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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스겔 강해

김효성 목

2018년 6월 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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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머리말

우리는 신구약 66권의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이며 우리의 신앙과 생활에 정확무오한 유일의 법칙임을 믿는다. 이것은 종교개혁의 유산을 받은 모든 개신교회들의 공통적 신념이다. 누구든지 무엇을 주장하려면 성경에 근거해서 주장해야 하고 누구든지 무슨 이의를 제기하려면 성경에 근거해서 제기해야 할 것이다.

성경은 개인의 신앙생활뿐 아니라, 교회의 목회 전반, 목사의 설교나 지교회 혹은 전체 교회의 모든 활동에도 유일한 규범이다. 우리는 성경을 제쳐놓고 무슨 활동을 계획하거나 수행해서는 안 될 것이다. 오늘날처럼 영적으로 혼란한 시대, 다양한 풍조와 운동이 많은 시대에, 우리는 여전히 성경으로 돌아가 성경이 무엇을 말하는지 묵상하기를 원하며 성경에 계시된 하나님의 모든 뜻을 알기를 원한다.

에스겔은 유다 왕국의 멸망기에 바벨론의 제2차 침공으로 유다 왕 여호야긴이 포로로 잡혀갈 때 함께 잡혀간 것 같다. 그는 제사장으로서 하나님의 특별한 환상과 계시의 말씀을 받아 선지 사역을 하였다.

에스겔서의 주요 내용은, 다른 선지서들과 같이, 심판과 회복이다. 본서에는 '칼'이라는 말이 89회 나오고, '황폐'라는 말이 40회 나온다. 또 '기근'이라는 말이 14회 나오고, '온역'이라는 말이 12회 나온다. 이 용어들은 하나님의 심판과 관계된다. 또 본서에는 '안다'는 말이 98회나 나오는데, 그것은 하나님의 심판과 회복의 궁극적 목적을 보인다. 사람들은 하나님의 심판을 통해 하나님의 공의를 깨닫고, 하나님의 구원과 회복을 통해 그의 긍휼과 사랑을 깨닫는다.

에스겔 40-49장에 나오는 회복 예언에 대해, 성전의 구조와 치수, 성전의 기구들, 제사와 절기의 규례 등은 레위기와 큰 차이점을 가진다. 그러나 이것은, 에스겔서의 예언된 바가 모세 율법의 회복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고 메시야 시대를 상징적으로 묘사하는 것이기 때문이라고 말할 수 있다.

에스겔이 예언한 이스라엘의 회복에 대해 두 가지의 견해가 있다.

첫째는 그것이 매우 구체적이기 때문에 장차 문자적으로 그대로 이루어질 것이라는 견해이다. 세대주의자들은 이런 견해를 가진다. 아춰는 피의 제사를 천년왕국에서 성례식처럼 문자 그대로 가능한 것으로 이해한다. 엉거는 이스라엘과 교회를 더 과격하게 구별하여 그 예언을 이스라엘에게 문자적으로 성취될 것으로 이해한다.

둘째는 그것을 천년왕국 혹은 천국에 대한 상징이라고 보는 견해이다. 그 견해에 의하면, 그것이 문자적으로 이루어질 수 없는 것은, 신약성경 히브리서에 증거된 바와 같이(히 8:13),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단번에 이루신 속죄 사역에 근거하여 구약의 성전 제도와 제사 제도가 폐지되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 견해가 바르다고 본다. 개혁 신학은 이 견해를 취한다.

 

본문 혹은 각주에 자주 사용된 약어

KJV

영어 King James Version.

NASB

영어 New American Standard Version.

NIV

영어 New International Version.

LXX

고대 헬라어 70인역.

Syr 

고대 수리아어역.

It 

고대 라틴어역.

Vg

고대 라틴어 Vulgate역.

BDB

Brown-Driver-Briggs, Hebrew Lexicon of the O. T.

KB

Koehler-Baumgartner, Lexicon in Veteris Testamenti Libros.

Langenscheidt 

Karl Feyerabend, Langenscheidt's Pocket Hebrew Dictionary to the Old

Testament.

Holladay 

William L. Holladay, A Concise Hebrew and Aramaic Lexicon of the

Old Testament.

Poole

Matthew Poole, A Commentary on the Holy Bible

JFB

Jamieson, Faussett, Brown의 주석.

NBD

The New Bible Dictionary. IVP.

NBC

The New Bible Commentary. IVP

 

제목 차례

 1장: 네 생물의 형상         

 2장: 패역한 백성에게 보내심 

 3장: 이스라엘의 파수꾼으로 세우심    

 4장: 예루살렘 멸망의 예표     

 5장: 예루살렘의 멸망을 예언함    

 6장: 이스라엘이 황폐할 것임    

 7장: 재앙이 임박함     

 8장: 이스라엘의 가증한 일들   

 9장: 탄식하며 우는 자의 이마에 표함  

10장: 그룹이 불을 내어줌   

11장: 이스라엘의 회복이 약속됨 

12장: 속히 포로로 잡혀갈 것 

13장: 거짓 선지자들을 책망하심     

14장: 우상숭배에 대한 심판   

15장: 불에 던질 포도나무처럼 될 것   

16장: 예루살렘의 음란    

17장: 독수리와 포도나무 비유   

18장: 하나님의 심판의 공평성  

19장: 이스라엘 방백들을 위한 애가    

20장: 이스라엘의 패역함     

21장: 하나님의 심판의 칼이 옴   

22장: 이스라엘의 죄악들   

23장: 행음한 두 여자와 같음   

24장: 가마솥 비유 

25장: 암몬, 모압, 에돔, 블레셋에 대한 선언  

26장: 두로에 대한 선언    

27장: 두로를 위한 애가      

28장: 두로 왕에 대한 선언    

29장: 애굽에 대한 선언   

30장: 애굽의 멸망에 대한 예언   

31장: 음부로 내려감     

32장: 바로에 대한 애가    

33장: 파수꾼의 사명   

34장: 부패한 목자들  

35장: 세일산에 대한 경고     

36장: 이스라엘의 회복      

37장: 마른 뼈 환상           

38장: 곡이 이스라엘을 치러 옴       

39장: 곡의 멸망       

40장: 새 성전         

 ■ 에스겔이 본 성전 평면도            

41장: 성소         

42장: 제사장을 위한 방      

43장: 번제단     

44장: 제사장의 법들      

45장: 왕을 위한 법들 

46장: 예배의 방식   

47장: 성소에서 흘러나오는 강물    

48장: 땅 분배   

 

 

1장: 네 생물의 형상

 1-14절, 네 생물의 형상

 [1-2절] 제30년 4월 5일에 내가 그발강가 사로잡힌 자 . . . .

에스겔은 말한다. “제30년 4월 5일에 내가 그발강가 사로잡힌 자 중에 있더니 하늘이 열리며 하나님의 이상(異像)을 내게 보이시니 여호야긴 왕의 사로잡힌 지 5년 그 달 5일이라.” ‘제30년’이라는 말에 대해서는 여러 해석들이 있다. 제롬은 유다 왕 요시야가 율법을 발견하고 개혁을 일으킨 해로부터 30년이라고 보았고, 칼빈은 유다의 마지막 희년으로부터 30년이라고 보았고, 카일은 갈대아 나라의 설립 때로부터 30년이라고 보았고, 헹스텐버그는 단순히 그의 나이로 보았다. 마지막 해석이 적절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 해는 여호야긴 왕이 사로잡힌 지 5년 곧 주전 592년경이었다. 그때에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이상(異像)이 에스겔에게 보였다.

[3절] 갈대아 땅 그발강가에서 여호와의 말씀이 부시의 . . . .

에스겔은 또 말한다. “갈대아 땅 그발강가에서 여호와의 말씀이 부시의 아들 제사장 나 에스겔에게 특별히 임하고 여호와의 권능이 내 위에 있으니라.” 에스겔은 그발강가에서 이 계시를 받았다. 그발강은 유브라데강의 하류에 있는 바벨론 도시 부근의 지류인 듯하다. 그곳에서 하나님의 말씀과 하나님의 권능이 제사장 에스겔 위에 임하였다. ‘특별히 임했다’는 말은 ‘확실히 임했다’는 뜻이다. 하나님의 특별계시의 말씀은 역사의 한 시점에서, 즉 구체적 시간과 장소에서 주어졌다. 하나님께서는 역사상 구체적 방식으로 자신을 알리셨다.

[4-5절] 내가 보니 북방에서부터 폭풍과 큰 구름이 오는데 . . . .

에스겔은 또 말한다. “내가 보니 북방에서부터 폭풍과 큰 구름이 오는데 그 속에서 불이 번쩍번쩍하여 빛이 그 사면에 비취며 그 불 가운데 단쇠 같은 것이 나타나 보이고 그 속에서 네 생물의 형상이 나타나는데 그 모양이 이러하니 사람의 형상이라.”

에스겔은 북방에서부터 폭풍과 큰 구름이 오는 것을 보았다. 그 속에서는 불이 번쩍번쩍하여 빛이 그 사면에 비취었고 그 불 가운데 단 쇠 같은 것이 나타나 보였고 그 속에 네 생물의 형상이 나타나는데 사람의 형상 같은 것이었다. 북방에서부터 오는 폭풍과 큰 구름은 장차 유다에 임할 하나님의 심판을 암시하는 것 같다. 에스겔이 이 계시를 받았을 때는 아직 유다와 예루살렘 성이 멸망하기 전이었다. 유다와 예루살렘은 머잖아 북쪽에서 내려오는 바벨론 군대에 의해 최종적인 멸망을 당할 것이다. 불이 번쩍번쩍하여 빛이 사방에 비취며 그 불 가운데 ‘단 쇠’가 나타나 보이는 것은 하나님의 심판의 엄위함을 나타낸다. ‘단 쇠’라는 원어(카쉬말)는 ‘반짝이는 금속’이라는 뜻이라고 한다. 네 생물은 하나님의 심판을 수행하는 천사들을 상징한 것 같다. 천사들은 사람의 모양으로 계시되었다.

[6-9절] 각각 네 얼굴과 네 날개가 있고 그 다리는 곧고 . . . .

에스겔은 또 말한다. “각각 네 얼굴과 네 날개가 있고 그 다리는 곧고 그 발바닥은 송아지 발바닥 같고 마광한 구리 같이 빛나며 그 사면 날개 밑에는 각각 사람의 손이 있더라. 그 네 생물의 얼굴과 날개가 이러하니 날개는 다 서로 연하였으며 행할 때에는 돌이키지 아니하고 일제히 앞으로 곧게 행하며.”

네 생물들은 각각 네 얼굴들과 네 날개들을 가지고 있었다. 그들의 다리가 곧음은 하나님의 임무를 중도에 포기함이 없이 견고하게 서서 수행함을 나타내는 것 같다. 그들의 발바닥이 송아지 발바닥 같고 마광한 구리같이 빛난 것은 잘 단련되어 인내하며 충성하는 것을 나타내는 것 같다. 그들의 사면 날개 밑에 각각 사람의 손이 있음은 그들이 하나님의 일을 잘 수행할 힘이 있음을 보이는 것 같다. 그들의 날개들이 서로 연하여 있음은 그들이 흐트러짐 없이, 일치단합하여 하나님의 일을 수행함을 보이는 것 같다. 특히, 그들이 행할 때에 뒤돌아서지 않고 일제히 앞으로 곧바르게 나아감은 그들이 변절함 없이 시종일관하게 충성함을 보이는 것 같다.

[10-11절] 그 얼굴들의 모양은 넷의 앞은 사람의 얼굴이요 . . . .

에스겔은 또 말한다. “그 얼굴들의 모양은 넷의 앞은 사람의 얼굴이요 넷의 우편은 사자의 얼굴이요 넷의 좌편은 소의 얼굴이요 넷의 뒤는 독수리의 얼굴이니 그 얼굴은 이러하며 그 날개는 들어 펴서 각기 둘씩 서로 연하였고 또 둘은 몸을 가리웠으며.”

사람의 얼굴은 그들의 지혜와 총명을 나타내며, 사자의 얼굴은 그들의 용맹을 나타내며, 소의 얼굴은 그들의 충성을 나타내며, 독수리의 얼굴은 그들의 생명력과 민첩함을 나타낸다. 또 그 두 날개를 들어 편 것은 그들이 하나님의 뜻을 잘 수행함을 나타내고, 나머지 두 날개로 몸을 가린 것은 겸손히 하나님을 섬김을 나타낸다. 선한 천사들은 하나님의 충성된 일꾼들이다.

[12-14절] 신이 어느 편으로 가려면 그 생물들이 그대로 . . . .

에스겔은 또 말한다. “신[영]이 어느 편으로 가려면 그 생물들이 그대로 가되 돌이키지 아니하고 일제히 앞으로 곧게 행하며 또 생물의 모양은 숯불과 횃불 모양 같은데 그 불이 그 생물 사이에서 오르락내리락 하며 그 불은 광채가 있고 그 가운데서는 번개가 나며 그 생물의 왕래가 번개같이 빠르더라.”

그 생물들 속에는 영이 있어서 그 영이 지시하는 곳으로 그 생물들이 그대로 갔고 뒤돌아서지 않고 일제히 앞으로 곧바르게 나아갔다. 그들은 변절함 없이 시종일관하게 충성하며 온전히 순종하였다. 또 그 생물들의 모양은 숯불과 횃불 모양 같았고 불이 그 생물 사이에서 오르락내리락 하며 그 불은 광채가 있고 그 가운데는 번개가 났다. 그것은 그들이 수행하는 하나님의 심판의 엄위함을 보이는 것 같다. 그 생물들의 왕래는 번개같이 빨랐다. 그것은 그들의 민첩함을 나타낼 것이다. 천사들은 민첩한 봉사자들이다.

성경은 하나님의 특별계시들의 기록이며 그것들의 유일한 저장소, 보관소이며 하나님께서는 오늘날 성경을 사용하여 말씀하시며 그의 모든 뜻을 우리에게 알려주신다. 성경은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이다(딤후 3:16-17). 우리는 성경을 귀히 여겨야 한다.

우리는 네 생물들의 모습에서 교훈을 얻는다. 네 생물들의 모습은 지혜와 용기와 충성과 민첩함을 나타낸다. 또 그들의 모습은 겸손함과 온전한 순종을 나타낸다. 이것은 하나님을 섬기는 모든 봉사자들에게, 그리고 우리 모든 성도들에게 교훈이 된다.

성경은 우리에게 지혜로운 자가 되라고 말한다. 하나님께서는 이를 위해 잠언이라는 책을 주셨다(잠 1:1-6). 또 주께서는 열 처녀 비유를 통해 우리가 성령의 역사로 말미암는 내면적 은혜와 덕을 갖춘 지혜로운 성도와 일꾼이 되어야 할 것을 교훈하셨다(마 25:1-13).

또 성경은 우리에게 강하고 담대하라고 말한다. 하나님께서는 여호수아에게 마음을 강하게 하고 담대히 하라고 말씀하셨다(수 1:6-7, 9). 주께서도 제자들에게 세상에서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고 말씀하셨고(요 16:33), 바울도 성도들에게 남자답게 강건하라고 했다(고전 15:14).

또 성경은 우리에게 충성하라고 말한다. 주께서는 서머나 교회 사자에게 죽도록 충성하라고 말씀하셨다(계 2:10). 바울은 고린도교인들에게 맡은 자에게 구할 것은 충성이라고 말했다(고전 4:2).

또 성경은 우리에게 민첩하라고 교훈한다. 바울은 성도들에게 “세월을 아끼라. 때가 악하니라”고 말하였고(엡 5:16), 또 부지런하여 게으르지 말고 열심을 품고 주를 섬기라고 하였다(롬 12:10).

 

15-28절, 네 생물의 바퀴

[15-16절] 내가 그 생물을 본즉 그 생물 곁 땅 위에 . . . .

에스겔은 말한다. “내가 그 생물을 본즉 그 생물 곁 땅 위에 바퀴가 있는데 그 네 얼굴을 따라 하나씩 있고 그 바퀴의 형상과 그 구조는 넷이 한결 같은데 황옥 같고 그 형상과 구조는 바퀴 안에 바퀴가 있는 것 같으며.”

에스겔은 네 생물들 곁에 있는 네 개의 바퀴들을 보았다. 15절을 다시 번역하면, “내가 그 생물들을 본즉 그 네 얼굴들을 가진 생물들 곁 땅 위에 한 바퀴가 있는데.” 이것은 네 생물들을 위해 한 바퀴가 있다는 뜻이 아니고, 네 생물들 곁에 각각 하나씩 모두 네 개의 바퀴가 있다는 뜻인 것 같다. 원문에서 16절의 ‘그 바퀴’는 ‘그 바퀴들’(하오판님)이라고 복수로 되어 있다.

네 바퀴들과 그 구조의 모양은 같았고 황옥 혹은 녹보석 같았다. ‘황옥’이라는 원어(타르쉬스)는 ‘녹보석’(beryl)으로 번역되기도 한다(KJV, NASB, 출 28:20). 그것은 하나님의 섭리 방식의 선하고 아름답고 영광스러움을 나타내는 것 같다. 또 그 바퀴는 바퀴 안에 바퀴가 있는 것 같은 구조이었다. 이것은 자유로이, 빠르게, 잘 굴러가는 것을 상징한 듯하다.

[17-19절] 행할 때에는 사방으로 향한 대로 돌이키지 않고 . . . .

에스겔은 또 말한다. “행할 때에는 사방으로 향한 대로 돌이키지 않고 행하며 그 둘레는 높고 무서우며 그 네 둘레로 돌아가면서 눈이 가득하며 생물이 행할 때에 바퀴도 그 곁에서 행하고 생물이 땅에서 들릴 때에 바퀴도 들려서.” 17절을 다시 번역하면, “행할 때에는 사방 어느 쪽이든지 돌이키지 않고 행하며.”

그 바퀴는 어느 방향이든지 지시된 방향으로 향하고 향할 때에는 돌이키지 않고 행하였다. 그 바퀴는 컸고 그 둘레가 높고 무서웠다. 그것은 하나님의 하시는 일이 크고 엄위로움을 나타내는 것 같다. 하나님께서는 온 우주의 모든 크고 작은 일들을 섭리하신다. 또 그 둘레로 돌아가며 눈이 가득한 것은 하나님의 전지하심을 나타낼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일을 감찰하신다. 또 그 바퀴들은 그 생물들과 함께 움직였다.

[20-21절] 어디든지 신이 가려 하면 생물도 신의 가려 . . . .

에스겔은 또 말한다. “어디든지 신[영]이 가려 하면 생물도 신[영]의 가려 하는 곳으로 가고 바퀴도 그 곁에서 들리니 이는 생물의 신[영]이 그 바퀴 가운데 있음이라. 저들이 행하면 이들도 행하고 저들이 그치면 이들도 그치고 저들이 땅에서 들릴 때에는 이들도 그 곁에서 들리니 이는 생물의 신[영]이 그 바퀴 가운데 있음이더라.”

사실, 네 생물들은 하나님의 심판을 수행하는 네 천사들을 가리킨다고 보인다. 천사는 영이며 천사는 그 영의 이끌림을 받아 행동한다. 그 영이 의도하는 대로 그 바퀴는 행하였다. 생물이 가면 바퀴도 가고 생물이 서면 바퀴도 선다. 생물이 들리면 바퀴도 들린다. 생물과 바퀴는 일치하게 움직인다. 바퀴는 그 생물들이 하나님의 일을 수행하는 수행 방식을 상징하는 것 같다.

[22-23절] 그 생물의 머리 위에는 수정 같은 궁창의 . . . .

에스겔은 또 말한다. “그 생물의 머리 위에는 수정 같은 궁창의 형상이 펴 있어 보기에 심히 두려우며 그 궁창 밑에 생물들의 날개가 서로 향하여 펴 있는데 이 생물은 두 날개로 몸을 가리웠고 저 생물도 두 날개로 몸을 가리웠으며.”

에스겔은 그 생물들의 머리 위에 수정 같은 궁창의 형상을 보았다. 그것은 보기에 심히 두려운 모양이었다. 그 수정 같은 궁창은 하나님께서 계신 세계를 묘사한 것일 것이다. 하나님의 세계는 심히 아름답고 엄위하신 세계이다. 에스겔은 또 그 궁창 밑에 생물들이 날개들을 서로를 향해 폈고 또 각 생물들이 두 날개로 몸을 가리웠음을 보았다. 각 생물이 두 날개로 몸을 가린 것은 그들이 겸손히 하나님의 뜻을 받드는 모습을 나타낸 것 같다.

[24-25절] 생물들이 행할 때에 내가 그 날개 소리를 . . . .

에스겔은 또 말한다. “생물들이 행할 때에 내가 그 날개 소리를 들은즉 많은 물 소리와도 같으며 전능자의 음성과도 같으며 떠드는 소리 곧 군대의 소리와도 같더니 그 생물이 설 때에 그 날개를 드리우더라[아래로 젖히더라]. 그 머리 위에 있는 궁창 위에서부터 음성이 나더라. 그 생물이 설 때에 그 날개를 드리우더라.”

에스겔은 생물들이 행할 때 많은 물소리 같고 전능자의 음성 같고 떠드는 군대의 소리 같은 날개 소리를 들었다. 그것은 그 생물들이 열심히 하나님의 일을 수행함을 나타낼 것이다. 그 생물들이 설 때는 그 날개를 아래로 젖히었다. 또 에스겔은 생물들의 머리 위에 있는 궁창에서 나는 음성을 들었다. 하나님의 음성이다. 네 생물들은 하나님의 명령하고 지시하는 일을 수행하는 자들이다.

[26-28절] 그 머리 위에 있는 궁창 위에 보좌의 형상이 . . . .

에스겔은 또 말한다. “그 머리 위에 있는 궁창 위에 보좌의 형상이 있는데 그 모양이 남보석 같고 그 보좌의 형상 위에 한 형상이 있어 사람의 모양 같더라. 내가 본즉 그 허리 이상의 모양은 단 쇠 같아서 그 속과 주위가 불 같고 그 허리 이하의 모양도 불 같아서 사면으로 광채가 나며 그 사면 광채의 모양은 비 오는날 구름에 있는 무지개 같으니 이는 여호와의 영광의 형상의 모양이라. 내가 보고 곧 엎드리어 그 말씀하시는 자의 음성을 들으니라.”

네 생물들의 머리 위에 있는 궁창 위에 보좌의 형상은 남보석같이 엄위하며 영광스러웠다. 또 그 보좌 위에는 사람의 모양 같은 자가 있었다. 그는 분명히 하나님 또는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그의 모습은 매우 두려운 것이었다. 그 허리 이상의 모양은 ‘단 쇠’ 즉 ‘반짝이는 금속’ 같으며 그 속과 주위가 불같고 그 허리 이하의 모양도 불같아서 사면으로 광채가 났다. 또 그 사면 광채의 모양은 무지개 같았다. 그것은 여호와의 영광의 형상의 모양이었다. 그것은 심판자 하나님의 위엄을 나타내는 것 같다. 에스겔은 즉시 엎드리어 그 보좌에서 말씀하시는 이의 음성을 들었다.

본문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우리는 잘 구르는 바퀴처럼 하나님께 순종하며 봉사하자. 에스겔이 본 바퀴는 네 생물들이 하나님의 일을 잘 받드는 것을 상징한다. 바퀴는 느리게 가거나 가다가 서거나 탈선하든지 하지 말고 잘 굴러가야 한다. 하나님을 섬기는 봉사자들은 잘 굴러가는 좋은 바퀴처럼 하나님께 순종하며 봉사해야 한다.

둘째로, 우리는 네 생물의 날개소리처럼 열심히 하나님의 일을 받들며 충성하자. 새는 날개를 잘 흔들어야 잘 난다. 우리는 하나님의 일을 열심히 수행해야 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너는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고 명령하셨다(신 6:5). 우리는 온 마음과 온 영혼과 온 힘을 쏟아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의 일을 받들어야 한다. 사도 바울은 “열심을 품고 주를 섬기라”고 말했다(롬 12:11). 우리는 요란한 날개소리를 내는 생물처럼 하나님을 위해 힘써 일하자.

셋째로, 우리는 명령하시는 하나님께만 절대 순종하고 죽도록 충성하자. 하나님께서는 부모님보다, 회사의 사장보다, 대통령보다, 왕보다 높으시다. 그의 명령은 절대적 권위를 가지고 우리에게 절대적 순종을 요구한다. 우리는 하나님께 절대 순종하며 죽도록 충성하자. 요한계시록 12:11은 “여러 형제가 어린양의 피와 자기의 증거하는 말을 인하여 저[사탄]를 이기었으니 그들은 죽기까지 자기 생명을 아끼지 아니하였도다”라고 말한다. 우리는 죽도록 충성하는 성도가 되자(계 2:10). 

 

 

2장: 패역한 백성에게 보내심

[1-2절] 그가 내게 이르시되 인자야 일어서라. 내가 네게 . . . .

에스겔은 말한다. “그가 내게 이르시되 인자야 일어서라. 내가 네게 말하리라 하시며 말씀하실 때에 그 신[영]이 내게 임하사 나를 일으켜 세우시기로 내가 그 말씀하시는 자의 소리를 들으니.” ‘그 신’이라는 말(루아크)은 ‘성령’을 가리킨다고 본다(NASB, NIV).

1장 끝에 말한 대로, 네 생물들 위에 보좌 위에 사람 모양 같은 이가 계셨고 에스겔은 그 앞에 엎드렸고 그는 에스겔에게 말씀하셨다. 그는 하나님 혹은 구약에 계시된 예수 그리스도이실 것이다. 그는 에스겔을 ‘인자야’라고 부르셨다. 구약성경에 사람을 ‘인자’라고 부른 것은 다니엘에게 한 번(단 8:17) 사용된 외에는 선지자들 중 에스겔에게만 사용되었다(에스겔서에 93회 나옴). ‘인자’(人子)는 ‘사람의 아들’이라는 말로 에스겔에게 그가 연약한 인생임을 잊지 않게 하시는 뜻이 있어 보인다.

[3-4절] 내게 이르시되 인자야, 내가 너를 이스라엘 자손 . . . .

에스겔은 또 말한다. “내게 이르시되 인자야, 내가 너를 이스라엘 자손 곧 패역한 백성, 나를 배반하는 자에게 보내노라. 그들과 그 열조가 내게 범죄하여 오늘날까지 이르렀나니[그들과 그 열조가 바로 이 날까지 내게 범죄하였나니] 이 자손은 얼굴이 뻔뻔하고 마음이 강퍅한 자니라. 내가 너를 그들에게 보내노니 너는 그들에게 이르기를 주 여호와의 말씀이 이러하시다 하라.” ‘주 하나님’이라는 원어(아도나이 여호와)는 하나님의 영원하신 주권과 통치권을 잘 나타내는 명칭이다. “주 하나님의 말씀이 이러하시다”는 표현은 오늘날 신구약성경의 권위와 내용을 증거한다.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다. 여기에 오늘날 설교자의 사명과 권위가 있다.

‘패역한,’ ‘배반하는’이라는 원어는 동일하며(마라드) 그 뜻은 ‘거역하다, 불순종하다, 배반하다’라는 뜻이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의 영적 상태를 그렇게 묘사하셨다. 반복된 범죄, 회개하지 않는 마음 상태는 패역하고 완고함을 만든다. 이스라엘의 영적 상태는 얼굴의 뻔뻔함, 마음의 굳고 완고함, 즉 반성도 자책도 두려움도 부끄러움도 통회자복함도 없는 상태이었다. 선지자 예레미야도 예레미야 8:12에 “그들이 가증한 일을 행할 때에 부끄러워하였느냐? 아니라 조금도 부끄러워 아니할 뿐 아니라 얼굴도 붉어지지 아니하였느니라”고 말했었다.

하나님께서는 선지자 에스겔을 이런 이스라엘 백성에게 보내고 계셨다. 그러나 완고하고 패역한 백성에게 보내지는 것은 선지자에게 큰 고충이 아닐 수 없다. 이것은 또한 오늘날 설교자의 고충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은 디모데에게 말하기를, “때가 이르리니 사람이 바른 교훈을 받지 아니하며 귀가 가려워서 자기의 사욕을 좇을 스승을 많이 두고 또 그 귀를 진리에서 돌이켜 허탄한 이야기를 좇으리라. 그러나 너는 모든 일에 근신하여 고난을 받으며 전도인의 일을 하며 네 직무를 다하라”고 하였다(딤후 4:3-5).

[5절] 그들은 패역한 족속이라 듣든지 아니 듣든지 그들 . . . .

하나님께서는 또 말씀하신다. “그들은 패역한 족속이라. 듣든지 아니 듣든지 그들 가운데 선지자 있은 줄은 알지니라.”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을 ‘패역한 족속’이라고 거듭하여 부르셨다(5, 6, 8절)(에스겔서에는 ‘패역한’이라는 말(메리)이 15번이나 나옴).1)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의 은혜를 입은 백성임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을 거역하고 계속 범죄함으로 마음이 굳어지고 패역한 족속이 되었다. “듣든지 아니 듣든지 그들 가운데 선지자 있은 줄은 알지니라”는 말씀은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기회를 주셨기 때문에 그의 심판이 공의로우며 그들로 핑계치 못하게 하신다는 뜻이다.

[6-7절] 인자야, 너는 비록 가시와 찔레와 함께 처하며 . . . .

하나님께서는 또 말씀하신다. “인자야, 너는 비록 가시와 찔레와 함께 처하며 전갈 가운데 거할지라도 그들을 두려워 말고 그 말을 두려워 말지어다. 그들은 패역한 족속이라도 그 말을 두려워 말며 그 얼굴을 무서워 말지어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을 가시와 찔레와 전갈에 비유하셨다. 그것들은 사람의 몸을 찌르고 문다. 그와 같이, 선지자는 이스라엘 백성 가운데 거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전할 때 비난과 욕을 먹으며 배척과 해를 당할 것이다. 구약시대에나 신약시대와 교회시대에나 패역한 무리들은 참 선지자들을 욕하고 핍박하고 치고 죽이기까지 하였다. 그러나 참 선지자는 패역한 무리를 두려워하지 말고 그들의 말을 두려워하지 말고 그들의 얼굴을 무서워하지 말아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또, “그들은 심히 패역한 자라. 듣든지 아니 듣든지 너는 내 말로 고할지어다”고 말씀하신다. 선지자는 회중이 듣든지 아니 듣든지 하나님의 말씀을 충실히 선포해야 한다. 그것이 선지자의 사명이다. 그것이 오늘날 전도자들의 사명이기도 하다.

[8-10절] 인자야, 내가 네게 이르는 말을 듣고 그 패역한 . . . .

에스겔은 또 말한다. “인자야, 내가 네게 이르는 말을 듣고 그 패역한 족속같이 패역하지 말고 네 입을 벌리고 내가 네게 주는 것을 먹으라 하시기로 내가 보니 한 손이 나를 향하여 펴지고 그 손에 두루마리 책이 있더라. 그가 그것을 내 앞에 펴시니 그 안팎에 글이 있는데 애가와 애곡과 재앙의 말이 기록되었더라.”

하나님께서는 에스겔에게 “[너는] 그 패역한 족속같이 패역하지 말고 네 입을 벌리고 내가 네게 주는 것을 먹으라”고 말씀하셨다. 백성은 패역할지라도 선지자는 하나님께 순종해야 할 것이다. 선지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그대로 받아먹고 하나님의 말씀을 그대로 전해야 할 것이다. 그는 그 말씀을 가감치 말고 회중을 두려워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에스겔에게 두루마리 책을 펴 보이셨는데 그 책에는 안팎에 글들이 가득하였다. 그것은 하나님의 계시의 충족함을 나타낸다. 거기에 성경의 충족함이 나타나 있다. 그 내용은 애가와 애곡과 재앙의 말들이었다. 지금 이스라엘 백성을 향하신 하나님의 메시지는 복의 선포가 아니고 재앙의 선포이었다.

본장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우리는 이스라엘처럼 패역하지 말자. 이스라엘 백성은 반복하여 죄를 짓고 참으로 회개하지 않았다. 그들의 마음은 굳어졌고 얼굴은 뻔뻔하였다. 그러나 우리는 그러지 말고 온유함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달게 받고 그것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고(살전 2:13) 아멘으로 받아야 한다.

둘째로, 우리는 하나님의 뜻에 순종해야 한다. 에스겔은 하나님의 사명을 달게 받아야 했다. 죄인을 위해 눈물을 흘리고 전도하고 사랑하고 그를 구원하는 사역은 힘들지만 하나님께서 맡기신 일이다. 여기에 하나님의 자비하심과 오래 참으심이 있다. 우리는 우리가 하나님과 원수되었을 때 하나님의 아들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목되었음을 기억하고 죄인을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뜻에 순종해야 한다.

셋째로, 우리가 하나님의 일을 하려면 우리는 먼저 하나님의 말씀을 먹어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에스겔에게 “네 입을 벌리고 내가 네게 주는 것을 먹으라”고 말씀하셨다. 우리는 성경책을 많이 읽고 많이 듣고 배워야 하나님의 일꾼이 될 수 있고 교회의 일꾼이 될 수 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많이 먹자. 성경을 많이 읽고 많이 듣고 배우자. 그래서 하나님의 충성된 일꾼들이 되자.

 

 

3장: 이스라엘의 파수꾼으로 세우심

1-15절, 에스겔을 준비시키심

[1-3절] 그가 또 내게 이르시되 인자야, 너는 받는 것을 . . . .

에스겔은 말한다. “그가 또 내게 이르시되 인자야, 너는 받는 것을 먹으라. 너는 이 두루마리를 먹고 가서 이스라엘 족속에게 고하라 하시기로 내가 입을 벌리니 그가 그 두루마리를 내게 먹이시며 내게 이르시되 인자야, 내가 네게 주는 이 두루마리로 네 배에 넣으며 네 창자에 채우라 하시기에 내가 먹으니 그것이 내 입에서 달기가 꿀 같더라.” 하나님께서는 에스겔에게 두루마리 책을 주시며 먹으라고 말씀하셨다(본문에 ‘두루마리’라는 말이 세 번 나옴). 그 두루마리에는 에스겔이 전해야 할 하나님의 모든 말씀이 기록되어 있었다.

에스겔은 입을 벌려 그것을 받아먹었다. 아무리 무엇을 먹이려 해도 입을 다물고 있으면 먹일 수 없다. 먹는 자는 입을 벌려야 먹을 수 있다. 말씀을 받는 자는 열린 마음, 즐거운 마음을 가져야 말씀을 잘 받을 수 있다(10절). 에스겔은 그것을 먹어야 가서 전할 수 있다. 그는 조금 먹을 것이 아니라 배에, 창자에 채워야 했다(3절). 하나님의 종들은 성경을 주야로 읽고 묵상함으로 말씀의 충만함을 얻어야 하나님의 뜻을 바르게 잘 전할 수 있다. 에스겔이 먹은 그 두루마리의 말씀은 그의 입에서 달기가 꿀 같았다.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에게 참으로 기쁘고 복된 말씀이다. 시편 저자는 하나님의 말씀의 맛이 꿀보다 더 달고 송이꿀보다 더 달다고 말했다(시 19:10; 119:103).

[4-7절] 그가 또 내게 이르시되 인자야, 이스라엘 족속에게 . . . .

에스겔은 또 말한다. “그가 또 내게 이르시되 인자야, 이스라엘 족속에게 가서 내 말로 그들에게 고하라. 너를 방언이 다르거나 말이 어려운 백성에게 보내는 것이 아니요 이스라엘 족속에게 보내는 것이라. 너를 방언이 다르거나 말이 어려워 네가 알아듣지 못할 열국에 보내는 것이 아니니라. 내가 너를 그들에게 보내었더면 그들은 정녕 네 말을 들었으리라. 그러나 이스라엘 족속은 이마가 굳고 마음이 강퍅하여 네 말을 듣고자 아니하리니 이는 내 말을 듣고자 아니함이니라[이스라엘 족속은 네 말을 듣고자 아니하리니 이는 내 말을 듣고자 아니함이니라. 이는 이스라엘 모든 족속이 이마가 굳고 마음이 강퍅함이니라].”

하나님께서 에스겔을 보내시는 대상은 말을 알아듣지 못하거나 방언이 어려운 이방인들이 아니었다. 그는 만일 그가 그를 이방인들에게 보내셨더라면 그들이 그의 말을 들었을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신약시대에 바울이 전도할 때도 유대인들은 바울의 말을 대적하였으나 이방인들은 듣고 기쁘게 받았다(행 13:44-48).

하나님께서 에스겔을 보내는 대상은 이스라엘 족속이다(이스라엘 족속이라는 원어는 ‘이스라엘 집’이라는 말로 본서에 75회 나옴).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께서 선지자를 통해 주신 말씀을 받아들여야 한다. 전도자의 말을 듣는 것은 그를 보내신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이요 그의 말을 거절하는 것은 그를 보내신 하나님과 그의 말씀을 배척하고 거절하는 것이다(마 10:40).

[8-11절] 내가 그들의 얼굴을 대하도록 네 얼굴을 굳게 . . . .

하나님께서는 또 그에게, “내가 그들의 얼굴을 대하도록 네 얼굴을 굳게 하였고 그들의 이마를 대하도록 네 이마를 굳게 하였으되 네 이마로 화석보다 굳은 금강석같이 하였으니 그들이 비록 패역한 족속이라도 두려워 말며 그 얼굴을 무서워 말라”고 말씀하셨고, 또 “인자야, 내가 네게 이를 모든 말을 너는 마음으로 받으며 귀로 듣고 사로잡힌 네 민족에게로 가서 그들이 듣든지 아니 듣든지 그들에게 고하여 이르기를 주 여호와의 말씀이 이러하시다 하라”고 하셨다.

에스겔이 보냄을 받은 이스라엘 족속은 얼굴이 굳고 이마가 굳은 자들이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그의 얼굴과 그의 이마를 굳게 하시되, 부싯돌보다 더 굳은 금강석같이 굳게 하셨다. 그러므로 에스겔은 그 패역한 족속을 두려워하거나 무서워하지 말아야 했다. 또 그는 하나님의 모든 말씀을 마음으로 받아 그들이 듣든지 아니 듣든지 그들에게 “주 여호와의 말씀이 이러하시다”라고 선포하여야 했다. 사도 바울도 디모데에게 비슷한 교훈을 하였다.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라. 범사에 오래 참음과 가르침으로 경책하며 경계하며 권하라. [이는] 때가 이르리니 사람이 바른 교훈을 받지 아니하며 귀가 가려워서 자기의 사욕을 좇을 스승을 많이 두고 또 그 귀를 진리에서 돌이켜 허탄한 이야기를 좇으리라[좇을 것임이니라]”(딤후 4:2-4).

[12-15절] 때에 주의 신이 나를 들어 올리시는데 내 뒤에 . . . .

에스겔은 또 말한다. “때에 주의 신[영]이 나를 들어 올리시는데 내 뒤에 크게 울리는 소리가 들려 이르기를 여호와의 처소에서 나는 영광을 찬송할지어다 하니 이는 생물들의 날개가 서로 부딪히는 소리와 생물 곁에 바퀴 소리라. 크게 울리는 소리더라. 주의 신[영]이 나를 들어올려 데리고 가시는데 내가 근심하고 분한 마음으로 행하니 여호와의 권능이 힘있게 나를 감동하시더라. 이에 내가 델아빕에 이르러 그 사로잡힌 백성 곧 그발강가에 거하는 자들에게 나아가 그 중에서 민답히 7일을 지내니라.”

그때에 에스겔은 하나님의 영이 그를 들어올리시는 것을 느꼈다. 그는 또 여호와의 영광을 찬송하는 큰 소리를 들었고 네 생물들의 날개가 서로 부딪히는 소리와 생물들 곁의 바퀴 소리와 요란한 큰 소리를 들었다. 하나님의 영은 그를 들어올려 데려가셨고 그는 괴롭고 분한 심령으로 행하였다. 그가 괴롭고 분한 심령을 가진 것은 이스라엘 백성의 극심한 죄악과 하나님의 진노로 인한 바벨론 군대의 침공 때문이었을 것이다. 여호와의 손이 힘있게 그 위에 있었고 그의 권능이 힘있게 그를 감동하셨다. 하나님께서는 그를 그발강가에 거하는 사로잡힌 백성들 가운데로 인도하셨다. 에스겔은 그곳에서 당황하고 놀란 마음으로 7일 동안 지냈다. 하나님의 사명을 받은 그는 괴롭고 분한 심령과 당황하고 놀란 심령이었지만 성령의 인도하심과 하나님의 권능의 손길 아래 있었던 것이다.

본문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우리는 성경을 사랑하자. 하나님께서는 에스겔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기록한 두루마리를 먹게 하셨다.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다. 성경은 정금보다 더 귀한 말씀이요 꿀보다 더 단 말씀이다(시 19:10). 그러므로 성경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는 복되다(시 1:2-3). 우리는 하나님의 기록된 말씀인 성경책을 사랑하자.

둘째로, 우리는 패역한 사람들에게도 전도해야 한다. 에스겔은 이마가 굳고 마음이 강퍅한 자들에게 보내졌다. 그들은 그가 전하는 말씀을 들으려 하지 않는 자들이었다. 그러나 그는 “여호와의 말씀이 이러하시다”고 그들에게 전하여야 했다. 우리의 전도 대상자들도 때때로 패역한 자들이다. 그러나 우리는 그들에게도 “하나님의 말씀이 이러합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라고 담대히 전해야 한다.

셋째로, 전도를 위해서는 몇 가지가 필요하다. 첫째, 강한 마음이다. 하나님께서는 에스겔에게 부싯돌보다 더 굳은 금강석 같은 이마를 주셨다. 그는 에스겔에게 그들을 두려워하거나 무서워하지 말라고 말씀하셨다. 둘째, 바른 말씀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바른 말씀을 전해야 한다. 셋째, 하나님의 권능이다. 에스겔은 심령의 괴로움과 놀람 중에도 하나님의 권능이 그 위에 있었다. 주께서는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 . . 내 증인이 되리라”고 말씀하셨다(행 1:8).

 

16-27절, 파수꾼으로 세우심

[16-17절] 7일 후에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하여 . . . .

에스겔은 말한다. “7일 후에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하여 가라사대 인자야, 내가 너를 이스라엘 족속의 파수꾼으로 세웠으니 너는 내 입의 말을 듣고 나를 대신하여 그들을 깨우치라.” 에스겔이 델아빕 그발강가에 거하는 그 사로잡힌 백성들 가운데서 7일을 지낸 후 하나님의 말씀이 그에게 임하였다. 하나님의 말씀은 구체적 시점과 상황에서 선지자에게 임했다. 하나님께서는 그를 이스라엘 백성의 파수꾼으로 세우셨다. 파수꾼은 군대의 경계병 혹은 보초병과 같다. 에스겔을 파수꾼이라 부르신 것은 하나님의 입의 말씀을 듣고 그를 대신해 이스라엘 백성을 깨우치고 경고하게 하시기 위함이었다.

[18-19절] 가령 내가 악인에게 말하기를 너는 꼭 죽으리라 . . . .

하나님께서는 또 말씀하신다. “가령 내가 악인에게 말하기를 너는 꼭 죽으리라 할 때에 네가 깨우치지 아니하거나 말로 악인에게 일러서 그 악한 길을 떠나 생명을 구원케 하지 아니하면, 그 악인은 그 죄악 중에서 죽으려니와 내가 그 핏값을 네 손에서 찾을 것이고, 네가 악인을 깨우치되 그가 그 악한 마음과 악한 행위에서 돌이키지 아니하면, 그는 그 죄악 중에서 죽으려니와 너는 네 생명을 보존하리라.”

파수꾼의 사명은 엄숙하였다. 악인의 경우, 만일 하나님께서 악인에게 너는 반드시 죽으리라고 말씀하시는데, 파수꾼이 그 악인에게 경고하고 깨우치지 않으면 그 악인은 그 죄악 중에 죽을 것이지만 하나님께서 그의 핏값을 파수꾼의 손에서 찾으실 것이다. 파수꾼이 그 사명을 다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은 “[내가] 만일 복음을 전하지 아니하면 내게 화가 있을 것임이로라”고 말했다(고전 9:16). 그러나 파수꾼이 악인에게 경고하고 깨우쳤는데도 그 악인이 그 악한 마음과 악한 행위에서 떠나지 않고 회개치 않았다면 그는 그 죄악 중에 죽을 것이며 파수꾼의 영혼은 보존될 것이다. 파수꾼의 잘못은 없다. 그는 그 사명을 다했다.

[20-21절] 또 의인이 그 의에서 돌이켜 악을 행할 때에는 . . . .

하나님께서는 또 말씀하신다. “또 의인이 그 의에서 돌이켜 악을 행할 때에는 이미 행한 그 의는 기억할 바 아니라. 내가 그 앞에 거치는 것을 두면 그가 죽을지니 이는 네가 그를 깨우치지 않음이라. 그가 그 죄 중에서 죽으려니와 그 핏값은 내가 네 손에서 찾으리라. 그러나 네가 그 의인을 깨우쳐 범죄치 않게 하므로 그가 범죄치 아니하면 정녕 살리니 이는 깨우침을 받음이며 너도 네 영혼을 보존하리라.”

의인의 경우에, 의인이 과거에 많은 의를 행했다 하더라도 파수꾼이 그를 경고하고 깨우치지 않으므로 그 의에서 떠나 악을 행하면 이미 행한 의는 아무 소용이 없으며 그는 죽을 것이다. 죄는 작은 죄라도 영혼을 멸망시킬 만하다(약 2:10). 우리의 선한 행위는 질적으로도 부족하고 시간적으로도 영속적이지 못하여 구원의 공로가 될 수 없다. 우리의 의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뿐이다.

의인이 파수꾼의 경고와 깨우침이 없어서 범죄하여 멸망할 경우, 하나님께서는 그 핏값을 파수꾼에게서 찾으실 것이다. 그 파수꾼이 자기 사명을 다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파수꾼이 그 의인을 경고하고 깨우쳐 그가 범죄치 않으면 그 의인은 살 것이며 그 파수꾼도 그 영혼을 보존할 것이다. 그는 그의 사명을 다했다.

[22-23절] 여호와께서 권능으로 거기서 내게 임하시고 또 . . . .

에스겔은 또 말한다. “여호와께서 권능으로 거기서 내게 임하시고 또 내게 이르시되 일어나 들로 나아가라. 내가 거기서 너와 말하리라 하시기로 내가 일어나 들로 나아가니 여호와의 영광이 거기 머물렀는데 내가 전에 그발강가에서 보던 영광과 같은지라. 내가 곧 엎드리니.” 하나님께서는 권능으로 에스겔에게 임하시고 일어나 들로 나가게 하셔서 거기서 그와 말하기를 원하셨다. 그는 때때로 주의 종들을 조용한 곳으로 부르신다. 예수께서는 시시때때로 산이나 들판의 한적한 곳에서 기도하곤 하셨다(막 1:35; 14:23). 에스겔은 일어나 들로 나갔는데 거기서 그는 전에 그발강가에서 보았던 여호와의 영광을 보았고 하나님과 대면하며 그 앞에 엎드러졌다.

[24-25절] 주의 신이 내게 임하사 나를 일으켜 세우시고 . . . .

에스겔은 또 말한다. “주의 신[영]이 내게 임하사 나를 일으켜 세우시고 내게 말씀하여 가라사대 너는 가서 네 집에 들어가 문을 닫으라. 인자야, 무리가 줄로 너를 동여매리니 네가 그들 가운데서 나오지 못할 것이라.” 이것은 에스겔이 무리들의 억압과 방해와 배척과 핍박으로 인해 자기 집에 은둔하게 될 것을 보이신 것 같다. 에스겔은 공적인 설교 사역을 잠시 중단하고 그의 집에서 하나님과 깊은 교통의 시간을 가지며 그에게 찾아오는 자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사적 설교 사역을 어느 기간 동안 할 것이라는 뜻일 것이다.

[26-27절] 내가 네 혀로 네 입천장에 붙게 하여 너로 . . . .

하나님께서는 또 말씀하신다. “내가 네 혀로 네 입천장에 붙게 하여 너로 벙어리 되어 그들의 책망자가 되지 못하게 하리니 그들은 패역한 족속임이니라. 그러나 내가 너와 말할 때에 네 입을 열리니 너는 그들에게 이르기를 주 여호와의 말씀이 이러하시다 하라. 들을 자는 들을 것이요 듣기 싫은 자는 듣지 아니하리니 그들은 패역한 족속임이니라.” 하나님께서 에스겔로 책망의 설교자가 되지 못하게 하신 것은 이스라엘 백성을 향한 징벌이었다. 설교자의 입은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다. 세례 요한의 아버지 스가랴를 벙어리 되게 하셨던 것처럼 그가 입을 닫으시면 설교자는 벙어리나 더듬거리는 자가 될 것이다. 그가 말씀을 주지 않으실 때 바른 말씀을 전할 자는 아무도 없다. 사람이 위로부터 받지 않으면, 하나님의 말씀을 바르게 전할 수 없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에스겔과 더불어 말씀하실 때 에스겔의 입은 열릴 것이다(겔 24:27; 33:21-22).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신 대로 사람들의 입을 지으신 자가 하나님이시며(출 4:11-12), 그가 입을 여시면 선지자의 입이 열릴 것이다. 그때 그는 “주 여호와의 말씀이 이러하시다”라고 외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에스겔이 입을 열어 말씀을 전할 때에도 듣는 자는 들을 것이지만, 듣기 싫어하는 자는 듣지 않을 것이다.

본장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파수꾼의 사명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그 말씀을 하나님 대신에 전하는 것이다. 파수꾼은 이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 먼저 하나님의 말씀, 곧 성경말씀을 잘 들어야 할 것이다. 오늘날 전도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기 위해 먼저 성경말씀을 주야로 묵상하고 성경을 배우기를 힘써야 할 것이다. 우리는 다 파수꾼과 같다. 우리는 성경을 잘 배워 파수꾼의 사명을 다하자.

둘째로, 파수꾼의 사명은 악인을 경고하고 깨우쳐 그 죄악에서 떠나게 하며 의인도 경고하고 깨우쳐 범죄치 않도록 하는 것이다. 파수꾼이 죄를 경고하고 깨우치는 일을 바르게 하면, 듣는 자들이 비록 거역하여 멸망한다 할지라도 그의 책임은 없지만, 만일 경고하고 깨우치는 일을 하지 않으면 그 책임이 파수꾼에게로 돌아가고 하나님께서는 그 멸망하는 자의 핏값을 파수꾼에게 찾으실 것이다.

셋째로, 파수꾼의 입은 하나님의 손안에 있다. 파수꾼은 하나님의 도구로 쓰임을 받는 자이다. 하나님께서는 파수꾼의 입을 닫기도 하시고 열기도 하신다. 하나님께서 그의 입을 여실 때 그는 말씀을 전하는 자가 될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의 입을 열어 말씀을 전하게 해주시기를 구하며 또 담대히 말씀을 전하는 자들이 되자.

 

  

 4장: 예루살렘 멸망의 예표

[1-3절] 너 인자야, 박석을 가져다가 네 앞에 놓고 한 성읍 . . . .

하나님께서는 에스겔에게 말씀하신다. “너 인자야, 박석을 가져다가 네 앞에 놓고 한 성읍 곧 예루살렘을 그 위에 그리고 그 성읍을 에워싸되 운제를 세우고 토둔을 쌓고 진을 치고 공성퇴를 둘러 세우고 또 전철을 가져다가 너와 성읍 사이에 두어 철성을 삼고 성을 향하여 에워싸는 것처럼 에워싸라. 이것이 이스라엘 족속에게 징조가 되리라.” 하나님께서는 에스겔에게 예루살렘 성이 포위되는 모형을 만들게 하셨다. 그는 박석을 가져다가 그 앞에 놓고 한 성읍 곧 예루살렘을 그 위에 그리게 하셨다. ‘박석’(레베나])은 ‘흰색의 토판(土版)’을 말한다. 또 그는 그 성읍을 에워싸되 운제를 세우고 토둔을 쌓고 진을 치고 공성퇴를 둘러 세우게 하셨다. ‘운제’는 포위벽을 가리키고, 토둔은 둑을 말하며, 공성퇴는 성벽을 부수는 큰 쇠망치나 나무망치를 가리킨다. 또 그는 ‘전철’ 곧 철판을 가져다가 에스겔과 성읍 사이에 두어 ‘철성’ 곧 철성벽을 삼고 성을 향하여 에워싸는 것처럼 에워싸라고 말씀하신다. 하나님의 이 말씀은 예루살렘 성이 강력한 군대에 의해 포위되어 결국 멸망할 것을 예시하신 것이다. 에스겔이 만든 그 모형은 예루살렘 성의 멸망의 징조가 될 것이다.

[4-8절] 너는 또 좌편으로 누워 이스라엘 족속의 죄악을 . . . .

하나님께서는 또 말씀하신다. “너는 또 좌편으로 누워 이스라엘 족속의 죄악을 당하되 네 눕는 날수대로 그 죄악을 담당할지니라. 내가 그들의 범죄한 햇수대로 네게 날수를 정하였나니 곧 390일이니라. 너는 이렇게 이스라엘 족속의 죄악을 담당하고 그 수가 차거든, 너는 우편으로 누워 유다 족속의 죄악을 담당하라. 내가 네게 40일로 정하였나니 1일이 1년이니라. 너는 또 에워싼 예루살렘을 향하여 팔을 벗어메고 예언하라. 내가 줄로 너를 동이리니 네가 에워싸는 날이 맟도록 몸을 이리 저리 돌리지 못하리라.”

하나님께서는 에스겔로 하여금 390일 동안 왼쪽으로 누워 이스라엘 족속의 죄악을 담당하게 하고, 40일 동안 오른쪽으로 누워 유다 족속의 죄를 담당하게 하셨다. 1일은 1년을 의미했다. 또 그는 에스겔에게 예루살렘을 향해 팔을 걷고 예언하라고 말씀하시고 또 그가 줄로 그를 동이실 것이며 예루살렘이 에워싸이는 날이 마치도록 그가 몸을 이리 저리 돌리지 못하리라고 말씀하신다. 본문의 숫자의 의미는 잘 알 수 없으나, 390년은 대략 북방 이스라엘 왕 여로보암이 벧엘과 단에 금송아지를 세운 때(대략 주전 933년)로부터 그들이 바벨론 포로생활에서 돌아올 때(주전 537년)까지를 가리키는 것이 아닌가 생각되고, 40년은 남방 유다의 가장 악한 왕 므낫세의 약 40년간의 우상숭배적 통치 기간을 가리키는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9-12절] 너는 밀과 보리와 콩과 팥과 조와 귀리를 . . . .

하나님께서는 또 말씀하신다. “너는 밀과 보리와 콩과 팥과 조와 귀리를 가져다가 한 그릇에 담고 떡을 만들어 네 모로 눕는 날수 곧 390일에 먹되 너는 식물을 달아서 하루 20세겔 중씩 때를 따라 먹고 물도 힌 6분 1씩 되어서 때를 따라 마시라. 너는 그것을 보리 떡처럼 만들어 먹되 그들의 목전에서 인분 불을 피워 구울지니라.” 1세겔은 약 10그램이며 1힌은 약 3.7리터이다. 떡 20세겔은 약 200그램의 떡을 가리키고, 물 6분의 1 힌은 약 0.6리터이다. 이것은 너무 작은 양이다. 이것은 그들이 양식이 부족하고 겨우 연명하게 될 것을 보인다. 하나님께서 에스겔에게 그 떡을 보리떡처럼 만들되 이방사람들의 눈앞에서 인분(人糞) 불을 피워 구우라고 말씀하신 것은 그들이 얼마나 비천한 상태에 떨어질 것인지를 보인다.

[13-17절] 여호와께서 또 가라사대 내가 열국으로 쫓아 . . . .

에스겔은 또 말한다. “여호와께서 또 가라사대 내가 열국으로 쫓아 흩을 이스라엘 자손이 거기서 이와 같이 부정한 떡을 먹으리라 하시기로 내가 가로되 오호라, 주 여호와여, 나는 영혼을 더럽힌 일이 없었나이다. 어려서부터 지금까지 스스로 죽은 것이나 짐승에게 찢긴 것을 먹지 아니하였고 가증한 고기를 입에 넣지 아니하였나이다.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쇠똥으로 인분을 대신하기를 허하노니 너는 그것으로 떡을 구울지니라.”

