 통하거나 더럽힌 일이 없는데도 그 남편이 오해하여 잘못된 의심과 질투심을 가질 경우도 있을 것이다. 그것은 물론 남편의 지나친 생각과 비정상적인 심리 때문에 생기는 일이다. 여하튼 모든 질투심은 상대에 대한 관심과 사랑에서 나온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어느 경우이든지 부부관계에 금이 갈 수 있는 위기상황이다. 이런 위기상황을 그대로 방치하는 것은 위험하다. 그것은 갈등과 다툼으로 나타날 수 있고 그렇지 않다 하더라도 무관심이나 사랑의 식음으로 나타날 수 있다. 부부의 행복은 서로 사랑함에 있는데, 부부의 사랑이 식어지는 것은 극히 바람직하지 않다. 이런 의심과 질투심의 문제는 방치될 것이 아니라 해결되어야 할 것이다. 이것은 개인과 가정의 평안과 행복을 위해 또 튼튼한 사회를 위해 필수적이다. 하나님께서는 바로 이런 문제를 해결할 방법을 주신 것이다. 이 규례는, 매튜 풀의 주석과 같이, 단지 아내의 간음을 방지하기 위한 것일 뿐 아니라, 남편의 격노한 행위들, 예를 들어 살인, 이혼 등으로부터 아내를 보호하기 위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16-22절] 제사장은 그 여인으로 가까이 오게 하여 여호와 앞에 세우고 토기에 거룩한 물을 담고 성막 바닥의 티끌을 취하여 물에 . . . .

셋째로, 본문의 법은 맹세의 중요성을 보인다. 이런 유의 일들은 많은 경우 심증이나 추측만 있고 물증이 없을 것이다. 만일 그 추측이 사실일 경우는 그 여자는 큰 죄를 지은 것이며 벌을 받아야 하고 이혼도 가능한 일이다. 그러나 만일 그 추측이 사실이 아닌 경우는 불필요한 갈등과 간격으로 부부의 사랑이 식어지고 가정의 평안과 행복이 깨어져서는 안 되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이런 경우에 맹세를 통해 그 문제를 해결하게 하셨다. 맹세는 하나님을 인정하고 그의 통치를 인정하고 그의 징벌을 인정하고 그의 복과 저주를 인정하고 맹세의 효험을 인정하는 것이다.

제사장은 그 여인으로 가까이 오게 하여 여호와 앞에 세우고 토기[질그릇]에 거룩한 물을 담고 성막 바닥의 티끌[흙]을 취하여 물에 넣고 여인을 여호와 앞에 세우고 그 머리를 풀게 하고 생각하게 하는 소제물, 곧 질투의 소제물을 그 두 손에 두고 제사장은 저주가 되게 할 쓴 물을 자기 손에 들고 여인에게 맹세시켜 그에게 말해야 하였다. “네가 네 남편을 두고 실행(失行)하여[결길로 가서] 다른 사람과 동침하여 더럽힌 일이 없으면 저주가 되게 하는 이 쓴 물의 해독을 면하리라. 그러나 네가 네 남편을 두고 실행하여[결길로 가서] 더럽혀서 네 남편 아닌 사람과 동침하였으면 (제사장이 그 여인으로 저주의 맹세를 하게 하고 그 여인에게 말해야 했다.) 여호와께서 네 넓적다리로 떨어지고 네 배로 부어서 너로 네 백성 중에 저주거리, 맹세거리가 되게 하실지라. 이 저주가 되게 하는 이 물이 네 창자에 들어가서 네 배로 붓게 하고 네 넓적다리로 떨어지게 하리라.” 또 그 여인은 “아멘, 아멘” 하고 말해야 하였다.

[23-28절] 제사장이 저주의 말을 두루마리에 써서 그 글자를 그 쓴물에 빨아 넣고 여인으로 그 저주가 되게 하는 쓴 물을 마시게 . . . .

제사장은 저주의 말을 두루마리에 써서 그 글자를 그 쓴물에 빨아 넣고 그 여인으로 그 저주가 되게 하는 쓴물을 마시게 할 것이며 그 저주가 되게 하는 물은 그의 속에 들어가 쓸 것이다. 제사장은 먼저 그 여인의 손에서 의심[질투]의 소제물을 취하여 그 소제물을 여호와 앞에 흔들고 가지고 단으로 가서 그 소제물 중에서 기념으로 한 움큼을 취하여 단 위에 태우고 그 후에 여인에게 그 물을 마시게 할 것이다. 그 물을 마시게 한 후에 만일 여인이 몸을 더럽혀서 그 남편에게 범죄하였으면 그 저주가 되게 하는 물이 그의 속에 들어가서 쓰게 되어 그 배가 부으며 그 넓적다리가 떨어질 것이며 그 여인은 그 백성 중에서 저주거리가 될 것이다. 그러나 그 여인이 더럽힌 일이 없고 정결하면 해를 받지 않을 것이며 또 잉태하게 될 것이다.

[29-31절] 이는 의심의 법이니 아내가 그 남편을 두고 실행하여 더럽힌 때나 또는 그 남편이 의심이 생겨서 그 아내를 의심할 때에 . . . .

이것이 의심의 법 곧 질투의 법이다. 아내가 그 남편을 두고 곁길로 가서 더럽힌 때나 또는 그 남편이 의심과 질투가 생겨서 그 아내를 의심하고 질투할 때 그 여인을 여호와 앞에 두고 제사장은 이 법대로 행해야 했다. 그 남편은 무죄할 것이며 그 아내는 죄가 있으면 당할 것이다.

본장의 교훈은 무엇인가? 본장에는 세 가지 내용이 나온다. 첫째는 진을 성결케 하라는 법이며, 둘째는 죗값을 온전히 갚으라는 법이며, 셋째는 의심의 소제, 곧 질투의 소제에 대한 법이다. 이 세 가지 법들은 오늘 우리에게도 교훈을 준다. 첫째로, 우리는 우리의 진 곧 우리의 교회를 성결케 해야 한다. 교회는 교리적, 윤리적으로 거룩한 교회이어야 한다. 우리는 불신앙, 교만, 이기심, 미움, 음란, 방탕 등의 죄악들을 다 버려야 한다. 교회는 세상과 달라야 한다. 모든 교인들의 삶이 그러해야 하고 직분자, 봉사자들의 삶은 더욱 그러해야 한다.

둘째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죗값을 다 지불하셨음을 깨닫고 죽도록 충성해야 한다. 죗값은 죽음이요 지옥형벌이다. 우리의 죗값의 지불은 우리로서는 불가능한 일이다. 그것은 우리의 의행(義行)이나 선행으로 갚을 수 없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공로로만 갚을 수 있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의 의가 되신 예수 그리스도만 믿고 그를 위해 살고 그에게 죽도록 충성하자.

셋째로, 우리는 부부의 사랑과 행복을 잘 지키자. 우선, 우리는 간음하거나 음행하지 말아야 한다. 이것은 하나님의 계명이며 뜻이다. 또 우리는 우리의 순결함을 상대방에게 보일 수 있도록 처신해야 한다. 상대방에게 의심을 주거나 질투심을 일으킬 만한 말이나 행동을 하지 말고 이성에 대해 약간 사무적이게 하고 너무 친근히 하지 않는 것이 좋고 시험에 들지 말아야 한다. 또 우리는 하나님의 이름으로 맹세할 수 있도록 처신해야 하고, 하나님의 저주를 두려워해야 한다.

 

 

6장: 나실인

1-21절, 나실인의 규례

1-21절은 나실인의 규례이다. ‘나실’이라는 원어(나지르)는 ‘[하나님께] 바쳐진 자, 헌신된 자, 성별된 자’라는 뜻이다.4)

[1-8절]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일러 가라사대 이스라엘 . . . .

여호와께서는 모세에게 나실인 서약을 하는 자들이 세 가지를 금하게 하라고 말씀하셨다.

첫째는 포도주나 독주를 마시지 말라고 말씀하셨다. 2절, “남자나 여자가 특별한 서원 곧 나실인의 서원을 하고 자기 몸을 구별하여 여호와께 드리거든 포도주와 독주를 멀리하며 포도주의 초나 독주의 초를 마시지 말며 포도즙도 마시지 말며 생포도나 건포도도 먹지 말지니 자기 몸을 구별하는 모든 날 동안에는 포도나무 소산은 씨나 껍질이라도 먹지 말지니라.” 나실인의 서원을 한 사람이 포도주나 독주를 들지 말라는 것은 술취하지 말고 깨어 근신하라는 뜻이다.

둘째는 머리에 삭도를 대지 말라고 말씀하셨다. 5절, “그 서원을 하고 구별하는 모든 날 동안은 삭도[면도칼]를 도무지 그 머리에 대지 말 것이라. 자기 몸을 구별하여 여호와께 드리는 날이 차기까지 그는 거룩한즉 그 머리털을 길게 자라게 할 것이라.” 나실인의 서원을 한 사람이 머리에 삭도를 대지 말라는 것은 외모의 치장에 대한 관심을 버리라는 뜻이라고 본다.

셋째는 그 부모와 형제 자매의 시체라도 시체를 가까이 하지 말라고 말씀하셨다. 6-8절, “자기 몸을 구별하여 여호와께 드리는 모든 날 동안은 시체를 가까이 하지 말 것이요 그 부모 형제자매가 죽은 때에라도 그로 인하여 몸을 더럽히지 말 것이니 이는 자기 몸을 구별하여 하나님께 드리는 표가 그 머리에 있음이라. 자기 몸을 구별하는 모든 날 동안 그는 여호와께 거룩한 자니라.” 나실인의 서원을 한 자가 죽은 자의 시체를 멀리하고 특히 자기 부모나 형제 자매의 시체라 하더라도 멀리하라는 것은 대제사장에게 주신 명령과 같이 세상의 가족관계라도 초월하고 오직 하나님의 일에 전념하라는 뜻이 있다고 본다.

[9-12절] 누가 홀연히 그 곁에서 죽어서 스스로 구별한 자의 . . . .

하나님께서는 또 말씀하셨다. “누가 홀연히 그 곁에서 죽어서 스스로 구별한 자의 머리를 더럽히거든 그 몸을 정결케 하는 날에 머리를 밀 것이니 곧 제7일에 밀 것이며 제8일에 산비둘기 두 마리나 집비둘기 새끼 두 마리를 가지고 회막문에 와서 제사장에게 줄 것이요 제사장은 그 하나를 속죄제물로, 하나를 번제물로 드려서 그의 시체로 인하여 얻은 죄를 속하고 또 그는 당일에 그의 머리를 성결케 할 것이며 자기 몸을 구별하여 여호와께 드릴 날을 새로 정하고 1년된 숫양을 가져다가 속건제로 드릴지니라. 자기 몸을 구별한 때에 그 몸을 더럽혔은즉 지나간 날은 무효니라.”

나실인 서원을 한 사람이 갑자기 죽은 시체로 자신을 더럽히게 되었을 때 그는 제8일에 번제와 속죄제와 속건제로 자신을 정결케 하고 처음부터 다시 자신을 성별시켜야 하였다.

[13-21절] 나실인의 법은 이러하니라. 자기 몸을 구별한 날이 . . . .

하나님께서는 또 말씀하셨다. “나실인의 법은 이러하니라. 자기 몸을 구별한 날이 차면 그 사람을 회막문으로 데리고 갈 것이요 그는 여호와께 예물을 드리되 번제물로 1년된 흠 없는 숫양 하나와 속죄제물로 1년된 흠 없는 어린 암양 하나와 화목제물로 흠 없는 숫양 하나와 무교병 한 광주리와 고운 가루에 기름 섞은 과자들과 기름 바른 무교전병들과 그 소제물과 전제물을 드릴 것이요 제사장은 그것들을 여호와 앞에 가져다가 속죄제와 번제를 드리고 화목제물로 숫양에 무교병 한 광주리를 아울러 여호와께 드리고 그 소제와 전제를 드릴 것이요.”

나실인 서원을 한 사람이 자기 몸을 구별한 날이 찰 때에 할 규례에 대해 말씀하셨다. 그는 번제, 속죄제, 화목제, 소제를 하나님께 드려야 했다. 그것들은 속죄의 뜻과 함께, 완전한 헌신과 순종, 교제의 회복, 감사의 뜻이 있다고 본다. 나실인 서원을 한 자는 이 후에도 더욱 하나님께 헌신하고 교제하고 감사하며 살아야 할 것이다.

“자기 몸을 구별한 나실인은 회막 문에서 그 머리털을 밀고 그것을 화목제물 밑에 있는 불에 둘지며 자기 몸을 구별한 나실인이 그 머리털을 민 후에 제사장이 삶은 숫양의 어깨와 광주리 가운데 무교병 하나와 무교전병 하나를 취하여 나실인의 두 손에 두고 여호와 앞에 요제로 흔들 것이며 그것과 흔든 가슴과 든 넓적다리는 성물이라. 다 제사장에게 돌릴 것이니라. 그 후에는 나실인이 포도주를 마실 수 있느니라.” 요제는 하나님께 드리고 받는 뜻이 있다.

“이는 곧 서원한 나실인이 자기 몸을 구별한 일로 인하여 여호와께 예물을 드림과 행할 법이며 이 외에도 힘이 미치는 대로 하려니와 그 서원한 대로 자기 몸을 구별하는 법을 따라 할 것이니라.”

나실인의 규례는 신약시대에 적용될 수 없으나 거기에 담긴 교훈은 유익하다. 나실인은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했다고 본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하나님께 거룩하고 완전하게 드려진 제물이셨다(엡 5:2). 나실인은 또한 신약 성도들, 특히 신약교회의 봉사자들을 예표하였다고 본다. 신약 성도들은 자신을 하나님의 영광과 그의 뜻을 이루기 위하여 자신의 시간과 힘과 재능과 돈과 생명까지 드리는 자들이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은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고 말하였다(롬 12:1).

특히, 나실인 서원을 한 사람에게 세 가지를 금지시킨 것은 교훈을 준다. 첫째로, 나실인은 술을 금해야 했다. 술은 사람을 취하게 만들며 그 결과 사람은 말과 행동으로 실수하고 범죄하게 된다. 성경은 모든 성도에게 맑은 정신, 깨어 있는 정신으로 생활할 것을 교훈한다(벧전 1:13). 교회의 봉사자들, 직분자들은 두말할 것도 없다. 교회의 장로와 집사들은 술을 즐기지 않고 술에 인박이지 않아야 한다(딤전 3:2-3, 8).

둘째로, 나실인은 외모 치장에 관심을 두지 말아야 하였다고 본다. 성경은 여성도들에게 검소함과 단정함을 교훈한다. 이것은 남성도들에게도 적용되는 교훈이다. 디모데전서 2:9-10, “또 이와 같이 여자들도 아담한[단정한] 옷을 입으며 염치와 정절로 자기를 단장하고 땋은 머리와 금이나 진주나 값진 옷으로 하지 말고 오직 선행으로 하기를 원하라. 이것이 하나님을 공경한다 하는 자들에게 마땅한 것이니라.” 베드로전서 3:3-4, “너희 단장은 머리를 꾸미고 금을 차고 아름다운 옷을 입는 외모로 하지 말고 오직 마음에 숨은 사람을 온유하고 안정한 심령의 썩지 아니할 것으로 하라. 이는 하나님 앞에 값진 것이니라.”

셋째로, 나실인은 부모와 형제들의 시체로도 자신을 더럽히지 말아야 했다. 그것은 가족관계, 넓게는 세상 일을 초월하는 정신을 말한다고 본다. 주께서는 부모나 자녀를 주님보다 더 사랑하지 말라고 교훈하셨고(마 10:37), 또 그를 따르는 자들이 부모와 처자와 형제와 자기 목숨까지 미워해야 주의 제자가 될 수 있다고 말씀하셨다(눅 14:26).

바울도 디모데에게 “군사로 다니는 자는 자기 생활에 얽매이는 자가 하나도 없나니 이는 군사로 모집한 자를 기쁘게 하려 함이라”고 말했다(딤후 2:4). 물론, 성도는 가족에 대한 기본적 의무를 다해야 한다(엡 6:1-2; 딤전 5:8). 그러나 성도는 깊은 의미에서 세상 일을 초월하고 하나님 제일주의로 살아야 한다. 교회직분자들은 더욱 그러해야 한다.

 

22-27절, 제사장의 축도

[22-27절]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일러 가라사대 아론과 그 아들들에게 고하여 이르기를 너희는 이스라엘 자손을 위하여 이렇게 축복하여 . . . .

본문은 제사장의 축도(祝禱) 즉 축복 기도에 대해 증거한다. 여호와께서는 모세에게 말씀하셨다. “아론과 그 아들들에게 고하여 이르기를 너희는 이스라엘 자손을 위하여 이렇게 축복하여 이르되, 여호와는 네게 복을 주시고 너를 지키시기를 원하며, 여호와는 그 얼굴로 네게 비취사 은혜 베푸시기를 원하며, 여호와는 그 얼굴을 네게로 향하여 드사 평강 주시기를 원하노라 할지니라 하라. 그들은 이같이 내 이름으로 이스라엘 자손에게 축복할지니 내가 그들에게 복을 주리라.”

‘축복’은 ‘복을 빈다’는 뜻이다. 우리는 하나님께 복을 빈다. 하나님은 복을 주시는 분이시다. 하나님께서는 축복하지 않으신다. 하나님께서는 누구에게 복을 빌지 않으신다. 왜냐하면 하나님 자신이 복을 주시는 분이시며 하나님보다 높으신 분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이시여, 축복하옵소서”라는 기도는 올바른 표현이 아니다. “하나님이시여, 복을 주옵소서”라는 표현이 바른 표현이다.

아론과 그 아들들 곧 제사장들은 이스라엘 자손을 위해 축복 기도를 드려야 했다. 제사장의 축도는 세 가지 내용이다.

첫 번째는 “여호와는 네게 복을 주시고 너를 지키시기를 원하노라”는 것이다. 제사장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복을 주시기를 빌어야 하였다. ‘복’은 좋은 것을 말한다. 하나님은 만복의 근원이시다. 각양의 좋은 것들이 다 하나님 아버지께로부터 왔고 또 온다. 그러므로 야고보서 1:17은 “각양 좋은 은사와 온전한 선물이 다 위로부터 빛들의 아버지께로서 내려온다”고 말하였다.

하나님의 복 중에 첫 번째로 구한 것은 ‘지키심’의 복이다. 제사장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지켜주시기를 기원해야 하였다. 지켜주소서라는 소원은 죄와 질병과 가난과 각종 재앙과 죽음으로부터 지켜주소서라는 뜻이다. 이 세상에는 죄가 많고 우리의 마음은 약하여 죄의 유혹에 넘어지기 쉽다. 또 이 세상에는 질병들이 많고, 물질적 궁핍이 있다. 기근이 있고, 가축들을 집단적으로 죽여야 하는 구제역이 있고, 금융위기가 있고, 실직과 부도와 파산 등이 있다. 전쟁이 있고, 지진이 있다. 또 각종 사고들이 있고, 그리고 죽음이 있다.

이 세상에 살 동안 우선 필요한 것은 이런 슬프고 불행한 일들로부터 보호를 받는 것이다. 그런데 누가 우리를 이런 것들, 곧 죄와 질병과 가난과 각종 재앙과 죽음으로부터 지켜줄 수 있는가? 오직 하나님께서 하실 수 있다. 그러므로 시편 121:1-8은 증거하였다: “내가 산을 향하여 눈을 들리라. 나의 도움이 어디서 올꼬. 나의 도움이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에게서로다. 여호와께서 너로 실족지 않게 하시며 너를 지키시는 자가 졸지 아니하시리로다. 이스라엘을 지키시는 자는 졸지도 아니하고 주무시지도 아니하시리로다. 여호와는 너를 지키시는 자라. 여호와께서 네 우편에서 네 그늘이 되시나니 낮의 해가 너를 상치 아니하며 밤의 달도 너를 해치 아니하리로다. 여호와께서 너를 지켜 모든 환난을 면케 하시며 또 네 영혼을 지키시리로다. 여호와께서 너의 출입을 지금부터 영원까지 지키시리로다.”

제사장의 축도의 두 번째 내용은 “여호와는 그 얼굴로 네게 비취사 은혜 베푸시기를 원하노라”는 것이다. 즉 하나님의 은혜를 구한 것이다. 이것은 신약성경의 사도들의 서신들에서 처음 부분과 마치는 부분에서 반복하여 언급된 내용이기도 하다.5)

‘은혜’는 값없이 주시는 호의와 사랑을 가리킨다. 성경에서 은혜라는 말은 사랑, 긍휼, 자비와 같은 뜻이다. 우리의 행위로는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 아무도 설 수 없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우리를 무조건 사랑하셨고 우리에게 은혜를 주셨고 긍휼과 자비를 베푸셨다.

하나님께서는 은혜가 많으신 분이시다. 그는 모세에게 자신을 ‘자비롭고 은혜롭고 노하기를 더디하고 인자와 진실이 많은 하나님,’ ‘인자를 천대까지 베푸는 하나님’으로 계시하셨다(출 34:4-7). 하나님의 구원적 사랑은 값없이 주시는 은혜이다. 하나님께서는 은혜 줄 자에게 은혜를 주고 긍휼히 여길 자에게 긍휼을 베푸신다(출 33:19; 롬 9:15-16). 우리가 구원받은 것은 이 은혜 때문인 것이다. 로마서 3:23-24,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구속(救贖)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

은혜의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위해 이 세상에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주셨다(요 3:16). 하나님의 은혜는 우리로 회개하고 믿어 구원을 받게 한다(행 11:18). 에베소서 2:8-9,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치 못하게 함이니라.” 또 은혜의 하나님께서는 구원하신 자들을 끝까지 지키신다. 로마서 8:30, “또 미리 정하신 그들을 또한 부르시고 부르신 그들을 또한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 하신 그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제사장의 축도의 세 번째 내용은 “여호와는 그 얼굴을 네게로 향하여 드사 평강 주시기를 원하노라”는 것이다. 이 내용도 사도들의 서신들의 시작 부분에 나오는 기원의 내용이다. ‘평강’은 매우 포괄적인 뜻이다. 그것은 마음의 평안, 몸의 건강, 물질적 안정, 사회적 평안을 포함한다. 그것은 우리말의 ‘안녕’과 같다.

주 예수께서는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고 말씀하셨다(마 11:28). 또 그는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고 말씀하셨다(요 14:27). 또 사도 바울은 데살로니가후서 3:16에서, “평강의 주께서 친히 때마다 일마다 너희에게 평강을 주시기를 원하노라”고 말하였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마음의 평안을 주신다. 또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몸의 건강도 주신다. 또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물질적 복과 안정을 주신다. 직장을 주시고 의식주의 필요를 채워주신다. 또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사회적 평안을 주신다. 반란과 사회적 소요를 막아주시고 전쟁을 막아주시고 천재지변을 막아주시고 경제공황을 막아주신다.

본문 27절에서 하나님께서는 제자장이 이렇게 축도할 때, “내가 그들에게 복을 주리라”고 말씀하셨다. 제사장의 축도에는 효력이 있다. 하나님께서는 그 축복에 응답하여 복을 주실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만복의 근원이시며 복을 주시는 하나님이시다. 우리는 하나님의 복을 사모하자. 하나님께서 명하신 제사장의 축도는 세 가지 복을 기원한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지키심의 복을 사모하자. 우리는 항상 하나님의 은혜를 사모하자. 그 은혜로 우리는 구원을 얻었고 그 은혜로 성화를 이룬다. 또 우리는 하나님의 평안을 사모하자. 그것은 마음의 평안뿐 아니라, 몸의 건강과 경제적 안정과 사회적 평안을 포함한다. 우리는 서로 축복하며 하나님의 복을 사모하자.

 

 

7장: 족장들의 봉헌예물

[1-9절] 모세가 장막 세우기를 필하고 그것에 기름을 발라 거룩히 구별하고 또 그 모든 기구와 단과 그 모든 기구에 기름을 발라 거룩히 구별한 날에 이스라엘 족장들 곧 그들의 종족의 두령들이요 그 지파의 족장으로서 그 계수함을 입은 자의 감독된 자들이 예물을 드렸으니 그들의 여호와께 드린 예물은 덮개 있는 수레 여섯과 소 열 둘이니 족장 둘에 수레가 하나씩이요 하나에 소가 하나씩이라. 그것들을 장막 앞에 드린지라.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일러 가라사대 그것을 그들에게서 받아 레위인에게 주어 각기 직임대로 회막 봉사에 쓰게 할지니라. 모세가 수레와 소를 받아 레위인에게 주었으니, 곧 게르손 자손들에게는 그 직임대로 수레 둘과 소 넷을 주었고, 므라리 자손들에게는 그 직임대로 수레 넷과 소 여덟을 주고 제사장 아론의 아들 이다말로 감독케 하였으나, 고핫 자손에게는 주지 아니하였으니 그들의 성소의 직임은 그 어깨로 메는 일을 하는 까닭이었더라.

본장은 모세가 하나님의 명령대로 성막 곧 회막을 세우기를 마치고 그 회막과 거기에 속한 모든 기구에 기름을 발라 거룩히 구별한 날에 이스라엘 족장들 곧 열두 지파의 족장들이 백성들을 대표하여 하나님께 드린 봉헌예물들에 대해 증거한다.

이스라엘 열두 지파의 족장들이 하나님께 드린 봉헌예물은 어떤 것들이었나? 첫째로, 그들은 덮개 있는 수레와 소를 하나님께 드렸다. 열두 족장들이 두 족장이 수레 한 대씩, 또 한 족장이 소 한 마리씩을 드려, 수레가 모두 6대이었고, 소는 모두 열두 마리이었다. 수레 하나에 소가 둘씩 배당된 셈이다. 그 수레는 레위 사람들이 성막과 그 기구들을 운반하는 데 쓰였다. 성막의 휘장과 덮개 등을 운반하는 임무를 가졌던 레위 지파의 게르손 자손들에게는 수레가 2대, 소가 4마리 주어졌고, 성막의 널판과 나무 띠와 기둥 등을 운반하는 임무를 가졌던 레위 지파의 므라리 자손들에게는 수레가 4대, 소가 8마리 주어졌다. 그러나 레위 지파의 고핫 자손들에게는 수레나 소가 배정되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들은 성막의 기구들을 메어 옮기는 임무를 맡았기 때문이었다.

[10-88절] 단에 기름을 바르던 날에 족장들이 단의 봉헌을 위하여 예물을 가져다가 그 예물을 단 앞에 드리니라.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기를 족장들은 하루 한 사람씩 단의 봉헌 예물을 드릴지니라 하셨더라.

제1일에 예물을 드린 자는 유다 지파 암미나답의 아들 나손이라. 그 예물은 성소의 세겔대로 일백 삼십 세겔중 은반 하나와 칠십 세겔중 은바리 하나라. 이 두 그릇에는 소제물로 기름 섞은 고운 가루를 채웠고 또 십 세겔중 금 숟가락 하나라. 그것에는 향을 채웠고 또 번제물로 수송아지 하나와 숫양 하나와 1년된 어린 숫양 하나이며 속죄제물로 숫염소 하나이며 화목제물로 소 둘과 숫양 다섯과 숫염소 다섯과 1년된 어린 숫양 다섯이라. 이는 암미나답의 아들 나손의 예물이었더라.

제2일에는 잇사갈의 족장 수알의 아들 느다넬이 드렸으니 그 드린 예물도 성소의 세겔대로 일백 삼십 세겔중 은반 하나와 칠십 세겔중 은바리 하나라. 이 두 그릇에는 소제물로 기름 섞은 고운 가루를 채웠고 또 십 세겔중 금 숟가락 하나라. 그것에는 향을 채웠고 또 번제물로 수송아지 하나와 숫양 하나와 1년된 어린 숫양 하나이며 속죄제물로 숫염소 하나이며 화목제물로 소 둘과 숫양 다섯과 숫염소 다섯과 1년된 어린 숫양 다섯이라. 이는 수알의 아들 느다넬의 예물이었더라.

제3일에는 스불론 자손의 족장 헬론의 아들 엘리압이 드렸으니 그 예물도 성소의 세겔대로 일백 삼십 세겔중 은반 하나와 칠십 세겔중 은바리 하나라. 이 두 그릇에는 소제물로 기름 섞은 고운 가루를 채웠고 또 십 세겔중 금 숟가락 하나라. 이것에는 향을 채웠고 또 번제물로 수송아지 하나와 숫양 하나와 1년된 어린 숫양 하나이며 속죄제물로 숫염소 하나이며 화목제물로 소 둘과 숫양 다섯과 숫염소 다섯과 1년된 어린 숫양 다섯이라. 이는 헬론의 아들 엘리압의 예물이었더라.

제4일에는 르우벤 자손의 족장 스데울의 아들 엘리술이 드렸으니 그 예물도 성소의 세겔대로 일백 삼십 세겔중 은반 하나와 칠십 세겔중 은바리 하나라. 이 두 그릇에는 소제물로 기름 섞은 고운 가루를 채웠고 또 십 세겔중 금숟가락 하나라. 이것에는 향을 채웠고 또 번제물로 수송아지 하나와 숫양 하나와 1년된 어린 숫양 하나이며 속죄제물로 숫염소 하나이며 화목제물로 소 둘과 숫양 다섯과 숫염소 다섯과 1년된 어린 숫양 다섯이라. 이는 스데울의 아들 엘리술의 예물이었더라.

제5일에는 시므온 자손의 족장 수리삿대의 아들 슬루미엘이 드렸으니 그 예물도 성소의 세겔대로 일백 삼십 세겔중 은반 하나와 칠십 세겔중 은바리 하나라. 이 두 그릇에는 소제물로 기름 섞은 고운 가루를 채웠고 또 십 세겔중 금숟가락 하나라. 이것에는 향을 채웠고 또 번제물로 수송아지 하나와 숫양 하나와 1년된 어린 숫양 하나이며 속죄제물로 숫염소 하나이며 화목제물로 소 둘과 숫양 다섯과 숫염소 다섯과 1년된 어린 숫양 다섯이라. 이는 스데울의 아들 엘리술의 예물이었더라.

제6일에는 갓 자손의 족장 드우엘의 아들 엘리아삽이 드렸으니 그 예물도 성소의 세겔대로 일백 삼십 세겔중 은반 하나와 칠십 세겔중 은바리 하나라. 이 두 그릇에는 소제물로 기름 섞은 고운 가루를 채웠고 또 십 세겔중 금숟가락 하나라. 이것에는 향을 채웠고 또 번제물로 수송아지 하나와 숫양 하나와 1년된 어린 숫양 하나이며 속죄제물로 숫염소 하나이며 화목제물로 소 둘과 숫양 다섯과 숫염소 다섯과 1년된 어린 숫양 다섯이라. 이는 스데울의 아들 엘리술의 예물이었더라.

제7일에는 에브라임 자손의 족장 암미훗의 아들 엘리사마가 드렸으니 그 예물도 성소의 세겔대로 일백 삼십 세겔중 은반 하나와 칠십 세겔중 은바리 하나라. 이 두 그릇에는 소제물로 기름 섞은 고운 가루를 채웠고 또 십 세겔중 금숟가락 하나라. 이것에는 향을 채웠고 또 번제물로 수송아지 하나와 숫양 하나와 1년된 어린 숫양 하나이며 속죄제물로 숫염소 하나이며 화목제물로 소 둘과 숫양 다섯과 숫염소 다섯과 1년된 어린 숫양 다섯이라. 이는 스데울의 아들 엘리술의 예물이었더라.

제8일에는 므낫세 자손의 족장 브다술의 아들 가말리엘이 드렸으니 그 예물도 성소의 세겔대로 일백 삼십 세겔중 은반 하나와 칠십 세겔중 은바리 하나라. 이 두 그릇에는 소제물로 기름 섞은 고운 가루를 채웠고 또 십 세겔중 금숟가락 하나라. 이것에는 향을 채웠고 또 번제물로 수송아지 하나와 숫양 하나와 1년된 어린 숫양 하나이며 속죄제물로 숫염소 하나이며 화목제물로 소 둘과 숫양 다섯과 숫염소 다섯과 1년된 어린 숫양 다섯이라. 이는 스데울의 아들 엘리술의 예물이었더라.

제9일에는 베냐민 자손의 족장 기드오니의 아들 아비단이 드렸으니 그 예물도 성소의 세겔대로 일백 삼십 세겔중 은반 하나와 칠십 세겔중 은바리 하나라. 이 두 그릇에는 소제물로 기름 섞은 고운 가루를 채웠고 또 십 세겔중 금숟가락 하나라. 이것에는 향을 채웠고 또 번제물로 수송아지 하나와 숫양 하나와 1년된 어린 숫양 하나이며 속죄제물로 숫염소 하나이며 화목제물로 소 둘과 숫양 다섯과 숫염소 다섯과 1년된 어린 숫양 다섯이라. 이는 스데울의 아들 엘리술의 예물이었더라.

제10일에는 단 자손의 족장 암미삿대의 아들 아히에셀이 드렸으니 그 예물도 성소의 세겔대로 일백 삼십 세겔중 은반 하나와 칠십 세겔중 은바리 하나라. 이 두 그릇에는 소제물로 기름 섞은 고운 가루를 채웠고 또 십 세겔중 금숟가락 하나라. 이것에는 향을 채웠고 또 번제물로 수송아지 하나와 숫양 하나와 1년된 어린 숫양 하나이며 속죄제물로 숫염소 하나이며 화목제물로 소 둘과 숫양 다섯과 숫염소 다섯과 1년된 어린 숫양 다섯이라. 이는 스데울의 아들 엘리술의 예물이었더라.

제11일에는 아셀 자손의 족장 오그란의 아들 바기엘이 드렸으니 그 예물도 성소의 세겔대로 일백 삼십 세겔중 은반 하나와 칠십 세겔중 은바리 하나라. 이 두 그릇에는 소제물로 기름 섞은 고운 가루를 채웠고 또 십 세겔중 금숟가락 하나라. 이것에는 향을 채웠고 또 번제물로 수송아지 하나와 숫양 하나와 1년된 어린 숫양 하나이며 속죄제물로 숫염소 하나이며 화목제물로 소 둘과 숫양 다섯과 숫염소 다섯과 1년된 어린 숫양 다섯이라. 이는 스데울의 아들 엘리술의 예물이었더라.

제12일에는 납달리 자손의 족장 에난의 아들 아히라가 드렸으니 그 예물도 성소의 세겔대로 일백 삼십 세겔중 은반 하나와 칠십 세겔중 은바리 하나라. 이 두 그릇에는 소제물로 기름 섞은 고운 가루를 채웠고 또 십 세겔중 금숟가락 하나라. 이것에는 향을 채웠고 또 번제물로 수송아지 하나와 숫양 하나와 1년된 어린 숫양 하나이며 속죄제물로 숫염소 하나이며 화목제물로 소 둘과 숫양 다섯과 숫염소 다섯과 1년된 어린 숫양 다섯이라. 이는 스데울의 아들 엘리술의 예물이었더라.

이는 곧 단에 기름 바르던 날에 이스라엘 족장들이 드린 바 단의 봉헌 예물이라. 은반이 열 둘이요 은바리가 열 둘이요 금숟가락이 열 둘이니 은반은 각각 일백 삼십 세겔중이요 은바리는 각각 칠십 세겔중이라. 성소의 세겔대로 모든 기명의 은이 도합이 이천 사백 세겔이요 또 향을 채운 금숟가락이 열 둘이니 성소의 세겔대로 각각 십 세겔중이라. 그 숟가락의 금이 도합이 일백 이십 세겔이요, 또 번제물로 수송아지가 열 둘이요 숫양이 열 둘이요 1년된 어린 숫양이 열 둘이요, 그 소제물이며, 속죄제물로 숫염소가 열 둘이며, 화목제물로 수소가 이십 사요 숫양이 육십이요 숫염소가 육십이요 1년된 어린 숫양이 육십이라. 이는 단에 기름 바른 후에 드린 바 단의 봉헌 예물이었더라.

둘째로, 열두 족장들은 하나님께 은반[은접시] 하나씩과 은바리[은사발] 하나씩과 금숟가락[금냄비] 하나씩을 드렸다. 은접시는 무게가 130세겔 즉 약 1.3킬로그램이었고, 은사발은 무게가 70세겔 즉 약 700그램이었고, 금숟가락[금냄비]은 무게가 10세겔 즉 약 100그램이었다. (1세겔은 약 10그램이었다.) 은접시는 모두 열두 개, 은사발도 모두 열두 개, 또 금냄비도 모두 열두 개이었다.

셋째로, 이스라엘의 족장들은 소제물과 번제물과 속죄제물과 화목제물을 하나님께 드렸다. 그들은 소제물로 은접시와 은사발에는 기름 섞은 고운 가루를, 금냄비에는 향을 채워드렸고, 번제물로 수송아지 한 마리, 숫양 한 마리, 1년된 어린 숫양 한 마리를 드렸다. 그들은 속죄제물로 숫염소 한 마리를 드렸고, 화목제물로 소 두 마리, 숫양 다섯 마리, 숫염소 다섯 마리, 1년된 어린 숫양 다섯 마리를 드렸다. 구약시대에, 소제물은 감사의 마음을 상징하고, 번제물은 속죄의 뜻과 함께 온전한 헌신과 순종의 마음을 상징하고, 속죄제물은 속죄를 상징하고, 화목제물은 속죄의 뜻과 함께 화목 곧 하나님과의 교제의 회복을 상징하였다고 본다.

이스라엘 족장들이 하나님께 드린 봉헌예물은 각 지파의 족장들이 똑같이 드렸다는 특징이 있었다. 그들은 두 명이 수레 한 대씩, 또 각 사람이 소 한 마리씩을 드렸다. 또 그들은 매일 한 명씩 12일 동안 똑같은 소제물, 번제물, 속죄제물, 화목제물을 드렸다. 본장은 똑같은 내용이 열두 번이나 반복되어 있다. 그들은 하나님 앞에서 똑같은 봉헌예물을 드렸다.

그것은 이스라엘 열두 지파의 족장들과 족속들이 하나님 앞에서 똑같은 지위와 특권을 가지고 있고 똑같은 봉사에 참여함을 나타낸다고 본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동등하게 여기셨고 동등하게 받으셨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모든 성도들이 똑같은 지위와 특권을 가지고 하나님을 섬기기를 원하시고 또 명하신다.

사도 바울은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 이는 너희의 드릴 영적 예배니라”고 말하였다(롬 12:1). 또 그는 우리 몸이 주의 핏값으로 사신 바 되었으므로 우리가 우리의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한다고 말하였다(고전 6:19-20). 모든 성도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자기 몸을 하나님께 드려야 한다.

예수께서는 모든 성도가 하나님을 위해 보물을 드릴 것을 명하셨다. 그는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땅에 쌓아 두지 말라”고 말씀하셨다(마 6:19). 하늘에 쌓는 것은 전도와 구제를 위해 돈을 쓰는 것을 의미할 것이다(눅 12:33). 사도 바울은 디모데에게 “네가 이 세대에 부한 자들을 명하여 마음을 높이지 말고 정함이 없는 재물에 소망을 두지 말고 오직 우리에게 모든 것을 후히 주사 누리게 하시는 하나님께 두며 선한 일을 행하고 선한 사업에 부하고 나눠주기를 좋아하며 동정하는 자가 되게 하라. 이것이 장래에 자기를 위하여 좋은 터를 쌓아 참된 생명을 취하는 것이니라”고 말하였다(딤전 6:17-19).

[89절] 모세가 회막에 들어가서 여호와께 말씀하려 할 때에 증거궤 위 속죄소 위의 두 그룹 사이에서 자기에게 말씀하시는 목소리를 들었으니 여호와께서 그에게 말씀하심이었더라.

이스라엘 족장들이 하나님께 이런 봉헌예물을 드렸을 때, 하나님께서는 응답하셨다. 모세가 회막에 들어가서 여호와께 말씀하려 할 때에 증거궤 위 속죄소 위의 두 그룹 사이에서 자기에게 말씀하시는 목소리를 들었다. 여호와께서는 그에게 음성으로 말씀하셨다.

하나님께서 음성으로 모세에게 말씀하신 것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족장들의 봉헌예물을 기쁘게 받으셨다는 표이기도 하였다. 지성이면 감천(至誠感天)이라는 세상 속담은 좋은 말 같다. 예수께서는 구제를 교훈하시면서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너의 아버지가 갚으시리라”고 말씀하셨다(마 6:4). 사도 바울은 종들에게 “각 사람이 무슨 선을 행하든지 종이나 자유하는 자나 주에게 그대로 받을 줄을 앎이니라”고 교훈하였다(엡 6:8).

우리는 오늘 이스라엘 족장들의 봉헌예물의 기록을 통해 하나님께 드리는 삶에 대해 교훈을 얻자. 우리는 하나님께 정성을 다해 드리자. 물론 우리가 우리의 형편과 처지에 따라 드리지만,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가장 귀한 것을 받으실 만한 자격이 있는 분이시다. 또 하나님의 일은 이 세상에서 가장 귀하고 가치 있는 일이다.

하나님의 일이 무엇인가? 그것은 전도하는 일이요 하나님의 참된 교회를 세우는 일이요 또 어려운 형제들과 이웃들을 구제하는 일이다. 그것은 또 바른 책자들을 만들어 배포하는 일이요 바른 신학교를 만들어 하나님의 좋은 일꾼들을 훈련시키고 배출하는 일이다.

우리는 우리를 위해 보물을 땅에 쌓아 두지 말고 하늘에 쌓아두라는 주님의 말씀을 기억하자(마 6:19-21). 하늘에 쌓아두는 것은 하나님의 일을 위해 쓰는 것이다. 그것은 전도와 구제의 일을 위해 쓰는 것을 말한다. 사도 바울도 교훈하기를 “너희는 믿음과 말과 지식과 모든 간절함과 우리를 사랑하는 이 모든 일에 풍성한 것같이 이 은혜[곧 헌금하는 일]에도 풍성하게 할지니라”고 하였다(고후 8:7).

우리는 전도와 교회 건립, 구제, 문서사역, 신학교 사역 등의 하나님의 선한 일을 위해 기도하고, 헌금하고, 우리의 몸과 마음을 드리자. 우리의 생애는 정말 짧지만, 하나님의 일은 오래 남을 것이다. 우리가 바친 헌금과 수고와 봉사는 결코 헛되지 않을 것이다.

 

 

8장: 레위인의 성별

[1-4절] 여호와께서 또 모세에게 일러 가라사대 아론에게 . . . .

여호와께서는 또 모세에게 말씀하셨다. “아론에게 고하여 이르라. 등을 켤 때에는 일곱 등잔을 등대 앞으로 비취게 할지니라.” 아론은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령하신 대로 등불을 등대 앞으로 비취도록 켰다. 이 등대는 밑판에서 그 꽃까지 금을 쳐서 만든 것으로서 모세가 여호와께서 보이신 식양을 따라 만들었다.

성소 안의 일곱 등잔을 가진 등대는 하나님의 완전한 빛을 나타낸다. 빛은 지식과 의와 기쁨의 상징이라고 본다. 일곱 등잔은 완전한 지식, 완전한 의, 완전한 기쁨을 가리킨다고 본다. 등대는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하였다. 예수님은 참빛으로 세상에 오셨다(요 1:9). 그는 친히 “나는 세상의 빛이니 나를 따르는 자는 어두움에 다니지 아니하고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고 말씀하셨다(요 8:12). 하나님의 말씀 곧 성경말씀도 우리에게 빛이 된다(시 119:105; 잠 6:23).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 거하고 성경말씀 안에 거해야 한다.

[5-13절]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일러 가라사대 이스라엘 자손 . . . .

여호와께서는 또 모세에게 말씀하셨다. “이스라엘 자손 중에서 레위인을 취하여 정결케 하라. 너는 이같이 하여 그들을 정결케 하되 곧 속죄의 물로 그들에게 뿌리고 그들로 그 전신[온 몸]을 삭도로 밀게 하고 그 의복을 빨게 하여 몸을 정결케 하고 또 그들로 수송아지 하나를 번제물로, 기름 섞은 고운 가루를 그 소제물로 취하게 하고 그 외에 너는 또 수송아지 하나를 속죄제물로 취하고 레위인을 회막 앞에 나오게 하고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을 모으고 레위인을 여호와 앞에 나오게 하고 이스라엘 자손으로 그들에게 안수케 한 후에 아론이 이스라엘 자손을 위하여 레위인을 요제[흔드는 제사]로 여호와 앞에 드릴지니 이는 그들로 여호와를 봉사케 하기 위함이라. 레위인으로 수송아지들의 머리에 안수케 하고 네가 그 하나는 속죄제물로, 하나는 번제물로 여호와께 드려 레위인을 속죄하고 레위인을 아론과 그 아들들 앞에 세워 여호와께 요제로 드릴지니라.”

이것은 레위인을 정결케 하는 규례이다. 레위인들을 속죄의 물로 씻고 온 몸의 털을 칼로 밀고 옷을 빨고 몸을 정결케 하고 이스라엘 자손들이 그들에게 안수하고 수송아지 하나를 번제물로, 또 소제물과, 수송아지 하나를 속죄제물로 준비하여 레위인들이 그것들에게 안수한 후 요제로 드려야 했다. 안수는 위탁의 뜻이 있다. 요제(a wave offering)[흔드는 제사]는 제물을 전후로 흔드는 방식의 제사를 가리킨다. 그것은 제물을 하나님께 드리고 하나님께서 그 제물을 제사 드리는 자에게 돌려주시는 뜻이 있다고 본다. 즉 요제는 제물을 하나님과 제사 드리는 자가 함께 나누는 뜻이 있다고 본다.

[14-19절] 너는 이같이 이스라엘 자손 중에서 레위인을 . . . .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또 말씀하셨다. “너는 이같이 이스라엘 자손 중에서 레위인을 구별하라. 그리하면 그들이 내게 속할 것이라. 네가 그들을 정결케 하여 요제로 드린 후에 그들이 회막에 들어가서 봉사할 것이니라. 그들은 이스라엘 자손 중에서 내게 온전히 드린 바 된 자라. 이스라엘 자손 중 일절[일체, 모든] 초태생 곧 모든 처음 난 자의 대신으로 내가 그들을 취하였나니 이스라엘 자손 중에 처음 난 것은 사람이든지 짐승이든지 다 내게 속하였음은 내가 애굽 땅에서 그 모든 처음 난 자를 치던 날에 내가 그들을 내게 구별하였음이라. 이러므로 내가 이스라엘 자손 중 모든 처음 난 자의 대신으로 레위인을 취하였느니라. 내가 이스라엘 자손 중에서 레위인을 취하여 그들을 아론과 그 아들들에게 선물로 주어서 그들로 회막에서 이스라엘 자손을 대신하여 봉사하게 하며 또 이스라엘 자손을 위하여 속죄하게 하였나니 이는 이스라엘 자손이 성소에 가까이 할 때에 그들 중에 재앙이 없게 하려 하였음이니라.”

하나님께서는 레위인들을 하나님께 속한 하나님의 것으로 구별하라고 말씀하셨고 그들을 정결케 하여 요제로 하나님께 드린 후 회막 봉사의 일을 하게 하라고 하셨다. 또 레위인들은 하나님께 온전히 드린 자, 곧 하나님께 바쳐진 자라고 불리었다.

[20-22절] 모세와 아론과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이 . . . .

모세와 아론과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은 여호와께서 레위인들에 대해 모세에게 명하신 대로 레위인들에게 다 행하였다. 레위인들은 죄에서 스스로 깨끗케 하고 그들의 옷을 빨았고 아론은 그들을 여호와 앞에 요제로 드리고 또 그들을 위해 속죄하여 정결케 한 후에 레위인들은 회막에 들어가서 아론과 그 아들들의 앞에서 봉사하였다. 여호와께서 레위인들의 일에 대해 모세에게 명하신 대로 그들은 그들에게 행하였다.

[23-26절] 여호와께서 또 모세에게 일러 가라사대 레위인은 . . . .

여호와께서는 또 모세에게 말씀하셨다. “레위인들은 이같이 할지니 곧 25세 이상으로는 회막에 들어와서 봉사하여 일할 것이요 50세부터는 그 일을 쉬어 봉사하지 아니할 것이나 그 형제와 함께 회막에서 모시는 직무를 지킬 것이요[그 형제들이 회막에서 그 직무를 지키도록 섬길 것이나] 일하지[일하지는] 아니할 것이라. 너는 레위인들의 직무에 대해 이같이 할지니라.”

민수기 4:3은 레위인들이 30세부터 50세까지 일하라고 규정하였다. 그러면 여기에 “25세 이상으로는 회막에 들어와서 봉사하여 일할 것이요”라는 말씀은 아마 견습생으로서 봉사하라는 뜻일 것이다. 또 50세 이후에는 그들이 레위인의 일상 업무에서는 제외되지만, 그 형제들의 업무에 조언하거나 협조하는 일을 하라는 뜻일 것이다.

