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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수아 강해

김효성 목사

 2018년 6월 8일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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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말

예수 그리스도와 사도 바울의 증거대로(마 5:18; 요 10:35; 갈 3:16; 딤후 3:16),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다.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이며 우리의 신앙과 행위에 있어서 정확무오한 유일의 법칙이라는 고백은 우리의 신앙생활에 있어서 매우 기본적이고 중요하다.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의 진술대로(1:8), 우리는 성경의 원본이 하나님의 감동으로 기록되었고 그 본문이 “그의 독특한 배려와 섭리로 모든 시대에 순수하게 보존되었다”고 믿는다. 이것은 교회의 전통적 견해이다. 그러므로 구약성경은 야곱 벤 카임이 편집한 제2 랍비 성경(봄버그판)을 표준적 마소라 본문으로 간주해야 할 것이다.

성경은 성도 개인의 신앙생활뿐 아니라, 교회의 모든 활동들에도 유일한 규범이다. 오늘날처럼 다양한 풍조와 운동이 많은 영적 혼란의 시대에, 우리는 성경으로 돌아가 성경이 무엇을 말하는지 묵상하기를 원하며 성경에 계시된 하나님의 모든 뜻을 알기를 원한다.

성경을 가지고 설교할지라도 그것을 바르게 해석하고 적용하지 않으면, 하나님의 말씀의 기근이 올 것이다(암 8:11). 오늘날 하나님의 말씀의 기근이 오고 있다. 많은 설교와 성경강해가 있지만, 순수한 기독교 신앙 지식과 입장은 더 흐려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오늘날 요구되는 성경 해석과 강해는 복잡하고 화려한 말잔치보다 성경 본문의 바른 뜻을 간단 명료하게 해석하고 적절히 적용하는 것일 것이다. 사실상, 우리는 성경책 한 권으로 충분하다. 성경주석이나 강해는 성경 본문의 바른 이해를 위한 작은 참고서에 불과하다. 성도는 각자 성령의 도우심을 구하며 성경을 읽어야 하고, 성경주석과 강해는 오직 참고서로만 사용해야 할 것이다.

 본문 혹은 각주에 자주 사용된 약어 

KJV

영어 King James Version.

NASB

영어 New American Standard Version.

NIV

영어 New International Version.

LXX

고대 헬라어 70인역.

Syr 

고대 수리아어역.

It 

고대 라틴어역.

Vg

고대 라틴어 Vulgate역.

BDB

Brown-Driver-Briggs, Hebrew Lexicon of the O. T.

KB

Koehler-Baumgartner, Lexicon in Veteris Testamenti Libros.

Langenscheidt 

Karl Feyerabend, Langenscheidt's Pocket Hebrew Dictionary to the Old

Testament.

Holladay 

William L. Holladay, A Concise Hebrew and Aramaic Lexicon of the

Old Testament.

Poole

Matthew Poole, A Commentary on the Holy Bible

JFB

Jamieson, Faussett, Brown의 주석.

NBD

The New Bible Dictionary. IVP.

NBC

The New Bible Commentary. IVP

  

제목차례

 1장: 여호수아를 격려하심

 2장: 라합의 붉은 줄

 3-4장: 요단강을 건넘

 5장: 세 가지 준비

 6장: 여리고성을 정복함

 7장: 아이성에서 실패함

 8장: 아이성을 정복함

 9장: 기브온 사람들

10장: 아모리 다섯 왕을 죽임

11장-12장: 하솔의 연합군을 멸함

13장: 레위 지파의 기업

14장: 갈렙의 온전한 순종

15-17장: 유다와 요셉의 기업

18-19장: 어느 때까지 지체하겠느냐?

20장: 도피성

21장: 하나님의 약속의 성취

22장: 세 지파가 큰 단을 만듦

23장: 여호수아의 마지막 권면

24장: 세겜에서 언약을 세움

 

 서론

여호수아의 히브리어 명칭예호슈아이며 헬라어 70인역 명칭은 ‘예수’와 같은 단어인 예수스이다. 여호수아의 연대는 대략 주전 1485-1375년이다.1)

본서의 저자는 여호수아이다. 그는 하나님의 감동 가운데 본서를 기록하였다(딤후 3:16). 그러나 본서의 끝부분에 나오는 여호수아의 죽음과 그 후의 일들(24:29-31)이나 15장에 기록된 갈렙의 딸 악사와 옷니엘 이야기(15:13-17) 또 19장의 단 지파의 확장(19:47) 등에 대한 기록들은 아마 엘르아살이나 그의 아들 비느하스에 의해 기록되었을 것이다.

1887년에 발굴된 텔 엘 아마르나 서신2)은 여호수아 군대의 가나안 침공에 대한 가나안인들의 증거이다. 예루살렘 왕 아브디 헤파는 이 서신에서 바로에게 ‘하비루’(히브리인)가 모든 땅을 점령하였다고 보고하였다. 또 바벨론에서나 마리와 누지에서의 발견은 주전 2천년대 초 메소포타미아 계곡의 역사에 하비루가 나타난다는 사실을 밝혀내었다. 또 우가릿에서의 발견은 하비루가 애굽 기록에 나오는 하비루와 동일한 사람임을 확증하였다. 학자들은 아마르나 서신의 하비루는 여호수아 군대의 히브리인과 동일시된다고 확신한다. 에드워드 메이어는 말하기를, “히브리인 혹은 이스라엘인과 아마르나 시대에 팔레스틴을 침공했던 아마르나 비문에 나오는 하비루를 실질적으로 동일시하는 것은 . . . 의심의 여지가 없다”고 하였다.3)

여호수아의 주요 내용은 가나안 땅의 정복과 분배이다. 1-12장은 가나안 땅의 정복에 대해, 13-22장은 가나안 땅의 분배에 대해 기술하며, 23-24장은 여호수아의 마지막 권면이다.

또 본서의 특징적 진리는 하나님의 신실하심이다. 21:45,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족속에게 말씀하신 선한 일이 하나도 남음이 없이 다 응하였더라.”

 

 

1장: 여호수아를 격려하심

[1-4절] 여호와의 종 모세가 죽은 후에 여호와께서 모세의 시종 눈의 아들 여호수아에게 일러 가라사대 내 종 모세가 죽었으니 이제 너는 이 모든 백성으로 더불어 일어나 이 요단을 건너 내가 그들 곧 이스라엘 자손에게 주는 땅으로 가라. 내가 모세에게 말한 바와 같이 무릇 너희 발바닥으로 밟는 곳을 내가 다 너희에게 주었노니 곧 광야와 이 레바논에서부터 큰 하수 유브라데에 이르는 헷 족속의 온 땅과 또 해 지는 편 대해까지 너희 지경이 되리라.

하나님의 종 모세는 모압 평지에서 느보산에 올라 여리고 맞은편 비스가산 꼭대기에 이르러 요단강 건너편의 가나안 땅을 바라본 후 거기서 죽었다. 하나님의 사람 모세의 죽음은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서 나온 지 40년이 지난 때, 가나안 땅을 눈앞에 둔 때에 있었다. 모세의 사명은 끝나고 그를 섬기던 여호수아의 사명이 시작되려 한 때이었다. 가데스 바네아에서의 열 정탐꾼과 백성의 불신앙 때문에 40년 방황의 시간이 끝나고 이제 약속의 가나안 땅에 들어가 그 땅을 정복해야 했던 때이었다. 하나님의 종, 능력과 기적의 종 모세를 옆에서 섬기던 여호수아에게 새로운 임무와 사명이 주어지는 그 중차대한 때에 하나님께서는 여호수아에게 모든 백성을 이끌고 그가 주시는 땅으로 들어가라고 명하셨다.

[5-9절] 너의 평생에 너를 능히 당할 자 없으리니 내가 모세와 함께 있던것 같이 너와 함께 있을 것임이라. 내가 너를 떠나지 아니하며 버리지 아니하리니 마음을 강하게 하라. 담대히 하라. 너는 이 백성으로 내가 그 조상에게 맹세하여 주리라 한 땅을 얻게 하리라. 오직 너는 마음을 강하게 하고 극히 담대히 하여 나의 종 모세가 네게 명한 율법을 다 지켜 행하고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말라 그리하면 어디로 가든지 형통하리니 이 율법책을 네 입에서 떠나지 말게 하며 주야로 그것을 묵상하여 그 가운데 기록한대로 다 지켜 행하라. 그리하면 네 길이 평탄하게 될 것이라. 네가 형통하리라. 내가 네게 명한 것이 아니냐? 마음을 강하게 하고 담대히 하라. 두려워 말며 놀라지 말라.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너와 함께 하느니라 하시니라.

하나님께서 여호수아에게 매우 중요한 교훈을 주셨다. 그것은 세 가지 내용이었다. 첫째는 내가 너와 함께 하리니 너는 마음을 강하게 하고 담대히 하라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여호수아에게 세 번이나 ‘너는 마음을 강하게 하고 담대히 하라’고 말씀하셨다. 그 중 한번은 ‘너는 마음을 강하게 하고 극히 담대히 하라’고 말씀하셨다. 그렇게 말씀하시는 근거는 ‘하나님이 그와 함께 하시기 때문’이었다.

여호수아가 이스라엘 백성을 이끌고 가나안 땅을 정복하는 데에 용기와 담력은 꼭 필요한 마음이다. 그는 가나안 정복을 위해 많은 전쟁을 치루어야 할 것이다. 전쟁을 치룰 군인들에게 있어서 필요한 덕은 용기와 담력이다. 군인이 용기와 담력이 없다면 전쟁에서 이미 진 것과 다를 바 없다. 마음을 강하게 하고 담대히 하는 군인이라야 전쟁에서 이길 수 있다.

세상에서의 우리의 신앙생활은 전쟁과 같다. 세상에는 어려운 일들이 많다. 원수 마귀는 우리가 신앙생활을 잘 하지 못하도록 방해한다. 구원받은 성도들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려면 많은 환난을 겪어야 한다. 성도들의 성화는 영적 싸움의 과정이다. 성도는 자신의 죄성과 세상의 악의 풍조와 사탄의 시험과 끊임없이 싸운다.

전도나 봉사의 일도 마찬가지다. 마귀는 특히 사람들을 구원하는 일과 교회를 바르게 세우는 일을 가장 싫어한다. 전도와 교회 건립의 일은 마귀의 일차적 공격 목표이다. 우리가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일들을 성취하려면 우리는 많은 어려움을 극복해야 한다.

사람의 몸과 마음은 매우 연약하다. 사람은 조금만 어려운 일이 생겨도 낙심하기 잘한다. 누구든지 큰 어려운 일을 당할 때 우울함과 열등감과 패배감을 가지기 쉽다. 그것이 사람에게 병이 될 수 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를 의지하는 자에게 힘이 되신다. 다윗은, “나의 힘이 되신 여호와여, 내가 주를 사랑하나이다”라고 고백하였고 또 “내가 주를 의뢰하고 적군에 달리며 내 하나님을 의지하고 담을 뛰어 넘나이다”라고 말했다(시 18:1, 29). 선지자 이사야는 “너는 알지 못하였느냐? 듣지 못하였느냐? 영원하신 하나님 여호와, 땅 끝까지 창조하신 자는 피곤치 아니하시며 곤비치 아니하시며 명철이 한이 없으시며 피곤한 자에게는 능력을 주시며 무능한 자에게는 힘을 더하시나니 소년이라도 피곤하며 곤비하며 장정이라도 넘어지며 자빠지되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으리니 독수리의 날개치며 올라감 같을 것이요 달음박질하여도 곤비치 아니하겠고 걸어가도 피곤치 아니하리로다”라고 말했다(사 40:28-31). 사도 바울은 고린도교회 성도들에게 ‘믿음에 굳게 서서 남자답게 강건하라’고 교훈했고(고전 16:13) 또 에베소 교인들에게 “너희가 주 안에서와 그 힘의 능력으로 강건하여지라”고 했다(엡 6:10).

하나님께서 여호수아에게 주신 말씀의 내용 중 두 번째는 모세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며 그 모든 말씀을 그대로 지키고 좌우로 치우치지 말라는 것이다. 이 내용은 가나안 정복에 있어서 승리하는 길이 군사력이나 지도자의 힘에 있지 않고 오직 하나님께 있다는 것을 보이신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을 주야로 묵상하고 그 말씀대로 행하는 것이야말로 승리의 가장 중요한 조건이다.

이스라엘의 역사에서 실패는 하나님의 말씀에 마음을 두지 않고 주위의 이방 사람들의 종교와 문화와 생활 방식에 눈길을 돌리며 그것을 모방하는 데서 기인했다. 이것이 우상숭배의 길이요 세속화의 길이다. 이것이 오늘날의 말로 자유주의화, 포용주의화, 다원주의화의 길이다. 하나님의 백성이 하나님께 마음을 두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대로 행하지 않는 것이 타락의 시작이다. 이것이 망하는 길이다. 이것은 성도의 길이 아니다.

우리는 신앙생활에서나 전도나 봉사의 일에서 하나님 중심, 말씀 중심, 믿음 중심, 순종 중심, 의 중심으로 해야 한다. 하나님의 말씀 듣기를 거절하고 그것을 저버리는 것은 하나님을 저버리는 것이요 그것이 곧 불신앙이요 불순종이요 죄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믿고 좌우로 치우치지 않고 그대로 순종하는 것은 의의 길이요 그것이 승리의 길인 것이다. 여호수아와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 땅을 정복하려면 말씀 중심으로 진행해야 한다.

오늘날도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그의 말씀을 듣고 배우고 주야로 묵상하기를 원하고 그 말씀대로 행하기를 원하신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경건하고 의로운 삶을 원하시는 것이다. 경건하고 의로운 삶은 세상에서 승리하는 삶이요 복된 삶이다. 시편 1편은 악인의 길을 버리고 하나님의 율법을 즐거워하며 주야로 묵상하는 자가 복되고 형통하다고 말했다(시 1:1-3). 성도들의 용기와 담력도 죄를 버리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 때 생긴다. 죄인은 담대함이 없다. 의인은 사자같이 담대하다(잠 28:1).

죄는 죽음과 불행의 원인이다. 죄는 재앙과 멸망을 초래한다. 그러나 의는 승리의 길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을 주야로 묵상하고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말고 그 말씀대로 행하는 것이 중요하다. 성도들이 영적 전쟁터 같은 세상에서 승리하는 길은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하는 것밖에 없다. 능력과 승리는 하나님께 있다. 세상에는 복잡한 일들이 많고 신앙생활의 여정에 우리를 넘어뜨리려는 사탄의 방해와 유혹들이 많지만, 우리는 이 모든 일들에서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넉넉히 이긴다(롬 8:37).

하나님께서 여호수아에게 주신 말씀의 세 번째 내용은 그렇게 하면 하나님께서 그에게 형통함을 주시겠다는 것이다. 우리가 경건하고 의롭게 살면 이 세상에서의 신앙생활과 봉사 생활에서 승리하고 평안을 누린다는 것이 성경에 계시된 하나님의 진리다. 그것은 매우 단순한 원리다. 그러나 그것이 하나님의 뜻이며 하나님의 약속이다. 이것은 레위기 26장이나 신명기 28장의 모세 율법에서 밝히 증거된 바다. 잠언도 말하기를, “여호와를 경외하며 악을 떠날지어다. 이것이 네 몸에 양약이[치료, 건강] 되어 네 골수로 윤택하게 하리라. 네 재물과 네 소산물의 처음 익은 열매로 여호와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네 창고가 가득히 차고 네 즙틀에 새 포도즙이 넘치리라”고 했다(잠 3:7-10). 건강도 경제도 그러하다. 선지자 이사야의 증거대로, 악인에게는 평강이 없다(사 48:22; 57:21). 예수께서도 우리가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할 때, 즉 우리가 하나님께 순종하고 그의 뜻을 행함으로 의롭게 살아갈 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먹을 것과 마실 것과 입을 것을 주시며 더 주신다고 말씀하셨다(마 6:33).

[10절] 이에 여호수아가 백성의 유사들[관리들]에게 명하여 가로되 진중에 두루 다니며 백성에게 명하여 이르기를 양식을 예비하라. 삼일 안에 너희가 이 요단을 건너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주사 얻게 하시는 땅을 얻기 위하여 들어갈 것임이니라 하라.

여호수아는 백성의 관리들에게 삼일 안에 요단강을 건너 가나안 땅으로 들어갈 준비를 하라고 명하였다.

[12-15절] 여호수아가 또 르우벤 지파와 갓 지파와 므낫세 반 지파에게 일러 가로되 여호와의 종 모세가 너희에게 명하여 이르기를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안식을 주시며 이 땅을 너희에게 주시리라 하였나니 너희는 그 말을 기억하라. 너희 처자와 가축은 모세가 너희에게 준 요단 이편 땅에 머무르려니와 너희 용사들은 무장하고 너희의 형제보다 앞서 건너가서 그들을 돕고 여호와께서 너희로 안식하게 하신 것같이 너희 형제도 안식하게 되며 그들도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주시는 땅을 얻게 되거든 너희는 너희 소유지 곧 여호와의 종 모세가 너희에게 준 요단 이편 해 돋는 편으로 돌아와서 그것을 차지할지니라.

여호수아는 또 르우벤 지파와 갓 지파와 므낫세 반 지파에게 모세의 명대로 너희가 먼저 무장하고 너희 형제들보다 앞서 건너가 그들을 돕고 가나안 정복이 마치면 요단 동편으로 돌아오라고 말했다.

[16-18절] 그들이 여호수아에게 대답하여 가로되 당신이 우리에게 명하신 것은 우리가 다 행할 것이요 당신이 우리를 보내시는 곳에는 우리가 가리이다. 우리는 범사에 모세를 청종한 것같이 당신을 청종하려니와 오직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모세와 함께 계시던 것같이 당신과 함께 계시기를 원하나이다. 누구든지 당신의 명령을 거역하며 무릇 당신의 시키시는 말씀을 청종치 아니하는 자 그는 죽임을 당하리니 오직 당신은 마음을 강하게 하시며 담대히 하소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여호수아의 명령에 순종할 것을 다짐하였다.

본장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구원받은 자들은 하나님께서 성령으로 영원히 우리와 함께 계심을 알고 마음을 강하게 하고 담대히 해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이 험난한 세상에서 우리의 힘이시요 우리의 기쁨이시며 우리의 큰 위로이시다.

둘째로,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주야로 묵상하며 그 말씀의 교훈대로 좌로나 우로 치우치지 말고 온전히 행하기를 힘써야 한다. 세상에서 바른 신앙생활과 열매 있는 봉사 생활을 하기 위해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말씀 중심, 믿음 중심, 순종 중심, 의(義) 중심으로 살아야 한다. 그것이 하나님의 뜻이며 하나님께서 요구하시는 바이다.

셋째로, 우리가 그렇게 살며 또 부족하지만 그렇게 살려고 애쓸 때,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형통과 평강과 승리를 약속하신다. 이 세상이 아무리 어렵고 힘들지라도, 우리가 아무리 약하고 부족할지라도, 또 마귀와 악의 세력이 아무리 강할지라도, 살아계시고 참되신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하시고 우리를 도우시고 지키시고 복 주시면 우리는 평안을 누리며 형통을 누릴 것이다. 또 우리의 봉사의 삶은 열매를 맺을 것이다. 능력과 승리는 우리에게 있지 않고 오직 하나님께 있다.

 

2장: 라합의 붉은 줄

[1-7절] 눈의 아들 여호수아가 싯딤에서 두 사람을 정탐으로 가만히 보내며 그들에게 이르되 가서 그 땅과 여리고를 엿보라 하매 그들이 가서 라합이라 하는 기생의 집에 들어가 거기서 유숙하더니 혹이 여리고 왕에게 고하여 가로되 보소서. 이 밤에 이스라엘 자손 몇 사람이 땅을 탐지하러 이리로 들어 왔나이다. 여리고 왕이 라합에게 기별하여 가로되 네게로 와서 네 집에 들어간 사람들을 끌어내라. 그들은 이 온 땅을 탐지하러 왔느니라. 그 여인이 그 두 사람을 이미 숨긴지라. 가로되 과연 그 사람들이 내게 왔었으나 그들이 어디로서인지 나는 알지 못하였고 그 사람들이 어두워 성문을 닫을 때쯤 되어 나갔으니 어디로 갔는지 알지 못하되 급히 따라가라. 그리하면 그들에게 미치리라 하였으나 실상은 그가 이미 그들을 이끌고 지붕에 올라가서 그 지붕에 벌여놓은 삼대에[아마 줄기들 안에] 숨겼더라. 그 사람들은 요단 길로 나루턱까지 따라갔고 그 따르는 자들이 나가자 곧 성문을 닫았더라.

여호수아는 싯딤에서 두 사람을 정탐꾼으로 가나안 땅의 여리고성에 은밀히 보냈다. 보냄을 받은 두 사람은 라합이라 하는 기생의 집에 유숙하였다. ‘기생’이라는 원어(조나)는 ‘매춘녀 혹은 창녀’라는 뜻이다. 두 정탐꾼은 사람들의 눈을 피하기 위해 그 집에 들어갔을 것이다. 그런데 그들을 수상히 여긴 사람이 그들에 대해 여리고 왕에게 보고하였다. 그들에게 위기가 찾아왔다. 그들이 라합에게 “여호와께서 우리에게 이 땅을 주실 때에는”(14절)이라고 말한 것을 보면 그들은 믿음이 있었고 그들이 맡은 일도 하나님의 선한 일이었지만, 그들은 그 날 밤에 큰 어려운 일을 당했던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라합을 통해 그 위기를 모면하였다. 그들이 그 집에 들어간 것은 하나님의 인도하심이었다. 그들은 그 여자가 자기들을 숨겨주리라고 생각지 못했겠지만, 그 여자는 그들을 이끌고 지붕에 올라가 거기에 벌여놓은 아마 줄기들 안에 숨겨주었고 또 그들을 찾는 자들에게 거짓말까지 하였다. 라합은 큰 위험을 무릅쓰고 그들을 숨겨주었다. 그들은 기이하게 위기를 모면했다.

하나님의 선한 일들에는 때때로 어려움이 있고 성도의 삶 속에도 때때로 환난과 고난이 있지만, 모든 일은 하나님의 뜻 안에서 일어나고(마 10:29) 환난도 하나님의 허락 속에서 오며(사 45:5-7), 하나님께서는 자기 백성을 결코 고난 중에 그대로 내버려두지 않으신다.

[8-11절] 두 사람이 눕기 전에 라합이 지붕에 올라가서 그들에게 이르러 말하되 여호와께서 이 땅을 너희에게 주신 줄을 내가 아노라. 우리가 너희를 심히 두려워하고 이 땅 백성이 다 너희 앞에 간담이 녹나니 이는 너희가 애굽에서 나올 때에 여호와께서 너희 앞에서 홍해 물을 마르게 하신 일과 너희가 요단 저편에 있는 아모리 사람의 두 왕 시혼과 옥에게 행한 일 곧 그들을 전멸시킨 일을 우리가 들었음이라. 우리가 듣자 곧 마음이 녹았고 너희의 연고로 사람이 정신을 잃었나니 너희 하나님 여호와는 상천하지(上天下地)에 하나님이시니라.

정탐꾼들을 숨겨준 라합은 여리고성의 기생이었다. 라합은 천한 신분과 천한 직업의 사람이었다. 왜 그가 그런 직업을 가졌는지, 왜 그가 그런 일을 했는지 우리는 모른다. 그는 너무 가난한 환경 때문에 혹은 그것이 쉽게 돈을 버는 길이라고 잘못 생각해서 혹은 실수로 그런 데 빠졌는지 모른다. 그러나 사람의 육체의 젊음이나 미모는 한때뿐이며 꽃이 시들듯이 사람의 육체는 조만간 늙고 병들게 될 것이다. 또 그 전에라도 사람의 심령은 그런 비정상적 삶 속에서 참 만족과 평안을 얻지 못하고 끝없이 방황하게 될 것이다.

라합이 그런 생활을 얼마 동안 했는지 모르나 그는 그런 생활 속에서 죄책감을 느꼈고 하나님을 찾게 되었던 것 같다. 사람은 자신의 죄악됨을 깨달을 때 하나님을 찾는다. 자신이 죄인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결코 하나님께로 나올 수 없고 구원을 받을 수 없다. 라합은 하나님을 찾았고 하나님을 만났다. 예수님 당시에 세리와 죄인들과 창녀들이 회개하고 구원을 받은 것처럼, 라합은 하나님을 믿는 참 믿음을 얻게 되었다.

라합의 믿음은 그가 그 정탐꾼들에게 한 고백 속에 나타나 있다. 그는 그들에게 “나는 하나님이 이 땅을 너희에게 주신 줄 안다”고 말했다. 그는 이스라엘의 하나님께서 가나안 땅을 그 백성 이스라엘에게 주신 것을 알게 되었다. 그는 하나님께서 하신 일들을 들었기 때문에 그런 믿음을 가지게 되었다. 그는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서 나올 때 홍해를 기적으로 건넌 소식과 아모리 왕 시혼과 바산 왕 옥을 전멸시킨 소식을 들었다. 믿음은 들음에서 난다(롬 10:17). 라합은 또 가나안 백성이 이스라엘로 인하여 심히 두려워하고 낙담하고 있으며 그들의 마음이 녹았고 정신을 잃었다고 말했다.

라합은 하나님의 은혜로 참 하나님을 알게 되었고 믿게 되었다. 그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는 하늘 위에서와 땅 아래에서 하나님이시니라”고 고백했다. 참 하나님을 아는 것이 구원이요 영생이다. 예수께서는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의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라고 말씀하셨다(요 17:3).

오늘날 기독교 안팎에서 종교다원주의가 유행한다. 종교다원주의는 각 종교가 다 한 하나님을 추구하고 다 한 하나님께로 가는 구원의 길이라고 말한다. 이 세상에 절대적 진리나 절대적 종교는 없다고 말한다. 한 종교만 옳고 다른 종교들은 틀렸다고 하는 것은 예의 없는 생각이요 편협함과 독선이라고 한다. 다원화 사회 속에서 모든 사상, 모든 종교를 존중하면서 함께 살아가야 한다고 말한다. 기독교는 기독교대로 진리이지만, 다른 종교는 그 종교 나름대로 진리이며 이것이 바람직한 현대적 종교 형태라고 한다.

그러나 기독교는 이런 사상을 용납하지 않는다. 종교다원주의는 구약시대에 바알과 아세라 숭배가 충만했던 배교의 시대의 모습에 불과하다. 하나님께서는 “너는 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네게 있게 말지니라”는 말씀하셨다(출 20:3). 선지자 예레미야는 “오직 여호와는 참 하나님이시요 사시는[살아계신] 하나님이시요”라고 말하였다(렘 10:10-11). 시편은 “만방의 모든 신은 헛 것이요 여호와께서는 하늘을 지으셨음이로다”라고 증거한다(시 96:5).

죄악된 가나안 땅에서, 죄악된 일을 직업으로 삼고 살았던 라합은 놀라운 하나님의 은혜를 받았다. 그것은 이방인들을 향하신 하나님의 구원 의지의 나타남이며 이방인 구원의 예표(豫表)이다. 라합은 신약성경에서 메시아의 족보에도 기록되었다(마 1:5).

[12-14절] 그러므로 청하노니 내가 너희를 선대(善待)하였은즉 너희도 내 아버지의 집을 선대하여 나의 부모와 남녀 형제와 무릇 그들에게 있는 모든 자를 살려주어 우리 생명을 죽는 데서 건져내기로 이제 여호와로 맹세하고 내게 진실한 표를 내라. 두 사람이 그에게 이르되 네가 우리의 이 일을 누설치 아니하면 우리의 생명으로 너희를 대신이라도 할 것이요 여호와께서 우리에게 이 땅을 주실 때에는 인자하고 진실하게 너를 대우하리라.

라합은 자기와 자기 가족들을 선대해줄 것을 요청하였고 정탐꾼들은 그의 요청대로 하나님의 이름으로 맹세하며 약속하였다.

[15-21절] 라합이 그들을 창에서 줄로 달아내리우니 그 집이 성벽 위에 있으므로 그가 성벽 위에 거하였음이라. 라합이 그들에게 이르되 두렵건대 따르는 사람들이 너희를 만날까 하노니 너희는 산으로 가서 거기 사흘을 숨었다가 따르는 자들이 돌아간 후에 너희 길을 갈지니라. 두 사람이 그에게 이르되 네가 우리로 서약케 한 이 맹세에 대하여 우리가 허물이 없게 하리니 우리가 이 땅에 들어올 때에 우리를 달아내리운 창에 이 붉은 줄을 매고 네 부모와 형제와 네 아비의 가족을 다 네 집에 모으라. 누구든지 네 집 문을 나서 거리로 가면 그 피가 그의 머리로 돌아갈 것이요 우리는 허물이 없으리라. 그러나 누구든지 너와 함께 집에 있는 자에게 누가 손을 대면 그 피는 우리의 머리로 돌아오려니와 네가 우리의 이 일을 누설하면 네가 우리로 서약케 한 맹세에 대하여 우리에게 허물이 없으리라. 라합이 가로되 너희의 말대로 할 것이라 하고 그들을 보내어 가게 하고 붉은 줄을 창문에 매니라.

라합은 집이 성벽 위에 있었기 때문에 그들을 창에서 줄로 달아내렸고 그들의 약속대로 붉은 줄을 창문에 매었다. 그 붉은 줄은 라합과 그의 가족들에게 생명줄이며 구원의 줄이었다. 그것은 애굽에서 장자 재앙의 때에 심판의 천사를 피하기 위해 이스라엘 집의 대문 문지방과 문설주에 발랐던 유월절 어린양의 피와 같았다. 이것들은 다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 십자가의 보혈을 상징했다고 본다. 그 피를 믿는 자마다 하나님의 마지막 대심판의 진노를 피할 것이다.

[22-24절] 그들이 가서 산에 이르러 따르는 자가 돌아가도록 사흘을 거기 유하매 따르는 자가 그들을 길에서 두루 찾다가 만나지 못하니라. 그 두 사람이 돌이켜 산에서 내려와 강을 건너 눈의 아들 여호수아에게 나아와서 그 당한 모든 일을 고하고 또 여호수아에게 이르되 진실로 여호와께서 그 온 땅을 우리 손에 붙이셨으므로 그 땅의 모든 거민이 우리 앞에서 간담이 녹더이다.

정탐군들은 산에서 3일간 숨었다고 진으로 돌아와 “진실로 여호와께서 그 온 땅을 우리 손에 붙이셨으므로 그 땅의 모든 거민이 우리 앞에 간담이 녹더이다”라고 믿음 있는 보고를 하였다.

