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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레미야 강해

김효성 목사

2018년 6월 8일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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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말

우리는 신구약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이며 우리의 신앙과 생활에 정확무오한 유일의 법칙임을 믿는다. 성경은 개인의 신앙생활뿐 아니라, 교회의 모든 활동에도 유일한 규범이다. 오늘날처럼 영적으로 혼란한 시대, 다양한 풍조들이 많은 시대에, 우리는 여전히 성경으로 돌아가 성경이 무엇을 말하는지 묵상하기를 원하며 성경에 계시된 하나님의 모든 뜻을 알기를 원한다.

본서의 저자는 예레미야이다. 그는 유다 왕 요시야 13년(주전 627년경)부터 시드기야 11년(주전 586년) 말까지 약 41년간 사역했으나 유다 백성의 반응은 냉담하였다. 비록 설교자의 사역의 결실이 없는 것같이 보이는 경우이었지만, 그는 하나님의 참된 선지자이었고 그가 전한 말씀들은 하나님께서 주신 진리의 말씀이었다. 그의 모습은, 오늘날 하나님의 뜻에 충실하여 성경적 교훈을 하고 성경적 방법으로 교회를 세우고 목회하는 대신, 교인수를 늘이는 일이라면 성경이 가르치지 않는 무슨 사람적 방법이라도 사용하려 하는 속화된 목사들의 모습과 다르다. 성경은 성도의 개인적 신앙과 생활의 정확무오한 유일의 규칙일 뿐 아니라, 목사들의 전도사역, 목회사역의 정확무오한 유일의 규칙이다.

예레미야서의 헬라어 70인역은 히브리어 마소라 본문보다 8분의 1 정도나 짧고 장들의 배열도 다르다. 우리는 그 이유를 잘 알지 못한다. 그러나 우리는 구약의 본문에 관한 한 정통 유대교의 전통적 히브리어 마소라 본문에 권위와 신빙성을 두어야 한다고 본다.

예레미야의 주요 내용은 심판과 회복이다. 본서에는 ‘칼’(71회), ‘기근’(33회), ‘황폐’, ‘멸망’ 등(33회), ‘진노’(24회), ‘온역’(17회) 등의 말이 자주 나온다. 예레미야는 유다 왕국의 멸망기에 사역한 선지자이었다. 본서에는 또 ‘안다’(73회), ‘이스라엘의 하나님’(47회) 등의 표현도 자주 나온다. 모든 사람은 결국 하나님을 알아야 한다. 특히 그의 공의의 심판을 알아야 하고 그의 긍휼의 구원을 알아야 한다. 또 여호와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하나님이시다. 그는 택하신 이스라엘을 징벌하시지만, 마침내 구원하시고 회복시키실 것이다.

본서의 특징적 진리는 사람의 전적 부패성과 무능력이다. 다음 두 구절은 이 진리에 관해 성경 전체에서 매우 중요한 요절이 되었다. 예레미야 17:9, “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한 것은 마음이라.” 예레미야 13:23, “구스인이 그 피부를, 표범이 그 반점을 변할 수 있느뇨? 할 수 있을진대 악에 익숙한 너희도 선을 행할 수 있으리라.”

본문 혹은 각주에 자주 사용된 약어

KJV

영어 King James Version

NASB

영어 New American Standard Version

NIV

영어 New International Version

LXX

고대 헬라어 70인역

Syr

고대 수리아어역

It 

고대 라틴어역

Vg   

고대 라틴어 Vulgate역

BDB

Brown-Driver-Briggs, Hebrew Lexicon of the O. T.

KB

Koehler-Baumgartner, Lexicon in Veteris Testamenti Libros

NBD

The New Bible Dictionary. IVP.

Poole

Matthew Poole, A Commentary on the Holy Bible

JFB

Jamieson, Faussett, Brown 주석

박윤선

박윤선, 구약주석.

 

  

제목차례

 1장: 예레미야를 부르심   

 2장: 하나님을 버리고 우상을 따름    

 3장: 배역한 이스라엘아, 돌아오라 

 4장: 임박한 심판  

 5장: 백성들의 죄악상  

 6장: 북방에서 파멸이 닥침

 7장: 이스라엘의 죄와 불순종 

 8장: 이스라엘의 완고함

 9장: 이스라엘의 멸망을 슬퍼함 

10장: 열방의 길을 배우지 말라 

11장: 하나님의 언약을 깨뜨렸음 

12장: 악한 자의 형통을 보고 피곤치 말라

13장: 이스라엘의 교만을 낮추실 것

14장: 가뭄 재앙을 예언함

15장: 돌이킬 수 없는 재앙

16장: 회복의 날이 있음

17장: 하나님이여, 우리를 구원하소서

18장: 백성들이 선지자의 말을 거절함 

19장: 오지병처럼 깨뜨리실 것 

20장: 예레미야의 고통 

21장: 바벨론에게 망할 것임 

22장: 예루살렘이 황폐케 될 것임 

23장: 거짓 선지자들에게 화가 있을 것 

24장: 무화과 두 광주리의 이상 

25장: 70년 동안 황폐케 될 것  

26장: 예레미야를 죽이려 함 

27장: 바벨론 왕을 섬기라 

28장, 하나냐의 거짓 예언

29장: 포로들에게 보낸 편지  

30장: 이스라엘의 회복  

31장: 새 언약 

32장: 이스라엘의 회복이 약속됨 

33장: 다윗의 의로운 가지 

34장: 자유 선언을 번복함

35장: 레갑 족속의 예  

36장: 유다 왕이 책을 불태움 

37장: 예레미야가 토굴 옥에서 나옴 

38장: 진흙 구덩이에서 구출됨

39장: 예루살렘의 멸망 

40장: 총독 그다랴 

41장: 총독 그다랴의 죽음

42장: 애굽으로 내려가지 말라  

43장: 남은 자들의 불순종

44장: 남은 자들의 우상숭배의 죄 

45장: 바룩에게 하신 말씀

46장: 애굽에 대한 심판

47장: 블레셋에 대한 말씀

48장: 모압에 대한 말씀

49장: 암몬, 에돔 등에 대한 말씀 

50장: 바벨론의 멸망을 예언함 

51장: 하나님께서 바벨론을 멸하실 것 

52장: 유다의 멸망  

 

 

 1장: 예레미야를 부르심

1-10절, 예레미야를 부르심

[1-3절] 베냐민 땅 아나돗의 제사장 중 힐기야의 아들 . . . .

예레미야는 남방 유다 나라 멸망 시기에 사역했던 선지자이었다. 그는 “베냐민 땅 아나돗의 제사장 중 힐기야의 아들”이었다. 그는 에스겔과 같이 제사장이었다.

아몬의 아들 유다 왕 요시야의 다스린 지 13년(주전 627년경)에 여호와의 말씀이 예레미야에게 임하였고 요시야의 아들 유다 왕 여호야김 시대부터 요시야의 아들 유다 왕 시드기야의 제11년(주전 586년) 말까지 임하였다. 그 해 5월에 예루살렘이 바벨론 사람들에게 사로잡혔다. 예레미야의 선지자 사역 기간은 약 41년간이었다.

구약의 선지자는 하나님의 말씀이 그에게 임하므로 선지자가 된다. 하나님의 말씀을 받지 못한 자는 선지자가 될 수 없다. 그 말씀이 구약성경이 되었다. 오늘날, 목사나 설교자는 선지자가 아니지만, 선지자적 성격을 가진다. 설교자는 성경에 정통할 때 참 설교자가 된다. 참 설교자는 자기의 생각을 전하지 않고 성경의 교훈, 성경에 계시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자이다. 그럴 때 그는 권위를 가진다. 성경적 설교와 교훈은 선지자적 권위를 가진다.

[4-5절]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하니라. 이르시되 내가 너를 . . . .

여호와의 말씀이 그에게 임하셨다. “내가 너를 복중에 짓기 전에 너를 알았고 네가 태에서 나오기 전에 너를 구별하였고 너를 열방의 선지자로 세웠노라.”

하나님께서는 예레미야를 만드셨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사람을 만드신 자이시다. 부모는 사람을 만들지 못하고 단지 낳는 것뿐이다. 사람의 육신도, 영혼도 하나님께서 만드신 것이다. 부모에게서 유전되는 것이 아니다. 부모는 하나님의 창조의 도구로 쓰일 뿐이다.

하나님께서는 예레미야를 어머니의 복 중에 지으시기 전에 그를 아셨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생각과 계획 속에서 그를 아셨다. 하나님께서는 만세 전에 모든 사람을 아셨다. 에베소서 1:4는 하나님께서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셨다고 말하였다.

하나님께서는 예레미야가 모태에서 나오기 전에 그를 아셨고 그를 구별하셨고 그를 열방의 선지자로 세우셨다. 하나님께서 그를 선지자로 부르신 것은 하나님의 예정과 선택과 부르심으로 된 것이었다. 예레미야의 선지자직의 근원은 하나님이셨다.

오늘날 설교자의 근원도 하나님이시다. 요한복음 15:16, “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요 내가 너희를 택하여 세웠나니.” 고린도전서 12:28, “하나님이 교회 중에 몇을 세우셨으니 첫째는 사도요 둘째는 선지자요 셋째는 교사요.” 에베소서 4:11, “그가 혹은 사도로, 혹은 선지자로, 혹은 복음 전하는 자로, 혹은 목사와 교사로 주셨으니.”

[6-8절] 내가 가로되 슬프도소이다, 주 여호와여, 보소서 . . . .

예레미야는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을 때 “슬프도소이다, 주 여호와여. 보소서, 나는 아이라. 말할 줄을 알지 못하나이다”라고 말했다. 하나님의 충성된 종 모세도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을 때, “주여, 나는 본래 말에 능치 못한 자라. 주께서 주의 종에게 명하신 후에도 그러하니 나는 입이 뻣뻣하고 혀가 둔한 자니이다”라고 고백하였었다(출 4:10).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부족과 연약을 안 자들을 부르셨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예레미야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아이라 하지 말고 내가 너를 누구에게 보내든지 너는 가며 내가 네게 무엇을 명하든지 너는 말할지니라. 너는 그들을 인하여 두려워 말라. 내가 너와 함께하여 너를 구원하리라. 나 여호와의 말이니라.”

하나님께서는 예레미야에게 선지자의 사역이 무엇임을 지시해주셨다. 첫째로, 예레미야는 누구에게든지, 무엇이든지 전해야 하였다. 그는 누구에게든지 하나님께서 그를 보내시는 자에게 가서 전해야 하고, 무엇이든지 하나님께서 명하시는 것을 전해야 했다. 그것이 선지자의 임무이며 오늘날 설교자의 임무이다.

둘째로, 예레미야는 사람의 낯을 두려워하지 말아야 했다. “너는 그들을 인하여 두려워하지 말라. [왜냐하면] 내가 너와 함께하여 너를 구원할 것임이니라.” 하나님께서 그의 동행자, 그의 후원자, 그의 보호자, 그의 구원자가 되시기 때문에, 그는 사람들의 낯을 두려워할 것이 없다. 오늘날 설교자도 마찬가지이다. 그가 하나님의 교훈을 깨닫고 받았다면, 그는 사람들의 낯을 두려워하지 말고 전하고 외쳐야 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그와 함께하시기 때문이다.

[9-10절] 여호와께서 그 손을 내밀어 내 입에 대시며 내게 . . . .

여호와께서는 손을 내밀어 그의 입에 대시며 말씀하셨다. “보라, 내가 내 말을 네 입에 두었노라. 보라, 내가 오늘날 너를 열방 만국 위에 세우고 너로 뽑으며 파괴하며 파멸하며 넘어뜨리며 건설하며 심게 하였느니라.” 셋째로, 선지자의 사역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것이다. 선지자는 자기의 생각을 전하는 자가 아니고, 오직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자이다. 오늘날 설교자도 마찬가지이다. 그는 신구약성경에 계시된 하나님의 뜻만을 충실하게 전해야 한다.

넷째로, 예레미야는 파괴하고 건설하는 일을 해야 했다. “보라, 내가 오늘날 너를 열방 만국 위에 세우고 너로 뽑으며 파괴하며 파멸하며 넘어뜨리며 건설하며 심게 하였느니라.” 뽑으며 파괴하며 파멸하며 넘어뜨리는 것은 사람들의 죄악을 지적하고 책망하고 심판을 선포하는 사역이다. 건설하고 심는 것은 회개를 촉구하고 구원하고 회복시키고 의와 선을 행하도록 권면하고 장려하는 사역이다.

본문이 주는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본문은 설교자의 자격에 대해 증거한다. 설교자는 하나님께서 택하시고 세우신다. 거기에 설교의 권위가 있고 또 설교자의 권위가 있다. 또 사람편에서 설교자는 성경에 정통한 자이어야 한다. 성경적 설교와 교훈이 참 설교요 하나님의 말씀이다. 바른 목사와 설교자는 성경적 교훈을 위해 하나님께서 세우신 목사이다. 거기에 설교와 설교자의 권위가 있다.

둘째로, 본문은 설교자의 임무에 대해 증거한다. 설교자는 하나님의 모든 말씀을 누구에게나 어디서나 전해야 한다. 성경적 설교는 설교자의 생명이요 설교자의 권위요 설교자의 영광이다. 사도행전 20:20-21에 보면, 사도 바울은 유익한 것은 무엇이든지 공중 앞에서나 각 집에서나 꺼림 없이 전하여 가르쳤고 유대인들과 헬라인들에게 하나님께 대한 회개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 대한 믿음을 증거하였다.

또 설교자는 사람들의 낯을 두려워하지 말아야 한다. 그는 하나님의 종이기 때문이다. 그는 하나님만 생각하고 하나님만 두려워해야 한다. 설교자가 사람을 두려워하면 그는 악을 책망치 못하고 악과 타협하게 되고 설교 내용을 사람들의 기호에 맞추어 가감(加減)하게 될 것이다.

또 설교자는 파괴하고 건설해야 한다. 무엇을 파괴하는가? 사람들의 죄악된 요소들, 성도들의 부족한 점들을 지적하고 파괴해야 한다. 무엇을 건설하는가? 그는 성도들에게 꼭 있어야 할 덕들, 곧 경건과 거룩과 의와 선과 사랑과 진실의 덕을 건립해야 한다.

셋째로, 본문은 교인들의 의무를 보인다. 참된 설교자가 하나님의 종이며 참 설교가 하나님의 말씀이라면, 교인들의 의무는 분명하다. 그들은 참된 설교자를 영접해야 한다. 마태복음 10:40, “너희를 영접하는 자는 나를 영접하는 것이요.” 교인들은 성경적 설교를 하는 목사를 사람으로만 보지 말아야 한다. 그들은 그가 하나님의 보내심을 받아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자로 깨닫고 존중해야 한다. 그들은 성경적 설교를 거절하는 것이 곧 하나님을 거절하는 것임을 알아야 한다.

 

11-19절, 두 가지 환상

본문은 두 가지 환상을 통해 하나님의 말씀을 받은 사건이다.

[11-12절] 여호와의 말씀이 또 내게 임하니라. 이르시되 . . . .

여호와의 말씀이 또 예레미야에게 임하였다. “예레미야야, 네가 무엇을 보느냐?” 그는 대답하였다. “내가 살구나무 가지를 보나이다.” 여호와께서는 그에게 말씀하셨다. “네가 잘 보았도다. 이는 내가 내 말을 지켜 그대로 이루려 함이니라.”

첫 번째 환상은 살구나무의 환상이었다. ‘살구나무’라는 원어(솨케드)는 ‘지킨다’는 히브리어(솨카드 혹은 쇼케드 [분사])와 발음이 비슷하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이 자신의 말을 지키셔서 그대로 이루실 것을 말씀하기 위하여 살구나무 가지를 보이셨던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그 약속하신 바를 그대로 이루시는 자이시다. 말라기 3:6에서 그는 “나 여호와는 변역지[변하지] 아니하노라”고 말씀하셨다. 하나님께서는 변하지 않는 신실하신 분이시다.

여호수아 21:45는,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족속에게 말씀하신 선한 일이 하나도 남음이 없이 다 응하였더라”고 증거하였다. 또 여호수아 23:14에 보면, 여호수아는 이스라엘의 모든 회중 앞에서 증거하기를, “보라, 나는 오늘날 온 세상이 가는 길로 가려니와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대하여 말씀하신 모든 선한 일이 하나도 틀리지 아니하고 다 너희에게 응하여 그 중에 하나도 어김이 없음을 너희 모든 사람의 마음과 뜻에 아는 바라”고 말하였다.

마태복음 24:35에 보면, 주 예수께서는 “천지는 없어지겠으나 내 말은 없어지지 아니하리라”고 말씀하셨다. 히브리서 저자는 히브리서 10:23에서, “또 약속하신 이는 미쁘시니 우리가 믿는 도리의 소망을 움직이지 말고 굳게 잡자”라고 권면했다. 우리는 하나님을 믿고 그의 말씀이 그대로 이루어질 것을 알고 그것을 굳게 믿자.

[13-16절] 여호와의 말씀이 다시 내게 임하니라. 이르시되 . . . .

여호와의 말씀이 다시 예레미야에게 임하였다. “네가 무엇을 보느냐?” 그는 대답하였다. “끓는 가마를 보나이다. 그 면이 북에서부터 기울어졌나이다.” 여호와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재앙이 북방에서 일어나 이 땅의 모든 거민에게 임하리라.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가 북방 모든 나라의 족속을 부를 것인즉 그들이 와서 예루살렘 성문 어귀에 각기 자리를 정하고 그 사면 성벽과 유다 모든 성읍을 치리라. 무리가 나를 버리고 다른 신들에게 분향하며 자기 손으로 만든 것에 절하였은즉 내가 나의 심판을 베풀어 그들의 모든 죄악을 징계하리라.”

두 번째 환상은 끓는 가마의 환상이었다. 그 끓는 가마는 그 면이 북쪽에서부터 기울어져 있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북방 나라들을 불러 유다 성읍들을 치게 하실 일을 미리 보이신 것이었다. 그것은 하나님의 심판과 징벌에 대한 환상이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의 행위에 대해 보응하신다. 요한계시록 2:23에 보면, 부활하신 주께서는 “또 내가 사망으로 그의 자녀를 죽이리니 모든 교회가 나는 사람의 뜻과 마음을 살피는 자인 줄 알지라. 내가 너희 각 사람의 행위대로 갚아 주리라”고 말씀하셨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의 선악간의 행위에 대해 보응하신다. 그러므로 우리는 악을 버리고 오직 선을 행하자. 하나님의 모든 명령을 순종하고 패역의 죄를 범하지 말자.

[17-19절] 그러므로 너는 네 허리를 동이고 일어나 내가 네게 . . . .

하나님께서는 또 말씀하신다. “그러므로 너는 네 허리를 동이고 일어나 내가 네게 명한 바를 다 그들에게 고하라. 그들을 인하여 두려워 말라. 두렵건대 내가 너로 그들 앞에서 두려움을 당하게 할까 하노라. 보라, 내가 오늘날 너로 그 온 땅과 유다 왕들과 그 족장들과 그 제사장들과 그 땅 백성 앞에 견고한 성읍, 쇠기둥, 놋성벽이 되게 하였은즉 그들이 너를 치나 이기지 못하리니 이는 내가 너와 함께하여 너를 구원할 것임이니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하나님께서는 예레미야에게 사명 완수를 명하셨다 “그러므로 너는 네 허리를 동이고 일어나 내가 네게 명한 바를 다 그들에게 고하라.” 하나님의 뜻을 거역하는 것이 불충성이고 그의 뜻에 순응하는 것이 충성이다. 선지자나 설교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그대로 선포해야 한다. 그렇게 충성하려면 주의 종들은 용기와 담대함이 필요하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예레미야를 유다 땅과 왕들과 그 족장들과 그 제사장들과 그 땅 백성 앞에 견고한 성읍, 쇠기둥, 놋성벽이 되게 하셨다. 또 그들이 그를 치나 이기지 못할 것이다. 하나님께서 그와 함께하여 그를 구원할 것이기 때문이다.

참 선지자와 설교자에게 고난이 있고 그를 치는 자들이 있으나, 그는 그들을 두려워하지 말아야 한다. 그는 견고한 성읍, 쇠기둥, 놋성벽같이 되어야 한다.

디모데후서 4:1-5, “하나님 앞과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실 그리스도 예수 앞에서 그의 나타나실 것과 그의 나라를 두고 엄히 명하노니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라. 범사에 오래 참음과 가르침으로 경책하며 경계하며 권하라. 때가 이르리니 사람이 바른 교훈을 받지 아니하며 귀가 가려워서 자기의 사욕(私慾)을 좇을 스승을 많이 두고 또 그 귀를 진리에서 돌이켜 허탄한 이야기를 좇으리라. 너는 모든 일에 근신하여 고난을 받으며 전도인의 일을 하며 네 직무를 다하라.”

전도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자이다. 그는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말씀을 전파해야 한다. 또 그러려면 그는 하나님의 명령을 수행할 때 많은 고난이 따른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사도 바울을 견고케 하셨고 그를 도우시고 지키셔서 승리케 하셨다.

사도 바울은 디모데후서 4:14-18에서 자신이 당한 고난을 간증하였다. “구리 장색 알렉산더가 내게 해를 많이 보였으매 주께서 그 행한 대로 저에게 갚으시리니 너도 저를 주의하라. 저가 우리 말을 심히 대적하였느니라. 내가 처음 변명할 때에 나와 함께한 자가 하나도 없고 다 나를 버렸으나 저희에게 허물을 돌리지 않기를 원하노라. 주께서 내 곁에 서서 나를 강건케 하심은 나로 말미암아 전도의 말씀이 온전히 전파되어 이방인으로 듣게 하려 하심이니 내가 사자의 입에서 건지웠느니라. 주께서 나를 모든 악한 일에서 건져내시고 또 그의 천국에 들어가도록 구원하시리니 그에게 영광이 세세 무궁토록 있을지어다. 아멘.” 구리 장색 알렉산더가 바울에게 많은 해를 주었고 그의 말을 대적했으나, 하나님께서는 그를 구원하셨다.

본문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하나님께서는 그의 말씀을 지켜 그대로 이루시는 자이시다. 이스라엘 백성은 그런 지식과 믿음이 없었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을 믿고 그의 말씀을 굳게 믿자. 디모데후서 1:12, “이를 인하여 내가 또 이 고난을 받되 부끄러워하지 아니함은 . . . 나의 의탁한 것을 그 날까지 저가 능히 지키실 줄을 확신함이라.”

둘째로, 하나님께서는 공의로 심판하시는 하나님이시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의 선악의 행위에 대해 공의로 심판하신다. 이 사실을 아는 자는 모든 악을 버리고 선에 속하고 패역하지 말고 말씀에 순종하자.

셋째로, 우리는 고난 중에도 낙심치 말고 충성하자. 배교와 타협과 혼돈의 시대에도 하나님의 바른 말씀은 힘있게 전파되어야 한다. 마귀는 우리가 이 세상에서 바른 말씀을 전하며 바른 입장을 취하는 것을 싫어한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며 전하는 자편에 계신다. 하나님께서는 그런 자를 견고케 하시고 도우시고 지키시고 승리케 하신다. 그러므로 우리는 고난의 현실을 두려워하지 말고 주권적 섭리자 하나님을 바라보면서 하나님 앞에서 바로 서자.

 

2장: 하나님을 버리고 우상을 따름

1-13절, 이스라엘의 두 가지 악

[1-3절]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하니라. 이르시되 가서 . . . .

여호와의 말씀이 예레미야에게 임하셨다.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종 모세와 선지자들에게 주신 말씀들과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성령께서 사도들에게 주신 말씀들이 구약성경과 신약성경에 다 기록되어 있다. 오늘날, 신구약 66권의 성경은 하나님의 친 음성의 말씀이며 살아 역사하는 말씀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신구약성경을 읽고 연구하고 듣고 묵상하고 깨닫고 믿고 그대로 행해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예레미야에게 말씀하셨다. “가서 예루살렘 거민의 귀에 외쳐 말할지니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네 소년 때의 우의(友誼)와 네 결혼 때의 사랑 곧 씨 뿌리지 못하는 땅, 광야에서 어떻게 나를 좇았음을 내가 너를 위하여 기억하노라. 그때에 이스라엘은 나 여호와의 성물(聖物) 곧 나의 소산 중 처음 열매가 되었나니 그를 삼키는 자면 다 벌을 받아 재앙을 만났으리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우의’(友誼)라는 원어(케세드)는 주로 ‘자비’--죄인들을 향한 하나님의 자비이든지, 다른 사람을 향한 사람의 자비이든지 간에--라는 뜻으로 사용되지만, 간혹 본문에서와 같이 ‘하나님께 대한 사랑’ 즉 ‘경건’이라는 뜻으로도 사용된다(BDB).

이스라엘 백성은 애굽에서 나온 후 광야에서 하나님을 경외하고 섬기며 따랐다. 비록 그 백성이 목이 곧고 항상 하나님을 거역하고 속히 하나님을 떠났으나, 적어도 그 지도자 모세와 수종자 여호수아는 하나님 앞에서 경건하고 신실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을 하나님의 성물(聖物)[구별된 물건]과 같이, 소산물 중의 첫 열매와 같이 여기셨다. 그를 삼키는 자는 벌을 받고 재앙을 받았다.

[4-8절] 야곱 집과 이스라엘 집 모든 가족아 나 여호와의 말을 . . . .

하나님께서는 또 말씀하신다. “야곱 집과 이스라엘 집 모든 가족아, 나 여호와의 말을 들으라. 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너희 열조가 내게서 무슨 불의함을 보았관대 나를 멀리하고 허탄한 것을 따라 헛되이 행하였느냐?[허무하게 되었느냐?](KJV, NASB, NIV).” 이스라엘의 죄는 두 가지로 요약된다. 첫째는 하나님을 멀리한 것이며, 둘째는 헛된 것을 따른 것이다. 하나님께 불의한 일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하나님을 멀리하고 헛된 것을 따랐다. 신약시대에도 마찬가지이었다. 예수님 당시에 유대인들은 예수께서 무슨 잘못을 행하지 않으셨으나 그를 배척하고 죽였고 또 사도들이 무슨 악을 행하지 않았으나 그들을 핍박하고 죽이려 하였다.

하나님께서는 또 말씀하신다. “그들이 우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시고 광야 곧 사막과 구덩이 땅, 간조하고 사망의 음침한 땅, 사람이 다니지 아니하고 거주하지 아니하는 땅을 통과케 하시던 여호와께서 어디 계시냐 말하지 아니하였도다. 내가 너희를 인도하여 기름진 땅에 들여 그 과실과 그 아름다운 것을 먹게 하였거늘 너희가 이리로 들어와서는 내 땅을 더럽히고 내 기업을 가증히 만들었으며 제사장들은 여호와께서 어디 계시냐 하지 아니하며 법 잡은 자들은 나를 알지 못하며 관리들도 나를 항거하며 선지자들은 바알의 이름으로 예언하고 무익한 것을 좇았느니라.”

이스라엘의 선조들은 그들을 애굽 땅에서 구원하시고 그의 기이한 손으로 그 거친 광야를 통과하도록 지켜주신 하나님을 잊어버렸고 그를 찾지 않았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인도하여 기름진 가나안 땅에 들여 그 아름다운 소산을 먹게 하셨으나, 그들은 이리로 들어와서는 하나님의 땅을 더럽혔고 하나님의 기업을 가증하게 만들었다. 하나님께서는 가나안 땅을 ‘내 땅’과 ‘내 기업’이라고 부르셨다. 이스라엘의 지도자들, 곧 제사장들과 법관들과 관리들과 선지자들은 하나님을 찾지 않았고 알지 못했고 대적하였고 헛된 것을 좇았다.

[9-13절] 그러므로 내가 여전히 너희와 다투고 너희 후손과도 . . . .

하나님께서는 또 말씀하신다. “그러므로 내가 여전히 너희와 다투고 너희 후손과도 다투리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너희는 깃딤 섬들에 건너가 보며 게달에도 사람을 보내어 이 같은 일의 유무를 자세히 살펴보라. 어느 나라가 그 신(神)을 신(神) 아닌 것과 바꾼 일이 있느냐? 그러나 나의 백성은 그 영광[하나님]을 무익한 것[우상들]과 바꾸었도다.” 깃딤 섬은 지중해 동북쪽 끝에 있는 큰 구브로 섬(사이프러스 섬)을 가리키고, 게달은 이스마엘의 후손인 유목민들(베두인 사람들)을 가리킨다.

하나님께서는 또 말씀하신다. “너 하늘아, 이 일을 인하여 놀랄지어다. 심히 떨지어다. 두려워할지어다(코르부 메오드)[매우 황폐할지어다](BDB, NASB). 여호와의 말이니라. 내 백성이 두 가지 악을 행하였나니 곧 생수의 근원 되는 나를 버린 것과 스스로 웅덩이를 판 것인데 그것은 물을 저축지 못할 터진 웅덩이니라.”

하나님을 버리고 우상들을 섬긴 것은 매우 큰 악이기 때문에 하늘도 이 일을 듣고 놀랄 것이며 심히 떨 것이다. 하늘과 땅은 황폐할 것이다. 하나님의 백성 이스라엘의 악은 다시 두 가지로 요약된다. 첫째는 생수의 근원 되는 하나님을 버린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생명의 근원이시다. 사람은 하나님을 떠나면 죽는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멀리하는 것이 곧 사람의 음이다. 둘째는 스스로 웅덩이를 판 것이다. 그러나 그 웅덩이는 물을 저축하지 못할 터진 웅덩이이다. 그것은 헛된 우상숭배를 가리킨 말씀이다.

본문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우리는 하나님을 멀리하지 말고 버리지 말고 떠나지 말자. 하나님께 무슨 잘못이 있는가? 무슨 문제가 있는가? 무슨 불의가 있는가? 무슨 부도덕이 있는가? 성경적 기독교 신앙에, 성경적 교훈과 설교에 무슨 잘못, 무슨 문제, 무슨 불의, 무슨 부도덕이 있는가?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을 멀리하거나 떠나지 말고 성경적 교훈을 떠나지 말자. 신명기 10:20, “네 하나님 여호와를 경외하여 그를 섬기며 그에게 친근히 하라[그를 꼭 붙들라].”

둘째로, 우리는 헛된 웅덩이나 터진 웅덩이를 파지 말자. 헛된 웅덩이나 터진 웅덩이는 하나님 아닌 것, 참으로 구원을 줄 수 없고 도움을 줄 수 없는 헛된 우상을 가리킨다. 그것은 오늘날 물질주의, 인본주의, 세속주의, 쾌락주의에 적용되며, 천주교회나 이단종파들이나 자유주의 신학이나 교회연합운동이나 은사운동에도 적용된다. 사람들이 하나님을 버리고 성경적 신앙, 역사적 기독교 신앙, 바른 신앙을 버리고 잘못된 사상을 구하며 따르는 것은 큰 악이다. 그것은 하늘도 놀라고 심히 떨 큰 악이다. 우리는 헛된 우상숭배를 버리자.

셋째로, 우리는 하나님 한 분으로 만족하고 그가 주신 성경의 교훈으로 만족하자. 시편 73:24-26, “주의 교훈으로 나를 인도하시고 후에는 영광으로 나를 영접하시리니 하늘에서는 주 외에 누가 내게 있으리요 땅에서는 주밖에 나의 사모할 자 없나이다. 내 육체와 마음은 쇠잔하나 하나님은 내 마음의 반석이시요 영원한 분깃이시라.” 갈라디아서 6:14, “그러나 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으니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세상이 나를 대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고 내가 또한 세상을 대하여 그러하니라.”

이것이 옛 길이며 옛 신앙이며 성경적 기독교이다. 이것이 복된 길이며 평강의 길, 형통의 길, 영생의 길이다. 예레미야 6:16,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너희는 길에 서서 보며 옛적 길 곧 선한 길이 어디인지 알아보고 그리로 행하라. 너희 심령이 평강을 얻으리라 하나 그들의 대답이 우리는 그리로 행치 않겠노라 하였으며.”

 

14-25절, 이스라엘의 황무함의 원인

[14-16절] 이스라엘이 종이냐? 씨종이냐? 어찌하여 포로가 . . . .

하나님께서는 또 말씀하신다. “이스라엘이 종이냐? 씨종이냐? 어찌하여 포로가 되었느냐? 어린 사자들이 너를 향하여 부르짖으며 소리를 날려 네 땅을 황무케 하였으며 네 성읍들은 불타서 거민이 없게 되었으며 놉과 다바네스의 자손도 네 정수리를 상하였도다.” ‘씨종’이라는 원어(옐리드 바이스)는 ‘집에서 난 (종)’이라는 뜻이다. ‘포로’라는 원어(바즈)는 ‘약탈물’이라는 뜻이다. ‘상하다’는 원어()는 ‘(풀을) 뜯어먹다’는 뜻이다.

이스라엘 백성은 종처럼, 약탈물처럼 포로가 되었다. 침략자들이 그 땅을 황무하게 만들었고 그 성읍들을 불태워 거민들이 없게 하였다. 놉[멤피스]과 다바네스의 자손들 곧 애굽 사람들은 이스라엘의 지도자들을 풀을 뜯어먹듯이 해치었다.

[17-20절]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너를 길로 인도할 때에 네가 . . . .

하나님께서는 또 말씀하신다.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너를 길로 인도할 때에 네가 나를 떠남으로 이를 자취함이 아니냐? 네가 시홀의 물을 마시려고 애굽 길에 있음은 어찜이며 또 그 하수를 마시려고 앗수르 길에 있음은 어찜이뇨? 네 악이 너를 징계하겠고 네 패역이 너를 책할 것이라. 그런즉 네 하나님 여호와를 버림과 네 속에 나를 경외함이 없는 것이 악이요 고통인 줄 알라. 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시홀’은 분명히 나일강을 가리키며(사 23:3) 아마 나일강의 동쪽 지류를 가리키는 말일 것이라고 한다(BDB). ‘그 하수’는 유프라데 강을 가리킨다. ‘패역’이라는 원어(메슈바)는 ‘배교’라는 뜻이다(BDB).

이스라엘의 죄는 하나님을 떠나고 버린 것 곧 참 경건의 상실이다. 그들은 하나님 대신 남방의 강대국인 애굽이나 북방의 강대국인 앗수르를 의지하였다. 그것은 세상을 의지하고 사람을 의지한 것이다. 선지자는 그것을 ‘배교’라고 표현한다. 이스라엘의 멸망은 그들이 하나님을 버렸고 그들 속에 하나님 경외함이 없었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는 또 말씀하신다. “네가 옛적부터 네 멍에를 꺾고 네 결박을 끊으며 말하기를 나는 순복지 아니하리라 하고 모든 높은 산 위와 모든 푸른 나무 아래서 몸을 굽혀 행음하도다.” 본절 상반절의 원문은 “이는 내가 옛적에 네 멍에를 꺾고 네 결박을 끊었으나, 네가 말하기를, 나는 순복지 아니하리라”고 번역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본다(KJV, NASB). “내가 옛적에 네 멍에를 꺾고 네 결박을 끊었다”는 말씀은 출애굽 사건을 가리킬 것이다. 또 하나님께서는 사사 시대에도 여러 번 이방의 압제에서 이스라엘을 건져주셨다. 그러나 그들은 하나님께 순복지 않았고 우상숭배에 떨어졌다.

[21-25절] 내가 너를 순전한 참 종자 곧 귀한 포도나무로 . . . .

하나님께서는 또, “내가 너를 순전한 참 종자 곧 귀한 포도나무(쇼레크)로 심었거늘 내게 대하여 이방 포도나무의 악한 가지가 됨은 어찜이뇨?”라고 말씀하신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을 택하시고 부르시고 그의 자손 이스라엘 백성을 경건하고 의로운 백성을 삼기를 원하셨다. 그러나 그들은 악을 행하는 이방인들과 다를 바가 없게 변질되었다.

하나님께서는 또 말씀하신다. “주 여호와 내가 말하노라. 네가 잿물로 스스로 씻으며 수다한 비누를 쓸지라도 네 죄악이 오히려 내 앞에 그저 있으리니 네가 어찌 말하기를 나는 더럽히지 아니하였다, 바알들을 좇지 아니하였다 하겠느냐? 골짜기 속에 있는 네 길을 보라. 네 행한 바를 알 것이니라.” 이스라엘 백성의 죄악은 잿물이나 많은 비누로도 씻어지지 않을 것이다. 그들의 죄악은 하나님 앞에 분명하게 기억될 것이다. 그들의 우상숭배의 자취들은 골짜기 속에 드러나 있다.

하나님께서는 또 말씀하신다. “너는 발이 빠른 젊은 암약대가 그 길에 어지러이 달림 같았으며 너는 광야에 익숙한 들 암나귀가 그 성욕이 동하므로 헐떡거림 같았도다. 그 성욕의 때에[그 발정의 때에] 누가 그것을 막으리요. 그것을 찾는 자들이 수고치 아니하고 그것의 달에 만나리라. 내가 또 말하기를 네 발을 제어하여 벗은 발이 되게 말며 목을 갈하게 말라 하였으나 오직 너는 말하기를 아니라, 이는 헛된 말이라. 내가 이방신을 사랑하였은즉 그를 따라 가겠노라 하도다.” 이스라엘 백성은 마치 발정한 들 암나귀같이 우상숭배에 열심이었고 악을 행하기에 열렬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행음치 말고 헛된 갈망을 버리라고 말씀하셨으나 그들은 그 말씀을 헛되이 여기며 이방신을 사랑했고 그것을 따라갔다.

본문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우리는 행음하지 말자.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을 떠났고 배교하였고 영적 행음 즉 우상숭배에 빠졌었다. 우리는 육적 행음은 물론이고 영적 행음 곧 우상숭배를 하지 말자. 우리는 이 세상이나 세상의 것들이나 사람이나 돈을 사랑하지 말자.

둘째로, 우리는 하나님만 믿고 따르자. 하나님께서는 귀한 포도나무, 순전한 참 종자를 심으셨으나 그들은 이방 포도나무의 악한 가지가 되었다(21절). 하나님께서는 이사야 5:2에서도 이스라엘을 “극상품 포도나무”라고 표현하시며 좋은 포도 맺기를 기대하셨으나 들포도를 맺었다고 지적하셨다. 주께서도 자신이 참 포도나무요 우리는 그의 가지들이라고 비유하시며 우리가 주 안에 거하여 좋은 열매를 많이 맺어야 한다고 말씀하셨다(요 15:1, 5). 우리는 하나님께서 심으신 좋은 포도나무, 순전한 참 종자임을 깨닫고 하나님만 경외하고 믿고 의지하고 그의 모든 계명을 순종하며 살자. 이것은 죄성을 가진 우리의 힘으로는 할 수 없고 오직 우리 속에 계신 성령의 도우심으로만 가능하다.

 

26-37절, 이스라엘의 죄악됨

본문은 이스라엘의 죄악됨과 그 결과로 받을 일을 증거한다.

[26-28절] 도적이 붙들리면 수치를 당함같이 이스라엘 집 . . . .

하나님께서는, “도적이 붙들리면 수치를 당함같이, 이스라엘 집 곧 그 왕들과 족장들[혹은 방백들]과 제사장들과 선지자들이 수치를 당하였느니라”고 말씀하신다. 이스라엘 백성은 왕들과 족장들과 제사장들과 선지자들이 함께 우상숭배하며 하나님의 계명들을 어김으로 수치를 당할 것이다. 범죄하는 자들은 수치를 당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또 말씀하신다. “그들이 나무를 향하여 너는 나의 아비라 하며 돌을 향하여 너는 나를 낳았다 하고[하였으니, 이는] 그 등을 내게로 향하고 그 얼굴은 내게로 향치 아니하다가 환난을 당할 때에는 이르기를 일어나 우리를 구원하소서 하리라[함이니라]. 네가 만든 네 신들이 어디 있느뇨? 그들이 너의 환난을 당할 때에 구원할 수 있으면 일어날 것이니라. [이는] 유다여, 너의 신들이 너의 성읍 수와 같도다[같음이니라].” 이스라엘 백성은 나무와 돌로 우상들을 만들어 놓고 신으로 숭배하였다. 그들은 그 등을 하나님께로 향하고 그 얼굴은 그에게로 향치 않았다. 그들의 신들의 수는 성읍 수같이 많았다. 그들은 십계명의 제1계명과 제2계명을 어긴 자들이었다. 그것은 근본적 악이었다. 그런데 이제 환난을 당할 때 그들은 왜 여호와 하나님께 구원을 요청하고, 그 우상들에게 하지 않는 것인가?

[29-30절]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너희가 나와 다툼은 . . . .

하나님께서는 또 말씀하신다. “너희가 나와 다툼은 어찜이뇨? 너희가 다 내게 범과하였느니라. 내가 너희 자녀를 때림도 무익함은 그들도 징책을 받지 아니함이라. 너희 칼이 사나운 사자같이 너희 선지자들을 삼켰느니라.” 이스라엘은 하나님께 범죄하였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자손을 징책하여도 소용이 없었다. 왜냐하면 그들이 그 징책을 달게 받지 않기 때문이다. 그들은 도리어 사나운 사자같이 그들의 칼로 선지자들을 죽였다. 그것은 하나님의 교훈권을 부정하는 행위이었다. 그것은 하나님을 부정하고 대적하는 행위이었다.

[31-34절] 너희 이 세대여, 여호와의 말을 들어 보라. 내가 . . . .

하나님께서는 또 말씀하신다. “너희 이 세대여, 여호와의 말을 들어 보라. 내가 이스라엘에게 광야가 되었었느냐? 흑암한 땅이 되었었느냐? 무슨 연고로 내 백성이 말하기를 우리는 놓였으니 다시 주께로 가지 않겠다 하느냐?” ‘놓였다’는 원어(라드누)는 ‘유랑하였다, 돌아다녔다’는 뜻이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거친 들판과 같았었는가? 슬픔과 불행의 땅과 같았었는가?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풍성한 곡식을 주고 기쁨과 평안을 주지 않으셨던가? 그런데 그들은 왜 방황하였는가? 또 왜 하나님께로 돌아가지 않으려 하는가?

하나님께서는 또 말씀하신다. “처녀가 어찌 그 패물을 잊겠느냐? 신부가 어찌 그 고운 옷을 잊겠느냐? 오직 내 백성은 나를 잊었나니 그 날 수는 계수할 수 없거늘, 네가 어찌 사랑을 얻으려고 네 행위를 아름답게 꾸미느냐? 그러므로 네 행위를 악한 여자들에게까지 가르쳤으며 또 네 옷단에 죄 없는 가난한 자를 죽인 피가 묻었나니 그들이 담 구멍을 뚫음을 인함이 아니라 오직 이 모든 일로 너를 책망함을 인함이니라.” 34절 하반절은 아마, “나는 그것을 은밀한 연구로 찾은 것이 아니고 이 모든 것들 때문이니라”고 번역할 수 있을 것이다(KJV).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에게 가장 귀한 보화이신데, 그들은 하나님을 오랫동안 잊어버렸고 우상을 위해 자신을 단장하였고 그 행위를 악한 여자들에게까지 가르쳤다. 또 그들은 죄 없는 가난한 자들을 죽였다. 그들의 우상숭배나 무죄한 자들을 죽인 죄는 은밀하게 이루어진 것이 아니고 공공연하게 드러나 있었다.

[35-37절] 그러나 너는 말하기를 나는 무죄하니 그 진노가 . . . .

하나님께서는 또 말씀하신다. “그러나 너는 말하기를 나는 무죄하니 그 진노가 참으로 내게서 떠났다 하거니와 보라, 네 말이 나는 죄를 범치 아니하였다 함을 인하여 내가 너를 심판하리라[너와 변론하리라](원문). 네가 어찌하여 네 길을 바꾸어 부지런히 돌아다니느뇨? 네가 앗수르로 인하여 수치를 당함같이 애굽으로 인하여 수치를 당할 것이라. 네가 두 손으로 네 머리를 싸고 거기서도 나가리니 이는 네가 의지하는 자들을 나 여호와가 버렸으므로 네가 그들을 인하여 형통치 못할 것임이니라.” 그들은 우상숭배와 살인의 죄를 범하면서도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못하고 있었다. 그들의 양심은 반복된 악행으로 인해 무디어졌고 마비되었다. 그들은 앗수르로, 애굽으로 바삐 다녔었다. 그들은 한 종교와 한 신에 머물지 않았고 여러 종교, 여러 신들을 탐구하며 의지했다. 오늘날 말로 그들은 종교다원주의자이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이방 나라들과 그 신들을 징벌하실 것이며 그들을 의지하던 이스라엘은 형통치 못할 것이다.

본문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우리는 모든 우상을 버리자. 이스라엘 백성의 첫 번째 죄악은 우상숭배이었다. 모든 인생의 첫 번째 죄악은 우상숭배이다. 사람이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하나님 아닌 것을 하나님으로 섬기며 거기에 절대가치를 두고 사는 것이 근본적인 죄악이며 문제점이다. 현대인도 이성과 과학, 돈과 쾌락, 명예와 권세 등에 절대가치를 두고 산다면, 그것들은 다 우상이다.

둘째로, 우리는 항상 하나님만 의지하며 섬기며 순종하자.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떠났고 잊어버렸고 방황하였다. 그러나 여호와 하나님을 경외하며 그 모든 명령을 지키는 것은 인생의 본분이다(전 12:13).

셋째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의만 의지하고 선을 행하자. 우리는 의가 없는 부족한 자들이다. 우리의 의는 오직 예수의 십자가 공로뿐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님만 믿고 악을 버리고 선만 행하자.

 

 

3장: 배역한 이스라엘아, 돌아오라

1-13절, 이스라엘의 행음함

[1-5절] 세상에서 말하기를 가령 사람이 그 아내를 버리므로 . . . .

하나님께서는 또 말씀하신다. “세상에서 말하기를 가령 사람이 그 아내를 버리므로 그가 떠나 타인의 아내가 된다 하자. 본부(本夫)가 그를 다시 받겠느냐? 그리하면 그 땅이 크게 더러워지지 않겠느냐 하느니라.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네가 많은 무리와 행음하고도 내게로 돌아오려느냐?” 마지막 문장은 “네가 많은 무리와 행음하였으나 내게로 돌아오라”고 번역하는 것이 옳아 보인다(KJV, NASB).1)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이 영적 행음 즉 우상숭배에 빠져 있음에도 불구하고 “내게로 돌아오라”고 권면하신다.

하나님께서는 또 말씀하신다. “네 눈을 들어 자산(赭山)[벌거숭이 언덕들]을 보라. 너의 행음치 아니한 곳이 어디 있느냐? 네가 길가에 앉아 사람을 기다린 것이 광야에 있는 아라바[아라비아] 사람같아서 음란과 행악으로 이 땅을 더럽혔도다. 그러므로 단비가 그쳐졌고 늦은 비가 없어졌느니라. 그럴지라도 네가 창녀의 낯을 가졌으므로 수치를 알지 못하느니라. 네가 이제부터는 내게 부르짖기를 나의 아버지여, 아버지는 나의 소시(少時)의 애호자(알루프)[친구]시오니 노를 한없이 계속하시겠으며 끝까지 두시겠나이까 하지 않겠느냐? 보라, 네가 이같이 말하여도 악을 행하여 네 욕심을 이루었느니라.”

이스라엘의 죄는 한마디로 행음함이었다. 이것은 영적인, 육적인 의미를 다 포함하였다. 영적인 행음은 우상숭배를 가리킨다. 육적인 행음을 보이는 구절은 예레미야 5:7-8이다. “내가 어찌 너를 사하겠느냐? 네 자녀가 나를 버리고 신이 아닌 것들로 맹세하였으며 내가 그들을 배불리 먹인즉 그들이 행음하며 창기의 집에 허다히 모이며 그들은 살찌고 두루 다니는 수말같이 각기 이웃의 아내를 따라 부르짖는도다.” 그 결과로, 단비가 그쳤고 늦은 비가 없어졌다. 사람이 범죄하면 평안과 모든 좋은 것을 잃어버린다. 그것은 하나님의 징벌이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창녀의 낯을 가졌으므로 부끄러움을 알지 못하고 더욱 악한 욕심을 이루었다. 그것이 죄인의 모습이다.

[6-10절] 요시야 왕 때에 여호와께서 또 내게 이르시되 . . . .

선지자는 말한다. “요시야 왕 때에 여호와께서 또 내게 이르시되 네가 배역한(메슈바)[배교한, backsliding, apostate] 이스라엘의 행한 바를 보았느냐? 그가 모든 높은 산에 오르며 모든 푸른 나무 아래로 가서 거기서 행음하였도다. 그가 이 모든 일을 행한 후에 내가 말하기를 그가 내게로 돌아오리라 하였으나 오히려 내게로 돌아오지 아니하였고 그 패역한(바고다)[배신한, treacher- ous] 자매 유다는 그것을 보았느니라. 내게 배역한[배교한] 이스라엘이 간음을 행하였으므로 내가 그를 내어쫓고 이혼서까지 주었으되 그 패역한[배신한] 자매 유다가 두려워 아니하고 자기도 가서 행음함을 내가 보았노라. 그가 돌과 나무로 더불어 행음함을 가볍게 여기고 행음하여 이 땅을 더럽혔거늘 이 모든 일이 있어도 그 패역한[배신한] 자매 유다가 진심으로 내게 돌아오지 아니하고 거짓으로 할 뿐이니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유다의 죄도 역시 행음함이었다. 그들은 이스라엘의 죄악과 하나님의 내리신 재앙을 보고도 두려워하지 않았고 진심으로 회개치 않았다.

[11-13절]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배역한 이스라엘은 . . . .

여호와께서는 선지자 예레미야에게 또 말씀하셨다. “배역한[배교한] 이스라엘은 패역한[배신한] 유다보다 오히려 의로움이 나타났나니 너는 가서 북을 향하여 이 말을 선포하여 이르라.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배역한[배교한] 이스라엘아, 돌아오라. 나의 노한 얼굴을 너희에게로 향하지 아니하리라. 나는 긍휼이 있는 자라. 노를 한없이 품지 아니하느니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너는 오직 네 죄를 자복하라(데이)[알라, 인정하라(KJV, NASB, NIV)]. 이는 네 하나님 여호와를 배반하고 네 길로 달려 모든 푸른 나무 아래서 이방 신에게 절하고 내 목소리를 듣지 아니하였음이니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거역하고 그 목소리를 듣지 않고 우상숭배한 죄를 인정하고 회개하고 하나님께로 돌아와야 한다.

본문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우리는 행음치 말아야 한다. 요한계시록 17-18장은 말세가 큰 음녀의 시대, 곧 음란의 시대라고 예언한다. 그것은 육적인, 영적인 음행을 다 포함한다. 오늘날 영상물 문화의 급속한 발전은 현대사회를 음란사회로 심각하게 병들게 하고 있다. 우리와 우리 자녀들은 음란물과 음란풍조에 노출되어 있다. TV, 인터넷, 컴퓨터, 심지어 휴대폰까지 음란물들을 전달하는 통로가 되고 있다. 또 현대인은 과학과 돈과 쾌락을 최고 가치로 여기는 우상숭배에 빠져 있다. 영적인, 육적인 음행은 하나님 앞에서 큰 죄이다. 그것은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고 지옥에 들어갈 죄악이다. 요한계시록 21:8은 행음자들과 우상숭배자들이 지옥 불못에 던지울 것이라고 증거하고, 22:15는 행음자들과 우상숭배자들이 천국의 성 밖에 있으리라고 증거한다. 우리는 육적, 영적 음행을 멀리하고 그런 것이 있으면 철저히 회개하자.

둘째로, 우리는 하나님 중심으로 살아야 한다. 죄인들은 자신들의 죄를 인정하고, 하나님께로 돌아와 하나님 중심, 성경 중심, 또 성경적 교회 중심으로 살아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그런 삶을 원하신다.

 

14-25절, 배교자여, 돌아오라

[14-15절]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배역한 자식들아, 돌아오라. . . .

여호와께서는 말씀하신다. “배역한 자식들아, 돌아오라. 나는 너희 남편임이니라.” ‘배역한’이라는 원어(쇼바브)는 ‘배교한’이라는 뜻이다(BDB).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의 바른 진리와 교훈으로부터 떠나갔고 변절하였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이 회개하고 돌아오기를 원하신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을 그들의 남편이라고 표현하신다.

하나님께서는 또 “내가 너희를 성읍에서 하나와 족속 중에서 둘을 택하여 시온으로 데려오겠고 내가 또 내 마음에 합하는 목자를 너희에게 주리니 그들이 지식과 명철로 너희를 양육하리라”고 말씀하신다. 이것은 이스라엘의 회복에 대한 말씀이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각 성읍과 족속에서 하나씩, 둘씩 데려오실 것이다. 그는 구주이시다. 또 하나님께서는 그의 마음에 합한 목자들(로임)을 주셔서 지식과 명철로 그들을 가르치고 양육하게 하실 것이다.

[16-18절]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너희가 이 땅에서 번성하여 . . . .

여호와께서는 또 말씀하신다. “너희가 이 땅에서 번성하여 많아질 때에는 사람 사람이 여호와의 언약궤를 다시는 말하지 아니할 것이요 생각지 아니할 것이요 기억지 아니할 것이요 찾지 아니할 것이요 만들지 아니할 것이며.” 이스라엘의 회복의 시대에는 언약궤 중심의 형식이 없어질 것이다. 그것은 그 실체 되신 메시아께서 오실 것이기 때문이다. 구약의 성막 제도와 제사 제도는 폐지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또 말씀하신다. “그때에 예루살렘이 여호와의 보좌라 일컬음이 되며 열방이 그리로 모이리니 곧 여호와의 이름으로 인하여 예루살렘에 모이고 다시는 그들의 악한 마음의 강퍅한 대로 행치 아니할 것이며 그때에 유다 족속이 이스라엘 족속과 동행하여[동행하며 그들이] 북에서부터 나와서 내가 너희 열조에게 기업으로 준 땅에 함께 이르리라.” 이스라엘의 회복의 시대가 되면, 모든 이방 나라들이 예루살렘에 모이고 다시는 악한 마음의 완고함으로 행치 않고 분리되었던 남북도 함께 모일 것이다. 이스라엘의 회복에 대한 예언은 신약교회를 가리킨다고 보인다.

[19-21절] 내가 스스로 말하기를 내가 어떻게 하든지 너를 . . . .

하나님께서는 또 말씀하신다. “내가 스스로 말하기를 내가 어떻게 하든지 너를 자녀 중에 두며 허다한 나라 중에 아름다운 산업인 이 낙토를 네게 주리라 하였고 내가 다시 말하기를 너희가 나를 나의 아버지라 하고 나를 떠나지 말 것이니라 하였노라. 그런데 이스라엘 족속아, 마치 아내가 그 남편을 속이고 떠남같이 너희가 정녕히 나를 속였느니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소리가 자산(赭山) 위에서 들리니 곧 이스라엘 자손의 애곡하며 간구하는 것이라. 그들이 그 길을 굽게 하며 자기 하나님 여호와를 잊어버렸음이로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을 자녀로 삼으시고 젖과 꿀이 흐르는 아름다운 가나안 땅을 기업으로 주셨지만, 이스라엘 족속은 아내가 그 남편을 속이고 배신하고 떠남같이 하나님을 속이고 배신하고 떠나갔다. 그러나 이제 그들은 재앙을 맞아 애곡하며 간구할 것이다. 그것은 회개의 기도를 가리키는 것 같다. 그들이 그 길을 굽게 하고 하나님을 잊어버려 하나님의 재앙이 그들에게 임했기 때문이다.

[22-25절] 배역한 자식들아, 돌아오라. 내가 너희의 배역함을 . . . .

하나님께서는 또 말씀하신다. “배역한 자식들아, 돌아오라. 내가 너희의 배역함을 고치리라.” 하나님께서는 배교한 이스라엘 백성에게 회개하라고 권면하신다. 회개는 인류에게 가장 요긴한 문제이다. 죄인들에게 필요한 것은 다른 무엇이 아니라 바로 회개이다. 회개는 하나님을 멀리하고 그의 계명을 저버렸던 자들이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것이다. 자신의 불경건과 죄를 깨닫고 통회하며 이제는 하나님 중심으로 살고 그의 계명과 교훈 중심으로 살기를 결심하는 것이다.

예레미야는 말한다. “보소서, 우리가 주께 왔사오니 주는 우리 하나님 여호와이심이니이다. 작은 산들과 큰 산 위의 떠드는 무리에게 바라는 것은 참으로 허사라. 이스라엘의 구원은 진실로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 있나이다.” 그는 백성을 대신해 “우리가 주께 왔나이다”라고 고백한다. 하나님을 바로 알고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것이 구원이다. “작은 산들과 큰 산 위의 떠드는 무리”는 우상숭배자들을 가리킨다고 본다. 그들에게 어떤 소망과 구원을 바라는 것은 참으로 헛된 일이다. 우상은 신이 아니며 우리에게 아무런 도움을 줄 수 없기 때문이다. 이스라엘의 구원은 참으로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 있다. 구원은 오직 하나님께 있다. 오늘 우리의 구원도 마찬가지이다.

예레미야는 또 말한다. “[그러나] 부끄러운 그것이 우리의 어렸을 때로부터 우리 열조의 산업인 양떼와 소떼와 아들들과 딸들을 삼켰사온즉 우리는 수치 중에 눕겠고 우리는 수욕에 덮이울 것이니 이는 우리와 우리 열조가 어렸을 때로부터 오늘까지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 범죄하여 우리 하나님 여호와의 목소리를 청종치 아니하였음이니이다.” 예레미야는 이스라엘 백성이 이제까지 많은 수치스런 일들을 당했음을 고백한다. 그들이 그 수치스런 일들을 당한 까닭은 한가지뿐이다. 그것은 하나님께 범죄하고 그의 목소리를 청종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본문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하나님의 간곡한 권면은 회개하라는 것이다. 14절,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배역한 자식들아, 돌아오라.” 22절, “배역한 자식들아, 돌아오라. 내가 너희의 배역함을 고치리라.” 우상들과 우상숭배는 다 헛되다. 23절, “작은 산들과 큰 산 위의 떠드는 무리에게 바라는 것은 참으로 허사라. 이스라엘의 구원은 진실로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 있나이다.” 예수께서 전파하신 내용도 “회개하라”는 것이었다(마 4:17; 막 1:15). 사도 바울도 가는 곳마다 “하나님께 대한 회개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 대한 믿음”을 전했다. 또 그는 “알지 못하던 시대에는 하나님이 허물치 아니하셨거니와 이제는 어디든지 사람을 다 명하사 회개하라 하셨으니 이는 정하신 사람으로 하여금 천하를 공의로 심판할 날을 작정하시고 이에 저를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신 것으로 모든 사람에게 믿을 만한 증거를 주셨음이니라”고 말했다(행 17:30-31). 회개치 않은 자들은 참으로 회개해야 한다.

둘째로, 우리는 진리의 지식과 명철을 얻자. 15절, “내가 또 내 마음에 합하는 목자[목자들]를 너희에게 주리니 그들이 지식과 명철로 너희를 양육하리라.” 오늘 우리가 가지고 있는 성경책은 하나님의 거룩하고 진실한 선지자들과 사도들이 쓴 책이다. 거기에는 하나님의 충만한 지식과 명철의 말씀이 들어 있다. 디모데후서 3:15-17, “네가 어려서부터 성경을 알았나니 성경은 능히 너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느니라.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하기에 온전케 하려 함이니라.” 우리는 성경책을 힘써 읽음으로써 또 교회에 나아와 시시때때로 성경적 설교를 들음으로써 진리의 지식과 명철을 충만하게 얻어야 한다. 그것은 참으로 복된 일이다.

셋째로, 우리는 하나님만 섬기고 의지하고 그의 목소리를 청종하자. 25절에 증거된 대로, 이스라엘이 수치를 당한 이유는 한가지뿐이었다. 그것은 그들이 하나님께 범죄하고 그의 목소리를 청종치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렇다면 우리의 갈 길은 분명하다. 우리는 하나님만 섬기며 의지하고 그의 목소리를 청종하자. 그의 목소리는 오늘날 성경 속에 있고 성경을 통하여 전달된다. 또 확고하게 성경에 근거한 성경적인 설교는 분명히 하나님의 목소리이다. 우리는 성경말씀과 성경적 설교를 겸손히, 사모함으로, 달게 받고 그 음성을 힘써 행해야 한다.

 

 

4장: 임박한 심판

1-18절, 임박한 심판

[1-2절]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이스라엘아, 네가 돌아오려거든 . . . .

여호와께서는 말씀하셨다. “이스라엘아, 네가 돌아오려거든 내게로 돌아오라. 네가 만일 나의 목전에서 가증한 것을 버리고 마음이 요동치(누드)[방황치](BDB) 아니하며 진실과 공평과 정의로 여호와의 삶을 가리켜 맹세하면 열방이 나로 인하여 스스로 복을 빌며 나로 인하여 자랑하리라.” 1절 하반절과 2절을 다시 번역하면, “네가 만일 나의 앞에서 가증한 것을 버린다면 방황치 않을 것이며 진실과 공평과 의로 여호와의 삶을 가리켜 맹세할 것이며 열방이 그로 인하여 스스로 축복하며 그로 인하여 자랑하리라”(KJV은 비슷함).

하나님께서는 임박한 심판 앞에서 유다 백성의 회개를 촉구하신다. 하나님의 심판을 직면한 이스라엘 백성의 바른 대책은 회개뿐이다. 그것만이 살 길이며 재앙을 피할 길이다. 그것은 특히 하나님 앞에서 가증한 것들, 즉 우상들을 버리는 것이다. 만일 유다 백성이 그렇게 한다면 그들은 온 세계에 흩어져 방황하지 않을 것이다. 또 그들은 진실과 의로 하나님을 경외하며 그의 이름으로 맹세할 것이다. 또 이방 나라들도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복을 얻으며 기뻐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오직 죄를 버리라고 명령하신다. 모든 죄인들은 죄악된 것들을 끊어버리고 마음의 악을 씻어 버리고 하나님께로 돌아와 경건하고 거룩한 삶을 살아야 한다.

[3-4절] 나 여호와가 유다와 예루살렘 사람에게 이같이 . . . .

하나님께서는 또 유다와 예루살렘 사람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 묵은 땅을 갈고 가시덤불 속에 파종하지 말라. 유다인과 예루살렘 거민들아, 너희는 스스로 할례를 행하여 너희 마음 가죽을 베고 나 여호와께 속하라. 그렇지 아니하면 너희 행악을 인하여 나의 분노가 불같이 발하여 사르리니 그것을 끌 자가 없으리라.”

하나님께서는 유다 백성이 묵은 땅을 버려두거나 가시덤불에 씨를 뿌리지 말라고 말씀하신다. ‘묵은 땅’은 죄악으로 길들여진 마음을 표현하고, ‘가시덤불’은 돈과 쾌락 등에 대한 세상적인 욕심들을 가리킬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유다와 예루살렘 거민들이 죄악으로 길들여진 마음에 할례를 받아 죄를 버리고 하나님께 속하라고 말씀하신다. 마음의 할례는 거듭남을 가리키며 그 증거는 회개와 믿음이다. 그들은 죄악을 회개하고 하나님을 믿음으로 새 삶을 시작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그들의 행악 때문에 하나님의 분노가 불같이 일어나 그들을 사를 것이며 아무도 그 불을 끌 수 없을 것이다.

[5-9절] 너희는 유다에 선포하며 예루살렘에 공포하여 . . . .

하나님께서는 또 말씀하신다. “너희는 유다에 선포하며 예루살렘에 공포하여 이르기를 이 땅에서 나팔을 불라 하며, 또 크게 외쳐 이르기를 너희는 모이라, 우리가 견고한 성으로 들어가자 하고, 시온을 향하여 기호를 세우라, 도피하라, 지체하지 말라, 내가 북방에서 재앙과 큰 멸망으로 이르게 할 것임이니라.” 하나님께서는 북방으로부터 재앙과 큰 멸망이 오게 하실 것을 예언하셨다. 그것은 역사상 바벨론 군대를 가리켰다.

하나님께서는 또 말씀하신다. “사자가 그 수풀에서 올라왔으며 열방을 멸하는 자가 나아왔으되 네 땅을 황폐케 하려고 이미 그 처소를 떠나 나왔은즉 네 성읍들이 황폐하여 거민이 없게 되리니 이를 인하여 너희는 굵은 베를 두르고 애곡하라.” 유다 나라 뿐만 아니라 또한 이방의 여러 나라들을 멸하는 자가 등장하였다. 그는 수풀에서 올라온 사자같이 유다 성읍들을 황폐케 하고 거민이 없게 할 것이며 이 일을 때문에 그들은 굵은 베옷을 입고 애곡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또 말씀하신다. “대저 여호와의 맹렬한 노가 아직 너희에게서[우리에게서] 돌이키지 아니하였음이니라.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그 날에 왕과 방백들은 실심(失心)할 것이며 제사장들은 놀랄 것이며 선지자들은 깜짝 놀라리라.” 유다 백성에게 내릴 재앙은 하나님의 맹렬한 진노의 결과이었다. 그 날에 유다의 왕과 방백들은 낙심할 것이며 제사장들과 선지자들은 놀랄 것이다.

[10절] 내가 가로되 슬프도소이다. 주 여호와여, 주께서 진실로 . . . .

예레미야는 하나님의 말씀에 대해 대답하였다. “슬프도소이다, 주 여호와여. 주께서 진실로 이 백성과 예루살렘을 크게 속이셨나이다. 이르시기를 너희에게 평강이 있으리라 하시더니 칼이 생명(네페쉬)[목](NASB, NIV)에 미쳤나이다.” 실상 평강을 예언한 자들은 거짓 선지자들이었다. 그들은 하나님의 마음을 참으로 전하지 못하였다. 그들의 예언은 하나님의 뜻과 정반대이었다. 그들은 이스라엘 땅의 평안을 예언하였으나, 이제 전쟁이 코앞에 다달았다.