본장의 레위인들의 성별과 헌신은 우리에게 확실히 두 가지 교훈을 준다. 첫째로, 구약시대의 성막의 봉사자들인 레위인들은 신약교회의 직분자들을 가리킨다고 본다. 레위인들은 구약교회의 봉사자들이었다. 하나님의 집에서 봉사하는 그들에게 요구되는 것은 무엇보다 정결함이었다. 그들은 죄로부터 정결함을 얻어야 하였고 세속적 생활로부터도 구별되어야 하였다. 세속적 생활은 물욕과 탐욕, 정욕과 음란, 술취함과 방탕함의 죄악된 생활이다. 신약교회의 직분자들, 봉사자들, 제직들, 주일학교 교사들, 권찰들은 구약의 레위인들과 같이 되어야 할 것이다. 그러므로 디모데전서 3:2-3은, “그러므로 감독은 책망할 것이 없으며 한 아내의 남편이 되며 절제하며 근신하며 아담하며 나그네를 대접하며 가르치기를 잘하며 술을 즐기지 아니하며 구타하지 아니하며 오직 관용하며 다투지 아니하며 돈을 사랑치 아니하며”라고 말했다.

둘째로, 구약시대의 레위인들은 신약시대의 모든 성도들을 예표한다고 본다. 신약교회의 직분자들 뿐만 아니라, 신약교회의 모든 성도들은 정결하고 거룩한 삶을 살아야 한다. 사도 바울은 교훈하기를,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 이는 너희의 드릴 영적 예배니라”(롬 12:1), “밤이 깊고 낮이 가까왔으니 그러므로 우리가 어두움의 일을 벗고 빛의 갑옷을 입자. 낮에와 같이 단정히 행하고 방탕과 술취하지 말며 음란과 호색하지 말며 쟁투와 시기하지 말고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입고 정욕을 위하여 육신의 일을 도모하지 말라”(롬 13:12-14), “그런즉 사랑하는 자들아, 이 약속을 가진 우리가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가운데서 거룩함을 온전히 이루어 육과 영의 온갖 더러운 것에서 자신을 깨끗케 하자”(고후 7:1)고 했다. 사도 베드로도 말하기를, “너희를 부르신 거룩한 자처럼 너희도 모든 행실에 거룩한 자가 되라”고 했다(벧전 1:15). 우리는 거룩해야 한다.

 

 

9장: 불기둥, 구름기둥

민수기 9장은 두 가지 내용을 기록한다. 하나는 애굽에서 나온 지 제2년 정월에 유월절을 지킨 것과, 다른 하나는 광야를 지내는 동안 불기둥과 구름기둥의 인도를 받았다는 것이다.

 

1-14절, 유월절을 반드시 지킬 것

[1-8절] 애굽 땅에서 나온 다음 해 정월에 여호와께서 . . . .

애굽 땅에서 나온 다음 해 곧 제2년 정월 여호와께서는 시내 광야에서 모세에게 말씀하셨다. “이스라엘 자손으로 유월절을 그 정기(定期)[정한 시기]에 지키게 하라. 그 정한 시기 곧 이 달 14일 해 질 때에 너희는 그것을 지키되 그 모든 율례와 그 모든 규례대로 지킬지니라.” 모세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유월절을 지키라고 명하였다. 그들은 정월 14일 해 질 때에 시내 광야에서 유월절을 지켰는데,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하신 것을 다 좇아 행하였다.

그때에 사람의 시체로 인하여 부정케 되어서 유월절을 지킬 수 없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들이 당일에 모세와 아론 앞에 이르러 그에게 말하였다. “우리가 사람의 시체로 인하여 부정케 되었거니와 우리로 이스라엘 자손과 함께 정기에 여호와께 예물을 드리지 못하게 금하심은 어찜이니이까?” 모세가 그들에게 말했다. “기다리라.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대하여 어떻게 명하시는지 내가 들으리라.”

[9-14절]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일러 가라사대 이스라엘 . . . .

여호와께서는 모세에게 말씀하셨다. “이스라엘 자손에게 고하여 이르라. 너희나 너희 후손 중에 시체로 인해 부정케 되든지 먼 여행 중에 있든지 할지라도 다 여호와 앞에 마땅히 유월절을 지키되 2월 14일 해 질 때에 그것을 지켜서 어린양에 무교병과 쓴 나물을 아울러 먹을 것이요 아침까지 그것을 조금도 남겨 두지 말며 그 뼈를 하나도 꺾지 말아서 유월절 모든 율례대로 지킬 것이니라.”

하나님께서는 또 말씀하셨다. “그러나 사람이 정결도 하고 여행 중에도 있지 아니하면서 유월절을 지키지 아니하는 자는 그 백성 중에서 끊쳐지리니[끊어지리니] 이런 사람은 그 정기[정한 시기]에 여호와께 예물을 드리지 아니하였은즉 그 죄를 당할지며, 만일 타국인이 너희 중에 우거하여 여호와 앞에 유월절을 지키고자 하면 유월절 율례대로 그 규례를 따라서 행할지니 우거한 자에게나 본토인에게나 그 율례는 동일할 것이니라.”

이스라엘 백성이 성막을 세운 것은 애굽에서 나온 지 제2년 1월 1일이었고(출 40:17), 시내 광야에서 인구조사를 시작한 것은 제2년 2월 1일이었다(민 1:1).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에서 처음으로 유월절을 지킨 것은 인구조사를 시작하기 전이었으나 특별한 사정상 유월절에 참석지 못한 자들을 위한 추가적 유월절은 그 후 2월 14일이었다.

이 일의 중요성은 연중 3대 절기 중 특히 유월절은 반드시 지켜야 한다는 것이었다. 몸이 시체로 인해 부정케 되었거나 먼 여행 중에 있지 않은 데도 지키지 않는 자는 그 백성 중에서 끊어질 것이라고 경고되었다. ‘끊어진다’는 말은 사형이나 출교를 의미할 것이다. 또 타국인도 유월절 지키기를 원하면 지킬 수 있도록 허용하였다.

유월절은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의 노예생활로부터 해방된 것을 기념하는 절기이었다. 하나님께서 애굽에 내리신 열 재앙들 중 마지막 것인 장자 재앙을 피하는 길은 어린양의 피를 집의 좌우 문설주와 문인방에 바르는 것이었다. 유월절은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 사역을 예표하였다. 예수께서는 유월절 어린양으로 돌아가셨다. 고린도전서 5:7, “우리의 유월절 양 곧 그리스도께서 희생이 되셨느니라.”

구약시대의 유월절은 신약시대의 성찬식과 의미가 같았다. 예수께서는 유월절에 성찬식을 제정하셨다(눅 22:7-20). 성찬식은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 사역을 기념하는 예식이다. 그것은 주의 명령이다. 고린도전서 11:23-26, “내가 너희에게 전한 것은 주께 받은 것이니 곧 주 예수께서 잡히시던 밤에 떡을 가지사 축사하시고 떼어 가라사대 이것은 너희를 위하는 내 몸이니 이것을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 하시고 식후에 또한 이와 같이 잔을 가지시고 가라사대 이 잔은 내 피로 세운 새 언약이니 이것을 행하여 마실 때마다 나를 기념하라 하셨으니 너희가 이 떡을 먹으며 이 잔을 마실 때마다 주의 죽으심을 오실 때까지 전하는 것이니라.”

구약 성도들이 유월절을 반드시 지켜야 했고 만일 그들이 그 절기를 지키지 않으면 이스라엘 총회에서 제외되든지 사형에 처해졌듯이, 신약 성도들도 성찬식을 주의 명령으로 알고 또 그 의미가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의 은혜를 기억하고 감사하는 것임을 깨닫고 반드시 지켜야 할 것이다. 주께서는 “이것을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고 말씀하셨다(24, 25절). ‘행하여’라는 원어(포이에이테 poiei'te)는 ‘행하라’는 명령법이다. 성찬식은 하나님의 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명하신 의식이다. 그러므로 이 의식을 소홀히 하는 것은 죄가 될 것이다. 특별한 이유가 없이 교회의 성찬식에 빠지는 자는 믿는 자가 아닐 것이요 교인의 자격이 없는 자일 것이다. 성찬은 복음의 핵심적 내용인 속죄의 진리를 담고 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서 피를 흘리며 죽으셨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는 이 일을 가장 귀하게 여길 것이다. 주의 뜻과 명령을 고의로 저버리는 것은 큰 죄악이다. 세례도 성찬도 다 마찬가지이다. 범죄하는 사람은 즉시 회개해야 할 것이다. 구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는 다 물 세례를 받아야 하며 또 다 성찬의 떡과 포도즙을 먹고 마셔야 한다.

 

15-23절, 불기둥, 구름기둥

[15-23절] 성막을 세운 날에 구름이 성막 곧 증거막을 덮었고 . . . .

성막을 세운 날에, 곧 애굽에서 나온 지 제2년 1월 1일에 구름이 성막 곧 증거막을 덮었고 저녁이 되면 성막 위에 불 모양 같은 것이 나타나서 아침까지 이르렀다. 항상 그러하여 낮에는 구름이 그것을 덮었고 밤이면 불 모양이 있었다(출 13:22; 40:38).

불기둥과 구름기둥은 하나님의 임재의 표시이었다. 민수기 14:14는 다음과 같이 기록하였다. “주 여호와께서 이 백성 중에 계심을 그들도 들었으니 곧 주 여호와께서 대면하여 보이시며 주의 구름이 그들 위에 섰으며 주께서 낮에는 구름기둥 가운데서, 밤에는 불기둥 가운데서 그들 앞에서 행하시는 것이니이다.”

또 그것은 하나님께서 그들을 보호하신다는 표시이었다. 사실, 이 구름기둥은 성막을 짓기 전부터 이스라엘 회중과 함께하였다. 그들이 애굽에서 나와 홍해에 도달하고 뒤에 애굽 군대가 쫓아오고 있었을 때 하나님의 구름기둥은 그들을 보호하였다. 출애굽기 14:19-20은 다음과 같이 증거한다. “이스라엘 진 앞에 행하던 하나님의 사자가 옮겨 그 뒤로 행하매 구름기둥도 앞에서 그 뒤로 옮겨 애굽 진과 이스라엘 진 사이에 이르러 서니 저 편은 구름과 흑암이 있고 이 편은 밤이 광명하므로 밤새도록 저 편이 이 편에 가까이 못하였더라.”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를 행진할 때 낮에는 여호와의 구름이 그들 위에 덮여 뜨거운 햇볕을 가리었고(민 10:34) 밤에는 필경 불기둥이 그들 곁에 있어 흑암의 불편을 감하여 주었다.

특히 불기둥과 구름기둥은 광야에서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나타내었다. 모세는 출애굽기 13:21에서 “여호와께서 그들 앞에 행하사 낮에는 구름기둥으로 그들의 길을 인도하시고 밤에는 불기둥으로 그들에게 비취사 주야로 진행하게 하시니”라고 말하고, 신명기 1:33에서도, “그는 너희 앞서 행하시며 장막 칠 곳을 찾으시고 밤에는 불로, 낮에는 구름으로 너희의 행할 길을 지시하신 자니라”고 하였다.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의 그 인도하심에 순종하기만 하면 되었다.

오늘 본문 17절 이하는 이 사실을 자세히 증거했다. “구름이 성막에서 떠오르는 때에는 이스라엘 자손이 곧 진행하였고 구름이 머무는 곳에 이스라엘 자손이 진을 쳤으니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의 명()을 좇아(7번) 진행하였고 여호와의 명을 좇아 진을 쳤으며, 구름이 성막 위에 머무는 동안에는 그들이 유진(留陣)하였고 구름이 장막 위에 머무는 날이 오랠 때에는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의 명(미쉬메렛)[명령](2번)을 지켜 진행치 아니하였으며, 혹시 구름이 장막 위에 머무는 날이 적을 때에도 그들이 다만 여호와의 명을 좇아 유진하고 여호와의 명을 좇아 진행하였으며, 혹시 구름이 저녁부터 아침까지 있다가 아침에 그 구름이 떠오를 때에는 그들이 진행하였고, 구름이 밤낮 있다가(요맘 와라옐라)[‘낮에와 밤에 있다가’(NASB), ‘낮에나 밤에 있다가’(KJV, NIV)] 떠오르면 곧 진행하였으며, 이틀이든지 한 달이든지 1년이든지 구름이 성막 위에 머물러 있을 동안에는 이스라엘 자손이 유진하고 진행치 아니하다가 떠오르면 진행하였으니, 곧 그들이 여호와의 명을 좇아 진을 치며 여호와의 명을 좇아 진행하고 또 모세로 전하신 여호와의 명을 따라 여호와의 직임(미쉬메렛)[명령]을 지켰더라.”

불기둥과 구름기둥은 하나님의 임재와 보호와 인도하심을 나타내었다. 이스라엘 자손이 가나안 땅에 정착한 이후에는 불기둥과 구름기둥의 인도하심 대신에 성경과 성령의 지도하심을 받았다. 오늘날도 그러하다. 불기둥과 구름기둥은 오늘날 성경말씀과 성령의 감동을 가리킨다. 사도 바울은 디모데후서 3:16-17에 말하기를,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하기에 온전케 하려 함이니라”고 하였다. 시편 119:105는,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라고 말한다. 성경말씀은 우리의 삶의 지침, 곧 복된 지침이다(시 1:1-3; 시 119:165).

또 성령께서는 믿는 이들의 심령 속에 거하신다. 그리스도인은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는 자들이다. 로마서 8:13-14는, “너희가 육신대로 살면 반드시 죽을 것이로되 영[성령]으로써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리니 무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그들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말했다. 성도는 성령을 좇아 행함으로 육신의 죄성을 이긴다(갈 5:16).

또 우리가 하나님의 선한 인도하심을 얻으려면 우리는 범사에 믿음으로 행하고 기도를 많이 해야 한다. 시편 25:12는,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 누구뇨? 그 택할 길을 저에게 가르치시리로다”고 말했고, 잠언 3:6은, “너는 범사에 그를 인정하라. 그리하면 네 길을 지도하시리라”고 하였다. 또 성경은 우리가 어려운 문제를 가졌을 때 하나님께 많이 기도해야 함을 가르쳤다. 기도는 성도의 특권이다(마 7:7-8; 빌 4:6-7).

또 우리가 성경말씀과 성령의 감동으로 하나님의 뜻과 지시를 깨닫았을 때, 우리는 그 뜻에 불평하지 말고 순종해야 한다. 하나님의 섭리 곧 하나님께서 부족한 우리에게 가장 좋은 길을 예비하심을 믿자.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善)을 이룰 것이다(롬 8:28). 가장 선한 것은 우리의 영적 성장과 성화이다. 그러므로 때때로 고난의 길을 걷게 되더라도, 불평하지 말고 감사하자. 항상 기뻐하고 범사에 감사하자.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행한 죄보다 훨씬 더 적게 우리를 징계하시고 우리의 행한 선보다 훨씬 더 많게 우리에게 상을 주신다. 요한계시록 14장에는 시온산에 어린양과 함께 선 14만 4천명의 성도가 증거되어 있다. 그들은 정절이 있는 자이며 어린양이 어디로 인도하든지 따라가는 자이며 사람들 중에서 구원받은 자라고 증거되었다(계 14:4). 우리는 그들과 같이 주께서 인도하시는 대로 즐거이 순종하며 살아가자.

 

 

10장: 은나팔

[1-10절]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일러 가라사대 은나팔 둘을 . . . .

1-10절은 은나팔을 만들라는 지시이다. 여호와께서는 모세에게 말씀하셨다. “은나팔 둘을 만들되 쳐서 만들어서 그것으로 회중을 소집하며 진을 진행케 할 것이라. 두 나팔을 불 때에는 온 회중이 회막 문 앞에 모여서 네게로 나아올 것이요 하나만 불 때에는 이스라엘 천부장 된 족장들이 모여서 네게로 나아올 것이며, 너희가 그것을 울려 불 때에는 동편 진들이 진행할 것이고 제2차로 울려 불 때에는 남편 진들이 진행할 것이라. 무릇 진행하려 할 때에는 나팔소리를 울려 불 것이며 또 회중을 모을 때에도 나팔을 불 것이나 소리를 울려 불지 말 것이며, 그 나팔은 아론의 자손인 제사장들이 불지니 이는 너희 대대에 영원한 율례니라. 또 너희 땅에서 너희가 자기를 압박하는 대적을 치러 나갈 때에는 나팔을 울려 불지니 그리하면 너희 하나님 여호와가 너희를 기억하고 너희를 너희 대적에게서 구원하리라. 또 너희 희락의 날과 너희 정한 절기와 월삭에는 번제물의 위에와 화목제물의 위에 나팔을 불라. 그로 말미암아 너희 하나님이 너희를 기억하리라. 나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니라.”

하나님께서는 은나팔을 두 개 만들게 하셨다. ‘나팔’이라는 원어(카초체라)는 ‘클라리언’(clarion, 나팔)을 가리킨다. 클라이언은 길고 곧고 가느다랗고 끝이 나팔꽃모양인 금속관 나팔을 가리킨다. 그것은 숫양의 뿔 모양인 나팔(쇼파르)과 구별된다.

왜 금나팔이 아니고 은나팔을 만들라고 하셨을까? 금은 신성(神性)과 왕직을 상징하는 색깔이고, 은은 인성(人性)과 순결성을 상징하는 것 같다. 시편 12:6은, “여호와의 말씀은 순결함이여, 흙 도가니에 일곱 번 단련한 은 같도다”라고 말한다. 은나팔은 하나님의 명령을 수행하는 인간 지도자의 순결한 의무를 보이는 것 같다.

은나팔의 용도는 첫째로 회중을 소집하기 위한 것이었다. 두 나팔을 불면 온 회중을 소집하는 것이요, 한 나팔을 불면 족장들만 소집하는 것이다. 둘째로, 진을 진행하기 위한 것이었다. 셋째로, 전쟁시에 나아갈 때 불렀고, 넷째로, 절기시에 불렀다. 셋째와 넷째의 경우는 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기억하고 도우시며 구원하시고 은혜 주시기를 구하는 뜻이 있었다.

은나팔을 부는 일은 제사장들에게 맡겨진 직무이었다(8절). 물론 모세가 그것을 지시하였을 것이다. 불기둥, 구름기둥이 이스라엘을 인도하였지만, 그것을 보고 지도자 모세는 제사장들에게 나팔을 불도록 지시하였고 회중들 혹은 족장들은 그 지시대로 모이기도 하고 진행하기도 했을 것이다.

[11-28절] 제2년 2월 21일에 구름이 증거막에서 떠오르매 . . . .

제2년 2월 20일에 구름이 떠올랐다. 성막을 짓고 유월절을 지키고 인구조사를 마친 후에 처음 떠오른 때이었다. 그것은 2월 14일 추가적 유월절을 지킨 지 몇 일 후의 일이었다. 이스라엘 회중은 하나님께서 지시하신 규례대로 질서 있게 행진하였다.

[29-32절] 모세가 그 장인 미디안 사람 르우엘의 아들 . . . .

29-32절은 모세가 호밥에게 같이 가기를 요청한 내용이다. 모세는 그 장인 미디안 사람 르우엘의 아들 호밥에게 말했다. “여호와께서 주마 하신 곳으로 우리가 진행하나니 우리와 동행하자. 그리하면 선대하리라.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에게 복을 내리리라 하셨느니라.” 그러나 호밥은 그에게 “나는 가지 아니하고 내 고향 내 친족에게로 가리라”고 말했다. 모세는 그에게 다시 말했다. “청컨대 우리를 떠나지 마소서. 당신은 우리가 광야에서 어떻게 진 칠 것을 아나니 우리의 눈이 되리이다. 우리와 동행하면 여호와께서 우리에게 복을 내리시는 대로 우리도 당신에게 행하리이다.” 후에 그 후손이 유다 땅에 거한 것을 보면, 호밥은 모세의 청을 받아들였던 것 같다(삿 1:16).

모세가 미디안 사람 르우엘의 아들 호밥에게 함께 가기를 요청한 사실은 하나님의 섭리가 항상 기적적 방식은 아님을 보인다. 미디안 사람 르우엘의 아들 호밥은 시내 광야와 바란 광야의 지리나 광야의 생태에 대해 많은 경험과 지식이 있었을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의 이성적 판단과 경험적 지식도 사용하신다. 하나님께서 큰 틀에서 인도하시지만, 구체적인 일들에 있어서 그는 사람들의 지혜와 경험과 성실함을 무시하지 않으시고 오히려 사용하신다.

그것은 사도행전 27:31, 34에서도 증거된다. 사도 바울은 죄수의 몸으로 로마로 이송되는 중에 유라굴로라는 큰 광풍을 만났다. 바울과 함께 배에 탔던 276명의 사람들은 14일 동안 큰 고난을 당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바울에게 그들이 구원을 얻을 것을 말씀해주셨다. 그러나 사공들이 작은 배를 타고 도망치려 할 때 바울은 그를 지키던 백부장과 군사들에게 이 사람들이 배에 있지 않으면 구원을 얻지 못한다고 말했다.

하나님의 섭리는 기적주의가 아니다. 기적은 특별한 경우에 주신 일이었다. 우리의 삶의 대부분은 하나님의 일반적 섭리 아래 있다. 그러므로 우리가 아플 때 우리는 병원에도 가고 약도 감사히 사용할 수 있다. 물론 우리는 하나님을 모르는 자처럼 인간의 이성과 경험만 의지해서는 안 된다. 우리는 범사에 하나님을 인정하고 의지하고 의탁해야 한다. 그러나 하나님을 의지하는 믿음 안에서 우리는 하나님께서 주시는 선한 분별력과 판단력을 사용해야 하는 것이다.

[33-36절] 그들이 여호와의 산에서 떠나 삼일 길을 행할 때에 . . . .

그들이 여호와의 산에서 떠나 삼일 길을 행할 때 여호와의 언약궤가 그 삼일 길에 앞서 행하며 그들의 쉴 곳을 찾았고 그들이 행진할 때에 낮에는 여호와의 구름이 그 위에 덮였다. 궤가 떠날 때에 모세는, “여호와여, 일어나사 주의 대적들을 흩으시고 주를 미워하는 자로 주의 앞에서 도망하게 하소서”라고 말했고, 또 궤가 쉴 때에는, “여호와여, 이스라엘 천만인에게로 돌아오소서”라고 하였다. 하나님께서는 불기둥과 구름기둥으로 그들을 인도하셨고 보호하셨고 임재하셨다. 그는 그 광야에서 이스라엘 백성과 함께하셨다.

10장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은나팔은 인도자의 의무와 회중의 의무를 보인다. 불기둥과 구름기둥이 있었지만, 인도자는 항상 그것을 주시하고 알리는 의무가 있었다. 나팔소리는 신약교회의 교훈과 행정의 일에 적용될 것이다. 설교자는 성경이라는 창고에서 하나님의 교훈을 찾아 하나님의 백성에게 전해야 한다(마 13:52). 성경을 읽는 모든 성도들이 하나님의 뜻을 이해하지만, 하나님께서는 바른 교회의 강단을 통해 그 뜻을 밝히 선포하고 증거하기를 원하신다. 특히 오늘날처럼 영적으로 혼탁한 때에는 더욱 그러하다. 또 교회의 바른 행정은 바른 교훈의 적용과 실천이다. 회중은 그 나팔소리를 듣고 따라야 한다. 교인들의 의무는 성경적 설교와 지도에 순종하는 것이다. 히브리서 13:17은 “너희를 인도하는 자들에게 순종하고 복종하라”고 말한다. 우리는 성경적 설교와 교훈을 열심히 듣고 배우며 마음에 새기고 그 교훈과 지도에 순종하자. 이와 같이, 인도자는 인도자대로 자신의 의무를 다하고, 회중은 회중대로 자신의 의무를 다하자.

둘째로, 우리는 하나님의 섭리를 믿되 기적주의로가 아니고 인간의 이성과 경험, 또 하나님께서 주신 선한 분별력과 판단력을 사용해야 한다. 우리는 범사에 하나님을 인정하고 의지하고 의탁해야 하지만, 하나님을 의지하는 믿음 안에서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것들을 사용하며 환경적 인도하심을 살피며 활용해야 한다고 본다.

 

 

11장: 백성의 불평과 메추라기

본장은 두 가지 내용을 기록한다. 하나는 다베라에서 원망했던 일이고, 다른 하나는 기브롯 핫다아와에서 탐심을 부렸던 일이다.

[1-3절] 백성이 여호와의 들으시기에 악한 말로 원망하매 . . . .

본장은 먼저 다베라에서의 일을 간단히 기록한다. 이스라엘 백성이 여호와의 들으시기에 악한 말로 원망하였는데 여호와께서 들으시고 진노하셔서 여호와의 불로 그들 중에 붙어서 이스라엘의 진영 끝을 사르게 하셨다. 그때 백성이 모세에게 부르짖으므로 모세가 여호와께 기도하였고 그 불이 꺼졌다. 그 곳 이름을 다베라(‘불사름’)라 불렀는데, 그것은 여호와의 불이 그들 중에 붙은 까닭이었다.

우리는 무슨 일에나 하나님을 인정하고 가급적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감사하고 그 일에 적극적으로 임하고 하나님 앞에서 충성해야 할 것이다. 무슨 일이든지 부정적인 생각을 가지고 원망하고 투덜거리면서 하는 것은 좋지 않다. 그렇게 하면 일의 능률도 오르지 않는다. 무슨 일이든지 신중한 것은 좋으나 가급적 긍정적 태도로 하는 것이 좋다. 그것이 믿음이고 그래야 일도 잘 될 것이다.

[4-9절] 이스라엘 중에 섞여 사는 무리가 탐욕을 품으매 . . . .

4절 이하는 기브롯 핫다아와에서의 사건을 자세히 기록한다. 이스라엘 중에 섞여 사는 무리가 탐욕을 품음으로 이스라엘 백성이 다시 울며 말하였다. “누가 우리에게 고기를 주어 먹게 할꼬. 우리가 애굽에 있을 때에는 값없이 생선과 외[오이]와 수박[참외]과 부추와 파[양파]와 마늘들을 먹은 것이 생각나거늘 이제는 우리 정력이 쇠약하되 이 만나 외에는 보이는 것이 아무것도 없도다.”

‘섞여 사는 무리’(아삽숩)는 순수한 이스라엘 사람이 아니고 그들과 섞여 사는 이방인들을 가리킨 것 같다. 이스라엘 백성은 그들의 탐욕과 불평에 나쁜 영향을 받아 음식문제로 불평하였다. 그들은 만나로 만족하지 않았고 애굽에서 먹던 생선과 오이와 참외와 부추와 양파와 마늘 등을 기억하며 불평하였다. 불평과 원망은 탐욕과 욕심에서 나온다. 다베라 사건이 몇 일 되지 않았을 터인데 그들은 또 울며 하나님께 원망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만나는 하나님께서 광야의 이스라엘 백성에게 주신 놀라운 양식이었다. 하나님께서는 보행자 장정만 60만명을 그 광야에서 기적의 떡으로 먹이셨다. 만나는 깟()[고수풀](coriander)의 씨와 같았고 그 모양은 진주(베돌라크)와 같았다. 사람들은 두루 다니며 그것을 거두어 맷돌에 갈기도 하며 절구에 찧기도 하고 가마에 삶기도 하여 과자를 만들었다. 그 맛은 기름 섞은 과자맛 같았다. 밤에 이슬이 진에 내릴 때에 만나도 같이 내렸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은 그 놀라운 양식으로 만족하지 못하였다.

[10-15절] 백성의 온 가족들이 각기 장막 문에서 우는 것을 모세가 들으니라. 이러므로 여호와의 진노가 심히 크고 모세도 기뻐하지 . . . .

백성의 온 가족들이 각기 장막 문에서 우는 것을 모세가 들었다. 이러므로 여호와의 진노가 심히 크고 모세도 기뻐하지 아니하였다. 모세는 여호와께 아뢰었다. “주께서 어찌하여 종을 괴롭게 하시나이까? 어찌하여 나로 주의 앞에 은혜를 입게 아니하시고 이 모든 백성을 내게 맡기사 나로 그 짐을 지게 하시나이까? 이 모든 백성을 내가 잉태하였나이까? 내가 어찌 그들을 출산하였기에 주께서 나더러 양육하는 아비가 젖 먹는 아이를 품듯 그들을 품에 품고 주께서 그들의 열조에게 맹세하신 땅으로 가라 하시나이까? 이 모든 백성에게 줄 고기를 내가 어디서 얻으리이까? 그들이 나를 향해 울며 말하기를, ‘우리에게 고기를 주어 먹게 하라’ 하오니 책임이 심히 중하여 나 혼자는 이 모든 백성을 질 수 없나이다. 주께서 내게 이같이 행하실진대 구하옵나니 내게 은혜를 베푸사 즉시 나를 죽여 나로 나의 곤고함을 보지 않게 하옵소서.” 모세의 심적 부담은 매우 컸다.

[16-23절]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이스라엘 노인 중 . . . .

여호와께서는 모세에게 말씀하셨다. “이스라엘 노인들 중 백성의 장로와 유사[지도자] 되는 줄을 네가 아는 자 70인을 모아 데리고 회막 내 앞에 이르러 거기서 너와 함께 서게 하라. 내가 강림하여 거기서 너와 말하고 네게 임한 영을 그들에게도 임하게 하리니 그들이 너와 함께 백성의 짐을 담당하고 너 혼자 지지 아니하리라.”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그 짐을 나누어질 지도자 70인을 세우게 하셨다.

그는 또 말씀하셨다. “또 백성에게 이르기를 너희 몸을 거룩히 하여 내일 고기 먹기를 기다리라. 너희가 울며 이르기를 누가 우리에게 고기를 주어 먹게 할꼬. 애굽에 있을 때가 우리에게 재미 있었다 하는 말이 여호와께 들렸으므로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고기를 주어 먹게 하실 것이라. 하루나 이틀이나 닷새나 열흘이나 20일만 먹을 뿐 아니라 코에서 넘쳐서 싫어하기까지 1개월간을 먹게 하시리니 이는 너희가 너희 중에 거하시는 여호와를 멸시하고 그 앞에서 울며 이르기를 우리가 어찌하여 애굽에서 나왔던고 함이라 하라.”

모세는 말했다. “나와 함께 있는 이 백성의 보행자가 60만명이온데 주의 말씀이 1개월간 고기를 주어 먹게 하겠다 하시오니 그들을 위하여 양떼와 소떼를 잡은들 족하오며 바다의 모든 고기를 모은들 족하오리이까?”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셨다. “여호와의 손이 짧아졌느냐? 네가 이제 내 말이 네게 응하는 여부를 보리라.” 하나님의 사람 모세라도 하나님의 능력을 금방 믿지 못하였다. 사람은 참으로 믿음 없는 연약한 존재이다.

[24-30절] 모세가 나가서 여호와의 말씀을 백성에게 고하고 . . . .

모세는 나가서 여호와의 말씀을 백성에게 고하였고 백성의 장로 70인을 모아 장막에 둘러 세웠다. 여호와께서는 구름 가운데 내려오셔서 모세에게 말씀하셨고 그에게 임한 영을 70인 장로들에게도 임하게 하셨다. 하나님의 영 곧 성령께서 임하신 때에 그들이 예언을 하다가 다시는 아니하였다.

그 명단에 엘닷이라 하는 자와 메닷이라 하는 자 두 사람이 진에 머물고 회막에 나아가지 아니하였으나 그들에게도 영이 임하였으므로 진에서 예언하였다. 한 소년이 달려와서 모세에게 “엘닷과 메닷이 진중에서 예언하더이다”라고 보고하였다. 택한 자 중 한 사람 곧 모세를 섬기는 눈의 아들 여호수아가 말했다. “내 주 모세여, 금하소서.” 모세는 그에게 말했다. “네가 나를 위하여 시기하느냐? 여호와께서 그 영을 그 모든 백성에게 주사 다 선지자 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모세와 이스라엘 장로들은 진중으로 돌아왔다.

[31-35절] 바람이 여호와에게로서 나와 바다에서부터 메추라기를 몰아 진 곁 이편 저편 곧 진 사방으로 각기 하룻길 되는 지면 위 . . . .

바람이 여호와에게로서 나와서 바다에서부터 메추라기를 몰아 진 곁 이편저편 곧 진 사방으로 각기 하룻길 되는 지면 위에 두 규빗쯤, 즉 약 90센티미터 높이로 쌓이게 하였다. 그것은 우연하게 일어난 자연현상이 아니고, 분명히 살아계신 하나님의 기이한 능력의 손길이었다. 백성은 일어나 종일종야(終日終夜)와 그 이튿날 종일토록, 즉 이틀간 밤낮으로 메추라기를 모았다. 적게 모은 자도 10호멜, 즉 약 2,200리터이었다. 그들은 자기를 위해 진 사면에 펴 두었다.

그러나 고기가 아직 이 사이에 있어 씹히기 전에 여호와께서 백성에게 대하여 진노하셔서 심히 큰 재앙으로 치셨다. 그래서 그 곳 이름을 기브롯 핫다아와, 곧 ‘탐욕의 무덤’이라 불렀다. 탐욕을 낸 백성을 거기 장사하였기 때문이었다. 그 재앙이 무엇인지 모르지만, 그 재앙으로 많은 사람들이 죽었음이 확실하였다. 백성은 기브롯 핫다아와에서 진행하여 하세롯에 이르러 거기 거하였다.

본장은 몇 가지 교훈을 준다. 첫째로, 우리는 원망치 말자. 본장에 나오는 두 사건은 공통적으로 이스라엘 백성이 원망했던 사건이었다. 본문이 보이는 대로 원망은 탐욕과 불신앙에서 나온다. 그것은 현실의 여러 문제들을 대할 때 부정적 시각을 만든다. 그러나 성경은 우리가 범사에 하나님, 곧 주권적 섭리자 하나님을 인정하고(잠 3:6) 범사에 감사하며 살라(살전 5:18)고 가르친다. 우리가 범사에 하나님을 인정하고 감사할 때 우리는 복잡한 현실의 문제들 앞에서 대체로 긍정적인 사고와 긍정적인 태도를 가질 수 있고 또 불평 원망하지 않을 수 있다. 우리는 하나님의 섭리를 믿고 범사에 감사하고 원망치 말자.

둘째로, 우리는 공급하시는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자. 하나님께서는 장정 60만명, 여자들과 어린아이들을 포함하면 200만명 내지 300만명이 될 이스라엘 백성을 그 광야에서 40년간 먹이셨다. 만나는 그들을 위해 날마다 하늘에서 내려주신 기이한 양식이었다. 또 그들이 고기를 먹기를 소원했을 때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풍성한 고기를 내려주셨다. 하나님께서는 믿음 없는 모세에게 “여호와의 손이 짧아졌느냐?”고 말씀하셨다. 우리는 우리의 필요한 것들을 공급하실 수 있는, 그리고 실제로 공급하시는 살아계신 전능자 하나님을 믿자(마 6:26-32).

셋째로, 우리는 돈 사랑과 탐심을 버리고 늘 자족하며 살자. 하나님께서는 광야의 이스라엘 백성에게 날마다 만나를 내려주셨다. 이스라엘 백성은 그것으로 만족하며 살아야 했지만, 그 외의 것들을 탐내었다. 그것은 욕심이었다. 탐심은 우상숭배이다. 이것 때문에 하나님의 진노가 임한다(골 3:6). 디모데전서 6:7-8은, “우리가 세상에 아무것도 가지고 온 것이 없으매 또한 아무것도 가지고 가지 못하리니 우리가 먹을것과 입을 것이 있은즉 족한 줄로 알 것이니라”고 말했다. 히브리서 13:5는, “돈을 사랑치 말고 있는 바를 족한 줄로 알라. 그가 친히 말씀하시기를 내가 과연 너희를 버리지 아니하고 과연 너희를 떠나지 아니하리라”고 말했다. 우리는 모든 탐심을 버리고 늘 자족하며 살자.

 

 

12장: 미리암의 비방

[1절] 모세가 구스 여자를 취하였더니 그 구스 여자를 . . . .

본문은 “모세가 구스 여자를 취하였더니 그 구스 여자를 취하였으므로 미리암과 아론이 모세를 비방하니라”고 말한다. 여기의 구스 여자는 모세의 아내 십보라[칩포라](출 2:16)를 가리키는 것 같다. 미리암과 아론은 모세가 아브라함의 자손이 아닌 이방의 구스 여자와 결혼한 것을 비방한 것 같다. 미리암의 이름이 앞에 나온 것을 보면, 미리암이 먼저 모세를 비방한 것 같다. 그러나 요셉이 애굽에서 애굽 여인을 아내로 취했듯이, 모세는 미디안 광야에서 40년간 도피생활을 하면서 부득이 미디안 여자, 아마 구스 여자를 아내로 얻은 것이었다. 그것은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서 그의 허락하심으로 되어진 일이었다. 그것은 함부로 비난되어서는 안 될 일이었다.

[2절] 그들이 이르되 여호와께서 모세와만 말씀하셨느냐? . . .

그러나 미리암과 아론은 불평스럽게 말했다. “여호와께서 모세와만 말씀하셨느냐? 우리와도 말씀하지 아니하셨느냐?” 그들은 모세의 독특한 권위에 도전한 것이다. 미리암과 아론 속에 모세를 업신여기고 자신들을 크게 여기는 마음이 생겼다. 이것은 죄인들의 마음 속에 뿌리깊은 교만이다. 남을 비방하는 것, 그것도 정당치 않게 비방하는 것은 남을 무시하고 자신을 높이는 교만에서 나온다.

하나님께서는 미리암과 아론의 비방의 말을 들으셨다.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의 모든 말을 들으신다. 시편 139:1-4는, “여호와여, 주께서 나를 감찰하시고 아셨나이다. 주께서 나의 앉고 일어섬을 아시며 멀리서도 나의 생각을 통촉하시오며 나의 길과 눕는 것을 감찰하시며 나의 모든 행위를 익히 아시오니 여호와여, 내 혀의 말을 알지 못하시는 것이 하나도 없으시니이다”라고 말한다. 이 사실은 의인들에게는 위로가 되지만, 악인들에게는 두려움이 된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의 모든 말들을 들으시고 판단하시고 선악간에 보응하신다. 주 예수께서는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사람이 무슨 무익한 말을 하든지 심판날에 이에 대하여 심문을 받으리라”고 말씀하셨다(마 12:36).

[3절] 이 사람 모세는 온유함이 지면의 모든 사람보다 승하더라.

“이 사람 모세는 온유함이 지면의 모든 사람보다 승하더라”라는 본문 3절의 말씀은 모세가 하나님의 영감 가운데 자기 자신에 대해 객관적 사실을 쓴 것이라고 본다. 성경은 개인의 간증적 기록이 아니고 하나님의 계시적 기록이므로 이러한 진술이 가능하다.

‘온유함’이라는 원어(아나우)는 ‘고난을 받은, 겸비한, 온유한’이라는 뜻이다(BDB). 모세는 온유한 자이었다. 사람들의 비방은 우리의 온유함을 시험하는 일이 된다. 온유하고 겸손한 사람은 자기를 비방하는 자와 맞대어 싸우지 않는다. 그는 묵묵히 그 현실을 이겨나간다. 자신의 잘못 때문에 오는 비방이라면 당연히 받을 것이므로 화낼 것이 없고 자신을 고쳐야 할 것이고, 무고히 당하는 비방이라면, 비록 그것이 고통스럽지만, 낙심하거나 마음의 평안을 잃지 말고 모든 일을 판단하시고 보응하시는 하나님께 맡기고, 도리어 자신의 온유와 겸손을 증거할 기회로 삼아야 할 것이다.

[4-5절] 여호와께서 갑자기 모세와 아론과 미리암에게 . . . .

여호와께서는 갑자기 모세와 아론과 미리암에게, “너희 세 사람은 회막으로 나아오라”고 말씀하셨다. 하나님께서는 안 들으시는 듯하지만 다 들으시고 잠잠하시는 듯하지만 갑자기, 즉각적으로 개입하신다. 하나님께서는 결코 악한 말과 악한 행위를 묵과하지 않으시고 보응하신다. 그는 살아계신 하나님이시요 공의로 행하시는 주님이시다. 모세와 아론과 미리암, 그 세 사람이 회막으로 나아가자 여호와께서는 구름기둥 가운데 내려오셔서 장막[회막]문에 서시고 아론과 미리암을 부르셨다. 그 두 사람은 하나님 앞으로 나아갔다.

[6-7절] 이르시되 내 말을 들으라. 너희 중에 선지자가 있으면 . . . .

하나님께서는 말씀하셨다. “내 말을 들으라. 너희 중에 선지자가 있으면 나 여호와가 이상(異像)으로 나를 그에게 알리기도 하고 꿈으로 그와 말하기도 하거니와 내 종 모세와는 그렇지 아니하니 그는 나의 온 집에 충성됨이라.”

신약성경 히브리서 1:1은, 하나님께서 “옛적에 선지자들로 여러 부분과 여러 모양으로 우리 조상들에게 말씀하셨다”고 말하였다. 옛 시대에 하나님께서는 보통 이상과 꿈으로 말씀하셨다. 선지자들은 많은 경우 이런 방법들을 통해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고 하나님과 교통하였다. 창세기 15:1, “이 후에 여호와의 말씀이 이상 중에 아브람에게 임하여 가라사대.” 이사야 1:1, “. . . 아모스의 아들 이사야가 유다와 예루살렘에 대하여 본 이상이라.” 다니엘 7:1, “바벨론 왕 벨사살 원년에 다니엘이 그 침상에서 꿈을 꾸며 뇌 속으로 이상을 받고 그 꿈을 기록하며 그 일의 대략을 진술하니라.”

그러나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주신 계시의 방법은 특별하였다. 그는 모세를 특별한 계시의 도구로 사용하셨다. 그러므로 모세는 구약성경의 기초가 되는 다섯 권의 책을 성령의 감동으로 기록하였다. 그것은 하나님의 종 모세가 하나님의 온 집에서 충성되었기 때문이다. 충성은 변함이 없고 순전하고 믿을 만한 성품이다. 그것은 변화무쌍하고 간교하고 믿을 수 없고 이중적인 성품과는 반대된다. 성령의 열매 아홉 가지 중에 ‘충성’이 포함된다(갈 5:22-23). 사도 바울은 직분자에게 요구되는 덕은 모름지기 충성이라고 말한다(고전 4:2). 사람도 충성된 사람을 좋아하고 일을 맡기거나 함께 일하려고 하듯이, 하나님께서도 충성된 인물을 기뻐하시고 사용하신다.

[8절] 그와는 내가 대면하여 명백히 말하고 은밀한 말로 . . . .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주신 계시와 그의 직분의 독특함을 친히 증거하시기를, “그와는 내가 대면하여 명백히 말하고 은밀한 말로 아니하며 그는 또 여호와의 형상을 보겠거늘 너희가 어찌하여 내 종 모세 비방하기를 두려워 아니하느냐?”고 하셨다.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대면하여 명백히 말씀하셨고 은밀한 말로 아니하셨다. 모세는 과연 하나님의 음성을 밝히 들은 하나님의 종이었다. 그러므로 모세를 비방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그에게 주신 독특한 역할과 권위에 손상을 입힐 수 있으므로 극히 삼가야 했다. 그러나 그들이 모세를 비방한 사건을 통해 오히려 모세의 특별한 역할과 권위가 하나님 자신에 의해 밝히 증거되었다. 하나님께서는 악한 일을 가지고서도 선한 결과를 만드신다.

[9-10절] 여호와께서 그들을 향하여 진노하시고 떠나시매 . . . .

여호와께서는 그들을 향해 진노하셨다. 여호와께서는 인격적인 하나님이신 고로 기뻐하는 감정도 있으시고 노하는 감정도 있으시다. 그는 때때로 진노하신다. 그가 진노하시는 까닭은 사람의 범죄 때문이다. 사람이 생각이나 말이나 행위에 있어서 범죄할 때에 그는 근심하시고 진노하신다.

여호와께서 그들을 향해 진노하시고 떠나시자 구름이 장막 위에서 떠나갔고 미리암은 나병이 걸려 눈과 같이 되었다. 하나님께서는 즉시 미리암을 나병으로 치셨다. 아론이 미리암을 본즉 그가 나병이 걸렸다. 그것은 하나님의 종 모세에 대한 옹호이었다. 하나님께서 그의 종을 옹호하신 것은 그의 인격에 대한 옹호일 뿐 아니라, 또한 그에게 주신 말씀 선포와 교훈의 역할과 권위에 대한 옹호이었다. 사탄의 공격은 단지 지도자 한 사람의 인격에 대해서가 아니라 그가 선포하고 가르치고 증거할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것이다. 사탄은 그가 넘어짐으로 그의 말씀사역이 좌절되고 중단되기를 원하였지만, 하나님께서는 직접 개입하심으로 그의 종을 옹호하신 것이었다.

[11-12절] 아론이 이에 모세에게 이르되 슬프다, 내 주여, . . .

아론은 모세에게 말했다. “슬프다, 내 주여, 우리가 우매한 일을 하여 죄를 얻었으나 청컨대 그 허물을 우리에게 돌리지 마소서. 그로 살이 반이나 썩고 죽어서 모태에서 나온 자같이 되게 마옵소서.”

아론은 즉시 자신들이 우매한 일을 하여 죄를 얻었음을 인정하고 회개하였다. 범죄는 어리석은 일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결국 자신을 망하게 만드는 일이기 때문이다. 지혜자라면 누가 망하는 일을 스스로 행하려 하겠는가! 그러나 사람은 무지와 우매 때문에 죄를 짓곤 한다. “살이 반이나 썩고 죽어서 모태에서 나온 자같이 된다”는 말은 “모태에서 나올 때 살이 반이나 썩어서 죽은 자 같다”는 뜻이다. 그것은 미리암이 나병으로 이미 살이 썩어 들어감을 보인다.

[13절] 모세가 여호와께 부르짖어 가로되 하나님이여, 원컨대 . . . .

모세는 여호와께 부르짖어 아뢰었다. “하나님이여, 원컨대  그를 고쳐 주옵소서.” 모세는 참으로 온유하고 겸손한 자이었다. 온유와 겸손은 자기에 대해 잘못을 범한 자들에 대해서도 긍휼과 너그러움을 품게 한다. 여기에 모범적 지도자상이 있다. 영적으로 앞선 자, 곧 성숙한 자는 다른 이들의 흠과 점을 불쌍히 여기고 그것을 위해 기도할 수 있어야 한다. 영적인 어린아이는 그것을 지적하고 다투겠지만, 영적으로 성숙한 자들은 그런 자를 위해 기도할 것이다.

[14-16절]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그의 아비가 . . . .

여호와께서는 모세에게 말씀하셨다. “그의 아비가 그의 얼굴에 침을 뱉었을지라도 그가 7일간 부끄러워하지 않겠느냐? 그런즉 그를 진 밖에 7일을 가두고 그 후에 들어오게 할지니라.” 그래서 미리암이 진 밖에 7일 동안 갇혔고 백성은 그를 다시 들어오게 하기까지 진행치 아니하다가 그 후에 백성이 하세롯에서 진행하여 바란 광야에 진을 쳤다.

긍휼의 하나님께서는 미리암의 실수에 대하여 단지 7일 동안의 징계로 징계하신 후 그를 용납하셨다. 아론과 미리암은 다시는 모세를 비방하지 못했을 것이다. 이 잠시간의 고통의 일을 통해, 모세의 권위는 더욱 확증되었다.

본장에서 우리는 몇 가지 교훈을 찾는다. 첫째로, 우리는 남을 비방하지 말자. 주께서는 “비판을 받지 아니하려거든 비판하지 말라” “어찌하여 형제의 눈속에 있는 티는 보고 네 눈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고 말씀하셨다(마 7:1, 3). 야고보서 4:11도 “피차에 비방하지 말라”고 교훈한다. 우리는 서로 비방하지 말고, 특히 하나님의 말씀의 권위가 손상되지 않도록 말씀의 사역자들을 비방하는 일을 조심하자. 주께서는 “너희를 영접하는 자는 나를 영접하는 것이라”고 말씀하셨고(마 10:40), 디모데전서 5:19는, “장로에 대한 송사는 두세 증인이 없으면 받지 말 것이요”라고 말한다.

둘째로, 우리는 온유하자. 모세는 비방의 말을 참은 온유한 자이었다. 주 예수께서도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다”고 말씀하셨다(마 11:29). 성령의 열매는 온유를 포함한다(갈 5:22-23). 에베소서 4:1-3은 겸손과 온유로 단합하라고 교훈하였다. 야고보서 3:17은, 위로부터 난 지혜가 관용하다[온유하다]고 말한다. 우리는 온유한 자가 되자.