본장은 이방인 기생 라합의 믿음을 증거한다. 라합은 천한 신분과 직업을 가진 이방 여인이었지만 하나님의 은혜로 하나님을 알고 믿었고 구원을 요청했고 맹세로 한 약속을 받았고 구원을 얻을 것이다. 이 세상에 사는 모든 사람들은 멸망할 도시에 사는 죄인들이다. 그러나 구주 예수를 믿는 자는 구원을 얻는다. 사람은 구주 예수에 대한 소식인 성경을 읽고 들음으로 그를 믿고 구원을 얻는다. 우리의 과거의 죄가 아무리 클지라도, 지금 하나님께 나아와 구주 예수의 속죄의 피를 마음의 문에 바르고, 마음의 창에 붉은 줄을 매는 자마다, 즉 주 예수를 믿는 자마다 그와 그의 집이 구원을 받을 것이다(행 16:31).

 

3장: 요단강을 건넘

[1-6절] 여호수아가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서 이스라엘 사람들로 더불어 싯딤에서 떠나 요단에 이르러서는 건너지 아니하고 거기서 유숙하니라. 삼일 후에 유사들이 진중으로 두루 다니며 백성에게 명하여 가로되 너희는 레위 사람 제사장들이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언약궤 메는 것을 보거든 너희 곳을 떠나 그 뒤를 좇으라. 그러나 너희와 그 사이 상거(相距)가 이천 규빗쯤 되게 하고 그것에 가까이 하지는 말라. 그리하면 너희 행할 길을 알리니 너희가 이전에 이 길을 지나보지 못하였음이니라. 여호수아가 또 백성에게 이르되 너희는 스스로 성결케 하라. 여호와께서 내일 너희 가운데 기사(奇事)를 행하시리라. 여호수아가 또 제사장들에게 일러 가로되 언약궤를 메고 백성 앞서 건너라 하매 곧 언약궤를 메고 백성 앞서 나아가니라.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요단강을 통과해야 하였다. 그 많은 회중이 강을 건너야 하는 일은 보통 큰 문제가 아니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위해 기적을 행하시기를 뜻하셨다. 이스라엘 백성은 레위 사람 제사장들4)이 하나님의 언약궤 메는 것을 보면 그 뒤를 좇아야 했다. 그러나 그들과 언약궤 사이의 거리가 2,000규빗쯤, 약 900미터 되게 하고 그것에 가까이 하지는 말아야 했다. 또 그들은 자신들을 성결케 해야 했다.

[7-13절] 여호와께서 여호수아에게 이르시되 내가 오늘부터 시작하여 너를 온 이스라엘의 목전에서 크게 하여 내가 모세와 함께 있던 것같이 너와 함께 있는 것을 그들로 알게 하리라. 너는 언약궤를 멘 제사장들에게 명하여 이르기를 너희가 요단 물가에 이르거든 요단에 들어서라 하라. 여호수아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르되 이리 와서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들으라 하고 또 말하되 사시는 하나님이 너희 가운데 계시사 가나안 족속과 헷 족속과 히위 족속과 브리스 족속과 기르가스 족속과 아모리 족속과 여부스 족속을 너희 앞에서 정녕히 쫓아내실 줄을 이 일로 너희가 알리라. 보라, 온 땅의 주의 언약궤가 너희 앞서 요단으로 들어가나니 이제 이스라엘 지파 중에서 매 지파에 한 사람씩 십이 명을 택하라. 온 땅의 주 여호와의 궤를 멘 제사장들의 발바닥이 요단 물을 밟고 멈추면 요단 물 곧 위에서부터 흘러내리던 물이 끊어지고 쌓여 서리라.

언약궤를 멘 제사장들은 믿음으로 요단강에 발을 들여놓아야 했다. 여호수아는 “사시는 하나님이 너희 가운데 계시사 가나안 일곱 족속들을 너희 앞에서 정녕히 쫓아내실 줄을 이 일로 너희가 알리라”고 말하였다. 여호수아는 또 하나님을 “온 땅의 주”라고 두 번이나 표현하였다(11, 13절). 온 세상의 창조자 하나님께서는 온 땅의 소유자이시며 통치자이시다. 여호수아는 또 하나님의 언약궤를 멘 제사장들의 발바닥이 요단 물을 밟으면 위에서부터 흘러내리던 물이 끊어지고 쌓여 설 것이라고 말하였다.

[14-17절] 백성이 요단을 건너려고 자기들의 장막을 떠날 때에 제사장들은 언약궤를 메고 백성 앞에서 행하니라. (요단이 모맥 거두는 시기에는 항상 언덕에 넘치더라.) 궤를 멘 자들이 요단에 이르며 궤를 멘 제사장들의 발이 물가에 잠기자 곧 위에서부터 흘러내리던 물이 그쳐서 심히 멀리 사르단에 가까운 아담 읍 변방에 일어나 쌓이고 아라바의 바다 염해로 향하여 흘러가는 물은 온전히 끊어지매 백성이 여리고 앞으로 바로 건널새 여호와의 언약궤를 멘 제사장들은 요단 가운데 마른 땅에 굳게 섰고 온 이스라엘 백성은 마른 땅으로 행하여 요단을 건너니라.

그때는 모맥 즉 보리를 거두는 시기이었다. 유대 땅에는 겨울이 우기(雨期)이며 보리를 거두는 초봄에는 요단강 물이 항상 언덕에 넘쳤다. 그러나 언약궤를 멘 제사장들의 발이 요단강 물가에 잠기자 곧 북쪽에서 남쪽으로 흘러내리던 물이 그쳐서 심히 멀리 사르단에 가까운 아담 읍5) 변방에서 일어나 쌓였고 아라바의 바다 염해로 향하여 흘러가는 물은 온전히 끊어졌다. 여호와의 언약궤를 멘 제사장들은 요단 가운데 마른 땅에 굳게 섰고 온 이스라엘 백성은 마른 땅으로 행하여 요단을 건넜다. 놀라운 일이 일어난 것이다.

요단강 물이 그치고 요단강을 마른 땅같이 건넌 이 사건은 애굽에서 나올 때 홍해를 기적적으로 건넌 사건과 같았다. 홍해를 건널 때에는 하나님께서 큰 동풍으로 밤새도록 바닷물을 물러가게 하셨고 물이 갈라져 바다가 마른 땅이 되었고 이스라엘 백성은 바다 가운데 육지로 행하고 물은 그들의 좌우에 벽이 되었었다(출 14:21-22).

또 선지자 엘리야 때에도, 엘리야가 승천하기 전 엘리사와 함께 요단으로 갈 때 엘리야는 겉옷을 말아 물을 치자 물이 이리저리 갈라졌고 두 사람이 육지 위로 건넌 일이 있었다(왕하 2:8). 하나님께서는 요단이라는 어려운 난관 앞에 선 이스라엘 회중을 이와 같이 기적으로 인도하셨다. 그것은 이스라엘 백성에게도, 가나안 사람들에게도 하나님의 능력을 증거하는 일이 되었다.

본장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하나님께서는 살아계신 하나님이시며 온 땅의 주이시다. 그는 요단강까지도 주장하신다. 그가 원하시면 그 강물의 흐름을 그치게 하실 수 있다. 그는 이전에 홍해를 가르시고 마른 땅이 되게 하셨고 이제 요단강을 그렇게 하셨다.

둘째로, 우리는 하나님을 따를 때 두려워하는 마음과 성결함을 가져야 한다. 우리는 살아계신 하나님, 온 땅의 주이신 그는 우리가 감히 가까이 할 수 없는 거룩한 분이심을 잠시라도 잊어서는 안 된다.

셋째로, 언약궤를 멘 자들은 주의 명령이라면 요단강에라도 발을 내딛어야 한다. 하나님을 믿은 자들은 그의 명령에 순종해야 한다.

 

4장: 기념하는 열두 돌을 세움

[1-7절] 온 백성이 요단 건너기를 마치매 여호와께서 여호수아에게 일러 가라사대 백성의 매 지파에 한 사람씩 열두 사람을 택하고 그들에게 명하여 이르기를 요단 가운데 제사장들의 발이 굳게 선 그곳에서 돌 열 둘을 취하고 그것을 가져다가 오늘밤 너희의 유숙할 그곳에 두라 하라. 여호수아가 이스라엘 자손 중에서 매 지파에 한 사람씩 예비한 그 열두 사람을 불러서 그들에게 이르되 요단 가운데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궤 앞으로 들어가서 이스라엘 자손들의 지파 수대로 각기 돌 한개씩 취하여 어깨에 메라. 이것이 너희 중에 표징이 되리라. 후일에 너희 자손이 물어 가로되 이 돌들은 무슨 뜻이뇨 하거든 그들에게 이르기를 요단 물이 여호와의 언약궤 앞에서 끊어졌었나니 곧 언약궤가 요단을 건널 때에 요단 물이 끊어졌으므로 이 돌들이 이스라엘 자손에게 영영한 기념이 되리라 하라.

하나님께서는 여호수아를 통해 백성의 매 지파에 한 사람씩 열두 사람을 택하게 하셨고 그들이 요단강 가운데 곧 제사장들의 발이 굳게 선 곳에서 돌 열 둘을 취하여 그들이 유숙할 곳에 두게 하셨다. 그것은 여호와의 언약궤 앞에서 요단강 물이 끊어진 역사적 사건을 이스라엘 자손들이 영원히 기억하게 하시기 위한 것이었다.

[8-9절] 이스라엘 자손들이 여호수아의 명한 대로 행하되 여호와께서 여호수아에게 이르신 대로 이스라엘 자손들의 지파 수를 따라 요단 가운데서 돌 열 둘을 취하여 자기들의 유숙할 곳으로 가져다가 거기 두었더라. 여호수아가 또 요단 가운데 곧 언약궤를 멘 제사장들의 발이 선 곳에 돌 열 둘을 세웠더니 오늘까지 거기 있더라.

이스라엘 백성은 여호수아를 통해 주신 하나님의 명령대로 하였다. 그들은 요단 가운데 하나님의 궤 앞으로 들어가서 제사장들의 발이 굳게 선 그곳에서 돌 열 둘을 취하여 어깨에 메어 가져와 그 날 밤 그들이 유숙할 곳에 두었다. 또 그들은 요단 가운데 곧 언약궤를 멘 제사장들의 발이 선 곳에도 돌 열 둘을 세웠다(히브리어 원문, KJV, 한글개역). 그 돌들은 ‘오늘까지’ 즉 20여 년 후 여호수아가 이 성경을 쓸 때까지에도 거기 있었다. 그러면 여호수아는 그 날 열두 개씩의 돌을 두 군데 세운 것이다. 하나는 그들이 그 밤에 유숙했던 길갈에 세웠고(4:8, 20), 또 하나는 요단 가운데 곧 언약궤를 멘 제사장들의 발이 선 곳에 세웠다(4:9). 요단강 가운데 세운 돌들은 아마 더 큰 것들이었을 것이고 열두 개를 세운 것이 물 위로 나왔든지 혹시 그렇지 않다 할지라도 요단강 물이 줄어들 때 보였을 것이다.

요단강의 기적이 역사적 사건인가? 그렇다, 그 증거는 열두 돌들이었다. 하나는 길갈에 세워져 있고, 하나는 요단강 가운데 세워져 있었다. 열두 돌들은 하나의 ‘표증’이다. 그것은 하나님의 기적들에 대한 증언들을 듣고도 믿지 않는, 심령이 어둡고 완고한 사람들을 위하여 하나님께서 주신 많은 증거들 중에 하나이다. 우리는 성경에 증거된 기적들을 믿는다. 우리는 하나님의 능력을 믿어야 한다.

[10-14절] 궤를 멘 제사장들이 여호와께서 여호수아에게 명하사 백성에게 이르게 하신 일 곧 모세가 여호수아에게 명한 일이 다 마치기까지 요단 가운데 섰고 백성은 속히 건넜으며 모든 백성이 건너기를 마친 후에 여호와의 궤와 제사장들이 백성의 목전에서 건넜으며 르우벤 자손과 갓 자손과 므낫세 반 지파는 모세가 그들에게 이른 것같이 무장하고 이스라엘 자손들보다 앞서 건너갔으니 사만 명 가량이라. 무장하고 여호와 앞에서 건너가서 싸우려고 여리고 평지에 이르니라. 그 날에 여호와께서 모든 이스라엘의 목전에서 여호수아를 크게 하시매 그의 생존한 날 동안에 백성이 두려워하기를 모세를 두려워하던 것같이 하였더라.

궤를 멘 제사장들은 백성들이 건너기까지 요단 가운데 섰고 백성은 속히 건넜으며 모든 백성이 건너기를 마친 후에 여호와의 궤와 제사장들이 백성 앞에서 건넜다. 르우벤 자손과 갓 자손과 므낫세 반 지파 소속 군사 4만명 가량은 무장하고 이스라엘 자손들보다 앞서 건너가 싸우려고 여리고 평지에 이르렀다. 여호와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의 눈앞에서 여호수아를 크게 하셨고, 백성들은 그의 사는 날 동안 모세를 두려워했듯이 그를 두려워하였다.

[15-18절] 여호와께서 여호수아에게 일러 가라사대 증거궤를 멘 제사장들을 명하여 요단에서 올라오게 하라 하신지라. 여호수아가 제사장들에게 명하여 요단에서 올라오라 하매 여호와의 언약궤를 멘 제사장들이 요단 가운데서 나오며 그 발바닥으로 육지를 밟는 동시에 요단 물이 본 곳으로 도로 흘러 여전히 언덕에 넘쳤더라.

여호와의 언약궤를 멘 제사장들이 요단 가운데서 나오자 요단 물은 본 곳으로 도로 흘러 이전처럼 언덕에 넘쳤다.

[19-24절] 정월 십일에 백성이 요단에서 올라와서 여리고 동편 지경 길갈에 진 치매 여호수아가 그 요단에서 가져 온 열두 돌을 길갈에 세우고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일러 가로되 후일에 너희 자손이 그 아비에게 묻기를 이 돌은 무슨 뜻이냐 하거든 너희는 자손에게 알게 하여 이르기를 이스라엘이 마른 땅을 밟고 이 요단을 건넜음이라.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요단 물을 너희 앞에 마르게 하사 너희로 건너게 하신 것이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우리 앞에 홍해를 말리시고 우리로 건너게 하심과 같았나니 이는 땅의 모든 백성으로 여호와의 손이 능하심을 알게 하며 너희로 너희 하나님 여호와를 영원토록 경외하게 하려 하심이라 하라.

여호수아는 그 열두 개의 돌을 그들이 유숙한 길갈에 세웠다. 그는 또, 후일에 그들의 후손들이 그 돌의 의미를 물으면 하나님께서 요단강을 마르게 하셨고 이스라엘 백성으로 하여금 그 마른 땅을 밟고 건너게 하셨음을 말하여 하나님의 능력을 알게 하고 그를 영원히 경외하게 해야 한다고 말하였다. 요단강 기적의 목적은 두 가지이었다. 첫째는 우리로 하나님의 능력을 알게 하는 것이요, 둘째는 하나님의 백성들로 하나님을 영원히 경외하게 하는 것, 즉 하나님을 바로 알고 경외하며 믿고 섬기고 순종하게 하는 것이다.

신구약성경에 기록된 모든 기적들은 역사적 사실들이다. 만일 그렇지 않다면, 성경은 거짓 증거의 책에 불과할 것이다. 성경에 기록된 내용은 진실한 증인들의 증거의 말들이며 사건들이다. 또 이렇게 증거된 기적들은 우리로 하나님을 바로 알고 바로 믿게 한다.

요단강 기적은, 살아계신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 가운데 계시다는 것과 그들이 하나님의 약속대로 가나안 땅을 정복하고 그 원주민을 쫓아낼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지게 하는 목적도 있었다. 가나안 족속들을 멸망시키는 것은 그들의 우상숭배와 음란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힘있는 족속들이며 이스라엘 백성에게 어려운 상대이었다. 그렇지만, 이스라엘 백성이 요단강 기적을 체험할 때 그들은 가나안 정복에 대한 믿음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요단강 기적은 역사적 사실이었다. 요단강에서 길갈로 가져와 세운 열두 개의 돌들과 또 요단강 가운데 세워진 열두 개의 돌들은 그 증표이었다. 요단강 기적은 이스라엘 백성으로 하여금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바로 알고 그를 경외하고 섬기도록 하기 위하여 주신 사건이었다. 그것은 모든 시대의 사람들을 위한 것이다. 우리는 이 놀라운 하나님의 기적을 통해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확인하고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을 섬기자. 아직도 하나님을 믿지 못하고 의심하는 자가 있는가? 성경이 증거하는 기적들을 통해 하나님을 믿고 구원에 이르러야 한다.

요단강의 기적은 또한 사람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는 것이 자기의 힘으로가 아니고 하나님의 능력으로 됨을 증거한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영광스런 천국과 영생을 약속하셨고 이 세상에서 참된 교회의 설립과 전도의 사명을 주셨다. 그러나 우리는 이 광야 같은 세상에서 믿음을 잘 지키고 하나님의 뜻을 힘있게 행하며 천국에 들어갈 힘이 없다. 때때로 요단강 같은 장애물이 우리 앞에 있다. 우리는 바른 교회를 세울 힘이 없다. 그러나 요단강의 기적을 주신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심을 알고 믿자. 오직 죄짓지 말고 하나님의 뜻만 순종하자.

 

5장: 세 가지 준비

[1절] 요단 서편의 아모리 사람의 모든 왕과 해변의 가나안 사람의 모든 왕이 여호와께서 요단 물을 이스라엘 자손들 앞에서 말리시고 우리를 건네셨음을 듣고 마음이 녹았고 이스라엘 자손들의 연고로 정신을 잃었더라.

가나안 땅 왕들은 요단강 기적의 소식을 듣고 마음이 녹았다.

[2-3절] 그때에 여호와께서 여호수아에게 이르시되 너는 부싯돌로 칼을 만들어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다시 할례를 행하라 하시매 여호수아가 부싯돌로 칼을 만들어 할례산에서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할례를 행하니라.

그때 하나님께서는 여호수아에게 백성에게 할례를 행할 것을 명하셨다. 할례는 남자의 포피(성기 귀두부를 싼 가죽)를 잘라버리는 의식이다. ‘할례산’이라는 원어는 ‘포피들의 언덕’이라는 뜻이다.

[4-9절] 여호수아가 할례를 시행한 까닭은 이것이니 애굽에서 나온 모든 백성 중 남자 곧 모든 군사는 애굽에서 나온 후 광야 노중에서 죽었는데 그 나온 백성은 다 할례를 받았으나 오직 애굽에서 나온 후 광야 노중에서 난 자는 할례를 받지 못하였음이라. 이스라엘 자손들이 여호와의 말씀을 청종치 아니하므로 여호와께서 그들에게 대하여 맹세하사 그들의 열조에게 맹세하여 우리에게 주마 하신 땅 곧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을 그들로 보지 못하게 하리라 하시매 애굽에서 나온 족속 곧 군사들이 다 멸절하기까지 사십년 동안을 광야에 행하였더니 그들의 대를 잇게 하신 이 자손에게 여호수아가 할례를 행하였으니 길에서는 그들에게 할례를 행치 못하였으므로 할례 없는 자가 되었음이었더라. 온 백성에게 할례 행하기를 필하매 백성이 진중 각 처소에 처하여 낫기를 기다릴 때에 여호와께서 여호수아에게 이르시되 내가 오늘날 애굽의 수치를 너희에게서 굴러가게 하였다 하셨으므로 그곳 이름을 오늘까지 길갈이라 하느니라.

여호수아가 할례를 시행한 까닭은 애굽에서 나온 후 광야 길에서 난 자들이 할례를 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애굽에서 나온 모든 백성들은 할례를 받았으나 20세 이상의 사람들은 범죄함으로 여호수아와 갈렙 외에는 광야에서 다 죽었고, 광야에서 새로 태어난 아이들(지금 40세 미만인 자들)은 할례를 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백성이 할례를 받고 진중 각 처소에서 낫기를 기다릴 때 여호와께서는 여호수아에게 “내가 오늘날 애굽의 수치를 너희에게서 굴러가게 하였다”고 말씀하셨다. 그래서 여호수아는 그곳을 길갈이라고 불렀다. 길갈이라는 원어는 ‘바퀴’ 혹은 ‘굴러감’이라는 뜻이다.

‘애굽의 수치를 굴러가게 하였다’는 뜻이 무엇일까? 할례는 하나님의 언약의 표이었기 때문에 이스라엘 백성이 할례를 받았다는 것은 복된 표시이었고 애굽인들과 같은 할례 없는 자들은 그 언약과 복이 없는 자들이며 수치스런 자들이었다. 그러므로 광야에서 할례를 받지 못했던 자들은 애굽인들과 같았었는데, 이제 할례를 받음으로 그런 수치스런 상태를 면하게 되었다는 뜻일 것이다.

할례가 그렇게 중요할까? 그렇다, 할례는 그렇게 중요하다. 창세기 17장에 보면, 할례는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의 자손들에게 언약의 표이므로 할례를 받지 아니한 남자는 하나님의 언약을 배반한 자이므로 그 백성 중에서 끊어질 것이라고 말씀하셨다(13-14절).

할례는 불결의 제거, 죄의 제거, 곧 죄씻음과 성결을 상징한다. 죄가 인류의 불행의 근본 원인이요, 죄씻음이 그 해결책이다. 그것이 하나님의 구원이다. 사람은 누구나 죄씻음을 받아야 한다. 그것은 오늘날 세례로 표현된다. 세례는 죄씻음을 상징한다. 세례는 주의 명령이다. 사람은 죄를 가진 채로 천국에 들어갈 수 없고 영생을 얻을 수 없다. 죄의 값은 죽음이며 그 결과는 지옥 형벌이다. 그러므로 모든 사람은 죄사함의 구원을 받아야 한다. 구약시대에 모든 사람이 할례를 받음으로 언약의 백성이 되었듯이, 신약시대에 모든 사람은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세례를 받음으로 언약의 백성이 된다.

[10-12절] 이스라엘 자손들이 길갈에 진 쳤고 그 달 십 사일 저녁에는 여리고 평지에서 유월절을 지켰고 유월절 이튿날에 그 땅 소산을 먹되 그 날에 무교병과 볶은 곡식을 먹었더니 그 땅 소산을 먹은 다음 날에 만나가 그쳤으니 이스라엘 사람들이 다시는 만나를 얻지 못하였고 그 해에 가나안 땅의 열매를 먹었더라.

이스라엘 백성은 할례받지 못했던 자녀들에게 길갈에서 할례를 베푼 후에 그 달 14일 저녁에 여리고 평지에서 유월절을 지켰다.

유월절은 하나님의 구속(救贖)의 은혜를 기억케 하는 절기이다. 애굽 왕 바로는 이스라엘 백성을 순순히 놓아주려 하지 않았다.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통해 애굽에 10가지 재앙을 내리셨고 열 번째의 재앙 곧 애굽의 모든 가정의 장자를 죽이는 재앙을 당하고서야 바로는 항복하고 이스라엘 백성을 놓아주었다. 그 죽음의 재앙이 있었던 밤에 이스라엘 백성은 유월절 어린양을 잡아 그 피를 집 문설주와 인방에 발랐고 심판의 천사는 그 집을 넘어갔다.

유월절도 할례와 같이 하나님의 언약의 표이었다. 유월절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 백성과 구별하신 표이었다. 이방인들은 할례를 받은 후에만 유월절 식탁에 참여할 수 있었다. 유월절을 지키는 것은 하나님의 명령이었다(출 12:14).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 땅을 정복하기 전에 유월절을 지킴으로 하나님의 언약을 기억하고 다시 확인하는 것은 필요하고 큰 유익이 있었음에 틀림없다.

구약의 유월절 규례는 신약의 성찬식으로 이어진다. 유월절 어린양은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한다. 성찬은 주의 명령이요 신약 성도들에게 주신 하나님의 언약의 표이다. 그것은 하나님이 보내신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고난과 속죄의 사역을 상징한다. 주 예수를 믿고 구원얻은 모든 자들은 주께서 제정하신 이 의식을 지켜야 한다. 세례받은 모든 신자는 이 의식에 참여해야 한다. 그것은 주님 다시 오실 때까지 신약교회의 성도들이 지켜야 할 규례이다.

이스라엘 백성은 광야 40년 동안 날마다 하늘로부터 내려진 만나를 일용할 양식으로 먹었으나 그들이 유월절을 지킨 다음 날 그들은 그 땅의 소산인 무교병 즉 누룩 넣지 않은 떡과 볶은 곡식을 먹었고 그 땅의 소산을 먹은 다음 날 만나는 더 이상 내리지 않았다. 이스라엘 백성은 다시 만나를 얻지 못하였고 그 해에 그들은 가나안 땅에서 난 것을 먹었다. 광야 생활을 위해 주셨던 하나님의 비상 식량인 만나는 가나안 땅에서는 계속되지 않았다.

기독교는 하나님의 기적들을 믿으나 기적주의는 아니다. 기적은 계시 시대에 하나님께서 주신 비상 사건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일반 섭리 방식은 성경말씀을 통한 신앙생활이다. 신자들은 성경말씀을 읽고 그 말씀에 증거된 하나님의 진리들을 다 믿고 그 말씀의 교훈대로 살아가면 된다. 그것이 하나님의 뜻이며 참된 기독교이다.

[13-15절] 여호수아가 여리고에 가까왔을 때에 눈을 들어본즉 한 사람이 칼을 빼어 손에 들고 마주섰는지라 여호수아가 나아가서 그에게 묻되 너는 우리를 위하느냐, 우리의 대적을 위하느냐? 그가 가로되 아니라. 나는 여호와의 군대장관으로 이제 왔느니라. 여호수아가 땅에 엎드려 절하고 가로되 나의 주여, 종에게 무슨 말씀을 하려 하시나이까? 여호와의 군대장관이 여호수아에게 이르되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 네가 선 곳은 거룩하니라. 여호수아가 그대로 행하니라.

여호수아가 여리고에 가까웠을 때 하나님의 군대장관을 만났다. 여호와의 군대장관은 신비한 인물이다. 그는 여호수아에게 엎드려 절함 즉 경배를 받았고, 여호수아는 그를 ‘나의 주여’라고 불렀고, 그는 여호수아에게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 네가 선 곳은 거룩하니라’고 말했다. 이 세 가지 사실은 그가 신적 존재임을 나타낸다. 만일 그가 하나님이 아니시고 어떤 천사였다면, 그는 여호수아에게 경배받기를 거절했을 것이다. 또 그가 여호수아의 선 곳이 거룩하다고 말한 것은 그가 하나님이라는 뜻이다. 하나님께서 계신 곳이 아니면 감히 거룩하다고 말할 수 없을 것이다. 그 신적인 존재이신 ‘여호와의 군대장관’은 구약시대에 종종 나타나셨던 하나님이나 하나님의 사자, 즉 예수 그리스도시라고 본다.

그가 이때에 여호수아에게 나타나신 것은 그를 위로 격려하시고 그가 그와 함께하심을 기억시키고 그가 친히 이스라엘 군대를 도우실 것을 증거하기 위함이었을 것이다. 여기에서 ‘여호와의 군대’는 이스라엘 회중을 가리킨다고 본다. 주 예수께서는 이스라엘 군대의 총사령관 곧 교회의 우두머리이시다. 그는 그들과 동행하시며 그들과 함께 싸우시며 그들을 진두지휘하시며 원수들을 멸하실 것이다.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는 말씀은 성결과 경외함과 복종을 요구하시는 뜻이라고 본다. 주의 일을 하려는 자는 일상적인 신을 벗고 성결과 경외함으로 주께 복종해야 한다. 우리는 자신의 뜻대로 살지 말고 오직 하나님의 뜻대로, 성경의 교훈대로 살아야 한다.

본장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가나안 정복을 앞에 둔 이스라엘 백성에게 할례를 받는 일이 필요했듯이, 신약교회는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세례를 받음으로 성도가 되어 복음 사역에 동참할 수 있다.

둘째로, 가나안 정복을 앞에 둔 이스라엘 백성이 유월절을 지켰듯이, 오늘 우리는 시시때때로 성찬에 참여함으로 우리 위해 죽으시고 다시 사신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기억하며 힘을 얻어야 한다.

셋째로, 가나안 정복을 앞에 둔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의 군대장관을 만난 것처럼, 오늘 우리는 우리의 대장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알고 의지하고 의탁해야 한다. 우리의 개인적 신앙생활이나 복음 전도나 참 교회의 건립의 일은 영적 전쟁과 같다. 마귀는 그런 일을 가장 싫어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주 예수 그리스도와 성령만 의지하고 싸우자.

 

6장: 여리고성을 정복함

[1-7절] 이스라엘 자손들로 인하여 여리고는 굳게 닫혔고 출입하는 자 없더라. 여호와께서 여호수아에게 이르시되 보라, 내가 여리고와 그 왕과 용사들을 네 손에 붙였으니 너희 모든 군사는 성을 둘러 성 주위를 매일 한번씩 돌되 엿새 동안을 그리하라. 제사장 일곱은 일곱 양각나팔을 잡고 언약궤 앞에서 행할 것이요 제7일에는 성을 일곱 번 돌며 제사장들은 나팔을 불 것이며 제사장들이 양각나팔을 길게 울려 불어서 그 나팔 소리가 너희에게 들릴 때에는 백성은 다 큰 소리로 외쳐 부를 것이라. 그리하면 그 성벽이 무너져 내리리니 백성은 각기 앞으로 올라갈지니라 하시매 눈의 아들 여호수아가 제사장들을 불러서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는 언약궤를 메고 일곱 제사장은 일곱 양각나팔을 잡고 여호와의 궤 앞에서 행하라 하고 또 백성에게 이르되 나아가서 성을 돌되 무장한 자들이 여호와의 궤 앞에 행할지니라.

본장은 요단강 서쪽 가나안 땅에서의 첫 전쟁인 여리고성 정복 전쟁에 대한 기록이다. 하나님께서는 여호수아를 통해 이스라엘의 모든 군사들에게 하루 한번씩 여리고성을 돌고 제7일에는 일곱 번 돌라고 명하셨고 또 제사장들 중 일곱은 각각 양각나팔[양이나 소의 뿔로 만든 나팔]를 잡고 또 몇 명은 언약궤를 메고 모든 군사들 앞에서 행하라고 명하셨다.

행진 대열에는 순서가 있었다. 무장한 자들이 맨 앞에 선다. 원문에는 ‘무장한 자’라고 단수로 되어 있지만(7, 9, 13절), 아마 한 명이 아니고 몇 명이었을 것이다(NASB). 그 다음에 일곱 양각나팔을 든 일곱 명의 제사장들이 서고 그 다음 하나님의 언약궤를 멘 제사장들이 서야 했다(12절). 언약궤는 보통 때는 레위인들 중 고핫 자손들이 메지만(민 4:15) 요단강을 건널 때(수 3:6)와 이번에는 제사장들이 메어야 했다. 그런 후 그들을 따라 모든 군사들이 행진하여야 했다.