에스겔은 또 말한다. “또 내게 이르시되 인자야, 내가 예루살렘에서 의뢰하는 양식을 끊으리니 백성이 경겁 중에 떡을 달아 먹고 민답 중에 물을 되어 마시다가 떡과 물이 결핍하여 피차에 민답하여 하며 그 죄악 중에서 쇠패하리라.” ‘의뢰하는 양식’이라는 원어는 ‘양식의 지팡이’라는 말로서 ‘양식의 공급’(BDB, NIV)이라는 뜻인 것 같다. ‘경겁’이라는 원어는 ‘근심’이라는 뜻이며 ‘민답’이라는 원어는 ‘두려움’이라는 뜻이다(BDB).

본장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예루살렘 성의 멸망이나 이스라엘의 포로생활은 하나님의 작정과 섭리 가운데 이루어질 것이다. 에스겔에게 지시하신 일들은 하나님의 뜻을 예시하였다. 세상의 크고 작은 모든 일이 하나님의 작정과 섭리 가운데 이루어진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을 범사에 인정하고 경외하며 모든 일을 그에게 의탁해야 한다.

둘째로, 이스라엘 백성은 죄 때문에 비참하게 될 것이다. 이스라엘은 온갖 우상들을 숭배하였고 부도덕하였다. 그 결과, 그들은 하나님의 진노로 멸망할 것이다. 그들은 먹을 양식이 부족하고 부정한 떡을 먹을 것이며, 이방에 포로가 되어 많은 고생을 할 것이다. 그들은 그 죄악 중에서 쇠패할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상숭배를 버리고 참 하나님을 섬기며 그의 계명을 순종하고 의와 선을 행해야 한다.

 

 

5장: 예루살렘의 멸망을 예언함

[1-4절] 인자야, 너는 날카로운 칼을 취하여 삭도를 삼아 . . . .

하나님께서는 말씀하신다. “인자야, 너는 날카로운 칼을 취하여 삭도(타아르 학갈라빔)[면도칼]를 삼아 네 머리털과 수염을 깎아서 저울에 달아 나누었다가 그 성읍을 에워싸는 날이 차거든 너는 터럭 3분지 1은 성읍 안에서 불사르고 3분지 1은 가지고 성읍 사방에서 칼로 치고 또 3분지 1은 바람에 흩으라. 내가 그 뒤를 따라 칼을 빼리라. 너는 터럭 중에서 조금을 가져 네 옷자락에 싸고 또 그 가운데서 얼마를 가져 불에 던져 사르라. 그 속에서 불이 이스라엘 온 족속에게로 나오리라.” 에스겔은 머리털과 수염을 보관했다가 예루살렘 성이 에워싸이는 날 그 3분지 1은 성 안에서 불사르고 3분지 1은 성 주위에서 칼로 치고 3분지 1은 바람에 흩어야 했다. 그러면 그 뒤를 따라 하나님께서 칼을 빼실 것이다. 에스겔은 또 그 털들 중 일부를 가져 그의 옷자락에 싸고 그 가운데서 조금 가져다가 불에 던져 살라야 하였다. 그러면 그 속에서 불이 이스라엘 온 족속에게로 나올 것이다. 이것은 예루살렘 멸망에 대한 예언이다.

[5-7절] 주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이것이 곧 예루살렘이라. . . .

에스겔은 또 말한다. “주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이것이 곧 예루살렘이라. 내가 그를 이방인 가운데 두어 열방으로 둘러 있게 하였거늘 그가 내 규례를 거스려서[거슬러서] 이방인보다 악을 더 행하며 내 율례도 그리함이 그 둘러 있는 열방보다 더하니 이는 그들이 내 규례를 버리고 내 율례를 행치 아니하였음이니라. 그러므로 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너희 요란함이 너희를 둘러 있는 이방인보다 더하여 내 율례를 행치 아니하며 내 규례를 지키지 아니하고 너희를 둘러 있는 이방인의 규례대로도 행치 아니하였느니라.”

‘주 여호와’는 모든 역사를 주관하시고 자기 백성을 가장 선한 길로 이끄시는 주권적 섭리자 하나님을 뜻한다. 그가 에스겔에게 주신 말씀은 예루살렘 성에 관한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우선 예루살렘 성의 죄에 대해 말씀하신다. 예루살렘 성은 이방 나라들 가운데 처해 있으면서 하나님의 규례와 율례를 버리고 행하지 않으며 이방인들보다 더 악을 행하였다. 부패한 교회는 이방인들보다 더 악하였다. 그들은 심지어 그들 주위에 있는 이방인들의 규례대로도 행치 않았다. 그것은 그들이 이방 나라들이 양심에 의거하여 만든 도덕적 법들조차도 지키지 않았다는 뜻일 것이다.

[8-10절] 그러므로 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나 곧 내가 . . . .

하나님께서는 또 말씀하신다. “그러므로 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나 곧 내가 너를 치며 이방인의 목전에서 너의 중에 벌을 내리되 네 모든 가증한 일로 인하여 내가 전무후무하게 네게 내릴지라. 그리한즉 너의 중에서 아비가 아들을 먹고 아들이 그 아비를 먹으리라. 내가 벌을 네게 내리고 너의 중에 남은 자를 다 사방에 흩으리라.” 하나님께서는 이제 예루살렘 성의 멸망을 선언하신다. 예루살렘 성의 멸망은 그들의 죄에 대한 하나님의 징벌이었다. 그들의 죄는 하나님 앞에서 가증한 일들이었다. 하나님께서는 죄를 미워하신다. 그는 인간의 가증한 죄에 대해 징벌하실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그들은 이방인들의 눈앞에서 전무후무한 벌을 받을 것이다. 심지어 아비가 아들을 먹고 아들이 그 아비를 먹는 참혹한 지경에 떨어질 것이고 또 그 중에 남은 자들은 사방에 흩어질 것이다.

[11-13절] 그러므로 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가 나의 . . . .

하나님께서는 또 말씀하신다. “그러므로 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가 나의 삶을 두고 맹세하노니 네가 모든 미운 물건과 모든 가증한 일로 내 성소를 더럽혔은즉 나도 너를 아껴 보지 아니하며 긍휼을 베풀지 아니하고 미약하게 하리니[눈을 돌리리니] 너의 가운데서 3분지 1은 온역으로 죽으며 기근으로 멸망할 것이요 3분지 1은 너의 사방에서 칼에 엎드러질 것이며 3분지 1은 내가 사방에 흩고 또 그 뒤를 따라 칼을 빼리라. 이와 같이, 내 노가 다한즉 그들에게 향한 분이 풀려서 내 마음이 시원하리라. 내 분이 그들에게 다한즉 나 여호와가 열심으로 말한 줄을 그들이 알리라.”

그들은 모든 미운 물건과 모든 가증한 일로 하나님의 성소를 더럽혔다. 그것은 우상숭배를 가리킨다. 그들은 심지어 성전 뜰에 해와 달과 별들을 위한 단들을 쌓음으로 성소를 더럽혔다(왕하 21:45).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내가 나의 삶을 두고 맹세하노니”라고 말씀하시면서 반드시 그 성을 징벌하실 것을 말씀하신다. 그 성은 반드시 멸망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아껴 보지 않으시고 긍휼을 베풀지 않으시고 그의 눈을 그들에게서 돌리실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사랑과 자비가 풍성하신 자이시지만, 죄에 대해서는 매우 엄위하시고 징벌하시다. 11절에 ‘미약하게 하리라’는 원어(에그라)는 ‘(눈을) 돌리다(withdraw)’(BDB, NASB)라는 뜻이라고 한다.

또 하나님께서는 본장 서두에 에스겔에게 주신 모형적 행위의 뜻을 나타내신다. 그들 가운데 3분지 1은 온역과 기근으로 죽을 것이며 3분지 1은 칼에 엎드러질 것이며 3분지 1은 사방에 흩어질 것이다. 이와 같이 하나님의 노가 다하면 그들을 향한 그의 분이 풀려서 그의 마음이 시원할 것이다.

[14-17절] 내가 또 너로 황무케 하고 너를 둘러 있는 . . . .

하나님께서는 또 말씀하신다. “내가 또 너로 황무케 하고 너를 둘러 있는 이방인 중에서 모든 지나가는 자의 목전에 능욕거리가 되게 하리니 내 노와 분과 중한 책망으로 네게 벌을 내린즉 너를 둘러 있는 이방인에게 네가 수욕과 조롱을 당하고 경계와 괴이한 것이 되리라. 나 여호와의 말이니라. 내가 멸망케 하는 기근의 독한 살로 너희를 멸하러 보내되 기근을 더하여 너희의 의뢰하는 양식을 끊을 것이라. 내가 기근과 악한 짐승을 너희에게 보내어 외롭게 하고 너희 가운데 온역과 살육으로 행하게 하고 또 칼이 너희에게 임하게 하리라. 나 여호와의 말이니라.”

하나님의 진노와 징벌로 예루살렘 성은 황폐해지고 이방 나라들 중에서 모욕거리가 되고 수치와 조롱을 당하며 경계와 두려움이 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의 죄에 대해 엄격한 공의로 징벌하심으로 인간의 교만을 꺾으시고 인간이 아무것도 아님을 깨닫게 하실 것이다. 그는 또 멸망케 하는 기근의 독한 살로 그들을 멸하려 보내실 것이다. 기근은 하나님께서 내리시는 무서운 징벌과 재앙의 하나이다. 그는 그들의 ‘양식의 지팡이’ 혹은 양식의 공급을 끊으실 것이다. 그는 또 그들에게 기근과 악한 짐승, 무서운 전염병과 칼을 보내실 것이다.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는 기근과 무서운 전염병, 기근, 전쟁의 칼, 그리고 사방에 흩어짐으로 그들을 징벌하실 것이다.

본장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사람은 범죄하면 벌을 받는다. 이것은 모든 사람에게 적용되며 하나님의 백성에게도 예외가 아니다. 그러므로 범죄하는 자는 하나님의 징벌을 받을 각오를 해야 한다. 둘째로, 하나님의 벌은 매우 무섭고 혹독하다. 하나님께서는 기근과 무서운 전염병, 칼과 사방으로의 흩어짐으로 치시고, 심지어 아비가 아들을 먹고 아들이 그 아비를 먹는 끔찍한 일까지 벌어질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벌을 두려워해야 하고 죄를 회개해야 한다. 셋째로, 성도의 마땅하고 복된 길은 하나님의 규례대로 사는 것이다. “행위 완전하여 여호와의 법에 행하는 자가 복이 있음이여, 여호와의 증거를 지키고 전심으로 여호와를 구하는 자가 복이 있도다”(시 119:1-2).

 

 

6장: 이스라엘이 황폐할 것임

[1-4절]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하여 가라사대 인자야 . . . .

에스겔은 말한다.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하여 가라사대 인자야, 너는 이스라엘 산을 향하여 그들에게 예언하여 이르기를 이스라엘 산들아, 주 여호와의 말씀을 들으라. 주 여호와께서 산과 작은 산과 시내와 골짜기를 대하여 말씀하시기를 나 곧 내가 칼로 너희에게 임하게 하여 너희 산당을 멸하리니 너희 제단이 황무하고 태양상이 훼파될 것이며 내가 또 너희 중에서 살육을 당하여 너희 우상 앞에 엎드러지게 할 것이라.”

여호와의 말씀이 에스겔에게 임하였고 그 내용이 성경에 기록되었다. 성경은 역사의 구체적 상황에서 주신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을 기록한 책이다. 하나님의 모든 뜻은 성경에 기록되어 있고, 성경이 완성된 후부터 오늘날까지 하나님께서는 이 책을 통해 자신의 뜻을 모든 사람에게 알려주신다. 그러므로 성경은 지금도 살아계시며 그의 뜻을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살아 있는 말씀으로 사용된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산들과 작은 산들과 시내들과 골짜기들을 향해, 즉 온 이스라엘 백성들, 모든 유다 백성들에게 “나 곧 내가 칼로 너희에게 임하게 하리라”고 말씀하셨다. 그는 이방 나라로 그들을 침공케 하실 것이다. 그때 특히 그들의 우상숭배의 장소인 산당들이 없어질 것이다. 그들의 제단들이 황무할 것이며 그들의 태양상들이 훼파될 것이다. ‘태양상’이라는 원어(캄마님)는 ‘분향단’이라고 번역하기도 하지만(KB, NASB, NIV), ‘태양상’(sun-pillars)이라는 번역이 타당해 보인다(BDB, Langenscheidt). 또 살육당한 자들은 그들의 우상들 앞에 엎드러질 것이다.

[5-7절] 이스라엘 자손의 시체를 그 우상 앞에 두며 너희 . . . .

하나님께서는 말씀하신다. “이스라엘 자손의 시체를 그 우상 앞에 두며 너희 해골을 너희 제단 사방에 흩으리라. 내가 너희 거하는 모든 성읍으로 사막이 되며 산당으로 황무하게 하리니 이는 너희 제단이 깨어지고 황폐하며 너희 우상들이 깨어져 없어지며 너희 태양상들이 찍히며 너희 만든 것이 다 폐하며 또 너희 중에서 살육을 당하여 엎드러지게 하여 너희로 나를 여호와인 줄 알게 하려 함이니라.”

이스라엘 자손의 시체들은 그 우상 앞에 있고 그들의 해골들은 그 제단들 사방에 흩어져 있을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이 거주하는 모든 성읍을 사막이 되게 하시고 산당들을 황무하게 하실 것이다. 그들의 제단들이 깨어지고 황폐하며 그들의 우상들이 깨어져 없어지고 그들의 태양상들이 찍히며 그들의 만든 것들이 다 폐하여지며 사람들은 살육을 당하여 엎드러질 것이다.

그들이 산당들에, 제단들 주위에, 우상들 앞에 엎드러진다는 말은 그 우상들이 그들을 보호해주지 못하고 구원해주지 못함을 나타낸다. 우상들은 생명 없는 허무한 것들이다. 그것들은 실상 아무것도 아니다. 사람들이 나무나 돌이나 짐승들을 섬기는 것은 헛된 일이며, 심지어 마리아상, 십자가상을 높이는 것도 헛된 일이다.

하나님께서는 “너희로 나를 여호와인 줄 알게 하려 함이니라”고 말씀하신다. 에스겔서에는 ‘안다’는 말(야다)이 98회나 나오며 본장에도 ‘나를 여호와인 줄 안다’는 말이 4번 나온다(7, 10, 13, 14절). 그것은 여호와 하나님을 참 하나님으로, 영원자존자로, 주권적 섭리자와 심판자로 안다는 뜻을 가질 것이다. 참 하나님을 아는 것이 구원이며 영생이다.

[8-10절] 그러나 너희가 열방에 흩어질 때에 내가 너희 . . . .

하나님께서는 또 말씀하신다. “그러나 너희가 열방에 흩어질 때에 내가 너희 중에서 칼을 피하여 이방 중에 남아 있는 자가 있게 할지라. 너희 중 피한 자가 사로잡혀 이방인 중에 있어서 나를 기억하되 그들이 음란한 마음으로 나를 떠나고 음란한 눈으로 우상을 섬겨 나로 근심케 한 것을 기억하고 스스로 한탄하리니 이는 그 모든 가증한 일로 악을 행하였음이라. 그때에야 그들이 나를 여호와인 줄 알리라. 내가 이런 재앙을 그들에게 내리겠다 한 말이 헛되지 아니하니라.” 하나님께서 그들을 열방에 흩으실 때 그들 중에 칼을 피해 이방인들 중에 남아 있는 자들이 있을 것이다. 큰 진노 중에도 남은 자들, 피하는 자들이 있을 것이다. 이것은 그들을 향하신 하나님의 긍휼이다. 그들은 이방에서 포로생활을 하며 자신들이 음란한 마음으로 하나님을 떠났고 음란한 눈으로 우상들을 섬겨 그를 근심케 한 것을 기억하고 스스로 한탄할 것이다. 그들은 그때에야 불신실하게 떠났던 여호와 하나님을 바르게 알게 되며 또한 재앙을 선언하셨던 하나님의 말씀이 진실하였음을 알게 될 것이다.

[11-14절] 주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너는 손뼉을 치고 발을 . . . .

에스겔은 또 말한다. “주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너는 손뼉을 치고 발을 구르며 말할지어다. 오호라, 이스라엘 족속이 모든 가증한 악을 행하므로 필경 칼과 기근과 온역에 망하되 먼 데 있는 자는 온역에 죽고 가까운 데 있는 자는 칼에 엎드러지고 남아 있어 에워싸인 자는 기근에 죽으리라. 이같이 내 진노를 그들에게 이룬즉 그 살육 당한 시체가 그 우상 사이에, 제단 사방에, 각 높은 고개에, 모든 산꼭대기에, 모든 푸른나무 아래에, 무성한 상수리나무 아래 곧 그 우상에게 분향하던 곳에 있으리니 너희가 나를 여호와인 줄 알리라. 내가 내 손을 그들의 위에 펴서 그 거하는 온 땅 곧 광야에서부터 디블라까지[디블라의 광야보다 더](KJV, NASB) 처량하고 황무하게 하리니 그들이 나를 여호와인 줄 알리라.”

손뼉을 치고 발을 구르며 말하는 것은 사람들을 주목시키며 강조하여 말하라는 뜻이다. 이스라엘 족속은 모든 가증한 악을 행하므로 필경 칼과 기근과 무서운 전염병에 망할 것이다. 먼 데 있는 자는 온역에 죽고 가까운 데 있는 자는 칼에 엎드러지고 남아 있어 에워싸인 자는 기근에 죽을 것이다. 하나님의 진노는 이렇게 이루어질 것이다. 하나님의 진노는 칼과 기근과 무서운 전염병으로 임할 것이다. 그 살육당한 자들의 시체들은 그 우상들 사이에, 제단들 사방에, 각 높은 고개들에, 모든 산꼭대기들에, 모든 푸른 나무들 아래에, 무성한 상수리나무들 아래 곧 그 우상들에게 분향하던 곳들에 있을 것이다. 그들이 하나님을 저버리고 음란하듯이 그렇게 열렬히 섬겼던 우상들은 가짜 신들이었고 헛것임이 증명될 것이다. 그들이 거하는 온 땅은 황무하게 될 것이다. 14절에 “광야에서부터 디블라까지”라는 구절은 “디블라의 광야보다 더”라는 뜻일 것이다(KJV, NASB). 그때 그들은 여호와 하나님이 참 하나님이심을 알게 될 것이다.

본장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이스라엘 백성이 열심히 섬겼던 우상들은 헛되었다. 그 모든 산당들과 제단들과 태양상들은 다 헛되었다. 오늘날의 우상은 돈과 쾌락과 과학 등이다. 그것들도 인간에게 참 평안과 행복과 영생을 주지 못하는 허무한 것들이다.

둘째로, 하나님께서는 우상숭배를 진노하셨고 전쟁과 기근과 무서운 전염병으로 치셨고 그 땅을 황폐케 하셨다. 우상숭배는 죄 중에 큰 죄이며 그 보응은 영원한 지옥 불못이다. 우리는 부족한 자들이지만,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죄사함과 의롭다 하심과 영생을 얻었다.

셋째로, 우리는 하나님을 바로 알자. 여호와 하나님만 영원자존하신 참 하나님이시며 창조자이시며 섭리자이시며 심판자이심을 바로 알자. 또 하나님을 바로 섬기며 성경말씀을 믿고 하나님의 뜻대로 모든 우상들과 부도덕한 죄악들을 버리고 오직 의와 선을 힘써 행하자.

 

 

7장: 재앙이 임박함

[1-4절] 여호와의 말씀이 또 내게 임하여 가라사대 너 . . . .

에스겔은 말한다. “여호와의 말씀이 또 내게 임하여 가라사대 너 인자야, 주 여호와 내가 이스라엘 땅에 대하여 말하노라. 끝났도다. 이 땅 사방의 일이 끝났도다. 이제는 네게 끝이 이르렀나니 내가 내 진노를 네게 발하여 네 행위를 국문(鞠問)하고 너의 모든 가증한 일을 보응하리라. 내가 너를 아껴 보지 아니하며 긍휼히 여기지도 아니하고 네 행위대로 너를 벌하여 너의 가증한 일이 너희 중에 나타나게 하리니 너희가 나를 여호와인 줄 알리라.” 3절에 ‘국문한다’는 원어(솨파트)는 ‘판단한다, 심판한다’는 뜻이다.

[5-9절] 주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재앙이로다. 비상한 . . . .

에스겔은 또 말한다. “주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재앙이로다. 비상한 재앙이로다. 볼지어다 임박하도다. 끝이 났도다. 끝이 났도다. 끝이 너를 치러 일어났나니 볼지어다, 임박하도다. 이 땅 거민아, 정한 재앙이 네게 임하도다. 때가 이르렀고 날이 가까왔으니 요란한 날이요 산에서 즐거이 부르는 날이 아니로다. 이제 내가 속히 분을 네게 쏟고 내 진노를 네게 이루어서 네 행위대로 너를 심판하여 네 모든 가증한 일을 네게 보응하되 내가 너를 아껴 보지 아니하며 긍휼히 여기지도 아니하고 네 행위대로 너를 벌하여 너의 가증한 일이 너희 중에 나타나게 하리니 나 여호와가 치는 줄을 네가 알리라.” 7절에 ‘정한 재앙’이라는 원어(체피라)는 ‘왕관, 운명의 때’라는 뜻이며 여기서는 ‘멸망의 때’(doom)(NASB, NIV)를 가리킨다.

[10-13절] 볼지어다, 그 날이로다. 볼지어다 임박하도다. . . .

“볼지어다, 그 날이로다. 볼지어다 임박하도다. 정한 재앙이 이르렀으니 몽둥이가 꽃 피며 교만이 싹났도다. 포학이 일어나서 죄악의 몽둥이가 되었은즉 그들도, 그 무리도, 그 재물도 하나도 남지 아니하고 그 중의 아름다운 것도 없어지리로다. 때가 이르렀고 날이 가까왔으니 사는 자도 기뻐하지 말고 파는 자도 근심하지 말 것은 진노가 그 모든 무리에게 임함이로다. 판 자가 살아 있다 할지라도 다시 돌아가서 그 판 것을 얻지 못하리니 이는 묵시로 그 모든 무리를 가리켜 말하기를 하나도 돌아갈 자가 없겠고 악한 생활로 스스로 강하게 할 자도 없으리라 하였음이로다.” 11절에 ‘아름다운 것’이라는 원어(노하)는 ‘뛰어난 것’을 뜻한다(데오도션 헬라어역, 시마쿠스 헬라어역, 게세니우스, 카일).

[14-22절] 그들이 나팔을 불어 온갖 것을 . . . .

“그들이 나팔을 불어 온갖 것을 예비하였을지라도 전쟁에 나갈 사람이 없나니 이는 내 진노가 그 모든 무리에게 미쳤음이라. 밖에는 칼이 있고 안에는 온역과 기근이 있어서 밭에 있는 자는 칼에 죽을 것이요 성읍에 있는 자는 기근과 온역에 망할 것이며 도망하는 자는 산 위로 피하여 다 각기 자기 죄악 까닭에 골짜기 비둘기처럼 슬피 울 것이며 모든 손은 피곤하고 모든 무릎은 물과 같이 약할 것이라. 그들이 굵은 베로 허리를 묶을 것이요 두려움이 그들을 덮을 것이요 모든 얼굴에는 수치가 있고 모든 머리는 대머리가 될 것이며 그들이 그 은을 거리에 던지며 그 금을 오예물같이 여기리니 이는 여호와 내가 진노를 베푸는 날에 그 은과 금이 능히 그들을 건지지 못하며 능히 그 심령을 족하게 하거나 그 창자를 채우지 못하고 오직 죄악에 빠치는 것이 됨이로다. 그들이 그 화려한 장식으로 인하여 교만을 품었고 또 그것으로 가증한 우상과 미운 물건을 지었은즉 내가 그것으로 그들에게 오예물이 되게 하여 외인의 손에 붙여 노략하게 하며 세상 악인에게 붙여 그들로 약탈하여 더럽히게 하고 내가 또 내 얼굴을 그들에게서 돌이키리니 그들이 내 은밀한 처소를 더럽히고 강포한 자도 거기 들어와서 더럽히리라.” 19절에 ‘오예물’이라는 원어(닛다)는 ‘더러운 것, 가증한 것’을 의미한다.

[23-27절] 너는 쇠사슬을 만들라. 이는 피 흘리는 죄가 . . . .

“너는 쇠사슬을 만들라. 이는 피 흘리는 죄가 그 땅에 가득하고 강포가 그 성읍에 찼음이라. 내가 극히 악한 이방인으로 이르러 그 집들을 점령하게 하고 악한 자의 교만을 그치게 하리니 그 성소가 더럽힘을 당하리라. 패망이 이르리니 그들이 평강을 구하여도 없을 것이라. 환난에 환난이 더하고 소문에 소문이 더할 때에 그들이 선지자에게 묵시를 구하나 헛될 것이며 제사장에게는 율법이 없어질 것이요 장로에게는 모략이 없어질 것이며 왕은 애통하고 방백은 놀람을 옷 입듯하며 거민의 손은 떨리리라. 내가 그 행위대로 그들에게 갚고 그 죄악대로 그들을 국문한즉 그들이 나를 여호와인 줄 알리라.” 24절에 ‘악한 자’라는 원어(앗짐)는 ‘강한 자들, 사나운 자들’이라는 뜻이다. 27절에 ‘그 죄악대로’라는 원어는 문맥상 ‘그들의 공과(功過)대로’(KJV) 혹은 ‘그들의 판단들대로’(NASB)이다.

본장은 몇 가지 진리를 증거한다. 첫째로, 본장은 하나님의 진노에 대해 증거한다. 본장은 하나님께서 진노하시는 하나님이시며(3, 8, 12, 14, 19절), 하나님의 진노가 매우 크고 혹독하고 참으로 무섭고(4, 9절), 또 하나님의 진노가 때가 있음을 증거한다(7, 10, 12절).

둘째로, 본장은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그 행위대로 갚으심을 증거한다(3, 4, 8, 9, 27절). 본장은 하나님께서 인간의 행위대로 보응하시는 하나님이심을 증거한다. 이스라엘 백성은 어떤 행위 때문에 하나님의 진노를 샀고 멸망을 당하였는가? 그들은 우선 교만하였다(10, 20, 24절). 교만은 인간의 가장 근원적인 죄악이며 하나님께서 극히 미워하시는 죄악이다. 또 그들은 강포하고 포학하며 사람들의 피를 흘렸다(11, 23절). 부패된 인간 본성의 특징의 하나는 거칠고 강포한 것이다. 이것은 하나님의 성품과 정반대이며 온유하고 겸손하신 주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과 정반대이다. 하나님께서는 강포한 성품을 미워하신다. 또 그들은 가증한 우상들을 만들고 섬겼다(20절). 우상숭배는 가장 큰 죄악이며 하나님께서 가장 미워하시는 죄악이다.

셋째로, 본장은 이스라엘 백성의 악한 행위들 때문에 하나님께서 그들을 재앙 곧 비상한 재앙으로 치실 것을 증거한다(5, 15-18절). 그 재앙은 이방인들의 침입으로 이루어질 것이다(21-22절). 그 재앙의 날에는 은금이 아무 소용이 없을 것이다(19절). 그들의 금은은 그들로 교만케 하고 우상을 만드는 데 쓰였을 뿐이다(20절). 그러나 그들은 하나님의 재앙을 통해 하나님을 알게 될 것이다(4, 9, 27절).

본장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우리는 하나님을 알자. 특히 그가 죄를 얼마나 미워하시는지와 그의 진노를 알자. 사람이 하나님을 모르기 때문에 우상숭배하며 교만하며 남을 미워하며 악을 행한다.

둘째로, 우리는 모든 악을 버리고 경건하고 의롭고 선하게 살아가자. 죄는 하나님의 진노를 가져올 뿐이다. 죄의 결과는 모든 불행과 죽음과 지옥 형벌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모든 죄를 미워하고 버려야 한다. 우리는 우상숭배하지 말아야 하고 교만치 말아야 하며 서로 미워하지 말아야 하고 강포하지 말아야 한다. 우리는 오직 하나님을 경외하고 경건하게 살며 그의 계명대로 의롭고 선하게 살아야 한다.

셋째로, 우리는 특히 은금을 의지하지 말자. 은금은 세상에서 유용하기도 하지만, 우리에게 참된 행복을 가져다 주지는 못한다. 그것은 하나님의 진노의 날에는 무용지물이다. 그것은 우리를 하나님의 재앙에서 구원하지 못한다. 그것은 우리를 죽음에서 건져주지 못한다. 그것은 우리를 지옥에서 건져주지 못한다. 우리는 이 물질만능적 세상에서 성경적으로 바른 가치관을 가지고 은금을 너무 크게 여기지 말자.

 

 

 8장: 이스라엘의 가증한 일들

[1-4절] 제6년 6월 5일에 나는 집에 앉았고 유다 장로들은 . . . .

에스겔은 말한다. “제6년 6월 5일에 나는 집에 앉았고 유다 장로들은 내 앞에 앉았는데 주 여호와의 권능이 거기서 내게 임하기로 내가 보니 불같은 형상이 있어 그 허리 이하 모양은 불같고 허리 이상은 광채가 나서 단 쇠 같은데 그가 손 같은 것을 펴서 내 머리털 한 모숨을 잡으며 주의 신[영]이 나를 들어 천지 사이로 올리시고 하나님의 이상 가운데 나를 이끌어 예루살렘으로 가서 안뜰로 들어가는 북향한 문에 이르시니 거기는 투기의 우상 곧 투기를 격발케 하는 우상의 자리가 있는 곳이라. 이스라엘 하나님의 영광이 거기 있는데 내가 들에서 보던 이상과 같더라.”

‘제6년’은 여호야긴이 사로잡힌 때로부터 제6년, 즉 주전 591년경이다. 에스겔은 자신의 집에서 유다 장로들과 함께 있을 때 이 계시를 받았다. 주 여호와의 손이 그에게 임하였고 그는 불같은 형상을 보았다. 그 형상의 허리 이하는 불같은 모양이었고 허리 이상은 광채가 나서 반짝이는 금속 같았다. 그것은 에스겔 1:27에서도 증거된 여호와의 영광의 형상으로서 하나님의 심판의 위엄을 나타내는 것 같다. 에스겔은 하나님의 이상 중에 주의 영의 이끌림을 받아 예루살렘 성전 뜰 안으로 갔고 안뜰로 들어가는 북향한 문에 이르렀다. 거기는 투기의 우상 곧 투기를 일으키는 우상의 자리가 있는 곳이었다. 우상은 하나님의 투기를 일으킨다. 하나님께서는 십계명의 제2계명에서 우상을 만들지 말고 그것에게 절하지 말고 그것을 섬기지 말라고 명하시면서 “나 여호와 너의 하나님은 질투하는 하나님인즉 나를 미워하는 자의 죄를 갚되 아비로부터 아들에게로 삼사대까지 이르게 하리라”고 경고하셨다(출 20:4-5).

[5-6절] 그가 내게 이르시되 인자야 이제 너는 눈을 들어 . . . .

에스겔은 또 말한다. “그가 내게 이르시되 인자야, 이제 너는 눈을 들어 북편을 바라보라 하시기로 내가 눈을 들어 북편을 바라보니 제단 문 어귀 북편에 그 투기의 우상이 있더라. 그가 또 내게 이르시되 인자야, 이스라엘 족속의 행하는 일을 보느냐? 그들이 여기서 크게 가증한 일을 행하여 나로 내 성소를 멀리 떠나게 하느니라. 너는 다시 다른 큰 가증한 일을 보리라 하시더라.”

에스겔은 성전의 제단 문 어귀 북편에 투기의 우상이 있는 것을 보았다. 이스라엘 백성의 우상숭배는 성전 뜰 안까지 들어와 있었다. 그들은 성전 뜰에서 크게 가증한 일을 행했다. 그들의 가증한 일들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그의 성소를 멀리 떠나실 수밖에 없었다. 성막이나 성전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과 함께하는 표이었고 하나님께서 그곳에서 그들에게 응답하시고 그들을 복 주셨으나, 그들이 범죄할 때 그는 더 이상 그들과 함께하실 수 없었다. 그러나 이제 이것보다 더 큰 가증한 일들이 또 있었다.

[7-11절] 그가 나를 이끌고 뜰 문에 이르시기로 내가 본즉 . . . .

에스겔은 또 말한다. “그가 나를 이끌고 뜰 문에 이르시기로 내가 본즉 담에 구멍이 있더라. 그가 내게 이르시되 인자야, 너는 이 담을 헐라 하시기로 내가 그 담을 허니 한 문이 있더라. 또 내게 이르시되 들어가서 그들이 거기서 행하는 가증하고 악한 일을 보라 하시기로 내가 들어가보니 각양 곤충과 가증한 짐승과 이스라엘 족속의 모든 우상을 그 사면 벽에 그렸고 이스라엘 족속의 장로 중 70인이 그 앞에 섰으며 사반의 아들 야아사냐도 그 가운데 섰고 각기 손에 향로를 들었는데 향연이 구름같이 오르더라.”

하나님께서는 또 에스겔로 하여금 뜰의 담을 뚫고 들어가 한 문을 통과하여 그 안에서 행해지는 가증하고 악한 일들을 보게 하셨다. ‘담을 헌다’는 말은 ‘담을 뚫는다’는 뜻이다. 에스겔은 담 안 사면 벽에 각양 곤충과 가증한 짐승들과 이스라엘 족속의 모든 우상이 그려져 있고 이스라엘 장로 70인이 그 앞에 서서 손에 향로를 들고 분향하는 것을 보았다. 그 중에 사반의 아들 야아사냐도 있었다. 장로들의 분향하는 연기는 구름같이 올랐다. 이스라엘 장로들, 즉 나이든 어른들이 우상들 앞에서 열심히 분향하고 있었던 것이다!

[12-13절] 또 내게 이르시되 인자야 이스라엘 족속의 . . . .

에스겔은 또 말한다. “또 내게 이르시되 인자야, 이스라엘 족속의 장로들이 각각 그 우상의 방안 어두운 가운데서 행하는 것을 네가 보았느냐? 그들이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우리를 보지 아니하시며 이 땅을 버리셨다 하느니라. 또 내게 이르시되 너는 다시 그들의 행하는 바 다른 큰 가증한 일을 보리라 하시더라.”

그곳은 우상을 섬기는 어두운 방이었다. 이스라엘 장로들은 거기서 우상들에게 분향하며 말하기를, 여호와께서는 우리를 보지 아니하시며 이 땅을 버리셨다고 말했다. 이스라엘의 장로들, 나이든 노인들은 회개할 줄 모르고 오히려 참된 신앙을 포기하였다. 그것은 순전한 불신앙이었다. 그러나 또 다른 큰 가증한 일들이 있었다.

[14-15절] 그가 또 나를 데리고 여호와의 전으로 들어가는 . . . .

에스겔은 또 말한다. “그가 또 나를 데리고 여호와의 전으로 들어가는 북문에 이르시기로 보니 거기 여인들이 앉아 담무스를 위하여 애곡하더라. 그가 또 내게 이르시되 인자야, 네가 그것을 보았느냐? 너는 또 이보다 더 큰 가증한 일을 보리라 하시더라.”

에스겔은 여호와의 전으로 들어가는 북문에 여인들이 앉아 담무스를 위해 애곡하는 광경을 보았다. 담무스는 바벨론 사람들이 섬기던 신이었다. 그것은 여인들까지 우상숭배에 빠져 있음을 증거한다. 그러나 이보다 더 큰 가증한 일들이 또 있었다.

[16절] 그가 또 나를 데리고 여호와의 전 안뜰에 . . . .

에스겔은 말한다. “그가 또 나를 데리고 여호와의 전 안뜰에 들어가시기로 보니 여호와의 전문 앞 현관과 제단 사이에서 약 25인이 여호와의 전을 등지고 낯을 동으로 향하여 동방 태양에 경배하더라.” 하나님께서 환상 중에 에스겔을 여호와의 전 안뜰로 인도하셨는데, 에스겔은 거기서 여호와의 전 문 앞, 곧 성소로 들어가는 문 앞, 현관과 번제단 사이에서 약 25인이 여호와의 전을 등지고 낯을 동쪽으로 향해 동방 태양에 경배하는 광경을 보았다. 현관 앞은 성소로 들어가는 문 앞에 세워진 야긴과 보아스라는 두 기둥 사이를 말한다. 이곳은 제사장들만 들어올 수 있는 곳이다. 그러면 여기 25인은 제사장들이며, 24인은 일반 제사장들이고 1인은 대제사장일 것이다. 그 제사장들은 거기서 성소를 등지고 태양을 향해 경배하고 있었다. 제사장들이 여호와 하나님을 섬기는 대신에 태양신을 섬기고 있었던 것이다!

[17-18절] 또 내게 이르시되 인자야 네가 보았느냐? 유다 . . . .

에스겔은 또 말한다. “또 내게 이르시되 인자야, 네가 보았느냐? 유다 족속이 여기서 행한 가증한 일을 적다 하겠느냐? 그들이 강포로 이 땅에 채우고 또 다시 내 노를 격동하고 심지어 나뭇가지를 그 코에 두었느니라. 그러므로 나도 분노로 갚아 아껴 보지 아니하고 긍휼을 베풀지도 아니하리니 그들이 큰 소리로 내 귀에 부르짖을지라도 내가 듣지 아니하리라.”

제사장들의 우상숭배는 심히 가증한 일이며 작은 악이 아니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이 강포로 이 땅에 채운다고 말씀하셨다. ‘강포’라는 원어(카마스)는 ‘강포, 상해’라는 뜻이다. 이것은 인간 관계에서의 온갖 종류의 강포함과 남을 해치는 것을 가리킨 것 같다. 또 그들은 우상숭배로 하나님의 노를 격동시키고 있었다. “심지어 나뭇가지를 그 코에 두었느니라”는 표현은 태양 숭배의 한 의식으로서 태양신에게 바쳐진 나뭇가지를 소중히 여기는 행위인 것 같다. 이스라엘의 우상숭배는 하나님의 진노를 일으켰다. 하나님께서는 분노로 그들의 악을 갚으시겠다고 말씀하신다. 또 그는 그들을 아껴 보지 않고 긍휼을 베풀지도 않을 것이며 그들이 큰 소리로 부르짖어 기도하여도 듣지 않겠다고 말씀하신다.

본장은 이스라엘 백성의 우상숭배의 죄악을 증거하며, 우리가 모든 우상을 버리고 하나님만 섬겨야 한다는 교훈을 준다. 하나님보다 더 가치 있게 여기는 모든 것이 우상이다. 하나님보다 돈을 더 가치 있게 여긴다면 돈이 우상이 되고 하나님보다 육신의 쾌락을 더 사랑한다면 육신의 쾌락이 우상이 된다. 사람이 하나님보다 과학이나 이성을 더 크게 여긴다면 과학과 이성이 우상이다. 그러나 과학과 이성은 세상의 처음과 마지막을 알지 못한다. 우리는 모든 우상을 버려야 한다.

우리는 이 세상의 풍조를 따르지 말고 분별하고 경계하고 대적해야 한다. 로마서 12:2,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디모데후서 4:3-4, “때가 이르리니 사람이 바른 교훈을 받지 아니하며 귀가 가려워서 자기의 사욕을 좇을 스승을 많이 두고 또 그 귀를 진리에서 돌이켜 허탄한 이야기를 좇으리라.”

우리는 참된 경건을 소유하고 하나님만 섬겨야 한다. 여호와 하나님은 온 세상을 창조하시고 섭리하시는 유일하신 참 하나님이심을 알고 하나님만 섬겨야 한다. 또 우리는 성경대로만 믿고 살아야 한다.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며 우리의 신앙생활에 있어서 정확무오한 유일의 법칙임을 알아야 한다. 우리는 성경에 대한 이런 확고한 믿음이 필요하다. 그래야 바른 믿음을 가지고 온전한 생활을 할 수 있다.

 

 

9장: 탄식하며 우는 자의 이마에 표함

[1절] 그가 또 큰 소리로 내 귀에 외쳐 가라사대 이 성읍을 . . . .

에스겔은 말한다. “그가 또 큰 소리로 내 귀에 외쳐 가라사대 이 성읍을 관할하는 자들로 각기 살륙하는 기계를 손에 들고 나아오게 하라 하시더라.” ‘이 성을 관할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심판을 수행하는 천사들을 가리킨다. 천사들은 하나님의 심판의 일을 수종든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주관하시며 그들은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한다. 그 천사들은 살육하는 기계를 손에 들고 있었다.

[2절] 내가 본즉 여섯 사람이 북향한 윗문 길로 . . . .

에스겔은 또 말한다. “내가 본즉 여섯 사람이 북향한 윗문 길로 좇아오는데 각 사람의 손에 살륙하는 기계를 잡았고 그 중에 한 사람은 가는 베옷을 입고 허리에 서기관의 먹 그릇을 찼더라. 그들이 들어 와서 놋 제단 곁에 서더라.” 가는 베옷을 입고 허리에 서기관의 먹그릇을 찬 천사는 그 여섯 중에 특별한 임무를 맡은 자이었다.

[3-4절] 그룹에 머물러 있던 이스라엘 하나님의 영광이 . . . .

에스겔은 또 말한다. “그룹에 머물러 있던 이스라엘 하나님의 영광이 올라 성전 문지방에 이르더니 여호와께서 그 가는 베옷을 입고 서기관의 먹 그릇을 찬 사람을 불러 이르시되 너는 예루살렘 성읍 중에 순행하여 그 가운데서 행하는 모든 가증한 일로 인하여 탄식하며 우는 자의 이마에 표하라 하시고.” 그 특별한 임무를 맡은 천사에게 준 임무가 그러하였다. 그것은 신약성경 요한계시록 7장에 나오는 14만 4천명의 이마에 인을 치는 천사의 사역과 비슷하다. 그들이 탄식하며 운 것은 자신과 동료 이스라엘 사람들이 예루살렘 성에서 행하는 가증한 일들이 하나님 앞에서 심히 죄악됨을 느끼기 때문이요 또 하나님의 진노와 심판을 피할 수 없다는 느낌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들에게는 선악 분별의 양심이 있었고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마음이 조금이라도 남아 있었다.

[5-6절] 나의 듣는데 또 그 남은 자에게 이르시되 너희는 . . . .

에스겔은 또 말한다. “나의 듣는데 또 그 남은 자에게 이르시되 너희는 그 뒤를 좇아 성읍 중에 순행하며 아껴 보지도 말며 긍휼을 베풀지도 말고 쳐서 늙은 자와 젊은 자와 처녀와 어린아이와 부녀를 다 죽이되 이마에 표 있는 자에게는 가까이 말라. 내 성소에서 시작할지니라 하시매 그들이 성전 앞에 있는 늙은 자들로부터 시작하더라.” ‘다 죽이라’는 원어(타하레구 레마쉬키스)는 ‘죽여 멸하라’ 혹은 ‘멸하도록 죽이라’는 뜻이다.

이마에 표를 받은 자들은 죽임을 모면할 것이다. 그것은 요한계시록에 나오는 이마에 인 맞은 자들의 경우와 비슷하다(계 9:4). 에스겔이 본 그 천사들은 성전 앞에 있는 노인들에게서부터 심판을 시작하였다. 종교 지도자들이나 주를 섬기는 일에 종사하는 자들이 먼저 심판을 받을 것이다. 마지막 심판의 날에도 일반 세상 사람들보다 교인들이 먼저 심판을 받을 것이다. 교회 안에서 위선적이게 행하던 자들이 먼저 심판을 받을 것이다. 베드로전서 4:17-18, “하나님 집에서 심판을 시작할 때가 되었나니 만일 우리에게 먼저 하면 하나님의 복음을 순종치 아니하는 자들의 그 마지막이 어떠하며 또 의인이 겨우 구원을 얻으면 경건치 아니한 자와 죄인이 어디 서리요.”

[7-8절] 그가 또 그들에게 이르시되 너희는 성전을 더럽혀 . . . .

에스겔은 또 말한다. “그가 또 그들에게 이르시되 너희는 성전을 더럽혀 시체로 모든 뜰에 채우라. 너희는 나가라 하시매 그들이 나가서 성읍 중에서 치더라. 그들이 칠 때에 내가 홀로 있는지라. 엎드리어 부르짖어 가로되 오호라, 주 여호와여, 예루살렘을 향하여 분노를 쏟으시오니 이스라엘 남은 자를 모두 멸하려 하시나이까?” 하나님께서 시체로 성전 뜰에 채우게 하신 것은 이스라엘 백성이 모든 우상숭배로 성전을 더럽혔기 때문이다(겔 8:6). 하나님의 진노는 참으로 두렵고 무섭다.

[9절] 그가 내게 이르시되 이스라엘과 유다 족속의 죄악이 . . . .

에스겔은 또 말한다. “그가 내게 이르시되 이스라엘과 유다 족속의 죄악이 심히 중하여 그 땅에 피가 가득하며 그 성읍에 불법이 찼나니 이는 그들이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이 땅을 버리셨으며 보지 아니하신다 함이라.” ‘심히 중하다’는 원어(가돌 비메오드 메오드)는 ‘심히, 심히 크다’는 뜻이다. 또 그 땅은 피들이 가득했다. 그것은 의인들의 피를 흘리는 것과 같은 정당하지 않은 살인들을 가리킨다. 또 그 성읍에는 불법이 찼다. ‘불법’이라는 원어(뭇테)는 ‘공의의 왜곡’ 즉 불의와 불법을 가리킨다. 그들은 하나님의 주권을 부정하고 자기들의 마음대로 행했다.

[10-11절] 그러므로 내가 그들을 아껴 보지 아니하며 . . . .

에스겔은 또 말한다. “그러므로 내가 그들을 아껴 보지 아니하며 긍휼을 베풀지 아니하고 그 행위대로 그 머리에 갚으리라 하시더라. 가는 베옷을 입고 허리에 먹 그릇을 찬 사람이 복명하여 가로되 주께서 내게 명하신 대로 내가 준행하였나이다 하더라.” 하나님의 진노는 참으로 두렵다. 그가 노하시면 그에게서 긍휼과 자비를 기대할 수 없다. 그러나 그는 사람의 행위대로 공의롭게 보응하실 것이다. 사람의 생각과 마음은 말과 행위로 나타난다. 사람의 인격은 행동으로 나타난다. 그러므로 사람의 행위대로 보응하시는 하나님의 심판은 공정하다. 가는 베옷을 입고 허리에 먹그릇을 찬 천사는 “주께서 내게 명하신 대로 내가 준행하였나이다”라고 보고하였다. 하나님의 심판의 뜻은 남김 없이 그대로 다 이루어질 것이다.

본장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우리는 하나님의 심판을 두려워해야 한다. 하나님의 심판은 참으로 두렵다. 하나님께서는 살육하는 기계를 든 천사들을 동원하셨다(1-2절). 그는 심판받을 자들을 긍휼히 여기지 않으셨다(5, 10절). 또 그는 천사들에게 그들을 죽여 멸하라고 명하셨다(6절). 하나님의 심판의 대상에는 남녀노소의 구별이 없었다(6절). 하나님의 분노는 참으로 두렵다(8절). 하나님께서는 오래 참으시지만 한번 노하시면 그의 노를 막을 자가 세상에 아무도 없다. 하나님께서 노하시면 그 앞에서 아무도 긍휼과 자비를 기대할 수 없다. 우리는 하나님의 심판을 참으로 두려워해야 한다.

둘째로, 우리는 우리의 행실을 바르게 하고 모든 죄를 버려야 한다. 이스라엘이 멸망하는 것은 그들의 죄악이 심히 컸기 때문이었다(9절). 이스라엘 땅은 의인의 피들로 가득하였고 예루살렘 성에는 불법이 찼다.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의 행위를 보신다. 사람의 행위가 중요하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행위대로 그 머리에 갚으시겠다고 말씀하셨다(10절). 사람의 악한 행위는 하나님의 진노의 벌을 받을 것이다. 성경이 증거하는 중요한 한 진리는 죄의 값이 사망이라는 것이다. 인간의 모든 불행은 죄 때문에 온다. 하나님의 진노와 심판도 죄 때문에 온다. 그러므로 우리는 모든 죄를 버리고 우리의 행실을 바르게 해야 한다.

셋째로, 우리는 우리 자신의 부족과 다른 이들의 죄악을 인해 탄식하며 울어야 한다. 하나님의 엄위하신 심판 중에도 하나님께서는 자신과 다른 사람들의 죄와 하나님의 진노로 인해 탄식하며 우는 자들에게 죽음을 피할 길을 주셨다. 자신과 다른 이들의 죄를 깨닫고 또 하나님의 진노를 깨닫고 회개하는 자들은 탄식하고 울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천사를 통해 탄식하고 우는 자들의 이마에 표를 하게 하셨고 멸망의 심판에서 그들을 제외케 하셨다(4-6절). 우리는 죄악된 세상 사람들과 함께 기뻐하지 말아야 한다. 세상은 장망성(將亡城)이다. 우리는 우리와 세상의 죄악들과 하나님의 심판을 인해 탄식하며 울어야 한다.

 

 

10장: 그룹이 불을 내어줌

[1-2절] 이에 내가 보니 그룹들 머리 위 궁창에 남보석 . . . .

에스겔은 말한다. “이에 내가 보니 그룹들 머리 위 궁창에 남보석 같은 것이 나타나는데 보좌 형상 같더라. 하나님이 가는 베옷 입은 사람에게 일러 가라사대 너는 그룹 밑 바퀴 사이로 들어가서 그 속에서 숯불을 두 손에 가득히 움켜 가지고 성읍 위에 흩으라 하시매 그가 내 목전에 들어가더라.” 남보석 같은 보좌는 하나님의 영광, 특히 심판자로서의 하나님의 영광의 모습이다. 가는 베옷 입은 사람이 그룹 밑 바퀴 사이로 들어가 받은 숯불은 심판의 불을 나타낸다. 그 사람은 에스겔이 보는 데서 바퀴 사이로 들어갔다.

[3-5절] 그 사람이 들어갈 때에 그룹들은 성전 우편에 섰고 . . . .

에스겔은 또 말한다. “그 사람이 들어갈 때에 그룹들은 성전 우편에 섰고 구름은 안뜰에 가득하며 여호와의 영광이 그룹에서 올라 성전 문지방에 임하니 구름이 성전에 가득하며 여호와의 영화로운 광채가 뜰에 가득하였고 그룹들의 날개 소리는 바깥뜰까지 들리는데 전능하신 하나님의 말씀하시는 음성 같더라.” 구름이 성전 안뜰에 가득한 것은 하나님의 임재의 표이다. 구름이 성전에 가득하였고 하나님의 영화로운 광채가 뜰에 가득하였고 그룹들의 날개 소리는 바깥뜰까지 들렸다. 그 날개 소리는 전능하신 하나님의 말씀하시는 음성과 같았다. 그룹들의 요란한 날개 소리는 그들이 하나님의 일을 수행하기 위해 열심을 다하는 모습을 나타낸다.

[6-8절] 하나님이 가는 베옷 입은 자에게 명하시기를 바퀴 . . . .

에스겔은 또 말한다. “하나님이 가는 베옷 입은 자에게 명하시기를 바퀴 사이 곧 그룹들 사이에서 불을 취하라 하셨으므로 그가 들어가 바퀴 옆에 서매 한 그룹이 그룹들 사이에서 손을 내밀어 그 그룹들 사이에 있는 불을 취하여 가는 베옷 입은 자의 손에 주매 그가 받아 가지고 나가는데 그룹들의 날개 밑에 사람의 손 같은 것이 나타났더라.” 하나님께서 가는 베옷 입은 자에게 그룹들 사이에서 불을 취하라고 명령하셨으므로 그가 들어가 바퀴 옆에 서매 한 그룹이 그룹들 사이에서 손을 내밀어 그 그룹들 사이에 있는 불을 취하여 가는 베옷 입은 자의 손에 주었다. 그룹의 날개 밑에 사람의 손 같은 것이 있었다. 가는 베옷 입은 자는 그 불을 받아 가지고 나왔다.

[9-11절] 내가 보니 그룹들 곁에 네 바퀴가 있는데 이 그룹 . . . .

에스겔은 또 말한다. “내가 보니 그룹들 곁에 네 바퀴가 있는데 이 그룹 곁에도 한 바퀴가 있고 저 그룹 곁에도 한 바퀴가 있으며 그 바퀴 모양은 황옥 같으며 그 모양은 넷이 한결 같은데 마치 바퀴 안에 바퀴가 있는 것 같으며 그룹들이 행할 때에는 사방으로 향한 대로 돌이키지 않고 행하되 돌이키지 않고 그 머리 향한 곳으로 행하며.” 네 그룹들 곁에 있는 네 바퀴는 녹보석 같았다. ‘황옥’이라는 원어(타르쉬스)는 ‘녹보석’(beryl)을 가리킨다(출 28:20). 그것은 하나님의 섭리 방식이 선하고 아름답고 영광스러움을 나타내는 것 같다. 바퀴 안에 바퀴가 있는 것 같은 모양은 자유로이, 빠르게 잘 굴러가는 것을 나타낸 것 같다. 또 그 바퀴들은 그룹들이 행할 때에 사방으로 향한 대로 돌이키지 않고 그 머리 향한 곳으로 행했다. 그것은 그룹들이 하나님의 일을 충성되이 수행하는 것을 보인다.

[12절] 그 온 몸과 등과 손과 날개와 바퀴 곧 네 그룹의 . . . .

에스겔은 또, “그 온 몸과 등과 손과 날개와 바퀴 곧 네 그룹의 바퀴의 둘레에 다 눈이 가득하더라”고 말한다. 그 그룹들은 그 온 몸과 등과 손과 날개와 바퀴와 그 둘레에 눈이 가득했다. 에스겔 1:18, “그 네 둘레로 돌아가면서 눈이 가득하며.” 사도 요한이 본 환상도 비슷하였다. 요한계시록 4:8, “네 생물이 각각 여섯 날개가 있고 그 안과 주위에 눈이 가득하더라.” 눈이 가득한 것은 그들이 주위 환경을 두루 감찰하는 것을 나타낼 것이다. 하나님의 일을 수행하는 자는 주위 환경을 자세히 관찰하며 행해야 할 것이다.

[13절] 내가 들으니 그 바퀴들을 도는 것이라 칭하며.

에스겔은 또, “내가 들으니 그 바퀴들을 도는 것이라 칭하며”라고 말한다. ‘도는 것’이라는 원어(학갈갈)는 ‘회리바람같이 도는 것’을 가리킨다. 그것은 그 바퀴들이 민첩하게 도는 것을 나타낸다. 그것은 하나님의 일을 수행할 때 매우 민첩하게 수행함을 나타낸다.

[14-15절] 그룹들은 각기 네 면이 있는데 첫 면은 그룹의 . . . .

에스겔은 또 말한다. “그룹들은 각기 네 면이 있는데 첫 면은 그룹의 얼굴이요 둘째 면은 사람의 얼굴이요 셋째는 사자의 얼굴이요 넷째는 독수리의 얼굴이더라. 그룹들이 올라가니 그들은 내가 그발강가에서 보던 생물이라.” 그룹의 첫 번째 면인 그룹의 얼굴은 소의 형상을 가리킨다(겔 1:10). 네 얼굴은 그룹의 특성을 나타낸다. 소는 충성을 나타내고, 사람은 지혜를, 사자는 용맹을, 독수리는 생명력과 민첩함을 나타낸다. 그 특성들은 하나님의 일을 수행하는 봉사자들이 갖추어야 할 덕을 보인다. 하나님을 섬기며 그의 일을 수행하는 자들은 충성과 지혜와 용기와 민첩함을 갖추어야 한다.

[16-17절] 그룹들이 행할 때에는 바퀴도 그 곁에서 행하고 . . . .

에스겔은 또 말한다. “그룹들이 행할 때에는 바퀴도 그 곁에서 행하고 그룹들이 날개를 들고 땅에서 올라가려 할 때에도 바퀴가 그 곁을 떠나지 아니하며 그들이 서면 이들도 서고 그들이 올라가면 이들도 함께 올라가니 이는 생물의 신이 바퀴 가운데 있음이더라.”