셋째로, 우리는 성경의 가치를 깨닫고 이 책을 읽고 듣고 믿고 행하자. 하나님께서는 옛 시대에 선지자들에게 이상과 꿈으로 말씀하셨고 모세를 통해 명백한 계시의 말씀을 주셨다. 이제 때가 되어 하나님의 아들 예수께서 오심으로 하나님의 특별계시는 충만하게 완성되었다(히 1:1-2; 요 1:17). 그것이 성경이다(딤후 3:16). 그러므로 우리는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임을 깨닫고 이 책을 힘써 읽고 듣고 믿고 행하자.

 

 

13장: 가나안 정탐

[1-3절]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일러 가라사대 사람을 보내어 . . . .

여호와께서는 모세에게 명하셨다. “사람을 보내어 내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주는 가나안 땅을 탐지하게 하되 그 종족의 각 지파 중에서 족장된 자 한 사람씩 보내라.”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무조건적인 진행보다 먼저 그들이 그 땅을 탐지하고 믿음과 자발적 순종으로 진행하기를 원하셨던 것 같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인격적 순종을 원하신다. 우리는 무슨 일이든지 살피고 판단하고 믿고 자발적으로 순종하는 것이 좋다. 모세는 여호와의 명을 좇아 바란 광야에서 이스라엘 자손들의 우두머리된 자들을 택하여 보내었다.

[4-16절] 그들의 이름은 이러하니라. 르우벤 지파에서는 . . . .

본문은 그들의 이름을 기록한다. 르우벤 지파에서는 삭굴의 아들 삼무아요, 시므온 지파에서는 호리의 아들 사밧이요, 유다 지파에서는 여분네의 아들 갈렙이요, 잇사갈 지파에서는 요셉의 아들 이갈이요, 에브라임 지파에서는 눈의 아들 호세아요, 베냐민 지파에서는 라부의 아들 발디요, 스불론 지파에서는 소디의 아들 갓디엘이요, 요셉 지파 곧 므낫세 지파에서는 수시의 아들 갓디요, 단 지파에서는 그말리의 아들 암미엘이요, 아셀 지파에서는 미가엘의 아들 스둘이요, 납달리 지파에서는 웝시의 아들 나비요, 갓 지파에서는 마기의 아들 그우엘이었다. 이들은 모세가 땅을 탐지하러 보낸 자들의 이름이다. 모세는 눈의 아들 호세아를 여호수아라고 불렀다.

[17-20절] 모세가 가나안 땅을 탐지하러 그들을 보내며 이르되 . . . .

모세는 가나안 땅을 탐지하러 그들을 보내면서 말하였다. “너희는 남방 길로 행하여 산지로 올라가서 그 땅의 어떠함을 탐지하라. 곧 그 땅 거민의 강약과 다소[많고 적음]와 그들의 거하는 땅의 호불호[좋고 나쁨]와 거하는 성읍이 진영[성벽 없이 천막들로 된 촌]인지 산성[성벽 있는 성]인지와 토지의 후박[좋고 나쁨]과 수목[나무]의 유무(有無)니라. 담대하라. 또 그 땅 실과를 가져오라.” 그때는 포도가 처음 익을 즈음이었다. 모세는 그 정탐꾼들에게 가나안 땅과 그 거주민들의 형편을 자세히 살피고 돌아오라고 지시하였다.

[21-24절] 이에 그들이 올라가서 땅을 탐지하되 . . . .

그래서 정탐꾼들은 올라가서 땅을 탐지하려고 신 광야에서부터 하맛 어귀 르홉에 이르렀고 또 남방으로 올라가서 헤브론에 이르렀는데, 헤브론은 애굽 소안(고대 수도)보다 7년 전에 세운 곳이었다. 그 곳에 아낙 자손 아히만과 세새와 달매가 있었다. 아낙 자손은 거인들이었다. 또 에스골 골짜기에 이르러 거기서 포도 한 송이 달린 가지를 베어 둘이 막대기에 꿰어 메고 또 석류와 무화과를 취하였다. 이스라엘 자손들이 거기서 포도송이를 베었기 때문에 그 곳을 에스골(에쉬콜)[(포도) 송이] 골짜기라고 불렀다. 포도송이가 꽤 컸던 것 같다. 그것은 그 땅이 매우 비옥하였음을 증거한다.

[25-29절] 사십 일 동안에 땅을 탐지하기를 마치고 돌아와 . . . .

정탐한 자들은 사십 일 동안 땅을 탐지하기를 마치고 돌아와 바란 광야 가데스에 이르러 모세와 아론과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에게 나아와 보고하였다. 그들은 그 땅 실과를 보이고 모세에게 말하였다. “당신이 우리를 보낸 땅에 간즉 과연 젖과 꿀이 그 땅에 흐르고 이것은 그 땅의 실과니이다. 그러나 그 땅 거민은 강하고 성읍은 견고하고 심히 클 뿐 아니라 거기서 아낙 자손을 보았으며 아말렉인은 남방 땅에 거하고 헷인과 여부스인과 아모리인은 산지에 거하고 가나안인은 해변과 요단 가에 거하더이다.”

[30-33절] 갈렙이 모세 앞에서 백성을 안돈시켜 가로되 우리가 . . . .

갈렙은 모세 앞에서 백성을 안돈시키며[조용히 시키며] “우리가 곧 올라가서 그 땅을 취하자. 능히 이기리라”고 말했다. 그러나 그와 함께 올라갔던 사람들은, “우리는 능히 올라가서 그 백성을 치지 못하리라. 그들은 우리보다 강하니라”고 말했다. 또 그들은 이스라엘 자손 앞에서 그 탐지한 땅을 악평하여 말했다. “우리가 두루 다니며 탐지한 땅은 그 거민을 삼키는 땅이요 거기서 본 모든 백성은 신장이 장대한 자들이며 거기서 또 네피림[거인들](LXX, Syr, Vg, BDB) 후손 아낙 자손 대장부들[거인들]을 보았나니 우리는 스스로 보기에도 메뚜기 같으니 그들의 보기에도 그와 같았을 것이니라.”

정탐꾼들의 보고는 둘로 나뉘었다. 열 명의 다수파의 보고는 부정적이었다. 그들은 육신의 눈으로만 그 땅의 현실을 보았다. 그들은 그 땅을 악평하였다. 그들은 그 땅을 정복하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결론을 내렸다. 그러나 갈렙의 판단은 달랐다. 그는 믿음의 눈으로 그 땅의 현실을 보았다. 그는 “우리가 곧 올라가서 그 땅을 취하자. 능히 이기리라”고 말했다. 그는 그 땅을 정복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보았다. 그것은 하나님의 약속을 믿는 믿음에 근거한 것이었다.

다음 장의 내용을 보면, 온 회중은 소리를 높여 부르짖으며 밤새도록 곡하였다. 이스라엘 자손은 다 모세와 아론을 원망하었고 온 회중은 그들에게 말했다. “우리가 애굽 땅에서 죽었거나 이 광야에서 죽었더면 좋았을 것을 어찌하여 여호와가 우리를 그 땅으로 인도하여 칼에 망하게 하려 하는고. 우리 처자가 사로잡히리니 애굽으로 돌아가는 것이 낫지 아니하랴.” 그들은 서로 말하기를, “우리가 한 장관을 세우고 애굽으로 돌아가자”고 하였다. 이스라엘 백성은 참으로 믿음이 없었다. 그들은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기억하지 않았고(2절) 이제까지 하나님께서 어떻게 그들을 능력의 팔로 인도하여 오셨는지 도무지 깨닫지 못하고 있었다. 모세와 아론은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 앞에서 하나님께 엎드렸다.

본장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우리는 먼저 천국의 영광을 확인하자. 가나안 땅은 천국의 예표이다. 가나안 땅은 젖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묘사되었다. 과연 그 땅은 비옥하였다. 정탐꾼들은 포도 한 송이 달린 가지를 베어 둘이 막대기에 꿰어 메고 돌아올 정도이었다. 천국은 가나안 땅 이상으로 확실히 복된 세계이다. 천국에는 의와 평강과 희락이 넘칠 것이다(롬 14:17; 벧후 3:13). 또 천국에는 죽음도, 질병도, 슬픈 일도 없을 것이다(계21:1-4). 또 천국은 영광스러운 세계이다(롬 8:18; 계 21:10-11). 우리는 천국의 영광을 깨닫고 그 나라를 사모하며 그 나라를 우리에게 선물로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자.

둘째로, 우리는 천국에 들어가기 위해 고난도 각오하자. 가나안 땅은 이스라엘 자손이 쉽게 정복할 수 있는 땅은 아니었다. 거기에 거하는 원주민들의 키는 컸고 성읍들은 견고하였다. 그들 중에는 거인들도 있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천국을 약속하셨지만, 우리가 하나님을 믿고 소망하며 그 나라에 이르기까지는 많은 환난을 통과해야 한다(행 14:22; 마 16:24-25; 딤후 3:12). 우리는 자기를 부정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고난을 각오하며 주님을 따라야 천국에 이를 것이다.

셋째로, 우리는 외적 조건만 보고 낙망치 말고 믿음으로 진행하자. 우리는 자신의 죄 많음과 부족과 연약성만 보고 낙망해서는 안 되며, 또 환경적 어려움만 보고 낙망해서도 안 된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과 그의 의(義)를 믿고 또 하나님의 약속과 도우심을 믿고 살아야 한다. 히브리서 10:32-35, “전날에 너희가 빛을 받은 후에 고난의 큰 싸움에 참은 것을 생각하라. 혹 비방과 환난으로써 사람에게 구경거리가 되고 혹 이런 형편에 있는 자들로 사귀는 자 되었으니 너희가 갇힌 자를 동정하고 너희 산업을 빼앗기는 것도 기쁘게 당한 것은 더 낫고 영구한 산업이 있는 줄 앎이라. 그러므로 너희 담대함을 버리지 말라. 이것이 큰 상을 얻느니라.” 우리는 믿음으로 살아가자.

 

 

14장: 원망과 징벌

[1-5절] 온 회중이 소리를 높여 부르짖으며 밤새도록 백성이 . . . .

바란 광야 가데스에서 불신앙적인 열 정탐꾼의 나쁜 보고를 받은 온 이스라엘 회중은 소리를 높여 부르짖으며 밤새도록 애곡하였다. 이스라엘 자손들은 다 모세와 아론을 원망하며 온 회중이 그들에게 말했다. “우리가 애굽 땅에서 죽었거나 이 광야에서 죽었더면 좋았을 것을 어찌하여 여호와가 우리를 그 땅으로 인도하여 칼에 망하게 하려 하는고. 우리 처자가 사로잡히리니 애굽으로 돌아가는 것이 낫지 아니하랴.” 그들은 서로 말했다. “우리가 한 장관을 세우고 애굽으로 돌아가자.” 이 말을 들은 모세와 아론은 이스라엘 자손들의 온 회중 앞에서 엎드렸다. 그것은 하나님께 기도한 것이라고 본다.

[6-10절] 그 땅을 탐지한 자 중 눈의 아들 여호수아와 . . . .

그러나 그 땅을 탐지한 자들 중에 눈의 아들 여호수아와 여분네의 아들 갈렙은 자기들의 옷을 찢고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에게 말했다. “우리가 두루 다니며 탐지한 땅은 심히 아름다운 땅이라. 여호와께서 우리를 기뻐하시면 우리를 그 땅으로 인도하여 들이시고 그 땅을 우리에게 주시리라. 이는 과연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니라. 오직 여호와를 거역하지 말라. 또 그 땅 백성을 두려워하지 말라. 그들은 우리 밥이라. 그들의 보호자는 그들에게서 떠났고 여호와는 우리와 함께하시느니라. 그들을 두려워 말라.” 여호수아와 갈렙은 참으로 하나님을 생각하고 의지하며 그를 경외하고 순종하였다. 그러나 온 회중은 그들을 돌로 치려 하였고 바로 그때에 여호와의 영광이 회막에서 이스라엘 모든 자손에게 나타나셨다. 하나님께서는 비상한 때에 때때로 직접 개입하신다.

[11-12절]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이 백성이 어느 . . . .

여호와께서는 모세에게 말씀하셨다. “이 백성이 어느 때까지 나를 멸시하겠느냐? 내가 그들 중에 모든 이적을 행한 것도 생각하지 아니하고 어느 때까지 나를 믿지 않겠느냐? 내가 전염병으로 그들을 쳐서 멸하고 너로 그들보다 크고 강한 나라를 이루게 하리라.” 이스라엘 백성의 문제는 하나님을 믿지 않고 멸시한 것이었다. ‘멸하다’는 원어(야라쉬[소유하다]의 사역형)는 ‘소유권을 빼앗다’(BDB, KJV, NASB)는 뜻이다.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통하여 그들보다 크고 강한 나라를 세우려 하셨다.

[13-19절] 모세가 여호와께 여짜오되 애굽인 중에서 . . . .

그러나 그때에 모세는 여호와께 아뢰었다. “애굽인들 중에서 주의 능력으로 이 백성을 인도하여 내셨거늘 그리하시면 그들이 듣고 이 땅 거민들에게 고하리이다. 주 여호와께서 이 백성 중에 계심을 그들도 들었으니 곧 주 여호와께서 대면하여 보이시며 주의 구름이 그들 위에 섰으며 주께서 낮에는 구름기둥 가운데서, 밤에는 불기둥 가운데서 그들 앞에서 행하시는 것이니이다. 이제 주께서 이 백성을 한 사람같이 죽이시면 주의 명성을 들은 열국들이 말하여 이르기를 여호와가 이 백성에게 주기로 맹세한 땅에 인도할 능력이 없는 고로 광야에서 죽였다 하리이다.” 하나님의 이름이 이방인들에 의해 비방을 당하고 그의 영광이 더럽혀지지 않기를 간구한 것이었다.

모세는 또 말하였다. “이제 구하옵나니 이미 말씀하신 대로 주의 큰 권능을 나타내옵소서. 이르시기를 여호와는 노하기를 더디하고 인자(仁慈)가 많아 죄악과 과실을 사하나 형벌받을 자는 결단코 사하지 아니하고 아비의 죄악을 자식에게 갚아 삼사 대까지 이르게 하리라 하셨나이다. 구하옵나니 주의 인자의 광대하심을 따라 이 백성의 죄악을 사하시되 애굽에서부터 지금까지 이 백성을 사하신 것같이 사하옵소서.” 모세는 하나님께서 그의 구원의 능력을 보여주시기를 구하고 또 노하기를 더디하시고 인자가 많으심을 따라 그들의 죄를 사하여 주시기를 간구한 것이다.

[20-25절]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내가 네 말대로 사하노라. . . .

여호와께서는 모세의 기도에 응답하셨다. “내가 네 말대로 사하노라. 그러나 진실로 나의 사는 것과 여호와의 영광이 온 세계에 충만할 것으로 맹세하노니 나의 영광과 애굽과 광야에서 행한 나의 이적을 보고도 이같이 열 번이나 나를 시험하고 내 목소리를 청종치 아니한 그 사람들은 내가 그 조상들에게 맹세한 땅을 결단코 보지 못할 것이요 또 나를 멸시하는 사람은 하나라도 그것을 보지 못하리라. 오직 내 종 갈렙은 그 마음이 그들과 달라서 나를 온전히 좇았은즉 그의 갔던 땅으로 내가 그를 인도하여 들이리니 그 자손이 그 땅을 차지하리라. 아말렉인과 가나안인이 골짜기에 거하나니 너희는 내일 돌이켜 홍해 길로 하여 광야로 들어갈지니라.”

[26-35절] 여호와께서 모세와 아론에게 일러 가라사대 . . . .

여호와께서는 모세와 아론에게, “나를 원망하는 이 악한 회중을 내가 어느 때까지 참으랴. 이스라엘 자손이 나를 향하여 원망하는 바 그 원망하는 말을 내가 들었노라”고 말씀하셨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나를 원망하는 이 악한 회중’이라고 표현하셨고 그들이 그를 향해 원망하는 말을 하는 것을 들으셨다고 말씀하셨다. 이스라엘 회중의 문제는 하나님과 모세를 향해 원망한 것이었다.

하나님께서는 또 모세와 아론에게 이스라엘 백성에게 이렇게 말하라고 일러주셨다. “여호와의 말씀에 나의 삶을 가리켜 맹세하노라. 너희 말이 내 귀에 들린 대로 내가 너희에게 행하리니 너희 시체가 이 광야에 엎드러질 것이라. 너희 20세 이상으로 계수함을 받은 자 곧 나를 원망한 자 전부가 여분네의 아들 갈렙과 눈의 아들 여호수아 외에는 내가 맹세하여 너희로 거하게 하리라 한 땅에 결단코 들어가지 못하리라. 너희가 사로잡히겠다고 말하던 너희의 유아들은 내가 인도하여 들이리니 그들은 너희가 싫어하던[거절하던] 땅을 보려니와 너희 시체는 이 광야에 엎드러질 것이요 너희 자녀들은 너희의 패역한 죄(제누세켐)[불신실함]를 지고 너희의 시체가 광야에서 소멸되기까지 40년을 광야에서 유리하는 자가 되리라. 너희가 그 땅을 탐지한 날수 40일의 하루를 1년으로 환산하여 그 40년간 너희가 너희의 죄악을 질지니 너희가 나의 싫어버림을 알리라.”

하나님께서는 다시 말씀하셨다. “나 여호와가 말하였거니와 모여 나를 거역하는 이 악한 온 회중에게 내가 단정코 이같이 행하리니 그들이 이 광야에서 소멸되어 거기서 죽으리라.” 하나님께서는 자기에게 원망하는 그들이 하나님을 거역하는 자들임을 분명히 하시면서 그들이 이 광야에서 반드시 다 죽을 것이라고 선언하신 것이다.

[36-38절] 모세의 보냄을 받고 땅을 탐지하고 돌아와서 . . . .

모세의 보냄을 받고 땅을 탐지하고 돌아와서 그 땅을 악평함으로 온 회중으로 모세를 원망케 한 사람들 곧 그 땅에 대하여 악평한 자들은 여호와 앞에서 재앙으로 죽었다. 그들은 하나님의 즉각적 징벌을 받은 것 같다. 그 땅을 탐지하러 갔던 사람들 중 오직 눈의 아들 여호수아와 여분네의 아들 갈렙만 생존하였다.

[39-45절] 모세가 이 말로 이스라엘 모든 자손에게 고하매 . . . .

모세가 이 말로 이스라엘 모든 자손에게 고하자 백성은 크게 슬퍼하여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산꼭대기로 올라가며 말하였다. “보소서. 우리가 여기 있나이다. 우리가 여호와의 허락하신 곳으로 올라가리니 우리가 범죄하였음이니이다.” 그러나 모세는 말하였다. “너희가 어찌하여 이제 여호와의 명령을 범하느냐? 이 일이 형통치 못하리라. 여호와께서 너희 중에 계시지 아니하니 올라가지 말라. 너희 대적 앞에서 패할까 하노라. 아말렉인과 가나안인이 너희 앞에 있으니 너희가 그 칼에 망하리라. 너희가 여호와를 배반하였으니 여호와께서 너희와 함께하지 아니하시리라.” 그러나 그들은 그의 말을 거역하고 산꼭대기로 올라갔고 여호와의 언약궤와 모세는 진을 떠나지 않았다. 그런데 아말렉 사람과 산지에 거하는 가나안 사람이 내려와 쳐서 이스라엘 자손들을 파하고 호르마까지 이르렀다.

본장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우리는 어려운 일이 있을 때 하나님께 불평하고 원망하거나 하나님을 거역하지 말자. 이스라엘 백성의 문제점은, 어려운 일을 당했을 때 하나님을 믿지 않고 멸시하였고 또 하나님을 향해 또 그들의 지도자 모세를 향해 원망하고 불평하며 하나님의 뜻을 거역한 것이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주겠다고 약속하신 복된 가나안 땅을 악평하였고 심지어 여호수아와 갈렙 같은 충성된 정탐꾼들을 돌로 치려 하였다. 우리는 어려운 일을 만날 때 하나님께 불평하고 원망하지 말고 하나님의 뜻을 거역하지 말자.

둘째로, 우리는 하나님의 엄위하신 공의와 진노를 두려워하자. 하나님께서는 하나님과 모세를 향해 불평하며 원망한 이스라엘 백성에게 진노하셨고 전염병으로 쳐서 죽이려 하셨다. 그러나 모세의 간구로 그렇게 하지는 않으셨으나 20세 이상의 모든 백성을 여호수아와 갈렙 외에는 다 광야에서 죽게 하시겠다고 말씀하셨다. 또 그들의 자녀들은 그들 때문에 40년 동안 광야에서 유리하다가 가나안 땅에 들어갈 것이었다. 또 그 땅을 악평했던 정탐꾼들은 재앙으로 죽었다.

셋째로, 우리는 범사에 하나님을 인정하고 감사하며 살자. 여호수아와 갈렙은 우리 모두의 본이 된다. 그들은 두려운 상황 속에서도 먼저 하나님을 생각하고 그를 경외하였고 그를 의지하고 그의 약속을 확신하였고 그의 뜻에 순종하였다. 우리는 범사에 하나님을 인정하고 그의 주권적 섭리를 인정하고 감사하며 오직 그의 뜻에 순종하며 살자.

 

 

15장: 여러 법들

[1-12절]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일러 가라사대 이스라엘 . . . .

여호와께서는 모세를 통해 이스라엘 자손에게 말씀하셨다. 그것은 그들이 하나님께서 주셔서 거하게 하실 땅에 들어가서 여호와께 화제(火祭), 즉 번제나, 서원을 갚는 제나 낙헌제 등 화목제나, 정한 절기제에 소나 양으로 여호와께 향기롭게 드릴 때의 규례이다.

그들이 어린양을 제물로 드릴 경우에는, 고운 가루 에바 10분지 1(약 2.2l)에 기름 한 힌의 4분지 1(약 1l)을 섞어 여호와께 소제로 드릴 것이며, 전제(奠祭)(drink offering)로 포도주 한 힌의 4분 1(약 1l)을 예비해야 하였다. 한 에바는 약 22l이며,한 힌은 약 4l이다.

그들이 숫양을 제물로 드릴 경우에는, 소제로 고운 가루 한 에바 10분지 2에 기름 한 힌의 3분지 1을 섞어 예비하고, 전제로 포도주 한 힌의 3분지 1을 드려 여호와 앞에 향기롭게 해야 하였다.

그들이 수송아지를 제물로 드릴 경우에는, 소제로 고운 가루 한 에바 10분지 3에 기름 반 힌을 섞어 함께 드리고, 전제로 포도주 반 힌을 드려 여호와 앞에 향기로운 화제를 삼아야 하였다.

수송아지나 숫양이나 어린 숫양이나 어린 염소를 여러 마리 드릴 때는 그 마리 수마다 이 규례로 행하되 그들이 예비하는 수를 따라 각기 수효에 맞게 해야 하였다.

구약의 짐승 제사의 규례는 일차적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代贖)의 죽음을 상징하였다. 짐승 제물을 드릴 때에 소제 곧 곡물제사와 전제 곧 붓는 제사를 함께 드리게 규정한 것을 무슨 뜻일까?

구약의 제사 제도에서 소제 곧 곡물제사는 감사의 뜻이 있다고 본다. 곡물은 우리의 주식(主食)이다. 우리는 날마다 그것을 먹을 때에 하나님께 감사를 드린다. 그 곡물을 곱게 가루로 만들어 드렸다. 그것은 자기 부정과 온전한 순종을 상징하는 것 같다. 거기에 기름이 섞여진다. 기름도 우리의 식생활의 기본 재료이다. 그것은 향기로움을 가진다. 레위기에 보면, 거기에 유향까지 곁들여진다(레 2:2). 이 모든 요소들은 소제의 감사를 더욱 드러내 보인다. 소제는 이와 같이 하나님 앞에 향기로운 감사의 제사를 상징한다고 본다.

거기에 포도주를 붓는 전제(奠祭)[‘붓는 제사’ drink offering]라는 제사가 있다. 포도주는 물론 향기도 좋지만 피를 상징할 것이다. 그것은 제사의 속죄적인 의미를 다시 한번 더 강조하는 것 같다. 짐승 제물에 소제와 전제를 드림은 예수 그리스도의 온전한 자기 희생과 피흘리신 속죄사역에 근거한 감사를 나타내는 것 같다.

[13-16절] 무릇 본토 소생이 여호와께 향기로운 화제를 드릴 . . . .

13-16절은, 여호와께 드리는 이 향기로운 화제의 규례가 모든 이스라엘 사람들에게나 그들 중에 우거하는 타국인들에게나 동일하게 적용되는 규례라고 말씀한다. 본문은 “너희나 우거하는 타국인이나 한 율례니 너희의 대대로 영원한 율례라. 너희의 어떠한 대로 타국인도 여호와 앞에 그러하리라. 너희나 너희 중에 우거하는 타국인이나 한 법도, 한 규례니라”고 말한다. 이 말씀은 구약의 제사 제도에 담긴 진리가 유대인들에게만 아니고 모든 이방인들에게도 똑같이 의미가 있는 것임을 보인다. 신구약 성경은 세상의 모든 사람들을 위해 주신 하나님의 말씀이다. 구약성경은 하나님의 진리를 예표적인 방식 곧 상징적인 방식으로 증거하였고 신약성경은 그것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성취되었음을 밝히 증거하였다(골 2:16-17).

[17-21절]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일러 가라사대 이스라엘 . . . .

17-21절에서, 여호와께서는 모세에게 소제에 대해 다시 한번 더 말씀하셨다. 그는 그들이 하나님의 인도하시는 땅에 들어가면 그 땅의 양식을 먹을 때에 처음 익은 곡식 가루 떡을 타작마당의 곡물처럼 하나님께 거제로 드리라고 명하셨다. ‘거제’(擧祭)라는 말은 제물을 올려드린다는 뜻이다(NASB). 하나님께서는 “너희의 처음 익은 곡식 가루 떡을 대대에 여호와께 거제로 드릴지니라”고 말씀하셨다.

[22-31절] 너희가 그릇 범죄하여 여호와가 모세에게 말한 . . . .

22-31절에서, 하나님께서는 두 종류의 죄에 대하여 증거하셨다. 하나는 ‘그릇 범죄하는’ 것이다. ‘그릇 범죄하다’(22절)는 원어(솨가)는 ‘무지(無知)의 죄를 범하다’는 뜻이다(BDB). 본문에 아홉 번 나오는 ‘그릇’이라는 원어(쉐가가)는 ‘무지, 실수’라는 뜻이다.

회중이 부지중에 그릇 범죄하면 그들은 수송아지 하나를 여호와께 향기로운 냄새로 번제(원문, KJV, NASB, NIV)로 드리고 규례대로 그 소제와 전제를 드리고 숫염소 하나를 속죄제로 드려야 하였다. 제사장이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을 위하여 속죄하면 그들이 사함을 얻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는 실수로 범죄한 것이고 또 그때문에 화제와 속죄제를 하나님께 드렸기 때문이다. 이것은 온 회중과 그들 중에 우거하는 타국인에게 똑같이 적용되었다.

회중이 아니고 한 사람이 그릇 범죄하면 그들은 1년된 암염소를 속죄제로 드리고 제사장은 그 그릇 범죄한 사람이 여호와 앞에서 얻은 죄를 위해 속죄하여 그 죄를 속해야 했고 그리하면 그가 사함을 얻을 것이다. 이스라엘 자손들에게든지 그들 중에 우거하는 타국인에게든지 그릇 범죄한 자에게 대한 법이 동일하였다.

두 번째 종류의 죄는 ‘짐짓 범죄하는’ 것이다. ‘짐짓’이라는 원어(베야드 라마)는 ‘고의적으로, 건방지게, 도전적으로’라는 뜻이다(BDB, KJV, NASB). 이스라엘 자손들이든지 타국인이든지 짐짓 무엇을 행하면 여호와를 훼방하는 자이며 그는 그 백성 중에서 끊어질 것이라고 규정되었다. 끊어진다는 말은 사형을 의미할 것이다. 그런 사람은 여호와의 말씀을 멸시하고 그 명령을 파괴하였으므로 그 죄악이 자신에게로 돌아가서 온전히 끊어질 것이다.

[32-36절] 이스라엘 자손이 광야에 거할 때에 안식일에 . . . .

32-36절은 두 번째 종류의 죄에 해당하는 한 예를 기록하였다. 그것은 안식일을 범한 죄이었다. 이스라엘 자손이 광야에 거할 때에 안식일에 어떤 사람이 나무하는 것을 발견하였다. 그 나무하는 자를 발견한 자들이 그를 모세와 아론과 온 회중 앞으로 끌어왔다. 그러나 그를 어떻게 처치할지 지시하심을 받지 못하였기 때문에 가두어 두었는데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하셨다. “그 사람을 반드시 죽일지니 온 회중이 진 밖에서 돌로 그를 칠지니라.” 그래서 온 회중은 곧 그를 진 밖으로 끌어내고 돌로 그를 쳐죽여서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하신 대로 행하였다. 안식일을 거룩히 지키는 것은 모든 사람들이 다 아는 바이었고 또 다 지키는 바이었으므로 그것을 범하는 것은 부지중에 범한 죄가 아니고 고의적으로 범한 죄이었기 때문이다.

[37-41절]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일러 가라사대 이스라엘 . . . .

37-41절은 옷단 귀에 옷술을 만들고 보라색 혹은 자주색 끈을 달라는 규례이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셨다. “이스라엘 자손에게 명하여 그들의 대대로 그 옷단 귀에 술을 만들고 청색 끈을 그 귀의 술에 더하라. 이 술은 너희로 보고 여호와의 모든 계명을 기억하여 준행하고 너희로 방종케 하는 자기의 마음과 눈의 욕심을 좇지 않게 하기 위함이라. 그리하면 너희가 나의 모든 계명을 기억하고 준행하여 너희의 하나님 앞에 거룩하리라. 나는 너희의 하나님이 되려 하여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여호와 너희 하나님이니라. 나는 여호와 너희 하나님이니라.”

‘청색’이라는 원어(테켈렛)는 ‘보라색’(BDB) 혹은 ‘자주색’ (KB)이라는 뜻이다(출 26:1도). 보라색 혹은 자주색은 피를 상징하는 색깔이라고 본다. 피는 곧 생명이며(레 17:11, 14) 피흘림은 죽음을 가리키며(롬 6:23) 구약 제도에서 짐승 제물의 피흘림은 장차 오실 그리스도의 대속 사역을 상징하였다(레 17:11). 이스라엘 사람들이 옷단 귀에 술을 만들고 거기에 보라색 혹은 자주색 끈을 다는 것은 피를 상징하며 그것은 하나님의 계명을 어기며 범죄할 때 죽을 것과 그리스도의 대속으로 속죄를 얻을 것을 암시하였다고 본다.

본장에 기록된 규례들은 이스라엘 백성에게나 그들 중에 우거하는 타국인들 즉 이방인들에게나 동일하게 적용되었다. 그것은 구약의 구원 원리가 유대인이나 이방인에게 다 적용되는 것임을 보인다. 구약성경에 제시된 구원 원리, 즉 죄의 값은 죽음이요 그리스도를 통한 대속 사역으로 죄사함과 의롭다 하심을 얻는다는 원리는 모든 인류에게 적용되는 구원 원리인 것이다.

사도 바울은 로마서 초두에서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첫째는 유대인에게요 또한 헬라인에게로다”라고 증거하였다(롬 1:16). 또 그는 에베소서에서도 “이방인들이 복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후사가 되고 함께 지체가 되고 함께 약속에 참여하는 자가 된다”고 증거하였다(엡 3:6). 유대인이나 이방인이나 모든 사람은 죄인이요 죄인들은 다 죽을 수밖에 없고 우리의 죄사함과 의롭다 하심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 위에서 이루신 대속 사역으로 말미암는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일을 위해 십자가에 죽으셨고 죄인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죄사함과 의롭다 하심을 받고 당장 죽어도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 구원을 얻는다. 이것이 성경이 말하는 복음이다(롬 3:20-24).

민수기 15장은 여러 법들을 말한다.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 앞에 짐승 제물을 불태워 드릴 때 소제와 전제를 함께 드려야 하는 법과, 두 종류의 죄에 대한 법과, 옷단에 옷술을 만들고 보라색 혹은 자주색 끈을 달아야 하는 법 등이다. 본장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죄는 부지중에 범하는 죄, 실수의 죄라도 속죄가 필요하다. 짐승 제물의 피흘림은 일차적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를 상징하였다. 화제를 드릴 때 소제를 함께 드리며 특히 포도주를 붓는 전제는 그리스도의 속죄의 피를 상징한다고 본다. 옷술에 다는 보라색 혹은 자주색 끈도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의 피를 상징한다고 본다. 인간의 죄는 예수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가 아니고서는 깨끗하게 씻음받을 수가 없다. 그러므로 히브리서 9:22는 “피흘림이 없은즉 사함이 없느니라”고 말한다.

둘째로, 우리는 고의적인 죄를 범하지 말아야 한다. 고의적인 죄를 짓는 자는 반드시 사형에 처하였다. 주께서는 ‘성령을 훼방하는 죄’는 사함을 받을 수 없다고 말씀하셨다(마 12:31-32). 히브리서는 “우리가 진리를 아는 지식을 받은 후 짐짓 죄를 범한즉 다시 속죄하는 제사가 없다”고 말했다(히 10:26). 사도 요한은 ‘사망에 이르는 죄’에 대해 말하였다(요일 5:16). 이런 죄는 심령이 지극히 완악해져서 회개할 수 없는 상태를 보인다. 우리가 정말 구원받은 자라면 우리는 그런 고의적인 죄를 범하지 말아야 한다. 고의적인 죄를 짓지 말자.

셋째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을 믿고 감사하며 그 의 안에서 하나님의 계명을 힘써 준행하자. 부지중에 죄를 범한 자라도 속죄의 제물을 드려야 하였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 사역을 상징하였다. 유대인이나 이방인이나 다 동일한 원리가 적용된다. 그러므로 우리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죄사함과 의롭다 하심을 받고 그 의(義) 안에서 의를 행하며, 그 거룩 안에서 거룩하게 살며, 그 사랑 안에서 사랑을 실천하자. 우리는 의를 행하며 형제를 사랑하자. 그것이 구원받은 표이다(요일 3:9-10, 14).

 

 

16장: 고라 일당의 반역

[1-3절] 레위의 증손 고핫의 손자 이스할의 아들 고라와 . . . .

민수기 16장은 고라 일당의 반역 사건을 자세히 기록하고 있다. 고라는 레위의 증손 고핫의 손자 이스할의 아들, 즉 레위 지파 사람이었다. 또 그와 함께 르우벤 자손 3명, 즉 엘리압의 아들들 다단과 아비람과, 벨렛의 아들 온이 당을 짓고 이스라엘 자손 총회에 택함을 받은 자 곧 회중에 유명한 어떤 족장들 250명과 함께 일어나서 모세를 대적하였다. 고라의 이름이 1, 24, 27절에 맨 먼저 나오고, 또 5절에 “고라와 그 모든 무리,” 6절에 “너 고라와 너의 모든 무리,” 19절에 “고라가 온 회중을 회막문에 모아 놓고,” 또 40절에 “고라와 그 무리” 등 반복된 표현을 보면, 고라는 그들 모두의 주동자이었음이 분명하다. 고라가 주동자이고, 고라와 다단과 아비람과 온이 중심이 되었고, 이스라엘 총회에서 택함을 받은 어떤 유명한 족장들 250명의 동조를 얻어 당을 이루어 모세와 아론을 대적한 것이었다.

그들은 모여서 모세와 아론을 대적하여 그들에게 말하였다. “너희가 분수에 지나도다. 회중이 다 각각 거룩하고 여호와께서도 그들 중에 계시거늘 너희가 어찌하여 여호와의 총회 위에 스스로 높이느뇨?” 모세와 아론이 분수에 지나쳤는가? 그들이 여호와의 총회 위에 자신을 높였는가? 모세와 아론이 한 일들이 무엇이었는가?

그들은 하나님의 명을 따라 애굽에서 자기 목숨의 위험을 무릅쓰고 바로에게 나아가 이스라엘 백성을 내어보내줄 것을 요청하였다. 그들은 하나님의 은혜로 그 백성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어 홍해를 건넜고 만나와 메추라기를 먹였고 반석에서 물을 내어 마시게 하였고 아말렉 전쟁을 승리로 인도하였고 천부장 백부장 등을 세웠다. 그들은 십계명과 율법들을 받았고 성막을 건립했고 제사장을 세웠고 제사, 절기 등 각종 규례를 정하였다. 그들은 인구 조사를 하였고 진영과 행진 대열을 지정하였고 은나팔을 만들었고 가나안 정탐을 시켰고 하나님의 징벌을 선언했고 안식일을 범한 자를 처단하였다.

이런 일들은 얼른 보기에는 모세가 왕노릇한 것처럼 보이지만, 그가 임의로 한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오직 하나님의 지시와 허락을 받아 행한 것들이었다. 모세는 결코 독재자나 자신을 높인 교만한 사람이 아니었다. 성경은 그를 온유한 자라고 증거하였고(민 12:3) 하나님께서는 그를 충성된 자라고 인정하셨다(민 12:7-8).

[4-11절] 모세가 듣고 엎드렸다가 고라와 그 모든 무리에게 말하여 가로되 아침에 여호와께서 자기에게 속한 자가 누구인지, . . .

고라의 대적하는 말을 들은 모세는 하나님 앞에 엎드렸다가 고라와 그 모든 무리에게 말하였다. “아침에 여호와께서 자기에게 속한 자가 누구인지, 거룩한 자가 누구인지 보이시고 그 자를 자기에게 가까이 나아오게 하시되 곧 그가 택하신 자를 자기에게 가까이 나아오게 하시리니 이렇게 하라. 너 고라와 너의 모든 무리는 향로를 취하고 내일 여호와 앞에서 그 향로에 불을 담고 그 위에 향을 두라. 그때에 여호와의 택하신 자는 거룩하게 되리라. 레위 자손들아, 너희가 너무 분수에 지나치느니라.”

모세는 또 고라에게 말했다. “너희 레위 자손들아 들으라.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이스라엘 회중에서 너희를 구별하여 자기에게 가까이 하게 하사 여호와의 성막에서 봉사하게 하시며 회중 앞에 서서 그들을 대신하여 섬기게 하심이 너희에게 작은 일이겠느냐? 하나님이 너와 네 모든 형제 레위 자손으로 너와 함께 가까이 오게 하신 것이 작은 일이 아니어늘 너희가 오히려 제사장의 직분을 구하느냐? 이를 위하여 너와 너의 무리가 다 모여서 여호와를 거스르는도다. 아론은 어떠한 사람이관대 너희가 그를 원망하느냐?” 레위 자손 고라만 모세와 아론을 대적하는 마음을 가진 것이 아니었던 것 같다. 고라는 반역적 레위 자손들의 대표이었던 것 같다. 그러나 그들의 원망과 대적은 단지 인간 모세나 아론에게 한 것이 아니고, 그들을 세우신 하나님께 한 것이었다. 그들은 하나님을 대적하고 있었다.

[12-14절] 모세가 엘리압의 아들 다단과 아비람을 부르러 . . . .

모세는 엘리압의 아들들인 다단과 아비람을 부르러 사람을 보내었으나 그들은 말하였다. “우리는 올라가지 않겠노라. 네가 우리를 젖과 꿀이 흐르는 땅에서 이끌어 내어 광야에서 죽이려 함이 어찌 작은 일이기에 오히려 스스로 우리 위에 왕이 되려 하느냐? 이뿐 아니라 네가 우리를 젖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인도하여 들이지도 아니하고 밭도 포도원도 우리에게 기업으로 주지 아니하니 네가 이 사람들의 눈을 빼려느냐? 우리는 올라가지 아니하겠노라.”

다단과 아비람의 생각은 너무 달랐다. 그들은 애굽 땅을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라고 말하며 모세와 아론이 그들을 광야에서 죽게 하려고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었다고 말한다. 또 그들은 모세와 아론이 그들 위에 왕이 되려 한다고 말했고, 또 그들이 자기들을 젖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인도하지 않고 밭과 포도원도 주지 않고 그들의 눈을 빼려 한다고 불평하였다. 그것은 극심한 불신앙과 사실 왜곡이었다. 그들은 실상 애굽에서 심한 학대를 당하고 고생을 하고 있었을 때 하나님께 탄식하며 부르짖었고(출 2:23) 하나님께서 모세를 보내어 그들을 애굽에서 이끌어내시게 된 것이었다. 모세는 그들의 왕이 되려 하지 않았고 더욱이 그들의 눈을 빼려 한 악한 종이 아니었다.

[15-19절] 모세가 심히 노하여 여호와께 여짜오되 주는 그들의 . . . .

모세는 심히 노하여 여호와께 말씀드렸다. “주는 그들의 예물을 돌아보지 마옵소서. 나는 그들의 한 나귀도 취하지 아니하였고 그들의 한 사람도 해하지 아니하였나이다.” 모세는 땅의 것 곧 물질적인 것을 구하기 위해 이스라엘의 지도자가 된 것이 아니었다. 또 그는 고라에게 말하였다. “너와 너의 온 무리는 아론과 함께 내일 여호와 앞으로 나아오되 너희는 각기 향로를 잡고 그 위에 향을 두고 각 사람이 그 향로를 여호와 앞으로 가져오라. 향로는 모두 250이라. 너[고라]와 아론도 각각 향로를 가지고 올지니라.” 그들이 각기 향로를 취하여 불을 담고 향을 그 위에 두고 모세와 아론과 더불어 회막문에 섰다. 고라는 온 회중을 회막문에 모아 놓고 그 두 사람을 대적하려 하였다. 그러나 그때 여호와의 영광이 온 회중에게 나타나셨다.

[20-35절] 여호와께서 모세와 아론에게 일러 가라사대 너희는 이 회중에게서 떠나라. 내가 순식간에 그들을 멸하려 하노라. . . .

여호와께서는 모세와 아론에게 말씀하셨다. “너희는 이 회중에게서 떠나라. 내가 순식간에 그들을 멸하려 하노라.” 그는 크게 진노하셨다. 그러나 그 두 사람은 엎드려 말씀드렸다. “하나님이여, 모든 육체의 생명(루코스)[영들](KJV, NASB, NIV)의 하나님이시여, 한 사람이 범죄하였거늘 온 회중에게 진노하시나이까?” 여호와께서는 모세에게 말씀하셨다. “회중에게 명하여 이르기를 너희는 고라와 다단과 아비람의 장막 사면에서 떠나라 하라.”

모세는 일어나 다단과 아비람에게 갔고 이스라엘 장로들이 그를 따랐다. 모세는 회중에게 말했다. “이 악인들의 장막에서 떠나고 그들의 물건은 아무것도 만지지 말라. 그들의 모든 죄 중에서 너희도 멸망할까 두려워하노라.” 무리는 고라와 다단과 아비람의 장막 사면을 떠나고 다단과 아비람은 그 처자와 유아들과 함께 나와서 자기 장막문에 섰다. 모세는 말했다. “여호와께서 나를 보내사 이 모든 일을 행케 하신 것이요 나의 임의로 함이 아닌 줄을 이 일로 인하여 알리라. 곧 이 사람들의 죽음이 모든 사람과 일반이요 그들의 당하는 벌이 모든 사람의 당하는 벌과 일반이면 여호와께서 나를 보내심이 아니거니와 만일 여호와께서 새 일을 행하사 땅으로 입을 열어 이 사람들과 그들의 모든 소속을 삼켜 산 채로 음부에 빠지게 하시면 이 사람들이 과연 여호와를 멸시한 것인 줄을 너희가 알리라.”

이 모든 말을 마치는 동시에 그들의 밑의 땅이 갈라졌다. 땅은 그 입을 열어 그들과 그 가족과 고라에게 속한 모든 사람과 그 물건을 삼켰다. 그들과 그 모든 소유가 산 채로 음부에 빠지며 땅이 그 위에 합하니 그들이 총회 중에서 망하였다. 그 주위에 있는 온 이스라엘이 그들의 부르짖음을 듣고 도망하며 “땅이 우리도 삼킬까 두렵다”고 말했고 여호와께로서 불이 나와서 분향하는 250인을 소멸하였다.

[36-40절]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일러 가라사대 너는 제사장 . . . .

여호와께서는 모세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제사장 아론의 아들 엘르아살을 명하여 붙는 불 가운데서 향로를 취하여다가 그 불을 다른 곳에 쏟으라. 그 향로는 거룩함이니라. 사람들은 범죄하여 그 생명을 스스로 해하였거니와 그들이 향로를 여호와 앞에 드렸으므로 그 향로가 거룩하게 되었나니 그 향로를 쳐서 제단을 싸는 편철[철판]을 만들라. 이스라엘 자손에게 표가 되리라.” 제사장 엘르아살은 불탄 자들의 드렸던 놋향로를 취해 쳐서 제단을 싸서 이스라엘 자손의 기념물이 되게 했다. 이것은 아론 자손이 아닌 외인은 여호와 앞에 분향하러 가까이 오지 못하게 하며 또 고라와 그 무리와 같이 되지 않게 하기 위함이었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하신 대로 되었다.

[41-50절] 이튿날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이 모세와 아론을 . . . .

이튿날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이 모세와 아론을 원망하여 “너희가 여호와의 백성을 죽였도다”라고 말했다. 회중이 모여 모세와 아론을 대적할 때 회막을 바라본즉 구름이 회막을 덮었고 여호와의 영광이 나타났다. 모세와 아론은 회막 앞에 왔고 여호와께서는 모세에게 말씀하셨다. “너희는 이 회중에게서 떠나라. 내가 순식간에 그들을 멸하려 하노라.” 그 두 사람은 하나님 앞에 엎드려 기도하였다. 모세는 아론에게 말했다. “너는 향로를 취하고 단의 불을 그것에 담고 그 위에 향을 두어 가지고 급히 회중에게로 가서 그들을 위해 속죄하라. 여호와께서 진노하셨으므로 염병이 시작되었음이니라.” 향로로 향을 사르는 것은 완전한 헌신과 희생을 상징하는 것 같다. 그것은 일차적으로 속죄의 뜻을 가졌다고 보인다.

아론은 모세의 명령을 좇아 향로를 가지고 회중에게로 달려갔다. 백성 중에 염병[무서운 전염병]이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그가 백성을 위하여 속죄하고 죽은 자와 산 자 사이에 섰을 때에 염병이 그쳤다. 고라의 일로 죽은 자들 외에, 염병에 죽은 자가 14,700명이었다. 염병이 그치자 아론은 회막문 모세에게로 돌아왔다.

본장에서 우리는 몇 가지 하나님의 교훈을 찾는다. 첫째로, 우리는 교만치 말자. 고라와 그 동료들은 확실히 교만하였다. 교만한 사람은 다른 사람을 무시하고 다투고 원망, 불평한다. 잠언 13:10은, “교만에서는 다툼만 일어날 뿐이라. 권면을 듣는 자는 지혜가 있느니라”고 말한다. 교만한 사람은 결국 패망하고 만다. 잠언 16:18은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요 거만한 마음은 넘어짐의 앞잡이니라”고 말한다.

고린도교회는 사도 시대에 주셨던 성령의 기적들을 체험한 교회이었지만, 겸손하게 처신해야 한다는 가르침을 받았다. “형제들아, 내가 너희를 위하여 이 일에 나와 아볼로를 가지고 본을 보였으니 이는 너희로 하여금 기록한 말씀 밖에 넘어가지 말라 한 것을 우리에게서 배워 서로 대적하여 교만한 마음을 먹지 말게 하려 함이라. 누가 너를 구별하였느뇨? 네게 있는 것 중에 받지 아니한 것이 무엇이뇨? 네가 받았은즉 어찌하여 받지 아니한 것같이 자랑하느뇨?”(고전 4:6-7).

빌립보 교회는 믿음과 선행이 있는 교회이었지만, 교인들 간의 다툼이 있었던 것 같다. 그러므로 빌립보서 2:2-3은, “마음을 같이 하여 같은 사랑을 가지고 뜻을 합하며 한 마음을 품어 아무 일에든지 다툼이나 허영으로 하지 말고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각각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라”고 교훈하였다. 우리는 교만치 말고 겸손한 마음을 품자.

둘째로, 우리는 자기 위치를 지키자. 고라와 그 동료들은 자기들의 위치를 잊어버렸다. 그들은 모세와 아론에게 “너희가 분수에 지나도다”라고 말했다(3절). 그러나 실상 고라와 그 동료들이 분수에 지나치게 행한 것이었다(7절). 그들은 하나님께서 지도자로 세우신 모세에게 복종해야 했다. 모세와 아론의 권위는 하나님께서 주신 권위이었다.

우리의 모든 삶의 현실과 또 교회의 직분은 다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의 현재 상태를 하나님께 감사하자. 맡은 자에게 구할 것은 충성이다(고전 4:2). 우리는 주님 재림 때까지 아무것도 사사로이 판단치 말고(고전 4:5) 원망과 불평과 대적을 하지 말고 감사한 마음으로 충성해야 한다. 로마서 12:3은, “내게 주신 은혜로 말미암아 너희 중 각 사람에게 말하노니 마땅히 생각할 그 이상의 생각을 품지 말고 오직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나눠주신 믿음의 분량대로 지혜롭게 생각하라”고 교훈한다. 우리는 자기 위치를 지키자.