[8-14절] 여호수아가 백성에게 이르기를 마치매 제사장 일곱이 일곱 양각나팔을 잡고 여호와 앞에서 진행하며 나팔을 불고 여호와의 언약궤는 그 뒤를 따르며 무장한 자들은 나팔 부는 제사장들 앞에서 진행하며 후군은 궤 뒤에 행하고 제사장들은 나팔을 불며 행하더라. 여호수아가 백성에게 명하여 가로되 너희는 외치지 말며 너희 음성을 들레지 말며[시끄럽게 떠들지 말고] 너희 입에서 아무 말도 내지 말라. 그리하다가 내가 너희에게 명하여 외치라 하는 날에 외칠지니라 하고 여호와의 궤로 성을 한번 돌게 하니라. 무리가 진에 돌아와서 진에서 자니라. 여호수아가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니라. 제사장들이 여호와의 궤를 메고 일곱 제사장은 일곱 양각나팔을 잡고 여호와의 궤 앞에서 계속 진행하며 나팔을 불고 무장한 자들은 그 앞에 행하며 후군은 여호와의 궤 뒤에 행하고 제사장들은 나팔을 불며 행하니라. 그 제2일에도 성을 한번 돌고 진에 돌아 오니라. 엿새 동안을 이같이 행하니라.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의 명령대로 행하였다. 그들은 외치거나 음성을 시끄럽게 떠들지 않았고 단지 일곱 양각나팔을 든 제사장들은 나팔을 불었다(8절). 그들은 6일 동안 매일 그렇게 했고 제7일에는 성을 일곱 바퀴 돌았다. 고고학적 발굴에 의하면, 그 당시 여리고성은 둘레가 약 600미터이고 면적이 약 28,300평방미터, 약 7,000평 정도의 작은 성으로 추측된다고 한다. 그 시대의 성은 주로 외부의 침입을 막는 용도이었고 평소의 생활은 성안에서 뿐만 아니라 성밖에서도 이루어졌을 것이다. 그 정도 크기의 성이라면 제7일에 일곱 바퀴를 도는 것은 힘든 일은 아니었을 것이다.

[15-21절] 제7일 새벽에 그들이 일찍이 일어나서 여전한 방식으로 성을 일곱 번 도니 성을 일곱 번 돌기는 그 날뿐이었더라. 일곱 번째에 제사장들이 나팔을 불 때에 여호수아가 백성에게 이르되 외치라.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이 성을 주셨느니라. 이 성과 그 가운데 모든 물건은 여호와께 바치되 기생 라합과 무릇 그 집에 동거하는 자는 살리라. 이는 그가 우리의 보낸 사자를 숨겼음이니라. 너희는 바칠 물건을 스스로 삼가라. 너희가 그것을 바친 후에 그 바친 어느 것이든지 취하면 이스라엘 진으로 바침이 되어 화를 당케 할까 두려워하노라. 은금과 동철 기구들은 다 여호와께 구별될 것이니 그것을 여호와의 곳간에 들일지니라. 이에 백성은 외치고 제사장들은 나팔을 불매 백성이 나팔 소리를 듣는 동시에 크게 소리질러 외치니 성벽이 무너져 내린지라. 백성이 각기 앞으로 나아가 성에 들어가서 그 성을 취하고 성 중에 있는 것을 다 멸하되 남녀 노유와 우양과 나귀를 칼날로 멸하니라.

일곱 째 날 그들은 여리고성을 일곱 바퀴 돌았고 양각나팔을 든 제사장들은 나팔들을 길게 울려 불었고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의 지시대로 큰 소리로 외쳤다. 그때 그 성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무너졌으며 이스라엘 백성은 그 성으로 들어가 모든 사람들을 죽였다.

하나님께서 지시하신 정복의 방식에는 몇 가지 뜻이 있어 보인다. 우선,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의 언약을 의지하여야 했다. 가나안 땅 정복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언약에 근거한 일이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의 조상 아브라함에게 가나안 땅을 기업으로 약속하셨다(창 12:7; 13:15; 15:18-21 등). 그는 이삭과 야곱에게도 그 약속을 계속하셨다(창 26:3; 28:13). 그러므로 이스라엘 백성은 이 하나님의 약속을 기억해야 했고 하나님을 믿고 그 약속을 믿어야 했다. 그들의 행렬에 하나님의 언약궤를 앞세운 까닭은 바로 거기에 있었다.

또 제사장들이 일곱 양각나팔을 들고 행진 중에 나팔을 분 것은 하나님께 아뢰는 뜻이 있는 것 같다(민 10:10). 제사장들의 나팔소리는 하나님께 대한 기도와 같다. “오 하나님, 주의 약속만 의지합니다. 주의 명령을 따라 이 시간 이곳까지 왔사오니 우리의 이 전쟁을 주께 부탁하나이다. 주의 대적들을 주의 종들의 손에 붙여주소서.”

또 여호수아와 이스라엘 백성의 행진은 한마디로 순종의 과정이었다. 하나님의 일은 하나님의 지시하신 방식대로 이루어졌고 인간 편에서는 믿음과 기도와 순종으로 이루어진 것이다.

여리고성의 정복 전쟁은 이스라엘 백성 편에서는 하나님의 약속과 능력을 체험한 전쟁이며 하나님의 방법으로 승리한 전쟁이었으나, 가나안 사람들 편에서는 처참하고 불행한 전쟁이었다. 그것은 하나님의 심판이었다. 하나님께서는 여호수아에게 “보라, 내가 여리고와 그 왕과 용사들을 네 손에 붙였노라”고 말씀하셨었다(2절).

하나님께서 그런 처참한 심판을 행하신 까닭은 가나안 원주민들의 죄악이 심히 컸기 때문이다. 그들의 죄는 우상숭배와 음란의 죄이었다. 그것들은 인간의 전형적 죄이다. 하나님께서는 죄를 미워하신다. 특히 우상숭배와 음란을 미워하신다. 하나님의 심판은 무섭다. 홍수 심판도, 소돔 성의 불심판도, 최종적 지옥도 참으로 무섭다.

[22-25절] 여호수아가 그 땅을 정탐한 두 사람에게 이르되 그 기생의 집에 들어가서 너희가 그 여인에게 맹세한 대로 그와 그에게 속한 모든 것을 이끌어내라 하매 정탐한 소년들이 들어가서 라합과 그 부모와 그 형제와 그에게 속한 모든 것을 이끌어내고 또 그 친족도 다 이끌어내어 그들을 이스라엘 진 밖에 두고 무리가 불로 성읍과 그 가운데 있는 모든 것을 사르고 은금과 동철 기구는 여호와의 집 곳간에 두었더라. 여호수아가 기생 라합과 그 아비의 가족과 그에게 속한 모든 것을 살렸으므로 그가 오늘날까지 이스라엘 중에 거하였으니 이는 여호수아가 여리고를 탐지하려고 보낸 사자를 숨겼음이었더라.

여호수아는 정탐군들을 라합의 집에 보내어 그와 그에게 속한 모든 사람들을 구출케 하였다. 모든 집들과 사람들을 불태우며 죽였고 금은동철 기구들은 여호와의 집 곳간에 두었다. 여호수아는 정탐군들이 라합에게 한 맹세의 약속을 지켰다. 라합은 믿음으로 구원을 받았다. 그는 그 멸망의 성 가운데서 구원을 받았다. 그는 비록 큰 죄인이었지만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믿음으로 구원을 받았다.

[26-27절] 여호수아가 그 때에 맹세로 무리를 경계하여 가로되 이 여리고성을 누구든지 일어나서 건축하는 자는 여호와 앞에서 저주를 받을 것이라. 그 기초를 쌓을 때에 장자를 잃을 것이요 문을 세울 때에 계자를 잃으리라 하였더라. 여호와께서 여호수아와 함께 하시니 여호수아의 명성이 그 온 땅에 퍼지니라.

여호수아는 훗날에 여리고성을 중건하는 자에 대해 저주를 선언하였다. 이 저주는 후에 그대로 이루어졌다. 이스라엘 왕 아합 때에 벧엘 사람 히엘이 여리고를 건축하다가 터를 쌓을 때에 맏아들을 잃었고 그 문을 세울 때 말째 아들을 잃었다(왕상 16:34).

여리고성의 정복은 몇 가지 교훈을 준다. 첫째로, 이 사건은 죄의 결과가 멸망임을 증거한다. 여리고성이 그렇게 멸망한 것은 하나님의 심판이었다. 죄의 결과는 멸망이다. 노아 시대의 홍수 심판이나 소돔과 고모라 성의 멸망이 그러하였었다. 가나안 땅의 멸망도 그러했다. 최종적으로 지옥 불못이 그러할 것이다(계 21:8). 사람은 죄를 짓지 말아야 하고 이미 지은 모든 죄들을 회개하고 그것들을 떠나야 한다.

둘째로, 여리고성의 정복 사건은 사람이 멸망의 세상 속에서 구원을 얻으려면 회개하고 하나님을 믿어야 함을 증거한다. 라합은 멸망하는 성 가운데서, 비록 죄인의 신분이었지만, 구원을 얻었다. 그와 그의 모든 친족들이 구원을 얻었다. 오늘날도 마찬가지다. 사람은, 비록 그가 라합처럼 큰 죄인일지라도, 비록 그가 사는 사회가 여리고성처럼 심히 악하여 그 멸망이 임박할지라도, 오직 하나님과 그의 보내주신 구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을 얻는다.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고 성경은 말한다.

셋째로, 여리고성 정복의 사건은 하나님의 일들이 믿음과 기도와 순종으로 이루어짐을 증거한다.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께서 여호수아를 통해 주신 명령과 지시대로 하나님의 언약궤를 따라 순종해야 했다. 여리고성 정복과 같이, 오늘날 우리도 하나님의 일들을 하나님의 방법대로 행해야 한다. 주께서는 우리에게 전도의 일과 참된 교회의 건립을 명하셨고 또 세상에서 빛과 소금이 되는 바르고 선한 삶을 살라고 교훈하셨다. 우리는 믿음과 기도와 순종으로 살며 일해야 한다.

 

7장: 아이성에서 실패함

[1절] 이스라엘 자손들이 바친 물건을 인하여 범죄하였으니 이는 유다 지파 세라의 증손 삽디의 손자 갈미의 아들 아간이 바친 물건을 취하였음이라.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진노하시니라.

여리고성 정복 때에 이스라엘 백성 중 한 사람 아간은 바친 물건을 취함으로 범죄하였다. 본장에는 ‘바친 물건’ 혹은 ‘바친 것’이라는 말이 여덟 번이나 나온다(1절[2번], 11절, 12절[2번], 13절[2번], 15절). ‘바친 물건’이라는 원어(케렘)는 ‘하나님께 완전히 바쳐진 것, 저주받은 것, 멸망 받아야 할 것’이라는 뜻이다. 레위기 27:28-29는, “여호와께 아주 바친 그 물건은 사람이든지 생축이든지 기업의 밭이든지 팔지도 못하고 속하지도 못하나니 바친 것은 다 여호와께 지극히 거룩함이며 아주 바친 그 사람은 다시 속하지 못하나니 반드시 죽일지니라”고 말하였다. 우상숭배와 음란으로 심히 더러워졌던 가나안 땅은 하나님께 완전히 바쳐진 것, 멸망 받아야 할 것이었다. 이스라엘 백성이 여리고성을 정복하려 할 때 하나님께서는 여호수아를 통해 “너희는 바칠 물건을 스스로 삼가라. 너희가 그것을 바친 후에 그 바친 어느 것이든지 취하면 이스라엘 진으로 바침이 되어 화를 당케 할까 두려워하노라”고 말씀하셨었다(수 6:18). 그러나 그들이 범죄함으로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진노하셨다.

[2-5절] 여호수아가 여리고에서 사람을 벧엘 동편 벧아웬 곁에 있는 아이로 보내며 그들에게 일러 가로되 올라가서 그 땅을 정탐하라 하매 그 사람들이 올라가서 아이를 정탐하고 여호수아에게로 돌아와서 그에게 이르되 백성을 다 올라가게 말고 이삼천 명만 올라가서 아이를 치게 하소서. 그들은 소수니 모든 백성을 그리로 보내어 수고롭게 마소서 하므로 백성 중 삼천 명쯤 그리로 올라갔다가 아이 사람 앞에서 도망하니 아이 사람이 그들의 36인쯤 죽이고 성문 앞에서부터 스바림까지 쫓아와서 내려가는 비탈에서 쳤으므로 백성의 마음이 녹아 물같이 된지라.

아이성은 여리고성에 비해 작은 성이므로 그들은 3천명만 올라가 치게 하였는데, 그들은 패전하여 36명쯤 죽임을 당했고 백성의 마음은 물같이 녹았다.

[6-9절] 여호수아가 옷을 찢고 이스라엘 장로들과 함께 여호와의 궤 앞에서 땅에 엎드려 머리에 티끌을 무릅쓰고 저물도록 있다가 여호수아가 가로되 슬프도소이다, 주 여호와여, 어찌하여 이 백성을 인도하여 요단을 건너게 하시고 우리를 아모리 사람의 손에 붙여 멸망시키려 하셨나이까? 우리가 요단 저편을 족하게 여겨 거하였더면 좋을 뻔하였나이다. 주여, 이스라엘이 그 대적 앞에서 돌아섰으니 내가 무슨 말을 하오리이까? 가나안 사람과 이 땅 모든 거민이 이를 듣고 우리를 둘러싸고 우리 이름을 세상에서 끊으리니 주의 크신 이름을 위하여 어떻게 하시려나이까?

여호수아는 하나님의 은혜로 그 전쟁에서 승리할 것을 기대했는데 패전함으로 크게 낙망하여 여호와의 궤 앞에 저물도록 땅에 엎드렸고 마음은 한없이 약해지고 두려움마저 엄습해왔다.

[10-15절] 여호와께서 여호수아에게 이르시되 일어나라. 어찌하여 이렇게 엎드렸느냐? 이스라엘이 범죄하여 내가 그들에게 명한 나의 언약을 어기었나니 곧 그들이 바친 물건을 취하고 도적하고 사기하여 자기 기구 가운데 두었느니라. 그러므로 이스라엘 자손들이 자기 대적을 능히 당치 못하고 그 앞에서 돌아섰나니 이는 자기도 바친 것이 됨이라. 그 바친 것을 너희 중에서 멸하지 아니하면 내가 다시는 너희와 함께 있지 아니하리라. 너는 일어나서 백성을 성결케 하여 이르기를 너희는 스스로 성결케 하여 내일을 기다리라.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에 이스라엘아, 너의 중에 바친 물건이 있나니 네가 그 바친 물건을 너의 중에서 제하기 전에는 너의 대적을 당치 못하리라. 아침에 너희는 너희 지파대로 가까이 나아오라. 여호와께 뽑히는 지파는 그 족속대로 가까이 나아올 것이요 여호와께 뽑히는 족속은 그 가족대로 가까이 나아올 것이요 여호와께 뽑히는 가족은 각 남자대로 가까이 나아올 것이며 바친 물건을 가진 자로 뽑힌 자를 불사르되 그와 그 모든 소유를 그리하라. 이는 여호와의 언약을 어기고 이스라엘 가운데서 망령된 일을 행하였음이라 하셨다 하라.

하나님께서는 여호수아에게 일어나라고 하시면서 그 전쟁에서의 패전의 원인이 범죄함에 있었다는 것을 일러주셨다. 아이성에서의 이스라엘 백성의 실패는 한 사람 아간의 죄 때문이었다. 한 사람의 죄는 이렇게 이스라엘 전체에게 심각한 결과를 가져왔다. 죄가 패배의 원인이다. 죄 때문에 개인도, 가정도, 국가도, 세상도 망한다. 죄가 모든 불행의 원인이다. 하나님께서는 또 여호수아에게 이스라엘 백성이 그것을 제거하지 않으면 그 전쟁에서 이길 수 없을 것이므로 그 범죄자를 제거해야 한다고 말씀하시며 이스라엘 총회를 모을 것과 그 범죄자를 찾아내는 방법까지 구체적으로 지시해주셨다.

[16-21절] 이에 여호수아가 아침 일찍이 일어나서 이스라엘을 그 지파대로 가까이 나아오게 하였더니 유다 지파가 뽑혔고 유다 족속을 가까이 나아오게 하였더니 세라 족속이 뽑혔고 세라 족속의 각 남자를 가까이 나아오게 하였더니 삽디가 뽑혔고 삽디의 가족 각 남자를 가까이 나아오게 하였더니 유다 지파 세라의 증손이요 삽디의 손자요 갈미의 아들인 아간이 뽑혔더라. 여호수아가 아간에게 이르되 내 아들아, 청하노라.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 영광을 돌려 그 앞에 자복하고 네 행한 일을 내게 고하라. 그 일을 내게 숨기지 말라. 아간이 여호수아에게 대답하여 가로되 참으로 나는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께 범죄하여 여차 여차히 행하였나이다. 내가 노략한 물건 중에 시날산의 아름다운 외투 한 벌과 은 이백 세겔과 오십 세겔 중의 금덩이 하나를 보고 탐내어 취하였나이다. 보소서, 이제 그 물건들을 내 장막 가운데 땅속에 감추었는데 은은 그 밑에 있나이다.

여호수아는 즉시 아침 일찍 일어나 이스라엘 백성을 지파대로와 가족대로 모으고 그 범죄자를 찾아내었다. 아간이 뽑혔고 그에게서 그 죄를 자백받았다. 그는 노략한 물건 중에 시날산의 아름다운 외투 한 벌과 은 200세겔과 50세겔 무게의 금덩이 하나를 탐내어 취하였다. 시날산 즉 바벨론산의 아름다운 외투는 오늘날 값비싼 프랑스제 밍크 코트 같은 것일 것이다. 은 200세겔은 은 약 2.3킬로그램인데, 후에 은 1데나리온이 은 5그램이니 은 200세겔은 약 460데나리온 정도가 되며, 신약시대에 일꾼 하루 품삯인 1데나리온을 7만원만 쳐도 은 200세겔은 약 3,200만원의 가치가 된다. 50세겔 중 금덩이는 약 600그램, 즉 약 160돈으로 2,700만원 이상의 가치가 될 것이다.

탐심은 신앙생활에 큰 방해거리이다. 성경은 탐심을 우상숭배라고 말한다(골 3:5). 주께서는 탐심은 가시밭에 뿌려진 씨와 같다고 말씀하셨다(마 13:22). 사도 바울은 디모데전서 6:9-10에서 “부하려 하는 자들은 시험과 올무와 여러가지 어리석고 해로운 정욕에 떨어지나니 곧 사람으로 침륜과 멸망에 빠지게 하는 것이라.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되나니 이것을 사모하는 자들이 미혹을 받아 믿음에서 떠나 많은 근심으로써 자기를 찔렀도다”라고 말하였다(딤전 6:9-10). 탐심은 우리가 극히 경계해야 할 죄이다.

[22-26절] 이에 여호수아가 사자를 보내매 그의 장막에 달려가 본즉 물건이 그의 장막 안에 감취었는데 은은 그 밑에 있는지라. 그들이 그것을 장막 가운데서 취하여 여호수아와 이스라엘 모든 자손에게로 가져오매 그들이 그것을 여호와 앞에 놓으니라. 여호수아가 이스라엘 모든 사람으로 더불어 세라의 아들 아간을 잡고 그 은과 외투와 금덩이와 그 아들들과 딸들과 소들과 나귀들과 양들과 장막과 무릇 그에게 속한 모든 것을 이끌고 아골 골짜기로 가서 여호수아가 가로되 네가 어찌하여 우리를 괴롭게 하였느뇨? 여호와께서 오늘날 너를 괴롭게 하시리라 하니 온 이스라엘이 그를 돌로 치고 그것들도 돌로 치고 불사르고 그 위에 돌무더기를 크게 쌓았더니 오늘날까지 있더라. 여호와께서 그 극렬한 분노를 그치시니 그러므로 그곳 이름을 오늘날까지 아골 골짜기라 부르더라.

여호수아는 아간의 자백대로 그의 장막에서 그 물건들을 확인한 후 그 물건들과 아간과 그 처자들과 가축들을 다 아골 골짜기에서 돌로 쳐죽이고 불사르었다. ‘아골’이라는 말(아코르 רוֹכ)은 괴로움이라는 뜻이다. 아골 골짜기는 괴로움의 골짜기이었다. 아간의 죄의 결과는 그 골짜기에서의 그 가족들의 고통의 부르짖음과 죽음이었다. 아간과 그의 가족들이 고통스런 부르짖음 가운데 죽임을 당하였을 때 하나님의 극렬한 진노가 그쳤다고 성경은 기록한다.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 정복에 성공하려면 악을 제거해야 했다. 그들이 범죄한다면 가나안 전쟁에서 결코 승리할 수 없다. 시편 5:4, “주는 죄악을 기뻐하는 신이 아니시니 악이 주와 함께 유하지 못하며.”

본장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죄는 실패의 원인이다. 개인이 죄를 지으면, 그 자신이 실패한다. 우상숭배나 이단이나 교만, 미움이나 음란이나 거짓말 등 십계명을 어기는 죄는 무엇이든지, 죄는 실패의 원인이다. 특히 아간의 죄 같은 탐심의 죄는 불행과 실패를 가져온다.

둘째로, 부모가 죄를 지으면, 그 자녀들에게 불행과 화가 있다. 부모의 죄는 자녀들에게 영향을 미친다. 우리가 정말 자녀의 행복을 원한다면 우리는 범죄치 말아야 한다. 만일 우리가 범죄하면 우리의 자녀는 행복하지 못할 것이다. 그들은 하나님의 복을 받지 못할 것이다.

셋째로, 교회도 주의 능력과 영광을 체험하며 간직하려면, 교인 한 사람 한 사람이 악을 포용해서는 안 되고 악을 버려야 하고 진지하게 주님을 섬기며 순종해야 한다. 특히 직분자 한 사람의 생활이 중요하다. 교회의 중직 한 사람이 범죄하면 확실히 교회에 큰 해가 될 것이다. 또 교회가 힘있게 일하려면, 교회는 성경의 교훈대로 운영되어야 할 것이다. 교회는 직분자를 바르게 세우고 교인들을 바르게 관리하고 교회 안에 잘못된 일이 있으면, 바르게 다루고 필요하면 권징을 행사해야 할 것이다. 개인이나 교회나 죄악을 포용하고서는 영적 전쟁에서 승리할 수 없고 하나님의 일을 바르고 힘있게 시행할 수 없다.

 

8장: 아이성을 정복함

[1-2절] 여호와께서 여호수아에게 이르시되 두려워 말라. 놀라지 말라. 군사를 다 거느리고 일어나 아이로 올라가라. 보라, 내가 아이 왕과 그 백성과 그 성읍과 그 땅을 다 네 손에 주었노니 너는 여리고와 그 왕에게 행한 것같이 아이와 그 왕에게 행하되 오직 거기서 탈취할 물건과 가축은 스스로 취하라. 너는 성 뒤에 복병할지니라.

하나님께서는 여호수아에게 다시 용기를 내어 아이성을 정복하라고 명하시며 그 성을 그에게 주었다고 말씀하셨다. 이제 그 전투는 승리할 것이다. 그 승리는 하나님의 허락하심 속에서 이루어질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세상의 모든 일들을 작정하시고 주장하신다. 시편 135:6, “여호와께서 무릇 기뻐하시는 일을 천지와 바다와 모든 깊은 데서 다 행하셨도다.” 세상에 지극히 작은 일 하나라도 하나님의 뜻과 상관없이 일어나지 않는다(마 10:29).

하나님의 허락하심은, 물론 하나님 편에서는 그의 기뻐하시는 뜻이었지만, 이스라엘 편에서는 악을 제거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사람의 죄는 하나님과 사람 사이를 가로막는다. 죄악은 사람의 기도에 대한 하나님의 응답을 가로막는다(사 59:1-2; 렘 5:25). 죄는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주실 수 있는 모든 좋은 것을 막는다. 이스라엘 백성은 아간의 죄를 징벌했을 때 승리의 허락을 받게 된 것이다. 죄가 제거되었을 때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의 승리를 허락하셨다. 아이성 전투에서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그 성의 가축과 노략물을 취할 수 있도록 허락하셨다.

[3-9절] 이에 여호수아가 일어나서 군사와 함께 아이로 올라가려 하여 용사 삼만 명을 뽑아 밤에 보내며 그들에게 명하여 가로되 너희는 성읍 뒤로 가서 성읍을 향하고 매복하되 그 성읍에 너무 멀리하지 말고 다 스스로 예비하라. 나와 나를 좇는 모든 백성은 다 성읍으로 가까이 가리니 그들이 처음과 같이 우리에게로 쳐 올라 올 것이라. 그리할 때에 우리가 그들 앞에서 도망하면 그들이 나와서 우리를 따르며 스스로 이르기를 그들이 처음과 같이 우리 앞에서 도망한다 하고 우리의 유인을 받아 그 성읍에서 멀리 떠날 것이라. 우리가 그 앞에서 도망하거든 너희는 매복한 곳에서 일어나서 그 성읍을 점령하라.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 손에 붙이시리라. 너희가 성읍을 취하거든 그것을 불살라 여호와의 말씀대로 행하라. 보라, 내가 너희에게 명하였느니라 하고 그들을 보내매 그들이 복병할 곳으로 가서 아이 서편 벧엘과 아이 사이에 매복하였고 여호수아는 그 밤에 백성 가운데서 잤더라.

아이성 정복은 복병술을 사용함으로 이루어졌다. 아이성의 정복은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일이지만, 그것은 저절로 되는 것이 아니었다.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뜻이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인간이 할 몫이 있었다. 이것이 하나님의 작정과 섭리의 방식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작정과 섭리를 믿는 성도들은 소극적 태도를 가져서는 안 된다. 하나님의 작정과 섭리의 성취에는 보통 우리가 해야 할 몫이 있다. 하나님의 뜻은 우리가 우리의 몫을 함으로 이루어질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지시하시는 우리의 몫을 성실히 행함으로 하나님의 뜻을 이룰 수 있다. 아이성 전투에서 이스라엘 백성은 복병술을 사용해야 하였다. 여호수아는 하나님의 지시를 그대로 실행했다.

[10-17절] 여호수아가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서 백성을 점고하고 이스라엘 장로들로 더불어 백성 앞서 아이로 올라가매 그를 좇은 군사가 다 올라가서 성읍 앞에 가까이 이르러 아이 북편에 진치니 그와 아이 사이에는 한 골짜기가 있었더라. 그가 오천 명 가량을 택하여 성읍 서편 벧엘과 아이 사이에 또 매복시키니 이와 같이 성읍 북편에는 온 군대가 있고 성읍 서편에는 복병이 있었더라. 여호수아가 그 밤에 골짜기 가운데로 들어가니 아이 왕이 이를 보고 그 성읍 백성과 함께 일찍이 일어나서 급히 나가 아라바 앞에 이르러 정한 때에 이스라엘과 싸우려 하고 성읍 뒤에 복병이 있는 줄은 알지 못하였더라. 여호수아와 온 이스라엘이 그들 앞에서 거짓 패하여 광야 길로 도망하매 그 성 모든 백성이 그들을 따르려고 모여서 여호수아를 따르며 유인함을 입어 성을 멀리 떠나니 아이와 벧엘에 이스라엘을 따라가지 아니한 자가 하나도 없으며 성문을 열어 놓고 이스라엘을 따랐더라.

여호수아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복병 전술을 설명했고 군사들 중 처음에는 3만명을, 그리고 후에 추가로 5천명을, 아이성의 서쪽 곧 뒤편에 매복시켰다. 그는 아침 일찍부터 아이성을 공격했다. 아이성의 왕과 군사들은 급히 대처했다. 그때 여호수아와 이스라엘 군대는 거짓 패하여 아이성 군사들을 유인해내는 데 성공했다. 아이성 왕과 모든 군사들은, 패하여 도망가는 듯한 이스라엘 군대를 추격하는데 여념이 없어서 성문을 열어 놓은 채 그들을 따라갔다. 그들은 이 두 번째 전투에서 매우 경솔하였다.

[18-23절] 여호와께서 여호수아에게 이르시되 네 손에 잡은 단창을 들어 아이를 가리키라. 내가 이 성읍을 네 손에 주리라. 여호수아가 그 손에 잡은 단창을 들어 성읍을 가리키니 그 손을 드는 순간에 복병이 그 처소에서 급히 일어나 성읍에 달려들어가서 점령하고 곧 성읍에 불을 놓았더라. 아이 사람이 뒤를 돌아본즉 그 성읍에 연기가 하늘에 닿은 것이 보이니 이 길로도 저 길로도 도망할 수 없이 되었고 광야로 도망하던 이스라엘 백성은 그 따르던 자에게로 돌이켰더라. 여호수아와 온 이스라엘이 그 복병이 성읍을 점령함과 성읍에 연기가 오름을 보고 다시 돌이켜 아이 사람을 죽이고 복병도 성읍에서 나와 그들을 치매 그들이 이스라엘 중간에 든지라. 혹은 이편에서 혹은 저편에서 쳐죽여서 한 사람도 남거나 도망하지 못하게 하였고 아이 왕을 사로잡아 여호수아 앞으로 끌어왔더라.

[24-29절] 이스라엘이 자기를 광야로 따르던 아이 모든 거민을 들에서 죽이되 그들을 다 칼날에 엎드러지게 하여 진멸하기를 마치고 온 이스라엘이 아이로 돌아와서 칼날로 죽이매 그 날에 아이 사람의 전부가 죽었으니 남녀가 일만 이천이라. 아이 거민을 진멸하기까지 여호수아가 단창을 잡아 든 손을 거두지 아니하였고 오직 그 성읍의 가축과 노략한 것은 여호와께서 여호수아에게 명하신 대로 이스라엘이 탈취하였더라. 이에 여호수아가 아이를 불살라 그것으로 영원한 무더기를 만들었더니 오늘까지 황폐하였으며 그가 또 아이 왕을 저녁때까지 나무에 달았다가 해질 때에 명하여 그 시체를 나무에서 내려 그 성문 어귀에 던지고 그 위에 돌로 큰 무더기를 쌓았더니 그것이 오늘까지 있더라.