그룹들과 바퀴들은 함께 움직였다. 그룹들이 행할 때에는 바퀴도 그 곁에서 행했고 그룹들이 서면 그 바퀴들도 섰고 그룹들이 올라가면 그 바퀴들도 함께 올라갔다. 그것은 그 생물들의 영이 그 바퀴 가운데 있기 때문이었다. 그 생물은 천사들을 상징한다. 그 생물들의 활동은 영의 활동이며, 그것은 일사불란하였다.

[18-22절] 여호와의 영광이 성전 문지방을 떠나서 그룹들 . . . .

에스겔은 또 말한다. “여호와의 영광이 성전 문지방을 떠나서 그룹들 위에 머무르니 그룹들이 날개를 들고 내 목전에 땅에서 올라가는데 그들이 나갈 때에 바퀴도 그 곁에서 함께 하더라. 그들이 여호와의 전으로 들어가는 동문에 머물고 이스라엘 하나님의 영광이 그 위에 덮였더라. 그것은 내가 그발강가에서 본 바 이스라엘 하나님의 아래 있던 생물이라. 그들이 그룹들인 줄을 내가 아니라. 각기 네 얼굴과 네 날개가 있으며 날개 밑에는 사람의 손 형상이 있으니 그 얼굴의 형상은 내가 그발강가에서 보던 얼굴이며 그 모양과 몸둥이도 그러하며 각기 곧게 앞으로 행하더라.” 하나님의 영광은 그룹들 위에 머무셨고 그 그룹들은 날개를 들고 에스겔이 보는 데서 땅에서 올라갔다. 그들은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며 충성하였다.

본장은 하나님께서 천사에게 심판의 숯불을 두 손에 가득히 움켜 예루살렘 성 위에 흩으라는 명령을 기록하였다. 그것은 하나님의 심판이 곧 시행될 것을 보인다. 가는 베옷 입은 천사는 하나님의 명대로 그룹들 밑의 바퀴 사이에서 숯불을 손에 받아 나왔다. 그는 이제 그 숯불을 예루살렘 성에 흩을 것이다. 예루살렘의 멸망이 임박하였다. 그것은 유다 백성의 죄악 때문이었다. 죄의 결과는 멸망이다.

본문은 하나님의 작정하신 일들을 수행하는 천사들의 특성을 증거한다. 그것은 특히 그룹들의 네 얼굴을 통해 증거된다. 그것은 천사들이 하나님의 일들을 수행할 때 지혜와 충성과 용기와 민첩함을 가지고 함을 보인다. 이 네 가지 덕은 주를 섬기는 봉사하는 우리 모두에게 요구된다. 우리는 지혜와 충성, 용기와 민첩함을 가지고 주를 섬기자.

 

 

11장: 이스라엘의 회복이 약속됨

[1-4절] 때에 주의 신이 나를 들어 데리고 여호와의 전 . . . .

에스겔은 말한다. “때에 주의 신이 나를 들어 데리고 여호와의 전 동문 곧 동향한 문에 이르시기로 본즉 그 문에 25인이 있는데 내가 그 중에서 앗술의 아들 야아사냐와 브나야의 아들 블라댜를 보았으니 그들은 백성의 방백(사르)[지도자](NASB)이라.” 여기의 25인은 8:16에 언급된, 여호와의 전 안뜰 성전문 현관에서 동쪽 태양을 향해 경배하던 대표적인 제사장들이며 24인은 일반 제사장들이며 한 명은 대제사장일 것이다. 그들은 이스라엘의 지도자들이었다.

에스겔은 또 말한다. “그가 내게 이르시되 인자야, 이 사람들은 불의를 품고 이 성중에서 악한 꾀를 베푸는 자니라.” 그들은 불의를 품고 악한 꾀를 베푸는 악한 지도자들이었다. 지도자들이 그러니 그 성이 얼마나 부패했겠는가. 어느 성이나 단체나 지도자가 바르지 않으면 그 성이나 단체는 부패하고 결국 멸망하게 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또, “그들의 말이 집 건축할 때가 가깝지 아니한즉 이 성읍은 가마가 되고 우리는 고기가 된다 하나니”라고 말씀하신다. 그들의 악한 말은 집이 건축할 때가 가깝지 않다는 것이다. 그것은 선지자 예레미야의 예언을 비웃는 말이었다. 예레미야는 포로로 잡혀간 유대인들에게 “때가 오래리니 너희는 집을 짓고 거기 거하며 전원을 만들라”고 말했다(렘 29:28). 또 그들은 “이 성읍은 가마가 되고 우리는 고기가 된다”고 말했다(7, 11절에도 나옴). 이 말의 뜻은 예루살렘은 안전할 것이라는 뜻인 것 같다.

하나님께서는 또, “그러므로 인자야, 너는 그들을 쳐서 예언하고 예언할지니라”고 말씀하신다. 선지자를 통해 주신 하나님의 말씀과 예루살렘의 악한 지도자들의 말은 이와 같이 서로 달랐다. 예루살렘이나 바벨론의 유대인 사회에서 잘못된 말이 떠돌 때 그것을 반박하지 않으면 하나님의 뜻이 가리어질 것이다. 그런 때의 침묵은 하나님의 진리와 뜻을 양보하는 일이 될 것이다.

[5-13절] 여호와의 신이 내게 임하여 가라사대 너는 . . . .

에스겔은 또 말한다. “여호와의 신이 내게 임하여 가라사대 너는 말하기를 여호와의 말씀에 이스라엘 족속아, 너희가 이렇게 말하였도다. 너희 마음에서 일어나는 것을 내가 다 아노라.”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족속의 불신앙적인 말을 다 아신다. 전지하신 그는 우리의 마음 깊은 곳에 숨겨진 생각까지도 다 아신다(계 2:23).

하나님께서는 또 말씀하신다. “너희가 이 성읍에서 많이 살륙하여 그 시체로 거리에 채웠도다.” 예루살렘 지도자들의 중요한 문제점은 그들이 그 성읍에서 많이 살육했다는 것이다. 그것은 부정당한 살육, 즉 의인의 피를 많이 흘린 것을 말한다(겔 7:23; 9:9; 왕하 21:16).

하나님께서는 또 말씀하신다. “그러므로 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이 성읍 중에서 너희가 살륙한 시체는 그 고기요 이 성읍은 그 가마려니와 너희는 그 가운데서 끌려 나오리라. 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너희가 칼을 두려워하니 내가 칼로 너희에게 임하게 하고 너희를 그 성읍 가운데서 끌어내어 타국인의 손에 붙여 너희에게 벌을 내리리니 너희가 칼에 엎드러질 것이라. 내가 이스라엘 변경에서 너희를 국문하리니 너희가 나를 여호와인 줄 알리라. 이 성읍은 너희 가마가 되지 아니하고 너희는 그 가운데 고기가 되지 아니할지라. 내가 너희를 이스라엘 변경에서 국문하리니.”

하나님께서는 그 지도자들이 살육한 시체는 오히려 그 성에 안전히 묻혀 있지만, 그들은 성에서 끌려 나와 다른 나라 사람들에게 붙여 그들이 두려워하는 칼에 죽임을 당할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그것은 하나님의 징벌이다. 하나님께서는 예루살렘 성이 그들에게 안전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그들은 성에서 끌려 나와서 이스라엘 국경 부근에서 죽임을 당할 것이다. 그때 그들은 여호와 하나님을 알게 될 것이다. 그들은 하나님의 심판을 통해 그가 살아계심과 그의 공의의 뜻을 알게 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또 말씀하신다. “너희가 나를 여호와인 줄 알리라. 너희가 내 율례를 행치 아니하며 규례를 지키지 아니하고 너희 사면에 있는 이방인의 규례대로 행하였느니라 하셨다 하라. 이에 내가 예언할 때에 브나야의 아들 블라댜가 죽기로 내가 엎드리어 큰 소리로 부르짖어 가로되 오호라, 주 여호와여, 이스라엘의 남은 자를 다 멸절하고자 하시나이까 하니라.” 그들이 이런 하나님의 징벌을 받는 까닭은 그들이 하나님의 율례와 규례를 지켜 행하지 않고 그들 주위에 있는 이방인들의 규례대로 행하였기 때문이다. 이방인들의 규례는 우상숭배와 부도덕한 것들이다. 하나님의 요구하시는 것은 하나님을 경외하고 섬기며 그 계명을 힘써 순종하며 행하라는 것이었다(신 10:12-13). 그러나 그들은 하나님의 계명과 규례를 저버리고 이방인들의 생각과 종교와 풍습을 따랐다.

[14-20절]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하여 가라사대 인자야 . . . .

에스겔은 또 말한다.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하여 가라사대 인자야, 예루살렘 거민이 너의 형제 곧 너의 형제와 친속과 이스라엘 온 족속을 향하여 이르기를 너희는 여호와에게서 멀리 떠나라. 이 땅은 우리에게 주어 기업이 되게 하신 것이라 하였나니.” 예루살렘 사람들은 포로로 잡혀간 자들을 냉소하며 자기들은 하나님의 기업인 이 땅에서 안전히 거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것은 헛된 신념이었다. 하나님께서는 범죄하는 그 성을 보존치 않으실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또 말씀하신다. “그런즉 너는 말하기를 주 여호와의 말씀에 내가 비록 그들을 멀리 이방인 가운데로 쫓고 열방에 흩었으나 그들이 이른 열방에서 내가 잠깐 그들에게 성소가 되리라 하셨다 하고 너는 또 말하기를 주 여호와의 말씀에 내가 너희를 만민 가운데서 모으며 너희를 흩은 열방 가운데서 모아 내고 이스라엘 땅으로 너희에게 주리라 하셨다 하라.” 예루살렘 성은 자동적으로 하나님의 성소가 되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께서는 오히려 예루살렘 성을 떠나셔서 바벨론 포로 생활 중에 있는 유대인들에게 성소가 되실 것이며, 또 그런 후에 그들을 모아서 다시 이스라엘 땅으로 인도하실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다시 회복시키실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또 말씀하신다. “그들이 그리로 가서 그 가운데 모든 미운 물건과 가증한 것을 제하여 버릴지라. 내가 그들에게 일치한 마음을 주고 그 속에 새 신을 주며 그 몸에서 굳은 마음을 제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주어서 내 율례를 좇으며 내 규례를 지켜 행하게 하리니 그들은 내 백성이 되고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리라.”

이스라엘의 회복은 단지 사람들만 고토(故土)로 돌아오는 것이 아니고 영적인 회복이 될 것이다. 돌아올 자들은 그 가운데 모든 가증한 것들, 즉 우상들을 제하여 버릴 것이다. 그들은 경건의 회복을 가질 것이다. 그들은 순수한 믿음을 가질 것이다. 또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일치한 마음을 주시고 새 영을 주실 것이며 굳은 마음을 제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주셔서 그의 계명과 율례를 행케 하시며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가지게 하실 것이다. 즉 이스라엘의 회복은 심령의 회복을 동반할 것이다. 이것은 중생으로 말미암은 심령의 변화를 가리킨다. 중생은 영혼의 지배적 성향의 변화이다.

[21-25절] 그러나 미운 것과 가증한 것을 마음으로 좇는 . . . .

하나님께서는, “그러나 미운 것과 가증한 것을 마음으로 좇는 자는 내가 그 행위대로 그 머리에 갚으리라. 나 주 여호와의 말이니라”고 말씀하셨다. 마음으로 가증한 것을 좇는 자는 그 행위대로 보응을 받을 것이다. 신약성경도 구원받은 성도들에게 “너희가 육신대로 살면 반드시 죽을 것이라”고 경고하였다(롬 8:13).

에스겔은 또 말한다. “때에 그룹들이 날개를 드는데 바퀴도 그 곁에 있고 이스라엘 하나님의 영광도 그 위에 덮였더니 여호와의 영광이 성읍 중에서부터 올라가서 성읍 동편 산에 머물고 주의 신이 나를 들어 하나님의 신의 이상 중에 데리고 갈대아에 있는 사로잡힌 자 중에 이르시더니 내가 보는 이상이 나를 떠난지라. 내가 사로잡힌 자들에게 여호와께서 내게 보이신 모든 일로 고하니라.”

본장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우리는 바른 말과 그른 말을 분별해야 한다. 악한 지도자들은 아직 집을 지을 때가 아니고 예루살렘 성은 안전하다고 말했으나 하나님께서는 그 성의 멸망을 선언하셨고 곧 시행하실 것이다. 오늘날 우리는 진리와 비진리가 섞여 있는 배교와 혼란의 시대에 살고 있다. 그러나 성경은 진리와 비진리를 구별하는 기준이 된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경대로만 믿고 성경대로만 행하자.

둘째로, 범죄하는 땅은 안전치 못하다. 예루살렘 지도자들은 의인의 피를 많이 흘렸고 하나님의 계명을 버리고 우상숭배하였다. 그러므로 예루살렘 성은 멸망할 것이다. 죄는 반드시 보응받을 것이다. 개인도 국가도 그러할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회개하기를 힘써야 한다.

셋째로,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긍휼로 회복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포로된 곳에서 그들에게 잠깐 성소가 되시다가 그들을 고토로 돌아오게 하실 것이다. 몸만 돌아오게 하시는 것이 아니고 마음의 변화, 즉 일치된 마음과 부드러운 마음을 주셔서 하나님의 계명과 규례를 지키게 하실 것이다. 구원은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이며 그것은 우리에게 내면적 변화를 준다. 그러므로 이제 우리는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를 감사하며 남은 죄성을 따라 살지 말고 성령을 따라 의와 선을 행하자.

 

 

12장: 속히 포로로 잡혀갈 것

[1-2절] 여호와의 말씀이 또 내게 임하여 가라사대 인자야 . . . .

에스겔은 말한다. “여호와의 말씀이 또 내게 임하여 가라사대 인자야, 네가 패역한 족속 중에 거하도다. 그들은 볼 눈이 있어도 보지 아니하고 들을 귀가 있어도 듣지 아니하나니 그들은 패역한 족속임이니라.” 이스라엘 백성은 볼 눈이 있어도 보지 않고 들을 귀가 있어도 듣지 않는 패역한 족속이다. ‘패역한’이라는 원어(메리)는 ‘반항적인’이라는 뜻이다. 그것에 반대말은 ‘온순한, 순종적인’이라는 뜻이다. 이스라엘은 반항적인 백성이었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로 온유 겸손하며 온순하고 순종적인 자가 되어야 한다.

[3-7절] 인자야 너는 행구를 준비하고 낮에 그들의 . . . .

에스겔은 또 말한다. “인자야, 너는 행구를 준비하고 낮에 그들의 목전에서 이사하라. 네가 네 처소를 다른 곳으로 옮기는 것을 그들이 보면 비록 패역한 족속이라도 혹 생각이 있으리라. 너는 낮에 그 목전에서 네 행구를 밖으로 내기를 이사하는 행구같이 하고 저물 때에 너는 그 목전에서 밖으로 나가기를 포로되어 가는 자같이 하라. 너는 그 목전에서 성벽을 뚫고 그리로 좇아 옮기되 캄캄할 때에 그 목전에서 어깨에 메고 나가며 얼굴을 가리우고 땅을 보지 말지어다. 이는 내가 너를 세워 이스라엘 족속에게 징조가 되게 함이니라 하시기로 내가 그 명대로 행하여 낮에 나의 행구를 이사하는 행구같이 내어놓고 저물 때에 내 손으로 성벽을 뚫고 캄캄할 때에 행구를 내어다가 그 목전에서 어깨에 메고 나가니라.”

하나님께서는 에스겔에게 낮에 사람들의 눈앞에서 행구를 준비하고 이사하는 것처럼 혹은 포로로 잡혀가는 것처럼 하라. 그러면 비록 패역한 족속이라도 혹 생각이 있으리라고 말씀하셨다. 낮에 행구를 밖에 내어놓고 저물 때에 밖으로 나가기를 포로 되어 가는 자같이 하며 성벽을 뚫고 짐을 옮기되 캄캄할 때 그들의 눈앞에서 어깨에 메고 나가며 얼굴을 가리고 땅을 보지 말라고 하셨다. 하나님께서는 에스겔을 이스라엘 족속에게 징조가 되게 하셨다. 에스겔은 하나님의 명하시는 대로 하였다. 하나님께서는 에스겔의 행위를 통해 그의 뜻을 이스라엘 백성에게 생생하게 증거하셨다.

[8-11절] 이튿날 아침에 여호와의 말씀이 또 내게 임하여 . . . .

에스겔은 또 말한다. “이튿날 아침에 여호와의 말씀이 또 내게 임하여 가라사대 인자야, 이스라엘 족속 곧 그 패역한 족속이 네게 묻기를 무엇을 하느냐 하지 아니하더냐? 너는 그들에게 말하기를 주 여호와의 말씀에 이것은 예루살렘 왕과 그 가운데 있는 이스라엘 온 족속에 대한 예조라 하셨다 하고 또 말하기를 나는 너희 징조라. 내가 행한 대로 그들이 당하여 사로잡혀 옮겨갈지라.” 하나님께서는 에스겔을, 그의 뜻을 실감 있게 전달하는 도구로 사용하셨다.

[12-15절] 무리가 성벽을 뚫고 행구를 그리로 가지고 . . . .

하나님께서는 또 말씀하신다. “무리가 성벽을 뚫고 행구를 그리로 가지고 나가고 그 중에 왕은 어두울 때에 어깨에 행구를 메고 나가며 눈으로 땅을 보지 아니하려고 자기 얼굴을 가리우리라 하라. 내가 또 내 그물을 그의 위에 치고 내 올무에 걸리게 하여 그를 끌고 갈대아 땅 바벨론에 이르리니 그가 거기서 죽으려니와 그 땅을 보지 못하리라. 내가 그 호위하는 자와 부대들을 다 사방으로 흩고 또 그 뒤를 따라 칼을 빼리라. 내가 그들을 이방인 가운데로 흩으며 열방 중에 헤친 후에야 그들이 나를 여호와인 줄 알리라.”

유다 왕에 대한 말씀으로 그 내용은 세 가지이다. 첫째, 그가 갈대아인의 땅으로 끌려갈 것이다. 둘째, 그가 거기서 죽을 것이다. 셋째, 그는 그 땅을 보지 못할 것이다. 이 세 가지 내용은 그대로 다 이루어졌다. 유다의 마지막 왕 시드기야는 두 눈이 뽑혀 앞을 보지 못하게 되었고 바벨론으로 끌려가서 거기서 죽었다. 하나님께서는 왕을 호위하는 자들과 부대들도 다 흩어지고 칼에 죽임을 당할 것을 말씀하셨다. 이스라엘 백성이 다 멸망한 후에야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공의로 그의 뜻을 다 이루셨음을 알 것이다.

[16절] 그러나 내가 그 중 몇 사람을 남겨 칼과 기근과 . . . .

하나님께서는 또 말씀하신다. “그러나 내가 그 중 몇 사람을 남겨 칼과 기근과 온역을 벗어나게 하여 그들로 이르는 이방인 중에 자기의 모든 가증한 일을 자백하게 하리니 그들이 나를 여호와인 줄 알리라.” 이스라엘 백성의 일부는 이방에 포로로 잡혀가 생활하는 가운데 뒤늦게나마 자신들의 죄와 허물을 깨닫고 인정하고 고백하고 용서를 구할 것이며 하나님의 살아계심과 공의를 알 것이다.

[17-20절] 여호와의 말씀이 또 내게 임하여 가라사대 . . . .

에스겔은 또 말한다. “여호와의 말씀이 또 내게 임하여 가라사대 인자야, 너는 떨면서 네 식물을 먹고 놀라고 근심하면서 네 물을 마시며 이 땅 백성에게 말하되 주 여호와께서 예루살렘 거민과 이스라엘 땅에 대하여 이르시기를 그들이 근심하면서 그 식물을 먹으며 놀라면서 그 물을 마실 것은 이 땅 모든 거민의 강포를 인하여 땅에 가득한 것이 황무하게 됨이라. 사람의 거하는 성읍들이 황폐하며 땅이 황무하리니 너희가 나를 여호와인 줄 알리라 하셨다 하라.” 예루살렘의 멸망의 이유는 그 거민들의 강포함 때문이다. 죄인의 특징은 강포함이며 의인의 특징은 온유함이다. 또 이런 일을 통해 유다의 남은 백성이 하나님의 의와 심판을 알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21-28절] 여호와의 말씀이 또 내게 임하여 가라사대 . . . .

에스겔은 또 말한다. “여호와의 말씀이 또 내게 임하여 가라사대 인자야, 이스라엘 땅에서 이르기를 날이 더디고 모든 묵시가 응험이 없다 하는 너희의 속담이 어찜이뇨? 그러므로 너는 그들에게 이르기를 주 여호와의 말씀에 내가 이 속담을 그치게 하리니 사람이 다시는 이스라엘 가운데서 이 속담을 못하리라 하셨다 하고 또 그들에게 이르기를 날과 모든 묵시의 응함이 가까우니 이스라엘 족속 중에 허탄한 묵시나 아첨하는 복술이 다시 있지 못하리라 하라. 나는 여호와라. 내가 말하리니 내가 하는 말이 다시는 더디지 아니하고 응하리라. 패역한 족속아, 내가 너희 생전에 말하고 이루리라. 나 주 여호와의 말이니라 하셨다 하라. 여호와의 말씀이 또 내게 임하여 가라사대 인자야, 이스라엘 족속의 말이 그의 보는 묵시는 여러 날 후의 일이라. 그가 먼 때에 대하여 예언하는도다 하나니 그러므로 너는 그들에게 이르기를 주 여호와의 말씀에 나의 말이 하나도 다시 더디지 않을지니 나의 한 말이 이루리라. 나 주 여호와의 말이니라 하셨다 하라.”

에스겔 12장은 예루살렘 왕과 그 거민이 포로로 잡혀갈 것이며 그 땅이 황무할 것이며 이 일이 속히 이루어질 것을 말씀하신 내용이다.

본장에 담긴 교훈은, 첫째로, 이스라엘은 하나님 앞에서 반항적이고 강포하였으므로 멸망하였으나 우리는 온순한 마음으로 하나님께 순종해야 한다는 것이다. 예수께서는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고 말씀하셨다(마 11:29). 우리는 패역하지 말고 반항적이지 말고 온순함으로 성경의 교훈에 순종하자.

둘째로,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심판을 당한 후에 비로소 하나님을 알 것이나 우리는 지금 하나님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성경을 통해 하나님의 심판의 경고를 진지하게 받고, 천국과 영생에 대한 그의 은혜로운 약속을 감사하게 받자. 우리는 성경을 통해 하나님을 알고 더욱 확실히 알자. 경고된 미래의 심판을 두려워하며 준비하자.

 

 

13장: 거짓 선지자들을 책망하심

[1-3절]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하여 가라사대 인자야 . . . .

에스겔은 말한다.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하여 가라사대 인자야, 너는 이스라엘의 예언하는 선지자를 쳐서 예언하되 자기 마음에서 나는 대로 예언하는 자에게 말하기를 너희는 여호와의 말씀을 들으라. 주 여호와의 말씀에 본 것이 없이 자기 심령을 따라 예언하는 우매한 선지자에게 화가 있을진저.” 하나님의 말씀대로, 에스겔은 자기 마음대로 예언하는 거짓 선지자들에게 화를 선언하였다.

[4-5절] 이스라엘아, 너의 선지자들은 황무지에 있는 여우 . . . .

하나님께서는 또 말씀하신다. “이스라엘아, 너의 선지자들은 황무지에 있는 여우 같으니라. 너희 선지자들이 성 무너진 곳에 올라가지도 아니하였으며 이스라엘 족속을 위하여 여호와의 날에 전쟁을 방비하게 하려고 성벽을 수축하지도 아니하였느니라.”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에서 활동하는 선지자들이 황무지에 있는 여우같다고 말씀하신다. 여우는 성을 세우는 자가 아니고 성을 허무는 짐승이다. 거짓 선지자들은 이스라엘 족속을 위해 여호와의 날에 전쟁을 대비하여 성의 무너져 갈라진 틈에 올라가지도 않고 성벽을 보수하지도 않는 자들이다. 그들은 이스라엘 백성의 죄악을 지적하여 회개시킴으로써 하나님의 징벌을 피하게 준비시키지 못하고 있다.

[6-7절] 여호와께서 말씀하셨다고 하는 자들이 허탄한 것과 . . . .

하나님께서는 또 말씀하신다. “여호와께서 말씀하셨다고 하는 자들이 허탄한 것과 거짓된 점괘를 보며 사람으로 그 말이 굳게 이루기를 바라게 하거니와 여호와가 보낸 자가 아니라. 너희가 말하기는 여호와의 말씀이라 하여도 내가 말한 것이 아닌즉 어찌 허탄한 묵시를 보며 거짓된 점괘를 말한 것이 아니냐?” 거짓 선지자들이 여호와의 말씀이라고 예언하는 것들은 허탄한 묵시와 거짓된 점괘에 불과하였다(6, 7, 8, 9, 23절). 그들은 하나님께서 보내신 자들이 아니고(6절) 그들의 예언은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것이 아니었다(7절). 그들의 예언은 단지 그들의 마음과 심령 속에서 나온, 그들이 지어낸 말들에 불과하였다(2, 3, 17절). 그것들은 결국 다 거짓말이다.

[8-9절] 그러므로 나 주 여호와가 또 말하노라. 너희가 . . . .

하나님께서는 또 말씀하신다. “그러므로 나 주 여호와가 또 말하노라. 너희가 허탄한 것을 말하며 거짓된 것을 보았은즉 내가 너희를 치리라. 나 주 여호와의 말이니라. 그 선지자들이 허탄한 묵시를 보며 거짓 것을 점쳤으니 내 손이 그들을 쳐서 내 백성의 공회에 들어오지 못하게 하며 이스라엘 족속의 호적에도 기록되지 못하게 하며 이스라엘 땅에도 들어가지 못하게 하리니 너희가 나를 여호와인 줄 알리라.” 그 선지자들이 허탄하고 거짓된 것을 전하였으므로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치시겠다고 말씀하신다(2, 8, 9, 17절).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쳐서 하나님의 백성의 회에 들어오지 못하게 하시며 이스라엘 족속의 호적에 기록되지 못하게 하시고 이스라엘 땅에 들어오지 못하게 하시겠다고 선언하신다. 그때 그들은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과 살아계심과 그의 엄위하신 공의를 깨닫게 될 것이다.

[10절] 이렇게 칠 것은 그들이 내 백성을 유혹하여 평강이 . . . .

하나님께서는 또 말씀하신다. “이렇게 칠 것은 그들이 내 백성을 유혹하여 평강이 없으나 평강이 있다 함이라. 혹이 담을 쌓을 때에 그들이 회칠을 하는도다.” 거짓 선지자들은 하나님의 백성을 유혹하여 그들에게 평강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거짓된 평강을 선언하였다(10, 16절). 그들은 사람이 담을 쌓을 때 회칠하는 자들과 같았다. 본장은 그들의 예언 사역을 반복하여 회칠에다 비교하였다(10, 11, 12, 14, 15절). 그것은 거짓된 위로와 소망을 가리킨다. 그들은 이스라엘 백성이 그들의 죄 때문에 하나님의 징벌로 멸망할 상황인데도 그들에게 평안을 선언했다. 그것은 거짓된 위로와 소망의 말이었다.

[11-13절] 그러므로 너는 회칠하는 자에게 이르기를 . . . .

하나님께서는 또 말씀하신다. “그러므로 너는 회칠하는 자에게 이르기를 그것이 무너지리라. 폭우가 내리며 큰 우박덩이가 떨어지며 폭풍이 열파하리니 그 담이 무너진즉 혹이 너희에게 말하기를 그것에 칠한 회가 어디 있느뇨 하지 아니하겠느냐? 그러므로 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가 분노하여 폭풍으로 열파하고 내가 진노하여 폭우를 내리고 분노하여 큰 우박덩이로 훼멸하리라.” 거짓 선지자들이 쌓은 회칠한 담은 무너질 것이다. 그들이 선언한 평안, 위로, 소망의 말은 헛될 것이다. 폭우가 내리며 큰 우박덩이가 떨어지며 폭풍이 불어닥칠 때 그 회칠한 담은 무너질 것이다. 정녕 무너질 것이다.

[14-16절] 회칠한 담을 내가 이렇게 훼파하여 땅에 . . . .

하나님께서는 또 말씀하신다. “회칠한 담을 내가 이렇게 훼파하여 땅에 넘어뜨리고 그 기초를 드러낼 것이라. 담이 무너진즉 너희가 그 가운데서 망하리니 나를 여호와인 줄 알리라. 이와 같이 내가 내 노를 담과 회칠한 자에게 다 이루고 또 너희에게 말하기를 담도 없어지고 칠한 자들도 없어졌다 하리니 이들은 예루살렘에 대하여 예언하여 평강이 없으나 평강의 묵시를 본다 하는 이스라엘의 선지자들이니라. 나 주 여호와의 말이니라 하셨다 하라.” 회칠한 담은 무너지고 그 기초가 드러날 것이다. 거짓 선지자들의 평안의 묵시, 즉 그들이 선언한 그 듣기 좋은 위로와 소망의 말들은 헛된 말임이 드러날 것이다. 그 날에 그들은 다 망할 것이며 그들은 여호와 하나님의 살아계심과 공의로우심을 알게 될 것이다.

[17-18절] 너 인자야, 너의 백성 중 자기 마음에서 나는 . . . .

하나님께서는 또 말씀하신다. “너 인자야, 너의 백성 중 자기 마음에서 나는 대로 예언하는 부녀들을 대면하여 쳐서 예언하여 이르기를 주 여호와의 말씀에 사람의 영혼을 사냥하고자 하여 방석을 모든 팔뚝에 꿰어 매고 수건을 키가 큰 자나 작은 자의 머리를 위하여 만드는 부녀들에게 화 있을진저. 너희가 어찌하여 내 백성의 영혼을 사냥하면서 자기를 위하여 영혼을 살리려 하느냐?”

이스라엘 백성이 영적으로 어두웠을 때에 여자들도 예언 사역을 많이 하였다. 그들도 자기 마음에서 나는 대로 예언하였다. 하나님께서는 에스겔로 하여금 또한 그들도 쳐서 예언케 하셨다. 그들은 사람들의 영혼을 사냥하기 위해 방석을 모든 팔뚝에 꿰어 매고 수건을 키가 큰 자나 작은 자의 머리를 위해 만들었다. 그 방석과 수건은 마술 팔찌로 번역되기도 하는(NASB) 일종의 부적이나 호신부이었다. 그것은 하나님의 백성을 위한 잘못된 처방이며 하나님의 뜻과 정반대의 조치이었다. 그 여선지자들에게도 화가 있을 것이다.

[19절] 너희가 두어웅큼 보리와 두어조각 떡을 위하여 나를 . . . .

하나님께서는 또 말씀하신다. “너희가 두어웅큼 보리와 두어조각 떡을 위하여 나를 내 백성 가운데서 욕되게 하여 거짓말을 곧이 듣는 내 백성에게 너희가 거짓말을 지어서 죽지 아니할 영혼을 죽이고 살지 못할 영혼을 살리는도다.” 거짓 선지자들은 두어웅큼 보리와 두어조각 떡을 위해 그런 거짓된 예언을 하고 있었다. 그것은 하나님의 백성 가운데서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하는 일이지만, 거짓말을 곧이 듣는 이스라엘 백성은 그들의 말에 사로잡혀 있었다. 그들은 경건하고 바르게 살려는 영혼들에게는 위로 대신 낙심을 주었고, 죄 가운데 사는 영혼들에게는 불안 대신에 용기를 주었던 것이다.

[20-21절] 그러므로 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너희가 . . . .

하나님께서는 또 말씀하신다. “그러므로 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너희가 새를 사냥하듯 영혼들을 사냥하는 그 방석을 내가 너희 팔에서 떼어버리고 너희가 새처럼 사냥한 그 영혼들을 놓으며 또 너희 수건을 찢고 내 백성을 너희 손에서 건지고 다시는 너희 손에 사냥물이 되지 않게 하리니 너희가 나를 여호와인 줄 알리라.”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팔에서 방석을 떼어버리시고 그들이 사로잡은 영혼들을 놓으시며 그들의 머리 수건을 찢고 친히 자기 백성을 그들의 손에서 건지시며 다시는 그들의 사냥물이 되지 않게 하실 것이다.

[22-23절] 내가 슬프게 하지 아니한 의인의 마음을 너희가 . . . .

“내가 슬프게 하지 아니한 의인의 마음을 너희가 거짓말로 근심하게 하며 너희가 또 악인의 손을 굳게 하여 그 악한 길에서 돌이켜 떠나 삶을 얻지 못하게 하였은즉 너희가 다시는 허탄한 묵시를 보지 못하고 점복도 못할지라. 내가 내 백성을 너희 손에서 건져내리니 너희가 나를 여호와인 줄 알리라 하셨다 하라.”

본장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우리는 거짓된 예언을 조심해야 한다. 오늘날에도 하나님의 보내지 않으신 자들이 하나님의 말씀하지 않으신 내용을 자기 심령을 따라 말하는 일이 많다. 우리는 그런 거짓된 설교를 분별하고 조심해야 한다. 우리는 오직 하나님께서 우리의 신앙과 생활의 표준으로 주신 성경말씀을 자세히 읽고 살피고 연구하고 배우고 묵상하고 믿고 실천해야 한다(시 119:105; 딤후 3:16).

둘째로, 우리는 헛된 소망과 확신을 버려야 하고 미신적 의식이나 물건에도 미혹되지 말아야 한다. 죄를 회개하고 의를 행함이 없이는 결코 어떤 평안도 보장될 수 없다. 악인에게는 평안이 없다(사 48:22). 평안은 회개하고 의를 행하는 자에게만 기대되는 복이다.

셋째로, 우리는 하나님의 구원을 감사하자. 하나님께서는 친히 자기 백성을 다 건지실 것이다. 땅 위에 회개와 순종의 말씀이 계속 선포되고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받는 친 백성이 항상 있을 것이다.

 

 

14장: 우상숭배에 대한 심판

[1-5절] 이스라엘 장로 두어 사람이 나아와 내 앞에 앉으니 . . . .

에스겔은 말한다. “이스라엘 장로 두어사람이 나아와 내 앞에 앉으니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하여 가라사대 인자야, 이 사람들이 자기 우상을 마음에 들이며 죄악의 거치는 것을 자기 앞에 두었으니 그들이 내게 묻기를 내가 조금인들 용납하랴. 그런즉 너는 그들에게 말하여 이르라. 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이스라엘 족속 중에 무릇 그 우상을 마음에 들이며 죄악의 거치는 것을 자기 앞에 두고 선지자에게 나아오는 자에게는 나 여호와가 그 우상의 많은 대로 응답하리니 이는 이스라엘 족속이 다 그 우상으로 인하여 나를 배반하였으므로 내가 그들의 마음에 먹은 대로 그들을 잡으려 함이니라.”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장로들이든 일반 백성이든 그들의 우상을 마음에 세우고 죄악의 거치는 것을 자기 앞에 두는 모든 사람(3, 4, 7절에 반복됨)을 용납지 않으시고 그들의 우상의 많은 대로 그들에게2) 보응할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우상을 마음에 들인다는 말은 우상을 마음에 세운다는 뜻이다. 또 하나님께서는 그들이 다 그 우상으로 그를 배반하였으므로 그가 그들의 마음을 붙잡으리라고 말씀하신다. ‘그들의 마음에 먹은 대로 그들을’이라는 구절은 ‘그들의 마음을’이라고 번역할 수 있다(KJV, NASB, NIV).

[6절] 그런즉 너는 이스라엘 족속에게 이르기를 주 . . . .

하나님께서는 또 말씀하신다. “그런즉 너는 이스라엘 족속에게 이르기를 주 여호와의 말씀에 너희는 마음을 돌이켜 우상을 떠나고 얼굴을 돌이켜 모든 가증한 것을 떠나라.” 하나님의 명령은 이스라엘 백성이 마음을 돌이켜 모든 가증한 우상을 떠나는 것이다. 하나님의 원하시는 뜻은 우리가 모든 죄를 버리고 하나님 중심으로 순종하며 사는 것이다. 그것이 성경 전체의 요점이다(신 10:12-13; 전 12:13).

[7-8절] 이스라엘 족속과 이스라엘 가운데 우거하는 외인 . . . .

하나님께서는 또 말씀하신다. “이스라엘 족속과 이스라엘 가운데 우거하는 외인 중에 무릇 나를 떠나고 자기 우상을 마음에 들이며 죄악의 거치는 것을 자기 앞에 두고 자기를 위하여 내게 묻고자 하여 선지자에게 나아오는 자에게는 나 여호와가 친히 응답하여 그 사람을 대적하여 그들로 놀라움과 감계와 속담거리가 되게 하여 내 백성 가운데서 끊으리니 너희가 나를 여호와인 줄 알리라.”

이스라엘 백성이나 그들 가운데 우거하는 외국인들 중에 하나님을 떠나고 자기 우상을 마음에 세우고 죄악의 거치는 것을 자기 앞에 두고 하나님에 관해 그에게 묻고자 하여3) 선지자에게 나아오는 자에게 하나님께서는 그를 대적하여 그로 징표와 이야깃거리가 되게 하여 그 백성 가운데서 끊으실 것이다. 이로써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의 살아계심과 그의 공의의 심판을 알게 될 것이다.

[9-11절] 만일 선지자가 유혹을 받고 말을 하면 나 . . . .

하나님께서는 또 말씀하신다. “만일 선지자가 유혹을 받고 말을 하면 나 여호와가 그 선지자로 유혹을 받게 하였음이어니와 내가 손을 펴서 내 백성 이스라엘 가운데서 그를 멸할 것이라. 선지자의 죄악과 그에게 묻는 자의 죄악이 같은즉 각각 자기의 죄악을 담당하리니 이는 이스라엘 족속으로 다시는 미혹하여 나를 떠나지 않게 하며 다시는 모든 범죄함으로 스스로 더럽히지 않게 하여 그들로 내 백성을 삼고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려 함이니라. 나 주 여호와의 말이니라 하셨다 하라.”

하나님께서는 또 거짓 선지자들이 유혹을 받아 말들을 하는 것도 그의 주권적 섭리 가운데 된 일이지만 그들의 악에 대해서는 벌하셔서 그들을 이스라엘 백성 가운데서 멸하실 것이다. 선지자의 죄악의 형벌이나 그에게 묻는 자의 죄악의 형벌이 똑같으며 각자가 자기의 죄악의 형벌을 담당할 것이다. ‘죄악’이라는 원어(아본)는 ‘죄악의 형벌’이라는 뜻도 있다. 하나님의 심판은 공정하다. 하나님께서는 각 사람의 행위대로 심판하신다.

하나님의 뜻은 이스라엘 백성이 다시는 미혹하여 하나님을 떠나지 않게 하고 다시는 모든 범죄함으로 그들 자신을 더럽히지 않게 하여 그들로 하나님의 친 백성을 삼고 하나님께서 그들의 하나님이 되는 것이다. 그것이 인류를 향하신 하나님의 구원 섭리의 목표이다. 구원은 죄로부터의 구원이다. 하나님의 뜻은 우리가 의로운 친 백성이 되는 것이다. 천국은 죄가 전혀 없는 세계이다. 성경 맨 마지막에 천국과 지옥에 대한 말씀을 하실 때에도 하나님께서는 “나는 저의 하나님이 되고 그는 내 아들이 되리라”고 말씀하셨다(계 21:7).

[12-14절] 여호와의 말씀이 또 내게 임하여 가라사대 . . . .

에스겔은 또 말한다. “여호와의 말씀이 또 내게 임하여 가라사대 인자야, 가령 어느 나라가 불법하여 내게 범죄하므로 내가 손을 그 위에 펴서 그 의뢰하는 양식을 끊어 기근을 내려서 사람과 짐승을 그 나라에서 끊는다 하자. 비록 노아, 다니엘, 욥, 이 세 사람이 거기 있을지라도 그들은 자기의 의로 자기의 생명만 건지리라. 나 주 여호와의 말이니라.” 하나님께서는 다시 자신의 심판이 공평함을 강조하신다. 노아, 다니엘, 욥은 에스겔 당시에도 알려진 의로운 인물이었다. 노아와 욥은 오래 전의 인물이지만, 다니엘은 동시대의 인물인데도 널리 알려진 인물이었다. 하나님의 말씀은, 구원의 문제가 각 사람의 문제라는 것이다. 각 사람은 자신의 구원을 준비해야 한다. 각 사람은 자기의 행위대로 보응을 받을 것이다.

[15-20절] 가령 내가 사나운 짐승으로 그 땅에 통행하여 . . . .

하나님께서는 또 말씀하신다. “가령 내가 사나운 짐승으로 그 땅에 통행하여 적막케 하며 황무케 하여 사람으로 그 짐승을 인하여 능히 통행하지 못하게 한다 하자. 비록 이 세 사람이 거기 있을지라도 나의 삶을 두고 맹세하노니 그들은 자녀도 건지지 못하고 자기만 건지겠고 그 땅은 황무하리라. 나 주 여호와의 말이니라. 가령 내가 칼로 그 땅에 임하게 하고 명하기를 칼아, 이 땅에 통행하라 하여 사람과 짐승을 거기서 끊는다 하자. 비록 이 세 사람이 거기 있을지라도 나의 삶을 두고 맹세하노니 그들은 자녀도 건지지 못하고 자기만 건지리라. 나 주 여호와의 말이니라. 가령 내가 그 땅에 온역을 내려 죽임으로 내 분을 그 위에 쏟아 사람과 짐승을 거기서 끊는다 하자. 비록 노아, 다니엘, 욥이 거기 있을지라도 나의 삶을 두고 맹세하노니 그들은 자녀도 건지지 못하고 자기의 의로 자기의 생명만 건지리라. 나 주 여호와의 말이니라 하시니라.”

하나님께서는 비슷한 말씀을 사나운 짐승으로 징벌하시는 경우와 칼로 징벌하시는 경우와 온역 즉 무서운 전염병으로 징벌하시는 경우를 들어 반복해 말씀하셨다. 또 하나님께서는 세 번이나 공통적으로 “나의 삶을 두고 맹세하노니”(카이 아니)라는 말씀을 하셨다. 그것은 이 말씀이 꼭 믿어야 할, 반드시 유념해야 할 진리임을 강조하신 것이다. 또 그는 세 번이나 반복하셔서 비록 그 세 의인이라 할지라도 자기 자녀도 건지지 못하고 자기만, 자기의 생명만 건지리라고 말씀하셨다. 특히 하나님께서는 자녀의 구원에 대해 말씀하셨다. 우리는 이 점을 깊이 생각해야 한다. 우리가 하나님을 경외하고 경건하게 살고자 하는 마음이 있다고 우리 자녀는 덤으로 은혜를 받을 것이라고 생각하지 말아야 한다. 우리 자녀는 자신의 구원을 위해 그 자신이 깨어 있어야 하고 죄를 회개해야 하고 참된 믿음을 가져야 하고, 또 구원받은 자마다 의와 선을 행해야 한다.

[21절] 주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내가 나의 네 가지 중한 벌 . . . .

하나님께서는 또 말씀하신다. “주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내가 나의 네 가지 중한 벌 곧 칼과 기근과 사나운 짐승과 온역을 예루살렘에 함께 내려 사람과 짐승을 그 중에서 끊으리니 그 해가 더욱 심하지 않겠느냐?” 하나님께서는 예루살렘 성을 향해 네 가지 중한 벌, 즉 칼과 기근과 사나운 짐승과 온역을 함께 내리실 것이며 그러할 때 그들이 어떻겠는가? 이 네 가지 중 한가지만 내려도 큰 해를 입겠는데, 그 네 가지가 동시에 내리니 얼마나 큰 해를 당할 것인가!

[22-23절] 그러나 그 가운데 면하는 자가 남아 있어 끌려 . . . .

하나님께서는 또 말씀하신다. “그러나 그 가운데 면하는 자가 남아 있어 끌려 나오리니 곧 자녀들이라. 그들이 너희에게로 나아오리니 너희가 그 행동과 소위를 보면 내가 예루살렘에 내린 재앙 곧 그 내린 모든 일에 대하여 너희가 위로를 받을 것이라. 너희가 그 행동과 소위를 볼 때에 그들로 인하여 위로를 받고 내가 예루살렘에서 행한 모든 일이 무고히 한 것이 아닌 줄을 알리라. 나 주 여호와의 말이니라.”

하나님의 심판이 이스라엘 백성을 완전히 멸절시키는 것은 아니다. 그 징벌 가운데서도 그것을 모면하고 남은 자녀들이 있고 그들은 포로 되어 에스겔과 이미 잡혀온 유다 백성이 있는 바벨론 땅으로 오게 될 것이다. 또 하나님께서는 “그 자녀들의 행동과 소위를 보면”(2번이나 언급됨) 에스겔과 이미 사로잡힌 유다 백성이 위로를 받고 하나님께서 예루살렘에 행하신 모든 일이 까닭 없는 일이 아님을 알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그것은 나중에 잡혀온 자들을 볼 때 먼저 잡혀온 자들이 오히려 작은 고통을 당하였다는 뜻이고, 그 자녀들의 행동과 행위를 보면 그들이 얼마나 악했고 하나님의 징벌을 받기에 합당했는지를 알게 된다는 뜻이다.

본장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우리는 마음에 있는 우상과 죄악을 버려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마음을 돌이켜 우상을 떠나고 얼굴을 돌이켜 모든 가증한 것을 떠나라고 명하셨다. 오늘날 우리도 마음 속에 죄악되고 가증한 우상을 숨겨두지 말아야 한다. 모든 숨겨진 우상을 버리고 모든 은밀한 죄악을 버려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결코 하나님의 평강의 복을 얻을 수 없다.

둘째로, 우리는 하나님을 떠나지 말고 죄를 지어 자신을 더럽히지 말고 하나님의 백성답게 살아야 한다. 하나님의 뜻은 우리의 경건함과 성결함이다.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 계명을 지키는 것이 인생의 본분이며 죄 짓지 않고 의와 거룩을 실천하는 것이 성도의 본분이다. 전도서 12:13, “일의 결국을 다 들었으니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 명령을 지킬지어다. 이것이 사람의 본분이니라.” 로마서 6:22, “이제는 너희가 죄에게서 해방되고 하나님께 종이 되어 거룩함에 이르는 열매를 얻었으니 이 마지막은 영생이라.” 데살로니가전서 4:3, “하나님의 뜻은 이것이니 너희의 거룩함이라. 곧 음란을 버리라.”

셋째로, 모든 사람은 각자의 구원을 위해 회개하고 바르게 살아야 한다. 구원은 개인의 문제이다. 자녀의 구원은 자녀의 몫이다. 부모가 그의 구원을 위해 무엇을 대신해 줄 수 없다. 노아와 다니엘과 욥이라 할지라도 자기 자녀를 위해 무엇을 해 줄 수 없다. 그들은 그들의 의로 그들 자신만, 그들의 생명만 구원할 수 있을 뿐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 자신뿐 아니라, 우리의 자녀들의 구원을 위해 그들에게 믿음과 의의 말씀으로 교훈해야 하고 눈물로 하나님께 기도해야 한다.

 

 

 15장: 불에 던질 포도나무처럼 될 것

[1-2절]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하여 가라사대 인자야 . . . .

에스겔은 말한다.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하여 가라사대 인자야, 포도나무가 모든 나무보다 나은 것이 무엇이랴. 삼림 중 여러 나무 가운데 있는 그 포도나무 가지가 나은 것이 무엇이랴.” 포도나무가 다른 나무보다 나은 점은 포도 열매를 맺는 데 있다. 포도 열매는 맛있는 과일이며 몸에도 아주 유익하다. 그것은 포도 쥬스와 건포도와 포도주를 만드는 데 쓰인다.

[3-5절] 그 나무를 가지고 무엇을 제조할 수 있겠느냐? . . . .

하나님께서는 또 말씀하신다. “그 나무를 가지고 무엇을 제조할 수 있겠느냐? 그것으로 무슨 그릇을 걸 못을 만들 수 있겠느냐? 불에 던질 화목이 될 뿐이라. 불이 그 두 끝을 사르고 그 가운데도 태웠으면 제조에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 [보라] 그것이 온전할 때에도 아무 제조에 합당치 않았거든 하물며 불에 살라지고 탄 후에 어찌 제조에 합당하겠느냐?” 4절의 원문을 다시 번역하면, “보라, 그것이 땔감으로 불에 던지우도다. 불이 두 끝을 사르고 그 가운데도 태웠으니 제조에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이다.

포도나무가 포도 열매를 맺지 않는다면 그 외의 용도는 별로 없을 것이다. 그것으로 무슨 물건을 제조할 수 없을 것이며, 그것으로 그릇을 걸 못을 만들기도 어려울 것이다. 포도나무는 그렇게 단단한 나무가 아니다. 그것은 고작해야 불에 던질 땔감으로 쓰일 정도일 것이다. 그것은 굵은 가지가 없고 잔가지만 많기 때문에 땔감으로라도 좋지 않을 것이다. 그것은 장작 같은 것에 비해 빈약한 땔감이다. 더욱이, 불이 포도나무 가지의 두 끝을 사르고 그 가운데를 태웠을 때 그 포도나무는 무엇에 쓰이겠는가. 열매 없는 포도나무는 온전할 때도 별 쓸모가 없는데, 불에 탄 후에야 더 쓸모가 없을 것이다.

[6절] 그러므로 주 여호와 내가 말하노라. 내가 수풀 가운데 . . . .

하나님께서는 또 말씀하신다. “그러므로 주 여호와 내가 말하노라. 내가 수풀 가운데 포도나무를 불에 던질 화목이 되게 한 것같이 내가 예루살렘 거민도 그같이 할지라.” 하나님께서 포도나무를 불에 던질 땔감이 되게 하셨다는 말씀은 예루살렘 거민을 두고 하신 비유이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경건과 도덕성의 좋은 열매 맺기를 원하셨다. 이사야 5:1-2, “나의 사랑하는 자에게 포도원이 있음이여, 심히 기름진 산에로다. 땅을 파서 돌을 제하고 극상품 포도나무를 심었었도다. 그 중에 망대를 세웠고 그 안에 술틀을 팠었도다. 좋은 포도 맺기를 바랐더니 들 포도를 맺혔도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이 좋은 열매를 맺지 않으므로 하나님께서는 포도나무를 불에 던져 태우듯이 예루살렘 성을 불로 멸망시키실 것이다.

[7절] 내가 그들을 대적한즉 그들이 그 불에서 나와도 불이 . . . .

하나님께서는 또 말씀하신다. “내가 그들을 대적한즉 그들이 그 불에서 나와도 불이 그들을 사르리니 내가 그들을 대적할 때에 너희가 나를 여호와인 줄 알리라.” 하나님께서는 “내가 그들을 대적한다”고 본절에 두 번이나 말씀하신다. 예루살렘의 멸망은 하나님의 징벌이다. 하나님께서는 포도나무를 불태우듯이 그들을 멸망시키실 것이다. 바벨론 군대의 예루살렘 침공은 예루살렘 거민에게 불같은 고난일 것이다. 예루살렘 거민의 다수는 그 침공으로 죽임을 당하고 예루살렘 성은 멸망을 당할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은 그 성이 멸망을 당할 때 비로소 하나님의 살아계심과 공의를 알게 될 것이다.

[8절] 내가 그 땅을 황무케 하리니 이는 그들이 . . . .

하나님께서는 또 말씀하신다. “내가 그 땅을 황무케 하리니 이는 그들이 범법함이니라. 나 주 여호와의 말이니라 하시니라.” 하나님께서는 그 땅을 황무케 하실 것이다. 예루살렘 성의 멸망은 그 땅을 황폐케 만들 것이다. 성벽은 무너지고 집들은 부서지고 그 성은 사람들이 살 만하지 못하고 짐승들의 거처가 될 정도로 황량해지고 황폐해질 것이다. 하나님께서 예루살렘 성을 황무케 하시는 까닭은 그들이 범법하였기 때문이다. ‘범법하다’(마알 마알)는 원어는 ‘불성실하게 행하다, 배신 행위를 하다’는 뜻이다. 그것은 아내의 부정(不貞)이나 남편의 외도를 가리키는 말로 쓰이며, 다음 장에 나오는 이스라엘의 영적 음행을 가리키는 말로 쓰인다. 우상숭배나 부도덕은 하나님의 언약을 어기는 것이고 하나님께 대해 불성실한 일이다. 모든 죄는 하나님께 대해 불성실한 행위이며 하나님의 언약을 배반하는 배신 행위이다.

짧은 본문인 에스겔 15장에서 우리가 얻는 교훈은, 우리가 하나님께 불성실하지 말고 그의 언약을 배반하고 그것에 불성실하지 말고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의 계명을 성실히 준행하는 자들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것은 포도나무가 좋은 열매를 맺는 것과 같다. 그것은 우리 주님께서 요한복음 15장에서 우리가 그 안에 거하여 열매를 많이 맺어야 할 것을 말씀하신 것과 같다. 주께서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신 목적은 선한 일에 열심하는 친 백성이 되게 하시기 위함이다(딛 2:14). 선행은 참된 신앙의 열매이며 증표이다. 성경의 요점은 우리가 하나님과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구원을 받을 것과 그 열매로 우리의 실생활 속에서 선과 사랑을 행하라는 것이다. 그것은 성령의 열매요 의의 열매이며 선한 열매이다(갈 5:22-23; 빌 1:9-11).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을 경외하고 구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구원과 천국과 영생을 확신하며  또 신구약성경에 계시된 하나님의 모든 뜻, 곧 그의 계명과 규례를 힘써 지켜 의롭고 선하고 진실한 열매를 많이 맺자.

 

 

16장: 예루살렘의 음란

1-22절, 예루살렘의 과거와 현재

[1-5절] 여호와의 말씀이 또 내게 임하여 가라사대 인자야 . . . .

에스겔은 말한다. “여호와의 말씀이 또 내게 임하여 가라사대 인자야, 예루살렘으로 그 가증한 일을 알게 하여 이르기를 주 여호와께서 예루살렘에 대하여 말씀하시되 네 근본과 난 땅은 가나안이요 네 아비는 아모리 사람이요 네 어미는 헷 사람이라. 너의 난 것을 말하건대 네가 날 때에 네 배꼽줄을 자르지 아니하였고 너를 물로 씻어 정결케 하지 아니하였고 네게 소금을 뿌리지 아니하였고 너를 강보로 싸지도 아니하였나니 너를 돌아 보아 이 중에 한 가지라도 네게 행하여 너를 긍휼히 여긴 자가 없었으므로 네가 나던 날에 네 몸이 꺼린 바 되어 네가 들에 버리웠었느니라.”

하나님께서는 예루살렘의 가증한 일에 대해 말씀하신다. 그 가증한 일이란 우상숭배를 가리킨다. 하나님께서는 예루살렘으로 그 가증한 것을 알게 하시기를 원하신다. 사람이 자신의 잘못과 문제를 알아야 회개할 수 있고 구원을 받을 수 있다.

하나님께서는 먼저 예루살렘 백성, 즉 이스라엘 백성의 근본에 대해 말씀하신다. ‘네 근본과 난 땅’이라는 원어는 ‘네 근본과 네 출생’이라는 뜻이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의 근본과 출생이 가나안이며 그 아비는 아모리 사람이요 그 어미는 헷 사람이라고 말씀하신다. 그것은 육신적, 혈통적 의미가 아니고 영적 의미이다. 즉 이스라엘 백성의 조상은 본래 우상숭배하던 자들 곧 이방인과 같은 자들이었다는 뜻이다. 여호수아 24:2에 보면, 여호수아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기를, “옛적에 너희 조상들 곧 아브라함의 아비, 나홀의 아비 데라가 강 저편에[즉 갈대아 우르 땅에] 거하여 다른 신들을 섬겼다”고 하였다(수 24:2).