셋째로, 우리는 오직 건전한 교제를 나누자. 고라의 동료들과 250명의 족장들은 불건전한 교제 때문에 결국 죽었다. 잠언 13:20은, “지혜로운 자와 동행하면 지혜를 얻고 미련한 자와 사귀면 해를 받느니라”고 말한다. 하나님께서 미워하시는 죄악 6, 7가지 중에 이간질하는 자가 들어 있다(잠 6:19). 앞뒤 이야기는 다 빼먹고 자기에게 불리한 말은 다 빼먹고 오직 자기에게 유리한 말한 하고 그것을 진실인 양 말하고 이웃 간에 이간질하는 자는 악한 자이다. 지혜 없는 자는 그 이웃을 멸시하나 명철한 자는 잠잠한다(잠 11:12). 잠언은 “입술을 벌린 자를 사귀지 말라”고 말했다(잠 20:19). 사도 바울은 “속지 말라. 악한 동무들은 선한 행실을 더럽히나니 깨어 의를 행하고 죄를 짓지 말라.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자가 있기로 내가 너희를 부끄럽게 하기 위해 말하노라”고 했다(고전 15:33-34). 우리는 오직 건전한 교제를 나누자.

 

 

17장: 아론의 싹난 지팡이

[1-7절]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일러 가라사대 너는 이스라엘 . . . .

여호와께서는 모세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고하여 그들 중에서 각 종족을 따라 지팡이 하나씩 취하되 곧 그 종족대로 그 모든 족장에게서 지팡이 열둘을 취하고 그 사람들의 이름을 각각 그 지팡이에 쓰되 레위의 지팡이에는 아론의 이름을 쓰라. 이는 그들의 종족의 각 우두머리가 지팡이 하나씩 있어야 할 것임이니라. 그 지팡이를 회막 안에서 내가 너희와 만나는 곳인 증거궤 앞에 두라. 내가 택한 자의 지팡이에는 싹이 나리니 이것으로 이스라엘 자손이 너희를 대해 원망하는 말을 내 앞에서 그치게 하리라.”

모세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고하였고 그 족장들은 각기 종족대로 지팡이를 하나씩 그에게 주었다. 그 지팡이는 모두 열둘이었다. 그 중에 아론의 지팡이가 있었다. 그러면 요셉의 두 아들 에브라임과 므낫세는 한 족속과 지파로 간주된 것 같다. 모세는 그 열두 개의 지팡이들을 증거의 장막 곧 회막 안 여호와 앞에 두었다. 히브리서 9:4에 비추어 보면, 그것들은 지성소의 법궤 앞에 두었던 것 같다.

[8-11절] 이튿날 모세가 증거의 장막에 들어가 본즉 레위 집을 . . . .

이튿날 모세가 증거의 장막에 들어가 보니 레위 집을 위하여 낸 아론의 지팡이에 움이 돋고 순이 나고 꽃이 피어서 살구열매가 열렸다. 하룻밤 사이에 일어난 기적이었다. 그것은 이성과 상식을 넘어선 일이었다. 모세는 그 지팡이들 전부를 여호와 앞에서 이스라엘 모든 자손에게로 취하여 내었다. 이스라엘 모든 자손들은 그것들을 보았고 각 지파 대표들은 각각 자기 지팡이를 취하였다. 이스라엘 모든 자손들과 각 지파 대표들은 이 기적에 대한 증인들이었다.

여호와께서는 또 모세에게 말씀하셨다. “아론의 지팡이는 증거궤 앞으로 도로 가져다가 거기 간직하여 패역한 자들에 대한 표징[표]이 되게 하여 그들로 내게 대한 원망을 그치고 죽지 않게 할지니라.” 백성의 지도자에 대한 원망은 하나님께 대한 원망으로 간주되었다. 모세는 여호와께서 그에게 명하신 대로 곧 행하였다.

[12-13절] 이스라엘 자손이 모세에게 말하여 가로되 보소서. . . .

이스라엘 자손은 모세에게 말하였다. “보소서. 우리는 죽게 되었나이다. 망하게 되었나이다. 다 망하게 되었나이다. 가까이 나아가는 자 곧 여호와의 성막에 가까이 나아가는 자마다 다 죽사오니 우리가 다 망하여야 하리이까?”

본장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우리는 하나님의 무한하신 능력을 믿자. 아론의 지팡이에 움이 돋고 순이 나고 꽃이 피어서 살구열매가 열렸다. 하룻밤 사이에 기적이 일어났다. 그것은 자연법칙과 인간의 이성과 상식으로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러나 하나님께는 모든 일이 가능하다. 하나님의 기적들이 다 그러했다. 다니엘의 세 친구들은 평일보다 7배나 뜨겁게 달군 풀무불에 던지웠으나 죽지 않고 살아났다. 그것은 순전히 하나님의 주신 기적이었다. 그 기적은 많은 증인들이 있는 기적이었다(단 3:27). 예수님의 기적들도 그러했다. 그는 물로 맛 좋은 포도주를 만드셨다. 또 그는 각종 불치의 병자들을 고쳐주셨다. 그것들은 인간의 상식과 경험으로는 불가능한 일들이었다. 그러나 하나님의 능력으로는 가능하였다. 우리는 하나님의 무한하신 능력을 믿자. 우리는 성경에 기록되어 있는 모든 기적들을 다 믿자.

둘째로, 우리는 하나님께서 세우신 권세들에 복종하자. 하나님께서 아론의 지팡이에 싹이 나게 하시고 꽃이 피고 열매가 맺히게 하신 것은 이스라엘 백성들로 하여금 하나님께서 세우신 권세들에게 복종케 하려 하심이었다. 모든 권세는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다. 이것은 사회적 권세나 교회적 권세나 마찬가지이다. 바울은 말하기를, “각 사람은 위에 있는 권세들에게 굴복하라. 권세는 하나님께로 나지 않음이 없나니 모든 권세는 다 하나님의 정하신 바라. 그러므로 권세를 거스르는 자는 하나님의 명을 거스름이니 거스르는 자들은 심판을 자취하리라”고 했다(롬 13:1-2). 히브리서는 “너희를 인도하는 자들에게 순종하고 복종하라. 저희는 너희 영혼을 위하여 경성하기를 자기가 회계할 자인 것같이 하느니라. 저희로 하여금 즐거움으로 이것을 하게 하고 근심으로 하게 말라.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유익이 없느니라”(히 13:17)고 말한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세우신 권세들에게 복종해야 한다. 자녀들은 부모님을 공경하고 순종해야 한다. 학생들은 선생님들을 존경하고 순종해야 한다. 백성들은 대통령과 위정자들을 존중하고 그들을 위해 기도하고 그들의 인도함을 잘 따라야 한다. 교인들은 목사와 장로들을 존중하고 순종해야 한다. 우리는 어떤 일이든지 정당한 절차를 따라 질문하고 건의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사사건건 불평하거나 원망하지 말아야 하고 특히 무질서와 혼란을 가져오는 반역자의 무리가 되지 말자. 그런 일은 하나님께서 기뻐하지 않으신다.

셋째로, 우리는 중보자 예수 그리스도 안에 거하며 하나님과 교제하는 특권을 누리자. 이스라엘 백성은 모세에게 말했다. “우리는 죽게 되었나이다. 망하게 되었나이다. 다 망하게 되었나이다. 가까이 나아가는 자 곧 여호와의 성막에 가까이 나아가는 자마다 다 죽사오니 우리가 다 망하여야 하리이까?” 하나님은 확실히 두려우신 하나님이시다. 그 분 앞에 감히 설 자가 없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의 크신 대제사장이시며 새 언약의 중보자이신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죄사함과 의롭다 하심과 하나님의 자녀의 특권과 영생과 천국 기업을 얻게 되었다. 그 뿐만 아니라, 우리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존귀한 제사장들이 되었다(벧전 2:9).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 안에 거하며 하나님과 친밀한 교제를 나누는 특권을 누리자.

 

 

18장: 레위 지파의 직무와 보수

[1-7절] 여호와께서 아론에게 이르시되 너와 네 아들들과 . . . .

여호와께서는 아론에게 말씀하셨다. “너와 네 아들들과 네 종족은 성소에 대한 죄를 함께 담당할 것이요 너와 네 아들들은 너희가 그 제사장 직분에 대한 죄를 함께 담당할 것이니라.” ‘성소에 대한 죄’란 이스라엘 백성이 성소에 대해 범하는 죄를 뜻하며 제사장들이 그 죄에 대해 책임이 있다는 것이다. ‘제사장 직분에 대한 죄’란 제사장이 그 직무를 수행하다가 실수로 범한 죄를 가리킨다.

여호와께서는 또 그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네 형제 레위 지파 곧 네 조상의 지파를 데려다가 너와 합동시켜 너를 섬기게 하고 너와 네 아들들은 증거의 장막 앞에 있을 것이니라. 레위인은 네 직무와 장막의 모든 직무를 지키려니와 성소의 기구와 단에는 가까이 못하리니 두렵건대 그들과 너희가 죽을까 하노라. 레위인은 너와 합동하여 장막의 모든 일과 회막의 직무를 지킬 것이요 외인은 너희에게 가까이 못할 것이니라.”

하나님께서는 레위인들을 제사장들에게 주셔서 그들을 섬기게 하셨다. 그러나 레위인들의 직무에는 제한이 있었다. 그들이 성소의 기구들과 단에는 가까이 못하였다. 이와 같이, 제사장들과 레위인들은 성막 봉사의 일들을 행하였고 외인들이 가까이 못하였다.

여호와께서는 또 말씀하셨다. “이와 같이 너희는 성소의 직무와 단의 직무를 지키라. 그리하면 여호와의 진노가 다시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미치지 아니하리라. 보라 내가 이스라엘 자손 중에서 너희 형제 레위인을 취하여 내게 돌리고 너희에게 선물로 주어 회막의 일을 하게 하였나니 너와 네 아들들은 단과 장[휘장] 안의 모든 일에 대하여 제사장의 직분을 지켜 섬기라. 내가 제사장의 직분을 너희에게 선물로 주었은즉 거기 가까이 하는 외인은 죽이울지니라.”

하나님께서는 제사장들이 성소의 직무와 단의 직무를 지키게 하심으로써 하나님의 진노가 이스라엘 백성에게 미치지 않게 하셨다. 제사장들은 레위인들을 수종자로 삼아 하나님의 일들을 수행할 것이었다. 레위인들 외에는 아무도 성소에 가까이 하지 못하게 하셨다. 이와 같이, 거룩하신 하나님께서는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 사이에 제사장들을 중보자로 세우셨고 이스라엘 백성이 제사장들을 통해 하나님께 나아가고 하나님을 섬길 수 있게 하셨다.

[8-20절] 여호와께서 또 아론에게 이르시되 보라 내가 내 거제물 곧 이스라엘 자손의 거룩하게 한 모든 예물을 너로 주관하게 하고 . . . .

여호와께서는 아론에게 또 말씀하셨다. “보라, 내가 내 거제물[내게 드려진 예물] 곧 이스라엘 자손의 거룩하게 한 모든 예물을 너로 주관하게 하고 네가 기름 부음을 받았음을 인하여 그것을 너와 네 아들들에게 영영한 응식(應食)[몫]으로 주노라. 지성물(至聖物)[지극히 거룩한 제물] 중에 불사르지 않은 것은 네 것이라. 그들이 내게 드리는 모든 예물의 모든 소제와 속죄제와 속건제물은 다 지극히 거룩한즉 너와 네 아들들에게 돌리리니 지극히 거룩하게 여김으로 먹으라. 이는 네게 성물(聖物)인즉 남자들이 다 먹을지니라. 내게[네게] 돌릴 것이 이것이니 곧 이스라엘 자손의 드리는 거제물과 모든 요제물[흔들어 드린 예물]이라. 내가 그것을 너와 네 자녀에게 영영한 응식으로 주었은즉 네 집의 정결한 자마다 먹을 것이니라. 그들이 여호와께 드리는 첫 소산 곧 제일 좋은(켈렙)('the best'-- KJV, NASB, 'the finest'--NIV) 기름과 제일 좋은(켈렙) 포도주와 곡식을 네게 주었은즉 그들이 여호와께 드리는 그 땅 처음 익은 모든 열매는 네 것이니 네 집에 정결한 자마다 먹을 것이라.”

하나님께서는 제사장들에게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께 드린 모든 제물들과 예물들을 관할하게 하셨고 그것들을 그들에게 영원한 몫으로 주셨다. 그러므로 제사장들은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께 바친 모든 소제물, 속죄제물, 속건제물, 또 모든 소산들의 첫 열매들, 즉 가장 좋은 기름과 가장 좋은 포도주와 가장 좋은 곡식을 자신들의 소유로 얻었고 그 거룩한 제물을 먹기에 합당치 않은 죄를 범하지 않은 모든 제사장들의 남녀 가족들이 그것들을 먹었다.

여호와께서는 아론에게 또 말씀하셨다. “이스라엘 중에서 ‘특별히 드린’(devoted)(KJV, NASB)[바쳐진] 모든 것은 네 것이 되리라. 여호와께 드리는 모든 생물의 처음 나는 것은 사람이나 짐승이나 다 네 것이로되 사람의 처음 난 것은 반드시 대속(代贖)할 것이요 부정(不淨)한 짐승의 처음 난 것도 대속할 것이며 그 사람을 속(贖)할 때에는 난 지 1개월 이후에 네가 정한 대로 성소의 세겔을 따라 은 다섯 세겔로 속(贖)하라. 한 세겔은 20게라니라. 오직 소의 처음 난 것이나 양의 처음 난 것이나 염소의 처음 난 것은 속하지 말지니 그것들은 거룩한즉 그 피는 단에 뿌리고 그 기름은 불살라 여호와께 향기로운 화제로 드릴 것이며 그 고기는 네게 돌릴지니 흔든 가슴과 우편 넓적다리같이 네게 돌릴 것이니라.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께 거제로 드리는 모든 성물(聖物)은 내가 영영한 응식(應食)[몫]으로 너와 네 자녀에게 주노니 이는 여호와 앞에 너와 네 후손에게 변하지 않는 소금 언약이니라. 여호와께서 또 아론에게 이르시되 너는 이스라엘 자손의 땅의 기업도 없겠고 그들 중에 아무 분깃도 없을 것이나 나는 이스라엘 자손 중에 네 분깃이요 네 기업이니라.”

제사장들은 또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께 드린 가축의 첫 새끼들도 취할 것이다. 사람의 맏아들이나 부정한 짐승의 첫 새끼는 값을 쳐서 돈으로 대속(代贖)할 것이며, 정결한 짐승은 제물로 드려 그 피를 단에 뿌리고 그 기름을 불사르고 그 고기는 제사장들이 먹을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께 바친 모든 성물은 제사장들의 소유가 될 것이다. 그것은 그들이 땅에서 분깃이나 기업이 없고 하나님께서 그들의 분깃과 기업이 되시기 때문에 주신 것이었다.

[21-24절] 내가 이스라엘의 십일조를 레위 자손에게 기업으로 . . . .

여호와께서는 또 말씀하셨다. “내가 이스라엘의 십일조를 레위 자손에게 기업으로 다 주어서 그들의 하는 일 곧 회막에서 하는 일을 갚나니 이 후로는 이스라엘 자손이 회막에 가까이 말 것이라. 죄를 당하여 죽을까 하노라. 오직 레위인은 회막에서 봉사하며 자기들의 죄를 담당할 것이요 이스라엘 자손 중에는 기업이 없을 것이니 이는 너희의 대대에 영원한 율례라.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께 거제로 드리는 십일조를 레위인에게 기업으로 준 고로 내가 그들에 대하여 말하기를 이스라엘 자손 중에 기업이 없을 것이라 하였노라.”

하나님께서는 레위인들에 대해서도 말씀하셨다. 그들은 제사장들을 도와 회막의 일을 하는 자들이었고 땅에서 기업을 얻지 못하는 자들이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의 십일조를 그들에게 기업으로 주셨다. 그것은 그들의 회막 봉사의 일에 대한 보수(報酬)이었다. 그 대신, 그들은 세속적인 일을 하지 않았고 오직 성막 봉사의 일에만 전념하여야 했다. 일반 사람들이 회막에 가까이 하면 죄가 되어 죽을 것이었으므로, 오직 레위인들이 회막의 일을 하였다.

[25-32절]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일러 가라사대 너는 . . . .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또 말씀하셨다. “너는 레위인에게 고하여 그에게 이르라. 내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취하여 너희에게 기업으로 준 십일조를 너희가 그들에게서 취할 때에 그 십일조의 십일조를 거제로 여호와께 드릴 것이라. 내가 너희의 거제물을 타작 마당에서 받드는 곡물과 포도즙 틀에서 받드는 즙같이 여기리니 너희는 이스라엘 자손에게서 받는 모든 것의 십일조 중에서 여호와께 거제로 드리고 여호와께 드린 그 거제물은 제사장 아론에게로 돌리되 너희의 받은 모든 예물 중에서 너희는 그 아름다운 것(켈렙)[가장 좋은 것]('the best'--KJV, NASB, NIV) 곧 거룩하게 한 부분을 취하여 여호와께 거제로 드릴지니라. 이러므로 너는 그들에게 이르라. 너희가 그 중에서 아름다운 것(켈렙)[가장 좋은 것]을 취하여 드리고 남은 것은 너희 레위인에게는 타작 마당의 소출과 포도즙 틀의 소출같이 되리니 너희와 너희 권속이 어디서든지 이것을 먹을 수 있음은 이는 회막에서 일한 너희의 보수(報酬)임이니라. 너희가 그 중 아름다운 것(켈렙)[가장 좋은 것]을 받들어 드린즉 이로 인하여 죄를 지지 아니할 것이라. 너희는 이스라엘 자손의 성물(聖物)을 더럽히지 말라. 그리하면 죽지 아니하리라.”

레위인들은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께서 드린 십일조를 취하되 그 중에서 십일조, 즉 십일조의 십일조를 구별하여 하나님께 드리며 그것을 제사장들에게 줄 것이다. 그들이 구별할 십일조는 모든 예물 중에서 ‘그 아름다운 것’ 곧 ‘가장 좋은 것’이어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하나님께 바쳐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께 십일조를 드릴 때도 가장 좋은 것을 구별하였겠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좋은 것을 구별하여 하나님께 드리며 그 가장 좋은 것을 제사장들에게 드려야 하였다. 이것이 하나님의 규례이었다.

본장이 주는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본장은 제사장의 직분에 대해 증거한다. 거룩한 하나님을 섬기는 성막 봉사의 일은 일반 사람이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이 구약제도는 하나님께서 보내실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하였다.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대제사장으로 오셨다. 그는 거룩하신 하나님과 죄인들 사이에 유일한 중보자가 되셨다. 그는 우리의 많은 죄를 십자가 위에서 단번에 대속(代贖)하셨다. 그의 대속 사역으로 말미암아 우리는 그의 이름으로 담대히 하나님께 나아가게 되었고 하나님을 섬기게 되었다. 히브리서 4:14는, “우리에게 큰 대제사장이 있으니 승천하신 자 곧 하나님 아들 예수시라”라고 말했고, 히브리서 9:11-12는, “그리스도께서 장래 좋은 일의 대제사장으로 오사 손으로 짓지 아니한 곧 이 창조에 속하지 아니한 더 크고 온전한 장막으로 말미암아 염소와 송아지의 피로 아니하고 오직 자기 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사 단번에 성소에 들어 가셨느니라”고 증거하였다.

둘째로, 신약성경은 우리 모든 신자가 하나님을 섬기는 제사장들이며 레위인 이상이라고 말한다. 베드로전서 2:9는 신약성도를 “왕 같은 제사장들”이라고 증거한다. 요한계시록 1:6도 예수께서 우리를 제사장으로 삼으셨다고 증거한다. 또 로마서 12:1은 우리 몸을 하나님께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고 교훈한다. 히브리서 10:19-20은 “우리가 예수의 피를 힘입어 성소에 들어갈 담력을 얻었다”고 말한다. 고린도후서 5:15는 우리가 자신을 위해 살지 않고 우리를 위해 죽었다가 다시 사신 그 분을 위해 살아야 한다고 말한다. 그것은 레위인 이상의 삶이다.

셋째로, 신약성경은 특히 복음 사역자들에 대해 말한다. 주께서는 제자들을 택하셨고 그들은 세상 직업을 버리고 복음 사역에 참여하였다(마 4:19, 22). 사도 바울은 로마서 15:16에서 자신을 “하나님의 복음의 제사장 직무를 하는” 자로 말하였다. 오늘날 목사들과 전도사들과 교회 직원들은 이런 특별한 의미에서 제사장들이며 레위인들이다.

넷째로, 교회는 복음 사역자들을 귀히 여기며 섬겨야 한다. 이것은 신구약성경의 원리이다. 그들은 하나님의 부름을 받고 세상의 직업을 버린 자들이다. 교회가 그들을 섬기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다. 주께서는 “너희를 영접하는 자는 나를 영접하는 것이요”(마 10:40)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라고 말씀하셨다(마 25:40). 사도 바울은 주께서 복음 전하는 자들이 복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명하셨다고 말했고(고전 9:14), 또. “가르침을 받는 자는 말씀을 가르치는 자와 모든 좋은 것을 함께 하라”고 말했다(갈 6:6).

 

 

19장: 부정 제거의 물

[1-6절] 여호와께서 모세와 아론에게 일러 가라사대 . . . .

본장은 부정(不淨)을 제거하는 물에 대한 규례이다. 여호와께서는 모세와 아론에게 말씀하셨다. “여호와의 명하는 법의 율례를 이제 이르노니 이스라엘 자손에게 일러서 온전하여 흠이 없고 아직 멍에 메지 아니한 붉은 암송아지를 네게로 끌어오게 하라.” 부정을 제거하는 물을 만드는 데 쓰인 제물은 암송아지이었다. 그것은 온전하고 흠이 없으며 아직 멍에를 메어본 적이 없는 어린 암송아지이어야 하였다. 그 송아지는 죄 없고 순전한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한다.

“너는 그것을 제사장 엘르아살에게 줄 것이요 그는 그것을 진 밖으로 끌어내어서 자기 앞에서 잡게[죽이게] 할 것이며 제사장 엘르아살은 손가락에 그 피를 찍고 그 피를 회막 앞을 향하여 일곱 번 뿌리고 그 암소를 자기 앞에서 불사르게 하되 그 가죽과 고기와 피와 똥을 불사르게 하고 동시에 제사장은 백향목과 우슬초와 홍색실을 취하여 암송아지를 사르는 불 가운데 던질 것이라.”

그 송아지는 진 밖에서 제사장 앞에서 죽임을 당해야 하였다. 그것은 죄의 값이 죽음임을 보인다. 제사장 엘르아살은 손가락에 그 피를 찍고 그 피를 회막 앞을 향하여 일곱 번 뿌려야 하였다. 피는 생명을 상징하며 또 속죄를 상징한다. 레위기 17:11은, “육체의 생명은 피에 있음이라. 내가 이 피를 너희에게 주어 단에 뿌려 너희의 생명을 위하여 속(贖)하게 하였나니 생명이 피에 있으므로 피가 죄를 속하느니라”고 말한다. 그 피를 회막을 향하여 일곱 번 뿌리는 것은 완전한 속죄를 상징한다.

제사장 엘르아살은 그 암소의 가죽과 고기와 피와 똥까지 자기 앞에서 불사르게 해야 했다. 제물을 불사르는 것은 지옥 형벌을 상징하는 것 같다. 죄인은 죄사함을 받지 않으면 장차 영원한 지옥 형벌을 받을 것이다. 제사장은 또 그때 백향목과 우슬초와 홍색실을 취하여 암송아지를 사르는 불 가운데 던진다. 이 세 가지는 레위기 14:4에 나병을 정결케 하는 의식에 사용된 것들이다. 백향목은 썩지 않음 곧 영생을, 우슬초는 향기로운 냄새를, 그리고 홍색실은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의 피를 각각 상징한 것 같다(매튜 풀). 구약의 제사제도는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속죄사역을 예표하였다(히 9:9-10).

[7-10절] 제사장은 그 옷을 빨고 물로 몸을 씻은 후에 진에 . . . .

제사장은 그 옷을 빨고 물로 몸을 씻은 후에 진에 들어가야 하였다. 그는 저녁까지 부정하였다. 송아지를 불사른 자도 그 옷을 물로 빨고 물로 그 몸을 씻어야 하였다. 그도 저녁까지 부정하였다. 정한 자는 암송아지의 재를 거두어 진 밖 정한[깨끗한] 곳에 두어야 하였다. 이것은 이스라엘 자손 회중을 위하여 간직하였다가 부정을 깨끗케 하는 물을 만드는 데 쓸 것이며 곧 속죄제(카타스)(ASV)이었다. 암송아지의 재를 거둔 자도 그 옷을 빨아야 했고 저녁까지 부정하였다. 이것은 이스라엘 자손들과 그 중에 우거하는 이방인들 모두에게 영원한 율례이었다.

부정 제거의 물을 위한 속죄제를 집례한 제사장이나 암송아지를 불사른 자나 그 재를 거둔 자도 다 저녁까지 부정하였다. 그것은 아마 그 제물이 죄를 담당하였기 때문일 것이다. 고린도후서 5:21은, “하나님이 죄를 알지도 못하신 자로 우리를 대신하여 죄를 삼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저의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고 말한다. 그들은 옷을 빨고 몸을 물로 씻어야 하였다.

[11-13절] 사람의 시체를 만진 자는 7일을 부정하리니 그는 . . . .

11절 이하는 부정을 제거하는 물을 사용하는 예를 든다. 예컨대, 사람의 시체를 만진 자는 7일간 부정할 것이다. 죽음은 죄의 결과이며 그것은 부정(不淨)의 대표적인 예이다. 그러므로 시체를 만진 자는 제3일과 제7일에 이 잿물로 자신을 정결케 하여야 하였다. 그리하면 정할 것이지만, 제3일과 제7일에 자신을 정결케 아니하면 부정할 것이다. 누구든지 죽은 사람의 시체를 만지고 자신을 정결케 아니하는 자는 여호와의 성막을 더럽히는 것이었고, 그는 이스라엘의 총회에서 끊어질 것이다. 왜냐하면 그가 정결케 하는 물을 뿌리지 아니하므로 깨끗케 되지 못하고 그 부정함이 그대로 있기 때문이다. 총회에서 끊어지는 것은 사형이나 제명 출교를 의미할 것이다.

부정 제거의 물은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의 피를 상징한다. 그 피가 우리의 모든 죄와 불결을 깨끗케 할 것이다. 제3일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상징하는 것 같고, 제7일은 영원한 안식 곧 천국에 들어가는 날을 상징하는 것 같다(매튜 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로 우리는 죄씻음과 의롭다 하심이 확증되었고, 장차 천국에서 죄성이 없는 완전한 인격으로 영원히 살게 될 것이다.

이와 같이, 정결 문제는 아주 중요했다. 그것은 죄와 죽음의 문제의 해결이기 때문이다. 죄는 불결을 가져오고 죽음을 가져온다. 그러나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죄씻음을 받았고 하나님을 섬기는 자가 되었다. 히브리서 9:13-14는, “염소와 황소의 피와 및 암송아지의 재로 부정한 자에게 뿌려 그 육체를 정결케 하여 거룩케 하거든 하물며 영원하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흠 없는 자기를 하나님께 드린 그리스도의 피가 어찌 너희 양심으로 죽은 행실에서 깨끗하게 하고 살아계신 하나님을 섬기게 못하겠느뇨?”라고 말한다.

[14-19절] 장막에서 사람이 죽을 때의 법은 이러하니 무릇 그 장막에 들어가는 자와 무릇 그 장막에 있는 자가 7일 동안 부정할 것이며 . . . .

또 하나의 예는 장막에서 사람이 죽을 때이다. 장막에서 사람이 죽으면, 그 장막에 들어가는 모든 사람과 그 장막에 있는 모든 사람이 7일 동안 부정할 것이며, 뚜껑을 열어 놓고 덮지 않은 모든 그릇도 부정할 것이다. 또 누구든지 들에서 칼에 죽임당한 자나 시체나 사람의 뼈나 무덤을 만졌으면 7일 동안 부정할 것이다. 그 부정한 자를 위하여 죄를 깨끗케 하려고 불사른 재를 취하여 흐르는 물과 함께 그릇에 담고 정한 자가 우슬초를 취하여 그 물을 찍어서 장막과 그 모든 기구와 거기 있는 사람들에게 뿌리고 또 뼈나 죽임을 당한 자나 시체나 무덤을 만진 자에게 뿌리되 그 정한 자가 제3일과 제7일에 그 부정한 자에게 뿌려서 제7일에 그를 정결케 할 것이며, [부정 제거의 물을 뿌린](21절) 그는 자기 옷을 빨고 물로 몸을 씻어야 하였다. 그는 저녁이 되어야 깨끗할 것이다.

[20-22절] 사람이 부정하고도 스스로 정결케 아니하면 여호와의 성소를 더럽힘이니 그러므로 총회 중에서 끊쳐질 것이니라. 그는 . . . .

하나님께서는, 13절에서와 같이, 또 말씀하신다. “사람이 부정하고도 자신을 정결케 아니하면 여호와의 성소를 더럽힘이니 그러므로 총회 중에서 끊어질 것이니라. 그는 정결케 하는 물로 뿌림을 받지 않았은즉 부정하니라. 이는 그들의 영영한 율례니라. 정결케 하는 물을 뿌린 자는 그 옷을 빨 것이며 정결케 하는 물을 만지는 자도 저녁까지 부정할 것이며 부정한 자가 만진 것은 무엇이든지 부정할 것이며 그것을 만지는 자도 저녁까지 부정하리라.” 부정한 자에게 부정 제거의 물을 뿌린 자도 그 물을 만졌으므로 부정케 되어 그 옷을 빨아야 하였고 저녁까지 부정하였다.

본장의 교훈은 분명하다. 첫째로, 부정(不淨)과 불결은 제거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죄는 씻음받아야 한다. 본장은 부정 제거의 물을 위한 규례이다. 이 법은 부정과 불결은 반드시 제거되어야 함을 증거한다. 사람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문제는 죄 문제이다. 죄의 결과가 죽음이며 불행이다. 천국과 세상의 근본적인 차이는 천국에는 죄가 없다는 데 있다. 천국에는 죄가 없기 때문에 죽음도 없고 병과 슬픔과 고통도 없다. 죄는 가장 무서운 질병과 같다. 그것은 방치하면 사람을 불행에 떨어뜨린다. 그러므로 죄와 불결은 반드시 씻음을 받아야 한다.

둘째로, 본장은 부정을 제거하는 길은 예수 그리스도의 피밖에 없음을 보인다. 부정 제거의 물을 만들기 위해 흠 없는 암송아지를 제물로 삼아 그것을 진 밖에서 죽이고 불살라 재를 만들었다. 그 재를 탄 물이 부정 제거의 물이다. 그 물을 뿌리는 것은 부정 제거를 상징하며 그것은 참으로 중요하였다. 죄씻음은 성경의 근본 진리이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죄씻음받음을 상징하였다.

요한복음 13장에 보면, 예수께서 마지막 유월절 식사 자리에서 제자들의 발을 씻기신 사건이 나온다. 예수께서는 저녁 잡수시던 자리에서 일어나 겉옷을 벗고 수건을 허리에 두르시고 대야에 물을 담아 제자들의 발을 씻기셨다. 베드로의 발을 씻기실 차례가 되었을 때 베드로는 “내 발을 절대로 씻기지 못하시리이다”라고 말했다. 그때 주께서는 그에게 “내가 너를 씻기지 아니하면 네가 나와 상관이 없느니라”고 말씀하셨다. 베드로가 “주여, 내 발뿐 아니라 손과 머리도 씻겨주옵소서”라고 말하자, 그는 “이미 목욕한 자는 발밖에 씻을 필요가 없느니라”고 말씀하셨다. 이 사건에서 주께서는 죄씻음과 그 중요성에 대해 말씀하셨다. 요한일서 1:7은 우리가 빛 가운데 행하면 “그 아들 예수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라고 말했다. 우리의 죄를 씻는 길은 하나님의 아들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피밖에 없다.

셋째로, 부정을 제거함이 없이는 아무도 하나님의 백성의 회에 들 수 없다는 것이다. 본문에 반복된 말씀은, 사람이 부정하고도 자신을 정결케 하지 않으면 여호와의 성소를 더럽히는 것이므로 이스라엘 총회에서 끊어질 것이라는 것이다(13, 20절). 부정을 제거하지 않은 자, 곧 죄씻음을 받지 못한 자는 참된 교회 안에 들어올 수 없고 천국에도 들어갈 수 없다. 여러분은 죄씻음을 받고 천국 백성이 되었는가?

 

 

20장: 모세의 실수

[1절] 정월에 이스라엘 자손 곧 온 회중이 신 광야에 이르러서 . . . .

정월에 이스라엘 자손 곧 온 회중이 신 광야에 이르러서 백성이 가데스에 거하였으며 미리암이 거기서 죽으므로 거기 장사하였다. 민수기 33장에 기록된 출애굽 후의 노정을 보면, 이 때는 애굽에서 나온 지 제40년 정월이었다. 본장 22절 이하에 기록된 아론이 죽은 것은 민수기 33:38에 의하면 애굽에서 나온 지 제40년 5월 1일의 일이었다. 이스라엘 백성은 가데스 바네아에서 열 정탐꾼의 불신앙적 보고를 따르려 했기 때문에 40년간 광야에서 방황하는 징벌을 받았다(민 14:33). 신명기 2:1은, “우리가 회정하여[돌이켜] 여호와께서 내게 명하신 대로 홍해 길로 광야에 들어가서 여러 날 동안 세일산을 두루 행하였다”고 증거했고, 또 신명기 2:14는, “가데스 바네아에서 떠나 세렛 시내를 건너기까지 38년 동안이라. 이 때에는 그 시대의 모든 군인들이 여호와께서 그들에게 맹세하신 대로 진 중에서 다 멸절되었더라”고 하였다. 그러면, 모세는 민수기에서 출애굽 후 제1, 2년의 사건들(민 1:1; 9:1; 10:11)과 제40년의 사건을 기록한 것이며 그 사이의 38년간의 일은 생략하였다.

38년 동안 광야를 방황하던 이스라엘 백성은 38년 전 가나안 땅에 정탐꾼을 보냈던 신 광야의 가데스 즉 가데스 바네아로 올라와 거하였다. 그때 미리암이 거기서 죽었다. 미리암은 이스라엘의 지도자 모세의 누나이었다. 애굽 왕 바로의 이스라엘 민족 탄압 정책 때문에 아기 모세가 갈대상자에 실려 나일강에 버려졌을 때 누나 미리암이 그 상자를 발견한 바로의 공주에게 유모를 소개해주겠다고 제안했던 것을 보면(출 2:7), 그의 나이는 모세보다 열 살은 많았을 것이라고 생각된다. 또 미리암은 선지자이었다(출 15:20). 이스라엘 백성에게 선지자이며 여성 지도자이었던 미리암이 죽은 것이다.

[2-13절] 회중이 물이 없으므로 모여서 모세와 아론을 공박하니라. 백성이 모세와 다투어 말하여 가로되 우리 형제들이 여호와 앞에서 . . . .

바로 그 즈음에 회중이 물이 없으므로 모여서 모세와 아론을 공박[대항]하였다. 백성들은 모세와 다투어 말하였다. “우리 형제들이 여호와 앞에서 죽을 때에 우리도 죽었더면 좋을 뻔하였도다. 너희가 어찌하여 여호와의 총회를 이 광야로 인도하여 올려서 우리와 우리 짐승으로 다 여기서 죽게 하느냐? 너희가 어찌하여 우리를 애굽에서 나오게 하여 이 악한 곳으로 인도하였느냐? 이 곳에는 파종할 곳이 없고 무화과도 없고 포도도 없고 석류도 없고 마실 물도 없도다.” 이스라엘 백성은 애굽에서 나온 후 거의 40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하나님을 믿지 않고 불평 원망하며 대항하였다.

모세와 아론은 총회 앞을 떠나 회막 문에 이르러 엎드렸다. 그들은 어려운 일이 있을 때마다 하나님 앞에 엎드려 기도하였다. 그때 여호와의 영광이 그들에게 나타나며 여호와께서는 모세에게 말씀하셨다. “지팡이를 가지고 네 형 아론과 함께 회중을 모으고 너희는 그들 앞에서 반석에게 명하여 물을 내라 하라. 네가 그 반석으로 물을 내게 하여 회중과 그들의 짐승에게 마시울지니라.” 모세의 지팡이는 그가 처음 하나님께로부터 소명을 받았을 때 “너는 이 지팡이를 손에 잡고 이것으로 이적을 행할지니라”는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받았던 능력의 지팡이이었다(출 4:17).

모세는 하나님의 명령대로 여호와 앞에서 그 지팡이를 취했다. 모세와 아론은 이스라엘 총회를 그 반석 앞에 모으고 모세가 그들에게 “패역한 너희여, 들으라. 우리가 너희를 위하여 이 반석에서 물을 내랴” 하고 말하며 그 손을 들어 그 지팡이로 반석을 두 번 쳤다. 그러자 물이 많이 솟아 나오므로 회중과 그들의 짐승이 마시는 놀라운 기적이 일어났다.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을 믿지 않았고 하나님과 모세를 향해 불평하고 원망하며 대항하였지만, 하나님께서는 그의 긍휼과 능력으로 그 백성에게 마실 물을 공급해주셨던 것이다.

그러나 그는 모세와 아론에게는, “너희가 나를 믿지 아니하고 이스라엘 자손 앞에서 나의 거룩함을 나타내지 아니한 고로 너희는 이 총회를 내가 그들에게 준 땅으로 인도하여 들이지 못하리라”고 말씀하셨다. 모세는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기는 하였으나 온전히 하지 못했다. 하나님께서는 그 반석에게 명하여 물을 내라 하라고 명령하셨으나,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 앞에서 혈기를 부렸고 그 반석에게 명령하는 대신 그 반석을 두 번이나 쳤던 것이다. 하나님의 명령을 거역했던 바로 그 일 때문에, 그는 그 백성을 가나안 땅으로 인도하지 못하고 그 광야에서 죽어야 하였다.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와 다투었으므로 이 물을 므리바 물이라고 불렀다. 여호와께서는 이렇게 그들 중에서 자신의 거룩함을 나타내셨다.

[14-21절] 모세가 가데스에서 에돔 왕에게 사자를 보내며 이르되 당신의 형제 이스라엘의 말에 우리의 당한 모든 고난을 당신도 . . . .

모세는 가데스에서 에돔 왕에게 사자를 보내며 말하기를, “당신의 형제 이스라엘의 말에 우리의 당한 모든 고난을 당신도 아시거니와 우리 열조가 애굽으로 내려갔으므로 우리가 애굽에 오래 거하였더니 애굽인이 우리 열조와 우리를 학대하였으므로 우리가 여호와께 부르짖었더니 우리 소리를 들으시고 천사를 보내사 우리를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셨나이다. 이제 우리가 당신의 변방 모퉁이 한 성읍 가데스에 있사오니 청컨대 우리로 당신의 땅을 통과하게 하소서. 우리가 밭으로나 포도원으로나 통과하지 아니하고 우물물도 공히 마시지 아니하고 우리가 왕의 대로로만 통과하고 당신의 지경에서 나가기까지 좌편으로나 우편으로나 치우치지 아니하리이다 한다 하라”고 하였다. 가데스는 에돔의 변방이었고, 그 당시 간선도로이었던 ‘왕의 대로’는 에돔과 모압을 관통하는 큰 도로이었다.

그러나 에돔 왕은, “너는 우리 가운데로 통과하지 못하리라. 내가 나가서 칼로 너를 맞을까 염려하라”고 대답하였다. 이스라엘 자손이 “우리가 대로로 통과하겠고 우리나 우리 짐승이 당신의 물을 마시면 그 값을 줄 것이라. 우리가 도보로 통과할 뿐인즉 아무 일도 없으리이다”라고 하였으나, 에돔 왕은 “너는 지나가지 못하리라”고 말하며 많은 백성을 거느리고 나와서 강한 손으로 막았다. 이와 같이 그가 이스라엘이 그의 경내로 통과함을 용납지 아니하므로 이스라엘이 그들에게서 돌이켰다. 에돔은 이스라엘의 열두 지파의 조상인 야곱의 쌍둥이 형의 자손들이었으며 이스라엘과 가까운 친척인데 광야에서 힘든 길을 가고 있던 이스라엘을 이렇게 박대하였던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거역하는 이스라엘에게 평안을 주지 않으셨다.

[22-29절] 이스라엘 자손 곧 온 회중이 가데스에서 진행하여 호르산에 이르렀더니 여호와께서 에돔 땅 변경 호르산에서 모세와 아론에게 . . . .

이스라엘 자손 곧 온 회중이 가데스에서 진행하여 호르산에 이르렀다. 여호와께서는 에돔 땅 변경 호르산에서 모세와 아론에게 말씀하셨다. “아론은 그 열조에게로 돌아가고 내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준 땅에는 들어가지 못하리니 이는 너희가 므리바 물에서 내 말을 거역한 연고니라. 너는 아론과 그 아들 엘르아살을 데리고 호르산에 올라 아론의 옷을 벗겨 그 아들 엘르아살에게 입히라. 아론은 거기서 죽어 그 열조에게로 돌아가리라.” 죽은 자의 영혼은 집합 장소가 있다. 그래서 성경은 죽음을 “그 열조에게로 돌아간다”고 표현한다.

모세는 여호와의 명을 좇아 그들과 함께 회중 앞에서 호르산에 올랐다. 그는 아론의 옷을 벗겨 그 아들 엘르아살에게 입혔고 아론은 그 산꼭대기에서 죽었다. 모세와 엘르아살이 산에서 내려왔으며, 온 회중 곧 이스라엘 온 족속은 아론의 죽은 것을 보고 위하여 30일을 애곡하였다. 민수기 33:38-39는, 이스라엘 자손이 애굽 땅에서 나온 지 40년 5월 1일에 제사장 아론이 여호와의 명으로 호르산에 올라가 거기서 죽었다고 기록하였다.

본장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본장은 인간의 죄악됨을 증거한다. 이스라엘 백성은 어려운 문제가 있을 때마다 하나님을 믿지 않고 불평하고 원망하였다. 인간은 심히 믿음이 없고 죄악된 존재이다. 그러나 우리는 범사에 하나님을 인정하고 믿고 감사하며 살아야 한다.

둘째로, 본장은 하나님의 긍휼하심과 공급하심을 증거한다. 하나님께서 믿음 없는 그 백성에게 반석에서 물이 솟아나는 기적을 주셨다. 지하수가 터져 약 2백만명의 회중과 가축들이 마실 만한 물이 반석에서 솟아난 놀라운 기적이었다. 고린도전서 10:4는 이 사건이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한 것이라고 말한다. 정신적으로 갈하여 죽게 된 인류를 위해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를 보내주셨다. 예수께서는 “내가 주는 물을 먹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나의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고 말씀하셨고(요 4:14) 또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리라”고 하셨다(요 7:37-38).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대속으로 말미암은 죄사함과 의롭다 하심, 그리고 성령께서 믿는 자 속에 들어오시는 것을 말한다. 하나님께서는 오늘날도 사람이 믿음이 없고 죄가 많지만, 그를 긍휼히 여기시고 주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죄를 씻어주시고 정신적 갈증을 해소시켜 주신다. 인생의 마음의 참된 안정과 평안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다.

셋째로, 본장은 지도자 모세의 실수를 통해 교훈을 준다. 하나님께서는 지도자에게 온유와 순종의 덕을 요구하신다. 모세는 끝까지 온유함을 가지고 하나님의 명하신 바를 행해야 했다. 디모데후서 2:24-25는, “마땅히 주의 종은 다투지 아니하고 모든 사람을 대하여 온유하며 가르치기를 잘하며 참으며 거역하는 자를 온유함으로 징계하라”고 말한다. 오늘날 교회의 직분자들도 온유함과 순종을 간직해야 한다.

 

 

21장: 불뱀 사건

1-3절, 아랏 왕과 가나안 성읍들을 멸함

[1-3절] 남방에 거하는 가나안 사람 곧 아랏의 왕이 . . . .

남방[유다 땅의 남방, ‘네게브’라고 부르는 땅]에 거하는 가나안 사람 곧 아랏의 왕이 이스라엘이 아다림 길로 온다 함을 듣고 이스라엘을 쳐서 그 중 몇 사람을 사로잡았다. 이스라엘이 여호와께 서원하여 말했다. “주께서 만일 이 백성을 내 손에 붙이시면 내가 그들의 성읍을 다 멸하리이다.” 여호와께서는 이스라엘의 소리를 들으시고 그들의 손에 가나안 사람들을 붙이셨고 그들은 그들과 그 성읍을 다 멸하였다. 그러므로 그 곳 이름을 호르마(코르마 ‘멸망’)라고 불렀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의 기도를 응답하셨고 그의 주권적 역사로 그들로 가나안 정복의 시작을 경험하게 하셨다.

4-9절, 불뱀 사건

[4-9절] 백성이 호르산에서 진행하여 홍해 길로 좇아 에돔 . . . .

이스라엘 백성이 호르산에서 진행하여 홍해 길로 좇아 에돔 땅을 둘러 행하려 하였다가 길로 인하여 백성의 마음이 상하였다. 그때에 백성이 하나님과 모세를 향하여 원망하며 말하였다. “어찌하여 우리를 애굽에서 인도하여 올려서 이 광야에서 죽게 하는고. 이 곳에는 식물도 없고 물도 없도다. 우리 마음이 이 박한(켈로켈)[초라한, 시원치 않은] 식물[음식]을 싫어하노라.”

40년의 세월이 지났고 수많은 징벌을 체험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여전히 변한 것이 없었다. 그들은 하나님의 주신 음식을 멸시하였다. 그것은 하나님을 무시하고 멸시한 행위이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에게 가장 존중히 여김을 받으셔야 할 분이 아니신가? 그들의 불평과 원망은, 인간이 심히 부패되었고 그 속에서는 선한 것이 나올 수 없고 구원이 하나님의 은혜로만 가능함을 잘 보인다.

여호와께서는 불뱀들, 곧 무서운 독사들을 백성 중에 보내어 백성들을 물게 하시므로 이스라엘 백성 중에 죽은 자가 많았다. 그들은 회개하며 모세에게 와서 말하였다. “우리가 여호와와 당신을 향하여 원망하므로 범죄하였사오니 여호와께 기도하여 이 뱀들을 우리에게서 떠나게 하소서.” 모세가 그들의 요청대로 그들을 위해 기도하자, 여호와께서는 그에게 응답하셨다. “불뱀을 만들어 장대 위에 달아라. 물린 자마다 그것을 보면 살리라.” 모세는 놋뱀을 만들어 장대 위에 달았고, 뱀에게 물린 자마다 놋뱀을 쳐다보면 살았다.

요한복음 3:14-15에 보면, 예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같이 인자(人子)도 들려야 하리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그는 옛날 모세가 놋뱀을 장대에 매단 것을 자신의 십자가 형틀에 비교하셨다. 죄의 값은 죽음이지만(롬 6:23),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달려 대속 제물이 되심으로 영원히 죽을 죄인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고 믿음으로 죄사함과 영생을 얻게 하는 것이 하나님의 구원 방법이다. 그것은 하나님의 전적인 긍휼과 사랑과 은혜로 된 것이다. 성경은,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구속(救贖)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고 말한다(롬 3:23-24).

 

10-20절, 아르논 강 앞에 도달함

[10-20절] 이스라엘 자손이 진행하여 오봇에 진 쳤고 오봇에서 . . . .

이스라엘 자손이 진행하여 오봇에 진 쳤고 오봇에서 진행하여 모압 앞 해 돋는 편 광야 이예아바림에 진쳤고 거기서 진행하여 세렛 골짜기에 진쳤고 거기서 진행하여 아모리인의 지경에서 흘러 나와서 광야에 이른 아르논 건너편에 진쳤는데 아르논은 모압과 아모리 사이에서 모압의 경계가 된 곳이다. 세렛 골짜기는 평소에는 골짜기이지만, 비가 오면 강이 되는 ‘와디’(wadi)라는 골짜기이다. 아르논은 동쪽에서 서쪽으로 흘러 사해 중부로 들어가는 강으로 모압 북쪽 경계를 이루었다. 이스라엘 백성은 모압 남쪽에서부터 모압을 동쪽으로 돌아서 모압의 북쪽 경계에 도달한 것이라고 본다.