[11-13절] 그때에 이 백성과 예루살렘에 이를 자 있어서 . . . .

하나님께서는 그 재앙의 때에 유다 백성과 예루살렘에 선지자를 주셔서 말하게 하실 것이다. “뜨거운 바람이 광야 자산에서 내 딸 백성에게 불어오리라. 이는 키질하기 위함도 아니요 정결케 하려 함도 아니며 이보다 더 강한 바람이 나를 위하여 오리니 이제 내가 그들에게 심판을 베풀 것이라. 보라, 그가 구름같이 올라오나니 그 병거는 회리바람 같고 그 말들은 독수리보다 빠르도다. 우리에게 화 있도다. 우리는 멸망하도다.” 하나님께서는 그 재앙을 뜨거운 바람, 강한 바람, 회리바람 등으로 표현하셨다. 그 재앙의 바람은 날렵하고 무서운 바벨론 군대를 가리켰다고 본다.

[14-18절] 예루살렘아, 네 마음의 악을 씻어 버리라. 그리하면 . . . .

하나님께서는, “예루살렘아, 네 마음의 악을 씻어 버리라. 그리하면 구원을 얻으리라. 네 악한 생각이 네 속에 얼마나 오래 머물겠느냐?”라고 말씀하신다. 유다 백성과 특히 예루살렘 거민들에게 필요한 것은 마음의 악을 씻어 버리는 것이다. 즉 참된 회개가 필요한 것이다. 그래야 그들은 구원을 얻을 것이다. 재앙을 피하고 재앙에서 구원받는 길은 죄를 회개하는 것밖에 없고 그럴 때 하나님의 긍휼을 얻게 되고 또 하나님께서는 그런 자들을 용납하실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또 말씀하신다. “단에서 소리를 선포하며 에브라임 산에서 재앙을 공포하는도다. 너희는 열방에 고하며 또 예루살렘에 알게 하기를, 에워싸고 치는 자들이 먼 땅에서부터 와서 유다 성읍들을 향하여 소리를 지른다 하라. 그들이 밭을 지키는 자같이 예루살렘을 에워싸나니 이는 그가 나를 거역한 연고니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네 길과 행사가 이 일들을 부르게 하였나니 이는 너의 악함이라. 그 고통이 네 마음에까지 미치느니라.”

이스라엘 전역에, 그리고 이방 나라에까지 널리, 유다의 멸망의 소식이 알려질 것이다. 마침내 바벨론 군대가 예루살렘을 포위할 것이다. 그것은 유다의 종말이 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유다 멸망의 이유도 말씀하신다. 그 이유는 그들의 죄 때문이었다. 그들은 하나님을 거역하였고 그들의 길과 행위들은 악하였다. 그들은 불경건하였고 하나님을 배반하고 대적하였다. 또 그들의 행위와 삶은 악하였다. 오늘날도 참된 경건이 없는 세상은 이기적이고 탐욕적이고 음란하고 거짓되다. 때때로, 하나님의 교회도 부패하여 세상처럼 된다. 그 결과로, 그들의 고통은 그들의 마음 속에까지 미친다.

본문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우리는 우리의 구원이 오직 하나님의 긍휼과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 공로로 말미암음을 알자. 하나님의 은혜를 많이 받았던 이스라엘 백성은 우상숭배와 부도덕 가운데 살다가 마침내 멸망하고 말았다. 그것이 구약시대의 이스라엘 백성의 역사이다. 이방인이었던 우리는 두말할 것도 없다. 그러므로 우리의 구원은 오직 하나님의 긍휼로만 가능하며 우리의 의는 예수의 피밖에 없다. 우리의 죄 문제는 우리의 불완전한 결심과 행위로 해결되지 않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대속을 통해서만 해결된다. 아직도 자신의 죄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 분이 있다면, 겸손히 자신의 죄인 됨을 인정하고 모든 죄를 고백하고 그것을 버리고 순종의 새 삶을 살기를 결심하라. 그것이 참된 회개이다. 또 오직 구주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십자가 대속의 의를 믿고 구원을 받으라. 어떤 악한 죄인도 회개하고 구주 예수만 믿으면 죄사함과 의롭다 하심의 구원을 얻는다.

둘째로, 구원받은 우리도 범죄하면 하나님께서 노하실 것이다. 본문에 증거된 하나님의 진리는 여전히 진리이다. 4절, “너희 행악을 인하여 나의 분노가 불같이 발하여 사르리니 그것을 끌 자가 없으리라.” 17-18절, “그들이 밭을 지키는 자같이 예루살렘을 에워싸나니 이는 그가 나를 거역한 연고니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네 길과 행사가 이 일들을 부르게 하였나니 이는 너의 악함이라. 그 고통이 네 마음에까지 미치느니라.” 로마서 8:13, “너희가 육신대로 살면 반드시 죽을 것이로되.” 히브리서 12:8, “징계는 다 받는 것이거늘 너희에게 없으면 사생자요 참 아들이 아니니라.” 우리는 하나님의 죄의 징벌을 두려워하자.

셋째로, 우리는 모든 죄악을 버리자. 1절, “나의 목전에서 가증한 것을 버리고.” 3-4절, “너희 묵은 땅을 갈고 가시덤불 속에 파종하지 말라,” “너희는 스스로 할례를 행하여 너희 마음 가죽을 베고.” 14절, “네 마음의 악을 씻어 버리라.” 우리는 모든 불경건, 습관적 죄, 돈과 쾌락 등에 대한 욕심, 미움, 음란을 버리고, 의와 거룩과 선과 진실로 자신을 단장하자. 그것이 구원받은 자의 모습이다. 우리가 구원을 받았다고 생각하면서도 죄 가운데 살고 있다면, 우리가 아직 구원을 못 받았든지, 아니면 영적으로 심히 병든 상태일 것이다. 모든 죄를 버리자.

 

19-31절, 다가올 멸망을 슬퍼함

본문에서 예레미야는 이사야는 그들의 죄 때문에 유다 백성에게 다가올 멸망을 슬퍼하며 예언한다.

[19-22절] 슬프고 아프다. 내 마음 속이 아프고 내 마음이 . . . .

예레미야는 말한다. “슬프고 아프다. 내 마음 속이 아프고 내 마음이 답답하여 잠잠할 수 없으니 이는 나의 심령 네가 나팔소리와 전쟁의 경보를 들음이로다.” ‘슬프고 아프다’(메아이 메아이)는 원문은 ‘내 창자여, 내 창자여’라는 뜻이다. 이것은 사람이 너무 고통스러울 때에 하는 표현이다. 사람들은 그럴 때 ‘내 창자가 아프다’고 표현한다. 이사야가 이렇게 마음 속으로 슬퍼하고 아파하는 까닭은 나팔소리와 전쟁의 경보를 듣기 때문이었다.

예레미야는 또 말한다. “패망에 패망이 연속하여 온 땅이 탈취를 당하니 나의 천막은 홀연히 파멸되며 나의 휘장은 잠시간에 열파되도다. 내가 저 기호를 보며 나팔소리 듣기를 어느 때까지 할꼬.” 전쟁에서 연속하여 패전함으로 마침내 멸망하고 온 땅이 탈취를 당하고 모든 집들은 파괴될 것이다. 이사야는 예언자의 눈과 귀로 침략군들의 깃발을 보며 나팔소리를 계속 듣고 있다.

예레미야는 또 말한다. “[이는] 내 백성은 나를 알지 못하는 우준한 자요 지각이 없는 미련한 자식이라[자식임이라]. 악을 행하기에는 지각이 있으나 선을 행하기에는 무지하도다.” 하나님의 백성인 자들이 계명을 범하고 죄를 짓고 악을 행하는 까닭은 그들이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우준한 자이며 지각이 없는 미련한 자식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악을 행하기에는 지각이 있으나 선을 행하기에는 무지했다. 이것은 원죄의 죄성을 가진 모든 인생의 모습이다. 사람은 참으로 무지하고 미련하다. 선은 잘 행하지 못하면서도 악은 잘 행한다.

[23-28절] 내가 땅을 본즉 혼돈하고 공허하며 하늘들을 . . . .

예레미야는 말한다. “내가 땅을 본즉 혼돈하고 공허하며 하늘들을 우러른즉 거기 빛이 없으며 내가 산들을 본즉 다 진동하며 작은 산들도 요동하며 내가 본즉 사람이 없으며 공중의 새가 다 날아갔으며 내가 본즉 좋은 땅(카르멜)[비옥한 땅]이 황무지가 되었으며 그 모든 성읍이 여호와의 앞 그 맹렬한 진노 앞에 무너졌으니.”

예레미야는 땅과 하늘과 산들과 좋은 땅과 모든 성읍을 다 보았다. 땅은 전쟁으로 인해 혼돈하고 공허하였다. 하늘들은 캄캄하고 빛이 없었다. 산들은 다 진동하고 요동하였다. 세상에 사람이 없고 공중의 새들도 다 날아가버렸다. 좋은 땅 곧 비옥한 땅은 황무지가 되었고 모든 성읍들은 하나님의 맹렬한 진노 앞에 다 무너졌다.

예레미야는 또 말한다. “이는 여호와의 말씀에 이 온 땅이 황폐할 것이나 내가 진멸(殄滅)하지는[완전히 멸하지는] 아니할 것이며 이로 인하여 땅이 슬퍼할 것이며 위의 하늘이 흑암할 것이라. 내가 이미 말하였으며 작정하였고 후회하지 아니하였은즉 또한 돌이키지 아니하리라 하셨음이로다.” 이스라엘의 멸망은 그들의 죄 때문에 온다. 사람의 모든 불행은 죄 때문에 온다. 온 땅은 슬퍼할 것이다. 이 재앙의 날은 주권자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고 작정하신 것이며 그는 그의 작정하신 바를 후회하거나 돌이키지 않으시고 다 이루실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주권적 작정자이시며 섭리자이시다. 그러나 비록 온 땅이 황폐할 것이지만, 하나님께서 다 멸하지는 않으실 것이다. “내가 진멸하지는 아니할 것이며.” 그것은 그의 긍휼이다. 그는 조금 남겨두실 것이다.

[29-31절] 기병과 활쏘는 자의 훤화로 인하여 모든 성읍이 . . . .

예레미야는 또 말한다. “기병과 활 쏘는 자의 훤화로 인해 모든 성읍이 도망하여 수풀에 들어가고 바위에 기어오르며 각 성읍이 버림을 당하여 거기 거하는 사람이 없나니 멸망을 당한 자여, 네가 어떻게 하려느냐?” 침략군들은 기병과 활 쏘는 자들로 올 것이다. 성읍의 모든 사람들은 그들을 피해 수풀에 들어가고 바위에 기어오를 것이다. 각 성읍은 사람이 거주하지 않는 황폐한 곳이 될 것이다. 멸망을 당한 이스라엘 백성은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예레미야는 또 말한다. “네가 붉은 옷을 입고 금장식으로 단장하고 눈을 그려 꾸밀지라도 너의 화장한 것이 헛된 일이라. 연인들이 너를 멸시하여 네 생명을 찾느니라.” 이스라엘 백성이 값비싼 붉은 옷을 입고 값비싼 반지나 목걸이 등의 장신구로 자신을 단장하고 눈을 그리고 꾸밀지라도 그들의 아름다운 단장은 헛될 것이다. 헛된 단장일 뿐이다. 그들이 사랑하던 이방 나라의 우상숭배자들은 이제 그들을 멸시하며 그들의 생명을 찾으며 죽이려 할 것이다.

예레미야는 또 말한다. “내가 소리를 들은즉 여인의 해산하는 소리 같고 초산하는 자의 고통하는 소리 같으니 이는 딸 시온의 소리라. 그가 헐떡이며 그 손을 펴고 이르기를, 내게 화 있도다. 살육하는 자를 인하여 나의 심령이 피곤하도다 하는도다.” 그 전쟁의 날에 유다 백성은 해산하는 여인같이, 특히 초산하는 여인같이 고통하는 소리를 지르며 헐떡이며 손을 펴고 심령으로 피곤해 할 것이다.

본문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우리는 자신을 성찰하자.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우준한 자들이요 지각이 없는 미련한 자식들이었다. 그들은 악을 행하기에는 지각이 있었으나 선을 행하기에는 무지하였다. 그러나 우리는 어떠한가? 우리는 하나님을 아는 자들인가? 또 우리는 과연 악을 다 버리고 선을 행하는 자들인가? 우리는 자신을 살피자. 호세아 6:3, 6, “그러므로 우리가 여호와를 알자. 힘써 여호와를 알자. 그의 나오심은 새벽빛같이 일정하니 비와 같이, 땅을 적시는 늦은 비와 같이 우리에게 임하시리라 하리라,” “나는 인애를 원하고 제사를 원치 아니하며 번제보다 하나님을 아는 것을 원하노라.” 우리는 참으로 하나님을 알고 그의 기뻐하시는 선한 삶을 살고 있는가? 우리는 우리 자신이 미련한 자가 아닌지 자신을 살피자.

둘째로, 멸망과 재앙을 피하는 길은 죄를 버리고 통회자복하는 것뿐이다. 죄인들이 멸망과 재앙을 피하는 길은 자신을 위해 또 다른 이들을 위해 마음을 찢고 우는 것뿐이다. 회개치 않는 자는 다 망할 것이다. 요엘 2:12-13은, “여호와의 말씀에 너희는 이제라도 금식하며 울며 애통하고 마음을 다하여 내게로 돌아오라 하셨나니 너희는 옷을 찢지 말고 마음을 찢고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로 돌아올지어다. 그는 은혜로우시며 자비로우시며 노하기를 더디하시며 인애가 크시사 뜻을 돌이켜 재앙을 내리지 아니하시나니”라고 말했다. 주 예수께서는 “너희도 만일 회개치 아니하면 다 이와 같이 망하리라”고 말씀하셨다(눅 13:3, 5). 우리는 모든 죄를 다 뉘우치고 고백하고 버려야 한다. 그것이 사람이 사는 길이며 마지막 대 재앙을 피하고 참된 평안을 얻는 길이다.

셋째로, 우리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 의지하고 그 안에서 기뻐하자. 자신의 행위로 하나님 앞에 설 자는 없다. 우리의 행위에 근거하여 항상 기뻐할 수 있는 자는 없다. 우리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과 완전한 의 때문에 항상 기뻐할 수 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우리의 부족을 날마다 씻음 받고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자. 로마서 5:9-11, “그러면 이제 우리가 그 피를 인하여 의롭다 하심을 얻었은즉 더욱 그로 말미암아 진노하심에서 구원을 얻을 것이니 곧 우리가 원수 되었을 때에 그 아들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으로 더불어 화목되었은즉 화목된 자로서는 더욱 그의 살으심을 인하여 구원을 얻을 것이니라. 이뿐 아니라 이제 우리로 화목을 얻게 하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 안에서 또한 즐거워하느니라.” 빌립보서 4:4,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 물론, 우리는 이제 예수님 믿는 믿음으로만 살고 순종으로만 살아야 하고, 또 우리는 이제 거룩과 의와 선과 진실의 열매만 맺어야 한다.

 

 

5장: 백성들의 죄악상

1-9절, 이스라엘의 패역함

[1-6절] 너희는 예루살렘 거리로 빨리 왕래하며 그 넓은 . . . .

하나님께서는 말씀하신다. “너희는 예루살렘 거리로 빨리 왕래하며 그 넓은 거리에서 찾아보고 알라. 너희가 만일 공의를 행하며 진리를 구하는 자를 한 사람이라도 찾으면 내가 이 성을 사하리라. 그들이 여호와의 사심으로 맹세할지라도 실상은 거짓 맹세니라.” 옛날에 소돔 고모라 성은 의인 열 명이 없어서 유황불비의 심판을 받아 멸망하였다(창 18:32). 이제 예루살렘 성은 공의를 행하며 진리를 구하는 자가 한 사람이 없어 멸망할 처지에 있었다. 공의를 행하는 것은 하나님의 계명대로 사는 것이다. 또 진리는 하나님의 말씀이며, 진리를 구하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려고 하는 것이다. 모든 사람은 하나님의 진리와 계명을 믿고 그대로 행해야 한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은 그렇지 못했다. 사람이 하나님 앞에서 맹세만 바르게 해도 하나님을 경외하는 표가 될 것이다. 맹세는 하나님께서 살아계시고 공의의 심판자 되심을 인정하는 행위이다. 그러나 그들은 심지어 하나님의 이름으로 맹세하는 행위에까지 거짓됨이 있었다.

예레미야는 말한다. “여호와여, 주의 눈이 성실을 돌아보지[진실을 찾지] 아니하시나이까? 주께서 그들을 치셨을지라도 그들이 아픈 줄을 알지 못하며[괴로워하지 아니하며] 그들을 거의 멸하셨을지라도 그들이 징계를 받지 아니하고[고치기를 거절하였으며] 그 얼굴을 반석보다 굳게 하여 돌아오기를 싫어하므로[거절하였도다. 그러므로] 내가 말하기를 이 무리는 비천하고 우준한 것뿐이라.”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거의 멸하다시피 하였으나 그들은 고치기를 거절하였다. 그들은 그 얼굴을 반석보다 굳게 하여 돌아오기를 거절했다. 그들은 죄에 대한 깨달음도, 하나님의 징벌에 대한 두려움도 없었다. 그들의 마음은 완고하고 완악하고 배교적이었다. 그들은 영적으로도 도덕적으로도 비천하고 미련한 것뿐이었다.

예레미야는 또 말한다. “여호와의 길, 자기 하나님의 법을 알지 못하니 내가 귀인들에게 가서 그들에게 말하리라. 그들은 여호와의 길, 자기 하나님의 법을 안다 하였더니 그들도 일제히 그 멍에를 꺾고 결박을 끊은지라.” ‘여호와의 길,’ ‘하나님의 법’은 하나님의 정해 놓으신 사람의 정로이다. 그것은 십계명에 요약되어 있다. 이스라엘의 귀족들은 하나님의 법을 알았으나 그것이 자신을 속박하는 멍에와 결박이라고 여겼다. 악인들은 성경의 교훈을 속박으로 여긴다. 그러나 실상, 하나님께서 주신 율법은 사람을 속박하기 위한 것이 아니고 사람의 행복과 영생을 위한 것이다(신 10:12-13).

예레미야는 또 말한다. “그러므로 수풀에서 나오는 사자가 그들을 죽이며 사막의 이리가 그들을 멸하며 표범이 성읍들을 엿보온즉 그리로 나오는 자마다 찢기오리니 이는 그들의 허물이 많고 패역(메슈보스)[배교]이 심함이니이다.” 사자와 이리와 표범은 하나님께서 내리시는 징벌의 한 방법이었다. 그것은 그들을 죽이시는 재앙이었다. 그 형벌의 이유는 그들이 허물이 많고 배교가 심하기 때문이다. 이스라엘은 허물이 많았다. 그것은 한두 번의 실수가 아니었다. 사람이 한두 번 실수를 하여도 하나님께서 징벌하실 것이지만, 그것이 반복된다면, 마침내 최종적인 멸망이 올 수밖에 없다.

[7-9절] 내가 어찌 너를 사하겠느냐? 네 자녀가 나를 버리고 . . . .

하나님께서는 말씀하신다. “내가 어찌 너를 사하겠느냐? 네 자녀가 나를 버리고 신이 아닌 것들로 맹세하였으며 내가 그들을 배불리 먹인즉 그들이 행음하며 창기의 집에 허다히 모이며 그들은 살찌고 두루 다니는(마쉬킴)[원기왕성한] 수말같이 각기 이웃의 아내를 따라 부르짖는도다. 나 여호와가 이르노라. 내가 어찌 이 일들을 인하여 벌하지 아니하겠으며 내 마음이 이런 나라에 보수(報讐)하지 않겠느냐?”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죄를 다시 서술하신다. 그들의 대표적인 죄는 우상숭배와 행음함이다. 예레미야 2:13도, “내 백성이 두 가지 악을 행하였나니 곧 생수의 근원되는 나를 버린 것과 스스로 웅덩이를 판 것인데 그것은 물을 저축지 못할 터진 웅덩이니라”고 말하였다. 이스라엘은 생수의 근원 되는 하나님을 버렸고 스스로 헛된 웅덩이 곧 터진 웅덩이를 팠다. 그들의 우상숭배는 터진 웅덩이같이 결국 헛될 것이다. 성경이 증거하는 내용들은 하나님의 말씀이다. 그것은 과거에 하나님의 말씀이었을 뿐만 아니라, 그것이 바르게 해석되고 적용되면 현재 하나님의 말씀이 된다(딤후 3:16).

본문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우리는 죄를 깨닫고 회개하자. 3절, “그 얼굴을 반석보다 굳게 하여 돌아오기를 싫어하므로.” 5절, “[귀인들도] 일제히 그 멍에를 꺾고 결박을 끊은지라.” 6절, “이는 그들의 허물이 많고 패역[배교함]이 심함이니이다.” 7-8절, “그들이 행음하며 창기의 집에 허다히 모이며.”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을 떠나고 배교하였다. 우리는 하나님을 버리고 그의 계명을 버린 죄는 없는가? 하나님의 길과 사람의 정로를 알지 못한 죄는 없는가? 우리는 진심으로 하나님을 부르지 않은 죄는 없는가? 우리는 하나님의 계명대로 살지 않은 죄는 없는가?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귀히 여기고 붙잡고 사모하지 않은 죄는 없는가? 우리는 헛된 것에 가치를 두고 산 죄는 없는가? 우리는 행음한 죄는 없는가? 우리는 하나님의 징책을 깨닫지 못하고 자신의 부족을 고치려 하지 않고 오히려 완악한 마음과 배교적인 마음으로 행한 죄는 없는가? 이런 죄들이 있다면 다 회개해야 한다.

둘째로, 우리는 하나님의 심판을 두려워하자. 6절, “그러므로 수풀에서 나오는 사자가 그들을 죽이며 사막의 이리가 그들을 멸하며 표범이 성읍들을 엿보온즉 그리로 나오는 자마다 찢기오리니.” 9절, “나 여호와가 이르노라. 내가 어찌 이 일들을 인하여 벌하지 아니하겠으며 내 마음이 이런 나라에 보수하지 않겠느냐?” 하나님께서는 사람의 죄악을 반드시 심판하시는 자이시다. 또 하나님의 심판은 참으로 무섭고 두렵다. 하나님께서는 무서운 맹수처럼 회개치 않는 악인들을 죽이시고 멸하실 것이다. 시편 7:11-12, “하나님은 의로우신 재판장이심이여, 매일 분노하시는 하나님이시로다. 사람이 회개치 아니하면 저가 그 칼을 갈으심이여, 그 활을 이미 당기어 예비하셨도다.” 우리는 하나님의 공의의 심판을 두려워해야 한다.

셋째로, 우리는 사람의 정로(正路)로만 가자. 1절, “너희는 예루살렘 거리로 빨리 왕래하며 그 넓은 거리에서 찾아보고 알라. 너희가 만일 공의를 행하며 진리를 구하는 자를 한 사람이라도 찾으면 내가 이 성을 사하리라.” 공의가 무엇이며 진리가 무엇인가? 공의는 하나님의 계명대로 행하는 것이며, 진리는 곧 하나님의 말씀이다. 4절, “여호와의 길, 자기 하나님의 법.” 하나님의 길과 하나님의 법은 곧 성경말씀에 계시된 하나님의 진리와 교훈이다. 그것이 인생의 정로이다.

사람의 정로(正路)는 하나님을 붙들고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말씀을 붙들고 성경말씀대로 행하는 것이다. 즉 성경적 신앙생활을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경읽기와 성경 배우기를 가장 중요하게 여겨야 한다. 우리는 성경에 밝히 계시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감사히 받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공로만 의지하고 하나님의 은혜로 믿음으로 죄씻음과 의롭다 하심을 얻음을 확신해야 한다. 또 우리는 날마다 우리의 사상이나 인격이나 삶 속에 있는 작은 부족이라도 성경에 비추어 고쳐 나가야 한다. 우리는 세상의 헛된 것들, 즉 돈이나 세상 명예나 육신의 쾌락 등에 가치를 두지 말고, 오직 하나님께 가치를 두고 살아야 한다. 우리는 사람의 정로(正路)로만 살아가야 한다.

 

10-19절, 하나님의 심판

[10-13절] 너희는 그 성벽에 올라가 훼파하되 다 훼파하지 . . . .

하나님께서는 말씀하신다. “너희는 그 성벽에 올라가 훼파하되 다 훼파하지 말고 그 가지만 꺾어버리라. 여호와의 것이 아님이니라.” 그는 이방 나라들에게 이스라엘의 성읍을 파괴하라고 말씀하신다. 그러나 다 파괴치 말고 그 가지만 꺾으라고 하신다. 그것은 하나님의 것이 아니기 때문이었다. 회개하지 않고 마침내 멸망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참된 소유, 즉 그의 택하신 자들이 아니었다.

가지만 꺾으라는 말씀은 나무 둥치를 남겨두라는 뜻이다. 그것은 이스라엘을 파괴하되 완전히 멸절시키지는 않으실 것임을 암시한다. 그것은 하나님의 긍휼이다. 본장 18절 하반절에도, “그때에도 내가 너희를 진멸치는 아니하리라”고 말씀하셨다. 이사야 6:13에도 “그 중에 십분의 일이 오히려 남아 있을지라도 이것도 삼키운 바 될 것이나 밤나무, 상수리나무가 베임을 당하여도 그 그루터기는 남아 있는 것같이 거룩한 씨가 이 땅의 그루터기니라”고 말했다.

예레미야는 말한다. “[이는]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이스라엘 족속과 유다 족속이 내게 심히 패역하였느니라[하였음이니라].”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징벌하시는 까닭은 그들이 하나님께 심히 패역했기 때문이었다. ‘패역하다’는 원어(바가드)는 ‘배신하다, 변절하다’는 뜻이다(BDB). 이스라엘은 하나님께 대해 매우 배신적이었다.

예레미야는 말한다. “그들이 여호와를 인정치 아니하며 말하기를 여호와는 계신 것이 아닌즉 재앙이 우리에게 임하지 않을 것이요 우리가 칼과 기근을 보지 아니할 것이며 선지자들은 바람이라. 말씀이 그들의 속에 있지 아니한즉 그같이 그들이 당하리라 하느니라.” ‘인정하다’는 원어(키케쉬)는 ‘거짓되이 행하다’는 뜻이다(BDB). 이스라엘 백성은 겉으로는 하나님을 섬기는 것 같으나 실제로는 그렇지 않았다. 그들은 하나님의 존재를 부정하고 하나님께서 선지자들을 통해 선언하신 재앙, 곧 칼과 기근을 무시하였다. 그들은 선지자들을 바람 곧 허무한 존재로 간주했고 그들이 전하는 바가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며 그들의 선언하는 재앙이 그들에게 임하라고 저주의 말까지도 하였다. 예레미야 시대의 구약교회는 매우 혼란스러웠다. 하나님의 바른 말씀과 거짓말이 혼동되고 있었다.

[14-18절] 그러므로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 . .

예레미야는 또 말한다. “그러므로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그들이 이 말을 하였은즉 볼지어다, 내가 네 입에 있는 나의 말로 불이 되게 하고 이 백성으로 나무가 되게 하리니 그 불이 그들을 사르리라.”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의 선지자들의 말을 무시하고 그들을 저주하기까지 하므로 하나님께서는 선지자들의 입에 있는 하나님의 말씀이 불이 되고 이스라엘 백성이 나무가 되어 불타게 하실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선지자의 말은 곧 하나님의 말씀이며 그 말씀대로 불같은 하나님의 진노가 그대로 이루어질 것이다.

예레미야는 또 말한다.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이스라엘 족속아, 보라, 내가 한 나라를 원방에서 너희에게로 오게 하리니 곧 강하고 오랜 나라이라. 그 방언을 네가 알지 못하며 그 말을 네가 깨닫지 못하느니라.” 하나님께서는 먼 나라 바벨론의 군대를 불러오게 하실 것이다. 바벨론은 당시에 세계적인 강대국이었다. 그 나라는 이스라엘 사람들이 그 언어를 알아듣지 못하는 나라이었다.

예레미야는 또 말한다. “그 전통(箭筒)[화살통]은 열린 묘실이요 그 사람들은 다 용사라. 그들이 네 자녀들의 먹을 추수 곡물과 양식을 먹으며 네 양떼와 소떼를 먹으며 네 포도나무와 무화과나무 열매를 먹으며 네가 의뢰하는 견고한 성들을 칼로 파멸하리라.” 이스라엘 백성은 바벨론 군대로 인해 많이 죽게 될 것이다. 그들의 화살통은 열린 무덤처럼 사람들을 죽음으로 이끌 것이며, 그들은 이스라엘 백성이 먹을 양식들, 고기들, 과일들을 빼앗아가고, 유다의 견고한 성들을 파괴시킬 것이다. 그 전쟁은 참혹한 불행이 될 것이다.

예레미야는 또 말한다.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그때에도 내가 너희를 진멸치는 아니하리라.” 10절에서 ‘가지만 꺾어버리라’고 말씀하신 것과 같이, 하나님께서는 진노 중에서도 긍휼을 베푸셨다. 그는 이스라엘 백성을 징벌하시지만, 완전히 멸망시키지는 않으실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 중에는 남은 자들이 있을 것이다. 그들은 하나님의 은혜로 택함 받은 자들이며 남겨진 자들이다.

[19절] 그들이 만일 이르기를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서 . . . .

예레미야는 또 말한다. “그들이 만일 이르기를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서 어찌하여 이 모든 일을 우리에게 행하셨느뇨 하거든 너는 그들에게 이르기를 너희가 여호와를 버리고 너희 땅에서 이방 신들을 섬겼은즉 이와 같이 너희 것이 아닌 땅에서 이방인들을 섬기리라 하라.” 하나님께서는 다시 이스라엘의 멸망의 이유를 말씀하신다. 그 이유는 그들이 여호와를 버리고 이방 신들을 섬겼기 때문이었다. 우상숭배는 죄악들 중에 가장 큰 죄요 가장 근본적인 죄악이다.

본문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죄는 하나님의 심판과 멸망을 가져온다. 본문은 특히 하나님을 버리고 하나님께 심히 배신적이게, 거짓되이 행하고 우상숭배를 하고 하나님의 선지자들을 무시하고 저주한 죄에 대해 지적하였다. 사람이 하나님을 떠난 것이 가장 큰 죄요 가장 근본적인 죄악이다. 사람이 하나님을 떠나게 될 때 하나님의 말씀과 계명을 무시하고 멀리하고 떠난다. 그러나 사람이 하나님을 경외할 때 하나님의 말씀과 계명을 사랑하고 성경을 읽고 성경을 배우기를 힘쓰고 그 모든 말씀을 믿고 그 모든 말씀을 힘써 행하게 된다. 우리는 죄가 불행의 근본 원인임을 알고 죄를 멀리하자.

둘째로, 구원은 오직 하나님의 긍휼로만 온다. 인류는 다 죄 가운데 빠져 있었다. 하나님께서 긍휼로 조금 남겨두지 않으셨더라면, 모든 인류는 다 멸망했을 것이다. 우리의 구원은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되었다. 하나님께서는 세상의 많은 사람들 중에서 은혜로 일부의 사람들을 택하셨다. 그는 택자들의 죄과 그 형벌을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 전가(轉嫁)시키셨고 그의 십자가의 죽음으로 대속(代贖)하게 하셨다. 또 그는 성령으로 그 택자들을 중생시켜 죄를 깨닫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게 하셨고 죄사함과 의롭다 하심을 얻게 하셨다. 또 그는 그들을 교훈하시고 단련시키셔서 성화를 이루게 하시고 마침내 영광에 이르게 하신다! 하나님께서는 구주이시다. 하나님의 구원하시는 과정을 가로막을 자는 아무도 없다. 하나님께서는 은혜로 택하신 자들을 하나도 잃어버리지 않으시고 다 구원하시고 마침내 온전케 하신다. 그러므로 주께서는 “내가 하늘로서 내려온 것은 내 뜻을 행하려 함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려 함이니라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은 내게 주신 자 중에 내가 하나도 잃어버리지 아니하고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는 이것이니라”고 말씀하셨다(요 6:38-39).

셋째로,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고 평생 하나님을 떠나지 말자. 이스라엘 백성의 멸망의 원인은 죄이었다. 그들의 죄는 하나님을 저버리고 그의 말씀을 거부한 죄이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은혜와 주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 사역으로 구원받은 우리는 그렇게 하지 말자. 우리는 성경에 증거된 하나님의 말씀을 겸손히 받고 그 말씀을 붙잡자. 성경말씀을 떠나지 말자. 하나님의 말씀을 떠나는 것이 곧 죄이다. 오늘 시대는 영적으로 매우 혼란한 시대이다. 거짓된 교리들과 교훈들이 난무하는 시대이다. 배교와 타협과 혼돈의 시대이다. 이런 때에 우리는 TV나 책들이나 대중매체들을 통해 전달되는 사람들의 말들에 귀를 기울이지 말고 오직 성경말씀에 귀를 기울이자. 성경에 관한 것보다 성경 자체를 힘써 읽고 연구하고 묵상하고 분별하고 믿고 행하자.

 

20-31절, 이스라엘의 죄악

본문은 이스라엘의 죄악을 지적한다.

[20-25절] 너는 이를 야곱 집에 선포하며 유다에 공포하여 . . . .

하나님께서는 예레미야에게 말씀하시기를, “너는 이를 야곱 집에 선포하며 유다에 공포하여 이르기를, 우준하여 지각이 없으며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며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하는 백성이여, 이를 들을지어다”라고 하신다.

하나님께서는 예레미야가 이스라엘 백성의 죄를 지적하라고 명하신다. 사람의 죄를 지적하는 일은 힘든 일이지만, 반드시 필요한 일이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이 우준하고 지각이 없다고 말씀하신다. ‘지각이 없다’는 원어(에인 레브)는 ‘마음이 없다’는 뜻이다. 사람이 죄를 짓는 것은 바른 마음, 바른 생각이 없기 때문이다. 그들은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고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한다. 즉 깨닫는 마음의 눈과 깨닫는 마음의 귀가 없는 것이다.

여호와께서는 또 말씀하신다. “너희가 나를 두려워 아니하느냐? 내 앞에서 떨지 아니하겠느냐? 내가 모래를 두어 바다의 계한[경계]을 삼되 그것으로 영원한 계한[경계]을 삼고 지나치지 못하게 하였으므로 파도가 흉용하나 그것을 이기지 못하며, 뛰노나 그것을 넘지 못하느니라. 그러나 너희 백성은 배반하며 패역하는(소레르 우모레)[완고하고 반항적인](BDB) 마음이 있어서 이미 배반하고 갔으며.”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상태를 바다의 모래에 비교하신다. 바닷가에는 보통 해안선을 따라 모래밭이 있어서 아무리 큰 파도가 몰려와도 그것을 넘지 못한다. 물론 지진과 해일이 일어날 때 그것을 일시적으로 넘어올 때가 있으나 그 예외적 현상도 일시적이다. 해일이 지난 후에는 파도가 여전히 모래밭을 넘어오지 않는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께서 정하신 경계를 넘어갔다. 그들은 완고하고 반항적이다.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고 순종하지 않고 도리어 대적하였다. 자연은 자연법칙에 순응하지만, 사람은 하나님께서 정하신 도덕법칙을 거역하였다.

하나님께서는 또 말씀하신다. “또 너희 마음으로 우리에게 이른 비와 늦은 비를 때를 따라 주시며 우리를 위하여 추수 기한을 정하시는 우리 하나님 여호와를 경외하자 말하지도 아니하니 너희 허물이 이러한 일들을 물리쳤고 너희 죄가 너희에게 오는 좋은 것을 막았느니라.”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께서 주신 자연 은택도 알지 못하고 있었다. 하나님께서는 이른 비, 곧 가을에 파종에 꼭 필요한 비를 주시고 늦은 비, 곧 봄에 결실을 위해 꼭 필요한 비를 주셨다. 이런 일들은 자연히 또는 우연히 되는 것이 아니고 또는 자기 힘으로 되는 것이 아니다. 이 모든 일은 하나님의 은혜로 주시는 것이다. 그러나 사람들의 허물과 죄가 하나님의 주시는 자연 은택들을 물리쳤고, 하나님께서 주시는 좋은 것들을 물리치고 막았다. 악인에게는 평강이 없다(사 48:22; 57:21). 죄를 짓는 자는 스스로 불행을 가져온다.

[26-29절] 내 백성 너희 중에 악인이 있어서 새 사냥꾼의 . . . .

하나님께서는 또 말씀하신다. “내 백성 너희 중에 악인이 있어서 새 사냥꾼의 매복함같이 지키며 덫을 놓아 사람을 잡으며 조롱에 새들이 가득함같이 너희 집들에 속임이 가득하도다. 그러므로 너희가 창대하고 거부(巨富)가 되어 살찌고 윤택하며 또 행위가 심히 악하여[악인들의 행위들보다 능가하여] 자기 이익을 얻으려고 송사 곧 고아의 송사를 공정히 하지 아니하며 빈민의 송사를 공평히 판결치 아니하니 내가 이 일들을 인하여 벌하지 아니하겠으며 내 마음이 이 같은 나라에 보수하지 않겠느냐? 여호와의 말이니라.”

이스라엘 백성 중에는 악인들이 있었다. 그들은 새 사냥꾼의 매복함같이 지키며 덫을 놓아 사람을 잡았다. 또 새장에 새들이 가득함같이 그들의 집들에는 속임이 가득하였다. 그들은 창대하고 거부(巨富)가 되어 살찌고 윤택하였다. 그들의 행위는 심히 악하였다. 그들의 행위들은 세상의 악인들의 행위들을 능가하였다. 남방 유다 백성은 멸망이 가까웠을 때에 하나님의 율법을 듣지 않았고 가나안 원주민들보다 더 악을 행하였다(왕하 21:9). 그들은 자기들의 이익만 구하였다. 그들은 고아의 송사를 공정히 하지 않았고 빈민의 송사를 공평히 판결치 않았다. 이스라엘 백성이 이런 상황이었으니, 그들이 어떻게 하나님의 심판과 징벌을 피할 수 있겠는가? “내가 이 일들을 인하여 벌하지 아니하겠으며 내 마음이 이 같은 나라에 보수하지 않겠느냐? 여호와의 말이니라.”

[30-31절] 이 땅에 기괴하고 놀라운 일이 있도다. 선지자들은 . . . .

예레미야는 또 말한다. “이 땅에 기괴하고 놀라운[놀랍고 두려운] 일이 있도다. 선지자들은 거짓을 예언하며 제사장들은 자기 권력[권위]으로 다스리며 내 백성은 그것을 좋게 여기니 그 결국에는 너희가 어찌 하려느냐?”

이스라엘과 유다 백성의 부패는 지도자들이 앞서서 행하였다. 예레미야 6:13-14, “이는 그들이 가장 작은 자로부터 큰 자까지 다 탐람하며 선지자로부터 제사장까지 다 거짓을 행함이라. 그들이 내 백성의 상처를 심상히[대수롭지 않게] 고쳐주며 말하기를 평강하다 평강하다 하나 평강이 없도다.” 선지자들은 거짓을 예언하였다. 참된 설교는 사람의 비위를 맞추지 않고, 하나님께서 주신 대로, 성경대로 하는 것이나, 거짓 선지자들은 그렇지 않았다. 또 제사장들은 ‘자기 권력으로’ 혹은 ‘자기 권위로’ 다스렸다. ‘자기 권위로’라는 말은 ‘성경 교훈의 권위로’라는 말과 반대되는 개념이다. 그들은 성경과 관계없이, 성경 교훈의 권위로가 아니고 순전히 자기 권위로 다스렸다. 또 백성들은 그런 일들을 좋게 여겼다. 이와 같이, 이스라엘 사회는 총체적인 부패와 혼란 속에 빠져 있었다. 그러므로 그들에게 희망이 없었다. 하나님께서는 마침내 징벌의 채찍을 드실 것이며 그들은 결국 멸망하고 말 것이다.

본문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우리는 우준하지 말자. 이스라엘 백성은 우준하고 바른 마음과 생각이 없었다(21절).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로 지혜와 깨달음을 얻자. 우리의 영적인 눈과 영적인 귀가 열려야 한다. 어떻게 그것이 가능한 것인가? 말씀과 기도로 또 하나님의 은혜로 가능하다. 우리가 성경책을 힘써 읽고 묵상하면, 또 우리가 기도로 하나님의 은혜를 간구한다면, 우리는 무지하고 미련한 자리에 있지 않고 지혜와 깨달음을 얻을 것이다. 우리는 우준한 자가 되지 말자.

둘째로, 우리는 완고하고 반항적이지 말자. 이스라엘 백성은 완고하고 반항적인 마음이 있었다(23절). 무엇이 완고한 것인가?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려 하지 않는 것이다. 온유하고 겸손하기보다 마음이 교만하고 굳어져서 순종하지 않는 것이다. 그들은 땅에 속한 이익만 추구하였다. 이스라엘의 선지자들은 거짓된 것을 예언하였고, 제사장들은 자기 권위로 다스렸고, 백성은 그것을 좋게 여겼다.

셋째로, 우리는 하나님께서 정하신 경건과 도덕의 경계선을 지키자.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에 교훈하신 대로 경건하게 살고 의와 선을 행하자. 십계명과 신구약성경은 오늘날 우리에게 생활의 기준이 된다. 하나님의 법을 넘어가는 것이 죄요 죄의 결과는 평강의 상실이다. 죄는 하나님께서 주실 복들을 물리치고 가로막는다. 그러나 의와 순종의 길에는 하나님의 평강과 복이 있다. 우리에게 의와 순종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이것은 하나님의 은혜요 감사할 일이다. 우리는 완고하고 반항적이지 말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경건하게 살고 의와 선을 행하자. 

 

 

 6장: 북방에서 파멸이 닥침

1-8절, 재앙이 북방에서 옴

본문은 재앙이 북방에서 옴을 증거한다.

[1절] 베냐민 자손들아, 예루살렘 중에서 피난하라. 드고아에서 . . . .

하나님께서는 또 말씀하신다. “베냐민 자손들아, 예루살렘 중에서 피난하라. 드고아에서 나팔을 불고 벧학게렘에서 기호를 들라. 재앙과 큰 파멸이 북방에서 엿보아 옴이니라.” 예루살렘은 베냐민 지파의 거주지이었다(수 18:28; 삿 1:21). 하나님께서는 베냐민 자손들에게 예루살렘 중에서 피난하라고 말씀하신다. 또 드고아에서 나팔을 불고 벧학게렘에서 기를 세우라고 말씀하신다. 예루살렘 주위 거주민들에게 다 알리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왜냐하면 예루살렘을 멸망시킬 재앙과 큰 파멸이 북방에서 엿보아 오기 때문이었다. ‘엿보아 온다’는 표현은 ‘나타나기 시작한다’는 뜻이다. 북방에서 오는 재앙은 바벨론 군대의 예루살렘 침공을 가리킨다고 본다.

[2절] 아름답고 묘(妙)한[우아한] 딸 시온을 내가 멸절하리니.

하나님께서는 또 “아름답고 묘한 딸 시온을 내가 멸절하리라”고 말씀하신다. ‘묘한’이라는 원어(나와)는 ‘우아한’이라는 뜻이다. 시온 곧 예루살렘 성은 큰 고생 없이 예쁘게 자란 딸, 큰 고난 없이 평화로이 지내왔던 성으로 묘사된다. 그러나 그 성을 하나님께서는 멸망시키실 것이다. “내가 멸절하리라”는 원문은 “내가 멸절하였다”는 뜻인데, 이것은 확실한 미래의 사건을 나타내는 표현이다. 하나님께서는 “내가 멸절하리라”고 말씀하신다. 그는 예루살렘을 확실히 멸망시키실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심판주이시다. 복(福)이 하나님의 섭리의 손에 있듯이, 심판과 재앙도 그의 손에 있다.

[3-5절] 목자들이 그 무리 양을 몰고 와서 그 사면에 자기 . . . .

하나님께서는 또, “목자들이 그 무리 양을 몰고 와서 그 사면에 자기 장막을 치고 각기 처소에서 먹이리로다”고 말씀하신다. 이것은 바벨론 군대를 묘사한 것이든지, 혹은 멸망한 후의 예루살렘의 황폐함을 예견하며 묘사한 것일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또 말씀하신다. “너희는 그를 치기를 준비하라. 일어나라. 우리가 정오에 올라가자. 아하 아깝다. 날이 기울어 저녁볕 그늘이 길었구나. 일어나라. 우리가 밤으로[밤에] 올라가서 그 전각[궁궐]들을 헐자 하도다.” ‘정오에 올라가자’는 말은 대낮에 즉 아직 날이 밝을 때 성을 침공하자는 뜻이며, ‘밤으로[밤에] 올라가자’는 말은 밤에도 쉬지 말고 공격하자는 뜻일 것이다. 열방을 불러 예루살렘을 치게 명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다. 하나님께서는 역사의 대주재자이시다. 그는 바벨론 군대를 불러 예루살렘을 침공케 하실 수도 있고 그것을 허락지 않으실 수도 있다.

[6-7절] 나 만군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너희는 나무를 . . . .

예레미야는 또 하나님의 말씀을 전한다. “나 만군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너희는 나무를 베어서 예루살렘을 향하여 흉벽[포위 벽]을 쌓으라. 이는 벌 받을 성이라. 그 중에는 오직 포학한 것뿐이니라. 샘이 그 물을 솟쳐냄같이 그가 그 악을 발하니 강포와 탈취가 거기서 들리며 질병과 창상이 내 앞에 계속하느니라.”

하나님께서는 말씀을 하시고 또 그 말씀대로 일들을 이루신다. 그는 우리의 주님, 곧 우리의 주관자와 왕이시다. 이제 예루살렘은 주권자 하나님의 벌을 받을 것이다. 예루살렘의 멸망 원인은 그들의 포학함 때문이었다. 그들은 마치 샘이 그 물을 솟쳐냄과 같이 자기들 속에 숨어 있는 악을 노출시켰다. 그들 가운데서는 강포와 탈취가 있었고 질병과 창상도 그 앞에 계속되었다. ‘질병’은 아마 구타로 인한 상해(傷害)를 가리킨 듯하다. 하나님을 경외함이 없는 결과는 온갖 부도덕한 죄악들이다. 그런 죄악 때문에 하나님의 심판이 오고 재앙과 멸망이 오는 것이다. 이제 그 멸망이 임박하였다.

[8절] 예루살렘아, 너는 훈계를 받으라. 그리하지 아니하면 . . . .

하나님께서는 또 말씀하신다. “예루살렘아, 너는 훈계[혹은 경고]를 받으라. 그리하지 아니하면 내 마음이 너를 싫어하고[떠나] 너로 황무케 하여 거민이 없는 땅을 만들리라.”

하나님의 말씀은 경고를 포함하였다. 만일 그들이 그 경고를 무시하고 거절하면,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떠나시고 그 성을 황무케 하시고 거민이 없는 땅을 만드실 것이다. 시편 119:11은 “내가 주께 범죄치 아니하려 하여 주의 말씀을 내 마음에 두었나이다”라고 말했다. 또 잠언 23:12는 “훈계에 착심하며 지식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라”고 교훈했다. 이스라엘 백성에게 소망이 있다면, 이제라도 그들이 회개하고 하나님의 교훈을 받는 것뿐이다. 오늘 우리도 마찬가지이다.

본문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하나님께서는 온 우주의 주권자이시다. 하나님께서는 시온을 멸절하실 것이다. 생명과 죽음, 복과 화는 홀로 사람의 생사화복(生死禍福)을 주장하시고 인류의 역사를 주관하시는 하나님께 달려 있다. 하나님께서는 온 우주의 주권자이시다.

둘째로, 우리는 모든 죄악을 버리자. 예루살렘의 멸망의 원인은 죄 때문이다. 특히 그들에게는 포학함이 있었다. 그러나 하나님의 뜻은 온유와 선함이다. 우리는 포학과 강포와 탈취와 구타의 죄악들을 다 버려야 하고, 오직 선과 온유와 사랑과 진실을 행해야 한다.

셋째로, 우리는 하나님 말씀의 훈계를 받아야 한다. 8절, “예루살렘아, 너는 훈계를 받으라.” 사람이 하나님의 훈계를 거절하면 희망이 없다. 하나님의 말씀의 요지는 회개와 믿음과 순종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죄를 버리고 하나님을 믿고 의와 선과 진실을 행해야 한다.

 

9-15절, 이스라엘의 죄와 멸망

본문은 이스라엘의 죄를 지적하고 멸망을 선언하시는 말씀이다.

[9절] 만군의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포도를 땀같이 . . . .

만군의 여호와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포도를 땀같이 그들이 이스라엘의 남은 자를 말갛게 주우리라. 너는 포도 따는 자처럼 네 손을 광주리에 자주자주 놀리라.” ‘그들’은 확실히 이스라엘의 남은 자들 곧 유다 백성을 멸망시킬 바벨론 군대를 가리켰다. 포도를 따는 자들이 남은 것 없이 줍듯이, 그들은 이스라엘의 남은 자들을 다 멸할 것이다. ‘광주리’라는 원어(살실로스)는 ‘광주리’(LXX, Vg, KJV), 혹은 ‘가지’(BDB, KB, NASB, NIV)라는 뜻이라고 한다.

[10절] 내가 누구에게 말하며 누구에게 경책하여 듣게 할꼬. . . .

예레미야는 또 말한다. “내가 누구에게 말하며 누구에게 경책하여 듣게 할꼬. 보라, 그 귀가 할례를 받지 못하였으므로 듣지 못하는도다. 보라, 여호와의 말씀을 그들이 자기에게 욕으로 여기고 이를 즐겨 아니하니.” 유다의 죄악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기를 거절하는 것이었다. 그들은 귀의 할례를 받지 못한 자들이라고 표현된다. 그들의 귀는 닫혀 있었고,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지 못하였다. 그들은 하나님의 책망을 자기들에게 욕하는 말로 여겼고 즐거워하지 않았다.

[11-12절] 그러므로 여호와의 분노가 내게 가득하여 참기 . . . .

예레미야는 또 말한다. “그러므로 여호와의 분노가 내게 가득하여 참기 어렵도다. 그것을 거리에 있는 아이들과 모인 청년들에게 부으리니 지아비[남편]와 지어미[아내]와 노인과 늙은이가 다 잡히리로다.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내가 그 땅 거민에게 내 손을 펼 것인즉 그들의 집과 전지(田地)와 아내가 타인의 소유로 이전되리니.”

예레미야는 하나님의 분노가 그에게 가득하여 참을 수가 없었다고 말한다. 그는 하나님의 분노를 선언한다. 하나님의 분노가 거리에 있는 아이들과 모인 청년들에게 부어진다고 그는 말한다. 또 그는 하나님의 징벌을 선언하기를, 그들의 집과 토지와 아내가 다른 사람의 소유가 될 것이라고 한다. 즉 유다 백성은 어른들이나 젊은이들이나 아이들이나 다 재앙을 당할 것이며 집들과 토지들도 빼앗길 것이며 아내들도 빼앗길 것이다.

[13-15절] 이는 그들이 가장 작은 자로부터 큰 자까지 . . . .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진노하시는 이유는 무엇인가? 하나님께서는 그것을 다음과 같이 말씀하신다. “이는 그들이 가장 작은 자로부터 큰 자까지 다 탐람(貪婪)하며 선지자로부터 제사장까지 다 거짓을 행함이라. 그들이 내 백성의 상처를 심상히[대수롭지 않게, 피상적으로] 고쳐주며 말하기를 평강하다 평강하다 하나 평강이 없도다. 그들이 가증한 일을 행할 때에 부끄러워하였느냐? 아니라. 조금도 부끄러워 아니할 뿐 아니라 얼굴도 붉어지지 않았느니라.”

하나님께서 지적하신 죄는 세 가지이다. 첫째는 탐람이다. 이것은 돈을 사랑하고 이익을 탐하는 것이다. 이것은 어느 시대에나 사람들의 시험거리이다. 그러나 탐람하는 자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한다(고전 6:10). 또 디모데전서 6:9-10은, “부하려 하는 자들은 시험과 올무와 여러 가지 어리석고 해로운 정욕에 떨어지나니 곧 사람으로 침륜과 멸망에 빠지게 하는 것이라.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되나니 이것을 사모하는 자들이 미혹을 받아 믿음에서 떠나 많은 근심으로써 자기를 찔렀도다”고 말하였다.

둘째는 거짓을 행함이다. 이것은 특히 선지자들과 제사장들 곧 그 당시의 종교인들의 죄악이었다. 그들은 백성의 상처를 대수롭지 않게, 피상적으로 고쳐주었다. 그들은 백성의 죄를 책망하고 철저한 회개를 촉구하지 않고 대충 고쳐주며 평안을 많이 축원하였다. 그러나 거짓된 축원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셋째는 가증한 일을 행함이다. 그들은 가증한 일을 부끄럼 없이 행하였고 얼굴도 붉어지지 않았다. 그들의 양심은 무디어졌다. 죄는 처음 짓기가 어렵지 두 번째부터는 쉽고 반복될 수록 더욱 쉬워진다. 죄는 습관성이 생긴다. 또 악한 습관은 고치기 매우 어렵다. 우리는 죄 짓지 않기를 위해 하나님의 은혜를 간구해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탐람과 거짓 행함과 가증한 일 행함 등의 죄 때문에 그들에게 징벌을 선언하신다. 하나님께서는 말씀하셨다. “그러므로 그들이 엎드러지는 자와 함께 엎드러질 것이라. 내가 그들을 벌하리니 그때에 그들이 거꾸러지리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본문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야 한다. 우리는 들을 귀(신 29:4; 마 13:9)와 할례 받은 마음(신 30:6) 곧 깨닫는 마음이 필요하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은혜로 주시는 것이다.

둘째로, 우리는 죄를 멀리해야 한다. 우선, 탐심을 버리자. 골로새서 3:5-6, “그러므로 땅에 있는 지체를 죽이라. 곧 음란과 부정과 사욕과 악한 정욕과 탐심이니 탐심은 우상 숭배니라. 이것들을 인하여 하나님의 진노가 임하느니라.” 탐심은 지옥 갈 죄이며 천국 못 갈 죄이다(고전 6:10). 또 거짓을 버리자. 에베소서 4:25는, “그런즉 거짓을 버리고 각각 그 이웃으로 더불어 참된 것을 말하라. 이는 우리가 서로 지체가 됨이니라”고 말한다. 거짓도 지옥 갈 죄이며 천국 못 갈 죄이다(계 21: 8, 27; 22:15). 또 가증한 일을 버리자. 가증한 일이란 우상숭배는 물론이고 계명을 어기는 모든 것이다. 특히 서로 미워함이나, 결혼의 존귀함과 사람의 순결성을 저버리는 온갖 음란함이 가증한 일이다.

셋째로, 우리는 세상의 것을 자랑하지 말아야 한다. 우리는 자녀도, 부모도, 남편도, 아내도, 집도, 땅도 자랑하지 말자. 하나님께서 그것들을 복되게 하시면 복이 되지만, 그가 그것들을 가져가시면 화가 될 수도 있다. 지진과 전쟁 등을 보라. 우리는 오직 하나님만 의지하자.

 

16-30절, 옛길을 거절함

[16-17절]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너희는 길에 서서 . . . .

예레미야는 말한다.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너희는 길에 서서 보며 옛적 길 곧 선한 길이 어디인지 알아보고 그리로 행하라. 너희 심령이 평강을 얻으리라 하나 그들의 대답이 우리는 그리로 행치 않겠노라 하였으며 내가 또 너희 위에 파수꾼을 세웠으니 나팔소리를 들으라 하나 그들의 대답이 우리는 듣지 않겠노라 하였도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이 바쁜 일상생활의 분주함을 잠시 멈추고 자신과 주변을 살피며 반성하라고 말씀하신다. 그는 그들이 옛적 길 곧 선한 길이 어디인지 알아보고 그리로 행하라고 말씀하신다. ‘옛적 길’은 하나님께서 옛날부터 모세를 통해 밝히 명하신 경건하고 의로운 삶을 가리킨다. 하나님께서는 그 옛길이 선한 길이며 심령의 평안을 얻는 길이라고 말씀하셨다. 그러나 그들은 그 길로 행하지 않겠다고 대답하였다. 이스라엘의 죄는 하나님께서 명하신 교훈의 옛길, 곧 선한 길을 거절한 것이었다.

하나님께서는 또 그들 위에 파수꾼들 곧 하나님의 종들과 선지자들을 세우셨고 이스라엘 백성이 그들의 나팔소리 곧 그들의 경계와 경고와 책망를 들으라고 말씀하셨으나 그들은 그것도 거절하였다.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의 참된 종들을 통해 선언된 하나님의 교훈과 경고를 듣지 않았다.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 듣기를 거절하였다.

[18-21절] 그러므로 너희 열방아, 들으라. 회중아, 그들의 . . . .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심판을 선언하신다. “그러므로 너희 열방아, 들으라. 회중아, 그들의 당할 일을 알라. 땅이여, 들으라. 내가 이 백성에게 재앙을 내리리니 이것이 그들의 생각의 결과라. 그들이 내 말을 듣지 아니하며 내 법을 버렸음이니라.”

하나님께서는 사람의 생사화복(生死禍福)을 주장하신다. 그러므로 그는 그들에게 재앙을 내리시겠다고 말씀하신다. 그 재앙은 바벨론 군대의 침공으로 예루살렘이 멸망하는 것이다. 그 재앙은 그들의 생각의 결과이었다. 그들의 생각은 하나님을 향해 패역하였고 불순종적이었다. 그 결과, 그들은 하나님의 재앙을 당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또 말씀하신다. “시바에서 유향과 원방에서 향품을 내게로 가져옴은 어찜이뇨? 나는 그들의 번제를 받지 아니하며 그들의 희생을 달게 여기지 않노라. 그러므로 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보라, 내가 이 백성 앞에 거침을 두리니 아비와 아들들이 한가지로 거기 거치며 이웃과 그 친구가 함께 멸망하리라.”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의 경고를 무시하면서도 먼곳에서 유향과 향품을 가져와서 하나님 앞에 그럴듯한 번제를 드렸다. 그러나 그것은 가인의 제사같이 형식적이고 위선적인 제사에 불과했다. 하나님께서는 참 회개가 없고 말씀 순종함이 없는 제사와 예배를 받지 않으신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그들 앞에 거침 곧 걸림돌을 두시겠다고 말씀하신다. 그것은 바벨론 군대를 가리켰을 것이다. 그때 아비와 아들들이, 이웃과 그 친구들이 함께 넘어지며 멸망할 것이다.

[22-26절]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보라, 한 민족이 . . . .

예레미야는 또 말한다.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보라, 한 민족이 북방에서 오며 큰 나라가 땅끝에서부터 떨쳐 일어나나니 그들은 활과 창을 잡았고 잔인하여 자비가 없으며 그 목소리는 바다가 흉용함 같은 자라. 그들이 말을 타고 전사같이 다 항오를 벌이고 딸 시온 너를 치려하느니라 하시도다.” 하나님께서는 북방에서 내려올 한 잔인한 군대 곧 바벨론 군대를 좀더 구체적으로 선포하신다.

예레미야는 또 말한다. “우리가 그 소문을 들었으므로 손이 약하여졌고 고통이 우리를 잡았으므로 아픔이 해산하는 여인 같도다. 너희는 밭에도 나가지 말라. 길로도 행치 말라. 대적의 칼이 있고 사방에 두려움이 있음이니라. 딸 내 백성이 굵은 베를 두르고 재에서 굴며 독자(獨子)를 잃음같이 슬퍼하며 통곡할지어다. 멸망시킬 자가 홀연히 우리에게 올 것임이니라.” 침략자가 온 땅을 덮칠 것이다. 사람들은 그 소문을 듣고 손이 약해지며 해산하는 여인처럼 고통할 것이다. 또 백성들은 외아들을 잃음같이 슬퍼하며 통곡할 것이다.

[27-30절] 주께서 가라사대 내가 이미 너로 내 백성 중에 . . . .

예레미야는 또 말한다. “주께서 가라사대 내가 이미 너로 내 백성 중에 살피는 자와 요새를 삼아 그들의 길을 알고 살피게 하였노라. 그들은 다 심히 패역한 자며 다니며 비방하는 자며 그들은 놋과 철이며 다 사악한 자라. 풀무를 맹렬히 불면 그 불에 납이 살라져서 단련하는 자의 일이 헛되게 되느니라. 이와 같이 악한 자가 제하여지지 아니하나니 사람들이 그들을 내어버린 은이라 칭하게 될 것은 나 여호와가 그들을 버렸음이니라.”

하나님께서는 선지자 예레미야를 이스라엘 백성 중에 ‘살피는 자’(바콘  @/jB;)[시험하는 자]와 ‘요새’를 삼으셨다. 하나님의 참된 종들은 하나님의 백성을 살피고 시험하는 자이며 하나님의 진리의 요새이다. 교회가 부패해도 그들만은 진리를 전하고 그 진리를 지켜야 한다. 교회는 진리의 기둥과 터라고 증거되었다(딤전 3:15).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은 선지자를 통해 전해진 하나님의 말씀을 받지 않았다. 그들은 심히 부패한 자(사레 소레림)[심히 반항적인 자]이었다. 또 그들은 다니며 비방하는 자, 곧 하나님의 성도를 비방하는 자이었다. 그들은 놋과 철같이 완고하고 완악하였다. 또 그들은 ‘사악한 자’(마쉬키심)[부패시키는 자들]이었다. 악한 자들은 자신만 부패되었을 뿐만 아니라, 또한 다른 이들을 부패시키는 자들이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버리실 것이며 사람들은 그들을 ‘내어버린 은’이라고 부를 것이다.

본문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우리는 이스라엘 백성의 죄악을 본받지 말자. 분문 28절은 이스라엘 백성의 죄악을 증거하기를, “그들은 다 심히 패역한 자[완고한 자, 반항적인 자]며 다니며 비방하는 자며 그들은 놋과 철이며 다 사악한 자[부패시키는 자]라”고 하였다. 우리는 이스라엘 백성의 패역함, 반항적임, 이웃을 비방함, 놋과 철 같은 완고함, 남을 부패시킴 등 모든 종류의 악을 버리고 멀리하자. 그렇지 않으면, 이스라엘 백성이 마침내 하나님의 재앙을 당했던 것같이, 우리도 하나님의 재앙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우리는 회개하고 회개의 합당한 열매를 맺어야 한다(마 3:8). 우리가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를 입은 자들이라면 그러해야 한다. 회개는 구원의 필수적 동반물이다.

둘째로, 우리는 옛적 길로 행하자. 본문 16절은 말한다.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너희는 길에 서서 보며 옛적 길 곧 선한 길이 어디인지 알아보고 그리로 행하라. 너희 심령이 평강을 얻으리라 하나 그들의 대답이 우리는 그리로 행치 않겠노라 하였으며.”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바쁜 일상생활에서 잠시 멈추어 자신을 살피며 옛적 길 곧 선한 길이 어디인지 알아보고 그리고 행하라고 말씀하셨다. 옛적 길은 하나님께서 옛부터 명하셨던 길, 신구약성경에 밝히 증거된 경건하고 선한 길이다. 이스라엘은 그 길을 걷기를 거절하다가 마침내 멸망하고 말았다. 우리는 이스라엘의 실패를 거울삼아 실패치 말자.

우리는 오직 성경적 교훈을 분별하고 확인하고 확신하여 그 길로만 가자. 사도 바울은, “형제들아, 내가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교훈[너희가 배운 교훈](원문)을 거스려 분쟁을 일으키고 거치게 하는 자들을 살피고 저희에게서 떠나라”고 말하였고(롬 16:17), 또 “너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과 사랑으로써 내게 들은 바 바른 말을 본받아 지키고 우리 안에 거하시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네게 부탁한 아름다운 것을 지키라”고 말했다(딤후 1:13-14). 우리는 사도들을 통해 주신 복음 진리와 교훈을 가감하지 말고 바로 지키며 모든 죄악을 버리고 멀리하자.

 

 

7장: 이스라엘의 죄와 불순종

1-20절, 이스라엘의 죄악

[1-7절] 여호와께로서 예레미야에게 말씀이 임하니라. 너는 . . . .

여호와께로서 예레미야에게 말씀이 임하였다. “너는 여호와의 집 문에 서서 이 말을 선포하여 이르기를 여호와께 경배하러 이 문으로 들어가는 유다인아, 다 여호와의 말씀을 들으라.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이같이 말씀하시되 너희 길과 행위를 바르게 하라. 그리하면 내가 너희로 이곳에 거하게 하리라.”

하나님께서는 예레미야를 통해 이스라엘 백성에게 주신 말씀의 요지는 “너희 길과 행위를 바르게 하라”는 것이다. ‘바르게 하라’는 원어(헤티부)는 ‘좋게 하라, 바르게 하라, 고치라(amend)’는 뜻이다(BDB, NASB). 이 단어는 예레미야서에서 ‘바르게 하라’(7:3, 5), ‘선하게 하라’(18:11), ‘고치라’(26:13; 35:15) 등으로 번역되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이 그들의 길과 행위를 고치고 바르게, 선하게 하면, 그들이 이곳 곧 가나안 땅에 거하게 하시겠다고 약속하신다.

하나님께서는 또 말씀하시기를, “너희는 이것이 여호와의 전이라, 여호와의 전이라, 여호와의 전이라 하는 거짓말을 믿지 말라”고 하셨다. “이곳이 하나님의 전이라”는 말씀을 세 번이나 반복하신 것은 거짓 선지자들이 얼마나 헛된 말을 강조하였는지를 보인다. 그것은 헛된 신념이었다. 하나님의 전이라도 예배하는 자들이 범죄하면 하나님께 버림을 당할 것이다. 하나님의 전은 예배자들이 하나님께 바른 예배를 드리고 그의 말씀에 순종할 때만 보존될 수 있다.