또 하나님께서는 말씀하시기를, 그들이 날 때에 그 배꼽줄을 자르지 아니하였고 그를 물로 씻어 정결케 하지 아니했고 그에게 소금을 뿌리지 아니했고 그를 강보로 싸지도 아니했고 그를 돌아보아 이 중에 한 가지라도 그에게 행하여 그를 긍휼히 여긴 자가 없었으므로 그가 나던 날에 그의 몸이 꺼린 바 되어 그가 들에 버려졌다고 하셨다. 소금을 뿌리는 것은 정결케 하는 방식이었을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의 본래의 모습은 이렇게 부정하고 불결하였다.

[6-8절] 내가 네 곁으로 지나갈 때에 네가 피투성이가 되어 . . . .

하나님께서는 또 말씀하신다. “내가 네 곁으로 지나갈 때에 네가 피투성이가 되어 발짓하는 것을 보고 네게 이르기를 너는 피투성이라도 살라. 다시 이르기를 너는 피투성이라도 살라 하고 내가 너로 들의 풀같이 많게 하였더니 네가 크게 자라고 심히 아름다우며 유방이 뚜렷하고 네 머리털이 자랐으나 네가 오히려 벌거벗은 적신이더라. 내가 네 곁으로 지나며 보니 네 때가 사랑스러운 때라. 내 옷으로 너를 덮어 벌거벗은 것을 가리우고 네게 맹세하고 언약하여 너로 내게 속하게 하였었느니라. 나 주 여호와의 말이니라.”

하나님께서는 죄인이었던 이스라엘의 선조를 불러 죄사함을 주셨다. 원문에 ‘피투성이가 되어’ 혹은 ‘피투성이인’이라는 반복된 표현은 이스라엘의 선조가 본래 죄악되었음을 나타낸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 이스라엘을 살리셨고 번성케 하셨다. 이스라엘은 생육이 중다하고 번식하고 창성하고 심히 강대한 나라가 되었다(출 1:7). 또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자기와 언약을 맺어 언약 백성이 되게 하셨고 그들을 자기의 특별한 소유로 삼으셨다(출 19:5).

[9-14절] 내가 물로 너를 씻겨서 네 피를 없이 하며 네게 . . . .

하나님께서는 또 말씀하신다. “내가 물로 너를 씻겨서 네 피를 없이 하며 네게 기름을 바르고 수놓은 옷을 입히고 물돼지 가죽신을 신기고 가는 베로 띠우고 명주[비단]로 덧입히고 패물을 채우고 팔고리를 손목에 끼우고 사슬을 목에 드리우고 코고리를 코에 달고 귀고리를 귀에 달고 화려한 면류관을 머리에 씌웠나니 이와 같이 네가 금, 은으로 장식하고 가는 베와 명주와 수놓은 것을 입으며 또 고운 밀가루와 꿀과 기름을 먹음으로 극히 곱고 형통하여 왕후의 지위에 나아갔느니라. 네 화려함을 인하여 네 명성이 이방인 중에 퍼졌음은 내가 네게 입힌 영화로 네 화려함이 온전함이니라. 나 주 여호와의 말이니라.”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물로 씻듯이 그리스도의 속죄의 피로 씻으셨고 기름을 바르듯이 성령의 은혜를 덧입혀 주셨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에게 많은 은혜를 주셨고 이스라엘은 하나님이 주신 특권과 복된 지위를 누렸다(출 19:5-6). 예루살렘 성은 부요와 영광을 얻었고 그 명성은 널리 전달되었다.

[15-16절] 그러나 네가 네 화려함을 믿고 네 명성을 . . . .

하나님께서는 또 말씀하신다. “그러나 네가 네 화려함을 믿고 네 명성을 인하여 행음하되 무릇 지나가는 자면 더불어 음란을 많이 행하므로 네 몸이 그들의 것이 되도다. 네가 네 의복을 취하여 색스러운 산당을 너를 위하여 만들고 거기서 행음하였나니 이런 일은 전무후무하니라.” 사람이 부요하고 명성을 얻으면 교만해지고 해이해져서 범죄하기 쉽다. 그래서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네가 먹어서 배불리고 아름다운 집을 짓고 거하게 되며 또 네 우양이 번성하며 네 은금이 증식되며 네 소유가 다 풍부하게 될 때에 두렵건대 네 마음이 교만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잊어버릴까 하노라”고 말하였다(신 8:12-14). 또 성경은, 유다 왕 웃시야가 강성해질 때 그 마음이 교만하여 악을 행하였다고 증거한다(대하 26:16).

[17-22절] 네가 또 나의 준 금, 은 장식품으로 너를 . . . .

하나님께서는 또 말씀하신다. “네가 또 나의 준 금, 은 장식품으로 너를 위하여 남자 우상을 만들어 행음하며 또 네 수놓은 옷으로 그 우상에게 입히고 나의 기름과 향으로 그 앞에 베풀며 또 내가 네게 주어 먹게 한 내 식물 곧 고운 밀가루와 기름과 꿀을 네가 그 앞에 베풀어 향기를 삼았나니 과연 그렇게 하였느니라. 나 주 여호와의 말이니라. 또 네가 나를 위하여 낳은 네 자녀를 가져 그들에게 드려 제물을 삼아 불살랐느니라. 네가 너의 음행을 작은 일로 여겨서 나의 자녀들을 죽여 우상에게 붙여 불 가운데로 지나가게 하였느냐? 네 어렸을 때에 벌거벗어 적신이었으며 피투성이가 되어서 발짓하던 것을 기억지 아니하고 네가 모든 가증한 일과 음란을 행하였느니라.” 이스라엘 백성이 우상들을 만들고 그것들에게 장식한 금은은 하나님께서 주신 것들이며 또 그 앞에 제사하고 불사른 고운 밀가루와 기름과 향은 다 하나님께서 주신 것들이며 또 그들이 그 앞에 불살라 죽게 한 그 자녀들은 하나님의 자녀들이며 하나님을 위해 낳은 자들이었다. 그들은 하나님의 것들을 가지고 하나님의 금하시고 노하시는 우상숭배에 사용했다. 그들은 무지하게 범죄했고 타락하고 하나님을 멀리 떠났다. 그 결과, 그들은 멸망을 당할 것이다.

본문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우리는 우리의 과거의 죄와 불행과,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와 새 삶을 잊지 말고 항상 기억하자. 우리는 다시 과거의 삶으로 돌아가지 말자. 둘째로, 우리는 우리의 가진 모든 좋은 것이 다 하나님께서 주신 것임을 알고 교만하거나 해이해지지 말자. 우리는 하나님의 것을 가지고 헛된 일을 위해 쓰지 말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또 그의 뜻을 이루기 위해 쓰자. 셋째로, 무엇보다 우리는 우상숭배에 떨어지지 말자. 우상숭배는 하나님의 가장 미워하시는 죄이다. 우리는 순수한 경건과 성경적 보수 신앙을 지키고 실천하자.

 

23-43절, 예루살렘의 음란과 그 결과

[23-24절] 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너는 화 있을진저. . . .

하나님께서는 또 말씀하신다. “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너는 화 있을진저. 화 있을진저. 네가 모든 악을 행한 후에 너를 위하여 누(樓)를 건축하며 모든 거리에 높은 대를 쌓았도다.” 주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에스겔을 통해 유다 백성에게 화를 선언하신다. 하나님께 복을 받아야 할 인생이 그에게 화를 받는 것은 불행 중 불행이다.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화를 선언하신 것은 그들이 모든 악을 행한 후에 우상을 섬기는 단을 쌓았기 때문이었다. 그들은 자신을 위해 누를 건축하며 모든 거리에 높은 대를 쌓았다. ‘누’(樓)라는 원어()는 ‘둔덕’(mound)(BDB, NIV)이나 ‘사당’(shrine)(NASB)을 가리키며 ‘높은 대’라는 원어(라마)는 ‘산당, 사당’(high place, shrine)을 가리킨다. 유다 백성은 곳곳에 우상숭배의 단들을 쌓았던 것이다.

[25-26절] 네가 높은 대를 모든 길 머리에 쌓고 네 . . . .

하나님께서는 또 말씀하신다. “네가 높은 대를 모든 길 머리에 쌓고 네 아름다움을 가증하게 하여 모든 지나가는 자에게 다리를 벌려 심히 행음하고 하체가 큰 네 이웃나라 애굽 사람과도 행음하되 심히 음란히 하여 내 노를 격동하였도다.” 그들은 모든 길 머리에 사당을 세우고 모든 지나가는 자와 행음하였다. ‘하체가 큰’이라는 원어(기들레 바사르)는 ‘신체가 큰’이라는 뜻이다. 그들은 애굽 사람들과도 행음하였다. 본문의 행음이라는 말은 비유적인 말로서 우상숭배를 가리킨다. 그들의 우상숭배는 심하였고 그 행위들, 즉 우상숭배의 행위들은 하나님의 노를 격동시켰다.

[27-29절] 그러므로 내가 내 손을 네 위에 펴서 네 일용 . . . .

하나님께서는 또 말씀하신다. “그러므로 내가 내 손을 네 위에 펴서 네 일용 양식을 감하고 너를 미워하는 블레셋 여자 곧 네 더러운 행실을 부끄러워하는 자에게 너를 붙여 임의로 하게 하였거늘 네가 음욕이 차지 아니하여 또 앗수르 사람과 행음하고 그들과 행음하고도 오히려 부족히 여겨 장사하는 땅 갈대아에까지 심히 행음하되 오히려 족한 줄을 알지 못하였느니라.” 유다 백성의 우상숭배에 대한 하나님의 징벌로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일용할 양식을 감소시키셨다. 또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그 음탕한 행실을 부끄러워하는 블레셋 여자들에게 붙여 임의로 하게 하셨다. ‘더러운 행위’라는 원어는 ‘음탕한 행위’라는 뜻이다. 그러나 유다는 애굽과의 음행으로 만족지 않고 앗수르 사람들과 행음하였고 그것도 부족하여 갈대아 사람들과도 행음하였다. ‘음욕이 차지 아니하여’라는 원어는 ‘만족이 없으므로’라는 뜻이다. 유다의 우상숭배는 끝이 없었다. 사람이 하나님 대신 사랑하는 우상들은 만족을 주지 못한다.

[30-34절] 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네가 이 모든 일을 . . . .

하나님께서는 또 말씀하신다. “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네가 이 모든 일을 행하니 이는 방자한 음부(淫婦)의 행위라. 네 마음이 어찌 그리 약한지. 네가 누를 모든 길 머리에 건축하며 높은 대를 모든 거리에 쌓고도 값을 싫어하니 창기 같지도 않도다. 그 지아비 대신에 외인과 사통하여 간음하는 아내로다. 사람들은 모든 창기에게 선물을 주거늘 오직 너는 네 모든 정든 자에게 선물을 주며 값을 주어서 사방에서 와서 너와 행음하게 하니 너의 음란함이 다른 여인과 같지 아니함은 행음하려고 너를 따르는 자가 없음이며 또 네가 값을 받지 아니하고 도리어 줌이라. 그런즉 다른 여인과 같지 아니하니라.”

하나님께서는 유다 백성이 행하는 모든 우상숭배의 일을 ‘방자한 음부의 행위’라고 말씀하신다. ‘방자한 음부’이라는 원어(잇솨 조나 솰라텟)는 ‘뻔뻔스런, 혹은 낯두꺼운 창녀’라는 뜻이다. 하나님의 언약 백성인 그들의 마음은 너무 약하였다. 그러나 그들은 일반적 매춘녀와 같지 않았고 자기 남편을 두고 다른 사람과 간통하는 아내와 같았다. 일반적인 매춘녀는 사람에게 선물을 받고 값을 받고 행음하지만, 유다 백성은 그를 따르는 자가 없고 오히려 그 자신이 값을 주며 행음하였다.

[35-37절] 그러므로 너 음부야, 여호와의 말을 들을지어다. . . .

하나님께서는 또 말씀하신다. “그러므로 너 음부야, 여호와의 말을 들을지어다. 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네가 네 누추한 것을 쏟으며 네 정든 자와 행음함으로 벗은 몸을 드러내며 또 가증한 우상을 위하며 네 자녀의 피를 그 우상에게 드렸은즉 내가 너의 즐거워하는 정든 자와 사랑하던 모든 자와 미워하던 모든 자를 모으되 사방에서 모아 너를 대적하게 할 것이요 또 네 벗은 몸을 그 앞에 드러내어 그들로 그것을 다 보게 할 것이며.” ‘누추한 것’이라는 원어(네코쉣)는 ‘구리, 동전, 돈,’ ‘누추한 것’(KJV), ‘음탕함’(NASB, BDB) 등의 뜻을 가진다. 유다 백성이 우상숭배로 그 누추함을 쏟고 그 벗은 몸을 드러내며 자녀들의 피를 우상에게 드렸으므로, 하나님께서는 그가 즐거워하는 정든 자들과 사랑하는 자들과 또 그의 미워하는 자들을 다 사방에서 모아 그를 대적하게 하실 것이며 그들이 그의 벗은 몸을 보게 하실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38-41절] 내가 또 간음하고 사람의 피를 흘리는 여인을 . . . .

하나님께서는 또 말씀하신다. “내가 또 간음하고 사람의 피를 흘리는 여인을 국문함같이 너를 국문하여 진노의 피와 투기의 피를 네게 돌리고 내가 또 너를 그들의 손에 붙이리니 그들이 네 누를 헐며 네 높은 대를 훼파하며 네 의복을 벗기고 네 장식품을 빼앗고 네 몸을 벌거벗겨 버려두며 무리를 데리고 와서 너를 돌로 치며 칼로 찌르며 불로 너의 집들을 사르고 여러 여인의 목전에서 너를 벌할지라. 내가 너로 곧 음행을 그치게 하리니 네가 다시는 값을 주지 아니하리라.” 본문은 유다 백성이 이방 나라들 가운데서 어떻게 수치와 멸망을 당할 것인지를, 자기의 남편을 떠나 외도한 여자가 사람들 앞에서 수치와 형벌을 받는 것으로 표현하였다. 우상숭배의 결과는 수치와 고통과 멸망이다.

[41-43절] 내가 너로 곧 음행을 그치게 하리니 네가 . . . .

하나님께서는 또 말씀하신다. “불로 너의 집들을 사르고 여러 여인의 목전에서 너를 벌할지라. 내가 너로 곧 음행을 그치게 하리니 네가 다시는 값을 주지 아니하리라. 그리한즉 내가 네게 대한 내 분노가 그치며 내 투기가 네게서 떠나고 마음이 평안하여 다시는 노하지 아니하리라. 네가 어렸을 때를 기억지 아니하고 이 모든 일로 나를 격노케 하였은즉 내가 네 행위대로 네 머리에 보응하리니 네가 이 음란과 네 모든 가증한 일을 다시는 행하지 아니하리라. 나 주 여호와의 말이니라.” 하나님께서 유다를 징벌하시는 목적은 그들로 그 음행을 그치게 하시기 위함이다. 유다는 자신의 과거를 모르고 음행함으로 멸망하고 그때 비로소 하나님의 분노가 그칠 것이다.

본문의 교훈은 우상숭배치 말라는 것이다. 요한일서 5:21, “자녀들아, 너희 자신을 지켜 우상에서 멀리하라.” 오늘날 우리는 돈, 인간 이성, 쾌락, 세상 등의 현대적 우상을 경계해야 한다. 우리는 오직 하나님만 믿고 섬기며 순종하자. 오직 성경의 교훈대로 믿고 섬기며 순종하자. 신명기 10:12-13,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요구하시는 것이 무엇이냐? 곧 네 하나님 여호와를 경외하여 그 모든 도를 행하고 그를 사랑하며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섬기고 내가 오늘날 네 행복을 위하여 네게 명하는 여호와의 명령과 규례를 지킬 것이 아니냐?” 디모데전서 6:11-12, “의와 경건과 믿음과 사랑과 인내와 온유를 좇으며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라. 영생을 취하라.”

 

44-63절, 유다의 죄와 하나님의 긍휼

[44-46절] 무릇 속담하는 자가 네게 대하여 속담하기를 . . . .

하나님께서는 또 말씀하신다. “무릇 속담하는 자가 네게 대하여 속담하기를 어미가 어떠하면 딸도 그렇다 하리라. 너는 그 남편과 자녀를 싫어한 어미의 딸이요 너는 그 남편과 자녀를 싫어한 형의 동생이로다. 네 어미는 헷 사람이요 네 아비는 아모리 사람이며 네 형은 그 딸들과 함께 네 좌편에 거하는 사마리아요 네 아우는 그 딸들과 함께 네 우편에 거하는 소돔이라.” 어머니가 어떠하면 딸도 그러하다는 속담은 예나 지금이나 똑같다. 사람은 타고난 기질도 있고 듣고 보고 배운 것도 있기 때문이다. 유다 백성은 그 남편과 자녀들을 싫어한 어미의 딸과 같고 그 남편들과 자녀들을 싫어한 여형제와 같다. ‘형의 동생’이라는 원어는 ‘여형제들 중의 하나’라는 뜻이다. 하나님께서는 유다의 어미가 헷 사람이며 아비가 아모리 사람이라고 말씀하시며 그 형이 사마리아요 그 아우가 소돔이라고 말씀하신다. 영적인 의미에서 그렇다는 뜻이다. 그들은 다 불경건하고 우상숭배적인 점에서 동질적이었다. 부패된 인간 본성은 비슷하다.

[47-48절] 네가 그들의 행위대로만 행치 아니하며 . . . .

하나님께서는 또 말씀하신다. “네가 그들의 행위대로만 행치 아니하며 그 가증한 대로만 행치 아니하고 그것을 적게 여겨서 네 모든 행위가 그보다 더욱 부패하였도다. 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가 나의 삶을 두고 맹세하노니 네 아우 소돔 곧 그와 그 딸들은 너와 네 딸들의 행위같이 행치 아니하였느니라.” 유다의 문제는 우상숭배적인 주위 백성보다 더 부패했다는 것이다. 그들은 주위 백성의 악을 작게 여겼다. 그들의 모든 행위는 그들보다 더욱 부패했다. 그러므로 주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소돔 백성들은 유다 백성처럼 행치는 않았다고 말씀하신다. “내가 나의 삶을 두고 맹세하노니”라는 원어(카이 아니)는4) “내가 살아 있거니와”라는 뜻으로 맹세하는 표현이다. 사람은 보통 살아계신 하나님을 두고 맹세한다. 여기서는 하나님께서 자신의 살아계심을 언급하며 말씀하신다. 그것은 살아계신 그가 모든 인간의 행위를 보고 계심을 말한다.

[49-50절] 네 아우 소돔의 죄악은 이러하니 그와 . . . .

하나님께서는 또 말씀하신다. “네 아우 소돔의 죄악은 이러하니 그와 그 딸들에게 교만함과 식물의 풍족함과 태평함이 있음이며 또 그가 가난하고 궁핍한 자를 도와주지 아니하며 거만하여 가증한 일을 내 앞에서 행하였음이라. 그러므로 내가 보고 곧 그들을 없이 하였느니라.” 소돔의 죄악은 무엇이었나? 첫째, 그들은 교만하고 거만하였다. 그것은 모든 죄의 근원이다. 모든 죄는 하나님을 거역하는 것이며 그것은 하나님을 무시하고 인간 자신을 높이는 결과이다. 둘째, 그들은 식물의 풍족함에도 불구하고 가난하고 궁핍한 자를 도와줄 줄 몰랐고 태평하고 안이했다. ‘태평함’이라는 원어는 ‘안이함’이라는 뜻이다. 셋째, 그들은 하나님 앞에서 가증한 일을 행했다. 가증한 일이란 음란과 우상숭배를 가리킨다. 하나님께서 가장 미워하시는 죄가 우상숭배요 음란이다. 세상과 우리의 모든 삶이 하나님 앞에 있다. 그러므로 인간의 모든 선악의 행위는 하나님의 공의로운 판단을 받을 것이다. 소돔의 음란과 우상숭배의 행위들은 하나님의 공의로운 판단을 받았고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없이하셨다.

[51-52절] 사마리아는 네 죄의 절반도 범치 아니하였느니라. . . .

하나님께서는 또 말씀하신다. “사마리아는 네 죄의 절반도 범치 아니하였느니라. 네가 그들보다 가증한 일을 심히 행한 고로 너의 가증한 행위로 네 형과 아우를 의롭게 하였느니라. 네가 네 형과 아우를 논단하였은즉 너도 네 수치를 담당할지니라. 네가 그들보다 더욱 가증한 죄를 범하므로 그들이 너보다 의롭게 되었나니 네가 네 형과 아우를 의롭게 하였은즉 너는 놀라며 네 수치를 담당할지니라.” 사마리아 곧 북방 이스라엘이 남방 유다 백성의 죄의 절반도 범치 않았다. 유다 백성은 그들보다 가증한 일을 심히 많이 행하였다. ‘심히 행한 고로’라는 말은 ‘심히 많이 행한 고로’라는 뜻이다. 그들의 가증한 행위 때문에 북방 이스라엘은 오히려 의롭게 보일 정도이었다. 유다 백성은 이스라엘이나 소돔보다도 더 가증한 우상숭배를 행하였다. 그것이 성경에 기록된 므낫세 때의 상황이었다(왕하 21장). 그러나 마침내 유다 백성은 하나님의 징벌로 수치를 당할 것이다. 본문은 두 번이나 이 사실을 말함으로 강조한다. 유다 백성의 부패는 교회가 타락하면 세상보다 더 타락함을 보인다. 이단 종파들이 심지어 사회의 지탄받는 것을 보면 그러하다. 그들의 어떤 악들은 보통 상식 있는 사회에서도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다. 그들은 신도들의 물질을 조직적으로 착복하고 그들의 인권을 심히 유린하며 성적으로도 매우 문란하다고 알려져 있다.

[53-55절] 내가 그들의 사로잡힘 곧 소돔과 그 딸들의 . . . .

하나님께서는 또 말씀하신다. “내가 그들의 사로잡힘 곧 소돔과 그 딸들의 사로잡힘과 사마리아와 그 딸들의 사로잡힘과 그들 중에 너의 사로잡힌 자의 사로잡힘을 돌이켜서 너로 네 수욕을 담당하고 너의 행한 모든 일을 인하여 부끄럽게 하리니 이는 네가 그들에게 위로가 됨이라. 네 아우 소돔과 그 딸들이 옛 지위를 회복할 것이요 사마리아와 그 딸들도 그 옛 지위를 회복할 것이며 너와 네 딸들도 너희 옛 지위를 회복할 것이니라.” 원문에는 53절 초두에 ‘그러나’라고 번역할 수 있는 말()이 있다(NASB, NIV). 이 세상이 이처럼 부패하고 타락했을지라도, 어느 날 하나님께서는 소돔과 같고 사마리아와 같은 죄인들을 돌이키실 것이다. 그때 유다 백성은 자신들의 과거의 악한 행위들을 인해 부끄러워할 것이다.

[56-58절] 네가 교만하던 때에 네 아우 소돔을 네 입으로 . . . .

하나님께서는 또 말씀하신다. “네가 교만하던 때에 네 아우 소돔을 네 입으로 말하지도 아니하였나니 곧 네 악이 드러나기 전에며 아람 딸들이 너를 능욕하기 전에며 너의 사방에 둘러 있는 블레셋 딸들이 너를 멸시하기 전에니라. 네 음란과 네 가증한 일을 네가 담당하였느니라. 나 여호와의 말이니라. [이는] 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네가 맹세를 멸시하여 언약을 배반하였은즉 내가 네 행한 대로 네게 행하리라[행할 것임이니라].” 유다 백성은 과거에 교만하여 이방인들을 무시하며 말거리도 삼지 않았지만 그들은 하나님의 징벌을 받고 주위 백성들에게 능욕과 멸시를 받은 후, 즉 그 우상숭배로 인해 하나님의 징벌을 받은 후, 또 하나님의 회복시키시는 은혜를 받은 후, 자신의 죄와 부족을 깨닫고 부끄러워할 것이다. 유다 백성이 죗값으로 하나님의 징벌을 받는 것은 그들이 하나님 앞에서 언약하고 맹세한 제1, 2계명을 어기고 그 맹세를 멸시했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행한 대로 그들에게 갚으실 것이다.

[60-63절] 그러나 내가 너의 어렸을 때에 너와 세운 . . . .

하나님께서는 또 말씀하신다. “그러나 내가 너의 어렸을 때에 너와 세운 언약을 기억하고 너와 영원한 언약을 세우리라. 네가 네 형과 아우를 접대할 때에 네 행위를 기억하고 부끄러워할 것이라. 내가 그들을 네게 딸로 주려니와 네 언약으로 말미암음이 아니니라. 내가 네게 내 언약을 세워서 너로 나를 여호와인 줄 알게 하리니 이는 내가 네 모든 행한 일을 용서한 후에 너로 기억하고 놀라고 부끄러워서 다시는 입을 열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 나 주 여호와의 말이니라 하셨다 하라.”

유다 백성이 부패하고 패역했고 하나님께서 그들의 행위대로 그들에게 갚으실 수밖에 없으셨지만,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과 어릴 때 맺은 언약을 기억하시고 그들과 영원한 언약을 세우실 것이다(61, 62절). 그때 이방인들은 하나님께로 돌아올 것이며 유다 백성은 그들을 접대할 것이다. 그것은 이방인들의 구원을 암시한다. 이러한 세계적 회복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의 언약 때문이다. 이 언약으로 유다 백성은 여호와 하나님을 참으로 알게 될 것이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그들의 모든 죄악된 일들을 용서하신 후에 이루어질 것이다. ‘용서한다’는 원어(킵페르)는 ‘덮다, 속죄하다, 속량하다’는 뜻이다. 그것은 다니엘 9:24에 말한 “죄악이 영속(永贖, 영원히 속해짐)되며 영원한 의가 드러나는” 일이다. 그것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대속 사역으로 말미암은 새 언약의 은혜를 가리킨다.

본문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인간 본성은 전적으로 부패되어 있다. 유다는 심지어 소돔보다 더 부패하였다. 그것은 인간의 전적 부패성을 잘 보인다. 이런 죄성은 우리 속에도 남아 있다. 로마서 8:7,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나니 이는 하나님의 법에 굴복치 아니할 뿐 아니라 할 수도 없음이라.” 우리는 죄성을 대적해야 한다.

둘째로, 하나님의 공의는 두렵다. 하나님께서는 소돔이나 이스라엘보다 더 부패하여 우상숭배에 빠진 유다를 징벌하시고 버리실 것이다. 하나님의 공의는 항상 변함이 없다. 로마서 8:13, “너희가 육신대로 살면 반드시 죽을 것이라.” 우리는 하나님의 공의를 두려워해야 한다.

셋째로, 우리는 하나님의 긍휼의 구원과 새 언약을 감사해야 한다. 예레미야는 하나님의 영원한 언약을 예언했다(렘 31:33-34; 32:39-42) 그것은 구주 예수의 십자가 대속 사역으로 이루어진 언약이다. 우리는 그것을 감사하며 이제 하나님 중심으로만 살고 늘 근신하고 모든 죄악된 것을 버리고 거룩하며 성경의 교훈을 충실히 순종하며 살아가자.

 

 

17장: 독수리와 포도나무 비유

[1-6절]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하여 가라사대 인자야 . . . .

에스겔은 말한다.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하여 가라사대 인자야, 너는 수수께끼와 비유를 이스라엘 족속에게 베풀어 이르기를 주 여호와의 말씀에 채색이 구비하고 날개가 크고 깃이 길고 털이 숱한 큰 독수리가 레바논에 이르러 백향목 높은 가지를 취하되 그 연한 가지 끝을 꺾어 가지고 장사하는 땅에 이르러 상고(商賈)의 성읍에 두고 또 그 땅의 종자를 취하여 옥토에 심되 수양버들가지처럼 큰 물가에 심더니 그것이 자라며 퍼져서 높지 아니한 포도나무 곧 굵은 가지와 가는 가지가 난 포도나무가 되어 그 가지는 독수리를 향하였고 그 뿌리는 독수리의 아래 있었더라.”

하나님께서는 두 독수리와 포도나무에 대한 비유를 말씀하셨다. 여러 색깔을 가지고 날개가 크고 깃이 길고 털이 많은 한 큰 독수리는 바벨론 왕을 가리켰다(12절). 그 독수리가 레바논에 이르러 백향목 높은 가지 중 연한 가지(여호야긴) 끝을 꺾어 가지고 장사하는 땅(바벨론)에 이르러 상인들의 성에 두었다. 또 그 독수리는 그 레바논 땅의 한 씨(시드기야)를 취하여 비옥한 땅에 심되 수양버들가지처럼 큰 물가에 심었는데, 그것이 자라며 퍼져서 굵은 가지와 가는 가지가 난 포도나무가 되었고, 그 가지는 독수리를 향하였다.

[7-10절] 또 날개가 크고 털이 많은 큰 독수리 하나가 . . . .

에스겔은 또 말한다. “또 날개가 크고 털이 많은 큰 독수리 하나가 있었는데 그 포도나무가 이 독수리에게 물을 받으려고 그 심긴 두둑에서 그를 향하여 뿌리가 발하고 가지가 퍼졌도다. 그 포도나무를 큰 물 가 옥토에 심은 것은 가지를 내고 열매를 맺어서 아름다운 포도나무를 이루게 하려 하였음이니라. 너는 이르기를 주 여호와의 말씀에 그 나무가 능히 번성하겠느냐? 이 독수리가 어찌 그 뿌리를 빼고 실과를 따며 그 나무로 시들게 하지 아니하겠으며 그 연한 잎사귀로 마르게 하지 아니하겠느냐? 많은 백성이나 강한 팔이 아니라도 그 뿌리를 뽑으리라. 볼지어다, 그것이 심겼으나 번성하겠느냐? 동풍이 부딪힐 때에 아주 마르지 아니하겠느냐? 그 자라던 두둑에서 마르리라 하셨다 하라.” 7절의 다른 한 큰 독수리는 애굽 왕 바로를 가리킨다고 보인다. 또 9절에 그 포도나무의 뿌리를 빼고 실과를 따며 그 나무로 시들게 한 독수리는 바벨론 왕을 가리켰다.

[11-15절] 여호와의 말씀이 또 내게 임하여 가라사대 너는 . . . .

에스겔은 또 말한다. “여호와의 말씀이 또 내게 임하여 가라사대 너는 패역한 족속에게 묻기를 너희가 이 비유를 깨닫지 못하겠느냐 하고 그들에게 고하기를 바벨론 왕이 예루살렘에 이르러 왕과 방백을 사로잡아 바벨론 자기에게로 끌어가고 그 왕족 중에 하나를 택하여 언약을 세우고 그로 맹세케 하고 또 그 땅의 능한 자들을 옮겨 갔나니 이는 나라를 낮추어 스스로 서지 못하고 그 언약을 지켜야 능히 서게 하려 하였음이어늘 그가 사자를 애굽에 보내어 말과 군대를 구함으로 바벨론 왕을 배반하였으니 형통하겠느냐? 이런 일을 행한 자가 피하겠느냐? 언약을 배반하고야 피하겠느냐?”

하나님께서는 그 수수께끼 비유에 대해 설명해주셨다. 그 처음의 큰 독수리는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을 가리켰고 레바논은 유대 땅을 가리켰다. 그 바벨론 왕은 유다 땅 예루살렘에 와서 왕과 방백들을 사로잡아 바벨론으로 끌어갈 것이다. ‘연한 가지’는 유다의 어린 왕 여호야긴을 가리켰고, 장사하는 땅과 상인들의 성읍은 바벨론 땅을 가리켰다.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은 유다와 예루살렘을 침공하여 여호야긴을 사로잡고 그와 여러 방백들을 바벨론으로 사로잡아 갈 것이다(왕하 24:8, 15-16). 바벨론 왕은 그 땅의 한 종자[씨]로 비유된 왕족 중 하나인 시드기야를 택하여 언약을 세우고 그로 맹세케 하고 그 땅에 재능 있는 자들을 옮겨갔다. 그것은 유다 나라로 하여금 스스로 서지 못하게 하려 함이었다(왕하 24:17).

그러나 시드기야가 사자를 애굽에 보내어 말과 군대를 구함으로 바벨론 왕을 배반하였다. 그가 바벨론 왕과의 언약을 배반하였으니(왕하 24:20; 대하 36:13) 재난을 피할 수 있겠는가? 시드기야가 바벨론 왕을 배반하고 친(親)애굽 정책을 취하였기 때문에, 바벨론 왕은 다시 침공하였고 유다는 멸망하게 될 것이다.

[16-18절] 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가 나의 삶을 두고 . . . .

하나님께서는 또 말씀하신다. “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가 나의 삶을 두고 맹세하노니 바벨론 왕이 그를 왕으로 세웠거늘 그가 맹세를 업신여겨 언약을 배반하였은즉 그 왕의 거하는 곳 바벨론 중에서 왕과 함께 있다가 죽을 것이라. 대적이 토성을 쌓으며 운제를 세우고 많은 사람을 멸절하려 할 때에 바로가 그 큰 군대와 많은 무리로도 그 전쟁에 그를 도와 주지 못하리라. 그가 이미 손을 내어 밀어 언약하였거늘 맹세를 업신여겨 언약을 배반하고 이 모든 일을 행하였으니 피하지 못하리라.” 바벨론 왕이 시드기야를 왕으로 세웠는데, 그가 맹세를 업신여기고 언약을 배반하였기 때문에 그는 바벨론 왕의 거하는 곳에서 왕과 함께 있다가 죽을 것이다. 또 예루살렘을 침공할 바벨론 군대가 토성을 쌓고 포위벽을 세우고 많은 사람을 멸절하려 할 때, 즉 유다 멸망 때, 애굽의 바로와 그 큰 군대와 많은 무리가 그 전쟁에서 시드기야를 도와주지 않을 것이다. 또 시드기야가 손을 내밀어 언약하였으나 맹세를 업신여겨 언약을 배반하고 그 모든 일을 행하였으므로 그 멸망을 피하지 못할 것이다.

[19-21절] 그러므로 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가 나의 . . . .

하나님께서는 또 말씀하신다. “그러므로 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가 나의 삶을 두고 맹세하노니 그가 내 맹세를 업신여기고 내 언약을 배반하였은즉 내가 그 죄를 그 머리에 돌리되 내 그물을 그 위에 베풀며 내 올무에 걸리게 하여 끌고 바벨론으로 가서 나를 반역한 그 반역을 거기서 국문할지며 그 모든 군대에서 도망한 자들은 다 칼에 엎드러질 것이요 그 남은 자는 사방으로 흩어지리니 나 여호와가 이것을 말한 줄을 너희가 알리라.”

시드기야의 배신 행위는 하나님의 맹세를 업신여긴 것이고 하나님의 언약을 배반한 것이다. 그것은 바벨론 왕이 시드기야에게 맹세시킬 때 하나님의 이름으로 하였기 때문이다(대하 36:13). 그 맹세와 언약은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의 이름으로 한 것이며 물론 바벨론 왕과도 맺은 언약이었다. 하나님께서는 시드기야의 그 언약 배반에 대한 죄를 그 머리에 돌리실 것이다. 또 하나님께서는 그를 끌고 바벨론으로 가서 그 반역을 거기서 심문할 것이며 그 이스라엘의 모든 군대에서 도망한 자들은 다 칼에 엎드러질 것이요 그 남은 자들은 사방으로 흩어질 것이며, 이로써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알게 될 것이다. 바벨론 군대에 의한 유다의 멸망은 곧 하나님의 심판이었다.

[22-24절] 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가 또 백향목 . . . .

하나님께서는 또 말씀하신다. “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가 또 백향목 꼭대기에서 높은 가지를 취하여 심으리라. 내가 그 높은 새 가지 끝에서 연한 가지를 꺾어 높고 빼어난 산에 심되 이스라엘 높은 산에 심으리니 그 가지가 무성하고 열매를 맺어서 아름다운 백향목을 이룰 것이요 각양 새가 그 아래 깃들이며 그 가지 그늘에 거할지라. 들의 모든 나무가 나 여호와는 높은 나무를 낮추고 낮은 나무를 높이며 푸른 나무를 말리우고 마른 나무를 무성케 하는 줄 알리라. 나 여호와는 말하고 이루느니라 하라.”

하나님께서는 한 놀라운 계획을 말씀하신다. 그것은 그가 친히 한 가지, 한 연한 새 가지를 심으실 것이라는 계획이다. 그는 그 가지를 높고 빼어난 산, 즉 이스라엘 산에 심으실 것이며 그 가지는 무성하고 열매를 맺어 아름다운 백향목을 이룰 것이요 각양 새가 그 아래 깃들이며 그 가지 그늘에 거할 정도로 커질 것이다. 그 가지는 열매 맺는 아름다운 백향목이 될 것이다. 백향목은 유용하고 향기가 좋은 나무이다. 그 열매는 선한 열매를 가리키는 것이 분명하다.

이것은 분명히 이스라엘의 회복의 에언 곧 메시아에 대한 예언이다. 이것은 구약의 다른 성경들과 일맥상통한다(사 11:1, 10; 53:2; 렘 23:5; 슥 3:8). 메시아는 나뭇가지로 비유되었다. 또 하나님께서는 들의 모든 나무들을 높은 나무는 낮추고 낮은 나무는 높이며 푸른 나무는 말리고 마른 나무는 무성케 하실 것이다. 나무는 사람들을 가리킨다. 하나님께서는 이 일을 이루시는 주권적 하나님이시다.

본문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우리는 하나님의 언약을 배반치 말자.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과 맺은 언약을 배반함으로 멸망하였다. 오늘날 신약성도가 하나님과 맺은 언약은 세례 문답에 나타나 있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만 믿고 의지하며 모든 죄를 버리고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겠다는 언약이다. 우리가 참 믿음을 배반하거나 계명을 저버리고 범죄하면 하나님과의 언약을 어기는 것이다. 우리는 언약을 배반치 말고 경건함과 거룩함과 선함으로 살자.

둘째로, 우리는 하나님의 주권적 은혜를 감사하며 의지하자. 우리가 우리된 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이다. 하나님께서는 택하신 자들을 회개시키시고 예수 믿게 하시고 순종하며 살게 하신다. 우리는 우리를 구원하신 하나님의 은혜를 감사하자. 우리는 또한 다른 사람들의 구원도 기대하자. 우리는 하나님의 택한 백성이 하나도 남김 없이 다 구원얻을 것을 믿고 낙심치 말고 담대히 전도하자(요 6:37-40).

 

 

18장: 하나님의 심판의 공평성

[1-4절] 여호와의 말씀이 또 내게 임하여 가라사대 너희가 . . . .

에스겔은 말한다. “여호와의 말씀이 또 내게 임하여 가라사대 너희가 이스라엘 땅에 대한 속담에 이르기를 아비가 신 포도를 먹었으므로 아들의 이가 시다고 함은 어찜이뇨? 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가 나의 삶을 두고 맹세하노니 너희가 이스라엘 가운데서 다시는 이 속담을 쓰지 못하게 되리라. 모든 영혼이 다 내게 속한지라. 아비의 영혼이 내게 속함같이 아들의 영혼도 내게 속하였나니 범죄하는 그 영혼이 죽으리라.”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스라엘 땅에 대해 “아비가 신 포도를 먹었으므로 아들의 이가 시다”는 속담을 하였다. 그것은 그 땅이 황폐해진 것은 조상탓이라는 뜻이다. 그것은 자신들의 죄악됨을 인정치 않고 회개치 않는 태도에서 나온 속담이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이 그 속담을 더 이상 쓰지 못하게 될 것이라고 하셨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이 자신의 죄와 부족을 철저히 깨닫게 되기를 원하셨다. 그들의 속담에 대조되는 하나님의 말씀은 “범죄하는 그 영혼이 죽으리라”는 것이다. 아비의 영혼이나 아들의 영혼이나 모든 영혼은 다 하나님께 속하며 각 사람은 하나님 앞에 개인적으로 서며 누구든지 범죄하는 그 사람은 그 죗값으로 인해 죽을 것이다.

[5-9절] 사람이 만일 의로워서 법과 의를 따라 행하며 산 . . . .

하나님께서는 또 말씀하신다. “사람이 만일 의로워서 법과 의를 따라 행하며 산 위에서 제물을 먹지 아니하며 이스라엘 족속의 우상에게 눈을 들지 아니하며 이웃의 아내를 더럽히지 아니하며 월경 중에 있는 여인을 가까이 하지 아니하며 사람을 학대하지 아니하며 빚진 자의 전당물을 도로 주며 억탈하지 아니하며 주린 자에게 식물을 주며 벗은 자에게 옷을 입히며 변을 위하여 꾸이지 아니하며 이식을 받지 아니하며 스스로 손을 금하여 죄악을 짓지 아니하며 사람 사람 사이에 진실히 판단하며 내 율례를 좇으며 내 규례를 지켜 진실히 행할진대 그는 의인이니 정녕 살리라. 나 주 여호와의 말이니라.” ‘변’이라는 원어(네쉑)는 ‘고리대금’을 뜻한다(KJV, NIV).

하나님께서는 의인의 예를 드신다. 어떤 사람이 의로워서 하나님의 법을 행하며 산 위에서 드려진 우상제물을 먹지 않고 우상숭배하지 않고, 이웃의 아내와 간음을 행하지 않으며 월경 중에 있는 여인을 가까이 하지 않으며(레 18:19), 사람을 학대하지 않으며 빚진 자의 전당물을 해가 지기 전에 돌려주며(출 22:26) 강제로 남의 물건을 빼앗지 않으며, 굶주린 사람이 있으면 그에게 먹을 것을 주고 헐벗은 사람이 있으면 옷을 입히고, 고리대금을 하지 않으며 이자를 받지 아니하며, 손으로 남을 해치는 죄를 범하지 아니하며 사람 사람 사이에 진실히 판단하며, 하나님의 율례를 좇으며 그의 규례를 지켜 진실히 행한다면, 그는 의인이며 참으로 살 것이다.

[10-13절] 가령 그가 아들을 낳았다 하자. 그 아들이 . . . .

하나님께서는 또 말씀하신다. “가령 그가 아들을 낳았다 하자. 그 아들이 이 모든 선은 하나도 행치 아니하고 이 악 중 하나를 범하여 강포하거나 살인하거나 산 위에서 제물을 먹거나 이웃의 아내를 더럽히거나 가난하고 궁핍한 자를 학대하거나 억탈하거나 빚진 자의 전당물을 도로 주지 아니하거나 우상에게 눈을 들거나 가증한 일을 행하거나 변을 위하여 꾸이거나 이식을 받거나 할진대 그가 살겠느냐? 살지 못하리니 이 모든 가증한 일을 행하였은즉 정녕 죽을지라. 자기의 피가 자기에게로 돌아가리라.”

한 의인이 아들을 낳았는데, 그 아들이 이 모든 선은 하나도 행치 않고 이 악들 중 하나를 범하여 강포하거나 살인하거나 산 위에서 우상제물을 먹거나 이웃의 아내를 더럽히거나 가난하고 궁핍한 자를 학대하거나 강제로 물건을 빼앗거나 빚진 자의 전당물을 돌려주지 않거나 우상에게 눈을 들거나 가증한 일을 행하거나 고리대금한다면, 그는 살지 못할 것이다. 그는 이 모든 가증한 일을 행하였기 때문에 참으로 죽을 것이며 자기 피가 자기에게로 돌아갈 것이다.

[14-18절] 또 가령 그가 아들을 낳았다 하자. 그 아들이 . . . .

하나님께서는 또 말씀하신다. “또 가령 그가 아들을 낳았다 하자. 그 아들이 그 아비의 행한 모든 죄를 보고 두려워하여 그대로 행하지 아니하고 산 위에서 제물을 먹지도 아니하며 이스라엘 족속의 우상에게 눈을 들지도 아니하며 이웃의 아내를 더럽히지도 아니하며 사람을 학대하지도 아니하며 전당을 잡지도 아니하며 억탈하지도 아니하고 주린 자에게 식물을 주며 벗은 자에게 옷을 입히며 손을 금하여 가난한 자를 압제하지 아니하며 변이나 이식을 취하지 아니하여 내 규례를 지키며 내 율례를 행할진대 이 사람은 그 아비의 죄악으로 인하여 죽지 아니하고 정녕 살겠고 그 아비는 심히 포학하여 그 동족을 억탈하고 민간에 불선을 행하였으므로 그는 그 죄악으로 인하여 죽으리라.”

악인의 아들 즉 처음 의인에게는 손자가 되는 그 아들이 그 아비의 행한 모든 죄를 보고 생각하여5) 그대로 행하지 않고 산 위에서 제물을 먹지도 않고 우상에게 눈을 들지도 않고 이웃의 아내를 더럽히지도 않고 사람을 학대하지도 않고 전당물을 취하지도 않고 강제로 무엇을 빼앗지도 않고 굶주린 자에게 먹을 것을 주며 헐벗은 자에게 옷을 입히며 손을 금하여 가난한 자를 압제하지 않고 고리대금하지 않고 하나님의 규례를 지키며 그의 율례를 행한다면, 그 사람은 그 아비의 죄악으로 인해 죽지 않고 참으로 살 것이며, 그 아비는 심히 포학하여 그 동족을 강탈하고 사람들에게 선하지 않은 일들을 행했기 때문에 그 죄악으로 인해 죽을 것이다.

[19-20절] 그런데 너희는 이르기를 아들이 어찌 아비의 . . . .

하나님께서는 또 말씀하신다. “그런데 너희는 이르기를 아들이 어찌 아비의 죄를 담당치 않겠느뇨 하는도다. 아들이 법과 의를 행하며 내 모든 율례를 지켜 행하였으면 그는 정녕 살려니와 범죄하는 그 영혼은 죽을지라. 아들은 아비의 죄악을 담당치 아니할 것이요 아비는 아들의 죄악을 담당치 아니하리니 의인의 의도 자기에게로 돌아가고 악인의 악도 자기에게로 돌아가리라.” “아들이 어찌 아비의 죄를 담당치 않겠느냐?”는 속담은 옳지 않다. 아들이 법과 의를 행하며 하나님의 모든 율례를 지켜 행하였으면 그는 참으로 살 것이며 범죄하는 그 영혼은 죽을 것이다. 또 아들은 아비의 죄악을 담당치 않을 것이요 아비는 아들의 죄악을 담당치 않을 것이며, 의인의 의도 자기에게로 돌아가고 악인의 악도 자기에게로 돌아갈 것이다.

[21-24절] 그러나 악인이 만일 그 행한 모든 죄에서 . . . .

하나님께서는 또 말씀하신다. “그러나 악인이 만일 그 행한 모든 죄에서 돌이켜 떠나 내 모든 율례를 지키고 법과 의를 행하면 정녕 살고 죽지 아니할 것이라. 그 범죄한 것이 하나도 기억함이 되지 아니하리니 그 행한 의로 인하여 살리라. 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가 어찌 악인의 죽는 것을 조금인들 기뻐하랴. 그가 돌이켜 그 길에서 떠나서 사는 것을 어찌 기뻐하지 아니하겠느냐? 만일 의인이 돌이켜 그 의에서 떠나서 범죄하고 악인의 행하는 모든 가증한 일대로 행하면 살겠느냐? 그 행한 의로운 일은 하나도 기억함이 되지 아니하리니 그가 그 범한 허물과 그 지은 죄로 인하여 죽으리라.”

악인이 그 행한 모든 죄에서 돌이켜 떠나 하나님의 모든 율례를 지키고 법과 의를 행하면 정녕 살고 죽지 않을 것이며 그 범죄한 것이 하나도 기억함이 되지 않을 것이며 그 행한 의로 인해 살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악인의 죽는 것을 기뻐하지 않으시고 그가 그 길에서 떠나서 사는 것을 기뻐하신다. 한편, 의인이 그 의에서 떠나서 범죄하고 악인의 행하는 모든 가증한 일대로 행하면, 그는 살지 못하고 그의 행한 의로운 일은 하나도 기억함이 되지 않을 것이며 그는 그가 범한 허물과 그 지은 죄로 인해 죽을 것이다.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는 사람의 행위대로 심판하시고 보응하실 것이다.

[25-29절] 그런데 너희는 이르기를 주의 길이 공평치 않다 . . . .

하나님께서는 또 말씀하신다. “그런데 너희는 이르기를 주의 길이 공평치 않다 하는도다. 이스라엘 족속아, 들을지어다. 내 길이 어찌 공평치 아니하냐? 너희 길이 공평치 않은 것이 아니냐? 만일 의인이 그 의를 떠나 죄악을 행하고 인하여 죽으면 그 행한 죄악으로 인하여 죽는 것이요 만일 악인이 그 행한 악을 떠나 법과 의를 행하면 그 영혼을 보전하리라. 그가 스스로 헤아리고[생각하여] 그 행한 모든 죄악에서 돌이켜 떠났으니 정녕 살고 죽지 아니하리라. 그런데 이스라엘 족속은 이르기를 주의 길이 공평치 않다 하는도다. 이스라엘 족속아, 나의 길이 어찌 공평치 아니하냐? 너희 길이 공평치 않은 것이 아니냐?” 하나님께서 이제껏 말씀하신 것은, 자신의 심판이 공평하다는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께서 불공정한 재판관인 것처럼 불평하였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의 심판이 사람들의 선악의 행위에 근거한 공정한 심판임을 강조하셨다. 의인이라도 그 의를 떠나 악을 행하면 그 악을 인해 죽을 것이며, 악인이라도 그 악을 떠나 의를 행하면 살 것이다.

[30-32절] 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이스라엘 족속아 . . . .

하나님께서는 또 말씀하신다. “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이스라엘 족속아, 내가 너희 각 사람의 행한 대로 국문할지라. 너희는 돌이켜 회개하고 모든 죄에서 떠날지어다. 그리한즉 죄악이 너희를 패망케 아니하리라. 너희는 범한 모든 죄악을 버리고 마음과 영을 새롭게 할지어다. 이스라엘 족속아, 너희가 어찌하여 죽고자 하느냐? 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죽는 자의 죽는 것은 내가 기뻐하지 아니하노니 너희는 스스로 돌이키고 살지니라.” 하나님께서는 각 사람의 행한 대로 심판하실 것이다. 그러므로 이스라엘 백성은 돌이켜 회개하고 모든 죄에서 떠나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죽는 자의 죽는 것을 기뻐하지 않으신다. 회개는 새 마음과 새 영을 가지는 것이다. 우리는 모든 죄악을 버리고 마음과 영을 새롭게 해야 한다.

본장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하나님의 심판은 공정하다. 우리는 하나님의 심판의 공정성을 알아야 한다. 그는 결코 불의한 재판관이 아니시다. 그는 사람의 행한 대로 공의롭게 심판하신다. 그러므로 사람은 자신의 죄를 깨닫고 자신의 행위에 대해 책임을 지는 마음가짐을 가져야 한다. 사람은 공의로운 하나님의 심판 앞에 잠잠해야 한다.

둘째로, 구원은 각 사람의 문제이다. 아무리 경건한 부모라 하더라도 그가 그의 자녀의 구원을 보장할 수 없다. 구원받는 사람은 믿고 순종하며, 그 일에 있어서 각 사람은 책임을 가진다. 구원은 하나님의 은혜이지만, 각 사람은 구원의 수단을 적절하게 사용해야 한다.

셋째로, 모든 사람은 회개하고 죄를 떠나야 한다. 범죄하는 그 영혼은 죽을 것이다. 이 진리는 신약 아래서도 여전히 진리이다. 로마서 8:13, “너희가 육신대로 살면 반드시 죽을 것이라.” 우리는 새 마음과 새 영, 즉 심령의 새로움을 가져야 한다.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실제로 죄를 짓지 않고 하나님의 계명을 즐거이 순종하는 것이다.

 

 

19장: 이스라엘 방백들을 위한 애가

[1-4절] 너는 이스라엘 방백들을 위하여 애가를 지어 . . . .

하나님께서는 말씀하신다. “너는 이스라엘 방백들을 위하여 애가를 지어 부르기를 네 어미는 무엇이냐? 암사자라. 그가 사자들 가운데 엎드리어 젊은 사자 중에서 그 새끼를 기르는데 그 새끼 하나를 키우매 젊은 사자가 되어 식물 움키기를 배워 사람을 삼키매 이방이 듣고 함정으로 그를 잡아 갈고리로 꿰어 끌고 애굽 땅으로 간지라.”

하나님께서는 에스겔에게 이스라엘 방백들을 위하여 애가를 지어 부르라고 말씀하셨다. 그 당시에 남은 유다 나라는 이스라엘 나라를 대표하였다. 그러므로 여기의 ‘이스라엘 방백들’은 유다 왕국 말년에 왕권이 약화된 왕들, 즉 여호아하스, 여호야김, 여호야긴, 시드기야를 가리켰다고 본다. 하나님께서는 유다 나라를 암사자에 비유하시고 그 왕들을 사자 새끼로 비유하신다. 어미 사자가 새끼들 중 하나를 키워 젊은 사자가 되게 하였고 먹이 사냥도 잘 배웠는데, 어느 날 그 사자가 사람을 삼켰다. 이방 사람들은 그 소식을 듣고 함정으로 그를 잡았고 사슬로 묶어 애굽 땅으로 데려갔다. 이 비유는 여호아하스 왕을 가리켰다고 본다. 열왕기하 23에 보면, 여호아하스는 23세에 왕이 되었으나, 그 열조의 모든 행위대로 하나님 보시기에 악을 행하다가(32절) 애굽 왕 바로느고의 침공으로 석달 만에 폐위되고 애굽으로 잡혀가 거기서 죽었다(33-34절).

[5-7절] 암사자가 기다리다가 소망이 끊어진 줄을 알고 . . . .

하나님께서는 또 말씀하신다. “암사자가 기다리다가 소망이 끊어진 줄을 알고 그 새끼 하나를 또 취하여 젊은 사자가 되게 하니 젊은 사자가 되매 여러 사자 가운데 왕래하며 식물 움키기를 배워 사람을 삼키며 그의 궁실들을 헐고 성읍들을 훼파하니 그 우는 소리로 인하여 땅과 그 가득한 것이 황무(국한문, ‘황폐’)한지라.”

암사자는 기다리다가 소망이 끊어진 줄 알고 그 새끼 하나를 또 취하여 젊은 사자가 되게 하였다. 이것은 여호야김을 가리킨다. 그 젊은 사자는 여러 사자들 중에 왕래하며 먹이 사냥하기를 배웠다. 그것은 그가 활동적이고 이웃 나라들과의 교제도 활발했음을 보인다. 여호야김은 25세에 유다 왕이 되어 11년간 통치했다. 그러나 그도 사람을 삼켰다. 그것은 그가 잔인하고 난폭했음을 보인다. 성경은 여호야김도 그 열조의 모든 행한 일들을 본받아 하나님 보시기에 악을 행하였다고 증거한다(왕하 23:37).

젊은 사자는 그의 궁실들을 헐고 성읍들을 훼파하였다. ‘그의 궁실들을 헐었다’는 원어(와예다 알메노사우)는 ‘그의 과부들을 알았다’는 뜻이다. ‘궁실들’이라는 번역은 아람어 탈굼역을 따른 것이다(BH, BDB). ‘그의 과부들을 알았다’는 말은 그가 사람들을 죽이고 그의 과부들을 학대하였다는 뜻일 것이다(Delitsch). 예레미야 22:17은 여호야김이 탐람과 무죄한 피를 흘림과 압박과 강포를 행하였다고 증거한다. 또 그의 우는 소리로 인해 땅이 황무하였다. 왕이 악하고 난폭할 때 온 땅이 황폐하게 된다.

[8-9절] 이방이 둘려 있는 지방에서 그를 치러 와서 그의 . . . .

하나님께서는 말씀하신다. “이방이 둘려 있는 지방에서 그를 치러 와서 그의 위에 그물을 치고 함정에 잡아 갈고리로 꿰고 철롱에 넣어 끌고 바벨론 왕에게 이르렀나니 그를 옥에 가두어서 그 소리로 다시 이스라엘 산에 들리지 않게 하려 함이니라.” 열왕기하 24:2는 “여호와께서 그 종 선지자들로 하신 말씀과 같이 갈대아의 부대와 아람의 부대와 모압의 부대와 암몬 자손의 부대를 여호야김에게로 보내어 유다를 쳐 멸하려 하셨다”고 기록한다. 왕이 악할 때 하나님께서는 이웃 나라를 통해 그를 징벌하셨다. 이방 나라는 그를 그물을 치고 함정에 잡아 사슬에 매고 철롱에 넣어 끌고 바벨론 왕에게로 데려갔고 그를 옥에 가두었다. 여호야김은 바벨론으로 잡혀갔다. 역대하 36:6,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이 올라와서 치고 저를 쇠사슬로 결박하여 바벨론으로 잡아가고.”