본문은, 이러므로 여호와의 전쟁기에, “수바의 와헙과 아르논 골짜기와 모든 골짜기의 비탈은 아르 고을을 향하여 기울어지고 모압의 경계에 닿았도다”라고 기록했다고 말한다. 거기서 브엘에 이르렀는데 브엘은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하시기를 “백성을 모으라. 내가 그들에게 물을 주리라” 하시던 우물이다. 그때에 이스라엘이 노래하되 “우물물아, 솟아나라. 너희는 그것을 노래하라. 이 우물은 족장들이 팠고 백성의 귀인들이 홀과 지팡이로 판 것이로다”라고 하였다. 광야에서 맛다나에 이르렀고 맛다나에서 나할리엘에 이르렀고 나할리엘에서 바못에 이르렀고 바못에서 모압 들에 있는 골짜기에 이르러 광야가 내려다보이는 비스가 산의 꼭대기에 이르렀다.

모세는 여호와의 전쟁기라는 책을 인용하고 또 이스라엘 백성의 노래도 인용하였다. 본문은 모세 시대에도 책이 있었다는 것을 증거한다. 또 하나님께서 성경책을 기록하게 하실 때 인간 저자를 기계처럼 사용하신 것이 아니고 인격체로 사용하셔서 필요한 자료들을 인용하게 하셨음을 보인다. 성경은 많은 역사적 내용을 담고 있다. 하나님께서는 역사 속에서 섭리하셨다. 성경의 많은 인명, 지명, 또 자료들의 인용 등은 성경책의 역사적 성격을 잘 나타낸다. 역사적 사건들은 불변적이다. 하나님의 진리들은 그 불변적 사건들을 통해 계시되었고 증거되었다. 그러므로 그 내용들은 분명하고 확실하다.

 

21-32절, 아모리 왕 시혼의 땅을 취함

[21-32절] 이스라엘이 아모리 왕 시혼에게 사자를 보내어 . . . .

아르논 강 건너편 북쪽은 아모리 왕 시혼의 땅이었다. 이스라엘은 아모리 왕 시혼에게 사자를 보내어 말하였다. “우리로 당신의 땅을 통과하게 하소서. 우리가 밭에든지 포도원에든지 들어가지 아니하며 우물물도 공히[공짜로] 마시지 아니하고 우리가 당신의 지경에서 다 나가기까지 왕의 대로(大路)로만 통행하리이다.” ‘왕의 대로’는 당시에 그 지역의 대표적인 두 개의 대로 중 하나이었다. 그 두 개의 대로는 하나는 해변길(Via Maris)이라는 길로서 애굽에서부터 블레셋의 가사와 므깃도를 거쳐 다메섹으로 이어지는 대로이었고, 다른 하나는 왕의 대로라는 길로서 홍해의 엘랏(에시온게벨)에서 에돔과 모압과 암몬을 통과하여 다메섹으로 이어지는 대로이었다.

시혼은 자기 지경으로 이스라엘의 통과함을 용납하지 아니하고 그 백성을 다 모아 이스라엘을 치러 광야로 나와서 야하스에 이르러 이스라엘을 쳤다. 그러므로 이스라엘은 칼날로 그들을 쳐서 파하고 그 땅을 아르논[아르논 강]부터 얍복[얍복 강]까지 점령하였고 암몬 자손의 경계에까지 미쳤다. 암몬 자손의 경계는 견고했다. 이스라엘이 이같이 그 모든 성읍을 취하고 아모리인의 모든 성읍 헤스본과 그 모든 촌락에 거하였다. 헤스본은 아모리인의 왕 시혼의 도성이었다. 시혼이 모압 전왕(前王)을 치고 그 모든 땅을 아르논까지 그 손에서 탈취하였었다. 이제 그 성은 이스라엘 소유의 성이 되었다.

본문은, 그러므로 어떤 시인이 다음과 같이 읊었다고 기록하였다. “너희는 헤스본으로 올지어다. 시혼의 성을 세워 견고히 할지어다. 헤스본에서 불이 나오며 시혼의 성에서 화염이 나와서 모압의 아르를 삼키며 아르논 높은 곳의 주인을 멸하였도다. 모압아, 네가 화를 당하였도다. 그모스의 백성아, 네가 멸망하였도다. 그가 그 아들들로 도망케 하였고 그 딸들로 아모리인의 왕 시혼의 포로가 되게 하였도다. 우리가 그들을 쏘아서 헤스본을 디본까지 멸하였고 메드바에 가까운 노바까지 황폐케 하였도다.” 다시 한번 더, 우리는 하나님께서 성경 저자 모세를 인격적으로 사용하셔서 어떤 시인의 글까지 인용함으로 역사적 사실들을 확증하게 하셨음을 알게 된다. 이스라엘이 아모리인의 땅에 거하였을 때, 모세는 또 보내어 야셀을 정탐케 하고 그 촌락들을 취하고 그 곳에 있던 아모리인을 몰아내었다. 야셀은 시혼의 땅 중부의 동쪽 경계 부근의 성으로 암몬 국경에 가까웠다.

 

33-35절, 바산 왕 옥의 땅을 취함

[33-35절] 돌이켜 바산 길로 올라가매 바산 왕 옥이 . . . .

이스라엘은 다시 돌이켜 북쪽 얍복 강을 넘어 바산 길로 올라갔다. 바산 왕 옥이 그 백성을 다 거느리고 나와서 그들을 맞아 에드레이에서 싸우려 하였다. 여호와께서는 모세에게 말씀하셨다. “그를 두려워 말라. 내가 그와 그 백성과 그 땅을 네 손에 붙였나니 너는 헤스본에 거하던 아모리인의 왕 시혼에게 행한 것같이 그에게도 행할지니라.” 그래서 그들은 그와 그 아들들과 그 백성을 다 쳐서 한 사람도 남기지 아니하고 그 땅을 점령하였다. 이것은 다 하나님께서 뜻하신 바이었고 명하신 일이었다. 하나님께서 아모리 왕 시혼도, 바산 왕 옥도 이스라엘 백성의 손에 붙여주셨고 점령케 하셨다.

본장의 교훈은 무엇인가? 우리는 특히 불뱀 사건을 통하여 교훈을 얻는다. 첫째로, 우리는 어려운 일을 당할 때 하나님과 사람을 원망하지 말자. 하나님을 원망하는 것은 그의 주권적 섭리를 믿지 않는 것, 곧 그를 믿지 않는 것이며, 사람을 원망하는 것은 형제 사랑에 배치된다. 우리는 형제에 대해 말로라도 악을 행해서는 안 된다. 주께서는 “형제에게 노하는 자마다 심판을 받게 되고 형제를 대하여 라가라 하는 자는 공회에 잡히게 되고 미련한 놈이라 하는 자는 지옥 불에 들어가게 되리라”고 말씀하셨다(마 5:22). 사도 바울은 형제에게 욕하는 자는 천국에 들어갈 수 없다고 말했고(고전 6:9-10), 사도 요한은 형제를 미워하는 것은 살인하는 것이요(요일 3:15) 살인자는 지옥불에 들어갈 것이라고 말했다(계 21:8). 우리는 하나님과 사람을 원망하지 말자.

둘째로, 우리는 죄에 대한 하나님의 징벌을 두려워하자. 이스라엘의 원망과 불평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불뱀에 물려 죽었다. 죄의 보응은 죽음이다(롬 6:23). 그 죽음은 단지 육신의 죽음을 의미할 뿐 아니라, 영원한 지옥 형벌을 포함한다. 주께서는 만일 우리의 손이나 발이나 눈이 우리로 범죄케 한다면 찍어버리고 빼어버리라, 불구자로 영생에 들어가는 것이 온전한 몸을 가지고 지옥 꺼지지 않는 불에 들어가는 것보다 낫다고 말씀하셨다(막 9:43-48). 요한계시록 21:8은 장차 악인들이 지옥 불못에 던지울 것이라고 경고하였다. 그러므로 우리는 죄에 대한 하나님의 징벌을 두려워하고 죄를 짓지 말자.

셋째로, 우리는 하나님의 긍휼의 구원을 감사하자. 이스라엘 백성이  죄를 회개할 때 하나님께서는 놋뱀을 장대에 달게 하셔서 그것을 쳐다보는 자마다 죽지 않고 살게 하셨다. 그것은 주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 사역을 상징하였다. 주께서는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같이 인자도 들려야 하리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고 말씀하셨다(요 3:14-15).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죄를 알지도 못하신 자이지만 우리를 대신하여 정죄되셨고(고후 5:21), 우리를 위해 저주를 받은 바 되셔서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다고 말한다(갈 3:13). 죄인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때 죄사함과 영생을 얻는다. 이것은 하나님의 긍휼이다. 아직도 구원받지 못한 자가 있다면 예수님을 믿고 구원을 받으라. 또 우리 모두는 하나님의 구원을 감사하자.

 

 

22장: 모압 왕이 발람을 청함

[1절] 이스라엘 자손이 또 진행하여 모압 평지에 진 쳤으니 . . . .

이스라엘 자손은 또 진행하여 모압 평지에 진쳤는데, 요단 건너편 곧 여리고 맞은편이었다. ‘요단 건너편’이라는 말은 ‘요단 이편’이라고 번역하는 것이 좋다. ‘요단 건너편’이라는 원어(메에베르 레야르덴)는 ‘요단 이편’ 혹은 ‘요단 저편’이라고 번역될 수 있는 말이다. 민수기 32:19, “우리는 요단 이편 곧 동편에서 산업을 얻었사오니 그들과 함께 요단 저편에서는 기업을 얻지 아니하겠나이다.” 구약성경의 처음 다섯 권은 모세가 쓴 책이며 민수기는 그가 요단 동편 모압 광야에 있었을 때 기록한 책이다.

[2-6절] 십볼의 아들 발락이 이스라엘이 아모리인에게 행한 . . . .

십볼의 아들 모압의 왕 발락이 이스라엘이 아모리인들에게 행한 모든 일을 보았으므로 모압이 심히 두려워하였다. 그것은 이스라엘 백성의 많음을 인함이었다. 모압이 이스라엘 자손 때문에 번민하여 미디안 장로들에게 말하였다. “이제 이 무리가 소가 밭의 풀을 뜯어먹음같이 우리 사면에 있는 것을 다 뜯어먹으리로다.”

발락은 사자를 브올의 아들 발람의 본향 강변 브돌에 보내어 발람을 부르게 하였다. 본문은 발람이 고향 강변 브돌에 살고 있었다고 말한다. 민수기 23:7에 보면, 발람은 발락이 자신을 아람에서, 동편 산에서 데려왔다고 말한다. 신명기 23:4는 발람을 ‘메소보다미아의 브돌 사람’이라고 말한다. 그러면 발람은 먼 북동쪽의 유브라데 강 상류의 한 강변에 살고 있었다. 학자들은 발람의 고향인 브돌을 유브라데 강 상류인 하란 혹은 그 부근이라고 본다.

발락은 사자를 통하여 발람에게 말하였다. “보라 한 민족이 애굽에서 나왔는데 그들이 지면에 덮여서 우리 맞은편에 거하였고 우리보다 강하니 청컨대 와서 나를 위하여 이 백성을 저주하라. 내가 혹 쳐서 이기어 이 땅에서 몰아내리라. 그대가 복을 비는 자는 복을 받고 저주하는 자는 저주를 받을 줄을 내가 앎이니라.”

모압은 아브라함의 조카 롯의 자손들로서 이스라엘과는 친척관계가 되었다. 물론, 인류는 다 한 부모의 자손들이지만. 그러나 모압 왕 발락은 이스라엘을 두려워하여 발람을 청해 이스라엘을 저주하게 하려 하였다. 이웃을 저주하는 것은 큰 죄악이다. 우리의 이웃을 우리의 몸과 같이 사랑하는 것은 창조주 하나님의 율법의 기본 정신이다. 그러나 모압 왕 발락은 먼 북동쪽의 한 지방에서 선지자 발람을 특별히 초청해 와서 이스라엘을 저주하려 하였던 것이다.

[7-14절] 모압 장로들과 미디안 장로들이 손에 복술의 예물을 가지고 떠나 발람에게 이르러 발락의 말로 그에게 고하매 발람이 . . . .

모압 장로들과 미디안 장로들은 손에 복술(卜術)의 예물을 가지고 떠나 발람에게 이르러 발락의 말로 그에게 고했다. 발람은 그들에게 말했다. “이 밤에 여기서 유숙하라.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는 대로 너희에게 대답하리라.” 모압 귀족들은 발람에게서 유하였다.

하나님께서 발람에게 임하여 말씀하셨다. “너와 함께한 이 사람들이 누구냐?” 발람이 하나님께 고하였다. “모압 왕 십볼의 아들 발락이 내게 보낸 자라. 이르기를 보라 애굽에서 나온 민족이 있어 지면에 덮였으니 이제 와서 나를 위하여 그들을 저주하라. 내가 혹 그들을 쳐서 몰아 낼 수 있으리라 하나이다.” 하나님께서 발람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그들과 함께 가지도 말고 그 백성을 저주하지도 말라. 그들은 복을 받은 자니라.” 발람은 아침에 일어나 발락의 귀족들에게 말했다. “너희는 너희의 땅으로 돌아가라. 내가 너희와 함께 가기를 여호와께서 허락지 아니하시느니라.” 모압 귀족들은 일어나 발락에게로 가서 고하였다. “발람이 우리와 함께 오기를 거절하더이다.”

성경이 민수기 22장부터 24장까지 석 장에 걸쳐서 발람 선지자의 일을 자세히 기록하는 것은 의미심장하다. 발람은 분명히 하나님의 신실한 선지자는 아니었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의 계시를 어느 정도 받았던 인물이었다. 하나님께서는 옛날에 이방인들 중에서도 약간의 선지 사역을 허락하신 것 같다. 욥이 대표적인 예이며 또 모세의 장인 이드로도 이스라엘의 천부장 제도를 제안하였다(출 18장). 또 심지어 그랄 왕 아비멜렉이나 애굽 왕 바로와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에게도 꿈을 통한 계시를 주셨다(창 20:3; 41:25; 단 2:45).

발람도 하나님의 말씀을 받았다(9, 12, 20, 31, 35절). 그러나 그는 사술(邪術)을 사용하는 법도 알았다(24:1). 발람에게는, 선지자가 은금을 밝혀서는 안 되며 하나님이 주시는 말씀만 전해야 한다는 바른 마음도 있었다(22:18, 38; 24:12-13). 그러나 그에게 욕심도 있었고(22:19) 또 잘못된 조언도 주었다(31:16). 후에 발람이 죽임을 당한 이유는 그가 이스라엘을 저주했기 때문이 아니라 모압 왕에게 이스라엘을 음행의 죄로 유혹하도록 조언하였기 때문이었다(31:16).

[15-20절] 발락이 다시 그들보다 더 높은 귀족들을 더 많이 보내매 그들이 발람에게로 나아가서 그에게 이르되 십볼의 아들 발락의 . . . .

발락은 다시 그들보다 더 높은 귀족들을 더 많이 보내었다. 그들은 발람에게로 나아가서 그에게 말했다. “십볼의 아들 발락의 말씀에 청컨대 아무것에도 거리끼지 말고 내게로 오라. 내가 그대를 높여 크게 존귀케 하고 그대가 내게 말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시행하리니 청컨대 와서 나를 위하여 이 백성을 저주하라 하시더이다.” 세상적 기준에서 보면, 발락의 제안은 발람의 관심을 끌 만하였다.

그러나 발람은 발락의 신하들에게 대답하였다. “발락이 그 집에 은, 금을 가득히 채워서 내게 줄지라도 내가 능히 여호와 내 하나님의 말씀을 어기어 덜하거나 더하지 못하겠노라. 그런즉 이제 너희도 이 밤에 여기서 유하라. 여호와께서 내게 무슨 말씀을 더하실는지 알아보리라.” 발람의 마음에는 바른 생각도 있었으나 물질과 세상 권세에 대한 욕심도 있었던 것 같다. 그는 발락의 제안을 단호히 거절했어야 했다. 그 밤에 하나님께서는 발람에게 또 임하여 말씀하셨다. “그 사람들이 너를 부르러 왔거든 일어나 함께 가라. 그러나 내가 네게 이르는 말만 준행할지니라.” 그것은 하나님의 즐거운 허락이 아니었다. 그것은 “네가 가보려면 가보아라”는 뜻의 허락이었다.

[21-30절] 발람이 아침에 일어나서 자기 나귀에 안장을 지우고 모압 귀족들과 함께 행하니 그가 행함을 인하여 하나님이 진노하심으로 . . . .

발람은 아침에 일어나서 자기 나귀에 안장을 지우고 모압 귀족들과 함께 행하였다. 그가 행함을 인하여 하나님께서 진노하셨고 그래서 여호와의 사자가 그를 막으려고 길에 섰다. 발람은 자기 나귀를 타고 그 두 종은 그와 함께 있었는데, 나귀는 여호와의 사자가 칼을 빼어 손에 들고 길에 선 것을 보고 길에서 떠나 밭으로 들어갔다.

발람은 나귀를 길로 돌이키려고 채찍질하였는데, 여호와의 사자는 포도원 사이 좁은 길에 섰고 좌우에는 담이 있었다. 나귀는 여호와의 사자를 보고 몸을 담에 대고 발람의 발을 그 담에 비비어 상하게 했다. 발람이 다시 채찍질하자 여호와의 사자는 더 나아가 좌우로 피할 데 없는 좁은 곳에 섰다. 나귀가 여호와의 사자를 보고 발람 밑에 엎드리자 발람은 노하여 자기 지팡이로 나귀를 때렸다.

그때 여호와께서는 나귀 입을 여셔서 발람에게 말하게 하셨다. “내가 네게 무엇을 하였기에 나를 이같이 세 번을 때리느뇨?” 발람은 나귀에게 말하였다. “네가 나를 거역하는 연고니 내 손에 칼이 있었더면 곧 너를 죽였으리라.” 나귀가 발람에게 말했다. “나는 네가 오늘까지 네 일생에 타는 나귀가 아니냐? 내가 언제든지 네게 이같이 하는 행습이 있더냐?” 그는 말했다. “없었느니라.” 나귀가 말을 한 것은 이 경우 외에는 역사상 없었던 일이다. 그것은 선지자 발람을 깨우치시는 하나님의 특별한 계시 사건이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하고자 하시면 불가능한 일이 없음을 믿는다.

[31-35절] 때에 여호와께서 발람의 눈을 밝히시매 여호와의 . . . .

그때에 여호와께서 발람의 눈을 밝히셨다. 발람은 여호와의 사자가 손에 칼을 빼어들고 길에 선 것을 보았고, 그러자 머리를 숙이고 엎드렸다. 여호와의 사자는 그에게 말했다. “너는 어찌하여 네 나귀를 이같이 세 번 때렸느냐? 보라 네 길이 내 앞에 패역하므로 내가 너를 막으려고 나왔더니 나귀가 나를 보고 이같이 세 번을 돌이켜 내 앞에서 피하였느니라. 나귀가 만일 돌이켜 나를 피하지 아니하였더면, 내가 벌써 너를 죽이고 나귀는 살렸으리라.”

발람은 회개하며 여호와의 사자에게 말했다. “내가 범죄하였나이다. 당신이 나를 막으려고 길에 서신 줄을 내가 알지 못하였나이다. 당신이 이를 기뻐하지 아니하시면 나는 돌아가겠나이다.” 그러나 여호와의 사자는 발람에게 말했다. “그 사람들과 함께 가라. 내가 네게 이르는 말만 말할지니라.” 발람은 발락의 귀족들과 함께 갔다.

[36-41절] 발락이 발람의 온다 함을 듣고 모압 변경의 끝 . . . .

발락은 발람의 온다 함을 듣고 모압 변경의 끝 아르논 가에 있는 성읍까지 가서 그를 영접하였다. 발락이 발람에게 말하였다. “내가 특별히 보내어 그대를 부르지 아니하였느냐? 그대가 어찌 내게 오지 아니하였느냐? 내가 어찌 그대를 높여 존귀케 하지 못하겠느냐?” 발람은 발락에게 말하였다. “내가 오기는 하였으나 무엇을 임의로 말할 수 있으리이까? 하나님이 내 입에 주시는 말씀 그것을 말할 뿐이니이다.” 발람에게는 분명히 바른 생각도 있었으나, 세상과 타협하는 마음도 있었다고 보인다. 발람은 발락과 동행하여 기럇후솟에 이르렀고 발락은 소와 양을 잡아 발람과 그와 함께한 귀족을 대접하였다. 다음날 아침에 발락은 발람과 함께하고 그를 인도하여 바알의 산당에 올랐다. 발람은 거기서 이스라엘 백성의 진 끝까지 보았다.

본장이 주는 교훈은 두 가지라고 본다. 첫째로, 우리는 모압 왕 발락처럼 이웃을 저주하지 말자. 모압과 이스라엘은 먼 친척관계이었다. 실상 인류는 다 먼 친척들이다. 하나님의 뜻은 이웃을 우리 몸과 같이 사랑하는 것이다. 주께서는 심지어 교훈하시기를, “내가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미워하는 자를 선대하며 너희를 저주하는 자를 위하여 축복하며 너희를 모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고 하셨다(눅 6:27-28). 우리는 이웃을 저주하지 말자.

둘째로, 우리는 발람처럼 세상적 욕심을 품지 말고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자. 하나님께서는 발람에게 그의 뜻을 알려주셨었다. 그는 이스라엘을 저주해서는 안 되며 발락이 보낸 귀족들을 따라 모압으로 가서도 안 되었다. 그러나 발람에게는 세상에 대한 욕심이 있었다고 본다. 그는 두 번째 찾아온 자들에게 “그런즉 이제 너희도 이 밤에 여기서 유하라. 여호와께서 내게 무슨 말씀을 더하실는지 알아보리라”고 말하였다(19절). 그의 머뭇거림은 세상에 대한 그의 욕심을 보인다. 사도 베드로는 “저희[거짓 교사들]가 바른 길을 떠나 미혹하여 브올의 아들 발람의 길을 좇는도다. 그는 불의의 삯을 사랑하다가 자기의 불법을 인하여 책망을 받되 말 못하는 나귀가 사람의 소리로 말하여 이 선지자의 미친 것을 금지하였느니라”고 증거하였다(벧후 2:15-16).

예수께서는 씨 뿌리는 자의 비유에서 가시떨기에 떨어진 씨는 이생의 염려와 재리(財利)와 일락[쾌락]에 기운이 막혀 온전히 결실치 못하는 자를 가리킨다고 설명하셨다(눅 8:14). 사도 바울은 “부하려 하는 자들은 시험과 올무와 여러가지 어리석고 해로운 정욕에 떨어지며,”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되나니 이것을 사모하는 자들이 미혹을 받아 믿음에서 떠나 많은 근심으로써 자기를 찔렀도다”라고 말하고(딤전 6:9-10), 또 “말세에 고통하는 때가 이르리니 사람들은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할” 것이라고 했다. 많은 믿는 자들이 욕심 때문에 실패한다. 우리는 욕심을 버리고 하나님의 뜻에 온전히 순종하자.

 

 

23장: 발람이 이스라엘을 축복함

[1-12절] 발람이 발락에게 이르되 나를 위하여 여기 일곱 단을 쌓고 거기 수송아지 일곱과 숫양 일곱을 준비하소서 하매 발락이 . . . .

선지자 발람이 모압 왕 발락에게 왔다. 발람은 발락에게 말하였다. “나를 위하여 여기 일곱 단을 쌓고 거기 수송아지 일곱과 숫양 일곱을 준비하소서.” 발락이 발람의 말대로 준비한 후에 발락과 발람은 매 단에 수송아지 하나와 숫양 하나를 드렸다. 발람은 발락에게 말했다. “당신의 번제물 곁에 서소서. 나는 저리로 갈지라. 여호와께서 혹시 오셔서 나를 만나시리니 그가 내게 지시하시는 것은 다 당신에게 고하리이다.”

발람이 사태난 산[벌거숭이 산언덕]에 이르니 하나님께서 발람에게 임하셨다. 하나님께서는 이방 선지자 발람에게도 임하셨다. 발람은 아뢰었다. “내가 일곱 단을 베풀고 매 단에 수송아지 하나와 숫양 하나를 드렸나이다.” 여호와께서는 발람의 입에 말씀을 주시기를, “발락에게 돌아가서 이렇게 말할지니라”고 하셨다. 그가 발락에게 돌아가니 발락과 모압 모든 귀족들은 번제물 곁에 함께 서 있었다.

발람은 노래를 지어 말하였다. “발락이 나를 아람에서, 모압 왕이 동편 산에서 데려다가 이르기를 와서 나를 위하여 야곱을 저주하라, 와서 이스라엘을 꾸짖으라 하도다. 하나님이 저주치 않으신 자를 내 어찌 저주하며 여호와께서 꾸짖지 않으신 자를 내 어찌 꾸짖을꼬. 내가 바위 위에서 그들을 보며 작은 산에서 그들을 바라보니 이 백성은 홀로 처할 것이라. 그를 열방 중의 하나로 여기지 않으리로다. 야곱의 티끌을 뉘 능히 계산하며 이스라엘 4분지 1을 뉘 능히 계수할꼬. 나는 의인의 죽음같이 죽기를 원하며 나의 종말이 그와 같기를 바라도다.”

발람은 하나님의 감동 가운데 바른 말을 하였다. 하나님께서 저주하지 않으신 자를 누가 저주할 수 있겠는가. 아무도 저주할 수 없다. 발람은 특히 이스라엘 백성이 온 세상에 홀로 처할 민족이며 그를 세상의 여러 민족들 중의 하나로 여기지 말아야 한다고 증거하였다. 이것은 참으로 놀라운 말이다. 그러나 이것은 사실이다. 하나님께서는 천하 만민 중에서 아브라함을 택하셨고 그 자손 이스라엘 민족을 하나님의 특별한 선민으로 삼으셨던 것이다.

발람은 또 이스라엘 백성이 셀 수 없이 많이 번창할 것을 말하였다. 그는 “야곱의 티끌을 뉘 능히 계산하며 이스라엘 4분지 1을 뉘 능히 계수할꼬”라고 말하였다. 또 그는 “나는 의인의 죽음같이 죽기를 원하며 나의 종말이 그와 같기를 바라도다”라고 말하였다.

모압 왕 발락은 발람에게 말했다. “그대가 어찌 내게 이같이 행하느냐? 나의 원수를 저주하라고 그대를 데려왔거늘 그대가 온전히 축복하였도다.” 발람은 대답하였다. “여호와께서 내 입에 주신 말씀을 내가 어찌 말하지 아니할 수 있으리이까?”

[13-26절] 발락이 가로되 나와 함께 그들을 달리 볼 곳으로 가자. 거기서는 그들을 다 보지 못하고 그 끝만 보리니 거기서 나를 . . . .

발락이 말하였다. “나와 함께 그들을 달리 볼 곳으로 가자. 거기서는 그들을 다 보지 못하고 그 끝만 보리니 거기서 나를 위하여 그들을 저주하라.” 그는 발람을 소빔 들로 인도하여 비스가 꼭대기에 이르러 일곱 단을 쌓고 매 단에 수송아지 하나와 숫양 하나를 드렸다. 발람은 발락에게 말했다. “내가 저기서 여호와를 만날 동안에 여기 당신의 번제물 곁에 서소서.” 여호와께서는 발람에게 또 임하셔서 그의 입에 말씀을 주셨다. “발락에게로 돌아가서 이렇게 말할지니라.” 발람이 와서 보니 발락이 번제물 곁에 서 있었고 모압 귀족들이 함께 있었다. 발락이 발람에게 말했다. “여호와께서 무슨 말씀을 하시더냐?”

발람은 노래를 지어 말했다. “발락이여, 일어나 들을지어다. 십볼의 아들이여, 나를 자세히 들으라. 하나님은 인생이 아니시니 식언(食言)치[거짓말하지] 않으시고 인자(人子)가 아니시니 후회가 없으시도다. 어찌 그 말씀하신 바를 행치 않으시며 하신 말씀을 실행치 않으시랴. 내가 축복의 명을 받았으니 그가 하신 축복을 내가 돌이킬 수 없도다. 여호와는 야곱의 허물을 보지 아니하시며 이스라엘의 패역을 보지 아니하시는도다. 여호와 그의 하나님이 그와 함께 계시니 왕을 부르는 소리가 그 중에 있도다. 하나님이 그들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셨으니 그 힘이 들소와 같도다. 야곱을 해할 사술(邪術)이 없고 이스라엘을 해할 복술(卜術)이 없도다. 이 때에 야곱과 이스라엘에 대하여 논할진대 하나님의 행하신 일이 어찌 그리 크뇨 하리로다. 이 백성이 암사자같이 일어나고 수사자같이 일어나서 움킨 것을 먹으며 죽인 피를 마시기 전에는 눕지 아니하리로다.”

발람은 이 대언(代言)에서 몇 가지를 말하였다. 첫째, 그는 하나님께서 거짓말하지 않으신다고 말한다. 하나님은 진리의 하나님, 진실의 하나님이시며 거짓 증거를 정죄하신다. 거짓은 마귀의 일이다(요 8:44). 둘째, 그는 하나님께서 후회가 없으시다고 말한다. 하나님은 그가 말씀한 바를 행할 능력이 있으시고 그대로 행하시는 주권자이시다. 셋째, 그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의 허물과 패역을 보지 않으신다고 말한다. 본문 21절은 번역상에 두 견해가 있다. 하나는 한글번역의 견해이다(KJV). 다른 하나는 “그는 야곱의 고난을 보지 아니하시며 이스라엘의 불행을 보지 아니하시는도다”라는 번역이다(NASB, NIV, LXX). 어느 쪽을 택해도 뜻은 비슷하다고 본다. 그 뜻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허물을 용서하시고 그들을 그 고난, 그 불행 가운데 버려두지 않으신다는 것이다.

넷째, 발람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과 함께 계신다고 말한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가운데 거하셨다. 그것이 성막과 성전의 의미이었다. 다섯째, 그는 왕을 부르는 소리(혹은 ‘왕의 소리’)가 이스라엘 가운데 있다고 말한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가운데 왕으로 거하심을 뜻한다고 본다. ‘왕의 소리’(테루앗 멜렉)는 왕이 호령하는 소리이든지 아니면 백성이 환호하는 소리일 것이다. 여섯째, 발람은 하나님께서 그들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셨고 그 힘은 들소와 같다고 증거한다. 일곱째, 그는 이스라엘을 해할 사술(邪術)이나 복술(卜術)이 없다고 말한다. 이것들이 이방 선지자 발람의 입을 통해 증거된 하나님과 이스라엘에 대한 놀라운 증언들이다.

발락은 발람에게 말하였다. “그들을 저주하지도 말고 축복하지도 말라.” 발람은 발락에게 대답하였다. “내가 당신에게 고하여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것은 내가 그대로 하지 않을 수 없다고 하지 아니하더이까?” 하나님께서는 이방 선지자 발람을 통해 하나님의 어떠하심과 이스라엘에게 베푸신 은혜에 대해 증거하셨다.

[27-30절] 발락이 발람에게 또 이르되 오라 내가 너를 . . . .

발락은 발람에게 또 말하였다. “오라, 내가 너를 다른 곳으로 인도하리니 네가 거기서 나를 위하여 그들을 저주하기를 하나님이 혹시 기뻐하시리라.” 발락이 발람을 인도하여 광야가 내려다보이는 브올산 꼭대기에 이르렀다. 발람은 발락에게 말했다. “나를 위하여 여기 일곱 단을 쌓고 거기 수송아지 일곱과 숫양 일곱을 준비하소서.” 발락이 발람의 말대로 행하여 매 단에 수송아지 하나와 숫양 하나를 드렸다. 이상의 내용이 본장의 내용이다.

선지자 발람이 하나님의 감동으로 말한 내용 중에 중요한 몇 가지를 묵상해보자. 발람은 이스라엘 백성이 온 세상에 홀로 처할 것이며 그를 열방 중의 하나로 여기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또 그는 여호와께서 야곱의 허물을 보지 아니하시며 이스라엘의 패역을 보지 아니하시며 하나님께서 그들과 함께 계신다고 말했다. 또 그는 이스라엘을 해할 사술이나 복술이 없다고 말했다. 이것은 이방 선지자 발람의 입을 통해 증거된 이스라엘에 대한 놀라운 증언이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온 세계에서 특별히 선택하셨고 사랑하셨고 그들과 함께하셨고 그들의 허물과 죄를 용서하셨고 그들을 복주셨고 그들을 위하셨다. 그들을 해할 아무런 사술이나 복술이 있을 수 없었다.

그러면 오늘날 이러한 하나님의 복을 받은 이스라엘은 누구인가? 육신적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박아 죽였었다.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들과 성도들을 핍박하고 죽였었다. 오늘날 참된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따르는 신약 성도들이다. 그들이 이런 은혜와 복을 얻은 자들이다.

요한복음 1:12,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예수님을 믿는 자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얻었다. 요한복음 3:16,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요한복음 10:28, “내가 저희에게 영생을 주노니 영원히 멸망치 아니할 터이요 또 저희를 내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 예수님을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멸망치 않을 것이며 그들에게서 영생을 빼앗을 자가 아무도 없다. 로마서 8:1, 31, 35,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그런즉 이 일에 대하여 우리가 무슨 말 하리요? 만일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리요?”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핍박이나 기근이나 적신[헐벗음]이나 위험이나 칼이랴?” 아무도, 그 무엇도 우리를 이 은혜에서 끊을 수 없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 중심으로만 살자. 하나님과 예수님만 믿고 그의 계명만 순종하자. 거룩하고 의롭고 선하고 진실하게만 살자.

 

 

24장: 발람이 이스라엘을 세 번째 축복함

[1-9절] 발람이 자기가 이스라엘을 축복하는 것을 여호와께서 . . . .

발람은 자기가 이스라엘을 축복하는 것을 여호와께서 선히 여기심을 보고 전과 같이 사술(邪術)들(네카쉼)을 쓰지 아니하였다. “전과 같이 사술들을 쓰지 아니하였다”는 말은 발람이 전에는 종종 사술들을 사용하였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는 하나님의 신실한 선지자가 아니었다. 발람은 사술들을 쓰지 않고 그의 얼굴을 광야로 향하여 눈을 들어 이스라엘이 그 지파대로 장막에 거하는 것을 보았다. 그때에 하나님의 영이 그 위에 임하셨다. 이것은 하나님의 영이 그에게 세 번째 임하신 것이었다(23:4, 16과 함께).

그는 노래를 지어 말하였다. 선지자 발람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할 때마다 노래를 지어 말하였다(23:7, 18; 24:3). 그는 말하였다. “브올의 아들 발람이 말하며 눈을 감았던(쉐숨 하아인)[눈이 열린](Syr, LXX, KJV, NASB, NIV) 자가 말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자, 전능자의 이상을 보는 자, 엎드려서 눈을 뜬 자가 말하기를, 야곱이여 네 장막이, 이스라엘이여 네 거처가, 어찌 그리 아름다운고. 그 벌어짐이 골짜기 같고 강가의 동산 같으며 여호와의 심으신 침향목[알로에]들 같고 물가의 백향목들 같도다. 그 통에서는 물이 넘치겠고 그 종자는 많은 물가에 있으리로다. 그 왕이 아각보다 높으니 그 나라가 진흥하리로다. 하나님이 그를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셨으니 그 힘이 들소와 같도다. 그 적국을 삼키고 그들의 뼈를 꺾으며 화살로 쏘아 꿰뚫으리로다. 꿇어앉고 누움이 수사자와 같고 암사자와도 같으니 일으킬 자 누구이랴. 너를 축복하는 자마다 복을 받을 것이요 너를 저주하는 자마다 저주를 받을지로다.”

발람은 자신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전능자의 이상(異像)을 본다고 말한다. 성경은 이 사실을 인정하며 기록하였다. 발람은 이방인이었지만, 하나님의 감동을 받고 이상(異像)을 본 선지자이었다.

발람은 이스라엘의 장막과 거처를 아름답다고 표현한다. 하나님의 눈에는 성전과 그의 자녀들의 거처가 아름답게 보인다. 시편 84편 저자는 “만군의 여호와여, 주의 장막이 어찌 그리 사랑스러운지요,” “주의 궁정에서 한 날이 다른 곳에서 천 날보다 나은즉 악인의 장막에 거함보다 내 하나님 문지기로 있는 것이 좋사오니”라고 고백하였다(시 84:1, 10). 시편 122편 저자는 “사람이 내게 말하기를 여호와의 집에 올라가자 할 때에 내가 기뻐하였도다,” “예루살렘을 위하여 평안을 구하라. 예루살렘을 사랑하는 자는 형통하리로다”고 말하였다(시 122:1, 6). 또 시편 133편 저자는 “형제가 연합하여 동거함이 어찌 그리 선하고 아름다운고”라고 말하였다(시 133:1).

또 발람은 이스라엘의 왕이 아각보다 높다고 말한다. 사무엘 선지자의 때에 아말렉 왕 아각은 죽임을 당하였다(삼상 15:33). 발람은 또 이스라엘 나라가 진흥하리라고 말한다. ‘진흥하다’는 원어(웨신낫세)는 ‘높아진다’는 뜻이다(KJV, NASB, NIV).

발람은 또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신 사건을 언급한다. 또 그는 하나님의 힘이 들소와 같고 그 원수들을 삼키고 그들의 뼈를 꺾으셨다고 말한다. 또 그는 그의 앉고 누움이 사자 같다고 말한다.

발람은 특히 “너를 축복하는 자마다 복을 받을 것이요 너를 저주하는 자마다 저주를 받을지로다”라고 말한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전에 아브라함에게 하신 말씀과 같다. 창세기 12:3에 보면,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를 인하여 복을 얻을 것이니라”고 말씀하셨다.

[10-13절] 발락이 발람에게 노하여 손뼉을 치며 발람에게 . . . .

발람의 이런 말을 들은 발락은 발람에게 노하여 손뼉을 치며 말하였다. “내가 그대를 부른 것은 내 원수를 저주하라 함이어늘 그대가 이같이 세 번 그들을 축복하였도다. 그러므로 그대는 이제 그대의 곳으로 달려가라. 내가 그대를 높여 심히 존귀케 하기로 뜻하였더니 여호와가 그대를 막아 그것을 얻지 못하게 하셨도다.” 발락은 확실히 세상의 부귀 영광밖에 모르는 자이었다. 그는 발람이 존귀케 될 수 있는 좋은 기회를 놓쳤다고 생각하였다.

그러나 발람은 발락에게 말하였다. “당신이 내게 보낸 사자들에게 내가 고하여 이르지 아니하였나이까? 가령 발락이 그 집에 은금을 가득히 채워서 내게 줄지라도 나는 여호와의 말씀을 어기고 선악간 임의로 행하지 못하고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대로 말하리라 하지 아니하였나이까?” 발람의 말은 정당하였다. 선지자는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그것을, 오직 그것만을 전하는 자이어야 한다. 선지자 발람 속에는 이만큼은 바른 생각이 있었다.

[14-19절] 이제 나는 내 백성에게로 돌아가거니와 들으소서. . . .

발람은 또 말했다. “이제 나는 내 백성에게로 돌아가거니와 들으소서. 내가 이 백성이 후일에 당신의 백성에게 어떻게 할 것을 당신에게 고하리이다.” 그런 후에 그는 또 노래를 지어 말하였다. “브올의 아들 발람이 말하며 눈을 감았던[눈이 열린] 자가 말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자가 말하며 지극히 높으신 자의 지식을 아는 자, 전능자의 이상을 보는 자, 엎드려서 눈을 뜬 자가 말하기를 내가 그를 보아도 이 때의 일이 아니며 내가 그를 바라보아도 가까운 일이 아니로다. 한 별이 야곱에게서 나오며 한 홀이 이스라엘에게서 일어나서 모압을 이 편에서 저 편까지 쳐서 파하고 또 소동하는 자식들을 다 멸하리로다. 그 원수 에돔은 그들의 산업이 되며 그 원수 세일도 그들의 산업이 되고 그 동시에 이스라엘은 용감히 행동하리로다. 주권자가 야곱에게서 나서 남은 자들을 그 성읍에서 멸절하리로다.”

발람은 놀라운 예언을 한 것이었다. 그것은 이스라엘에게서 한 별, 한 홀이 나타나서 모압의 온 땅을 치며 에돔까지 굴복시킬 것이라는 것이다. ‘소동하는’이라는 원어()는, 영어성경들이 ‘셋’이라는 고유명사로 번역하기도 하였지만(KJV, NASB, NIV), ‘소동하는’이라는 뜻으로 보기도 한다(BDB, 게세니우스). 이 예언은 일차적으로 다윗 왕을 가리켰다고 본다. 사무엘하 8:2, 14는 다윗 왕이 모압과 에돔을 굴복시켰음을 증거한다. 그러나 이 예언은 궁극적으로 메시아와 그의 세계복음화를 가리켰다고 본다. 예수 그리스도는 이스라엘에게서 나오신 한 별, 한 홀, 즉 왕이시며 세상의 구주이시다.

[20-25절] 또 아말렉을 바라보며 노래를 지어 가로되 아말렉은 열국 중 으뜸이나 종말은 멸망에 이르리로다 하고 또 가인 족속을 . . . .

발람은 또 아말렉을 바라보며 노래를 지어 말하기를, “아말렉은 열국 중 으뜸이나 종말은 멸망에 이르리로다”라고 하였고, 또 가인 족속(케니)[겐 족속]을 바라보며 노래를 지어 말하기를, “너의 거처가 견고하니 네 보금자리는 바위에 있도다. 그러나 가인이 쇠미하리니 나중에는 앗수르의 포로가 되리로다”라고 하였다. 또 그는 노래를 지어 말하기를, “슬프다, 하나님이 이 일을 행하시리니 그때에 살 자가 누구이랴. 깃딤 해변에서 배들이 와서 앗수르를 학대하며 에벨을 괴롭게 하리라마는 그도 멸망하리로다”라고 하였다. 깃딤 해변은 지중해 연안의 나라들을 가리키며, 에벨은 히브리인을 가리킬 것이다. 이 말씀은 이스라엘을 핍박하는 세력들이 없지 않을 것이나, 마침내 그들이 다 메시아 앞에 굴복함을 보이는 것 같다.

본장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이스라엘에게서 나오신 한 별은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발람의 예언은 참 놀랍다. 그는 하나님의 감동 가운데 예수 그리스도의 강림을 예언한 것이다. 동방박사들이 하늘의 한 큰 별을 보고 메시아의 탄생을 알았던 것처럼(마 2:1-2), 예수 그리스도는 바로 그 예언된 별이시다. 천사들은 예수께서 탄생하시던 날 밤 들에서 양떼를 지키던 목자들에게 “오늘날 다윗의 동네에 너희를 위하여 구주가 나셨으니 곧 그리스도 주시니라”고 증거했다(눅 2:11). 하나님께서는 자기의 독생자를 인류의 구원을 위해 세상에 보내셨다. 그것은 하나님의 사랑의 증거이었고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시려는 그의 뜻이었다(요 3:16). 그러므로 우리는 심지어 이방 선지자의 입으로 증거된 그 별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자.

둘째로, 우리는 우리가 바로 복된 나라임을 알자. “너를 축복하는 자마다 복을 받을 것이요 너를 저주하는 자마다 저주를 받을지로다”(9절)라는 발람의 말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주신 그 복이다. 신약성경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우리가 하나님의 나라를 이룬다고 증거한다(벧전 2:9; 계 1:6). 발람의 입으로 증거된 이 복은 바로 오늘 우리에게 적용된 복인 것이다. 우리는 우리가 바로 복된 나라임을 감사하자.

셋째로, 우리는 땅의 영광의 헛됨을 알고 하나님과 천국을 보화로 삼자. 발락은 여호와가 발람을 위한 부귀 영광의 기회를 가로막았다고 말했다(11절). 전도서는 세상의 모든 수고가 헛됨을 강조하였다. 땅의 부귀 영화는 영원하지 않다. 우리는 하나님과 영광의 천국을 소망하고 사모해야 한다. 예수께서는 “너희 중에 누구든지 자기의 모든 소유를 버리지 아니하면 내 제자가 될 수 없다”고 말씀하셨다(눅 14:33). 사도 바울은 “우리의 돌아보는 것은 보이는 것이 아니요 보이지 않는 것이니 보이는 것은 잠깐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함이니라”고 증거하였다(고후 4:18). 또 그는 자기에게 유익하던 모든 것을 배설물로 여겼고 예수 그리스도의 지식과 그의 십자가 의만을 가장 귀한 보화로 알았다(빌 3:7-9). 우리도 오직 하나님과 천국만을 보화로 삼고 살자.

 

 

25장: 모압 여자들과 음행함

[1-5절] 이스라엘이 싯딤에 머물러 있더니 그 백성이 모압 . . . .

이스라엘 백성은 애굽에서 나와 광야 40년을 지나고 요단 동쪽에 있는 모압 평지의 싯딤에 머물러 있었을 때 모압 여자들과 음행하기를 시작하였다. 그 여자들이 그들의 신들에게 제사할 때에 백성을 청하자 그들이 먹고 모압 사람들의 신들에게 절했다. 이스라엘 백성이 우상숭배와 음행의 죄를 범한 것이다. 그들은 바알브올에게 부속되었다. ‘부속되었다’는 원어(차마드)는 ‘연합되었다’는 뜻이다.

여호와께서는 이스라엘에게 진노하셔서 모세에게 말씀하셨다. “백성의 두령들[지도자들]을 잡아 태양을 향하여[대낮에] 여호와 앞에 목매어 달라. 그리하면 여호와의 진노가 이스라엘에게서 떠나리라.” 모세는 이스라엘 사사들[재판관들]에게 말하였다. “너희는 각기 관할하는 자 중에 바알브올에게 연합된 사람들을 죽이라.” 백성의 지도자들과 바알브올에게 연합된 자들은 죽임을 당하였을 것이다.

[6-9절]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이 회막 문에서 울 때에 . . . .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은 회막 문에서 울었다. 그때에 이스라엘 자손 한 사람이 모세와 온 회중의 눈 앞에서 미디안의 한 여인을 데리고 그 형제들에게로 왔다. 하나님의 진노와 심판의 말씀과 백성들의 회개의 눈물이 있었던 바로 그때에 그는 부끄러움 없이, 담대하게 악을 행하였다. 그는 현행범이었다. 많은 사람들은 그 악한 일을 보면서도 나서서 막거나 책망하거나 징계를 제안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때에 제사장 아론의 손자 엘르아살의 아들 비느하스는 그 광경을 보고 그의 가슴속에서 끓어오르는 의분을 참을 수가 없었다. 그는 그 악을 가만히 방관하거나 관용하거나 침묵하고 있을 수 없었다. 그는 회중 가운데서 일어나 손에 창을 들고 그 이스라엘 남자를 따라 그의 장막에 들어갔다. 그는 창으로 그 이스라엘 남자와 그 여인의 배를 꿰뚫어서 그 두 사람을 죽였다. 그는 하나님께 대한 헌신과 충성과 열심으로 그 완악한 악인을 즉결처단한 것이었다. 본문 9절은, 이 일이 있자마자 “염병이 이스라엘 자손에게서 그쳤더라”고 증거한다. 또 본문은 “그 염병으로 죽은 자가 2만 4천명이었더라”고 말한다. 신약성경 고린도전서 10:8은 간음하다가 죽은 자들이 2만 3천명이라고 말하는데, 그것은 죽임을 당한 백성의 지도자들과 바알 브올에게 연합된 자들의 수를 뺀 수인 것 같다.

[10-13절]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일러 가라사대 제사장 아론의 . . . .

여호와께서는 모세에게 말씀하셨다. “제사장 아론의 손자 엘르아살의 아들 비느하스가 나의 질투심으로 질투하여 이스라엘 자손 중에서 나의 노를 돌이켜서 나의 질투심으로 그들을 진멸하지 않게 하였도다. 그러므로 말하라. 내가 그에게 나의 평화의 언약을 주리니 그와 그 후손에게 영원한 제사장 직분의 언약이라. 그가 그 하나님을 위하여 질투하여 이스라엘 자손을 속죄하였음이니라.”

하나님께서는 비느하스의 행동을 인정하시고 칭찬하셨다. 그는 만일 비느하스가 나서지 않았다면 그가 직접 그들을 치셨을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또 그는 비느하스와 평화의 언약을 맺으셨고 그와 그의 후손에게 영원한 제사장 직분을 약속하셨다.

[14-15절] 죽임을 당한 이스라엘 남자 곧 미디안 여인과 함께 . . . .

죽임을 당한 이스라엘 남자 곧 미디안 여인과 함께 죽임을 당한 자의 이름은 시므리이었다. 그는 살루의 아들이요 시므온 종족 중 한 족장이었다. 또 죽임을 당한 미디안 여인의 이름은 고스비이었는데, 그 여자는 미디안 백성 한 종족의 우두머리인 수르의 딸이었다.

[16-18절]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일러 가라사대 미디안인들을 . . . .