여호수아는 자신이 들고 있던 창을 높이 들었다. ‘단창(短槍)’이라는 원어(키돈)는 ‘짧은 창’이 아니고, ‘던질 수 있는 가느다란 긴 창’을 가리킨다. 여호수아가 창을 높이 든 것은 하나의 신호였다. 이스라엘의 복병들은 여호수아의 신호에 따라 숨었던 곳에서 나와 성을 점령했고 그 성에 불을 놓았다. 아이성 왕과 군사들은 그제야 자신들의 경솔함을 알아차렸다. 그들은 이제 양쪽으로 공격을 받는 ‘독 안에 든 쥐’처럼 되었고 그 날 그 전투에서 아이성의 남녀 모든 사람들 12,000명이 다 죽임을 당했다. 여호수아는 아이성을 불사르고 영원한 무더기를 만들었다. 그 전쟁은 처참했다. 그것은 하나님의 심판이었다. 우상숭배와 음란으로 심히 더러워졌던 가나안 땅의 한 성 아이는 이렇게 완전히 멸망을 당하였다.

[30-35절] 때에 여호수아가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를 위하여 에발산에 한 단을 쌓았으니 이는 여호와의 종 모세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명한 것과 모세의 율법책에 기록된 대로 철 연장으로 다듬지 아니한 새 돌(아바님 쉘레모스)[‘온전한 돌들’ 즉 ‘깍지 않은 돌들’]로 만든 단이라. 무리가 여호와께 번제와 화목제를 그 위에 드렸으며 여호수아가 거기서 모세의 기록한 율법을 이스라엘 자손의 목전에서 그 돌에 기록하매 온 이스라엘과 그 장로들과 유사들과 재판장들과 본토인 뿐 아니라 이방인까지 여호와의 언약궤를 멘 레위 사람 제사장들 앞에서 궤의 좌우에 서되 절반은 그리심산 앞에, 절반은 에발산 앞에 섰으니 이는 이왕에 여호와의 종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에게 축복하라고 명한 대로 함이라. 그 후에 여호수아가 무릇 율법책에 기록된 대로 축복과 저주하는 율법의 모든 말씀을 낭독하였으니 모세의 명한 것은 여호수아가 이스라엘 온 회중과 여인과 아이와 그들 중에 동거하는 객들 앞에 낭독하지 아니한 말이 하나도 없었더라.

여호수아는 하나님을 위해 에발산에 한 단을 쌓았다. 그것은 모세의 율법책에 기록된 대로 철 연장으로 다듬지 아니한 새 돌로 만든 단이었다. 이스라엘 백성은 그 단 위에 여호와께 번제와 화목제를 드렸고 여호수아는 그 돌들 위에 모세의 기록한 율법을 기록하였다. 그런 후 온 이스라엘과 그 장로들과 유사들과 재판장들과 본토인뿐 아니라 이방인까지 여호와의 언약궤를 멘 레위 사람 제사장들 앞에서 궤의 좌우에 서되 절반은 그리심산 앞에, 절반은 에발산 앞에 섰다. 그것은 여호와의 종 모세가 명령한 대로였다(신 27:12-13). 여호수아는 율법책에 기록된 대로 축복과 저주하는 율법의 모든 말씀을 낭독하였다. 35절, “모세의 명한 것은 여호수아가 이스라엘 온 회중과 여인과 아이와 그들 중에 동거하는 객들 앞에 낭독하지 아니한 말이 하나도 없었더라.” 그 말씀의 낭독은 복과 저주의 선언과 같았다. 그것은 하나님의 명령과 뜻을 재확인하는 일이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 앞에 복과 저주의 두 길을 주시고 그들로 선택하게 하셨다. 만일 그들이 하나님의 율법을 순종하면 그들은 복을 얻으며 하나님께서 주시는 평안과 형통을 누릴 것이다. 그러나 만일 그들이 하나님의 율법을 거역하면 그들은 죄를 짓는 것이요 저주와 화를 당할 수밖에 없다. 복과 저주의 이 두 길은 세상에서도 그러하고 궁극적으로 내세에서도 그러할 것이다. 사람이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고 죄를 지으면 이 세상에서 결코 복을 얻지 못하고 평안과 형통을 누릴 수 없다. 하나님께서는 죄를 미워하신다. 그러나 사람이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죄씻음을 받고 하나님의 법을 즐거이 순종한다면 이 세상에서도 복을 받고 평안과 형통을 누리며 장차 확실히 영광의 천국에 들어갈 것이다.

말씀을 정리해보면, 아이성 정복의 사건에서 계시된 하나님의 진리와 교훈은 무엇인가? 무엇보다 첫째는 하나님의 주권 진리이다. 아이성 정복 즉 아이성의 두 번째 전투에서의 승리는 하나님의 허락 속에서 이루어졌다. 세상 만사는 하나님의 작정과 섭리대로 이루어진다. 개인도, 가정도, 교회도, 국가도, 온 세계도 그러하다. 하나님께서 허락하지 않으시면 되어질 일이 아무것도 없다. 그러나 그가 허락하시면 무슨 일이든지 다 이루어질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주권을 믿고 하나님의 주권적 작정과 주권적 섭리를 믿자.

둘째는 우리의 의무에 대한 진리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주권을 믿어야 할 뿐 아니라 또한 인간의 의무를 다해야 한다. 아이성 정복은 하나님의 허락하신 일이지만, 그것은 이스라엘 백성의 복병 전술로 이루어졌다. 하나님의 주권을 믿는 것은 소극적 태도를 갖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일상생활 속에서 우리의 의무들을 성실히 행해야 한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교훈하신 바대로 의롭고 선한 삶을 살아야 하고 주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우리는 가정에서 좋은 남편, 좋은 아내, 좋은 부모, 좋은 자녀가 되어야 하고, 사회에서 좋은 시민, 좋은 직장인, 좋은 상사, 좋은 직원이 되어야 하고, 교회에서는 좋은 목사, 좋은 장로, 좋은 권사와 집사, 좋은 성도가 되어야 한다.

셋째로, 우리는 죄를 짓지 않고 순종할 때 하나님의 복을 기대할 수 있다. 아이성의 첫 번째 전투에서 실패한 이유는 아간의 범죄 때문이었다. 죄는 실패의 원인, 불행의 원인이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죄씻음과 의롭다 하심을 얻은 우리는 이제 모든 죄를 버리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성경의 교훈대로 순종하며 거룩하고 의롭게 선하고 진실하게 살아야 한다. 우리가 예수님 믿고 구원받은 후에도 여전히 죄를 짓는다면 우리는 결코 복과 평안과 형통을 누리지 못할 것이지만, 우리가 말씀에 순종한다면 우리는 이 세상에서도 복과 평안과 형통을 풍성하게 누리다가 복된 천국에 들어가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복된 삶, 평안과 형통의 삶을 원한다면, 우리는 죄 짓지 말고 항상 하나님의 말씀 곧 성경말씀에 순종하는 자들이 되어야 한다.

 

9장: 기브온 사람들과 언약을 맺음

[1-2절] 요단 서편 산지와 평지와 레바논 앞 대해변에 있는 헷 사람과 아모리 사람과 가나안 사람과 브리스 사람과 히위 사람과 여부스 사람의 모든 왕이 이 일을 듣고 모여서 일심으로 여호수아와 이스라엘로 더불어 싸우려 하더라.

여리고성과 아이성의 멸망의 소식을 들은 가나안 땅의 모든 왕들은 합심하여 여호수아와 이스라엘 백성과 싸우려고 하였다.

[3-13절] 기브온 거민들이 여호수아의 여리고와 아이에 행한 일을 듣고 꾀를 내어 사신의 모양을 꾸미되 해어진 전대와 해어지고 찢어져서 기운 가죽 포도주 부대를 나귀에 싣고 그 발에는 낡아 기운 신을 신고 낡은 옷을 입고 다 마르고 곰팡이 난 떡을 예비하고 그들이 길갈 진으로 와서 여호수아에게 이르러 그와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이르되 우리는 원방에서 왔나이다. 이제 우리와 약조하사이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히위 사람에게 이르되 너희가 우리 중에 거하는 듯하니 우리가 어떻게 너희와 약조할 수 있으랴. 그들이 여호수아에게 이르되 우리는 당신의 종이니이다. 여호수아가 그들에게 묻되 너희는 누구며 어디서 왔느뇨? 그들이 여호수아에게 대답하되 종들은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인하여 심히 먼 지방에서 왔사오니 이는 우리가 그의 명성과 그가 애굽에서 행하신 모든 일을 들으며 또 그가 요단 동편에 있는 아모리 사람의 두 왕 곧 헤스본 왕 시혼과 아스다롯에 있는 바산 왕 옥에게 행하신 모든 일을 들었음이니이다. 그러므로 우리 장로들과 우리나라의 모든 거민이 우리에게 일러 가로되 너희는 여행할 양식을 손에 가지고 가서 그들을 맞아서 그들에게 이르기를 우리는 당신들의 종이니 청컨대 이제 우리와 약조하사이다 하라 하였나이다. 우리의 이 떡은 우리가 당신들에게로 오려고 떠나던 날에 우리들의 집에서 오히려 뜨거운 것을 양식으로 취하였더니 보소서 이제 말랐고 곰팡이 났으며 또 우리가 포도주를 담은 이 가죽 부대도 새것이더니 찢어지게 되었으며 우리의 이 옷과 신도 여행이 심히 길므로 인하여 낡아졌나이다 한지라.

히위 족속이었던(7절) 기브온 사람들은 가나안 사람들의 연합적 행동에서 이탈하였고 자신들을 위해 꾀를 내어 살길을 찾았다. 그들은 사신들의 모양을 꾸미되 해어진 전대와 해어지고 찢어져서 기운 가죽 포도주 부대를 나귀에 싣게 하고 그 발에는 낡아 기운 신을 신고 낡은 옷을 입고 다 마르고 곰팡이 난 떡을 예비하게 하였다. 그 사신들은 길갈 진으로 와서 여호수아와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자기들이 원방에서 왔으니 자기들과 약조하자고 말했다. 그들은 여호와께서 애굽에서 행하신 모든 일들을 들었고 요단 동편에 있는 아모리 사람의 두 왕 곧 헤스본 왕 시혼과 바산 왕 옥에게 행하신 일들도 들었다고 말했다. 그들은 새로 한 떡이 곰팡이가 났으며 새 포도주 가죽부대도 찢어졌고 옷과 신도 낡아졌다고 거짓말을 했다. 그러나 그들의 중심에는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마음이 있었다.

[14-15절] 무리가 그들의 양식을 취하고 어떻게 할 것을 여호와께 묻지 아니하고 여호수아가 곧 그들과 화친하여 그들을 살리리라는 언약을 맺고 회중 족장들이 그들에게 맹세하였더라.

여호수아와 이스라엘 족장들은 큰 실수를 하였다. 그들은 기브온 사신들의 꾀와 거짓말과 위장(僞裝)에 속아넘어갔다. 그들은 어떻게 할 것을 여호와께 묻지 아니하고 그들과 화친하여 그들을 살리리라는 언약을 맺고 회중 족장들이 그들에게 맹세하였다.

[16-21절] 그들과 언약을 맺은 후 삼일이 지나서야 그들은 근린에 있어 자기들 중에 거주하는 자라 함을 들으니라. 이스라엘 자손이 진행하여 제3일에 그들의 여러 성읍에 이르렀으니 그 성읍은 기브온과 그비라와 브에롯과 기럇여아림이라. 그러나 회중 족장들이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로 그들에게 맹세한 고로 이스라엘 자손이 그들을 치지 못한지라. 그러므로 회중이 다 족장들을 원망하니 모든 족장이 온 회중에게 이르되 우리가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로 그들에게 맹세하였은즉 이제 그들을 건드리지 못하리라. 우리가 그들에게 맹세한 맹약을 인하여 진노가 우리에게 임할까 하노니 이렇게 행하여 그들을 살리리라 하고 무리에게 이르되 그들을 살리라 하니 족장들이 그들에게 이른 대로 그들이 온 회중을 위하여 나무 패며 물긷는 자가 되었더라[그들을 살리고 족장들이 그들에게 이른 대로 그들로 온 회중을 위하여 나무 패며 물긷는 자가 되게 하라 하였더라].

그들이 그 사신들과 언약을 맺은 후 3일이 지나자, 그들은 그들이 거주하는 성읍에 도착했고 그 사신들이 그 성읍 사람들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은 족장들이 하나님의 이름으로 기브온 사신들에게 맹세했기 때문에 그들을 치지 못하였다. 성급한 결정은 잘못되는 경우가 많다. 그러므로 경건한 사람들은 먼저 하나님께 물었다. 그러나 실수로 한 맹세라 할지라도, 하나님께 한 맹세는 반드시 지켜야 한다. 이스라엘 회중의 족장들이 하나님께 맹세했기 때문에 기브온 사람들은 죽임을 당하지 않았다.

[22-27절] 여호수아가 그들을 불러다가 일러 가로되 너희가 우리 가운데 거주하거늘 어찌하여 우리는 너희에게서 심히 멀다 하여 우리를 속였느냐? 그러므로 너희가 저주를 받나니 너희가 영영히 종이 되어서 다 내 하나님의 집을 위하여 나무 패며 물 긷는 자가 되리라. 그들이 여호수아에게 대답하여 가로되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 종 모세에게 명하사 이 땅을 다 당신들에게 주고 이 땅 모든 거민을 당신들의 앞에서 멸하라 하신 것이 당신의 종에게 분명히 들리므로 당신들을 인하여 우리 생명을 잃을까 심히 두려워하여 이같이 하였나이다. 보소서, 이제 우리가 당신의 손에 있으니 당신의 의향에 좋고 옳은 대로 우리에게 행하소서 한지라. 여호수아가 곧 그대로 그들에게 행하여 그들을 이스라엘 자손의 손에서 건져서 죽이지 못하게 하니라. 그 날에 여호수아가 그들로 여호와의 택하신 곳에서 회중을 위하며 여호와의 단을 위하여 나무 패며 물 긷는 자를 삼았더니 오늘까지 이르니라.

기브온의 장로들은 다른 성읍들의 장로들과 달랐다. 그들은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께서 애굽에서 행하신 모든 일과 또 요단 동편에 있는 아모리 사람의 두 왕 곧 헤스본 왕 시혼과 바산 왕 옥에게 행하신 모든 일을 들었고(9-10절) 또 여호수아가 여리고성과 아이성에 행한 일들도 들었고(3절) 이스라엘 백성의 하나님을 인정하게 되었다. 또 그들은 하나님께서 가나안 땅을 이스라엘 백성에게 주시고 그것을 멸하라고 모세에게 하신 말씀을 듣고 두려워했다(24절). 즉 기브온 장로들에게는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인정하는 믿음과 두려워하는 마음이 있었던 것이다. 만일 그들의 마음이 교만하고 완악하였다면 그들은 그런 꾀도 내지 못했을 것이고 이스라엘 백성에게 굴복하려고도 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들이 거짓을 말한 것은 잘못이지만, 그 멸망의 위기 앞에서 그들 속에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인정함과 두려워함이 있었던 것은 분명히 하나님의 은혜이었다. 그들은 자신들이 멸망당할 상황에서 살아 남는 길은 그것밖에 없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오늘날 우리가 보아도 그 외에 다른 길이 없었다.

여호수아는 기브온 사람들을 이스라엘 자손들의 손에서 건져서 죽이지 못하게 하였고 그들로 여호와의 택하신 곳에서 회중을 위하며 여호와의 단을 위하여 나무 패며 물 긷는 자를 삼았다. 그들에게는 나무 패며 물긷는 자가 되는 것이 큰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그들은 죽임을 당할 처지이었기 때문에 그런 신분이라도 감사했을 것이다. 그들은 멸망당할 직전에 기이하게 구원을 받았던 것이다.

본장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우리는 모든 일에 있어서 성급하게 행하거나 경솔히 맹세하지 말고 조용히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고 하나님께 기도하고 그를 의지하며 그의 인도하심을 구해야 한다.

둘째로, 오늘날도 성경을 통해 하나님을 인정하고 두려워하고 임박한 멸망을 깨닫고 구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마다 구원을 얻는다.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는 자마다 구원을 받을 것이다.

셋째로, 멸망당할 죄인, 영원한 지옥 불못에 들어갈 죄인인 우리가 하나님과 구주 예수의 은혜로 구원을 얻었으니, 이제 우리는 우리의 몸과 마음을 하나님께 헌신하며 선한 일을 위해 바쳐지는 종이 되자.

 

10장: 아모리 다섯 왕을 죽임

[1-5절] 여호수아가 아이를 취하여 진멸하되 여리고와 그 왕에게 행한 것같이 아이와 그 왕에게 행한 것과 또 기브온 거민이 이스라엘과 화친하여 그 중에 있다 함을 예루살렘 왕 아도니세덱이 듣고 크게 두려워하였으니 이는 기브온은 왕도와 같은 큰 성임이요 아이보다 크고 그 사람들은 다 강함이라. 예루살렘 왕 아도니세덱이 헤브론 왕 호함과 야르뭇 왕 비람과 라기스 왕 야비아와 에글론 왕 드빌에게 보내어 가로되 내게로 올라와 나를 도우라. 우리가 기브온을 치자. 이는 기브온이 여호수아와 이스라엘 자손으로 더불어 화친하였음이니라 하매 이러므로 아모리 다섯 왕 곧 예루살렘 왕과 헤브론 왕과 야르뭇 왕과 라기스 왕과 에글론 왕이 함께 모여 자기들의 모든 군대를 거느리고 올라와서 기브온에 대진하고 싸우니라.

예루살렘 왕 아도니세덱은 왕도 같은 큰 성 기브온이 이스라엘과 화친했다는 소식을 듣고 헤브론 왕 호함과 야르뭇 왕 비람과 라기스 왕 야비아와 에글론 왕 드빌을 불러 함께 기브온을 공격하려 했다.

[6-11절] 기브온 사람들이 길갈 진에 보내어 여호수아에게 전언하되 당신의 종들 돕기를 더디게 마시고 속히 우리에게 올라와서 우리를 구조하소서. 산지에 거하는 아모리 사람의 왕들이 다 모여 우리를 치나이다 하매 여호수아가 모든 군사와 용사로 더불어 길갈에서 올라가니라. 때에 여호와께서 여호수아에게 이르시되 그들을 두려워 말라. 내가 그들을 네 손에 붙였으니 그들의 한 사람도 너를 당할 자 없으리라 하신지라. 여호수아가 길갈에서 밤새도록 올라가서 그들에게 갑자기 이르니 여호와께서 그들을 이스라엘 앞에서 패하게 하시므로[하셨고] [여호수아가](원문에는 하나님께서 주어임)(KJV, NASB) 그들을 기브온에서 크게 도륙하고[치셨고] 벧호론에 올라가는 비탈에서 추격하여[추격하셨고] 아세가와 막게다까지 이르니라[이르러 치셨더라]. 그들이 이스라엘 앞에서 도망하여 벧호론의 비탈에서 내려갈 때에 여호와께서 하늘에서 큰 덩이 우박을 아세가에 이르기까지 내리우시매 그들이 죽었으니 이스라엘 자손의 칼에 죽은 자보다 우박에 죽은 자가 더욱 많았더라.

기브온 사람들은 이스라엘에게 빠른 도움을 요청했고 여호수아는 그 연합군과 싸우기 위해 즉시 길갈에서 떠나 기브온으로 밤새도록 올라갔고, 기브온성을 향해 진을 친 아모리 다섯 왕들의 군대들을 갑자기 쳤다. 하나님께서는 여호수아에게 “그들을 두려워 말라. 내가 그들을 네 손에 붙였으니 그들의 한 사람도 너를 당할 자 없으리라”고 말씀하시며 격려하셨다. 여호수아는 하나님을 의지했고 두려워하지 않고 그의 명령에 순종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이스라엘 앞에서 크게 치셨고 패하게 하셨고, 또 하늘에서 큰 덩이 우박을 내리셨는데 이스라엘 자손의 칼에 죽은 자들보다 우박에 죽은 자들이 더 많았다. 이스라엘 백성은 그의 도우심으로 그들을 다 멸했다.

[12-15절] 여호와께서 아모리 사람을 이스라엘 자손에게 붙이시던 날에 여호수아가 여호와께 고하되 이스라엘 목전에서 가로되 태양아, 너는 기브온 위에 머무르라. 달아, 너도 아얄론 골짜기에 그리할지어다 하매 태양이 머물고 달이 그치기를 백성이 그 대적에게 원수를 갚도록 하였느니라. 야살의 책에 기록되기를 태양이 중천에 머물러서 거의 종일토록 속히 내려가지 아니하였다 하지 아니하였느냐? 여호와께서 사람의 목소리를 들으신 이 같은 날은 전에도 없었고 후에도 없었나니 이는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위하여 싸우셨음이니라. 여호수아가 온 이스라엘로 더불어 길갈 진으로 돌아왔더라.

이 전쟁에서 여호수아는 이스라엘 백성 앞에서 하나님께 아뢰며 “태양아, 기브온 위에 머무르라”고 명령하듯이 하나님께 간구하였고 하나님께서는 그의 목소리를 들으셔서 그들이 그 전쟁에서 이기기까지 태양이 머물었고 그 사실은 야살의 책에도 기록되었다. 이것은 매우 놀라운 일이었다. 여호와께서 사람의 목소리를 들으신 이 같은 날은 이스라엘 역사에, 아니 인류 역사에 전에도 없었고 후에도 없었다.6) 여호와께서는 이스라엘을 위해 싸우셨다. 본장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위해 친히 싸우셨다고 거듭하여 증거한다(14, 42절).

[16-21절] 그 다섯 왕이 도망하여 막게다의 굴에 숨었더니 혹이 여호수아에게 고하여 가로되 막게다의 굴에 그 다섯 왕의 숨은 것을 발견하였나이다. 여호수아가 가로되 굴 어귀에 큰 돌을 굴려 막고 사람을 그 곁에 두어 그들을 지키게 하고 너희는 지체말고 너희 대적의 뒤를 따라가 그 후군을 쳐서 그들로 자기들의 성읍에 들어가지 못하게 하라.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들을 너희 손에 붙이셨느니라 하고 여호수아와 이스라엘 자손이 그들을 크게 도륙하여 거의 진멸시켰고 그 남은 몇 사람은 견고한 성으로 들어간 고로 모든 백성이 평안히 막게다 진으로 돌아와 여호수아에게 이르렀으나 혀를 놀려 이스라엘 자손을 대적하는 자가 없었더라.

그 다섯 왕은 도망하여 막게다 굴에 숨었다. 여호수아는 굴 어귀에 큰 돌을 굴려 막고 지키게 하였고 대적자들을 거의 다 멸하였다. 본장은 반복해서 하나님께서 가나안 성들의 왕들과 사람들을 그들의 손에 부쳐주셨다는 사실을 강조한다(8, 19, 30, 32절).

[22-27절] 때에 여호수아가 가로되 굴 어귀를 열고 그 굴에서 그 다섯 왕을 내게로 끌어내라 하매 그들이 그대로 하여 그 다섯 왕 곧 예루살렘 왕과 헤브론 왕과 야르뭇 왕과 라기스 왕과 에글론 왕을 굴에서 그에게로 끌어내니라. 그 왕들을 여호수아에게로 끌어내매 여호수아가 이스라엘 모든 사람을 부르고 자기와 함께 갔던 군장들에게 이르되 가까이 와서 이 왕들의 목을 발로 밟으라 가까이 와서 그들의 목을 밟으매 여호수아가 군장들에게 이르되 두려워 말며 놀라지 말고 마음을 강하게 하고 담대히 하라. 너희가 더불어 싸우는 모든 대적에게 여호와께서 다 이와 같이 하시리라 하고 그 후에 여호수아가 그 왕들을 쳐죽여 다섯 나무에 매어 달고 석양까지 나무에 달린 대로 두었다가 해 질 때에 여호수아가 명하매 그 시체를 나무에서 내리어 그들의 숨었던 굴에 들여 던지고 굴 어귀를 큰 돌로 막았더니 오늘날까지 있더라.

여호수아는 그 다섯 왕을 굴에서 끌어내어 죽이고 다섯 나무들에 매어 달았고 해가 진 후에 그 시체들을 굴에 던져 넣었다.

[28-39절] 그 날에 여호수아가 막게다를 취하고 칼날로 그 성읍과 왕을 쳐서 그 성읍과 그 중에 있는 모든 사람을 진멸하여 한 사람도 남기지 아니하였으니 막게다 왕에게 행한 것이 여리고 왕에게 행한 것과 일반이었더라. 여호수아가 온 이스라엘로 더불어 막게다에서 립나로 나아가서 립나와 싸우매 여호와께서 또 그 성읍과 그 왕을 이스라엘의 손에 붙이신지라. 칼날로 그 성읍과 그 중의 모든 사람을 쳐서 멸하여 한 사람도 남기지 아니하였으니 그 왕에게 행한 것이 여리고 왕에게 행한 것과 일반이었더라. 여호수아가 또 온 이스라엘로 더불어 립나에서 라기스로 나아가서 대진하고 싸우더니 여호와께서 라기스를 이스라엘의 손에 붙이신지라. 이튿날에 그 성읍을 취하고 칼날로 그것과 그 중의 모든 사람을 쳐서 멸하였으니 립나에 행한 것과 일반이었더라. 때에 게셀 왕 호람이 라기스를 도우려고 올라오므로 여호수아가 그와 그 백성을 쳐서 한 사람도 남기지 아니하였더라. 여호수아가 온 이스라엘로 더불어 라기스에서 에글론으로 나아가서 대진하고 싸워 그 날에 그 성읍을 취하고 칼날로 그것을 쳐서 그 중에 있는 모든 사람을 당일에 진멸하였으니 라기스에 행한 것과 일반이었더라. 여호수아가 또 온 이스라엘로 더불어 에글론에서 헤브론으로 올라가서 싸워 그 성읍을 취하고 그것과 그 왕과 그 속한 성읍들과 그 중의 모든 사람을 칼날로 쳐서 하나도 남기지 아니하였으니 그 성읍과 그 중의 모든 사람을 진멸한 것이 에글론에 행한 것과 일반이었더라. 여호수아가 온 이스라엘로 더불어 돌아와서 드빌에 이르러 싸워 그 성읍과 그 왕과 그 속한 성읍들을 취하고 칼날로 그 성읍을 쳐서 그 중의 모든 사람을 진멸하고 하나도 남기지 아니하였으니 드빌과 그 왕에게 행한 것이 헤브론에 행한 것과 일반이요 립나와 그 왕에게 행한 것과 일반이었더라.

이스라엘 백성은 막게다, 립나, 라기스, 게셀, 에글론, 헤브론, 드빌 등의 성들도 다 멸하였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다 이스라엘의 손에 붙여주셨다. 이것은 가나안 땅의 남부 전쟁에서의 승리이었다. 여호수아와 이스라엘 백성은 오직 하나님만 의지하고 가나안 사람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기만 하면 되었다.

[40-43절] 이와 같이 여호수아가 온 땅 곧 산지와 남방과 평지와 경사지와 그 모든 왕을 쳐서 하나도 남기지 아니하고 무릇 호흡이 있는 자는 진멸하였으니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의 명하신 것과 같았더라. 여호수아가 또 가데스 바네아에서 가사까지와 온 고센 땅을 기브온에 이르기까지 치매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위하여 싸우신 고로 여호수아가 이 모든 왕과 그 땅을 단번에 취하니라. 여호수아가 온 이스라엘로 더불어 길갈 진으로 돌아왔더라.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위해 싸우셨으므로 여호수아는 온 땅을 쳐서 하나도 남기지 아니하고 무릇 호흡이 있는 자는 다 멸하였고 그 땅을 단번에 취하였다. 그들은 가나안 땅의 남부를 점령하였다.

본장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여호수아가 가나안 땅을 완전히 정복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었듯이, 오늘날에는 모든 사람에게 복음을 전하여 하나님의 택한 백성을 다 구원하며 구원받은 자들을 온전케 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다. 즉 전도와 성화가 하나님의 뜻인 것이다.

둘째로, 가나안 전쟁이 하나님의 손 안에 있었듯이, 전도와 성화는 하나님의 손 안에 있다. 하나님께서는 만세 전에 어떤 자들을 택하셨고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셔서 그들의 속죄를 이루시고 때가 되어 그들로 예수님 믿고 구원받게 하시고 또 그들의 성화를 온전히 이루신다. 전도와 성화는 가나안 전쟁이다. 우리는 이 전쟁을 잘 감당해야 한다.

 

11-12장: 하솔의 연합군을 멸함

[11:1-5] 하솔 왕 야빈이 이 소식을 듣고 마돈 왕 요밥과 시므론 왕과 악삽 왕과 및 북방 산지와 긴네롯 남편 아라바와 평지와 서방 돌의 높은 곳에 있는 왕들과 동서편 가나안 사람과 아모리 사람과 헷 사람과 브리스 사람과 산지의 여부스 사람과 미스바 땅 헤르몬산 아래 히위 사람들에게 사람을 보내매 그들이 그 모든 군대를 거느리고 나왔으니 민중이 많아 해변의 수다한 모래 같고 말과 병거도 심히 많았으며 이 왕들이 모여 나아와서 이스라엘과 싸우려고 메롬 물가에 함께 진 쳤더라.

이스라엘 백성은 하솔의 연합군이라는 거대한 대적자들을 만났다.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 땅 중부로 진입해서 여리고성을 비롯하여 그 주위를 진멸하고 그 다음 남부를 진멸하였을 때, 그 소식을 들은 가나안 땅 북부의 성들은 연합하여 이스라엘과 싸우려 한 것이다. 그들의 우두머리는 갈릴리 바다 서북쪽에 위치한 하솔이라는 성이었다. 하솔 왕 야빈은 이스라엘에 대한 소식을 듣고 마돈 왕과 시므론 왕과 악삽 왕과 북방 산지와 긴네롯 남쪽 아라바와 평지와 서방 돌의 높은 곳에 있는 왕들과 동서편 가나안 사람과 그 주위의 사람들에게 사람을 보내었고 그들은 모든 군대를 거느리고 나와 이스라엘과 싸우려고 메롬 물가에 함께 진 쳤다. 이것은 가나안 땅의 북부 전쟁이었다. 그 군사들의 수는 해변의 많은 모래같이 많았고 말과 병거도 심히 많았다. 가나안 땅 북부의 연합군은 거대한 세력이었다. 전쟁은 두렵고 힘든 일이다. 가나안 땅의 이 북부 전쟁도 그러했다.