[10-12절] 네 피의 어미는 물가에 심긴 포도나무 같아서 . . . .

하나님께서는 또 말씀하신다. “네 피의 어미는 물가에 심긴 포도나무 같아서 물이 많으므로 실과가 많고 가지가 무성하며 그 가지들은 견강하여 권세 잡은 자의 홀이 될 만한데 그 하나의 키가 굵은 가지 가운데서 높았으며 많은 가지 가운데서 뛰어나서 보이다가 분노 중에 뽑혀서 땅에 던짐을 당하매 그 실과는 동풍에 마르고 그 견강한 가지들은 꺾이고 말라 불에 탔더니.”

하나님께서는 사자의 비유에서 포도나무의 비유로 바꾸어 애가에 대해 계속 말씀하신다. ‘네 피의 어미’라는 원어는 직역하면 ‘네 어미 . . . 네 피에서’인데, “네가 피를 이어받은 네 어미”라는 뜻이든지 “네가 피투성이였을 때에 네 어미”(겔 16:6)라는 뜻일 것이다. 유다 민족은 물가에 심긴 포도나무 같아서 열매를 많이 맺고 가지가 무성하였고 그 가지들은 튼튼하여 권세 잡은 자의 홀이 될 만하였다. 그 굵은 가지들 가운데 하나가 키가 높았고 뛰어나 보였다. 그러나 분노 중에 뽑혀서 땅에 던짐을 당하고 그 열매는 동풍에 마르고 그 튼튼한 가지들은 꺾이고 말라 불에 탔다. 그것은 여호야긴 왕을 가리킨 것 같다. 여호야긴은 18세에 왕이 되었으나 석달 만에 폐위되었고 바벨론으로 잡혀갔다(왕하 24:15).

[13-14절] 이제는 광야, 메마르고 가물이 든 땅에 심긴 바 . . . .

하나님께서는 또 말씀하신다. “이제는 광야, 메마르고 가물이 든 땅에 심긴 바 되고 불이 그 가지 중 하나에서부터 나와서 그 실과를 태우니 권세 잡은 자의 홀이 될 만한 견강한 가지가 없도다. 이것이 애가라 후에도 애가가 되리라.” 유다 땅은 광야 같고 메마르고 가물이 든 땅같이 되었다. 한 가지는 유다의 마지막 왕 시드기야이었다. 그러나 그로 말미암아 유다의 왕권은 완전히 몰락했다. 이제는 왕의 권위도, 힘도, 영광도 없었다. 그가 바벨론 왕을 배반함으로 유다는 결국 멸망하게 되었다. 그 후에는 유다에 권세 잡은 자의 홀이 될 만한 가지가 없었다. 이것이 이스라엘 방백들을 위한 애가의 내용이다.

본장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악하고 난폭하고 잔인한 왕은 하나님의 징벌을 받을 것이다. 유다 말기의 왕들은 악한 왕들이었다. 그들은 사람을 삼키는 난폭하고 잔인한 자들이었다. 그들은 의인들의 피를 많이 흘렸다. 하나님께서는 악한 왕들을 애굽이나 바벨론에 잡혀가게 하셨다. 세상의 모든 권세는 다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며(롬 13:1-2)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세우기도 하시고 폐하기도 하실 것이다(롬 14:4).

둘째로, 왕이 악하면 그 나라는 약해지고 그 온 땅은 불행해진다. 이것은 유다 멸망의 역사에서 증거되었다. 성경은 왕이 의와 진리와 선으로 통치하면 그 왕위가 견고하고 그 나라도 든든히 설 것이라고 말한다. 잠언 14:34, “의는 나라로 영화롭게 하고 죄는 백성을 욕되게 하느니라.” 잠언 20:28, “왕은 인자와 진리로 스스로 보호하고 그 위도 인자함으로 말미암아 견고하니라.” 잠언 29:4, 14도 같은 내용이다.

셋째로, 우리는 위정자를 위해 기도하고 바른 인물을 뽑아야 한다. 디모데전서 2:1-2, “모든 사람을 위하여 간구와 기도와 도고와 감사를 하되 임금들과 높은 지위에 있는 모든 사람을 위하여 하라.” 또, 우리는 건전한 사상과 바른 인격과 도덕성을 가진 위정자를 뽑아야 한다. 나라가 평안하려면 지도자가 건전하고 바른 인격자이어야 한다. 그래야 그가 의와 선으로 나라를 인도하고 백성을 다스릴 것이다. 우리는 위정자를 위해 기도하고, 또 바른 위정자를 뽑는 일을 위해 기도하자.

 

 

20장: 이스라엘의 패역함

1-9절, 애굽에서의 패역함

본문은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 있었을 때에 패역했던 것을 증거한다. 이것은 창세기나 출애굽기에서 찾아볼 수 없는 역사적 내용이다. 단지 레위기 18:3이 그것을 약간 암시할 뿐이다. 레위기 18:3, “너희는 그 거하던 애굽 땅의 풍속을 좇지 말라.”

[1-4절] 제7년 5월 10일에 이스라엘 장로 두어 사람이 . . . .

에스겔은 말한다. “제7년 5월 10일에 이스라엘 장로 두어 사람이 여호와께 물으려고 와서 내 앞에 앉으니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하여 가라사대 인자야, 이스라엘 장로들에게 고하여 이르기를 주 여호와의 말씀에 너희가 내게 물으려고 왔느냐? 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가 나의 삶을 두고 맹세하노니 너희가 내게 묻기를 내가 용납지 아니하리라 하셨다 하라. 인자야, 네가 그들을 국문[판단]하려느냐? 네가 그들을 국문[판단]하려느냐? 너는 그들로 그 열조의 가증한 일을 알게 하여.”

“제7년”은 여호야긴 왕이 사로잡힌 때로부터 계산한 것이다. 에스겔서에는 그 사로잡힌 때로부터의 연도가 13번 나온다.6) 하나님의 말씀은 에스겔에게 구체적인 연월일에 임하였다. 이스라엘 장로 두어 사람은 여호와께 물으려고 와서 에스겔 앞에 앉아 있었다. 에스겔은 제사장이었지만(겔 1:3), 또 선지자로 사람들에게 인정을 받았다. 하나님의 말씀은 에스겔에게 임하였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말을 “주 여호와의 말씀에”라는 말로 표현하셨다. 또 그는 “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라고 말씀하셨다. “내가 나의 삶을 두고 맹세하노니”라는 원어는 “내가 살아 있거니와”라는 뜻이다. 하나님께서는 살아계시며 모든 일을 보시고 판단하시고 보응하신다.

하나님께서는 에스겔에게 온 장로들이 그에게 묻기를 용납지 않으시며 또 에스겔이 그들로 그 열조의 우상숭배의 가증한 일을 알게 하기를 원하신다. 이 말씀에 비추어 보면, 그가 그들이 하나님께 묻기를 용납지 않으시는 까닭은 그들이 우상숭배의 죄를 마음에 품고 있었기 때문임을 알 수 있다. 사람이 죄악을 품고 하나님께 나아가면 그 기도를 듣지 않으신다(시 66:18). 에스겔 14:1-3에서도, 이스라엘 장로 두어 사람이 에스겔 앞에 앉았을 때, 하나님께서는 “이 사람들이 자기 우상을 마음에 들이며 죄악의 거치는 것을 자기 앞에 두었으니 그들이 내게 묻기를 내가 조금인들 용납하랴”고 말씀하셨다.

[5-8절] 이르기를 주 여호와의 말씀에 옛날에 내가 . . . .

하나님께서는 또 말씀하신다. “이르기를 주 여호와의 말씀에 옛날에 내가 이스라엘을 택하고 야곱 집의 후예를 향하여 맹세하고 애굽 땅에서 그들에게 나타나서 맹세하여 이르기를 나는 여호와 너희 하나님이라 하였었노라. 그 날에 내가 그들에게 맹세하기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어서 그들을 위하여 찾아 두었던 땅 곧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요 모든 땅 중의 아름다운 곳에 이르게 하리라 하고 또 그들에게 이르기를 너희는 눈을 드는 바 가증한 것을 각기 버리고 애굽의 우상들로 스스로 더럽히지 말라. 나는 여호와 너희 하나님이니라 하였으나 그들이 내게 패역하여 내 말을 즐겨 듣지 아니하고 그 눈을 드는 바 가증한 것을 각기 버리지 아니하며 애굽의 우상들을 떠나지 아니하므로 내가 말하기를 내가 애굽 땅에서 나의 분을 그들의 위에 쏟으며 노를 그들에게 이루리라 하였었노라.”

하나님께서는 옛날에 그가 이스라엘을 택하시고 그 자손을 향해 맹세하셨고 애굽 땅에서 그들에게 나타나 맹세하며 몇 가지 내용을 말씀하셨다. 그 첫 번째 내용은 “나는 여호와 너희 하나님이라”는 말씀이었다. 이것은 7절 끝에도 나온다. 이것은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의 특별한, 친밀한 관계를 말한다. 이것은 하나님과 아브라함의 언약에 근거한 것이었다(창 17:7-8).

그 두 번째 내용, 특히 맹세하며 말씀하신 것은 그가 그들을 애굽 땅에서 이끌어내어 가나안 땅으로 인도하겠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가나안 땅을, “그들을 위해 찾아두었던 땅,” “젖과 꿀이 흐르는 땅,” “모든 땅 중의 아름다운 곳”이라고 말씀하셨다. 그 땅은 하나님께서 구별하신 복된 땅이었다. 하나님께서는 그 땅을 반드시 이스라엘 백성에게 주시겠다고 약속하셨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세 번째 내용은 그들이 여호와 하나님만 참 하나님으로 섬기고 애굽의 우상들로 자신을 더럽히지 말라는 것이었다. 하나님께서는 그 우상들을 “눈을 드는 바 가증한 것” 즉 “눈의 가증한 우상들”이라는 표현하셨다. 그것들은 눈으로 보기에 그럴 듯하나 사람을 속이는 가증한 것들이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께 패역했고 그의 말씀을 듣기를 즐거워하지 않았다. 그들은 애굽의 우상들을 버리지 않고 떠나지 않았다. 그들은 광야에서만 우상을 섬겼던 것이 아니고 애굽에서부터 그러하였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애굽 땅에서부터 이스라엘을 향해 진노하셨다. 그는 애굽 땅에서 그의 분을 그들의 위에 쏟으리라고 말씀하셨다. 이것은 다른 성경에 증거되어 있지 않은 내용이다.

[9절] 그러나 내가 그들의 거하는 이방인의 목전에서 . . . .

하나님께서는 또 말씀하신다. “그러나 내가 그들의 거하는 이방인의 목전에서 그들에게 나타나서 그들을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었었나니 이는 내 이름을 위함이라. 내 이름을 그 이방인의 목전에서 더럽히지 않으려 하여 행하였음이로라.” 하나님께서는 이런 이스라엘, 즉 하나님을 거역하고 우상숭배적인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셨던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왜 심히 악하고 부패한 이스라엘 백성을 구원하셨는가? 여기에 하나님의 크신 긍휼의 구원의 뜻이 있다. 그것은 하나님의 이름을 위해, 그의 이름을 이방인들의 앞에서 더럽히지 않게 하시기 위해서이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사람을 창조하신 목적에 맞는다. 이사야 43:7, “무릇 내 이름으로 일컫는 자 곧 내가 내 영광을 위하여 창조한 자를 오게 하라.”

본문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의 특권을 지키자.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에게 “나는 너희 하나님이라”고 말씀하셨다. 이것은 신약교회가 누리는 복이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는 하나님의 자녀의 특권을 얻었고(요 1:12) 하나님의 택하신 족속과 그의 소유된 백성이 되었다(벧전 2:9). 우리는 이 특권을 잘 지키자.

둘째로, 우리는 하나님께 패역하지 말자.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께 패역하고 우상들로 자신을 더럽혔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 대신 하나님처럼 사랑하는 모든 우상을 버려야 하고 자신을 더럽히지 말아야 한다. 우리는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치 말아야 한다(요일 2:15-17). 우리는 하나님만 섬기며 하나님만 사랑하고 성경에 증거된 그의 모든 교훈에 대해 오직 아멘으로 응답하며 준행해야 한다.

셋째로, 우리는 하나님의 긍휼의 섭리를 믿고 찬송하자. 하나님께서는 패역한 이스라엘을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셨다. 그것은 하나님의 이름의 영광을 위함이었다. 하나님께서는 전적으로 부패하고 무력한 죄인들을 택하시고 구원하셨고 또 오래 참으시고 성화의 길로 인도하신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일을 다 그의 영광을 위해 섭리하신다. 세계사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진행된다. 그러므로 우리는 오직 하나님만 찬송하고 하나님을 위해 살며 그에게 쓰임받는 자가 되자.

 

10-26절, 광야에서의 패역함

[10-12절] 그러므로 내가 그들로 애굽 땅에서 나와서 . . . .

하나님께서는 또 말씀하신다. “그러므로 내가 그들로 애굽 땅에서 나와서 광야에 이르게 하고 사람이 준행하면 그로 인하여 삶을 얻을 내 율례를 주며 내 규례를 알게 하였고 또 나는 그들을 거룩하게 하는 여호와인 줄 알게 하려 하여 내가 내 안식일을 주어 그들과 나 사이에 표징을 삼았었노라.”

하나님께서는 애굽에서 패역했던 이스라엘 자손을 참으시고 그들로 애굽 땅에서 나와서 광야에 이르게 하셨고 사람이 준행하면 그로 인해 삶을 얻을 그의 율례와 규례를 주셨다. 하나님의 율례와 규례는 율법을 가리키는데, 그것은 만일 사람이 그것을 온전히 지키면 의롭다고 인정받고 영생에 이르게 할 만한 법이었다. 또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그의 안식일들을 주셔서 그들과 하나님 사이에 표증을 삼으셨고 그들로 하나님께서 그들을 거룩하게 하는 하나님이신 줄 알게 하려 하셨다. ‘안식일’이라는 원어는 ‘안식일들’이라는 말인데, 이 말은 구약 율법에 규정된 열 개의 절기들의 안식일들을 가리킬 것이다. 그 안식일들은 안식년과 희년을 포함하면 모두 열두 개이다.

[13-14절] 그러나 이스라엘 족속이 광야에서 내게 . . . .

하나님께서는 또 말씀하신다. “그러나 이스라엘 족속이 광야에서 내게 패역하여 사람이 준행하면 그로 인하여 삶을 얻을 나의 율례를 준행치 아니하며 나의 규례를 멸시하였고 나의 안식일을 크게 더럽혔으므로 내가 이르기를 내가 내 분노를 광야에서 그들의 위에 쏟아 멸하리라 하였으나 내가 내 이름을 위하여 달리 행하였었나니 내가 그들을 인도하여 내는 것을 목도한 열국 앞에서 내 이름을 더럽히지 아니하려 하였음이로라.”

이스라엘 족속은 광야에서 하나님께 패역하여 사람이 행하면 그로 인해 생명을 얻을 하나님의 율례를 준행치 않고 하나님의 규례를 멸시하였고 하나님의 안식일들을 크게 더럽혔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그의 분노를 광야에서 그들 위에 쏟아 멸하려고 하셨으나 그의 이름을 위해 달리 행하셨다. 그것은 그가 그들을 인도해내는 것을 본 열국 앞에서 그의 이름을 더럽히지 않으려 했기 때문이다.

[15-17절] 또 내가 광야에서 그들에게 맹세하기를 내가 . . . .

하나님께서는 말씀하신다. “또 내가 광야에서 그들에게 맹세하기를 내가 그들에게 허한 땅 곧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요 모든 땅 중의 아름다운 곳으로 그들을 인도하여 들이지 아니하리라 한 것은 그들이 마음으로 우상을 좇아 나의 규례를 업신여기며 나의 율례를 행치 아니하며 나의 안식일을 더럽혔음이니라. 그러나 내가 그들을 아껴 보아 광야에서 멸하여 아주 없이 하지 아니하였었노라.”

그들이 마음으로 우상을 좇아 그의 규례를 업신여기며 행치 않고 그의 안식일들을 더럽혔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약속의 땅으로 인도하지 않겠다고 맹세하셨다. 그러나 그는 그들을 아끼셔서 광야에서 멸하여 아주 없애지는 않으셨다.

[18-20절] 내가 광야에서 그들의 자손에게 이르기를 너희 . . . .

하나님께서는 또 말씀하신다. “내가 광야에서 그들의 자손에게 이르기를 너희 열조의 율례를 좇지 말며 그 규례를 지키지 말며 그 우상들로 스스로 더럽히지 말라. 나는 여호와 너희 하나님이라. 너희는 나의 율례를 좇으며 나의 규례를 지켜 행하고 또 나의 안식일을 거룩하게 할지어다. 이것이 나와 너희 사이에 표징이 되어 너희로 내가 여호와 너희 하나님인 줄 알게 하리라 하였었노라.”

하나님께서는 광야에서 또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그들의 조상들의 율례를 좇지 말며 그 규례를 지키지 말며 그 우상들로 스스로 더럽히지 말라고 말씀하셨다. 그들의 조상들의 전통적 풍습 중에는 우리나라의 전통문화처럼 우상숭배적인 요소들이 많았다. 우리나라의 전통문화 속에는 샤마니즘과 잡신숭배의 요소가 많이 있다. 성경은 특히 그런 미신적이고 거짓된 신비주의를 정죄한다(신 18:9-12).

[21-22절] 그러나 그 자손이 내게 패역하여 사람이 . . . .

하나님께서는 또 말씀하신다. “그러나 그 자손이 내게 패역하여 사람이 준행하면 그로 인하여 삶을 얻을 나의 율례를 좇지 아니하며 나의 규례를 지켜 행하지 아니하였고 나의 안식일을 더럽혔는지라. 이에 내가 이르기를 내가 광야에서 내 분을 그들의 위에 쏟으며 내 노를 그들에게 이루리라 하였으나 내가 내 이름을 위하여 내 손을 금하고 달리 행하였었나니 내가 그들을 인도하여 내는 것을 목도한 열국 앞에서 내 이름을 더럽히지 아니하려 하였음이로라.”

이스라엘 자손들은 하나님께 패역하여 사람이 준행하면 그로 인해 생명을 얻을 하나님의 율례를 좇지 아니하며 하나님의 규례를 지켜 행하지 아니하였고 하나님의 안식일들을 더럽혔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광야에서 분을 그들 위에 쏟으며 노를 그들에게 이루려 하였으나 그의 이름을 위해 그의 손을 금하고 달리 행하였다. 이는 그가 그들을 인도하여 내는 것을 본 이방 나라들 앞에서 그의 이름을 더럽히지 않으려 하셨기 때문이다.

[23-26절] 또 내가 광야에서 그들에게 맹세하기를 내가 . . . .

하나님께서는 또 말씀하신다. “또 내가 광야에서 그들에게 맹세하기를 내가 그들을 이방인 중에 흩으며 열방 중에 헤치리라 하였었나니 이는 그들이 나의 규례를 행치 아니하며 나의 율례를 멸시하며 내 안식일을 더럽히고 눈으로 그 열조의 우상들을 사모함이며 또 내가 그들에게 선치 못한 율례와 능히 살게 하지 못할 규례를 주었고 그들이 장자를 다 화제로 드리는 그 예물로 내가 그들을 더럽혔음은 그들로 멸망케 하여 나를 여호와인 줄 알게 하려 하였음이니라.”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의 규례를 멸시하고 행치 않고 하나님의 안식일들을 더럽히고 눈으로 그 조상들의 우상들을 사모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광야에서 그들을 이방인들 중에 흩으며 열방들 중에 헤치리라고 맹세하셨다. 또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선하지 못한 율례와 생명을 줄 수 없는 규례를 주셨고 그들이 모든 맏아들을 불태워 드리는 그 예물로 그들을 더럽히게 하셨다. 이방 종교나 이단 종파의 부흥은 사람들의 죄에 대한 하나님의 일종의 징벌이다.

본문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모든 사람은 죄를 떠나고 죄악을 철저히 회개해야 한다. 악인에게는 평강이 없다.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으라”는 세례 요한의 외침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하다(마 3:8).구원얻은 우리도 모든 죄를 회개하고 죄짓지 않는 자가 되어야 한다.

둘째로, 구원받은 우리는 하나님의 긍휼과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을 항상 감사해야 한다.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을 얻었고 이것은 우리에게서 난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선물이다(엡 2:8). 그러나 믿는 성도에게도 죄성이 있고 실수와 연약이 있으며 우리는 신음 중에 자라가며 하나님께 감사한다. 사도 바울도,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그런즉 내 자신이 마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육신으로는 죄의 법을 섬기노라”고 간증했다(롬 7:24-25). 우리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의를 감사하자.

셋째로, 우리는 오직 하나님의 말씀대로만 살자. 주께서는 제자들에게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 . .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고 말씀하셨다(마 28:19-20). 바울은 “형제들아, 굳게 서서 말로나 우리 편지로 가르침을 받은 유전을 지키라”고 말했다(살후 2:15). 하나님의 뜻은 예수님 믿고 구원받은 우리가 그의 모든 말씀 즉 성경말씀대로 믿고 그 말씀대로 사는 것이다.

 

27-49절, 이스라엘의 패역과 회복

[27-29절] 그런즉 인자야, 이스라엘 족속에게 고하여 . . . .

하나님께서는 또 말씀하신다. “그런즉 인자야, 이스라엘 족속에게 고하여 이르기를 주 여호와의 말씀에 너희 열조가 또 내게 범죄하여 나를 욕되게 하였느니라. 내가 그들에게 주기로 맹세한 땅으로 그들을 인도하여 들였더니 그들이 모든 높은 산과 모든 무성한 나무를 보고 거기서 제사를 드리고 격노케 하는 제물을 올리며 거기서 또 분향하고 전제를 부어 드린지라. 이에 내가 그들에게 이르기를 너희가 다니는 산당이 무엇이냐 하였노라. (그것을 오늘날까지 바마라 일컫느니라.)” 이스라엘의 열조는 범죄하여 하나님을 모욕했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주신 제1, 2계명을 어기고 우상을 섬겼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주기로 맹세하신 가나안 땅으로 그들을 인도하셨으나 그들은 모든 높은 산과 나무들을 보고 거기서 제사드렸고 하나님을 격노케 하는 제물을 올리며 분향하고 전제를 부어 드렸다.

[30-32절] 그러므로 너는 이스라엘 족속에게 이르기를 주 . . . .

하나님께서는 또 말씀하신다. “그러므로 너는 이스라엘 족속에게 이르기를 주 여호와의 말씀에 너희가 열조의 풍속을 따라 스스로 더럽히며 그 모든 가증한 것을 좇아 행음하느냐? 너희가 또 너희 아들로 화제(火祭)를 삼아 예물로 드려 오늘날까지 우상들로 스스로 더럽히느냐? 이스라엘 족속아, 너희가 내게 묻기를 내가 용납하겠느냐? 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가 나의 삶을 두고 맹세하노니 너희가 내게 묻기를 내가 용납지 아니하리라. 너희가 스스로 이르기를 우리가 이방인 곧 열국 족속같이 되어서 목석(木石)을 숭배하리라 하거니와 너희 마음에 품은 것을 결코 이루지 못하리라.”

이스라엘은 그 열조의 풍습대로 자신을 더럽히며 그 모든 가증한 것을 좇아 우상을 섬겼다. 그들은 심지어 그들의 아들들을 불태워 우상에게 제물로 드렸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그들이 그를 섬기는 모양을 내고 그에게 무엇을 묻는 일을 용납지 않겠다고 말씀하신다. 왜냐하면 그것은 형식에 불과하였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원하시는 바는 우상숭배의 죄를 버리고 하나님만 섬기며 그의 계명을 지키는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은 열국 사람들같이 나무나 돌을 숭배하겠다고 말하지만, 그들의 마음에 품은 것을 결코 이루지 못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결코 죄 가운데 버려두지 않으실 것이다.

[33-38절] 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가 나의 삶을 두고 . . . .

하나님께서는 또 말씀하신다. “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가 나의 삶을 두고 맹세하노니 내가 능한 손과 편 팔로 분노를 쏟아 너희를 단정코 다스릴지라. 능한 손과 편 팔로 분노를 쏟아 너희를 열국 중에서 나오게 하며 너희의 흩어진 열방 중에서 모아내고 너희를 인도하여 열국 광야에 이르러 거기서 너희를 대면하여 국문하되 내가 애굽 땅 광야에서 너희 열조를 국문한 것같이 너희를 국문하리라. 나 주 여호와의 말이니라.” 하나님께서는 능한 손과 편 팔로 분노를 쏟아 이스라엘 백성을 다스리실 것이다. 그는 그들을 열방에서 모아내어 열국 광야에서 판단하실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또 말씀하신다. “내가 너희를 막대기 아래로 지나게 하며 언약의 줄로 매려니와 너희 가운데서 패역한 자와 내게 범죄한 자를 모두 제하여 버릴지라. 그들을 그 우거하던 땅에서는 나오게 하여도 이스라엘 땅에는 들어가지 못하게 하리니 너희가 나를 여호와인 줄 알리라.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자손과 언약의 줄로 매실 것이며 그들을 판단하셔서 그들 가운데 패역한 자와 그에게 범죄한 자를 모두 제하여 버리실 것이다. 그들은 오랫동안 살았던 애굽에서 나와서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하고 광야에서 죽었던 자들처럼, 하나님의 약속의 땅에 들어가지 못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 중에 패역한 자들과 범죄자들은 다 제거하실 것이다.

[39-40절] 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이스라엘 족속아 . . . .

하나님께서는 또 말씀하신다. “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이스라엘 족속아, 너희가 내 말을 듣지 아니하려거든 가서 각각 그 우상을 섬기고 이 후에도 그리하려무나 마는 다시는 너희 예물과 너희 우상들로 내 거룩한 이름을 더럽히지 말지니라.”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족속에게 우상숭배를 고집하면 해보라고 말씀하시면서도 그의 본심은 우상숭배하지 말라는 것이다. 그것이 하나님의 본심이다.

하나님께서는 또 말씀하신다. “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이스라엘 온 족속이 그 땅에 있어서 내 거룩한 산 곧 이스라엘의 높은 산에서 다 나를 섬기리니 거기서 내가 그들을 기쁘게 받을지라. 거기서 너희 예물과 너희 천신(薦新)하는[새로 드리는] 첫 열매와 너희 모든 성물을 요구하리라.” 이스라엘 온 족속은 그 땅에 있어서 그의 거룩한 산에서 그를 섬길 것이며 하나님께서는 거기서 그들을 기쁘게 받을 것이다. 또 하나님께서 거기서 그들의 예물과 첫 열매들과 모든 성물을 요구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모두에게 참 예배 즉 깨끗한 찬송과 기도와 헌신을 요구하신다.

[41-43절] 내가 너희를 인도하여 열국 중에서 나오게 하고 . . . .

하나님께서는 또 말씀하신다. “내가 너희를 인도하여 열국 중에서 나오게 하고 너희의 흩어진 열방 중에서 모아낼 때에 내가 너희를 향기로 받고 내가 또 너희로 말미암아 내 거룩함을 열국의 목전에서 나타낼 것이며 내가 너희 열조에게 주기로 맹세한 땅 곧 이스라엘 땅으로 너희를 인도하여 들일 때에 너희가 나를 여호와인 줄 알고 거기서 너희의 길과 스스로 더럽힌 모든 행위를 기억하고 이미 행한 모든 악을 인하여 스스로 미워하리라.”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을 열국 중에서 인도하여 나오게 하시고 그 흩어진 열방 중에서 그들을 모아낼 때 그들을 향기로 받고 그들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거룩함을 열국 앞에 나타내실 것이다. 또 하나님께서 열조들에게 맹세한 땅으로 이스라엘을 인도하여 들이실 때 그들은 하나님을 알게 될 것이며 그들의 과거의 길들과 더러운 모든 행위를 기억하고 그 모든 부끄러운 악을 미워할 것이다.

[44절] 이스라엘 족속아, 내가 너희의 악한 길과 더러운 . . . .

하나님께서는 또 말씀하신다. “이스라엘 족속아, 내가 너희의 악한 길과 더러운 행위대로 하지 아니하고 내 이름을 위하여 행한 후에야 너희가 나를 여호와인 줄 알리라. 나 주 여호와의 말이니라 하셨다 하라.”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족속을 그들의 악한 길과 더러운 행위대로 갚지 아니하시고 자신의 이름을 위해 구원하시고 회복시키실 것이다. 구원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의 행위이다. 우리는 오직 하나님의 긍휼과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대속사역으로 구원을 받았다. 우리는 우리의 행위로 하나님 앞에 설 수 없었으나, 구주 예수의 대속사역으로 죄사함과 의롭다 하심의 구원을 받았다.

[45-49절] 여호와의 말씀이 또 내게 임하여 가라사대 인자야 . . . .

에스겔은 또 말한다. “여호와의 말씀이 또 내게 임하여 가라사대 인자야, 너는 얼굴을 남으로 향하라. 남으로 향하여 소리내어 남방들의 삼림을 쳐서 예언하라. 남방 삼림에게 이르기를 여호와의 말씀을 들을지어다. 주 여호와의 말씀에 내가 너의 가운데 불을 일으켜 모든 푸른 나무와 모든 마른 나무를 멸하리니 맹렬한 불꽃이 꺼지지 아니하고 남에서 북까지 모든 얼굴이 그슬릴지라.” 본문은 다시 예루살렘의 멸망에 대한 예언이다. 남쪽은 유다 땅을 가리키고 남방 삼림은 유다 백성을 가리킨다. 하나님께서는 유다 땅에 불을 일으켜 푸른 나무나 마른 나무 즉 부자나 가난한 자를 다 멸할 것이며 맹렬한 불꽃이 남에서 북까지 모든 얼굴을 그슬릴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또 말씀하신다. “무릇 혈기 있는 자는 나 여호와가 그 불을 일으킨 줄을 알리니 그것이 꺼지지 아니하리라 하셨다 하라 하시기로 내가 가로되 오호라, 주 여호와여, 그들이 나를 가리켜 말하기를 그는 비유로 말하는 자가 아니냐 하나이다 하니라.” 에스겔이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였으나 사람들은 그가 비유로 말하는 자라고 반응하였다. 그들은 그 말씀을 진지하게 받지 아니하였다.

27절부터 49절까지 본문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하나님께서는 인간의 죄에 대해 분노하신다. 그는 특히 우상숭배의 죄를 미워하신다. 하나님께서는 범죄하는 그들을 향해 능한 손과 편 팔로 분노를 쏟으실 것이다. 그는 푸른 나무도, 마른 나무도 다 태우실 것이며, 유다 땅은 남에서 북까지 다 불태워질 것이다. 이스라엘 나라 가운데 패역한 자와 범죄한 자는 다 제거될 것이며 그들은 결코 약속된 땅에 들어가지 못할 것이다. 오늘날도 똑같다. 우리가 범죄하면 하나님께서는 분노하실 것이다. 우리는 특히 돈 사랑, 세상 사랑 등의 우상숭배적 죄를 멀리해야 한다. 우리는 모든 죄를 다 회개하고 버려야 한다.

둘째로,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죄에서 구원받고 거룩한 삶을 살기를 원하신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죄에서 구원받기를 원하신다. 구원받은 성도들은 모든 죄와 우상숭배를 버리고 하나님의 성산(聖山)에서 하나님을 섬길 것이다. 또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거룩한 예물을 요구하신다. 구원받은 자들은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온 땅에 나타내어야 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악하고 더러운 행위대로 우리에게 보응하지 아니하시고 하나님의 이름을 위해 우리를 구원하셨다. 그러므로 우리는 죄 가운데, 특히 우상숭배의 죄 가운데 머물러 있지 말고 모든 죄를 철저히 회개하고 죄씻음의 구원을 받고 이제는 창조자 하나님만 믿고 섬기며 그의 계명을 좇아 거룩하고 의롭고 선하고 진실한 새 삶을 살아야 한다. 우리는 죄악된 세상과 구별된 삶을 살아야 한다.

 

 

21장: 하나님의 심판의 칼이 옴

[1-5절] 여호와의 말씀이 또 내게 임하여 가라사대 인자야 . . . .

에스겔은 말한다. “여호와의 말씀이 또 내게 임하여 가라사대 인자야, 너는 얼굴을 예루살렘으로 향하며 성소를 향하여 소리내어 이스라엘 땅을 쳐서 예언하라. 이스라엘 땅에게 이르기를 여호와의 말씀에 내가 너를 대적하여 내 칼을 집에서 빼어 의인과 악인을 네게서 끊을지라. 내가 의인과 악인을 네게서 끊을 터이므로 내 칼을 집에서 빼어 무릇 혈기 있는 자를 남에서 북까지 치리니 무릇 혈기 있는 자는 나 여호와가 내 칼을 집에서 빼어낸 줄을 알지라. 칼이 다시 꽂혀지지 아니하리라 하셨다 하라.”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대적하며 그의 칼을 빼어 그들을 죽이시겠다고 말씀하신다. 그것은 그들이 범죄했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는 칼을 빼어 그 백성들을 의인과 악인을 막론하고 죽이실 것이며 무릇 혈기 있는 자를 남에서 북까지 다 죽이실 것이며 그 칼을 칼집에 꽂지 않으실 것이다.

[6-7절] 인자야, 너는 탄식하되 허리가 끊어지는듯이 . . . .

하나님께서는 또 말씀하신다. “인자야, 너는 탄식하되 허리가 끊어지는듯이 그들의 목전에서 슬피 탄식하라. 그들이 네게 묻기를 네가 어찌하여 탄식하느냐 하거든 대답하기를 소문을 인함이라. 재앙이 오나니 각 마음이 녹으며 모든 손이 약하여지며 각 영이 쇠하며 모든 무릎이 물과 같이 약하리라. 보라, 재앙이 오나니 정녕 이루리라. 나 주 여호와의 말이니라 하라.” 에스겔은 이스라엘 백성 앞에서 허리가 끊어지듯 슬피 탄식해야 했고 그것은 재앙의 소문 때문이다. 무서운 재앙이 올 것이며 각 사람의 마음은 녹으며 모든 손은 약해지고 각 영혼이 쇠하며 모든 무릎이 물같이 약해질 것이다. 하나님께서 선언하신 재앙은 반드시 오며 정녕 이루어질 것이다.

[8-11절] 여호와의 말씀이 또 내게 임하여 가라사대 인자야 . . . .

에스겔은 또 말한다. “여호와의 말씀이 또 내게 임하여 가라사대 인자야, 너는 예언하여 이르기를 여호와의 말씀에 칼이여, 칼이여, 날카롭고도 마광되었도다. 그 칼이 날카로움은 살륙을 위함이요 마광됨은 번개같이 되기 위함이니 우리가 즐거워하겠느냐? 내 아들의 홀이 모든 나무를 업신여기는도다[그것이 모든 나무처럼 내 아들의 홀을 경멸하도다](KJV, NIV). 그 칼이 손에 잡아 쓸만하도록 마광되되 살륙하는 자의 손에 붙이기 위하여 날카롭고도 마광되었도다 하셨다 하라.” 모든 나무는 이방 나라들을 가리키며 ‘내 아들의 홀’은 유다의 왕을 가리킬 것이다. 하나님의 칼은 날카롭고 마광되었다. 그것은 번개같이 사람들을 살육하기 위함이다. 

[12-14절] 인자야, 너는 부르짖어 슬피 울지어다. 이것이 . . . .

하나님께서는 또 말씀하신다. “인자야, 너는 부르짖어 슬피 울지어다. 이것이 내 백성에게 임하며 이스라엘 모든 방백에게 임함이로다. 그들과 내 백성이 함께 칼에 붙인 바 되었으니 너는 네 넓적다리를 칠지어다. 이것이 시험이라. 만일 업신여기는 홀이 없어지면 어찌할꼬[그 칼이 그 홀을 업신여기면 어찌하리요? 그것이 더 이상 없으리라](KJV, NIV). 나 주 여호와의 말이니라. 그러므로 인자야, 너는 예언하며 손뼉을 쳐서 칼로 세 번 거듭 씌우게 하라. 이 칼은 중상케 하는 칼이라. 밀실에 들어가서 대인을 중상케 하는 칼이로다[세 번째는 칼로 이중이 되게 하라. 이 칼은 살해된 대인들을 위한, 그들을 둘러싼 칼이라](NASB, BDB).” 에스겔은 부르짖어 슬피 울어야 한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칼이 하나님의 백성 이스라엘에게 임하며 그 모든 방백에게 임하기 때문이다. 그들이 다 함께 칼에 붙인 바 될 것이다. 하나님의 칼은 유다 왕도 업신여길 것이다. 하나님의 칼은 날카로워서 대인들도 살해하는 칼이 될 것이다.

[15-17절] 내가 그들로 낙담하여 많이 엎드러지게 하려고 . . . .

하나님께서는 또 말씀하신다. “내가 그들로 낙담하여 많이 엎드러지게 하려고 그 모든 성문을 향하여 번쩍 번쩍하는 칼을 베풀었도다. 오호라, 그 칼이 번개같고 살륙을 위하여 날카로왔도다. 칼아, 모이라. 우향하라. 항오를 차리라. 좌향하라. 향한 대로 가라. 나도 내 손뼉을 치며 내 분을 다 하리로다. 나 여호와의 말이니라.” 하나님께서는 사람들로 낙담케 하시며 많이 엎드러지게 하실 것이다. 그의 칼은 모든 성문을 향해 번쩍이며 번개같고 날카로울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칼아 모이라. 우향하라. 항오를 차리라. 좌향하라. 향한 대로 가라”고 말씀하셨다. 그는 마치 군대를 진두지휘하시듯이 표현하셨다. 그는 손을 치시며 그의 분이 가라앉기까지 행하실 것이다.

[18-23절]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하여 가라사대 인자야 . . . .

에스겔은 또 말한다.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하여 가라사대 인자야, 너는 바벨론 왕의 칼이 올 두 길을 한 땅에서 나오도록 그리되 곧 성으로 들어가는 길 머리에다가 길이 나뉘는 지시표를 하여 칼이 암몬 족속의 랍바에 이르는 길과 유다 견고한 성 예루살렘에 이르는 길을 그리라. 바벨론 왕이 갈랫길 곧 두 길 머리에 서서 점을 치되 살들을 흔들어 우상에게 묻고 희생의 간을 살펴서 오른손에 예루살렘으로 갈 점괘를 얻었으므로 공성퇴를 베풀며 입을 벌리고 살륙하며 소리를 높여 외치며 성문을 향하여 공성퇴를 베풀고 토성을 쌓고 운제를 세우게 되었나니 전에 그들에게 맹약한 자들은 그것을 헛점으로 여길 것이나 바벨론 왕은 그 죄악을 기억하고 그 무리를 잡으리라.” 하나님의 칼은 바벨론 왕의 칼을 의미했다. 하나님께서는 에스겔에게 바벨론 왕이 행할 일을 미리 그리라고 지시하신다. 바벨론 왕은 갈랫길 곧 두 길 머리에 서서 점을 칠 것이다. 그 결과, 바벨론 왕은 예루살렘으로 갈 점괘를 얻었기 때문에 예루살렘을 향해 공성퇴(성을 공격하는 무기)를 베풀며 입을 벌리고 살육하며 소리를 높여 외치며 토성을 쌓고 운제(포위벽)를 세울 것이다. 바벨론 왕과 맹약했던 이스라엘 사람들은 그 점을 헛되다고 생각할 것이지만, 바벨론 왕은 이스라엘의 죄악을 기억하고 그 무리를 잡을 것이다.

[24-27절] 그러므로 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너희의 . . . .

하나님께서는 또 말씀하신다. “그러므로 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너희의 악이 기억을 일으키며 너희의 건과가 드러나며 너희 모든 행위의 죄가 나타났도다. 너희가 기억한 바 되었은즉 그 손에 잡히리라. 너 극악하여 중상을 당할 이스라엘 왕아, 네 날이 이르렀나니 곧 죄악의 끝 때니라. 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관을 제하며 면류관을 벗길지라. 그대로 두지 못하리니 낮은 자를 높이고 높은 자를 낮출 것이니라. 내가 엎드러뜨리고 엎드러뜨리고 엎드러뜨리려니와 이것도 다시 있지 못하리라. 마땅히 얻을 자가 이르면 그에게 주리라.” 25절 첫 부분은 “너 속되고 악한 이스라엘 왕아”라고 번역할 수 있다(KJV, NIV). 이스라엘 왕은 그 죄에 대해 심판을 받을 날을 맞게 될 것이다. 그의 왕관은 제거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낮은 자를 높이시고 높은 자를 낮추실 것이다. 그는 “내가 엎드러뜨리고 엎드러뜨리고 엎드러뜨리려니와”라고 강조해서 말씀하신다. 하나님께서 엎드러뜨리시면 그것을 막을 자가 없을 것이다.

[28-32절] 인자야, 주 여호와께서 암몬 족속과 그 능욕에 . . . .

하나님께서는 또 말씀하신다. “인자야, 주 여호와께서 암몬 족속과 그 능욕에 대하여 말씀하셨다고 너는 예언하라. 너는 이르기를 칼이 뽑히도다. 칼이 뽑히도다. 살륙하며 멸절하며 번개같이 되기 위하여 마광되었도다. 네게 대하여 허무한 것을 보며 네게 대하여 거짓 복술을 하는 자가 너를 중상을 당한 악인의 목 위에 두리니 이는 그의 날 곧 죄악의 끝 때가 이름이로다. 그러나 칼을 그 집에 꽂을지어다. 네가 지음을 받은 곳에서, 너의 생장한 땅에서 내가 너를 국문하리로다. 내가 내 분노를 네게 쏟으며 내 진노의 불을 네게 불고 너를 짐승 같은 자 곧 멸하기에 익숙한 자의 손에 붙이리로다. 네가 불에 섶과 같이 될 것이며 네 피가 나라 가운데 있을 것이며 네가 다시 기억되지 못할 것이니 나 여호와가 말하였음이니라 하라.”

암몬 족속에 대한 심판도 비슷하게 선언되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심판하셔서 그 분노를 그들에게 쏟으실 것이며 그들은 불에 섶같이 탈 것이며 그들의 피는 땅 가운데 있을 것이며 그들은 다시 기억되지 못할 것이다.

본장의 교훈은 무엇인가? 하나님께서는 불경건하고 악한 이스라엘을 대적하셔서 칼을 보내실 것과 그들의 악이 드러나게 될 것을 선언하셨다. 세상에는 두 부류의 사람이 있다. 하나는 하나님을 믿고 의를 행하는 자이며, 다른 하나는 불경건하며 악을 행하는 자이다. 하나님께서는 후자의 부류의 사람을 대적하시고 칼을 보내실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로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을 믿음으로 그의 십자가 공로로 죄씻음과 의롭다 하심과 구원을 받았다(롬 3:24; 엡 2:8).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고(롬 8:1)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하시면 우리를 대적할 자가 세상에 아무도 없다(롬 8:31). 그 어떤 것도 하나님의 사랑의 줄을 끊을 자가 없다(롬 8:35-39). 이것이 성도에게 생명선과 같은 속죄 신앙, 복음 신앙이며 구원의 확신이다. 그러나 이와 동시에, 우리는 중생한 성도가 죄 가운데 살 수 없다는 진리도 잊지 말아야 한다. 우리는 죄 중에 살아서는 안 된다(롬 6:15). 중생한 자는 죄 중에 살 수 없다(요일 3:6). 참 믿음은 순종의 삶으로 나타난다.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다(약 2:17). 하나님께서는 경건하고 바르게 사는 성도의 미래의 보장이 되신다.

 

 

22장: 이스라엘의 죄악들

[1-5절] 여호와의 말씀이 또 내게 임하여 가라사대 인자야 . . . .

에스겔은 또 말한다. “여호와의 말씀이 또 내게 임하여 가라사대 인자야, 네가 국문하려느냐? 이 피 흘린 성읍을 국문하려느냐? 그리하려거든 자기의 모든 가증한 일을 그들로 알게 하라. 너는 이르기를 주 여호와의 말씀에 자기 가운데 피를 흘려 벌받을 때로 이르게 하며 우상을 만들어 스스로 더럽히는 성아, 네가 흘린 피로 인하여 죄가 있고 네가 만든 우상으로 인하여 스스로 더럽혔으니 네 날이 가까웠고 네 연한이 찼도다. 그러므로 내가 너로 이방의 능욕을 받으며 만국의 조롱거리가 되게 하였노라. 너 이름이 더럽고 어지러움[소란함]이 많은 자여, 가까운 자나 먼 자나 다 너를 조롱하리라.” 하나님께서는 예루살렘 성에서 많은 사람들의 피가 부당하게 흘려졌고 가증한 일들 곧 우상숭배가 많았음을 지적하시며, 그들이 이방인들의 능욕을 받고 만국의 조롱거리가 될 것을 예언하셨다.

[6-12절] 이스라엘 모든 방백은 각기 권세대로 피를 . . . .

하나님께서는 또 말씀하신다. “이스라엘 모든 방백은 각기 권세대로 피를 흘리려고 네 가운데 있었도다. 그들이 네 가운데서 부모를 업신여겼으며 네 가운데서 나그네를 학대하였으며 네 가운데서 고아와 과부를 해하였도다. 너는 나의 성물들을 업신여겼으며 나의 안식일을 더럽혔으며 네 가운데 피를 흘리려고 이간을 붙이는 자도 있었으며 네 가운데 산 위에서 제물을 먹는 자도 있었으며 네 가운데 음란하는 자도 있었으며 네 가운데 자기 아비의 하체를 드러내는 자도 있었으며 네 가운데 월경하는 부정한 여인에게 구합하는 자도 있었으며 혹은 그 이웃의 아내와 가증한 일을 행하였으며 혹은 그 며느리를 더럽혀 음행하였으며 네 가운데 혹은 그 자매 곧 아비의 딸과 구합하였으며 네 가운데 피를 흘리려고 뇌물을 받는 자도 있었으며 네가 변전(네쉐크)[고리대금]과 이식을 취하였으며 이(利)를 탐하여 이웃에게 토색하였으며 나를 잊어버렸도다. 나 주 여호와의 말이니라.”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지도자들과 백성의 많은 죄악들, 즉 피흘림, 부모 멸시, 나그네 학대, 고아와 과부를 해침, 성물 무시, 안식일 더럽힘, 이간 붙임, 우상제물 먹음, 각종 음란, 뇌물 받음, 고리대금, 토색, 하나님을 잊어버림 등을 지적하셨다. 그 지적된 죄들은 십계명의 여러 계명들을 어긴 것들이었다.

[13-16절] 너의 불의를 행하여 이를 얻은 일과 네 가운데 . . . .

하나님께서는 또 말씀하신다. “너의 불의를 행하여 이(利)를 얻은 일과 네 가운데 피 흘린 일을 인하여 내가 손뼉을 쳤나니 내가 네게 보응하는 날에 네 마음이 견디겠느냐? 네 손이 힘이 있겠느냐? 나 여호와가 말하였으니 이룰지라. 내가 너를 열국 중에 흩으며 각 나라에 헤치고 너의 더러운 것을 네 가운데서 멸하리라. 네가 자기 까닭으로 열국의 목전에서 수치를 당하리니[네가 열국 앞에서 자신을 더럽히리니](BDB, NASB, NIV) 나를 여호와인 줄 알리라 하셨다 하라.” ‘수치를 당한다’는 원어(니칼트)는 ‘자신을 더럽힌다’는 뜻이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죄악에 대한 보응을 말씀하셨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흩으시고 그들의 더러운 우상들을 멸하실 것이다. 그때 그들은 하나님의 살아계심과 공의를 알게 될 것이다.

[17-22절]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하여 가라사대 인자야 . . . .

에스겔은 또 말한다.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하여 가라사대 인자야, 이스라엘 족속이 내게 찌끼가 되었나니 곧 풀무 가운데 있는 놋이나 상납이나 철이나 납이며 은의 찌끼로다. 그러므로 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너희가 다 찌끼가 되었은즉 내가 너희를 예루살렘 가운데로 모으고 사람이 은이나 놋이나 철이나 납이나 상납[주석]이나 모아서 풀무 속에 넣고 불을 불어 녹이는 것같이 내가 노와 분으로 너희를 모아 거기 두고 녹일지라. 내가 너희를 모으고 내 분노의 불을 너희에게 분즉 너희가 그 가운데서 녹되 은이 풀무 가운데서 녹는 것같이 너희가 그 가운데서 녹으리니 나 여호와가 분노를 너희 위에 쏟은 줄을 너희가 알리라.” 이스라엘 백성은 광물의 찌끼같이 되었다. 광물들을 용광로에 넣어 녹여 찌끼를 걸러내어 순수한 광물을 만들어내듯이,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분노의 불로 녹이실 것이다.

[23-31절]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하여 가라사대 인자야 . . . .

에스겔은 또 말한다.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하여 가라사대 인자야, 너는 그에게 이르기를 너는 정결함을 얻지 못한 땅이요 진노의 날에 비를 얻지 못한 땅이로다 하라. 그 가운데서 선지자들의 배역함(케쉐르)[공모(共謀)](BDB, KJV, NASB, NIV)이 우는 사자가 식물을 움킴 같았도다. 그들이 사람의 영혼[생명들]을 삼켰으며 전재(錢財)[재물]와 보물을 탈취하며 과부로 그 가운데 많게 하였으며 그 제사장들은 내 율법을 범하였으며 나의 성물을 더럽혔으며 거룩함과 속된 것을 분변치 아니하였으며 부정함과 정한 것을 사람으로 분변하게 하지 아니하였으며 그 눈을 가리워 나의 안식일을 보지 아니하였으므로 내가 그 가운데서 더럽힘을 받았느니라. 그 가운데 그 방백들은 식물을 삼키는 이리 같아서 불의의 이(利)를 취하려고 피를 흘려 영혼[생명들]을 멸하거늘 그 선지자들이 그들을 위하여 회를 칠하고 스스로 허탄한 이상을 보며 거짓 복술을 행하며 여호와가 말하지 아니하였어도 주 여호와의 말씀이라 하였으며 이 땅 백성은 강포하며 늑탈하여 가난하고 궁핍한 자를 압제하였으며 우거한 자를 불법하게 학대하였으므로 이 땅을 위하여 성을 쌓으며 성 무너진 데를 막아서서 나로 멸하지 못하게 할 사람을 내가 그 가운데서 찾다가 얻지 못한 고로 내가 내 분으로 그 위에 쏟으며 내 진노의 불로 멸하여 그 행위대로 그 머리에 보응하였느니라. 나 주 여호와의 말이니라.”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의 지도자들과 백성의 죄악을 구체적으로 열거하신다. 거짓 선지자들은 물질적 이욕을 구하며 사람들의 생명들을 죽이며 재물을 탈취하며 과부를 많게 하였고, 제사장들은 율법을 범하고 성물을 더럽히며 거룩함과 속됨, 깨끗함과 더러움을 분별치 않았고, 방백들은 물질적 이욕을 구하며 사람들의 생명들을 죽였고 선지자들은 그들을 합리화시키며 헛되고 거짓된 예언들을 했다. 백성들은 이웃에게 강포하고 늑탈하고 압제하며 학대했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진노를 가로막을 만한 인물이 있는가 찾으셨으나 아무도 없었고 마침내 분노를 그들 위에 내리셨다.

본장의 교훈은 분명하다. 우리는 이스라엘의 멸망을 거울삼아 죄를 버려야 한다. 첫째로, 우리는 경건하게 살아야 한다. 우리는 제1, 2계명대로 우상숭배치 말고 여호와 하나님만 믿고 섬기며 따르자. 둘째로, 우리는 서로 사랑해야 한다. 미움은 살인의 원인이다. 우리는 살인치 말아야 하고 그 원인인 미움을 제거해야 한다. 우리는 주의 명령대로, 새 계명대로 서로 사랑해야 한다(요 13:34). 사랑은 상대를 배려하는 것이다. 셋째로, 우리는 거룩해야 한다. 음란을 버리고, 결혼의 의무와 순결을 지켜야 한다. 남편은 그 아내에 대한 의무를 다해야 하고 아내도 남편에 대한 의무를 다해야 한다. 부부는 자기 몸을 자기가 주장하지 않고 상대방이 한다. 부부는 서로 분방하지 말고 사탄의 시험에 틈을 주지 말아야 한다(고전 7:3-5). 넷째로, 우리는 불의의 재물을 취하지 말아야 한다. 우리는 돈을 사랑치 말고 정당하게 벌고 근검 절약하게 써야 한다. 우리는 항상,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있은즉 족한 줄로 알며 살아야 한다(딤전 6:6-8). 성도는 항상 자족하며 살아야 한다.

 

 

23장: 행음한 두 여자와 같음

1-24절, 오홀라와 오홀리바의 행음

[1-4절] 여호와의 말씀이 또 내게 임하여 가라사대 인자야 . . . .

에스겔은 말한다. “여호와의 말씀이 또 내게 임하여 가라사대 인자야, 두 여인이 있었으니 한 어미의 딸이라. 그들이 애굽에서 행음하되 어렸을 때에 행음하여 그들의 유방이 눌리며 그 처녀의 가슴이 어루만진 바 되었었나니 그 이름이 형은 오홀라요 아우는 오홀리바라. 그들이 내게 속하여 자녀를 낳았나니 그 이름으로 말하면 오홀라는 사마리아요 오홀리바는 예루살렘이니라.” 애굽에서부터 행음한 두 여자는 사마리아와 예루살렘, 즉 북방 이스라엘과 남방 유다를 가리켰다. 그들은 하나님께 속한 자들, 곧 하나님의 특별한 소유된 언약 백성이었다. 이 두 여인이 애굽에 있었을 때 행음했다는 것은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서 나오기 전에 우상을 섬겼었다는 것을 보인다. 그것은 에스겔 20:7-8에서도 말씀하신 바이었다.

[5-8절] 오홀라가 내게 속하였을 때에 행음하여 . . . .

하나님께서는 또 말씀하신다. “오홀라가 내게 속하였을 때에 행음하여 그 연애하는 자 곧 그 이웃 앗수르 사람을 사모하였나니 그들은 다 자색 옷을 입은 방백과 감독이요 준수한 소년, 말 타는 자들이라. 그가 앗수르 중에 잘 생긴 그 모든 자들과 행음하고 누구를 연애하든지 그들의 모든 우상으로 스스로 더럽혔으며 그가 젊었을 때에 애굽 사람과 동침하매 그 처녀의 가슴이 어루만진 바 되며 그 몸에 음란을 쏟음을 당한 바 되었더니 그가 그때부터 행음함을 마지아니하였느니라.” ‘감독’이라는 말은 ‘장관들’이라고 번역할 수도 있다(12절과 23절에서도 그러함). 오홀라는 자색 옷을 입은 앗수르 방백과 장관들과 준수하고 잘 생긴 자들과 말 타는 자들의 우상을 섬겼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의 우상숭배는 하루아침에 된 것이 아니고 뿌리깊은 것이었다. 그것은 그들이 애굽에 거주했을 때부터 가졌던 습성이었다. 인간의 우상숭배적 죄성은 뿌리깊은 것이다.

[9-10절] 그러므로 내가 그를 그 정든 자 곧 그 연애하는 . . . .

하나님께서는 또 말씀하신다. “그러므로 내가 그를 그 정든 자 곧 그 연애하는 앗수르 사람의 손에 붙였더니 그들이 그 하체를 드러내고 그 자녀를 빼앗으며 칼로 그를 죽여 그 누명을 여자에게 드러내었나니[여자들 가운데 말거리가 되었나니](KJV, NASB) 이는 그들이 그에게 심문(쉐푸팀 !yfiWpv})[심판들]을 행함이니라.” 하나님께서는 북방 이스라엘을 그 정든 자 앗수르 사람의 손에 붙이셨고, 그들은 이스라엘 백성의 수치를 드러내었고 그 자녀들을 빼앗으며 칼로 그들을 죽여 이방 나라들 가운데 말거리가 되게 하였다. 그것은 그들이 그에게 심판들을 행했기 때문이었다.

[11-12절] 그 아우 오홀리바가 이것을 보고도 그 형보다 . . . .