여호와께서는 모세에게 말씀하셨다. “미디안인들을 박해하며(차로르)[대적하며] 그들을 치라(힉카)[죽이라]. 이는 그들이 궤계로[속임수로] 너희를 박해하되[대적하되] 브올의 일과 미디안 족장의 딸, 곧 브올의 일로 염병이 일어난 날에 죽임을 당한 그들의 자매 고스비의 사건으로 너희를 유혹하였음이니라.”

미디안인들은 아브라함의 후처 그두라의 아들 미디안의 자손들이다(창 25:2, 4). 그들은 이삭을 떠나 동방으로 보내졌었다. 그들은 요단 동쪽 모압, 에돔, 그리고 그 남쪽 등지에 퍼져 살았다. 그들은 때로는 이스마엘 족속과 동의어로 사용되기도 하였다(창 37:28, 36). 모압 왕 발락은 미디안 장로들에게 발람을 청하여 이스라엘을 저주하려는 자신의 계획을 말하며 의논했었다(민 22:4). 그들은 모압 땅에도 살고 있었다. 본장은 모압 여자들과 미디안 여인을 같은 부류로 여긴다(1, 6절).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미디안 사람들에게 징벌을 선언하신 것이었다. 이 징벌은 후에 민수기 31장에서 다시 반복되었고 미디안인들을 다 죽임으로 시행되었다. 그때 모압 경내에서 살고 있었던 발람도 죽임을 당하였다(민 31:8).

본장의 내용은 이스라엘 백성이 모압 여자들과 음행하며 그들의 신들에게 절한 사건이다. 그것은 우상숭배와 음행의 사건이었다. 그것은 십계명의 제1, 2계명과 제7계명을 범한 범죄 사건이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의 범죄에 대해 크게 노하셨다. 그 결과, 죽은 자들이 2만 4천명이었다.

오늘날 교회도 우상숭배와 음행을 조심해야 한다. 현 시대는 음란한 시대이다. 현대 기독교인들은 이 시대의 음란 풍조를 조심해야 한다. 우리는 시대적 생활방식을 항상 반성하고 거룩한 삶을 유지해야 한다. 특히 젊은이들은 T.V.나 인터넷이나 스마트폰 등을 통해 유입되는 온갖 음란물들을 통제해야 한다. 성도들은 옷차림까지도 단정해야 한다.

이런 윤리적 문제뿐 아니라, 사상적으로도 현대는 세상의 물결이 교회 안으로 흘러 넘쳐오고 있다. 성경적 기독교 신앙에서 탈선하는 모든 것이 일종의 우상숭배이다.

특히 그리스도인은 자유주의 신학을 용납하지 말아야 한다. 자유주의 신학이란 하나님의 계시나 기적보다 인간의 이성이나 경험을 더 신뢰하고 과학의 이름으로 성경을 비평하고 불신임하고 성경의 기본교리들을 부정하는 사상이다. 그것은 인간 우상숭배이며 결국 불신앙이다. 우리는 그런 사상을 용납하지 말아야 한다.

또 성경을 믿는 신자는 천주교회의 탈선을 분별하고 물리쳐야 한다. 천주교회는 역사상 세상의 온갖 오류들을 기독교 안에 용납하였다. 그 대표적인 것이 마리아 숭배이다. 천주교회는 마리아 숭배의 종교이다. 그것은 명백한 우상숭배이다. 또 천주교회는 세속 국가를 본받아 교황청으로 절대권력을 가지게 했다. 천주교회에는 신자 개개인의 자유가 없다. 또 천주교회의 역사는 많은 고문과 학살, 음행과 탐욕의 역사이었다. 우리는 그러한 탈선을 용납지 말아야 한다.

또 오늘날 은사주의는 기독교의 명백한 변질이다. 방언과 예언을 말하는 자들은 결국 성경의 완성을 부정하는 자들이다. 그들은 말씀 중심의 기독교를 경험 위주의 기독교로 변질시켰다. 또 오늘날 은사주의자들은 자유주의 신학이나 천주교회를 용납함으로 혼란을 더하고 있다. 현대교회는 은사주의 때문에 심히 혼란스럽다.

거기에다, 많은 교회들이 성수주일을 폐기하고 세상적 록 음악이 교회 안에 CCM이라는 이름으로 도입되고 예배도 세상적인 콘서트로 변질되었다. 여자 목사, 여자 장로들이 등장하였고, 낙태를 용납하는 교회들이 나타났고, 심지어 동성애 목사들까지 등장하였다. 이것들은 그야말로 현대판 우상숭배와 음행인 것이다.

그러면 본장의 교훈은 무엇이며 우리는 그 교훈을 오늘날 어떻게 적용할 수 있는가? 첫째로, 우리는 우상숭배하거나 음행하지 말아야 한다. 이스라엘 백성은 모압 여자들과 음행하고 우상숭배에 참여하였다. 구약교회는 부패되고 있었다. 오늘날 우리는 어떤가? 오늘날 세계의 대교단들의 대부분은 세계교회협의회(WCC)라는 단체에 가입해 있는데, 그 단체는 자유주의를 포용하고 천주교회도 포용하고 있다. 또 성경을 믿는다고 하는 복음주의 교회들의 협의체인 세계복음주의연맹(WEA)은 다수의 지도자들이 은사주의적이며 또 자유주의 교단을 포용하고 있고 천주교회에 대해서도 관용적이다. 또 복음주의 교회들까지도 여자 목사, 여자 장로들을 용납하는 추세에 있다. 오늘날 보수 교회들도 그 순수성을 잃어버리고 있다. 이런 때에 우리는 교회의 순수성을 유지하고 순수한 교회를 건립하기를 힘써야 한다. 우리 신자들은 예수를 믿되 순수하게 성경적 신앙생활을 하기를 힘써야 한다. 우리가 예수를 믿으면 구원을 받지만, 바른 신앙생활을 하지 않는다면 자신에게 유익이 없을 것이다. 하나님의 뜻은 우리의 거룩함이다. 하나님은 우리의 온전함을 원하신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의 복음 진리를 중심으로 성경의 바른 교훈만 굳게 붙들자. 우리는 성경적 교훈이 있는 순수한 교회를 세우고 순수한 신앙생활을 힘쓰자.

둘째로, 오늘날도 비느하스 같은 인물이 필요하다. 오늘날 우상숭배와 음행의 풍조 속에서 모두들 관망만 하고 침묵하고 타협하지 말고 일어나 하나님을 위하여 일하는 자들이 필요하다. 창을 들고 나아가 현행범을 처단하는 일은 하나님의 뜻과 그의 진리에 대한 확신이 없이는 할 수 없는 일이다. 그것은 하나님의 진리를 확신하고 그에게 헌신하고 그를 위해 충성하고자 하는 불붙는 마음이 있는 자들만 할 수 있는 일이다. 오늘날 하나님의 마음을 시원케 할 비느하스 같은 인물이 많이 요청된다. 하나님을 위해 일하는 교회, 그의 온전한 뜻을 위해 일하는 목사와 장로들, 제직들, 성도들이 요구되는 것이다.

 

 

26장: 두 번째 인구조사

[1-4절] 염병 후에 여호와께서 모세와 제사장 아론의 아들 엘르아살에게 일러 가라사대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의 총수를 그 조상의 . . . .

본장은 두 번째 인구조사에 대해 기록한다. 이스라엘 백성이 모압 평지에서 모압 여자들과 음행하고 우상숭배함으로 하나님의 진노를 사서 염병 재앙을 받은 후에, 여호와께서는 모세와 제사장 아론의 아들 엘르아살에게 말씀하셨다.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의 총수를 그 조상의 집을 따라 조사하되 이스라엘 중에 무릇 20세 이상으로 능히 싸움에 나갈 만한 자를 계수하라.” 모세와 제사장 엘르아살은 여리고 맞은편 요단 가 모압 평지에서 그들에게 고하였다. “여호와께서 애굽 땅에서 나온 모세와 이스라엘 자손에게 명하신 대로 너희는 20세 이상된 자를 계수하라.”

[5-51절] 이스라엘의 장자는 르우벤이라. 르우벤 자손은 하녹에게서 난 하녹 가족과 발루에게서 난 발루 가족과 헤스론에게서 난 헤스론 가족과 갈미에게서 난 갈미 가족이니 이는 르우벤 가족들이라. 계수함을 입은 자가 43,730명이요 발루의 아들은 엘리압이요 엘리압의 아들은 느무엘과 다단과 아비람이라. 이 다단과 아비람은 회중 가운데서 부름을 받은 자러니 고라의 무리에 들어가서 모세와 아론을 거스려 여호와께 패역할 때에 땅이 그 입을 열어서 그 무리와 고라를 삼키매 그들이 죽었고 당시에 불이 250명을 삼켜 징계가 되게 하였으나 그러나 고라의 아들들은 죽지 아니하였더라.

시므온 자손은 그 종족대로 이러하니 느무엘에게서 난 느무엘 가족과 야민에게서 난 야민 가족과 야긴에게서 난 야긴 가족과 세라에게서 난 세라 가족과 사울에게서 난 사울 가족이라. 이는 시므온 종족들이니 계수함을 입은 자가 22,200명이었더라.

갓 자손은 그 종족대로 이러하니 스본에게서 난 스본 가족과 학기에게서 난 학기 가족과 수니에게서 난 수니 가족과 오스니에게서 난 오스니 가족과 에리에게서 난 에리 가족과 아롯에게서 난 아롯 가족과 아렐리에게서 난 아렐리 가족이라. 이는 갓 자손의 종족들이니 계수함을 입은 자가 40,500명이었더라.

유다의 아들은 에르와 오난이라. 이 에르와 오난은 가나안 땅에서 죽었고 유다의 자손은 그 종족대로 이러하니 셀라에게서 난 셀라 가족과 베레스에게서 난 베레스 가족과 세라에게서 난 세라 가족이며 또 베레스 자손은 이러하니 헤스론에게서 난 헤스론 가족과 하물에게서 난 하물 가족이라. 이는 유다 종족들이니 계수함을 입은 자가 76,500명이었더라.

잇사갈 자손은 그 종족대로 이러하니 돌라에게서 난 돌라 가족과 부와에게서 난 부니 가족과 야숩에게서 난 야숩 가족과 시므론에게서 난 시므론 가족이라. 이는 잇사갈 종족들이니 계수함을 입은 자가 64,300명이었더라.

스불론 자손은 그 종족대로 이러하니 세렛에게서 난 세렛 가족과 엘론에게서 난 엘론 가족과 얄르엘에게서 난 얄르엘 가족이라. 이는 스불론 종족들이니 계수함을 입은 자가 60,500명이었더라.

요셉의 아들들은 그 종족대로 므낫세와 에브라임이요 므낫세의 자손 중 마길에게서 난 것은 마길 가족이라. 마길이 길르앗을 낳았고 길르앗에게서 난 것은 길르앗 가족이라. 길르앗 자손은 이러하니 이에셀에게서 난 이에셀 가족과 헬렉에게서 난 헬렉 가족과 아스리엘에게서 난 아스리엘 가족과 세겜에게서 난 세겜 가족과 스미다에게서 난 스미다 가족과 헤벨에게서 난 헤벨 가족이며 헤벨의 아들 슬로브핫은 아들이 없고 딸뿐이라. 그 딸의 이름은 말라와 노아와 호글라와 밀가와 디르사니 이는 므낫세의 종족들이라. 계수함을 입은 자가 52,700명이었더라.

에브라임 자손은 그 종족대로 이러하니 수델라에게서 난 수델라 가족과 베겔에게서 난 베겔 가족과 다한에게서 난 다한 가족이며 수델라 자손은 이러하니 에란에게서 난 에란 가족이라. 이는 에브라임 자손의 종족들이니 계수함을 입은 자가 32,500명이라. 이상은 그 종족을 따른 요셉 자손이었더라.

베냐민 자손은 그 종족대로 이러하니 벨라에게서 난 벨라 가족과 아스벨에게서 난 아스벨 가족과 아히람에게서 난 아히람 가족과 스부밤에게서 난 스부밤 가족과 후밤에게서 난 후밤 가족이며 벨라의 아들은 아릇과 나아만이라 아릇에게서 아릇 가족과 나아만에게서 나아만 가족이 났으니 이는 그들의 종족을 따른 베냐민 자손이라. 계수함을 입은 자가 45,600명이었더라.

단 자손은 그 종족대로 이러하니라 수함에게서 수함 가족이 났으니 이는 그들의 종족을 따른 단 가족들이라. 수함 모든 가족의 계수함을 입은 자가 64,400명이었더라.

아셀 자손은 그 종족대로 이러하니 임나에게서 난 임나 가족과 이스위에게서 난 이스위 가족과 브리아에게서 난 브리아 가족이며 브리아의 자손 중 헤벨에게서 난 헤벨 가족과 말기엘에게서 난 말기엘 가족이며 아셀의 딸의 이름은 세라라. 이는 아셀 자손의 종족들이니 계수함을 입은 자가 53,400명이었더라.

납달리 자손은 그 종족대로 이러하니 야셀에게서 난 야셀 가족과 구니에게서 난 구니 가족과 예셀에게서 난 예셀 가족과 실렘에게서 난 실렘 가족이라. 이는 그 종족을 따른 납달리 가족들이니 계수함을 입은 자가 45,400명이었더라. 이스라엘 자손의 계수함을 입은 자가 601,730명이었더라.

하나님의 명하신 대로 20세 이상으로 능히 전쟁에 나갈 만한 자들이 계수되었고 그 수효가 열두 지파 별로 기록되었다. 20세 이상의 이스라엘 백성의 총수는 601,730명이었다. 첫 번째 인구조사에서 20세 이상으로 능히 전쟁에 나갈 만한 자들의 총수가 603,550명이었으니, 1,820명이 부족할 뿐, 첫 번째의 인구와 비슷하였다.

[52-56절]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일러 가라사대 이 명수대로 땅을 나눠주어 기업을 삼게 하라. 수가 많은 자에게는 기업을 많이 줄 . . . .

여호와께서는 또 모세에게 말씀하셨다. “이 명수대로 땅을 나눠주어 기업을 삼게 하라. 수가 많은 자에게는 기업을 많이 줄 것이요 수가 적은 자에게는 기업을 적게 줄 것이니 그들의 계수함을 입은 수대로 각기 기업을 주되 오직 그 땅을 제비 뽑아 나누어 그들의 조상 지파의 이름을 따라 얻게 할지니라. 그 다소를 물론하고 그 기업을 제비 뽑아 나눌지니라.”

[57-62절] 레위인의 계수함을 입은 자는 그 종족대로 이러하니 게르손에게서 난 게르손 가족과 고핫에게서 난 고핫 가족과 므라리에게서 난 므라리 가족이며 레위 종족들은 이러하니 립니 가족과 헤브론 가족과 말리 가족과 무시 가족과 고라 가족이라 고핫은 아므람을 낳았으며 아므람의 처의 이름은 요게벳이니 레위의 딸이요 애굽에서 레위에게서 난 자라. 그가 아므람에게서 아론과 모세와 그 누이 미리암을 낳았고 아론에게서는 나답과 아비후와 엘르아살과 이다말이 났더니 나답과 아비후는 다른 불을 여호와 앞에 드리다가 죽었더라. 레위인의 1개월 이상으로 계수함을 입은 모든 남자가 23,000명이었더라. 그들은 이스라엘 자손 중 계수에 들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이스라엘 자손 중에서 그들에게 준 기업이 없음이었더라.

그 총수에서 제외되었던 레위인들은 1개월 이상인 자들이 23,000명이었다. 그들은 다른 지파들과 달리 기업을 얻지는 못하였다.

[63-65절] 이는 모세와 제사장 엘르아살의 계수한 자라. 그들이 여리고 맞은편 요단 가 모압 평지에서 이스라엘 자손을 계수한 중에는 . . . .

위의 내용은 모세와 제사장 엘르아살이 계수한 자들이다. 그들이 여리고 맞은편 요단 가 모압 평지에서 이스라엘 자손을 계수한 중에는 모세와 제사장 아론이 시내 광야에서 계수한 이스라엘 자손은 한 사람도 들지 못하였다. 왜냐하면 여호와께서 그들이 반드시 광야에서 죽으리라고 그들에 대해 말씀하셨기 때문이다. 이러므로 여분네의 아들 갈렙과 눈의 아들 여호수아 외에는 첫 번째 인구조사에 든 사람들은 한 사람도 남지 아니하였다.

이와 같이 본장은 모압 평지에서의 두 번째 인구조사에 대해 증거한다. 그러면 두 번째 인구조사의 의미는 무엇인가?

첫째로, 두 번째 인구조사는 가나안 땅 진입을 위한 준비이었다. 이스라엘 백성은 가나안 땅에 들어가기 전에 전열(戰列)을 가다듬어야 하였다. 그들의 군대들은 재편성되어야 하였다. 이것은 오늘날 신약교회에서도 항상 필요하다. 우리는 이 세상에서 영적인 전투를 하고 있다. 그러므로 교회는 이 전투를 위하여 교인 명단, 구역 명단, 직분자 명단을 항상 정리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둘째로, 두 번째 인구조사는 이스라엘 군대의 세대교체의 의미가 있었다. 모세를 따라 애굽에서 나왔던 자들은 여호수아와 갈렙 외에는 다 멸망하였고 이스라엘 군대는 출애굽 당시 20세 미만으로 어렸던 자들이나 광야생활 처음 20년 동안에 출생한 자들로 교체되었다.

이 세대교체는 특히 악인들의 멸망이라는 뜻을 내포한다. 본장은 열두 지파의 인구를 기록하면서 르우벤 자손 다단과 아비람의 죽음에 대해 말한다. 9-10절, “이 다단과 아비람은 회중 가운데서 부름을 받은 자인데 고라의 무리에 들어가서 모세와 아론을 거슬러 여호와께 패역할 때에 땅이 그 입을 열어서 그 무리와 고라를 삼키매 그들이 죽었고 당시에 불이 250명을 삼켜 징계가 되게 하였으나.”

또 제사장 아론의 네 아들들 중 처음 둘인 나답과 아비후의 죽음에 대해서도 증거한다. 61절, “나답과 아비후는 다른 불을 여호와 앞에 드리다가 죽었더라.” 악을 행한 자들은 이처럼 다 죽었다.

63-65절은 첫 번째 인구조사에 포함되었던 20세 이상의 남자들 중 여호수아와 갈렙 외의 모든 사람들이 다 죽었다고 말한다. “이는 모세와 제사장 엘르아살의 계수한 자라. 그들이 여리고 맞은편 요단 가 모압 평지에서 이스라엘 자손을 계수한 중에는 모세와 제사장 아론이 시내 광야에서 계수한 이스라엘 자손은 한 사람도 들지 못하였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그들에게 대하여 말씀하시기를 그들이 반드시 광야에서 죽으리라 하셨음이라. 이러므로 여분네의 아들 갈렙과 눈의 아들 여호수아 외에는 한 사람도 남지 아니하였더라.”

이것은 민수기 14장에서 하나님께서 하신 말씀대로 된 것이었다. 민수기 14:22-24, “나의 영광과 애굽과 광야에서 행한 나의 이적을 보고도 이같이 열 번이나 나를 시험하고 내 목소리를 청종치 아니한 그 사람들은 내가 그 조상들에게 맹세한 땅을 결단코 보지 못할 것이요 또 나를 멸시하는 사람은 하나라도 그것을 보지 못하리라. 오직 내 종 갈렙은 그 마음이 그들과 달라서 나를 온전히 좇았은즉 그의 갔던 땅으로 내가 그를 인도하여 들이리니 그 자손이 그 땅을 차지하리라.” 민수기 14:29-33, “너희 시체가 이 광야에 엎드러질 것이라. 너희 20세 이상으로 계수함을 받은 자 곧 나를 원망한 자의 전부가 여분네의 아들 갈렙과 눈의 아들 여호수아 외에는 내가 맹세하여 너희로 거하게 하리라 한 땅에 결단코 들어가지 못하리라. 너희가 사로잡히겠다고 말하던 너희의 유아들은 내가 인도하여 들이리니 그들은 너희가 싫어하던 땅을 보려니와 너희 시체는 이 광야에 엎드러질 것이요 너희 자녀들은 너희의 패역한 죄를 지고 너희의 시체가 광야에서 소멸되기까지 40년을 광야에서 유리하는 자가 되리라.”

악인들의 가치는 없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예루살렘 거민들을 벌하실 때 곱게 길리운 자들이 거름더미를 안게 하셨다(애 4:5). 또 시편 119:119는 “주께서 세상의 모든 악인을 찌끼같이 버리신다”고 말했다. 하나님께서 마침내 악인들을 영원한 지옥 불못에 던지실 때 우리는 악인들의 존재 가치가 없음을 깨닫게 될 것이다.

셋째로, 두 번째 인구조사는 하나님의 구원 계획의 불변적 성취를 보인다. 하나님의 구원 계획은 결코 실패치 않으셨다. 이스라엘의 60만명은 차질 없이, 변함 없이 구원을 얻었다.

하나님께서 인류를 구원하심이 그러하다. 예수께서는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은 내게 주신 자 중에 내가 하나도 잃어버리지 아니하고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는 이것이니라”고 말씀하셨고(요 6:39), 또 “내 양은 내 음성을 들으며 나는 저희를 알며 저희는 나를 따르느니라. 내가 저희에게 영생을 주노니 영원히 멸망치 아니할 터이요 또 저희를 내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고 하셨다(요 10:27-28).

사도 바울은 “또 [하나님께서] 미리 정하신 그들을 또한 부르시고 부르신 그들을 또한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 하신 그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느니라[확실히 영화롭게 하실 것이라]”고 증거했다(롬 8:30).

요한계시록 7:4는 택자들의 수를 14만 4천명이라고 표현한다. 그것은 12 x 12 x 1000을 의미한다고 본다. 12는 완전충만한 수를, 또 1000도 충만한 수를 상징한다고 본다. 14만 4천명은 셀 수 없이 많은 충만한 수를 가리킨다고 본다. 하나님께서 택하신 완전충만한 수의 영혼들은 하나도 멸망치 않고 다 구원과 영생을 얻을 것이다.

사람은 심히 죄악되지만, 하나님은 능력의 구주이시다. 하나님께서는 만세 전에 택하신 자기 백성을 하나도 잃어버림 없이 다 구원하실 것이다. 그의 구원 계획은 결코 실패치 않을 것이다.

본장의 교훈을 정리해보자. 첫째로, 신약교회는 영적 전투를 위하여 항상 전열(戰列)을 잘 가다듬어야 한다. 교회는 교인 명단, 구역 명단, 직분자 명단을 항상 정리할 필요가 있다. 교회는 항상 사탄과 악령들과 싸울 전투태세를 갖춘 군대와 같이 잘 준비되어야 할 것이다.

둘째로, 우리는 악한 자들이 반드시 멸망하는 것을 알고 악을 멀리해야 한다. 물론 악한 자들이 마지막 심판 때에 영원한 지옥 형벌을 받을 것이지만, 그들은 이 세상에서도 하나님의 징벌을 피할 수 없다. 그러므로 우리는 멸망하는 악인들에게 속하지 말고, 오직 악을 멀리하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 의와 선을 행하는 자가 되어야 한다.

셋째로, 우리는 하나님의 구원 계획의 불변적 성취를 깨닫고 위로를 얻고 분발하자. 구원은 사람의 일이 아니고 하나님의 일이다. 사람은 심히 죄악되며 연약하지만, 하나님은 능력의 구주이시다. 그는 만세 전에 택하신 자들을 하나도 잃어버리지 않고 다 구원하시고 다 영생에 이르게 하실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구원의 확실함을 깨닫고 감사하고 위로를 얻고 우리 자신의 연약이나 환경적 어려움 때문에 낙심치 말고 또 분발하여 더욱 믿음으로 살고 순종으로 살자.

 

 

27장: 여호수아를 후계자로 세움

[1-11절] 요셉의 아들 므낫세 가족에 므낫세의 현손 마길의 . . . .

요셉의 아들 므낫세 가족에 므낫세의 현손 마길의 증손 길르앗의 손자 헤벨의 아들 슬로브핫의 딸들이 나아왔는데 그 딸들의 이름은 말라와 노아와 호글라와 밀가와 디르사이었다. 그들이 회막 문에서 모세와 제사장 엘르아살과 족장들과 온 회중 앞에 서서 말하였다.“우리 아버지가 광야에서 죽었으나 여호와를 거스려[거슬러] 모인 고라의 무리에 들지 아니하고 자기 죄에 죽었고 아들이 없나이다. 어찌하여 아들이 없다고 우리 아버지의 이름이 그 가족 중에서 삭제되리이까? 우리 아버지의 형제 중에서 우리에게 기업을 주소서.” 모세는 그 사연을 여호와께 품하였다[아뢰었다].

여호와께서는 모세에게 말씀하셨다. “슬로브핫 딸들의 말이 옳으니 너는 반드시 그들의 아비의 형제 중에서 그들에게 기업을 주어 얻게 하되 그 아비의 기업으로 그들에게 돌릴지니라.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고하여 이르기를 사람이 죽고 아들이 없거든 그 기업을 그 딸에게 돌릴 것이요 딸도 없거든 그 기업을 그 형제에게 줄 것이요 형제도 없거든 그 기업을 그 아비의 형제에게 줄 것이요 그 아비의 형제도 없거든 그 기업을 가장 가까운 친족에게 주어 얻게 할지니라 하고 나 여호와가 너 모세에게 명한 대로 이스라엘 자손에게 판결의 율례가 되게 할지니라.”

이것은 사람의 기업 상속자에 대한 규례이다. 사람의 기업은 아들에게 상속되지만, 아들이 없으면 딸에게, 또 딸이 없으면 형제에게, 또 형제도 없으면 그 아버지의 형제에게, 또 아버지의 형제도 없으면 가장 가까운 친족에게 상속되어야 한다는 규례이다.

[12-14절]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너는 이 아바림 산에 . . . .

여호와께서는 또 모세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이 아바림 산에 올라가서 내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준 땅을 바라보라. 본 후에는 네 형 아론의 돌아간 것같이 너도 조상에게로 돌아가리니 이는 신 광야에서 회중이 분쟁할 때에 너희가 내 명을 거역하고 그 물가에서 나의 거룩함을 그들 앞에서 나타내지 아니하였음이니라. 이 물은 신 광야 가데스의 므리바 물이니라.”

모세는 많은 고난으로 단련된 온유한 사람이었다. 민수기 12:3은, “이 사람 모세는 온유함이 지면의 모든 사람보다 승하더라”고 증거한다. 또 모세는 하나님의 영광과 명예를 생각하고 이스라엘 백성을 사랑한 자이었다. 그가 하나님의 율법을 받기 위해 시내산에 올라간 동안 백성이 송아지 형상을 부어만들고 그것을 숭배했고 하나님께서 진노하셔서 그들을 다 죽이고 모세를 통해 큰 나라를 세우겠다고 말씀하시자, 모세는 하나님께 아뢰기를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시면 애굽 사람들이 하나님을 비방할 것이라고 말하며 하나님을 가로막았고 하나님께서는 뜻을 돌이키셔서 재앙을 거두셨다(출 32:7-14).

또 가데스 바네아에서 정탐꾼을 보낸 때에도 여호와께서 불신앙적인 회중을 전염병으로 쳐서 멸하고 모세를 통해 크고 강한 나라를 이루게 하리라고 말씀하시자, 모세는 그러면 이방인들이 하나님께서 구원의 능력이 없어서 그렇게 하셨다고 비난할 것이라면서 그 백성을 용서하시기를 간구하였다(민 14:11-19).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가 신광야 가데스 므리바 물에서 실수한 일 때문에 그에게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하고 죽을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하나님의 공의의 징벌은 참으로 두렵고 엄위하였다. 인간의 죄는 하나님의 진노와 엄위한 징벌을 가져온다.

[15-17절] 모세가 여호와께 여짜와 가로되 여호와, 모든 . . . .

모세는 여호와께 아뢰었다. “여호와, 모든 육체의 생명의 하나님이시여, 원컨대 한 사람을 이 회중 위에 세워서 그로 그들 앞에 출입하며 그들을 인도하여 출입하게 하사 여호와의 회중으로 목자 없는 양과 같이 되지 않게 하옵소서.”

민수기 16:22에서도 모세는 하나님을 “모든 육체의 생명의 하나님이여”라고 말했다. ‘생명’이라는 원어(하루코스)는 ‘영들’이라는 뜻이다. 영은 생명 원리이다. 영, 영혼, 생명은 거의 동의어이다. 생명은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다. 하나님께서는 피조물들에게 생명을 주기도 하시고 연장시키기도 하시며 거두어가기도 하신다.

시편 104:29는, “주께서 낯을 숨기신즉 저희가 떨고 주께서 저희 호흡을 취하신즉 저희가 죽어 본 흙으로 돌아가나이다”라고 말한다. 바다 생물들의 생명이 그러하듯이, 인간의 생명은 더욱 그러하다. 전도서 12:7은, “흙은 여전히 땅으로 돌아가고 신[영]은 그 주신 하나님께로 돌아가기 전에 [창조자를] 기억하라”고 말한다. 다니엘은 벨사살 왕에게 하나님께서는 “왕의 호흡을 주장하시고 왕의 모든 길을 작정하시는 하나님”이라고 말하였다(단 5:23). 예수께서도 “너희 아버지께서 허락지 아니하시면 그[참새] 하나라도 땅에 떨어지지 아니하리라”고 말씀하셨다(마 10:29).

모든 육체의 생명이 하나님께 있으므로 그가 작정하시고 섭리하시는 대로 사람이 살기도 하고 죽기도 한다. 모세는 이 사실을 인식하면서 자기의 생명도 하나님의 뜻대로 이제 끝날 것이지만, 단지 한 사람을 이스라엘 회중 위에 세우셔서 그로 그들 앞에 출입하며 그들을 인도하여 출입하게 하셔서 여호와의 회중으로 목자 없는 양과 같이 되지 않게 하기를 간구하였다. 이것은 모든 충성된 목사들이 가지는 소원일 것이다.

[18-23절]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눈의 아들 여호수아는 신에 감동된 자니 너는 데려다가 그에게 안수하고 그를 제사장  . . . .

여호와께서는 모세에게 말씀하셨다. “눈의 아들 여호수아는 신(神)에 감동된 자니 너는 데려다가 그에게 안수하고 그를 제사장 엘르아살과 온 회중 앞에 세우고 그들 앞에서 그에게 위탁하여 너의 존귀를 그에게 돌려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으로 그에게 복종하게 하라.” 그것은 이스라엘 회중으로 목자 없는 양같이 되지 않게 해주시기를 청한 모세의 간구에 대한 하나님의 선하신 응답이었다.

‘신(神)에 감동된 자’(이쉬 아셀 루아크 보)라는 원어는 ‘성령께서 그 속에 계신 자’라는 뜻이다. 이것은 애굽 왕 바로가 요셉에게도 사용하였던 표현이다(창 41:38). 모세의 수종자 여호수아는 성령께서 그 속에 계신 자이었다. 성령은 하나님의 영이시므로 성령께서 그 속에 계신 자는 하나님과 동행하는 자이다.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여호수아를 데려다가 그에게 안수하고 그에게 그의 직무를 위탁하고 그의 존귀를 주어 이스라엘 회중으로 그에게 복종하게 하라고 말씀하셨다. 안수는 직무와 존귀의 위탁이라는 뜻이 있었다. 이스라엘 회중은 안수를 통해 모세의 직무와 모세의 존귀를 이어받는 여호수아에게 복종하여야 했다.

하나님께서는 또 말씀하셨다. “그는 제사장 엘르아살 앞에 설 것이요 엘르아살은 그를 위하여 우림의 판결법으로 여호와 앞에 물을 것이며 그와 온 이스라엘 자손 곧 온 회중은 엘르아살의 말을 좇아 나가며 들어올 것이니라.” 제사장 엘르아살은 우림의 판결법으로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여 여호수아에게 일러주어야 하였다. 제사장의 판결 흉패 안에는 ‘우림’[빛]과 ‘둠밈’[완전함]이라는 물건을 넣어두었다. 그것이 무엇이었는지는 알려져 있지 않지만, 아마 제비 같은 어떤 물건이었을 것이라고 추측된다.

모세는 여호와께서 자기에게 명하신 대로 하여 여호수아를 데려다가 제사장 엘르아살과 온 회중 앞에 세우고 그에게 안수하여 위탁하되 여호와께서 자기에게 명하신 대로 하였다.

본장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우리는 하나님의 징벌을 두려워하자. 모세는 온유한 자이었고 하나님의 뜻과 명예를 위하고 이스라엘 백성을 사랑한 자이었다. 그러나 가데스의 므리바에서 혈기를 부린 그의 실수 때문에 그는 그리던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하였다. 하나님은 엄위하신 하나님이시다. 하나님께서는 모세의 실수에 대해 엄격한 징벌을 내리셨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직분이 중해질수록 더욱 엄격한 잣대로 우리를 다스리시는 것 같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는 하나님의 징벌을 두려워하고 특히 직분자들은 더욱 그러해야 할 것이다.

둘째로, 우리는 교회가 목자 없는 양들의 모임과 같이 되지 않기를 기도하자. 이것은 전체교회에도 지교회에도 적용되는 바이다. 지교회에는 바른 목사, 좋은 목사가 항상 있어야 할 것이다. 또 전체교회에도, 이 배교의 시대, 타협과 혼돈의 시대에 하나님의 뜻을 바르게 선포하는 목사들, 지도자들, 교회들, 신학교들이 항상 있어야 할 것이다. 이것은 우리 모두가 항상 기도해야 할 기도제목이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교회를 결코 버리지 않으시고 보호하시고 인도하실 것이다. 그는 모세의 간절한 소원에 대해 응답하셨다. 그는 성령의 사람 여호수아를 그의 후계자로 지시하셨다. 그것은 하나님의 은혜이었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교회를 결코 버리지 않으실 것이다.

어떤 사람이 바른 목자인가? 성령의 충만한 자가 그러하다. 성령의 충만이 무엇인가? 그것은 하나님의 뜻을 아는 지식으로 충만하고 그의 마음으로 가득한 것이다.

신약교회는 성령의 충만을 받은 교회이다. 예수께서는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시리니 저는 진리의 영이라. 세상은 능히 저를 받지 못하나니 이는 저를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함이라. 그러나 너희는 저를 아나니 저는 너희와 함께 거하심이요 또 너희 속에 계시겠음이라”고 약속하셨고(요 14:16-17), 오순절에 그 약속된 성령께서 제자들에게 임하셨다. 오순절에 오신 성령께서는 그 후 신약교회 안에, 곧 성도들 안에 항상 거하신다. 그러므로 예루살렘 교회가 일곱 집사를 뽑을 때도 사도들은 온 회중에게 “성령과 지혜가 충만하여 칭찬 듣는 사람 일곱을 택하라”고 말하였다(행 6:3). 성령의 사람들은 육신적 생각을 하지 않고 성령의 일을 생각할 것이다(롬 8:5). 그러나 이단자들은 “육에 속한 자며 성령은 없는 자”라고 성경은 증거한다(유 19).

성령 충만은 곧 말씀 충만이다. 하나님의 말씀이 없고 하나님의 뜻을 아는 바른 지식이 없으면서 성령 충만을 말하는 것은 교인을 속이는 일이다. 성령 충만을 받은 자는 늘 하나님과 동행하며 성경말씀 안에 거할 것이다. 우리는 교회가 목자 없는 양들의 모임과 같이 되지 않기를 항상 기도하자. 우리는 우리의 교회가 하나님의 말씀의 바른 교훈과 모범을 늘 가지는 교회가 되기를 항상 기도하자.

셋째로, 교회는 목자에게 복종해야 한다. 사람이 사람에게 복종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그것은 사람으로 오신 예수님에 대해서라도 그러하였다. 그러나 주께서는 “너희를 영접하는 자는 나를 영접하는 것이요 나를 영접하는 자는 나 보내신 이를 영접하는 것이니라”고 말씀하셨다(마 10:40). 사도 바울은 “형제들아, 우리가 너희에게 구하노니 너희 가운데서 수고하고 주 안에서 너희를 다스리며 권하는 자들을 너희가 알고 저의 역사로 말미암아 사랑 안에서 가장 귀히 여기며 너희끼리 화목하라”고 말하였고(살전 5:12-13), 또 “잘 다스리는 장로들을 배나 존경할 자로 알되 말씀과 가르침에 수고하는 이들을 더할 것이니라”고 하였다(딤전 5:17). 또 히브리서 13:17은 “너희를 인도하는 자들에게 순종하고 복종하라. 저희는 너희 영혼을 위하여 경성하기를 자기가 회계할 자인 것같이 하느니라. 저희로 하여금 즐거움으로 이것을 하게 하고 근심으로 하게 말라.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유익이 없느니라”고 말했다. 교회는 하나님의 뜻을 수행하는 군대와 같아야 한다.

 

 

28장: 각종 절기의 예물 (1)

[1-2절]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일러 가라사대 이스라엘 . . . .

여호와께서는 모세에게 말씀하셨다. “이스라엘 자손에게 명하여 그들에게 이르라. 나의 예물, 나의 식물(食物) 되는 화제(火祭), 나의 향기로운 것은 너희가 그 정한 시기에 삼가 내게 드릴지니라.”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이 하나님께 드리는 제물에 대해 말씀하셨다. 그는 그것을 ‘나의 예물,’ ‘나의 식물,’ ‘나의 화제’(원문), ‘나의 향기로운 것’이라고 표현하셨다. ‘나의 예물’이라는 말은 사람이 하나님을 공경하고 섬기는 마음으로 무엇을 드리는 것을 뜻한다고 본다. 그것은 오늘날 우리의 정성어린 헌금이나 헌물과 같다고 본다.

‘나의 식물’이라는 말은 그것이 하나님을 대접하는 뜻이 있음을 보인다. 우리는 존경하는 사람이나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좋은 음식을 대접하려고 한다. 하나님은 우리가 대접할 가장 귀한 대상이시다.

‘나의 화제’라는 말은 죄와 불결을 불태우며 제거하는 뜻이 있어 보인다. 그것은 죄의 형벌을 내포하는 것 같다. 하나님께 드려지는 제물은 더러움을 불로 태운 거룩하고 성결한 것이어야 할 것이다.

‘나의 향기로운 것’이라는 원어(레아크 니코키)는 ‘나를 진정시키는 향기’라는 말로서(BDB, NASB) 인간의 죄와 허물로 인한 하나님의 진노를 진정시키는 향기라는 뜻이라고 본다.

[3-8절] 또 그들에게 이르라. 너희가 여호와께 드릴 화제는 . . . .

하나님께서는 또 말씀하셨다. “너희가 여호와께 드릴 화제는 이러하니 1년 되고 흠 없는 숫양을 매일 둘씩 상번제(常燔祭, a continual burnt offering)로 드리되 한 어린양은 아침에 드리고 한 어린양은 해 질 때에 드릴 것이요, 또 고운 가루 에바 10분지 1[약 2.2리터]에 빻아낸 기름 힌 사분지 일[약 1리터]을 섞어서 소제(素祭)로 드릴 것이니 이는 시내산에서 정한 상번제(常燔祭)로서 여호와께 드리는 향기로운 화제(火祭)며, 또 그 전제(奠祭, a drink offering)는 어린양 하나에 힌 사분지 일을 드리되 거룩한 곳에서 여호와께 독주의 전제를 부어드릴 것이며, 해 질 때에는 그 한 어린양을 드리되 그 소제와 전제를 아침것같이 여호와께 향기로운 화제로 드릴 것이니라.”

이스라엘 백성은 날마다 아침 저녁으로 상번제(常燔祭) 즉 계속적인 번제를 드려야 하였다. 또 그 번제에는 소제(素祭) 곧 곡물제사가 첨가되었고 또 포도주를 붓는 전제(奠祭)로 마무리되어야 하였다. 번제는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와 성도의 온전한 순종을 의미한다고 본다. 또 소제는 감사의 뜻이 있고 그 고운 가루는 예수 그리스도의 자기 부정과 자기 희생을 상징할 것이다. 또 전제(奠祭)의 포도주(14절; 출 29:40)는 그리스도의 보혈을 상징할 것이다. 우리는 날마다, 아침 저녁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代贖) 공로를 믿고 의지하며 온전한 순종을 다짐하며 감사함으로 하나님을 섬겨야 할 것이다.

[9-10절] 안식일에는 1년 되고 흠 없는 숫양 둘과 고운 가루 . . . .

안식일에는 매일 드리는 상번제(常燔祭)와 그 전제(奠祭) 외에(아마 소제(素祭)도 포함될 것임) 1년 되고 흠 없는 숫양 둘과 고운 가루 에바 10분지 2[약 4.4리터]에 기름 섞은 소제(素祭)와 그 전제(奠祭)를 드려야 하였다. 이것이 매 안식일의 번제이다. 하나님께서는 안식일 규례를 통해 참된 평안이 없는 죄인인 인생들에게 참된 안식이 있음을 암시하셨고 그것이 예수 그리스도의 피의 속죄사역으로 말미암을 것을 증거하셨다.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마다 죄사함으로 말미암은 참된 안식을 누린다(마 11:28; 요 14:27).

[11-15절] 월삭에는 수송아지 둘과 숫양 하나와 1년 되고 . . . .

하나님께서는 또 말씀하셨다. “월삭[매달 첫째 날]에는 매일 드리는 상번제(常燔祭)와 그 전제(奠祭) 외에(아마 소제(素祭)도 포함될 것임) 수송아지 둘과 숫양 하나와 1년 되고 흠 없는 숫양 일곱으로 여호와께 번제를 드리되 매 수송아지에는 고운 가루 에바 10분지 3[약 6.6리터]에 기름 섞은 소제(素祭)와, 숫양 하나에는 고운 가루 에바 10분지 2[약 4.4리터]에 기름 섞은 소제와, 매 어린양에는 고운 가루 에바 10분지 1[약 2.2리터]에 기름 섞은 소제를 향기로운 번제로 여호와께 화제를 드릴 것이며, 그 전제(奠祭)는 수송아지 하나에 포도주 반 힌[약 2리터]이요 숫양 하나에 삼분지 일 힌[약 1.3리터]이요 어린양 하나에 사분지 일 힌[약 1리터]이니 이는 1년 중에 매 월삭[매달 첫째 날]의 번제며, 또 숫염소 하나를 속죄제로 여호와께 드릴 것이니라.”

월삭[매달 첫째 날]에는 특별한 번제와 거기에 따른 소제와 전제 외에, 숫염소 하나를 속죄제로 드려야 했다. 월삭은 달마다 하나님을 기억하는 뜻이 있다. 하나님께서는 이와 같이 그의 백성이 날마다, 주마다, 달마다 하나님을 기억하게 하셨다. 또 그는 특히 그들이 그리스도의 속죄사역을 믿고 의지하며 온전한 순종과 감사의 심령으로 그를 섬겨야 할 것을 상징적 제사 규례를 통해 교훈하셨다.

[16-25절] 정월 14일은 여호와의 유월절이며 또 그 달 15일부터는 절일이니 7일 동안 무교병을 먹을 것이며 그 첫날에는 성회로 . . . .

하나님께서는 또 유월절과 무교절에 대해 명하셨다. “정월 14일은 여호와의 유월절이며 또 그 달 15일부터는 절일이니 7일 동안 무교병[누룩 넣지 않은 떡]을 먹을 것이며 그 첫날에는 성회(聖會)로 모일 것이요 아무 노동도 하지 말 것이며, 수송아지 둘과 숫양 하나와 1년된 숫양 일곱을 다 흠 없는 것으로 여호와께 화제를 드려 번제가 되게 할 것이며, 그 소제(素祭)로는 고운 가루에 기름을 섞어서 쓰되 수송아지 하나에는 에바 10분지 3[약 6.6리터]이요 숫양 하나에는 에바 10분지 2[약 4.4리터]를 드리고 어린양 일곱에는 매 어린양에 에바 10분지 1[약 2.2리터]을 드릴 것이며, 또 너희를 속하기 위하여 숫염소 하나로 속죄제를 드리되 아침의 번제 곧 상번제(常燔祭) 외에 그것들을 드릴 것이니라. 너희는 이 순서대로 7일 동안 매일 여호와께 향기로운 화제의 식물을 드리되 상번제(常燔祭)와 그 전제(奠祭) 외에 드릴 것이며, 제7일에는 성회로 모일 것이요 아무 노동도 하지 말 것이니라.”

유월절은 유대인의 달력으로 1월 14일 저녁이며 무교절은 1월 15일부터 7일간이다. 그 첫날인 1월 15일과 제7일인 1월 21일은 성회로 모이는 안식일로 지켜야 하였다. 즉 주간 안식일인 제7일 안식일 외에 두 개의 안식일이 더 있는 것이다(1년의 절기들 전체로 보면, 주간 안식일 외에 일곱 개의 안식일이 더 있다--무교절에 2개, 맥추절 1개, 나팔절 1개, 속죄일 1개, 초막절에 2개).

유월절은 출애굽 때의 장자재앙을 기념하는 절기이다. 하나님께서는 애굽의 장자들을 죽이시던 때 이스라엘 백성이 그 재앙을 피하게 하셨다. 이스라엘 백성도 죄인이었지만, 하나님께서는 은혜로 그 재앙을 피하게 하셨던 것이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구속으로 죄인들이 하나님의 진노를 피하게 되는 것을 예표하였다.

무교절에는 특별한 번제와 소제와 속죄제를 7일 동안 매일 드려야 했다. 그것은 그리스도의 속죄사역을 굳게 믿고 하나님께 온전한 순종과 감사를 드리라는 뜻이 있다. 또 7일간 누룩 없는 떡을 먹게 하신 것은 성도가 죄 없는 거룩한 삶을 살아야 함을 보인다.

[26-31절] 칠칠절 처음 익은 열매 드리는 날에 너희가 여호와께 새 소제를 드릴 때에도 성회로 모일 것이요 아무 노동도 하지 . . . .

하나님께서는 또 말씀하셨다. “칠칠절[맥추절] 처음 익은 열매 드리는 날(밀 초실절)(출 23:16; 34:22)에 너희가 여호와께 새 소제(素祭)를 드릴 때에도 성회(聖會)로 모일 것이요 아무 노동도 하지 말 것이며, 수송아지 둘과 숫양 하나와 1년된 숫양 일곱으로 여호와께 향기로운 번제를 드릴 것이며, 그 소제로는 고운 가루에 기름을 섞어서 쓰되 매 수송아지에는 에바 10분지 3[약 6.6리터]이요 숫양 하나에는 에바 10분지 2[약 4.4리터]요 어린양 일곱에는 매 어린양에 에바 10분지 1[약 2.2리터]을 드릴 것이며, 또 너희를 속하기 위하여 숫염소 하나를 드리되 너희는 다 흠 없는 것으로 상번제(常燔祭)와 그 소제(素祭)와 전제(奠祭) 외에 그것들을 드릴 것이니라.”

칠칠절[맥추절 혹은 오순절]은 성도의 중생(重生)과 구원을 상징하는 뜻이 있다고 본다. 그 절기에도 역시 번제와 소제와 속죄제를 드려야 하였다. 우리의 중생(重生)과 구원은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사역으로 말미암은 것이다. 그리스도의 피공로가 아니면 아무도 구원을 얻을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대속 공로를 믿고 의지하며 하나님께 항상 감사하며 온전한 순종을 결심해야 할 것이다.

본장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사람은 하나님을 섬겨야 한다는 것이다. 본장은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을 섬겨야 할지에 대해 비교적 자세하게 증거한다.

첫째, 우리는 항상, 날마다, 주마다, 달마다, 해마다 하나님을 섬겨야 한다. 시편 145:1, “왕이신 나의 하나님이여, 내가 주를 높이고 영원히 주의 이름을 송축하리이다.” 시편 146:1-2, “할렐루야 내 영혼아, 여호와를 찬양하라. 나의 생전에 여호와를 찬양하며 나의 평생에 내 하나님을 찬송하리로다.”

둘째, 우리는 공경하고 대접하는 마음으로 정성의 예물을 준비하여 드리며 하나님을 섬겨야 한다. 잠언 3:9-10, “네 재물과 네 소산물의 처음 익은 열매로 여호와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네 창고가 가득히 차고 네 즙틀에 새 포도즙이 넘치리라.”

셋째,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만 믿고 의지하며 하나님을 섬겨야 한다. 번제와 속죄제와 전제는 그것을 상징하였다. 죄인은 하나님을 진노케 할 수밖에 없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가 우리의 죄를 씻으며 하나님의 진노를 진정시키셨다. 히브리서 10:19-20,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예수의 피를 힘입어 성소에 들어갈 담력을 얻었나니 그 길은 우리를 위하여 휘장 가운데로 열어 놓으신 새롭고 산 길이요 휘장은 곧 저의 육체니라.”

넷째, 우리는 온전한 순종과 감사로 하나님을 섬겨야 한다. 로마서 12:1,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 이는 너희의 드릴 영적 예배니라.” 데살로니가전서 5:18,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다섯째, 우리는 누룩 없는 삶 즉 거룩한 삶으로 하나님을 섬겨야 한다. 데살로니가전서 4:3, “하나님의 뜻은 이것이니 너희의 거룩함이라.”