[6-9절] 여호와께서 여호수아에게 이르시되 그들을 인하여 두려워 말라. 내일 이맘때에 내가 그들을 이스라엘 앞에 붙여 몰살시키리니 너는 그들의 말 뒷발의 힘줄을 끊고 불로 그 병거를 사르라. 이에 여호수아가 모든 군사와 함께 메롬 물가로 가서 졸지에 습격할 때에 여호와께서 그들을 이스라엘의 손에 붙이신 고로 그들을 격파하고 큰 시돈과 미스르봇 마임까지 쫓고 동편에서는 미스바 골짜기까지 쫓아가서 한 사람도 남기지 아니하고 쳐죽이고 여호수아가 여호와께서 자기에게 명하신 대로 행하여 그들의 말 뒷발의 힘줄을 끊고 불로 그 병거를 살랐더라.

이 전쟁에서도 하나님께서는 그 두려운 대적자들을 이스라엘의 손에 붙여주셨다. 하나님께서는 여호수아에게 그들을 인해 두려워 말라고 하시며 승리할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여호수아는 모든 군사와 함께 메롬 물가로 가서 갑자기 그들을 습격했고 여호와께서 그들을 이스라엘의 손에 붙이셨기 때문에 이스라엘은 그들을 격파하고 한 사람도 남기지 아니하고 쳐서 죽였다. 전쟁의 승패는 하나님의 뜻과 하나님의 손에 달렸다. 하나님께서 가나안 족속들을 다 멸하시려고 뜻하셨기 때문에 또 그들을 이스라엘의 손에 붙이셨기 때문에 이스라엘은 하솔의 거대한 연합군을 이길 수 있었다. 여호수아는 이 전쟁에서도 하나님께 순종하였고 그의 지시와 명령대로 행하였다. 9절은 “여호수아가 여호와께서 자기에게 명하신 대로 행하여 그들의 말 뒷발의 힘줄을 끊고 불로 그 병거를 살랐더라”고 기록한다.

[10-15절] 하솔은 본래 그 모든 나라의 머리였더니 그때에 여호수아가 돌아와서 하솔을 취하고 그 왕을 칼날로 쳐죽이고 그 가운데 모든 사람을 칼날로 쳐서 진멸하여 호흡이 있는 자는 하나도 남기지 아니하였고 또 불로 하솔을 살랐으며 여호수아가 그 왕들의 모든 성읍과 그 모든 왕을 취하여 칼날로 쳐서 진멸하여 여호와의 종 모세의 명한 것과 같이 하였으되 여호수아가 하솔만 불살랐고 산 위에 건축된 성읍들은 이스라엘이 불사르지 아니하였으며 이 성읍들의 모든 재물과 가축은 이스라엘 자손들이 탈취하고 모든 사람은 칼날로 쳐서 진멸하여 호흡이 있는 자는 하나도 남기지 아니하였으니 여호와께서 그 종 모세에게 명하신 것을 모세는 여호수아에게 명하였고 여호수아는 그대로 행하여 여호와께서 무릇 모세에게 명하신 것을 하나도 행치 아니한 것이 없었더라.

여호수아는 돌아와서 하솔을 취하고 그 왕을 칼날로 쳐죽이고 그 가운데 모든 사람을 칼날로 쳐서 완전히 멸하여 호흡이 있는 자는 하나도 남기지 아니하였고 또 하솔만 불로 살랐으며 또 그 왕들의 모든 성읍과 그 모든 왕을 칼날로 쳐서 다 멸하여 여호와의 종 모세의 명한 것과 같이 했다. 그 성읍들의 모든 재물과 가축은 이스라엘 자손들이 탈취하였다. 15절은 기록하기를, “여호와께서 그 종 모세에게 명하신 것을 모세는 여호수아에게 명하였고 여호수아는 그대로 행하여 여호와께서 무릇 모세에게 명하신 것을 하나도 행치 아니한 것이 없었더라”라고 하였다.

[16-20절] 여호수아가 이같이 그 온 땅 곧 산지와 온 남방과 고센 온 땅과 평지와 아라바와 이스라엘의 산지와 그 평지를 취하였으니 곧 세일로 올라가는 할락산에서부터 헤르몬산 아래 레바논 골짜기의 바알갓까지라. 그 모든 왕을 잡아 쳐죽였으며 여호수아가 그 모든 왕과 싸운지는 여러 날이라. 기브온 거민 히위 사람 외에는 이스라엘 자손과 화친한 성읍이 하나도 없고 다 이스라엘 자손에게 쳐서 취한 바 되었으니 그들의 마음이 강퍅하여 이스라엘을 대적하여 싸우러 온 것은 여호와께서 그리하게 하신 것이라. 그들로 저주받은 자 되게 하여 은혜를 입지 못하게 하시고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하신 대로 진멸하려 하심이었더라.

가나안 전쟁은 두렵고 힘든 전쟁이었지만, 여호수아는 하나님과 모세의 명령대로 온전히 순종하여 승리하였다. 기브온 거민 외에는 이스라엘과 화친한 성읍이 하나도 없었다. 가나안 족속들이 이스라엘을 대적하여 싸우려 한 것도, 그들이 하나님의 은혜나 이스라엘의 호의를 받지 못한 것도, 또 그들이 결국 처참하게 패배하고 죽임을 당한 것도 다 하나님의 주권적 섭리 아래 되었던 것이다. 그것은 그들의 우상숭배와 음란의 죄악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이었다.

[21-23절] 그때에 여호수아가 가서 산지와 헤브론과 드빌과 아납과 유다 온 산지와 이스라엘의 온 산지에서 아낙 사람을 멸절하고 그가 또 그 성읍들을 진멸하였으므로 이스라엘 자손의 땅 안에는 아낙 사람이 하나도 남음이 없고 가사와 가드와 아스돗에만 약간 남았었더라. 이와 같이 여호수아가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신 말씀대로 그 온 땅을 취하여 이스라엘 지파의 구별을 따라 기업으로 주었더라. 그 땅에 전쟁이 그쳤더라.

본래 가나안 땅에는 아낙 자손들이 있었다. 아낙 자손은 거인이었다(민 13:33). 이스라엘은 이런 거인들을 상대해야 했고 그것은 심히 두려운 일이었다. 그러나 여호수아는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신 말씀대로 그 온 땅을 취하여 이스라엘 지파의 구별을 따라 기업으로 주었다. 23절은 “그 땅에 전쟁이 그쳤더라”고 기록한다.

[12:1-6] 이스라엘 자손이 요단 저편 해 돋는 편 곧 아르논 골짜기에서 헤르몬산까지의 동방 온 아라바를 점령하고 그 땅에서 쳐죽인 왕들은 이러하니라. 헤스본에 거하던 아모리 사람의 왕 시혼이라. 그 다스리던 땅은 아르논 골짜기 가에 있는 아로엘에서부터 골짜기 가운데 성읍과 길르앗 절반 곧 암몬 자손의 지경 얍복강까지며 또 동방 아라바 긴네롯 바다까지며 또 동방 아라바의 바다 곧 염해의 벧여시못으로 통한 길까지와 남편으로 비스가 산록까지며 또 르바의 남은 족속으로서 아스다롯과 에드레이에 거하던 바산 왕 옥이라. 그 치리하던 땅은 헤르몬산과 살르가와 온 바산과 및 그술 사람과 마아가 사람의 지경까지의 길르앗 절반이니 헤스본 왕 시혼의 지경에 접한 것이라. 여호와의 종 모세와 이스라엘 자손이 그들을 치고 여호와의 종 모세가 그 땅을 르우벤 사람과 갓 사람과 므낫세 반 지파에게 기업으로 주었더라.

여호수아 12장은 여호수아가 정복한 성들의 왕들을 열거하는데, 우선 요단강 동편에 있었던 아모리 왕 시혼과 바산 왕 옥과 그들의 땅을 언급한다. 그들의 땅은 르우벤, 갓, 므낫세 반 지파에게 주었다.

[7-24절] 여호수아와 이스라엘 자손이 요단 이편 곧 서편 레바논 골짜기의 바알갓에서부터 세일로 올라가는 곳 할락산까지에서 쳐서 멸한 왕들은 이러하니 (그 땅을 여호수아가 이스라엘의 구별을 따라 그 지파에게 기업으로 주었으니 곧 산지와 평지와 아라바와 경사지와 광야와 남방 곧 헷 사람과 아모리 사람과 가나안 사람과 브리스 사람과 히위 사람과 여부스 사람의 땅이라.) 하나는 여리고 왕이요 하나는 벧엘 곁의 아이 왕이요 하나는 예루살렘 왕이요 하나는 헤브론 왕이요 하나는 야르뭇 왕이요 하나는 라기스 왕이요 하나는 에글론 왕이요 하나는 게셀 왕이요 하나는 드빌 왕이요 하나는 게델 왕이요 하나는 호르마 왕이요 하나는 아랏 왕이요 하나는 립나 왕이요 하나는 아둘람 왕이요 하나는 막게다 왕이요 하나는 벧엘 왕이요 하나는 답부아 왕이요 하나는 헤벨 왕이요 하나는 아벡 왕이요 하나는 랏사론 왕이요 하나는 마돈 왕이요 하나는 하솔 왕이요 하나는 시므론 므론 왕이요 하나는 악삽 왕이요 하나는 다아낙 왕이요 하나는 므깃도 왕이요 하나는 게데스 왕이요 하나는 갈멜의 욕느암 왕이요 하나는 돌의 높은 곳의 돌 왕이요 하나는 길갈의 고임 왕이요 하나는 디르사 왕이라. 도합 31왕이었더라.

요단강 서편에서는 여리고 왕과 아이 왕을 비롯하여 31명의 왕이 언급된다. 이들은 다 하나님의 뜻 가운데서 또 하나님의 역사하심 속에서 가나안 전쟁에서 여호수아와 이스라엘 백성에게 죽임을 당했던 왕들이었고 그 땅들과 성들이었다.

여호수아 11-12장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우리는 가나안 족속이 되지 말아야 한다. 그들은 우상숭배와 음란의 죄가 가득했고 마침내 하나님의 진노와 심판을 받았다. 우리는 모든 죄를 다 버려야 한다.

둘째로, 우리는 이 세상을 두려워하지 말고 하나님만 의지하고 성도의 의무를 다해야 한다. 하나님께서 명하신 성도의 의무는 세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첫째, 하나님께 참된 예배를 드려야 한다. 둘째, 영적으로 성장하여 죄 짓지 말고 의와 선과 사랑을 실천해야 한다. 셋째, 하나님과 구주 예수 그리스도를 알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말과 행위로 복음을 전해야 한다. 이것이 성도들이 개인적으로나 교회적으로 힘써야 할 의무이다. 개인의 신앙생활이나 개인이나 교회의 전도 활동은 영적 전쟁이다. 마귀의 시험과 이 세상의 죄악된 풍조와 우리 자신의 남은 죄성은 우리의 신앙생활을 방해한다. 또 마귀와 세상은 개인이나 교회의 전도 활동과 참된 교회의 건립을 방해한다. 그러나 우리는 이 세상을 두려워 말고 하나님만 의지하고 성도의 의무를 다해야 한다.

 

13장: 요단 동편의 땅 분배

[1-7절] 여호수아가 나이 많아 늙으매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너는 나이 많아 늙었고 얻을 땅의 남은 것은 매우 많도다. 이 남은 땅은 이러하니 블레셋 사람의 온 지방과 그술 사람의 전경 곧 애굽 앞 시홀 시내에서부터 가나안 사람에게 속한 북방 에그론 지경까지와 블레셋 사람의 다섯 방백의 땅 곧 가사 사람과 아스돗 사람과 아스글론 사람과 가드 사람과 에그론 사람과 또 남방 아위 사람의 땅과 또 가나안 사람의 온 땅과 시돈 사람에게 속한 므아라와 아모리 사람의 지경 아벡까지와 또 그발 사람의 땅과 동편 온 레바논 곧 헤르몬산 아래 바알갓에서부터 하맛에 들어가는 곳까지와 또 레바논에서부터 미스르봇마임까지의 산지 모든 거민 곧 모든 시돈 사람의 땅이라. 내가 그들을 이스라엘 자손 앞에서 쫓아내리니 너는 나의 명한 대로 그 땅을 이스라엘에게 분배하여 기업이 되게 하되 너는 이 땅을 아홉 지파와 므낫세 반 지파에게 나누어 기업이 되게 하라 하셨더라.

여호수아가 나이 많아 늙었으나 아직도 이스라엘이 정복해야 할 남은 땅이 많았다. 요단 동편에서 두 지파와 반 지파가 기업을 얻었으므로 서쪽에서는 아홉 지파와 반 지파가 기업을 얻으면 되었다.

[8-14절] 므낫세 반 지파와 함께 르우벤 사람과 갓 사람은 요단 동편에서 그 기업을 모세에게 받았는데 여호와의 종 모세가 그들에게 준 것은 이러하니 곧 아르논 골짜기 가에 있는 아로엘에서부터 골짜기 가운데 있는 성읍과 디본까지 이르는 메드바 온 평지와 헤스본에 도읍하였던 아모리 사람의 왕 시혼의 모든 성읍 곧 암몬 자손의 지경까지와 길르앗과 및 그술 사람과 마아갓 사람의 지경과 온 헤르몬산과 살르가까지 이른 온 바산 곧 르바의 남은 족속으로서 아스다롯과 에드레이에 도읍하였던 바산 왕 옥의 온 나라라. 모세가 이 땅의 사람들을 쳐서 쫓아내었어도 그술 사람과 마아갓 사람은 이스라엘 자손이 쫓아내지 아니하였으므로 그술과 마아갓이 오늘날까지 이스라엘 가운데 거하더라. 오직 레위 지파에게는 여호수아가[그가](원문)[모세를 가리킨다고 봄] 기업으로 준 것이 없었으니 이는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께 드리는 화제물이 그 기업이 됨이 그에게 이르신 말씀과 같음이었더라.

요단 동편에서 두 지파와 반 지파가 기업을 얻은 땅은 아모리 왕 시혼과 바산 왕 옥의 땅들이었다. 오직 레위 지파는 제외되었다.

[15-23절] 모세가 르우벤 자손의 지파에게 그 가족을 따라서 주었으니 그 지경은 아르논 골짜기 가에 있는 아로엘에서부터 골짜기 가운데 있는 성읍과 메드바 곁에 있는 온 평지와 헤스본과 그 평지에 있는 모든 성읍 곧 디본과 바못 바알과 벧 바알 므온과 야하스와 그데못과 메바앗과 기랴다임과 십마와 골짜기 가운데 산에 있는 세렛 사할과 벧브올과 비스가 산록과 벧여시못과 평지 모든 성읍과 헤스본에 도읍한 아모리 사람 시혼의 온 나라라. 모세가 시혼을 그 땅에 거하는 시혼의 방백 곧 미디안의 귀족 에위와 레겜과 술과 훌과 레바와 함께 죽였으며 이스라엘 자손이 그들을 도륙하는 중에 브올의 아들 술사 발람도 칼날로 죽였었더라. 르우벤 자손의 서편 경계는 요단과 그 강가라. 이상은 르우벤 자손의 기업으로 그 가족대로 받은 성읍과 촌락이니라.

르우벤 지파의 기업은 아르논 골짜기 가에 있는 아로엘에서부터 헤스본, 디본, 야하스, 기랴다임 등 아모리 사람 시혼의 땅이었다. 특히 22절은 술사 발람도 칼날로 죽임을 당했다고 기록하였다.

[24-28절] 모세가 갓 지파 곧 갓 자손에게도 그 가족을 따라서 주었으니 그 지경은 야셀과 길르앗 모든 성읍과 암몬 자손의 땅 절반[아마 아모리 족속의 왕 시혼이 정복하기 전에] 곧 랍바 앞의 아로엘까지와 헤스본에서 라맛 미스베와 브도님까지와 마하나임에서 드빌 지경까지와 골짜기에 있는 벧 하람과 벧니므라와 숙곳과 사본 곧 헤스본 왕 시혼의 나라의 남은 땅 요단과 그 강가에서부터 요단 동편 긴네렛 바다의 끝까지라. 이는 갓 자손의 기업으로 그 가족대로 받은 성읍과 촌락이니라.

갓 지파의 기업은 야셀과, 길르앗 모든 성읍, 암몬 자손의 땅 절반, 시혼의 땅의 남은 부분 등을 포함하였다.

[29-31절] 모세가 므낫세 반 지파에게 주었으되 므낫세 자손의 반 지파에게 그 가족대로 주었으니 그 지경은 마하나임에서부터 온 바산 곧 바산 왕 옥의 전국과 바산 경내 야일의 모든 고을 육십 성읍과 길르앗 절반과 바산 왕 옥의 나라 성읍 아스다롯과 에드레이라. 이는 므낫세의 아들 마길의 자손에게 돌린 것이니 곧 마길 자손의 절반이 그 가족대로 받으니라.

므낫세 반 지파의 기업은 마하나임, 바산 왕 옥의 나라, 길르앗 절반, 아스다롯, 에드레이 등을 포함하였다.

[32-33절] 요단 동편 여리고 맞은편 모압 평지에서 모세가 분배한 기업이 이러하여도 오직 레위 지파에게는 모세가 기업을 주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그들에게 말씀하심같이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 기업이 되심이었더라.

이스라엘 열두 지파 중 레위 지파는 땅을 기업으로 분배받는 일에서 제외되었다(14, 23절). 레위 지파가 땅의 분배에서 제외된 것은 하나님께서 친히 그들의 기업이 되셨기 때문이다(33절).

레위 지파는 신약시대에 목사들이나 전도사들, 그리고 전임 유급 봉사자들에게 적용될 수 있으나, 그들뿐 아니라, 모든 성도들에게 적용될 수 있다. 모든 성도는 왕 같은 제사장이다. 베드로전서 2:9, “오직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된 백성이니.” 또 모든 성도는 자신의 몸을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려야 할 자들이다(롬 12:1-2).

우리에게 이 세상은 나그네의 삶이며(대상 29:15) 하나님과 그의 나라는 우리의 영원한 기업이며 우리의 참 본향이다. 다윗은 “주여, 내가 무엇을 바라리요? 나의 소망은 주께 있나이다”라고 고백했다(시 39:7).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보화이시요 소망이시다. 하나님보다 더 가치 있는 것은 세상에 아무것도 없다. 그러므로 시편 73편 저자는 “하늘에서는 주 외에 누가 내게 있으리요. 땅에서는 주밖에 나의 사모할 자 없나이다. 내 육체와 마음은 쇠잔하나 하나님은 내 마음의 반석이시요 영원한 분깃이시라”고 고백하였다(시 73:25-26).

사도 바울은 “무엇이든지 내게 유익하던 것을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로 여길 뿐더러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함을 인함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니 내가 가진 의(義)는 율법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은 것이니 곧 믿음으로 하나님께로서 난 의(義)라”고 고백하였다(빌 3:7-9).

세상은 지나가는 곳이며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보화이시며 천국은 우리의 본향이기 때문에, 성도는 이 세상에서 하나님을 위해서 살며 하나님의 뜻만 행하려 한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후서 5장에서 말하기를,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강권하시는도다. 우리가 생각건대 한 사람이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었은즉 모든 사람이 죽은 것이라. 저가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으심은 산 자들로 하여금 다시는 저희 자신을 위하여 살지 않고 오직 저희를 대신하여 죽었다가 다시 사신 자를 위하여 살게 하려 함이니라”고 했다(고후 5:14-15). 하나님과 주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 사는 삶, 그것이 성도의 삶이다.

구원받은 성도들은 레위 지파와 같다. 우리의 기업은 세상에 있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세상에서 게으르지 말고 충실히, 근면하게 살아야 하지만, 우리는 이 세상이 지나가는 세상이며 우리의 삶이 나그네와 행인 같은 삶임을 알고 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참된 보화이시며 천국은 우리의 영원한 본향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살아도 하나님을 위해 살고 죽어도 하나님을 위해 죽어야 한다(롬 14:7-8). 주 예수님의 말씀처럼, 우리의 음식은 오직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것이어야 한다(요 4:34). 이것은 영적 레위인인 성도의 삶의 모습이어야 한다. 우리는 이 세상이나 이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하지 말고 레위인들처럼 오직 하나님만 우리의 보화로 삼고 천국만 우리의 기업으로 삼고 살자.

 

14장: 갈렙의 온전한 순종

[1-5절] 이스라엘 자손이 가나안 땅에서 취한 기업 곧 제사장 엘르아살과 눈의 아들 여호수아와 이스라엘 자손 지파의 족장들이 분배한 것이 이 아래와 같으니라.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하신 대로 그들의 기업을 제비 뽑아 아홉 지파와 반 지파에게 주었으니 두 지파와 반 지파의 기업은 모세가 요단 저편에서 주었음이요 레위 자손에게는 그들 가운데서 기업을 주지 아니하였으니 요셉 자손은 므낫세와 에브라임의 두 지파가 되었음이라. 이 땅에서 레위 사람에게 아무 분깃도 주지 아니하고 오직 거할 성읍들과 가축과 재물을 둘 들만 줄 뿐으로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하신 것과 같이 행하여 그 땅을 나누었더라.

여호수아와 제사장 엘르아살이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하신 대로 이스라엘의 아홉 지파와 반 지파의 기업으로 제비 뽑아 나누어준 땅들과 성들에 대해서는 15장 이하에 기록되어 있다. 단지 레위 지파는 하나님께서 그들의 기업이 되셨기 때문에 다른 아무 기업도 주지 않았고 오직 거할 성읍들과 가축과 재물을 둘 들만 주었다.

[6-9절] 때에 유다 자손이 길갈에 있는 여호수아에게 나아오고 그니스 사람 여분네의 아들 갈렙이 여호수아에게 말하되 여호와께서 가데스 바네아에서 나와 당신에게 대하여 하나님의 사람 모세에게 이르신 일을 당신이 아시는 바라. 내 나이 40세에 여호와의 종 모세가 가데스 바네아에서 나를 보내어 이 땅을 정탐케 하므로 내 마음에 성실한 대로 그에게 보고하였고 나와 함께 올라갔던 내 형제들은 백성의 간담을 녹게 하였으나 나는 나의 하나님 여호와를 온전히 좇았으므로 그 날에 모세가 맹세하여 가로되 네가 나의 하나님 여호와를 온전히 좇았은즉 네 발로 밟는 땅은 영영히 너와 네 자손의 기업이 되리라 하였나이다.

[10-12절] 이제 보소서. 여호와께서 이 말씀을 모세에게 이르신 때로부터 이스라엘이 광야에 행한 이 45년 동안을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대로 나를 생존케 하셨나이다. 오늘날 내가 85세로되 모세가 나를 보내던 날과 같이 오늘날 오히려 강건하니 나의 힘이 그때나 이제나 일반이라. 싸움에나 출입에 감당할 수 있사온즉 그 날에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이 산지를 내게 주소서. 당신도 그 날에 들으셨거니와 그곳에는 아낙 사람이 있고 그 성읍들은 크고 견고할지라도 여호와께서 혹시 나와 함께 하시면 내가 필경 여호와의 말씀하신 대로 그들을 쫓아내리이다.

열두 정탐군들 중 하나이었던 갈렙은 45년 전 가데스 바네아에서 가나안 땅 정탐을 위해 보냄을 받고 돌아와 보고한 일을 회고하면서 그때 모세가 자신에게 맹세한 대로 자신이 원하는 땅 헤브론 산지를 기업으로 줄 것을 여호수아에게 요청하였다.

[13-15절] 여호수아가 여분네의 아들 갈렙을 위하여 축복하고 헤브론을 그에게 주어 기업을 삼게 하매 헤브론이 그니스 사람 여분네의 아들 갈렙의 기업이 되어 오늘날까지 이르렀으니 이는 그가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를 온전히 좇았음이며 헤브론의 옛 이름은 기럇 아르바라. 아르바는 아낙 사람 가운데 가장 큰 사람이었더라. 그 땅에 전쟁이 그쳤더라.

여호수아는 갈렙의 요청을 허락하며 그를 축복하고 헤브론을 기업으로 주었다. 본문 14절은 “이는 그가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를 온전히 좇았음이라”고 증거한다. 그 당시의 사건을 기록한 민수기 14:24에 보면, 하나님께서는 “오직 내 종 갈렙은 그 마음이 그들과 달라서 나를 온전히 좇았은즉 그의 갔던 땅으로 내가 그를 인도하여 들이리니 그 자손이 그 땅을 차지하리라”고 친히 증거하셨다. 갈렙은 하나님을 온전히 좇았다. 그 사실은 오늘 본문(8, 9, 14절)과 민수기 14:24과 성경의 다른 곳들(민 32:11-12; 신 1:35)에서 증거된다. 갈렙의 삶은 우리 모두에게 본이 된다. 우리는 갈렙과 같이 하나님을 온전히 따르는 자가 되기를 원한다.

민수기에 보면, 가나안 땅을 정탐했던 열두 명의 사람들이 돌아와 회중 앞에 보고했을 때 다른 동료들은 그 땅이 ‘젖과 꿀이 흐르는’ 아름다운 땅이긴 하지만 그 땅 거민들은 강하고 성읍들은 견고하고 심히 크며 거기서 거인들의 후손인 아낙 자손들을 보았다고 했으나 갈렙은 백성을 안정시키며 “우리가 곧 올라가서 그 땅을 취하자. 능히 이기리라”고 말하였다(13:27-30). 또 동료들의 나쁜 보고로 인해 백성들이 낙심하여 밤새도록 통곡하고 모세와 아론을 원망하고 한 장관을 세워 애굽으로 다시 돌아가자고 할 때, 갈렙은 그 옷을 찢으며 말하였다. “우리가 두루 다니며 탐지한 땅은 심히 아름다운 땅이라. 여호와께서 우리를 기뻐하시면 우리를 그 땅으로 인도하여 들이시고 그 땅을 우리에게 주시리라. 이는 과연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니라. 오직 여호와를 거역하지 말라. 또 그 땅 백성을 두려워하지 말라. 그들은 우리 밥이라. 그들의 보호자는 그들에게서 떠났고 여호와는 우리와 함께하시느니라. 그들을 두려워 말라”(민 14:7-9).

갈렙은 하나님을 믿었고 그의 약속을 믿었고 그의 능력을 믿었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그런 긍정적 보고를 할 수 있었고 사람들에게 그런 믿음의 권면을 할 수 있었던 것이다. 하나님을 믿은 자가 아니면 하나님을 온전히 따를 수 없다. 갈렙은 하나님을 믿었기 때문에 하나님을 온전히 따르며 그의 뜻에 순종할 수 있었다.

갈렙이 하나님과 그의 약속을 믿고 온전히 따르며 순종하는 데에는 용기와 인내가 필요하였다. 열두 정탐꾼들 중 갈렙과 뜻을 같이하는 자는 여호수아뿐이었다. 10 대 2의 상황이었다. 열 정탐꾼들의 보고의 영향으로 백성들 가운데 거센 반대 세력이 일어났다. 백성들 중에는 한 장관을 세워 애굽으로 다시 돌아가자고 제안하는 자도 있었고(민 14:4) 심지어 돌로 갈렙을 치려고까지 하였다(민 14:10).

때때로 하나님의 일에는 거센 반대 세력이 있다. 선지자 엘리야는 바알 선지자 450명과 아세라 선지자 400명을 갈멜산으로 불러 대결해야 했다(왕상 18:19). 또 선지자 미가야는 400명 가량의 거짓 선지자들과 구별되는 외로운 선지 사역을 해야 했다(왕상 22:6). 하나님을 온전히 따르며 순종하는 길은 때때로 고난의 길이다. 그러므로 연약한 마음으로는 하나님을 끝까지 따르며 그의 일을 완수할 수 없다. 온전한 순종을 위해서는 용기와 인내가 필요하다. 만일 갈렙에게 그런 용기와 인내가 없었다면, 그는 중도에 실패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의 은혜로 온전히, 끝까지 하나님을 따랐다.

다윗은 시편 3편에서 “여호와여, 나의 대적이 어찌 그리 많은지요. 일어나 나를 치는 자가 많소이다”라고 말했지만, 또한 고백하기를, “내가 누워 자고 깨었으니 여호와께서 나를 붙드심이로다. 천만인이 나를 둘러치려 하여도 나는 두려워 아니하리이다”라고 했다(시 3:1, 5-6). 많은 대적들과 싸워야 하는 고난의 현실 속에서도 그는 하나님을 확신하고 그의 도우심과 인도하심을 참고 기다렸던 것이다.

본문에 보면, 갈렙은 45년의 세월이 흐른 당시에도 여전히 하나님을 의지하며 성읍이 크고 견고하며 아낙 사람이 있는 헤브론 산지를 기업으로 요청하였고 또 “여호와께서 혹시 나와 함께 하시면 내가 필경 여호와의 말씀하신 대로 그들을 쫓아내리이다”라고 믿음의 말을 했다(수 14:12). 그것은 변함 없는 믿음과 용기이다. 그는 여전히 하나님을 온전히 따르며 순종하고 있었다.

갈렙은 하나님을 믿었고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믿었고 온전히 하나님을 따랐다. 그는 주위의 동료들의 다른 생각과 백성들의 거대한 불신앙적 언행 앞에서도 굴하지 않고 용기와 인내로 자기의 임무를 다했다. 신앙의 선진들은 다 그와 같았다. 다윗도, 바울도 그러하였다.

믿음이 없고 혼탁한 말세지말을 사는 우리들에게 필요한 것은 온전한 순종이다. 물론 이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다. 오늘날 우리도 하나님의 은혜로 하나님을 믿고 그의 모든 말씀과 약속을 믿고 소망하고 그 교훈을 힘써 지키면서 온전히 하나님만 순종하자. 믿음 없는 세상에 영향을 받지 말고 용기와 인내로 행하여 승리하는 자가 되자.

 

15-17장: 유다와 요셉의 기업

15장부터 17장까지는 요단강 서쪽에서 처음으로 땅 분배를 받은 유다 지파와 에브라임 지파와 므낫세 지파의 기업에 대해 증거한다.

[15:1-12] 유다 자손의 지파가 그 가족대로 제비 뽑은 땅의 극남단은 에돔 지경에 이르고 또 남으로 신 광야까지라. 그 남편 경계는 염해의 극단 곧 남향한 해만에서부터 아그랍빔 비탈 남편으로 지나 신에 이르고 가데스 바네아 남편으로 올라가서 헤스론을 지나며 아달로 올라가서 돌이켜 갈가에 이르고 거기서 아스몬에 이르고 애굽 시내에 미치며 바다에 이르러 경계의 끝이 되나니 이것이 너희 남편 경계가 되리라. 그 동편 경계는 염해니 요단 끝까지요 그 북편 경계는 요단 끝에 당한 해만에서부터 벧호글라로 올라가서 벧 아라바 북편을 지나 르우벤 자손 보한의 돌에 이르고 또 아골 골짜기에서부터 드빌을 지나 북으로 올라가서 강 남편에 있는 아둠밈 비탈 맞은편 길갈을 향하고 나아가 엔 세메스 물을 지나 엔로겔에 이르며 또 힌놈의 아들의 골짜기로 올라가서 여부스 곧 예루살렘 남편 어깨에 이르며 또 힌놈의 골짜기 앞 서편에 있는 산꼭대기로 올라가나니 이곳은 르바임 골짜기 북편 끝이며 또 이 산꼭대기에서부터 넵도아 샘물까지 이르러 에브론산 성읍들에 미치고 또 바알라 곧 기럇 여아림에 미치며 또 바알라에서부터 서편으로 돌이켜 세일산에 이르러 여아림 산 곧 그살론 곁 북편에 이르고 또 벧세메스로 내려가서 딤나로 지나고 또 에그론 북편으로 나아가 식그론에 이르러 바알라산에 미치고 얍느엘에 이르나니 그 끝은 바다며 서편 경계는 대해와 그 해변이니 유다 자손이 그 가족대로 얻은 사면 경계가 이러하니라.