하나님께서는 다시 반복하시면서 좀더 구체적으로 말씀하신다. “너희가 만일 길과 행위를 참으로 바르게 하여 이웃들 사이에 공의를 행하며 이방인과 고아와 과부를 압제하지 말며 무죄한 자의 피를 이곳에서 흘리지 아니하며 다른 신들을 좇아 스스로 해하지 아니하면, 내가 너희를 이곳에 거하게 하리니 곧 너희 조상에게 영원 무궁히 준 이 땅에니라.”

하나님께서는 구체적으로 이웃들과의 관계에서 하나님의 말씀에 맞게 공의를 행하라고 말씀하신다. 그는 또 이방인과 고아와 과부를 압제하지 말라고 말씀하신다. 이런 자를 압제하지 않는 자는 모든 이웃을 압제하지 않을 것이다. 그것은 이웃 사랑의 확실한 증거가 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또 이곳에서 무죄한 피를 흘리지 말라고 말씀하신다. 악행의 절정은 무죄한 자를 정죄하고 죽이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또 다른 신들을 좇아 스스로 해하지 말라고 말씀하신다. 우상숭배는 가장 큰 죄악이며 그것은 결국 자신을 해롭게 하고 멸망케 하는 죄악이다. 이스라엘 백성이 이런 죄악으로부터 떠날 때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조상들에게 주신 가나안 땅에서 그들이 영원히 살게 하겠다고 약속하신다.

[8-11절] 너희가 무익한 거짓말을 의뢰하는도다. 너희가 . . . .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의 현실은 하나님의 요구하시는 바와 너무 거리가 멀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또 말씀하신다. “너희가 무익한 거짓말을 의뢰하는도다. 너희가 도적질하며 살인하며 간음하며 거짓맹세하며 바알에게 분향하며 너희의 알지 못하는 다른 신들을 좇으면서 내 이름으로 일컬음을 받는 이 집에 들어와서 내 앞에 서서 말하기를 우리가 구원을 얻었나이다 하느냐? 이는 이 모든 가증한 일을 행하려 함이로다. 내 이름으로 일컬음을 받는 이 집이 너희 눈에는 도적의 굴혈로 보이느냐? 보라, 나 곧 내가 그것을 보았노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그들은 무익한 거짓말, 즉 ‘이것이 여호와의 전이라’는 거짓말을 의뢰하였다. 그들은 거짓된 소망, 거짓된 평안을 가지고 있었다. 그들은 여전히 도적질하며 살인하며 간음하며 거짓 맹세하며 바알에게 분향하며 그들의 알지 못하는 다른 신들을 좇았다. 그러면서도 그들은 하나님의 이름으로 일컬음을 받는 이 집, 곧 하나님의 성전에 들어와서 하나님 앞에 서서 말하기를 “우리가 구원을 얻었나이다”라고 말했다. 그들의 마음 속에는 죄에 대한 깨달음이나 뉘우침이 없었다. 그들은 헛된 소망을 가지고 가증한 일을 행하고 있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말씀하신다. “내 이름으로 일컬음을 받는 이 집이 너희 눈에는 도적(파리침)[난폭한 자들, 강도들] (BDB, KJV, NASB, NIV)의 굴혈[소굴]로 보이느냐? 보라, 나 곧 내가 그것을 보았노라.” 하나님께서는 유다 백성들이 하나님께 예배하러 모이면서 온갖 악을 행하고 난폭하고 강포하였음을 다 보셨다.

[12-15절] 너희는 내가 처음으로 내 이름을 둔 처소 실로에 . . . .

하나님께서는 또 말씀하신다. “너희는 내가 처음으로 내 이름을 둔 처소 실로에 가서 내 백성 이스라엘의 악을 인하여 내가 어떻게 행한 것을 보라.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이제 너희가 그 모든 일을 행하였으며 내가 너희에게 말하되 새벽부터 부지런히 말하여도 듣지 아니하였고 너희를 불러도 대답지 아니하였느니라. 그러므로 내가 실로에 행함같이 너희가 의뢰하는 바 내 이름으로 일컬음을 받는 이 집 곧 너희와 너희 열조에게 준 이곳에 행하겠고 내가 너희 모든 형제 곧 에브라임 온 자손을 쫓아냄같이 내 앞에서 너희를 쫓아내리라 하셨다 할지니라.”

하나님께서는 실로에 내리신 징벌의 역사적 사건을 기억케 하셨다. 실로는 여호수아가 가나안 땅을 정복하여 들어간 후 맨 처음으로 회막을 세운 곳이었다(수 18:1). 사무엘 시대에도 사람들은 실로에 올라가 하나님께 경배했다(삼상 1:3). 그러나 엘리와 그 아들들의 범죄로 법궤가 블레셋에 빼앗기고 엘리의 두 아들은 죽었다. 그 후, 실로는 더 이상 성지(聖地)가 되지 못했던 것 같다. 하나님의 이름을 두셨던 실로라도 그들의 죄 때문에 하나님께서 버리셨고 황폐케 하셨다. 또 이와 같이 북방 이스라엘도 멸망하였다. 하나님께서는 유다 백성에게도 같은 징벌을 내리실 것이다. 왜냐하면 그가 그들에게 새벽부터 부지런히 말씀하셔도 듣지 않고 부르셔도 대답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는, 그가 실로에 행하심같이 또 이스라엘에게 행하심같이, 유다 백성도 자기 앞에서 쫓아내실 것이라고 선언하신다.

[16-20절] 그런즉 너는 이 백성을 위하여 기도하지 말라. . . .

하나님께서는 말씀하신다. “그런즉 너는 이 백성을 위하여 기도하지 말라. 그들을 위하여 부르짖어 구하지 말라. 내게 간구하지 말라. 내가 너를 듣지 아니하리라.” 하나님께서 그들을 위해 기도하지 말라고 하시며 너의 기도를 듣지 않으시겠다고 하시는 것만큼 불행한 일은 없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그들을 향한 마지막 긍휼을 거두신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는 다시 유다 백성의 우상숭배를 지적하신다. “너는 그들이 유다 성읍들과 예루살렘 거리에서 행하는 일을 보지 못하느냐? 자식들은 나무를 줍고 아비들은 불을 피우며 부녀들은 가루를 반죽하여 하늘 황후를 위하여 과자를 만들며 그들이 또 다른 신들에게 전제를 부음으로 나의 노를 격동하느니라.” 유다 백성들은 유다 성읍들과 예루살렘 거리에서 우상을 섬겼다. 자녀들은 나무를 줍고 아비들은 불을 피우고 부녀들은 가루를 반죽하여 하늘 황후를 위해 과자를 만들며 이방 신들에게 전제를 부었다. ‘하늘 황후’는 달을 가리켰다고 본다. 바알은 해를, 아스다롯은 달을 가리켰다고 본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우상숭배 때문에 노하셨다. 그것은 십계명의 제1, 2계명을 범하는 큰 죄이었다. 하나님께서는 말씀하셨다.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그들이 나를 격노케 함이냐? 어찌 자기 얼굴에 수욕을 자취함이 아니냐? 그러므로 주 여호와 내가 이같이 말하노라. 보라 나의 진노와 분한을 이곳에 붓되 사람과 짐승과 들나무와 땅의 소산에 부으리니 불같이 살라지고 꺼지지 아니하리라.” 그것은 유다 백성 자신들이 자취한 일이었다. 하나님께서는 불같은 재앙을 그들에게 내리실 것이다.

본문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사람은 참으로 악하다. 이스라엘 백성은 그 예이다. 그들은 하나님의 많은 은혜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을 바로 섬기지 않았고 하나님의 계명을 저버렸고 바알과 아스다롯과 여러 이방신들을 섬겼고 도적질하고 살인하고 간음하고 거짓 맹세하였다. 구약교회는 강도의 소굴로 변질되고 타락하였다. 우리는 이스라엘 백성의 배교와 부패를 통해 사람이 얼마나 악한지 깨닫는다. 사람은 심히 죄악되고 선을 행하기에 너무 무력하다.

둘째로, 구원은 오직 하나님의 은혜와 긍휼로만 가능하다. 이것은 성경의 중요한 진리이다. 이스라엘 백성은 자신들의 행위로는 하나님 앞에서 구원을 받거나 왕국의 회복을 얻을 수 없다. 사람의 행위는 더러운 누더기 옷과 같다. 사람은 행위로 하나님 앞에 구원을 얻을 수 없다. 구원은 오직 하나님의 긍휼과 그리스도의 대속제물로만 가능하다. 그것이 성경이 증거하는 구원의 이치이며 대속의 원리이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하나님의 택하신 죄인들을 구원하시러 이 세상에 오셨고 십자가 위에서 대속의 죽음을 죽으셨다.

셋째로, 그러나 우리는 여전히 우리의 길과 행위를 바르게 해야 한다. 우리는 하나님을 경외하고 섬기며 선과 진실을 행해야 한다. 그러나 만일 우리가 끝까지 악을 버리지 않으면, 우리는 실로같이, 이스라엘같이, 또 유다같이 멸망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라도 완전히 버리시고 수치를 당하게 하실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바르게 살자.

 

21-34절, 살육의 골짜기

[21절]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이같이 . . . .

예레미야는,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이같이 말씀하시되 너희 희생에 번제물을 아울러 그 고기를 먹으라”고 말한다. 이 말씀은, 이스라엘 백성이 드리는 제물들과 번제물들이 하나님을 위한 제물이 아니니 그들의 배나 채우라는 뜻이라고 보인다. 하나님께서는 그런 형식적 제사를 요구한 적이 없으시다. 그는 이사야를 통해서도, “너희의 무수한 제물이 내게 무엇이 유익하뇨? . . . 너희가 내 앞에 보이러 오니 그것을 누가 너희에게 요구하였느뇨? 내 마당만 밟을 뿐이니라”고 말씀하셨었다(사 1:11-12).

[22-28절] 대저 내가 너희 열조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 . . .

하나님께서는 또 말씀하신다. “대저 내가 너희 열조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날에 번제나 희생에 대하여 말하지 아니하며 명하지 아니하고 오직 내가 이것으로 그들에게 명하여 이르기를 너희는 내 목소리를 들으라. 그리하면 나는 너희 하나님이 되겠고 너희는 내 백성이 되리라. 너희는 나의 명한 모든 길로 행하라. 그리하면 복을 받으리라 하였으나 그들이 청종치 아니하며 귀를 기울이지도 아니하고 자기의 악한 마음의 꾀와 강퍅한 대로 행하여 그 등을 내게로 향하고 그 얼굴을 향치 아니하였으며 너희 열조가 애굽 땅에서 나온 날부터 오늘까지 내가 내 종 선지자들을 너희에게 보내었으되 부지런히 보내었으나 너희가 나를 청종치 아니하며 귀를 기울이지 아니하고 목을 굳게 하여 너희 열조보다 악을 더 행하였느니라.”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의 조상들을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실 때에 번제나 다른 제사들을 요구하지 않으시고 먼저 하나님의 목소리 듣기를 요구하셨다(출 15:26; 19:5-6; 신 10:12-13).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의 음성을 듣지 않았다. 그들은 그의 음성을 듣지 않고 자기들의 악한 마음의 꾀와 완고한 마음으로 행하였다. 그들은 목을 굳게 하며 그 등을 하나님께로 향하고 그 얼굴을 향하지 않았고, 그들의 열조보다 더 많이 악을 행하였다.

하나님께서는 예레미야에게 말씀하신다. “네가 그들에게 이 모든 말을 할지라도 그들이 너를 청종치 아니할 것이요 네가 그들을 불러도 그들이 네게 대답지 아니하리니 너는 그들에게 말하기를 너희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목소리를 청종치 아니하며 교훈을 받지 아니하는 국민이라. 진실이 없어져 너희 입에서 끊어졌다 할지니라.”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의 말씀과 선지자의 설교를 듣지 않는 자들이며 또 그들의 입에는 진리와 진실이 없어졌다.

[29-34절] 예루살렘아, 너의 머리털을 베어 버리고 자산 . . . .

예레미야는 또 하나님의 말씀을 전한다. “예루살렘아, 너의 머리털을 베어 버리고 자산(赭山)[벌거숭이 산] 위에서 호곡할지어다. 여호와께서 그 노하신 바 이 세대를 끊어버리셨음이니라. 유다 자손이 나의 목전에 악을 행하여 내 이름으로 일컬음을 받는 집에 그들의 가증한 것을 두어 집을 더럽혔으며 힌놈의 아들 골짜기에 도벳 사당을 건축하고 그 자녀를 불에 살랐나니 내가 명하지 아니하였고 내 마음에 생각지도 아니한 일이니라. 그러므로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날이 이르면 이곳을 도벳이라 하거나 힌놈의 아들의 골짜기라 칭하지 아니하고 살육의 골짜기라 칭하리니 매장할 자리가 없도록 도벳에 장사함을 인함이니라. 이 백성의 시체가 공중의 새와 땅 짐승의 밥이 될 것이나 그것을 쫓을 자가 없을 것이라. 그때에 내가 유다 성읍들과 예루살렘 거리에 기뻐하는 소리, 즐기는 소리, 신랑의 소리, 신부의 소리가 끊쳐지게[끊어지게] 하리니 땅이 황폐하리라.”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을 노하셨고 그들을 거부하고 버리셨다고 말씀하신다. 그 까닭은 그들이 가증한 우상숭배를 하였기 때문이다. 우상숭배로 성전을 더럽힌 죄는 큰 죄악이다. 그것은 오늘날 예배, 즉 설교와 찬송의 부패에 비교될 수 있다. 또 그들은 힌놈의 아들 골짜기의 도벳 사당에서 그 자녀들을 불태워 제물로 드렸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명하지 않으신 바요 그 마음에 생각지도 않으신 바이었다. 우상에게 자녀들을 불태워 제물로 드렸던 도벳 곧 힌놈의 아들의 골짜기는 살육의 골짜기로 불릴 것이다. 거기에서 예루살렘 거민들과 유다 백성이 많이 죽임을 당할 것이다. 이 백성의 시체가 공중의 새와 땅 짐승의 밥이 될 것이나 그것들을 쫓을 자가 없을 것이다. 범죄한 사람의 가치는 매우 낮아서 그들이 짐승의 밥이 될 것이다. 유다 성읍들에는 기쁨과 즐거움의 소리가 없어질 것이다.

본문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청종하자.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의 말씀을 청종치 않다가 결국 멸망하고 말았다. 하나님께서 오늘 신약교회에게 요구하시는 바도 신구약성경을 읽고 그 말씀들을 마음에 두고 그 교훈을 힘써 행하는 것이다. 그것이 의(義)이다. 하나님의 명령은 우리의 행복을 위한 것이다. 우리는 그 계명을 순종할 때 기쁨과 평안, 형통과 복을 누릴 수 있다.

둘째로, 우리는 우리 자신의 꾀와 악한 마음의 완고함을 버려야 한다. 이스라엘은 자기의 악한 마음의 꾀와 완고함으로 행했다. 사람의 본성은 죄악되며 사람은 육신으로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다. 자기 중심적 사고는 매우 큰 악이다. 우리가 하나님을 섬기려면 우선 자신을 부정해야 하고 자기 꾀와 악한 마음의 완고함을 버려야 한다.

셋째로, 우리는 하나님의 집을 더럽히지 말자.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집을 더럽혔다. 신약교회는 하나님의 집이며 진리의 기둥과 터이다(딤전 3:15). 그러므로 우리는 교회를 더럽히지 말자. 우리는 교회를 교회답게 만들자. 오늘날 교회 안에 들어온 세상적인 풍조들을 배격하고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가 경건하고 거룩한 예배가 되도록 힘쓰자.

 

 

8장: 이스라엘의 완고함

1-12절, 유다 백성의 죄와 멸망

[1-3절]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그때에 사람들이 유다 왕들의 . . . .

예레미야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한다.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그때에 사람들이 유다 왕들의 뼈와 그 방백들의 뼈와 제사장들의 뼈와 선지자들의 뼈와 예루살렘 거민의 뼈를 그 묘실에서 끌어내어 그들의 사랑하며 섬기며 순복하며 구하며 경배하던 해와 달과 하늘의 뭇 별 아래 쬐리니 그 뼈가 거두이거나 묻히지 못하여 지면에서 분토 같을 것이며.” 1절의 ‘사람들’은 바벨론 군대를 가리킬 것이다.

그들은 유다 땅을 정복하고 유다 왕들의 뼈와 그 방백들의 뼈와 제사장들의 뼈와 선지자들의 뼈와 예루살렘 거민의 뼈를 그 묘실에서 끌어내어 모욕할 것이다. 사람의 시신을 매장하는 것은 사람의 기본적 도리이며 예의인데, 바벨론 군인들은 그들의 뼈를 그 묘실에서 끌어내어 해와 달과 별들 아래 쪼일 것이다. 그들이 사랑하며 섬기며 순복하며 구하며 경배하던 해와 달과 별들이지만 그것들은 그들을 보호해주지 못할 것이다. 그 뼈들은 거두이거나 묻히지 못하여 땅 위의 분토[똥, 쓰레기]같이 될 것이다.

예레미야는 또 말한다. “이 악한 족속의 남아 있는 자, 무릇 내게 쫓겨나서 각처에 남아 있는 자가 사는 것보다 죽는 것을 원하리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우상숭배에 대한 하나님의 보복은 이렇게 이루어질 것이다. 하나님의 심판은 참으로 무서울 것이다. 남아 있는 자들조차도 사는 것보다 죽음을 원할 것이다.

[4-7절] 너는 또 그들에게 말하기를 여호와의 말씀에 사람이 . . . .

예레미야는 말한다. “너는 또 그들에게 말하기를 여호와의 말씀에 사람이 엎드러지면 어찌 일어나지 아니하겠으며 사람이 떠나갔으면 어찌 돌아오지 아니하겠느냐? 이 예루살렘 백성이 항상 나를 떠나 물러감은 어찜이뇨? 그들이 거짓을 고집하고 돌아오기를 거절하도다.” ‘떠나 물러감’이라는 원어(메슈바)는 ‘배교, 변절’이라는 뜻이다. 이스라엘은 일시적으로 범죄한 것이 아니고 계속 배교하였다. 또 그들은 거짓을 고집하고 회개하기를 거절하였다. 그들에게는 진심의 회개가 없었다.

하나님께서는 또 말씀하신다. “내가 귀를 기울여 들은즉 그들이 정직을 말하지 아니하며 그 악을 뉘우쳐서 나의 행한 것이 무엇인고 말하는 자가 없고 전장을 향하여 달리는 말같이 각각 그 길로 행하도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에게서 바른 말을 들을 수 없으셨고 또 그들의 악을 뉘우치는 말을 들을 수 없으셨다. 그들은 전쟁터의 말들처럼 자기들의 길로만 정신 없이 달려갔다.

하나님께서는 또 말씀하신다. “공중의 학은 그 정한 시기를 알고 반구와 제비와 두루미는 그 올 때를 지키거늘 내 백성은 여호와의 규례를 알지 못하도다.” ‘학’이라는 원어(카시다)는 ‘황새’를 가리키고(BDB), ‘반구’는 ‘멧비둘기’를, ‘제비’라는 원어(수스)는 ‘제비’(swallow)(KJV)나 ‘칼새’(swift)(NASB, NIV)를 가리킨다고 한다. ‘두루미’라는 원어(아구르)는 뜻이 분명치는 않지만, ‘두루미나 학’(crane)(KJV) 혹은 ‘개똥지빠귀’(thrush)(NASB, NIV)를 뜻할 것이라고 한다(BDB, KB). 황새나 멧비둘기나 제비나 학은 그 정한 시기를 알고 그 올 때를 지키지만,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의 규례를 알지 못하고 지키지 않았다. 그들은 새보다도 못한 것이다.

[8-12절] 너희가 어찌 우리는 지혜가 있고 우리에게는 . . . .

하나님께서는 말씀하신다. “너희가 어찌 우리는 지혜가 있고 우리에게는 여호와의 율법이 있다 말하겠느뇨? 참으로 서기관의 거짓 붓이 거짓되게 하였나니 지혜롭다 하는 자들은 수욕을 받으며 경황 중에 잡히리라. 보라, 그들이 나 여호와의 말을 버렸으니 그들에게 무슨 지혜가 있으랴.” “참으로 서기관의 거짓 붓이 거짓되게 하였다”는 원문은 “보라, 참으로 그가 거짓되이 하였도다. 서기관들의 붓이 거짓되도다”라는 뜻이라고 본다(MT, KJV).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저버렸으므로 지혜가 없다.

하나님께서는 또 말씀하신다. “그러므로 내가 그들의 아내를 타인에게 주겠고 그들의 전지(田地)를 그 차지할 자들에게 주리니 그들은 가장 작은 자로부터 큰 자까지 다 탐람하며 선지자로부터 제사장까지 다 거짓을 행함이라. 그들이 딸 내 백성의 상처를 심상히 고쳐주며 말하기를 평강하다, 평강하다 하나 평강이 없도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의 아내들을 다른 사람들에게 주고 그들의 토지를 그 차지할 자들에게 줄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그 까닭은 그들이 어른이나 아이나 다 탐욕적이고 선지자나 제사장까지도 다 거짓을 행하기 때문이다. 탐욕과 거짓이 이스라엘 사회의 주요한 죄악이었다.

선지자들과 제사장들은 하나님의 백성의 상처를 심상히 고쳐주며 말하기를 ‘평안하다, 평안하다’고 하지만, 실상 평안이 없었다. ‘심상히’라는 원어(알 네칼라)는 ‘가볍게, 대수롭지 않게, 피상적으로’라는 뜻이다(BDB). 평안은 단지 사람의 축원으로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평안은 하나님께서 주셔야 얻을 수 있다.

하나님께서는 또 말씀하신다. “그들이 가증한 일을 행할 때에 부끄러워하였느냐? 아니라. 조금도 부끄러워 아니할 뿐 아니라 얼굴도 붉어지지 아니하였느니라. 그러므로 그들이 엎드러질 자와 함께 엎드러질 것이라. 내가 그들을 벌할 때에[그들의 심판 날에] 그들이 거꾸러지리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그들의 양심은 매우 무디어졌고 마음은 굳어졌다. 그들은 가증한 악을 행하면서 부끄러워하거나 얼굴이 붉어지지 않았다.

본문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죄에는 보응이 있다. 사람은 다른 사람의 죄를 다 알지 못할지라도, 하나님께서는 모든 것을 다 보시고 판단하시고 선악간에 보응하신다. 사람은 그 행한 대로 공의의 보응을 받을 것이다. 사람은 심은 대로 거둘 것이다. 로마서 2:6-8은,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그 행한 대로 보응하시되 참고 선을 행하여 영광과 존귀와 썩지 아니함을 구하는 자에게는 영생으로 하시고 오직 당을 지어 진리를 좇지 아니하고 불의를 좇는 자에게는 노와 분으로 하시리라”고 말했다. 또 갈라디아서 6:7-8도, “스스로 속이지 말라. 하나님은 만홀히 여김을 받지 아니하시나니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 자기의 육체를 위하여 심는 자는 육체로부터 썩어진 것[썩는 것]을 거두고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는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두리라”고 말했다. 우리는 하나님의 공의의 보응을 잊지 말자.

둘째로, 우리는 하나님의 규례를 알고 그것을 지키자. 5절, “이 예루살렘 백성이 항상 나를 떠나 물러감은 어찜이뇨? 그들이 거짓을 고집하고 돌아오기를 거절하도다.” 7절, “공중의 학은 그 정한 시기를 알고 반구와 제비와 두루미는 그 올 때를 지키거늘 내 백성은 여호와의 규례를 알지 못하도다.” 9절, “보라, 그들이 나 여호와의 말을 버렸으니 그들에게 무슨 지혜가 있으랴.” 우리는 새보다 못한 자가 되지 말자. 우리는 하나님의 규례를 알고 그 규례를 지키는 지혜자가 되자.

셋째로, 우리는 특히 탐욕과 거짓을 추방하자. 우리는 결국 하나님이냐 세상이냐 둘 중 하나를 택해야 한다. 세상 속에 돈과 쾌락, 명예와 권세가 포함된다. 또 우리는 거짓이냐 진리냐 둘 중 하나를 택해야 한다.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사람의 모든 철학과 종교들은 거짓이다. 거기에는 사람의 변명들만 있고 거짓된 평강의 약속만 있다. 그러나 참된 평안이 없고 그 끝은 파멸일 뿐이다. 오직 하나님의 말씀만 진리이며 그 진리를 믿고 회개하는 자들에게 죄사함과 평안이 있다.

 

13-22절, 유다의 멸망을 예고함

[13-14절]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내가 그들을 진멸하리니 . . . .

예레미야는 또 말한다.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내가 그들을 진멸하리니 포도나무에 포도가 없을 것이며 무화과나무에 무화과가 없을 것이며 그 잎사귀가 마를 것이라. 내가 그들에게 준 것이 없어지리라 하셨나니 우리가 어찌 가만히 앉았으랴.” 하나님께서는 유다의 멸망을 예고하신다. 그는 “내가 그들을 진멸하리라”고 말씀하신다. 하나님께서 심판자이시다. 심판의 결과는 무엇인가? 포도나무에 포도가 없을 것이며 무화과나무에 무화과가 없을 것이며 그 잎사귀가 마를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유다 백성에게 먹을것을 제거하실 것이다. 그는 “내가 그들에게 준 것이 없어지리라”고 말씀하신다. 포도나 무화과는 다 하나님께서 주신 복이었고 이제 하나님께서 그것들을 제거하실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그럴 권한을 가지고 계신다.

예레미야는 또 말한다. “모일지어다. 우리가 견고한 성읍들로나 들어가서 거기서 멸망하자. 우리가 여호와께 범죄하였으므로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서 우리를 멸하시며 우리에게 독한 물을 마시우심이니라.” ‘멸망하자’는 원어(닛데마)는 ‘조용히 있자’(KJV, BDB)는 뜻이다. ‘멸하시며’라는 원어(하딤마누)는 ‘잠잠케 하시며’(KJV) 또는 ‘멸하시며’(NASB, NIV)라는 뜻이다(BDB). 하나님의 재앙의 원인은 그들이 여호와께 범죄하였기 때문이다. 죄가 근본적 문제이다. 죄 때문에 하나님의 심판과 멸망이 온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다 없애실 것이다. 그는 그들에게 독한 물, 독극물, 사약(死藥)을 마시우실 것이다. 그들은 사약을 마시며 죽게 될 것이다.

[15-17절] 우리가 평강을 바라나 좋은 것이 없으며 고치심을 . . . .

예레미야는 또 말한다. “우리가 평강을 바라나 좋은 것이 없으며 고치심을 입을 때를 바라나 놀라움(베아사)[당황함, 낭패, 공포]뿐이로다.” 사람은 평안과 회복을 원하지만, 죄의 길에는 그런 좋은 것이 없고 당황한 일과 낭패와 두려움뿐이다.

예레미야는 또 말한다. “그 말의 부르짖음이 단에서부터 들리고 그 준마들의 우는 소리에 온 땅이 진동하며 그들이 이르러 이 땅과 그 소유와 성읍과 그 중의 거민을 삼켰도다.” 단은 이스라엘 땅의 북방 국경 지역에 있다.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 군대의 말들의 소리가 북방 국경에서 들려온다. 오늘날 말로 하면, 요란한 탱크와 전투기 소리이다. 그들이 쳐들어와 온 땅을 황폐하게 만들 것이다.

예레미야는 또 말한다.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내가 술법으로도 제어할 수 없는 뱀과 독사를 너희 중에 보내리니 그것들이 너희를 물리라 하시도다.” 하나님의 심판과 재앙은 사람의 수단과 방법으로 막을 수 없고 피할 수 없을 것이다. 사람은 하나님을 피하려 해서는 안 된다. 그는 오직 철저히 회개하고 믿고 순종해야 한다.

[18-22절] 슬프다, 나의 근심이여. 어떻게 위로를 얻을 수 . . . .

예레미야는 또 말한다. “슬프다, 나의 근심이여. 어떻게 위로를 얻을 수 있을까? 나의 중심이 번뇌하도다.” 원문의 뜻은 옛날 영어성경과 비슷한 것 같다. “내가 슬픔 대신 기쁨을 바랐으나 내 마음이 심히 피곤하도다(혹은 ‘기절할 것 같도다’).”

예레미야는 또 말한다. “딸 내 백성의 심히 먼 땅에서 부르짖는 소리로다.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시온에 계시지 아니한가? 그 왕이 그 중에 계시지 아니한가? 그러나 여호와께서는 이르시기를 그들이 어찌하여 그 조각한 신상과 이방의 헛된 것들로 나를 격노케 하였는고 하시니.” ‘심히 먼 땅’은 포로로 잡혀간 땅을 가리킨다.

여호와 하나님, 이스라엘의 왕이요 온 우주와 통치자이신 하나님께서 시온에 계심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하나님의 도우심을 받지 못하였다. 왜 그러하였는가? 그것은 하나님의 무능력 때문이 아니고, 그들의 우상숭배의 죄악 때문이었다. 이사야 59:1-2도 말한다. “여호와의 손이 짧아 구원치 못하심도 아니요 귀가 둔하여 듣지 못하심도 아니라. 오직 너희 죄악이 너희와 너희 하나님 사이를 내었고 너희 죄가 그 얼굴을 가리워서 너희를 듣지 않으시게 함이니.” 사람들의 죄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구원할 수 없으시고 기도 응답을 주거나 회복시킬 수 없으시고 원수를 물리칠 수 없으시다.

예레미야는 또 말한다. “추수할 때가 지나고 여름이 다하였으나 우리는 구원을 얻지 못한다 하는도다. 딸 내 백성이 상하였으므로 나도 상하여 슬퍼하며 놀라움에 잡혔도다. 길르앗에는 유향이 있지 아니한가? 그곳에는 의사가 있지 아니한가? 딸 내 백성이 치료를 받지 못함은 어찜인고.” 이스라엘 백성은 추수의 복 대신 화와 재앙을 당할 것이다. 그들은 구원을 얻지 못할 것이다. 유향은 치료약제로 쓰였다. 길르앗에는 유향이 많았고 자연히 의사들도 많았을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들을 치실 때에는 치료할 약이 없을 것이다. 좋은 병원이 소용없고 좋은 약이 소용없을 것이다. 하나님께서 돕지 않으시면, 사람은 고침을 받을 수 없고 회복될 수 없다.

본문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우리는 하나님의 절대주권을 더욱 더 깨닫자. 하나님께서는 친히 그들을 진멸하시며 사약을 주실 것이며 친히 술법으로도 제어할 수 없는 뱀과 독사를 그들에게 보내실 것이다. 복과 재앙은 다 주권적 섭리자 하나님께서 주시는 것이다.

둘째로, 우리는 하나님의 재앙이 사람의 죄 때문에 옴을 알자. 특히 그들은 우상숭배의 죄 때문에 하나님을 격노하시게 만들었다. 우리는 모든 불행의 원인이 죄임을 알고 죄를 철저히 회개하고 멀리하자.

셋째로, 우리는 하나님의 재앙이 사람의 수단, 방법으로 막을 수 없고 피할 수 없음을 알자. 오직 하나님께 돌아감으로만 회복이 가능하다(렘 3:14, 22). 하나님의 긍휼과 철저한 회개만이 인생의 살 길이다.

 

 

9장: 이스라엘의 멸망을 슬퍼함

1-11절, 선지자의 눈물

[1-2절] 어찌하면 내 머리는 물이 되고 내 눈은 눈물 근원이 . . . .

예레미야는 말한다. “어찌하면 내 머리는 물이 되고 내 눈은 눈물 근원이 될꼬. 그렇게 되면 살육당한 딸 내 백성을 위하여 주야로 곡읍하리로다.” ‘눈물 근원’은 ‘눈물샘’이라는 뜻이다. 예레미야는 자기 백성 이스라엘이 살육당함을 인해 주야로 눈물로 통곡하기를 원한다. 사람의 출생과 죽음은 사람의 삶에서 큰 일이며, 살육당함이라는 비극적 종말은 더욱 그러하다.

예레미야는 또 말한다. “어찌하면 내가 광야에서 나그네의 유할 곳을 얻을꼬. 그렇게 되면 내 백성을 떠나가리니 그들은 다 행음하는 자요 패역한 자(보게딤)[배신자들]의 무리가 됨이로다.” ‘행음하는 자’라는 말은 육적 행음자뿐 아니라, 특히 영적 행음자 곧 우상숭배자를 뜻한다. 선지자는, 행음하며 패역한 백성과 함께 있는 것이 싫어서 그들을 멀리 떠나 광야에서 나그네처럼 한 곳에서 조용히 쉬기를 원한다. 그는 악인들과 함께 거하기를 원치 않는다.

[3-6절]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그들이 활을 당김같이 그 혀를 . . . .

예레미야는 또 하나님의 말씀을 전한다.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그들이 활을 당김같이 그 혀를 놀려 거짓을 말하며 그들이 이 땅에서 강성하나 진실하지 아니하고[진리를 위해 용감하지 않으며](MT, KJV) 악에서 악으로 진행하며 또 나를 알지 아니하느니라.”

하나님께서 지적하신 이스라엘의 죄악은 두 가지이었다. 하나는 거짓을 말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악을 행하는 것이었다. 이스라엘 백성은 활을 당김같이 그 혀를 놀려 거짓을 말하였다. ‘활을 당김같이’라는 표현은 거짓말을 쏘아대고 뱉어댄다는 뜻일 것이다. 또 그들은 진리를 위해 용감하지 않았다. 사람이 거짓을 책망하고 거절하려면 또 외로운 길이라도 가려면 용기가 필요한데 그들은 진리를 위해 용감하지 않았고 비겁하고 비굴하게 거짓말을 하였던 것이다.

또 그들은 악에서 악으로 진행하였다. 즉 그들은 악에서 시작하여 악으로 진행하는 자들, 곧 악으로 충만한 자들이었다. 또 그들은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자들이다. 모든 죄악의 뿌리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데 있다. 하나님을 아는 자는 거짓말할 수 없고 이웃에게 악을 행할 수 없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진리의 하나님이시며 거짓말을 정죄하시고, 또 하나님의 뜻은 우리가 이웃을 사랑하고 선하게 사는 것이며 사랑은 이웃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말씀하신다. “너희는 각기 이웃을 삼가며 아무 형제든지 믿지 말라. 형제마다 온전히 속이며 이웃마다 다니며 비방함이니라. 그들은 각기 이웃을 속이며 진실을 말하지 아니하며 그 혀로 거짓말하기를 가르치며 악을 행하기에 수고하거늘 네 처소는 궤휼[거짓] 가운데 있도다. 그들은 궤휼[거짓]로 인하여 나 알기를 싫어하느니라. 나 여호와의 말이니라.”

이스라엘 백성은 다니며 거짓말로 남을 비방하였다. 바른 말이라도 남을 비판하는 말은 조심해야 한다. 왜냐하면 우리는 재판자가 아니고 법을 지켜야 하는 자이기 때문이다. 부득이, 진리와 교회를 위해 이단사설을 비평해야 할 때가 있다. 그러나 거짓말로 이웃을 비방하는 행위야말로 하나님 앞에서 참으로 악한 일이다.

[7-9절] 만군의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보라, 내가 . . . .

예레미야는 또 말한다. “만군의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보라, 내가 내 딸 백성을 어떻게 처치할꼬. 그들을 녹이고 연단하리라. 그들의 혀는 죽이는2) 살이라. 거짓을 말하며 입으로는 그 이웃에게 평화를 말하나 중심에는 해(害)를 도모하는도다. 내가 이 일들을 인하여 그들에게 벌하지 아니하겠으며 내 마음이 이런 나라에 보수(報讐)하지 않겠느냐? 여호와의 말이니라.”

하나님께서는 거짓과 악이 충만한 이스라엘 백성을 가만히 버려두지 않으실 것이다. 그는 그들을 고난과 환난의 시련으로 녹이고 연단하실 것이다. 하나님께서 친히 그렇게 하실 것이다. 그들의 혀는 죽이는 살과 같았다. 그들은 거짓을 행하며 입으로는 평화를 말하나 중심에는 해를 도모하였다. 그들은 말로 사람을 죽이는 자들이었다. 사람이 거짓말로 악을 행하고 이웃을 해치는 것은 세상적 욕심 즉 물욕과 명예욕 때문이다(약 4:1-2).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이 일을 인해 그들에게 벌하시며 보수(報讐)하시겠다고 말씀하신다.

[10-11절] 내가 산들을 위하여 곡하며 부르짖으며 광야 목장을 . . . .

예레미야는 또 말한다. “내가 산들을 위하여 곡하며 부르짖으며 광야 목장을 위하여 슬퍼하나니 이는 그것들이 불에 탔으므로 지나는 자가 없으며 거기서 가축의 소리가 들리지 아니하며 공중의 새도 짐승도 다 도망하여 없어졌음이니라. 내가 예루살렘으로 무더기를 만들며 시랑의 굴혈이 되게 하겠고 유다 성읍들로 황폐케 하여 거민이 없게 하리라.”

예레미야는 이스라엘 땅을 위해 통곡한다. 그러나 그것은 하나님의 통곡이기도 할 것이다. 본문은 때때로 선지자와 하나님을 구별하지 않는다. ‘내가’라는 단어는 때로는 선지자를, 때로는 하나님을 가리킨다. 선지자는 그 땅이 불에 탔고 지나는 자가 없고 가축 소리도 들리지 않고 공중의 새도 짐승도 다 도망했기 때문에 통곡한다고 말한다. 그 땅은 과연 전쟁으로 황폐케 되고 실제로 불타기도 할 것이며 지나는 자들이 없고 가축은 다 빼앗기고 죽거나 흩어지고 공중의 새나 들짐승도 전쟁에 놀라 멀리 도망칠 것이다. 예루살렘은 쓰레기 더미처럼 될 것이며 사나운 들짐승들의 소굴로 버려질 것이다. 유다 성읍들은 황폐케 되고 거기 거하는 사람들이 없을 것이다.

본문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죄의 결과는 하나님의 징벌이다. 하나님께서는 사랑과 용서의 하나님인 동시에 진노하시는 하나님이시다. 온 세상을 공의로 심판하시는 하나님께서는 죽지 않으셨다. 하나님께서는 “내가 이 일들을 인하여 그들에게 벌하지 아니하겠으며 내 마음이 이런 나라에 보수하지 않겠느냐?”고 말씀하신다. 하나님께서는 오늘날도 죄를 회개치 않는 자들에게 엄하게 벌하실 것이다.

둘째로, 그러므로 우리는 모든 죄를 회개해야 한다. 이스라엘 백성은 행음과 패역 곧 배신, 그 혀로 거짓을 말하는 것, 이웃을 비방함, 악을 행하는 것, 또 근본적으로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것을 회개해야 했다. 우리는 불경건과 배신, 우상숭배, 돈 사랑, 세상 사랑을 회개하자. 우리는 육적인 행음도 회개하고 멀리하자. 우리는 거짓말을 쉽게 지어내고 내뱉는 악을 회개하자. 또 우리는 남을 비방하고 남을 해치는 악을 회개하자. 우리는 양심에 거리끼는 모든 종류의 죄를 회개하자. 그래야 살고 그래야 평안을 얻고 그래야 형통함을 얻을 것이다.

셋째로, 우리는 회개치 않는 자들을 위해 기도하며 울자. 예레미야는 유다의 멸망을 내다 보면서 눈물로 통곡하였다. 하나님께서 내리시는 멸망의 재앙이 곧 임할 것이다. 오늘날 교회들의 경건성과 도덕성은 어떠한가? 오늘 시대는 세상이 교회 속에 다 들어와서 세상과 교회의 구별이 없는 시대가 아닌가? 목사들과 교인들이 돈과 명예와 육신적 쾌락을 사랑하는 시대가 아닌가? 우리는 우리나라를 위해 기도하고, 특히 우리나라의 해이해진 교회들과 배교적인 세계 교회들을 위해 눈물로 기도하자. 온 세상의 종말이 가까이 오고 있다고 생각된다.

 

12-26절, 애곡하라

[12-16절] 지혜가 있어서 이 일을 깨달을 만한 자가 누구며 . . . .

예레미야는 유다 땅의 멸망에 대해 말한다. “지혜가 있어서 이 일을 깨달을 만한 자가 누구며 여호와의 입의 말씀을 받아서 광포할 자가 누구인고. 이 땅이 어찌하여 멸망하여 광야같이 타서 지나는 자가 없게 되었느뇨?” 예레미야는 유다 땅이 멸망하여 광야같이 되며 지나는 자가 없게 되는 것이 하나님의 입의 말씀임을 말한다.

예레미야는 또 유다 땅의 멸망의 원인에 대해 하나님의 말씀을 전한다.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이는 그들이 내가 그들의 앞에 세운 나의 법을 버리고 내 목소리를 청종치 아니하며 그대로 행치 아니하고 그 마음의 강퍅함(쉐리루스)[완고함]을 따라 그 열조가 자기에게 가르친 바알들을 좇았음이라.” 유다 나라의 멸망의 이유는 하나님을 거역하고 우상을 섬긴 죄 때문이다. 그들은 하나님의 법을 버리고 그의 목소리를 듣지 않고 그 말씀대로 행치 않고 그 마음의 완고함을 따라 이방신들을 섬겼다. 그것은 십계명의 1계명을 범한 죄이었다. 우상숭배는 모든 죄의 뿌리이다.

예레미야는 또 하나님의 심판을 선언한다. “그러므로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 내가 말하노라. 보라, 내가 그들 곧 이 백성에게 쑥을 먹이며 독한 물을 마시우고 그들과 그들의 조상이 알지 못하던 열국 중에 그들을 헤치고 진멸되기까지 그 뒤로 칼을 보내리라 하셨느니라.” ‘독한(로쉬  var) 물’은 ‘독 있는 물’이라는 뜻이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독극물 곧 사약을 마시게 하시고 그들을 열국 중에 흩으시고 칼을 보내어 완전히 멸망시키실 것이다.

[17-22절] 만군의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너희는 잘 . . . .

예레미야는 또 하나님의 말씀을 전한다. “만군의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너희는 잘 생각하고 곡하는 부녀를 불러오며 또 보내어 지혜로운[능숙한] 부녀를 불러오되 그들로 빨리 와서 우리를 위하여 애곡하게 하여 우리의 눈에서 눈물이 떨어지게 하며 우리 눈꺼풀에서 물이 쏟아지게 하라.” 하나님께서는 곡하는 부녀들을 불러와 곡하게 함으로 유다 백성으로 애곡하게 하라고 말씀하신다.

그들이 애곡해야 할 이유는 슬픈 일 곧 완전한 멸망과 큰 수욕을 당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는 시온에서 호곡하는 소리가 들려 이르기를 우리가 아주 망하였구나. 우리가 크게 수욕을 당하였구나. 우리가 그 땅을 떠난 것은 그들이 우리 주택을 헐었음이로다 함이로다.” 유다 백성은 멸망하고 뿔뿔이 흩어질 것이다.

예레미야는 또 말한다. “부녀들이여, 여호와의 말씀을 들으라. 너희 귀에 그 입의 말씀을 받으라. 너희 딸들에게 애곡을 가르치며 각기 이웃에게 애가를 가르치라.” 어른들뿐 아니라, 그들의 자녀들도 또 이웃 사람들도 애가를 배우며 애곡하게 하라고 말씀하신다.

예레미야는 또 말한다. “대저 사망이 우리 창문에 올라오며 우리 궁실에 들어오며 밖에서는 자녀와 거리에서는 청년들을 멸절하려 하느니라. 너는 이같이 이르라. 여호와의 말씀에 사람의 시체가 분토[배설물, 똥]같이 들에 떨어질 것이며 추수하는 자의 뒤에 떨어지고 거두지 못한 뭇같이 되리라 하셨느니라.” 유대 백성과 그 자녀들과 청년들은 많이 죽을 것이며 그 시체들이 들에 즐비할 것이다.

[23-24절]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지혜로운 자는 . . . .

예레미야는 또 말한다.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지혜로운 자는 그 지혜를 자랑치 말라. 용사는 그 용맹을 자랑치 말라. 부자는 그 부함을 자랑치 말라. 자랑하는 자는 이것으로 자랑할지니 곧 명철하여 나를 아는 것과 나 여호와는 인애와 공평과 정직[의]을 땅에 행하는 자인 줄 깨닫는 것이라. 나는 이 일을 기뻐하노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사람들은 자신들의 지혜나 용기나 물질적인 부요를 자랑하지 말아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땅에서 인애와 공의를 행하시며 그 일들을 기뻐하시는 자이시다. 그러므로 이스라엘 백성은 세상의 것들을 자랑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만 자랑해야 한다.

[25-26절]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날이 이르면 할례받은 자와 . . . .

선지자는 또 말한다.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날이 이르면 할례받은 자와 할례받지 못한 자를 내가 다 벌하리니 곧 애굽과 유다와 에돔과 암몬 자손과 모압과 및 광야에 거하여 그 머리털을 모지게 깎은 자들[머리 모퉁이를 깎은 자들, 관자놀이 위의 머리털을 깎은 자들]에게라. 대저 열방은 할례를 받지 못하였고 이스라엘은 마음에 할례를 받지 못하였느니라 하셨느니라.”

본문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죄악된 나라는 망한다.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께서 그들 앞에 세운 하나님의 법을 버리고 그의 목소리를 청종치 아니하며 그대로 행치 아니하고 그 마음의 완고함을 따라 그 열조가 자기에게 가르친 바알들을 좇았다(13-14절). 그들은 멸망하고 수치와 욕을 당할 것이다. 둘째로, 죄인들은 회개하고 애곡해야 한다. 그들은 죄의 값이 멸망인 것을 깨닫고 우상숭배와 음란을 버리고 하나님께로 나와야 한다. 죄인들은 철저히 회개하고 애곡해야 한다. 하나님의 구하시는 제사는 어느 시대에나 상한 심령이다(시 51:17). 셋째로, 우리는 세상의 것을 자랑하지 말고 하나님만 자랑하자. 23- 24절,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지혜로운 자는 그 지혜를 자랑치 말라. 용사는 그 용맹을 자랑치 말라. 부자는 그 부함을 자랑치 말라. 자랑하는 자는 이것으로 자랑할지니 곧 명철하여 나를 나는 것과 나 여호와는 인애와 공평과 정직을 땅에 행하는 자인 줄 깨닫는 것이라.” 세상 것은 아무것도 아니다. 하나님의 심판의 날에 그것들은 아무 도움이 되지 못하고 아무 소용이 없을 것이다. 우리는 세상의 것을 자랑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만 자랑하자.

 

 

10장: 열방의 길을 배우지 말라

1-16절, 우상 대신 참 하나님을

[1-5절] 이스라엘 집이여,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이르시는 . . . .

예레미야는 말한다. “이스라엘 집이여,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이르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열방의 길을 배우지 말라. 열방인은 하늘의 징조를 두려워하거니와 너희는 그것을 두려워 말라. [이는] 열방의 규례는 헛된 것이라[것임이라].”

여호와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열방의 길을 배우지 말라,” “하늘의 징조를 두려워 말라”고 말씀하셨다. ‘열방의 길’은 이방 사람들의 종교적 행위, 즉 우상숭배의 행위를 가리킨다. ‘하늘의 징조’는 이방인들이 미신적으로 세상의 어떤 기쁜 일이나 슬픈 일에 결부시키는 해와 달과 별들의 어떤 징조들을 가리킨다. 이방인들은 그 징조들을 두려워하지만, 우리는 그것들을 두려워할 것이 없다. 왜냐하면 ‘열방의 규례’ 즉 우상숭배의 풍습은 헛된 것이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는 또 말씀하신다. “그 위하는 것은 삼림에서 벤 나무요 공장의 손이 도끼로 만든 것이라. 그들이 은과 금으로 그것에 꾸미고 못과 장도리[마치, 망치]로 그것을 든든히 하여 요동치 않게 하나니 그것이 갈린 기둥[오이밭의 기둥, 허수아비] 같아서 말도 못하며 걸어다니지도 못하므로 사람에게 메임을 입느니라. 그것이 화를 주거나 복을 주지 못하나니 너희는 두려워 말라.”

이방인들이 섬기는 우상들은 삼림에서 벤 나무들이며 기술자들이 도끼로 찍고 칼로 다듬고 거기에 은과 금으로 꾸미고 못과 망치로 단단히 고정하여 흔들리지 않게 한 것이다. 그것은 마치 오이밭의 허수아비 같아서(BDB, KB, NASB, NIV) 말도 못하고 걸어다니지도 못하므로 사람들이 메고 옮긴다. 그것들은 화를 주거나 복을 주지 못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것들을 두려워할 것이 없다.

[6-10절] 여호와여, 주와 같은 자 없나이다. 주는 크시니 주의 . . . .

예레미야는 또 말한다. “여호와여, 주와 같은 자 없나이다. 주는 크시니 주의 이름이 그 권능으로 인하여 크시니이다. 열방의 왕이시여, 주를 경외치 아니할 자가 누구리이까? 이는 주께 당연한 일이라. 열방의 지혜로운 자들과 왕족 중에 주와 같은 자 없음이니이다.”

세상에는 하나님과 비교할 자가 아무도 없다. 하나님께서는 크시며 그 권능이 크시다. 하나님께서는 ‘열방의 왕’ 곧 온 세상의 왕이시다. 그는 온 세상을 홀로 통치하신다. 이 사실을 아는 자는 그를 경외치 않을 수 없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열방의 지혜로운 자들과 왕족들 중에 주와 같은 자는 없다.

예레미야는 또 말한다. “그들은 다 무지하고 어리석은 것이니 우상의 도는 나무뿐이라. 다시스에서 가져온 은박과 우바스에서 가져온 금으로 꾸미되 공장(工匠)과 장색의 손으로 만들었고 청색 자색 감으로 그 옷을 삼았나니 이는 공교한 사람의 만든 것이어니와.”

예레미야는 우상숭배의 어리석음을 증거한다. 우상숭배자는 다 무지하고 어리석은 자들이다. 왜냐하면 우상은 나무뿐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나무에다 다시스에서 가져온 은박과 우바스에서 가져온 금으로 꾸미되 기술자들의 손으로 만들었고, 청색 자색 천으로 옷을 만드는 기술 좋은 사람들이 만든 것이다.

예레미야는 또 말한다. “오직 여호와는 참 하나님이시요 사시는 하나님이시요 영원한 왕이시라. 그 진노하심에 땅이 진동하며 그 분노하심을 열방이 능히 당치 못하느니라.” 우상들은 가짜 신들이지만, 여호와께서는 참 하나님이시다. 그는 살아계신 하나님이시며 영원한 왕이시다. 그는 실제로 온 우주를 통치하시는 능력자이시다. 그 진노하심에 땅이 진동하고 그 분노하심을 열방이 능히 당할 수 없다. 그는 공의로 세상을 다스리시고 악인들의 악을 징벌하신다.

[11-16절] 너희는 이같이 그들에게 이르기를 천지를 짓지 . . . .

예레미야는 또 말하기를, “너희는 이같이 그들에게 이르기를 천지를 짓지 아니한 신들은 땅 위에서, 이 하늘 아래서 망하리라 하라”고 한다. 본절은 원문에서 아람어로 되어 있다. 천지를 짓지 않은 신들은 온 세상에서 멸망할 것이다. 모든 우상은 결국 다 망할 것이다.

이와 대조하여, 예레미야는 여호와 하나님에 대해 증거한다. “여호와께서 그 권능으로 땅을 지으셨고 그 지혜로 세계를 세우셨고 그 명철로 하늘들을 펴셨으며 그가 목소리를 발하신즉 하늘에 많은 물이 생기나니 그는 땅끝에서 구름이 오르게 하시며 비를 위하여(람마타르)[혹은 ‘비올 때’(KJV, NIV)] 번개하게 하시며 그 곳간에서 바람을 내시거늘.” 여호와 하나님은  천지만물을 그의 지혜와 명철, 그의 권능으로 창조하셨다. 또 그는 물과 구름, 비와 번개, 그리고 바람을 주관하시는 섭리자 하나님이시다.

그러므로 예레미야는 또 말한다. “사람마다 우준하고 무식하도다. 금장색마다 자기의 조각한 신상으로 인하여 수치를 당하나니 이는 그 부어만든 우상은 거짓 것이요 그 속에 생기가 없음이라. 그것들은 헛것이요 망령되이 만든 것인즉 징벌하실 때에 멸망할 것이나 야곱의 분깃은 이같지 아니하시니 그는 만물의 조성자요 이스라엘은 그 산업의 지파라. 그 이름은 만군의 여호와시니라.”

우상은 금장색이 부어만든 것이다. 그것은 신이 아니다. 그것은 거짓 것이요 그 속에 생기가 없다. 그것은 헛것이며 ‘망령되이 만든 것’ 곧 ‘조롱받을 작품’(NASB, NIV)이다. 그것은 결국 다 멸망할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우상과 다르다. 그는 만물의 조성자 곧 창조자이시며 이스라엘을 자기의 특별한 소유로 삼으신 자이시다. 그의 이름은 만군의 여호와이시다. 그는 하늘의 천군천사들을 소유하시고 사용하시고 동원하시고 능력으로 행하시는 하나님이시다.

본문에 담긴 중요한 진리와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우리는 우상의 헛됨을 알자. 우상은 나무일 뿐이다. 8절, “우상의 도는 나무뿐이라.” 우상은 나무에다 금이나 은을 입힌 것이다. 그것은 거짓 것이며 생기가 없으며 헛것이며 조롱을 받을 만한 것이다. 14-15절, “그 부어만든 우상은 거짓 것이요 그 속에 생기가 없음이라. 그것들은 헛것이요 망령되이 만든 것인즉.” 우상은 가짜 신이며 죽은 우상에 불과하다. 그것들은 결국 다 멸망할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열방의 길을 배우지 말라”고 말씀하셨다(2절). 우리는 이방 종교를 배우지 말고 우상숭배를 배우지 말고 이방 종교에서 통찰력을 얻으려 하지 말고 또 이방 신들이나 미신적 행위들을 두려워하지 말아야 한다.

둘째로, 우리는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알고 하나님만 바로 섬기며 그의 뜻과 계명만 힘써 순종하자. 하나님께서는 전능하신 하나님이시며 온 세계의 왕이시다. 6-7절, “여호와여, 주와 같은 자 없나이다. 주는 크시니 주의 이름이 그 권능으로 인하여 크시니이다. 열방의 왕이시여, 주를 경외치 아니할 자가 누구리이까?” 하나님께서는 살아계신 참 하나님이시며 천지만물을 창조하신 자이시요 홀로 섭리하시는 자이시다. 10-12절, “오직 여호와는 참 하나님이시요 사시는 하나님이시요 영원한 왕이시라. 그 진노하심에 땅이 진동하며 그 분노하심을 열방이 능히 당치 못하느니라. 너희는 이같이 그들에게 이르기를 천지를 짓지 아니한 신들은 땅 위에서, 이 하늘 아래서 망하리라 하라. 여호와께서 그 권능으로 땅을 지으셨고 그 지혜로 세계를 세우셨고 그 명철로 하늘들을 펴셨으며.” 16절, “그는 만물의 조성자요.” 하나님께서는 온 세상의 창조주이시며 왕 곧 섭리자, 통치자이시다. 그러므로 우리는 참 하나님 곧 창조자와 섭리자이신 여호와 하나님을 알고 그를 경외하고 그를 사랑하고 그를 높이고 그를 섬기고 그의 뜻과 계명만 순종하자.

 

17-25절, 다가오는 하나님의 진노

[17-18절] 에워싸인 가운데 앉은 자여, 네 꾸러미를 이 땅에서 . . . .

예레미야는 또, “에워싸인 가운데 앉은 자여, 네 꾸러미[짐꾸러미]를 이 땅에서 수습하라(이스피  yPis]a)[모으라]”고 말한다. ‘에워싸인 가운데 앉은 자’는 장차 포위될 유다 성읍의 사람들을 가리킨다. 본문은 유다 성읍의 사람들이 포로로 잡혀갈 것이므로 짐을 싸서 이주하기 위해 떠날 준비를 하라는 것이다.

예레미야는 또 말한다.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보라 내가 이 땅에 거하는 자를 이번에는 내어던질 것이라. 그들을 괴롭게 하여 깨닫게 하리라 하셨느니라.” 하나님께서 ‘내어던지신다’는 것은 그가 그 땅에 사는 자들을 내버리신다는 뜻이다. 하나님께서 유다를 내버리실 것이다. 그들은 고난을 당하며 멸망할 것이다. 그러나 그 고난을 통해 그들은 하나님과 인생의 바른 길을 깨닫게 될 것이다.

[19-20절] 슬프다, 내 상처여. 내가 중상을 당하였도다. . . .

예레미야는 또 말한다. “슬프다, 내 상처여. 내가 중상(重傷)을 당하였도다. 그러나 내가 말하노라. 이는 참으로 나의 고난이라. 내가 참아야 하리로다. 내 장막이 훼파되고 나의 모든 줄이 끊어졌으며 내 자녀가 나를 떠나가고, 있지 아니하니 내 장막을 세울 자와 내 장(帳)[휘장]을 칠 자가 다시 없도다.” 예레미야는 유다 백성이 중상(重傷)을 당할 것을 말한다. 그들의 장막이 파괴되고 그 모든 줄이 끊어졌고 자녀들이 떠나가 버렸고 있지 아니하므로 그들의 장막을 세울 자가 없고 그들의 휘장을 칠 자가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유다 백성이 그러한 고난을 받아야 한다고 말한다. 그것은 그들이 그 죄로 인해 하나님 앞에서 받아야 할 당연한 징벌이었기 때문이다.

[21-22절] 목자들은 우준하여 여호와를 찾지 아니하므로 . . . .

예레미야는 또 말한다. “[이는] 목자들이 우준하여 여호와를 찾지 아니하므로[아니함이로다. 그러므로 그들이] 형통치 못하며 그 모든 양떼는 흩어졌도다. 들을지어다, 북방에서부터 크게 떠드는 풍성이 오니 유다 성읍들로 황폐케 하여 시랑의 거처가 되게 하리로다.” 그는 유다 나라의 멸망의 이유를 말한다. 그것은 유다의 목자들,곧 왕과 방백들과 제사장들과 선지자들 등 유다 지도자들의 어리석음과 불경건 때문이다. 그들은 어리석어서 하나님을 찾지 아니하였다. 또 유다 지도자들의 죄 때문에 유다 백성도 부패하였다. 그러므로 유다 지도자들의 죄 때문에 유다 나라는 형통치 못하고 그 모든 양떼 곧 모든 백성은 흩어지고 그 온 땅은 황폐하게 될 것이다.

오늘날 교회에서 범죄한 교인이 회개치 않고 교회를 떠나는 것은 양들이 흩어지는 것은 아니다. 믿음 없는 자나 위선자나 악한 자는 교회에서 책망과 징계의 대상이며 예수님 때도, 초대교회 때도 그러했다. 또 교인이 다른 교회로 출석하는 것도 큰 문제는 아닐 것이다. 그러나 교회 직분자들이나 교인들의 위선과 부도덕함 때문에 교인들이 방황하고 교회를 떠나는 일이 있다면 그것은 큰 문제이다.

[23절] 여호와여, 내가 알거니와 인생의 길이 자기에게 있지 . . . .

예레미야는 “여호와여, 내가 알거니와 인생의 길이 자기에게 있지 아니하니 걸음을 지도함이 걷는 자에게 있지 아니하니이다”라고 말한다. 이것은 그의 신앙 지식과 고백이며 진리이다. 인생의 길은 자기 자신에게 있지 않고 오직 창조주이시며 섭리자이신 하나님께 있다. 그러므로 잠언 16:9는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 걸음을 인도하는 자는 여호와시니라”고 말하고, 잠언 20:24는 “사람의 걸음은 여호와께로서 말미암나니 사람이 어찌 자기의 길을 알 수 있으랴”라고 말한다. 사람의 길은 자신의 계획대로 되지 않는다. 하나님께서는 특히 성도의 악한 계획을 헛되게 만드신다. 오직 하나님의 뜻만 이 땅 위에서 다 이루어질 것이다.

[24-25절] 여호와여, 나를 징계하옵시되 너그러이 하시고 . . . .

예레미야는 또 말한다. “여호와여, 나를 징계하옵시되 너그러이(베미쉬파트)[법도대로, 공의대로](KJV, NASB, NIV) 하시고 진노로 하지 마옵소서. 주께서 나로 없어지게 하실까 두려워하나이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백성들이라도 범죄할 때는 그의 공의대로 징계하신다. 그러나 그를 죽여 없어지게 하지는 않으신다. 그는 그의 긍휼로 그들의 죄를 용서하시고 다시 회복케 하신다. 그러므로 예레미야 애가 3:22는, “여호와의 자비와 긍휼이 무궁하시므로 우리가 진멸되지[다 죽지] 아니함이니이다”라고 말한다.

그러나 예레미야는 또, “주를 알지 못하는 열방과 주의 이름으로 기도하지 아니하는 족속들에게 주의 분노를 부으소서. 그들은 야곱을 씹어 삼켜 멸하고 그 거처를 황폐케 하였나이다”라고 말한다. 그는 이방인들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을 호소한다. 하나님께서는 악인들은 완전히 멸망시키실 것이다. 그는 악인들의 악행에 대해 그의 공의의 영원한 형벌로 벌하실 것이다. 그것은 특히 그들이 하나님의 백성들을 먹었고 삼켰고 멸하였고 황폐케 하였기 때문이다.

본문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범죄치 말자. 우리는 하나님을 찾지 않는 불경건의 죄와 그의 계명들을 어기는 부도덕의 죄를 멀리하자. 죄가 이방인들의 멸망의 이유이며 하나님의 백성의 징계의 이유이다. 우리가 살려면 범죄치 말아야 한다.

둘째로, 우리는 범죄한 것이 있으면 회개하자. 물론, 사람은 행위로 하나님 앞에 설 수 없다. 우리의 의는 구주 예수님의 십자가 대속사역뿐이다. 그러나 우리는 예수님의 십자가를 붙들고 철저히 회개하자.

셋째로, 우리는 오직 하나님만 의지하며 살아가자. 인생의 걸음은 자기에게 있지 않고 오직 하나님께 있다. 하나님은 주권적 섭리자이시다. 그러므로 우리는 오직 하나님만 의지하고 그의 뜻에 순종하자.

 

 

 11장: 하나님의 언약을 깨뜨렸음

[1-5절] 여호와께로부터 예레미야에게 임한 말씀이라. 가라사대 . . . .

여호와께서는 예레미야에게 말씀하셨다. “너희는 이 언약의 말을 듣고 유다인과 예루살렘 거민에게 고하라. 그들에게 이르기를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이 언약의 말을 좇지 않는 자는 저주를 받을 것이니라. 이 언약은 내가 너희 열조를 쇠풀무 애굽 땅에서 이끌어 내던 날에 그들에게 명한 것이라. 곧 내가 이르기를 너희는 나의 목소리를 청종하고 나의 모든 명령을 좇아 행하라. 그리하면 너희는 내 백성이 되겠고 나는 너희 하나님이 되리라. 내가 또 너희 열조에게 한 맹세 곧 그들에게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을 주리라 한 언약을 이루리라 한 것인데 오늘날이 그것을 증거하느니라 하라.” 예레미야는 “아멘, 여호와여”라고 대답하였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을 쇠풀무 불 같은 고난을 받던 애굽에서 이끌어 내시던 때에 시내산에서 그들에게 언약의 말씀을 주셨다. 그 주요한 내용이 십계명이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그의 명령을 듣고 행하기를 요구하셨다. 그 언약에는 약속과 경고가 들어 있었다(레 26장; 신 28장). 그들이 하나님의 명령을 지키면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에 들어가 복을 누릴 것이지만, 그들이 하나님의 명령을 지키지 않으면 저주를 받아 멸망할 것이다.

[6-8절]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너는 이 모든 말로 . . . .

여호와께서는 또 예레미야에게 유다 성읍들과 예루살렘 거리에서 선포할 말씀을 다음과 같이 주셨다. “너희는 이 언약의 말을 듣고 준행하라. 내가 너희 열조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날부터 오늘까지 간절히 경계하며 부지런히 경계하기를 너희는 내 목소리를 청종하라 하였으나 그들이 청종치 아니하며 귀를 기울이지도 아니하고 각각 그 악한 마음의 강퍅한 대로[완고한 대로] 행하였으므로 내가 그들에게 행하라 명하였어도 그들이 행치 아니한 이 언약의 모든 말로 그들에게 응하게 하였느니라.”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이 언약의 말을 듣고 준행하라고 간절히, 부지런히 명하셨지만, 그들은 그 악한 마음의 완고함을 따라 행하고 하나님의 명령을 지키지 않았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그 언약에서 경고하신 모든 재앙을 그들에게 내리실 것이다.

[9-13절] 여호와께서 또 내게 이르시되 유다인과 예루살렘 . . . .

여호와께서는 또 말씀하셨다. “유다인과 예루살렘 거민 중에 반역이 있도다. 그들이 내 말 듣기를 거절한 자기들의 선조의 죄악에 돌아가서 다른 신들을 좇아 섬겼은즉 이스라엘 집과 유다 집이 내가 그 열조와 맺은 언약을 파하였도다.” 이스라엘 백성과 유다 백성은 하나님을 반역하였고 하나님의 언약을 파기했다. 그러므로 그 언약의 파기는 그 언약에 규정된 벌칙을 가져올 것이다.