하나님께서는 또 말씀하신다. “그 아우 오홀리바가 이것을 보고도 그 형보다 음욕을 더하며 그 형의 간음함보다 그 간음이 더 심하므로 그 형보다 더 부패하여졌느니라. 그가 그 이웃 앗수르 사람을 연애하였나니 그들은 화려한 의복을 입은 방백과 감독이요 말 타는 자들과 준수한 소년이었느니라.” ‘감독’이라는 원어는 ‘장관들’이라고 번역할 수 있다. 그 동생 오홀리바, 즉 남방 유다는 이것, 즉 북방 이스라엘의 우상숭배와 그 멸망을 보고도 그 언니보다 음욕을 더하며 그 언니의 간음함보다 그 간음이 더 심하므로 그보다 더 부패하여졌다. 오홀리바는 그 이웃 앗수르 사람과 연애하였는데, 그들은 화려한 의복을 입은 방백들과 장관들이며 말 타는 자들과 준수한 소년들이었다. 언니의 외도(外道)와 부패와 멸망을 보았으면 조심해야 했는데도 유다 사람들은 조심하지 않고 오히려 더 부패하였던 것이다.

[13-15절] 그 두 여인이 한길로 행하므로 그도 . . . .

하나님께서는 또 말씀하신다. “그 두 여인이 한길로 행하므로 그도 더러워졌음을 내가 보았노라. 그가 음행을 더하였음은 붉은 것으로 벽에 그린 사람의 형상 곧 갈대아 사람의 형상을 보았음이니 그 형상은 허리를 띠로 동이고 머리를 긴 수건으로 쌌으며 용모는 다 존귀한 자 곧 그 고토 갈대아 바벨론 사람 같은 것이라.”

북방 이스라엘이나 남방 유다나 똑같이 부패하였다. 그들은 다 한길로 행하였고 다 더러워졌다.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고서는 아무도 바른 길로 행하지 못한다. 하나님의 많은 은혜를 받은 자들도 계속 하나님의 은혜와 긍휼 가운데 있지 않고서는 마찬가지다. 유다 사람들이 음행을 더하였던 것은 붉은 것으로 벽에 그린 갈대아 사람들의 형상을 보았기 때문이었다. 그 형상은 그들의 본토 갈대아의 바벨론 사람들의 모양을 따라 허리를 띠로 동이고 머리를 긴 수건으로 쌌으며 용모는 다 존귀한 자들이었다.

[16-17절] 그가 보고 곧 연애하여 사자를 갈대아 . . . .

하나님께서는 또 말씀하신다. “그가 보고 곧 연애하여 사자를 갈대아 그들에게로 보내매 바벨론 사람이 나아와 연애하는 침상에 올라 음란으로 그를 더럽히매 그가 더럽힘을 입은 후에 그들을 싫어하는 마음이 생겼느니라.” 오홀리바는 그 그림을 보고 곧 연애하여 사자를 갈대아 그들에게로 보내었고 바벨론 사람들은 나아와 연애하는 침상에 올라 음란으로 그를 더럽혔다. 그러나 오홀리바는 더럽힘을 입은 후에 그들을 싫어하는 마음이 생겼다. ‘싫어한다’는 말은 혐오한다, 역겨워한다는 뜻이다. 그에게 싫어하는 마음이 생긴 것은 진정한 사랑으로 행한 것이 아니고 육체의 욕망을 좇아 행한 것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인간 관계의 사랑도 마찬가지다. 진정한 사랑은 일시적, 충동적 욕망과 다르다.

[18-21절] 그가 이와 같이 그 음행을 나타내며 그 하체를 . . . .

하나님께서는 또 말씀하신다. “그가 이와 같이 그 음행을 나타내며 그 하체를 드러내므로 내 마음이 그 형을 싫어한 것같이 그를 싫어하였으나 그가 그 음행을 더하여 그 젊었을 때 곧 애굽 땅에서 음행하던 때를 생각하고 그 하체는 나귀 같고 그 정수는 말 같은 음란한 간부를 연애하였도다. 네가 젊었을 때에 행음하여 애굽 사람에게 네 가슴과 유방이 어루만진 바 되었던 것을 오히려 생각하도다.”

하나님께서는 오홀리바의 음행 때문에 그를 싫어하셨으나, 오홀리바는 젊었을 때에 행음하여 애굽 사람에게 가슴과 유방이 어루만진 바 되었던 것을 생각하며 그 음행을 더하여 그 하체는 나귀 같고 그 정수는 말 같은 음란한 간부를 연애하였다.

[22-24절] 그러므로 오홀리바야, 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 . .

하나님께서는 또 말씀하신다. “그러므로 오홀리바야, 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가 너의 연애하다가 싫어하던 자들을 격동시켜서 그들로 사방에서 와서 너를 치게 하리니 그들은 바벨론 사람과 갈대아 모든 무리 브곳과 소아와 고아 사람과 또 그와 함께 한 모든 앗수르 사람 곧 준수한 소년이며 다 방백과 감독이며 귀인과 유명한 자, 다 말 타는 자들이라. 그들이 병기와 병거와 수레와 크고 작은 방패를 이끌고 투구 쓴 군대를 거느리고 치러 와서 너를 에워쌀지라. 내가 심문권을 그들에게 맡긴즉 그들이 그 심문권대로 너를 심문하리라[내가 심판을 그들에게 맡긴즉 그들이 그 판단들대로 너를 심판하리라].” 하나님께서는 바벨론 사람들과 앗수르 사람들을 불러 유다 나라를 에워쌀 것이다. 그는 바벨론 사람들에게 심판의 권한을 주셔서 이스라엘을 심판하게 하실 것이다.

1-24절에서 우리는 몇 가지 교훈을 얻는다. 첫째로, 우리는 음행하지 말자.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연약을 아시기 때문에 결혼 제도를 주셨다. 결혼한 자들은 부부의 관계를 거룩하고 아름답게 지켜야 한다. 잠언 5:18-19, “네 샘으로 복되게 하라. 네가 젊어서 취한 아내를 즐거워하라. 그는 사랑스러운 암사슴 같고 아름다운 암노루 같으니 너는 그 품을 항상 족하게 여기며 그 사랑을 항상 연모하라.”

둘째로, 우리는 우상숭배치 말자. 이것이 본문의 주된 교훈이다. 우상숭배는 하나님 아닌 것을 하나님처럼 섬기는 행위이다. 우리는 우리의 참 소유자이신 하나님만 섬겨야 하기 때문에 우상숭배는 영적 음행이다. 우리는 세상의 헛된 것을 영원한 가치가 있는 것처럼 사랑하지 말자. 우리는 세상적 가치관을 버리고 하나님의 가치관을 가지자. 우리는 하나님만 섬기며 그의 모든 명령에만 순종해야 한다.

셋째로, 우리는 이웃의 실패를 거울삼아 바로 살자. 북방 이스라엘과 남방 유다는 그 우상숭배 때문에 하나님의 미워하심을 받고 죄의 형벌을 받았다. 18절, “그가 이와 같이 그 음행을 나타내며 그 하체를 드러내므로 내 마음이 그 형을 싫어한 것같이 그를 싫어하였으나.” 22절, “그러므로 오홀리바야, 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가 너의 연애하다가 싫어하던 자들을 격동시켜서 그들로 사방에서 와서 너를 치게 하리니.” 24절, “내가 심문권[심판]을 그들에게 맡긴즉 그들이 그 심문권[판단]대로 너를 심문[심판]하리라.” 오홀리바는 오홀라의 실패, 즉 그의 죄와 하나님의 징벌을 거울삼아 조심했어야 하였다. 고린도전서 10:6-12, “그런 일은 우리의 거울[실례 實例]이 되어 우리로 하여금 저희가 악을 즐겨한 것 같이 즐겨하는 자가 되지 않게 하려 함이니 저희 중에 어떤 이들과 같이 너희는 우상숭배하는 자가 되지 말라,” “우리는 저희와 같이 시험하지 말자. 저희 중에 어떤 이들이 원망하다가 멸망시키는 자에게 멸망하였나니 너희는 저희와 같이 원망하지 말라. 저희에게 당한 이런 일이 거울[실례 實例]이 되고 또한 말세를 만난 우리의 경계로 기록하였느니라.” 이것이 역사의 교훈이며 하나님의 교훈이다.

 

25-49절, 행음에 대한 형벌

[25-27절] 내가 너를 향하여 투기를 발하리니 그들이 . . . .

하나님께서는 말씀하신다. “내가 너를 향하여 투기를 발하리니 그들이 분노로 네게 행하여 네 코와 귀를 깎아버리고 남은 자를 칼로 엎드러뜨리며 네 자녀를 빼앗고 그 남은 자를 불에 사르며 또 네 옷을 벗기며 네 장식품을 빼앗을지라. 이와 같이 내가 네 음란과 애굽 땅에서부터 음행하던 것을 그치게 하여 너로 그들을 향하여 눈을 들지도 못하게 하며 다시는 애굽을 기억하지도 못하게 하리라.”

하나님께서는 오홀리바 즉 유다 나라를 향해 질투를 발하실 것이다. 바벨론 사람들과 앗수르 사람들은 분노로 유다에게 행하여 그 코와 귀를 깎아버릴 것이다. 유다는 흉한 얼굴이 될 것이다. 또 그들은 남은 자들을 칼로 엎드러뜨리며 그의 자녀들을 빼앗고 그 남은 자들을 불에 사르며 옷을 벗기며 장식품을 빼앗을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유다의 음란과 애굽 땅에서부터 음행하던 것을 그치게 하실 것이다. 하나님의 징벌의 목적은 그들의 정결함에 있다.

[28-30절] 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가 너의 미워하는 . . . .

하나님께서는 또 말씀하신다. “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가 너의 미워하는 자와 네 마음에 싫어하는 자의 손에 너를 붙이리니 그들이 미워하는 마음으로 네게 행하여 네 모든 수고한 것을 빼앗고 너를 벌거벗겨 적신(赤身)으로 두어서 네 음행의 벗은 몸 곧 네 음란하며 음행하던 것을 드러낼 것이라. 네가 이같이 당할 것은 네가 음란히 이방을 좇고 그 우상들로 더럽혔음이로다.” 하나님께서는 유다를 그가 미워하며 마음에 싫어하는 자들의 손에 붙이실 것이다. 유다가 수치를 당할 것은 그가 이방 나라의 우상들로 자신을 더럽혔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행한 대로 그에게 갚으실 것이다.

[31-34절] 네가 네 형의 길로 행하였은즉 내가 그의 잔을 . . . .

하나님께서는 또 말씀하신다. “네가 네 형의 길로 행하였은즉 내가 그의 잔을 네 손에 주리라. 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깊고 크고 가득히 담긴 네 형의 잔을 네가 마시고 비소와 조롱을 당하리라. 네가 네 형 사마리아의 잔 곧 놀람과 패망의 잔에 넘치게 취하고 근심할지라. 네가 그 잔을 다 기울여 마시고 그 깨어진 조각을 씹으며 네 유방을 꼬집을 것은 내가 이렇게 말하였음이니라. 나 주 여호와의 말이니라.” 하나님께서는 유다 나라가 사마리아 곧 이스라엘 나라의 길로 행하였기 때문에 그 멸망의 잔을 그의 손에 주실 것이다. 유다는 사마리아의 잔을 마시고 코웃음과 조롱을 당할 것이다. 그는 그 잔을 다 기울여 마시고 그 깨어진 조각을 아프게 씹을 것이다. 또 하나님께서는 이 일이 그러할 것은 그가 이렇게 말씀하셨기 때문이라고 말씀하셨다. 하나님께서는 주권적 작정자요 섭리자이시다.

[35절] 그러므로 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네가 나를 . . . .

하나님께서는 또 말씀하신다. “그러므로 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네가 나를 잊었고 또 나를 네 등뒤에 버렸은즉 너는 네 음란과 네 음행의 죄를 담당할지니라 하시니라.” 유다 백성은 하나님을 잊었고 그를 등뒤에 버렸다. 그들은 그를 무시하고 멸시하였다. 사람이 하나님을 기억하고 그 앞에 경건하게 살 때 그의 계명에 순종할 수 있지만, 그를 잊어버리고 그를 무시하면 범죄할 수밖에 없다.

[36-39절] 여호와께서 또 내게 이르시되 인자야, 네가 . . . .

에스겔은 또 말한다. “여호와께서 또 내게 이르시되 인자야, 네가 오홀라와 오홀리바를 국문하려느냐? 그러면 그 가증한 일을 그들에게 고하라. 그들이 행음하였으며 피를 손에 묻혔으며 또 그 우상과 행음하며 내게 낳아준 자식들을 우상을 위하여 화제로 살랐으며 이 외에도 그들이 내게 행한 것이 있나니 당일에 내 성소를 더럽히며 내 안식일[안식일들](원문)을 범하였도다. 그들이 자녀를 죽여 그 우상에게 드린 당일에 내 성소에 들어와서 더럽혔으되 그들이 내 성전 가운데서 그렇게 행하였으며.” 하나님께서는 에스겔에게 이스라엘과 유다의 가증한 일들 곧 우상숭배를 지적하신다. 그들은 심지어 하나님을 위해 주신 자식들을 우상을 위해 제물로 불태웠다. 그들의 손에는 그 제물의 피가 묻어 있었다. 또 그들은 자녀를 죽여 우상에게 드린 날에 하나님의 성소를 더럽히며 하나님의 안식일들을 범하였다. 그들은 율법에 규정된 절기들을 잘 지키지 않았다.

[40-42절] 또 사자를 원방에 보내어 사람을 불러오게 하고 . . . .

하나님께서는 또 말씀하신다. “또 사자를 원방에 보내어 사람을 불러오게 하고 그들이 오매 그들을 위하여 목욕하며 눈썹을 그리며 스스로 단장하고 화려한 자리에 앉아 앞에 상을 베풀고 내 향과 기름을 그 위에 놓고 그 무리와 편히 지꺼리고 즐겼으며 또 광야에서 잡류와 술 취한 사람을 청하여 오매 그들이 팔쇠를 그 손목에 끼우고 아름다운 면류관을 그 머리에 씌웠도다.” 유다 사람들은 이와 같이 우상숭배에 열렬하였고 거기에 빠져 있었다.

[43-45절] 내가 음행으로 쇠한 여인을 가리켜 말하노라. . . .

하나님께서는 또 말씀하신다. “내가 음행으로 쇠한 여인을 가리켜 말하노라. 그가 그래도 그들과 피차 행음하는도다[그들이 그와 행음하겠느뇨?](KJV, NASB). 그들이 그에게 나아오기를 기생에게 나아옴같이 음란한 여인 오홀라와 오홀리바에게 나아왔은즉 의인이 음부(淫婦)를 심문함같이 심문하며 피를 흘린 여인을 심문함같이 심문하리니 그들은 음부요 또 피가 그 손에 묻었음이니라.” 이방인들은 오홀라와 오홀리바에게 나아와 의인이 음부(淫婦)나 피를 흘린 여인을 심판하듯이 그들을 심판할 것이다.

[46-49절] 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가 군대를 . . . .

하나님께서는 또 말씀하신다. “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가 군대를 거느리고 와서 치게 하여 그들로 학대와 약탈을 당하게 하리니 그 군대가 그들을 돌로 치며 칼로 죽이고 그 자녀도 죽이며 그 집들을 불사르리라. 이와 같이, 내가 이 땅에서 음란을 그치게 한즉 모든 여인이 경성하여 너희 음행을 본받지 아니하리라. 그들이 너희 음란으로 너희에게 보응한즉 너희가 모든 우상을 위하던 죄를 담당할지라. 너희가 나를 주 여호와인 줄 알리라 하시니라.” 바벨론 군대의 침공과 예루살렘의 멸망은 하나님께서 내리시는 징벌이다. 그 심판의 결과로, 하나님께서는 그 땅에서 음란 곧 우상숭배를 그치게 하실 것이며, 또 모든 여인 곧 모든 사람이나 모든 나라가 깨어 그들의 우상숭배를 본받지 않을 것이다. 그런 일이 있은 후에 유다 백성은 하나님을 바로 알게 될 것이다.

본장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우리는 우상숭배하지 말자. 우상숭배는 구약시대에 이스라엘의 역사에서 가장 큰 죄악이다. 신약성경도 변함없이 우상숭배를 경계한다. 요한일서 5:21, “자녀들아, 너희 자신을 지켜 우상에서 멀리하라.” 우상은 하나님 대신 하나님처럼 가치 있게 여기는 모든 것이다. 탐심은 우상숭배이다. 현대인의 우상은 돈이나 쾌락이다. 우리는 모든 종류의 우상을 버리자.

둘째로, 우리는 하나님을 바로 알고 하나님만 섬기자. 하나님을 바로 아는 것이 평안이요 행복이요 영생이다. 우리는 천지만물을 창조하시고 지금도 살아계신 섭리자 하나님, 곧 성경에 계시된 삼위일체 하나님을 바로 알고 오직 그를 섬기자. 신명기 6:4-5, “이스라엘아, 들으라.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오직 하나인 여호와시니 너는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 하나님을 참으로 아는 자는 우상숭배를 포함하여 모든 악을 떠난다. 요한일서 3:6, “그 안에 거하는 자마다 범죄하지 아니하나니 범죄하는 자마다 그를 보지도 못하였고 그를 알지도 못하였느니라.”

 

 

24장: 가마솥 비유

[1-2절] 제9년 10월 10일에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하여 . . . .

에스겔은 말한다. “제9년 10월 10일에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하여 가라사대 인자야, 너는 날짜 곧 오늘날을 기록하라. 바벨론 왕이 오늘날 예루살렘에 핍근하였느니라.” ‘핍근하다’(사마크)는 원어는 ‘에워싸다’는 뜻이다(NASB, NIV). 제9년은 여호야긴 왕이 사로잡힌 지 제9년이며(겔 1:2) 그 해는 주전 588년경이다. 그 날에 바벨론 왕이 예루살렘 성을 에워쌌다.

[3-5절] 너는 이 패역한 족속에게 비유를 베풀어 이르기를 . . . .

하나님께서는 또 말씀하신다. “너는 이 패역한 족속에게 비유를 베풀어 이르기를 주 여호와의 말씀에 한 가마를 걸라. 건 후에 물을 붓고 양떼에서 고른 것을 가지고 각을 뜨고 그 넓적다리와 어깨고기의 모든 좋은 덩이를 그 가운데 모아 넣으며 고른 뼈를 가득히 담고 그 뼈를 위하여 가마 밑에 나무를 쌓아 넣고 잘 삶되 가마 속의 뼈가 무르도록 삶을지어다.” 하나님께서는 에스겔이 패역한 이스라엘 족속에게 가마솥 비유를 하라고 말씀하셨다.

[6-8절] 그러므로 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피 흘린 성읍 . . . .

하나님께서는 또 말씀하신다. “그러므로 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피 흘린 성읍, 녹슨 가마 곧 그 속의 녹을 없이 하지 아니한 가마여 화 있을진저. 제비 뽑을 것도 없이 그 덩이를 일일이 꺼낼지어다. 그 피가 그 가운데 있음이여, 피를 땅에 쏟아서 티끌이 덮이게 하지 않고 말간 반석 위에 두었도다. 내가 그 피를 말간 반석 위에 두고 덮이지 않게 함은 분노를 발하여 보응하려 함이로라.”

가마솥 비유는 예루살렘 성에 대한 비유이다. 하나님께서는 예루살렘 성을 “피 흘린 성읍, 녹슨 가마”라고 표현하신다. 9절에서도 ‘피를 흘린 성읍’이라는 표현을 사용하신다. 유다 나라가 멸망한 때, 특히 므낫세 왕 때에 예루살렘 성은 무죄한 자들의 피를 많이 흘렸다(왕하 21:16).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그 피를 흙에 덮이게 하지 않고 맨반석 위에 두었다고 표현하신다. 그것은 그의 분노가 정당함을 분명히 보이시기 위함이다.

[9-12절] 그러므로 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화 있을진저 . . . .

하나님께서는 또 말씀하신다. “그러므로 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화 있을진저, 피를 흘린 성읍이여. 내가 또 나무 무더기를 크게 하리라. 나무를 많이 쌓고 불을 피워 그 고기를 삶아 녹이고 국물을 졸이고(하르카크 함메르카카)[양념을 치고](KJV, NASB, NIV) 그 뼈를 태우고 가마가 빈 후에는 숯불 위에 놓아 뜨겁게 하며 그 가마의 놋을 달궈서 그 속에 더러운 것을 녹게 하며 녹이 소멸하게 하라. 이 성읍이 수고하므로 스스로 곤비하나 많은 녹이 그 속에서 벗어지지 아니하며 불에서도 없어지지 아니하는도다.” 피 흘린 성읍에는 화가 있을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그 가마솥을 위해 나무 무더기를 크게 하고 불을 피워 솥 안의 고기를 푹 삶고 국물이 다 졸아 빈가마솥을 뜨겁게 달궈 그 속에 더러운 것을 녹게 하고 녹이 없어지게 할 것이다. 예루살렘은 수고하고 곤비하지만 많은 녹이 그 속에서 벗어지지 않고 불에서도 없어지지 않을 것이다.

[13-14절] 너의 더러운 중에 음란이 하나이라. 내가 너를 . . . .

하나님께서는 또 말씀하신다. “너의 더러운 중에 음란이 하나이라. 내가 너를 정하게 하나 네가 정하여지지 아니하니 내가 네게 향한 분노를 풀기 전에는 네 더러움이 다시 정하여지지 아니하리라.” 가마솥의 녹은 그들의 죄악을 가리킨다. 그들의 더러운 죄들 중에 하나는 음란이다. 음란은 문자적인 음행도 포함하겠지만, 특히 우상숭배를 가리킨다. 또 피 흘리는 죄도 잘못된 사형 집행뿐 아니라, 그 아들들을 우상에게 제물로 바치는 것도 포함할 것이다. 이런 죄악은 하나님의 크신 분노로만 깨끗게 될 것이다. 유다와 예루살렘의 멸망은 그들의 정결함을 위해 불가피하였다.

하나님께서는 또 말씀하신다. “나 여호와가 말하였은즉 그 일이 이룰지라. 내가 돌이키지도 아니하며 아끼지도 아니하며 뉘우치지도 아니하고 행하리니 그들이 네 모든 행위대로 너를 심문하리라. 나 주 여호와의 말이니라 하셨다 하라.” 하나님의 심판 의지는 단호하시다. 하나님께서는 참으로 죄악을 미워하시고 끝까지 회개치 않고 고집을 부리는 자들을 엄하게 징벌하실 것이다. 바벨론 군대는 와서 그들의 모든 행위대로 그들을 심판할 것이다.

[15-19절] 여호와의 말씀이 또 내게 임하여 가라사대 . . . .

에스겔은 또 말한다. “여호와의 말씀이 또 내게 임하여 가라사대 인자야, 내가 네 눈에 기뻐하는 것(마크마드 dm;j]m')[원하는 것] (KJV, NASB)을 한번 쳐서 빼앗으리니 너는 슬퍼하거나 울거나 눈물을 흘리거나 하지 말며 죽은 자들을 위하여 슬퍼하지 말고 종용히 탄식하며 수건으로 머리를 동이고 발에 신을 신고 입술을 가리우지 말고 사람의 부의하는 식물을 먹지 말라 하신지라. 내가 아침에 백성에게 고하였더니 저녁에 내 아내가 죽기로 아침에 내가 받은 명령대로 행하매 백성이 내게 이르되 네가 행하는 이 일이 우리에게 무슨 상관이 되는지 너는 우리에게 고하지 아니하겠느냐 하므로.”

하나님께서는 에스겔의 눈에 원하는 것을 빼앗으시겠고 말씀하시며 그때 그가 슬퍼하거나 울거나 눈물을 흘리거나 하지 말고 조용히 탄식하고 수건으로 머리를 동이고 발에 신을 신고 입술을 가리지 말고 음식을 먹지 말라고 하셨다. 에스겔은 아침에 백성에게 이 말씀을 고하였는데 저녁에 그의 아내가 죽었다. 에스겔은 다음날 아침에 그가 받은 명령대로 행하였다. 이스라엘 백성은 그에게 물었다.

[20-24절] 내가 그들에게 대답하기를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 . . .

에스겔은 말했다. “내가 그들에게 대답하기를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하여 가라사대 너는 이스라엘 족속에게 이르기를 주 여호와의 말씀에 내 성소는 너희 세력의 영광이요 너희 눈의 기쁨이요 너희 마음에 아낌이 되거니와 내가 더럽힐 것이며 너희의 버려 둔 자녀를 칼에 엎드러지게 할지라. 너희가 에스겔의 행한 바와 같이 행하여 입술을 가리우지 아니하며 사람의 식물을 먹지 아니하며 수건으로 머리를 동인 채, 발에 신을 신은 채로 두고 슬퍼하지도 아니하며 울지도 아니하되 죄악 중에 쇠패하여 피차 바라보고 탄식하리라. 이와 같이 에스겔이 너희에게 표징이 되리니 그가 행한 대로 너희가 다 행할지라. 이 일이 이루면 너희가 나를 주 여호와인 줄 알리라 하라 하셨느니라.”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힘의 영광이요 그들의 눈에 원하는 바요 그들의 마음에 아끼는 하나님의 성소 곧 예루살렘 성전을 더럽히실 것이며 그들의 버려둔 자녀들을 칼에 엎드러지게 하실 것이다. 그들은 에스겔처럼 입술을 가리우지 않고 음식을 먹지 않고 수건으로 머리를 동이고 발에 신을 신은 채로 슬퍼하거나 울지 않고 조용히 탄식할 것이다. 그들은 그 죄악 가운데서 쇠잔하여 멸망할 것이다. 이와 같이, 에스겔은 그들에게 표징이 되었다. 그가 행한 대로 그들은 행할 것이다. 이 일이 이루어질 때 그들은 하나님을 알 것이다.

[25-27절] 인자야, 내가 그 힘과 그 즐거워하는 영광과 . . . .

하나님께서는 또 말씀하신다. “인자야, 내가 그 힘과 그 즐거워하는 영광과 그 눈의 기뻐하는 것과 그 마음의 간절히 생각하는 자녀를 제하는 날 곧 그 날에 도피한 자가 네게 나아와서 네 귀에 그 일을 들리지 아니하겠느냐? 그 날에 네 입이 열려서 도피한 자에게 말하고 다시는 잠잠하지 아니하리라. 이와 같이 너는 그들에게 표징이 되고 그들은 내가 여호와인 줄 알리라.” 하나님께서 그들의 힘과 그 즐거워하는 영광과 그 눈의 원하는 것과 또 그 마음의 간절히 생각하는 자녀들을 제하시는 날 예루살렘에서 도피한 자가 그에게 와서 그 일을 알려줄 것이며 그 날에 에스겔의 입은 열려서 잠잠하지 않고 그에게 말할 것이다. 그때 그들은 하나님을 알게 될 것이다.

본장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정결함을 원하신다. 하나님께서는 피 흘린 성읍(6, 9절)을 진노하셨다. 또 이스라엘의 죄악은 음란함이었다. 우리는 육적이든 영적이든 음행을 버려야 한다. 하나님을 참으로 경외하는 자는 그의 계명을 지킬 것이다. 우리는 자신을 꺾고 하나님께 절대 순종해야 하며,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해야 하고 육적 음행과 영적 음행 곧 우상숭배를 다 버려야 한다.

둘째로, 만일 우리가 범죄하고 불결하면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기뻐하고 원하는 바를 빼앗으실 것이다(16, 21, 25절). 하나님께서는 에스겔의 사랑하는 아내를 데려가셨다. 그는 이스라엘 백성이 사랑하며 아끼던 예루살렘 성전을 멸망시키실 것이다. 우리에게는 하나님보다 더 귀한 것이 없어야 한다.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는 것은 다 우상이며 죄이다. 우리는 하나님만 사랑하며 오직 그의 계명을 순종해야 한다.

셋째로, 우리는 하나님을 미리 알자. 본문은 하나님의 징벌과 예루살렘의 멸망 후에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을 알 것이라고 두 번이나 말씀하셨다(24, 27절). 에스겔서에는 ‘안다’는 말(야다 ע)가 98번이나 나온다. 호세아 6:3, 6, “우리가 여호와를 알자. 힘써 여호와를 알자,” “나는 인애를 원하고 제사를 원치 아니하며 번제보다 하나님을 아는 것을 원하노라.” 하나님을 아는 것이 영생이다(요 17:3). 하나님을 참으로 아는 자만이 죄를 버리고 의를 행할 것이다(고전 15:34). 우리는 그의 징벌을 통해서가 아니고, 평소에 성경을 통해 하나님을 미리 알자.

 

 

25장: 암몬, 모압, 에돔, 블레셋에 대한 선언

[1-3절] 여호와의 말씀이 또 내게 임하여 가라사대 인자야, 암몬 족속을 향하여 그들을 쳐서 예언하라. 너는 암몬 족속에게 이르기를 너희는 주 여호와의 말씀을 들을지어다. 주 여호와의 말씀에 내 성소를 더럽힐 때에 네가 그것을 대하여, 이스라엘 땅이 황무할 때에 네가 그것을 대하여, 유다 족속이 사로잡힐 때에 네가 그들을 대하여 이르기를 아하 좋다 하였도다.”

“내 성소를 더럽힐 때에”라는 구절은 “내 성소가 더럽힘을 당할 때에”라는 뜻이다. 암몬 족속은 하나님의 성소가 더럽힘을 당할 때 기뻐하였다.

[4-5절] 그러므로 내가 너를 동방 사람에게 기업으로 붙이리니 그들이 네 가운데 진을 치며 네 가운데 그 거처를 베풀며 네 실과를 먹으며 네 젖을 마실지라. 내가 랍바로 약대의 우리를 만들며 암몬 족속의 땅으로 양무리의 눕는 곳을 삼은즉 너희가 나를 여호와인 줄 알리라.”

‘(약대의) 우리’라는 원어(나웨)는 ‘(약대의) 거처’를 뜻한다. 랍바는 암몬의 수도이다. 하나님께서는 암몬 사람들이 유다 나라의 멸망을 기뻐하였기 때문에 노하셨고 그들을 동방 사람들에게 정복당하게 하실 것이다. 또 그 일이 이루어질 때 그들은 여호와 하나님을 알게 될 것이다.

[6-7절] 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네가 이스라엘 땅을 대하여 손뼉을 치며 발을 구르며 마음을 다하여 멸시하며 즐거워하였나니 그런즉 내가 손을 네 위에 펴서 너를 다른 민족에게 붙여 노략을 당하게 하며 너를 만민 중에 끊어 버리며 너를 열국 중에서 패망케 하여 멸하리니 네가 나를 여호와인 줄 알리라 하셨다 하라.

원문은 6절 초두에 ‘왜냐하면’이라는 말이 있다. 하나님께서 암몬 족속의 땅을 약대의 거처와 양무리의 눕는 곳을 만드시겠다고 말씀하시는 이유는 그들이 이스라엘 땅에 대해 손뼉을 치며 발을 구르며 마음을 다하여 멸시하며 즐거워했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행위를 불쾌하게 여기시며 그들로 다른 민족들에게 멸망을 당케 하실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이 일로 인해 하나님을 알게 될 것이다.

[8-11절] 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모압과 세일이 이르기를 유다 족속은 모든 이방과 일반이라 하도다. 그러므로 내가 모압의 한편 곧 그 나라 변경에 있는 영화로운 성읍들 벧여시못과 바알므온과 기랴다임을 열고 암몬 족속 일반으로 동방 사람에게 붙여 기업을 삼게 할 것이라. 암몬 족속으로 다시는 이방 가운데서 기억되지 아니하게 하려니와 내가 모압에 벌을 내리리니 그들이 나를 여호와인 줄 알리라.

‘(모압의) 한편’이라는 원어(카세프)는 ‘(모압의) 옆구리’라는 뜻이며(KJV, NASB, NIV), ‘암몬 족속 일반으로’라는 말은 ‘암몬 족속과 함께’라는 뜻이다. 하나님께서는 또 모압과 세일 곧 에돔에 대해서도 심판을 선언하셨다. 그들은 하나님의 특별한 은혜를 받은 유다 백성을 멸시하며 유다 족속이 모든 이방과 일반이라고 말했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모압의 옆구리 곧 그 나라 변경에 있는 영화로운 성읍들을 열고 암몬 족속과 함께 동방 사람에게 붙여 기업을 삼게 할 것이다. 암몬 족속은 다시는 이방 가운데서 기억되지 않을 것이다. 그 결과, 그들은 여호와 하나님을 알게 될 것이다.

[12-14절] 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에돔이 유다 족속을 쳐서 원수를 갚았고 원수를 갚음으로 심히 범죄하였도다. 그러므로 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가 내 손을 에돔 위에 펴서 사람과 짐승을 그 가운데서 끊어 데만에서부터 황무하게 하리니 드단까지 칼에 엎드러지리라. 내가 내 백성 이스라엘의 손을 빙자하여 내 원수를 에돔에게 갚으리니 그들이 내 노와 분을 따라 에돔에 행한즉 내가 원수를 갚음인 줄을 에돔이 알리라. 나 주 여호와의 말이니라.

‘(이스라엘의) 손을 빙자하여’라는 말은 ‘(이스라엘의) 손으로’라는 뜻이다. 하나님께서는 또 에돔 족속에 대해 징벌하실 것이다. 그들은 유다 족속을 쳐서 원수를 갚음으로 심히 범죄하였었다. 에돔은 데만에서부터 드단까지 칼에 엎드러질 것이다. 데만은 에돔의 주요 도시이며 드단은 에돔의 최남단의 도시이다. 하나님께서는 자기 백성 이스라엘의 손으로 에돔에게 원수를 갚으실 것이며 에돔 사람은 하나님께서 원수를 갚음인 줄을 알게 될 것이다.

[15-17절] 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블레셋 사람이 옛날부터 미워하여 멸시하는 마음으로 원수를 갚아 진멸코자 하였도다. 그러므로 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가 블레셋 사람 위에 손을 펴서 그렛 사람을 끊으며 해변에 남은 자를 진멸하되 분노의 책벌로 내 원수를 그들에게 크게 갚으리라. 내가 그들에게 원수를 갚은즉 그들이 나를 여호와인 줄 알리라 하시니라.

마지막으로, 하나님께서는 블레셋에 대해서도 심판을 선언하셨다. 블레셋 사람들은 옛날부터 유다를 향하여 미워하며 멸시하는 마음으로 원수를 갚아 유다를 없애려고 하였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블레셋 사람 위에 손을 펴서 그 원수를 그들에게 크게 갚으실 것이다. 그때 그들은 하나님을 알게 될 것이다.

본장이 주는 교훈은 무엇인가? 본장에는 하나님을 안다는 말이 4번 나온다(7, 11, 14, 19절). 에스겔 전체에는 98회나 나온다. 열국들에 대한 심판의 선언은 그들이 하나님을 알게 되는 일로 마치고 있다. 성경은 우리로 하나님을 알게 하는 책이다. 하나님을 아는 것이 모든 지식의 근본이다. 우리는 하나님에 대해 무엇을 알아야 하는가?

첫째로, 세상의 모든 나라들은 하나님의 손안에 있다. 우리는 암몬 족속, 모압 족속과 에돔 족속, 블레셋 족속뿐 아니라 세계의 모든 나라들이 다 하나님의 섭리의 손안에 있음을 알아야 한다. 세계 역사는 하나님의 섭리의 역사이다. 세계의 정세는 하나님의 손안에 있다. 하나님께서는 역사의 주관자이시다. 본장은 하나님을 ‘주 여호와’라고 9번이나 표현한다. ‘주’라는 하나님의 명칭은 그의 주권을 잘 나타내는 명칭이다. 또 본장에는 ‘내가’라는 표현이 9번 이상 나온다(4, 5, 7, 9, 11, 13, 14, 16, 17절). 원문에는 더 많이 나온다. 하나님께서는 주권적 섭리자이시다. 우리는 세상 만사가 하나님의 손안에 있음을 알자.

둘째로, 하나님께서는 세상 나라들의 악을 심판하신다. 하나님께서는 암몬 족속을 동방 사람에게 멸망케 하실 것이다. 그는 모압의 성읍들을 동방 사람들에게 붙이실 것이다. 그는 에돔 위에 손을 펴실 것이고 블레셋 사람들 위에도 그러하실 것이다. 우리는 세상에 악한 나라들이 많이 있었고 지금도 있지만, 하나님께서는 그의 작정하신 때에 그들을 다 심판하시고 멸망케 하실 것을 알자. 하나님의 심판은 역사 속에서도 있었고 최종적으로도 있을 것이다. 하나님의 마지막 심판이 있다. 주께서는 곡식과 가라지 비유를 설명하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그런즉 가라지를 거두어 불에 사르는 것같이 세상끝에도 그러하리라. 인자가 그 천사들을 보내리니 저희가 그 나라에서 모든 넘어지게 하는 것과 또 불법을 행하는 자들을 거두어 내어 풀무 불에 던져 넣으리니 거기서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마 13:40-42). 사도 요한도 요한계시록에서 마지막 심판에 대한 하나님의 계시와 환상을 증거하였다. “또 내가 보니 죽은 자들이 무론 대소하고 그 보좌 앞에 섰는데 책들이 펴 있고 또 다른 책이 펴졌으니 곧 생명책이라. 죽은 자들이 자기 행위를 따라 책들에 기록된 대로 심판을 받으니”(계 20:12).

셋째로, 하나님께서는 세상 사람들이 하나님 믿는 자들을 멸시하고 미워하고 핍박한 죄에 대해 심판하실 것이다. 암몬은 이스라엘이 멸망할 때 손뼉치며 마음을 다해 멸시하며 기뻐했다. 모압은 유다 족속을 모든 이방 나라와 일반이라고 말하며 멸시하였다. 에돔은 유다를 쳐서 원수를 갚음으로 심히 범죄했다. 블레셋은 옛날부터 이스라엘을 미워하고 멸시하였다. 우리는 이웃을 멸시하는 죄를 범하지 말자. 우리는 형제를 사랑하고 원수까지도 불쌍히 여기자. 주께서는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핍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고 말씀하셨다.

 

 

 26장: 두로에 대한 선언

[1-2절] 제11년 어느 달 초 1일에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하여 가라사대 인자야, 두로가 예루살렘을 쳐서 이르기를 아하 좋다. 만민의 문이 깨어져서 내게로 돌아왔도다. 그가 황무하였으니 내가 충만함을 얻으리라 하였도다.

제11년은 유다 왕 여호야긴이 포로로 잡혀온 지 제11년 곧 주전 586년경이다. 그 해에 예루살렘은 바벨론에게 멸망당하였다. 그 해에 두로에 대한 심판을 선언하신 하나님의 말씀이 에스겔에게 임하였다. 두로는 이스라엘의 북서쪽에 위치한 매우 부요한 항구이며 그 주위를 통치하는 성이었다. 하나님께서는 두로가 예루살렘의 멸망을 기뻐하며 그것의 멸망이 자신에게 유익이 되고 충만함이 되리라고 기대한 마음을 정죄하시고 심판하실 것이다.

[3-6절] 그러므로 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두로야, 내가 너를 대적하여 바다가 그 파도로 흉용케 함같이 열국으로 와서 너를 치게 하리니 그들이 두로의 성벽을 훼파하며 그 망대를 헐 것이요 나도 티끌을 그 위에서 쓸어 버려서 말간 반석이 되게 하며 바다 가운데 그물 치는 곳이 되게 하리니 내가 말하였음이니라. 나 주 여호와의 말이니라. 그가 이방의 노략거리가 될 것이요 들에 있는 그의 딸들은 칼에 죽으리니 그들이 나를 여호와인 줄 알리라.

‘티끌’이라는 원어(아파르)는 ‘파괴된 성의 파편들 즉 폐기물들’을 가리키며(BDB, NASB), ‘말간 반석’이라는 표현은 바위 위에 세워진 도시가 파괴되고 제거됨을 가리키며, ‘그물 치는 곳’이라는 말은 ‘그물을 펼치는 곳’ 즉 그물을 말리는 곳을 가리킬 것이다(이 말의 원어는 14절의 ‘그물 말리는 곳’이라는 말의 원어와 같다).

하나님께서는 두로를 대적하셔서 바다의 무서운 파도같이 열국들이 와서 그를 치게 하실 것이다. 그는 주권자이시므로 열국들을 동원하실 수 있고 그들을 불러 두로를 치게 하실 수 있다. 국제 관계는 하나님의 주권적 섭리 안에 있다. 이방 나라들은 와서 두로의 성벽들을 부수고 그 망대들을 헐 것이며 하나님께서는 파편들을 그 위에서 쓸어버려 성의 기초가 드러나고 바다 가운데 그물 말리는 곳이 되게 하실 것이다. 또 그들은 이방의 노략거리가 될 것이며 들에 있는 그들의 딸들은 칼에 죽을 것이다. 이 모든 일이 하나님의 주권적 섭리 안에 이루어질 것이다. 두로 사람들은 이 일로 인해 하나님을 알게 될 것이다.

[7-10절] 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가 열왕의 왕 곧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로 북방에서 말과 병거와 기병과 군대와 백성의 큰 무리를 거느리고 와서 두로를 치게 할 때에 그가 들에 있는 너의 딸들을 칼로 죽이고 너를 치려고 운제를 세우며 토성을 쌓으며 방패를 갖출 것이며 공성퇴를 베풀어 네 성을 치며 도끼로 망대를 찍을 것이며 말이 많으므로 그 티끌이 너를 가리울 것이며 사람이 훼파된 성 구멍으로 들어가는 것같이 그가 네 성문으로 들어갈 때에 그 기병과 수레와 병거의 소리로 인하여 네 성곽이 진동할 것이며.

하나님께서는 열왕의 왕인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로 북방에서 오게 하실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주권적 섭리로 바벨론 왕을 불러 두로를 치게 하실 것이다. 역사를 주관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며, 열강의 지도자들을 섭리하시는 이도 하나님이시다. 바벨론 왕은 말과 병거와 기병과 군대와 백성의 큰 무리를 거느리고 와서 두로를 칠 때에 그 거민들을 칼로 죽일 것이며 군대들의 먼지가 성을 가릴 것이며 병거들의 소리가 성곽을 진동시킬 것이다.

[11-14절] 그가 그 말굽으로 네 모든 거리를 밟을 것이며 칼로 네 백성을 죽일 것이며 네 견고한 석상을 땅에 엎드러뜨릴 것이며 네 재물을 빼앗을 것이며 네 무역한 것을 노략할 것이며 네 성을 헐 것이며 네 기뻐하는 집을 무너뜨릴 것이며 또 네 돌들과 네 재목과 네 흙을 다 물 가운데 던질 것이라. 내가 네 노래 소리로 그치게 하며 네 수금 소리로 다시 들리지 않게 하고 너로 말간 반석이 되게 한즉 네가 그물 말리는 곳이 되고 다시는 건축되지 못하리니 나 여호와가 말하였음이니라. 나 주 여호와의 말이니라.

바벨론 왕은 그 말굽으로 두로의 모든 거리를 밟을 것이며 칼로 그의 백성을 죽일 것이며 그의 견고한 석상들과 신상들을 땅에 엎드러뜨릴 것이다. 또 그는 두로의 재물을 빼앗고 그의 무역한 것을 노략할 것이다. 두로는 무역을 통해 돈과 물품이 풍성한 도시였지만 하나님께서 그것들을 다 빼앗기게 하실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또 그의 노랫소리로 그치게 하시고 그의 수금 소리로 다시 들리지 않게 하실 것이다. 그는 그들의 즐거움과 기쁨을 다 제거하실 것이다. 그가 말씀하셨으므로 이 일이 다 이루어질 것이다.

[15-18절] 주 여호와께서 두로를 대하여 말씀하시되 너의 엎드러지는 소리에 모든 섬이 진동하지 아니하겠느냐? 곧 너희 중에 상한 자가 부르짖으며 살륙을 당할 때에라. 그때에 바다의 모든 왕이 그 보좌에서 내려 조복을 벗으며 수놓은 옷을 버리고 떨림을 입듯하고 땅에 앉아서 너로 인하여 무시로 떨며 놀랄 것이며 그들이 너를 위하여 애가를 불러 이르기를 항해자의 거한 유명한 성이여, 너와 너의 거민이 바다 가운데 있어 견고하였었도다. 해변의 모든 거민을 두렵게 하였더니 어찌 그리 멸망하였는고. 너의 무너지는 그 날에 섬들이 진동할 것임이여, 바다 가운데 섬들이 네 결국을 보고 놀라리로다 하리라.

두로가 멸망할 때 다른 섬들이 다 놀랄 것이다. 바다의 모든 왕이 그 보좌에서 내려 조복을 벗으며 수놓은 옷을 버리고 떨며 놀랄 것이며 애가를 부를 것이다. 세상적으로 부요하고 영광스러웠던 성, 모든 사람들을 두렵게 하기까지 했던 두로가 이렇게 멸망하니 많은 사람들이 놀라서 떨며 슬퍼할 것이다.

[19-21절] 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가 너로 거민이 없는 성과 같이 황무한 성이 되게 하고 깊은 바다로 네 위에 오르게 하며 큰물로 너를 덮게 할 때에 내가 너로 구덩이에 내려가는 자와 함께 내려가서 옛적 사람에게로 나아가게 하고 너로 그 구덩이에 내려간 자와 함께 땅 깊은 곳 예로부터 황적한 곳에 거하게 할지라. 네가 다시는 사람이 거하는 곳이 되지 못하리니 산 자의 땅에서 영광을 얻지 못하리라 내가 너를 패망케 하여 다시 있지 못하게 하리니 사람이 비록 너를 찾으나 다시는 영원히 만나지 못하리라. 나 주 여호와의 말이니라.

“산 자의 땅에서 영광을 얻지 못하리라”는 말은 “내가 산 자들의 땅에 영광을 두리라”는 뜻이라고 본다(KJV, NASB). 하나님께서는 두로를 거민이 없는 성과 같이 황무한 성이 되게 하실 것이다. 또 두로는 옛날 사람들이 있는 땅 깊은 곳으로 내려갈 것이다. 그곳은 무덤과 지옥이다. 두로는 황폐하고 황적하게 될 것이다. 다시는 거기에 사람이 거하지 못할 것이다.

본장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우리는 주권자 하나님을 알자. 두로는 주권자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하나님과 대적 관계에 있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두로를 심판하실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열국을 동원하여 두로를 치시며 열왕들을 불러 그를 치실 것이다. 두로의 멸망의 일을 주도하시고 이루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세상의 모든 일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이심을 알고 믿고 의지하자.

둘째로, 우리는 형제의 멸망을 기뻐하지 말자. 두로의 잘못 중 하나는 예루살렘의 멸망을 기뻐하고 그것을 자신의 복의 기회로 생각한 것이었다. 하나님께서는 그 마음을 정죄하셨고 심판하셨다. 우리는 형제의 고난을 슬퍼하며 동정하고 그를 위해 기도할지언정, 그의 고난을 기뻐하거나 그것을 우리의 이익의 기회로 삼으려 하지 말아야 한다.

셋째로, 우리는 물질적 부요를 의지하거나 그것으로 만족하지 말자. 하나님께서 심판하실 때 두로 백성은 죽임을 당하고 그 물질적 부요는 다 빼앗기고 그 유흥도 다 없어질 것이다. 열국의 왕들은 놀랄 것이며 슬픈 노래를 부를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그 성을 황무한 성이 되게 할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물질적 부요를 자랑하거나 의지하지 말자.

 

 

27장: 두로를 위한 애가

[1-4절]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하여 가라사대 인자야, 너는 두로를 위하여 애가를 지으라. 너는 두로를 향하여 이르기를 바다 어귀에 거하여 여러 섬 백성과 통상하는 자여, 주 여호와의 말씀에 두로야, 네가 말하기를 나는 온전히 아름답다 하였도다. 네 지경이 바다 가운데 있음이여, 너를 지은 자가[자들이] 네 아름다움을 온전케 하였도다.

두로는 당시 지중해에서 동서남북을 연결하는 가장 중요한 무역 도시로서 그 성을 중심으로 매우 부요하며 강성한 나라를 형성하고 있었다. 그들은 스스로를 온전히 아름답다고 자찬했다. 두로는 마주 대하는 섬이 더 중심이었고 “네 지경이 바다 가운데 있음이여”라고 말씀하신 것 같다. 두로를 세운 자들은 그 아름다움을 온전케 했다.

[5-7절] 스닐의 잣나무로 네 판자를 만들었음이여, 너를 위하여 레바논 백향목을 가져 돛대를 만들었도다. 바산 상수리나무로 네 노를 만들었었음이여, 깃딤 섬 황양목에 상아로 꾸며 갑판을 만들었도다. 애굽의 수 놓은 가는 베로 돛을 만들어 기를 삼았음이여, 엘리사 섬의 청색 자색 베로 차일을 만들었도다.

스닐은 헤르몬 산이다. 판자는 배의 판자 혹은 널빤지를 가리킨다. 상수리나무는 오크나무(떡갈나무 혹은 참나무)이다. 깃딤 섬은 구브로 섬이다. 황양목은 회양목(box-wood)이라고도 한다.7) 엘리사 섬도 구브로 섬을 가리킨다. 차일(awning)은 배의 창문가리개나 갑판의 천막을 가리킬 것이다.

[8-11절] 시돈과 아르왓 거민들이 네 사공이 되었음이여, 두로야, 네 가운데 있는 박사가 네 선장이 되었도다. 그발의 노인과 박사들이 네 가운데서 배의 틈을 막는 자가 되었음이여, 바다의 모든 배와 그 사공들은 네 가운데서 무역하였도다. 바사와 룻과 붓이 네 군대 가운데서 병정이 되었음이여, 네 가운데서 방패와 투구를 달아 네 영광을 나타내었도다. 아르왓 사람과 네 군대는 네 사면 성 위에 있었고 용사들은 네 여러 망대에 있었음이여, 네 사면 성 위에 방패를 달아 네 아름다움을 온전케 하였도다.

‘용사들’(BDB)이라는 말‘감마드 사람들’(감마딤)이라고 번역하기도 한다(KJV, NASB). 이와 같이, 당시의 두로의 영광과 위엄은 찬란하였다.

[12-13절] 다시스는 각종 보화가 풍부하므로 너와 통상하였음이여, 은과 철과 상납과 납을 가지고 네 물품을 무역하였도다. 야완과 두발과 메섹은 네 장사가 되었음이여, 사람과 놋그릇을 가지고 네 상품을 무역하였도다.

상납은 주석(tin)이다. 물품들의 하나로 ‘사람’은 ‘노예들’을 가리킬 것이다. 이 당시에 두로는 풍성하고 활발한 무역을 하였다.

[14-16절] 도갈마 족속은 말과 전마와 노새를 가지고 네 물품을 무역하며 드단 사람은 네 장사가 되었음이여, 여러 섬이 너와 통상하여 상아와 오목을 가져 네 물품을 무역하였도다. 너의 제조품이 풍부하므로 아람은 너와 통상하였음이여, 남보석과 자색 베와 수 놓은 것과 가는 베와 산호와 홍보석을 가지고 네 물품을 무역하였도다.

오목(烏木)은 가구나 악기 재료로 쓰이는 ‘흑단’(ebony)이다.

[17-19절] 유다와 이스라엘 땅 사람이 네 장사가 되었음이여, 민닛 밀과 과자와 꿀과 기름과 유향을 가지고 네 물품을 무역하였도다. 너의 제조품이 많고 각종 보화가 풍부하므로 다메섹이 너와 통상하였음이여, 헬본 포도주와 흰 양털을 가지고 너와 무역하였도다. 워단과 야완은 길쌈하는 실로 네 물품을 무역하였음이여, 백철과 육계와 창포가 네 상품 중에 있었도다.

‘과자’라는 원어(파낙)는 어떤 식물인 것 같으나, 정확한 뜻을 모른다고 한다(BDB). 백철은 가공한 철이다. 육계는 계피이며 창포(calmus)는 향기나는 갈대이다. ‘워단’이라는 원어는 ‘또(and) 단’이라는 뜻일 것이다(KJV, NIV).

[20-27절] 드단은 네 장사가 되었음이여, 탈 때 까는 담으로 너와 무역하였도다. 아라비아와 게달의 모든 방백은 네 수하에 상고가 되어 어린양과 숫양과 염소들, 그것으로 너와 무역하였도다. 스바와 라아마의 장사들도 너의 장사들이 됨이여, 각종 상등 향재료와 각종 보석과 황금으로 네 물품을 무역하였도다. 하란과 간네와 에덴과 스바와 앗수르와 길맛의 장사들도 너의 장사들이라. 이들이 아름다운 물화 곧 청색 옷과 수놓은 물품과 빛난 옷을 백향목 상자에 담고 노끈으로 묶어 가지고 너와 통상하여 네 물품을 무역하였도다. 다시스의 배는 떼를 지어 네 물화를 실었음이여, 네가 바다 중심에서 풍부하여 영화가 극하였도다. 네 사공이 너를 인도하여 큰물에 이름이여, 동풍이 바다 중심에서 너를 파하도다. 네 재물과 상품과 무역한 물건과 네 사공과 선장과 네 배의 틈을 막는 자와 네 장사와 네 가운데 있는 모든 용사와 네 가운데 있는 모든 무리가 네 패망하는 날에 다 바다 중심에 빠질 것임이여.

그러나 이렇게 부요하고 영광스러웠던 두로가 마침내 멸망하게 될 것이다. 두로는 완전히 망할 것이다.

[28-31절] 네 선장의 부르짖는 소리에 물결이 흔들리리로다. 무릇 노를 잡은 자와 사공과 바다의 선장들이 다 배에 내려 언덕에 서서 너를 위하여 크게 소리질러 통곡하고 티끌을 머리에 무릅쓰며 재 가운데 굶이여, 그들이 다 너를 위하여 머리털을 밀고 굵은 베로 띠를 띠고 마음이 아프게 슬피 통곡하리로다.

‘물결’이라는 원어(미그로숏)는 ‘주위의 땅들’(BDB, KJV)이라는 뜻이다.

[32-36절] 그들이 통곡할 때에 너를 위하여 애가를 불러 조상하는 말씀이여, 두로같이 바다 가운데서 적막한 자 누구인고. 네 물품을 바다로 실어 낼 때에 네가 여러 백성을 풍족하게 하였음이여, 네 재물과 무역품이 많으므로 세상 열왕을 풍부케 하였었도다. 네가 바다 깊은데서 파선한 때에 네 무역품과 네 승객이 다 빠졌음이여, 섬의 거민들이 너를 인하여 놀라고 열왕이 심히 두려워하여 얼굴에 근심이 나타나도다. 열국의 상고가 다 너를 비웃음이여, 네가 경계거리가 되고 네가 영원히 다시 있지 못하리라 하리로다 하셨다 하라.

‘경계거리’라는 원어(발라호스)는 ‘두려움’이라는 뜻이다(KJV, NASB). 이 애가대로 두로는 오늘날 그 영광의 흔적이 없고 6천명 정도의 사람들이 사는, 그물 말리는 어촌에 불과하다고 한다.

두로의 영광은 찬란했다. 그들은 스닐의 잣나무 판자로 배를, 레바논의 백향목으로 돗대를, 바산의 오크나무로 노를, 깃딤섬의 회향목으로 상아 갑판을, 애굽의 수놓은 베로 돛을, 엘리사 섬의 청색, 자색 베로 차일을 만들었고, 시돈과 아르왓 사람들은 뱃사공들이었고, 두로의 박사들은 선장들이었고, 그발의 노인들은 배의 틈을 막는 자들이었고, 바사와 룻과 붓 사람들, 또 아르왓 사람들은 두로의 병사들이었고, 그들은 방패와 투구를 갖추었다. 두로는 당시에 세계적 무역 항구이며, 거기에는 다시스의 은과 철과 주석과 납, 야완과 두발과 메섹의 노예들, 놋그릇들, 도갈마의 말들과 전마(戰馬)들과 노새들, 드단의 상아와 흑단, 아람의 남보석, 자색 베, 수놓은 것, 가는 베, 산호, 홍보석, 유다와 이스라엘의 민닛 밀, 꿀, 기름, 유향, 다메섹의 헬본 포도주, 흰 양털, 단의 백철, 계피, 창포, 드단의 탈 때 까는 담요, 아라비아와 게달의 어린양, 숫양, 염소, 수바와 라아마의 각종 고급 향재료와 보석과 황금, 간네, 에덴, 스바, 앗수르, 길맛의 청색옷, 수놓은 물품들 등 없는 것이 없을 정도이었다. 그러나 이렇게 풍부하고 부요하고 강성했던 두로가 멸망할 것이다. 본장의 교훈은, 우리의 현재의 부요와 영광이크다 할지라도 우리가 범죄하여 하나님과 대적이 되면 다 멸망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과 대적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우리는 하나님과 주 예수 그리스도께 대한 믿음과 순종, 의와 거룩과 사랑 안에서 살아가자. 우리는 오직 하나님 앞에서 신실하자.