유다 지파는 가나안 땅의 남부를 기업으로 얻었다. 여호수아서는 많은 지역들과 성읍들의 이름을 기록한다. 성경이 이러한 이름들을 자세히 기록하고 있는 것은 성경이 역사적 기록임을 증거한다. 성경은 사람이 지어낸 허구적, 신화적 내용이 아니고 일차적으로 역사적 내용이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은, 나는 율법과 및 선지자들의 글에 기록된 것을 다 믿는다고 말했다(행 24:14). 우리는 성경이 증거하는 모든 내용들, 성경에 기록된 모든 내용들을 다 믿어야 한다.

[13-19절] 여호와께서 여호수아에게 명하신 대로 여호수아가 기럇 아르바 곧 헤브론 성을 유다 자손 중에서 분깃으로 여분네의 아들 갈렙에게 주었으니 아르바는 아낙의 아비였더라. 갈렙이 거기서 아낙의 소생 곧 그 세 아들 세새와 아히만과 달매를 쫓아내었고 거기서 올라가서 드빌 거민을 쳤는데 드빌의 본 이름은 기럇 세벨이라. 갈렙이 말하기를 기럇 세벨을 쳐서 그것을 취하는 자에게는 내가 내 딸 악사를 아내로 주리라 하였더니 갈렙의 아우요[아우] 그나스의 아들인 옷니엘이 그것을 취함으로 갈렙이 그 딸 악사를 그에게 아내로 주었더라. 악사가 출가할 때에 그에게 청하여 자기 아비에게 밭을 구하자 하고 나귀에서 내리매 갈렙이 그에게 묻되 네가 무엇을 원하느냐? 가로되 내게 복을 주소서 아버지께서 나를 남방 땅으로 보내시오니 샘물도 내게 주소서 하매 갈렙이 윗샘과 아랫샘을 그에게 주었더라.

본문은 갈렙에 대해 말한다. 갈렙은 여호수아에게 헤브론 산지 곧 기럇 아르바를 기업으로 요청했고 여호수아는 그 요청을 허락했었다(수 14:12-13). 그 산지에는 아낙 사람들이 살았고 그 성읍들은 크고 견고했지만 갈렙은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의지하며 그 지역을 요청했었다. 여호수아 14:15의 말씀대로, 아르바는 아낙의 아비이었고 아낙 사람들 중 가장 큰 자이었다. 갈렙은 기럇 아르바[아르바의 성] 곧 헤브론을 정복하였고 아낙의 세 아들들 세새와 아히만과 달매를 쫓아내었다. 갈렙은 하나님과 그의 능력과 그의 약속을 믿었고 그의 명하신 일을 용기 있게 수행하였다.

갈렙은 기럇 아르바를 정복한 후 드빌 곧 기럇 세벨이라는 곳으로 나아갔는데, 그때 그는 이 성을 취하는 자에게 나의 딸 악사를 아내로 주겠다고 약속했다. 그때 그의 아우7) 그나스의 아들인 옷니엘이 그것을 취했고 갈렙은 약속대로 그의 딸 악사를 그에게 아내로 주었다. 악사가 출가할 때 자기 남편을 설득하여 아버지에게 밭을 구했고 샘물도 구했는데 갈렙은 그에게 윗샘과 아랫샘을 주었다. 믿음으로 기럇 세벨을 친 옷니엘에게 하나님께서는 갈렙의 딸 악사를 복으로 주셨고 그와 함께 밭도, 두 개의 샘도 주셨던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그를 믿고 행하는 모든 자에게 복을 주신다.

[20-62절] 유다 자손의 지파가 그 가족대로 얻은 기업은 이러하니라. 유다 자손의 지파의 남으로 에돔 경계에 접근한 성읍들은 갑스엘과 에델과 야굴과 기나와 디모나와 아다다와 게데스와 하솔과 잇난과 십과 델렘과 브알롯과 하솔 하닷다와 그리욧 헤스론 곧 하솔과 아맘과 세마와 몰라다와 하살갓다와 헤스몬과 벧 벨렛과 하살 수알과 브엘세바와 비스요댜와 바알라와 이임과 에셈과 엘돌랏과 그실과 홀마와 시글락과 맛만나와 산산나와 르바옷과 실힘과 아인과 림몬이니 모두 29성읍이요 또 그 촌락이었으며, 평지에는 에스다올과 소라와 아스나와 사노아와 엔간님과 답부아와 에남과 야르뭇과 아둘람과 소고와 아세가와 사아라임과 아디다임과 그데라와 그데로다임이니 모두 14성읍이요 또 그 촌락이었으며, 스난과 하다사와 믹달갓과 딜르안과 미스베와 욕드엘과 라기스와 보스갓과 에글론과 갑본과 라맘과 기들리스와 그데롯과 벧다곤과 나아마와 막게다니 모두 16성읍이요 또 그 촌락이었으며, 립나와 에델과 아산과 입다와 아스나와 느십과 그일라와 악십과 마레사니 모두 아홉 성읍이요 또 그 촌락이었으며, 에그론과 그 향리와 촌락과 에그론에서부터 바다까지 아스돗 곁에 있는 모든 성읍과 그 촌락이었으며 아스돗과 그 향리와 촌락과 가사와 그 향리와 촌락이니 애굽 시내와 대해 가에 이르기까지였으며, 산지는 사밀과 얏딜과 소고와 단나와 기럇 산나 곧 드빌과 아납과 에스드모와 아님과 고센과 홀론과 길로니 모두 11성읍이요 또 그 촌락이었으며, 아랍과 두마와 에산과 야님과 벧 답부아와 아베가와 훔다와 기럇 아르바 곧 헤브론과 시올이니 모두 아홉 성읍이요 또 그 촌락이었으며, 마온과 갈멜과 십과 윳다와 이스르엘과 욕드암과 사노아와 가인과 기브아와 딤나니 모두 열 성읍이요 또 그 촌락이었으며, 할훌과 벧 술과 그돌과 마아랏과 벧 아놋과 엘드곤이니 모두 여섯 성읍이요 또 그 촌락이었으며, 기럇 바알 곧 기럇 여아림과 라빠니 모두 두 성읍이요 또 그 촌락이었으며, 광야에는 벧 아라바와 밋딘과 스가가와 닙산과 염성과 엔 게디니 모두 여섯 성읍이요 또 그 촌락이었더라.

유다의 기업은 112개 이상의 성들을 포함하였다.

[63절] 예루살렘 거민 여부스 사람을 유다 자손이 쫓아내지 못하였으므로 여부스 사람이 오늘날까지 유다 자손과 함께 예루살렘에 거하니라.

유다 자손들은 예루살렘 거민 여부스 사람들을 쫓아내지 못했다.

[16:1-4] 요셉 자손이 제비 뽑은 것은 여리고 곁 요단 곧 여리고 물 동편 광야에서부터 나아가 여리고로 말미암아 올라가서 산지를 지나 벧엘에 이르고 벧엘에서부터 루스로 나아가 아렉 사람의 경계로 지나 아다롯에 이르고 서편으로 내려가서 야블렛 사람의 경계에 이르러 아래 벧 호론 곧 게셀에 미치고 그 끝은 바다라. 요셉의 자손 므낫세와 에브라임이 그 기업을 얻었더라.

16장은 에브라임 지파의 기업에 대해 증거한다.

[5-10절] 에브라임 자손의 그 가족대로 얻은 것의 경계는 이러하니라. 그 기업의 경계는 동으로 아다롯 앗달에서 윗 벧 호론에 이르고 또 서편으로 나아가 북편 믹므다에 이르고 동편으로 돌아 다아낫 실로에 이르러 야노아 동편을 지나고 야노아에서부터 아다롯과 나아라로 내려가서 여리고에 미치며 요단으로 나아가고 또 답부아에서부터 서편으로 지나서 가나 시내에 미치나니 그 끝은 바다라. 에브라임 자손의 지파가 그 가족대로 얻은 기업이 이러하였고 그 외에 므낫세 자손의 기업 중에서 에브라임 자손을 위하여 구별한 모든 성읍과 촌락도 있었더라. 그들이 게셀에 거하는 가나안 사람을 쫓아내지 아니하였으므로 가나안 사람이 오늘날까지 에브라임 가운데 거하며 사역하는 종이 되니라.

에브라임 자손들도 게셀에 거하는 가나안 사람을 쫓아내지 못했다(10절). 그러므로 가나안 사람들은 여호수아가 이 책을 기록할 때까지도 에브라임 가운데 거하며 사역하는 종이 되었다.

[17:1-6] 므낫세 지파를 위하여 제비 뽑은 것은 이러하니라. 므낫세는 요셉의 장자이었고 므낫세의 장자 마길은 길르앗의 아비라. 그는 무사(武士)이어서 길르앗과 바산을 얻었으므로 므낫세의 남은 자손을 위하여 그 가족대로 제비를 뽑았는데 그들은 곧 아비에셀의 자손과 헬렉의 자손과 아스리엘의 자손과 세겜의 자손과 헤벨의 자손과 스미다의 자손이니 그들의 가족대로 요셉의 아들 므낫세의 남(男) 자손이며 헤벨의 아들 길르앗의 손자 마길의 증손 므낫세의 현손 슬로브핫은 아들이 없고 딸뿐이요 그 딸들의 이름은 말라와 노아와 호글라와 밀가와 디르사라. 그들이 제사장 엘르아살과 눈의 아들 여호수아와 방백들 앞에 나아와서 말하기를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하사 우리 형제 중에서 우리에게 기업을 주라 하셨다 하매 여호와의 명령을 따라 그들에게 기업을 그 아비 형제 중에서 주므로 요단 동편 길르앗과 바산 외에 므낫세에게 열 분깃이 돌아갔으니 므낫세의 여손들이 그 남 자손 중에서 기업을 얻은 까닭이었으며 길르앗 땅은 므낫세의 남은 자손에게 속하였더라.

17장은 므낫세 지파의 기업에 대해 증거한다.

[7-13절] 므낫세의 경계는 아셀에서부터 세겜 앞 믹므닷에 미치고 우편으로 가서 엔답부아 거민의 땅에 이르나니 답부아 땅은 므낫세에게 속하였으되 므낫세 경계에 있는 답부아 읍은 에브라임 자손에게 속하였으며 또 경계가 가나 시내로 내려가서 그 시내 남편에 이르나니 므낫세의 성읍 중에 이 성읍들은 에브라임에게 속하였으며 므낫세의 경계는 그 시내 북편이요 그 끝은 바다며 그 남편은 에브라임에 속하였고 북편은 므낫세에 속하였고 바다가 그 경계가 되었으며 그들의 땅의 북은 아셀에 미쳤고 동은 잇사갈에 미쳤으며 잇사갈과 아셀에도 므낫세의 소유가 있으니 곧 벧 스안과 그 향리와 이블르암과 그 향리와 돌의 거민과 그 향리요 또 엔돌 거민과 그 향리와 다아낙 거민과 그 향리와 므깃도 거민과 그 향리들 세 높은 곳이라. 그러나 므낫세 자손이 그 성읍들의 거민을 쫓아내지 못하매 가나안 사람이 결심하고 그 땅에 거하였더니 이스라엘 자손이 강성한 후에야 가나안 사람에게 사역을 시켰고 다 쫓아내지 아니하였더라.

므낫세 자손도 그 성읍들에서 가나안 사람들을 다 쫓아내지 못했으므로 그들이 결심하고 그 땅에 거했고 이스라엘 자손이 강성한 후에야 그들에게 사역을 시켰고 다 쫓아내지 못했다(12-13절).

가나안 전쟁에 있어서 부족했던 점은 불완전한 정복이었다. 각 지파는 가나안 족속의 일부를 죽이거나 쫓아내지 못하고 그들의 땅에서 거주하도록 포용했던 것이다. 그것이 후에 이스라엘 백성의 종교적, 도덕적 부패의 주원인이 되었다(삿 2장). 사람은 모방을 잘하는 존재이다. 악한 본은 악한 영향을 끼친다. 바른 교제가 참으로 중요하다. 경건하고 선한 사람과 교제하면 좋은 영향을 받지만, 불경건하고 악한 사람과 교제하면 나쁜 영향을 받게 된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은 “속지 말라. 악한 동무들은 선한 행실을 더럽히나니 깨어 의를 행하고 죄를 짓지 말라.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자가 있기로 내가 너희를 부끄럽게 하기 위하여 말하노라”고 말했고(고전 15:33-34), 또 “적은 누룩이 온 덩이에 퍼지느니라”고 말하였다(갈 5:9). 우리의 신앙이 부패되지 않으려면, 우리는 교제를 조심해야 한다.

[14-18절] 요셉 자손이 여호수아에게 말하여 가로되 여호와께서 지금까지 내게 복을 주시므로 내가 큰 민족이 되었거늘 당신이 나의 기업을 위하여 한 제비, 한 분깃으로만 내게 주심은 어찜이니이까? 여호수아가 그들에게 이르되 네가 큰 민족이 되므로 에브라임 산지가 네게 너무 좁을진대 브리스 사람과 르바임 사람의 땅 삼림에 올라가서 스스로 개척하라. 요셉 자손이 가로되 그 산지는 우리에게 넉넉지도 못하고 골짜기 땅에 거하는 가나안 사람에게는 벧 스안과 그 향리에 거하는 자든지 이스르엘 골짜기에 거하는 자든지 다 철병거가 있나이다. 여호수아가 다시 요셉의 족속 곧 에브라임과 므낫세에게 일러 가로되 너는 큰 민족이요 큰 권능이 있은즉 한 분깃만 가질 것이 아니라. 그 산지도 네 것이 되리니 비록 삼림이라도 네가 개척하라. 그 끝까지 네 것이 되리라. 가나안 사람이 비록 철병거를 가졌고 강할지라도 네가 능히 그를 쫓아내리라.

요셉 자손 곧 에브라임과 므낫세 지파가 여호수아에게 “여호와께서 지금까지 내게 복을 주시므로 내가 큰 민족이 되었거늘 당신이 나의 기업을 위하여 한 제비, 한 분깃으로만 내게 주심은 어찜이니이까?”라고 말하자, 여호수아는 그들에게 “네가 큰 민족이 되므로 에브라임 산지가 네게 너무 좁을진대 브리스 사람과 르바임 사람의 땅 삼림에 올라가서 스스로 개척하라” “가나안 사람이 비록 철병거를 가졌고 강할지라도 네가 능히 그를 쫓아내리라”고 격려하였다. 요셉 자손들은 갈렙처럼 믿음과 용기가 충만하지는 못했던 것 같으나 여호수아의 격려를 받고 용기를 얻었을 것이다.

15장부터 17장까지에서 우리는 두 가지 중요한 교훈을 받는다.

첫째로, 우리는 믿음으로 세상을 정복하고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야 한다. 그것이 갈렙과 옷니엘이 행한 바이며 또 여호수아가 에브라임과 므낫세 지파에게 권면하고 격려한 바이다. 오늘날 세상을 정복한다는 것은 전도와 영혼 구원이며 개인적, 교회적 거룩함이다. 그것은 하나님의 소원이며 뜻이다. 전도는 인간적으로 두렵고 어려운 일이지만, 우리는 성령의 능력으로 일하며 사람은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받는다.

둘째로, 우리는 불완전한 정복을 해서는 안 된다. 불완전한 정복은 불완전한 구원에 비교될 수 있다. 교회가 참된 복음과 회개와 믿음을 충실히 전하지 않으면 불완전한 구원을 받은 자들이 많아질 것이다. 실상, 불완전한 구원은 구원이 아닐 것이다. 우리가 참으로 구원을 얻었다면, 우리는 바른 신앙을 고백할 것이며 모든 죄를 버리려고 할 것이며 하나님의 뜻과 교훈에 순종하려 할 것이다. 비록 처음 믿은 자들은 지식과 인격에 있어서 부족이 있을지라도, 세월이 흐름에 따라 흠과 점이 없는 성숙한 지식과 인격의 사람으로 자라갈 것이다. 그것은 개인적으로는 성화의 모습이며 교회적으로는 바른 교회의 모습이다. 그러므로 바른 교훈을 버렸거나 충실한 권징이 없는 교회는 참 교회가 아닐 것이다. 교회는 고의적 불신앙과 죄를 포용해서는 안 된다.

 

18-19장: 베냐민과 나머지 6지파의 기업

[18:1-7]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이 실로에 모여서 거기 회막을 세웠으니 그 땅이 이미 그들의 앞에 돌아와 복종하였음이나 이스라엘 자손 중에 그 기업의 분배를 얻지 못한 자가 오히려 일곱 지파라. 여호수아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르되 너희가 너희 열조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주신 땅을 취하러 가기를 어느 때까지 지체하겠느냐? 너희는 매 지파에 삼인씩 선정하라. 내가 그들을 보내리니 그들은 일어나서 그 땅에 두루 다니며 그 기업에 상당하게 그려 가지고 내게로 돌아올 것이라. 그들이 그 땅을 일곱 부분에 나누되 유다는 남편 자기 경내에 거하고 요셉의 족속은 그 북편 자기 경내에 거한즉 그 남은 땅을 일곱 부분으로 그려서 이곳 내게로 가져올지니 내가 여기서 너희를 위하여 우리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제비 뽑으리라. 레위 사람은 너희 중에 분깃이 없나니 여호와의 제사장 직분이 그들의 기업이 됨이며 갓과 르우벤과 므낫세 반 지파는 요단 저편 동편에서 이미 기업을 받았나니 이는 여호와의 종 모세가 그들에게 준 것이니라.

여호수아 11장과 14장 끝에 전쟁이 그쳤다고 기록하였지만(11:23; 14:15), 아직 다 정복한 것은 아니었다. 대략적으로는 이루어졌을 뿐이다. 일곱 지파는 아직 땅의 분배를 얻지 못했다. 그 일곱 지파는 베냐민, 시므온, 아셀, 납달리, 스불론, 잇사갈, 단 등이었다. 그들은 기업의 땅 경계도 아직 확정하지 못했다. 그들이 지체한 것은 믿음이 적었기 때문일 것이다. 믿음이 적으니 순종심도 적었을 것이며 그들 속에는 연약한 마음과 두려움도 있었을 것이다. 이제 여호수아는 그들을 권면하며 보내어 남은 땅의 지도를 그려오게 하였다.

[8-10절] 그 사람들이 일어나 떠나니 여호수아가 땅을 그리러 가는 그들에게 명하여 가로되 가서 그 땅으로 두루 다니며 그려 가지고 내게로 돌아오라. 내가 여기 실로에서 여호와 앞에서 너희를 위하여 제비 뽑으리라. 그 사람들이 가서 그 땅으로 두루 다니며 성읍들을 따라서 일곱 부분으로 책에 그리고 실로 진에 돌아와 여호수아에게 나아오니 여호수아가 그들을 위하여 실로 여호와 앞에서 제비 뽑고 그가 거기서 이스라엘 자손의 분파대로 땅을 분배하였더라.

여호수아는 그려온 땅을 분배하여 제비 뽑아 나누게 하였다.

[11-20절] 베냐민 자손 지파를 위하여 그 가족대로 제비를 뽑았으니 그 제비 뽑은 땅의 경계는 유다 자손과 요셉 자손의 중간이라. 그 북방 경계는 요단에서부터 여리고 북편으로 올라가서 서편 산지를 넘어서 또 올라가서 벧아웬 황무지에 이르며 또 그 경계가 거기서부터 루스로 나아가서 루스 남편에 이르나니 루스는 곧 벧엘이며 또 그 경계가 아다롯 앗달로 내려가서 아래 벧 호론 남편 산 곁으로 지나고 벧 호론 앞 남편 산에서부터 서방으로 돌아 남편으로 향하여 유다 자손의 성읍 기럇 바알 곧 기럇 여아림에 이르러 끝이 되나니 이는 서방 경계며, 남방 경계는 기럇 여아림 끝에서부터 서편으로 나아가 넵도아 물 근원에 이르고 르바임 골짜기 북편 힌놈의 아들 골짜기 앞에 있는 산 끝으로 내려가고 또 힌놈의 골짜기로 내려가서 여부스 남편에 이르러 엔 로겔로 내려가고 또 북향하여 엔 세메스로 나아가서 아둠밈 비탈 맞은편 글릴롯으로 나아가서 르우벤 자손 보한의 돌까지 내려가고 북으로 아라바 맞은편을 지나 아라바로 내려가고 또 북으로 벧 호글라 곁을 지나서 요단 남단에 당한 염해의 북편 해만이 그 경계의 끝이 되나니 이는 남편 경계며, 동방 경계는 요단이니 이는 베냐민 자손이 그 가족대로 얻은 기업의 사면 경계이었더라.

[21-28절] 베냐민 자손의 지파가 그 가족대로 얻은 성읍들은 여리고와 벧 호글라와 에멕 그시스와 벧 아라바와 스마라임과 벧엘과 아윔과 바라와 오브라와 그발 암모니와 오브니와 게바니 12성읍이요 또 그 촌락이며, 기브온과 라마와 브에롯과 미스베와 그비라와 모사와 레겜과 이르브엘과 다랄라와 셀라와 엘렙과 여부스 곧 예루살렘과 기부앗과 기럇이니 14성읍이요 또 그 촌락이라. 이는 베냐민 자손이 그 가족대로 얻은 기업이었더라.

베냐민 지파는 유다 지파와 요셉 곧 에브라임 지파의 중간에 위치한 땅을 얻었고 거기에는 벧엘, 기브온, 라마, 여부스 즉 예루살렘 등 14성읍들이 포함되었다.

[19:1-9] 둘째로 시므온 곧 시므온 자손의 지파를 위하여 그 가족대로 제비를 뽑았으니 그 기업은 유다 자손의 기업 중에서라. 그 얻은 기업은 브엘세바 곧 세바와 몰라다와 하살 수알과 발라와 에셈과 엘돌랏과 브둘과 호르마와 시글락과 벧 말가봇과 하살수사와 벧 르바옷과 사루헨이니 13성읍이요 또 그 촌락이며 또 아인과 림몬과 에델과 아산이니 네 성읍이요 또 그 촌락이며 또 남방 라마 곧 바알랏 브엘까지 이 성들을 둘러 있는 모든 촌락이니 이는 시므온 자손의 지파가 그 가족대로 얻은 기업이라. 시므온 자손의 이 기업은 유다 자손의 기업 중에서 취하였으니 이는 유다 자손의 분깃이 자기들에게 너무 많으므로 시므온 자손이 자기의 기업을 그들의 기업 중에서 얻음이었더라.

[10-16절] 셋째로 스불론 자손을 위하여 그 가족대로 제비를 뽑았으니 그 기업의 경계는 사릿에 미치고 서편으로 올라가서 마랄라에 이르러 답베셋에 미치고 욕느암 앞 시내에 미치며 사릿에서부터 동편으로 돌아 해 뜨는 편을 향하고 기슬롯 다볼의 경계에 이르고 다브랏으로 나가서 야비아로 올라가고 또 거기서부터 동편으로 가드 헤벨을 지나 엣 가신에 이르고 네아까지 연한 림몬으로 나아가서 북으로 돌아 한나돈에 이르고 입다엘 골짜기에 이르러 끝이 되며 또 갓닷과 나할랄과 시므론과 이달라와 베들레헴이니 모두 12성읍이요 또 그 촌락이라. 스불론 자손이 그 가족대로 얻은 기업은 이 성읍들과 그 촌락이었더라.

[17-23절] 넷째로 잇사갈 곧 잇사갈 자손을 위하여 그 가족대로 제비를 뽑았으 그 지경 안은 이스르엘과 그술롯과 수넴과 하바라임과 시온과 아나하랏과 랍빗과 기시온과 에베스와 레멧과 언간님과 엔핫다와 벧 바세스며 그 경계는 다볼과 사하수마와 벧 세메스에 미치고 그 끝은 요단이니 모두 16성읍이요 또 그 촌락이라. 잇사갈 자손 지파가 그 가족대로 얻은 기업은 이 성읍들과 그 촌락이었더라.

시므온 지파는 유다 자손의 기업 중 남쪽에서(1절) 기업을 얻었다. 그것은 유다의 기업이 너무 많았기 때문이다(9절). 스불론 지파는 가나안 땅 북부 즉 갈릴리 지방에서 기업을 얻었고, 아셀과 납달리 지파 기업의 남쪽으로 가드헤벨 등 12성읍들이었다. 잇사갈 지파는 스불론 지파 기업의 동남쪽, 므낫세 지파 기업의 북동쪽에 기업을 얻었고, 이스르엘, 수넴, 다볼 등 16성읍들이었다.

[24-31절] 다섯째로 아셀 자손의 지파를 위하여 그 가족대로 제비를 뽑았으니 그 지경 안은 헬갓과 할리와 베덴과 악삽과 알람멜렉과 아맛과 미살이며 그 경계의 서편은 갈멜에 미치며 시홀 림낫에 미치고 꺾여 해 돋는 편을 향하여 벧 다곤에 이르며 스불론에 달하고 북편으로 입다 엘 골짜기에 미쳐서 벧에멕과 느이엘에 이르고 가불 좌편으로 나가서 에브론과 르홉과 함몬과 가나를 지나 큰 시돈까지 이르고 돌아서 라마와 견고한 성읍 두로에 이르고 돌아서 호사에 이르고 악십 지방 곁 바다가 끝이 되며 또 움마와 아벡과 르홉이니 모두 22성읍과 그 촌락이라. 아셀 자손의 지파가 그 가족대로 얻은 기업은 이 성읍들과 그 촌락이었더라.

[32-39절] 여섯째로 납달리 자손을 위하여 납달리 자손의 가족대로 제비를 뽑았으니 그 경계는 헬렙과 사아난님의 상수리나무에서부터 아다미 네겝과 얍느엘을 지나 락굼까지요 그 끝은 요단이며 서편으로 돌아 아스놋 다볼에 이르고 그곳에서부터 나가 훅곡에 이르러는 남은 스불론에 접하였고 서는 아셀에 접하였으며 해 돋는 편은 유다에 달한 요단이며 그 견고한 성읍들은 싯딤과 세르와 함맛과 락갓과 긴네렛과 아다마와 라마와 하솔과 게데스와 에드레이와 엔 하솔과 이론과 믹다렐과 호렘과 벧 아낫과 벧 세메스니 모두 19성읍이요 또 그 촌락이라. 납달리 자손의 지파가 그 가족대로 얻은 기업은 이 성읍들과 그 촌락이었더라.

[40-48절] 일곱째로 단 자손의 지파를 위하여 그 가족대로 제비를 뽑았으니 그 기업의 지경은 소라와 에스다올과 이르세메스와 사알랍빈과 아얄론과 이들라와 엘론과 딤나와 에그론과 엘드게와 깁브돈과 바알랏과 여훗과 브네브락과 가드 림몬과 메얄곤과 락곤과 욥바 맞은편 경계까지라. 그런데 단 자손의 지경이 더욱 확장되었으니 이는 단 자손이 올라가서 레센을 쳐서 취하여 칼날로 치고 그것을 얻어 거기 거하였음이라. 그 조상 단의 이름을 따라서 레센을 단이라 하였더라. 단 자손의 지파가 그 가족대로 얻은 기업은 이 성읍들과 그 촌락이었더라.

아셀 지파는 스불론 북서쪽에 22성읍들을 기업으로 얻었다. 납달리 지파는 아셀 지파의 동쪽, 스불론 지파의 북동쪽에 19성읍들을 기업으로 얻었다. 단 지파는 유다의 북서쪽에 기업을 얻었고, 소라, 에스다올, 에그론 등의 성읍을 포함했고, 또 가나안 땅의 가장 북쪽에 있는 레센이라는 성읍을 취했고 그 이름을 단이라 고쳐 불렀다.

[49-51절] 이스라엘 자손이 그 경계를 따라서 기업의 땅 나누기를 마치고 자기들 중에서 눈의 아들 여호수아에게 기업을 주었으되 곧 여호와의 명령대로 여호수아의 구한 성읍 에브라임 산지 딤낫 세라를 주매 여호수아가 그 성읍을 중건하고 거기 거하였었더라. 제사장 엘르아살과 눈의 아들 여호수아와 이스라엘 자손 지파의 족장들이 실로에서 회막 문 여호와 앞에서 제비 뽑아 나눈 기업이 이러하니라. 이에 땅 나누는 일이 마쳤더라.

여호수아는 그 일곱 지파들을 위해 실로의 회막 문 앞, 즉 여호와 앞에서 제비 뽑고 거기서 이스라엘 자손의 각 지파대로 땅을 분배하였다. 이렇게 함으로써 땅 나누는 일이 마쳤다(수 18:10; 19:51).

가나안 정복은 신약시대에 전도와 개인적 성화와 온전한 교회 건립에 적용될 수 있다. 전도는 지체할 일이 아니다. 하나님의 뜻은 전도를 통해 믿는 자들을 구원하시는 것이다(고전 1:18, 21). 우리는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복음을 전해야 한다(딤후 4:2). 가족들 중에 믿지 않는 이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주위의 이웃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우리나라나 세계의 어느 곳이든지 교회가 없는 곳에는 전도자들을 파송하고 그들을 위해 기도하고 후원하고 그들이 그곳에 복음을 전하고 참된 교회들을 세우도록 해야 한다. 전도는 주께서 명하신 가장 큰 명령이다. 그것은 우리가 뒤로 미루지 말고 즉시 실천하고 항상 실천해야 할 일이다. 또 구원받은 성도들은 자기 속에 있는 가나안적 죄성을 제거하고 온전한 성화를 이루기 위해 말씀과 성령 안에서 힘써야 한다.