따라서 하나님께서는 유다 백성에게 재앙을 내리겠다고 말씀하셨다. “그러므로 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보라, 내가 재앙을 그들에게 내리리니 그들이 피할 수 없을 것이라. 그들이 내게 부르짖을지라도 내가 듣지 아니할 것인즉 유다 성읍들과 예루살렘 거민이 그 분향하는 신들에게 가서 부르짖을지라도 그 신들이 그 곤액[재난] 중에서 절대로 그들을 구원치 못하리라.” 그들은 하나님의 재앙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그들은 자기들이 섬기던 신들에게 가서 구해도 아무런 도움을 얻지 못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유다야, 네 신들이 네 성읍의 수효와 같도다. 너희가 예루살렘 거리의 수효대로 그 수치되는 물건의 단 곧 바알에게 분향하는 단을 쌓았도다”라고 말씀하신다. 유다 백성은 멸망한 북방 이스라엘 백성처럼 우상숭배에 깊이 빠져 있었다. 그것은 십계명의 제1계명을 범한 죄악이었다. 사람이 제1계명을 범하면 다른 계명들은 자연히 무너질 것이다. 그들이 섬기던 신들의 수는 그들의 성읍 수만큼이나 많았다. 그들은 많은 바알들에게 분향하는 단을 쌓았다.

[14-17절] 그러므로 너는 이 백성을 위하여 기도하지 말라. . . .

하나님께서는 또 말씀하신다. “그러므로 너는 이 백성을 위하여 기도하지 말라. 그들을 위하여 부르짖거나 구하지 말라. 그들이 그 곤액을 인하여 내게 부르짖을 때에 내가 그들을 듣지 아니하리라.” 이스라엘 백성이 악한 마음의 완고함으로 행하고 하나님의 언약을 어기고 하나님을 향해 반역하고 다른 신들을 섬겼을 때, 즉 그들이 배교하였을 때,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향하신 긍휼을 거두셨다.

하나님께서는 또 말씀하신다. “나의 사랑하는 자가 많이 행음하였으므로 거룩한 제육[제물]이 그에게서 떠났거늘 나의 집에서 무엇을 하는고. 그가 악을 행하며 기뻐하도다”(KJV). 원문의 뜻은 분명치 않아서 영어번역들도 서로 다르다. 한글개역성경의 난외주에는 고대 헬라어 70인역의 본문이 소개되어 있다: “내 사랑하는 자가 가증한 일을 행하였거늘 내 집에 있음은 어찜이뇨? 서원이나 거룩한 고기가 죄악을 없게 하겠으며 혹 이것을 피하겠느냐?”(NASB와 비슷함).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또 재앙을 선언하신다. “나 여호와가 그 이름을 일컬어 좋은 행실[열매] 맺는 아름다운 푸른 감람나무라 하였었으나 큰 소동 중에 그 위에 불을 피웠고 그 가지는 꺾였도다. 바알에게 분향함으로 나의 노를 격동한 이스라엘 집과 유다 집의 악을 인하여 그를 심은 만군의 여호와 내가 그에게 재앙을 선언하였느니라.” 하나님의 재앙은 특히 그들의 우상숭배에 대한 징벌이었다.

[18-23절] 여호와께서 내게 알게 하셨으므로 내가 그것을 . . . .

악한 유다 사람들은 심지어 하나님의 말씀을 전한 선지자를 은밀히 해하려고 하였다. 예레미야는 말한다. “여호와께서 내게 알게 하셨으므로 내가 그것을 알았나이다. 그때에 주께서 그들의 행위를 내게 보이셨나이다. 나는 끌려서 잡히러[죽으러] 가는 순한 어린양과 같으므로 그들이 나를 해하려고 꾀하기를 우리가 그 나무와 과실(베라크모)[그것의 양식, 그것의 열매]을 함께 박멸하자. 그를 산 자의 땅에서 끊어서 그 이름으로 다시 기억되지 못하게 하자 함을 내가 알지 못하였나이다.” ‘나무와 그 양식’은 예레미야와 그의 설교 사역을 가리킨 것 같다.

예레미야는 뒤늦게 그들의 음모를 알고 하나님께 호소한다. “공의로 판단하시며 사람의 심장을 감찰하시는 만군의 여호와여, 나의 원정[원통한 사정]을 주께 아뢰었사오니 그들에게 대한 주의 보수(報讐)[보복]를 내가 보리이다.”

그때 여호와께서는 아나돗 사람들에 대하여 이렇게 말씀하셨다. “그들이 네 생명을 취하려고 찾아 이르기를 너는 여호와의 이름으로 예언하지 말라. 두렵건대 우리 손에 죽을까 하노라 하도다. 그러므로 만군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보라, 내가 그들을 벌하리니 청년들은 칼에 죽으며 자녀들은 기근에 죽고 남는 자가 없으리라. 내가 아나돗 사람에게 재앙을 내리리니 곧 그들을 벌할 해에니라.” 예레미야의 고향인 아나돗의 사람들은 그들을 책망하는 예언을 하지 말라고 그를 위협하였다. 공공연하게 하나님의 말씀을 대적하는 것은 참으로 악한 일이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재앙을 내리실 것이다. 그들의 청년들은 전쟁에서 칼에 죽을 것이며 자녀들은 전쟁으로 인해 굶어 죽고 남은 자가 없을 것이다.

본장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사람은 심히 부패되어 있다.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의 많은 은혜를 입었지만, 그를 거역하였고 불순종하였다. 그들은 하나님과 맺은 언약을 파기한 자들이었다. 그들은 영적으로 행음한 자들이었다. 그들은 열렬한 우상숭배자이었다. 그들의 신들은 그들의 성읍의 수효와 같이 많았다. 또 그들은 하나님께서 보내신 선지자들을 배척하였다. 우리는 사람의 심히 죄악됨을 깨닫자. 오늘날 우리의 죄악은 무엇인가? 우리는 하나님을 마음을 다해 경외하고 섬기며 순종하는가? 우리는 아직도 세상의 것들, 돈이나 육신의 쾌락을 하나님처럼, 아니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지는 않는가?

둘째로, 죄는 하나님의 재앙을 가져온다. 하나님께서는 유대 백성의 배교와 우상숭배에 대해 재앙을 선언하셨다. 그들은 하나님의 재앙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서 긍휼을 거두셨고 그들을 그 재앙 가운데 버려두실 것이다. 그들은 칼과 기근으로 죽임을 당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예레미야에게 “너는 이 백성을 위하여 기도하지 말라”고 말씀하셨다. 우리는 죄와 하나님의 재앙을 두려워하자.

셋째로, 하나님의 뜻은 여전히 하나님의 계명을 순종하는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을 향하신 하나님의 뜻은 그의 음성을 듣고 그의 계명을 순종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이 그가 간절히 명하신 십계명을 잘 지키기를 원하셨다. 계명의 순종은 율법의 핵심적 요구이다. 우리는 율법을 행함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지 못하였으므로 하나님의 아들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 사역에 근거하여 그를 믿음으로 죄사함과 의롭다 하심을 얻었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주신 하나님의 새 언약의 내용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 바 되셔서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다(갈 3:13). 또 그는 모든 믿는 자에게 의를 이루기 위해 율법의 마침이 되셨다(롬 10:4). 그러나 하나님의 뜻은 여전히 신자들이 하나님의 말씀 곧 성경의 교훈을 듣고 행하는 것이다. 주께서는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고 말씀하셨다(마 7:21). 선한 행위는 구원의 조건은 아니지만, 구원의 증거가 된다. 참된 믿음은 순종의 행위를 수반한다.

 

 

12장: 악한 자의 형통을 보고 피곤치 말라

[1-4절] 여호와여, 내가 주와 쟁변할 때에는 주는 의로우 . . . .

예레미야는 또 말한다. “여호와여, 내가 주와 쟁변할 때에는 주는 의로우시니이다. 그러나 내가 주께 질문하옵나니[내가 (주의) 공의에 대해 주께 말하리이다](KJV, NASB, NIV) 악한 자의 길이 형통하며 패역한 자가 다 안락함[평안함]은 무슨 연고니이까? 주께서 그들을 심으시므로 그들이 뿌리가 박히고 장성하여 열매를 맺었거늘 그들의 입은 주께 가까우나 그 마음은 머니이다.”

예레미야의 질문 혹은 하나님께 올린 탄원은 악한 자들이 왜 형통하며 패역한 자들이 왜 다 평안한가 하는 것이었다. 이것은 성도들이때때로 가지는 질문이다. 욥도 비슷한 말을 했고 시편 73편 저자도 그러하였다(욥 21:7-15; 시 73:3-12). 이때 성도는 하나님의 공의의 섭리, 공의의 보응을 의심치 말아야 하고 하나님의 공의를 믿지 않는 불신앙에 떨어지지 말아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뜻 가운데 그들을 버려두시는 듯하지만, 마침내 하나님의 공의의 보응이 시행될 것이다. 하나님의 공의의 보응과 섭리는 죽지 않았다.

예레미야는 또 말한다. “여호와여, 주께서 나를 아시고 나를 보시며 내 마음이 주를 향하여 어떠함을 감찰하시오니 양을 잡으려고[죽이려고] 끌어냄과 같이 그들을 끌어내시되 죽일 날을 위해 그들을 예비하옵소서. 언제까지 이 땅이 슬퍼하며 온 지방의 채소가 마르리이까? 짐승과 새들도 멸절하게 되었사오니 이는 이 땅 거민이 악하여 스스로 말하기를 그가 우리의 결국을 보지 못하리라 함이니이다.”

예레미야는 하나님께서 자신을 감찰하심을 믿는다. 하나님께서는 살아계셔서 성도들의 중심을 아시고 살피신다. 예레미야는 하나님께서 하나님을 무시하고 악을 행하는 자들을 공의로 징벌하시기를 호소한다. 그는 하나님 앞에 담대히 말했다. 평소에 양심의 거리낌 없이 사는 자만 담대함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5-6절] 네가 보행자와 함께 달려도 피곤하면 어찌 능히 말과 . . . .

하나님께서는 선지자의 탄원에 대해 응답하셨다. “네가 보행자와 함께 달려도 피곤하면 어찌 능히 말과 경주하겠느냐? 네가 평안한 땅에서는 무사하려니와[안심하려니와] 요단의 창일한 중에서는 어찌하겠느냐?” 요단의 ‘창일함’이라는 원어(가온)는 ‘위엄’이라는 뜻이다. 그것은 ‘모맥 거두는 시기에 요단강의 넘침’(KJV)을 가리키든지, ‘사자들이 숨는 요단강변의 위험한 울창한 숲’(NASB, NIV, BDB)을 가리킬 것이다. 여하튼, 그것은 큰 환난의 때를 상징한다.

이 말씀은, 사람이 평안한 때나 작은 고난의 때에 피곤하고 낙심한다면, 어떻게 큰 고난의 때에 잘 견딜 수 있겠는가라는 뜻이다. 주 예수께서는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고 말씀하셨고(요 16:33), 사도 바울도 “너희가 주 안에서와 그 힘의 능력으로 강건하여지라”고 말하며 전신갑주를 입으라고 하였다(엡 6:10-11).

예레미야는 또 말한다. “네 형제와 아비의 집이라도 너를 속이며 네 뒤에서 크게 외치나니 그들이 네게 좋은 말을 할지라도 너는 믿지 말지니라.” 형제들과 친척들이라도 우리를 속이고, 때때로 우리로 믿음에서 떠나게 하며 불신앙으로 유인하고 낙심케 만드는 경우가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사람을 너무 신뢰치 말아야 한다. 주께서는 “사람의 원수가 자기 집안 식구이리라”고 말씀하셨다(눅 10:36).

[7-13절] 내가 내 집을 버리며 내 산업을 내어던져 내 마음의 . . . .

7-17절은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 이스라엘을 버리심과 장차 회복시키심에 대해 예언한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을 ‘내 집’(7절), ‘내 산업’(7, 8, 9, 14절), ‘내 마음의 사랑하는 것’(7절), ‘내 포도원, 내 분깃, 나의 낙토’(10절), ‘내 백성’(14, 16, 16, 16절)이라고 부르신다. 하나님께서는 시내산에서 모세에게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의 말을 잘 듣고 그의 언약을 지키면 열국 중에서 그의 소유[특별한 보화]와 거룩한 백성이 되리라고 말씀하셨었다(출 19:5-6). 또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너는 여호와 네 하나님의 성민(聖民)이라.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지상 만민 중에서 너를 자기 기업의 백성으로 택하셨도다”라고 말하였다(신 7:6).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예레미야에게 그가 그의 택한 백성을 버리시겠다고 선언하시는 것이다. “내가 내 집을 버리며 내 산업을 내어던져 내 마음의 사랑하는 것을 그 대적의 손에 붙였노니 내 산업이 삼림 중의 사자같이 되어서 나를 향하여 그 소리를 발하는 고로 내가 그를 미워하였음이로라. 내 산업이 내게 대하여는 무늬 있는 매가 아니냐? 매들이 그를 에워싸지 아니하느냐? 너희는 가서 들짐승들을 모아다가 그것을 삼키게 하라.” 하나님께서 그들을 버리시는 까닭은 그들이 사자같이, 매들같이 하나님을 향해 불평하고 원망하고 대적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미워하셨다.

하나님께서는 또 말씀하신다. “많은 목자가 내 포도원을 훼파하며 내 분깃을 유린하여 나의 낙토로 황무지를 만들었도다. 그들이 이를 황무케 하였으므로 그 황무지가 나를 향하여 슬퍼하는도다. 온 땅이 황무함은 이를 개의하는 자가 없음이로다.” ‘많은 목자’는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과 그와 동맹한 왕들과 지도자들을 가리킬 것이다. 그들로 인해 이스라엘 나라와 그 땅이 황폐케 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또 말씀하신다. “훼멸하는 자들이 광야 모든 자산 위에 이르렀고 여호와의 칼이 땅 이끝에서 저끝까지 삼키니 무릇 혈육 있는 자가 평안치 못하도다. 무리가 밀을 심어도 가시를 거두며 수고하여도 소득이 없은즉 그 소산으로 인하여 스스로 수치를 당하리니 이는 여호와의 분노를 인함이니라.” 바벨론 군대는 ‘훼멸하는 자’로, ‘여호와의 칼’로 올 것이다. 이스라엘의 멸망과 황폐함은 하나님의 칼과 분노로 인함이다. 그것은 하나님의 심판과 징벌이다. 왜 진노하시는가? 그것은 그들의 불경건, 우상숭배, 불평, 원망, 하나님 대항, 부도덕, 음란, 거짓, 미움, 사악함 등의 죄악 때문이다.

[14-17절] 내가 내 백성 이스라엘에게 산업으로 준 산업을 . . . .

하나님께서는 이제 이스라엘의 회복에 대해 말씀하신다. “내가 내 백성 이스라엘에게 산업으로 준 산업을 다치는 나의 모든 악한 이웃에게 대하여 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보라, 내가 그들을 그 땅에서 뽑아버리겠고 유다 집은 그들 중에서 뽑아내리라.”

‘하나님의 모든 악한 이웃’은 앗수르와 바벨론 같은 나라들이다. 하나님께서는 다른 강대한 제국을 사용하여 그들을 멸망시키실 것이다. 역사상, 앗수르는 바벨론에 의해, 바벨론은 메대 파사에 의해 멸망되었다. 이방 나라들의 멸망은 유다의 구원과 회복이 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유다 집을 그들 중에서 뽑아내실 것이다. 이 예언은 파사 왕 고레스 때에 유다인들의 포로 귀환으로 성취되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또한 놀라운 말씀을 하신다. “내가 그들을 뽑아낸 후에 내가 돌이켜 그들을 긍휼히 여겨서 각 사람을 그 산업으로, 각 사람을 그 땅으로 다시 인도하리니 그들이 내 백성의 도를 부지런히 배우며 사는 여호와 내 이름으로 맹세하기를 자기들이 내 백성을 가리켜 바알로 맹세하게 한 것같이 하면 그들이 내 백성 중에 세움을 입으려니와 그들이 그리하지 아니하면 내가 반드시 그 나라를 뽑으리라. 뽑아 멸하리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하나님께서는 이방 나라들을 멸망시키신 후 그 나라들을 긍휼히 여기시고 회복시키실 것도 예언하신 것이다. 즉 하나님께서는 이방인들에 대해서도 긍휼을 베푸실 것이다. 만일 그들이 하나님의 백성의 도를 부지런히 배우며 그들이 살아계신 여호와 하나님의 이름으로 맹세하면 그들이 하나님의 백성 중에 세움을 입을 것이다. 하나님의 이름으로 맹세하는 것은 하나님을 살아계신 참되신 하나님으로, 세상의 최고의, 최종의 권위자로, 만복의 근원으로, 그리고 그를 거스르면 화를 당할 것으로 인정하는 것을 뜻한다. 이방인들이 구원을 얻을 것이다. 이 말씀은 신약시대에 우리에게서 성취되었다.

본장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우리는 악인의 형통을 인해 불평하지 말고 낙심하지도 말자. 우리는 하나님의 공의의 섭리를 의심하지 말자. 5절, “네가 보행자와 함께 달려도 피곤하면 어찌 능히 말과 경주하겠느냐? 네가 평안한 땅에서는 무사하려니와 요단의 창일한 중에서는[사자들이 있는 위험한 곳에서는] 어찌하겠느냐?”

둘째로, 우리는 하나님의 공의의 심판을 믿고 두려워하자. 하나님께서는 자기의 택한 백성이라 할지라도 하나님을 대적할 때 그를 버리셨다. 그는 자기 백성의 불경건, 우상숭배, 불평, 원망, 하나님을 대적함, 부도덕, 음란, 거짓, 미움, 사악함 등의 죄악을 결코 용납하지 않으셨다. 그는 그들을 향해 진노하시고 징벌하셨다. 우리는 하나님의 공의의 심판을 믿고 두려워하자. 우리는 모든 죄를 미워하고 멀리하자.

셋째로, 우리는 하나님의 긍휼을 감사하며 하나님의 도를 부지런히 배우고 실천하자. 구원은 하나님께 달려 있다. 그는 자기 백성을 긍휼로 구원하시고 또 이방인들을 긍휼로 구원하신다. 15-16절, “내가 돌이켜 그들을 긍휼히 여겨서 각 사람을 그 산업으로, 각 사람을 그 땅으로 다시 인도하리니” 요한복음 3:16,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오늘 우리가 그의 긍휼을 입은 자들이다. 이제 우리는 하나님의 긍휼을 감사하며 그의 말씀을 부지런히 배우고 믿고 실천하자.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열심히 읽고 배우고 믿고 행하자.

 

 

13장: 이스라엘의 교만을 낮추실 것

[1-7절] 여호와께서 이같이 내게 이르시되 너는 가서 베띠를 . . . .

여호와께서는 예레미야에게 “너는 가서 베띠를 사서 네 허리에 띠고 물에 두지 말라”고 말씀하셨다. 예레미야는 여호와의 말씀대로 띠를 사서 허리에 띠었다. 여호와의 말씀이 다시 그에게 임하셨다. “너는 사서 네 허리에 띤 띠를 가지고 일어나 유브라데로 가 거기서 그것을 바위틈에 감추라.” 예레미야는 여호와께서 자기에게 명하신 대로 가서 그것을 유브라데 물가에 감추었다. 그것은 이스라엘 백성이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갈 것을 암시하였다. 여러 날 후에 여호와께서는 그에게 또 말씀하셨다. “일어나 유브라데로 가서 내가 네게 명하여 거기 감추게 한 띠를 취하라.” 그는 유브라데로 가 그 감추었던 곳을 파고 띠를 취하였는데 띠가 썩어서 쓸데없이 되었다.

[8-11절]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하니라. 가라사대 . . . .

그때 여호와의 말씀이 그에게 임하였다.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가 유다의 교만과 예루살렘의 큰 교만을 이같이 썩게 하리라. 이 악한 백성이 내 말 듣기를 거절하고 그 마음의 강퍅한 대로 행하며 다른 신들을 좇아 그[그들]를 섬기며 그[그들]에게 절하니 그들이 이 띠의 쓸데없음같이 되리라.” 사람의 교만은 하나님의 말씀 듣기를 거절하고 자기의 생각대로 행하며 우상숭배와 계명을 불순종하는 데로 나아간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교만을 부수실 것이다.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또 말씀하셨다.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띠가 사람의 허리에 속함같이 내가 이스라엘 온 집과 유다 온 집으로 내게 속하게 하여 그들로 내 백성이 되게 하며 내 이름과 칭예(테힐라)[찬송]와 영광이 되게 하려 하였으나 그들이 듣지 아니하였느니라.” 이스라엘 백성을 향하신 하나님의 기대는 컸다. 그것은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하나님의 영광을 누리게 하려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범죄함으로 하나님의 그 기대를 저버렸고 하나님의 복을 물리쳤다. 이것이 인생이며 인류의 역사요 세상의 현실이다. 사람은 심히 부패하고 무지하고 죄악된 존재이다.

[12-14절] 그러므로 너는 이 말로 그들에게 이르기를 . . . .

하나님께서는 또 예레미야에게 말씀하셨다. “그러므로 너는 이 말로 그들에게 이르기를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에 모든 병이 포도주로 차리라 하셨다 하라. 그리하면 그들이 네게 이르기를 모든 병이 포도주로 찰 줄을 우리가 어찌 알지 못하리요 하리니 너는 다시 그들에게 이르기를 여호와의 말씀에 보라 내가 이 땅의 모든 거민과 다윗의 위에 앉은 왕들과 제사장들과 선지자들과 예루살렘 모든 거민으로 잔뜩 취하게 하고 또 그들로 피차 충돌하여 상하게 하되 부자간에도 그러하게 할 것이라. 내가 그들을 불쌍히 여기지 아니하며 관용치 아니하며[아끼지 아니하며] 아끼지[긍휼히 여기지] 아니하고 멸하리라 하셨다 하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이 비유에서 언급된 포도주는 기쁨과 즐거움의 포도주가 아니고 죄악과 혼란과 진노의 포도주를 가리켰다. 유다 백성은 죄악이 충만하여 마치 술 취한 사람이 제 정신을 잃고 거칠고 혼란스러운 말을 하고 행동을 하듯 하며 서로 다투고 스스로 멸망할 것이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내리시는 진노의 징벌이다. 사람이 바른 정신을 가지면 서로 사랑하고 서로 위하고 어느 정도 건설적일 것이지만, 술 취한 자들은 서로 다투고 파괴적일 뿐이다.

[15-19절] 너희는 들을지어다, 귀를 기울일지어다, 교만하지 . . . .

예레미야는 또 말한다. “너희는 들을지어다. 귀를 기울일지어다. 교만하지 말지어다.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느니라. 그가 흑암을 일으키시기 전, 너희 발이 흑암한 산에 거치기 전, 너희 바라는 빛이 사망의 그늘로 변하여 침침한 흑암이 되게 하시기 전에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 영광을 돌리라.” 교만이 근본적 죄악이다. 죄인은 교만을 버리지 않고는 하나님께로 돌아올 수 없다. 하나님께서 심판하셔서 슬픔과 불행의 어두움이 오기 전에 그는 하나님을 인정하고 그에게로 돌아와야 한다. 경건은 모든 도덕의 기초이다.

예레미야는 또 말한다. “너희가 이를 듣지 아니하면 나의 심령이 너희 교만을 인하여 은근히(베미스타림)[은밀한 곳들에서] 곡할 것이며 여호와의 양무리가 사로잡힘을 인하여 눈물을 흘려 통곡하리라.” 예레미야는 그들의 불순종과 교만, 또 그 결과로 이방인들에게 사로잡힘을 인하여 은밀하게 통곡할 것이라고 말한다.

예레미야는 또 말한다. “너는 왕과 왕후에게 고하기를 스스로 낮추어 앉으라. 관 곧 영광의 면류관이 내려졌다 하라. 남방의 성읍들이 봉쇄되고 열 자가 없고 유다가 다 잡혀가되 온전히 잡혀가도다.” 유다 왕과 왕후는 부끄러움을 당하고 포로로 잡혀갈 것이다.

[20-23절] 너는 눈을 들어 북방에서 오는 자들을 보라 네가 . . . .

예레미야는 또 하나님의 말씀을 선언한다. “너는 눈을 들어 북방에서 오는 자들을 보라. 네가 받았던 떼, 네 아름다운 양떼는 어디 있느뇨? 너의 친구 삼았던 자를 그가 네 위에 수령으로 세우실 때에 네가 무슨 말을 하겠느냐?[하나님께서 너를 징벌하실 때 네가 무슨 말을 하겠느냐? 이는 네가 그들을 가르쳐 네 위에 대장으로 삼았음이니라](원문, KJV). 너의 고통에 잡힘이 구로(劬勞)하는 여인 같지 않겠느냐? 네가 심중에 이르기를 어찌하여 이런 일이 내게 임하였는고 하겠으나 네 죄악이 크므로 네 치마가 들리고 네 발뒤꿈치가 상함이니라. 구스인이 그 피부를, 표범이 그 반점을 변할 수 있느뇨? 할 수 있을진대 악에 익숙한 너희도 선을 행할 수 있으리라.”

북방에서 오는 자들은 바벨론 군대이다. 그들은 유다의 아름다운 양떼 곧 그 백성을 다 사로잡아 갈 것이다. 유다 왕의 고통은 해산하는 여인의 고통 같을 것이다. 그의 고난은 그의 죄악이 크기 때문에 온 것이다. 그는 큰 수치와 고통을 당할 것이다. 이스라엘의 역사는 사람의 전적인 부패성과 무능력을 증거한다. 악에 익숙하고 선을 행할 수 없는 인생, 이것이 죄인의 정체이며 사람의 정체이기도 하다. 성경과 역사와 사람의 경험은 사람의 전적 부패의 진리를 확증한다.

[24-27절] 그러므로 내가 그들을 사막 바람에 불려가는 . . . .

하나님께서는 또 말씀하신다. “그러므로 내가 그들을 사막 바람에 불려가는 초개같이 흩으리로다.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이는 네 응득(應得)[몫]이요 내가 헤아려 정하여 네게 준 분깃이니 네가 나를 잊어버리고 거짓을 신뢰하는 연고라. 그러므로 내가 네 치마를 네 얼굴에까지 들춰서 네 수치를 드러내리라. 내가 너의 간음과 사특한 소리와 들의 작은 산 위에서 행한 네 음행의 비루하고 가증한 것을 보았노라. 화 있을진저, 예루살렘이여, 네가 얼마나 오랜 후에야 정결하게 되겠느뇨?[네가 얼마나 오랫동안 부정(不淨)하겠느냐?]”

이스라엘의 근본적 죄악은 여호와 하나님을 잊어버리고 거짓, 곧 헛된 우상들을 신뢰한 것이었다. 경건은 도덕성의 기초이며 불경건과 우상숭배는 부도덕의 원인이다. 우상숭배자들은 영적인 간음자들이며 그들은 육적으로도 음행에 떨어지기 쉽다. 사람은 오직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악을 떠나게 된다(잠 16:6). 이스라엘은 불경건과 부도덕의 죄악 때문에 그 보응을 얻게 될 것이다. 그들이 당할 보응은 이방에 포로로 잡혀가고 수치와 고통을 당하는 것이다.

본장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우리는 교만치 말자. 베띠에 관한 명령은 교만에 대한 교훈이다. 하나님께서는 유다의 교만과 예루살렘의 큰 교만을 썩게 하실 것이다(9절).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교만하지 말라고 말씀하신다(15절). 교만은 죄악성의 핵심이다. 교만은 하나님 대신 자신을 섬기는 것이다. 교만한 자는 하나님의 말씀 듣기를 거절하고 자기의 완고한 마음대로 행하며 하나님의 뜻을 거역하고 불순종하고 우상숭배에 떨어지고 서로 미워하고 다툰다. 그럴 때 하나님께서는 강제적으로라도 자기 백성의 교만을 꺾으신다.

온유와 겸손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들의 기본적 마음가짐이다. 또 온유한 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귀담아 들을 것이다. 그는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려 할 것이다. 그는 하나님만 섬기며 그의 계명을 따라 서로 사랑할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참 제자는 바로 그런 자이다.

둘째로, 우리는 하나님만 섬기자. 이스라엘 백성은 교만하여 하나님의 말씀 듣기를 거절하고 그 마음의 강퍅한 대로 행하며 다른 신들을 좇아 그들을 섬기며 그들에게 절하였다(10절). 그들은 하나님의 기대를 저버렸다(11절). 그들은 하나님을 잊어버렸고 그 대신, 거짓을 신뢰하였다(25절). 그 결과, 하나님께서는 그들로 서로 충돌하며 상하게 하실 것이며 긍휼히 여기지 않고 멸하실 것이다. 그는 그들에게 흑암을 보내실 것이다. 그들은 이방나라에 사로잡혀갈 것이며 수치와 고통을 당할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을 잊어버리지 말고 창조자와 섭리자이신 하나님만 섬기며 헛된 우상들을 버려야 한다. 하나님만 섬기는 것이 영생과 평강의 길이다.

셋째로, 우리는 거룩해야 한다. 27절, “화 있을진저, 예루살렘이여. 네가 얼마나 오랜 후에야 정결하게 되겠느뇨?[네가 얼마나 오랫동안 부정하겠느냐?]” 죄는 불결이요 의는 거룩이다. 하나님의 뜻은 우리의 거룩함, 곧 우리가 모든 죄악을 버리고 깨끗하게 되는 것이다. 우리는 모든 죄를 철저히 회개하고 버리고 하나님의 계명들을 다 지켜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오래 참으시고 아무도 멸망치 않고 회개하기를 원하신다. 온 세상이 불로 태워질 심판날이 올 것이다. 우리는 거룩한 행실과 경건함으로 그 날을 간절히 사모해야 한다(벧후 3:9-12).

 

 

14장: 가뭄 재앙을 예언함

[1-6절] 가뭄에 대하여 예레미야에게 임한 여호와의 말씀이라. . . .

예레미야는 가뭄에 대하여 받은 여호와의 말씀을 전한다. “유다가 슬퍼하며 성문의 무리가 곤비하여 땅에 앉아 애통하니 예루살렘의 부르짖음이 위에 오르도다. 귀인들은 자기 사환들을 보내어 물을 길으라 하나 그들이 우물에 갔어도 물을 얻지 못하여 빈 그릇으로 돌아오니 부끄럽고 근심하여 그 머리를 가리우며 땅에 비가 없어 지면이 갈라지니 밭가는 자가 부끄러워서 그 머리를 가리는도다. 들의 암사슴은 새끼를 낳아도 풀이 없으므로 내어버리며 들나귀들은 자산(赭山)[벌거숭이 산] 위에 서서 시랑[승냥이]같이 헐떡이며 풀이 없으므로 눈이 아득하여 하는도다.”

가뭄이 올 것이다. 사람들은 성문에 모여 애통할 것이다. 부자들은 종들을 보내어 물을 길어오게 우물에 보내나 그들은 물이 없어 빈 그릇으로 돌아올 것이다. 농부들은 땅이 메말라 부끄러움을 당할 것이다. 들짐승들도 물이 없어 헐떡이며 힘이 쇠해갈 것이다.

[7-9절] 여호와여, 우리의 죄악이 우리에게 대하여 . . . .

예레미야는 하나님께 기도하며 아뢴다. “여호와여, 우리의 죄악이 우리에게 대하여 증거할지라도 주는 주의 이름을 위하여 일하소서. 우리의 타락함(메슈보세누)[우리의 변절함, 배교]이 많으니이다. 우리가 주께 범죄하였나이다. 이스라엘의 소망이시요 곤란한 때의 구원자시여, 어찌하여 이 땅에서 거류하는 자같이, 하룻밤을 유숙하는 행인같이 하시나이까? 어찌하여 놀라 벙벙하는 자 같으시며 구원치 못하는 용사 같으시니이까? 여호와여, 주는 오히려 우리 중에 계시고 우리는 주의 이름으로 일컬음을 받는 자이오니 우리를 버리지 마옵소서.”

예레미야는 이스라엘의 죄를 인정한다. 그는 백성들이 심히 변절하였고 하나님의 계명을 범하였음을 인정한다. 그는 그러나 그들에게 하나님의 이름이 있기 때문에, 그의 이름을 위하여 그들을 버리지 마시고 구원해 주시기를 간구한다. 그는 하나님을 “이스라엘의 소망이시요 곤란한 때의 구원자”라고 부른다. 그것은 바른 신앙고백이다. 그는 유다 나라에 닥친 정치적, 외교적 문제뿐 아니라, 경제적 문제 즉 가뭄을 하나님께서 돌아보시고 도우시기를 간구한다.

[10-12절] 여호와께서 이 백성에 대하여 말씀하시되 그들이 . . . .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구원의 응답을 주지 않으시고 오히려 재앙을 선언하셨다. 예레미야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한다. “여호와께서 이 백성에 대하여 말씀하시되 그들이 어그러진 길을 사랑하여 그 발을 금하지 아니하므로 나 여호와가 그들을 받지 아니하고 이제 그들의 죄를 기억하고 그 죄를 벌하리라 하시니라.” 구원과 심판은 다 하나님의 주권에 달려 있고, 물론 사람의 선악간의 행위와도 관계된다. 이스라엘 백성은 죄악된 길을 떠나지 않고 그 길에서 방황하였고,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죄에 대해 그들을 벌하실 것이다.

예레미야는 또 하나님의 말씀을 전한다. “여호와께서 또 내게 이르시되 너는 이 백성을 위하여 복을 구하지 말라. 그들이 금식할지라도 내가 그 부르짖음을 듣지 아니하겠고 번제와 소제를 드릴지라도 내가 그것을 받지 아니할 뿐 아니라 칼과 기근과 염병으로 그들을 멸하리라.” 예레미야는 이 백성을 위해 복을 구하지 말아야 했다. 그들이 너무 완고한 마음으로 죄 가운데 빠져 있으므로 하나님께서 버리셨기 때문이다. 어떤 종교적 형식도 그 상태를 변화시킬 수 없을 것이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내리시는 칼(전쟁)과 기근과 전염병으로 멸망을 당할 것이다.

[13-18절] 이에 내가 가로되 슬프도소이다. 주 여호와여 . . . .

유다 멸망의 시기에는 거짓 선지자들이 많았다. 예레미야는 유다 땅에 임할 하나님의 재앙 때문에 슬플 뿐 아니라, 또한 거짓 선지자들의 거짓말 때문에 슬펐다. 예레미야는 말한다. “내가 가로되 슬프도소이다. 주 여호와여, 보시옵소서. 선지자들이 그들에게 이르기를 너희가 칼을 보지 아니하겠고 기근은 너희에게 이르지 아니할 것이라. 여호와께서 이곳에서 너희에게 확실한 평강을 주시리라 하나이다.” 거짓 선지자들은 전쟁과 기근이 없을 것이며 하나님께서 주시는 확실한 평강이 약속되어 있다고 말하였다.

여호와께서는 예레미야에게 말씀하셨다. “선지자들이 내 이름으로 거짓 예언을 하도다. 나는 그들을 보내지 아니하였고 그들에게 명하거나 이르지 아니하였거늘 그들이 거짓 계시와 복술과 허탄한 것과 자기 마음의 속임으로 너희에게 예언하도다.” 이 세상은 거짓 선지자들의 거짓말이 많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주시지 않은 말씀들과 계시들을 전한다. 그것들은 하나님의 뜻과 정반대이다. 하나님께서는 심판을 선언하시는데, 그들은 평강을 선포하였다.

하나님께서는 거짓 선지자들에 대해 말씀하신다. “그러므로 내가 보내지 아니하였어도 내 이름으로 예언하여 이르기를 칼과 기근이 이 땅에 이르지 아니하리라 하는 선지자들에 대하여 나 여호와가 이같이 이르노라. 그 선지자들은 칼과 기근에 멸망할 것이요 그들의 예언을 받은 백성은 기근과 칼로 인해 예루살렘 거리에 던짐을 입을 것인즉 그들을 장사할 자가 없을 것이요 그 아내와 그 아들과 그 딸도 그렇게 되리니 이는 내가 그들의 악을 그 위에 부음이니라.” 그 거짓 선지자들이나 그들의 예언을 받았던 백성은 다 칼과 기근으로 멸망을 당할 것이다. 하나님의 재앙은 그대로 임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또 예레미야에게 말씀하신다. “너는 이 말로 그들에게 이르라. 내 눈이 밤낮으로 끊치지 아니하고[그치지 않고] 눈물을 흘리리니 이는 처녀 딸 내 백성이 큰 파멸, 중한 창상을 인하여 망함이라. 내가 들에 나간즉 칼에 죽은 자요 내가 성에 들어간즉 기근으로 병든 자며 선지자나 제사장이나 다 땅에 두루 다니며 어찌할 바를 알지 못하는도다.” 거짓 선지자들의 예언과 반대로, 그 땅은 칼과 기근으로 멸망할 것이며 이 일을 내다본 예레미야는 밤낮으로 많은 눈물을 흘릴 것이다.

[19-22절] 주께서 유다를 온전히 버리시나이까? 주의 심령이 . . . .

예레미야는 고통 중에 유다 백성의 죄를 인정한다. “주께서 유다를 온전히 버리시나이까? 주의 심령이 시온을 싫어하시나이까? 어찌하여 우리를 치시고 치료하지 아니하시나이까? 우리가 평강을 바라도 좋은 것이 없고 치료받기를 기다려도 놀람(베아사)[두려운 일]을 보나이다. 여호와여, 우리가 우리의 악과 우리 조상의 죄악을 인정하나이다. 우리가 주께 범죄하였나이다.”

예레미야는 또 하나님의 긍휼을 간구하며 호소한다. “주의 이름을 위하여 우리를 미워하지 마옵소서. 주의 영광의 위(位)를 욕되게 마옵소서. 우리와 세우신 주의 언약을 기억하시고 폐하지 마옵소서. 열방의 허무한 것 중에 능히 비를 내리게 할 자가 있나이까? 하늘이 능히 소나기를 내릴 수 있으리이까? 우리 하나님 여호와여, 그리하는 자가 주가 아니시니이까? 그러므로 우리가 주를 앙망하옵는 것은 주께서 이 모든 것을 만드셨음이니이다[우리가 주를 앙망하옵나이다. 이는 주께서 이 모든 것을 만드셨음이니이다].” 가물어 메마른 땅에 단비를 내릴 자는 창조주 여호와 하나님밖에 없다.

본장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하나님께서는 사람의 죄를 반드시 벌하신다. 가뭄의 재앙은 이스라엘의 죄 때문에 왔다. 하나님께서는 “내가 그들의 죄를 기억하고 그 죄를 벌하리라”고 말씀하셨다(10절).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기도를 듣지 않으실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죄인들과 그 거처를 전쟁과 기근과 무서운 전염병으로 벌하실 것이다. 하나님의 공의와 심판의 이치는 어느 시대에나 동일하다. 마지막 심판 때에도 세상의 모든 사람들은 하나님의 공의의 심판을 받을 것이다. 죄의 값은 사망이다(롬 6:23). 이것은 불변적 법칙이다.

둘째로, 재앙을 피하는 길은 죄를 회개하고 하나님의 긍휼을 구하여 얻는 길밖에 없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의 소망이시며 곤란한 때의 구원자이시다(8절). 메마른 땅에 비를 내릴 자는 창조주 하나님뿐이시다(22절). 그러므로 죄인은 모든 죄를 버리고 하나님께로 돌아와야 하고 하나님만 앙망해야 하고 그를 의지하고 그의 계명을 힘써 지켜야 한다. 그는 인생의 모든 문제의 해결자이시다. 사람이 재앙을 피하는 길은 죄를 회개하고 하나님의 긍휼을 구하며 얻는 길밖에 없다.

셋째로, 거짓 교사들을 조심해야 한다. 거짓 선지자들이 많이 일어나 유다 백성이 하나님의 바른 말씀을 듣고 바른 길 가는 것을 방해하였다. 거짓 선지자들은 하나님의 뜻과 정반대되는 말을 선전하였다. 하나님께서는 재앙을 선언하시며 회개를 촉구하셨지만, 거짓 선지자들은 평강을 선언하며 회개를 방해하였다. 예수께서는 주의 재림 직전에도 거짓 선지자들 곧 거짓 목사들이 많이 일어나 많은 사람을 미혹하게 하겠다고 예언하셨다(마 24:11). 사도 바울도 데살로니가후서 2장에서 배교를 재림 직전의 징조로 증거하였다(살후 2:3). 사도 베드로도 베드로후서 2장에서 거짓 교사들의 출현을 예언하였다(벧후 2:1). 요한계시록 13장도 주의 재림 직전에 거짓 선지자가 나타날 것을 예언하였다(계 13:11-18; 19:20). 특히 그들은 거짓 기적을 행하는 자로 예언되어 있다(마 24:24; 살후 2:9-10). 사도 시대 말에 이미 많은 적그리스도들과 이단자들이 나타났었다(요일 2:18; 유 3-4). 오늘날에는 더욱 그러하다. 우리는 사람의 사상과 행위를 성경에 비추어 분별하고 판단함으로써(사 8:20; 마 7:16, 20), 거짓 목사들을 분별하고 경계해야 한다.

 

 

15장: 돌이킬 수 없는 재앙

1-14절, 절망적인 재앙

[1-4절]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모세와 사무엘이 내 앞에 . . . .

여호와께서는 예레미야에게 말씀하셨다. “모세와 사무엘이 내 앞에 섰다 할지라도 내 마음은 이 백성을 향할 수 없나니 그들을 내 앞에서 쫓아 내치라. 그들이 만일 네게 말하기를 우리가 어디로 나아가리요 하거든, 너는 그들에게 이르기를 여호와의 말씀에 사망할 자는 사망으로 나아가고 칼을 받을 자는 칼로 나아가고 기근을 당할 자는 기근으로 나아가고 포로 될 자는 포로 됨으로 나아갈지니라 하셨다 하라.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가 그들을 네 가지로 벌하리니 곧 죽이는 칼과 찢는 개와 삼켜 멸하는 공중의 새와 땅의 짐승으로 할 것이며 유다 왕 히스기야의 아들 므낫세가 예루살렘에 행한 바를 인하여 내가 그들을 세계 열방 중에 흩으리라.” ‘세계 열방 중에 흩으리라’는 원어는 근래의 영어성경들처럼 ‘세계 열방에게 두려움이 되게 하리라’고 고쳐 번역해야 할 것이다(BDB, NASB, NIV).

하나님께서는 히스기야의 아들 므낫세의 죄악 때문에 이스라엘을 용서치 않으시겠다고 말씀하신다. 므낫세는 심한 우상숭배와 많은 의인의 피를 흘리는 죄를 범했다(왕하 21장). 그러므로 모세와 사무엘이 하나님 앞에 섰다 할지라도 하나님의 마음은 그들을 향할 수 없었고 그들을 내쫓으실 것이었다. 절망적인 재앙의 선언이었다. 그 재앙의 내용은 사망과 칼과 기근과 포로 됨이며, 또 사망의 재앙은 죽이는 칼, 찢는 개, 삼켜 멸하는 공중의 새와 땅의 짐승이었다.

[5-9절] 예루살렘아, 너를 불쌍히 여길 자 누구며 너를 곡할 자 . . . .

예레미야는 또 말한다. “예루살렘아, 너를 불쌍히 여길 자 누구며 너를 곡할 자 누구며 돌이켜 네 평안을 물을 자 누구뇨?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네가 나를 버렸고 내게서 물러갔으므로 네게로 내 손을 펴서 너를 멸하였노니 이는 내가 뜻을 돌이키기에 염증이 났음이로다. 내가 그들을 그 땅의 여러 성문에서 키로 까불러 그 자식을 끊어서 내 백성을 멸하였나니 이는 그들이 그 길에서 돌이키지 아니하였음이라.”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을 버렸고 그에게서 물러갔다. 그들은 배교자이었고 변절자이었다. 그들은 그 죄악된 길에서 회개하며 돌이키지 않았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손을 펴셔서 그들을 멸하시며 그 자녀들을 끊으실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또 말씀하신다. “그들의 과부가 내 앞에 바다 모래보다 더 많아졌느니라. 내가 대낮에 훼멸할[파괴할] 자를 그들에게로 데려다가 그들과 청년들의 어미를 쳐서 놀람과 두려움을 그들에게 졸지에[갑자기] 임하게 하였으며 일곱 자식을 낳은 여인으로는 쇠약하여 기절하게 하며 오히려 대낮에 그의 해가 떨어져 그로 수치와 근심을 당케 하였느니라. 그 남은 자는 그 대적의 칼에 붙이리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남편들이 전장에서 죽을 것이기 때문에 과부들이 바다 모래보다 더 많아질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대낮에 갑자기 바벨론 군대를 불러오심으로 그들로 놀라며 두려워하게 하실 것이다. 일곱 자식을 낳은 여인이라도 기절할 것이며 그의 남편은 죽고 그는 대낮에 수치와 근심을 당할 것이다.

[10-14절] 내게 재앙이로다. 나의 모친이여, 모친이 나를 . . . .

예레미야는 또 말한다. “내게 재앙이로다. 나의 모친이여, 모친이 나를 온 세계에게 다툼과 침을 당할 자로 낳으셨도다. 내가 꾸어주지도 아니하였고 사람이 내게 꾸이지도 아니하였건마는 다 나를 저주하는도다.” 예레미야는 마음의 큰 고통 가운데 있었다. 그가 하나님의 재앙을 선언한 이유 때문에 사람들은 그를 때리고 저주하였다. 그러나 여호와께서는 고통하는 예레미야에게 위로의 말씀을 주신다. “내가 진실로 너를 강하게 할 것이요 너로 복을 얻게 할 것이며3) 내가 진실로 네 대적으로 재앙과 환난의 때에 네게 간구하게 하리라.”

하나님께서는 다시 회개치 않는 유대인들이 북방의 철과 놋으로 비유된 바벨론 군대에 의해 멸망할 것이며 바벨론 땅에 포로로 잡혀갈 것을 말씀하신다. 그것은 하나님의 진노의 맹렬한 불이다. “누가 능히 철 곧 북방의 철과 놋을 꺾으리요. 그러나 [네 사방의](영어성경들) 네 모든 죄로 인하여 모든 재산과 보물이 값없이 탈취를 당하게 할 것이며 너로 네 대적과 함께 네가 알지 못하는 땅에 이르게 하리니 이는 나의 진노의 맹렬한 불이 너희를 사르려 함이니라.”

본문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우리는 심판과 구원이 다 하나님의 손 안에 있음을 알자. 심판도 구원도 하나님 안에 있다. 하나님께서는 심판도 행하시고 구원도 행하시는 주권적 섭리자이시다. 그 모든 일이 주권적 섭리자 하나님의 손 안에 있다.

둘째로, 우리는 이스라엘처럼 패역하지 말자. 죄를 회개치 않으면 심령이 무디어지고 완악해진다. 그러므로 히브리서 3:13은, “오직 오늘이라 일컫는 동안에 매일 피차 권면하여 너희 중에 누구든지 죄의 유혹으로 강퍅케 됨을 면하라”고 말한다. 우리는 패역하지 말아야 한다.

셋째로, 우리는 오직 하나님만 붙잡고 의지하며 그 말씀대로 순종하며 살자. 이스라엘은 므낫세의 죄 때문에 멸망을 받을 것이다. 하나님의 뜻은 예나 지금이나 동일하다. 그것은 우리가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의 계명을 순종하는 것이다. 시편 119:1은, “행위 완전하여 여호와의 법에 행하는 자가 복이 있다”고 말한다. 하나님만 의지하고 순종하자.

 

15-21절, 하나님의 교훈과 위로

[15-18절] 여호와여, 주께서 아시오니 원컨대 주는 나를 . . . .

예레미야는 말한다. “여호와여, 주께서 아시오니 원컨대 주는 나를 기억하시며 권고하사 나를 박해하는 자에게 보복하시고 주의 오래 참으심을 인하여 나로 멸망치 말게 하옵시며 주를 위하여 내가 치욕당하는 줄을 아시옵소서.” 그는 원수들의 핍박을 당하는 고난 중에 하나님의 공의의 보복과 자신의 구원을 하나님께 간구한다.

예레미야는 또 말한다.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시여, 나는 주의 이름으로 일컬음을 받는 자라. 내가 주의 말씀을 얻어먹었사오니 주의 말씀은 내게 기쁨과 내 마음의 즐거움이오나 내가 기뻐하는 자(메사카킴)[떠드는 자들(BDB, NASB, NIV)]의 회에 앉지 아니하며 즐거워하지도 아니하고 주의 손을 인하여 홀로 앉았사오니 이는 주께서 분노로 내게 채우셨음이니이다.”

예레미야는 악한 자들과 달리 하나님의 말씀을 기뻐하고 즐거워했다. 참 성도는 하나님의 말씀을 즐거워한다. 시편 1:2는, 복 있는 자는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며 그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라고 말했고, 시편 19:10이나 시편 119:103은 하나님의 말씀이 꿀과 송이꿀보다 더 달다고 말했다. 예레미야는 또 악인들과 교제하지 않았다. 그는 술이나 마시고 떠드는 자들의 모임에 참석하지 않았고 그런 모임을 즐거워하지도 않았고 늘 홀로 있었다.

그러나 예레미야는 하나님의 응답을 받지 못하였다. 그래서 그는, “나의 고통이 계속하며 상처가 중하여 낫지 아니함은 어찜이니이까? 주께서는 내게 대하여 물이 말라서 속이는 시내 같으시리이까?”라고 말한다. 하나님께서는 예레미야의 기도에 응답하지 않으셨고 그것은 예레미야에게 낙심이 될 만한 일이었다.

[19-21절]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네가 만일 돌아오면 . . . .

그러므로(라켄)(KJV, NASB, NIV) 여호와께서는 예레미야에게 말씀하셨다. “네가 만일 돌아오면 내가 너를 다시 이끌어서 내 앞에 세울 것이며 네가 만일 천한 것에서 귀한 것을 취할 것 같으면 너는 내 입같이 될 것이라. 그들은 네게로 돌아오려니와 너는 그들에게로 돌아가지 말지니라. 내가 너로 이 백성 앞에 견고한 놋성벽이 되게 하리니 그들이 너를 칠지라도 이기지 못할 것은 내가 너와 함께하여 너를 구하여 건짐이니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내가 너를 악한 자의 손에서 건지며 무서운 자의 손에서 구속(救贖)하리라.”

하나님께서는 우선 “내게 돌아오라”고 말씀하신다. 그것은 불신앙과 의심을 버리고 믿는 자가 되라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또 “하나님의 말씀만 붙들라”고 말씀하신다. 천한 것에서 귀한 것을 취한다는 표현은 악인들의 생각과 말, 심지어 선지자의 인간적 생각과 말을 버리고 하나님의 생각과 뜻과 말씀을 붙들라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또 “그들에게로 돌아가지 말라”고 말씀하신다. 인간 선지자는 백성의 핍박과 비난 때문에 그들과 타협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그렇게 하지 말아야 한다. 선지자는 백성을 구원해야지 백성의 잘못된 사상이나 삶으로 돌아가서는 안 된다. 오늘날 설교자는 회중을 인도하는 자이어야지 회중의 비위를 맞추는 자이어서는 안 된다. 만일 설교자가 회중의 생각으로 돌아간다면 그는 그들에게 끌려다니는 자가 될 것이다. 그는 사람의 생각에 타협하는 자가 될 것이다. 그는 하나님의 종이 아니며 사람의 종이 될 것이다. 사도 바울은 “이제 내가 사람들에게 좋게 하랴, 하나님께 좋게 하랴? 사람들에게 기쁨을 구하랴? 내가 지금까지 사람의 기쁨을 구하는 것이었더면 그리스도의 종이 아니니라”고 말하였다(갈 1:10).

하나님께서는 친히 한 가지 약속을 주신다. 그것은 그가 그를 이 백성 앞에 견고한 놋성벽이 되게 하실 것이라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그를 치는 원수들이 그를 이기지 못할 것은 그가 친히 함께하시고 그를 도우시고 그를 구원하실 것이기 때문이라고 약속하신다. “내가 너를 악한 자의 손에서 건져내리라.” 주의 종들에게 고난은 항상 있는 법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함께하심과 지키심과 구원하심으로 승리도 항상 있을 것이다.

본문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우리는 하나님께로만 돌아가자. 우리는 고난과 핍박 중에서 불신앙과 의심에 떨어지지 말고 하나님을 믿고 확신하자.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시작하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진행하자. 우리는 끝까지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자. 시편 56:3-4, “내가 두려워하는 날에는 주를 의지하리이다. 내가 하나님을 의지하고 그 말씀을 찬송하올지라. 내가 하나님을 의지하였은즉 두려워 아니하리니 혈육 있는 사람이 내게 어찌하리이까?” 시편 119:50, “이 말씀은 나의 곤란 중에 위로라. 주의 말씀이 나를 살리셨음이니이다.”

둘째로, 우리는 악한 자들에게로 돌아가지 말자. 사람은 고난 중에 마음이 약해질 수 있으나, 우리는 그런 때에 악한 자들에게로 돌아가서는 안 된다. 그것은 하나님 앞에서 불성실, 아니 불순종이며 악과의 타협이며 신앙의 변절이다. 그러므로 주의 종들은 교제를 항상 조심하며 악한 자들과 교제하지 말아야 한다. 시편 1:1, “[복 있는 사람은] . . .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잠언 28:4, “율법을 버린 자는 악인을 칭찬하나 율법을 지키는 자는 악인을 대적하느니라.”

셋째로, 우리는 견고한 놋성벽이 될 것을 기대하자. 고난이 있으나 승리도 있다! 하나님께서 주의 종들과 자녀들과 함께하시고 악인들에게서 그들을 건져내시고 그들로 세상 앞에서 견고한 놋성벽이 되게 하실 것이다. 많은 고난을 경험하였던 사도 바울은, “항상 우리를 그리스도 안에서 이기게 하시고 우리로 말미암아 각처에서 그리스도를 아는 냄새를 나타내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라”고 고백하였다(고후 2:14).

 

 

16장: 회복의 날이 있음

1-13절, 슬픔의 시대

[1-4절] 여호와의 말씀이 또 내게 임하니라. 가라사대 너는 . . . .

여호와의 말씀이 또 선지자 예레미야에게 임하였다. “너는 이 땅에서 아내를 취하지 말며 자녀를 두지 말지니라. [이는](원문) 이곳에서 생산[출산]한 자녀와 이 땅에서 그들을 해산한 어미와 그들을 낳은 아비에 대하여 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말함이니라]. 그들은 독한 병[들]으로 죽고 슬퍼함을 입지 못하며 매장함을 얻지 못하여 지면의 분토(도멘)[똥]와 같을 것이며 칼과 기근에 망하고 그 시체는 공중의 새와 땅 짐승의 밥이 되리라.”

하나님께서는 예레미야에게 몇 가지 특이한 명령을 하셨다. 하나는 “너는 이 땅에서 아내를 취하지 말며 자녀를 두지 말라”는 것이었다. 그 까닭은, 이 땅의 부모와 자녀들이 질병과 전쟁과 기근으로 죽고 슬퍼함이나 매장함을 얻지 못하고 땅 위의 똥과 같이 되고 그 시체는 새와 짐승의 밥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심판의 날이 올 것이며 그때에는 결혼과 자녀 출산이 무가치하게 될 것이다.

[5-7절]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상가에 들어가지 말라. . . .

여호와께서는 또 말씀하신다. “상가에 들어가지 말라. 가서 통곡하지 말며 그들을 위하여 애곡하지 말라. [이는] 내가 이 백성에게서 나의 평강을 빼앗으며 인자와 긍휼을 제함이니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큰 자든지 작은 자든지 이 땅에서 죽으리니 그들이 매장되지 못할 것이며 그들을 위하여 애곡하는 자도 없겠고 자기 몸을 베거나 대머리 되게 하는 자도 없을 것이며 슬플 때에 떡을 떼며 그 죽은 자를 인하여 그들을 위로하는 자가 없을 것이며 그들의 아비나 어미의 상사를 위하여 위로의 잔을 그들에게 마시울 자가 없으리라.”

하나님께서는 “상가에 들어가지 말고 거기서 통곡하지 말라”는 특이한 명령도 선지자에게 하셨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그들에게서 평강을 빼앗으셨고 인자와 긍휼을 제하셨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내리신 재앙이기 때문에 너무 슬퍼하지 말고 통곡하지 말라는 뜻이다. 그 날에는 어른이나 아이나 이 땅에서 죽을 것이며 매장되지 못하고 애곡하는 자나 위로하는 자도 없을 것이다. 그들의 장례식은 쓸쓸할 것이다. 본문 6절에 ‘자기 몸을 베거나 대머리 되게 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금하신 이방인의 풍습을 가리킨다(레 19:28; 신 14:1).

[8-9절] 너는 잔칫집에 들어가서 그들과 함께 앉아 먹거나 . . . .

하나님께서는 또 예레미야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잔칫집에 들어가서 그들과 함께 앉아 먹거나 마시지 말라.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이같이 말하노라. 보라 기뻐하는 소리와 즐거워하는 소리와 신랑의 소리와 신부의 소리를 내가 네 목전, 네 시대에 이곳에서 끊어지게 하리라.” 하나님께서는 “잔칫집에 들어가 먹고 마시며 기뻐하지도 말라”는 특이한 명령도 선지자에게 하셨다. 그 까닭은, 하나님께서 그 땅을 심판하실 때 기쁨과 즐거움이 사라지고 기뻐하고 즐거워할 일들이 없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10-13절] 네가 이 모든 말로 백성에게 고할 때에 그들이 . . . .

하나님께서는 또 말씀하셨다. “네가 이 모든 말로 백성에게 고할 때에 그들이 네게 묻기를 여호와께서 우리에게 이 모든 큰 재앙을 광포하심은 어찜이며 우리의 죄악은 무엇이며 우리가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 범한 죄는 무엇이뇨 하거든 너는 그들에게 대답하기를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너희 열조가 나를 버리고 다른 신들을 좇아서 그들을 섬기며 그들에게 절하고 나를 버려 내 법을 지키지 않았음이라. [또 너희는] 너희 열조보다 더욱 악을 행하였도다. 보라, 너희가 각기 악한 마음의 강퍅함을 따라 행하고 나를 청종치 않았으므로 내가 너희를 이 땅에서 쫓아내어 너희와 너희 열조의 알지 못하던 땅에 이르게 할 것이라. 너희가 거기서 주야로 다른 신들을 섬기리니 이는 내가 너희에게 은혜를 베풀지 아니함이라 하셨다 하라.”

본문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심판을 내리시는 이유를 증거한다. 그것은 그들의 열조와 그들의 죄 때문이다. 그들의 열조의 죄는 하나님을 버리고 다른 신들을 섬기며 하나님의 법을 지키지 않은 죄이었다. 그리고 그들의 죄는 그 열조보다 더욱 악을 행한 것이었다. 그들은 각기 악한 마음의 강퍅함(쉐리루스)[완고함]을 따라 행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았다. 하나님께서 이제 그들에게서 은혜를 거두심으로 그들은 이방 나라들에 포로로 잡혀갈 것이며 거기서 주야로 다른 신들을 섬길 것이다.

본문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우리는 마지막 날이 가까울수록 세상의 것에 너무 마음을 두지 말자. 심판의 날을 앞둔 이스라엘 백성에게 하나님께서는 아내를 취하지 말라, 상가(喪家)에 들어가지 말라, 잔칫집에 들어가지 말라는 등의 특이한 명령을 하셨다. 결혼이나 출산이나 잔치나 장례식이나 기쁜 일이나 슬픈 일이나 이런 것에 너무 큰 의미와 가치를 두지 말라는 뜻이다. 우리는 이런 일에 너무 기뻐하지 말고 너무 슬퍼하지 말아야 한다. 우리는 이런 것에 대해 약간만 기뻐하고 약간만 슬퍼하는 훈련을 할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우리는 천국의 백성이며 내세를 사모하며 소망하는 자들이기 때문이다.

고린도전서 7:29-31은, “형제들아, 내가 이 말을 하노니 때가 단축하여진 고로 이후부터 아내 있는 자들은 없는 자같이 하며 우는 자들은 울지 않는 자같이 하며 기쁜 자들은 기쁘지 않은 자같이 하며 매매하는 자들은 없는 자같이 하며 세상 물건을 쓰는 자들은 다 쓰지 못하는 자같이 하라. 이 세상의 형적은 지나감이니라”고 말한다. 고린도후서 4:18은, “우리의 돌아보는 것은 보이는 것이 아니요 보이지 않는 것이니 보이는 것은 잠깐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함이니라”고 말한다. 요한일서 2:15-17은,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치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속에 있지 아니하니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 좇아 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 좇아 온 것이라. 이 세상도, 그 정욕도 지나가되 오직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이는 영원히 거하느니라”고 말한다. 우리는 세상의 것에 너무 마음을 두지 말자.

둘째로, 우리는 하나님을 경외하며 그의 계명을 순종하자. 이스라엘의 멸망의 이유는 하나님을 버리고 다른 신들을 섬기며 하나님의 음성을 듣지 않은 것 때문이다. 불의와 죄 때문에 하나님의 재앙과 멸망이 온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만 섬기고 그의 계명만 순종하자. 그것이 의의 길이며 평강의 길이다. 전도서는 세상의 허무함을 증거한 후에, 결론적으로 12:13에서, “일의 결국을 다 들었으니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 명령을 지킬지어다. 이것이 사람의 본분[모든 것]이니라”고 말하였다. 우리는 하나님을 경외하고 구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성경의 교훈대로 경건하고 의롭고 선하고 진실하게만 살자.

셋째로, 우리는 오직 하나님의 긍휼과 은혜만 구하자.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에게서 그의 평강을 빼앗고 인자와 긍휼을 제하였다고 말씀하셨다(5절). 또 그는, “이는 내가 너희에게 은혜를 베풀지 아니함이라”고 말씀하셨다(13절). 하나님께서 은혜와 긍휼을 거두신다면, 이 세상에서 구원받을 자는 아무도 없을 것이며 또 평강과 행복과 영생을 누릴 자도 아무도 없을 것이다. 죄인들의 구원은 오직 하나님의 긍휼과 은혜로 말미암는다. 우리의 구원, 우리의 죄사함과 의롭다 하심은 오직 하나님의 긍휼과 은혜로 말미암았다. 또 우리의 평강도, 우리의 행복도, 우리의 영생 복락도 하나님의 긍휼과 은혜로 말미암는다. 그러므로 우리는 오직 하나님의 긍휼과 은혜만 구하며 사모하자.

 

14-21절, 회복의 날이 있음

[14-15절]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그러나 보라 날이 이르리니 . . . .

예레미야는 또 말한다.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그러나(라켄)[그러므로] 보라, 날이 이르리니 다시는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신 여호와의 사심으로 맹세하지 아니하고 이스라엘 자손을 북방 땅과 그 모든 쫓겨났던 나라에서 인도하여 내신 여호와의 사심으로 맹세하리라. 내가 그들을 그 열조에게 준 그들의 땅으로 인도하여 들이리라.” 14절 초두에 ‘그러나’(NIV)는 문맥적으로 맞는 것 같으나 원문에는 ‘그러므로’(BDB, KJV, NASB)라고 되어 있고 그것은 본장이 북방 포로를 강조하기 때문에 문맥에도 부합하다.

즉 유다 백성이 북방으로 포로로 잡혀가고 사방에 흩어질 것이기 때문에 장차 사람들은 다시는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신 여호와의 사심으로 맹세하지 않고 이스라엘 자손을 북방 땅과 그 모든 쫓겨났던 나라에서 인도하여 내신 여호와의 살아계심으로 맹세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그 열조에게 주신 그들의 땅으로 인도하여 들이실 것이다. 그것은 이스라엘의 회복을 예언하신 것이며 그것은 그들의 바벨론으로부터의 돌아옴을 포함한다.

선지자 예레미야는 이 회복의 일, 곧 북방으로부터 돌아올 일에 대해 반복해서 예언하였다(3:18; 23:8; 31:8). 예레미야 3:18, “그때에 유다 족속이 이스라엘 족속과 동행하여 북에서부터 나와서 내가 너희 열조에게 기업으로 준 땅에 함께 이르리라.” 23:8, “이스라엘 집 자손을 북방 땅, 그 모든 쫓겨났던 나라에서 인도하여 내신 여호와의 사심으로 맹세할 것이며 그들이 자기 땅에 거하리라 하시니라.”

[16-18절]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보라 내가 많은 어부를 . . . .

예레미야는 말한다.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보라, 내가 많은 어부를 불러다가 그들을 낚게 하며 그 후에 많은 포수를 불러다가 그들을 모든 산과 모든 작은 산과 암혈[동굴]에서 사냥하게 하리라.” 본절에 대한 해석은 두 가지 견해가 있다. 하나는 다음절에 비추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죄에 대한 징벌로 많은 어부와 포수를 불러 그들을 포로로 잡아 북방 땅에 데려가실 것이라는 뜻이라고 한다. 성경에 어부를 그런 뜻으로 사용한 예들도 있다(암 4:2; 합 1:15).

그러나 다른 하나는 앞절에 이어지는 내용으로 보아 하나님께서 많은 어부와 포수를 불러 이스라엘 백성을 그 흩어진 땅에서 구원하여 내어 고국으로 돌아오게 하실 것이라는 뜻으로 본다. 14절과 16절 초두에 나오는 ‘보라’라는 말은 하나님의 심판에 대한 뜻보다는 그의 회복에 대한 뜻에 더 적합해 보인다.4) ‘어부’라는 말은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베드로와 안드레를 제자로 부르실 때 사용하신 비유이다. 주 예수께서는 베드로와 안드레를 제자로 부르시면서 “나를 따라 오너라. 내가 너희로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고 말씀하셨다(마 4:19). 사람을 낚는 어부는 전도자를 의미하였다.