  

 

 28장: 두로 왕에 대한 선언

본장은 두로 왕에 대한 심판과 시돈에 대한 심판의 선언이 나오고 또 이스라엘의 회복에 대한 예언이 나온다. 하나님께서는 자기 백성 이스라엘뿐 아니라, 세계 열국들의 흥망성쇠를 다 섭리하신다.

[1-5절] 여호와의 말씀이 또 내게 임하여 가라사대 인자야, 너는 두로 왕에게 이르기를 주 여호와의 말씀에 네 마음이 교만하여 말하기를 나는 신이라. 내가 하나님의 자리 곧 바다 중심에 앉았다 하도다. 네 마음이 하나님의 마음 같은 체할지라도 너는 사람이요 신이 아니어늘 네가 다니엘보다 지혜로워서 은밀한 것을 깨닫지 못할 것이 없다 하고 네 지혜와 총명으로 재물을 얻었으며 금, 은을 곳간에 저축하였으며 네 큰 지혜와 장사함으로 재물을 더하고 그 재물로 인하여 네 마음이 교만하였도다.

두로 왕에 대해서는 그가 마음이 높고 교만하였다고 지적되었다. 2절과 5절에 그의 마음이 ‘교만하다’는 원어(가바흐)는 마음이 ‘높다’(haughty)는 뜻이다. 그는 바다 중심에 앉아 나는 신이라고 말하며 마치 하나님인 양 처신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네 마음이 하나님의 마음 같은 체할지라도 너는 사람이요 신이 아니라”고 말씀하셨다. 두로 왕은 상당히 지혜로웠던 것 같다. 그는 다니엘보다 지혜로워서 은밀한 것을 깨닫지 못할 것이 없다고 말하며 그의 지혜와 총명으로 재물을 얻었고 금, 은을 곳간에 저축했고 그의 큰 지혜로 장사하여 재물을 더했다. 그는 부자 되는 지혜가 있었다. 그러나 그는 그 재물로 인해 그의 마음이 높아졌고 교만했다.

[6-10절] 그러므로 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네 마음이 하나님의 마음 같은 체하였으니 그런즉 내가 외인 곧 열국의 강포한 자를 거느리고 와서 너를 치리니 그들이 칼을 빼어 네 지혜의 아름다운 것을 치며 네 영화를 더럽히며 또 너를 구덩이에 빠뜨려서 너로 바다 가운데서 살륙을 당한 자의 죽음같이 바다 중심에서 죽게 할지라. 너를 살륙하는 자 앞에서 네가 그래도 말하기를 내가 하나님이라 하겠느냐? 너를 치는 자의 수중에서 사람뿐이요 신이 아니라. 네가 외인의 손에서 죽기를 할례받지 않은 자의 죽음같이 하리니 내가 말하였음이니라. 나 주 여호와의 말이니라 하셨다 하라.

하나님께서는 두로 왕에 대해 심판을 선언하셨다. 그는 “내가 외인들 곧 열국의 강포한 자를 거느리고 와서 너를 치리라”고 말씀하셨다. 침략자들은 칼을 빼어 그의 지혜의 아름다운 것을 치며 그의 영화를 더럽힐 것이며, 또 그를 구덩이에 빠뜨려서 바다 가운데서 살육을 당한 자의 죽음같이 바다 중심에서 죽게 할 것이다. 그때 그는 그를 살육하는 자 앞에서 ‘내가 하나님이라’고 여전히 말하겠는가? 그는 그를 치는 자들의 손에서 사람뿐이요 신이 아님을 알게 될 것이다. 또 그는 외인들의 손에서 죽기를 할례받지 않은 자의 죽음같이 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예언하시고 그 예언대로 이루실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11-12절] 여호와의 말씀이 또 내게 임하여 가라사대 인자야, 두로 왕을 위하여 애가를 지어 그에게 이르기를 주 여호와의 말씀에 너는 완전한 인(印)이었고 지혜가 충족하며 온전히 아름다웠도다.

하나님께서는 에스겔에게 두로 왕을 위한 애가(哀歌)를 지으라고 말씀하셨다. 그것은 12절 이하에 나와 있다. 하나님께서는 두로 왕이 완전한 인이었고 지혜가 충족하며 온전히 아름다웠다고 말씀하셨다. ‘완전한 인(印)’이라는 원어(코셈 타크니스)는 ‘측량을 인치는 자 혹은 확인하는 자’라는 말로서 ‘완전한 통치자’라는 뜻인 것 같다. 두로 왕은 처음에는 지혜가 충족하고 온전히 아름답고 공의로운 통치자이었던 것 같다.

[13-14절] 네가 옛적에 하나님의 동산 에덴에 있어서 각종 보석 곧 홍보석과 황보석과 금강석과 황옥과 홍마노와 창옥과 청보석과 남보석과 홍옥과 황금으로 단장하였었음이여, 네가 지음을 받던 날에 너를 위하여 소고와 비파가 예비되었었도다. 너는 기름 부음을 받은 덮는 그룹임이여, 내가 너를 세우매 네가 하나님의 성산에 있어서 화광석 사이에 왕래하였었도다.

그가 왕위에 올랐을 때, 그는 하나님의 동산 에덴 같은 두로에서 각종 보석으로 단장하였었다. 13절은 열 개의 보석 이름을 언급한다. 그것은 각종 색깔의 아름다운 보석들이다. 그의 대관식은 영광스러웠다. 하나님께서는 그를 “기름 부음을 받은 덮는 그룹”이라고 말씀하셨다. 그것은 그가 천사처럼 지혜와 능력과 탁월함이 있었고 기름 부음을 받아 왕으로 성별되었으며 백성과 약자들을 덮듯이 그들의 보호자가 되었다는 뜻일 것이다(Poole). 하나님께서 그를 왕으로 세우실 때 그는 그 거룩한 산에서 위엄 있는 궁궐에서 왕래하였다.

[15-19절] 네가 지음을 받던 날로부터 네 모든 길에 완전하더니 마침내 불의가 드러났도다. 네 무역이 풍성하므로 네 가운데 강포가 가득하여 네가 범죄하였도다. 너 덮는 그룹아, 그러므로 내가 너를 더럽게 여겨 하나님의 산에서 쫓아내었고 화광석 사이에서 멸하였도다. 네가 아름다우므로 마음이 교만하였으며 네가 영화로우므로 네 지혜를 더럽혔음이여, 내가 너를 땅에 던져 열왕 앞에 두어 그들의 구경거리가 되게 하였도다. 네가 죄악이 많고 무역이 불의하므로 네 모든 성소를 더럽혔음이여, 내가 네 가운데서 불을 내어 너를 사르게 하고 너를 목도하는 모든 자 앞에서 너로 땅 위에 재가 되게 하였도다. 만민 중에 너를 아는 자가 너로 인하여 다 놀랄 것임이여, 네가 경계거리가 되고 네가 영원히 다시 있지 못하리로다 하셨다 하라.

그런데 이렇게 훌륭하고 완전한 통치자이었던 두로 왕이 무역이 많아지고 물질적으로 부요해지자 불의가 드러났고 그 가운데 강포가 가득하였고 하나님께 범죄하였다. 그는 아름다울 때 마음이 교만하였고 영화로울 때 그의 지혜를 더럽혔다. 그의 죄악은 많았고 그는 무역할 때 불의하였고 그의 성소들을 더럽혔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그를 더럽게 여기셔서 그 산에서 쫓아내셨고 화광석 사이에서 멸하셨으며 그를 땅에 던져 열왕 앞에 구경거리가 되게 하셨다. 또 그는 그 가운데서 불을 내어 그를 사르게 하셨고 그를 보는 모든 자 앞에서 그로 땅 위에 재가 되게 하셨다. 만민 중에 그를 아는 자들은 그로 인해 다 놀랄 것이며 그는 경계거리(발라호스)[두려움]가 될 것이다. 또 두로는 영원히 다시 있지 못할 것이다.

[20-24절] 여호와의 말씀이 또 내게 임하여 가라사대 인자야, 너는 낯을 시돈으로 향하고 그를 쳐서 예언하라. 너는 이르기를 주 여호와의 말씀에 시돈아, 내가 너를 대적하나니 네 가운데서 내 영광이 나타나리라 하셨다 하라. 내가 그 가운데서 국문을 행하여 내 거룩함을 나타낼 때에 무리가 나를 여호와인 줄 알지라. 내가 그에게 염병을 보내며 그의 거리에 피가 흐르게 하리니 사방에서 오는 칼에 상한 자가 그 가운데 엎드러질 것인즉 무리가 나를 여호와인 줄 알겠고 이스라엘 족속에게는 그 사면에서 그들을 멸시하는 자 중에 찌르는 가시와 아프게 하는 가시가 다시는 없으리니 그들이 나를 주 여호와인 줄 알리라.

하나님께서는 또 에스겔을 통해 시돈에 대한 심판을 선언하셨다. 그는 시돈을 대적한다고 말씀하셨다. 그는 그들 가운데서 심판을 행하심으로 그의 영광과 거룩함을 나타내실 것이며 그때 사람들은 하나님을 알게 될 것이다. 그는 시돈에게 무서운 전염병을 보내시며 사방에서 오는 칼에 의해 많은 사람들이 죽임을 당하고 거리에서는 피가 흐를 것이다. 그러나 그때 그들은 여호와를 알게 될 것이다. 이스라엘 족속에게는 그 사면에서 그들을 멸시하는 자들 중에 찌르는 가시와 아프게 하는 가시가 다시는 없을 것이며 이스라엘 백성도 주 여호와 하나님을 알게 될 것이다.

[25-26절] 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가 열방에 흩어 있는 이스라엘 족속을 모으고 그들로 인하여 열국의 목전에서 내 거룩함을 나타낼 때에 그들이 고토 곧 내 종 야곱에게 준 땅에 거할지라. 그들이 그 가운데 평안히 거하여 집을 건축하며 포도원을 심고 그들의 사면에서 멸시하던 모든 자를 내가 국문[심판]할 때에 그들이 평안히 살며 나를 그 하나님 여호와인 줄 알리라.

다른 여러 선지자들의 예언들에서와 같이, 에스겔도 하나님의 심판을 선언하는 가운데서도 이스라엘의 회복에 대한 하나님의 선언을 말한다. 하나님께서는 열방에 흩어 있는 이스라엘 족속을 모으시고 그들이 하나님의 종 야곱에게 주신 고토(故土)에 거하게 하실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은 고향 같은 약속의 땅 팔레스틴으로 돌아올 것이며 거기서 평안히 거하여 집을 건축하며 포도원을 심을 것이다. 하나님께서 그들의 사면에서 그들을 멸시하던 모든 자를 심판하시고 징벌하셨으므로 그들은 평안히 살게 될 것이다. 또 그들은 그때 여호와 하나님을 알게 될 것이다.

본장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우리는 땅의 헛된 것으로 교만치 말자. 두로 왕은 지혜와 부귀와 영광 때문에 마음이 높아졌고 교만하였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를 심판하실 때 그가 누리던 모든 것들은 다 헛되게 되었다. 우리는 두로 왕의 멸망을 기억하고 땅의 헛된 것들을 인해 높은 마음을 가지지 말고 교만해지지 말자.

둘째로, 우리는 주권자 하나님만 바라며 의지하며 섬기자. 하나님께서는 주권적 섭리자이시다. 개인의 생사화복(生死禍福)과 국가의 흥망성쇠(興亡盛衰)는 살아계신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다. 하나님을 아는 것이 영원한 생명이요 인생의 가장 큰복이다. 우리는 하나님을 알고 그를 믿고 의지하며 섬기며 그의 계명대로 순종하며 살자.

셋째로, 우리는 악인들이 없는 새 세계를 소망하자. 이스라엘의 회복은 인간의 지어낸 허망한 이상이 아니고 신실하신 하나님께서 성경에 밝히 약속하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는 자에게 평강과 형통을 이 세상에서도 약속하셨지만, 장차 올 새 세계는 이 세상의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이 영광스러운 곳이다. 그곳은 악인들이 전혀 없을 것이다. 우리는 그 천국을 소망하자.

 

 

 29장: 애굽에 대한 선언

[1-3절] 제10년 10월 12일에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하여 가라사대 인자야, 너는 애굽 왕 바로와 온 애굽으로 낯을 향하고 쳐서 예언하라. 너는 말하여 이르기를 주 여호와의 말씀에 애굽 왕 바로야, 내가 너를 대적하노라. 너는 자기의 강들 중에 누운 큰 악어라. 스스로 이르기를 내 이 강은 내 것이라. 내가 나를 위하여 만들었다 하는도다.

제10년 10월 12일에 여호와의 말씀이 에스겔에게 임하셨다. 제10년은 유다 왕 여호야긴이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온 때로부터 제10년 즉 주전 587년경이다. 하나님께서는 에스겔이 애굽 왕 바로를 쳐서 예언하라고 말씀하셨다. ‘내가 너를 대적한다’ 혹은 ‘내가 너를 친다’는 표현이 에스겔서에 약 13번이 나온다.8) 애굽 왕은 “자기의 강들 중에 누운 큰 악어”라고 표현된다. ‘큰 악어’라는 원어(핫탄님 학가돌)는 ‘큰 바다 괴물’이라는 뜻이다. 애굽 왕은 “내 이 강은 내 것이라. 내가 나를 위하여 만들었다”고 말하였는데, 그것은 하나님 앞에서 무지하고 교만하고 죄악된 말이었다.

[4-5절] 내가 갈고리로 네 아가미를 꿰고 네 강의 고기로 네 비늘에 붙게 하고 네 비늘에 붙은 강의 모든 고기와 함께 너를 네 강들 중에서 끌어내고 너와 네 강의 모든 고기를 들에 던지리니 네가 지면에 떨어지고 다시는 거두거나 모음을 입지 못할 것은 내가 너를 들짐승과 공중의 새의 식물로 주었음이라.

하나님께서는 그 큰 바다 괴물과 거기에 붙은 강의 모든 고기들을 잡아 육지에 던질 것이며 들짐승과 새들의 먹이가 되게 할 것이라고 표현하셨다. 그것은 애굽 왕의 패망을 가리킨다. ‘네 비늘에 붙은 강의 모든 고기’라는 표현은 애굽의 백성을 가리킬 것이다.

[6-7절] 애굽의 모든 거민이 나를 여호와인 줄 알리라. 애굽은 본래 이스라엘 족속에게 갈대 지팡이라. 그들이 너를 손으로 잡은즉 네가 부러져서 그들의 모든 어깨를 찢었고 그들이 너를 의지한즉 네가 부러져서 그들의 모든 허리로 흔들리게 하였느니라.

하나님께서 애굽 왕과 거민들을 멸망시키실 때 그들은 하나님께서 살아계셔서 공의로 열국들을 심판하시는 것을 깨닫게 될 것이다. 원문에는 그 다음에 ‘왜냐하면’이라는 말(야안)이 있다. 그것은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을 지팡이처럼 의지할 때 애굽 사람들은 마음이 높았고 하나님을 무시하였지만, 하나님의 심판을 받을 때 그들이 비로소 하나님을 깨닫게 될 것이라는 뜻이다. 애굽이 멸망할 때 그를 의지했던 이스라엘 족속의 모든 어깨는 찢겼고 그들의 모든 허리가 흔들렸다. 7절은 “네가 부러져서”라는 말을 반복하여 강조한다.

[8-9절] 그러므로 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가 칼로 네게 임하게 하여 네게서 사람과 짐승을 끊은즉 애굽 땅이 사막과 황무지가 되리니 그들이 나를 여호와인 줄 알리라. [이는] 네가 스스로 이르기를 이 강은 내 것이라. 내가 만들었다 하도다[함이로다].

하나님께서는 칼 곧 전쟁을 일으키셔서 애굽에서 사람들과 짐승들을 다 죽이실 것이며 그 결과로 애굽 땅은 사막과 황무지같이 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또 “그들이 나를 여호와인 줄 알리라”고 말씀하셨다. 또 그가 애굽 왕을 심판하시는 까닭으로 그는 “왜냐하면(야안)(원문) 네가 스스로 이르기를 이 강은 내 것이라. 내가 만들었다고 하였기 때문이라”고 그의 교만한 말을 지적하셨다.

[10-12절] 그러므로 내가 너와 네 강들을 쳐서( lae)[대적하여]  애굽 땅 믹돌에서부터 수에네 곧 구스 지경까지 황무한 황무지 곧 사막이 되게 하리니 그 가운데로 사람의 발도 지나가지 아니하며 짐승의 발도 지나가지 아니하고 거접하는 사람이 없이 40년이 지날지라. 내가 애굽 땅으로 황무한 열국같이 황무하게 하며 애굽 성읍도 사막이 된 열국의 성읍같이 40년 동안 황무하게 하고 애굽 사람들은 각국 가운데로 흩으며 열방 가운데로 헤치리라.

하나님께서는 애굽 땅을 사막이 되게 하리라고 말씀하셨다. 또 그는 그 가운데로 사람들의 발이나 짐승들의 발도 지나가지 않고 거기 거하는 자들이 없이 40년이 흐를 것이라고 하셨다. 애굽의 황폐함은 40년 동안 계속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또 “내가 애굽 땅으로 황무한 열국들 가운데서(원문) 황무하게 하며 애굽 성읍들도 사막이 된 열국의 성읍들 가운데서(원문) 40년 동안 황무하게 하리라”고 말씀하시며 또 “애굽 사람들을 각국 가운데로 흩으며 열방 가운데로 헤치리라”고 하셨다. 애굽은 멸망으로 세계 각 국에 흩어질 것이다.

[13-16절] 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40년 끝에 내가 만민 중에 흩은 애굽 사람을 다시 모아 내되 애굽의 사로잡힌 자들을 돌이켜 바드로스 땅 곧 그 고토로 돌아가게 할 것이라. 그들이 거기서 미약한 나라가 되되 나라 중에 지극히 미약한 나라가 되어 다시는 열국 위에 스스로 높이지 못하리니 내가 그들을 감하여 다시는 열국을 다스리지 못하게 할 것임이라. 그들이 다시는 이스라엘 족속의 의뢰가 되지 못할 것이요 이스라엘 족속은 돌이켜 그들을 바라보지 아니하므로 그 죄악이 기억나게 되지 아니하리니 그들이 나를 주 여호와인 줄 알리라 하셨다 하라.

하나님께서는 애굽을 심판하신 지 40년 후 그들을 회복시키실 것이다. 그는 그들을 다시 모아 바드로스 땅 곧 그 고토(故土, 고향)로 돌아가게 하실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거기서 지극히 미약한 나라가 될 것이며 다시는 열국 위에 자신을 높이고 열국을 다스리지 못할 것이다. 이 예언은 오늘날 그대로 성취되었다. 애굽 사람들은 다시는 이스라엘 족속의 의뢰가 되지 못할 것이요 이스라엘 족속은 돌이켜 그들을 바라보지도 않을 것이다. 또 그들은 이제 이 모든 일의 성취를 통해 주 여호와를 알게 될 것이다.

[17-20절] 제27년 정월 1일에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하여 가라사대 인자야,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이 그 군대로 두로를 치게 할 때에 크게 수고하여 각 머리털이 무지러졌고 각 어깨가 벗어졌으나 그와 군대가 그 수고한 보수를 두로에서 얻지 못하였느니라. 그러므로 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가 애굽 땅을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에게 붙이리니 그가 그 무리를 옮겨가며 물건을 노략하며 빼앗아 갈 것이라. 이것이 그 군대의 보수가 되리라. 그들의 수고는 나를 위하여 함인즉 그 보수로 내가 애굽 땅을 그에게 주었느니라. 나 주 여호와의 말이니라.

제27년 즉 주전 570년 정월 1일에 여호와의 말씀이 선지자 에스겔에게 임하였다. 하나님께서는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이 그 군대로 두로를 치게 하실 때 그들이 크게 수고하였으나 그 수고한 보수를 두로에서 얻지 못했으므로, 애굽 땅을 그에게 붙이시며 물건을 노략하게 하실 것이다. 그는 바벨론 왕의 수고가 하나님을 위한 것이었으므로 그 보수로 애굽 땅을 그에게 주셨다고 말씀하신다. 하나님께서는 세계 열국을 홀로 다스리시는 주권적 섭리자이시다.

[21절] 그 날에 내가 이스라엘 족속에게 한 뿔이 솟아나게 하고 내가 또 너로 그들 중에서 입을 열게 하리니 그들이 나를 여호와인 줄 알리라.

마지막으로, 하나님께서는 “그 날에 내가 이스라엘 족속에게 한 뿔이 솟아나게 하리라”고 말씀하신다. ‘그 날’은 문맥적으로 보면 애굽 땅의 멸망의 날을 가리킨 것 같다. 그러나 깊은 의미에서 그것은 이스라엘의 회복에 관련된다고 본다. 바벨론 나라가 온 세계를 정복하던 그때에 벌써 포로로 잡혀간 자들 중에 다니엘과 세 친구들은 바벨론에서 하나님의 긍휼과 능력을 경험하고 있었다. 또 열왕기하 25:27-30은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이 죽은 후 에윌므로닥이 즉위한 원년, 즉 여호야긴이 사로잡혀 간 지 37년 되는 때, 여호야긴은 옥에서 놓임을 받았고 일평생 항상 왕의 앞에서 음식을 먹는 호의를 입었다. 여호야긴이 놓임을 받은 그 해는 에스겔이 본문 17절의 예언을 받은 지 10년 후의 일이다.

다니엘이 총리에 발탁된 것이나 여호야긴이 왕의 호의를 받은 것 등은 장차 이스라엘 나라가 온 세상을 섭리하시는 살아계신 하나님의 능력으로 회복될 것을 암시한다. ‘한 뿔’은 메시아를 가리킨 것 같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의 바벨론 포로 기간에도 살아 역사하시며 섭리하시는 하나님이셨다. 하나님께서는 또 에스겔로 그들 중에서 입을 열게 하리라고 말씀하시며 또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을 여호와로 알리라고 말씀하셨다.

본장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우리는 하나님과 원수 되지 말아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애굽 왕 바로와 그 나라를 대적하셨다. 에스겔서에는 하나님께서 누구를 대적하신다는 표현이 약 13번이나 나온다. 온 세상의 주관자이신 하나님께서 대적하시는 자는 행복할 수 없다. 우리가 행복하려면 먼저 하나님과 화목해야 한다. 이제 우리는 모든 죄를 버리고 예수 그리스도만 의지하며 말씀에 순종하며 살아야 한다.

둘째로, 하나님께서는 주권적 섭리자이시다. 그는 교만한 애굽 왕을 칼로 징벌하시고 그 땅을 40년간 황폐케 하실 것이며, 40년 후에 그 나라를 회복시키실 것이며 미약한 나라가 되게 하실 것이다. 또 그는 바벨론 왕에게 두로를 친 수고의 보수로 애굽을 주실 것이다. 또 그는 장차 이스라엘에게 한 뿔이 솟아나게 하실 것이다. 개인의 생사화복도, 국가의 흥망성쇠도 하나님께서 주관하신다(신 32:39; 삼상 2:6-7).

셋째로, 우리는 하나님을 알아야 한다(6, 9, 16, 21절). 이스라엘 백성과 이방 나라들은 하나님께서 그들을 심판하실 때 하나님을 알게 될 것이다. 인생은 하나님을 알아야, 그를 섬기고 그를 소망하고 그에게 기도하고 그를 사랑하고 그에게 순종할 수 있다. 그것이 인생의 정로(正路)이며, 거기에 영생이 있고 참 평강과 행복이 있다. 우리는 성경을 통해 참되신 하나님을 바로 알고 오직 그를 섬기며 순종하자.

 

 

  30장: 애굽의 멸망에 대한 예언

[1-5절] 여호와의 말씀이 또 내게 임하여 가라사대 인자야, 너는 예언하여 이르라. 주 여호와의 말씀에 너희는 통곡하며 이르기를 슬프다, 이 날이여 하라. 그 날이 가까웠도다. 여호와의 날이 가까웠도다. 구름의 날일 것이요 열국의 때이리로다. 애굽에 칼이 임할 것이라. 애굽에서 살륙당한 자들이 엎드러질 때에 구스에 심한 근심이 있을 것이며 애굽의 무리가 옮기우며 그 기지가 헐릴 것이요 구스와 붓과 룻과 모든 섞인 백성과 굽과 및 동맹한 땅의 백성들이 그들과 함께 칼에 엎드러지리라.

애굽이 멸망할 날이 올 것이다. 그 날이 가까웠다. 그 날은 ‘여호와의 날’ 즉 하나님께서 심판하시는 날이다. 그 날은 ‘구름의 날,’ 곧 재앙의 구름이 낀 어둡고 음산한 날이다. 그 날은 ‘열국의 때’이며 바벨론이 침공하는 때이다. 애굽에서 많은 사람들이 죽임을 당하며 애굽의 무리가 옮기우며 그 튼튼했던 성들이 헐릴 것이다. 애굽을 돕던 나라들인 “구스와 붓과 룻과 모든 섞인 백성과 굽과 및 동맹한 땅의 백성들”도 그들과 함께 칼에 엎드러질 것이다.

[6-9절]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애굽을 붙들어 주는 자도 엎드러질 것이요 애굽의 교만한 권세도 낮아질 것이라. 믹돌에서부터 수에네까지 무리가 그 가운데서 칼에 엎드러지리라. 나 주 여호와의 말이니라. 황무한 열방같이 그들도 황무할 것이며 사막이 된 성읍들같이 그 성읍들도 사막이 될 것이라. 내가 애굽에 불을 일으키며 그 모든 돕는 자를 멸할 때에 그들이 나를 여호와인 줄 알리라. 그 날에 사자들이 내 앞에서 배로 나아가서 염려 없는 구스 사람을 두렵게 하리니 애굽의 재앙의 날과 같이 그들에게도 심한 근심이 있으리라. 이것이 오리로다.

애굽의 지원국들도 엎드러질 것이며 애굽의 ‘교만한 권세’가 낮아질 것이다. ‘교만한 권세’라는 원어(게온 웃자흐)는 ‘그의 권세의 교만 혹은 의기양양함’이라는 뜻이다. 당시의 거대한 제국 애굽의 권세의 의기양양함이 낮아질 것이다. 믹돌에서부터 수에네까지 무리가 그 가운데서 칼에 엎드러질 것이다. 믹돌은 애굽의 최북단의 도시이며 수에네는 최남단의 도시이다. 애굽은 황무한 열방같이 황무할 것이며 사막이 된 성읍들같이 사막이 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애굽에 불을 일으키실 것이며 그 모든 돕는 자들을 멸하실 것이다. 그때 그들은 여호와께서 참 하나님이심을 알게 될 것이다. 염려 없이 지내던 구스 사람들도 그 날에 애굽의 멸망 소식을 전해 듣고 두려움과 심한 근심을 가지게 될 것이다.

[10-13절] 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가 또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의 손으로 애굽 무리들을 끊으리니 그가 열국 중에 강포한 자기 군대를 거느리고 와서 그 땅을 멸할 때에 칼을 빼어 애굽을 쳐서 살륙당한 자로 땅에 가득하게 하리라. 내가 그 모든 강을 말리우고 그 땅을 악인의 손에 팔겠으며 타국 사람의 손으로 그 땅과 그 가운데 있는 모든 것을 황무케 하리라. 나 여호와의 말이니라. 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가 그 우상들을 멸하며 신상들을 놉 가운데서 끊으며 애굽 땅에서 왕이 다시 나지 못하게 하고 그 땅에 두려움이 있게 하리라.

하나님께서는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의 손으로 애굽 백성을 끊으실 것이다. 그는 그의 기쁘신 뜻을 위해 바벨론 왕의 손까지도 쓰실 수 있다. 바벨론 왕은 열국 중에 강포한 자기 군대를 거느리고 와서 칼을 빼어 애굽 땅을 쳐서 살육당한 자로 땅에 가득하게 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애굽 땅을 악인의 손에 팔겠다고 표현하신다. 그는 그렇게 하실 권한이 있다. 온 세상은 실상 하나님의 것이다. 그가 원하시면 어느 땅이든지 누구에게나 파실 수 있다. 하나님께서는 또 “내가 그 우상들을 멸하며 신상들을 놉 가운데서 끊을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애굽의 대표적 문제는 우상숭배이었다. 하나님께서는 그 죄악을 징벌하실 것이다. 또 그는 애굽 땅에서 왕이 다시 나지 못하게 하시고 그 땅에 두려움이 있게 하실 것이다.

[14-19절] 내가 바드로스를 황무케 하며 소안에 불을 일으키며 노를 국문하며 내 분노를 애굽의 견고한 성 신에 쏟고 또 노의 무리를 끊을 것이라. 내가 애굽에 불을 일으키리니 신이 심히 근심할 것이며 노는 찢어 나뉠 것이며 놉은 날로 대적이 있을 것이며 아웬과 비베셋의 소년들은 칼에 엎드러질 것이며 그 성읍 거민들은 포로 될 것이라. 내가 애굽 멍에를 꺾으며 그 교만한 권세를 그 가운데서 그치게 할 때에 드합느헤스에서는 날이 어둡겠고 그 성읍에는 구름이 덮일 것이며 그 딸들은 포로 될 것이라. 이와 같이 내가 애굽을 국문하리니 그들이 나를 여호와인 줄 알리라 하셨다 하라.

하나님께서는 구체적으로 애굽의 여러 성들의 이름을 들어 심판을 선언하신다. 그는 바드로스를 황무케 하실 것이다. 바드로스는 애굽의 남부의 지역 이름이다. 또는 그는 소안에 불을 일으키실 것이다. 소안은 애굽 북동부 고센 땅의 성이다. 또 그는 노를 심판하실 것이다. 노 혹은 노아몬은 데베스라는 성으로서 애굽 남부의 중요한 성이다. ‘국문한다’는 말은 심판한다는 뜻이다. 또 그는 그의 분노를 견고한 성 신에 쏟으실 것이다. 신은 수에네의 다른 명칭이다.

하나님께서는 애굽에 불을 일으키실 것이다. 신이 심히 근심할 것이며 노는 찢어 나뉠 것이며 놉은 날로 대적이 있을 것이다. 당시의 수도인 놉은 멤피스라는 도시이며 오늘날 수도인 카이로이다. 아웬과 비베셋의 소년들은 칼에 엎드러질 것이다. 애굽 성읍들의 거민들은 포로로 잡혀갈 것이다. 하나님께서 애굽의 멍에 즉 지배력을 꺾으시며 그 ‘교만한 권세’ 즉 ‘그의 권세의 의기양양함’을 그 가운데서 그치게 하실 때에 드합느헤스에서는 날이 어둡겠고 그 성에는 구름이 덮일 것이며 그 딸들은 포로될 것이다. ‘딸들’이라는 표현은 그 성의 거민들을 가리킨다.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는 애굽을 심판하실 것이며 그 결과, 애굽 사람들은 여호와 하나님을 알게 될 것이다.

[20-23절] 제11년 정월 7일에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하여 가라사대 인자야, 내가 애굽 왕 바로의 팔을 꺾었더니 칼을 잡을 힘이 있도록 그것을 그저 싸매지도 못하였고 약을 붙여 싸매지도 못하였느니라. 그러므로 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가 애굽 왕 바로를 대적하여 그 두 팔 곧 성한 팔과 이미 꺾인 팔을 꺾어서 칼이 그 손에서 떨어지게 하고 애굽 사람을 열국 가운데로 흩으며 열방 가운데로 헤칠지라.

제11년 즉 주전 586년경에 에스겔은 하나님의 말씀을 또 받았다. 하나님께서는 애굽 왕 바로의 팔 즉 군사력을 꺾으셨더니 그가 칼을 잡을 힘이 있도록 그것을 그저 싸매지도 못하였고 약을 붙여 싸매지도 못하였다. 그는 애굽 왕 바로를 대적하여 그 두 팔 곧 성한 팔과 이미 꺾인 팔을 꺾어서 칼이 그 손에서 떨어지게 하실 것이다. 강대한 나라 애굽의 군사력이 미약하게 된 것은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셨기 때문이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팔에 힘을 주시면 우리가 힘을 얻을 것이지만, 그가 우리의 팔을 꺾으시면 우리는 미약해지고 말 것이다. 또 하나님께서는 애굽 사람을 열국 가운데로 흩으실 것이며 열방 가운데로 헤치실 것이다.

[24-26절] 내가 바벨론 왕의 팔을 견고하게 하고 내 칼을 그 손에 붙이려니와 내가 바로의 팔을 꺾으리니 그가 바벨론 왕의 앞에서 고통하기를 죽게 상한 자의 고통하듯 하리라. 내가 바벨론 왕의 팔은 들어주고 바로의 팔은 떨어뜨릴 것이라. 내가 내 칼을 바벨론 왕의 손에 붙이고 그로 들어 애굽 땅을 치게 하리니 그들이 나를 여호와인 줄 알겠고 내가 애굽 사람을 열국 가운데로 흩으며 열방 가운데로 헤치리니 그들이 나를 여호와인 줄 알리라.

하나님께서는 바벨론 왕의 팔을 견고하게 하시고 그의 칼을 그 손에 붙이실 것이나, 바로의 팔은 꺾으실 것이다. 또 그는 바벨론 왕의 팔은 들어주시고 바로의 팔은 떨어뜨리실 것이다. 그는 그의 칼을 바벨론 왕의 손에 붙이셔서 그로 들어 애굽 땅을 치게 하실 것이다. 애굽 왕은 바벨론 왕의 앞에서 고통하기를 죽게 상한 자의 고통하듯 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의 팔을 견고하게 하기도 하시고 꺾기도 하시며, 그것을 들기도 하시고 떨어뜨리게도 하신다. 모든 주권이 하나님께 있다. 다니엘 4:17의 말씀대로, 지극히 높으신 그는 인간 나라를 다스리시며 자기의 뜻대로 그것을 누구에게든지 주시는 자이시다. 그때 애굽 사람들은 여호와 하나님을 알게 될 것이다. 또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열국 가운데로 흩으시며 열방 가운데로 헤치실 것이며 그때 그들은 하나님을 알게 될 것이다.

본장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에스겔서에서 반복되는 교훈이지만, 하나님을 알라는 교훈이다. 8절, 19절, 25절, 26절에 반복되는 말씀은 그들이 여호와 하나님을 알게 될 것이라는 말씀이다. 그들이 특히 하나님의 주권적 심판을 알게 될 것이다. 애굽이 멸망하는 날은 ‘여호와의 날’이라고 불린다. 본장에는, 우리말 성경만 해도, 12번 “내가”라는 표현이 나온다(원문에는 더 많겠지만)(8, 10, 12, 14, 18, 19, 21, 22, 24, 25, 25, 26절). 이렇게 반복된 모든 말씀은 하나님의 주권을 증거한다. 하나님께서는 살아계셔서 심판을 시행하신다. 그는 주권자이시다. 세상의 모든 일들은 하나님의 섭리 안에 있다. 우리는 하나님을 알자. 특히 그가 주권적 섭리자이심을 알고, 그 앞에 겸손히 순종하자.

둘째로, 우리는 교만과 우상숭배를 버리자. 애굽이 멸망된 원인은 교만과 우상숭배 때문이었다. ‘애굽의 교만한 권세’(6, 18절)라는 말은 ‘그의 권세의 의기양양함, 우쭐함, 교만’이라는 뜻이다. 교만은 하나님을 거부하고 자신을 하나님보다 더 높이고 더 의지하는 것이다. 교만은 죄 중에 가장 큰 죄이며 사람은 교만하면 망한다. 또 13절에 보면 하나님께서는 “내가 그 우상들을 멸하며 신상들을 놉 가운데서 끊으리라”고 말씀하셨다. 애굽의 또 하나의 죄는 우상숭배이다. 애굽은 우상의 나라이었다. 사람들의 근본적인 죄는 피조물을 조물주보다 더 섬기는 것이다(롬 1:21-23, 25). 구원은 이 모든 우상을 버리고 살아계시고 참되신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것이다. 우리는 모든 헛된 우상을 버리고 성경의 교훈대로 살아계시고 참되신 하나님만 섬기자.

 

 

 31장: 음부로 내려감

[1-3절] 제11년 3월 초1일에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하여 가라사대 인자야, 너는 애굽 왕 바로와 그 무리에게 이르기를 네 큰 위엄을 뉘게 비하랴. 볼지어다, 앗수르 사람은 가지가 아름답고 그늘은 삼림의 그늘 같으며 키가 높고 꼭대기가 구름에 닿은 레바논 백향목이었느니라.

제11년 3월 초1일에 즉 주전 586년경에 여호와의 말씀이 에스겔에게 임하였다. “구름에 닿은”이라는 원어(벤 아보심)는 “얽혀 있는 나뭇잎 사이에 있는”이라는 뜻이다(BDB, NIV). 하나님께서는 애굽 왕 바로에 대해 그의 큰 위엄을 앗수르 사람에 비교하셨다. 앗수르 사람은 레바논의 백향목과 같았다. 백향목(cedar)은 키가 36미터까지 크는 우람한 침엽수이다(NBD). 앗수르는 권세와 영광이 강대했던 나라이었다.

[4-6절] 물들이 그것을 기르며 깊은 물이 그것을 자라게 하며 강들이 그 심긴 곳을 둘러 흐르며 보의 물이 들의 모든 나무에까지 미치매 그 나무가 물이 많으므로 키가 들의 모든 나무보다 높으며 굵은 가지가 번성하며 가는 가지가 길게 빼어났고 공중의 모든 새가 그 큰 가지에 깃들이며 들의 모든 짐승이 그 가는 가지 밑에 새끼를 낳으며 모든 큰 나라가 그 그늘 아래 거하였었느니라.

앗수르 나라는 유프라데스 강과 티그리스 강의 풍부한 물을 끼고 번창하였다. 앗수르는 물질적 유여함을 누렸다. 주변의 모든 크고 작은 나라들은 앗수르의 강대함과 번창함의 그늘 아래 거하였다.

[7-9절] 그 뿌리가 큰 물가에 있으므로 그 나무가 크고 가지가 길어 모양이 아름다우매 하나님의 동산의 백향목이 능히 그를 가리우지 못하며 잣나무가 그 굵은 가지만 못하며 단풍나무가 그 가는 가지만 못하며 하나님의 동산의 아무 나무도 그 아름다운 모양과 같지 못하였도다. 내가 그 가지로 많게 하여 모양이 아름답게 하였더니 하나님의 동산 에덴에 있는 모든 나무가 다 투기하였느니라.

8절, 9절에 ‘하나님의 동산’ 또는 ‘하나님의 동산 에덴’이라는 표현은 에덴 동산의 위치를 앗수르 경내라고 추측하게 만든다. 그것이 일반적인 견해이다. 잣나무는 그 백향목의 굵은 가지만 못하며 단풍나무는 그 가는 가지만 못하혔고 하나님의 동산의 아무 나무도 그 아름다운 모양과 같지 못하였다. 잣나무(베로쉼)는 ‘전나무’(Vg, KJV), ‘삼나무(cypress)’(LXX, Syr, NASB), ‘소나무’(NIV) 등 다양하게 번역된다. 단풍나무(아르모님)는 ‘밤나무’(KJV), ‘플라타너스 나무(plane-tree)’(NASB, NIV) 등으로 번역된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동산 에덴에 있는 모든 나무가 다 그를 투기하였다고 말씀하신다. 앗수르의 영광을 비유로 표현하신 것이다.

[10-11절] 그러므로 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그의 키가 높고 꼭대기가 구름에 닿아서 높이 빼어났으므로 마음이 교만하였은즉 내가 열국의 능한 자의 손에 붙일지라. 그가 임의로 대접할 것은 내가 그의 악을 인하여 쫓아내었음이라.

앗수르의 키가 높고 꼭대기가 구름에 닿아서 높이 빼어나 마음이 교만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그를 열국의 능한 자의 손에 붙이실 것이며 그가 임의로 그를 대할 것이며 하나님께서는 그의 악을 인해 그를 쫓아내실 것이다. ‘붙일지라’는 원어(웨엣트네후)는 ‘내가 그를 붙였다’라는 뜻이다(KJV, NIV). 그것은 하나님의 징벌이었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악을 인해 그를 쫓아내셨고 열국들은 그를 임의로 학대하였다. 하나님께서는 교만한 앗수르를 징벌하셨다.

[12-13절] 열국의 강포한 다른 민족이 그를 찍어 버렸으므로 그 가는 가지가 산과 모든 골짜기에 떨어졌고 그 굵은 가지가 그 땅 모든 물가에 꺾어졌으며 세상 모든 백성이 그를 버리고 그 그늘 아래서 떠나매 공중의 모든 새가 그 넘어진 나무에 거하며 들의 모든 짐승이 그 가지에 있으리니.

하나님께서는 또 열국의 강포한 다른 민족들이 앗수르를 찍어버렸다고 표현하셨다. 그 결과, 이전에 그의 그늘 아래 거했던 세상의 모든 백성은 그를 버렸고 그 그늘 아래서 떠났고 공중의 모든 새는 그 넘어진 나무에 거하며 들의 모든 짐승은 그 가지에 있을 것이다. 앗수르의 권세와 영광은 다 파해지고 그 나라는 황폐케 될 것이다.

[14절] 이는 물가에 있는 모든 나무로 키가 높다고 교만치 못하게 하며 그 꼭대기로 구름에 닿지 못하게 하며 또 물 대임을 받는 능한 자로 스스로 높아 서지 못하게 함이니 [이는] 그들을 다 죽는데 붙여서 인생 중 구덩이로 내려가는 자와 함께 지하로 내려가게 하였음이니라.

하나님께서 이렇게 징벌하신 목적은, “물가에 있는 모든 나무로 키가 높다고 교만치 못하게 하며 그 꼭대기로 구름에 닿지 못하게 하며 또 물 대임을 받는 능한 자로 스스로 높아 서지 못하게 함”이었다. 과연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다 죽는데 붙여서 인생 중 구덩이로 내려가는 자와 함께 지하로 내려가게 하셨다. 하나님께서는 교만한 자들을 징벌하시고 낮추신다.

[15-17절] 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그가 음부에 내려가던 날에 내가 그를 위하여 애곡하게 하며 깊은 바다를 덮으며 모든 강을 쉬게 하며 큰물을 그치게 하고 레바논으로 그를 위하여 애곡하게 하며 들의 모든 나무로 그로 인하여 쇠잔하게 하였느니라. 내가 그로 구덩이에 내려가는 자와 함께 음부에 떨어뜨리던 때에 열국[열방--국한문성경]으로 그 떨어지는 소리를 인하여 진동하게 하였고 물 대임을 받은 에덴의 모든 나무 곧 레바논의 뛰어나고 아름다운 나무들로 지하에서 위로를 받게 하였느니라. 그러나 그들도 그와 함께 음부에 내려 칼에 살륙을 당한 자에게 이르렀나니 그들은 옛적에 그의 팔이 된 자요 열국 중에서 그 그늘 아래 거하던 자니라.

앗수르가 음부에 내려가던 날에 하나님께서는 그를 위해 애곡하게 하시며 깊은 바다를 덮으시며 모든 강을 쉬게 하시며 큰물을 그치게 하시고 레바논으로 그를 위해 애곡하게 하시며 들의 모든 나무로 그로 인해 쇠잔하게 하셨다. 레바논은 앗수르 남부 지역에 있는 나라들을 가리킬 것이다. 앗수르의 멸망은 주변 나라들에게 깜짝 놀랄 일이었다. 그들은 오히려 지하에서 위로를 받았다. 앗수르보다 먼저 멸망당했던 왕들은 한 때 앗수르의 팔처럼 그를 위해 일했고 그의 보호와 후원 아래 살았던 자들이었다. 그러나 그들이 멸망하여 음부로 내려갔고 그들이 먼저 간 그곳에 앗수르 왕도 뒤따라 왔던 것이다. 본장과 다음 장에 자주 나오는 ‘지하’(14, 16, 18절), ‘음부’ (15, 16, 17절), ‘구덩이’(16절)는 일차적으로 ‘무덤’을 가리킬 수 있지만, 문맥적으로 ‘지옥’을 가리킬 만하다. 옛날 영어성경은 16, 17절의 ‘음부’라는 원어를 ‘지옥’(hell)이라고 번역하였다.

[18절] 너의 영화와 광대함이 에덴 모든 나무 중에 어떤 것과 같은고. 그러나 네가 에덴 나무와 함께 지하에 내려갈 것이요 거기서 할례 받지 못하고 칼에 살륙당한 자 중에 누우리라. 이들은 바로와 그 모든 군대니라. 나 주 여호와의 말이니라 하라.

하나님께서는 바로 왕에 대해 말씀하신다. 현재 애굽 왕 바로의 영광과 세력의 큼은 앗수르와 비교할 만하다. 그러나 바로는 앗수르 왕처럼 음부 곧 지옥으로 내려갈 것이다.

본장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우리는 교만을 버려야 한다. 앗수르 왕과 애굽 왕은 권세와 영광이 심히 컸지만 교만하므로 하나님께서 그들을 쇠하게 하셨고 죽게 하셨다. 사람은 교만하면 멸망한다. 잠언 16:18,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요 거만한 마음은 넘어짐의 앞잡이니라.”

둘째로, 세상 권세와 영광은 헛되다. 한 때 천하를 호령하던 앗수르 왕과 애굽 왕의 권세와 영광은 하늘 꼭대기에 닿듯이 컸지만, 하나님께서 그것을 허무시니 그들은 음부 곧 무덤과 지옥에 던지운 자들이 되었다. 세상의 권세와 부귀 영광은 헛되다(전 1:2; 벧전 1:24). 우리는 그 사실을 알고 오직 하나님만 의지하고 하나님만 소망하자 

 

 

32장: 바로에 대한 애가

[1-6절] 제12년 12월 초1일에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하여 가라사대 인자야, 너는 애굽 왕 바로에 대하여 애가를 불러 그에게 이르라. 너를 열국에서 젊은 사자에 비하였더니 실상은 바다 가운데 큰 악어라. 강에서 뛰어 일어나 발로 물을 요동하여 그 강을 더럽혔도다. 나 주 여호와의 말이여, 내가 많은 백성의 무리를 거느리고 내 그물을 네 위에 치고 그 그물로 너를 끌어오리로다. 내가 너를 뭍에 버리며 들에 던져 공중의 새들로 네 위에 앉게 할 것임이여, 온 땅의 짐승으로 너를 먹어 배부르게 하리로다. 내가 네 고기를 여러 산에 두며 네 시체를 여러 골짜기에 채울 것임이여, 네 피로 네 헤엄치는 땅에 물 대듯하여 산에 미치게 하며 그 모든 개천에 채우리로다.

본장은 바로에 대한 애가이다. ‘큰 악어’라는 원어(탄님)9)는 ‘괴물’(NASB, NIV)을 가리킨다. 바다와 강은 세상을 가리킨다. 애굽 왕 바로는 세상에서 괴물 같은 거대한 세력이었으나, 하나님께서는 그를 멸망케 하실 것이다. ‘네 시체’라는 원어(라무스)는 ‘높은 키’(BDB)라는 뜻으로 애굽 왕 바로의 거만한 몸을 가리킨 것 같다.

[7-10절] 내가 너를 불끄듯할 때에 하늘을 가리워 별로 어둡게 하며 해를 구름으로 가리우며 달로 빛을 발하지 못하게 할 것임이여, 하늘의 모든 밝은 빛을 내가 네 위에서 어둡게 하여 어두움을 네 땅에 베풀리로다. 나 주 여호와의 말이로다. 내가 네 패망의 소문으로 열국 곧 너의 알지 못하는 열방에 이르게 할 때에 많은 백성의 마음을 번뇌케 할 것임이여, 내가 그 많은 백성으로 너를 인하여 놀라게 할 것이며 내가 내 칼로 그들의 왕 앞에서 춤추게 할 때에 그 왕이 너를 인하여 심히 두려워할 것이며 네가 엎드러지는 날에 그들이 각각 자기 생명을 위하여 무시로 떨리로다.

‘불끄듯하다’는 원어(캅보스 t]/Bk')는 ‘불끄듯이 죽이고 없앤다’는 뜻이다. 하나님께서 애굽을 멸하실 때 온 땅은 어둡게 될 것이다. 어두움은 사회적 대환난을 상징한다. 애굽의 패망은 이웃 나라들에게 놀라운 소식일 것이며, 주위의 나라들은 자신들의 생명의 안전을 위해 심히 두려워할 것이다.

[11-16절] 나 주 여호와가 말함이여, 바벨론 왕의 칼이 네게 임하리로다. 내가 네 무리로 용사 곧 열국의 무서운 자들의 칼에 엎드러지게 할 것임이여, 그들이 애굽의 교만을 폐하며 그 모든 무리를 멸하리로다. 내가 또 그 모든 짐승을 큰 물가에서 멸하리니 사람의 발이나 짐승의 굽이 다시는 그 물을 흐리지 못할 것임이여, 그때에 내가 그 물을 맑게 하여 그 강으로 기름같이 흐르게 하리로다. 나 주 여호와의 말이로다. 내가 애굽 땅으로 황무하여 사막이 되게 하여 거기 풍성한 것이 없게 할 것임이여, 그 가운데 모든 거민을 치리니 그들이 나를 여호와인 줄 알리로다. 이는 슬피 부를 애가니 열국 여자들이 이것을 슬피 부름이여, 애굽과 그 모든 무리를 위하여 이것을 슬피 부르리로다. 나 주 여호와의 말이로다 하라.

바벨론 왕과 동맹국들은 하나님의 도구가 되어 애굽의 교만을 폐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애굽의 모든 가축들까지도 멸하실 것이다. 애굽이 멸망하고 그 땅이 황무하여 사막처럼 되며 거기 살던 거민들이 죽임을 당하며 거기에 풍성하던 것들이 없어질 때에 애굽 사람들은 비로소 여호와 하나님을 알게 될 것이다.

[17-19절] 제12년 어느 달 15일에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하여 가라사대 인자야, 애굽의 무리를 애곡하고 그와 유명한 나라 여자들을 구덩이에 내려가는 자와 함께 지하에 던지며 이르라. 너의 아름다움이 누구보다 지나가는고 너는 내려가서 할례받지 않은 자와 함께 뉘울지어다.

애굽 왕 바로나 세상의 강대한 나라들의 왕들은 다 죽어 구덩이에 내려가며 지하에 던지울 것이다. 31장과 32장에는 ‘구덩이’라는 말이 8번 사용되었고(31:14, 16; 32:18, 23, 24, 25, 29, 30), ‘지하’라는 말이 5번 사용되었다(31:14, 16, 18; 32:18, 24). 애굽 왕 바로는 아름다웠고 그 권세와 영광이 컸지만, 죽임을 당하고 지하 구덩이에 내려가서 할례받지 않은 자들과 함께 뉘울 것이다. ‘할례받지 않은 자와 함께’라는 표현이 본장에 10번 나온다(19, 21, 24, 25, 26, 27, 28, 29, 30, 32절). 그것은 할례를 받은 자들과 받지 않은 자들을 구별하는 표현이다. 구약시대에도 경건한 성도들은 죽을 때 그 영혼이 하나님의 안식 세계에 들어간다고 본다(시 73:24). 그러나 불경건한 악인들은 죽을 때 그 영혼이 할례받지 않은 자들과 함께 지옥에 뉘울 것이다.

[20-30절] 그들이 살륙당한 자 중에 엎드러질 것임이여, 그는 칼에 붙인 바 되었은즉 그와 그 모든 무리를 끌지어다. 용사 중에 강한 자가 그를 돕는 자와 함께 음부 가운데서 그에게 말함이여, 할례 받지 않은 자 곧 칼에 살륙당한 자들이 내려와서 가만히 누웠다 하리로다. 거기 앗수르와 그 온 무리가 있음이여, 다 살륙을 당하여 칼에 엎드러진 자라. 그 무덤이 그 사방에 있도다. 그 무덤이 구덩이 깊은 곳에 베풀렸고 그 무리가 그 무덤 사방에 있음이여, 그들은 다 살륙을 당하여 칼에 엎드러진 자 곧 생존 세상에서 사람을 두렵게 하던 자로다. 거기 엘람이 있고 그 모든 무리가 그 무덤 사면에 있음이여, 그들은 다 할례를 받지 못하고 살륙을 당하여 칼에 엎드러져 지하에 내려간 자로다. 그들이 생존 세상에서 두렵게 하였었으나 이제는 구덩이에 내려가는 자와 함께 수치를 당하였도다. 그와 그 모든 무리를 위하여 침상을 살륙당한 자 중에 베풀었고 그 여러 무덤은 사면에 있음이여, 그들은 다 할례를 받지 못하고 칼에 살륙을 당한 자로다. 그들이 생존 세상에서 두렵게 하였었으나 이제는 구덩이에 내려가는 자와 함께 수치를 당하고 살륙당한 자 중에 뉘었도다. 거기 메섹과 두발과 그 모든 무리가 있고 그 여러 무덤은 사면에 있음이여, 그들은 다 할례를 받지 못하고 칼에 살륙을 당한 자로다. 그들이 생존 세상에서 두렵게 하였었으나 그들이 할례받지 못한 자 중에 이미 엎드러진 용사와 함께 누운 것이 마땅치 아니하냐? 이 용사들은 다 병기를 가지고 음부에 내려 자기의 칼을 베개하였으니 그 백골이 자기 죄악을 졌음이여, 생존 세상에서 용사의 두려움이 있던 자로다. 오직 너는 할례받지 못한 자와 일반으로 패망할 것임이여, 칼에 살륙당한 자와 함께 누우리로다. 거기 에돔 곧 그 열왕과 그 모든 방백이 있음이여, 그들이 강성하였었으나 칼에 살륙당한 자와 함께 있겠고 할례받지 못하고 구덩이에 내려간 자와 함께 누우리로다. 거기 살륙당한 자와 함께 내려간 북방 모든 방백과 모든 시돈 사람이 있음이여, 그들이 본래는 강성하였으므로 두렵게 하였었으나 이제는 부끄러움을 품고 할례받지 못하고 칼에 살륙당한 자와 함께 누웠고 구덩이에 내려가는 자와 함께 수욕을 당하였도다.

31-32장에는 ‘음부’라는 말이 5번 사용되었다(31:15, 16, 17; 32:21, 27). ‘음부’라는 말은 ‘지옥(hell)’을 가리킨다고 본다. 악인들은 살아 있었을 때 그 권세로 사람들을 두렵게 했으나, 이제 그 권세와 영광을 다 빼앗겼다. 그들은 그들의 죄 때문에 하나님의 공의로운 형벌로 지옥에 던지웠다. 다른 여러 나라들도 마찬가지이었다.

[31-32절] 바로가 그들을 보고 그 모든 무리로 인하여 위로를 받을 것임이여, 칼에 살륙당한 바로와 그 온 군대가 그러하리로다. 나 주 여호와의 말이로다. 내가 바로로 생존 세상에서 사람을 두렵게 하게10) 하였었으나 이제는 그가 그 모든 무리로 더불어 할례받지 못한 자 곧 칼에 살륙당한 자와 함께 뉘우리로다. 나 주 여호와의 말이로다.

본장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세상의 권세 부귀 영광은 헛되다. 애굽 왕 바로나 기타 열국들의 왕들은 한때 권세와 부귀영광을 누렸지만, 다 멸망하여 지옥에 던지웠다. 우리는 그것의 헛됨을 알자.

둘째로, 우리는 하나님 중심으로만 살고 그의 교훈 안에서 선한 일에 힘쓰자.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신 목적은 우리가 경건하게 살고 선한 일에 열심하는 친 백성이 되게 하려 하심이다(딛 2:11-14).