 

20장: 도피성

[1-6절] 여호와께서 여호수아에게 일러 가라사대 이스라엘 자손에게 고하여 이르라. 내가 모세로 너희에게 말한 도피성을 택정하여 부지중 오살(誤殺)한 자를 그리로 도망하게 하라. 이는 너희 중 피의 보수자를 피할 곳이니라. 그 성읍들의 하나에 도피하는 자는 그 성읍에 들어가는 문 어귀에 서서 그 성읍 장로들의 귀에 자기의 사고를 고할 것이요 그들은 그를 받아 성읍에 들여 한 곳을 주어 자기들 중에 거하게 하고 피의 보수자가 그 뒤를 따라온다 할지라도 그들은 그 살인자를 그의 손에 내어주지 말지니 이는 본래 미워함이 없이 부지중에 그 이웃을 죽였음이라. 그 살인자가 회중의 앞에 서서 재판을 받기까지나 당시 대제사장의 죽기까지 그 성읍에 거하다가 그 후에 그 살인자가 본 성읍 곧 자기가 도망하여 나온 그 성읍의 자기 집으로 돌아갈지니라.

모세의 율법과 이스라엘의 역사에서 도피성에 대한 법은 독특한 규정이다. 이 법은 출애굽기 21:13에 처음 암시되었고 민수기 35장에 자세히 규정되었고 신명기 19:1-7에도 같은 법이 다시 설명되었다. 이스라엘 백성은 가나안 땅을 정복한 후 모세의 율법에 규정된 대로 도피성을 구별하였다.

도피성은 부지중에 실수로 사람을 죽인 자가 피의 보복을 피할 수 있게 한 성읍이었다. 3절에 ‘부지중 오살한 자’라는 원문은 ‘실수로(비쉐가가) 부지중(비벨리 다아스) 사람을 죽인 자’라는 뜻이다. 5절과 9절에도 같은 말이 나온다. 실수로 사람을 죽인 자의 행위는 고의적으로 죽인 자의 행위와 그 성격이 다르다. 실수로 사람을 죽인 자는 잘못을 하기는 한 것이지만, 사형을 시킬 만큼 악한 자는 아니다. 그런데 그로 인해 죽은 사람의 가족이 그에게 감정적인 보복을 하려 할 수 있기 때문에 그런 보복을 피할 수 있도록 배려한 법이 도피성에 대한 법인 것이다.

그곳으로 피한 사람은 그 성문에서 그 성읍 장로들에게 자신의 사고에 대해 고하고 장로들은 그에게 그 성읍의 한 곳을 그에게 주어 그가 회중 앞에서 재판을 받기까지 그곳에 거하게 했다. 그 재판은 그가 본래 살던 성, 즉 그가 실수로 사람을 죽였던 그 성에서 이루어졌던 것 같다. 민수기 35:24-25는 “회중이 친 자와 피를 보수(報讎)하는[보수하려는] 자 간에 이 규례대로 판결하여 피를 보수하는[보수하려는] 자의 손에서 살인자를 건져내어 그가 피하였던 도피성으로 돌려보낼 것이요 그는 거룩한 기름 부음을 받은 대제사장의 죽기까지 거기 거할 것이니라”고 말한다. 그가 그 재판에서 그 사고가 고의적인 것이 아니었다는 사실이 판정되면 그는 당시의 대제사장이 죽기까지 그곳에서 어느 기간 동안 살 수 있었다. 그것은 일종의 금고 상태와 같았다. 대제사장이 죽기 전에는 그가 그 성읍을 떠나서 자기 집으로 돌아갈 수 없었다. 만일 그가 그 성 밖으로 나갔다가 죽임을 당하면 그것은 그 자신의 책임이 될 것이다.

[7-9절] 무리가 납달리의 산지 갈릴리 게데스와 에브라임 산지의 세겜과 유다 산지의 기럇 아르바 곧 헤브론을 구별하였고 또 여리고 동 요단 저편 르우벤 지파 중에서 평지 광야의 베셀과 갓 지파 중에서 길르앗라못과 므낫세 지파 중에서 바산 골란을 택하였으니 이는 곧 이스라엘 모든 자손과 그들 중에 우거하는 객을 위하여 선정한 성읍들로서 누구든지 부지중 살인한 자로 그리로 도망하여 피의 보수자의 손에 죽지 않게 하기 위함이며 그는 회중 앞에 설 때까지 거기 있을 것이니라.

도피성의 용도로 여섯 개의 성읍들이 구별되었다. 그 성들은 요단강 동쪽에서 3개, 요단강 서쪽에서 3개이었는데, 요단강 서쪽에서는 북쪽에서부터 납달리 산지 갈릴리 게데스와 중부의 에브라임 산지의 세겜과 남부의 유다 산지의 기럇 아르바 곧 헤브론이었고, 요단강 동쪽에서는 북쪽에서부터 보면 므낫세 지파 중에서 바산 골란과 중부의 갓 지파 중에서 길르앗 라못과 남부의 르우벤 지파 중에서 평지 광야의 베셀이었다.

이 여섯 개의 성읍들은 다 레위인들이 받은 48개의 성읍들 중에 속한 것이었다(민 35:6-7). 그 성들은 요단강 동쪽과 서쪽에서 북부와 중부와 남부에 흩어져 있어서 실수로 살인한 자들이 쉽게, 빨리 피할 수 있도록 배려되었고, 레위인들은 비교적 경건한 자들이었기 때문에 다른 지파들의 성들보다 공의로운 배려를 기대할 수 있었다. 신명기 19:8-9에 보면, 후에 영토가 더 확장되면 3개의 성읍들을 더 추가하라는 명령도 있다.

도피성은 이스라엘 백성뿐 아니라, 그 경내에 우거하는 이방인들도 사용할 수 있었다. 민수기 35:15는 “이 여섯 성읍은 이스라엘 자손과 타국인과 이스라엘 중에 우거하는 자의 도피성이 되리니 무릇 그릇 살인한 자가 그리로 도피할 수 있으리라”고 규정하였다. 오늘 본문 9절도 “이는 곧 이스라엘 모든 자손과 그들 중에 우거하는 객을 위하여 선정한 성읍들로서 누구든지 부지중 살인한 자로 그리로 도망하여 피의 보수자의 손에 죽지 않게 하기 위함이며 그는 회중 앞에 설 때까지 거기 있을 것이니라”고 기록한다. 하나님께서는 이 법을 통해 이방인들에 대한 그의 배려도 증거하셨다.

도피성에 대한 법의 중요한 점은 살인에 대한 구별이다. 살인에는 두 종류가 있다. 고의적 살인이 있고 실수로 하는 살인이 있다. 이 둘은 구별해서 처벌되어야 했다. 출애굽기 21:12-14는, “사람을 쳐죽인 자는 반드시 죽일 것이나 만일 사람이 계획함이 아니라 나 하나님이 사람을 그 손에 붙임이면 내가 위하여 한 곳을 정하리니 그 사람이 그리로 도망할 것이며 사람이 그 이웃을 짐짓 모살하였으면 너는 그를 내 단에서라도 잡아내려 죽일지니라”고 말했다.

민수기 35장에 보면, 고의적 살인은 예를 들어 이웃을 미워하여 손으로나 돌이나 나무나 철 연장으로 쳐서 죽인 경우이다. 하나님께서는 이런 살인자는 반드시 죽이라고 명령하셨다. 왜냐하면 생명은 존엄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실수로, 부지중 사람을 죽인 경우가 있다. 민수기 35장에는 우연히 밀치거나 우연히 돌이나 연장을 던지다가 사람을 죽인 경우를 예로 들었다. 사람은 누구나 실수할 수 있다. 실수도 잘못이기는 하지만, 사형에 해당할 정도의 잘못은 아니다. 그러나 죽은 자의 가족은 감정을 가지고 그에게 보복하려고 할 수 있기 때문에 그 살인자는 도피성으로 피할 수 있었다.

도피성에 도피한 살인자는 당시의 대제사장이 죽기까지 거기에서 거하다가 그 후에 자기 집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그것은 금고 상태와 같았다. 그러나 그것은 유배나 귀양 같은 형벌이 아니고 하나님의 은혜로 보호함을 얻는 것이요 은신처를 가지는 것이었다.

여러 주석가들은 이 규정이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 사역을 예표한다고 보았다.8) 대제사장의 죽음은 대제사장이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을 예표하는 의미가 있는 것 같다. 그로 말미암는 속죄는 죄인의 죄를 씻고 그를 자유케 한다. 그 살인자의 잘못은 용서함을 얻고 이제 자유로이 자기 집으로 돌아갈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도피성으로 구별된 여섯 개의 성 이름도 예수 그리스도에게 적합해 보인다. 게데스(케데쉬)는 ‘거룩하다’는 뜻을 가진다. 우리의 도피성 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의 거룩한 처소이시다. 세겜(쉐켐)은 ‘어깨’라는 뜻이다. 대제사장이 어깨에 이스라엘 열두 지파의 이름을 새긴 보석을 두었듯이(출 28:9, 12),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의 이름을 그의 어깨에 두셨다. 헤브론은 ‘교통, 연합’이라는 뜻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하나님과 우리를 연합시키시고 교제케 하신다. 베셀(베체르)은 ‘금광석’ 혹은 ‘요새’라는 뜻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의 보배시요 우리의 요새이시다. 라못(라모스)은 ‘고지(高地)’라는 뜻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의 산성이시다. 골란은 아마 ‘기쁨’이라는 뜻을 가진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의 기쁨이시다.

도피성은 실수로 살인한 사람들의 유일한, 안전한 피난처이었다. 구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죄인들의 유일한, 안전한 피난처이시다(롬 8:1). 도피성은 요단강 동서쪽에 세 개씩 북부, 중부, 남부에 걸쳐 있었고 실수로 살인한 사람이 쉽게 달려가 피할 수 있는 성이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죄인이 쉽게 달려가 피할 수 있는 구주이시다.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면 구원을 얻을 것이다(롬 10:13). 도피성은 이방인도 혜택을 받을 수 있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유대인에게나 이방인에게나 구별 없이 구주이시다(롬 3:29-30). 그러나 죄인이 도피성을 벗어나면 보호함을 잃고 죽임을 당할 수 있었다. 우리도 예수 그리스도를 떠나면 구원을 잃을 수밖에 없다.

도피성에 대한 법은 의미심장하다. 그 법에서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사람의 생명을 존중해야 할 것을 가르치셨다. 고의적 살인과 실수로 한 살인은 구별되어야 했다. 고의적 살인자는 반드시 사형을 당해야 했지만, 실수로 사람을 죽인 자는 도피성으로 피신하여 생명을 보호받을 수 있었다. 거기에는 생명에 대한 하나님의 특별한 배려가 있었다. 우리는 하나님을 본받아 사람의 생명을 귀히 여겨야 한다.

그러나 도피성은 그 이상의 깊은 뜻이 있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 은혜를 예표하였다고 본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의 도피성이 되신다.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의 모든 죄를 다 용서하셨다. 그는 우리의 실수의 죄뿐 아니라, 고의적인 죄까지도 용서하셨다. 그는 모세의 살인죄를 용서하셨고 다윗의 간음죄와 살인죄를 용서하셨다. 하나님께서는 지옥 갈 우리 죄인들을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로 구원하셨다. 예수님은 우리의 피난처이시다.

 

21장: 레위인의 성읍

[1-3절] 때에 레위 사람의 족장들이 제사장 엘르아살과 눈의 아들 여호수아와 이스라엘 자손의 지파 족장들에게 나아와 가나안 땅 실로에서 그들에게 말하여 가로되 여호와께서 모세로 명하사 우리의 거할 성읍들과 우리의 가축 먹일 그 들을 우리에게 주라 하셨었나이다 하매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의 명을 따라 자기의 기업에서 이 아래 성읍들과 그 들을 레위 사람에게 주니라.

[4-6절] 그핫 가족을 위하여 제비를 뽑았는데 레위 사람 중 제사장 아론의 자손들은 유다 지파와 시므온 지파와 베냐민 지파 중에서 제비대로 13성읍을 얻었고 그 남은 그핫 자손들은 에브라임 지파의 가족과 단 지파와 므낫세 반 지파 중에서 제비대로 열 성읍을 얻었으며 게르손 자손들은 잇사갈 지파의 가족들과 아셀 지파와 납달리 지파와 바산에 있는 므낫세 반 지파 중에서 제비대로 13성읍을 얻었더라.

[7-12절] 므라리 자손들은 그 가족대로 르우벤 지파와 갓 지파와 스불론 지파 중에서 12성읍을 얻었더라. 여호와께서 모세로 명하신 대로 이스라엘 자손이 제비 뽑아 레위 사람에게 준 성읍들과 그 들이 이러하니라. 유다 자손의 지파와 시므온 자손의 지파 중에서는 이 아래 기명한 성읍들을 주었는데 레위 자손 중 그핫 가족들에 속한 아론 자손이 첫째로 제비 뽑혔으므로 아낙의 아비 아르바의 성읍 유다 산지 기럇 아르바 곧 헤브론과 그 사면 들을 그들에게 주었고 오직 그 성읍의 밭과 촌락은 여분네의 아들 갈렙에게 주어 소유가 되게 하였더라.

[13-19절] 제사장 아론 자손에게 준 것은 살인자의 도피성 헤브론과 그 들이요 또 립나와 그 들과 얏딜과 그 들과 에스드모아와 그 들과 홀론과 그 들과 드빌과 그 들과 아인과 그 들과 윳다와 그 들과 벧 세메스와 그 들이니 이 두 지파에서 아홉 성읍을 내었고 또 베냐민 지파 중에서는 기브온과 그 들과 게바와 그 들과 아나돗과 그 들과 알몬과 그 들 곧 네 성읍을 내었으니 제사장 아론 자손의 성읍이 모두 13성읍과 그 들이었더라.

[20-26절] 그 남은 레위 사람 그핫 자손의 가족 곧 그핫 자손에게는 제비 뽑아 에브라임 지파 중에서 그 성읍들을 주었으니 곧 살인자의 도피성 에브라임 산지 세겜과 그 들이요 또 게셀과 그 들과 깁사임과 그 들과 벧 호론과 그 들이니 네 성읍이요 또 단 지파 중에서 준 것은 엘드게와 그 들과 깁브돈과 그 들과 아얄론과 그 들과 가드 림몬과 그 들이니 네 성읍이요 또 므낫세 반 지파 중에서 준것은 다아낙과 그 들과 가드 림몬과 그 들이니 두 성읍이라. 그핫 자손의 남은 가족의 성읍이 모두 열과 그 들이었더라.

[27-33절] 레위 가족의 게르손 자손들에게는 므낫세 반 지파 중에서 살인자의 도피성 바산 골란과 그 들을 주었고 또 브에스드라와 그 들을 주었으니 두 성읍이요 잇사갈 지파 중에서는 기시온과 그 들과 다브랏과 그 들과 야르뭇과 그 들과 언 간님과 그 들을 주었으니 네 성읍이요 아셀 지파 중에서는 미살과 그 들과 압돈과 그 들과 헬갓과 그 들과 르홉과 그 들을 주었으니 네 성읍이요 납달리 지파 중에서는 살인자의 도피성 갈릴리 게데스와 그 들을 주었고 또 함못 돌과 그 들과 가르단과 그 들을 주었으니 세 성읍이라. 게르손 사람이 그 가족대로 얻은 성읍이 모두 13성읍과 그 들이었더라.

[34-40절] 그 남은 레위 사람 므라리 자손의 가족들에게 준 것은 스불론 지파 중에서 욕느암과 그 들과 가르다와 그 들과 딤나와 그 들과 나할랄과 그 들이니 네 성읍이요 르우벤 지파 중에서 준 것은 베셀과 그 들과 야하스와 그 들과 그데못과 그 들과 므바앗과 그 들이니 네 성읍이요 갓 지파 중에서 준 것은 살인자의 도피성 길르앗 라못과 그 들이요 또 마하나임과 그 들과 헤스본과 그 들과 야셀과 그 들이니 모두 네 성읍이라. 이는 레위 가족의 남은 자 곧 므라리 자손이 그 가족대로 얻은 성읍이니 그 제비 뽑아 얻은 성읍이 12성읍이었더라.

[41-42절] 레위 사람의 이스라엘 자손의 기업 중에서 얻은 성읍이 모두 48성읍이요 또 그 들이라. 이 각 성읍의 사면에 들이 있었고 모든 성읍이 다 그러하였더라.

본장은 레위인들에게 거할 성읍들과 그 들을 주었다는 것을 기록한다. 그 성읍들은 이스라엘 각 지파에 속했던 것들이었는데 모두 48성읍들과 그 사면 들이었다.

[43-45절]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의 열조에게 맹세하사 주마 하신 온 땅을 이와 같이 이스라엘에게 다 주셨으므로 그들이 그것을 얻어 거기 거하였으며 여호와께서 그들의 사방에 안식을 주셨으되 그 열조에게 맹세하신 대로 하셨으므로 그 모든 대적이 그들을 당한 자가 하나도 없었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그들의 모든 대적을 그들의 손에 붙이셨음이라.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족속에게 말씀하신 선한 일이 하나도 남음이 없이 다 응하였더라.

본장의 중요한 진리는 하나님의 신실하심에 대한 것이다. 가나안 땅은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의 열조에게 맹세하사 주마 하신” 땅이다(43절). 그 땅에 거주하는 것은 ‘여호와께서 그 열조에게 맹세하신 안식’이며(44절)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족속에게 말씀하신 선한 일”이었다(45절).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내가 이 땅을 네 자손에게 주리라”고 말씀하셨고(창 12:7), 그의 아들 이삭에게도 “내가 이 모든 땅을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라”고 말씀하셨고(창 26:3), 또한 그의 아들 야곱에게도 이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라”고 말씀하셨다(창 28:13).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바를 얻는 과정에는 많은 난관들이 있었다.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내용은 약 700년이 지난 후에야 이루어졌다.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 왕 바로의 권세로부터 건져내는 것도 심히 어려운 일이었다. 애굽에서 나온 후에도 홍해의 난관, 백성들의 불평과 불신앙, 고라 일당의 반역, 모압 여자들과의 음행 등 많은 어려운 일들이 있었고 또 가나안 땅을 정복하는 일도 많은 전쟁을 수행해야 하는 일이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열조들에게 약속하신 바를 다 이루셨다. 그는 그들에게 안식을 주셨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약속하신 바를 다 받았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모든 대적을 그들의 손에 붙여주셨고, 그 모든 대적들 중에 그들을 당한 자는 하나도 없었다. 45절,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족속에게 말씀하신 선한 일이 하나도 남음이 없이 다 응하였더라[모든 선한 말씀 중 한 말씀도 실패치 않고 다 이루어졌더라].” 하나님께서는 약속을 이루시는 신실하신 하나님이시다. 하나님의 약속은 하나도 실패치 않고 다 이루어진다.

하나님께서 오늘날 우리들에게 하신 약속은 영생이며(요 3:16; 요 6:40; 딛 1:2; 요일 5:13), 새 하늘과 새 땅 곧 천국이며(계 21:1-5), 주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이다(계 22:20). 그 약속들도 다 이루어질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택하신 자들을 하나도 잃어버리지 않고 다 구원하실 것이며(요 6:39) 영생을 주기로 작정된 자들은 다 믿을 것이다(행 13:48). 영생과 천국과 주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은 하나님의 작정하시고 약속하신 바대로 다 이루어질 것이다.

본장의 교훈은 무엇인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열조들에게 맹세로 약속하신 바는 다 이루어졌다.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의 약속대로 가나안 땅을 기업으로 얻었고 땅을 분배받았다. 오늘날 우리에게 하신 하나님의 약속들, 즉 구원과 영생과 천국과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의 약속들도 다 이루어질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모든 약속을 믿고 확신하자. 사도 요한은 신약성경 끝부분에서 “이것들을 증거하신 이가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속히 오리라 하시거늘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라고 말했다(계 22:20). 우리도 아멘으로 화답하자.

하나님의 은혜와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으로 구원받은 우리는 오직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본받아 하나님 앞에서 신실한 자들이 되자. 하나님을 배반하는 자들이 되지 말자. 참 신자는 “어린양이 어디로 인도하든지 따라가는 자”(계 14:4)이다. 어디든지 주를 따르는 자들이 되자. 주께서는 우리에게 ‘죽도록 충성하라’고 명하신다. 우리는 죽도록 충성하는 자들이 되자. 하나님의 신실하심같이 우리도 신실한 자가 되자.

 

22장: 세 지파가 큰 단을 만듦

[1-6절] 그때에 여호수아가 르우벤 사람과 갓 사람과 므낫세 반 지파를 불러서 그들에게 이르되 여호와의 종 모세가 너희에게 명한 것을 너희가 다 지키며 또 내가 너희에게 명한 모든 일에 내 말을 너희가 청종하여 오늘날까지 날이 오래도록 너희가 너희 형제를 떠나지 아니하고 오직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명하신 그 책임을 지키도다. 이제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미 말씀하신 대로 너희 형제에게 안식을 주셨으니 그런즉 이제 너희는 여호와의 종 모세가 요단 저편에서 너희에게 준 소유지로 가서 너희의 장막으로 돌아가되 크게 삼가 여호와의 종 모세가 너희에게 명한 명령과 율법을 행하여 너희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고 그 모든 길로 행하며 그 계명을 지켜 그에게 친근히 하고 너희의 마음을 다하며 성품을 다하여 그를 섬길지니라 하고 여호수아가 그들에게 축복하여 보내매 그들이 자기 장막으로 갔더라.

[7-12절] 므낫세 반 지파에게는 모세가 바산에서 기업을 주었고 기타 반 지파에게는 여호수아가 요단 이편 서편에서 그 형제 중에서 기업을 준지라. 여호수아가 그들을 그 장막으로 돌려보낼 때에 그들에게 축복하고 일러 가로되 너희는 많은 재산과 심히 많은 가축과 은, 금, 동, 철과 심히 많은 의복을 가지고 너희의 장막으로 돌아가서 너희의 대적에게서 탈취한 것을 너희의 형제와 나눌지니라 하매 르우벤 자손과 갓 자손과 므낫세 반 지파가 가나안 땅 실로에서 이스라엘 자손을 떠나 여호와께서 모세로 명하신 대로 얻은 땅 곧 그 소유지 길르앗으로 가니라.

여호수아는 르우벤 지파와 갓 지파와 므낫세 반 지파 장정들이 모세와 자신의 명령을 다 지키고 순종했고 여러 날 동안 하나님의 명하신 책임(미쉬메렛)[명령]을 잘 지키고 있다고 인정한 후 그들에게 권면했다. “크게 삼가 모세의 명한 명령과 율법을 행하고 너희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고 그 모든 길로 행하고 그 계명을 지키고 그를 친근히 하고[붙들고] 마음을 다하고 성품[영혼]을 다하여 그를 섬기라”(5절). 5절의 ‘친근히 하라’는 원어(다바크)는 ‘붙들라’는 뜻이고, ‘성품을 다하여’라는 원어는 ‘영혼을 다하여’라는 뜻이다. 여호수아는 그들에게 축복하고 그들을 돌려보내었다. 여호수아는 또 그들에게 그들이 얻은 많은 전쟁 노획물들을 그들의 형제들과 나누라고 말하였다(8절). 세 지파 장정들은 여호수아의 권면을 들은 후 요단 서편의 실로에서 요단 동편 길르앗 땅으로 돌아갔다.

[10-12절] 르우벤 자손과 므낫세 반 지파가 가나안 땅 요단 언덕 가에 이르자 거기서 요단 가에 단을 쌓았는데 볼만한 큰 단이었더라. 이스라엘 자손이 들은즉 이르기를 르우벤 자손과 갓 자손과 므낫세 반지파가 가나안 땅의 맨 앞편 요단 언덕 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속한 편에 단을 쌓았다 하는지라. 이스라엘 자손이 이를 듣자 곧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이 실로에 모여서 그들과 싸우러 가려 하니라.

그 세 지파의 장정들은 요단 동편으로 돌아가다가 가나안 땅 요단강 언덕, 즉 요단강을 건너기 전 요단강 서쪽 강 언덕에서 큰 단을 만들었고 이스라엘 자손들은 그들이 큰 단을 만들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들의 행위는 덕스럽지 못했다. 그들은 다른 지파 사람들과 의논한 후 그 일을 했어야 했다. 그들의 행위는 다른 지파 사람들에게 오해를 일으켰다. 그러므로 이스라엘 온 회중은 실로에 모여서 그들과 싸우러 가려 하였다. 그들은 그 세 지파 사람들이 하나님을 배반하는 행동을 했다고 생각했다. 물론 그것은 오해이었고 그들의 판단은 성급하고 부족했다. 사람의 생각과 판단은 부족이 많다. 하나님께서 도우시지 않았다면, 동족들 간에 큰 전쟁이 불가피하였다.

[13-20절] 이스라엘 자손이 제사장 엘르아살의 아들 비느하스를 길르앗 땅으로 보내어 르우벤 자손과 갓 자손과 므낫세 반 지파를 보게 하되 이스라엘 각 지파에서 한 방백씩 열 방백을 그와 함께 하게 하니 그들은 각기 이스라엘 천만인 중 족속의 두령이라. 그들이 길르앗 땅에 이르러 르우벤 자손과 갓 자손과 므낫세 반 지파에게 나아가서 그들에게 말하여 가로되 여호와의 온 회중이 말하기를 너희가 어찌하여 이스라엘 하나님께 범죄하여 오늘날 여호와를 좇는 데서 떠나서 자기를 위하여 단을 쌓아 여호와를 거역하고자 하느냐? 브올의 죄악으로 인하여 여호와의 회중에 재앙이 내렸으나 오늘날까지 우리가 그 죄에서 정결함을 얻지 못하였거늘 그 죄악이 우리에게 부족하여서 오늘날 너희가 돌이켜 여호와를 좇지 않고자 하느냐? 너희가 오늘날 여호와를 배역하면 내일은 그가 이스라엘 온 회중에게 진노하시리라. 그런데 너희 소유지가 만일 깨끗지 아니하거든 여호와의 성막이 있는 여호와의 소유지로 건너와 우리 중에서 소유를 취할 것이니라. 오직 우리 하나님 여호와의 단 외에 다른 단을 쌓음으로 여호와께 패역하지 말며 우리에게도 패역하지 말라. 세라의 아들 아간이 바친 물건에 대하여 범죄하므로 이스라엘 온 회중에 진노가 임하지 아니하였었느냐? 그 죄악으로 망한 자가 그 사람뿐이 아니었느니라.

이스라엘 온 회중은 우선 사실을 확인하기 위해 제사장 비느하스와, 열 지파에서 한 명씩 열 명을 조사단으로 길르앗 땅에 보내었다. 비느하스는 그들에게 그들이 하나님께 범죄하여 하나님 좇는 데서 떠나서 자기를 위해 단을 쌓아 여호와를 배역(背逆)하고자 하느냐고 지적하였다. 그는 또 브올의 범죄를 상기시키며 말했다. 브올의 죄는 모압 평지 싯딤에서 이스라엘 자손들이 모압 여자들과 음행한 것을 가리킨다. 그때 하나님께서는 진노하셔서 이스라엘 자손을 염병으로 치셔서 24,000명이나 죽었었다(민 25:1-3). 비느하스는 또 아간의 죄와 하나님의 징벌에 대해서도 상기시켰다. 비느하스와 이스라엘 조사단은 그 세 지파 사람들이 요단 강가에 큰 단을 만든 것이 하나님을 배역하고 범죄한 것이 아닌가 하고 지적한 것이었다.

[21-29절] 르우벤 자손과 갓 자손과 므낫세 반 지파가 이스라엘 천만인의 두령에게 대답하여 가로되 전능하신 자 하나님 여호와(엘 엘로힘 예호와)[신들의 신이신 여호와],9) 전능하신 자 하나님 여호와(엘 엘로힘 예호와)[신들의 신이신 여호와]께서 아시나니 이스라엘도 장차 알리라. 이 일이 만일 여호와께 패역함이거나 범죄함이거든 주는 오늘날 우리를 구원치 마시옵소서. 우리가 단을 쌓은 것이 돌이켜 여호와를 좇지 아니하려 함이거나 혹시 그 위에 번제나 소제를 드리려 함이거나 혹시 화목제물을 드리려 함이어든 여호와는 친히 벌하시옵소서. 우리가 목적이 있어서 주의하고 이같이 하였노라. 곧 생각하기를 후일에 너희 자손이 우리 자손에게 말하여 이르기를 너희가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와 무슨 상관이 있느냐? 너희 르우벤 자손 갓 자손아, 여호와께서 우리와 너희 사이에 요단으로 경계를 삼으셨나니 너희는 여호와께 분의가 없느니라 하여 너희 자손이 우리 자손으로 여호와 경외하기를 그치게 할까 하여 우리가 말하기를 우리가 이제 한 단 쌓기를 예비하자 하였노니 이는 번제를 위함도 아니요 다른 제사를 위함도 아니라. 우리가 여호와 앞에서 우리 번제와 우리 다른 제사와 우리 화목제로 섬기는 것을 우리와 너희 사이와 우리의 후대 사이에 증거가 되게 할 뿐으로서 너희 자손으로 후일에 우리 자손에게 이르기를 너희는 여호와께 분의가 없다 못하게 하려 함이로라. 우리가 말하였거니와 만일 그들이 후일에 우리에게나 우리 후대에게 이같이 말하면 우리가 말하기를 우리 열조가 지은 여호와의 단 모형을 보라. 이는 번제를 위한 것도 아니요 다른 제사를 위한 것도 아니라. 오직 우리와 너희 사이에 증거만 되게 할 뿐이라. 우리가 번제나 소제나 다른 제사를 위하여 우리 하나님 여호와의 성막 앞에 있는 단 외에 단을 쌓음으로 여호와께 패역하고 오늘날 여호와를 좇음에서 떠나려 함은 결단코 아니니라 하리라.

세 지파 사람들은 비느하스와 이스라엘 조사단에게 자신들이 단을 만든 것이 하나님을 떠나 배역함이 아니고 어떤 목적이 있어서 행한 것이라고 대답했다. 22절의 “전능하신 자 하나님 여호와”라는 원문은 “신들의 신이신 여호와”라는 말로서 참되신 하나님이라는 뜻일 것이다. 또 그들은 “이 일이 만일 여호와께 패역함이거나 범죄함이거든 주는 오늘날 우리를 구원치 마시옵소서. 우리가 단을 쌓은 것이 돌이켜 여호와를 좇지 아니하려 함이거나 혹시 그 위에 번제나 소제를 드리려 함이거나 혹시 화목제물을 드리려 함이어든 여호와는 친히 벌하시옵소서[심사하시옵소서]10)”라고 말하였다.