하나님께서는 또 말씀하신다. “이는 내 눈이 그들의 행위를 감찰하므로 그들이 내 얼굴 앞에서 숨김을 얻지 못하며 그들의 죄악이 내 목전에서 은폐되지 못함이라.” 그는 구원받을 이스라엘 백성이 온 세계에 흩어져 모든 산과 모든 작은 산과 동굴들에 있게 될 이유를 보이신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의 죄 때문에 그들을 바벨론에 포로 되게 하실 것이고 온 세상에 흩어지게 하실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또 말씀하신다. “내가 위선[우선] 그들의 악과 죄를 배나 갚을 것은 그들이 그 미운 물건의 시체로 내 땅을 더럽히며 그들의 가증한 것으로 내 산업에 가득하게 하였음이니라.” 이스라엘 백성의 회복은 먼저 그들의 죄에 대해 내리실 하나님의 엄위한 징벌을 전제한다. ‘그 미운 물건의 시체’란 우상들에게 바쳐진 더러운 제물들이나 무고하게 피를 흘린 사람들의 시체를 가리킬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은 그 땅을 우상숭배로 심히 더럽혔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악에 대해 엄하게 징벌하실 것이다.

[19-21절] 여호와 나의 힘, 나의 보장, 환난날의 피난처시여 . . . .

예레미야는 다시 하나님의 회복의 은혜에 대해 증거한다. “여호와 나의 힘, 나의 보장, 환난날의 피난처시여, 열방이 땅끝에서 주께 이르러 말하기를 우리 열조의 계승한 바는 허무하고 망탄하고 무익한 것뿐이라. 인생이 어찌 신 아닌 것을 자기의 신으로 삼겠나이까 하리이다.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보라, 이번에 그들에게 내 손과 내 능을 알려서 그들로 내 이름이 여호와인 줄 알게 하리라.”

예레미야는 하나님을 “여호와 나의 힘, 나의 보장, 환난날의 피난처”라고 고백한다. 참된 경건은 하나님을 아는 것, 곧 그를 우리의 힘과 피난처로 아는 것이다. 세상에는 죄의 유혹과 마귀의 시험과 환난과 재앙이 많지만, 하나님을 아는 자는 죄의 유혹에 빠지지도 않고 환난 중에 낙심치도 않고 오직 모든 일에 하나님을 의지한다.

예레미야는 또 장차 열방이 자신들의 삶이 허무한 삶인 것을 고백할 것이라고 말한다. 그들은 조상으로 내려오는 헛된 풍습을 따랐다. 그것은 허무하고 망탄하고 무익한 것뿐이었다. ‘허무하다’는 원어(쉐케르)는 ‘속이는 것, 우상’을 가리킨다(BDB, NASB, NIV). 또 ‘망탄하다’는 원어(헤벨)는 ‘헛된 것’(KJV, NASB)을 가리킨다. 이방인들은 속이는 것, 헛된 것, 그리고 무익한 것을 추구하였다. 그들은 하나님 아닌 것을 자기의 신으로 삼았다.

오늘날도 크게 다르지 않다. 사람들은 여전히 하나님 아닌 것을 신처럼 가치 있게 여기며 살고 있다. 세상에는 아직도 우상들이나 가짜 신들이 많다. 모든 비진리들이 그런 종류이다. 또 많은 사람들은 돈과 물질을 최고의 가치로 알고 살고 있다. 또 다른 이들은 육신의 쾌락에 삶의 의미를 두고 사는 것 같다. 어떤 지식인들은 사람의 이성과 과학을 최고로 여긴다. 그러나 그것들이 참 하나님이 아니며 참으로 허무한 것들이라는 것은 자명하다.

예레미야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한다.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보라, 이번에 그들에게 내 손과 내 능을 알려서 그들로 내 이름이 여호와인 줄 알게 하리라.” 이 말씀은 본장의, 아니 본서의 전체적 방향, 즉 이스라엘의 회복이라는 방향에 관한 것이다. 성경은 결국 하나님의 심판과 회복을 말한다. 죄인들은 하나님의 심판을 받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 중 일부는 하나님의 긍휼로 구원을 얻을 것이다. 그들은 영원자존자이신 여호와 하나님을 알게 될 것이다.

본문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우리는 땅의 것이 허무함을 알자. 우리는 세상의 모든 우상들과 모든 비진리들과 모든 종교, 모든 철학, 모든 사상, 모든 인생관, 모든 가치관이 허무함을 알자. 참 하나님과 그의 진리가 아닌 이 세상의 모든 것들이 다 허무함을 알자.

둘째로, 우리는 죄악에 대한 하나님의 징벌을 알자. 하나님께서는 인생의 죄에 대해 철저히 갚으실 것이다. 사도 바울은 로마서 2:6에서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그 행한 대로 보응하신다”고 말한다.

셋째로, 우리는 하나님의 긍휼의 구원을 감사하자. 하나님께서는 친히 이스라엘을 북방에서 인도하여 고국으로 돌아오게 하실 것이다(15, 16절). 그는 많은 어부들을 불러 그들을 구원하실 것이다. 우리는 은혜로 구원을 얻었다. 디모데후서 1:9,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사 거룩하신 부르심으로 부르심은 우리의 행위대로 하심이 아니요 오직 자기 뜻과 영원한 때 전부터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주신 은혜대로 하심이라.” 우리는 하나님의 긍휼의 구원과 소망과 위로를 감사하자.

 

 

17장: 하나님이여, 우리를 구원하소서

1-8절, 여호와를 의지하는 자

[1-4절] 유다의 죄는 금강석 끝 철필로 기록되되 그들의 . . . .

원문 1-2절을 다시 번역하면, “그들의 자녀들이 높은 언덕들 위 푸른 나무들 곁에 있는 그 제단들과 아세라들을 생각할 때, 유다의 죄는 금강석(솨미르)(KJV, NASB)[부싯돌](BDB, NIV) 끝 철필로 기록되되 그들의 마음판과 그들의 단 뿔에 새겨졌도다.” 유다 백성은 높은 언덕들 위 푸른 나무들 곁에 있는 제단들에서 또 아세라들을 통해 우상을 섬겼다. 그들의 죄 곧 우상숭배의 죄는 너무 확실했다. 그것은 그들의 마음판과 제단 뿔에 새겨졌다.

하나님께서는 또 말씀하신다. “들에 있는 나의 산아, 네 온 지경의 죄로 인하여 내가 네 재산과 네 모든 보물과 산당들로 노략을 당하게 하리니 내가 네게 준 네 기업에서 네 손을 뗄 것이며 또 내가 너로 너의 알지 못하는 땅에서 네 대적을 섬기게 하리니 이는 너희가 내 노로 맹렬케 하여 영영히 타는 불을 일으켰음이니라.”

‘들에 있는 나의 산’은 시온산 곧 예루살렘 성을 가리킨다고 본다. 유다 땅은 어느 한 지역만 부패한 것이 아니고 온 지역이 부패하였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재산과 모든 보물이 노략을 당하게 하실 것이며 산당들도 다 파괴될 것이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주신 기업을 잃어버릴 것이다. 또 그들은 그들이 알지 못했던 이방나라로 잡혀가 그들을 섬길 것이다. 그것은 그들이 하나님의 불같은 노를 일으켰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내리신 징벌이다.

[5-8절] 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무릇 사람을 믿으며 . . . .

예레미야는 또 말한다. “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무릇 사람을 믿으며 혈육으로 그 권력[힘]을 삼고 마음이 여호와에게서 떠난 그 사람은 저주를 받을 것이라. 그는 사막의 떨기나무 같아서 좋은 일의 오는 것을 보지 못하고 광야 간조한 곳, 건건한[짠기 있는, 소금기 있는] 땅, 사람이 거하지 않는 땅에 거하리라.”

‘떨기나무’는 관목(bush, shrub)이라고 하는데, 키가 작고 줄기와 가지의 구별이 불분명한 나무를 가리킨다(이것과 달리, 큰키나무는 교목이라고 함). 그 마음이 하나님을 떠나고 사람을 믿고 의지하는 사람은 저주를 받을 것이다. 그것이 불경건과 불신앙이며 인본주의이기 때문이다. 그 자체가 죄이다. 그런 사람은 좋은 일의 오는 것을 보지 못하고 사막의 떨기나무같이 메마르고 쓸쓸할 것이다.

예레미야는 또 말한다. “그러나 무릇 여호와를 의지하며 여호와를 의뢰하는 그 사람은 복을 받을 것이라. 그는 물가에 심기운 나무가 그 뿌리를 강변에 뻗치고 더위가 올지라도 두려워 아니하며 그 잎이 청청하며 가무는 해에도 걱정이 없고 결실이 그치지 아니함 같으리라.” ‘여호와를 의지하며 여호와를 의뢰한다’는 말이 반복해 강조되었다. 그런 자는 복을 얻을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복의 근원이시다.

그는 물가에 심기운 나무가 그 뿌리를 강변에 뻗치고 더위가 올지라도 두려워 아니하며 그 잎이 늘 푸르고 가뭄이 들 때에도 걱정이 없고 항상 열매를 맺는 것과 같을 것이다. 그런 사람은 더위와 가뭄, 곧 환난과 핍박 같은 것을 걱정하지 않을 것이다. 그것은 시편 1편의 말씀과 같다. 거기 보면, “복 있는 사람은 악인의 꾀를 좇지 아니하며 죄인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로다. 저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시절을 좇아 과실을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 행사가 다 형통하리로다”라고 말하였다(시 1:1-3). 참된 믿음은 순종을 가져오고 순종은 의와 선을 낳고 의와 선은 기쁨과 평강의 복을 가져온다.

본문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사람의 죄들은 하나님 앞에서 다 기억된다. 그것은 철필로 마음 판에 기록되듯이 기록될 것이다. 사람은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죄씻음을 받지 않으면 하나님의 공의의 형벌을 받을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의 죄를 철저히 회개하자.

둘째로, 헛된 우상숭배와 인본주의는 하나님 앞에서 저주받을 죄악이다.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을 버리고 우상들을 섬기며 사람을 의지하였기 때문에 하나님의 진노를 일으켰고 저주를 받았고 멸망하여 온 세상에 흩어졌고 포로로 잡혀가서 오랫동안 고생스런 삶을 살았다. 우리는 우상숭배를 버리고 인본주의를 버리자. 시편 146:3-4는, “방백들을 의지하지 말며 도울 힘이 없는 인생도 의지하지 말지니 그 호흡이 끊어지면 흙으로 돌아가서 당일에 그 도모가 소멸하리로다”고 말한다. 이사야 2:22도, “너희는 인생을 의지하지 말라. 그의 호흡은 코에 있나니 수에 칠 가치가 어디 있느뇨?”라고 말한다.

셋째로, 우리는 오직 하나님만 경외하고 의지하며 그의 계명을 순종하자. 7-8절, “무릇 여호와를 의지하며 여호와를 의뢰하는 그 사람은 복을 받을 것이라. 그는 물가에 심기운 나무가 그 뿌리를 강변에 뻗치고 더위가 올지라도 두려워 아니하며 그 잎이 청청하며 가무는 해에도 걱정이 없고 결실이 그치지 아니함 같으리라.” 우리는 오직 믿음으로만 살자. 우리는 하나님만 믿고 의지하며 성경책을 주야로 읽고 묵상하며 기도하며 가족들과 함께 그렇게 하며 성경말씀대로 행하자.

이렇게 믿음으로 살고 순종으로 사는 자들은 복된 삶과 승리적 삶을 살고 선한 열매를 많이 맺을 것이다. 그는 더위와 가뭄을 이길 것이다. 그는 모든 환난과 핍박을 이길 것이다. 그는 행복자이다. 또 그는 인격과 삶의 선한 열매를 맺을 것이다. 그는 성령의 열매 곧 사랑과 기쁨과 평안과 인내와 자비와 선함과 충성의 열매를 맺을 것이며 예수 그리스도의 형상을 이룰 것이며 전도의 열매도 맺을 것이다.

 

9-11절, 심히 부패한 마음

예레미야서의 특징적 계시 진리는 사람의 전적인 부패성에 관한 것이다. 선지자 예레미야는 유다 왕국의 멸망 시기에 유다 백성의 심히 악하고 부패된 상황을 보고 깊이 느끼면서 이 진리를 깨닫고 하나님께 받아 그것을 책에 기록하였다.

[9-11절] 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한 것은 마음이라. . . .

예레미야는 말한다. “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한 것은 마음이라. 누가 능히 이를 알리요마는 나 여호와는 심장을 살피며 폐부를 시험하고 각각 그 행위와 그 행실대로 보응하나니 불의로 치부하는[부를 얻는] 자는 자고새(메추라기 종류)가 낳지 아니한 알을 품음 같아서 그 중년에 그것이 떠나겠고 필경은 어리석은 자가 되리라.”

본문은 사람의 마음이 심히 부패하였다고 증거한다. 사람의 마음은 영혼의 활동이며 지식과 감정과 의지의 세 요소를 가진다. 사람의 죄악된 말과 행위들은 마음의 부패에 기인한다. 사람은 지식이 부패하였다. 사람은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그의 계명과 뜻에 대한 지식과 깨달음이 없고 도리어 헛된 것을 섬기며 거기에 가치를 두고 산다. 사람은 감정도 부패하였다. 사람은 자기 감정을 다스리지 못할 때가 많고, 난폭하고 격한 감정, 미움, 염려, 불안 등의 감정 장애를 가진 자들도 많다. 또 사람은 의지도 부패하였다. 사람은 바르고 선한 일을 알아도 그것을 행할 힘이 부족하고 우유부단하고 때로는 완고하고, 또 죄악된 습관에 굴복한다.

본문은 사람의 마음이 치료 불가능하게 부패했다고 말한다. 본문에 ‘심히 부패한’이라는 원어(아누쉬 vnUa;w)는 ‘병든, 연약한, 치료할 수 없는’이라는 뜻이다(BDB, KB). 사람의 마음은 전적으로 부패하였다. 이것은 성경에 계시된 한 중요한 진리이다. 이스라엘 역사가 그것을 증거하고 성경이 전체적으로 이 진리를 확증한다. 예레미야 13:23도, “구스인이 그 피부를, 표범이 그 반점을 변할 수 있느뇨? 할 수 있을진대 악에 익숙한 너희도 선을 행할 수 있으리라”고 말한다. 로마서 8:7-8도 말하기를,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나니 이는 하나님의 법에 굴복치 아니할 뿐 아니라 할 수도 없음이라. 육신에 있는 자들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느니라”고 한다.

본문은 하나님의 감찰에 대해 증거한다. “누가 능히 이를 알리요마는 나 여호와는 심장을 살피며 폐부를 시험하고 각각 그 행위와 그 행실대로 보응하나니.” ‘심장’이라는 원어(레브)는 ‘마음’이라고도 번역하는 말이고, 또 ‘폐부’라는 원어(켈라요스])는 ‘신장(콩팥)’이라는 말인데 ‘영혼의 작용들, 심리적 작용들, 생각과 감정 등’을 가리킨다. 사람의 마음을 알 수 있는 자는 사람 중에는 없으나 하나님께서는 사람의 마음을 감찰하신다. 성경은 그것을 증거한다.

시편 7:9, “악인의 악을 끊고 의인을 세우소서. 의로우신 하나님이 사람의 심장을 감찰하시나이다.” 시편 44:21, “하나님이 이를 더듬어 내지 아니하셨으리이까? 대저 주는 마음의 비밀을 아시나이다.” 시편 139:1-3, “여호와여, 주께서 나를 감찰하시고 아셨나이다. 주께서 나의 앉고 일어섬을 아시며 멀리서도 나의 생각을 통촉하시오며 나의 길과 눕는 것을 감찰하시며 나의 모든 행위를 익히 아시오니.”

히브리서 4:12-13,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감찰하나니 지으신 것이 하나라도 그 앞에 나타나지 않음이 없고 오직 만물이 우리를 상관하시는 자의 눈앞에 벌거벗은 것같이 드러나느니라.”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마음을 감찰하신다. 그는 우리의 생각과 감정을 다 아신다.

본문은 하나님의 보응에 대해서도 증거한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의 생각과 감정과 그 행위를 살피시고 그 옳고 그름과 선하고 악함을 시험하시고 그 행한 대로 보응하신다. 그는 선한 마음과 그 행위들을 장려하시고 복주시며 악한 마음과 그 행위들에 대해서는 거기에 합당한 벌을 내리신다. 요한계시록 2:23, “또 내가 사망으로 그의 자녀를 죽이리니 모든 교회가 나는 사람의 뜻과 마음을 살피는 자인 줄 알지라. 내가 너희 각 사람의 행위대로 갚아 주리라.”

본문은 불의로 치부하는 자는 메추라기가 낳지 아니한 알을 품음 같아서 그 중년에 그것이 떠나겠고 필경 어리석은 자가 될 것이라고 말한다. 사람의 한 대표적 죄는 불의로 재물을 취하는 것이다. 거짓과 사악과 탐욕은 죄악된 사람의 모습이다. 그 반면에 진실과 선과 의, 절제와 검소와 자족함은 참된 성도의 모습이다. 불의의 소득은 결코 복이 되지 못한다. 부도덕하게, 거짓되게, 또 탐심으로 버는 돈은 복이 되지 못한다. 잠언 20:17은, “속이고 취한 식물은 맛이 좋은 듯하나 후에는 그 입에 모래가 가득하게 되리라”고 말한다. 불의의 소득은 복이 되지 못한다. 잠언 16:8은, “적은 소득이 의를 겸하면 많은 소득이 불의를 겸한 것보다 나으니라”고 말한다.

본문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우리는 사람의 마음 속에 부패된 죄성이 있음을 알자. “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한 것은 마음이라.”

둘째로, 우리는 하나님의 감찰하심과 공의로 보응하심을 알고 두려워하자. 불의의 소득은 결코 복이 되지 않는다. 죄를 짓는 자는 하나님의 복과 평안을 누릴 수 없고 그의 엄한 징계와 징벌을 피할 수 없다.

셋째로, 우리는 육신을 따라 살지 말고 성경말씀과 성령의 감동과 인도하심을 따라 바르고 선하게 살자. 로마서 8:13, “너희가 육신대로 살면 반드시 죽을 것이로되 영[성령]으로써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리니.” 갈라디아서 5:16, “너희는 성령을 좇아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 사람은 속죄의 은혜와 성경말씀과 성령의 도우심이 아니고서는 바르고 선하고 진실하게 살 수 없다.

 

12-18절, 선지자의 기도

[12절] 영화로우신 보좌여, 원시부터 높이 계시며 우리의 성소이시며.

12절을 다시 번역하면, “태초부터 있는 영화로운 높은 보좌는 우리의 성소로다”(KJV, NASB, NIV). 태초에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께서는 영원하시다. 창조 이전 세계는 사람의 이해를 넘어서는 영원 세계이다. 하나님의 보좌는 태초부터 있는 영화로운 보좌이다.

그는 높은 보좌에 앉아 계신다. 보좌는 통치권을 상징한다. 하늘에 계신 하나님께서는 온 천하만물을 친히 다스리신다. 시편 93:1-2는, “여호와께서 통치하시니 스스로 권위를 입으셨도다,” “주의 보좌는 예로부터 견고히 섰으며 주는 영원부터 계셨나이다”라고 말한다.

하나님께서는 영화로운 분이시다. 그의 보좌는 영광의 보좌이다. 세상의 그 어떤 영광도 하나님의 영광에 비교할 수 없다. 그러므로 모든 피조물은 가장 최선의 방식, 가장 최상의 방식으로, 가장 정성을 다하여 하나님을 찬송하고 섬기며 순종해야 한다.

하나님의 하늘 보좌는 우리의 성소이다. 천국은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나는 곳이며 장차 하나님과 교제하며 섬길 수 있는 곳이며 그의 충만한 복을 받을 수 있는 곳이다. 지상의 성전이나 교회는 그 영광의 천국의 한 모형에 불과하다. 우리는 그의 영광을 누릴 자들이다.

[13절] 이스라엘의 소망이신 여호와여, 무릇 주를 버리는 자는 . . . .

예레미야는 또 말한다. “이스라엘의 소망이신 여호와여, 무릇 주를 버리는 자는 다 수치를 당할 것이라. 무릇 여호와를 떠나는 자는 흙에 기록이 되오리니 이는 생수의 근원이신 여호와를 버림이니이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의 소망이시며 또 우리 모두의 소망이시다. 죄와 불행과 죽음 문제의 해결은 오직 하나님께 있다. 사람의 참 위로와 소망도 오직 하나님께로서 나온다. 슬픔과 절망의 세상 속에서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소망, 우리의 위로와 힘이 되신다.

하나님을 버리고 떠나는 자는 허무하고 불행케 될 것이다. 본문은 주를 버리는 자는 다 수치를 당할 것이라고 말한다. 또 무릇 여호와를 떠나는 자는 흙에 기록이 될 것이라고 말한다. 원문에는 “나를 떠나는 자는 흙에 기록이 되리라”고 말하였는데(KJV), 그것은 선지자가 갑자기 하나님의 입장에서 그의 말씀을 대언한 것이며, 선지자의 독특한 영감성을 보인다. 흙에 기록되는 것은, 돌에 새기는 것과 달리, 지워져 버리는 것을 뜻하며, 허무하고 무가치하고 불행한 삶을 의미할 것이다. 악인의 삶은 허무하고 불행할 것이다.

하나님을 떠나는 자가 그렇게 되는 까닭은 생수의 근원이신 하나님을 버렸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는 생수의 근원이시다. 몸의 생명도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며 따라서 사람의 건강과 연약이 하나님의 손 안에 있지만, 특히 영생은 하나님께 있다. 그는 영생을 주시는 분이시다. 하나님과 연합하는 자는 영생을 누릴 것이다. 그러나 누구든지 하나님을 떠나고 그와 분리되면 영생을 잃을 것이다.

그러므로 모든 사람은 하나님을 알아야 한다. 성도들은 하나님을 알아야 하고 더욱 힘써 알아야 한다. 호세아 6:3은, “그러므로 우리가 여호와를 알자. 힘써 여호와를 알자”고 말한다. 또 우리는 하나님을 떠나지 말고 꼭 붙잡고 따라야 한다. 신명기 10:20은,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에게 친근히 하라[그를 꼭 붙들라]”고 말한다.

[14절] 여호와여, 주는 나의 찬송이시오니 나를 고치소서. . . .

예레미야는 또 말한다. “여호와여, 주는 나의 찬송이시오니 나를 고치소서. 그리하시면 내가 낫겠나이다. 나를 구원하소서. 그리하시면 내가 구원을 얻으리이다.” 예레미야는 사람의 구원이 오직 하나님께 있음을 믿고 고백한다. 그는 “나를 고치소서,” “나를 구원하소서”라고 아뢴다. 하나님께서는 육신의 병도 고쳐주실 수 있지만, 그보다 더 근원적인 병은 영혼의 병, 즉 죄 문제이며, 죄 문제의 해결, 곧 죄책의 해결과 죄성의 극복은 하나님 외에는 아무도 할 수 없는 일이다. 하나님께서 하시면 우리는 구원을 얻고 고침을 받을 수 있다. 사람은 다 죄인이며 심히 부패된 죄성을 가지고 있는 존재이지만, 하나님께서 하시면 죄인이 의인이 되고 죄성을 가진 자가 변하여 거룩하고 선한 인격자가 될 것이다. 그것이 신약성도가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 곧 십자가 보혈 공로와 성령의 내주(內住)하심으로 얻은 중생(重生)과 성화(聖化)의 은혜이다. 예레미야는 이 하나님의 은혜를 찬송한다. 그는 하나님을 “나의 찬송”이라고 고백한다.

[15-16절] 그들이 내게 이르기를 여호와의 말씀이 어디 있느뇨? . . .

예레미야는 또 말한다. “그들이 내게 이르기를 여호와의 말씀이 어디 있느뇨? 이제 임하게 할지어다 하나이다. 나는 목자의 직분에서 물러가지 아니하고 주를 좇았사오며 재앙의 날도 내가 원치 아니하였음을 주께서 아시는 바라. 내 입술에서 나온 것이 주의 목전에 있나이다.” 악한 자들은 예레미야에게 하나님의 말씀의 성취를 보게 하라고 재촉한다. 그러나 그는 낙심치 않았다. 그는 목자의 직분, 곧 선지자의 직분에서 물러나지 않았다. 그는 하나님의 부르심에 충성하였다. 그는 재앙의 날을 원한 것이 아니었다. 그는 다른 이들과 같이 그 날을 원치 않지만, 하나님의 명령이므로 선포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의 입술에서 나온 설교들은 다 그가 하나님 앞에서 선포한 것이었다. 그는 선지자의 사역이 어렵다고 포기하지 않았다. 그는 침묵하지 않았고, 또 회중의 귀를 즐겁게 하려 하지 않았다.

[17-18절] 주는 내게 두려움이 되지 마옵소서. 재앙의 날에 . . . .

예레미야는 또 말한다. “주는 내게 두려움이 되지 마옵소서. 재앙의 날에 주는 나의 피난처시니이다. 나를 박해하는 자로 수욕을 당케 하시고 나로 수욕을 당케 마옵소서. 그들로 놀라게 하시고 나로 놀라게 마시옵소서. 재앙의 날을 그들에게 임하게 하시며 배나 되는 멸망으로 그들을 멸하소서.” 예레미야는 다른 사람들과 똑같이 하나님의 재앙을 두려워한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이 그에게 두려움이 되지 않게 해달라고 기도한다. 그는 재앙의 날에도 하나님께서 그의 피난처이심을 고백한다. 그는 자기를 박해하는 자들이 수치와 해를 당할지언정 자기가 수치와 해를 당하지 않게 하기를 구한다. 그는 악인들로 놀라게 하시고 자신은 놀라지 않게 해달라고 말한다. 그는 재앙의 날에 악인들이 철저하게 멸망을 당하게 해달라고 간구한다.

본문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우리는 하나님께서 영원한 왕이시며 생명의 근원이심을 알자. 태초에 천지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께서는 영원하시다. 하나님께서는 영원 전부터 영원 후까지 영광의 보좌에서 세상을 통치하신다. 신명기 33:27, “영원하신 하나님이 너의 처소가 되시니 그 영원하신 팔이 네 아래 있도다.” 그에게는 영원한 생명이 있다. 우리는 그 하나님을 알고 그를 믿고 의지하며 사랑하며 섬기자.

둘째로, 우리는 고난 중에서도 오직 하나님께 기도하며 간구하자. 우리의 모든 문제의 해결은 하나님께 있고 그에게 기도하는 것밖에 없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영육의 모든 문제들을 고치시고 회복시키시고 해결하실 수 있다. 그러므로 무슨 어려운 문제가 있든지 하나님께 구하며 아뢰자. 시편 50:15는, “환난 날에 나를 부르라. 내가 너를 건지리니 네가 나를 영화롭게 하리로다”고 말씀하셨다.

셋째로, 우리는 고난 중에서도 우리의 직무를 다하자. 예레미야는 고난 중에서도 목자의 직분에서 물러나지 않았다. 바울은 고린도전서에서 죽은 자들의 부활에 대해 증거한 후, “그러므로 내 사랑하는 자들아, 견고하며 흔들리지 말며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고 권면하였다(15:58). 우리는 어떤 상황에서도 우리의 직무를 다해야 한다. 고난 중에서도 우리의 직무를 다해야 한다. 요한계시록 2:10,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면류관을 네게 주리라.”

 

19-27절, 안식일을 지킬 것

[19-27절] 여호와께서 내게 이같이 말씀하시되 너는 가서 유다 . . . .

여호와께서는 예레미야에게 이같이 말씀하셨다. “너는 가서 유다 왕들의 출입하는 평민의 문과 예루살렘 모든 문에 서서 무리에게 이르기를 이 문으로 들어오는 유다 왕들과 유다 모든 백성과 예루살렘 모든 거민 너희는 여호와의 말씀을 들을지어다.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너희는 스스로 삼가서 안식일에 짐을 지고 예루살렘 문으로 들어오지 말며 안식일에 너희 집에서 짐을 내지 말며 아무 일이든지 하지 말아서 내가 너희 열조에게 명함같이 안식일을 거룩히 할지어다. 그들은 청종치 아니하며 귀를 기울이지 아니하며 그 목을 곧게 하여 듣지 아니하며 교훈을 받지 아니하였느니라.”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너희가 만일 삼가 나를 청종하여 안식일에 짐을 지고 이 성문으로 들어오지 아니하며 안식일을 거룩히 하여 아무 일이든지 하지 아니하면 다윗의 위에 앉는 왕들과 방백들이 병거와 말을 타고 이 성문으로 들어오되 그들과 유다 모든 백성과 예루살렘 거민들이 함께 그리할 것이요 이 성은 영영히 있을 것이며 사람들이 유다 성읍들과 예루살렘에 둘린 곳들과 베냐민 땅과 평지와 산지와 남방에서 이르러서 번제와 희생과 소제와 유향과 감사의 희생을 가지고 여호와의 집으로 오려니와, 너희가 나를 청종치 아니하고 안식일을 거룩케 아니하여 안식일에 짐을 지고 예루살렘 문으로 들어오면 내가 성문에 불을 놓아 예루살렘 궁전을 삼키게 하리니 그 불이 꺼지지 아니하리라 하셨다 할지니라.”

하나님께서는 유다 백성과 예루살렘 거민들에게 안식일에 대해 친히 강조하셨다. 19절, “여호와께서 내게 이같이 말씀하시되.” 20절, “너희는 여호와의 말씀을 들을지어다.” 21절,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24절,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을 기록하고 있다. 하나님의 말씀은 이 세상에서 가장 가치 있고 귀한 것이며 절대적 권위를 가진 것이다.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을 담고 있을 뿐 아니라, 성경을 바르게 해석하면 그것은 지금도 살아 역사하는 하나님의 말씀이다. 하나님께서는 성경을 통해 말씀하신다.

하나님께서는 유대 백성과 예루살렘 거민들에게 안식일을 거룩히 지키라고 강조하셨다. 그들은 안식일에 짐을 지고 예루살렘 문으로 들어오지 말고 안식일에 집에서 짐을 내지도 말고 아무 일도 하지 말아서 안식일을 거룩히 해야 하였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열조들이 하나님의 명령을 청종치 않고 귀를 기울이지 않고 그 목을 곧게 하여 듣지 않고 교훈을 받지 않았음을 상기시키셨다. 또 그는 만일 그들이 안식일을 거룩히 지키면 왕들과 방백들이 유다 백성과 함께 예루살렘에 드나들며 이 성이 영영히 있을 것이며 사람들은 제물을 가지고 이곳에 와 하나님께 제사드릴 것이지만, 만일 그들이 안식일을 거룩히 지키지 않으면 그가 친히 예루살렘 성문에 불을 놓고 예루살렘 궁궐들을 삼킬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안식일을 지키는 것이 중요한 까닭은, 그것이 하나님의 언약의 표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시내산 언약의 내용인 십계명 안에 제4계명으로 명시되어 있다. 출애굽기 31:13, 16은,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고하여 이르기를 너희는 나의 안식일을 지키라. 이는 나와 너희 사이에 너희 대대의 표징이니 나는 너희를 거룩하게 하는 여호와인 줄 너희로 알게 함이라,” “이같이 이스라엘 자손이 안식일을 지켜서 그것으로 대대로 영원한 언약을 삼을 것이니”라고 말한다.

안식일 계명은 제7일에 휴식하고 아무 일도 하지 말라는 하나님의 명령이다. 출애굽기 20:8-10,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히 지키라. 엿새 동안은 힘써 네 모든 일을 행할 것이나 제7일은 너의 하나님 여호와의 안식일인즉 너나 네 아들이나 네 딸이나 네 남종이나 네 여종이나 네 육축이나 네 문안에 유하는 객이라도 아무 일도 하지 말라.” 출애굽기 23:12, “너는 6일 동안에 네 일을 하고 제7일에는 쉬라. 네 소와 나귀가 쉴 것이며 네 계집종의 자식과 나그네가 숨을 돌리리라.” 안식일은 종들과 가축들까지 쉬는 날이다. 출애굽기 34:21, “너는 엿새 동안 일하고 제7일에는 쉴지니 밭 갈 때에나 거둘 때에도 쉴지니라.” 발 갈 때나 거둘 때는 농부들이 1년 중 가장 바쁜 때이겠으나 그때에도 쉬어야 했다. 출애굽기 35:3은 안식일에는 모든 처소에 불도 피우지 말라고 명하였다.

안식일은 또한 공적 예배회로 모이는 날이다. 레위기 23:3, “일곱째 날은 쉴 안식일이니 성회(聖會)라.” 성회는 공적 예배의 모임을 가리킨다. 모든 백성은 그 날 모여 하나님께 예배를 드려야 했다.

구약시대에 안식일을 지키는 일은 매우 필수적이어서 그것을 범하는 것은 하나님의 진노를 가져오며 사형에 해당하는 큰 죄이었다. 출애굽기 31:14-15는, “무릇 그 날을 더럽히는 자는 죽일지며 무릇 그 날에 일하는 자는 그 백성 중에서 그 생명이 끊쳐지리라. 엿새 동안은 일할 것이나 제7일은 큰 안식일이니 여호와께 거룩한 것이라. 무릇 안식일에 일하는 자를 반드시 죽일지니라”고 말한다.

느헤미야는 유다에서 어떤 사람이 안식일에 술틀을 밟고 곡식단을 나귀에 실어 운반하며 포도주와 포도와 무화과와 여러 가지 짐을 지고 안식일에 예루살렘에 들어와서 식물을 파는 것을 보고 유다의 모든 귀인을 크게 꾸짖었다(느 13:17-18).

구약의 안식일은 예표적이었다. 율법이 명한 모든 절기들은 성막과 제사 제도와 함께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속죄 사역을 예표했다. 그것들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셔서 속죄 사역을 이루셨을 때 성취되었다. 구약의 안식일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성취되었다. 그는 믿는 우리에게 참 안식을 주셨다(마 11:28). 골로새서 2:16-17은, “그러므로 먹고 마시는 것과 절기나 월삭이나 안식일을 인하여 누구든지 너희를 폄론[판단]하지 못하게 하라. 이것들은 장래 일의 그림자이나 몸은 그리스도의 것이니라”고 말하였다. 안식일은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하는 그림자이었다.

안식일 계명의 도덕적 요소는 오늘날에도 지켜져야 한다. 그것은 7일 중 하루의 구별과 육신의 휴식과 하나님께 드리는 공적 예배 등이다. 특히 신약성경은 교회의 공적인 모임의 필요성을 강조한다. 히브리서 10:25, “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하지 말고 오직 권하여 그 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더욱 그리하자.”

더욱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구약 율법의 성취는 위축된 방식으로가 아니고 풍성한 방식으로 이루어졌다. 그러므로 신약성도는 온 몸을 하나님께 바치며 모든 시간과 모든 물질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사용한다.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토요 안식일이 주일로 변경되었으므로, 신약성도는 주일을 그리스도인의 안식일과 공적 예배의 날로 구별하여 지킨다. 그것이 안식일 계명 속에 담긴 도덕적 요소이다. 주일를 거룩히 지키는 것은 신약성도들에게 복된 의무이다.

본문의 교훈은 무엇인가? 안식일 준수를 강조하신 하나님의 뜻은 오늘날에도 유효하다. 오늘날 우리는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허락하신 주일을 거룩히 지켜 주 안에서 쉬며 교회로 모이며 하나님께 예배드림으로 하나님께 감사와 영광을 돌리고 또 하나님께서 주시는 영적 유익과 복을 누린다. 그것은 모든 그리스도인의 의무이다. 주일은 내 날로 사용하거나 세속적 날로 사용해서는 안 될 것이다. 물론, 신약성도는 주일을 구약시대의 안식일처럼 엄격한 법에 의해 지키지는 않는다. 그러나 우리는 자유함과 자원함으로, 그러나 구약보다 더 풍성하게, 한 날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또 우리 자신의 영적 성장과 유익을 위해 거룩히 구별하여 쉬며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날로 지켜야 할 것이다.

 

 

18장: 백성들이 선지자의 말을 거절함

1-17절, 백성들의 부정적 반응

[1-4절] 여호와께로부터 예레미야에게 임한 말씀에 가라사대 . . . .

여호와께로부터 예레미야에게 말씀이 임했다. “너는 일어나 토기장이의 집으로 내려가라. 내가 거기서 내 말을 네게 들리리라.” 예레미야는 토기장이의 집으로 내려가서 보았다. 토기장이는 녹로(轆轤)로 일을 하는데 진흙으로 만든 그릇이 토기장이의 손에서 파상하므로[손상되므로] 그가 그것으로 자기 의견에 선한 대로 다른 그릇을 만들었다. ‘녹로’(轆轤, wheel)는 질그릇을 만드는 데 쓰는 물레(돌리는 틀)이다. 오늘날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기 위해 성경책으로 나아가서 그 책을 읽어야 한다.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다.

[5-10절] 때에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하니라. 가라사대 . . . .

여호와의 말씀이 예레미야에게 임하셨다. “나 여호와가 이르노라. 이스라엘 족속아, 이 토기장이의 하는 것같이 내가 능히 너희에게 행하지 못하겠느냐? 이스라엘 족속아, 진흙이 토기장이의 손에 있음같이 너희가 내 손에 있느니라. 내가 언제든지 어느 민족이나 국가를 뽑거나 파하거나 멸하리라 한다고 하자. 만일 나의 말한 그 민족이 그 악에서 돌이키면 내가 그에게 내리기로 생각하였던 재앙에 대하여 뜻을 돌이키겠고, 내가 언제든지 어느 민족이나 국가를 건설하거나 심으리라 한다고 하자. 만일 그들이 나 보기에 악한 것을 행하여 내 목소리를 청종치 아니하면 내가 그에게 유익케 하리라 한 선에 대하여 뜻을 돌이키리라.

하나님의 말씀의 첫 번째 요점은 하나님의 주권자 되심이다. 하나님께서는 토기장이처럼 온 세상의 주권자이시다. 사람은 하나님의 손 안에 있다. 이스라엘뿐 아니라, 온 세계가 다 그의 손 안에 있다. 두 번째 요점은 하나님의 공의와 인간의 도덕적 책임이다. 즉 하나님께서는 악을 회개하고 하나님께 순종하는 자들에게는 재앙 대신 평강을 주실 것이지만, 악을 행하며 하나님께 불순종하면 평강 대신 재앙을 내리실 것이다. 사람은 자기 행위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한다.

[11-12절] 그러므로 이제 너는 유다 사람들과 예루살렘 . . . .

하나님께서는 또 말씀하신다. “그러므로 이제 너는 유다 사람들과 예루살렘 거민들에게 말하여 이르기를 여호와의 말씀에 보라, 내가 너희에게 재앙을 내리며 계책을 베풀어 너희를 치려 하노니 너희는 각기 악한 길에서 돌이키며 너희 길과 행위를 선하게 하라 하셨다 하라. 그러나 그들이 말하기를 이는 헛된 말이라. 우리는 우리의 도모[계획]대로 행하며 우리는 각기 악한 마음의 강퍅한 대로 행하리라 하느니라.” 하나님의 말씀의 세 번째 요점은 악한 길에서 돌이켜 선을 행하라는 것이다. 하나님의 뜻은 언제나 동일하다. 그는 범죄한 유다 백성에게 회개하라고 명하신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부정적 반응을 나타내었다. 그들은 하나님의 명령을 거절했고, 그 말씀을 ‘헛된 말이라’(노아쉬)[소용이 없다]고 말했다. 그것은 불신앙이요 매우 큰 죄악이다. 그들은 하나님을 버리고 자기들의 계획과 생각대로, 자기들의 굳은 마음대로 악한 길로 나가려 하였다.

[13-17절] 그러므로 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너희는 . . . .

예레미야는 또 말한다. “그러므로 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너희는 누가 이러한 일을 들었는가 열방 중에 물어보라. 처녀 이스라엘이 심히 가증한 일을 행하였도다. 레바논의 눈이 어찌 들의 반석을 떠나겠으며 원방에서 흘러내리는 찬물이 어찌 마르겠느냐? 대저 내 백성은 나를 잊고 허무한 것에게 분향하거니와 이러한 것들은 그들로 그 길 곧 그 옛길에서 넘어지게 하며 곁길 곧 닦지 아니한 길로 행케 하여.”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의 음성을 듣지 않고 그의 계명을 저버리고 심히 가증한 일을 행했다. 그들은 하나님을 잊어버렸고 허무한 우상에게 분향했다. 그러나 이것은 에녹과 노아가 걸었던 길, 아브라함이 걸었던 길, 모세와 여호수아가 걸었던 길, 다윗이 걸었던 그 옛길, 우리가 가야 할 그 옛길에서 떠나는 것이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심판을 선언하신다. “[우상들은] 그들의 땅으로 놀랍고(솸마)[황폐케 하고](KJV, NASB, NIV) 영영한 치소[비웃음거리]가 되게 하리니 그리로 지나는 자마다 놀라서 그 머리를 흔들리라. 내가 그들을 그 원수 앞에서 흩기를 동풍으로 함같이 할 것이며 그들의 재난의 날에는 내가 그들에게 등을 보이고 얼굴을 보이지 아니하리라.” 그들은 황폐케 되며 비웃음거리가 되며 다 흩어질 것이다. 그들은 하나님의 등만 보게 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긍휼의 얼굴을 감추시고 그들을 구원치 않으실 것이다.

본문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우리는 하나님의 주권을 알아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토기장이이시면 우리는 그의 손 안에 있는 진흙과 같다. 하나님을 아는 것은 세상과 인간의 근원을 아는 것이다.

둘째로, 우리는 겸손히 하나님의 뜻에 순종해야 한다. 하나님의 뜻은 사람이 악을 버리고 거룩과 의와 선을 행하는 것이다. 11절, “너희는 각기 악한 길에서 돌이키며 너희 길과 행위를 선하게 하라.” 우리는 모든 악을 버리고 오직 거룩과 의와 선을 행해야 한다. 아모스 5:6, “너희는 여호와를 찾으라. 그리하면 살리라.” 아모스 5:14, “너희는 살기 위하여 선을 구하고 악을 구하지 말지어다.” 하나님을 알고 경외하고 믿고 그 계명에 순종하는 것이 생명의 길이며 평강과 형통의 길이다.

셋째로, 하나님을 거스르며 악을 행하는 자는 망할 것이다. 하나님을 거역하고 악을 행하는 자들은 황폐케 되고 사람들의 비웃음거리가 되고 온 세상에 흩어지며 하나님의 은총의 얼굴을 보지 못할 것이다.

 

18-23절, 예레미야의 고난

[18절] 그들이 말하기를 오라 우리가 꾀를 내어 예레미야를 . . . .

예레미야는 말한다. “그들이 말하기를 오라, 우리가 꾀를 내어 예레미야를 치자. 제사장에게서 율법이, 지혜로운 자에게서 모략이, 선지자에게서 말씀이 끊어지지 아니할 것이니 오라, 우리가 혀로 그를 치고 그의 아무 말에도 주의치 말자 하나이다.”

이스라엘 백성은 꾀를 내어 예레미야를 치려 하였다. 그들은 악하고 거짓되었다. 악은 숨어서나 할 수 있는 일이며 정정당당하지 못하다. 그들은 선지자에게서 말씀이 끊어지지 아니할 것이라고 말하지만, 예레미야의 설교와 다른 거짓 선지자들의 설교는 근본적으로 달랐다.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과 사람의 말의 차이이었다.

그들은 예레미야를 말로 비방하였다. 하나님의 종들은 때때로 말로 비난을 받았다. 고라 일당은 모세에게 분수에 지나치다고 말하고 모세가 그들 위에 왕이 되려 한다고 비방했었다(민 16:3, 13). 고린도후서 6:8에 보면, 사도 바울은 자신이 영광도 받으나 욕도 받고 악한 이름도 가지며 아름다운 이름도 가진다고 증거했다. 또 디모데후서 4:14-15에 보면, 구리 장색 알렉산더는 바울에게 해를 많이 보였고 그의 말을 심히 대적하였다. 주의 종들은 때때로 비난을 받았다.

또 그들은 예레미야의 설교를 무시했다. 그들은 그의 설교를 헛된 말로 여기며 들으려 하지 않았다. 사도 바울은 말하기를, “때가 이르리니 사람이 바른 교훈을 받지 아니하며 귀가 가려워서 자기의 사욕을 좇을 스승을 많이 두고 또 그 귀를 진리에서 돌이켜 허탄한 이야기를 좇으리라”고 말했다(딤후 4:3-4).

[19-20절] 여호와여, 나를 돌아보사 나로 더불어 다투는 . . . .

예레미야는 또 말한다. “여호와여, 나를 돌아보사 나로 더불어 다투는 그들의 목소리를 들어보옵소서. 어찌 악으로 선을 갚으리이까마는 그들이 나의 생명을 해하려고 구덩이를 팠나이다. 내가 주의 분노를 그들에게서 돌이키려 하고 주의 앞에 서서 그들을 위하여 선한 말씀한 것을 기억하옵소서.” 그들은 예레미야를 해치려고 구덩이를 팠다. 예레미야는 그들의 이런 꾀, 비방, 무시, 구덩이, 올무 때문에 마음의 고통이 컸었다. 성경 시대에나 교회 역사에서나 하나님의 종들은 때때로 이런 고난을 당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면서 당하는 고난은 결코 수치가 아니고 오히려 영광이었다.

그들이 예레미야를 대항하고 비방하고 무시하고 구덩이를 파고 올무를 놓은 것은 정당하지 못했다. 그러므로 예레미야는 이런 상황에서 하나님께서 자신을 돌아보시기를 호소하였다. 그들은 예레미야의 선포한 말씀을 자기들에게 욕하는 것이라고 잘못 생각하였으나, 실상 그 말씀들은 하나님 앞에서 전한 하나님의 말씀이며, 그들의 유익을 위한 선한 말씀이며, 그들로 하나님의 진노를 피하게 하는 말씀이었다. 율법은 본래부터 사람의 행복을 위한 것이다. 모세는 신명기 10:12-13에서 말하기를, “이스라엘아,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요구하시는 것이 무엇이냐? 곧 네 하나님 여호와를 경외하여 그 모든 도를 행하고 그를 사랑하며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섬기고 내가 오늘날 네 행복을 위하여 네게 명하는 여호와의 명령과 규례를 지킬 것이 아니냐?”라고 하였다.

[21-23절] 그러하온즉 그들의 자녀를 기근에 내어주시며 . . . .

예레미야는 말한다. “그러하온즉 그들의 자녀를 기근에 내어주시며 그들을 칼의 세력에 붙이시며 그들의 아내들은 자녀를 잃고 과부가 되며 그 장정은 사망을 당하며 그 청년은 전장(戰場)에서 칼을 맞게 하시며 주께서 군대로 졸지에 그들에게 임하게 하사 그들의 집에서 부르짖음이 들리게 하옵소서. 이는 그들이 나를 취하려고 구덩이를 팠고 내 발을 빠치려고 올무를 베풀었음이니이다. 여호와여, 그들이 나를 죽이려 하는 계략을 주께서 다 아시오니 그 악을 사하지 마시며 그 죄를 주의 목전에서 도말치 마시고 그들로 주의 앞에 넘어지게[엎어지게] 하시되 주의 노하시는 때에 이같이 그들에게 행하옵소서.” 예레미야는 유다 백성에 대한 하나님의 징벌을 호소한다. 이것은 단지 선지자의 개인적 감정의 표현이 아니고 하나님의 공의가 드러나기를 간구한 것이다. 하나님의 공의의 징벌을 구한 것이다.

본문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욕이나 부담으로 생각하지 말고 복과 생명으로 바로 깨닫자. 참된 선지자들은 책망하는 설교를 많이 했다. 반면에, 거짓 선지자들은 축복하는 설교를 많이 했다. 하나님의 모든 계명과 규례들은 우리의 행복을 위한 것이다. 신명기 10:13, “내가 오늘날 네 행복을 위하여 네게 명하는 여호와의 명령과 규례를 지킬 것이 아니냐?”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을 욕이나 부담으로 여기지 말고, 우리의 생명과 행복의 길임을 알자.

둘째로,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자들을 함부로 비방하지 말자. 그들은 주께서 보내신 종들이다. 그들을 영접하는 것은 주를 영접하는 것이며 그들을 거절하는 것은 주님을 거절하는 것이다. 그들을 비방하면 그들이 전하는 하나님의 말씀의 권위가 땅에 떨어질 것이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은, 데살로니가전서 5:12-13에서, “형제들아, 우리가 너희에게 구하노니 너희 가운데서 수고하고 주 안에서 너희를 다스리며 권하는 자들을 너희가 알고 저의 역사로 말미암아 사랑 안에서 가장 귀히 여기며 너희끼리 화목하라”고 말하였다.

셋째로, 우리는 하나님의 참된 종들을 통해 전해지는 하나님의 말씀을 귀히 여기고 달게 받고 힘써 지키자. 이것은 우리와 우리 자녀들에게 행복이 되며 영생에 이르는 정상적 과정이다. 하나님께서 요구하시는 것은 우리가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를 사랑하고 섬기며 그가 우리의 행복을 위해 주신 모든 계명과 규례를 지키는 것이다(신 10:12-13).

 

 

19장: 오지병처럼 깨뜨리실 것

본장은 하나님께서 유다 백성과 예루살렘 성을 오지병처럼 깨뜨리실 것을 예언하신 내용이다. 오지병은 잿물을 입힌 질그릇을 가리키지만 여기서는 그냥 질그릇과 오지그릇을 구분하는 것 같지 않다.

[1-5절]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가서 토기장이의 . . . .

여호와께서는 예레미야에게 말씀하셨다. “가서 토기장이의 오지병을 사고 백성의 어른들과 제사장의 어른 몇 사람을 데리고 하시드 문 어귀 곁에 있는 힌놈의 아들의 골짜기로 가서 거기서 내가 네게 이른 말을 선포하여 이르기를 너희 유다 왕들과 예루살렘 거민아, 여호와의 말씀을 들으라.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이같이 말씀하시되 보라, 내가 이곳에 재앙을 내릴 것이라. 무릇 그것을 듣는 자의 귀가 진동하리니 이는 그들이 나를 버리고 이곳을 불결케 하며 이곳에서 자기와 자기 열조와 유다 왕들의 알지 못하던 다른 신들에게 분향하며 무죄한 자의 피로 이곳에 채웠음이며 또 그들이 바알을 위하여 산당을 건축하고 자기 아들들을 바알에게 번제로 불살라 드렸나니 이는 내가 명하거나 말하거나 뜻한 바가 아니니라.”

하나님께서는 선지자 예레미야가 토기장이의 오지병을 사고 백성의 어른들과 제사장의 어른 몇 사람을 데리고 하시드 문 어귀 곁에 있는 힌놈의 아들의 골짜기로 가서 거기서 하나님의 재앙을 선언하라고 말씀하셨다. ‘하시드 문’(솨아르 하카르시스)은 ‘질그릇 조각의 문’이라는 뜻이다(BDB, NASB, NIV). 하나님께서 재앙을 내리시는 이유는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을 버리고 그곳을 불결하게 하여 거기서 그들과 그들 열조와 유다 왕들의 알지 못하던 다른 신들에게 분향하고 무죄한 자들의 피를 많이 흘리고 바알을 위해 산당을 건축하고 자기 아들들을 바알에게 번제로 불살라 드렸기 때문이다. 그런 죄악된 행위들은 하나님께서 명하셨거나 말씀하셨거나 뜻하신 바가 아니었다.

[6-9절] 그러므로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보라 다시는 이곳을 . . . .

예레미야는 말한다. “그러므로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보라, 다시는 이곳을 도벳이나 힌놈의 아들의 골짜기라 칭하지 아니하고 살육의 골짜기라 칭하는 날이 이를 것이라. 내가 이곳에서 유다와 예루살렘의 모계(謀計)[계획]를 무효케 하여 그들로 그 대적 앞과 생명을 찾는 자의 손의 칼에 엎드러지게 하고 그 시체를 공중의 새와 땅 짐승의 밥이 되게 하며 이 성으로 놀람과 모욕거리가 되게 하리니 그 모든 재앙을 인하여 지나는 자마다 놀라며 모욕할 것이며 그들이 그 대적과 그들의 생명을 찾는 자에게 둘러싸여 곤핍을 당할 때에 내가 그들로 그 아들의 고기, 딸의 고기를 먹게 하고 또 각기 친구의 고기를 먹게 하리라 하셨다 하고.”

하나님께서는, 그들이 우상숭배하며 무죄한 자들의 피를 흘리며 그 아들들을 바알에게 불살라 드렸던 그 골짜기가 살육의 골짜기가 될 것이며 많은 사람들이 전쟁에서 죽어 공중의 새와 들짐승의 밥이 되고 그 성을 지나는 자들이 놀랄 것이며, 또 예루살렘 성 안에 있는 자들은 침략자들에게 오랫동안 포위되어 너무 굶주린 나머지 자기 자녀들의 고기를 먹고 친구의 고기를 먹으리라고 말씀하셨다.

이것은 레위기 26장과 신명기 28장에 이미 경고된 불행이다. 레위기 26:29, “[너희가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지 않으면] 너희가 아들의 고기를 먹을 것이요 딸의 고기를 먹을 것이며.” 신명기 28:53-55, “네가 대적에게 에워싸이고 맹렬히 쳐서 곤란케 함을 당하므로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주신 자녀 곧 네 몸의 소생의 고기를 먹을 것이라. 너희 중에 유순하고 연약한 남자라도 그 형제와 그 품의 아내와 그 남은 자녀를 질시하여 자기의 먹는 그 자녀의 고기를 그 중 누구에게든지 주지 아니하리니 이는 네 대적이 네 모든 성읍을 에워싸고 맹렬히 너를 쳐서 곤란케 하므로 아무것도 그에게 남음이 없는 연고일 것이며.” 이 경고된 불행이 실제로 일어날 것이다.

[10-13절] 너는 함께 가는 자의 목전에서 그 오지병을 . . . .

하나님께서는 또 예레미야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함께 가는 자 앞에서 그 오지병을 깨뜨리고 그들에게 말하기를 만군의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사람이 토기장이의 그릇을 한번 깨뜨리면 다시 완전하게 할 수 없나니 이와 같이 내가 이 백성과 이 성을 파하리니 그들을 매장할 자리가 없도록 도벳에 장사하리라.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가 이곳과 그 중 거민에게 이같이 행하여 이 성으로 도벳 같게 할 것이라. 예루살렘 집들과 유다 왕들의 집들 곧 그 집들이 그 집 위에서 하늘의 만상(萬象)에 분향하고 다른 신들에게 전제(奠祭)를 부음으로 더러워졌은즉 도벳 땅처럼 되리라 하셨다 하라.”

하나님께서는 오지병을 깨뜨리심같이 예루살렘 성을 깨뜨리실 것이다. 그 시체들은 도벳에 매장할 자리가 없도록 매장될 것이다. 그것은 그들이 자기 집들 위에서 해와 달과 별들을 섬기며 분향하고 그것들을 위해 피와 기름과 포도주를 부었기 때문이다.

[14-15절] 예레미야가 여호와께서 자기를 보내사 예언하게 . . . .

예레미야는 여호와께서 자기를 보내어 예언하게 하신 도벳에서 돌아와 여호와의 집 뜰에 서서 모든 백성에게 말하였다.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말씀하시되 보라, 내가 이 성에 대하여 선언한 모든 재앙을 이 성과 그 모든 촌락에 내리리니 이는 그 목을 곧게 하여 내 말을 듣지 아니함이니라 하셨다 하라.”

하나님의 재앙이 예루살렘 성과 그 주위에 임할 것이다. 그것은 선지자로 하여금 오지병을 깨뜨리게 하는 행위로 상징했다. 하나님께서 그런 재앙을 그 성에 내리시는 까닭은 그들이 그 목을 곧게 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았기 때문이다. 사람의 죄 중에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는 것보다 더 큰 죄는 없다. 사람은 교만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으므로 온갖 죄를 범하게 되는 것이다.

본장은 두 가지 교훈을 준다. 첫째로, 사람은 범죄하면 망한다. 이것은 하나님의 진리들 중에 가장 기본적인 것 중 하나이다. 이것은 하나님의 공의의 보응이라는 진리이다. 사람은 누구든지 죄를 지으면 오지병처럼 깨뜨림을 받을 것이다. 이것은 구약시대뿐 아니라 신약시대에도 폐지되지 않았고 마지막 대심판에서 밝히 선언될 변함없는 진리이다. 사도시대에 아나니아와 삽비라는 사도 베드로 앞에서 거짓말을 하다가 즉사하였다(행 5장). 은혜의 복음을 밝히 해설한 로마서 8:13에서 사도 바울은 “너희가 육신대로 살면 반드시 죽을 것이로되 영[성령]으로써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리니”라고 말했다. 사람은 범죄하면 망한다. 이것은 오늘날도 변함 없는 엄숙한 진리이며 하나님의 경고이다.

둘째로, 성도는 오직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의 계명을 순종해야 한다. 주께서는 “너희가 나를 사랑하면 나의 계명을 지키리라”고 말씀하셨다(요 14:15).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다면 하나님의 계명 곧 십계명을 지킬 것이며,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사랑한다면 그의 새 계명 곧 서로 사랑하라는 계명을 지킬 것이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과 이웃을 사랑하는 것은 신앙의 필수적 내용이다. 소돔 고모라 성은 의인 10명이 없어서 멸망을 당하였다. 오늘날도 비슷할 것이다. 우리 그리스도인만이라도 바로 살면, 서울은 망하지 않을 것이며, 아니 우리나라가 망하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다른 사람들이 바르게 사는지 어떤지 잘 모른다. 실상 그것은 우리가 판단할 일이 아니고 심판자 여호와 하나님께서 판단하시고 징벌하실 일이다. 오직 우리는, 우리만이라도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의 모든 계명과 교훈에 절대 순종하자.

 

 

20장: 예레미야의 고통

본장은 예레미야가 당한 심적인 큰 고통을 증거한다.

[1-6절] 제사장 임멜의 아들 바스훌은 여호와의 집 유사장이라. . . .

제사장 임멜의 아들 바스훌은 여호와의 집 유사장[직원들의 수장]이었다. 그는 예레미야의 이 일 예언함, 즉 예레미야가 유다 백성과 예루살렘 성이 오지병처럼 깨뜨려질 것이라고 예언함을 들었다. 그래서 바스훌은 선지자 예레미야를 때리고 여호와의 집 베냐민의 윗문에 있는 착고[차꼬]에 채웠다. 다음날 바스훌이 예레미야를 착고[차꼬]에서 놓아주자 예레미야는 그에게 말하였다. “여호와께서 네 이름을 바스훌이라 아니하시고 마골밋사빕[사방으로 두려움]이라 하시느니라. 대저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보라, 내가 너로 너와 네 모든 친구에게 두려움이 되게 하리니 그들이 그 원수의 칼에 엎드러질 것이요 네 눈은 그것을 볼 것이며 내가 온 유다를 바벨론 왕의 손에 붙이리니 그가 그들을 사로잡아 바벨론으로 옮겨 칼로 죽이리라. 내가 또 이 성의 모든 부와 그 모든 소득과 그 모든 귀물과 유다 왕들의 모든 보물을 그 원수의 손에 붙이리니 그들이 그것을 탈취하여 바벨론으로 가져가리라. 바스훌아, 너와 네 집에 거하는 모든 자가 포로되어 옮기우리니 네가 바벨론에 이르러 거기서 죽어 거기 묻힐 것이라. 너와 네가 거짓 예언을 하여 들린 네 모든 친구도 일반이리라 하셨느니라.” 바스훌은 거짓 예언도 하였다.

예레미야가 핍박과 고통을 당하게 된 원인은 하나님께서 그에게 주신 사명 곧 그의 선지자 사역, 그의 설교 사역 때문이었다. 예레미야는 그런 고난을 예측하였을 것이지만, 그것을 두려워하지 않았고 오히려 그것을 각오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담대히 전하였다. 그것이 하나님의 종들이 하나님 앞에서 가지는 참된 충성이다.

[7-10절] 여호와여, 주께서 나를 권유하시므로 내가 그 권유를 . . . .

예레미야는 하나님께 아뢴다. “여호와여, 주께서 나를 권유하시므로 내가 그 권유를 받았사오며 주께서 나보다 강하사 이기셨으므로 내가 조롱거리가 되니 사람마다 종일토록 나를 조롱하나이다. 대저 내가 말할 때마다 외치며 강포와 멸망을 부르짖으오니 여호와의 말씀으로 하여 내가 종일토록 치욕과 모욕거리가 됨이니이다.”

예레미야는 자기가 원해서, 자기의 야망 때문에 선지자가 된 것이 아니었다. 그는 오직 하나님의 권유 때문에 선지자가 되었다. ‘권유(勸誘)하다’는 원어(파사)는 ‘설득하다, 꾀이다, 속이다’는 뜻이다. 이 말은 예레미야가 선지자의 그 고생의 길을 미리 알았더라면 피했을지도 모르나 하나님께서 그를 속이셨다는 맛을 풍긴다. 그는 지금 그가 전한 하나님의 말씀 곧 유다 백성이 당할 강포와 멸망을 전하기 때문에 종일토록 치욕과 모욕거리가 되었다.

예레미야는 또 말한다. “내가 다시는 여호와를 선포하지 아니하며 그 이름으로 말하지 아니하리라 하면 나의 중심이 불붙는 것 같아서 골수에 사무치니 답답하여 견딜 수 없나이다.” 예레미야는 고난 중에서도 하나님께서 주신 사명에 충실하였다. 그는 하나님께서 주신 그 말씀을 전하지 않고서는 견딜 수가 없었다.

예레미야는 또 말한다. “나는 무리의 비방과 사방의 두려움을 들었나이다. 그들이 이르기를 고소하라. 우리도 고소하리라 하오며 나의 친한 벗도 다 나의 타락하기를 기다리며 피차 이르기를 그가 혹시 유혹을 받으리니 우리가 그를 이기어 우리 원수를 갚자 하나이다.” 사람들은 그를 비방하였고 또 고소하겠다고 위협하였고 그의 친한 벗들도 그의 타락하기를 기다렸고 그를 대적하는 자가 되었다. 그는 감당하기 어려운 심신의 고통을 겪고 있었다.

[11-13절] 그러하오나 여호와는 두려운 용사 같으시며 나와 . . . .

그러나 그는 하나님께 기도하였다. “그러하오나 여호와는 두려운 용사 같으시며 나와 함께하시는 고로 나를 박해하는 자가 넘어지고 이기지 못할 것이오며 그들은 지혜롭게 행치 못하므로 큰 수욕을 당하오리니 그 수욕은 영영히 잊지 못할 것이니이다. 의인을 시험하사 그 폐부와 심장을 보시는 만군의 여호와여, 나의 사정을 주께 아뢰었사온즉 주께서 그들에게 보수(報讐)하심을 나로 보게 하옵소서. 여호와께 노래하라. 너희는 여호와를 찬양하라. 가난한 자의 생명을 행악자의 손에서 구원하셨음이니라.”

성도는 고난 중에 기도할 것밖에 없다. 예레미야는 고난 중에 하나님께 아뢰었다. 그는 두려운 용사 같으신 하나님께서 그와 함께하시므로 그를 박해하는 자가 넘어지고 이기지 못하고 큰 수욕을 당할 것을 확신하였고, 또 하나님께서 자기의 사정을 아심으로 그들에게 갚아주실 것을 믿었다. 그는 하나님께서 그의 생명을 행악자의 손에서 구원하실 것을 확신하며 하나님께 노래하며 찬양하였다.

[14-18절] 내 생일이 저주를 받았더면, 나의 어미가 나를 . . . .

그러나 그는 또한 그가 현재 당하는 고통이 크므로 그의 출생을 저주하며 말하였다. “내 생일이 저주를 받았더면, 나의 어미가 나를 생산[출산]하던 날이 복이 없었더면, 나의 아비에게 소식을 전하여 이르기를 네가 생남하였다[아들을 낳았다] 하여 아비를 즐겁게 하던 자가 저주를 받았더면, 그 사람은 여호와께서 훼파[파괴]하시고 후회치 않으신 성읍같이 되었더면, 그로 아침에는 부르짖는 소리, 낮에는 떠드는 소리를 듣게 하였더면, 이는 그가 나를 태에서 죽이지 아니하셨으며 나의 어미로 내 무덤이 되게 하지 아니하셨으며 그 배로 항상 부르게 하지 아니하신 연고로다. 어찌하여 내가 태에서 나와서 고생과 슬픔을 보며 나의 날을 수욕으로 보내는고.”

본장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우리는 악인들의 핍박을 두려워하지 말자. 모세와 선지자들은 많은 핍박과 고난을 당하였다. 예수께서도 많은 고난을 받으셨고 마침내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셨다. 바울을 포함하여 사도들도 많은 고난을 받았다. 시편 34:19는 “의인은 고난이 많다”고 말했다. 주께서는 “나를 인하여 너희를 욕하고 핍박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스려[거슬러]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 너희 전에 있던 선지자들을 이같이 핍박하였느니라”고 말씀하셨고(마 5:11, 12), 또 “아무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고 말씀하셨다(마 16:24). 바울은 “우리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려면 많은 환난을 겪어야 할 것이라”고 말했고(행 14:22), 또 “무릇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경건하게 살고자 하는 자는 핍박을 받으리라”고 했다(딤후 3:12). 이 세상에서는 악인들의 핍박이 있으나, 우리는 그것을 두려워하지 말자. 하나님께서 계시기 때문이다.

둘째로, 우리는 고난 중에 오직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며 기도하자. 예레미야는 하나님의 기도 응답과 구원과 도움을 확신하였다. 하나님께서는 하고자 하시면 어떤 악한 상황 가운데서도 우리를 건져내실 수 있다. 시편 34:19는, “의인은 고난이 많으나 여호와께서 그 모든 고난에서 건지시는도다”라고 말하였다. 또 시편 50:15는, “환난 날에 나를 부르라. 내가 너를 건지리니 네가 나를 영화롭게 하리로다”라고 말한다. 이것은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이다. 사도 바울은 아시아에서 사형선고를 받은 것 같은 고난을 받았으나 오히려 하나님만 의지하는 법을 배웠고 또 담대히 성도들에게 그의 전도 일행을 위해 기도함으로 도우라고 권하였다(고후 1:8-11). 요한계시록 13장은 마지막 대환난의 때에 적그리스도의 출현으로 성도들이 큰 핍박을 당하게 될 것이나 이때에 성도들의 인내와 믿음이 요구된다고 말했다(계 13:7, 10). 우리는 어떠한 고난 중에서도 하나님만 믿고 의지하며 기도하자.