여섯째, 우리는 때때로 성회로 모여 하나님께 공적으로 예배를 드림으로 섬겨야 한다. 히브리서 10:25, “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하지 말고 오직 권하여 그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더욱 그리하자.” 본장은 사람이 하나님을 이렇게 섬겨야 함을 교훈한다.

둘째로, 하나님께서는 안식이 없는 인생들에게 안식을 주신다. 그는 주간 안식일 외에 무교절에 2일, 맥추절에 1일 안식일을 주셨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 죄사함으로 말미암은 참된 안식이 있다. 마태복음11:28,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요한복음 14:27,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 히브리서 4:9- 10, “그런즉 안식할 때가 하나님의 백성에게 남아 있도다. 이미 그의 안식에 들어간 자는 하나님이 자기 일을 쉬심과 같이 자기 일을 쉬느니라.” 우리는 이미 이 평안과 안식을 누리고 있음을 감사하자.

 

 

29장: 각종 절기의 예물 (2)

본장은 7월 1일 월삭 나팔절과 7월 10일 속죄일과 7월 15일부터 8일간의 초막절에 대한 규례이다.

[1-6절] 7월에 이르러는 그 달 초1일에 성회로 모이고 아무 . . . .

7월 1일 월삭은 나팔절이라는 절기이다. 이 날은 성회로 모이고 아무 노동도 하지 말아야 하는 안식일이다. 이 날은 나팔을 부는 날이며 그래서 나팔절이라고 부른다.

이 날도 물론 매일 드리는 상번제(常燔祭)와 그 소제와 그 전제(奠祭)를 드리고, 또 월삭마다 드리는 번제와 그 소제를 드려야 한다(물론, 전제와 속죄제도 포함될 것이다). 이런 제사 외에, 나팔절은 추가로 제사를 드려야 하였다. 그것은 수송아지 하나와 숫양 하나와 일년 되고 흠 없는 숫양 일곱을 여호와께 향기로운 번제로 드리며, 소제로는 고운 가루에 기름을 섞어서 쓰되 수송아지에는 에바 10분지 3, 숫양에는 에바 10분지 2, 어린양 일곱에는 매 어린양에 에바 10분지 1을 드리며, 또 죄를 속하기 위해 속죄제로 숫염소 하나를 드리는 것이다. 1에바는 약 22리터이다.

나팔절은 속죄일을 예고하는 뜻이 있다고 본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代贖)의 복음을 전하는 전도를 예표한다고 본다. 사도 바울은 “유대인은 표적을 구하고 헬라인은 지혜를 찾으나 우리는 십자가에 못박힌 그리스도를 전한다”고 말하였다(고전 1:22-23). 우리는 주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代贖)을 믿고 하나님께 우리를 온전히 드리며 감사함으로 이 복음을 널리 전파해야 하겠다.

[7-11절] 7월 10일에는 너희가 성회로 모일 것이요 마음을 . . . .

7월 10일은 속죄일이라는 절기이다. 이 날도 성회로 모이고 마음을 괴롭게 하고 아무 노동도 하지 말아야 하는 안식일이다. ‘마음을 괴롭게 한다’는 표현은 금식을 가리키는 것으로 본다.

이 날은 매일 드리는 상번제(常燔祭)와 그 소제와 그 전제(奠祭) 외에, 두 종류의 특별한 제사를 더 드려야 하였다. 하나는 속죄일에 드리는 속죄제이다. 그것은 본문 11절에 “이는 [속죄를 위한] 속죄제와”라고만 말했지만, 레위기 16:1-22에는 자세히 규정되어 있다. 대제사장은 1년 중에 그 날 단 하루만 지성소에 아마 세 번 들어간다. 한 번은 향로를 가지고 들어가고, 자기를 위한 속죄제물인 수송아지의 피를 속죄소에 뿌리기 위해 들어가고, 또 회중을 위한 속죄제물인 숫염소의 피를 속죄소에 뿌리기 위해 들어간다(12, 14, 15절).

다른 하나는 속죄일의 번제와 소제와 속죄제다. 수송아지 하나와 숫양 하나와 일년된 숫양 일곱을 다 흠 없는 것으로 여호와께 향기로운 번제를 드리며, 그 소제로는 고운 가루에 기름을 섞어서 쓰되 수송아지 하나에는 에바 10분지 3이요 숫양 하나에는 에바 10분지 2요 어린양 일곱에는 매 어린양에 에바 10분지 1을 드리며, 또 숫염소 하나를 속죄제로 드리는 것이다.

속죄일은 예수 그리스도의 단번 속죄사역을 예표한다. 히브리서가 강조하는 대로,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사람으로 이 세상에 오셔서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단번에 택자들을 위한 속죄사역을 이루셨다. 히브리서 7:27, “저가 저 대제사장들이 먼저 자기 죄를 위하고 다음에 백성의 죄를 위하여 날마다 제사 드리는 것과 같이 할 필요가 없으니 이는 저가 단번에 자기를 드려 이루셨음이니라.” 히브리서 9:11 -12, “그리스도께서 장래 좋은 일의 대제사장으로 오사 손으로 짓지 아니한 곧 이 창조에 속하지 아니한 더 크고 온전한 장막으로 말미암아 염소와 송아지의 피로 아니하고 오직 자기 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사 단번에 성소에 들어가셨느니라.” 히브리서 10:10, “이 뜻을 좇아 예수 그리스도의 몸을 단번에 드리심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거룩함을 얻었노라.”

[12-40절] 7월 15일에는 너희가 성회로 모일 것이요 아무 노동도 하지 말 것이며 7일 동안 여호와 앞에 절기를 지킬 것이라. . . .

7월 15일부터 8일 동안은 초막절이라는 절기이다. 첫째 날은 성회로 모이는 날이며 아무 노동도 하지 말아야 하는 안식일이며, 8일 동안 하나님 앞에서 절기를 지켜야 하였다. 주간 안식일(제7일 안식일) 외에, 절기들에 쉬는 안식일이 1년에 모두 일곱 번이었다(무교절에 2번, 맥추절 1번, 나팔절 1번, 속죄일 1번, 초막절에 2번).

초막절은 매일 드리는 상번제(常燔祭)와 그 소제와 그 전제(奠祭) 외에, 모든 절기 중에 가장 풍성한 제물을 7일 동안 드려야 했다.

첫째 날은 번제로 수송아지 열 셋과 숫양 둘과 일년된 숫양 열 넷을 다 흠 없는 것으로 향기로운 화제로 드리며, 소제로는 고운 가루에 기름을 섞어서 수송아지 열 셋에는 각기 에바 10분지 3, 숫양 둘에는 각기 에바 10분지 2, 어린양 열 넷에는 각기 에바 10분지 1을 드리며, 또 속죄제로는 숫염소 하나를 드려야 하였다.

둘째 날은 수송아지 열 둘과 숫양 둘과 일년 되고 흠 없는 숫양 열 넷을 드리며, 그 소제와 전제(奠祭)는 수송아지와 숫양과 어린양의 수효를 따라서 규례대로 하며, 또 숫염소 하나를 속죄제로 드려야 하였다. 셋째 날은 수송아지 열 하나와 숫양 둘과 일년 되고 흠 없는 숫양 열 넷을 드리며, 그 소제와 전제(奠祭)는 수송아지와 숫양과 어린양의 수효를 따라서 규례대로 하며, 또 숫염소 하나를 속죄제로 드려야 하였다.

넷째 날은 수송아지 열과 숫양 둘과 일년 되고 흠 없는 숫양 열 넷을 드리며, 그 소제와 전제(奠祭)는 수송아지와 숫양과 어린양의 수효를 따라서 규례대로 하며, 또 숫염소 하나를 속죄제로 드려야 하였다. 다섯째 날은 수송아지 아홉과 숫양 둘과 일년 되고 흠 없는 숫양 열 넷을 드리며, 그 소제와 전제(奠祭)는 수송아지와 숫양과 어린양의 수효를 따라서 규례대로 하며, 또 숫염소 하나를 속죄제로 드려야 하였다.

여섯째 날은 수송아지 여덟과 숫양 둘과 일년 되고 흠 없는 숫양 열 넷을 드리며, 그 소제와 전제(奠祭)는 수송아지와 숫양과 어린양의 수효를 따라서 규례대로 하며, 또 숫염소 하나를 속죄제로 드려야 하였다. 일곱째 날은 수송아지 일곱과 숫양 둘과 일년 되고 흠 없는 숫양 열 넷을 드리며, 그 소제와 전제(奠祭)는 수송아지와 숫양과 어린양의 수효를 따라서 규례대로 하며, 또 숫염소 하나를 속죄제로 드려야 하였다.

여덟째 날은 거룩한 대회로 모이며 아무 노동도 하지 않는 안식일로 지켜야 하였다. 그 날에는 번제로 수송아지 하나와 숫양 하나와 일년 되고 흠 없는 숫양 일곱을 여호와께 향기로운 화제로 드리며, 그 소제와 전제(奠祭)는 수송아지와 숫양과 어린양의 수효를 따라서 규례대로 하며, 또 숫염소 하나를 속죄제로 드려야 하였다.

이것들은 물론 매일 드리는 상번제(常燔祭)와 그 소제와 그 전제(奠祭) 외에 추가로 드리는 제물들이다.

초막절은 이스라엘 선조들이 옛날 애굽에서 나와 광야에서 40년 동안 천막 생활을 했던 일을 기념하는 뜻이 있다. 또 이 절기는 곡식이나 기름과 열매와 포도주 등의 추수를 다 마치고 그것들을 창고에 저장하는 절기이며 그래서 이 날을 또한 수장절이라고 부른다. 이것은 하나님의 백성이 장차 천국에 들어감을 예표하였다고 본다. 이 날 모든 백성은 그리스도의 속죄 공로를 확신하며 하나님께 온전한 헌신과 순종을 다짐하고 또 감사의 예물을 드린다. 초막절은 모든 절기들 중에 가장 즐거운 절기이다. 레위기 23:40, “첫날에는 너희가 아름다운 나무 실과와 종려 가지와 무성한 가지와 시내 버들을 취하여 너희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7일 동안 즐거워할 것이라.”

이스라엘 백성은 민수기 28장과 29장에 규정된 대로 하나님께서 명하신 절기들을 지켜야 했고 하나님께 제사를 드려야 했다. 그들은 서원제나 낙헌제 외에 번제, 소제, 전제(奠祭), 화목제를 하나님께 드려야 하였다. 모세는 여호와께서 자기를 통해 명하신 모든 일을 이스라엘 자손에게 고하였다.

민수기 29장의 교훈은 무엇인가? 구약시대의 제사 제도뿐 아니라, 절기들도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사역을 예표한다.

첫째로, 우리는 그리스도의 단번 속죄사역을 믿자. 속죄일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달려 보배로운 피를 흘려 죽으심으로 우리의 모든 추하고 더러운 죄악들을 씻으셨음을 예표하였다. 로마서 3:25, “이 예수를 하나님이 그의 피로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는 화목제물[유화제물]로 세우셨으니 이는 하나님께서 길이 참으시는 중에 전에 지은 죄를 간과하심으로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려 하심이니.” 히브리서 9:12, “염소와 송아지의 피로 아니하고 오직 자기 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사 단번에 성소에 들어 가셨느니라.” 히브리서 9:22, “율법을 좇아 거의 모든 물건이 피로써 정결케 되나니 피흘림이 없은즉 사함이 없느니라.” 히브리서 10:19-20,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예수의 피를 힘입어 성소에 들어갈 담력을 얻었나니 그 길은 우리를 위하여 휘장 가운데로 열어 놓으신 새롭고 산 길이요 휘장은 곧 저의 육체니라.” 요한계시록 5:9, “새 노래를 노래하여 가로되 책을 가지시고 그 인봉을 떼기에 합당하시도다. 일찍 죽임을 당하사 각 족속과 방언과 백성과 나라 가운데서 사람들을 피로 사서 하나님께 드리시고.”

둘째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속죄의 복음을 널리 전하자. 나팔절에 나팔을 불듯이, 교회는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의 복음을 만방에 널리 전파해야 한다. 그것이 하나님의 뜻이다. 마태복음 28:19-20,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사도행전 1:8,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고린도전서 1:22-24, “유대인은 표적을 구하고 헬라인은 지혜를 찾으나 우리는 십자가에 못박힌 그리스도를 전하니 유대인에게는 거리끼는 것이요 이방인에게는 미련한 것이로되 오직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지혜니라.” 마가복음 16:15- 16, “또 가라사대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 믿고 세례를 받는 사람은 구원을 얻을 것이요 믿지 않는 사람은 정죄를 받으리라.”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널리 전파하자.

셋째로, 우리는 하나님께 감사하며 온전한 헌신과 순종을 결심하자. 하나님께서는 절기들에 수많은 번제물과 소제물을 드리게 규정하셨다. 번제는 온전한 헌신과 순종을 상징하며, 소제는 감사를 상징한다고 본다. 하나님께서는 오늘 우리에게도 온전한 헌신과 순종의 삶과 범사에 감사하는 삶을 교훈하신다. 로마서 12:1-2,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 이는 너희의 드릴 영적 예배니라.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고린도후서 5:14-15,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강권하시는도다. 우리가 생각건대 한 사람이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었은즉 모든 사람이 죽은 것이라. 저가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으심은 산 자들로 하여금 다시는 저희 자신을 위하여 살지 않고 오직 저희를 대신하여 죽었다가 다시 사신 자를 위하여 살게 하려 함이니라.” 우리는 우리를 구원하신 하나님께 감사하며 온전하게 헌신하고 순종하자.

 

 

30장: 서원에 대한 법

[1-5절] 모세가 이스라엘 자손 지파의 두령들에게 일러 가로되 . . . .

모세는 이스라엘 자손 지파들의 지도자들에게 말하였다. “여호와의 명령이 이러하니라. 사람이 여호와께 서원하였거나 마음을 제어하기로 서약하였거든 파약(破約)하지 말고 그 입에서 나온 대로 다 행할 것이니라.”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통해 이스라엘 백성에게 말씀하셨다. 하나님께서 사람들에게 주신 말씀이 성경에 기록되어 있다. 성경은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이며 우리의 유익을 위한 것이다. 그것은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구원 얻고 하나님의 뜻대로 바르고 선하게 살게 하기 위해 또 위로를 얻게 하기 위해 주신 말씀이다.

본문에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은, 사람이 여호와께 서원하였거나 마음을 제어하기로 서약하였으면 그 약속을 어기지 말고 그가 말한 대로 다 행하라는 것이다. 서원이나 서약은 하나님 앞에서 맹세하며 약속하는 것이다. 사람이 무슨 일이든지 하나님 앞에서 그를 증인으로 삼고 말하면 우리는 그것을 맹세한다고 말한다. 서원이나 서약은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을 증인으로 삼고 하나님께 약속하는 것이다. 그것은 하나님과의 약속이므로 엄숙히 지켜야 하며 그렇지 않으면 죄가 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또 모세를 통해 말씀하셨다. “또 여자가 만일 어려서 그 아비 집에 있을 때에 여호와께 서원한 일이나 스스로 제어하려 한 일이 있다 하자. 그 아비가 그의 서원이나 그 마음을 제어하려는 서약을 듣고도 그에게 아무 말이 없으면 그 모든 서원을 행할 것이요 그 마음을 제어하려는 서약을 지킬 것이니라. 그러나 그 아비가 그것을 듣는 날에 허락지 아니하면 그 서원과 마음을 제어하려던 서약이 이루지 못할 것이니 그 아비가 허락지 아니하였은즉 여호와께서 사하시리라.”

결혼 전의 소녀가 아버지 집에 있어서 무엇을 서원하거나 서약할 때 아버지가 그것을 듣는 날에 허락지 않으면 그것은 무효이며 아버지가 그것을 듣는 날에 허락하셔야 그것이 효력을 가진다. 서원이나 서약이 비록 하나님 앞에서 하는 행위지만, 하나님께서는 서원보다 가정의 질서를 더 중시하셨다. 결혼하기 전의 어린 자녀들은 아직 부모의 관리 아래 있는 것으로 간주되었다. 자녀들이 부모님을 공경하고 그들의 말씀에 순종해야 하는 것이 가정의 질서이다. 하나님께서는 가정 질서를 이렇게 중요하게 여기셨다.

[6-8절] 또 혹시 남편을 맞을 때에 서원이나 마음을 . . . .

하나님께서는 또 말씀하셨다. “또 혹시 남편을 맞을 때에 서원이나 마음을 제어하려는 서약을 경솔히 그 입에서 발하였다 하자. 그 남편이 그것을 듣고 그 듣는 날에 그에게 아무 말이 없으면 그 서원을 행할 것이요 그 마음을 제어하려는 서약을 지킬 것이니라. 그러나 그 남편이 그것을 듣는 날에 허락지 아니하면 그 서원과 마음을 제어하려고 경솔히 입술에서 발한 서약이 무효될 것이니 여호와께서 그 여자를 사하시리라.”

본문은 결혼한 아내의 서원에 대해 말한다. 결혼한 아내의 경우에, 아내가 무슨 일을 서원하거나 서약할 때 남편이 그것을 듣고 아무 말도 없으면 허락하는 것으로 인정된다. 그러나 그 남편이 그것을 듣는 날에 허락지 아니하면 그 서원이나 서약은 무효가 된다. 이와 같이, 남편과 아내의 바른 관계, 특히 아내가 남편에게 순종하는 일이 심지어 하나님께 한 서원보다 더 중요하게 간주되었다.

[9절] 과부나 이혼 당한 여자의 서원이나 무릇 그 마음을 . . . .

하나님께서는 또 말씀하셨다. “과부나 이혼 당한 여자의 서원이나 무릇 그 마음을 제어하려는 서약은 지킬 것이니라.” 과부나 이혼 당한 여자의 경우는, 남편에게 매여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서원이나 그 마음을 제어하려는 모든 서약은 반드시 지켜야 한다. 왜냐하면 서원이나 서약은 하나님 앞에서 하는 것이며 하나님과의 약속이므로 반드시 지켜야 하기 때문이다.

[10-16절] 부녀가 혹시 그 남편의 집에 있어 서원을 하였다든지 마음을 제어하려고 서약을 하였다 하자. 그 남편이 그것을 듣고도 . . . .

하나님께서는 또 말씀하셨다. “부녀가 혹시 그 남편의 집에 있어 서원을 하였다든지 마음을 제어하려고 서약을 하였다 하자. 그 남편이 그것을 듣고도 아무 말이 없고 금함이 없으면 그 서원은 무릇 행할 것이요 그 마음을 제어하려는 서약은 무릇 지킬 것이니라. 그러나 그 남편이 그것을 듣는 날에 무효케 하면 그 서원과 마음을 제어하려던 일에 대하여 입술에서 낸 것을 무엇이든지 이루지 못하나니 그 남편이 그것을 무효케 하였은즉 여호와께서 그 부녀를 사하시느니라.” 이것은 본장 6절 이하의 말씀, 즉 결혼한 아내의 경우에 대한 규례를 다시 반복한 것이라고 본다.

하나님께서는 또 말씀하셨다. “무릇 서원과 무릇 마음을 괴롭게 하려는 서약은 그 남편이 그것을 지키게도 할 수 있고 무효케도 할 수 있나니 그 남편이 일향 말이 없으면 아내의 서원과 스스로 제어하려는 일을 지키게 하는 것이니 이는 그가 그것을 들을 때에 그 아내에게 아무 말도 아니하였으므로 지키게 됨이니라. 그러나 그 남편이 들은 지 얼마 후에 그것을 무효케 하면 그가 아내의 죄를 담당할 것이니라.” 아내의 서원이나 서약은 그 남편이 그것을 지키게도 할 수 있고 무효케도 할 수 있다. 하나님께서는 가정에서 남편의 권한을 인정하셨다. 그러나 남편이 그 아내의 서원이나 서약을 들은 지 얼마 후에 그것을 무효케 하면 그가 아내의 죄를 담당할 것이다.

이상의 내용은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하신 율례, 곧 남편이 아내에게, 아비가 자기 집에 있는 소녀에게 행할 일에 대한 것이다. 이 율례는 단순하지만, 거기에는 중요한 뜻이 있어 보인다.

본장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우리는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를 잘 지켜야 한다. 그것은 서원이나 서약의 일반적 진리가 보이는 바이다. 서원이나 서약은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과 약속하는 의미를 가진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인정하고 경외하는 자마다 그 서원을 반드시 지켜야 할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2절에서, “사람이 여호와께 서원하였거나 마음을 제어하기로 서약하였거든 파약(破約)하지 말고[그것을 깨뜨리지 말고] 그 입에서 나온 대로 다 행할 것이니라”고 말씀하셨다.

하나님의 사람 모세도 신명기 23:21-23에서 교훈하기를, “네 하나님 여호와께 서원하거든 갚기를 더디하지 말라.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반드시 그것을 네게 요구하시리니 더디면 네게 죄라. 네가 서원치 아니하였으면 무죄하니라 마는 네 입에서 낸 것은 그대로 실행하기를 주의하라. 무릇 자원한 예물은 네 하나님 여호와께 네가 서원하여 입으로 언약한 대로 행할지니라”고 하였다.

다윗은 시편에서 여호와의 성산에 거하며 그의 장막에 유할 자의 자격을 말하면서 “그 마음에 서원한 것은 해로울지라도 변치 아니하는” 자를 포함하였다(시 15:4). 또 솔로몬도 전도서에서 “네가 하나님께 서원하였거든 갚기를 더디게 말라. 하나님은 우매자를 기뻐하지 아니하시나니 서원한 것을 갚으라. 서원하고 갚지 아니하는 것보다 서원하지 아니하는 것이 나으니”라고 말하였다(전 5:4-5). 우리는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를 잘 지키자.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의 계명에 순종하자.

둘째로, 우리는 부모와 자식의 관계를 잘 지키자. 하나님과의 관계가 중요하지만, 하나님께서는 본장의 규례를 통해 부모와 자식의 관계도 중요함을 보이셨다. 부모는 자녀를 당연히 사랑해야 하지만, 자녀는 부모에게 순종해야 한다. 에베소서 6:1-3, “자녀들아, 너희 부모를 주 안에서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이것이 약속 있는 첫계명이니 이는 네가 잘 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 하나님을 섬긴다는 이유로 사람이 부모에 대한 기본적인 공경과 순종의 의무를 저버려서는 안 된다. 미혼의 어린 자녀가 자기의 생각과 뜻을 가지고 살 수 있지만, 단지 부모의 허락 속에서 그렇게 해야 한다. 심지어 그것이 하나님 앞에서 행한 서원이나 서약의 경우일지라도 그러하다. 하나님께서는 이만큼 우리로 하여금 가정의 질서를 중히 여기게 하신 것이다. 자녀들은 부모를 공경하고 순종해야 한다.

셋째로, 우리는 부부의 관계도 잘 지켜야 한다. 부모와 자식의 관계뿐 아니라, 부부의 관계도 그러하다. 하나님께서는 특히 아내가 남편을 존중하고 그에게 순종하는 관계를 강조하셨다. 물론 남편은 자기 아내를 사랑해야 한다. 남편은 자기 아내를 자신의 갈빗대인 줄 바로 알고 그를 귀히 여기고 사랑해야 한다. 남편은 아내를 울리거나 학대하는 것이 자신을 불행케 만드는 어리석은 일임을 알아야 한다. 그러나 또한 아내도 남편에 대한 바른 생각을 가져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남편을 아내의 머리로 주셨다. 남녀평등의 사상은 사람들이 만들어낸 사상이다. 성경에 계시된 하나님의 뜻은 남녀평등이 아니다. 하나님께서는 남녀를 다 귀히 여기시지만, 가정에서 부부간에 질서를 주셨다. 그것은 남편이 아내를 사랑하고 아내는 남편에게 순종하는 질서이다.

신약성경도 부부 관계의 질서, 특히 아내가 그 남편에게 순종해야 할 질서를 분명하게 말한다. 에베소서 5:22-25, “아내들이여, 자기 남편에게 복종하기를 주께 하듯하라. 이는 남편이 아내의 머리 됨이 그리스도께서 교회의 머리 됨과 같음이니 그가 친히 몸의 구주시니라. 그러나 교회가 그리스도에게 하듯 아내들도 범사에 그 남편에게 복종할지니라. 남편들아, 아내 사랑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고 위하여 자신을 주심같이 하라.” 우리는 가정의 질서를 파괴하지 말고 잘 지키자. 자녀는 부모에게, 아내는 남편에게 순종해야 한다.

 

 

31장: 미디안에 대한 보복

[1-12절]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일러 가라사대 이스라엘 자손의 . . . .

여호와께서는 모세에게 말씀하시기를, “이스라엘 자손의 원수를 미디안에게 갚으라. 그 후에 네가 네 조상에게로 돌아가리라”고 하셨다. 모세는 백성에게 말했다. “너희 중에서 사람을 택하여 싸움에 나갈 준비를 시키고 미디안을 치러 보내어서 여호와의 원수를 미디안에게 갚되 이스라엘 모든 지파에 대하여 각 지파에서 1천명씩을 싸움에 보낼지니라.”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자손의 원수를 미디안에게 갚으라고 말씀하셨고 모세는 하나님의 뜻을 받들어 백성들에게 여호와의 원수를 미디안에게 갚으라고 명하였다. 미디안이 이스라엘에게 행한 일은 그들로 우상숭배와 음행의 죄를 짓게 한 일이었다. 민수기 25:1-3, “이스라엘이 싯딤에 머물러 있더니 그 백성이 모압 여자들과 음행하기를 시작하니라. 그 여자들이 그 신들에게 제사할 때에 백성을 청하매 백성이 먹고 그들의 신들에게 절하므로 이스라엘이 바알브올에게 부속[연합]된지라.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에게 진노하시니라.” 본장 16절은 그 일이 발람의 꾀에서 나온 것임을 증거한다.

이스라엘 백성은 매 지파에서 1천명씩 이스라엘 천만인 중에서 12,000명을 택하여 무장을 시켰다. 모세는 매 지파에 1천명씩 싸움에 보내되 제사장 엘르아살의 아들 비느하스에게 성소의 기구와 신호 나팔을 들려서 그들과 함께 싸움에 보내었다. 그들은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하신 대로 미디안을 쳐서 남자들을 다 죽였고 죽인 자들 외에 미디안의 다섯 왕들, 즉 에위와 레겜과 수르와 후르와 레바를 죽였고, 또 브올의 아들 선지자 발람을 칼로 죽였다.

이스라엘 자손들은 미디안의 부녀들과 그 아이들을 사로잡고 그 가축과 양떼와 재물을 다 탈취하고 그 거처하는 성읍들과 촌락을 다 불사르고, 탈취한 것, 노략한 것, 사람과 짐승을 다 취하였다. 그들은 사로잡은 자들과 노략한 것들과 탈취한 것들을 가지고 여리고 맞은편 요단 가 모압 평지의 진에 도착하여 모세와 제사장 엘르아살과 이스라엘 자손의 회중에게로 나아왔다.

[13-18절] 모세와 제사장 엘르아살과 회중의 족장들이 다 진 . . . .

모세와 제사장 엘르아살과 회중의 족장들은 다 진 밖에 나가서 그들을 영접하다가 모세가 군대장관들 곧 싸움에서 돌아온 천부장들과 백부장들에게 노했다. 모세가 그들에게 말했다. “너희가 여자들을 다 살려두었느냐? 보라 이들이 발람의 꾀를 좇아 이스라엘 자손으로 브올의 사건에 여호와 앞에 범죄케 하여 여호와의 회중에 염병이 일어나게 하였느니라. 그러므로 아이들 중에 남자는 다 죽이고 남자와 동침하여 사내를 안 여자는 다 죽이고 남자와 동침하지 아니하여 사내를 알지 못하는 여자들(핫타프 반나쉼)[어린 여자들, 소녀들](NASB)은 다 너희를 위하여 살려 둘 것이니라.”

[19-24절] 너희는 7일 동안 진 밖에 주둔하라. 무릇 살인자나 . . . .

모세는 또 말했다. “너희는 7일 동안 진 밖에 주둔하라. 무릇 살인자나 죽임을 당한 시체를 만진 자나 제3일과 제7일에 몸을 깨끗케 하고 너희의 포로도 깨끗케 할 것이며 무릇 의복과 무릇 가죽으로 만든 것과 무릇 염소털로 만든 것과 무릇 나무로 만든 것을 다 깨끗케 할지니라.” 전쟁에 나갔던 자들은 하나님의 명령대로 제3일과 제7일에 정결케 하는 의식을 행해야 하였다.

제사장 엘르아살이 싸움에 나갔던 군인들에게 보충적으로 말하였다. “이는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하신 법률이니라. 금, 은, 동, 철과 상납(tin, 주석)과 납의 무릇 불에 견딜 만한 물건은 불을 지나게 하라. 그리하면 깨끗하려니와 오히려 정결케 하는 물로 그것을 깨끗케 할 것이며 무릇 불에 견디지 못할 모든 것은 물을 지나게 할 것이니라. 너희는 제7일에 옷을 빨아서 깨끗케 한 후에 진에 들어올지니라.” 노획한 모든 물건들을 불과 물로 정결케 해야 하였다.

[25-31절]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일러 가라사대 너는 제사장 . . . .

여호와께서는 또 모세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제사장 엘르아살과 회중의 족장들로 더불어 이 탈취한 사람과 짐승을 계수하고 그 얻은 물건을 반분하여 그 절반은 싸움에 나갔던 군인들에게 주고 절반은 회중에게 주고, 싸움에 나갔던 군인들로는 사람이나 소나 나귀나 양떼의 500분지 1을 여호와께 드리게 하되 곧 이를 그들의 절반에서 취하여 여호와의 거제로 제사장 엘르아살에게 주고, 또 이스라엘 자손의 얻은 절반에서는 사람이나 소나 나귀나 양떼나 각종 짐승을 50분지 1을 취하여 여호와의 성막을 맡은 레위인에게 주라.” 모세와 제사장 엘르아살은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하신 대로 하였다.

[32-41절] 그 탈취물 곧 군인들의 다른 탈취물 외에 양이 . . . .

그 탈취물 곧 군인들의 다른 탈취물 외에는 양이 675,000이요 소가 72,000이요 나귀가 61,000이요 사람은 남자와 동침하지 아니하여서 남자를 알지 못하는 여자가 도합 32,000이었다. 그 절반 곧 싸움에 나갔던 자들의 것이 양이 337,500이라, 여호와께 세(稅)로 드린 양이 675요; 소가 36,000이라, 그 중에서 여호와께 세(稅)로 드린 것이 72두요; 나귀가 30,500라, 그 중에서 여호와께 세(稅)로 드린 것이 61이요; 사람이 16,000이라, 그 중에서 여호와께 세(稅)로 드리운 자가 32명이니; 여호와께 거제의 세(稅)로 드린 것을 모세가 제사장 엘르아살에게 주었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하심과 같았다.

[42-47절] 모세가 싸움에 나갔던 자에게서 나누어 취하여 . . . .

모세가 싸움에 나갔던 자에게서 나누어 취하여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준 절반 곧 회중이 얻은 절반은 양이 337,500이요 소가 36,000이요 나귀가 30,500이요 사람이 16,000이었다. 이스라엘 자손들의 그 절반에서 모세는 사람들이나 짐승의 50분지 1을 취하여 여호와의 장막을 맡은 레위인들에게 주었으니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하심과 같았다.

[48-54절] 군대의 장관들 곧 천부장과 백부장들이 모세에게 나아와서 그에게 고하되 당신의 종들의 영솔한 군인을 계수한즉 우리 중 . . . .

군대의 장관들 곧 천부장과 백부장들이 모세에게 나아와 그에게 고하였다. “당신의 종들이 영솔한 군인을 계수한즉 우리 중 한 사람도 축나지 아니하였기로 우리 각 사람의 얻은 바 금 패물 곧 발목고리, 손목고리, 인장반지, 귀고리, 팔고리들을 여호와의 예물로 우리의 생명을 위하여 여호와 앞에 속죄하려고 가져왔나이다.” 그것은 자원하는 예물이었다. 모세와 제사장 엘르아살은 그들에게서 그 금으로 만든 모든 패물을 취하였다. 천부장과 백부장들이 여호와께 드린 거제의 금의 도합이 16,750세겔(약 168킬로그램)이었는데, 그것은 군인들이 각기 자기를 위하여 탈취한 것이었다. 모세와 제사장 엘르아살은 천부장과 백부장들에게서 금을 취하여 회막에 들여서 여호와 앞에 이스라엘 자손의 기념을 삼았다.

우리는 본장에서 몇 가지 교훈을 찾는다. 첫째로, 죄는 징벌을 받아야 한다. 발람의 꾀를 좇아 이스라엘 백성을 범죄케 한 미디안의 죄는 징벌을 받아야 하였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자손의 원수를 미디안에게 갚으라고 명하셨다. 모세도 여호와의 원수를 미디안에게 갚으라고 명하였다. 그들은 하나님의 명을 따라 미디안의 모든 남자들과 그 다섯 왕들과 선지자 발람을 죽였다. 모세는 또 남자들과 함께 동침한 여자들도 다 죽였다. 그들은 이스라엘 남자들을 유혹했던 자들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미디안의 죄는 묵과될 수 없었다. 죄는 반드시 보응을 받아야 한다. 죄의 값은 사망이다(롬 6:23).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 공로가 아니면, 아무도 죄의 징벌을 피할 수 없다.

둘째로, 우리는 하나님의 원수들과 싸워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미디안을 ‘이스라엘 자손의 원수’라고 말씀하셨고, 모세는 그들을 ‘여호와의 원수’라고 불렀다. 오늘날 우리의 원수는 마귀와 악령들이며 그들의 종들이다. 에베소서 6:12는,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에 대한 것이 아니요 정사와 권세와 이 어두움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에게 대함이라”고 말한다. 오늘날 마귀와 악령들은 많은 교회들 안에 이단사상들과 세상 풍조들을 침투시키고 있다. 신약교회는 다른 예수를 전파하거나 다른 영을 받게 하거나 다른 복음을 전하는 자들과 싸워야 한다(고후 11:4). 우리는 하나님의 원수들과 힘써 싸워야 한다.

셋째로, 우리는 죄와 싸워야 한다. 이스라엘 백성이 미디안과 원수가 된 것은 그들로 인해 범죄했기 때문이다. 이스라엘 백성은 싯딤에 머물 때 모압에 사는 미디안 여자들의 유혹으로 우상숭배하고 음행하였다. 그 결과,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께서 내리신 무서운 전염병으로 24,000명이 죽었었다(민 25장). 오늘날도 우리는 우상숭배와 음행을 조심해야 한다. 특히, 현대인의 우상은 돈이다. 사람은 하나님과 재물을 둘 다 섬길 수 없다(마 6:24). 탐심은 우상숭배이다(골 3:5). 우리는 돈 사랑을 버려야 한다. 사도 바울은 부하려 하는 자들이 파멸에 빠지게 하는 여러 가지 시험에 떨어지며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된다고 경고하였다(딤전 6:9-10). 성도가 돈을 사랑하는 마음을 버리지 않는다면 신앙생활에 있어서 실패자가 될 것이다.

우리는 음란한 세상과도 싸워야 한다. 우리는 말과 행위, 보는 것, 듣는 것, 복장까지도 조심해야 한다. 우리는 세상의 음란 풍조를 용납하지 말아야 한다. 성도는 각종 음란물을 멀리해야 한다. 죄는 보혈의 샘에서 씻음받고 다시 범죄치 않도록 힘써야 한다. 그래야 하나님께서 기뻐하시고 함께하시고 평강과 형통을 체험할 수 있다.

 

 

32장: 세 지파가 요단 동편 땅을 얻음

[1-5절] 르우벤 자손과 갓 자손은 심히 많은 가축의 떼가 . . . .

르우벤 자손과 갓 자손은 심히 많은 가축의 떼가 있었다. 그들이 야셀 땅과 길르앗 땅을 보니 그 곳은 가축에 적당한 곳이었다. 그들은 모세와 제사장 엘르아살과 회중 족장들에게 와서 말했다. “아다롯과 디본과 야셀과 니므라와 헤스본과 엘르알레와 스밤과 느보와 브온 곧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회중 앞에서 쳐서 멸하신 땅은 가축에 적당한 곳이요 당신의 종들에게는 가축이 있나이다.” 또 말하였다. “우리가 만일 당신에게 은혜를 입었으면 이 땅을 당신의 종들에게 산업으로 주시고 우리로 요단을 건너지 않게 하소서.”

이스라엘 자손들이 요단 강을 건너서 가나안 땅에 들어가 가나안 족속들과 전쟁을 하여 그 땅을 정복해야 할 시점에, 그들이 마음과 힘을 합하여야 할 그때에, 그들은 잠시라도 자기들의 평안만 추구하는 이기적인 생각을 하였던 것이다. 그들의 생각은 짧았다. 그들의 잘못은 작은 것이 아니었다.

[6-15절] 모세가 갓 자손과 르우벤 자손에게 이르되 너희 . . . .

모세는 갓 자손과 르우벤 자손에게 말했다. “너희 형제들은 싸우러 가거늘 너희는 여기 앉았고자 하느냐? 너희가 어찌하여 이스라엘 자손으로 낙심케 하여서 여호와께서 그들에게 주신 땅으로 건너갈 수 없게 하려느냐?” 모세는 그들의 요청이 다른 지파들 자손들을 낙심케 만드는 생각임을 지적하였다. 전쟁을 앞두고 일치 단합하고 협력하여야 할 때에, 동지애와 전우애를 발휘해야 할 때에, 그 어느 때보다도 하나님께 헌신하고 이스라엘 온 회중을 위하여 헌신하고 지도자 모세에게 순종해야 할 그때에, 그들은 매우 잘못된 생각을 하였고 잘못된 요청을 하였던 것이다.

모세는 그들의 잘못이 그들의 열조들이 40년 전 가데스 바네아에서 잘못한 것과 비슷하다고 지적하였다. “너희 열조도 내가 가데스 바네아에서 그 땅을 보라고 보내었을 때에 그리 하였었나니 그들이 에스골 골짜기에 올라가서 그 땅을 보고 이스라엘 자손으로 낙심케 하여서 여호와께서 그들에게 주신 땅으로 갈 수 없게 하였었느니라.” 모세는 가데스 바네아에서 열 정탐꾼들이 부정적이고 불신앙적인 보고를 함으로써 이스라엘 회중을 낙심케 하였고 하나님의 허락하신 그 땅에 들어가지 못하게 하였음을 상기시켰다.

모세는 또 그때에 하나님께서 진노하셨고 그의 진노로 이스라엘 자손들이 광야에서 다 멸망했음을 상기시켰다. “그때에 여호와께서 진노하사 맹세하여 가라사대 애굽에서 나온 자들의 20세 이상으로는 한 사람도 내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맹세한 땅을 정녕히 보지 못하리니 이는 그들이 나를 온전히 순종치 아니하였음이니라. 다만 그나스 사람 여분네의 아들 갈렙과 눈의 아들 여호수아는 볼 것은 여호와를 온전히 순종하였음이니라 하시고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에게 진노하사 그들로 40년 동안 광야에 유리(流離)하게 하심으로 여호와의 목전에 악을 행한 그 세대가 필경은 다 소멸하였느니라.”

또 그는 르우벤 자손과 갓 자손의 요청도 하나님의 노를 일으킬 만한 잘못임을 지적하였다. “보라 너희는 너희의 열조를 계대하여 일어난 죄인의 종류로서 이스라엘을 향하신 여호와의 노를 더욱 심하게 하는도다. 너희가 만일 돌이켜 여호와를 떠나면 여호와께서 또 이 백성을 광야에 버리시리니 그리하면 너희가 이 모든 백성을 멸망시키리라.” 그들의 요청은 결코 작은 잘못이 아니었다. 그것은 하나님의 뜻을 거스르는 것이었고 이스라엘 회중으로 하여금 하나님의 뜻을 행하지 못하도록 힘을 빼고 낙심시키는 말이었다.

[16-19절] 그들이 모세에게 가까이 나아와 가로되 우리가 . . . .

르우벤 자손과 갓 자손은 모세의 지적과 책망을 듣고 즉시 회개하였다. 그들은 그들의 생각을 반성하고 그 요청을 철회하였고 하나님의 뜻에 맞게 수정하였다. 그들은 모세에게 가까이 나아와 말했다. “우리가 이 곳에 우리 가축을 위하여 우리를 짓고 우리 유아들을 위하여 성읍을 건축하고 이 땅 거민의 연고로 우리 유아들로 그 견고한 성읍에 거하게 한 후에, 우리는 무장하고 이스라엘 자손을 그 곳으로 인도하기까지 그들의 앞에 행하고 이스라엘 자손이 각기 기업을 얻기까지 우리 집으로 돌아오지 아니하겠사오며 우리는 요단 이편 곧 동편에서 산업을 얻었사오니 그들과 함께 요단 저편에서는 기업을 얻지 아니하겠나이다.”

그들은 그들의 각오와 결심을 분명하게 표현하였다. 그것은 모세를 통해 주신 하나님의 지적과 책망을 달게 받은 것이었다. 그것은 그들의 처음의 요청을 철회하고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방향으로 확실하게 고친 것이었다. 그것이 회개이다. 회개는 생각을 바꾸는 것이다. 사람의 생각은 그의 인격을 형성한다. 회개는 일차적으로 자기 중심적인 생각에서 하나님 중심적인 생각으로 생각을 바꾸는 것이다. 그것은 우리의 잘못된 생각을 포기하고 하나님의 뜻에 맞게 고치는 것이다. 우리의 생각을 바꾸어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방향으로 결심하는 것이다. 그들은 생각을 고쳤다.

[20-27절] 모세가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가 만일 이 일을 . . . .

모세는 그들의 수정된 요청을 조건부로 허락하며 말했다. “너희가 만일 이 일을 행하여 무장하고 여호와 앞에서 가서 싸우되 너희가 다 무장하고 여호와 앞에서 요단을 건너가서 여호와께서 그 원수를 자기 앞에서 쫓아내시고 그 땅으로 여호와 앞에 복종케 하시기까지 싸우면 여호와의 앞에서나 이스라엘의 앞에서나 무죄히 돌아오겠고 이 땅은 여호와 앞에서 너희의 산업이 되리라마는 너희가 만일 그같이 아니하면 여호와께 범죄함이니 너희 죄가 정녕 너희를 찾아낼 줄 알라. 너희는 유아들을 위하여 성읍을 건축하고 양을 위하여 우리를 지으라. 그리하고 너희 입에서 낸 대로 행하라.”

갓 자손과 르우벤 자손은 다시 다짐하며 모세에게 대답하였다. “우리 주의 명대로 종들이 행할 것이라. 우리의 어린 자와 아내와 양떼와 모든 가축은 이 곳 길르앗 성읍들에 두고 우리 주의 말씀대로 종들은 무장하고 여호와 앞에서 다 건너가서 싸우리이다.” 특별히 이스라엘 자손들이 모세 앞에서 자신들을 ‘종들’이라고 표현한 것은 그들이 40년 광야 생활을 통해 어느 정도 훈련되었음을 보이는 것 같다. 그들은 적어도 지도자 모세 앞에서 또 후에 여호수아 앞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는 자들로 변화된 것 같다.

[28-32절] 이에 모세가 그들에게 대하여 제사장 엘르아살과 눈의 아들 여호수아와 이스라엘 자손 지파의 두령들에게 명하니라. 모세가 . . . .

모세는 그들에게 대하여 제사장 엘르아살과 눈의 아들 여호수아와 이스라엘 자손 지파의 지도자들에게 공식적으로 명하였다. 그는 그들에게 말하였다. “갓 자손과 르우벤 자손이 만일 각기 무장하고 너희와 함께 요단을 건너가서 여호와 앞에서 싸워서 그 땅이 너희 앞에 항복하기에 이르거든 길르앗 땅을 그들에게 산업으로 줄 것이니라. 그러나 그들이 만일 너희와 함께 무장하고 건너지 아니하거든 가나안 땅에서 너희 중에 산업을 줄 것이니라.”

갓 자손과 르우벤 자손은 이스라엘 회중 앞에서 다시 다짐하였다. “여호와께서 당신의 종들에게 명하신 대로 우리가 행할 것이라. 우리가 무장하고 여호와 앞에서 가나안 땅에 건너가서 요단 이편으로 우리의 산업이 되게 하리이다.” 그들은 그들의 수정된 요청을 성심으로 행함으로 요단 이편의 땅을 자기들의 기업으로 얻겠다고 공적으로 다짐한 것이다.

[33-42절] 모세가 갓 자손과 르우벤 자손과 요셉의 아들 므낫세 반 지파에게 아모리인의 왕 시혼의 국토와 바산 왕 옥의 국토를 주되 . . . .

모세는 갓 자손과 르우벤 자손과 요셉의 아들 므낫세 반 지파에게 아모리인의 왕 시혼의 국토와 바산 왕 옥의 국토를 주되 곧 그 나라와 그 경내 성읍들과 그 성읍들의 사면 땅을 그들에게 주었다. 그래서 갓 자손은 디본과 아다롯과 아로엘과 아다롯소반과 야셀과 욕브하와 벧니므라와 벧하란 등의 견고한 성읍을 건축하였고 또 양을 위하여 우리를 지었으며, 르우벤 자손은 헤스본과 엘르알레와 기랴다임과 느보와 바알므온 등을 건축하고 그 이름을 고쳤고 또 십마를 건축하고 건축한 성읍들에 새 이름들을 주었다. 또 므낫세의 아들 마길의 자손은 가서 길르앗을 쳐서 취하고 거기에 있는 아모리인을 쫓아내었으므로 모세가 길르앗을 므낫세의 아들 마길에게 주므로 그가 거기 거하였고 므낫세의 아들 야일은 가서 그 촌락들을 취하고 하봇야일이라 칭했으며 노바는 가서 그낫과 그 향촌을 취하고 자기 이름을 따라서 노바라 칭하였다.

본장의 교훈은 무엇인가? 두 가지 교훈이 있다고 본다. 첫째로, 우리는 형제를 낙심케 말아야 한다. 모세는 르우벤 자손과 갓 자손에게 “너희가 어찌하여 이스라엘 자손으로 낙심케 하여서 여호와께서 그들에게 주신 땅으로 건너갈 수 없게 하려느냐?”고 지적하며 책망하였다(7절). 그는 그들의 말과 행동이 이전에 가데스 바네아에서 열 정탐꾼의 말과 행동과 같다고 말하였다(9절). 형제를 낙심케 하는 것은 그로 하여금 불신앙의 죄를 짓게 하는 것이 될 것이다. 형제를 범죄케 하는 것은 작은 잘못이 아니다. 우리는 교우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말씀에 복종하는 방향으로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하도록 위로하고 격려해야 할 것이다. 그들로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거나 멀리하도록 만들어서는 안 된다. 우리는 이것을 덕이라는 말로 표현한다. ‘덕’이라는 말은 남을 유익케 하고 남의 믿음을 세운다는 뜻이다. 사도 바울은 로마서 14:19에서 “이러므로 우리가 화평의 일과 서로 덕을 세우는 일을 힘쓴다”고 말했고, 데살로니가전서 5:14에 “또 형제들아, 너희를 권면하노니 규모 없는 자들을 권계하며 마음이 약한 자들을 안위하고 힘이 없는 자들을 붙들어 주며 모든 사람을 대하여 오래 참으라”고 했다. 우리는 형제를 낙심케 하지 말고 위로 격려하고 덕을 세우는 자가 되자.

둘째로, 우리는 하나님의 일에 합심하여 동참하자. 가나안 전쟁을 앞두고 르우벤 자손과 갓 자손은 잠시 잘못 생각해서 요단강 동편에 안주하기를 원하였다. 그것은 이기적인 생각이었다. 그것은 하나님의 뜻을 거역하는 생각이었다. 하나님의 뜻은 이스라엘 자손들이 다함께 가나안 전쟁에 참여하는 것이었다. 거기에는 예외가 있을 수 없었다. 그들은 하나님의 명령을 따라 가나안 땅을 정복해야 하였다. 르우벤 자손과 갓 자손은 모세의 지적과 책망을 들은 후 뒤늦게라도 생각을 고쳤고 합심하여 하나님의 일에 참여하기로 결심했다.

신약교회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은 무엇인가? 하나님께서는 교회에 예배, 영적 성장, 전도의 임무를 주셨다. 우리는 성경에 밝히 교훈된 이 삼대 임무에 합심하여 동참해야 한다. 우리는 하나님께 참된 예배를 드려야 한다. 개인적으로도 그러하지만, 특히 공적으로 교회로 모여 예배드려야 한다. 마음을 모아 찬송하며 기도하며 설교말씀을 받고 헌금하자. 또 말씀을 배우고 봉사하고 교제함으로써 영적 성장을 힘쓰자. 그것이 참된 교회의 건립이다. 그리고 복음을 널리 전하자. 이 일에 있어서 예외자가 없게 하자. 여러분이 하나님을 믿는 자라면, 여러분이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구원받은 자라면, 모두 한 마음으로 하나님의 일에 동참하자. 히브리서 10:23-25, “또 약속하신 이는 미쁘시니 우리가 믿는 도리의 소망을 움직이지 말고 굳게 잡아 서로 돌아보아 사랑과 선행을 격려하며 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하지 말고 오직 권하여 그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더욱 그리하자.”