세 지파 사람들은, 그들이 그 단을 만든 목적은 이스라엘 자손과 그들 사이에 증거가 되게 하여 훗날에 이스라엘 자손들이 그들 자손들에게 ‘너희는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와 상관이 없다. 요단강이 너희와 우리 사이의 경계선이다. 너희는 우리 하나님 안에 참여하지 못한다’라고 말하지 못하도록 하기 위함이라고 말했다. 그들은 또 “우리가 번제나 소제나 다른 제사를 위하여 우리 하나님 여호와의 성막 앞에 있는 단 외에 단을 쌓음으로 여호와께 패역하고 오늘날 여호와를 좇음에서 떠나려 함은 결단코 아니니라”고 분명히 말했다. 그들은 하나님을 배반하거나 동족을 배반한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그들은 자신들이 훗날에 이스라엘과 동일하게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사실이 부정될까봐 염려한 것이다. 그들이 그 단을 만든 것은, 비록 덕스럽게 행하지는 못했지만, 믿음으로 한 것이었다.

[30-34절] 제사장 비느하스와 그와 함께한 회중의 방백 곧 이스라엘 천만인의 두령들이 르우벤 자손과 갓 자손과 므낫세 자손의 말을 듣고 좋게 여긴지라. 제사장 엘르아살의 아들 비느하스가 르우벤 자손과 갓 자손과 므낫세 자손에게 이르되 우리가 오늘날 여호와께서 우리 중에 계신 줄을 아노니 이는 너희가 이 죄를 여호와께 범치 아니하였음이라. 너희가 이제 이스라엘 자손을 여호와의 손에서 건져내었느니라 하고 제사장 엘르아살의 아들 비느하스와 방백들이 르우벤 자손과 갓 자손을 떠나 길르앗 땅에서 가나안 땅에 돌아와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르러 회보하매 그 일이 이스라엘 자손을 즐겁게 한지라. 이스라엘 자손이 하나님을 찬송하고 르우벤 자손과 갓 자손의 거하는 땅에 가서 싸와[싸워] 그것을 멸하자 하는 말을 다시 하지 아니하였더라. 르우벤 자손과 갓 자손이 그 단을 엣이라 칭하였으니 우리 사이에 이 단은 여호와께서 하나님이 되시는 증거라 함이었더라.

비느하스와 이스라엘 회중의 대표자들은 세 지파 사람들의 말을 듣고 좋게 여겼다. 비느하스는 그들 앞에서 ‘하나님께서 우리 중에 계신 줄 아노라’고 말했다. 비느하스는 돌아와 이스라엘 자손들 앞에 보고하였고, 그의 말을 들은 이스라엘 온 회중도 즐거워했다. 큰 시험거리가 잘 해결되었고 큰 오해가 잘 풀렸다. 하마터면 큰 싸움이 일어날 뻔한 일이 평안하고 은혜스럽게 잘 마무리되었다.

본장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우리는 무슨 좋은 일이든지 덕스럽게 행해야 한다. 세 지파 사람들은 좋은 의도로 단을 만들었지만, 오해를 주는 방식으로 행했다. 그들은 먼저 이스라엘의 지도자 여호수아나 회중의 동의를 구하고 행했다면 좋았을 것이다. 덕스럽게 행한다는 것은 남에게 유익을 주는 방식으로 행하는 것을 말한다. 우리는 범사에 덕스럽게 행하는 자가 되어야 한다. 아무리 좋은 일도 남에게 오해를 주는 방식으로 행해서는 안 될 것이다.

둘째로, 우리는 남의 말이나 행동을 오해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이스라엘 자손들은 요단 동편으로 보내진 세 지파 사람들이 하나님을 배반하고 범죄했다고 오해하였고 그들과 싸우려 하였다. 사람이 생각을 잘못하면 말과 행동도 잘못되어진다. 우리는 다른 사람을 판단하기 전에 먼저 그의 말과 행동을 정확히 파악해야 한다. 또 세상에는 잘못된 말들도 많이 있다. 어리석은 자는 아무 말이나 다 믿지만, 지혜로운 자는 사람의 말들을 분별하며 꼭 믿어야 할 바만 믿는다.

셋째로, 우리는 하나님을 배역하고 배반하는 자가 되지 말아야 한다. 이스라엘 자손들이 세 지파 사람들에 대해 염려한 것은 그들이 하나님을 배반했을까봐이었다. 신앙생활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을 바르게 믿고 섬기며 따르는 것이다. 우리는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를 친근히 하며 그를 섬기며 그가 우리에게 주신 모든 명령과 교훈을 힘써 지키고 모든 악을 떠나야 한다.

 

23장: 여호수아의 마지막 권면

[1-4절]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의 사방 대적을 다 멸하시고 안식을 이스라엘에게 주신 지 오랜 후에 여호수아가 나이 많아 늙은지라.11) 여호수아가 온 이스라엘 곧 그 장로들과 두령들[지도자들]과 재판장들과 유사[관리]들을 불러다가 그들에게 이르되 나는 나이 많아 늙었도다.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를 위하여(미페네켐)[너희 앞에서, 너희 때문에] 이 모든 나라에 행하신 일을 너희가 다 보았거니와 너희 하나님 여호와 그는 너희를 위하여 싸우신 자시니라. 보라, 내가 요단에서부터 해 지는 편 대해까지의 남아 있는 나라들과 이미 멸한 모든 나라를 내가 너희를 위하여 제비뽑아 너희 지파에게 기업이 되게 하였느니라.

여호수아 23장은 여호수아의 마지막 권면이다. 여호수아는 지난날을 회고하며 앞으로의 일을 전망한다. 그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를 위하여 이 모든 나라에 행하신 일을 너희가 다 보았거니와 너희 하나님 여호와 그는 너희를 위하여 싸우신 자시니라”고 말한다. 9절에서도, 그는 “여호와께서 강대한[크고 강한] 나라들을 너희 앞에서 쫓아내셨으므로 오늘날까지 너희를 당한 자가 하나도 없었느니라”고 말한다. 하나님께서 그들을 위해 싸우셨으므로 그들은 항상 승리했다. 하나님보다 전쟁에 능한 자는 없다. 여호수아는 이미 멸한 나라들을 포함하여 하나님께서 주신 그 땅을 열 지파에게 분배하였다. 두 지파 반은 요단 동쪽에서 기업을 얻었었다.

[5절] 너희 하나님 여호와 그가 너희 앞에서 그들을 쫓으사 너희 목전에서 떠나게 하시리니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말씀하신 대로 너희가 그 땅을 차지할 것이라.

여호수아는 이제 하나님께서 그들 앞에서 가나안 원주민들을 다 쫓아내시고 떠나게 하실 것이며 그들이 하나님의 약속대로 그 땅을 차지할 것이라고 말했고, 또 9절에서 그는 “너희 중 한 사람이 천 명을 쫓으리니 이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 그가 너희에게 말씀하신 것같이 너희를 위하여 싸우심이라”고 말했다. 이제까지 그들과 함께하셨던 하나님께서는 앞으로도 계속 그들과 함께하실 것이다.

[6절] 그러므로 너희는 크게 힘써 모세의 율법책에 기록된 것을 다 지켜 행하라. 그것을 떠나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말라.

여호수아는 특히 그들이 모세의 율법책에 기록된 것들을 다 지켜 행하고 좌우로 치우치지 말라고 권면하였다. 이것은 중요한 권면이다. 하나님을 체험했고 하나님의 도우심을 기대하는 자라면 하나님 중심으로 살고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 중심으로 살아야 한다. 그는 성경의 바른 교리들을 다 믿고 생활 교훈들을 힘써 지켜야 한다.

[7절] 너희 중에 남아 있는 이 나라들 중에 가지 말라. 그 신들의 이름을 부르지 말라. 그것을 가리켜 맹세하지 말라. 또 그것을 섬겨서 그것에게 절하지 말라.

여호수아는 또 그들 중에 남아 있는 자들과 그들의 신들에게 가지 말고 그 신들의 이름을 부르거나 섬기거나 절하지 말라고 권면하였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주신 열 가지 계명들 중 첫 번째 계명에 관계된다. 사람이 참 하나님 외에 다른 신을 섬기는 것은 죄 중에 가장 큰 죄이다. 특히 구원받은 성도는 이런 죄를 짓지 말아야 한다.

[8절] 오직 너희 하나님 여호와를 친근히 하기[꼭 붙들기]를 오늘날까지 행한 것같이 하라.

여호수아는 또 그들이 오직 여호와 하나님을 친근히 하고 꼭 붙들고 따라야 한다고 권면하였다.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영원자존하신 유일하신 창조자 하나님이시다. ‘경건함’이란 늘 하나님 앞에서 사는 것이다. 성도는 경건하게 항상 하나님을 꼭 붙잡고 따라야 한다.

[9-10절] 대저 여호와께서 강대한 나라들을 너희 앞에서 쫓아내셨으므로 오늘날까지 너희를 당한 자가 하나도 없었느니라. 너희 중 한 사람이 천 명을 쫓으리니 이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 그가 너희에게 말씀하신 것같이 너희를 위하여 싸우심이라.

[11절] 그러므로 스스로 조심하여 너희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

여호수아는 또 “너희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고 권면하였다. 모세는 말하기를, “이스라엘아, 들으라.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오직 하나인 여호와시니 너는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고 하였다(신 6:4-5). 이 교훈은 모든 계명들 중에서 가장 첫 번째 되는 중요한 교훈이다. 우리는 세상의 부귀영광이나 육신의 쾌락이나 그 무엇보다, 심지어 가족이나 자기 자신보다 이 세상의 창조자와 섭리자이신 하나님을 사랑해야 한다.

[12-13절] 너희가 만일 퇴보하여 너희 중에 빠져 남아 있는 이 민족들을 친근히 하여 더불어 혼인하며 피차 왕래하면 정녕히 알라.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 민족들을 너희 목전에서 다시는 쫓아내지 아니하시리니 그들이 너희에게 올무가 되며 덫이 되며 너희 옆구리에 채찍이 되며 너희 눈에 가시가 되어서 너희가 필경은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주신 이 아름다운 땅에서 멸절하리라.

여호수아는 또 교제에 관해 교훈했다. 그는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 땅에 남아 있는 이방인들을 다 멸하지 않고 그들과 친근히 하고 그들과 혼인하고 왕래하면, 즉 그들과 잘못된 교제를 하면, 하나님께서 그 이방인들을 쫓아내지 않으시고 그들이 이스라엘 백성에게 올무와 덫이 되고 옆구리에 채찍이 되고 눈에 가시가 되게 하셔서 마침내 이스라엘 백성으로 다 멸망케 하실 것이라고 경고하였다.

[14-16절] 보라, 나는 오늘날 온 세상이 가는 길로 가려니와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대하여 말씀하신 모든 선한 일이 하나도 틀리지 아니하고 다 너희에게 응하여 그 중에 하나도 어김이 없음을 너희 모든 사람의 마음과 뜻에 아는 바라.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말씀하신 모든 선한 일이 너희에게 임한 것같이 여호와께서 모든 불길한 일도 너희에게 임하게 하사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주신 이 아름다운 땅에서 너희를 멸절하기까지 하실 것이라. 만일 너희가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명하신 언약을 범하고 가서 다른 신들을 섬겨 그에게 절하면 여호와의 진노가 너희에게 미치리니 너희에게 주신 아름다운 땅에서 너희가 속히 망하리라.

여호수아는 또,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약속하신 대로 하나도 틀림없이 모든 좋은 것을 다 주신 것같이, 그가 모든 나쁜 것, 즉 재앙도 틀림없이 다 내리실 것이며, 또 만약 그들이 하나님의 언약을 범하고 가서 다른 신들을 섬겨 그들에게 절하면, 여호와께서 그들에게 진노하셔서 그들이 결국 다 멸망할 것이라고 경고하였다.

본장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우리는 우리의 성화, 전도, 참된 교회의 건립과 세계복음화가 하나님의 도우심과 함께하심으로 이루어진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이 세상에 죄악된 일들이 많고 사탄과 악령들의 방해와 핍박이 많을지라도,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도우실 것이며 우리 앞에서 행하시고 우리를 위해 일하실 것이다.

둘째로, 우리는 하나님만 믿고 섬기며 그가 주신 성경책을 주야로 읽고 묵상하며 그것을 다 믿고 힘써 행하자. 보수 신앙은 사도적 교훈을 그대로 믿는 것이며 그것은 하나님의 뜻이다(살후 2:15; 딤후 1:13). 우리는 신구약성경의 바른 교훈을 파악하고 다 믿고 행해야 한다.

셋째로, 우리는 잘못된 교제를 피하자. 잘못된 교제는 신앙의 부패와 변질을 가져오고 그것은 우리에게 올무와 덫이 된다. 그것은 개인과 교회에 큰 시험거리이며 마침내 멸망에 이르게 한다. 우리는 성경이 말하는 교제와 분리의 원리를 지켜야 한다(롬 16:17; 살후 3:6).

 

24장: 세겜에서 언약을 세움

[1-7절] 여호수아가 이스라엘 모든 지파를 세겜에 모으고 이스라엘 장로들과 그 두령들과 재판장들과 유사들을 부르매 그들이 하나님 앞에 보인지라. 여호수아가 모든 백성에게 이르되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에 옛적에 너희 조상들 곧 아브라함의 아비, 나홀의 아비 데라가 강 저편에 거하여 다른 신들을 섬겼으나 내가 너희 조상 아브라함을 강 저편에서 이끌어내어 가나안으로 인도하여 온 땅을 두루 행하게 하고 그 씨를 번성케 하려고 그에게 이삭을 주었고 이삭에게는 야곱과 에서를 주었으며 에서에게는 세일산을 소유로 주었으나 야곱과 그 자손들은 애굽으로 내려갔으므로 내가 모세와 아론을 보내었고 또 애굽에 재앙을 내렸나니 곧 내가 그 가운데 행한 것과 같고 그 후에 너희를 인도하여 내었었노라. 내가 너희 열조를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어 바다에 이르게 한즉 애굽 사람이 병거와 마병을 거느리고 너희 열조를 홍해까지 따르므로 너희 열조가 나 여호와께 부르짖기로 내가 너희와 애굽 사람 사이에 흑암을 두고 바다를 이끌어 그들을 덮었었나니 내가 애굽에서 행한 일을 너희가 목도하였으며 또 너희가 여러 날을 광야에 거하였었느니라.

여호수아는 이스라엘 모든 지파들과 지도자들을 세겜에 모았다. 이스라엘 백성이 실로에 모여서 회막을 세웠었으나(수 18:1), 이제 세겜이 그 중심이 되었던 것 같다. 세겜은 레위 지파의 48개의 성읍들 가운데 여섯 개의 도피성 중 하나이다(수 20:7). 세겜은 팔레스틴 중부 에브라임 산지에 있었고 실로보다 조금 북쪽에, 아합 시대 수도 사마리아보다는 조금 동남쪽에 있었다. 신약성경의 수가성은 바로 세겜성이든지 아니면 세겜성 부근의 어떤 성이었다고 보인다.

여호수아는 2절 이하에 창세기, 출애굽기, 민수기에 기록된 내용을 증거하면서 그것을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에’라고 표현하였다. 그것은 모세 오경의 내용의 진실성과 신적 권위성을 보인다.

하나님께서는 옛적에 조상 아브라함의 아비 데라가 유브라데 강 저편 즉 갈대아 우르와 하란에서 다른 신들을 섬겼을 때 아브라함을 불러 가나안 땅으로 인도하셨다. 또 그는 그에게 아들 이삭과 손자 야곱을 주셨고 야곱은 그 자녀들과 함께 애굽에 내려갔었다. 그는 모세를 보내어 애굽에 재앙들을 내리고 그들을 거기에서 인도하여 내셨고 그들을 뒤쫓던 애굽의 모든 군사들을 홍해에 빠져 죽게 하셨다. 이스라엘 백성은 광야에서 여러 날 거하였었다.

[8-13절] 내가 또 너희를 인도하여 요단 저편에 거하는 아모리 사람의 땅으로 들어가게 하매 그들이 너희와 싸우기로 내가 그들을 너희 손에 붙이매 너희가 그 땅을 점령하였고 나는 그들을 너희 앞에서 멸절시켰으며 때에 모압 왕 십볼의 아들 발락이 일어나 이스라엘을 대적하여 사람을 보내어 브올의 아들 발람을 불러다가 너희를 저주케 하려 하였으나 내가 발람을 듣기를 원치 아니한 고로 그가 오히려 너희에게 축복하였고 나는 너희를 그 손에서 건져내었으며 너희가 요단을 건너 여리고에 이른즉 여리고 사람과 아모리 사람과 브리스 사람과 가나안 사람과 헷 사람과 기르가스 사람과 히위 사람과 여부스 사람들이 너희와 싸우기로 내가 그들을 너희의 손에 붙였으며 내가 왕벌을 너희 앞에 보내어 그 아모리 사람의 두 왕을 너희 앞에서 쫓아내게 하였나니 너희 칼로나 너희 활로나 이같이 한 것이 아니며 내가 또 너희의 수고하지 아니한 땅과 너희가 건축지 아니한 성읍을 너희에게 주었더니 너희가 그 가운데 거하며 너희가 또 자기의 심지 아니한 포도원과 감람원의 과실을 먹는다 하셨느니라.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요단 동편 아모리 사람의 땅으로 인도하셔서 그 땅을 점령케 하셨고 모압 왕 발락이 선지자 발람을 통해 이스라엘을 저주하는 것을 막으셨다. 또 그는 요단 서편의 가나안 족속들을 쫓아내시고 그 땅을 그들에게 주셨다. 그들은 칼로나 활로가 아니고 하나님의 은혜와 함께하심으로 그 땅을 정복하였고 그들이 건축치 않은 성들과 심지 않은 포도원들과 감람원들을 취하였다.

[14-18절] 그러므로 이제는 여호와를 경외하며 성실과 진정으로(베사밈 우베에메스)[순전함과 진실함으로] 그를 섬길 것이라. 너희의 열조가 강 저편과 애굽에서 섬기던 신들을 제하여 버리고 여호와만 섬기라. 만일 여호와를 섬기는 것이 너희에게 좋지 않게 보이거든 너희 열조가 강 저편에서 섬기던 신이든지 혹 너희의 거하는 땅 아모리 사람의 신이든지 너희 섬길 자를 오늘날 택하라. 오직 나와 내 집은 여호와를 섬기겠노라. 백성이 대답하여 가로되 여호와를 버리고 다른 신들 섬기는 일을 우리가 결단코 하지 아니하오리니 이는 우리 하나님 여호와 그가 우리와 우리 열조를 인도하여 애굽땅 종 되었던 집에서 나오게 하시고 우리 목전에서 그 큰 이적들을 행하시고 우리가 행한 모든 길에서, 우리의 지난 모든 백성 중에서 우리를 보호하셨음이며 여호와께서 또 모든 백성 곧 이 땅에 거하던 아모리 사람을 우리 앞에서 쫓아내셨음이라. 그러므로 우리도 여호와를 섬기리니 그는 우리 하나님이심이니이다.

여호수아는 “그러므로 이제는 여호와를 경외하며 성실과 진정으로[순전함과 진실함으로] 그를 섬길 것이라. 너희의 열조가 강 저편과 애굽에서 섬기던 신들을 제하여 버리고 여호와만 섬기라”고 권했다. 이스라엘 백성은 순전함과 진실함으로 하나님을 섬기며 조상들이 유브라데 강 저편과 애굽에서 섬기던 신들을 버려야 했다.

그는 그들에게, “만일 여호와를 섬기는 것이 너희에게 좋지 않게 보이거든 너희 열조가 강 저편에서 섬기던 신이든지 혹 너희의 거하는 땅 아모리 사람의 신이든지 너희 섬길 자를 오늘날 택하라. 오직 나와 내 집은 여호와를 섬기겠노라”고 말하였다. 이스라엘 왕 아합 때에 이스라엘 백성이 심각한 배교에 빠져 있었을 때, 엘리야는 “너희가 어느 때까지 두 사이에서 머뭇머뭇 하려느냐? 여호와가 만일 하나님이면 그를 좇고 바알이 만일 하나님이면 그를 좇을지니라”고 말했었다(왕상 18:21). 우리는 참 하나님과 참 신앙을 택해야 한다.

여호수아는 또 “나와 내 집은 여호와를 섬기겠노라”고 말하였다. 그는 환경에 좌우됨 없이 하나님만 섬기겠다는 그의 중심을 잘 나타내었다. 이것이 참 신앙의 태도이다. 참 신앙은 환경을 따라가는 것이 아니고 시대 풍조를 따라가는 것이 아니고 사람들의 숫자나 여론을 따라가는 것도 아니다. 가나안을 정탐했던 열두 정탐꾼들 중에 열 명은 불신앙적 보고를 했고 두 명만 신앙적 보고를 했었다. 아합 시대에도 엘리야는, “여호와의 선지자는 나만 홀로 남았으나 바알의 선지자는 사백 오십인이로다”고 말했었다(왕상 18:22).

[19-24절] 여호수아가 백성에게 이르되 너희가 여호와를 능히 섬기지 못할 것은 그는 거룩하신 하나님이시요 질투하는 하나님이시니 너희 허물과 죄를 사하지 아니하실 것임이라. 만일 너희가 여호와를 버리고 이방 신들을 섬기면 너희에게 복을 내리신 후에라도 돌이켜 너희에게 화를 내리시고 너희를 멸하시리라. 백성이 여호수아에게 말하되 아니니이다 우리가 정녕 여호와를 섬기겠나이다. 여호수아가 백성에게 이르되 너희가 여호와를 택하고 그를 섬기리라 하였으니 스스로 증인이 되었느니라. 그들이 가로되 우리가 증인이 되었나이다. 여호수아가 가로되 그러면 이제 너희 중에 있는 이방신들을 제하여 버리고 너희 마음을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로 향하라. 백성이 여호수아에게 말하되 우리 하나님 여호와를 우리가 섬기고 그 목소리를 우리가 청종하리이다 한지라.

여호수아는 백성에게 중대한 경고를 했다. “너희가 여호와를 능히 섬기지 못할 것은 그는 거룩하신 하나님이시요 질투하는 하나님이시니 너희 허물과 죄를 사하지 아니하실 것임이라. 만일 너희가 여호와를 버리고 이방 신들을 섬기면 너희에게 복을 내리신 후에라도 돌이켜 너희에게 화를 내리시고 너희를 멸하시리라.” 하나님께서는 생명과 복의 근원이시다. 만일 사람이 하나님을 알고 그를 믿고 따르면 생명과 복을 누리지만, 만일 그를 배반하고 거역한다면 죽음과 영원한 불행을 얻게 될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은 여호수아의 교훈을 듣고 그들이 하나님을 버리고 다른 신들을 섬기는 일을 하지 않겠다고 대답했다. 그들은 결심의 이유로 하나님께서 그들을 애굽 땅 종 되었던 집에서 나오게 하셨고 그들 앞에서 큰 기적들을 행하셨고 그들의 모든 길에서 그들을 보호하셨고 그들 앞에서 가나안 족속들을 쫓아내셨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그들은 “그러므로 우리도 여호와를 섬기리니 그는 우리 하나님이심이니이다” “우리가 정녕 여호와를 섬기겠나이다”라고 말했다. 그들은 여호와를 택하고 섬기는 일에 증인이 되었다.

[25-28절] 그 날에 여호수아가 세겜에서 백성으로 더불어 언약을 세우고 그들을 위하여 율례와 법도를 베풀었더라. 여호수아가 이 모든 말씀을 하나님의 율법 책에 기록하고 큰 돌을 취하여 거기 여호와의 성소 곁에 있는 상수리나무 아래 세우고 모든 백성에게 이르되 보라 이 돌이 우리에게 증거가 되리니 이는 여호와께서 우리에게 하신 모든 말씀을 이 돌이 들었음이라. 그런즉 너희로 너희 하나님을 배반치 않게 하도록 이 돌이 증거가 되리라 하고 백성을 보내어 각기 기업으로 돌아가게 하였더라.

그 날 여호수아는 세겜에서 백성과 언약을 세웠다. 그것은 그들이 말한 대로 다른 신들을 제하여 버리고 하나님만 섬기고 그의 목소리를 청종하겠다고 하나님 앞에서 하는 공적 약속이었다. 그것은 이스라엘 자손들이 시내산과 모압 평지에서 하나님과 맺었던 두 차례의 언약(출 24:4-8; 신 29:10-13)을 재확인하는 것이었다.

또 여호수아는 거기에서 그들을 위해 율례와 법도를 베풀었고 그 모든 말씀을 하나님의 율법책에 기록했다. 하나님의 율법책은 모세 5경을 가리킨다. 여호수아는 여호수아서를 그 율법책에 첨가하였다. 이렇게 성경은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한 권씩 늘어나기 시작하였다.

또 그는 큰 돌을 취해 여호와의 성소 곁에 있는 상수리나무 아래 세웠다. ‘성소 곁에’라는 말은 그 당시 회막이 세겜에 있었음을 보이는 것 같다. 하나님의 성막은 성소(聖所) 곧 거룩한 곳이다. 그렇다면, 실로에 있었던(수 18:1) 회막은 세겜으로 이동되었던 것 같다. 그 큰 돌은 여호수아와 백성이 맺은 언약에 대한 증거의 돌이었다.

[29-31절] 이 일 후에 여호와의 종 눈의 아들 여호수아가 110세에 죽으매 무리가 그를 그의 기업의 경내 딤낫 세라에 장사하였으니 딤낫 세라는 에브라임 산지 가아스산 북이었더라. 이스라엘이 여호수아의 사는 날 동안과 여호수아 뒤에 생존한 장로들 곧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위하여 행하신 모든 일을 아는 자의 사는 날 동안 여호와를 섬겼더라.

[32-33절] 이스라엘 자손이 애굽에서 이끌어 낸 요셉의 뼈를 세겜에 장사하였으니 이곳은 야곱이 세겜의 아비 하몰의 자손에게 금 일백개를 주고 산 땅이라. 그것이 요셉 자손의 기업이 되었더라. 아론의 아들 엘르아살도 죽으매 무리가 그를 그 아들 비느하스가 에브라임 산지에서 받은 산에 장사하였더라.

본장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우리는 하나님만 섬기자. 둘째로, 우리는 이방신들을 버리자. 셋째로, 우리는 성경 교훈대로 행하자.

오늘날 이방신들은 무엇인가? 그것들은 물론 이방 종교들을 가리킨다. 그것들은 또한 기독교 이단 종파들을 가리킨다. 그것들은 또 오늘날 자유주의 신학을 가리킨다. 오늘날 교회들 속에는 신학의 변질이 있다. 그것은 성경의 진리들을 가감하고 왜곡시키고 변질시키는 것이다. 불건전한 신비주의나 은사주의도 악령의 활동이라고 보이며 돈이나 명예나 쾌락을 추구하는 세속주의도 악령의 활동들이다.

참 교회는 하나님만 섬기고 이방신들을 다 버려야 한다. 참 교회는 배교와 타협치 말아야 하고 오직 성경의 교훈대로 행해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예레미야를 통해 “너희는 길에 서서 보며 옛적 길 곧 선한 길이 어디인지 알아보고 그리로 행하라. 너희 심령이 평강을 얻으리라”고 말씀하셨다(렘 6:16).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다(딤후 3:16). 우리는 시대의 풍조들을 따르지 말고 성경의 교훈들에 충실히 순종해야 하며 고난을 각오하고 우리의 직무와 본분을 다해야 한다(딤후 4:3-5). 우리는 교회를 점점 더 부패시키는 잘못된 교제들을 금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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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주

1) 애굽에서 나올 당시 여호수아의 나이를 40세로 가정한다면 그러할 것이다. 출애굽기 33:11은 그를 “청년 여호수아”라고 표현한다. ‘청년’이라는 원어 나아르는 ‘아이, 소년, 청년’이라는 뜻이다. 여호수아와 함께 가나안 정탐에 참여했던 갈렙은 40세이었다(수 14:7).

2) 이것은 1887년 애굽 왕 아멘호텝 4세의 옛 수도 아케타톤(텔 엘 아마르나)에서 발굴된 완전한 한 묶음의 고대 외교서신으로 바벨론 설형문자로 쓰여진 점토 비문이다. 바벨론 설형문자는 애굽의 제18왕조 때에 국제적 서신 왕래에 사용되었던 언어이었다.

3) 아처, 구약총론, 301-306쪽.

4) 신명기 17:9에 처음 이런 표현이 나오고 신명기 17:18; 18:1; 21:5; 24:8; 27:9; 31:9; 여호수아 3:3; 8:33에도 사용되었다.

5) 히브리어 성경의 본문은 이렇게 되어 있으나, 대부분의 고대 역본들의 본문은 KJV 영어성경과 같이 “사르단에 가까운 아담읍에서 멀리 그쳐서 일어나 쌓였다”고 되어 있다.

6) 긴 하루에 대한 여러 해석들: (1) 하버드 관측소의 피커링 교수와 예일 대학의 토텐 교수는 천문학적 달력에 하루가 빠져 있음을 발견했다고 주장했다. 어떤 이들은 이집트, 중국, 인도 등지에서 긴 날에 대한 보도들을 가지고 이 견해를 뒷받침하려고 했다. 해리 림머는 천문학자들의 천문학적 계산에서 만 하루가 빠져 있다는 결론을 인용하며 같은 입장을 취한다. (2) 로버트 딕 윌슨은 “태양아, 잠잠하거나 중지하라, 그치라”고 번역하여 대낮의 작열하는 태양 볕이 물러갔다는 뜻으로 해석했다. (3) 카일과 델리취는 태양이 시간 계산에 사용되지 않았다면 그 시간이 24시간이 아니고 48시간이었음을 결정하기도 어려울 것이라고 말하면서, 태양의 가시성이 대기의 반사에 의해 연장되었을 것이라고 제안했다. 렌들 쇼트는 대기의 크립톤(krypton) 때문에 때때로 태양이 어디 있든지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첫 번째 해석이 가장 자연스러워 보인다(가이슬러, 구약개론, 133-134쪽).

7) ‘그의 아우요’라는 말은 ‘그의 아우’라고 고쳐 읽어야 할 것이다.

8) 카일-델리취, 매튜 풀, 매튜 헨리, 박윤선 등.

9) 이것은 히브리어 마소라 본문의 액센트들에 따른 읽기이다.

10) 예박케쉬 라는 원어는 ‘조사하시옵소서, 심사하시옵소서’라는 뜻이다.

11) 여호수아는 출애굽 때 ‘청년’이었으므로(출 33:11) 40세 이하이었을 것이다. 그와 함께 가나안 정탐을 했던 갈렙은 40세이었다(수 14:7). 광야 40년을 지나고 가나안 땅에 들어간 때 그는 80세 이하이었을 것이며 많은 가나안 전쟁들을 치르며 그 땅을 거의 정복한 때는 그로부터 5년 내지 10년 후이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성경에 그가 110세까지 살았다고 증거하므로, 그는 가나안 땅을 정복한 후 대략 20년 내지 25년을 살았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