 

 

21장: 바벨론에게 망할 것임

[1-7절] 시드기야 왕이 말기야의 아들 바스훌과 제사장 . . . .

유다의 시드기야 왕이 말기야의 아들 바스훌과 제사장 마아세야의 아들 스바냐를 보내어 예레미야에게 말하기를,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이 우리를 치니 청컨대 너는 우리를 위하여 여호와께 간구하라. 여호와께서 혹시 그 모든 기사(奇事)로 우리를 도와 행하시면 그가 우리를 떠나리라”고 하던 그때에, 여호와께로부터 예레미야에게 말씀이 임하였다.

예레미야는 그들에게 대답하였다. “너희는 시드기야에게 이같이 말하라.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보라, 너희가 성밖에서 바벨론 왕과 또 너희를 에운 갈대아인과 싸우는 바 너희 손에 가진 병기를 내가 돌이킬 것이요 그들을 이 성중에 모아 들이리라. 내가 든 손과 강한 팔 곧 노와 분과 대노(大怒)로 친히 너희를 칠 것이며 내가 또 이 성에 거주하는 자를 사람이나 짐승이나 다 치리니 그들이 큰 염병에 죽으리라 하셨다 하라. 여호와께서 또 말씀하시되 그 후에 내가 유다 왕 시드기야와 그 신하들과 백성과 및 이 성읍에서 염병과 칼과 기근에서 남은 자를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의 손과 그 대적의 손과 그 생명을 찾는 자들의 손에 붙이리니 그가 칼날로 그들을 치되 아끼지 아니하며 긍휼히 여기지 아니하며 불쌍히 여기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

바벨론 군대의 침공과 예정된 유다의 멸망은 그들의 죄악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로 인함이었다. 하나님께서는 친히 유다 백성의 손에 가진 무기를 돌이키고 바벨론 왕과 갈대아 군대를 예루살렘 성 안으로 들어오게 하실 것이다. 유다의 군대와 무기가 아무 소용이 없게 될 것이다. 그것은 다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이다. 그는 그의 편 손과 강한 팔 곧 노와 분과 대노(大怒)로 유다 백성을 치실 것이다.

그의 진노는 칼과 기근과 전염병으로 그들을 치심으로 표현되었다. 예루살렘 성에 사는 사람들은 사람이나 짐승이나 다 큰 전염병에 죽을 것이다. 그들은 또 칼과 기근으로도 죽을 것이다. 또 하나님께서는 유다 왕 시드기야와 그 신하들과 백성들과, 또 칼과 기근과 전염병에서 남은 자들을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의 손과 그 대적의 손과 그 생명을 찾는 자들의 손에 붙이실 것이며 그들은 긍휼과 불쌍히 여김 없이 칼날로 유다 백성을 죽일 것이다.

[8-10절]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너는 또 이 백성에게 . . . .

여호와께서는 또 말씀하신다. “너는 또 이 백성에게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신다 하라. 보라, 내가 너희 앞에 생명의 길과 사망의 길을 두었노니 이 성에 거주하는 자는 칼과 기근과 염병에 죽으려니와 너희를 에운 갈대아인에게 나가서 항복하는 자는 살리니 그의 생명은 노략한 것같이 얻으리라.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가 나의 얼굴을 이 성으로 향함은 복을 위함이 아니요 화를 위함이라. 이 성이 바벨론 왕의 손에 붙임이 될 것이요 그는 그것을 불로 사르리라.”

하나님께서는 예루살렘을 향하여 복 대신에 화를 내리시고 예루살렘을 바벨론 왕의 손에 붙이시고 그가 그것을 불사를 것을 말씀하신다. 그러므로 유다 백성 앞에는 두 길밖에 없다. 하나는 그 성 안에 살다가 칼과 기근과 전염병에 죽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그들을 포위한 갈대아인들에게 나가서 항복하여 겨우 목숨만 사는 것이다. 예레미야는 바벨론의 침공으로 포위된 예루살렘 거민에게 참으로 말하기 어려운 말을 했다. 그러나 그것은 하나님께서 주신 말씀이며 곧 이루어질 내용이기 때문에 그는 말하지 않을 수 없었다.

[11-14절] 유다 왕의 집에 대한 여호와의 말을 들으라. . . .

하나님께서는 또 말씀하신다. “유다 왕의 집에 대한 여호와의 말을 들으라. 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다윗의 집이여, 너는 아침마다 공평히 판결하여 탈취당한 자를 압박자의 손에서 건지라. 그리하지 아니하면 너희의 악행을 인하여 내 노가 불같이 일어나서 사르리니 능히 끌 자가 없으리라. 나 여호와가 이르노라. 골짜기와 평원 반석의 거민아, 보라, 너희가 말하기를 누가 내려와서 우리를 치리요. 누가 우리의 거처에 들어오리요 하거니와 나는 네 대적이라. 내가 너희 행위대로 벌할 것이요 내가 또 수풀에 불을 놓아 그 사경을 사르리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하나님께서는 유다 왕의 집, 다윗의 집에게 아침마다 공평히 판결하여 탈취당한 자를 압박자의 손에서 건지라고 말씀하셨고 그리하지 아니하면 그들의 악행을 인하여 그들에게 노하실 것이라고 말씀하셨었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노하심을 불에다 비유하셨다. 그의 노가 불같이 일어날 것이며 그는 유다 땅에 불을 놓아 사방을 사르게 하실 것이며 그것을 능히 끌 자가 없을 것이다.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노하시는 까닭은 그들의 악한 행위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마지막 날 인류를 심판하시는 까닭도 사람들의 악한 행위 때문이다. 그러므로 로마서 1:18은, “하나님의 진노가 불의로 진리를 막는 사람들의 모든 경건치 않음과 불의에 대하여 하늘로 좇아 나타나나니”라고 말했다. 우리는 그의 진노를 두려워해야 한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진노를 피하는 길은 회개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의와 선을 행하는 것뿐이다. 그러나 회개는 자기 마음대로 쉽게 되는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평소에 마음을 완고하고 강퍅하게 하지 말아야 한다. 우리는 평소에 회개하기를 힘써야 한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은혜 주시고 우리 마음을 감동하실 때 회개해야 한다. 그가 은혜를 거두시면 아무도 회개할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본장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우리는 하나님의 진노를 두려워하자. 하나님께서는 자기의 사랑하는 이스라엘 백성이라도 그들이 악을 행할 때에 그의 편 손과 그의 강한 팔로, 그의 노와 분과 대노(大怒)로 그들을 치실 것이다. 그는 원수들의 칼로 그들을 치실 것이며 또 기근과 큰 전염병으로 치실 것이다. 그는 불로 들판을 태우듯이 그들을 태우실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진노를 두려워해야 한다.

둘째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으로 말미암은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를 감사하자.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 사역으로 하나님의 진노와 저주에서 구원을 얻었다. 로마서 5:9, “그러면 이제 우리가 그 피를 인하여 의롭다 하심을 얻었은즉 더욱 그로 말미암아 진노하심에서 구원을 얻을 것이니.” 갈라디아서 3:13,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 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 기록된 바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 아래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와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 사역을 감사하자.

셋째로, 우리는 이제 모든 악을 버리고 선만 행하자. 예수 믿는 자는 모든 죄를 회개하고 하나님의 계명에 순종해야 한다. 로마서 6:17-18,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너희가 본래 죄의 종이더니 너희에게 전하여 준 바 교훈의 본을 마음으로 순종하여 죄에게서 해방되어 의에게 종이 되었느니라.” 로마서 6:22, “이제는 너희가 죄에게서 해방되고 하나님께 종이 되어 거룩함에 이르는 열매를 얻었으니 이 마지막은 영생이라.” 에베소서 4:22-24, “너희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좇는 옛 사람을 벗어버리고 오직 심령으로 새롭게 되어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 에베소서 4:31-32, “너희는 모든 악독과 노함과 분냄과 떠드는 것과 훼방하는 것을 모든 악의와 함께 버리고 서로 인자하게 하며 불쌍히 여기며 서로 용서하기를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용서하심과 같이 하라.” 우리는 이제 모든 악을 버리고 의와 선과 진실만 행하자.

 

 

22장: 예루살렘이 황폐케 될 것임

1-12절, 유다 왕에 대한 경고

[1-5절]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너는 유다 왕의 집에 . . . .

여호와께서는 예레미야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유다 왕의 집에 내려가서 거기서 이를 선언하여 이르기를 다윗의 위(位)[왕위]에 앉은 유다 왕이여, 너와 네 신하와 이 문들로 들어오는 네 백성은 여호와의 말씀을 들을지니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너희가 공평과 정의를 행하여 탈취당한 자를 압박하는 자의 손에서 건지고 이방인과 고아와 과부를 압박(한글, ‘압제’)하거나 학대하지 말며 이곳에서 무죄한 피를 흘리지 말라.”

하나님께서는 유다 왕의 가족들과 신하들과 백성들에게 명하셨다. 첫째는 “공평과 정의를 행하라”는 것이다. 공평과 정의는 하나님의 계명대로 치우침 없이, 편벽됨 없이 행하는 것이다. 둘째는 “탈취당한 자를 압박하는 자의 손에서 건지고 이방인과 고아와 과부를 압제하거나 학대하지 말라”는 것이다. 그들은 이웃에게 악을 행치 말고 선을 베풀어야 한다. 셋째는 “무죄한 피를 흘리지 말라”는 것이다. 무죄한 자를 정죄하고 죽이는 행위는 매우 악한 행위이다. 한마디로, 하나님의 명하시는 바는 하나님을 경외하고 이웃을 사랑하라는 것이다. 그것이 하나님의 계명의 요점이다.

하나님께서는 또 말씀하셨다. “너희가 참으로 이 말을 준행하면 다윗의 위(位)에 앉을 왕들과 신하들과 백성이 병거와 말을 타고 이 집 문으로 들어오게 되리라마는, 너희가 이 말을 듣지 아니하면 내가 나로 맹세하노니 이 집이 황무하리라. 나 여호와의 말이니라.”

하나님께서는 유다 왕과 그 백성들이 하나님의 계명대로 공의와 선을 행하면 그 왕위와 궁궐이 계속 보존되고 유지되게 하실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하나님의 복은 조건적이다. 그것은 하나님의 계명을 순종하는 조건 위에 약속된 복이다. 그러나 만일 계명대로 순종하지 않으면, 하나님의 징벌을 받을 것이며 그 집이 황폐하게 될 것이다. 오늘날도 이치는 같다. 죄를 짓는 자는 복을 받을 수 없다. 사람이 의를 행할 때에만 하나님의 복을 기대할 수 있다.

[6-9절] 나 여호와가 유다 왕의 집에 대하여 이같이 말하노라. . . .

하나님께서는 또 말씀하신다. “나 여호와가 유다 왕의 집에 대하여 이같이 말하노라. 네가 내게 길르앗 같고 레바논의 꼭대기 같으나 내가 정녕히 너로 광야와 거민이 없는 성을 만들 것이라. 내가 너 파멸할 자를 준비하리니 그들이 각기 손에 병기를 가지고 네 아름다운 백향목을 찍어 불에 던지리라. 여러 나라 사람이 이 성으로 지나며 피차 말하기를 여호와가 이 큰 성에 이같이 행함은 어찜인고 하겠고, 대답하기는 이는 그들이 자기 하나님 여호와의 언약을 버리고 다른 신들에게 절하고 그를 섬긴 연고라 하리라 하셨다 할지니라.”

하나님께서는 유다 왕의 집이 지금 길르앗 같고 레바논의 꼭대기 같다고 말씀하신다. 길르앗은 요단 동쪽의 비옥한 초원이고 레바논은 요단 서북쪽의 나무들이 울창한 산이다. 이것은 그 당시 유다 땅이 경제적으로 유여함을 누리고 있었다는 뜻일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참으로 광야와 거민 없는 성을 만들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파멸할 자를 준비하실 것이며 그들이 예루살렘 성을 멸망시킬 것이며 그러면 유다 땅은 황폐한 곳이 될 것이다.

하나님께서 준비하실 ‘파멸할 자’는 바벨론 나라이다. 하나님께서는 세계 역사를 주관하시고 세계의 모든 나라들을 주장하신다. 유다가 멸망하는 이유는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고 그의 언약을 어기고 다른 신들에게 절하고 그들을 섬긴 까닭이다. 십계명은 하나님의 언약의 내용이다.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를 섬기고 그의 명하신 대로 이웃을 사랑하는 것은 사람의 기본적인 의무이다. 그 의무를 저버릴 때 사람은 하나님의 진노를 당하게 되는 것이다.

[10-12절] 너희는 죽은 자를 위하여 울지 말며 그를 위하여 . . . .

하나님께서는 또 말씀하셨다. “너희는 죽은 자를 위하여 울지 말며 그를 위하여 애통하지 말고 잡혀간 자를 위하여 슬피 울라. 그는 다시 돌아와서 그 고국을 보지 못할 것임이니라. 나 여호와가 유다 왕 요시야의 아들 곧 그 아비 요시야를 이어 왕이 되었다가 이곳에서 나간 살룸에 대하여 말하노라. 그가 이곳으로 다시 돌아오지 못하고 잡혀간 곳에서 죽으리니 이 땅을 다시 보지 못하리라.”

하나님께서는 죽은 자를 위해 울지 말고 잡혀간 자를 위해 울라고 말씀하신다. 왜냐하면 그들은 다시 돌아와서 고국을 보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는 또 요시야의 아들 살룸에 대해 예언하셨다. 살룸은 여호아하스다(왕하 23:30; 대상 3:15). 이 예언대로 살룸 곧 여호아하스는 애굽에서 죽었다. 열왕기하 23:34, “여호아하스는 애굽으로 잡아갔더니 저가 거기서 죽으니라.”

본문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우리는 하나님의 명령과 요구를 유념하자. 그것이 의롭고 선하게 살라는 것이다. 미가 6:8, “사람아, 주께서 선한 것이 무엇임을 네게 보이셨나니 여호와께서 네게 구하시는 것이 오직 공의를 행하며 인자[자비]를 사랑하며 겸손히 네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이 아니냐?” 우리는 의롭고 선하게 살아야 한다.

둘째로, 우리는 하나님의 경고도 유념하자. 그것은 죄 지으면 망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입술로만 고백하는 형식적인 신앙생활을 하지 말고 죄를 버리는 실천을 해야 한다. 신약성도도 죄를 지으면 반드시 죽을 것이다. 로마서 8:13, “너희가 육신대로 살면 반드시 죽을 것이로되 영[성령]으로써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리니.”

 

13-30절, 유다 왕의 죄

본장의 앞부분은 유다 왕 여호아하스에 대해, 본문은 유다 왕 여호야김과 여호야긴에 대해 증거한다. 그들은 다 악한 왕이었다.

[13-19절] 불의로 그 집을 세우며 불공평으로 그 다락방을 . . . .

하나님께서는 선지자를 통해 말씀하신다. “불의로 그 집을 세우며 불공평[불법]으로 그 다락방을 지으며 그 이웃을 고용하고 그 고가(雇價)를 주지 아니하는 자에게 화 있을진저. 그가 이르기를 내가 나를 위하여 광대한 집과 광활한 다락방을 지으리라 하고 자기를 위하여 창을 만들고 그것에 백향목으로 입히고 붉은 빛으로 칠하도다. 네가 백향목으로 집짓기를 경쟁하므로 왕이 될 수 있겠느냐?”

본문은 문맥으로 볼 때(18절) 유다 왕 여호야김의 죄를 증거하는 것 같다. 그는 불의와 불법으로 궁궐과 그 다락방을 지으며 사람을 고용하고 그 임금을 주지 않았다. 또 그는 사치스럽게 살았다. 그는 자신을 위해 광대한 집과 다락방을 지었고 창을 만들고 백향목으로 입히고 붉은 빛을 칠하였다. 왕은 백성을 살피고 공의로 통치하는 일에 힘써야 하는데 호화로운 왕궁이나 짓는데 열심을 내었던 것이다. 우리는 자신을 위해서는 검소하고 절약하며 하나님의 일, 선한 일을 위해서는 열심을 내고 돈도 쓸 줄 아는 자가 되어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또 말씀하신다. “네 아비가 먹으며 마시지 아니하였으며 공평과 의리를 행치 아니하였느냐? 그때에 그가 형통하였었느니라. 그는 가난한 자와 궁핍한 자를 신원하고 형통하였나니 이것이 나를 앎이 아니냐? 여호와의 말이니라. 그러나 네 눈과 마음은 탐람과 무죄한 피를 흘림과 압박과 강포를 행하려 할 뿐이니라.”

여호야김의 아버지 요시야는 경건한 왕이었다. 그는 먹고 마시는 일에 힘쓰지 않고 공평과 의리를 행하는 자, 곧 법대로 공의롭게 행하였다. 그는 가난한 자들과 궁핍한 자들을 신원(伸寃)하였다[억울한 사정을 들어주었다]. 그때 그는 형통하였다. 그것은 그가 하나님을 안다는 증거이었다. 하나님을 아는 자, 하나님을 참으로 경외하는 자라면 하나님의 뜻대로 공의와 사랑을 실천할 것이다. 그러나 그의 아들인 여호야김의 눈과 마음은 탐욕으로 가득하였고 무죄한 피를 흘리고 압박과 강포[혹은 강탈]를 행하려 할 뿐이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여호야김의 죽음에 대해 선언하신다. “그러므로 나 여호와가 유다 왕 요시야의 아들 여호야김에게 대하여 이같이 말하노라. 무리가 그를 위하여 슬프다 내 형제여, 슬프다 내 자매여 하며 통곡하지 아니할 것이며 그를 위하여 슬프다 주여, 슬프다 그 영광이여 하며 통곡하지도 아니할 것이라. 그가 끌려 예루살렘 문밖에 던지우고 나귀같이 매장함을 당하리라.” 무리들은 왕의 죽음을 슬퍼하지 않을 것이다. 왕은 예루살렘 성문 밖에 끌려 내던지우고 나귀같이 매장될 것이다. 사람의 가치가 무엇인가? 외모와 환경과 사회적 신분이라는 것이 무슨 가치가 있는가? 하나님께서 심판하실 때 악인의 가치는 나귀의 가치같이 될 것이다.

[20-23절] 너는 레바논에 올라 외치며 바산에서 네 소리를 . . . .

하나님께서는 또, “너는 레바논에 올라 외치며 바산에서 네 소리를 높이며 아바림에서 외치라. 이는 너를 사랑하는 자[너의 사랑하는 자들]가 다 멸망하였음이니라”고 말씀하신다. 레바논은 이스라엘 북방 지역이며 바산은 요단 동쪽 땅이다. 아바림은 이스라엘 남쪽, 사해 동북쪽의 산악지역이다. 유다의 멸망을 온 사방에서 외치라는 뜻이다. ‘너를 사랑하는 자’라는 말은 ‘너의 사랑하는 자들’이라는 말인데 애굽이나 앗수르 나라 같은 동맹국들을 가리키는 것 같다.

하나님께서는 또, “네가 평안할 때에 내가 네게 말하였으나 네 말이 나는 듣지 아니하리라 하였나니 네가 어려서부터 내 목소리를 청종치 아니함이 네 습관이라”고 말씀하신다. 이스라엘 백성은 평안할 때에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아니하였다. 그들은 어려서부터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는 것이 습관이었다. 우리는 어려서부터 성경을 읽고 듣는 행하는 습관을 길러야 한다. 습관은 인격을 형성한다.

하나님께서는 또 말씀하신다. “네 목자들은 다 바람에 삼키울 것이요 너를 사랑하는 자들[너희 사랑하는 자들]은 사로잡혀 가리니 그때에 네가 반드시 네 모든 악을 인하여 수치와 욕을 당하리라. 레바논에 거하여 백향목에 깃들이는 자여, 여인의 해산하는 고통 같은 고통이 네게 임할 때에 너의 가련함이 얼마나 심하랴.” 이스라엘의 목자들, 즉 왕과 방백들은 다 환난의 바람에 삼키울 것이며 동맹국들도 다 사로잡혀갈 것이다. 그들은 그들의 모든 악을 인하여 수치와 욕을 당할 것이다. 유다의 왕과 방백들은 레바논 백향목으로 집을 꾸몄으나 하나님께서 그들을 심판하실 때 그들은 해산하는 여인의 고통 같은 고통을 당할 것이며 심히 가련한 자가 될 것이다.

[24-30절]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나의 삶으로 맹세하노니 . . . .

예레미야는 또 말한다.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나의 삶으로 맹세하노니 유다 왕 여호야김의 아들 너 고니야가 나의 오른손의 인장반지(印章斑指)라 할지라도 내가 빼어 네 생명을 찾는 자의 손과 너의 두려워하는 자의 손 곧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의 손과 갈대아인의 손에 줄 것이라. 내가 너와 너를 낳은 어미를 너희가 나지 아니한 다른 지방에 쫓아내리니 너희가 거기서 죽고 너희 마음에 돌아오기를 사모하는 땅에 돌아오지 못하리라.” 유다 왕 여호야김의 아들 고니야 곧 여호야긴은 하나님의 오른손의 인장반지(印章斑指)같이 귀중할지라도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의 손에 내어준 바 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버리실 때에는 엄하게 쳐서 버리실 것이다. 유다 백성도 그와 함께 타국에 포로로 잡혀갈 것이다. 그들은 고국으로 돌아오기를 사모하지만 돌아오지 못하고 거기에서 죽을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또 말씀하신다. “이 사람 고니야는 천한 파기(破器)냐? 좋아하지 아니하는 그릇이냐? 어찌하여 그와 그 자손이 쫓겨나서 알지 못하는 땅에 들어갔는고. 땅이여, 땅이여, 땅이여, 여호와의 말을 들을지니라. 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너희는 이 사람이 무자(無子)하겠고 그 평생에 형통치 못할 자라 기록하라. 이는 그 자손 중 형통하여 다윗의 위에 앉아 유다를 다스릴 사람이 다시는 없을 것임이니라.” 하나님께서는 여호야긴을 깨뜨려진 천한 그릇처럼 취급하실 것이다. 그와 그 자손들은 쫓겨나서 알지 못하는 이방 땅에 들어갈 것이다. “땅이여, 땅이여, 땅이여, 여호와의 말을 들을지니라”는 말씀은 유다 땅, 곧 유다 거민들이 하나님의 이 심판 선언을 가볍게 듣지 말고 마음에 새겨들으라는 뜻이다. 하나님께서는 “땅이여”라는 말을 세 번이나 반복하시면서 강조하신다. 여호야긴의 자손 중에는 왕위를 계승할 자가 없을 것이다. 과연 여호야긴은 아들이 일곱 명 있었으나(대상 3:17) 아무도 왕위를 계승치 못하였다.

본문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우리는 죄를 짓지 말자. 유다 왕에게 있었던 불의와 불법, 사치와 탐욕, 의인 핍박, 강포 등의 죄악을 멀리하자. 왜냐하면 누구든지 죄를 지으면 멸망하기 때문이다. 유다 왕 여호야김은 예루살렘 문밖에 던지워 나귀같이 매장될 것이다. 유다 땅은 그의 죄 때문에 수치와 곤욕을 당할 것이다. 죄의 대가는 사망이다(롬 6:23). 그것은 현세의 불행과 죽음과 지옥을 포함한다. 둘째로, 우리는 오직 하나님을 경외하고 의와 선을 행하자. 에베소서 4:22-24, “너희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좇는 옛 사람을 벗어 버리고 오직 심령으로 새롭게 되어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 디도서 2:14, “그가 우리를 대신하여 자신을 주심은 모든 불법에서 우리를 구속하시고 우리를 깨끗하게 하사 선한 일에 열심하는 친 백성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23장: 거짓 선지자들에게 화가 있을 것

1-22절, 악한 목자들과 선지자들

[1-4절]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 목장의 양 무리를 멸하며 . . . .

하나님께서는 또 말씀하신다.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 목장의 양무리를 멸하며 흩는 목자에게 화 있으리라. 그러므로 이스라엘 하나님 나 여호와가 내 백성을 기르는 목자에게 이같이 말하노라. 너희가 내 양무리를 흩으며 그것을 몰아내고 돌아보지 아니하였도다. 보라, 내가 너희의 악행을 인하여 너희에게 보응하리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자신의 명예와 이익만 구하는 왕과 방백들은 불법과 폭력으로 양들을 멸하며 흩었다. 양들은 방황하여 뿔뿔이 흩어졌다. 그러니 하나님께서 어찌 노하시며 보응하지 않으시겠는가?

하나님께서는 또 말씀하신다. “내가 내 양무리의 남은 자를 그 몰려갔던 모든 지방에서 모아내어 다시 그 우리로 돌아오게 하리니 그들의 생육이 번성할 것이며 내가 그들을 기르는 목자들을 그들 위에 세우리니 그들이 다시는 두려워하거나 놀라거나 축이 나지 아니하리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하나님께서는 친히 양무리의 남은 자들을 고국으로 돌아오게 하시며 생육하고 번성케 하실 것이다.

[5-8절]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보라 때가 이르리니 내가 . . . .

하나님께서는 또 말씀하신다.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보라, 때가 이르리니 내가 다윗에게 한 의로운 가지를 일으킬 것이라. 그가 왕이 되어 지혜롭게 행사하며(사칼)[혹은 ‘형통하며’(BDB, KJV)] 세상에서 공평과 정의를 행할 것이며 그의 날에 유다는 구원을 얻겠고 이스라엘은 평안히 거할 것이며 그 이름은 여호와 우리의 의라 일컬음을 받으리라.” 하나님의 정하신 때에 메시아께서 오실 것이다. 그는 다윗에게서 나는 ‘한 의로운 가지’라고 불리실 것이다. 그것은 그가 다윗의 자손이며 의로운 왕이심을 뜻한다. 그의 날에 유다는 구원을 얻을 것이다. 그의 이름은 ‘여호와 우리의 의’라고 불릴 것이다. 구주 예수께서는 모든 믿는 자를 위한 의를 이루셨다(롬 10:4).

하나님께서는 또 말씀하신다. “그러므로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보라, 날이 이르리니 그들이 다시는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신 여호와의 사심으로 맹세하지 아니하고 이스라엘 집 자손을 북방 땅, 그 모든 쫓겨났던 나라에서 인도하여 내신 여호와의 사심으로 맹세할 것이며 그들이 자기 땅에 거하리라 하시니라.” 이스라엘 백성은 북방 땅, 곧 바벨론 나라로부터 고국으로 돌아와 거기 거할 것이다. 그것은 메시아로 말미암는 구원을 미리 보여준다.

[9-12절] 선지자들에 대한 말씀이라. 내 중심이 상하며 . . . .

예레미야는 또 말한다. “선지자들에 대한 말씀이라. 내 중심이 상하며 내 모든 뼈가 떨리며 내가 취한 사람 같으며 포도주에 잡힌 사람 같으니 이는 여호와와 그 거룩한 말씀을 인함이라. 이 땅에 행음하는 자가 가득하도다. 저주로 인하여 땅이 슬퍼하며 광야의 초장들이 마르나니 그들의 행위가 악하고 힘쓰는 것이 정직하지 못함이로다.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선지자와 제사장이 다 사특한지라. 내가 내 집에서도 그들의 악을 발견하였노라.” 유다 땅은 행음자들로 가득했다. 선지자들과 제사장들은 다 사특하였다. ‘사특하다’는 원어(카네프)는 ‘불경건하다’는 뜻이다(BDB, KJV, NIV).

예레미야는 또 말한다. “그러므로 그들의 길이 그들에게 흑암 중에 미끄러운 곳과 같이 되고 그들이 밀침을 받아 그 길에 엎드러질 것이라. 그들을 벌하는 해에 내가 그들에게 재앙을 내리리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그들은 하나님의 재앙을 받을 것이다.

[13-15절] 내가 사마리아 선지자들 중에 우매함이 있음을 . . . .

하나님께서는 또 말씀하신다. “내가 사마리아 선지자들 중에 우매함이 있음을 보았나니 그들은 바알을 의탁하고 예언하여 내 백성 이스라엘을 그릇되게 하였고, 내가 예루살렘 선지자들 중에도 가증한 일(솨아로라)[두려운 일](BDB, KJV, NASB)이 있음을 보았나니 그들은 간음을 행하며 [거짓되이 행하며](원문; KJV, NASB) 행악자의 손을 굳게 하여 사람으로 그 악에서 돌이킴이 없게 하였은즉 그들은 다 내 앞에서 소돔 사람과 다름이 없고 그 거민은 고모라 사람과 다름이 없느니라.” 사마리아의 선지자들 중에 우매함이 있었다. 그들은 바알을 의지하며 예언하고 백성을 잘못 인도했다. 또 예루살렘의 선지자들 중에는 간음을 행하며 거짓말하는 자들도 있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벌을 선언하신다. “그러므로 만군의 여호와 내가 선지자에 대하여 이같이 말하노라. 보라, 내가 그들에게 쑥을 먹이며 독한 물[독물]을 마시우리니 이는 사악(카눕파)[불경건]이 예루살렘 선지자들에게로서 나와서 온 땅에 퍼짐이라.”

[16-18절] 만군의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너희에게 . . . .

예레미야는 또 말한다. “만군의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너희에게 예언하는 선지자들의 말을 듣지 말라. 그들은 너희에게 헛된 것을 가르치나니 그들의 말한 묵시는 자기 마음으로 말미암은 것이요 여호와의 입에서 나온 것이 아니니라. 항상 그들이 나를 멸시하는 자에게 이르기를 너희가 평안하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하며 또 자기 마음의 강퍅한 대로 행하는 모든 사람에게 이르기를 재앙이 너희에게 임하지 아니하리라 하였느니라. 누가 여호와의 회의에 참여하여 그 말을 알아들었으며 누가 귀를 기울여 그 말을 들었느뇨?” 하나님께서는 악한 거짓 선지자들의 말을 듣지 말라고 말씀하신다.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지 않고 자기의 마음에서 나온 생각을 전했기 때문이다. 그들은 재앙 대신 평안을 거짓되이 전하였다.

[19-22절] 보라 나 여호와의 노가 발하여 폭풍과 회리바람처럼 . . . .

예레미야는 또 말한다. “보라, 나 여호와의 노가 발하여 폭풍과 회리바람처럼 악인의 머리를 칠 것이라. 나 여호와의 노는 내 마음의 뜻하는 바를 행하여 이루기까지는 쉬지 아니하나니 너희가 말일에 그것을 완전히 깨달으리라. 이 선지자들은 내가 보내지 아니하였어도 달음질하며 내가 그들에게 이르지 아니하였어도 예언하였은즉 그들이 만일 나의 회의에 참여하였더면 내 백성에게 내 말을 들려서 그들로 악한 길과 악한 행위에서 돌이키게 하였으리라.” 거짓 선지자들은 하나님께서 보내지 않으셨어도 달음질했고 말씀하지 않으셨어도 예언하였다. 그러나 그들이 하나님의 회의에 참여하였더라면 악인들에게 회개를 전하여 그 악한 길에서 돌이키게 했을 것이다.

본문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우리는 거짓 선지자들을 분별하고 그들의 말을 듣지 말자. 그들은 귀에 듣기 좋은 헛된 평강을 선언한다. 오늘날에도 거짓 목사의 설교는 헛된 평안과 축복과 위로가 많다. 그러나 그것은 헛된 말이다. 그들의 설교에는 죄의 지적과 책망이 없다. 우리는 거짓 목사들을 분별하고 그들의 말을 듣지 말아야 한다.

둘째로, 우리는 하나님의 책망을 싫어하지 말고 잘 받고 악을 버리자. 하나님의 뜻은 죄를 버리는 것이다. 우리는 악행과 음란과 거짓을 버려야 한다. 이런 죄 때문에 하나님의 화가 있고 보응이 있고 징벌과 재앙이 있고 진노가 있다. 죄의 지적과 책망을 잘 받아 회개하는 자는 지혜를 얻고 참된 평강을 얻는다. 그들은 영생에 이를 자들이다.

셋째로, 하나님께서는 다윗에게서 나신 한 의로운 가지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주셨다. 그는 우리의 의가 되셨다. 그를 믿는 모든 자들은 의롭다 하심을 얻었다. 이 세상은 악하고 심지어 교회들도 또다시 해이해지고 어지러울지라도,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의와 평강을 누리며,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 의지하고 성경말씀만 순종하자.

 

23-40절, 거짓 선지자들

[23-27절]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나는 가까운데 하나님이요 . . . .

하나님께서는 말씀하신다.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나는 가까운데 하나님이요 먼데 하나님은 아니냐?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사람이 내게 보이지 아니하려고 누가 자기를 은밀한 곳에 숨길 수 있겠느냐?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나는 천지에 충만하지 아니하냐?” 하나님께서는 가까운데만 보고 먼데는 보지 못하는 분이 아니시다. 그는 은밀한 곳에 있는 것을 보지 못하는 분이 아니시다. 그는 사람의 은밀한 일까지도 아는 하나님이시다. 사람은 하나님을 피하여 어느 곳에도 숨을 수 없다. 그는 천지에 충만한 하나님이시다.

하나님께서는 또 말씀하신다. “내 이름으로 거짓을 예언하는 선지자들의 말에 내가 몽사를 얻었다 몽사를 얻었다 함을 내가 들었노라. 거짓을 예언하는 선지자들이 언제까지 이 마음을 품겠느냐? 그들은 그 마음의 간교한 것을 예언하느니라. 그들이 서로 몽사를 말하니 그 생각인즉 그들의 열조가 바알로 인하여 내 이름을 잊어버린 것같이 내 백성으로 내 이름을 잊게 하려 함이로다.” 거짓 선지자들은 하나님의 이름으로 거짓된 것을 예언하였다. 그들은 꿈으로 계시를 받았다고 거짓말을 하였다. 그들은 그 마음의 간교함 혹은 속임을 가진 선지자들이었다. 그것은 마치 그들의 선조가 거짓된 신 바알로 인해 하나님의 이름을 잊어버린 것같이 하나님의 백성으로 하나님의 이름을 잊어버리게 하려 한 것이었다.

[28-29절]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몽사를 얻은 선지자는 . . . .

하나님께서는 또 말씀하신다.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몽사를 얻은 선지자는 몽사를 말할 것이요 내 말을 받은 자는 성실함으로 내 말을 말할 것이라. 겨와 밀을 어찌 비교하겠느냐?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 말이 불같지 아니하냐? 반석을 쳐서 부스러뜨리는 방망이 같지 아니하냐?” 사람이 꾸는 꿈과 하나님께서 주신 계시적 꿈은 다르다. 하나님의 말씀을 받은 자는 성실함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말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말씀과 사람의 말을 밀과 겨에 비교하셨다. 밀은 사람에게 양식이 되지만, 겨는 그렇지 못하다. 또 하나님의 말씀은 불같이 사람의 마음을 뜨겁게 만드시고 반석을 쳐서 부스러뜨리는 방망이같이 사람의 굳은 마음을 부스러뜨리신다.

[30-32절]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그러므로 보라 서로 내 말을 . . . .

하나님께서는 또 말씀하신다.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그러므로 보라, 서로 내 말을 도적질하는 선지자들을 내가 치리라.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보라, 그들이 혀를 놀려 그가 말씀하셨다 하는 선지자들을 내가 치리라.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보라, 거짓 몽사를 예언하여 이르며 거짓과 헛된 자만으로 내 백성을 미혹하게 하는 자를 내가 치리라. 내가 그들을 보내지 아니하였으며 명하지 아니하였나니 그들이 이 백성에게 아무 유익이 없느니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하나님께서는 거짓 선지자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도적질하였다고 말씀하신다. 실상, 그들은 하나님의 이름을 도적질하였고 그 내용은 하나님과 상관없는 것이었다. 그들은 거짓된 꿈을 예언하며 거짓과 헛된 자만(파카주스)[경박함](BDB, KJV)으로 하나님의 백성을 미혹하게 하였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보내지 않으셨고 명하지 않으셨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이름으로 예언하였다. 그들은 아무 유익이 없는 일꾼들이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내가 그들을 치리라[대적하리라]”고 세 번이나 반복하여 말씀하셨다.

[33-40절] 이 백성이나 선지자나 제사장이 네게 물어 이르기를 . . . .

하나님께서는 선지자 예레미야에게 또 말씀하셨다. “이 백성이나 선지자나 제사장이 네게 물어 이르기를 여호와의 ‘엄중한 말씀’(맛사)[무거운 짐(KJV), 말씀(BDB, NASB, NIV)]이 무엇이뇨 하거든 너는 그들에게 대답하기를 엄중한 말씀이 무엇이냐 하느냐? 여호와의 말씀에 내가 너희를 버리리라 하셨고 또 여호와의 엄중한 말씀이라 하는 선지자에게나 제사장에게나 백성에게는 내가 그 사람과 그 집에 벌하리라 하셨다 하고 너는 또 말하기를 너희는 서로 이웃과 형제에게 묻기를 여호와께서 무엇이라 응답하셨으며 무엇이라 말씀하셨느뇨 하고 다시는 여호와의 엄중한 말씀이라 말하지 말라. 각 사람의 말이 자기에게 중벌(맛사)[말씀](NASB, NIV)이 되리니 이는 너희가 사시는 하나님, 만군의 여호와 우리 하나님의 말씀을 ‘망령되이 씀’(하파크)[왜곡시킴]이니라 하고 너는 또 선지자에게 말하기를 여호와께서 네게 무엇이라 대답하셨으며 여호와께서 무엇이라 말씀하셨느뇨? 너희는 여호와의 엄중한 말씀이라 말하도다.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내가 너희에게 보내어 여호와의 엄중한 말씀이라 하지 말라 하였어도 너희가 여호와의 엄중한 말씀이라 하였은즉 내가 너희를 온전히 잊어버리며 내가 너희와 너희 열조에게 준 이 성읍을 내 앞에서 내어버려 너희로 영원한 치욕과 잊지 못할 영구한 수치를 당케 하리라 하셨다 할지니라.”

33-40절에서 원문에 ‘엄중한 말씀’이라는 말(맛사)이 여덟 번이나 나온다(36절의 ‘중벌’이라는 말을 포함해서). 그것은 ‘무거운 짐’이라는 뜻인데, 마음에 큰 부담을 가지고 전하는 하나님의 말씀을 가리켰다고 본다. 하나님께서는 거짓 선지자들이 거짓말을 하면서 ‘하나님의 엄중한 말씀’이라고 말하는 것을 지적하셨다. 그들은 말쟁이들이었다. 그들은 자기들의 설교가 대단한 내용인 것처럼 떠벌리며 마치 하나님의 간절한 마음을 전하는 것처럼 위장하였다. 그러나 실상 그들의 설교는 경박하였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그들이 그 말을 쓰지 말라고 금하셨다. 또 하나님께서는, 그들이 하나님의 뜻을 왜곡시켰기 때문에, 그들을 내어버려 ‘영원한 치욕과 잊지 못할 영구한 수치’를 당하게 하실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본문은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우리는 거짓 선지자들을 조심하자. 거짓 선지자들은 거짓말을 하고 경박한 말을 하고 하나님의 뜻을 왜곡시키는 자들이다. 우리는 그런 자들을 조심해야 한다. 주께서는 “거짓 선지자들을 삼가라. 양의 옷을 입고 너희에게 나아오나 속에는 노략질하는 이리라”고 말씀하셨고(마 7:15), 또 사도 요한도, “사랑하는 자들아, 영을 다 믿지 말고 오직 영들이 하나님께 속하였나 시험하라. 많은 거짓 선지자가 세상에 나왔음이니라”고 말하였다(요일 4:1).

둘째로, 우리는 하나님의 참된 말씀을 사모하자. 하나님의 말씀은 사람의 꿈과 다르다. 밀과 겨가 다르듯이, 하나님의 말씀은 사람의 말과 다르다. 밀이 사람에게 양식이 되듯이, 하나님의 말씀은 모든 사람에게 영의 양식이 된다. 그것은 구원이 되고 영적 성장의 원동력이 된다. 하나님의 말씀은 불같이 우리의 마음을 뜨겁게 하며 또 망치같이 사람의 완고한 마음, 딱딱한 마음을 쳐서 부스러뜨린다. 하나님의 참 말씀은 모든 사람에게 영생이 되고 유익이 된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참된 종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성실히 전해야 하고 하나님의 참된 백성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간절히 사모함으로 듣고 받아야 한다.

성경이 바로 하나님의 말씀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모든 자녀들은 성경을 귀히 여기고 사랑하고 열심히 읽고 연구해야 한다. 욥기 23:12, “내가 그의 입술의 명령을 어기지 아니하고 일정한 음식보다 그 입의 말씀을 귀히 여겼구나.” 시편 1:2-3, “[복 있는 사람은]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로다. 저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시절을 좇아 과실을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 행사가 다 형통하리로다.” 시편 119:165, “주의 법을 사랑하는 자에게는 큰 평안이 있으니 저희에게 장애물이 없으리이다.” 디모데후서 3:16,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성경을 열심히 읽자.

 

 

24장: 무화과 두 광주리의 이상

[1-3절]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이 유다 왕 여호야김의 아들 . . . .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이 유다 왕 여호야김의 아들 여고냐[여호야긴]와 유다 방백들과 목공들과 철공들을 예루살렘에서 바벨론으로 옮긴 후에 여호와께서 여호와의 전 앞에 놓인 무화과 두 광주리로 예레미야에게 보이셨다. 한 광주리에는 처음 익은 듯한 극히 좋은 무화과가 있고 한 광주리에는 악하여 먹을 수 없는 극히 악한 무화과가 있었다. 여호와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예레미야야, 네가 무엇을 보느냐?” 그가 대답하였다. “무화과이온데 그 좋은 무화과는 극히 좋고 그 악한 것은 극히 악하여 먹을 수 없게 악하니이다.”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이 유다 왕 여호야김의 아들 여고냐 곧 여호야긴과 유다 방백들과 목공들과 철공들을 예루살렘에서 바벨론으로 옮긴 때는 주전 597년경이며 소위 두 번째로 포로로 잡혀간 사건이었다(왕하 24:14-16). 바벨론 왕은 모든 방백과 모든 용사 7천명과 공장과 대장장이 1천명 등 도합 1만명을 사로잡아 갔다. 첫 번째로 포로로 잡혀간 것은 주전 605년경 여호야김 때이었고, 여호야긴 때는 두 번째이었다. 하나님의 뜻은 그들이 바벨론 왕에게 항복하고 바벨론으로 포로로 잡혀가는 것이었다(렘 27:17).

[4-7절] 여호와의 말씀이 또 내게 임하니라. 가라사대 . . . .

여호와의 말씀이 또 예레미야에게 임하였다.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내가 이곳에서 옮겨 갈대아인의 땅에 이르게 한 유다 포로를 이 좋은 무화과같이 보아 좋게 할 것이라. 내가 그들을 돌아보아 좋게 하여 다시 이 땅으로 인도하고 세우고 헐지 아니하며 심고 뽑지 아니하겠고 내가 여호와인 줄 아는 마음을 그들에게 주어서 그들로 전심으로 내게 돌아오게 하리니 그들은 내 백성이 되겠고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리라[내가 여호와인 줄 아는 마음을 줄 것이며 그들은 내 백성이 되겠고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리니, 이는 그들이 전심으로 내게 돌아올 것임이니라](MT, KJV, NASB, NIV).”

예레미야가 본 좋은 무화과들은 바벨론 땅에 포로로 잡혀간 여호야긴과 유다인들을 가리켰다. 사람의 생각에는 포로로 잡혀간 자들이 더 불행해 보였을 것이지만, 그들을 포로로 잡혀가게 하신 자가 바로 하나님이셨고 또 그들을 좋은 무화과같이 좋게 하실 자도 바로 하나님이셨다. 5-7절에는 ‘내가’라는 말이 여러 번 나온다. 이 모든 일을 하나님께서 행하셨다. 하나님께서는 주권적 섭리자이시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좋은 무화과처럼 좋게 하실 것이다. 그는 그들을 다시 유다 땅으로 돌아오게 하실 것이며 그들을 다시 세우시고 심으실 것이다. 유다 백성은 바벨론 포로 생활에서 고국으로 돌아오는 날, 곧 회복의 날, 해방의 날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 회복은 단순히 육신적 회복만이 아니고, 내면적 회복을 수반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하나님을 아는 마음을 주실 것이며 전심으로 그에게 돌아오게 하실 것이다. 즉 믿음과 회개를 주실 것이라는 뜻이다. 하나님을 아는 자는 하나님의 뜻을 알고 모든 불경건과 부도덕의 죄를 버리고 하나님을 믿고 그의 계명에 순종하게 될 것이다.

열왕기하 25:27-30에 보면, 유다 왕 여호야긴에 대해 그가 사로잡혀 간 지 37년 곧 바벨론 왕 에윌므로닥의 즉위한 원년 12월 27일에 (즉 주전 560년경, 여호야긴이 55세쯤 되었을 때에) 바벨론 왕은 그를 옥에서 내어놓아 그 머리를 들게 하였고 선하게 말하였고 그 위를 바벨론에 그와 함께 있는 모든 왕의 위보다 높였고 그 죄수의 의복을 바꾸게 하였고 그 일평생에 항상 왕의 앞에서 먹게 하였고 그의 쓸 것은 날마다 왕에게서 받는 정수가 있어서 종신토록 끊이지 않았다. 이것은 유다의 회복에 대한 징조이었다. 그 후 23년 뒤, 파사 왕 고레스 때에 유다 백성은 고국으로 돌아오게 되었다.

[8-10절] 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내가 유다 왕 . . . .

하나님께서는 예레미야에게 또 말씀하셨다. “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내가 유다 왕 시드기야와 그 방백들과 예루살렘의 남은 자로서 이 땅에 남아 있는 자와 애굽 땅에 거하는 자들을 이 악하여 먹을 수 없는 악한 무화과같이 버리되 세상 모든 나라 중에 흩어서(자아라)[두려움이 되게 하고](BDB, NASB, NIV) 그들로 환난을 당하게 할 것이며 또 그들로 내가 쫓아보낼 모든 곳에서 치욕을 당하게 하며 말거리가 되게 하며 조롱과 저주를 받게 할 것이며 내가 칼과 기근과 염병을 그들 중에 보내어 그들로 내가 그들과 그 열조에게 준 땅에서 멸절하기까지 이르게 하리라 하시니라.”

예레미야가 본 다른 한 광주리의 무화과들, 즉 극히 나쁜 무화과들은 유다 왕국의 마지막 왕인 시드기야와 예루살렘이나 애굽 땅에 남은 자들을 가리켰다. 그들은 사람들 보기에는 행운인 것처럼 보였을지 모르나 자신들의 죄악과 자신들이 당한 재앙의 원인을 깨닫지도 못하고 회개치 않고 끝까지 악하게 행하다가 마침내 다 멸망할 것이었다.

역대하 35:11 이하에 보면, 선지자 예레미야가 그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으로 일러도 시드기야는 하나님 앞에서 겸비치 않고 하나님께로 돌아오지 않았고 제사장의 어른들과 백성도 크게 범죄하여 이방 모든 가증한 일을 본받아 하나님의 전을 더럽혔고 하나님의 사자를 비웃고 그 말씀을 멸시하며 선지자를 욕하였으므로 유다 나라는 마침내 멸망케 되었고 하나님의 성전은 불태워졌고 모든 궁들도 그러하였다.

본장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우리는 하나님의 긍휼만 구하자. 본장에서 하나님께서는 “내가”라는 말을 반복하여 사용하셨다. 하나님은 주권적 섭리자이시다. 그는 유다 백성을 멸망시키기도 하시고 회복시키기도 하신다. 특히 사람의 구원은 하나님의 주권적 긍휼에 달려 있다. 실상, 모든 유다 백성이 다 멸망할 자들이었다. 여호야긴도, 시드기야도 그러하였다. 그들은 다 우상숭배자이었고 하나님의 계명들을 거역하였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유다를 징벌하시면서도 그의 긍휼로 회복시키실 일을 예언하셨다. 그것이 하나님의 구원의 의지이다. 이스라엘의 구원은 하나님의 긍휼의 의지에 근거한다. 우리의 구원도 그러하다. 디모데후서 1:9,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사 거룩하신 부르심으로 부르심은 우리의 행위대로 하심이 아니요 오직 자기 뜻과 영원한 때 전부터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주신 은혜대로 하심이라.” 지금도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받을 자들이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주권적 긍휼을 알고 믿고 구하며 의지하자.

둘째로, 우리는 전심으로 하나님께 돌아오자. 극히 좋은 무화과는 바벨론 포로생활로부터 돌아오는 유대인들을 가리켰다. 그들은 몸만 고국으로 돌아오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을 알고 전심으로 하나님께로 돌아올 것이다(7절). 하나님의 구원은 심령의 회복을 동반한다. 그것은 하나님을 아는 마음이며 전심으로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것이다. 우리가 구원받은 자일진대 하나님을 전심으로 찾고 온전한 믿음을 가지고 온전한 회개를 하고 온전한 순종을 하자.

셋째로, 우리는 죄악된 것을 다 버리자. 극히 나쁜 무화과는 예루살렘이나 애굽 땅에 남은 유대인들을 가리켰다. 그들은 하나님의 긍휼을 받지 못하고 버림받은 자들이다. 그들은 자기들의 우상숭배와 부도덕을 회개치 않은 자들이다. 그들은 하나님께 전심으로 돌아오지 않은 자들이다. 그들은 하나님의 계명에 복종치 않은 자들이다. 우리는 그런 자들이 되지 말아야 한다. 우리는 모든 죄악된 것을 다 버리자.

 

 

25장: 70년 동안 황폐케 될 것

1-14절, 70년 동안 황폐케 될 것

[1-4절] 유다 왕 요시야의 아들 여호야김 4년 곧 바벨론 왕 . . . .

유다 왕 요시야의 아들 여호야김 4년 곧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 원년에 유다 모든 백성에 관한 말씀이 예레미야에게 임하였다. 그때는 주전 605년경이었다. 선지자 예레미야는 유다 모든 백성과 예루살렘 모든 거민에게 고하였다. “유다 왕 아몬의 아들 요시야의 13년부터 오늘까지 23년 동안에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하기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되 부지런히 일렀으나 너희가 듣지 아니하였으며 여호와께서 그 모든 종 선지자들을 너희에게 보내시되 부지런히 보내셨으나 너희가 듣지 아니하였으며 귀를 기울여 들으려고도 아니하였도다.”

예레미야는 요시야 13년 곧 주전 628년경부터 오늘 곧 주전 605년경까지 23년 동안 하나님의 말씀이 그에게 임하였다고 말한다. 그는 그때부터 여호야김 11년까지 7년 동안과 여호야긴의 3달 10일, 그리고 시드기야의 11년 동안 더 하나님의 말씀을 받았고 도합 41년간 하나님의 말씀을 받았고 그 말씀을 전한 선지자 사역을 하였다. 그러나 그가 이스라엘 백성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부지런히 전했으나 그들이 듣지 않았고 또 하나님께서 그의 모든 종 선지자들을 그들에게 부지런히 보내셨으나 그들이 듣지 않았고 귀를 기울여 들으려고도 하지 않았다. 즉, 하나님께서는 선지자 예레미야를 비롯하여 그 모든 선지자들을 통하여 부지런히 그의 뜻을 분명하게 전하셨으나,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았던 것이다.

[5-7절] 이르시기를 너희는 각기 악한 길과 너희 악행에서 . . . .

예레미야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주신 말씀의 내용을 요약하여 증거한다. “이르시기를 너희는 각기 악한 길과 너희 악행에서 돌이키라. 그리하면 나 여호와가 너희와 너희 열조에게 옛적에 주어 영원히 있게 한 그 땅에 거하리니, 너희는 다른 신을 좇아 섬기거나 숭배하지 말며 너희 손으로 만든 것을 인하여 나의 노를 격동치 말라. 그리하면 내가 너희를 해치 아니하리라 하였으나, 너희가 내 말을 듣지 아니하고 너희 손으로 만든 것으로 나의 노를 격동하여 스스로 해하였느니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악한 길과 악행에서 돌이키라고 말씀하셨고 다른 신들 곧 그들의 손으로 만든 것들을 섬기거나 숭배하지 말라고 말씀하셨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데서 증거된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는 것이 곧 그를 경외치 않는 것이요 그를 무시하고 멸시하는 것이다. 성경말씀을 무시하고 제 생각대로 하는 신앙생활은 인본주의적 신앙생활이며 자신을 하나님보다 높이는 일종의 자기 우상숭배와 같다.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았고 그의 노를 일으켜 자신들에게 큰 해가 되게 하였다. 사람의 죄는 하나님의 노를 일으킨다. 그리스도인들이 범죄해도 마찬가지이다. 하나님 앞에서 중요한 것은 우리가 죄를 짓지 않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노하시면 사람에게는 큰 해가 된다. 우리가 참으로 행복하기를 원한다면 우리는 죄를 버려야 하고 그럼으로써 하나님의 노를 피해야 한다. 거룩과 의와 선함을 실천하는 곳에서만 충만한 평강이 있다.

[8-11절] 그러므로 나 만군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 . .

예레미야는 또 말한다. “그러므로 나 만군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너희가 내 말을 듣지 아니하였은즉 보라, 내가 보내어 북방 모든 족속과 내 종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을 불러다가 이 땅과 그 거민과 사방 모든 나라를 쳐서 진멸(殄滅)하여 그들로 놀램과 치소거리가 되게 하며 땅으로 영영한 황무지가 되게 할 것이라. 내가 그들 중에서 기뻐하는 소리와 즐거워하는 소리와 신랑의 소리와 신부의 소리와 맷돌소리와 등불 빛이 끊어지게 하리니 이 온 땅이 황폐하여 놀램이 될 것이며 이 나라들은 70년 동안 바벨론 왕을 섬기리라.”

하나님께서는 이제 징벌을 선언하신다. 하나님께서는 “보라, 내가 보내어 북방 모든 족속과 내 종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을 불러다가 이 땅과 그 거민과 사방 모든 나라를 쳐서 진멸(殄滅)하여 그들로 놀램과 치소거리가 되게 하며 땅으로 영영한 황무지가 되게 할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하나님께서는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을 ‘내 종’이라고 부르신다. 또 그는 친히 바벨론 왕을 불러와 유다 땅과 그 거민과 그 주위의 모든 나라를 치게 할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하나님께서는 주권적 섭리자이시다. 그가 온 세상의 심판자이시다. 유다를 멸망시키는 자도 바로 하나님이시다.

하나님께서는 유다 땅과 그 주위 나라들을 쳐서 완전하게 멸망시킬 것이다. ‘진멸(殄滅)한다’는 말은 ‘완전히 멸망시킨다’는 뜻이다. 그러면 그들은 놀라게 되고 조롱거리가 될 것이며 그 땅은 영영히 황무지가 될 것이다. 또 하나님께서는 그들 중에서 기쁨과 즐거움을 제거하실 것이다. 그들 중에는 기뻐하는 소리와 즐거워하는 소리와 신랑의 소리와 신부의 소리와 맷돌소리와 등불 빛이 끊어질 것이다. 평안과 물질적 여유가 있을 때 잔치도 하고 기뻐할 것이지만, 그런 일이 없을 것이다. 그 온 땅은 황폐하여 놀램이 될 것이다.

또 하나님께서는 유대 나라와 그 주위의 나라들이 70년 동안 바벨론 왕을 섬길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70년 포로생활은 참으로 고통의 긴 기간이 될 것이다. 우리나라는 일제 36년간의 고통을 경험하였고 이북 동포들은 해방 후 70년간이나 억압된 사회에서 살고 있다.

[12-14절]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70년이 마치면 내가 . . . .

예레미야는 또 말한다.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70년이 마치면 내가 바벨론 왕과 그 나라와 갈대아인의 땅을 그 죄악으로 인하여 벌하여 영영히 황무케 하되 내가 그 땅에 대하여 선고한 바 곧 예레미야가 열방에 대하여 예언하고 이 책에 기록한 나의 모든 말을 그 땅에 임하게 하리니 여러 나라와 큰 왕들이 그들로 자기 종을 삼으리라. 내가 그들의 행위와 그들의 손의 행한 대로 보응하리라 하시니라.” 하나님께서는 유다 나라와 그 주위의 나라들을 심판하는 도구로 바벨론 왕과 그 나라를 사용하실 것이지만, 때가 되면 바벨론 왕과 그 나라의 죄악에 대해서도 징벌하실 것이다. 그때는 이스라엘에게 회복의 때가 될 것이 암시되어 있다. 이것은 하나님의 긍휼의 암시이다. 하나님의 마음은 모든 죄인들을 멸망시키는 것이 아니고 그의 택한 백성들에게 긍휼을 베푸시고 그들을 구원하는 것이다.

본문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야 한다.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고 자기들의 생각대로 행하였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행하는 자가 되어야 한다. 우리는 성경의 교훈대로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의지하여 구원을 받고 죄를 버리고 바르게 살고 서로 사랑하며 성화를 이루어야 한다.

둘째로, 하나님의 진노는 엄위하였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사랑하는 백성에게 완전한 멸망과 70년 포로생활이라는 무서운 징벌을 내리셨다. 오늘 우리도 육신대로 살면 반드시 죽을 것이다(롬 8:13). 히브리서 12:8은, “징계는 다 받는 것이거늘 너희에게 없으면 사생자요 참 아들이 아니니라”고 말한다. 우리는 악한 길을 회개하고 죄를 짓지 말자.

셋째로, 바벨론 70년 포로생활의 선언은 또한 70년 후에 하나님의 긍휼의 구원을 암시한다. 이스라엘 백성은 70년 후에 고국으로 돌아올 것이다. 그것은 하나님의 긍휼의 구원이다. 우리는 그 은혜로 구원을 얻었다. 우리는 오직 하나님의 은혜를 감사하고 그 은혜 안에 거하자.

 

15-38절, 하나님의 열국 심판

본문은 하나님의 열국 심판에 대한 예언이다.

[15-26절]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같이 내게 . . . .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선지자 예레미야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내 손에서 이 진노의 잔을 받아 가지고 내가 너를 보내는 바 그 모든 나라로 마시게 하라. 그들이 마시고 비틀거리며 미치리니 이는 내가 그들 중에 칼을 보냄을 인함이니라.”

선지자 예레미야는 말한다. “내가 여호와의 손에서 그 잔을 받아서 여호와께서 나를 보내신 바 그 모든 나라로 마시게 하되 예루살렘과 유다 성읍들과 그 왕들과 그 방백들로 마시게 하였더니 그들이 멸망과 놀램과 치소[수치]와 저주를 당함이 오늘날과 같으니라. 또 애굽 왕 바로와 그의 신하들과 그의 방백들과 그의 모든 백성과 모든 잡족과 우스 땅 모든 왕과 블레셋 사람의 땅 모든 왕과 아스글론과 가사와 에그론과 아스돗의 남은 자와 에돔과 모압과 암몬 자손과 두로의 모든 왕과 시돈의 모든 왕과 바다 저편 섬의 왕들과 드단과 데마와 부스와 털을 모지게 깎은[혹은 ‘땅끝에 있는’(KJV, NIV)] 모든 자와 아라비아 모든 왕과 광야에 거하는 잡족의 모든 왕과 시므리의 모든 왕과 엘람의 모든 왕과 메대의 모든 왕과 북방 원근의 모든 왕과 지면에 있는 세상의 모든 나라로 마시게 하니라. 세삭 왕은 그 후에 마시리라.”

예레미야는 하나님께서 그를 보내어 유다 나라를 비롯하여, 애굽, 우스, 블레셋, 에돔, 모압, 암몬, 두로, 시돈, 드단, 데마, 부스, 아라비아, 시므리, 엘람, 메대, 북방 원근 나라들 등 세상의 모든 나라들이 다 하나님의 진노의 잔을 마시게 하셨다고 말한다. 또 그는 “세삭 왕은 그 후에 마시리라”고 말한다. ‘세삭’은 ‘바벨론’을 가리킨다. 이것은 히브리어 알파벳의 순서를 거꾸로 말하는 표현법(아트바쉬 표현법이라고 함)이다. 모든 나라는 하나님의 진노의 잔을 받고 비틀거리며 미칠 것인데 그것은 하나님께서 그들 중에 칼을 보내실 것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세계적 전쟁을 가리켰다.

하나님께서는 친히 온 세상의 나라들을 심판하실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온 세상의 창조자시요 섭리자이시며 심판자이시다. 하나님의 심판에서 예외가 될 나라는 하나도 없다. 하나님께서는 구약시대에 이스라엘 나라부터 심판하셨다. 신약시대에도 그는 교회들부터 잘못된 점들을 징벌하실 것이다. 베드로전서 4:17은 “하나님의 집에서 심판을 시작할 때가 되었나니 만일 우리에게 먼저 하면 하나님의 복음을 순종치 아니하는 자들의 그 마지막이 어떠하며”라고 말한다. 교회도, 세상도 다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서게 될 것이다.

[27-29절] 너는 그들에게 이르기를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 . . .

하나님께서는 또 예레미야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그들에게 이르기를,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의 말씀에 너희는 마시라, 취하라, 토하라, 엎드러지고 다시는 일어나지 말라. 이는 내가 너희 중에 칼을 보냄을 인함이니라 하셨다 하라.” 또 그는 말씀하셨다. “그들이 만일 네 손에서 잔을 받아 마시기를 거절하거든 너는 그들에게 이르기를, 만군의 여호와의 말씀에 너희가 반드시 마시리라. 보라, 내가 내 이름으로 일컬음을 받는 성에서부터 재앙 내리기를 시작하였은즉 너희가 어찌 능히 형벌을 면할 수 있느냐? 면치 못하리니 이는 내가 칼을 불러 세상의 모든 거민을 칠 것임이니라 하셨다 하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하나님의 진노는 특히 칼로 묘사되었다(16, 27, 29, 31절). 그것은 전쟁을 가리켰다. 전쟁은 하나님의 진노의 대표적인 방법이다. 우리나라에도 혹시 전쟁이 일어나면 그것은 하나님의 진노의 심판인 줄 알아야 할 것이다. 유다 멸망기에 하나님께서는 바벨론 나라와 그 군대를 그의 심판의 도구로 사용하셨다. 온 세상의 마지막 심판에도 그럴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한 강대한 나라를 들어 많은 나라들을 징벌하실 것이다. 그것은 세계적인 전쟁이 될 것이다. 그것은 요한계시록에 유브라데스 강 부근에서 일어나는 큰 전쟁과 아마겟돈 전쟁으로 예언되어 있다(계 9:14-16; 16:14-16).

[30-31절] 그러므로 너는 그들에게 이 모든 말로 예언하여 . . . .

하나님께서는 또 말씀하셨다. “그러므로 너는 그들에게 이 모든 말로 예언하여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높은데서 부르시며[표호하시며](roar)(KJV, NASB, NIV) 그 거룩한 처소에서 소리를 발하시며 그 양의 우리를 향하여 크게 부르시며[표호하시며] 세상 모든 거민을 대하여 포도 밟는 자같이 외치시리니 요란한 소리가 땅끝까지 이름은 여호와께서 열국과 다투시며 모든 육체를 심판하시며 악인을 칼에 붙이심을 인함이라 하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하나님의 심판의 이유는 언제나 하나뿐이다. 그것은 죄 때문이다. 마지막 열국 심판도 하나님께서 악인들을 칼에 붙이시는 심판이다. 공의의 하나님께서는 죄를 미워하신다. 그는 말씀을 무시하고 죄를 회개치 않는 자들을 마침내 전쟁의 칼로 심판하실 것이다.

[32-38절] 나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라. 보라 재앙이 나서 . . . .

하나님께서는 또 말씀하신다. “나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라. 보라, 재앙이 나서 나라에서 나라에 미칠 것이며 대풍이 땅끝에서 일어날 것이라. 그 날에 나 여호와에게 살육을 당한 자가 땅 이끝에서 땅 저끝에 미칠 것이나 그들이 슬퍼함을 받지 못하며 염습함[씻고 수의를 입힘]을 입지 못하며 매장함을 얻지 못하고 지면에서 분토가 되리로다. 너희 목자들아, 외쳐 애곡하라. 너희 양떼의 인도자들아, 재에 굴라[딩굴라]. 이는 너희 도륙을 당할 날과 흩음을 당할 기한이 찼음인즉 너희가 귀한 그릇의 떨어짐같이 될 것이라. 목자들은 도망할 수 없겠고 양떼의 인도자들은 도피할 수 없으리로다. 목자들의 부르짖음과 양떼의 인도자들의 애곡하는 소리여, 나 여호와가 그들의 초장으로 황폐케 함이로다. 평안한 목장들이 적막하니 이는 여호와의 진노의 연고로다. 그가 사자같이 그 소혈[은신처]에서 나오셨도다. 그 잔멸하는 자의 진노와 그 극렬한 분으로 인하여 그들의 땅이 황량하였도다.”

하나님의 심판은 참으로 두려운 일이 될 것이다. 그 날은 재앙의 날이다. 심판자 하나님께서는 부르짖는 소리를 내는 맹수처럼 심판자의 위엄을 가지시고 나타나실 것이다. 그 날은 회리바람이나 폭풍처럼 무서운 재앙의 바람이 부는 날이다. 많은 사람이 죽임을 당할 것이다. 살육당한 자들의 시체를 씻고 옷을 입힐 수도 없을 정도로 많은 사람이 죽을 것이다. 귀한 그릇 같은 자들이 땅에 떨어질 것이다. 온 땅은 황폐하고 적막해질 것이다.