 

 

33장: 광야 노정

[1-2절] 이스라엘 자손이 모세와 아론의 관할 하에 그 항오대로 애굽 땅에서 나오던 때의 노정이 이러하니라. 모세가, 여호와의 명대로 . . . .

본장은 이스라엘 자손이 모세와 아론의 관할 하에 그 항오(치브오삼)[그들의 군대들]대로 애굽 땅에서 나오던 노정(路程)을 기록한다. 모세는, 그들이 여호와의 명대로 그 노정을 따라 진행한 것을 기록하였다. 그들이 진행한 노정은 3절 이하에 기록되어 있다.

모세 시대에 이미 책을 쓰는 문화가 발달해 있었고 모세는 책들을 썼다. 또 모세는 그 당시에 애굽에서 종살이하던 이스라엘 자손 중에서 책을 쓰기에 가장 적합한 인물이었다. 그는 애굽의 궁중 교육을 받은 인물이었다. 성경은 그가 책들을 썼다고 증거한다.

본문은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서 나온 노정을 기록하였다고 증거한다. 또 출애굽기 24:4, 7은, 모세가 하나님께서 시내산에서 주신 율법의 모든 말씀을 기록하였고 그 언약서를 백성에게 낭독하였다고 증거한다. 또 신명기 31:24는 그가 모압 평지에서 율법을 재강론한 후에도 그 율법의 말씀을 다 책에 썼다고 증거한다. 여호수아서의 초두에 보면, 하나님께서는 여호수아에게 모세의 율법책을 항상 묵상하며 그 말씀대로 지켜 행하라고 명령하셨다(수 1:7-8).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성경을 주셨다. 우리는 구약성경의 처음 다섯 권이 모세가 썼다는 사실을 믿자. 또 그 다섯 권의 내용의 역사적 권위와 신빙성을 믿자. 우리는 모든 성경을 다 믿자.

[3-4절] 그들이 정월 15일에 라암셋에서 발행하였으니 곧  유월절 다음 날이라. 이스라엘 자손이 애굽 모든 사람의 목전에서 큰 . . . .

이스라엘 자손들은 정월 15일에 애굽의 라암셋에서 출발하였는데, 그것은 유월절 다음 날이었다. 이스라엘 자손들은 애굽 모든 사람들의 눈 앞에서 큰 권능으로 나왔다. 애굽인들이 여호와께서 그들 중에 치신 그 모든 장자(長子)를 장사하는 때이었다. 여호와께서 애굽 사람들의 신(神)들에게도 벌을 주셨다. 하나님께서 애굽 땅에 내리신 열 가지 재앙은 애굽 사람들의 신들에게 내린 벌과 같았다. 애굽 왕 바로는 열 번째 재앙인 장자가 죽는 재앙을 통해 마침내 항복하고 이스라엘 백성을 해방시켜 주었다.

[5-14절] 이스라엘 자손이 라암셋에서 발행하여 숙곳에 진 쳤고 숙곳에서 발행하여 광야 끝 에담에 진 쳤고 에담에서 발행하여 바알스본 앞 비하히롯으로 돌아가서 믹돌 앞에 진 쳤고 하히롯[비하히롯](KJV, NIV) 앞에서 발행하여 바다 가운데로 지나 광야에 이르고 에담 광야로 삼일 길쯤 들어가서 마라에 진 쳤고 마라에서 발행하여 엘림에 이르니 엘림에는 샘물 열 둘과 종려 칠십 주가 있으므로 거기 진 쳤고 엘림에서 발행하여 홍해 가에 진 쳤고 홍해 가에서 발행하여 신 광야에 진 쳤고 신 광야에서 발행하여 돕가에 진 쳤고 돕가에서 발행하여 알루스에 진 쳤고 알루스에서 발행하여 르비딤에 진 쳤는데 거기는 백성의 마실 물이 없었더라.

이스라엘 자손은 라암셋에서 출발하여 숙곳에 진 쳤고 숙곳에서 출발하여 광야 끝 에담에 진 쳤고 에담에서 출발하여 바알스본 앞 비하히롯으로 돌아가서 믹돌 앞에 진 쳤다. 거기에서 그들은 애굽 군대의 추격을 받았고 홍해에 몰살될 위험에 처했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은혜와 기적으로 그들은 홍해를 마른 땅같이 건넜으나 애굽의 군대들은 홍해 물에 몰살되었다. 이스라엘 자손이 엘림에 도착하자 거기에는 샘물 열 둘과 종려나무 70그루가 있었다. 하나님께서는 불기둥과 구름기둥으로 그들을 인도하셨고 보호하셨고 그들에게 시시때때로 먹을것과 마실 것을 주셨다.

[15-37절] 르비딤에서 발행하여 시내 광야에 진 쳤고 시내 광야에서 발행하여 기브롯핫다아와에 진 쳤고 기브롯핫다아와에서 발행하여 하세롯에 진 쳤고 하세롯에서 발행하여 릿마에 진 쳤고 릿마에서 발행하여 림몬베레스에 진 쳤고 림몬베레스에서 발행하여 립나에 진 쳤고 립나에서 발행하여 릿사에 진 쳤고 릿사에서 발행하여 그헬라다에 진 쳤고 그헬라다에서 발행하여 세벨산에 진 쳤고 세벨산에서 발행하여 하라다에 진 쳤고 하라다에서 발행하여 막헬롯에 진 쳤고 막헬롯에서 발행하여 다핫에 진 쳤고 다핫에서 발행하여 데라에 진 쳤고 데라에서 발행하여 밋가에 진 쳤고 밋가에서 발행하여 하스모나에 진 쳤고 하스모나에서 발행하여 모세롯에 진 쳤고 모세롯에서 발행하여 브네야아간에 진 쳤고 브네야아간에서 발행하여 홀하깃갓에 진 쳤고 홀하깃갓에서 발행하여 욧바다에 진 쳤고 욧바다에서 발행하여 아브로나에 진 쳤고 아브로나에서 발행하여 에시온게벨에 진 쳤고 에시온게벨에서 발행하여 신 광야 곧 가데스에 진 쳤고 가데스에서 발행하여 에돔 국경 호르산에 진 쳤더라.

15-37절은 가데스바네아에서 열두 정탐꾼을 보내기 전후로부터 모압 평지에 도달하기까지 약 40년간의 노정을 기록하였다. 18절의 “하사롯에서 출발하여 릿마에 진 친” 때가 그들이 바란 광야에 도착한 때이며(민 12:16) 거기서 그들은 열두 정탐꾼을 가나안 땅에 보냈다. 거기에서 그들이 불신앙으로 인해 범죄했을 때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40일 정탐 기간의 하루를 1년으로 계산하여 40년간 광야에서 유리(流離)하는 벌을 내리셨다. 그 후에 그들은 40년간 광야에서 유리하였다. 그러나 그런 징벌 속에서도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불기둥과 구름기둥의 인도하심을 주셨고 지도자 모세와 아론을 주셨고 만나와 메추라기를 양식으로 주셨고 시시때때로 반석에서 물이 나게 하셨고 발이 부릍지 않고 옷이 해어지지 않게 하셨다.

[38-40절] 이스라엘 자손이 애굽 땅에서 나온 지 40년 5월 1일에 제사장 아론이 여호와의 명으로 호르산에 올라가 거기서 죽었으니 . . . .

이스라엘 자손이 애굽 땅에서 나온 지 40년 5월 1일 제사장 아론은 여호와의 명으로 호르산에 올라가 거기서 죽었다. 아론이 호르산에서 죽던 때에 그의 나이는 123세이었다. 가나안 땅 남방에 거한 가나안 사람 아랏 왕은 이스라엘의 온다는 소문을 들었다(민 21:1).

[41-49절] 그들이 호르산에서 발행하여 살모나에 진 쳤고 살모나에서 발행하여 부논에 진 쳤고 부논에서 발행하여 오봇에 진 쳤고 오봇에서 발행하여 모압 변경 이예아바림에 진 쳤고 이임에서 발행하여 디본갓에 진 쳤고 디본갓에서 발행하여 알몬디블라다임에 진 쳤고 알몬디블라다임에서 발행하여 느보 앞 아바림산에 진 쳤고 아바림산에서 발행하여 여리고 맞은편 요단 가 모압 평지에 진 쳤으니 요단 가 모압 평지의 진이 벧여시못에서부터 아벨싯딤에 미쳤었더라.

41-49절까지는 호르산에서부터 모압 평지까지의 노정을 기록한다. 그 기간에 몇 가지 일들이 민수기 20-25장에 기록되어 있다.

[50-56절] 여리고 맞은편 요단 가 모압 평지에서 여호와께서 . . . .

여리고 맞은편 요단 가 모압 평지에서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셨다. “이스라엘 자손에게 말하여 그들에게 이르라. 너희가 요단을 건너 가나안 땅에 들어가거든 그 땅 거민을 너희 앞에서 다 몰아내고 그 새긴 석상과 부어 만든 우상을 다 파멸하며 산당을 다 훼파하고 그 땅을 취하여 거기 거하라. 내가 그 땅을 너희 산업으로 너희에게 주었음이라. 너희의 가족을 따라서 그 땅을 제비 뽑아 나눌 것이니 수가 많으면 많은 기업을 주고 적으면 적은 기업을 주되 각기 제비 뽑힌 대로 그 소유가 될 것인즉 너희 열조의 지파를 따라 기업을 얻을 것이니라. 너희가 만일 그 땅 거민을 너희 앞에서 몰아내지 아니하면 너희의 남겨둔 자가 너희의 눈에 가시와 너희의 옆구리에 찌르는 것이 되어 너희 거하는 땅에서 너희를 괴롭게 할 것이요 나는 그들에게 행하기로 생각한 것을 너희에게 행하리라.”

본장에 기록된 광야 노정에서 얻는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세상에서의 인생의 삶은 광야 생활과 같은 고난의 삶이다. 레위기 25:23은, “토지를 영영히 팔지 말 것은 토지는 다 내 것임이라. 너희는 나그네요 우거하는 자로서 나와 함께 있느니라”고 말씀한다. 인생은 나그네요 우거하는 자들이다. 역대상 29:15에서 다윗은 말하기를, “주 앞에서는 우리가 우리 열조와 다름이 없이 나그네와 우거한 자라. 세상에 있는 날이 그림자 같아서 머무름이 없나이다”라고 하였다. 인간은 이 세상에 태어나서 제한된 수명을 살다가 이 세상을 떠나간다. 또 인간의 이 세상의 삶은 고생과 수고의 삶이다. 욥은 “세상에 있는 인생에게 전쟁[힘든 노동](BDB, NASB, NIV)이 있지 아니하냐? 그 날이 품꾼의 날과 같지 아니하냐?”고 말했다(욥 7:1). 모세는 “우리의 연수가 칠십이요 강건하면 팔십이라도 그 연수의 자랑은 수고와 슬픔뿐이요 신속히 가니 우리가 날아가나이다”라고 말하였다(시 90:10).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의 소망을 세상에 두지 말고 하나님과 천국에 두자.

둘째로, 우리는 하나님의 긍휼의 인도하심을 감사하자.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자손을 징벌하시면서도 그의 긍휼로 불기둥과 구름기둥으로 그들을 인도하셨고 모세를 지도자로 주셨고 만나와 메추라기를 식량으로 주셨고 반석에서 물이 나오게 하셨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구원하신 후에, 우리의 부족이 없지 않지만 그래서 때때로 징책도 하시지만, 그의 크신 긍휼로 우리를 인도하시고 지키시고 공급하신다. 그는 오늘날도 우리를 푸른 풀밭과 잔잔한 물가로 인도하시는 선한 목자이시다(시 23:1). 그는 우리 속에 시작하신 선한 일 곧 구원을 끝까지 이루신다(빌 1:6). 그는 이 세상 끝날까지 함께하시고(마 28:20) 성령으로 우리 속에 영원히 거하시고(요 14:16) 우리로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게 하신다(롬 8:14). 그는 모든 일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게 하시고(롬 8:28)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는 자들에게 모든 것을 주신다(마 6:33). 우리는 하나님의 긍휼의 인도하심을 감사하자.

셋째로,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온전한 순종을 명하신다. 이스라엘의 40년 광야생활은 열 정탐꾼의 불신앙적 보고와 그것을 따랐던 회중들의 불신앙에서 비롯되었다. 오직 여호수아와 갈렙 두 사람만 하나님을 믿고 온전히 순종하였다(민 14장). 민수기 32:12, “다만 그나스 사람 여분네의 아들 갈렙과 눈의 아들 여호수아는 볼 것은 여호와를 온전히 순종하였음이니라.” 죄와 불순종에는 고난이 따르고 믿음과 순종에는 평안이 따른다. 그러므로 혹시 범죄했으면 즉시 회개해야 한다. 우리는 여호수아와 갈렙을 본받아 하나님을 온전히 믿고 온전히 순종하자.

 

 

34장: 가나안 땅의 경계

[1-15절]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일러 가라사대 너는 이스라엘 . . . .

1-15절은,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스라엘 자손이 가나안 땅, 곧 요단강 서쪽에 들어가서 얻을 땅, 곧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주시는 기업의 사방 경계에 대해 말씀하신 내용을 기록한다.

남쪽 경계는 에돔 곁에 접근한 신 광야이었다. 동쪽으로 염해 끝에서 시작하여 돌아서 아그랍빔 언덕 남쪽에 이르고 신을 지나 가데스 바네아 남쪽에 이르고 또 하살아달을 지나 아스몬에 이르고 아스몬에서 돌아서 애굽 시내를 지나 바다 곧 지중해까지 이르렀다.

서쪽 경계는 대해(大海) 곧 지중해가 경계가 되었다.

북쪽 경계는 대해에서부터 호르산까지 그리고 호르산에서 하맛 어귀에 이르러 스닷에 미치고 또 시브론을 지나 하살에난에 미쳤다.

동쪽 경계는 하살에난에서 스밤에 이르고 또 스밤에서 리블라로 내려가서 아인 동쪽에 이르고 또 내려가서 긴네렛 곧 갈릴리 호수 동쪽 해변에 미치고 또 요단으로 내려가서 염해에 미쳤다.

모세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명하여 “이는 너희가 제비 뽑아 얻을 땅이라. 여호와께서 이것을 아홉 지파와 반 지파에게 주라고 명하셨나니 이는 르우벤 자손의 지파와 갓 자손의 지파가 함께 그들의 종족대로 그 기업을 받았고 므낫세의 반 지파도 기업을 받았음이라. 이 두 지파와 반 지파가 여리고 맞은편 요단 건너편[이편] 곧 해 돋는 편에서 그 기업을 받았느니라.”

[16-29절] 여호와께서 또 모세에게 일러 가라사대 너희에게 땅을 기업으로 나눌 자의 이름이 이러하니 제사장 엘르아살과 눈의 아들 여호수아니라. 너희는 또 기업의 땅을 나누기 위하여 매 지파에 한 족장씩 택하라. 그 사람들의 이름은 이러하니 유다 지파에서는 여분네의 아들 갈렙이요 시므온 지파에서는 암미훗의 아들 스므엘이요 베냐민 지파에서는 기슬론의 아들 엘리닷이요 단 자손 지파의 족장 요글리의 아들 북기요 요셉 자손 중 므낫세 자손 지파의 족장 에봇의 아들 한니엘이요 에브라임 자손 지파의 족장 십단의 아들 그므엘이요 스불론 자손 지파의 족장 바르낙의 아들 엘리사반이요 잇사갈 자손 지파의 족장 앗산의 아들 발디엘이요 아셀 자손 지파의 족장 슬로미의 아들 아히훗이요 납달리 자손 지파의 족장 암미훗의 아들 브다헬이니라 하셨으니 여호와께서 명하사 가나안 땅에서 이스라엘 자손에게 기업을 나누게 하신 자들이 이러하였더라.

16-29절은 여호와께서 또 모세에게 이스라엘 자손에게 땅을 기업으로 나눌 자로 제사장 엘르아살과 눈의 아들 여호수아를 지목하셨음을 기록하고, 또 각 지파 별로 족장들의 대표자들을 지정하셨음을 기록한다. 그들은 유다 지파에 여분네의 아들 갈렙을 포함하여 열 명이다. 두 지파는 요단 동쪽에서 이미 기업을 얻었고 므낫세 지파는 양쪽에서 다 기업을 얻었다.

본장은 이스라엘 자손이 요단강을 건너 들어갈 가나안 땅의 사방 경계를 증거한다. 오늘 신약교회의 경계는 무엇인가?

신약교회의 경계는 온 세계이다. 부활하신 주께서는 승천하시기 전에 제자들에게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으라”고 명하셨고(마 28:19), 또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고 말씀하셨다(막 16:15). 또 그는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고 말씀하셨다(행 1:8).

신약교회는 온 세계의 모든 민족, 모든 사람에게 복음을 전해야 할 사명을 받았다. 백인이나 흑인이나 동양인이나 구별하지 않아야 하고 두메산골에도 어촌이나 섬에도 복음을 전해야 한다. 아직 문명이 들어가지 않은 밀림지역에도 글자가 없는 족속들에게도 복음을 전해야 한다. 구 공산권이나 이슬람 지역에도 복음을 전해야 한다. 도시 속에도 모든 사람에게 복음을 전해야 한다. 연예인들에게도, 운동선수들에게도 전해야 하고 빈민가에도 심지어 유흥가에도 복음을 전해야 한다.

신약교회는 하나님의 택하신 모든 사람들을 다 구원해내어야 한다. 엄격히 말하면, 신약교회의 경계는 하나님께서 택하신 모든 사람이다. 예수께서는 “아버지께서 내게 주시는 자는 다 내게로 올 것이요 내게 오는 자는 내가 결코 내어쫓지 아니하리라”고 말씀하셨다(요 6:37). 또 그는 “내가 하늘로서 내려온 것은 내 뜻을 행하려 함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려 함이니라.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은 내게 주신 자 중에 내가 하나도 잃어버리지 아니하고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는 이것이니라”고 말씀하셨다(요 6:38-39). 또 그는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이끌지 아니하면 아무라도 내게 올 수 없으니 오는 그를 내가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리라”고 하셨다(요 6:44). 또 주께서는 “내 양은 내 음성을 들으며 나는 저희를 알며 저희는 나를 따르느니라. 내가 저희에게 영생을 주노니 영원히 멸망치 아니할 터이요 또 저희를 내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고 말씀하셨다(요 10:27-28).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께 주신 자들이 있다. 예수 그리스도의 양들이 있다. 그들이 하나님께서 만세 전에 택하신 자들이다. 그들은 다 구원을 얻을 것이다. 그들은 하나도 잃어버리지 않고 다 구원을 얻을 것이다. 그들만 다 믿고 구원을 얻을 것이다. 그러므로 사도행전 13:48은, “이방인들이 듣고 기뻐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찬송하며 영생을 주시기로 작정된 자는 다 믿더라”고 증거하였다. 또 로마서 8:29-30에는 하나님께서 미리 아신 자들을 미리 정하셨고 그들을 부르셨고 의롭다 하셨고 영화롭게 하셨다고 증거하였다. 그들이 신약교회의 경계이다.

그러므로 신약교회는 온 세계에 복음을 전하지만, 온 세계의 모든 사람을 구원하려 하지 않는다. 오직 하나님의 택하신 자들을 구원하려 한다. 우리가 그들을 모르기 때문에 모든 사람에게 전도하는 것뿐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택하신 자들만 응답하고 회개하고 믿고 순종할 것이다. 그러므로 주께서는 믿지 않는 유대인들에게 “너희는 내 양이 아니므로 믿지 아니하는도다”라고 말씀하셨다(요 10:26). 또 사도 바울은 “그런즉 원하는 자로 말미암음도 아니요 달음박질하는 자로 말미암음도 아니요 오직 긍휼히 여기시는 하나님으로 말미암음이니라”고 말했고 또 “그런즉 하나님께서 하고자 하시는 자를 긍휼히 여기시고 하고자 하시는 자를 강퍅케 하시느니라”고 하였다(롬 9:16, 18).

신약교회는 하나님의 택하신 사람들을 구원해낼 뿐 아니라, 그들을 거룩하고 온전한 자들로 세워야 한다. 이스라엘 자손들은 가나안 땅을 정복하고 그 땅을 분배해야 했다. 그들은 가나안 일곱 족속들을 긍휼히 여기지 말고 다 죽여야 했다. 그것은 그들의 우상숭배와 음란 때문에 내리신 하나님의 심판이었다. 이와 같이, 교회는 세상에서 구원받은 자들의 모임이며 세상과 구별되어야 하는 모임이다.

주께서는 “내가 아버지의 말씀을 저희에게 주었사오매 세상이 저희를 미워하였사오니 이는 내가 세상에 속하지 아니함같이 저희도 세상에 속하지 아니함을 인함이니이다. 내가 비옵는 것은 저희를 세상에서 데려가시기를 위함이 아니요 오직 악에 빠지지 않게 보전하시기를 위함이니이다. 내가 세상에 속하지 아니함같이 저희도 세상에 속하지 아니하였삽나이다”라고 기도하셨다(요 17:14-16).

사도 베드로는 그의 설교를 들었던 무리에게 “이 패역한 세대에서 구원을 받으라”고 권하였다(행 2:40). 사도 바울은 “이 세대를 본받지 말라”고 교훈하였고(롬 12:2), 사도 요한은 “이 세상을 사랑치 말라”고 교훈하였다(요일 2:15). 야고보는 “간음하는 여자들이여, 세상과 벗된 것이 하나님의 원수임을 알지 못하느뇨? 그런즉 누구든지 세상과 벗이 되고자 하는 자는 스스로 하나님과 원수되게 하는 것이니라”고 말했다(약 4:4). 구원은 세상과의 구별이다.

교회는 세상과 구별되어야 한다. 세상은 장차 멸망할 성과 같지만, 교회는 세상에서 구원을 받은 자들의 모임이다. 그들은 영생할 자들이며 영광의 천국을 기업으로 받을 자들이다.

교회는 거룩한 교회이어야 한다. 사도 바울은 주께서 교회를 “물로 씻어 말씀으로 깨끗하게 하사 거룩하게 하시고 자기 앞에 영광스러운 교회로 세우사 티나 주름잡힌 것이나 이런 것들이 없이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려 하셨다”고 말하였다(엡 5:26-27).

이스라엘 나라가, 우상숭배하고 음란했던 가나안 족속들을 용납하지 말아야 하였듯이, 신약교회는 불신앙과 부도덕을 배격하고 거룩한 교회로 세워져야 한다. 그러므로 교회는 불신앙과 부도덕을 책망하고 권징하는 성실함이 있어야 한다. 그러므로 주께서는 “네 형제가 죄를 범하거든 가서 너와 그 사람과만 상대하여 권고하라. 만일 들으면 네가 네 형제를 얻은 것이요 만일 듣지 않거든 한두 사람을 데리고 가서 두세 증인의 입으로 말마다 증참케 하라. 만일 그들의 말도 듣지 않거든 교회에 말하고 교회의 말도 듣지 않거든 이방인과 세리와 같이 여기라”고 말씀하셨다(마 18:15-17).

사도 바울도 “이제 내가 너희에게 쓴 것은 만일 어떤 형제라 일컫는 자가 음행하거나 탐람하거나 우상숭배를 하거나 후욕하거나 술취하거나 토색하거든 사귀지도 말고 그런 자와는 함께 먹지도 말라 함이라. 외인들을 판단하는 데 내게 무슨 상관이 있으리요마는 교중 사람들이야 너희가 판단치 아니하랴. 외인들은 하나님이 판단하시려니와 이 악한 사람은 너희 중에서 내어쫓으라”고 교훈하였다(고전 5:11-13).

하나님의 자녀와 마귀의 자녀는 명확히 구분된다. 사도 요한은 의를 행치 않거나 형제 사랑을 실천치 않는 자는 하나님의 자녀가 아니고 마귀의 자녀라고 증거하였다(요일 3:10).

우리는 땅끝까지 복음을 전하자. 이를 위해 개척전도자와 선교사를 세우고 훈련시키고 파송하고 후원하자. 우리는 하나님의 택하신 자들을 다 구원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를 건립하자. 또 우리는 거룩한 교회를 만들자. 즉, 경건과 도덕성을 구비한 교회, 교리적으로 역사적 기독교 신앙을 지키고 윤리적으로 흠과 점이 없는 교회를 세우자.

 

 

35장: 도피성

[1-8절] 여호와께서 여리고 맞은편 요단 가 모압 평지에서 . . . .

여호와께서 여리고 맞은편 요단 가 모압 평지에서 모세에게 말씀하셨다. “이스라엘 자손에게 명하여 그들의 얻은 기업에서 레위인에게 거할 성읍들을 주게 하고 너희는 또 그 성읍 사면의 들을 레위인에게 주어서 성읍으로는 그들의 거처가 되게 하고 들로는 그들의 가축과 물산과 짐승들을 둘 곳이 되게 할 것이라. 너희가 레위인에게 줄 성읍들의 들은 성벽에서부터 밖으로 사면 2천 규빗[천 규빗](원문)이라. 성을 중앙에 두고 성 밖 동편으로 2천 규빗, 남편으로 2천 규빗, 서편으로 2천 규빗, 북편으로 2천 규빗을 측량할지니 이는 그들의 성읍의 들이며, 너희가 레위인에게 줄 성읍은 살인자로 피케 할 도피성으로 여섯 성읍이요 그 외에 42성읍이라. 너희가 레위인에게 모두 48성읍을 주고 그 들도 함께 주되 이스라엘 자손의 산업에서 레위인에게 너희가 성읍을 줄 때에 많이 얻은 자에게서는 많이 취하여 주고 적게 얻은 자에게서는 적게 취하여 줄 것이라. 각기 얻은 산업을 따라서 그 성읍들을 레위인에게 줄지니라.”

레위 지파는 이스라엘 열두 지파들처럼 요단 강 동편의 땅에서나 요단 서편 가나안 땅에서 기업을 얻지 못하기 때문에 각 지파에서 레위인들을 위한 성읍들과 그 들을 주게 하였다. 성읍들은 레위인들의 거처할 집을 지을 곳이며 그 들들은 소나 양 등의 가축들을 둘 곳이다. 히브리어 원문 4절은 레위인에게 줄 성읍들의 들이 성벽에서부터 밖으로 사면 천 규빗이라고 말한다(MT, KJV, NASB, NIV). 5절에 레위인들의 성읍들의 들이 동서남북으로 2천 규빗이라는 말은 그 들의 범위가 길이로 “2천 규빗”이라는 뜻일 것이다. 그것은 소나 양 등의 가축들을 두는 곳과 어느 정도의 여유가 있는 들판일 것이다. 1규빗은 약 45센티미터이며, 천 규빗은 약 450미터이다.

또 이스라엘의 열두 지파들은 레위인들에게 그들의 기업의 규모에 따라 성읍들을 주되 그들에게 모두 48성읍을 주게 하였다. 레위인들의 48성읍들은 이스라엘 열두 지파에 널리 흩어져 있었다. 그 성읍들은 여호수아 21장에 기록되어 있다. 그 중에는 도피성인 여섯 성읍이 포함되어 있다. 그 도피성들은 실수로 살인한 자가 피할 수 있는 성읍이었다.

[9-15절] 여호와께서 또 모세에게 일러 가라사대 이스라엘 자손에게 말하여 그들에게 이르라. 너희가 요단을 건너 가나안 땅에 . . . .

여호와께서 또 모세에게 말씀하셨다. “이스라엘 자손에게 말하여 그들에게 이르라. 너희가 요단을 건너 가나안 땅에 들어가거든 너희를 위하여 성읍을 도피성으로 정하여 그릇(비쉐가가)[실수로, 부지중에] 살인한 자로 그리로 피하게 하라. 이는 너희가 보수(報讐)할 자에게서 도피하는 성을 삼아 살인자가 회중 앞에 서서 판결을 받기까지 죽지 않게 하기 위함이니라. 너희가 줄 성읍 중에 여섯으로 도피성이 되게 하되 세 성읍은 요단 이편에서 주고 세 성읍은 가나안 땅에서 주어 도피성이 되게 하라. 이 여섯 성읍은 이스라엘 자손과 타국인과 이스라엘 중에 우거하는 자의 도피성이 되리니 무릇 그릇 살인한 자가 그리로 도피할 수 있으리라.”

도피성은 실수로 즉 고의성이 없이 살인한 자가 도피할 수 있는 곳이었다. 그는 그 성으로 우선 피신하고 회중 앞에서 정식 재판을 받아 고의성 여부를 판단받게 된다. 레위인들의 48성읍들 중에 여섯 성읍이 도피성으로 구별되었고 그것은 요단강 동편에 세 성읍이었고 요단강 서편에 세 성읍이었다. 또 이 규례는 이스라엘 자손뿐 아니라 타국인이나 이스라엘 중에 우거하는 자들에게도 적용되었다. 그들도 도피성에 피신할 수 있었다.

하나님께서는 고의적 살인과 실수로 인한 살인을 엄격하게 구별하셨다. 이런 정신은 오늘날 세속사회의 법에도 적용되어 있다. 법적으로 살인죄는 고의로 남을 죽인 죄를 가리키고, 비고의적인 살인은 과실치사죄라고 불러 그 둘을 구별한다. 살인죄와 과실치사죄는 그 죄성과 형벌의 양이 크게 다르다.

하나님께서 주신 속죄의 제사 제도도 일차적으로 실수로 범한 죄에 대한 사죄의 규례이었다. 레위기 4장과 5장의 속죄제와 속건제의 규례는 반복하여 ‘그릇, 부지중에’(비쉐가가) 즉 실수로 범한 죄에 대해 언급한다(레 4:2, 13, 22, 27 등). 또 민수기 15장에서도 같은 내용이 기록되어 있다(22-29절). 율법은 실수로 범한 죄와 구별하여 고의적인 죄에 대해서는 엄격히 다루었다. 출애굽기 21:12, 14, “사람을 쳐죽인 자는 반드시 죽일 것이라,” “사람이 그 이웃을 짐짓 모살하였으면 너는 그를 내 단에서라도 잡아내려 죽일지니라.” 민수기 15:30-31, “본토 소생이든지 타국인이든지 무릇 짐짓 무엇을 행하면 여호와를 훼방하는 자니 그 백성 중에서 끊쳐질[끊어질] 것이라. 그런 사람은 여호와의 말씀을 멸시하고 그 명령을 파괴하였은즉 그 죄악이 자기에게로 돌아가서 온전히 끊쳐지리라[끊어지리라].”

[16-21절] 만일 철 연장으로 사람을 쳐죽이면 이는 고살(故殺)한 자니 그 고살자를 반드시 죽일 것이요 만일 사람을 죽일 만한 돌을 . . . .

하나님께서는 실수로 사람을 죽인 죄와 구별하여 고의적인 살인죄의 예를 드신다. “만일 철 연장으로 사람을 쳐죽이면 이는 고살(故殺)한 자니 그 고살자를 반드시 죽일 것이요, 만일 사람을 죽일 만한 돌을 손에 들고 사람을 쳐죽이면 이는 고살한 자니 그 고살자를 반드시 죽일 것이요, 만일 사람을 죽일 만한 나무 연장을 손에 들고 사람을 쳐죽이면 이는 고살한 자니 그 고살자를 반드시 죽일 것이니라. 피를 보수하는 자가 그 고살자를 친히 죽일 것이니 그를 만나거든 죽일 것이요, 만일 미워하는 까닭에 밀쳐 죽이거나, 기회를 엿보아 무엇을 던져 죽이거나, 원한으로 인하여 손으로 쳐죽이면, 그 친 자를 반드시 죽일 것이니 이는 고살하였음이라. 피를 보수하는 자가 그 고살자를 만나거든 죽일 것이니라.”

하나님께서는 고의적인 살인죄의 예를 여섯 가지 드셨다. 철 연장으로 죽인 경우, 죽일 만한 돌로 죽인 경우, 나무 연장으로 죽인 경우, 밀쳐 죽인 경우, 무엇을 던져 죽인 경우, 손으로 쳐죽인 경우 등이 그것이다. 이런 고의적 살인자는 반드시 사형으로 벌해야 하였다.

[22-25절] 원한 없이 우연히 사람을 밀치거나 기회를 엿봄이 . . . .

하나님께서는 고의성이 없이, 실수로 사람을 죽인 경우도 예를 드셨다. “원한 없이 우연히 사람을 밀치거나 기회를 엿봄이 없이 무엇을 던지거나 보지 못하고 사람을 죽일 만한 돌을 던져서 죽였다 하자. 이는 원한도 없고 해하려 한 것도 아닌즉 회중이 친 자와 피를 보수하는 자 간에 이 규례대로 판결하여 피를 보수하는 자의 손에서 살인자를 건져내어 그가 피하였던 도피성으로 돌려보낼 것이요 그는 거룩한 기름 부음을 받은 대제사장의 죽기까지 거기 거할 것이니라.” 고의성이 없이, 실수로 사람을 죽인 경우는 사형으로 처벌되어서는 안 되고 원한을 품은 자에게 내어주어서도 안 되었다. 그런 자는 도피성에서 대제사장의 죽기까지 보호를 받아야 하였다.

[26-29절] 그러나 살인자가 어느 때든지 그 피하였던 도피성 . . . .

하나님께서는 실수로 살인하고 도피성에 피신한 자의 거주 제한을 강조하셨다. “그러나 살인자가 어느 때든지 그 피하였던 도피성 지경 밖에 나갔다 하자. 피를 보수하는 자가 도피성 지경 밖에서 그 살인자를 만나 죽일지라도 위하여 피 흘린 죄가 없나니 이는 살인자가 대제사장의 죽기까지 그 도피성에 유하였을 것임이라. 대제사장의 죽은 후에는 그 살인자가 자기의 산업의 땅으로 돌아갈 수 있느니라. 이는 너희 대대로 거하는 곳에서 판단하는 율례라.”

도피성으로 피한 그 살인자가 규례를 어기고 도피성 밖에 나갔다가 보복을 당한 경우, 그를 보복한 자는 살인자가 되지 않았다. 그것은 실수로 한 살인이라도 살인한 죄가 있음을 인정한 것이다. 단지 하나님께서 긍휼 가운데 그에게 도피할 방법을 주셨던 것이고 그가 그 방법을 바르게 사용하지 않으면 죽게 되는 것이다.

“대제사장의 죽기까지”라는 표현은 이 도피성의 규례와 대제사장 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관계가 있음을 암시한다. 도피성으로 피신한 그 살인자(27, 28절)는 대제사장이 죽기까지 도피성에 거하다가 대제사장이 죽은 후에는 자유함을 얻었다. 그것은 우리의 대제사장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죽으심으로 죄인들이 죄와 그 형벌로부터 자유함을 얻음을 암시하는 것 같다.

[30-32절] 무릇 사람을 죽인 자 곧 고살자를 증인들의 말을 . . . .

하나님께서는 고의적 살인자는 속전(贖錢)을 받고 풀어주지 말고 반드시 사형시킬 것이나 한 사람의 증거를 따라 하지 말고 두 사람 이상의 증거를 따라 하라고 말씀하셨다. “무릇 사람을 죽인 자 곧 고살자를 증인들의 말을 따라서 죽일 것이나 한 증인의 증거만 따라서 죽이지 말 것이요 살인죄를 범한 고살자의 생명의 속전(贖錢)을 받지 말고 반드시 죽일 것이며 또 도피성에 피한 자를 대제사장의 죽기 전에는 속전을 받고 그의 땅으로 돌아가 거하게 하지 말 것이니라.”

[33-34절] 너희는 거하는 땅을 더럽히지 말라. 피는 땅을 . . . .

하나님께서는 또 말씀하셨다. “너희는 거하는 땅을 더럽히지 말라. 피는 땅을 더럽히나니 피 흘림을 받은 땅은 이를 흘리게 한 자의 피가 아니면 속할 수 없느니라. 너희는 너희 거하는 땅 곧 나의 거하는 땅을 더럽히지 말라. 나 여호와가 이스라엘 자손 중에 거함이니라.” 이스라엘 자손이 거하는 땅은 곧 하나님께서 거하시는 땅이므로, 그들은 범죄함으로 그 땅을 더럽히지 말아야 하였다. 특히 살인은 사형으로 다스려야 하였다. 살인의 죄는 땅을 더럽히는 죄이며 무죄한 피를 흘리는 것은 말할 것도 없을 것이다.

본장의 교훈을 정리해보자. 첫째로, 신약교회도 복음과 교회를 위해 일하는 전임사역자들의 주택을 제공해야 할 것이다. 주께서는 “일꾼이 저 먹을것 받는 것이 마땅하다”고 말씀하셨다(마 10:10). 사도 바울은 “곡식을 밟아 떠는 소에게 망을 씌우지 말라”는 구약성경을 인용하며 복음사역자들의 생활비의 정당함을 가르쳤다(고전 9:9). 복음과 교회를 위해 일하는 전임사역자들의 주택문제도 같은 원리라고 본다.

둘째로,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도피성이시다.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대속사역은 택함받은 모든 죄인들에게 거룩함과 의로움이 되었다(고전 1:30). 예수 그리스도 안에 하나님의 진노로부터의 구원이 있다. 시편 46:1은,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시요 힘이시니 환난 중에 만날 큰 도움이시라”고 말한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바로 그러하시다. 그는 우리의 도피성 곧 피난처이시며 환난 중에 큰 도움이시다.

셋째로, 우리는 고의적 죄를 범하지 말자. 죄 중에는 실수로 범하는 죄도 있지만, 고의적으로 범하는 죄가 있다. 이 두 죄는 명확히 구별된다. 하나님께서는 고의적 죄는 엄격히 다루신다. 주께서는 “사람의 모든 죄와 훼방은 사하심을 얻되 성령을 훼방하는 것은 사하심을 얻지 못하겠고 또 누구든지 말로 인자를 거역하면 사하심을 얻되 누구든지 말로 성령을 거역하면 이 세상과 오는 세상에도 사하심을 얻지 못하리라”고 말씀하셨다(마 12:31-32). 히브리서 10:26-27, “우리가 진리를 아는 지식을 받은 후 짐짓 죄를 범한즉 다시 속죄하는 제사가 없고 오직 무서운 마음으로 심판을 기다리는 것과 대적하는 자를 소멸할 맹렬한 불만 있으리라.” 사도 요한은 사망에 이르는 죄에 대해 말하였다(요일 5:16-17). 우리는 고의적 죄를 범하지 말자. 우리는 개인적으로나 교회적으로 하나님께서 거하시는 성전을 더럽히지 말자(고전 3:16-17).

 

 

36장: 여자 상속자의 결혼 문제

[1-4절] 요셉 자손의 가족 중 므낫세의 손자 마길의 아들 . . . .

요셉 자손들의 가족 중 므낫세의 손자 마길의 아들 길르앗 자손 가족의 두령들[지도자들]이 나아와 모세와 이스라엘 자손들의 두령된 족장들 앞에 말하였다. “여호와께서 우리 주에게 명하사 이스라엘 자손에게 그 기업의 땅을 제비뽑아 주게 하셨고 여호와께서 또 우리 주에게 명하사 우리 형제 슬로브핫의 기업으로 그 딸들에게 주게 하셨은즉 그들이 만일 이스라엘 자손들의 다른 지파 남자들에게 시집가면 그들의 기업은 우리 조상의 기업에서 감삭되고[빠지고] 그들의 속할 그 지파의 기업에 첨가되리니[더해지리니] 그러면 우리 제비뽑은 기업에서 감삭될 것이요 이스라엘 자손의 희년을 당하여 그 기업이 그가 속한 지파에 첨가될 것이라. 그런즉 그들의 기업은 우리 조상 지파의 기업에서 아주 감삭되리이다.”

길르앗의 손자 헤벨의 아들(민 27:1) 슬로브핫의 딸들의 경우는, 슬로브핫이 기업을 물려줄 아들이 없으므로 딸들에게 기업을 주게 한 경우이었다. 그들에 대한 규례는 민수기 27장에 자세히 기록되어 있다. 그때 하나님께서는 말씀하셨다. “사람이 죽고 아들이 없거든 그 기업을 그 딸에게 돌릴 것이요 딸도 없거든 그 기업을 그 형제에게 줄 것이요 형제도 없거든 그 기업을 그 아비의 형제에게 줄 것이요 그 아비의 형제도 없거든 그 기업을 가장 가까운 친족에게 주어 얻게 할지니라”(민 27:8-11).

문제는, 그 딸들이 다른 지파 사람들과 결혼하면, 그들이 기업은 므낫세 지파의 기업으로 남기 어려워지고 특히 제50년 희년이 되어 각 사람이 자기의 기업으로 돌아갈 때에도 그들이 받은 기업은 그 다른 지파의 것으로 확정될 것이다. 레위기 25:10은, “제50년을 거룩하게 하여 전국 거민에게 자유를 공포하라. 이 해는 너희에게 희년이니 너희는 각각 그 기업으로 돌아가며 각각 그 가족에게로 돌아갈지니라”고 말하였다. 그 딸들의 기업은 희년이 되어도 므낫세 지파의 기업으로 환원되지 못하고, 므낫세 지파의 기업은 감소될 것이다.

[5-9절] 모세가 여호와의 말씀으로 이스라엘에게 명하여 가로되 요셉 자손 지파의 말이 옳도다. 슬로브핫의 딸들에게 대한 여호와의 . . . .

이 문제에 대해, 모세는 여호와의 말씀으로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명하였다. 그는 하나님의 감동 가운데 하나님의 말씀을 받았고 그것을 이스라엘 자손에게 명한 것이다.

구약시대에 모세와 선지자들은 하나님의 감동 가운데 하나님의 말씀을 받았고 그 말씀을 백성에게 전달하였다. 그들이 받은 말씀은 하나님의 권위를 가진 말씀이었다. 그 말씀들이 구약성경이 되었다.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이다. 사도 바울은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다”고 말하였다(딤후 3:16).

신약성경도 하나님의 특별계시들을 기록한 책이요 하나님의 권위로 인쳐진 하나님의 말씀이다. 데살로니가전서 2:13, “이러므로 우리가 하나님께 쉬지 않고 감사함은 너희가 우리에게 들은 바 하나님의 말씀을 받을 때에 사람의 말로 아니하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음이니 진실로 그러하다. 이 말씀이 또한 너희 믿는 자 속에서 역사하느니라.” 데살로니가후서 2:15, “이러므로 형제들아, 굳게 서서 말로나 우리 편지로 가르침을 받은 유전[전해진 내용]을 지키라.”

모세는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말하였다. “요셉 자손 지파의 말이 옳도다()(BDB, NASB, NIV). 슬로브핫의 딸들에게 대한 여호와의 명이 이러하니라. 이르시되 슬로브핫의 딸들은 마음대로 시집가려니와 오직 그 조상 지파의 가족에게로만 시집갈지니 그리하면 이스라엘 자손의 기업이 이 지파에서 저 지파로 옮기지 않고 이스라엘 자손이 다 각기 조상 지파의 기업을 지킬 것이니라 하셨나니 이스라엘 자손의 지파 중 무릇 그 기업을 이은[물려받은] 딸들은 자기 조상 지파 가족 되는 사람에게로 시집갈 것이라. 그리하면 이스라엘 자손이 각기 조상의 기업을 보존하게 되어서 그 기업으로 이 지파에서 저 지파로 옮기게 하지 아니하고 이스라엘 자손 지파가 각각 자기 기업을 지키리라.”

하나님께서는, 한 지파의 딸들이 다른 지파로 시집갈 수 있으나, 기업을 물려받은 딸들의 경우에는 각 지파의 기업의 보존을 위하여 같은 지파 안에서만 시집가도록 결혼 대상을 제한하신 것이다. 이것은 기업을 물려받은 딸들의 경우에만 적용되는 규례이었다. 이것은 각 지파의 기업의 보존을 위한 방책이었다.

[10-13절] 슬로브핫의 딸들이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하신 대로 행하니라. 슬로브핫의 딸 말라와 디르사와 호글라와 밀가와 노아가 . . . .

슬로브핫의 딸들은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하신 대로 행하였다. 슬로브핫의 다섯 명의 딸들 말라와 디르사와 호글라와 밀가와 노아는 다 그 아버지 형제들의 아들들에게로 시집갔다. 그들이 요셉의 아들 므낫세 자손들의 가족들에게로 시집갔기 때문에 그 기업이 그 아버지 가족들의 지파에 여전히 있었다.

이상의 내용들은 여리고 맞은편 요단 가 모압 평지에서 여호와께서 모세로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명하신 명령들과 규례들이었다.

본장에 기록된 교훈은 본문에서 해석한 대로 기업을 물려받은 딸들이 같은 지파 안에서만 결혼하라는 것이다. 그것은 신약교회에서는 어떤 의미를 가지는 것일까? 우리는 본장의 교훈에 비추어, 신약교회의 성도들의 결혼에 대해 생각한다. 그것은 남성도에게나 여성도에게나 공통적인 문제일 것이다.

첫째로, 우리는 같은 종교 안에서 결혼해야 한다. 신명기 7장에서 하나님께서는 가나안 일곱 족속들과 결혼하지 말라고 명하셨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전서 7:39에서 “아내가 그 남편이 살 동안에 매여 있다가 남편이 죽으면 자유하여 자기 뜻대로 시집갈 것이나 주 안에서만 할 것이니라”고 말하였다. 이것은 성도가 기독교 신앙 안에서만 결혼해야 함을 보인다. 또 그는 고린도후서 6:14-16에서 “너희는 믿지 않는 자와 멍에를 같이하지 말라. 의와 불법이 어찌 함께하며 빛과 어두움이 어찌 사귀며 그리스도와 벨리알이 어찌 조화되며 믿는 자와 믿지 않는 자가 어찌 상관하며 하나님의 성전과 우상이 어찌 일치가 되리요?”라고 말하였다. 우리는 기독교 신앙 안에서 결혼해야 한다.

둘째로, 우리는 같은 교파 안에서 결혼해야 한다. 우리는 장로교회 신앙이 성경적이라고 믿는다. 물론 사람마다 어떤 교리에 대해 다른 견해를 가질 수도 있을 것이다. 거기에서 교파가 나왔다. 그러나 우리는 교파적인 확신을 가져야 한다. 로마서 14:22는, “네게 있는 믿음을 하나님 앞에서 스스로 가지고 있으라. 자기의 옳다 하는 바로 자기를 책하지 아니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라고 교훈한다. 에베소서 4:13은,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리라”고 말했다. 우리는 동일한 교파적 신앙 안에서 결혼하고 결혼한 후에도 동일한 교파적 신앙의 유산을 지키며 생활하는 것이 최선이다.

셋째로, 우리는 같은 보수신앙 안에서 결혼해야 한다. 오늘날 교회들 안에는 자유주의, 신복음주의, 은사주의 등 다양한 신앙사상들이 들어와 있고, 포용주의, 다원주의의 경향이 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오직 한 믿음만 있다. 그것은 성경적인 옛신앙이다. 바른 신앙을 보수하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다(딤후 1:13-14; 유 3). 오늘날 우리와 우리 자녀들은 교회들 내의 이질적 사상들을 분별하고 성경적인 옛신앙 안에서 결혼하고 그 신앙과 그 교회의 유산을 지겨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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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주

1) ‘머리’라는 뜻 외에, ‘총계, 총수’(sum)라는 뜻도 있다(BDB).

2) 두 번째 인구조사는 모세와 엘르아살의 책임 하에 행해졌다(민 26:1).

3) 히브리어로 300은 쉘로쉬 메오스이며, 600은 쉐쉬 메오스인데, 필사자가 쉘로쉬에서 라멛(ל)을 빠뜨렸을 수 있다는 것.

4) 본문에는 ‘자기 몸을 구별하는’이라고 번역된 명사(니즈로)가 열두 번, 또 ‘구별한다’는 동사(나자르)가 다섯 번 나온다.

5) 롬 1:7; 16:24; 고전 1:3; 16:23; 고후 1:2; 13:13; 갈 1:3; 6:18; 엡 1:2; 6:24; 빌 1:2; 4:23; 골 1:2; 4:18; 살전 1:1; 5:28; 살후 1:2; 3:18; 딤전 1:2; 6:21; 딤후 1:2; 4:22; 딛 1:4; 3:15; 몬 3, 25; 히 13:25; 벧전 1:2; 벧후 1:2; 3:18; 요이 3; 유 2; 계 1:4-5; 22:21. 야고보서와 요한일서와 요한삼서를 빼고는 모든 서신들에 나온다. 히브리서는 시작에 없고 베드로전서와 요한삼서에는 끝에 ‘평강’의 기원만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