본문의 교훈은 두 가지다. 첫째로, 우리는 하나님께서 열국의 심판자이심을 알자. 성경은 하나님의 마지막 열국 심판을 예언한다. 주께서는 곡식과 가라지 비유에서 세상 끝에 심판의 날이 있다고 말씀하셨다(마 13:39-42). 또 그는 양과 염소의 비유에서 그의 재림 때에 열국의 심판이 있다고 말씀하셨다(마 25:31-33). 하나님께서는 천하를 공의로 심판하실 날을 작정하셨다(행 17:31; 롬 2:5, 16). 산 자와 죽은 자, 의인과 악인이 다 받게 될 마지막 대심판이 있다(계 20:11-15).

둘째로, 우리는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의 명령에 순종하자. 우리는 하나님을 온 세상의 창조자와 섭리자와 심판자로 인정하고 또 그를 구주로, 또 복의 근원으로 알자. 우리는 하나님만 섬기고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을 의지하고 하나님께 기도하고 하나님만 소망하자. 그의 뜻과 그의 계명만 순종하자. 하나님의 뜻은 거룩과 의와 선이다. 죄는 멸망의 원인이며 의는 평강의 원인이다. 우리는 의와 선만 행하자.

 

 

26장: 예레미야를 죽이려 함

[1-7절] 유다 왕 요시야의 아들 여호야김의 즉위 초에 . . . .

유다 왕 요시야의 아들 여호야김의 즉위 초에 여호와께로서 말씀이 예레미야에게 임하였다. 선지자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명확히 받은 자들이었다. 오늘날에는 성경이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이며 성경을 바르게 해석하는 자가 하나님의 참된 종이다. 하나님께서는 말씀하셨다. “나 여호와가 이같이 이르노라. 너는 여호와의 집 뜰에 서서 유다 모든 성읍에서 여호와의 집에 와서 경배하는 자에게 내가 네게 명하여 이르게 한 모든 말을 고하되 한 말도 감하지 말라. 그들이 듣고 혹시 각각 그 악한 길에서 떠나리라. 그리하면 내가 그들의 악행으로 인하여 재앙을 그들에게 내리려 하던 뜻을 돌이키리라.”

하나님의 종들은 하나님의 모든 말씀을 가감 없이 전해야 한다. 특히 악을 지적하고 책망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지만 그렇게 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다. 악을 행하는 자에게는 하나님의 재앙이 내릴 것이나 회개하며 악을 떠나는 자에게는 재앙이 없을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또 말씀하셨다. “너는 그들에게 이르기를 여호와의 말씀에 너희가 나를 청종치 아니하며 내가 너희 앞에 둔 내 법을 행치 아니하며 내가 너희에게 보내고 부지런히 보낸 나의 종 선지자들의 말을 이미 듣지 아니하였거니와 너희가 만일 다시 듣지 아니하면 내가 이 집을 실로같이 되게 하고 이 성으로 세계 열방의 저주거리가 되게 하리라 하셨다 하라.”

실로는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에 정착하면서 성막을 세운 곳이었으나(수 18:1) 그 성막터는 황폐해졌던 것 같다. 그 자세한 내용이 성경에 기록되어 있지는 않지만, 사사시대 말 엘리 제사장에게 내린 경고에서 암시되어 있고(삼상 2-4장), 또 성경에는 하나님께서 실로의 성막을 버리셨다는 표현이 몇 번 나온다(시 78:60; 렘 7:12, 14). 시편 78:60, “실로의 성막 곧 인간에 세우신 장막을 떠나시고.” 하나님의 경고는 동일하다. 모든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을 청종해야 하고 그렇지 않으면 그의 징벌을 피할 수 없다. 회개하고 믿으라는 그의 명령을 따르는 자는 구원을 받지만, 회개하지 않고 믿지 않는 자는 멸망을 당할 것이다. 예레미야는 여호와의 집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했고 제사장들과 선지자들과 모든 백성은 그 말을 들었다.

[8-9절] 예레미야가 여호와께서 명하신 말씀을 모든 백성에게 . . . .

예레미야가 여호와께서 명하신 말씀을 모든 백성에게 고하기를 마치자, 제사장들과 선지자들과 모든 백성은 그를 붙잡고 말하였다. “네가 반드시 죽으리라. 어찌하여 네가 여호와의 이름을 의탁하고 예언하여 이르기를 이 집이 실로같이 되겠고 이 성이 황무하여 거민이 없으리라 하느뇨?” 제사장들과 선지자들이 더 악하였다. 그들은 하나님의 명대로 회개하지 않고 오히려 하나님의 뜻을 전한 선지자를 죽이려 하였다. 그들은 완고하고 악하였고 마침내 하나님을 대적하였다. 모든 백성은 여호와의 집에서 예레미야에게로 모여들었다.

[10-15절] 유다 방백들이 이 일을 듣고 왕궁에서 여호와의 . . . .

유다 방백들은 이 일을 듣고 왕궁에서 여호와의 집으로 올라와서 여호와의 집 새문 어귀에 앉았다. 그 재판정에서 제사장들과 선지자들은 방백들과 모든 백성에게 말했다. “이 사람은 죽음이 합당하니 너희 귀로 들음같이 이 성을 쳐서 예언하였느니라.”

 예레미야는 모든 방백과 백성에게 말하였다. “여호와께서 나를 보내사 너희의 들은 바 모든 말로 이 집과 이 성을 쳐서 예언하게 하셨느니라. 그런즉 너희는 너희 길과 행위를 고치고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목소리를 청종하라. 그리하면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선고하신 재앙에 대하여 뜻을 돌이키시리라. 보라, 나는 너희 손에 있으니 너희 소견에 선한 대로, 옳은 대로 하려니와 너희는 분명히 알라. 너희가 나를 죽이면 정녕히 무죄한 피로 너희 몸과 이 성과 이 성 거민에게로 돌아가게 하리라. 이는 여호와께서 진실로 나를 보내사 이 모든 말을 너희 귀에 이르게 하셨음이니라.”

이것이 참된 선지자의 모습이다. 그는 하나님의 말씀을 가감 없이 선포하는 자이다. 그는 사람들의 좋아함과 싫어함을 고려하지 않고 심지어 죽음의 위협을 두려워하지 않는 자이다! 오늘날 참된 목사들도 하나님의 말씀 곧 성경의 모든 교훈을 충실히 선포하고 가르치려 해야 하고 사람들의 기호에 따라 가감하려 해서는 안 된다.

[16-19절] 방백들과 모든 백성이 제사장들과 선지자들에게 . . . .

방백들과 모든 백성이 제사장들과 선지자들에게 말했다. “이 사람이 우리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의탁하고 우리에게 말했으니 죽음이 부당하니라.” 또 그때에 그 땅 장로들 중 몇 사람이 일어나 백성의 온 회중에 말했다. “유다 왕 히스기야 시대에 모레셋 사람 미가가 유다 모든 백성에게 예언하여 가로되 만군의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시온은 밭같이 경작함을 당하며 예루살렘은 무더기가 되며 이 전의 산은 수풀의 높은 곳들같이 되리라 하였으나 유다 왕 히스기야와 모든 유다가 그를 죽였느냐? 히스기야가 여호와를 두려워하여 여호와께 간구하매 여호와께서 그들에게 선고한 재앙에 대하여 뜻을 돌이키지 아니하셨느냐? 우리가 이같이 하면 우리 생명을 스스로 크게 해하는 일이니라.” 종교적으로 부패하였던 그 시대에도 하나님께서는 정직한 방백들과 장로들과 백성들을 남겨두셨다.

[20-24절] 또 여호와의 이름을 의탁하고 예언한 사람이 . . . .

또 여호와의 이름을 의탁하고 예언한 사람이 있었는데 곧 기럇여아림 스마야의 아들 우리야이었다. 그는 예레미야의 모든 말과 같이 예루살렘 성과 유다 땅을 쳐서 예언하였다. 여호야김 왕과 그 모든 용사들과 모든 방백들이 그 말을 들었고 왕은 그를 죽이려 하였고, 우리야는 그 사실을 듣고 두려워 애굽으로 도망하여 갔다. 여호야김 왕은 악볼의 아들 엘라단과 몇 사람과 함께 사람들을 애굽으로 보내었고, 그들은 우리야를 애굽에서 끌어내어 여호야김 왕께로 데려왔다. 왕은 칼로 그를 죽였고 그 시체를 평민의 묘실에 던지게 하였다. 그러나 사반의 아들 아히감은 예레미야를 보호하여 그를 백성의 손에 내어주지 아니하여 죽이지 못하게 하였다. 우리는 하나님의 섭리를 다 알 수 없다. 같은 선지자이었지만, 우리야는 죽임을 당했으나 예레미야는 보호를 받았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선하시고 기뻐하시는 뜻대로 각 사람에게 일어나는 모든 일을 작정하시고 섭리하신다.

본장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절대적으로 순종하자.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의 말씀을 거절하였다.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다. 그 내용은 죄를 회개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구원 얻고 경건하고 바르고 선하게 사는 것이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오직 하나님의 명령대로 경건하고 바르고 선하게 살자.

둘째로,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바르게 전하는 종들을 존중하고 그들의 말을 순종하자.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의 바른 말씀을 전한 선지자 예레미야의 말을 듣지 않고 오히려 그를 죽이려 하였다. 그러나 하나님의 바른 종들을 존중하고 순종하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다. 히브리서 13:17, “너희를 인도하는 자들에게 순종하고 복종하라.”

셋째로, 우리는 모든 일을 하나님의 섭리에 맡기자. 우리야는 하나님의 바른 말씀을 전하다가 죽임을 당했으나, 예레미야는 보호함을 얻었다. 하나님의 뜻 가운데 순교도 있고 생명 보존도 있다. 사도들은 핍박을 받을 때 피신하기도 하였고 또 순교하기도 하였다. 우리는 우리의 현재와 미래를 다 하나님의 주권적 섭리의 손에 맡기자.

 

 

27장: 바벨론 왕을 섬기라

[1절] 유다 왕 요시야의 아들 여호야김의 즉위한 지 오래지 . . . .

유다 왕 요시야의 아들 여호야김[시드기야]의 즉위한 지 오래지 아니하여서 여호와께서 말씀으로 예레미야에게 이르셨다. 1절의 ‘여호야김’은 ‘시드기야’로 수정되어야 할 것이다. 3절과 12절 등 본문의 내용은 시드기야 때이다. 3개의 히브리어 사본과 옛 수리아어역과 아랍어역과 근래의 영어성경들(NASB, NIV)은 수정 본문을 따른다.

[2-8절] 여호와께서 이같이 내게 이르시되 너는 줄과 멍에를 . . . .

여호와께서는 예레미야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줄[줄들]과 멍에[멍에들]를 만들어 네 목에 얹고 유다 왕 시드기야를 보러 예루살렘에 온 사신들의 손에도 그것을 붙여(쉴라크탐)[그것들을 보내며] 에돔 왕과 모압 왕과 암몬 자손의 왕과 두로 왕과 시돈 왕에게 보내며 그들에게 명하여 그 주에게 이르게 하기를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말씀하시되 너희는 너희 주에게 이같이 고하라.” 하나님께서는 예레미야에게 줄들과 멍에들을 만들어 그의 목에 얹고 또 예루살렘에 온 각 나라의 사신들에게도 주라고 말씀하시며 그들에게 전할 말씀을 주셨는데,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나는 내 큰 능과 나의 든 팔로 땅과 그 위에 있는 사람과 짐승들을 만들고 나의 소견에 옳은 대로 땅을 사람에게 주었노라. 이제 내가 이 모든 땅을 내 종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의 손에 주고 또 들짐승들을 그에게 주어서 부리게 하였나니 열방이 그와 그 아들과 손자를 섬기리라. 그의 땅의 기한이 이르면 여러 나라와 큰 왕이 그로 자기를 섬기게 하리라 마는(NASB, NIV) 나 여호와가 이르노라.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을 섬기지 아니하는 국민이나 그 목으로 바벨론 왕의 멍에를 메지 아니하는 백성은 내가 그의 손으로 진멸시키기까지 칼과 기근과 염병으로 벌하리라.”

하나님께서는 큰 능력의 팔로 땅과 그 위에 있는 사람들과 짐승들을 만들고 그의 소견에 옳은 대로 땅을 사람들에게 주셨고 이제 이 모든 땅을 그의 종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의 손에 주고 또 들짐승들을 그에게 주어서 부리게 하였고 열방이 그와 그 아들과 그 손자를 섬길 것이다. 그것은 그의 땅의 기한이 이르기까지 그러할 것이며, 또 바벨론 왕을 섬기지 아니하는 국민이나 그 목으로 바벨론 왕의 멍에를 메지 아니하는 백성은 하나님께서 그의 손으로 진멸시키기까지 칼과 기근과 염병으로 벌할 것이다.

[9-11절] 너희는 너희 선지자나 너희 복술이나 너희 꿈꾸는 . . . .

하나님께서는 계속 말씀하신다. “너희는 너희 선지자나 너희 복술이나 너희 꿈꾸는 자나 너희 술사나 너희 요술객이 너희에게 이르기를 너희가 바벨론 왕을 섬기지 아니하리라 하여도 듣지 말라. 그들은 너희에게 거짓을 예언하여서 너희로 너희 땅에서 멀리 떠나게 하며 또 나로 너희를 몰아내게 하며 너희를 멸하게 하느니라. 오직 그 목으로 바벨론 왕의 멍에를 메고 그를 섬기는 나라는 내가 그들을 그 땅에 머물러서 밭을 갈며 거기 거하게 하리라 하셨다 하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열방의 왕들도 거짓된 신비주의자들의 거짓된 예언을 듣지 말아야 했다. 그 예언을 따르는 자는 결국 죽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바벨론 왕의 멍에를 메고 그를 섬기는 자는 목숨을 건지고 그 땅에 머물러 밭을 갈며 그 땅에 거하게 하실 것이다.

[12-15절] 내가 이 모든 말씀대로 유다 왕 시드기야에게 . . . .

예레미야는 이 모든 말씀을 유다 왕 시드기야에게도 고하였다.  “왕과 백성은 목으로 바벨론 왕의 멍에를 메고 그와 그 백성을 섬기소서. 그리하면 살리이다. 어찌하여 왕과 왕의 백성이 여호와께서 바벨론 왕을 섬기지 아니하는 나라에 대하여 하신 말같이 칼과 기근과 염병에 죽으려 하나이까? 왕과 백성에게 바벨론 왕을 섬기지 아니하리라 하는 선지자의 말을 듣지 마소서. 그들은 거짓을 예언하나이다.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내가 그들을 보내지 아니하였거늘 그들이 내 이름으로 거짓을 예언하니 내가 너희를 몰아내며 너희와 너희에게 예언하는 선지자들을 멸망시키기에 이르리라 하셨나이다.”

예레미야는 유다 왕 시드기야에게도 바벨론 왕에게 항복하고 그와 그 백성을 섬기면 죽지 않고 살 것이며, 섬기지 않으면 칼과 기근과 염병으로 죽을 것이며, 거짓 선지자들의 예언을 따르면 유다는 다 멸망하고 그 거짓 선지자들도 다 죽을 것이라고 말했다.

[16-18절] 내가 또 제사장들과 그 모든 백성에게 고하여 . . . .

예레미야는 또 제사장들과 그 모든 백성에게도 말하였다.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여호와의 집 기구를 이제 바벨론에서 속히 돌려오리라고 너희에게 예언하는 선지자들의 말을 듣지 말라. 이는 그들이 거짓을 예언함이니라 하셨나니 너희는 그들을 듣지 말고 바벨론 왕을 섬기라. 그리하면 살리라. 어찌하여 이 성으로 황무지가 되게 하겠느냐? 만일 그들이 선지자이고 여호와의 말씀이 그들에게 있을진대 그들이 여호와의 집에와 유다 왕의 집에와 예루살렘에 남아 있는 기구가 바벨론으로 옮겨가지 않도록 만군의 여호와께 구하여야 할 것이니라.” 예레미야는 제사장들과 모든 백성에게도 같은 내용을 전하였다. 또 그는 바벨론으로 빼앗겼던 예루살렘 성전 기구들이 속히 돌아올 것이라고 예언하는 자들은 거짓말하는 자들이며 그들이 정말 하나님의 사람들이라면 그 기구들이 바벨론으로 빼앗기지 않도록 간구했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19-22절] 만군의 여호와께서 기둥들과 놋바다와 받침들과 . . . .

예레미야는 또 말한다. “만군의 여호와께서 기둥들과 놋바다와 받침들과 및 이 성에 남아 있는 기구에 대하여 이같이 말씀하시나니 이것은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이 유다 왕 여호야김의 아들 여고니야와 유다와 예루살렘 모든 귀족을 예루살렘에서 바벨론으로 사로잡아 옮길 때에 취하지 아니하였던 것이라.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여호와의 집에와 유다 왕의 집에와 예루살렘에 남아 있는 그 기구에 대하여 이같이 말씀하시되 그것들이 바벨론으로 옮김을 입고 내가 이것을 돌아보는 날까지 거기 있을 것이니라. 그 후에 내가 그것을 옮겨 이곳에 다시 두리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이전에 여호야김 때나 여호야긴 때의 바벨론 침공으로 빼앗기지 않았던 성전 기둥들과 놋바다 등의 기구들도 바벨론으로 빼앗길 것이다. 그것들은 하나님께서 돌아보시는 날, 곧 그가 긍휼을 베푸시는 날까지 거기에 있을 것이다. 그러나 회복의 날이 있을 것이다.

본장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하나님께서는 주권자이시다. 그는 온 세상을 만드셨고 다스리시며 악인들을 벌하시고 의인들에게 평안을 주시고 자기 백성을 회복시키신다. 그는 이 모든 일을 행하신다.

둘째로, 우리는 하나님의 섭리에 순응해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유다 왕을 포함하여 열국 왕들에게 바벨론 왕을 섬기라고 말씀하셨다. 그것은 그의 주권적인 뜻이었고 하나님의 심판이었다. 모든 사람들은 그의 섭리에 순응해야 했다. 그의 뜻을 거스르지 말아야 했다.

셋째로, 우리는 거짓 교훈을 조심해야 한다. 참 교훈과 거짓 교훈은 오직 성경말씀으로 분별한다(사 8:20). 이단들이 많이 나타난 오늘날 우리는 성경말씀으로 거짓 교훈을 분별하고 배격해야 한다(요일 4:1).

넷째로, 우리는 하나님의 긍휼의 회복을 기다리자. 성경은 인류의 구원과 세상의 회복을 예언한다. 요한계시록 21:6, “보라, 내가 만물을 새롭게 하노라 하시고 또 가다사대 이 말은 신실하고 참되니 기록하라.” 우리는 하나님의 긍휼로 주실 영광의 새 세계인 천국을 사모하자.

 

 

28장, 하나냐의 거짓 예언

[1-4절] 이 해, 유다 왕 시드기야의 즉위한 지 오래지 않은 해 . . . .

이 해, 유다 왕 시드기야의 즉위한 지 오래지 않은 해 곧 4년 5월에 기브온 앗술의 아들 선지자 하나냐가 여호와의 집에서 제사장들과 모든 백성 앞에서 예레미야에게 말했다.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이같이 말씀하여 가라사대 내가 바벨론 왕의 멍에를 꺾었느니라. 내가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의 이곳에서 바벨론으로 옮겨간 여호와의 집 모든 기구를 두 해가 차기 전에 다시 이곳으로 가져오게 하겠고 내가 또 유다 왕 여호야김의 아들 여고니야와 바벨론으로 간 유다 모든 포로를 다시 이곳으로 돌아오게 하리니 이는 내가 바벨론 왕의 멍에를 꺾을 것임이니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예레미야 당시에 두 종류의 예언이 있었다. 전장에 기록된 대로, 예레미야는 줄과 멍에의 상징물을 통해 바벨론 왕이 온 세계를 통치할 것이요 모든 나라가 그에게 굴복하고 그를 섬겨야 한다고 예언하였었다. 그러나 선지자 하나냐는 예레미야의 예언과 정반대로 예언하였다. 그는 여호와의 집에서 제사장들과 모든 백성 앞에서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이같이 말씀하여 가라사대”라고 하며 세 가지 내용을 말하였다. 첫째, 내가 바벨론 왕의 멍에를 꺾었다. 둘째, 내가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의 이곳에서 바벨론으로 옮겨간 여호와의 집 모든 기구를 두 해가 차기 전에, 즉 2년 안에 다시 이곳으로 가져오게 하겠다. 셋째, 내가 유다 왕 여호야김의 아들 여고니야와 바벨론으로 간 유다 모든 포로를 다시 이곳으로 돌아오게 하겠다. 예레미야의 예언과 하나냐의 예언은 정반대의 내용이었다.

[5-9절] 선지자 예레미야가 여호와의 집에 선 제사장들의 앞과 . . . .

선지자 예레미야는 여호와의 집에 선 제사장들의 앞과 모든 백성 앞에서 선지자 하나냐에게 말했다. “아멘, 여호와는 이같이 하옵소서. 여호와께서 네 예언대로 이루사 여호와의 집 기구와 모든 포로를 바벨론에서 이곳으로 다시 옮겨오시기를 원하노라. 그러나 너는 이제 내가 네 귀와 모든 백성의 귀에 이르는 이 말을 들으라. 나와 너 이전 선지자들이 자고로[옛날부터] 여러 나라와 큰 국가들에 대하여 전쟁과 재앙과 염병을 예언하였느니라. 평화를 예언하는 선지자는 그 예언자의 말이 응한 후에야 그는 진실로 여호와의 보내신 선지자로 알게 되리라.”

이전부터 참 선지자들은 여러 나라와 큰 국가들에 대하여 전쟁과 재앙과 염병을 예언하였다. 그것은 선지자 아모스나 이사야나 스바냐 등의 글들에서 읽을 수 있는 내용이다. 예를 들어, 선지자 아모스는 다메섹, 가사, 두로, 에돔, 암몬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을 선언했고(암 1장), 선지자 이사야는, “열국이여, 너희는 나아와 들을지어다. 민족들이여, 귀를 기울일지어다. 땅과 땅에 충만한 것, 세계와 세계에서 나는 모든 것이여, 들을지어다. 대저 여호와께서 만국을 향하여 진노하시며 그들의 만군을 향하여 분내사 그들을 진멸하시며 살육케 하셨도다”라고 말했고(사 34:1-2), 스바냐는,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내가 지면에서 모든 것을 진멸하리라”고 말했다(습 1:2-3).

그러나 거짓 선지자들은 백성의 비위만 맞추어 평안과 위로의 말을 전하였다. 선지자 미가는 거짓 선지자들에 대해, “내 백성을 유혹하는 선지자는 이에 물면 평강을 외치나 그 입에 무엇을 채워 주지 아니하는 자에게는 전쟁을 준비하는도다,” “그 선지자는 돈을 위하여 점치면서 오히려 여호와를 의뢰하여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우리 중에 계시지 아니하냐? 재앙이 우리에게 임하지 아니하리라 하는도다”라고 말했다(미 3:5, 11). 선지자 예레미야도 예레미아 6:14에서, “그들이 내 백성의 상처를 심상히[대수롭지 않게, 피상적으로] 고쳐주며 말하기를 평강하다 평강하다 하나 평강이 없도다”고 말했다.

참 선지자들이 전쟁과 재앙과 염병을 선언한 것은 백성들의 회개를 위한 것이었다. 거기에 참 선지자들의 예언의 특징이 있었다. 그러나 거짓 선지자들은 평안만 전하기 때문에 백성들을 죄에서 돌이키게 하지 못한다. 거짓 예언의 특징은 죄에 대한 지적이나 회개에 대한 권면이 없는 것이었다. 참 선지자도 평화를 예언할 수 있지만, 평화를 예언하는 선지자는 그의 말들이 성취된 후에야 그가 진실로 하나님께서 보내신 선지자로 알게 될 것이다.

[10-11절] 선지자 하나냐가 선지자 예레미야의 목에서 멍에를 . . . .

선지자 하나냐는 선지자 예레미야의 목에서 멍에를 취하여 꺾으며 모든 백성 앞에서 말하였다.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내가 두 해가 차기 전에[2년 안에] 열방의 목에서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의 멍에를 이같이 꺾어버리리라 하셨느니라.” 선지자 예레미야는 자기 길을 갔다. 참 예언과 거짓 예언은 사람들이 분별하기 어렵고 매우 혼란스러워 보였다. 하나냐의 예언은 확신이 있어 보였다.

[12-14절] 선지자 하나냐가 선지자 예레미야의 목에서 멍에를 . . . .

선지자 하나냐가 선지자 예레미야의 목에서 멍에를 꺾어버린 후에 여호와의 말씀이 예레미야에게 임하였다. “너는 가서 하나냐에게 말하여 이르기를, 여호와의 말씀에 네가 나무 멍에를 꺾었으나 그 대신 쇠 멍에를 만들었느니라[만들 것이라](KJV, NIV).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이같이 말하노라. 내가 쇠 멍에로 이 모든 나라의 목에 메워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을 섬기게 하였으니 그들이 그를 섬기리라. 내가 들짐승도 그에게 주었느니라 하신다 하라.”

하나님께서는 나무 멍에 대신 쇠 멍에를 모든 나라의 목에 메워 바벨론 왕을 섬기게 하겠다고 말씀하셨다. 참 예언과 거짓 예언은 분별하기 어려워 보였으나 분명히 달랐다. 오늘날도 참된 설교와 거짓된 설교는 분별하기 어려워 보이나 분명히 다르다.

[15-17절] 선지자 예레미야가 선지자 하나냐에게 이르되 . . . .

선지자 예레미야는 선지자 하나냐에게 말하였다. “하나냐여, 들으라. 여호와께서 너를 보내지 아니하셨거늘 네가 이 백성으로 거짓을 믿게 하는도다.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내가 너를 지면에서 제하리니 네가 여호와께 패역하는 말을 하였음이라. 금년에 죽으리라 하셨느니라.” 선지자 하나냐는 그 해 7월에 죽었다.

하나냐의 거짓 예언은 하나님의 개입하심으로 판명되었다. 예레미야의 선언대로, 하나냐는 그 해 7월 즉 2개월 후에 죽었다. 예레미야의 예언이 이루어짐으로 하나냐가 거짓 선지자이며 예레미야가 참 선지자이었음이 판명되었다. 참 선지자와 거짓 선지자를 분별하는 기준은 그가 전하는 예언이 율법과 일치하는가 또 그의 예언이 실제로 이루어졌는가 하는 것이다. 이 기준에 비추어 볼 때, 하나냐는 확실히 거짓 선지자이었고 예레미야는 참 선지자이었다.

본장의 교훈은 무엇인가? 구약시대에 선지자들의 예언들은 오늘날 목사들의 설교들이다. 옛날이나 오늘날이나 두 종류의 교훈이 있다. 옛 성도들이 거짓 선지자들의 예언을 분별해야 했듯이, 오늘날 우리는 거짓된 목사들의 설교를 분별해야 한다. 거짓 선지자들의 예언의 특징은, 평안만 말하기를 좋아하고 죄의 책망이나 하나님의 진노에 대해 말하지 않는 것이었다. 우리는 평안과 위로와 축복만 좋아하지 말고 죄의 책망과 하나님의 진노에 대한 말씀도 달게 받고 항상 자기 성찰을 해야 한다. 하나님 앞에서 중요한 것은 우리가 실제로 죄를 버리고 의와 선을 행하는 것이다. 또 우리는 각자 진지하게 성경을 읽고 연구함으로써 여러 종류의 목사들의 설교들을 분별하고 바른 설교를 좋아하고 간직하고 잘못된 설교들을 분별하고 거절할 수 있어야 한다.

 

 

29장: 포로들에게 보낸 편지

1-14절, 포로들에게 보낸 편지

[1-7절] 선지자 예레미야가 예루살렘에서 이 같은 편지를 . . . .

선지자 예레미야는 예루살렘에서 다음과 같은 편지를 느부갓네살이 예루살렘에서 바벨론으로 옮겨간 포로 중에 남아 있는 장로들과 제사장들과 선지자들과 모든 백성에게 보내었다. 그때는 여고니야 왕, 즉 여호야긴 왕과 국모와 환관들과 및 유다와 예루살렘 방백들과 목공들과 철공들이 예루살렘에서 떠난 후, 곧 주전 597년경 이후이었다. 그것은 유다 왕 시드기야가 바벨론으로 보내어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에게로 가게 한 사반의 아들 엘라사와 힐기야의 아들 그마랴의 손에 위탁하여 보내진 편지이었다.

거기에서 예레미야는 이렇게 말했다.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이(원문) 내가 예루살렘에서 바벨론으로 사로잡혀 가게 한 모든 포로에게 이같이 이르노라. 너희는 집을 짓고 거기 거하며 전원을 만들고 그 열매를 먹으라. 아내를 취하여 자녀를 생산하며 너희 아들로 아내를 취하며 너희 딸로 남편을 맞아 그들로 자녀를 생산케 하여 너희로 거기서 번성하고 쇠잔하지 않게 하라. 너희는 내가 사로잡혀 가게 한 그 성읍의 평안하기를 힘쓰고 위하여 여호와께 기도하라. 이는 그 성이 평안함으로 너희도 평안할 것임이니라.”

하나님께서는 본문에서 ‘내가’라는 말을 여러 번 하신다. 예루살렘에서 바벨론으로 사로잡혀 가게 하신 이가 바로 하나님이셨다. 그는 유다 백성을 그들의 죄 때문에 징벌하셔서 바벨론 군대의 포로가 되게 하신 것이었다. 그들의 패전은 하나님께서 하신 일이었다.

예레미야의 편지에 있는 하나님의 말씀의 첫 번째 내용은 그들이 거기서 상당한 기간 동안 안정적 생활을 하라는 것이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이 바벨론에서 집을 짓고 거기 거하며 전원들을 만들고 그 열매를 먹으라고 말씀하신다. ‘전원’(garden)은 포도원, 감람원 등의 밭을 가리킨다. 또 그는 그들이 아내를 취하여 자녀들을 낳고 그들의 자녀들을 결혼시키고 자녀들을 낳게 하여 그들과 그들의 자손이 거기서 번성하고 수적으로 감소되지 않게 하라고 말씀하셨다.

그는 또 그들이 그 거하는 성읍들이 평안하기를 힘쓰고 또 그것을 위해 하나님께 기도하라고 말씀하셨다. 그것은 그들의 성읍이 평안해야 그들도 평안한 삶을 살 수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신약성도들이 그들이 속한 국가의 평안을 구해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사도 바울은 디모데에게 말하기를, “모든 사람을 위하여 간구와 기도와 도고와 감사를 하되 임금들과 높은 지위에 있는 모든 사람을 위하여 하라. 이는 우리가 모든 경건과 단정한 중에 고요하고 평안한 생활을 하려 함이니라”고 하였다(딤전 2:1-2).

[8-9절]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이같이 말하노라. . . .

예레미야는 또 말하였다.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이같이 말하노라. 너희 중 선지자들에게와 복술에게 혹하지 말며 너희가 꾼 바 꿈도 신청하지[듣지] 말라. 내가 그들을 보내지 아니하였어도 그들이 내 이름으로 거짓을 예언함이니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복술’이라는 원어(코스밈)는 ‘점치는 자들, 예언하는 자들’이라는 뜻이다. ‘혹하지 말라’는 말은 ‘속지 말라’는 뜻이다.

예레미야의 편지의 두 번째 내용은 거짓 선지자들에게 속지 말라는 것이다. 거짓 선지자들은 바벨론에서도 거짓말로 사람들을 속였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이 거짓 선지자들의 예언들이나 꿈 해석들에 속지 말고 그것들을 믿지 말라고 하시며 그들은 그가 보내지 않았으나 하나님의 이름으로 거짓말로 예언하는 자들이라고 말씀하셨다. 세상에는 언제나 거짓말하는 거짓 선지자들이 많이 있다.

[10-14절] 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바벨론에서 70년이 . . . .

예레미야는 또 하나님의 말씀을 전한다. “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바벨론에서 70년이 차면 내가 너희를 권고하고 나의 선한 말을 너희에게 실행하여 너희를 이곳으로 돌아오게 하리라.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은 내가 아나니 재앙이 아니라 곧 평안이요 너희 장래에 소망을 주려 하는 생각이라.” ‘권고하다’는 원어(파카드)는 ‘방문하다(KJV, NASB), 돌아보다’는 뜻이다. ‘선한 말’은 포로 귀환의 약속을 뜻한다.

예레미야의 편지의 세 번째 내용은 그들이 70년 후에 돌아올 것이라는 것이다. 그것은 하나님의 계획하신 일, 곧 장차 이루실 일이다. 또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본심이 자기 백성에게 재앙을 내리는 것이 아니고 평안을 주는 것임을 말씀하셨다. 이스라엘 백성이 70년 후에 고국으로 돌아오는 것은 그들에게 확실한 장래의 소망이며 기쁘고 복된 일이었다.

하나님께서는 또 말씀하신다. “[그러므로] 너희는 내게 부르짖으며 와서 내게 기도하면 내가 너희를 들을 것이요 너희가 전심으로 나를 찾고 찾으면 나를 만나리라.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가 너희에게 만나지겠고 [내가] 너희를 포로된 중에서 다시 돌아오게 하되 내가 쫓아 보내었던 열방과 모든 곳에서 [내가] 모아 [내가] 사로잡혀 떠나게 하던 본 곳으로 [내가] 돌아오게 하리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14절에는 원문에서 ‘내가’라는 말이 여섯 번이나 나온다(KJV).

원문 12절 초두에 있는 라는 말은 ‘그러므로’라고 번역할 수 있다. 포로된 그들이 70년 후에 돌아오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다. 그러므로 그들은 그것을 위해 하나님께 기도해야 한다. 에스겔서에서도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의 회복에 대해 예언하신 후 말씀하시기를, “그래도 이스라엘 족속이 이와 같이 자기들에게 이루어 주기를 내게 구하여야 할지라”고 하셨다(겔 36:37).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하나님께 부르짖으며 전심으로 그를 찾고 기도해야 하고 그러면 그가 들으시고 그들이 하나님을 만나게 되고 하나님의 약속하신 포로 귀환의 일이 이루어질 것이다.

본문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우리는 하나님께서 주권적 섭리자이심을 알자. 본문에는 ‘내가’라는 말이 많이 나온다. 원문에 14절에서는 여섯 번이나 나온다. 이스라엘 백성을 바벨론 나라에 사로잡혀 가게 하신 분도 하나님이시요 장차 그들을 거기로부터 고국으로 다시 돌아오게 하실 분도 하나님이시다. 징벌도, 회복도 섭리자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주권적 섭리자이심을 알자.

둘째로, 우리는 거짓 예언을 조심하자. 이스라엘의 배교의 시대에 그 백성을 혼란시킨 중요한 요소는 거짓 선지자들이었다. 그들은 거짓된 신비주의와 예언으로 활동하였다.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참된 뜻으로부터 떠나게 하였다. 신약교회 시대도 마찬가지이다. 특히 말세지말에는 많은 거짓 목사들이 나타날 것이다. 우리는 성경말씀에 비추어 거짓된 설교들과 교훈들을 분별해야 한다.

셋째로, 우리는 하나님께서 주신 현실에 충실하면서 소망 중에 기도해야 한다. 우리의 현실이 어떠하든지 간에 그 현실은 하나님께서 주신 현실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 현실 속에서 불만하거나 불성실해서는 안 된다. 우리는 항상 감사하며 현실에 충실하면서 그러나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미래의 영광을 소망하며 인내하며 힘써 간구해야 한다. 이스라엘 백성을 향한 하나님의 작정된 바가 있으셨으나, 하나님께서는 그들이 그에게 부르짖어 기도하며 전심으로 하나님을 찾고 찾음으로써 기도의 응답을 받아 하나님을 만나며 회복의 은혜를 체험하라고 교훈하셨다. 우리는 현실에 충실하면서 소망 중에 기도하자.

 

15-32절, 거짓 선지자들

[15-19절] 너희가 말하기를 여호와께서 바벨론에서 우리를 . . . .

예레미야는 또 말한다. “너희가 말하기를 여호와께서 바벨론에서 우리를 위하여 선지자들을 일으키셨다 하므로, 여호와께서 다윗의 위(位)에 앉은 왕과 이 성에 거하는 모든 백성 곧 너희와 함께 포로되어 가지 아니한 너희 형제에게 대하여 이같이 말씀하시느니라.”

바벨론으로 포로로 끌려간 자들 가운데도 거짓 선지자들이 일어났다. 거짓 선지자들은 2년 안에 고국으로 돌아갈 것이라고 예언하였다(렘 28:10-11).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거짓된 예언에 대답하시면서 유다 땅에 남아 있던 왕과 백성들에 대한 예언을 주셨다.

예레미야는 또 말한다. “만군의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보라, 내가 칼과 기근과 염병을 그들에게 보내어 그들로 악하여 먹을 수 없는 악한 무화과 같게 하겠고 내가 칼과 기근과 염병으로 그들을 따르게 하며 그들을 세계 열방 중에 흩어 학대를 당하게[세계 열방에게 두려움이 되게](BDB, NASB, NIV) 할 것이며 내가 그들을 쫓아 보낸 열방 중에서 저주거리와 놀램과 치소와 모욕거리가 되게 하리니 이는 내가 내 종 선지자들을 그들에게 보내되 부지런히 보내었으나 그들이 나 여호와의 말을 듣지 아니하며 듣지 아니 함이니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바벨론에 있다는 하나님의 선지자들은 거짓 선지자들이며 그들의 말처럼 그들이 고국으로 돌아오기는커녕 고국에 있는 자들도 망해 세계 열방 중에 흩어질 것이다. 고국에 있는 동족들은 칼과 기근과 염병으로 망하여 못 먹을 무화과처럼 될 것이며 세계 열방에게 두려움이 되며 저주거리와 조롱거리가 될 것이다. 유다 백성이 이렇게 망하게 되는 까닭은 그들이 하나님의 종 선지자들을 통해 부지런히 전달된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고 끝까지 듣지 않았기 때문이다.

[20-23절] 그런즉 내가 예루살렘에서 바벨론으로 보낸 너희 . . . .

예레미야는 하나님의 말씀을 또 전한다. “그런즉 내가 예루살렘에서 바벨론으로 보낸 너희 모든 포로여, 나 여호와의 말을 들을지니라.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 내가 골라야의 아들 아합과 마아세야의 아들 시드기야에 대하여 말하노라. 그들은 내 이름으로 너희에게 거짓을 예언한 자라. 보라, 내가 그들을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의 손에 붙이리니 그가 너희 목전에서[눈앞에서] 그들을 죽일 것이라. 너희 바벨론에 있는 유다 모든 포로가 그들로 저주거리를 삼아서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너로 바벨론 왕이 불살라 죽인 시드기야와 아합 같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하리니 이는 그들이 이스라엘 중에서 망령되이 행하여 그 이웃의 아내와 행음하며 내가 그들에게 명하지 아니한 거짓을 내 이름으로 말함이니라. 나는 아는 자요 증거인이니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하나님께서는 선지자 예레미야를 통해 바벨론에 있는 선지자들 중에 골라야의 아들 아합과 마아세야의 아들 시드기야에 대해 말씀하셨다. 그들은 거짓을 예언한 거짓 선지자들이었고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의 손에 붙여 불태워 죽임을 당하게 하실 것이다. 그들이 이런 심판과 징벌을 받는 까닭은 세 가지이었다. 첫째, ‘망령되이’(네발라 hl;b;n])[악한 일을] 행하였고, 둘째, 이웃의 아내들과 행음하였고, 셋째, 하나님의 이름으로 거짓을 말했기 때문이었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명하지 않은 말들을 하나님의 이름으로 말했다. 하나님께서는 그 모든 사실을 다 아셨고 증거하셨다.

[24-28절] 너는 느헬람 사람 스마야에게 이같이 말하여 이르라. . . .

하나님께서는 예레미야에게 도 말씀하셨다. “너는 느헬람 사람 스마야에게 이같이 말하여 이르라.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이같이 말씀하여 가라사대 네가 네 이름으로 예루살렘에 있는 모든 백성과 제사장 마아세야의 아들 스바냐와 모든 제사장에게 글을 보내어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너로 제사장 여호야다를 대신하여 제사장을 삼아 여호와의 집 유사로 세우심은 무릇 미친 자와 자칭 선지자를 차꼬에 채우며 칼을 메우게 하심이어늘 이제 네가 어찌하여 너희 중에 자칭 선지자라 하는 아나돗 사람 예레미야를 책망하지 아니하느냐? 대저 그가 바벨론에 있는 우리에게 편지하기를 때가 오래리니 너희는 집을 짓고 거기 거하며 전원을 만들고 그 열매를 먹으라 하였다 하였느니라.”

바벨론의 거짓 선지자들 중에 느헬람 사람 스마야라는 자가 있었다. 그는 예루살렘 백성과 제사장 스바냐와 모든 제사장들에게 편지들을 보냈다. 그는 그 편지들에서 스바냐가 미친 자와 자칭 선지자를 단속하고 그들을 차꼬에 채워야 하는 직무를 다하지 못했다고 말하면서 선지자 예레미야가 이곳에 편지하여 때가 오랠 것이니 집을 짓고 전원을 만들고 그 열매를 먹으라고 했는데 왜 그를 잡아 가두지 않느냐고 책망했다. 그는 하나님의 참 선지자 예레미야를 ‘미친 자’ ‘자칭 선지자’라고 비난하며 그를 감금하라고 말했던 것이다.

[29-32절] 제사장 스바냐가 스마야의 글을 선지자 . . . .

제사장 스바냐가 스마야의 글을 선지자 예레미야에게 읽어 들릴 때에 여호와의 말씀이 예레미야에게 임하였다. “너는 모든 포로에게 글을 보내어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느헬람 사람 스마야에 대하여 이같이 말씀하시되 내가 스마야를 보내지 아니하였거늘 그가 너희에게 예언하고 너희로 거짓을 믿게 하였도다. 그러므로 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보라, 내가 느헬람 사람 스마야와 그 자손을 벌하리니 그가 나 여호와께 패역한 말을 하였음을 인하여 이 백성 중에 거할 그의 사람이 하나도 없을 것이라. 내가 내 백성에게 행하려 하는 선한 일을 그가 보지 못하리라 하셨다 하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스마야는 하나님께서 보내지 않으셨는데도 거짓을 예언하여 사람들로 믿게 하였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그와 그의 자손을 벌하실 것이다. 그가 하나님께 반역하는 말을 했기 때문이다. 스마야에게 속한 사람들 중에는 이 백성 가운데 거할 자가 하나도 없을 것이며 그는 장차 하나님께서 유다 백성에게 주실 선한 일 곧 이스라엘의 회복의 일을 보지 못할 것이다. 스마야는 바벨론에서 죽을 것이다.

본문은 몇 가지 교훈을 준다. 첫째로, 우리는 거짓 설교를 분별하고 조심하자(15, 21, 31절). 예나 지금이나 하나님의 교회를 어지럽히는 것은 거짓 설교이다. 그것은 참된 회개와 순종을 강조하지 않고 오히려 신앙의 해이함을 조장한다. 우리는 거짓 설교를 분별하고 조심하자.

둘째로, 우리는 거짓된 목사들의 정체를 알자(23절). 그들은 악한 일을 행하고 행음하고 거짓을 설교하고 또 참된 목사들을 ‘미친 자’니 ‘자칭 목사’니 하고 비난한다. 참 목사와 거짓 목사는 그 사상과 행위로 분별할 수 있다(마 7:15-16). 우리는 거짓된 목사들의 정체를 알자.

셋째로, 우리는 거짓된 목사들의 종말을 알자(21, 22, 32절). 하나님께서는 거짓 선지자 아합과 시드기야가 바벨론 왕에게 불태워 죽임을 당하게 하셨다. 최종적인 심판 전에라도 하나님께서는 때때로 거짓된 목사들을 징벌하신다. 우리는 거짓된 목사들의 종말을 알자.

넷째로, 우리는 오직 하나님의 말씀만 듣고 순종하자. 유다 멸망의 이유는 그 백성들이 하나님께서 부지런히 보내신 종들의 말을 듣지 않고 끝까지 듣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이 사는 길이며 평강을 얻는 길이다. 이사야 55:2-3은, “나를 청종하라. 그리하면 너희가 좋은 것을 먹을 것이며 너희 마음이 기름진 것으로 즐거움을 얻으리라. 너희는 귀를 기울이고 내게 나아와 들으라. 그리하면 너희 영혼이 살리라.” 우리는 모든 죄를 멀리하고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열심히 읽고 듣고 배우고 믿고 힘써 지키며 실행하자.

 

 

 30장: 이스라엘의 회복

1-11절, 하나님께서 돌아오게 하실 것

[1-2절] 여호와께로서 말씀이 예레미야에게 임하여 이르시니라. . . .

여호와께로서 말씀이 예레미야에게 임하였다.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같이 일러 가라사대 내가 네게 이른 모든 말을 책에 기록하라.” 본문은 하나님을 ‘이스라엘의 하나님’이라고 표현한다. ‘이스라엘의 하나님’이라는 표현(본서에 47회 나옴)은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의 특별한 사랑의 대상임을 잘 나타낸다.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는 예레미야에게 그가 그에게 말한 모든 내용을 책에 기록하라고 명하셨다. 그것은 후시대의 사람들에게 교훈이 되게 하라는 뜻이었다(딤후 3:16-17). 여기에 성경의 필요성이 있다.

[3절]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가 내 백성 이스라엘과 유다의 . . . .

하나님께서는 또 말씀하신다.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가 내 백성 이스라엘과 유다의 포로를 돌이킬 때가 이르리니 내가 그들을 그 열조에게 준 땅으로 돌아오게 할 것이라. 그들이 그것을 차지하리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이 포로 생활에서 돌아올 때에 대해 말씀하셨다. 세상의 모든 일은 하나님의 작정하신 때가 있다. 우리는 그때를 믿고 기다린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내 백성 이스라엘과 유다’라고 부르신다. 그것은 그들이 비록 심히 죄악되어 멸망을 당했고 많은 연약성을 가지고 있지만 여전히 하나님의 선택된 백성이며 하나님의 특별한 사랑의 대상임을 나타낸다. 북방 이스라엘 나라도, 또 남방 유다 나라도 우상숭배가 가득하였으나 그들은 여전히 하나님의 백성이며 하나님의 긍휼과 사랑이 마침내 그들을 회복시킬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내가 . . . 그들을 그 열조에게 준 땅으로 돌아오게 할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이스라엘 백성의 포로 귀환 즉 회복은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일이다. 가나안 땅은 본래 하나님께서 그 조상들에게 주셨던 땅이었다. 이스라엘 백성은 죄 때문에 징벌을 받아 이방나라로 포로되어 갔지만, 때가 되면 고국으로 돌아와 다시 그 땅을 차지하게 될 것이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실 것이다.

[4-7절] 여호와께서 이스라엘과 유다에 대하여 하신 말씀이 . . . .

예레미야는 또 말한다. “여호와께서 이스라엘과 유다에 대하여 하신 말씀이 이러하니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우리가 떨리는 소리를 들으니 두려움이요 평안함이 아니로다. 너희는 자식을 해산하는 남자가 있는가 물어보라. 남자마다 해산하는 여인같이 손으로 각기 허리를 짚고 그 얼굴빛이 창백하여 보임은 어찜이뇨? 슬프다 그 날이여, 비할 데 없이 크니 이는 야곱의 환난의 때가 됨이로다마는 그가 이에서 구하여냄을 얻으리로다.”

이스라엘 백성은 그들의 죄 때문에 극심한 고난의 벌을 받았다. 이스라엘의 멸망은 마치 해산하는 여인의 고통과 같았다. 이스라엘의 남자들은 해산하는 여인같이 손으로 각기 허리를 짚고 그 얼굴빛이 창백하였다. 그것은 ‘야곱의 환난의 때’라고 표현되었다. 그러나 이제 그들은 하나님의 긍휼로 그 고통에서 구원을 얻을 것이다.

[8-9절]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라. 그 날에 내가 네 목에서 . . . .

예레미야는 또 말한다.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라. 그 날에 내가 네 목에서 그 멍에를 꺾어버리며 네 줄을 끊으리니 이방인이 다시는 너를 부리지 못할 것이며 너희는 너희 하나님 나 여호와를 섬기며 내가 너희를 위하여 일으킬 너희 왕 다윗을 섬기리라.”

‘만군의 여호와’는 천군 천사들을 거느리신 능력의 하나님을 나타낸다. 이스라엘의 회복의 날에 능력의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의 목에 있는 멍에를 꺾어버리시고 줄을 끊어주실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은 다시 이방인들을 섬기지 않을 것이다. 그 대신, 그들은 그들의 하나님 여호와를 섬기며 하나님께서 그들을 위해 일으키실 그들의 왕 다윗을 섬길 것이다. 전에는 그들이 하나님을 거절하고 거역했기 때문에 멸망을 당했었다. 그러나 이제는 그들이 참 하나님을 섬기며 하나님의 뜻에 즐거이 순종할 것이다.

하나님께서 왕 다윗을 일으키실 것이라는 말씀은 메시아 예언이다. 예레미야는 23:5-6에서도 “보라, 때가 이르리니 내가 다윗에게 한 의로운 가지를 일으킬 것이라. 그가 왕이 되어 지혜롭게 행사하며 세상에서 공평과 정의를 행할 것이며 그의 날에 유다는 구원을 얻겠고 이스라엘은 평안히 거할 것이라”는 하나님의 예언을 선포하였었다. 비슷한 예언이 호세아와 에스겔을 통해서도 주어졌었다(호 3:5; 겔 34:23-24). 메시아께서는 다윗의 자손으로 오실 것이다.

[10절] 그러므로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 종 야곱아 두려워 . . . .

예레미야는 또 말한다. “그러므로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 종 야곱아, 두려워 말라. 이스라엘아, 놀라지 말라. 내가 너를 원방에서 구원하고 네 자손을 포로된 땅에서 구원하리니 야곱이 돌아와서 태평과 안락을 얻을 것이라. 너를 두렵게 할 자 없으리라.” 하나님께서는 자기 종 이스라엘을 구원하실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은 지금 이방인의 땅에서 두려워하며 살고 있지만, 그들을 두려워 말고 놀라지 말아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원방에서, 포로된 땅에서 구원하실 것이며 그들은 태평과 안락, 즉 평안함을 얻을 것이며 그들을 두렵게 할 자가 아무도 없을 것이다. 구원의 결과는 평안일 것이다.

[11절]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가 너와 함께하여 너를 . . . .

예레미야는 또 말한다.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가 너와 함께하여 너를 구원할 것이라. 내가 너를 흩었던 그 열방은 진멸(殄滅)한다 할지라도 너는 진멸하지 아니하리라. 그러나 내가 공도(公道)로 너를 징책할 것이요 결코 무죄한 자로 여기지 아니하리라.” 하나님께서 구원하시고자 하시면 죄인은 구원을 받을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구주이시다(딛 1:3).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멸망시켰던 바벨론 나라는 완전히 멸망시키실 것이나 이스라엘은 완전히 멸망시키지 않으실 것이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과 이방인들을 구별하실 것이다. 여기에 이스라엘 백성에 대한 하나님의 특별한 사랑이 있다. 여기에 선택의 진리가 있다. 선택의 진리는 성경 진리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을 공도(公道)로, 즉 공의로 징책하실 것이요 결코 무죄(無罪)한 자로 여기지 않으실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의 죄악을 엄중히 징벌하실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죄를 매우 미워하신다. 죄 때문에 지옥이 있다. 우리의 죄 때문에 구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죽으셨다. 우리의 구원은 하나님의 의로우신 방법으로 이루어졌다.

본문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우리는 우리의 구원의 기초가 되는 하나님의 선택의 사랑을 감사하자. 택자들을 향하신 하나님의 사랑은 우리의 구원의 기초이다. 우리는 그 하나님의 사랑을 감사하자.

둘째로, 구원받은 우리는 이제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를 힘써 섬기며 평안을 누리자. 구원받은 성도의 첫 번째 복은 평강이다. 평강의 주께서는 친히 때마다 일마다 우리에게 평강을 주신다(살후 3:16).

셋째로, 우리는 완전한 회복과 충만한 평안의 세계인 천국을 사모하자. 성경은 만유의 회복의 때에 대해 말한다(행 3:20-21; 계 21:5). 우리는 완전한 회복과 충만한 평안의 세계인 천국을 사모하자.

넷째로, 우리는 하나님의 모든 계명을 힘써 지키고 죄를 멀리하자. 하나님의 공의는 변함이 없다. 예수 믿어도 범죄하면 하나님의 징계가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계명을 힘써 지키고 죄를 멀리하자.

 

12-24절, 내가 너를 치료하리라

[12-15절]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네 상처는 고칠 수 없고 . . . .

예레미야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한다.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네 상처는 고칠 수 없고 네 창상은 중하도다. 네 송사를 변호할 자가 없고 네 상처를 싸맬 약이 없도다. 너를 사랑하던 자가 다 너를 잊고 찾지 아니하니 이는 네 허물이 크고 네 죄가 수다(數多)함을 인하여 내가 대적의 상하게 하는 그것으로 너를 상하게 하며 잔학한 자의 징계하는 그것으로 너를 징계함이어늘 어찌하여 네 상처를 인하여 부르짖느뇨? 네 고통이 낫지 못하리라. 네 죄악의 큼과 죄의 수다(數多)함을 인하여 내가 네게 이 일을 행하였느니라.”

이 말씀은 이스라엘 백성이 그들의 크고 많은 허물과 죄악 때문에 하나님의 징벌을 받아 고칠 수 없는 상처, 치료할 약이 없는 상처를 입었음을 증거한다. 이것은 그들이 지금 처한 상황이었고 다 하나님께서 내리신 징벌이었다. 하나님께서는 “네 죄악의 큼과 죄의 수다함을 인하여 내가 네게 이 일을 행하였느니라”고 말씀하셨다. 사람이 하나님의 계명을 어기고 죄를 지으면 하나님께서 징벌하신다.

[16-17절] 그러나 무릇 너를 먹는 자는 먹히며 무릇 너를 치는 . . . .

하나님께서는 또 말씀하신다. “그러나[그러므로] 무릇 너를 먹는 자는 먹히며 무릇 너를 치는 자는 다 포로가 되며 너를 탈취하는 자는 탈취를 당하며 무릇 너를 약탈하는 자는 내가 그로 약탈을 당하게 하리라.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그들이 쫓겨난 자라 하며 찾는 자가 없는 시온이라 한즉 내가 너를 치료하여 네 상처를 낫게 하리라[너를 건강하도록 회복시키며 네 상처를 치료하리라](원문직역).”

16절 초두에 ‘그러나’라는 원어(라켄)는 ‘그러므로’라는 말이다(BDB, KJV, NASB). 이것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징벌하셨듯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멸망시켰던 이방 나라를 멸망시키시고 이스라엘을 치료하시고 회복시키실 것이라는 뜻이라고 보인다.

[18-22절]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보라, 내가 포로된 야곱의 . . . .

하나님께서는 또 말씀하신다.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보라, 내가 포로된 야곱의 장막들을 돌이키고 그 거하는 곳들을 긍휼히 여길 것이라. 그 성읍은 자기 산()[무더기, 폐허](BDB, KJV, NASB)에 중건될 것이요 그 궁궐은 본래대로 거하는 곳이 될 것이며 감사하는 소리와 즐거워하는 자의 목소리가 그 중에서 나오리라. 내가 그들을 번성케 하리니 쇠잔치 아니하겠고 내가 그들을 영화롭게 하리니 비천하지 아니하겠으며 그 자손은 여전하겠고 그 회중은 내 앞에 굳게 설 것이며 무릇 그를 압박하는 자는 내가 다 벌하리라. 그 왕(앗디르)[귀인]은 그 본족에게서 날 것이요 그 통치자는 그들 중에서 나올 것이며 내가 그를 가까이 오게 하므로 그가 내게 접근하리라. 그렇지 않고 담대히 내게 접근할 자가 누구뇨? 여호와의 말이니라. 너희는 내 백성이 되겠고 나는 너희 하나님이 되리라.”

본문은 주권적 섭리자이신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회복시키실 것을 예언한다. 18절, “내가 포로된 야곱의 장막들을 돌이키고 그 거하는 곳들을 긍휼히 여길 것이라.” 19절, “내가 그들을 번성케 하리니 . . . 내가 그들을 영화롭게 하리니.” 20절, “내가 다 벌하리라.” 21절, “내가 그를 가까이 오게 하므로 그가 내게 접근하리라.”

이스라엘의 집들과 성읍들이 회복될 것이다. 18절, “내가 포로된 야곱의 장막들을 돌이키고 그 거하는 곳들을 긍휼히 여길 것이라. 그 성읍은 자기 산에[그 무더기 위에, 그 폐허 위에] 중건될 것이요 그 궁궐은 본래대로 거하는 곳이 될 것이며.” 이 예언은 이스라엘의 포로 귀환과 예루살렘 성전 건립과 성곽 건립을 통해 이루어졌다. 그러나 장차 새 예루살렘의 건립에서 완전하게 이루어질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은 또한 감사와 즐거움이 넘치게 될 것이다. 19절, “감사하는 소리와 즐거워하는 자의 목소리가 그 중에서 나오리라.” 구원받은 신약교인들에게는 감사와 기쁨이 있다. 데살로니가전서 5:16, 18, “항상 기뻐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성령의 열매 중에는 희락[기쁨]이 있다(갈 5:22). 로마서 14:17은 “하나님의 나라는 성령 안에서 의와 평강과 희락이라”고 말하였다. 요한계시록 21:4는 천국에서 눈물과 사망과 슬픔과 아픈 것이 없을 것이라고 증거한다.

이스라엘 백성은 또 번영과 영광을 누릴 것이다. 19절, “내가 그들을 번성케 하리니 쇠잔치 아니하겠고 내가 그들을 영화롭게 하리니 비천하지 아니하겠으며.” 이 예언도 천국에서 완전하게 이루어질 것이다. 로마서 8:18,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도다.” 요한계시록 21:10-11, “성령으로 나를 데리고 크고 높은 산으로 올라가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는 거룩한 성 예루살렘을 보이니 하나님의 영광이 있으매 그 성의 빛이 지극히 귀한 보석 같고 벽옥과 수정같이 맑더라.”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과 밀접한 관계를 가지게 될 것이다. 20절, “그 회중은 내 앞에 굳게 설 것이며.” 21절, “내가 그를 가까이 오게 하므로 그가 내게 접근하리라. 그렇지 않고 담대히 내게 접근할 자가 누구뇨?” 22절, “너희는 내 백성이 되겠고 나는 너희 하나님이 되리라.” 히브리서 4:16, “그러므로 우리가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 히브리서 10:19,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예수의 피를 힘입어 성소에 들어갈 담력을 얻었나니.” 요한계시록 21:3, “내가 들으니 보좌에서 큰 음성이 나서 가로되 보라, 하나님의 장막이 사람들과 함께 있으매 하나님이 저희와 함께 거하시리니 저희는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하나님은 친히 저희와 함께 계셔서.”

[23-24절] 보라, 여호와의 노가 발하여 폭풍과 회리바람처럼 . . . .

예레미야는 하나님의 말씀을 또 전한다. “보라, 여호와의 노가 발하여 폭풍과 회리바람처럼 악인의 머리를 칠 것이라. 나 여호와의 진노는 내 마음의 뜻한 바를 행하여 이루기까지는 쉬지 아니하나니 너희가 말일에 그것을 깨달으리라.” 이 말씀은 이스라엘의 악인들뿐 아니라 이스라엘을 멸망시켰던 바벨론에게 하시는 말씀이라고 본다. 하나님께서는 마지막 날에 악인들을 엄하게 징벌하실 것이다.

본문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이스라엘 나라의 회복은 하나님의 긍휼로만 가능하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징벌하셨고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회복시키실 것이다. 우리의 죄를 씻는 길은 하나님의 긍휼과 예수 그리스도의 피밖에 없다. 시편 49:8, “저희 생명의 구속(救贖)이 너무 귀하며 영영히 못할 것임이라.” 우리는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 공로 즉 그의 대속사역으로 죄씻음과 구원을 얻었다. 베드로전서 1:18-19, “너희가 알거니와 너희 조상의 유전한 망령된 행실에서 구속(救贖)된 것은 은이나 금같이 없어질 것으로 한 것이 아니요 오직 흠 없고 점 없는 어린양 같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한 것이니라.”

둘째로, 우리는 하나님의 구원을 항상 기뻐하며 감사하자. 이스라엘의 회복의 예언은 이미 성취되기 시작하였고 장차 천국에서 완성될 것이다. 그러므로 신약 성도는 항상 기뻐하며 범사에 감사한다. 이것이 하나님의 뜻이다(살전 5:16, 18). 우리는 천국의 영광을 사모하고 소망하면서 하나님께서 주신 이 큰 구원을 항상 기뻐하며 감사하자.

셋째로, 우리는 이제 범죄하지 말자.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을 믿음으로 죄사함과 의롭다 하심을 얻었으므로 이제는 범죄치 말자. 로마서 6:12-13, “그러므로 너희는 죄로 너희 죽을 몸에 왕노릇하지 못하게 하여 몸의 사욕을 순종치 말고 또한 너희 지체를 불의의 병기로 죄에게 드리지 말고 오직 너희 자신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산 자같이 하나님께 드리며 너희 지체를 의의 병기로 하나님께 드리라.”

 

 

31장: 새 언약

1-14절, 내가 모으리라

[1-3절]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그때에 내가 이스라엘 모든 . . . .

하나님께서는 말씀하신다.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그때에 내가 이스라엘 모든 가족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내 백성이 되리라. 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칼에서 벗어난 백성이 광야에서 은혜를 얻었나니 곧 내가 이스라엘로 안식을 얻게 하러 갈 때에라.” 멸망한 이스라엘 나라가 회복될 때에는 하나님과 그들의 관계가 회복될 것이다. 그때에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모든 가족의 하나님이 되시고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이 될 것이다. 2절은 번역상 어려움이 있지만, “이스라엘이 안식을 얻으러 갈 때 칼에서 벗어난 그 백성이 광야에서 은혜를 얻었도다”라는 뜻 같다(NASB).5) 하나님께서는 바벨론의 칼을 모면한 남은 이스라엘에게 은혜를 주셨고 안식을 주실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또, “나 여호와가 옛적에 이스라엘에게 나타나 이르기를 내가 무궁한 사랑으로 너를 사랑하는 고로 인자함으로 너를 인도하였다 하였노라”고 말씀하신다. 이스라엘의 회복은 그들의 많은 허물과 죄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무궁한 사랑과 인자하심 때문에 이루어질 것이다. 사람은 전적으로 부패한 존재이지만, 하나님의 무조건적이고 무한한 사랑과 자비 때문에 구원을 받고 영생을 얻는다.

[4-6절] 처녀 이스라엘아, 내가 다시 너를 세우리니 네가 . . . .

예레미야는 또 하나님의 말씀을 전한다. “처녀 이스라엘아, 내가 다시 너를 세우리니 네가 세움을 입을 것이요 네가 다시 소고(小鼓)로 너를 장식하고 즐거운 무리처럼 춤추며 나올 것이며 네가 다시 사마리아 산들에 포도원을 심되 심는 자가 심고 그 과실을 먹으리라.” 하나님께서는 멸망한 이스라엘을 다시 건립하시겠다고 말씀하신다. 이스라엘은 이전처럼 아름다워질 것이며 즐거움이 있고 먹을것이 풍성한 땅이 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또 말씀하신다. “에브라임 산 위에서 파수꾼이 외치는 날이 이를 것이라. 이르기를 너희는 일어나라. 우리가 시온에 올라가서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로 나아가자 하리라.” 파수꾼은 주의 종들을 가리킨다. 이스라엘 땅에 경건이 회복될 것이다. 주의 종들은 사람들에게 성전에 올라가 하나님을 섬기자고 권면할 것이다.

[7절] 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너희는 야곱을 위하여 . . . .

하나님께서는 또 말씀하신다. “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너희는 야곱을 위하여 기뻐 노래하며 만국의 머리된 자를 위하여 외쳐 전파하며 찬양하며 이르기를 여호와여, 주의 백성 이스라엘의 남은 자를 구원하소서 하라.” ‘만국의 머리된 자를 위하여’라는 원문(베로쉬 학고임)은 ‘만국의 머리된 자 가운데서’이며(MT, KJV), ‘만국의 머리된 자’는 이스라엘을 가리킨다고 본다. 하나님께서는 만국의 머리된 이스라엘의 남은 자들을 다 구원하실 것이다. 하나님의 백성은 하나님의 구원을 기뻐하며 찬양할 것이다.

[8-9절] 보라, 내가 그들을 북편 땅에서 인도하며 . . . .

하나님께서는 말씀하신다. “보라, 내가 그들을 북편 땅에서 인도하며 땅끝[땅의 먼곳]에서부터 모으리니 그들 중에는 소경과 절뚝발이와 잉태한 여인과 해산하는 여인이 함께하여 큰 무리를 이루어 이곳으로 돌아오되 울며 올 것이며 그들이 나의 인도함을 입고 간구할 때에[간구함으로 내가 그들을 인도할 것이며] 내가 그들로 넘어지지 아니하고 하숫가의 바른 길로 행하게 하리라. 나는 이스라엘의 아비요 에브라임은 나의 장자니라.”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의 남은 자들을 북편 땅에서 인도하시며 땅끝에서부터 모으실 것이다. 그들은 앗수르와 바벨론에 끌려가 온 땅에 흩어졌었으나 하나님께서 그들을 고국으로 돌아오게 하실 것이다. 소경과 절뚝발이같이 몸이 불편한 자들도 귀환 행렬에 있을 것이며 임신하여 몸이 무거운 여인들이나 해산하여 몸이 불편한 자들도 함께할 것이다. 그들은 다 구원의 행렬에 참여할 것이다.

그들은 큰 무리를 이루어 울면서 돌아올 것이다. 그 울음은 회개와 감사 감격의 눈물일 것이다. 그것은 하나님의 은혜이다. 또 그들은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입고 하나님께 구원과 회복을 간구할 것이다. 기도는 하나님의 작정된 일을 이루는 과정이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좋은 것을 작정해두셨을지라도 우리는 그것을 위해 하나님께 간절히 소원하며 하나님의 선한 인도하심을 기도해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또 그들로 넘어지지 않고 하숫가의 바른 길로 행하게 인도하실 것이다. 하숫가의 바른 길은 목마를 염려가 없고 쉴 만한 그늘이 있는 ‘바른 길’ 곧 정로(正路, 데렉 야솨르)이다. 인생의 정로는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의 계명대로 사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나는 이스라엘의 아비요 에브라임은 나의 장자니라”고 말씀하신다. 하나님과 이스라엘의 바른 관계는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이다. 오늘날 하나님과 신약교회와의 관계도 그러하다. 구원받은 자들은 하나님의 자녀의 특권을 얻었다(요 1:12; 롬 8:15). 그들은 이제 성경의 교훈대로 경건하고 의롭게 살아야 한다.

[10-12절] 열방이여, 너희는 나 여호와의 말을 듣고 먼 섬에 . . . .

하나님께서는 또 말씀하신다. “열방이여, 너희는 나 여호와의 말을 듣고 먼 섬에 전파하여 이르기를 이스라엘을 흩으신 자가 그를 모으시고 목자가 그 양무리에게 행함같이 그를 지키시리로다. 여호와께서 야곱을 속량(贖良)하시되 그들보다 강한 자의 손에서 구속(救贖)하셨으니 그들이 와서 시온의 높은 곳에서 찬송하며 여호와의 은사(투브)[좋은 것들] 곧 곡식과 새 포도주와 기름과 어린양의 떼와 소의 떼에 모일 것[떼로 흐를 것]이라. 그 심령은 물댄 동산 같겠고 다시는 근심이 없으리로다 할지어다.”

이스라엘을 흩으신 자가 그들을 모으실 것이다. 또 그는 목자같이 그 백성을 지키실 것이다. 그는 이스라엘을 그들보다 강한 자의 손에서 구속(救贖)하셨다. 구원과 회복은 하나님께 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징벌하여 흩으셨으나 이제 그들을 다시 모으시며 구원하시며 인도하시며 안식을 주시며 세우실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원하시는 자들을 구원하실 수 있고 또 그들을 구원하실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좋은 것들을 주실 것이다. 곡식과 새 포도주와 기름과 어린양의 떼와 소의 떼로 흐른다는 원문의 표현은 그들이 먹을것을 풍성하게 얻을 것을 말한다. 그들의 심령은 물댄 동산같이 은혜와 기쁨과 즐거움이 풍성할 것이다.

[13-14절] 그때에 처녀는 춤추며 즐거워하겠고 청년과 노인이 . . . .

하나님께서는 또 말씀하신다. “그때에 처녀는 춤추며 즐거워하겠고 청년과 노인이 함께 즐거워하리니 내가 그들의 슬픔을 돌이켜 즐겁게 하며 그들을 위로하여 근심한 후에 기쁨을 얻게 할 것임이니라. 내가 기름으로[기름진 것으로] 제사장들의 심령에 흡족케 하며 내 은혜로[좋은 것들로] 내 백성에게 만족케 하리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하나님께서는 회복된 이스라엘에게 모든 좋은 것을 주셔서 기쁨과 즐거움을 얻게 하시고 만족함을 누리게 하실 것이며 근심과 걱정이 없고 슬픔도 없게 하실 것이다.

본문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하나님께서는 친히 이스라엘을 회복시키실 것이다. 4절, “내가 다시 너를 세우리니.” 8절, “내가 그들을 북편 땅에서 인도하며 땅끝에서 모으리라.” 10절, “이스라엘을 흩으신 자가 그를 모으시고.” 13절 “내가 그들의 슬픔을 돌이켜 즐겁게 하며.” 14절, “내가 기름진 것으로 제사장들의 심령에 흡족케 하며.” 이스라엘의 회복은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으로 신약교회 안에서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구원은 하나님께서 시작하시고 이루시는 일이다. 하나님께서는 구주이시다. 신약교인들은 이미 그 은혜를 누리고 있고 장차 주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으로 영광의 천국에서 충만히 누릴 것이다. 구원은 하나님의 일이며 우리는 그 일에 도구일 뿐이다.

둘째로, 하나님께서는 바른 길로 회복시키실 것이다. 9절, “[그들이] 울며 올 것이며 간구함으로 내가 그들을 인도할 것이며 내가 그들로 넘어지지 아니하고 하숫가의 바른 길로 행하게 하리라.” 하숫가의 바른 길은 목마를 염려가 없고 쉴 만한 그늘이 있는 길이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으로 회개하며 간구하며 바른 길로 행하게 하실 것이다. 구원은 정로(正路)의 회복이다. 그 길이 무엇인가?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의 모든 계명을 행하는 것이다. 신약적으로 말하면,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그의 계명대로 의롭고 선하게 사는 것이다. 구원받은 성도들은 바른 길 가야 한다. 그것은 하나님을 경외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성경의 교훈, 곧 하나님의 계명대로 의와 선을 행하는 것이다.

셋째로, 하나님께서는 자기 백성에게 기쁨과 만족을 주실 것이다. 12-14절 “그 심령은 물댄 동산 같겠고 다시는 근심이 없으리로다,” “그때에 처녀는 춤추며 즐거워하겠고 청년과 노인이 함께 즐거워하리니 내가 그들의 슬픔을 돌이켜 즐겁게 하며 그들을 위로하여 근심한 후에 기쁨을 얻게 할 것임이니라. 내가 기름진 것으로 제사장들의 심령에 흡족케 하며 내 은혜로 내 백성에게 만족케 하리라.” 신약 성도는 세상에서도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항상 기뻐하고 평안을 누린다. 물론 우리는 영광의 천국에서는 기쁨과 평안을 충만히 누릴 것이다.

 

15-22절, 네가 돌아오리라

[15-17절] 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라마에서 슬퍼하며 . . . .

하나님께서는 말씀하신다. “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라마에서 슬퍼하며 통곡하는 소리가 들리니 라헬이 그 자식을 위하여 애곡하는 것이라. 그가 자식이 없으므로 위로받기를 거절하는도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의 통곡을 베냐민 자손들의 눈물을 들어 표현하셨다. 라마는 베냐민 지파에 속한 마을이었다(수 18:25). 라헬은 요셉과 베냐민을 낳은 여인이다. 요셉에게서 에브라임과 므낫세가 나왔다. 라헬은 이스라엘의 여인들을 대표할 만하며, 에브라임과 므낫세, 또 베냐민은 이스라엘을 대표할 만하다. 이스라엘은 이미 멸망했고 유다는 멸망해가고 있었다. 많은 자녀들이 죽었고 포로되어 갔다. 그래서 이스라엘은 지금 슬퍼하며 통곡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슬퍼하는 그들을 위로하시고 그들에게 소망의 말씀을 주신다. “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네 소리를 금하여 울지 말며 네 눈을 금하여 눈물을 흘리지 말라. [이는](원문) 네 일에 갚음을 받을 것인즉 그들이 그 대적의 땅에서 돌아오리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너의 최후에[장래에](NASB) 소망이 있을 것이라. 너의 자녀가 자기들의 경내로 돌아오리라.”

하나님의 위로는 이스라엘의 자손들이 그 대적의 땅, 즉 앗수르와 바벨론의 땅에서 돌아오리라는 것이었다. 그들은 지금 이방 나라에서 고생을 하고 있지만, 장래에 소망이 있을 것이다. 그들은 장차 그 포로된 땅으로부터 고국 이스라엘로 돌아올 것이다. 이 얼마나 기쁜 일인가! 이것이 과연 일어날 것인가? 하나님께서 그렇다고 하신다.

[18-20절] 에브라임이 스스로 탄식함을 내가 정녕히 들었노니 . . . .

하나님께서는 또 이스라엘 백성이 자신들의 부족과 무능을 깊이 깨닫고 하나님의 회개시키시며 구원하시는 손길을 간구할 것이라고 예언하신다. “에브라임이 스스로 탄식함을 내가 정녕히 들었노니 이르기를 주께서 나를 징벌하시매 멍에에 익숙지 못한 송아지 같은 내가 징벌을 받았나이다. 주는 나의 하나님 여호와시니 나를 이끌어 돌이키소서. 그리하시면 내가 돌아오겠나이다. 내가 돌이킴을 받은 후에 뉘우쳤고 내가 교훈을 받은 후에 내 볼기를 쳤사오니 이는 어렸을 때의 치욕을 진 고로 부끄럽고 욕됨이니이다 하도다.”

이스라엘 백성은 자신들의 죄악 때문에 하나님께서 징벌하셨음을 깨닫고 탄식할 것이다. 이스라엘의 멸망과 이방의 포로생활은 하나님의 징벌이었다. 뿐만 아니라, 그들은 이스라엘의 역사가 실패의 역사임을 깨닫고 있다. 많은 선지자들이 하나님의 뜻을 전해주었고 회개하고 하나님께로 돌아올 것을 외쳤지만, 그들은 그들의 전한 말을 거절하였고 결국 멸망의 길로 가고 있었다. 그러나 이제 그들은 “나를 이끌어 돌이키소서. 그리하시면 내가 돌아오겠나이다. 내가 돌이킴을 받은 후에 뉘우쳤나이다”라고 고백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의 고백이 옳은 고백이라고 인정하신다. 그는 이스라엘의 포로 귀환을 그가 친히 시작하시고 주도하실 것을 선언하신다. “에브라임은 나의 사랑하는 아들 기뻐하는 자식이 아니냐? 내가 그를 책망하여 말할 때마다 깊이 생각하노라. 그러므로 그를 위하여 내 마음이 측은한즉 내가 반드시 그를 긍휼히 여기리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하나님께 회복과 구원의 능력이 있다. 그가 이스라엘을 긍휼히 여기시면 이스라엘은 회개하고 하나님께로 돌아올 것이다. 이스라엘 나라의 회복은 하나님의 긍휼에 근거할 것이다. 우리의 구원도 하나님의 긍휼에 근거한다.

이와 같이, 본문은 사람이 죄를 회개하고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것이 스스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님을 보인다. 사람은 전적으로 부패되고 무능력해졌기 때문에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고서는 아무도 스스로 회개하고 구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구원을 얻지 못할 것이다. 그러므로 사도행전 11:18에 보면, 하나님께서 베드로를 통해 이방인 고넬료와 그 가족들과 친지들을 구원하신 일을 들은 다른 사도들과 형제들은 잠잠히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그러면 하나님께서 이방인에게도 생명 얻는 회개를 주셨도다”라고 말하였다. 회개와 믿음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은혜이다. 구원은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이다.

또 예수께서도 “아버지께서 내게 주시는 자는 다 내게로 올 것이요 내게 오는 자는 내가 결코 내어쫓지 아니하리라”고 말씀하셨고(요 6:37) 또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이끌지 아니하면 아무라도 내게 올 수 없으니 오는 그를 내가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리라”고 하셨다(요 6:44). 하나님께서 은혜 주시지 않으면 아무도 구원을 받을 수 없을 것이다. 구원은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된다(엡 2:8).

[21-22절] 처녀 이스라엘아, 너를 위하여 길표를 세우며 너를 . . . .

하나님께서는 또 말씀하신다. “처녀 이스라엘아, 너를 위하여 길표를 세우며 너를 위하여 표목을 만들고 대로(大路) 곧 네가 전에 가던 길에 착념하라. 돌아오라. 네 성읍들로 돌아오라. 패역한 딸아, 네가 어느 때까지 방황하겠느냐? [이는] 여호와가 새 일을 세상에 창조하였나니 곧 여자가 남자를 안으리라[안을 것임이니라].”

‘길표’와 ‘표목’은 고국으로 돌아가는 표지판이다. 이스라엘은 패역한 딸, 하나님을 저버리고 하나님을 거역하고 변절하였던 자들이었다. 그들은 지금 참된 경건도 평안도 없이 방황하고 있다. 그러나 그들은 이전에 가던 길 곧 하나님께서 명하신 정로(正路)에 착념해야 한다. 그것은 성경의 교훈, 곧 의롭고 선한 옛 길을 가리킬 것이다.

22절 하반절에 “이는 여호와가 새 일을 세상에 창조하였나니 곧 여자가 남자를 안을 것임이니라”는 말씀은 무슨 뜻인가? 이 구절에 대해 두 가지 해석이 있다. 첫째는 연약한 이스라엘이 강한 바벨론을 이긴다는 뜻으로 해석한다. 둘째는 처녀 마리아가 아기 예수를 잉태한다는 뜻으로 해석한다. 이스라엘의 회복은 바벨론으로부터의 포로귀환에 관계되기도 하지만 메시아 시대에 완전히 이루어질 것이다. 처녀 마리아가 하나님의 아들 예수를 잉태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행하신 새 일이다. 성육신은 하나님의 능력의 일이다. ‘남자’라는 원어(게베르)는 ‘아이’에게도 사용된 적이 있다(욥 3:3).

본문의 진리는 무엇인가? 첫째로, 하나님의 본심은 이스라엘을 벌하시는 것이 아니고 구원하시는 것이다. 20절, “에브라임은 나의 사랑하는 아들 기뻐하는 자식이 아니냐? 내가 그를 책망하여 말할 때마다 깊이 생각하노라. 그러므로 그를 위하여 내 마음이 측은한즉 내가 반드시 그를 긍휼히 여기리라.” 이스라엘 백성이 돌아오는 것은 하나님의 긍휼에 근거한다. 우리의 구원도 하나님의 긍휼에 근거한다.

둘째로, 구원은 하나님께서 시작하시고 이루시는 일이다. 18-19절, “주는 나의 하나님 여호와시니 나를 이끌어 돌이키소서. 그리하시면 내가 돌아오겠나이다. 내가 돌이킴을 받은 후에 뉘우쳤나이다.” 구원은 사람이 하는 일이 아니고,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 곧 그가 시작하시고 이루시는 일이다. 그러므로 하나님께 감사하며 하나님만 의지하자.

셋째로, 죄인들은 하나님께 돌아와야 하고 천국길에만 착념해야 한다. 21절, “처녀 이스라엘아, 너를 위하여 길표를 세우며 너를 위하여 표목을 만들고 대로(大路) 곧 네가 전에 가던 길에 착념하라. 돌아오라. 네 성읍들로 돌아오라.” 이스라엘의 포로 귀환은 단순히 유대 땅으로 돌아오는 의미만 있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께 돌아오고 하나님의 계명을 순종하는 길로 돌아오는 의미가 있다. 그것이 진정한 귀환이다. 그렇지 않다면, 이스라엘은 또 다시 죄악된 역사와 징벌과 멸망의 역사를 반복할 것이다. 이것은 신약시대의 구원을 예표한다. 죄인들은 하나님께로 돌아와야 하고 이제는 의의 길, 천국길에만 착념해야 한다.

 

23-30절, 내가 경성하여 세우리라

[23절] 나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이같이 말하노라. . . .

예레미야는 또 하나님의 말씀을 전한다. “나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이같이 말하노라. 내가 그 사로잡힌 자를 돌아오게 할 때에 그들이 유다 땅과 그 성읍들에서 다시 이 말을 쓰리니 곧 의로운 처소여, 거룩한 산이여, 여호와께서 네게 복 주시기를 원하노라 할 것이며.”

유다 땅과 그 성읍들은 심히 죄악되었다. 이사야는 1:21은, “신실하던 성읍이 어찌하여 창기가 되었는고. 공평이 거기 충만하였고 의리가 그 가운데 거하였었더니 이제는 살인자들뿐이었도다”라고 말하였다. 예레미야 5:1, 30-31도, “너희는 예루살렘 거리로 빨리 왕래하며 그 넓은 거리에서 찾아보고 알라. 너희가 만일 공의를 행하며 진리를 구하는 자를 한 사람이라도 찾으면 내가 이 성(城)을 사하리라,” “이 땅에 기괴하고 놀라운 일이 있도다. 선지자들은 거짓을 예언하며 제사장들은 자기 권력으로 다스리며 내 백성은 그것을 좋게 여기니 그 결국에는 너희가 어찌 하려느냐?”고 말하였다. 

이렇게 죄악된 땅과 성읍들이, 하나님께서 그 사로잡힌 자를 돌아오게 하실 때 회복될 것이다. 그때 그곳은 다시 의로운 처소와 거룩한 산이라고 불릴 것이다. 그것은 종교적, 도덕적 갱신이 일어날 것을 보인 말씀이다. 그곳은 다시 하나님께 복받은 땅과 성이 될 것이다. 이방세계와 같이 변질되었던, 아니 이방세계보다 더 타락했던 구약교회가 다시 회복되며 거룩한 교회가 될 것이다.

그것은 참된 신약교회에서 이루어지고 장차 천국에서 완성될 것이다. 신약교회는 하나님의 거룩하고 영광스런 교회로 작정되었다. 에베소서 5:26-27, “이는 곧 물로 씻어 말씀으로 깨끗하게 하사 거룩하게 하시고 자기 앞에 영광스러운 교회로 세우사 티나 주름잡힌 것이나 이런 것들이 없이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려 하심이니라.” 그러므로 신약교회는 이제 죄와 불경건을 다 버리고 오직 하나님만 섬기며 성경말씀대로 순종하는 거룩하고 의로운 교회가 되어야 한다.

[24-26절] 유다와 그 모든 성읍의 농부와 양떼를 인도하는 . . . .

하나님께서는 또 말씀하셨다. “유다와 그 모든 성읍의 농부와 양떼를 인도하는 자가 거기 함께 거하리니. 이는 내가 그 피곤한 심령을 만족케 하며 무릇 슬픈 심령을 상쾌케 하였음이니라 하시기로 내가 깨어보니 내 잠이 달았더라.”

다시 회복될 유다 땅과 성읍들에는 농부들과 양떼를 인도하는 자들이 함께 거할 것이다. 그 땅에 농사짓고 목축하는 평화로운 일상생활이 있을 것이다. 물질적 유여함이 있고 전쟁의 불안이 없을 것이다. 또 그런 일은 하나님께서 피곤한 심령을 만족케 하시며 슬픈 심령을 상쾌케 하셨기 때문에 이루어질 것이다. 심령의 회복이다. 죄와 징벌로 인해 슬프고 피곤해진 심령이 평안과 기쁨을 얻게 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평강과 기쁨의 날을 주실 것이다.

주 예수께서는 참 평안과 기쁨을 신약 성도들에게 은혜로 주셨다. 마태복음 11:28,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요한복음 14:27,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 갈라디아서 5:22,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빌립보서 4:4,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

예레미야는 이러한 하나님의 계시를 잠자는 중에, 아마 꿈속에서 받았다. 옛 시대에 하나님께서는 때때로 사람이 잠자는 중에, 꿈속에서 자신을 계시하셨다(민 12:6). 오늘날에는 더 이상 그럴 필요가 없으시다. 하나님께서는 오늘날 성경을 통해 말씀하시기 때문이다.

[27-28절]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보라 내가 사람의 씨와 . . . .

예레미야는 또 말한다.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보라, 내가 사람의 씨와 짐승의 씨를 이스라엘 집과 유다 집에 뿌릴 날이 이르리니 내가 경성하여 그들을 뽑으며 훼파하며 전복하며 멸하며 곤란케 하던 것 같이, 경성하여 그들을 세우며 심으리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이스라엘의 회복은 하나님께서 씨를 뿌리심으로 이루어질 것이다. 사람의 씨와 짐승의 씨를 뿌린다는 말씀은 사람과 짐승의 수적 번식과 번창을 가리킨다. 예수께서도 영혼 구원을 위한 전도를 씨 뿌리는 일로 비유하셨다(마 13장). 하나님께서 회복하시는 새 세계에는 구원받는 영혼들의 수가 심히 많을 것이다. 이것은 신약교회의 번창을 가리킬 것이다. 요한계시록 7:9, “이 일 후에 내가 보니 각 나라와 족속과 백성과 방언에서 아무라도 능히 셀 수 없는 큰 무리가 흰옷을 입고 손에 종려 가지를 들고 보좌 앞과 어린양 앞에 서서.”

하나님의 하시는 일은 요약하면 두 가지이다. 하나는 뽑고 파괴하시는 일이요, 다른 하나는 심고 건설하시는 일이다. 이 두 가지의 일은 하나님께서 선지자 예레미야에게 명하신 일이기도 하였다. 예레미야 1:10, “보라, 내가 오늘날 너를 열방 만국 위에 세우고 너로 뽑으며 파괴하며 파멸하며 넘어뜨리며, 건설하며 심게 하였느니라.” 죄와 악은 부서져야 한다. 악을 포용하거나 그것을 두둔하거나 모방하는 것은 그 자체가 악이다. 악은 징벌을 받아야 한다. 예루살렘 성은 죄악으로 인해 완전히 멸망할 것이다. 유다 백성은 그들의 많은 죄로 인하여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가는 수욕을 당할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의인들과 선인들을 심으시고 세우실 것이다. 그것이 그의 회복 운동, 구원 운동이다. 그는 이스라엘 백성을 바벨론 포로 생활로부터 구원하실 것이다. 그는 참 교회를 세우실 것이다. 그것이 신약교회 운동이다. 또 이 복음이 온 세계에 전파될 것이다. 세계복음화는 하나님의 뜻이다. 마침내 영광스런 천국이 올 것이다. 이 모든 일은 다 주권적 구원자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일이다.

[29-30절] 그때에 그들이 다시는 이르기를 아비가 신 포도를 . . . .

예레미야는 또 말한다. “그때에 그들이 다시는 이르기를 아비가 신 포도를 먹었으므로 아들들의 이가 시다 하지 아니하겠고 신 포도를 먹는 자마다 그 이가 심같이 각기 자기 죄악으로만 죽으리라.”

이전에 이스라엘 자손들은 부모들 때문에, 조상들 때문에 바벨론에서 포로생활을 해야 하였다. 그들은 아버지가 신 포도를 먹었으므로 아들들의 이가 시리다고 말했었다. 그러나 이제 하나님께서 그들을 포로생활로부터 건져주셨고 고국으로 돌아오게 하실 것이며 그들에게 자유를 주시고 의와 평안도 주실 것이다. 그러므로 아버지가 신 포도를 먹었으므로 아들들의 이가 시리다는 말을 더 이상 할 것이 없을 것이다. 각 사람은 자기 죄악으로만 죽을 것이다. 그러나 각 사람에게 도덕적 책임이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그 사로잡혔던 자들을 돌아오게 하실 것이며 경성하여 그들을 세우시고 심으실 것이다. 그는 이스라엘을 세우실 것이다. 그는 그들로 종교적, 도덕적 갱신을 누리게 하실 것이다. 예루살렘은 다시 의로운 성읍, 거룩한 산이라고 불릴 것이다. 그는 그들로 농사와 목축 같은 평화로운 생활을 하게 하실 것이며 그들로 심령의 평안과 기쁨을 얻게 하실 것이다. 그들의 수효도 많아질 것이다.

신약성도인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의와 거룩으로 옷 입고 이제는 즐거이 하나님만 섬기며 계명만 순종하며 의와 거룩의 길을 걷자. 또 심령의 평안과 기쁨을 누리며 물질적 여유와 환경적 평안도 누리자. 또 수적인 증가, 즉 구원의 역사가 일어남을 보자. 자유를 누리자. 그러나 그 자유로 죄를 짓는 데 쓰지 말고 경건과 의와 선을 실천하자.

 

31-40절, 내가 새 언약을 세우리라

[31-32절]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보라 날이 이르리니 내가 . . . .

하나님께서는 또 말씀하신다.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보라, 날이 이르리니 내가 이스라엘 집과 유다 집에 새 언약을 세우리라.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이 언약은 내가 그들의 열조의 손을 잡고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던 날에 세운 것과 같지 아니할 것은 내가 그들의 남편이 되었어도 그들이 내 언약을 파하였음이니라.”

하나님께서는 날이 이르면 내가 이스라엘 집과 유다 집에 새 언약을 세우리라고 말씀하셨다. 그가 말씀하신 날은 메시아의 시대 곧 신약시대를 가리킨다.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마지막 유월절 저녁식사를 하실 때 포도즙을 나누시면서 “이 잔은 내 피로 세우는 새 언약이니 곧 너희를 위하여 붓는 것이라”고 말씀하셨다(눅 22:20). 그것이 성찬식의 시작이었다. 신약교회의 성찬식은 새 언약의 표시이었다. 고린도후서 3장과 히브리서 8장은 옛 언약(구약)과 새 언약(신약)에 대해 증거한다. 새 언약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집과 유다 집에 세우실 언약이다. 그것은 옛 언약의 갱신이었으나 이방인들이 편입되는 언약이었다. 에베소서 3:6은, 이방인들이 하나님의 복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후사가 되고 함께 지체가 되고 함께 약속에 참여하는 자가 된다고 증거하였다.

옛 언약은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서 나와서 시내산에서 하나님과 맺었던 언약이었다. 출애굽기 24:7-8에 보면, 하나님께서 시내산에서 주셨던 언약의 말씀을 책에 써서 백성에게 낭독하여 들렸을 때 그들은 “여호와의 모든 말씀을 우리가 준행하리이다”라고 말했고 모세는 제물의 피를 취하여 백성에게 뿌리며 “이는 여호와께서 이 모든 말씀에 대하여 너희와 세우신 언약의 피니라”고 말하였다. 또 이스라엘 백성은 광야 생활 40년을 지난 후 모압 평지에서 그 언약을 갱신했었다(신 29:10-13).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은 가나안 땅에 정착한 후 반복해서 하나님의 언약을 어겼고 그 언약을 파하였다.

[33-34절]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그러나 그 날 후에 내가 . . . .

하나님께서는 또 말씀하신다.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그러나 그 날 후에 내가 이스라엘 집에 세울 언약은 이러하니 곧 내가 나의 법을 그들의 속에 두며 그 마음에 기록하여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내 백성이 될 것이라. 그들이 다시는 각기 이웃과 형제를 가리켜 이르기를 너는 여호와를 알라 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작은 자로부터 큰 자까지 다 나를 앎이니라. 내가 그들의 죄악을 사하고 다시는 그 죄를 기억지 아니하리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새 언약은 몇 가지 특징을 가진다. 첫째로, 새 언약 아래서는 하나님의 법이 사람들의 마음에 기록될 것이다. 옛 언약에서는 하나님의 법이 돌판에 기록되었었다. 그때에는 이스라엘 백성이 마음의 할례를 받지 못하여 항상 하나님을 거역하였었다. 그러나 새 언약 때에는 하나님께서 그의 법을 그들의 마음에 기록하실 것이다. 이것은 신약 성도들이 누리는 중생(重生)과 성령의 내주(內住)하심을 가리켰다고 본다. 죽었던 영혼이 다시 살며 마음이 새롭게 될 것이다.

둘째로,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 간의 특별한 관계가 형성될 것이다. 전에는 그들의 범죄함으로 이 관계가 깨어졌었으나 이제는 하나님께서 그들의 하나님이 되시고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이 될 것이다.

셋째로, 사람들 속에 하나님의 지식이 충만할 것이다. 어른들뿐 아니라 어린아이들도 하나님을 알 것이다. 과연 신약 시대에는 우리의 어린 자녀들도 하나님과 주 예수 그리스도를 알고 그를 믿고 그를 찬양하며 경배하며 섬긴다.

넷째로, 죄인들에게 영원한 죄사함이 있을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죄를 기억하지도 않으실 것이다. 이것은 에스겔과 다니엘도 예언한 바이었다. 에스겔 36:25, “맑은 물로 너희에게 뿌려서 너희로 정결케 하되 곧 너희 모든 더러운 것에서와 모든 우상을 섬김에서 너희를 정결케 할 것이며.” 다니엘 9:24, “네 백성과 네 거룩한 성을 위하여 칠십 이레로 기한을 정하였나니 허물이 마치며 죄가 끝나며 죄악이 영속(永贖)되며 영원한 의(義)가 드러나며 이상과 예언이 응하며 또 지극히 거룩한 자가 기름부음을 받으리라.” 이것은 신약의 성도들이 누리는 사죄(赦罪)와 칭의(稱義)의 은혜이다.

[35-37절] 나 여호와는 해를 낮의 빛으로 주었고 달과 별들을 . . . .

하나님께서는 또 말씀하신다. “나 여호와는 해를 낮의 빛으로 주었고 달과 별들을 밤의 빛으로 규정하였고 바다를 격동시켜 그 파도로 소리치게 하나니 내 이름은 만군의 여호와니라. 내가 말하노라. 이 규정이 내 앞에서 폐할진대 이스라엘 자손도 내 앞에서 폐함을 입어 영영히 나라가 되지 못하리라. 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위로 하늘을 측량할 수 있으며 아래로 땅의 기초를 탐지할 수 있다면 내가 이스라엘 자손의 행한 모든 일을 인하여 그들을 다 버리리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을 영영히 버리지 않으실 것이다. 해와 달과 별들의 법칙이 폐하여진다면 이스라엘도 폐해질지 모르나 그것들의 법칙이 폐하여지지 않듯이 이스라엘 나라는 하나님 앞에서 폐하여지지 않을 것이다. 또 우리가 만일 하늘을 측량하고 땅의 기초를 탐지할 수 있다면,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의 행한 악행들 때문에 그들을 버리실지 모르나, 우리가 하늘을 측량할 수 없고 땅의 기초를 탐지할 수 없듯이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악행 때문에 그들을 버리지 않으실 것이다.

신약성경도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버리지 않으실 것을 암시한다. 로마서 11:1, “그러므로 내가 말하노니 하나님이 자기 백성을 버리셨느뇨? 그럴 수 없느니라.” 로마서 11:11-12, “그러므로 내가 말하노니 저희가 넘어지기까지 실족하였느뇨? 그럴 수 없느니라. 저희의 넘어짐으로 구원이 이방인에게 이르러 이스라엘로 시기나게 함이니라. 저희의 넘어짐이 세상의 부요함이 되며 저희의 실패가 이방인의 부요함이 되거든 하물며 저희의 충만함이리요.” 로마서 11:15, “저희를 버리는 것이 세상의 화목이 되거든 그 받아들이는 것이 죽은 자 가운데서 사는 것이 아니면 무엇이리요.” 로마서 11:25-27, “형제들아, 너희가 스스로 지혜 있다 함을 면키 위하여 이 비밀을 너희가 모르기를 내가 원치 아니하노니 이 비밀은 이방인의 충만한 수가 들어오기까지 이스라엘의 더러는 완악하게 된 것이라. 그리하여 온 이스라엘이 구원을 얻으리라. 기록된 바 구원자가 시온에서 오사 야곱에게서 경건치 않은 것을 돌이키시겠고 내가 저희 죄를 없이 할 때에 저희에게 이루어질 내 언약이 이것이라 함과 같으니라.”

[38절]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보라, 날이 이르리니 이 성을 . . . .

하나님께서는 또 말씀하신다.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보라, 날이 이르리니 이 성을 하나넬 망대에서부터 모퉁이 문까지 여호와를 위하여 건축할 것이라. 측량줄이 곧게 가렙산에 이르고 고아 방면으로 돌아 시체와 재의 골짜기와 기드론 시내에 이르는 데까지와 동편 말문 모퉁이에 이르기까지의 모든 밭에 이르리니 다 여호와의 성지가 되고 영영히 다시는 뽑히거나 전복되지 아니하리라.”

하나넬 망대나 모퉁이 문은 예루살렘 성의 북쪽에 있다. 시체와 재의 골짜기는 예루살렘 성의 서남쪽에 있는 힌놈의 아들의 골짜기를 가리킨다. 예루살렘은 과거에 죄인들이 가득한 성이었지만, 앞으로는 거룩한 곳이 될 것이다. 예루살렘 모든 지경이 여호와의 성지(聖地)가 될 것이다. 그 성은 다시는 뽑혀 버린 바 되지 않을 것이다.

이 예언은 부분적으로 바벨론 포로 생활에서 돌아온 후 예루살렘 성을 재건하는 일에서 성취되었지만 아직 불완전하였다. 여기의 이 예언의 완전한 성취는 신약 시대에 이루어질 새 예루살렘 성의 모습에서이다. 요한계시록 21:12, 24, 26은 거룩한 새 예루살렘 성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크고 높은 성곽이 있고 열두 문이 있는데 문에 열두 천사가 있고 그 문들 위에 이름을 썼으니 이스라엘 자손 열두 지파의 이름들이라,” “만국이 그 빛 가운데로 다니고 땅의 왕들이 자기 영광을 가지고 그리로 들어오리라,” “사람들이 만국의 영광과 존귀를 가지고 그리로 들어오겠고.” 새 예루살렘 성은 거룩하고 영광스러운 성이며, 영원히 뽑혀 버림을 당하지 않을 것이다.

새 언약의 특징은 네 가지이다. 첫째로, 하나님께서 그의 법을 그들의 마음에 기록하실 것이다. 이것은 신약 성도가 받은 중생의 은혜와 성령의 내주(內住)하심이라고 본다. 디도서 3:5, “우리를 구원하시되 우리의 행한 바 의로운 행위로 말미암지 아니하고 오직 그의 긍휼하심을 좇아 중생의 씻음과 성령의 새롭게 하심으로 하셨나니.”

둘째로, 하나님은 그들의 하나님이 되시고 그들은 그의 백성이 될 것이다. 이것은 신약 성도가 얻은 하나님의 자녀의 특권이라고 본다. 요한복음 1:12,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로마서 8:15, “너희는 다시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아니하였고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아바 아버지라 부르짖느니라.” 셋째로, 작은 자로부터 큰 자까지 다 하나님을 알 것이다. 물이 바다를 덮음같이 여호와를 아는 지식이 세상에 충만할 것이다(사 11:9). 아이들도 하나님을 알 것이다. 넷째로, 영원한 사죄(私罪)가 있을 것이다. 히브리서 10:10, 14, “예수 그리스도의 몸을 단번에 드리심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거룩함을 얻었노라,” “저가 한 제물로 거룩하게 된 자들을 영원히 온전케 하셨느니라.” 신약 성도들은 새 언약에 참여하였다. 이제 우리는 이 새 언약의 특권을 누리며 살아간다.

 

 

32장: 이스라엘의 회복이 약속됨

1-35절, 예루살렘 성 멸망의 이유

[1-5절] 유다 왕 시드기야의 제10년 곧 느부갓네살의 . . . .

유다 왕 시드기야의 제10년 곧 느부갓네살의 제18년에 여호와의 말씀이 예레미야에게 임하였다. 그때에 바벨론 군대는 예루살렘을 에워싸고 예레미야는 유다 왕의 궁중에 있는 시위대 뜰에 갇혀 있었다. 그것은 그가 예언하기를, “여호와의 말씀에 보라, 내가 이 성을 바벨론 왕의 손에 붙이리니 그가 취할 것이며 유다 왕 시드기야는 갈대아인의 손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반드시 바벨론 왕의 손에 붙이운 바 되리니 입이 입을 대하여 말하고 눈이 서로 볼 것이며 그가 시드기야를 바벨론으로 끌어가리니 시드기야가 나의 권고할 때까지 거기 있으리라.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너희가 갈대아인과 싸울지라도 승리치 못하리라” 하였고, 유다 왕 시드기야는 “네가 어찌 이같이 예언하였느뇨?” 하고 그를 가두었기 때문이었다. 하나님의 참된 종들은 때때로 하나님의 진리를 전하고 하나님 앞에 충성하는 그 일 때문에 고난과 핍박을 받았고 또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6-15절] 예레미야가 가로되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 . . .

예레미야는 또 말한다.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하였느니라. 이르시기를 보라, 네 숙부 살룸의 아들 하나멜이 네게 와서 말하기를 너는 아나돗에 있는 내 밭을 사라. 이 기업을 무를 권리가 네게 있느니라 하리라 하시니라.” 여호와의 말씀대로 그의 숙부의 아들 하나멜이 시위대 뜰 안 그에게로 와서 말했다. “너는 베냐민 땅 아나돗에 있는 나의 밭을 사라. 기업의 상속권이 네게 있고 무를 권리가 네게 있으니 너를 위하여 사라.” 예레미야는 이것이 여호와의 말씀인 줄 알았으므로 그 숙부의 아들 하나멜의 아나돗에 있는 밭을 사는데 은 17세겔을 달아주며 증서를 써서 인봉하고 증인을 세우고 은을 저울에 달아주고 법과 규례[관습](KJV)대로 인봉하고 인봉치 아니한 매매증서를 취하였다.

그는 또 그의 숙부의 아들 하나멜과 매매증서에 인친 증인들 앞과 시위대 뜰에 앉은 유다 모든 사람들 앞에서 그 매매증서를 마세야의 손자 네리야의 아들 바룩에게 부치며 그들 앞에서 바룩에게 명하였다.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너는 이 증서 곧 인봉하고 인봉치 않은 매매증서를 취하여 토기에 담아 많은 날 동안 보존케 하라.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 내가 이같이 말하노라. 사람이 이 땅에서 집과 밭과 포도원을 다시 사게 되리라 하셨느니라.” 유다의 멸망 직전에 밭을 사는 것은 어리석은 일처럼 보이지만, 하나님께서는 이 일을 통해 장차 유다 땅에 회복의 때, 곧 토지매매가 다시 행해질 때가 올 것을 증거하셨다.

[16-25절] 내가 매매증서를 네리야의 아들 바룩에게 부친 후에 . . . .

예레미야는 매매증서를 네리야의 아들 바룩에게 부친 후 여호와께 기도하였다. “슬프도소이다, 주 여호와여. 주께서 큰 능과 드신 팔로 천지를 지으셨사오니 주에게는 능치 못한 일이 없으시니이다.” 천지 만물에 밝히 나타난 대로 창조자 하나님께서는 전능하신 하나님이시다. “주에게는 능치 못한 일이 없으시니이다”라는 원어는 “모든 일이 당신께는 놀랍지 아니하나이다”라는 뜻이다.

예레미야는 또 말한다. “주는 은혜(헤세드)[인자, 자비]를 천만인에게 베푸시며 아비의 죄악을 그 후 자손의 품에 갚으시오니 크고 능하신 하나님이시요 이름은 만군의 여호와시니이다. 주는 모략에 크시며 행사에 능하시며 인류의 모든 길에 주목하시며 그 길과 그 행위의 열매대로 보응하시나이다.” 하나님은 만인에게 자비를 베푸시는 하나님인 동시에 사람의 죄를 철저하게 보응하시는 두려우신 하나님이시다. 그는 ‘크시고 능하신 하나님’(하엘 학가돌 학깁보르)이시며 그의 이름은 ‘만군의 여호와’이시다. 그는 지혜와 모략에 뛰어나시며 능력으로 행하시며 사람들의 모든 길에 주목하시며 그 길과 행위를 살피시고 판단하시고 보응하신다.

예레미야는 또 말한다. “주께서 애굽 땅에서 징조와 기사로 행하셨고 오늘까지도 이스라엘과 외인 중에 그같이 행하사 주의 이름을 오늘과 같이 되게 하셨나이다. 주께서 징조와 기사와 강한 손과 드신 팔과 큰 두려움으로 주의 백성 이스라엘을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시고 그들에게 주시기로 그 열조에게 맹세하신 바 젖과 꿀이 흐르는 이 땅을 그들에게 주셨으므로 그들이 들어가서 이를 차지하였거늘 주의 목소리를 청종치 아니하며 주의 도에 행치 아니하며 무릇 주께서 행하라 명하신 일을 행치 아니하였으므로 주께서 이 모든 재앙을 그들에게 내리셨나이다. 보옵소서, 이 성을 취하려 하는 자가 와서 흉벽을 쌓았고 칼과 기근과 염병으로 인하여 이 성이 이를 치는 갈대아인의 손에 붙인 바 되었으니 주의 말씀대로 되었음을 주께서 보시나이다. 주 여호와여, 주께서 내게 은으로 밭을 사며 증인을 세우라 하셨으나 이 성은 갈대아인의 손에 붙인 바 되었나이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에서 나오게 하셨고 조상들에게 약속하신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을 주셨으나 그들이 그의 목소리를 듣지 않고 그의 교훈대로 행치 않으므로 그들이 지금 당하고 있는 이 모든 재앙을 내리셨다. 바벨론 군대는 성을 에워쌌고 그들은 칼과 기근과 염병으로 멸망을 당하게 되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훗날에 이스라엘 나라를 회복시키실 것이다(36-44절).

[26-35절] 때에 여호와의 말씀이 예레미야에게 임하여 . . . .

그때에 여호와의 말씀이 예레미야에게 임하였다. “나는 여호와요 모든 육체의 하나님이라. 내게 능치 못한 일이 있겠느냐?” 하나님께서는 영원자존하시고 모든 사람을 창조하신 자요 다스리시는 자이시다. “내게 능치 못한 일이 있겠느냐?”는 원어는 “모든 일이 내게 놀랍겠느냐?”라는 뜻이다.

하나님께서는 또 말씀하신다. “그러므로 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보라, 내가 이 성을 갈대아인의 손과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의 손에 붙일 것인즉 그가 취할 것이라. 이 성을 치는 갈대아인이 와서 이 성읍에 불을 놓아 성과 집 곧 그 지붕에서 바알에게 분향하며 다른 신들에게 전제를 드려 나를 격노케한 집들을 사르리라.” 하나님께서는 예루살렘 성을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의 손에 붙이실 것이며 바벨론 왕은 이 성을 정복하고 그 집들을 불사를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또 그 이유를 말씀하신다. “이는 이스라엘 자손과 유다 자손이 예로부터(민네우로시헴)[그들의 어릴 때부터] 내 목전에 악만 행하였음이라. 이스라엘 자손은 그 손으로 만든 것을 가지고 나를 격노케 한 것뿐이니라.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이 성이 건설된 날부터 오늘까지 나의 노와 분을 격발하므로[일으키므로] 내가 내 앞에서 그것을 옮기려 하노니 이는 이스라엘 자손과 유다 자손이 모든 악을 행하여 내 노를 격동하였음이라. 그들과 그들의 왕들과 그 방백들과 그 제사장들과 그 선지자들과 유다 사람들과 예루살렘 거민들이 다 그러하였느니라.”

예루살렘 성이 망하는 이유는 이스라엘 자손과 유다 자손이 하나님 앞에서 악만 행했기 때문이다. 그들의 악행들은 하나님의 노를 일으켰다. 그들 중 한 부류뿐 아니라 왕들과 고위 관리들과 제사장들과 선지자들과 유다 사람들과 예루살렘 거민들이 다 그러했다.

하나님께서는 또 말씀하셨다. “그들이 등을 내게로 향하고 얼굴을 내게로 향치 아니하며 내가 그들을 가르치되 부지런히 가르칠지라도 그들이 교훈을 듣지 아니하며 받지 아니하고 내 이름으로 일컬음을 받는 집에 자기들의 가증한 물건들을 세워서 그 집을 더럽게 하며 힌놈의 아들의 골짜기에 바알의 산당을 건축하였으며 자기들의 자녀를 몰렉의 불에 지나가게 하였느니라. 그들이 이런 가증한 일을 행하여 유다로 범죄케 한 것은 나의 명한 것도 아니요 내 마음에 둔 것도 아니니라.” 그들이 행한 악은 특히 하나님의 말씀 듣기를 거절한 것과 우상을 숭배한 것이었다. 사람이 하나님 말씀 듣기를 거절하면 소망이 없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야 회개하고 믿을 수 있고 경건하고 의롭고 선한 사람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또 우상을 섬기는 것은 죄 중에서 가장 근본적인 죄이다. 사람이 하나님을 섬기지 않을 때 다른 모든 부도덕한 죄악들에 떨어진다.

1-35절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창조자 하나님은 전능의 하나님이시다. 17절, “주께서 큰 능과 드신 팔로 천지를 지으셨사오니 주에게는 능치 못한 일이 없으시니이다.” 27절, “내게 능치 못한 일이 있겠느냐?” 천지를 지으신 하나님께서는 능력의 하나님이시며 주권적인 섭리자이시다. 그에게는 어려운 일이 아무것도 없으시다.

둘째로, 그 하나님은 특히 심판과 보응의 하나님이시다. 19절, “[주는] 인류의 모든 길에 주목하시며 그 길과 그 행위의 열매대로 보응하시나이다.” 창조자 하나님께서는 또한 심판자이시다. 그는 자기가 만드신 세상을 공의로 다스리시고 최후의 심판을 시행하실 것이다.

셋째로, 이스라엘의 멸망은 그들이 행한 악 때문이다. 23절, “[그들이] 주의 목소리를 청종치 아니하며 주의 도에 행치 아니하며 무릇 주께서 행하라 명하신 일을 행치 아니하였으므로 주께서 이 모든 재앙을 그들에게 내리셨나이다.” 30절, “이는 이스라엘 자손과 유다 자손이 예로부터 내 목전에 악만 행하였음이라.” 33-35절도 그것을 증거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을 경외하며 죄를 멀리하고 그의 계명을 지키자.

 

36-44절, 이스라엘의 회복이 약속됨

[36-37절] 그러나 이스라엘의 하나님 나 여호와가 너희의 . . . .

하나님께서는 말씀하신다. “그러나 이스라엘의 하나님 나 여호와가 너희의 말하는 바 칼과 기근과 염병으로 인하여 바벨론 왕의 손에 붙인 바 되었다 하는 이 성에 대하여 이같이 말하노라. 보라, 내가 노와 분과 큰 분노로 그들을 쫓아 보내었던 모든 지방에서 그들을 모아내어 이곳으로 다시 인도하여 안전히 거하게 할 것이라.”

‘그러나’라는 원어(웨앗타 라켄)는 ‘이제 그러므로’라는 뜻이다(KJV, NASB). 본장 처음에 하나님께서는 예레미야에게 숙부의 아들 하나멜의 밭을 사게 하신 후 장차 집과 밭을 다시 사게 될 날이 올 것이라고 말씀하셨었다(15절). 그러나 예레미야는 예루살렘이 바벨론 군대에 의해 포위되고 칼과 기근과 염병으로 멸망할 터인데 그 밭을 샀다고 하나님 앞에 탄식하였다. 그때 하나님께서는 그 성의 멸망이 그들의 죄악에 대한 그의 징벌이지만, 이제 주권자이신 그가 이스라엘을 회복시켜 주실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그는 노와 분과 큰 분노로 그들을 쫓아 보내었던 모든 지방에서 그들을 모아내어 이곳으로 다시 인도하여 안전히 거하게 하실 것이다. 주권자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다시 돌아오게 하실 것이다.

[38-42절] 그들은 내 백성이 되겠고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될 . . . .

하나님께서는 또 말씀하신다. “그들은 내 백성이 되겠고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될 것이며 내가 그들에게 한 마음과 한 도(道)를 주어 자기들과 자기 후손의 복을 위하여 항상 나를 경외하게 하고 내가 그들에게 복을 주기 위하여 그들을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는 영영한 언약을 그들에게 세우고 나를 경외함을 그들의 마음에 두어 나를 떠나지 않게 하고 내가 기쁨으로 그들에게 복을 주되 정녕히 나의 마음과 정신을 다하여 그들을 이 땅에 심으리라. 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내가 이 백성에게 이 큰 재앙을 내린 것같이 허락한 모든 복을 그들에게 내리리라.”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복을 주실 것이다. 그들이 항상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은 자신들과 그 후손들에게 복이 될 것이다(39절).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복을 주시기 위해 그들을 떠나지 않으실 것이다(40절). 하나님께서는 기쁨으로 그들에게 복을 주실 것이다(41절).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허락하신 모든 복을 내리실 것이다(42절). 이스라엘의 회복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복이다. 우리가 받은 구원은 하나님께서 주신 복이다. 하나님께서는 재앙도 주시지만 복도 주시는 하나님이시다. 그는 만복(모든 복)의 근원이시다.

또 하나님께서는 그들로 자기와 밀접한 바른 관계를 가지게 하실 것이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실 것이다(38절). 하나님께서는 그들로 항상 그를 경외하게 하실 것이다(39절). 또 그는 그들에게 복을 주시기 위해 그들을 떠나지 않으실 영원한 언약을 그들에게 세우실 것이다(40절). 또 그는 하나님 경외함을 그들의 마음에 두어 하나님을 떠나지 않게 하실 것이다(40절). 그들은 하나님을 항상 경외하게 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떠나지 않으시며 그들도 하나님을 떠나지 않을 것이다.

복 중의 복은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회복하고 그를 밀접히 섬기는 복이다. 성도의 삶은 주께서 포도나무 비유에서 말씀하신 대로 ‘그가 우리 안에, 우리가 그 안에’ 있는 것이다(요 15장). 참된 신앙생활은 범사에 하나님을 인정하는 것이요(잠 3:6), 주야로 그의 말씀을 묵상하는 것이요(시 1:2) 또 쉬지 않고 기도하는 것이다(살전 5:17).

특히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한 마음과 한 길’(레브 에카드 웨데레크 에카드)을 주셔서 그들로 항상 하나님을 경외케 함으로 복을 얻게 하실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한 마음과 한 길은 하나님의 백성의 올바른 신앙생활을 표현한다. 우리는 두 마음으로 하나님을 섬겨서는 안 된다. 성경에 ‘마음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라는 말씀(신 6:5)은 ‘온전한 마음으로’ 사랑하라는 뜻이다. 우리는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길 수 없다(마 6:24). 우리는 단순한 마음, 순전한 마음으로 하나님을 섬겨야 한다. 또 우리가 하나님을 섬기는 것은 여러 길이 있는 것이 아니고 한 길뿐이다. 그것은 성경에 가르치신 대로 믿고 사는 길이다. 우리는 다 같은 믿음을 가진 자이며(딛 1:4; 유 3) 동일한 성령을 받은 자이다(엡 4:4-6). 그러므로 우리는 성경 교훈대로, 성령의 인도대로 믿고 살아야 한다.

“나의 마음과 정신을 다하여”라는 원어는 “나의 온 마음과 나의 온 영혼으로”라는 뜻이다. ‘정녕히’라는 원어(베에멧)는 ‘참으로’라는 뜻이다. 42절에 ‘허락한’이라는 원어는 ‘내가 그들에게 말하는’이라는 뜻이다. 하나님께서는 참으로 마음과 정신을 다하여 그들을 그 땅에 심으실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또 그는 기쁨으로 그 일을 이루실 것이라고 하신다. 그는 주권적 구주이시다. 구원은 하나님의 행하시는 일이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뜻하신 바를 완전하게 이루실 것이다. 그는 그렇게 하실 수 있는 능력이 있으시고 그렇게 하시겠다고 뜻을 보이셨다. 이스라엘의 회복도, 우리의 구원도 그러하다.

[43-44절] 너희가 말하기를 황폐하여 사람이나 짐승이 없으며 . . . .

하나님께서는 또 말씀하신다. “너희가 말하기를 황폐하여 사람이나 짐승이 없으며 갈대아인의 손에 붙인 바 되었다 하는 이 땅에서 사람들이 밭을 사되 베냐민 땅과 예루살렘 사방과 유다 성읍들과 산지의 성읍들과 평지의 성읍들과 남방의 성읍들에 있는 밭을 은으로 사고 증서를 기록하여 인봉하고 증인을 세우리니 이는 내가 그들의 포로로 돌아오게 함이니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여기에 본장 초두에 예레미야로 숙부의 아들의 밭을 사게 하신 뜻이 나타난다.

본장의 내용은 무엇인가? 본장은 예루살렘 성이 지금 바벨론 군대의 포위를 당하고 칼과 기근과 염병으로 멸망할 것이며 그것이 하나님께서 그들의 죄악에 대해 내리신 징벌이지만,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그 쫓아보내신 지방들로부터 모으실 때가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하나님께서 그들을 징벌하셨듯이, 그가 그들을 회복시키실 것이다. 구원과 회복은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일이다.

이스라엘 백성이 다시 돌아올 때는 경건의 회복, 하나님과의 관계성의 회복이 있을 것이다. 그들은 하나님을 경외하며 섬기는 자들이 될 것이며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실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한 마음과 한 도(道)를 주셔서 그들이 하나님을 경외하며 성심으로 섬기게 하실 것이다. 또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모든 복을 주실 것이다. 그들은 안전히 거하게 될 것이며 다시 밭의 매매가 이루어지는 평화로운 생활을 하게 될 것이다.

구약성경의 이스라엘의 회복의 예언은 70년간의 바벨론 포로생활 후 스룹바벨과 예수아 때의 포로 귀환에서 부분적으로 이루어졌고 또 신약교회 시대에도 부분적으로 이루어졌다고 본다. 특히 이방인들이 주께로 돌아올 것이라는 예언이 그러하다(행 15:15-18). 또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의 회복이나 내면적인 충만한 평강 등은 신약교회와 성도들이 누리는 귀한 은혜이다. 그러나 그 예언은 신약교회 시대 말에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으로 시작될 천국에서 완전하게 이루어질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받은 자들이 되었다. 과거에 하나님을 모르고 죄 가운데 살던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의 은혜를 받은 자들이 되었다. 이제 우리는 하나님께 감사하며 하나님만 바라고 의지하며 살자. 참된 경건을 지키자. 성경책을 읽고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을 가장 중요하게 여기자. 주일을 거룩히 지키며 교회로 모이자. 장차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으로 시작될 천국을 사모하자. 또 죄를 멀리하고 계명을 순종하자. 또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모든 영육의 복을 누리자.

 

 

33장: 다윗의 의로운 가지

1-11절, 황폐한 성을 치료하실 것

[1-3절] 예레미야가 아직 시위대 뜰에 갇혔을 때에 여호와의 . . . .

예레미야가 아직 시위대 뜰에 갇혔을 때 여호와의 말씀이 그에게 다시 임하셨다. “일을 행하는 여호와, 그것을 지어 성취하는 여호와, 그 이름을 여호와라 하는 자가 이같이 이르노라.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비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 ‘일을 행하는’이라는 원어(오사흐)는 ‘그것을 행하시는(혹은 만드신)’이라는 뜻인데, ‘그것’이라는 원어가 여성이기 때문에 근래의 영어성경들(NASB, NIV)은 ‘땅을 만드신’이라고 번역하였다. “땅을 만드신 여호와, 그것을 지어 세우신 여호와”께서 말씀하신다.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비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 ‘비밀한’이라는 원어(베추로스)는 ‘접근할 수 없는, 놀라운, 기이한’이라는 뜻이다(BDB). 우리가 하나님께 부르짖어 기도하면 하나님께서는 불가능한 일을 가능하게 하실 것이다. 여기에서 불가능한 일은 이스라엘 백성이 바벨론 포로생활에서 돌아와 나라를 회복하는 일이다.

[4-5절]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가 말하노라. 무리가 . . . .

하나님께서는 말씀하신다.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가 말하노라. 무리가 이 성읍의 가옥과 유다 왕궁을 헐어서 갈대아인의 흉벽과 칼을 막아 싸우려 하였으나 내가 나의 노와 분함으로 그들을 죽이고 그 시체로 이 성에 채우게 하였나니 이는 그들의 모든 악을 인하여 나의 얼굴을 가리워 이 성을 돌아보지 아니하였음이니라.” 이스라엘과 유다의 멸망은 하나님께서 그들의 모든 악에 대해 진노하셨기 때문이었다. 하나님께서는 내가 그들을 죽였다고 말씀하셨다.

[6-9절] 그러나 보라, 내가 이 성을 치료하며 고쳐 낫게 하고 . . . .

하나님께서는 또 말씀하신다. “그러나 보라, 내가 이 성을 치료하며 고쳐 낫게 하고 평강과 성실함에 풍부함[풍성함]을 그들에게 나타낼 것이며 내가 유다의 포로와 이스라엘의 포로를 돌아오게 하여 그들을 처음과 같이 세울 것이며 내가 그들을 내게 범한 그 모든 죄악에서 정하게 하며 그들의 내게 범하며 행한 모든 죄악을 사할 것이라. 이 성읍이 세계 열방 앞에서 내게 기쁜 이름이 될 것이며 찬송과 영광이 될 것이요 그들은 나의 이 백성에게 베푼 모든 복을 들을 것이요 나의 이 성읍에 베푼 모든 복과 모든 평강을 인하여 두려워하며 떨리라.” 하나님께서는 예루살렘 성을 치료하시며 고쳐 낫게 하시겠다고 말씀하셨다. 죄로 인해 멸망한 성, 중병이 걸려 다시 회복하기 어려워 보이는 그 성이지만, 하나님께서 치료하시면 회복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그 성을 회복시키시고 온전케 하실 수 있다.

또 하나님께서는 그 성에 평강과 성실함[진리]의 풍부함(한글개역--‘풍성함’)을 주실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이전에 그 성은 하나님의 진리도 평강도 없었다. 불의와 거짓이 가득하고 슬픔과 고통이 충만하였었다. 그러나 이제 하나님께서 회복시키실 때는 그 성에 진리의 말씀이 풍부하고 평강이 충만할 것이다.

또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과 유다의 포로들을 돌아오게 하실 것이며 그 땅을 예전과 같이, 처음과 같이 세울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이스라엘의 회복은 일차적으로 포로 귀환으로 시작될 것이다.

또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의 모든 죄악들을 사하시며 정결케 하실 것이다. 회복과 구원은 죄사함에서부터 시작될 것이다. 죄가 멸망의 원인이었기 때문에 죄사함은 회복의 원인이 될 것이다.

또 하나님께서는 예루살렘 성이 세계 열방 앞에서 하나님께 기쁜 이름이 될 것이며 찬송과 영광이 될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열방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베푸신 모든 복을 들을 것이요 그가 이 성읍에 베푸신 모든 복과 모든 평강을 인하여 두려워하며 떨 것이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구원과 회복은 기쁨과 평강을 줄 것이다.

[10-11절] 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너희가 가리켜 . . . .

하나님께서는 또 말씀하신다. “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너희가 가리켜 말하기를 황폐하여 사람도 없고 짐승도 없다 하던 여기 곧 황폐하여 사람도 없고 주민도 없고 짐승도 없던 유다 성읍들과 예루살렘 거리에서 즐거워하는 소리, 기뻐하는 소리, 신랑의 소리, 신부의 소리와 및 만군의 여호와께 감사하라, 여호와는 선하시니 그 인자하심이 영원하다 하는 소리와 여호와의 집에 감사제를 드리는 자들의 소리가 다시 들리리니 이는 내가 이 땅의 포로로 돌아와서 처음과 같이 되게 할 것임이니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회복된 예루살렘 성은 즐거워하는 소리와 기뻐하는 소리가 다시 들릴 것이다. 또 신랑의 소리와 신부의 소리도 들릴 것이며 하나님께 감사의 제사를 드리는 소리도 들릴 것이다.

1-12절에서 우리는 몇 가지 교훈을 얻는다. 첫째로, 우리는 어려운 문제를 가지고 있을 때 하나님께 부르짖어 기도해야 한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응답해주실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바벨론 포로 생활을 하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비밀한[기이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고 말씀하셨다. 그것은 이스라엘의 포로 귀환과 회복에 대한 일을 가리킨다. 오늘 우리에게 어떤 어려운 문제가 있든지 간에, 성도의 특권은 하나님께 부르짖어 기도하는 것이다. 그러면 그는 우리의 부르짖는 기도에 응답해주실 것이다. 주께서는 구하면 주신다고 교훈하셨다(마 7:7-8).

둘째로, 우리는 하나님의 진노와 징벌을 두려워하고 범죄치 말아야 한다. 하나님께서 진노하시면 죄인들의 죄에 대해 엄히 징벌하실 것이다. 아름다운 예루살렘 성이라도 바벨론 군대에게 처참하게 짓밟혔고 황폐케 되었다. 악인에게는 평강이 없다. 죄의 값은 사망과 불행이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의 죄에 대해 진노하시고 징벌하시는 공의의 하나님이시다. 그러므로 우리는 범죄치 말자. 하나님의 진노를 두려워하자.

셋째로, 우리는 하나님의 구원의 능력을 믿자. 하나님께서는 멸망한 예루살렘 성을 치료하시며 낫게 하시겠다고 말씀하셨다. 그는 유다와 이스라엘의 포로들을 돌아오게 하실 것이다. 그는 유다 땅을 예전과 같이, 처음과 같이 되게 하실 것이다. 이런 일은 사람들의 생각으로는 불가능한 일이다. 그러나 하나님께는 능치 못함이 없으시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구원하는 능력이 있으신 구주이시다.

넷째로, 우리는 우리의 죄를 사하신 하나님의 은혜를 믿고 감사하자. 하나님께서는 “내가 그들을 내게 범한 그 모든 죄악에서 정하게 하며 그들의 내게 범하며 행한 모든 죄악을 사할 것이라”고 말씀하셨다(8절).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죄를 사하시는 긍휼과 은혜의 하나님이시다. 죄사함이 없다면, 아무도 하나님 앞에 설 수 없고 하나님을 앙망할 수 없다. 그러나 죄사함이 있으므로 죄인들이 감히 하나님을 우러러 보며 그를 경외하며 기쁨과 두려움으로 그를 섬긴다.

다섯째로, 우리는 평안과 기쁨의 복을 누리자. 하나님께서는 회복하실 이스라엘 땅과 예루살렘 성에 풍부한 평강과 큰 기쁨을 주실 것이다. 평안과 기쁨은 하나님께서 구원하신 백성에게 주시는 복이다. 그러므로 주 예수께서는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고 말씀하셨고, 사도 바울은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고 말했다(살전 5:16-18). 우리는 주께서 주신 평안과 기쁨의 복을 누리자.

 

12-26절, 다윗의 의로운 가지

[12-13절] 나 만군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황폐하여 . . . .

하나님께서는 또 말씀하신다. “나 만군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황폐하여 사람도 없고 짐승도 없던 이곳과 그 모든 성읍에 다시 목자(로임)[목자들]의 거할 곳이 있으리니 그 양무리를 눕게 할 것이라. 산지 성읍들과 평지 성읍들과 남방의 성읍들과 베냐민 땅과 예루살렘 사면과 유다 성읍들에서 양무리가 다시 계수하는 자의 손 아래로 지나리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죄에 대한 하나님의 징벌로 황폐케 된 예루살렘 성과 유다 땅이 사람 사는 땅으로 회복될 것이다. 사람들은 다시 목자들이 양을 치는 모습을 보게 될 것이다.

[14절]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보라, 내가 이스라엘 집과 . . . .

하나님께서는 또 말씀하신다.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보라, 내가 이스라엘 집과 유다 집에 대하여 이른 선한 말을 성취할 날이 이르리라.” ‘그 선한 말’은 이스라엘 나라의 회복과 포로들의 귀환에 대한 약속의 말씀이다. 본장 6-7절에서도, 하나님께서는 “보라, 내가 이 성을 치료하며 고쳐 낫게 하고 평강과 성실함에 풍성함을 그들에게 나타낼 것이며 내가 유다의 포로와 이스라엘의 포로를 돌아오게 하여 그들을 처음과 같이 세울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하나님께서는 약속을 지키시는 신실하신 하나님이시다. 그는 가나안 땅을 주시겠다고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약속하신 바를 모세와 여호수아를 통하여 다 이루셨다. 여호수아 21:45는,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족속에게 말씀하신 선한 일이 하나도 남음이 없이 다 응하였더라”고 증거했다. 하나님께서는 약속을 지키시는 자이시다.

[15-16절] 그 날 그때에 내가 다윗에게 한 의로운 가지가 나게 . . . .

하나님께서는 또 말씀하신다. “그 날 그때에 내가 다윗에게 한 의로운 가지가 나게 하리니 그가 이 땅에 공평과 정의를 실행할 것이라. 그 날에 유다가 구원을 얻겠고 예루살렘이 안전히 거할 것이며 그 성은 여호와 우리의 의라 일컬음을 입으리라.”

‘그 날 그때’는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메시아를 보내주시는 때를 가리켰다. 그때 하나님께서는 다윗에게서 한 의로운 가지를 나게 하실 것이다. 이것은 예레미야 23:5에서 이미 예언된 바이다: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보라, 때가 이르리니 내가 다윗에게 한 의로운 가지를 일으킬 것이라. 그가 왕이 되어 지혜롭게 행사하며 세상에서 공평과 정의를 행할 것이며.” 다른 선지자들도 비슷한 예언들을 하였었다. 이사야 4:2, “그 날에 여호와의 싹이 아름답고 영화로울 것이요.” 이사야 11:1, “이새[다윗의 아버지]의 줄기에서 한 싹이 나며 그 뿌리에서 한 가지가 나서 결실할 것이요.” 스가랴 3:8, “내가 내 종 순을 나게 하리라.” 스가랴 6:12, “보라, 순이라 이름하는 사람이 자기 곳에서 돋아나서 여호와의 전을 건축하리라.”

다윗의 한 의로운 가지는 곧 메시아를 가리킨다. 구약성경은 메시아의 강림을 예언하였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마태복음 1:1의 증거대로,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으로 오셨다. 그는 다윗의 동네 베들레헴에서 나셨다(마 2장; 눅 2장). 사람들은 그를 다윗의 자손으로 불렀다. 그는 이 땅에 ‘공평과 정의, 즉 ‘법과 의’를 행하실 것이다. 그 날에 유다는 구원을 얻고 예루살렘은 안전히 거할 것이다. 또 그 성은 여호와 우리의 의라 일컬음을 입을 것이다. 이것은 신약교회에 주신 구원을 가리킨다. 신약교회는 주께서 주신 의와 평강을 누린다.

고린도전서 1:30, “너희는 하나님께로부터 나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고 예수는 하나님께로서 나와서 우리에게 지혜와 의로움과 거룩함과 구속(救贖)함이 되셨으니.” 로마서 3:21-22, “이제는 율법 외에 하나님의 한 의가 나타났으니 율법과 선지자들에게 증거를 받은 것이라. 곧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모든 믿는 자에게 미치는 하나님의 의니 차별이 없느니라.” 요한복음 14:27,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