 

 

33장: 파수꾼의 사명

[1-6절]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하여 가라사대 인자야, 너는 네 민족에게 고하여 이르라. 가령 내가 칼을 한 땅에 임하게 한다 하자. 그 땅 백성이 자기 중에 하나를 택하여 파수꾼을 삼은 그 사람이 칼이 그 땅에 임함을 보고 나팔을 불어 백성에게 경고하되 [누구든지](원문) 나팔 소리를 듣고도 경비를 하지 아니하므로 그 임하는 칼에 제함을 당하면 그 피가 자기의 머리로 돌아갈 것이라. 그가 경비를 하였던들 자기 생명을 보전하였을 것이나 나팔 소리를 듣고도 경비를 하지 아니하였으니 그 피가 자기에게로 돌아가리라. 그러나 파수꾼이 칼이 임함을 보고도 나팔을 불지 아니하여 백성에게 경고치 아니하므로 그 중에 한 사람이 그 임하는 칼에 제함을 당하면 그는 자기 죄악 중에서 제한 바 되려니와 그 죄를 내가 파수꾼의 손에서 찾으리라.

하나님께서는 파수꾼 즉 보초병의 역할과 책임에 대해 말씀하신다. 나라에 전쟁이 일어났을 때 그 나라 백성이 세운 파수꾼이 적군이 쳐들어오는 것을 보고 경고 나팔을 불었으나 누구든지 그 소리를 듣고도 대비하지 않아 죽었다면, 그 책임은 대비하지 않은 그 사람에게 있다. 그러나 만일 파수꾼이 경고의 나팔을 불지 않아서 누가 죽었다면 그는 자기 죄악 때문에 죽은 것이지만 그 책임은 파수꾼에게 있다. 파수꾼은 경고하는 일을 해야 하고 그것을 하지 않으면 그는 그 책임을 지고 죽을 것이다. 백성은 파수꾼의 나팔소리를 듣고 대비해야 하며 그렇지 않으면 자신의 잘못 때문에 죽을 것이다.

[7-9절] 인자야, 내가 너로 이스라엘 족속의 파수꾼을 삼음이 이와 같으니라. 그런즉 너는 내 입의 말을 듣고 나를 대신하여 그들에게 경고할지어다. 가령 내가 악인에게 이르기를 악인아, 너는 정녕 죽으리라 하였다 하자. 네가 그 악인에게 말로 경고하여 그 길에서 떠나게 아니하면 그 악인은 자기 죄악 중에서 죽으려니와 내가 그 피를 네 손에서 찾으리라. 그러나 너는 악인에게 경고하여 돌이켜 그 길에서 떠나라고 하되 그가 돌이켜 그 길에서 떠나지 아니하면 그는 자기 죄악 중에서 죽으려니와 너는 네 생명을 보전하리라.

하나님께서는 에스겔을 이스라엘의 파수꾼으로 세우셨다. 에스겔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그들에게 경고해야 했다. 만일 그가 악인에게 경고하여 그 길에서 떠나게 아니하면 그 악인은 자기 죄악 중에서 죽지만, 하나님께서는 그 피를 에스겔에게서 찾으실 것이다. 그러나 만일 그가 경고를 했으나 그가 그 길에서 떠나지 않으면, 그는 자기 죄악 중에서 죽는 것이며 에스겔의 책임은 없고 그 생명은 보전될 것이다. 이것은 오늘날 일차적으로 설교자들의 직무와 책임을 보이며, 넓게는 먼저 믿은 모든 성도의 직무와 책임을 보인다.

[10-11절] 그런즉 인자야, 너는 이스라엘 족속에게 이르기를 너희가 말하여 이르되 우리의 허물과 죄가 이미 우리에게 있어 우리로 그 중에서 쇠패하게 하니 어찌 능히 살리요 하거니와 주 여호와의 말씀에 나의 삶을 두고 맹세하노니 나는 악인의 죽는 것을 기뻐하지 아니하고 악인이 그 길에서 돌이켜 떠나서 사는 것을 기뻐하노라. 이스라엘 족속아, 돌이키고 돌이키라. 너희 악한 길에서 떠나라 어찌 죽고자 하느냐 하셨다 하라.

하나님께서는 악인의 죽는 것을 기뻐하지 아니하시고 악인이 그 길에서 돌이켜 떠나서 사는 것을 기뻐하신다. 그는 이스라엘 족속에게 “돌이키고 돌이키라. 너희 악한 길에서 떠나라”고 말씀하신다.

[12-16절] 인자야, 너는 네 민족에게 이르기를 의인이 범죄하는 날에는 그 의가 구원치 못할 것이요 악인이 돌이켜 그 악에서 떠나는 날에는 그 악이 그를 엎드러뜨리지 못할 것인즉 의인이 범죄하는 날에는 그 의로 인하여는 살지 못하리라. 가령 내가 의인에게 말하기를 너는 살리라 하였다 하자. 그가 그 의를 스스로 믿고 죄악을 행하면 그 모든 의로운 행위가 하나도 기억되지 아니하리니 그가 그 지은 죄악 중 곧 그 중에서 죽으리라. 가령 내가 악인에게 말하기를 너는 죽으리라 하였다 하자. 그가 돌이켜 자기의 죄에서 떠나서 법과 의대로 행하여 전당물을 도로 주며 억탈물을 돌려 보내고 생명의 율례를 준행하여 다시는 죄악을 짓지 아니하면 그가 정녕 살고 죽지 않을지라. 그의 본래 범한 모든 죄가 기억되지 아니하리니 그가 정녕 살리라. 이는 법과 의를 행하였음이니라 하라.

하나님의 심판은 공정하시다. 의인이 범죄하면 그 의는 그를 구원치 못할 것이며, 악인이 돌이켜 그 악에서 떠나면 그 악이 그를 멸망케 하지 못할 것이다. 만일 의인이 자기의 의만 믿고 죄악을 행하면 그는 그 지은 죄악 중에서 죽을 것이다. 또 만일 악인이 돌이켜 자기의 죄악에서 떠나 하나님의 법을 행하여 전당물을 도로 주며 강탈물을 돌려주고 다시 죄를 짓지 않으면 정녕 살 것이다. 신약시대에도 중생한 성도는 죄 가운데 계속 살면 구원받지 못할 것이라는 경고를 받고 있다. 로마서 8:13, “너희가 육신대로 살면 반드시 죽을 것이로되 영[성령]으로써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리니.”

[17-20절] 그래도 네 민족은 말하기를 주의 길이 공평치 않다 하는도다. 그러나 실상은 그들의 길이 공평치 아니하니라. 만일 의인이 돌이켜 그 의에서 떠나 죄악을 지으면 그가 그 가운데서 죽을 것이고 만일 악인이 돌이켜 그 악에서 떠나 법과 의대로 행하면 그가 그로 인하여 살리라. 그러나 너희가 이르기를 주의 길이 공평치 않다 하는도다. 이스라엘 족속아, 내가 너희의 각기 행한 대로 심판하리라 하시니라.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의 길이 공평치 않다고 말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의인이 돌이켜 그 의에서 떠나 죄를 지으면 그는 그 죄 가운데서 죽을 것이며, 악인이 돌이켜 그 악에서 떠나 법과 의대로 행하면 그는 그로 인해 살 것이다. 이것이 하나님의 공평함이다.

[21-24절] 우리가 사로잡힌 지 12년 10월 5일에 예루살렘에서부터 도망하여 온 자가 내게 나아와 말하기를 그 성이 함락되었다 하였는데 그 도망한 자가 내게 나아오기 전날 저녁에 여호와의 손이 내게 임하여 내 입을 여시더니 다음 아침 그 사람이 내게 나아올 임시에 내 입이 열리기로 내가 다시는 잠잠하지 아니하였노라.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하여 가라사대 인자야, 이 이스라엘 황무한 땅에 거한 자들이 말하여 이르기를 아브라함은 오직 한 사람이라도 이 땅을 기업으로 얻었나니 우리가 중다한즉 더욱 이 땅으로 우리에게 기업으로 주신 것이 되느니라 하는도다.

제12년 즉 주전 586년경 예루살렘 성은 함락되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은 아브라함은 한 사람이라도 이 땅을 기업으로 얻었으니 우리의 수가 많은즉 더욱 이 땅이 우리의 기업이 되리라고 말했다.

[25-29절] 그러므로 너는 그들에게 이르기를 주 여호와의 말씀에 너희가 피 있는 고기를 먹으며 너희 우상들에게 눈을 들며 피를 흘리니 그 땅이 너희의 기업이 될까보냐? 너희가 칼을 믿어 가증한 일을 행하며 각기 이웃의 아내를 더럽히니 그 땅이 너희의 기업이 될까보냐 하고 너는 그들에게 또 이르기를 주 여호와의 말씀에 내가 나의 삶을 두고 맹세하노니 황무지에 있는 자는 칼에 엎드러뜨리고 들에 있는 자는 들짐승에게 붙여 먹게 하고 산성과 굴에 있는 자는 온역에 죽게 하리라. 내가 그 땅으로 황무지와 놀라움이 되게 하고 그 권능의 교만을 그치게 하리니 이스라엘의 산들이 황무하여 지나갈 사람이 없으리라. 내가 그들의 행한 모든 가증한 일로 인하여 그 땅으로 황무지와 놀라움이 되게 하면 그때에 그들이 나를 여호와인 줄 알리라 하라.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사회에 십계명을 범하는 우상숭배와 살인과 간음 등의 죄악이 있는데, 어떻게 그 나라와 성읍이 보존되겠는가고 물으신다. 이스라엘 백성은 십계명을 어기는 각종 죄악들을 범했을 뿐만 아니라, 마음의 교만까지 가지고 있었다. 그러므로 그들은 멸망하여 황폐케 되며 그 땅에는 지나다니는 사람들이 없게 될 것이다. 또 그때에 그들은 여호와 하나님을 알게 될 것이다.

[30-33절] 인자야, 네 민족이 담 곁에서와 집 문에서 너를 의논하며 각각 그 형제로 더불어 말하여 이르기를 자, 가서 여호와께로부터 무슨 말씀이 나오는가 들어보자 하고 백성이 모이는 것같이 네게 나아오며 내 백성처럼 네 앞에 앉아서 네 말을 들으나 그대로 행치 아니하니 이는 그 입으로는 사랑을 나타내어도 마음은 이욕을 좇음이라. 그들이 너를 음악을 잘하며 고운 음성으로 사랑의 노래를 하는 자같이 여겼나니 네 말을 듣고도 준행치 아니하거니와 그 말이 응하리니 응할 때에는 그들이 한 선지자가 자기 가운데 있었던 줄을 알리라.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 말씀을 듣기를 사모하여 모이는 자처럼 모이며 듣기도 하지만 마음은 이욕을 좇으며 에스겔을 고운 음성으로 사랑의 노래를 하는 자로 간주하며 그들이 들은 말씀을 행하지 않는다고 지적하신다. ‘이욕’이라는 원어(베차)는 ‘폭력으로 얻은 이익, 불의한 이익’이라는 뜻이다(BDB). 그러나 그들은 에스겔이 전한 하나님의 말씀이 그대로 이루어질 때 그들 중에 한 선지자가 있었음을 알게 될 것이다.

본장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파수꾼은 파수꾼의 일을 해야 한다. 그것은 경고의 나팔을 부는 일이다. 그러므로 오늘날 목사는 성경을 열심히 연구하고 하나님의 뜻을 바르게 파악하여 가감 없이 전달해야 한다. 그는 경고의 나팔을 바르게 불어야 한다. 모든 성도들도 하나님의 뜻을 바르게 이해하고 기회 있는 대로 이웃에게 하나님과 구주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며 모든 악에서 떠나라고 말해야 한다.

둘째로, 하나님의 뜻은 사람의 회개이다. 사람들은 파수꾼들의 나팔 소리를 듣고 모든 죄악된 길에서 돌이키고 떠나야 한다. 경고의 소리에 귀를 막고 있다면, 그는 하나님의 심판을 받을 때 변명하거나 핑계할 수 없을 것이다. 그들은 우상숭배와 살인과 간음과 교만한 마음과 불의한 이익을 구하는 마음을 버려야 한다. 하나님의 뜻은 거룩함이다. 우리는 모든 악을 버려야 하고 모든 더러움에서 떠나야 한다.

셋째로, 우리는 오직 성경에 계시된 하나님의 계명과 교훈대로 바르고 선하고 진실하게 행해야 한다. 그것이 하나님의 뜻이며 구원받은 성도의 길이며 평안과 영생의 길이다. 로마서 2:7, 10, “참고 선을 행하여 영광과 존귀와 썩지 아니함을 구하는 자에게는 영생으로 하시고,” “선을 행하는 각 사람에게는 영광과 존귀와 평강이 있으리니.”

 

 

34장: 부패한 목자들

[1-6절]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하여 가라사대 인자야, 너는 이스라엘 목자들을 쳐서 예언하라. 그들 곧 목자들에게 예언하여 이르기를 주 여호와의 말씀에 자기만 먹이는 이스라엘 목자들은 화 있을진저. 목자들이 양의 무리를 먹이는 것이 마땅치 아니하냐? 너희가 살진 양을 잡아 그 기름을 먹으며 그 털을 입되 양의 무리는 먹이지 아니하는도다. 너희가 그 연약한 자를 강하게 아니하며 병든 자를 고치지 아니하며 상한 자를 싸매어 주지 아니하며 쫓긴 자를 돌아오게 아니하며 잃어버린 자를 찾지 아니하고 다만 강포로 그것들을 다스렸도다. 목자가 없으므로 그것들이 흩어지며 흩어져서 모든 들짐승의 밥이 되었도다. 내 양의 무리가 모든 산과 높은 멧부리에마다 유리되었고 내 양의 무리가 온 지면에 흩어졌으되 찾고 찾는 자가 없었도다.

하나님께서는 부패한 목자들에게 화를 선언하신다. 그들은 양무리를 먹이지 않고 자기 자신만 먹인 자들이다. 그들은 살진 양을 잡아 그 기름을 먹으며 그 털을 입되 양무리는 먹이지 않았다. 그들은 연약한 자를 강하게 아니하며 병든 자를 고치지 아니하며 상한 자를 싸매어 주지 아니하며 쫓긴 자를 돌아오게 아니하며 잃어버린 자를 찾지 아니하였고, 다만 강포로 그것들을 다스렸다. ‘강포’라는 원어는 ‘폭력’(코즈카)과 ‘엄함 혹은 가혹함’(페레크)이라는 뜻이다. 그 결과, 양들은 목자가 없으므로 흩어지며 흩어져서 모든 들짐승의 밥이 되었다. 양들은 온 땅에 흩어져 모든 산과 높은 언덕에서 방황하였고 찾는 이가 없었다.

[7-12절] 그러므로 목자들아, 여호와의 말씀을 들을지어다. 주 여호와의 말씀에 내가 나의 삶을 두고 맹세하노라. 내 양의 무리가 노략거리가 되고 모든 들짐승의 밥이 된 것은 목자가 없음이라. 내 목자들이 내 양을 찾지 아니하고 자기만 먹이고 내 양의 무리를 먹이지 아니하였도다. 그러므로 너희 목자들아, 여호와의 말씀을 들을지어다. 주 여호와의 말씀에 내가 목자들을 대적하여 내 양의 무리를 그들의 손에서 찾으리니 목자들이 양을 먹이지 못할 뿐 아니라 그들이 다시는 자기를 먹이지 못할지라. 내가 내 양을 그들의 입에서 건져내어서 다시는 그 식물이 되지 않게 하리라. 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나 곧 내가 내 양을 찾고 찾되 목자가 양 가운데 있는 날에 양이 흩어졌으면 그 떼를 찾는 것같이 내가 내 양을 찾아서 흐리고 캄캄한 날에 그 흩어진 모든 곳에서 그것들을 건져낼지라.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맹세하며 말씀하셨다. “내 목자들이 내 양을 찾지 아니하고 자기만 먹이고 내 양의 무리를 먹이지 아니하였도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을 15번이나 ‘내 양,’ ‘나의 양떼,’ ‘내 양의 무리,’ ‘내 초장의 양’ 등으로 부르셨다(6, 6, 8, 8, 8, 10, 10, 11, 12, 15, 17, 19, 22, 31, 31절).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께서 주인이신 하나님의 양떼이다. 하나님께서는 그 양들을 그 악한 목자들의 손에서 찾으실 것이다. 그들은 더 이상 양들을 먹이지 못할 것이며 자기 자신도 먹이지 못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양들을 그들의 입에서 건져내셔서 다시는 그들의 식물이 되지 않게 하실 것이다. 목자가 흩어진 양을 찾듯이, 하나님께서는 그의 양들을 흐리고 캄캄한 날에 그 흩어진 모든 곳에서 찾아 건져내실 것이다.

[13-16절] 내가 그것들을 만민 중에서 끌어내며 열방 중에서 모아 그 본토로 데리고 가서 이스라엘 산 위에와 시냇가에와 그 땅 모든 거주지에서 먹이되 좋은 꼴로  먹이고 그 우리를 이스라엘 높은 산 위에 두리니 그것들이 거기서 좋은 우리에 누워 있으며 이스라엘 산 위에서 살진 꼴을 먹으리라. 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가 친히 내 양의 목자가 되어 그것들로 누워 있게 할지라. 그 잃어버린 자를 내가 찾으며 쫓긴 자를 내가 돌아오게 하며 상한 자를 내가 싸매어 주며 병든 자를 내가 강하게 하려니와 살찐 자와 강한 자는 내가 멸하고 공의대로 그것들을 먹이리라.

하나님께서는 그것들을 만민 중에서 끌어내며 열방 중에서 모아 그 본토로 데리고 가서 이스라엘 산 위에와 시냇가에와 그 땅 모든 거주지에서 좋은 꼴로  먹이실 것이다. 하나님의 양들은 좋은 우리에 누울 것이며 좋은 꼴, 살진 꼴을 먹을 것이다. ‘꼴’이라는 원어(미르에)는 ‘목초’ 혹은 ‘초장’이라는 뜻이다. 하나님께서는 친히 양의 목자가 되셔서 그것들로 누워 있게 하실 것이다. 참으로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선한 목자이시다(시 23:1). 또 그는 잃어버린 자를 친히 찾으시며 쫓긴 자를 돌아오게 하시며 상한 자를 싸매어 주시며 병든 자를 강하게 하실 것이다. 그러나 반면에 그는 살찐 자와 강한 자를 멸하시고 공의대로 다스리실 것이다.

[17-22절] 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나의 양떼 너희여, 내가 양과 양의 사이와 숫양과 숫염소의 사이에 심판하노라. 너희가 좋은 꼴 먹은 것을 작은 일로 여기느냐? 어찌하여 남은 꼴을 발로 밟았느냐? 너희가 맑은 물 마신 것을 작은 일로 여기느냐? 어찌하여 남은 물을 발로 더럽혔느냐? 나의 양은 너희 발로 밟은 것을 먹으며 너희 발로 더럽힌 것을 마시는도다 하셨느니라. 그러므로 주 여호와께서 그들에게 대하여 말씀하시기를 나 곧 내가 살찐 양과 파리한 양 사이에 심판하리라. 너희가 옆구리와 어깨로 밀뜨리고 모든 병든 자를 뿔로 받아 무리로 밖으로 흩어지게 하는도다. 그러므로 내가 내 양떼를 구원하여 그들로 다시는 노략거리가 되지 않게 하고 양과 양 사이에 심판하리라.

하나님께서는 양들에 대해서도 심판하실 것이다. 그는 양과 양의 사이와 숫양과 숫염소의 사이에 심판하실 것이다. 살찐 양들은 좋은 꼴과 맑은 물, 즉 참된 선지자들을 통해 선포되는 하나님의 순수한 말씀의 교훈을 멸시하였다. 그들은 남은 꼴을 발로 밟고 남은 물을 발로 더럽혔고 다른 양들은 그 꼴과 그 물을 마셨다. 또 살찐 양들은 병들고 파리해진 양들을 밀뜨려 흩어지게 하였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살찐 양과 파리한 양 사이에 심판하실 것이다. 또 그는 그의 양떼를 구원하여 그들로 다시는 노략거리가 되지 않게 하실 것이다.

[23-24절] 내가 한 목자를 그들의 위에 세워 먹이게 하리니 그는 내 종 다윗이라. 그가 그들을 먹이고 그들의 목자가 될지라. 나 여호와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내 종 다윗은 그들 중에 왕이 되리라. 나 여호와의 말이니라.

하나님께서는 장차 회복된 이스라엘 나라에 다윗이라는 인물이 선한 목자로 나타나게 하실 것이다. 그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예수 그리스도는 선한 목자로 이 세상에 오셨다(요 10장).

[25-31절] 내가 또 그들과 화평의 언약을 세우고 악한 짐승을 그 땅에서 그치게 하리니 그들이 빈들에 평안히 거하며 수풀 가운데서 잘지라. 내가 그들에게 복을 내리며 내 산 사면 모든 곳도 복되게 하여 때를 따라 비를 내리되 복된 장마비를 내리리라. 그리한즉 밭에 나무가 열매를 맺으며 땅이 그 소산을 내리니 그들이 그 땅에서 평안할지라. 내가 그들의 멍엣목을 꺾고 그들로 종을 삼은 자의 손에서 그들을 건져낸 후에 그들이 나를 여호와인 줄 알겠고 그들이 다시는 이방의 노략거리가 되지 아니하며 땅의 짐승의 삼킨 바 되지 아니하고 평안히 거하리니 놀랠 사람이 없으리라. 내가 그들을 위하여 유명한 종식할 땅을 일으키리니 그들이 다시는 그 땅에서 기근으로 멸망하지 아니할지며 다시는 열국의 수치를 받지 아니할지라. 그들이 나 여호와 그들의 하나님이 그들과 함께 있는 줄을 알며 그들 곧 이스라엘 족속이 내 백성인 줄 알리라. 나 주 여호와의 말이라. 내 양 곧 내 초장의 양 너희는 사람이요 나는 너희 하나님이라. 나 주 여호와의 말이니라.

하나님께서는 또 회복된 그의 양들과 화평의 언약을 세우실 것이다. ‘화평의 언약’은 하나님과의 화목뿐 아니라, 하나님의 양들에게 심신의 평안과 환경적 평안까지 주시는 언약일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악한 짐승을 그 땅에서 그치게 하실 것이다. 그들은 그 땅에 평안히 거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복을 내리실 것이다. 그 땅의 모든 곳은 복을 받을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때를 따라 복된 장마비를 내리실 것이다. 밭은 나무 열매를 맺으며 땅은 그 소산을 낼 것이다. 그들은 그 땅에서 평안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또 그들의 멍엣목을 꺾고 그들에게 자유를 주실 것이다. 그것은 단지 이방인들의 압제로부터의 해방일 뿐 아니라, 죄와 사탄과 죽음의 세력으로부터의 자유일 것이다. 하나님의 양들은 그 땅에서 평안히 거할 것이다. 또 그 땅은 다시 기근이 없을 것이며 이방인들에게 수치를 당치 않을 것이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그들의 하나님이시며 그들이 하나님의 백성인 것을 알게 될 것이다. 이것은 창조의 본래 상태이며 구원의 목표이다(계 21:7).

본장은 몇 가지 교훈을 준다. 첫째로, 우리는 하나님과 주 예수께서 우리의 선한 목자 되심을 알자. 15절, “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가 친히 내 양의 목자가 되어 그것들로 누워 있게 할지라.” 하나님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의 선한 목자이시다.

둘째로, 신약교회의 직분자들은 좋은 목자가 되어야 한다. 본장의 목자들에 대한 교훈은 오늘날 목사와 장로들, 권찰들과 주일학교 교사들에게 적용될 수 있다. 우리는 다 성도들을 위하는 자가 되어야 한다.

셋째로, 우리는 모두 좋은 양이 되어야 한다. 18절, “너희가 좋은 꼴 먹은 것을 작은 일로 여기느냐? 어찌하여 남은 꼴을 발로 밟았느냐? 너희가 맑은 물 마신 것을 작은 일로 여기느냐? 어찌하여 남은 물을 발로 더럽혔느냐?” 하나님의 좋은 양들은 교만치 않고 시기하고 다투지 않고 겸손히 서로를 존중하며 사랑한다. 요한복음 10:27, “내 양은 내 음성을 들으며 나는 저희를 알며 저희는 나를 따르느니라.”

넷째로, 우리는 참 교회, 복된 교회, 평안이 있는 교회를 건립해야 한다. 참된 교회는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 속에서, 즉 하나님을 우리의 하나님으로 모시고 섬기며 우리가 그의 백성된 것을 알고 그 의무를 다하는 데서 세워질 것이다. 우리는 참된 교회를 세워 나가야 한다.

다섯째로, 우리는 복된 세계인 천국을 소망하며 사모하자. 지상에는 완전한 교회가 없다. 그러나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으로 이루어질 영광스런 천국은 참으로 복되다. 우리는 그 세계를 사모하자.

 

 

35장: 세일산에 대한 경고

[1-4절] 여호와의 말씀이 또 내게 임하여 가라사대 인자야, 네 얼굴을 세일산으로 향하고 그를 쳐서 예언하여 이르기를 주 여호와의 말씀에 세일산아, 내가 너를 대적하여 내 손을 네 위에 펴서 너로 황무지와 놀라움이 되게 할지라. 내가 네 성읍들을 무너뜨리며 너로 황무케 하리니 네가 나를 여호와인 줄 알리라.

본장은 세일산에 대한 경고이다. 세일산은 에돔 족속이 거처하는 곳으로서 에돔 족속을 가리킨다. 주 여호와께서는 세일산을 대적하시고 그의 손을 그 위에 펴셔서 그로 황무지와 놀라움이 되게 하실 것이다. ‘놀라움’이라는 원어(메솸마)는 ‘황폐한 곳’이라는 뜻이다. ‘무너뜨린다’는 원어(코르바)도 ‘황폐케 한다’는 뜻이다. 에돔 땅의 황폐함은 하나님께서 내리시는 심판이다. 그 결과, 에돔 족속은 여호와 하나님을 알게 될 것이다.

[5-6절] 네가 옛날부터 한을 품고 이스라엘 족속의 환난 때 곧 죄악의 끝 때에 칼의 권능에 그들을 붙였도다. 그러므로 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가 나의 삶을 두고 맹세하노니 내가 너로 피를 만나게 한즉 피가 너를 따르리라. 네가 피를 미워하지 아니하였은즉 피가 너를 따르리라.

에돔 족속이 하나님의 심판을 받게 된 것은 그들의 죄 때문이다. 인간은 죄 때문에 복된 낙원의 삶을 빼앗겼고 고생과 파멸의 길로 갔다. 에돔의 죄는 무엇이었는가? 에돔의 죄는 먼 친척 나라인 이스라엘 족속에 대해 옛날부터 적개심을 품고 그들이 죄 때문에 환난을 당할 때 그들을 칼로 죽인 것이었다. 그들에게는 형제 사랑이 없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그들이 사람 죽이는 것을 싫어하지 않고 형제 나라인 이스라엘 족속을 죽여 피를 흘렸은즉 그들이 피를 만나며 피가 그들을 따를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피의 보복인 셈이다.

[7-9절] 내가 세일산으로 놀라움과 황무지가 되게 하여 그 위에 왕래하는 자를 다 끊을지라. 내가 그 살륙당한 자로 그 여러 산에 채우되 칼에 살륙당한 자로 네 여러 멧부리에, 골짜기에, 모든 시내에 엎드러지게 하고 너로 영원히 황무케 하여 네 성읍들에 다시는 거하는 자가 없게 하리니 너희가 나를 여호와인 줄 알리라.

하나님께서는 세일산의 언덕들이나 골짜기들이나 모든 시내들이 칼에 죽은 자들로 가득하게 하실 것이다. 세일산은 황폐한 곳이 될 것이며 그리로 왕래하는 사람이 끊어질 것이며 거기에 거하는 사람이 없을 것이다. 에돔은 영원한 황무지가 될 것이다. 그러나 에돔 사람들은 그런 일을 볼 때에 여호와 하나님을 알게 될 것이다.

[10-11절] 네가 말하기를 이 두 민족과 이 두 땅은 다 내게로 돌아와서 내 기업이 되리라 하였도다. 그러나 나 여호와가 거기 있었느니라. 그러므로 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가 나의 삶을 두고 맹세하노니 네가 그들을 미워하여 노하며 질투한 대로 내가 네게 행하여 너를 국문할 때에 그들로 나를 알게 하리라.

세일산 거민들은 ‘이 두 민족과 이 두 땅’ 즉 이스라엘과 유다가 다 그들에게로 돌아와서 그들의 기업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10절에 “내게로 돌아와서 내 기업이 되리라”는 말은 “나의 것이 되겠고 우리가 그것을 소유하리라”는 뜻이다. 즉 그들은 이스라엘과 유다에 대해 부당한 소유권을 주장한 것이다. 이스라엘과 유다는 하나님의 특별한 소유임에도 불구하고 에돔 족속은 하나님을 무시하고 잘못된 욕심을 품었던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들이 그런 말을 할 때 “나 여호와가 거기 있었다”고 말씀하신다. 하나님께서 그들의 그 부당한 주장을 들으셨고 아신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주 하나님께서는 에돔이 이스라엘을 미워하여 노하며 질투한 대로 그에게 행하실 것이다. 또 그때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을 알게 될 것이다.

[12-15절] 네가 이스라엘 산들을 가리켜 말하기를 저 산들이 황무하였으니 우리에게 붙이워서 삼키게 되었다 하여 욕하는 모든 말을 나 여호와가 들은 줄을 네가 알리로다. 너희가 나를 대적하여 입으로 자랑하며 나를 대적하여 여러 가지로 말한 것을 내가 들었노라. 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온 땅이 즐거워할 때에 내가 너를 황무케 하되 이스라엘 족속의 기업이 황무함을 인하여 네가 즐거워한 것같이 내가 너로 황무케 하리라. 세일산아, 너와 에돔 온 땅이 황무하리니 무리가 나를 여호와인 줄 알리라 하셨다 하라.

하나님께서는 에돔 족속이 이스라엘을 향해 모욕적인 말을 한 것을 들으셨다. 그들의 모욕적인 말은 결국 하나님을 대적하여 말한 것이다. 하나님의 종들과 백성을 부당하게 비방하고 욕하는 말은 곧 하나님을 욕하고 비방하는 말이 된다. 하나님께서는 그것을 불쾌하게 여기시고 보응하셔서 에돔 땅을 황무하게 하실 것이다.

본장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우리는 하나님을 알자. 하나님께서는 세상의 창조자시요 주권적 섭리자이시다. 그는 온 세상을 홀로 통치하신다. 역사는 하나님의 손안에 있다. 우리는 하나님을 알고 그 앞에 겸손히 엎드리자. 그를 높이며 모든 일을 그에게 맡기자.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것은 가장 어리석은 일이며 가장 무지한 일이다.

둘째로, 우리는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를 섬기자. 인생의 기본적인 의무는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를 섬기는 일이다. 하나님을 알고 그를 경외하는 것이 지혜와 지식의 시작이다. 잠언 1:7,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식의 근본이어늘 미련한 자는 지혜와 훈계를 멸시하느니라.”

셋째로, 우리는 모든 죄를 버리고 형제를 사랑하며 이웃을 사랑하며 선을 행하자.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은 악을 버리는 것이다(잠 8:13). 우리는 이웃을 해치는 모든 종류의 악을 버려야 한다. 우리는 살인하지 말고 남을 미워하지 말고 비방하지 말고 간음하지 말고 도적질하지 말아야 한다. 우리는 남의 생명과 정조와 재산과 명예를 존중해야 한다.

 

 

 36장: 이스라엘의 회복

1-21절, 이스라엘 산들의 회복

[1-4절] 인자야, 너는 이스라엘 산들에게 예언하여 이르기를 이스라엘 산들아, 여호와의 말씀을 들으라. 주 여호와의 말씀에 대적이 네게 대하여 말하기를 하하 옛적 높은 곳이 우리의 기업이 되었도다 하였느니라. 그러므로 너는 예언하여 이르기를 주 여호와의 말씀에 그들이 너희를 황무케 하고 너희 사방을 삼켜서 너희로 남은 이방인의 기업이 되게 하여 사람의 말거리와 백성의 비방거리가 되게 하였도다. 그러므로 이스라엘 산들아, 주 여호와의 말씀을 들을지어다. 주 여호와께서 산들과 멧부리들과 시내들과 골짜기들과 황무한 사막들과 사면에 남아 있는 이방인의 노략거리와 조롱거리가 된 버린 성읍들에게 말씀하셨느니라.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산들에 대해 예언케 하셨다. 그것은 이방의 대적들이 이스라엘 산들을 황무케 만들고 남은 이방인의 기업이 되게 하고 그것을 조롱거리로 삼았음에 대해 말씀하신 것이다.

[5-7절] 주 여호와의 말씀에 내가 진실로 내 맹렬한 투기로 남아 있는 이방인과 에돔 온 땅을 쳐서 말하였노니 이는 그들이 심히 즐거워하는 마음과 멸시하는 심령으로 내 땅을 빼앗아 노략하여 자기 소유를 삼았음이니라. 그러므로 너는 이스라엘 땅을 대하여 예언하되 그 산들과 멧부리들과 시내들과 골짜기들을 대하여 이르기를 주 여호와의 말씀에 내가 내 투기와 내 분노로 말하였나니 이는 너희가 이방의 수욕을 당하였음이니라. 그러므로 주 여호와의 말씀에 내가 맹세하였은즉 너희 사면에 있는 이방인이 자기 수욕을 정녕 당하리라.

하나님께서는 그의 맹렬한 질투로 남아 있는 이방인과 에돔 온 땅을 쳐서 말씀하셨다. 왜냐하면 그들이 심히 즐거워하는 마음과 멸시하는 심령으로 하나님의 땅 곧 이스라엘 산들을 빼앗으며 노략했고 자기 소유로 삼았기 때문이었다. 하나님께서는 분노와 질투로 말씀하셨다. 그들의 사면에 있는 이방인들은 수욕을 당할 것이다.

[8-15절] 그러나 너희 이스라엘 산들아, 너희는 가지를 내고 내 백성 이스라엘을 위하여 과실을 맺으리니 그들의 올 때가 가까이 이르렀음이니라. 내가 돌이켜 너희와 함께하리니 사람이 너희를 갈고 심을 것이며 내가 또 사람을 너희 위에 많게 하리니 이들은 이스라엘 온 족속이라. 그들로 성읍들에 거하게 하며 빈 땅에 건축하게 하리라. 내가 너희 위에 사람과 짐승으로 많게 하되 생육이 중다하고 번성하게 할 것이라. 너희 전 지위대로 사람이 거하게 하여 너희를 처음보다 낫게 대접하리니 너희가 나를 여호와인 줄 알리라. 내가 사람으로 너희 위에 행하게 하리니 그들은 내 백성 이스라엘이라. 그들은 너를 얻고 너는 그 기업이 되어 다시는 그들로 자식들을 잃어버리지 않게 하리라. 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그들이 너희에게 이르기를 너는 사람을 삼키는 자요 네 나라 백성을 제한 자라 하거니와 네가 다시는 사람을 삼키지 아니하며 다시는 네 나라 백성을 제하지 아니하리라. 나 주 여호와의 말이니라. 내가 또 너로 열국의 수욕을 듣지 않게 하며 만민의 비방을 다시 받지 않게 하며 네 나라 백성을 다시 넘어뜨리지 않게 하리라. 나 주 여호와의 말이니라 하셨다 하라.

이스라엘 산들은 가지를 내고 하나님의 백성 이스라엘을 위하여 과실을 맺을 것이다. 그들은 곧 다시 돌아올 것이다. 9절의 “내가 돌이켜 너희와 함께하리니”라는 원문(히네니 알레켐 우파니시 알레켐)은, “보라, 내가 너희를 향하며 내가 너희를 향하리라”라고 번역하는 것이 더 적절할 것이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산들을 향하신다는 것은 사랑과 관심을 가지고 향하신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그는 그 산을 갈고 심을 것이다. 그래서 사람과 가축이 많게 될 것이다. 하나님의 백성이 그 산들 위에 거하게 될 것이다. 그 땅은 다시는 사람을 삼키는 땅이 되지 않을 것이다.

[16-21절] 여호와의 말씀이 또 내게 임하여 가라사대 인자야, 이스라엘 족속이 그 고토에 거할 때에 그 행위로 그 땅을 더럽혔나니 나 보기에 그 소위가 월경 중에 있는 여인의 부정함과 같았느니라. 그들이 땅 위에 피를 쏟았으며 그 우상들로 더럽혔으므로 내가 분노를 그들의 위에 쏟아 그들을 그 행위대로 심판하여 각국에 흩으며 열방에 헤쳤더니 그들의 이른 바 그 열국에서 내 거룩한 이름이 그들로 인하여 더러워졌나니 곧 사람들이 그들을 가리켜 이르기를 이들은 여호와의 백성이라도 여호와의 땅에서 떠난 자라 하였음이니라. 그러나 이스라엘 족속이 들어간 그 열국에서 더럽힌 내 거룩한 이름을 내가 아꼈노라.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이 이전에 그 땅에 거했을 때 어떻게 악하게 행했는지 말씀하신다. 그는 그들이 그 행위로 그 땅을 더럽혔고 그 땅이 월경하는 여인같이 부정하였다고 말씀하신다. 그들은 그 땅에서 피를 흘렸고 우상들을 섬겼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분노하셨으며 그들을 심판하셨고 그들을 각 국에 흩으셨다. 그때 하나님의 거룩한 이름은 그들로 인해 더럽힘을 받았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들이 더럽힌 그의 거룩한 이름을 아끼셨다.

본문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산들을 회복시키실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그 백성을 위해 질투하시며 분노하심으로 이방인들을 징벌하시고 이스라엘 백성이 그 산으로 다시 돌아오게 하실 것이다. 또 그는 이스라엘의 범죄와 패망으로 더럽혀진 그의 거룩한 이름을 아끼실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께서 주셨던 본래의 땅으로 돌아와 거기 거하여 농사를 짓고 성을 건립하며 번성할 것이며 다시는 그 땅을 이방인들에게 빼앗기지 않을 것이다. 이스라엘 산들은 이전과 같이 사람들이 거하는 곳으로 회복될 것이다.

둘째로, 본문은 특히 죄가 그 땅을 더럽혔었음을 증거한다. 이스라엘이 무죄한 피를 흘리고 우상들을 섬긴 그 죄는 그 땅을 더럽혔었다. 사람의 죄는 그의 몸을 더럽히고 그의 집을 더럽히며 그가 거하는 땅을 더럽히고, 무엇보다 특히 하나님의 이름을 더럽힌다. 죄는 교회를 더럽히고 사회와 국가와 세상을 더럽힌다. 그러므로 우리는 모든 더러운 죄들을 미워하고 멀리하자. 구원받은 성도들은 범죄치 말자.

 

22-38절, 이스라엘 백성의 회복

[22-23절] 그러므로 너는 이스라엘 족속에게 이르기를 주 여호와의 말씀에 이스라엘 족속아, 내가 이렇게 행함은 너희를 위함[너희 때문]이 아니요 너희가 들어간 그 열국에서 더럽힌 나의 거룩한 이름을 위함[이름 때문]이라. 열국 가운데서 더럽힘을 받은 이름 곧 너희가 그들 중에서 더럽힌 나의 큰 이름을 내가 거룩하게 할지라. 내가 그들의 목전에서 너희로 인하여 나의 거룩함을 나타내리니 열국 사람이 나를 여호와인 줄 알리라. 나 주 여호와의 말이니라.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의 돌아옴과 회복이 그들 때문이라기보다 하나님 자신의 이름 때문이라고 말씀하신다. 그는 그들이 이방인들 중에서 더럽힌 그의 크신 이름을 거룩하게 하기를 원하셨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구원하시는 궁극적 목적이 그의 이름을 거룩하게 하시며 그의 영광을 드러나게 하심임을 증거하셨다.

[24-32절] 내가 너희를 열국 중에서 취하여 내고 열국 중에서 모아 데리고 고토에 들어가서 맑은 물로 너희에게 뿌려서 너희로 정결케 하되 곧 너희 모든 더러운 것에서와 모든 우상을 섬김에서 너희를 정결케 할 것이며 또 새 영을 너희 속에 두고 새 마음을 너희에게 주되 너희 육신에서 굳은 마음을 제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줄 것이며 또 내 신을 너희 속에 두어 너희로 내 율례를 행하게 하리니 너희가 내 규례를 지켜 행할지라. 내가 너희 열조에게 준 땅에 너희가 거하여 내 백성이 되고 나는 너희 하나님이 되리라. 내가 너희를 모든 더러운 데서 구원하고 곡식으로 풍성하게 하여 기근이 너희에게 임하지 아니하게 할 것이며 또 나무의 실과와 밭의 소산을 풍성케 하여 너희로 다시는 기근의 욕을 열국에게 받지 않게 하리니 그때에 너희가 너희 악한 길과 너희 불선한 행위를 기억하고 너희 모든 죄악과 가증한 일을 인하여 스스로 밉게 보리라. 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가 이렇게 행함은 너희를 위함[너희 때문]이 아닌 줄을 너희가 알리라. 이스라엘 족속아, 너희 행위를 인하여 부끄러워하고 한탄할지어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회복시키시는 내용은 무엇인가? 본문은 그것을 자세하게 언급한다. 첫째로,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을 흩어진 세계 열국으로부터 고토(故土)로, 고향으로 모으시고 데려오실 것이다. 둘째로, 그는 그들을 모든 더러운 죄악에서 정결케 하실 것이다. 셋째로, 그는 그들에게 새 마음과 새 영을 주실 것이다(원문). 그는 그들에게서 굳은 마음[돌의 마음](레브 하에벤)을 제하시고 부드러운 마음[고기의 마음](레브 바사르)을 주실 것이다. 넷째로, 그는 그의 영 곧 성령을 그들 속에 두실 것이며 그래서 그들이 하나님의 율례와 규례를 지키게 하실 것이다. 다섯째로, 그는 그들이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자신이 그들의 하나님이 되게 하실 것이다. 여섯째로, 그는 그 땅에 곡식이 풍성하게 하시며 다시는 기근이 없게 하실 것이다. 그때에 그들은 그들의 옛 죄악을 미워하고 부끄러워하며 당황하며 탄식할 것이다.

[33-38절] 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가 너희를 모든 죄악에서 정결케 하는 날에 성읍들에 사람이 거접(居接)되게[거하게] 하며 황폐한 것이 건축되게 할 것인즉 전에는 지나가는 자의 눈에 황무하게 보이던 그 황무한 땅이 장차 기경(起耕)[경작]이 될지라. 사람이 이르기를 이 땅이 황무하더니 이제는 에덴 동산같이 되었고 황량하고 적막하고 무너진 성읍들에 성벽과 거민이 있다 하리니 너희 사면에 남은 이방 사람이 나 여호와가 무너진 곳을 건축하며 황무한 자리에 심은 줄 알리라. 나 여호와가 말하였으니 이루리라. 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그래도 이스라엘 족속이 이와 같이 자기들에게 이루어 주기를 내게 구하여야 할지라. 내가 그들의 인수로 양떼같이 많아지게 하되 제사드릴 양떼 곧 예루살렘 정한 절기의 양떼같이 황폐한 성읍에 사람의 떼로 채우리라. 그리한즉 그들이 나를 여호와인 줄 알리라 하셨느니라.

이전에 황무하였던 땅은 에덴 동산같이 될 것이며 사람들이 살고 성읍들이 건축될 것이다. 36절은, “너희 사면에 남은 이방 사람이 나 여호와가 무너진 곳을 건축하며 황무한 자리에 심은 줄 알리라. 나 여호와가 말하였으니 이루리라”고 말한다. ‘나 여호와가’라는 말(아니 예호와)이 두 번이나 나온다. 이것은 강조된 표현이다. 이것은 하나님 자신께서 그곳을 건축하시며 그가 친히 말씀하셨고 이루심을 강조한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일을 이루시는 자이시다.

그러나 37절에 부언하기를, “그래도(오드(BDB, KJV) 이스라엘 족속이 이와 같이 자기들에게 이루어 주기를 내게 구하여야 할지라”고 말씀한다. 이 말씀은, 아무리 하나님께서 만세 전에 작정하신 일이라고 할지라도, 또 아무리 하나님께서 실제로 주도하여 이루시는 일이라고 할지라도, 인간편에서 우리가 그 일을 소원하고 사모하고 간구해야 함을 보인다. 기도는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방편이다.

본문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우리는 하나님의 회복의 은혜를 감사하자.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약속하신 회복은 오늘 신약성도들에게 이루어졌다. 우리는 우리의 과거의 더러운 죄악을 씻음 받고 정결케 되었다. 그것이 사죄(赦罪)의 은혜이다. 또 우리는 새 마음과 새 영을 얻었다. 그것이 중생(重生)이다. 또 성령께서 우리 속에 오셨고 하나님의 계명을 행하게 하셨다. 이것은 성령의 내주(內住)하심의 복이다. 또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특권을 얻었다(요 1:12). 이것이 양자(養子) 됨이다. 또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영육의 복을 주시며 우리의 환경까지도 복되게 하셨다. 우리는 이 모든 은혜를 감사하자.

둘째로, 그러나 비록 하나님께서 이 놀라운 구원의 일을 계획하시고 이루시지만, 우리편에서 우리는 하나님께 이 일들을 사모하며 기도해야 한다. 하나님의 작정과 인간의 행위는 서로 충돌하는 것이 아니고 조화를 이룬다. 하나님의 작정은 인간의 순종의 행위를 통해 이루어진다. 하나님께서 택하신 자들은 자신의 죄악됨을 깨닫고 창조자요 섭리자이신 하나님께로 돌아와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을 사모하게 된다. 기도는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방편이다. 기도는 믿음의 시작과 같다. 택함 받은 자들은 하나님의 구원을 사모하며 그 구원을 받는다.

  

 

37장: 마른 뼈 환상

1-14절, 마른 뼈 환상

[1-3절] 여호와께서 권능으로 내게 임하시고 그 신으로 나를 데리고 가서 골짜기 가운데 두셨는데 거기 뼈가 가득하더라. 나를 그 뼈 사방으로 지나게 하시기로 본즉 그 골짜기 지면에 뼈가 심히 많고 아주 말랐더라. 그가 내게 이르시되 인자야, 이 뼈들이 능히 살겠느냐 하시기로 내가 대답하되 주 여호와여, 주께서 아시나이다.

에스겔은 하나님의 권능의 손과 성령의 감동과 이끌리심 속에 한 골짜기에 뼈가 가득한 광경을 보았다. 에스겔은 그 뼈 사방으로 지나갔다. 그 골짜기에 뼈들이 심히 많았고 그 뼈들은 아주 말라 있었다. 그때 하나님께서는 에스겔에게 물으셨다. “인자야, 이 뼈들이 능히 살겠느냐?” 그 뼈들은 인간의 이성으로 생각할 때 살아나기 불가능해 보였을 것이다. 그러나 에스겔은 하나님께 대답하였다. “여호와여, 주께서 아시나이다.” 그의 대답은, 전능하신 하나님의 뜻이면 그것들이 살아날 수 있다는 것을 암시한다. 하나님께서는 불가능한 일을 가능케 하시고 죽은 자를 다시 살릴 수 있으신 전능자이시다.

[4-6절] 또 내게 이르시되 너는 이 모든 뼈에게 대언하여 이르기를 너희 마른 뼈들아, 여호와의 말씀을 들을지어다. 주 여호와께서 이 뼈들에게 말씀하시기를 내가 생기로 너희에게 들어가게 하리니 너희가 살리라. 너희 위에 힘줄을 두고 살을 입히고 가죽으로 덮고 너희 속에 생기를 두리니 너희가 살리라. 또 나를 여호와인 줄 알리라 하셨다 하라.

하나님께서는 에스겔에게 그 뼈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하라(힌나베)고 말씀하셨다. 선지자의 사역은 대언(代言) 사역이다. 에스겔이 대언할 말씀은, “내가 생기로 너희에게 들어가게 하리니 너희가 살리라. 너희 위에 힘줄을 두고 살을 입히고 가죽으로 덮고 너희 속에 생기를 두리니 너희가 살리라”는 것이다. 이 말씀은, 비록 마른 뼈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수 없겠지만, 하나님께서 원하시면 죽은 자들을 살릴 수 있다는 것을 보인다. 또 하나님께서는 이 일로 인해 그 뼈들이 여호와를 알게 되리라고 말씀하셨다.

[7-10절] 이에 내가 명을 좇아 대언하니 대언할 때에 소리가 나고 움직이더니 이 뼈, 저 뼈가 들어 맞아서 뼈들이 서로 연락하더라. 내가 또 보니 그 뼈에 힘줄이 생기고 살이 오르며 그 위에 가죽이 덮이나 그 속에 생기는 없더라. 또 내게 이르시되 인자야, 너는 생기를 향하여 대언하라. 생기에게 대언하여 이르기를 주 여호와의 말씀에 생기야, 사방에서부터 와서 이 사망을 당한 자에게 불어서 살게 하라 하셨다 하라. 이에 내가 그 명대로 대언하였더니 생기가 그들에게 들어가매 그들이 곧 살아 일어나서 서는데 극히 큰 군대더라.

에스겔은 하나님의 명령대로 대언했다. 그런데 그때 뼈들이 소리가 나고 움직이며 서로 연결되었고 힘줄이 생기고 살이 오르며 그 위에 가죽이 덮였다. 에스겔은 또 하나님의 명령을 받아 생기에게 말했다. “생기야, 사방에서부터 와서 이 사망 당한 자를 살게 하라.” 그런데 그때 그 뼈들이 곧 살아 일어나서 극히 큰 군대를 이루었다.

[11-14절] 또 내게 이르시되 인자야, 이 뼈들은 이스라엘 온 족속이라. 그들이 이르기를 우리의 뼈들이 말랐고 우리의 소망이 없어졌으니 우리는 다 멸절되었다 하느니라. 그러므로 너는 대언하여 그들에게 이르기를 주 여호와의 말씀에 내 백성들아, 내가 너희 무덤을 열고 너희로 거기서 나오게 하고 이스라엘 땅으로 들어가게 하리라. 내 백성들아, 내가 너희 무덤을 열고 너희로 거기서 나오게 한즉 너희가 나를 여호와인 줄 알리라. 내가 또 내 신을 너희 속에 두어 너희로 살게 하고 내가 또 너희를 너희 고토에 거하게 하리니 나 여호와가 이 일을 말하고 이룬 줄을 너희가 알리라. 나 여호와의 말이니라 하셨다 하라.

하나님께서는 에스겔에게 그 환상의 뜻을 설명해주셨다. 그 뼈들은 이스라엘 족속을 상징하였다. 그들은 “우리의 뼈들이 말랐고 우리의 소망이 없어졌으니 우리는 다 멸절되었다”고 말했다. 하나님께서는 에스겔에게 이스라엘 백성에게 대언하라고 하셨다. “내 백성들아, 내가 너희 무덤을 열고 너희로 거기서 나오게 하고 이스라엘 땅으로 들어가게 하리라”는 말씀이다. 하나님께서는 이 말씀, 즉 이스라엘의 회복에 대한 말씀을 두 번이나 반복하셨다. 이것은 멸망한 이스라엘이 무덤 같은 이방 나라 땅에서 돌아오는 것을 말하였다.

하나님께서는 또 “내가 또 내 신을 너희 속에 두어 너희로 살게 하고 내가 또 너희를 너희 고토에 거하게 하리라”고 말씀하셨다. 이것은 하나님의 영 곧 성령을 주시겠다는 놀라운 약속과, 또 그들을 그 고토(故土), 가나안 땅에 거하게 하리라는 약속이다. 하나님께서는 또 “나 여호와가 이 일을 말하고 이룬 줄을 너희가 알리라”고 부언하셨다. 이스라엘의 회복은 여호와 하나님께서 친히 말씀하시고 이루시는 일이며 그때에 그들은 그 사실을 깨닫게 될 것이다.

본문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하나님께서는 죽은 자들을 살리실 것이다. 멸망한 이스라엘 나라는 죽어서 마른 뼈와 같았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내가 너희 무덤을 열고 너희로 거기서 나오게 하고 이스라엘 땅으로 들어가게 하리라”고 말씀하셨다. 하나님께서는 영적으로 죽은 죄인들을 살리신다. 구원은 죽은 자들을 살리는 일이다.

둘째로, 하나님께서는 그의 영을 보내셔서 살리실 것이다. 마른 뼈를 살리는 생기는 바로 성령이시다. 구원은 성령의 사역이다. 성령께서는 죽은 영혼들을 중생(重生)시키신다. 사람은 성령으로 거듭난다.

셋째로, 이스라엘 백성은 극히 큰 군대를 이룰 것이다. 이것은 영적 이스라엘인 신약교회가 극히 큰 군대를 이룰 것을 보이신 환상이다. 하나님의 택한 백성은 온 세계에서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수가 될 것이다. 세계복음화는 하나님의 뜻이다. 하나님께서는 이 일을 뜻하셨고 다 이루실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오직 복음을 만방에 전하자.

 

15-28절, 메시아 예언

[15-22절] 여호와의 말씀이 또 내게 임하여 가라사대 인자야, 너는 막대기 하나를 취하여 그 위에 유다와 그 짝 이스라엘 자손이라 쓰고 또 다른 막대기 하나를 취하여 그 위에 에브라임의 막대기 곧 요셉과 그 짝 이스라엘 온 족속이라 쓰고 그 막대기들을 서로 연합하여 하나가 되게 하라. 네 손에서 둘이 하나가 되리라. 네 민족이 네게 말하여 이르기를 이것이 무슨 뜻인지 우리에게 고하지 아니하겠느냐 하거든 너는 곧 이르기를 주 여호와의 말씀에 내가 에브라임의 손에 있는바 요셉과 그 짝 이스라엘 지파들의 막대기를 취하여 유다의 막대기에 붙여서 한 막대기가 되게 한즉 내 손에서 하나가 되리라 하셨다 하고 너는 그 글 쓴 막대기들을 무리의 목전에서 손에 잡고 그들에게 이르기를 주 여호와의 말씀에 내가 이스라엘 자손을 그 간 바 열국에서 취하며 그 사면에서 모아서 그 고토로 돌아가게 하고 그 땅 이스라엘 모든 산에서 그들로 한 나라를 이루어서 한 임금이 모두 다스리게 하리니 그들이 다시는 두 민족이 되지 아니하며 두 나라로 나누이지 아니할지라.

하나님께서는 또 에스겔에게 막대기 하나를 취하여 그 위에 ‘유다와 그 짝 이스라엘 자손을 위하여’(원문)라고 쓰라고 하셨다. ‘그 짝’이라고 번역된 원어(15, 15, 19절)는 ‘그와 연합된’이라는 뜻이다. 그는 또 에스겔에게 다른 막대기를 취하여 그 위에 ‘에브라임의 막대기 곧 요셉과 그 짝 이스라엘 온 족속을 위하여’(원문)라고 쓰라고 하셨다. 또 그는 에스겔에게 “그 막대기들을 서로 연합하여 하나가 되게 하라. 네 손에서 둘이 하나가 되리라”고 말씀하셨다. 이것은 북방 이스라엘과 남방 유다가 하나님의 손으로 하나가 될 것을 말씀하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자손이 포로로 잡혀간 열국에서 그들을 취하여 그 사면에서 모아 그 고토로 돌아오게 하시며 그 땅 이스라엘의 산들에서 그들로 한 나라를 이루어 한 왕이 다스리게 할 것이며 그들은 다시 두 나라로 나뉘지 아니할 것이다.

[23절] 그들이 그 우상들과 가증한 물건과 그 모든 죄악으로 스스로 더럽히지 아니하리라. 내가 그들을 그 범죄한 모든 처소에서 구원하여 정결케 한즉 그들은 내 백성이 되고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리라.

이스라엘 백성은 그 우상들과 가증한 물건과 그 모든 죄악으로 스스로 더럽히지 아니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내가 그들을 그 범죄한 모든 처소에서 구원하여 정결케 하리라”고 말씀하셨다. 죄가 인간의 근본 문제이며 이스라엘의 회복은 죄씻음을 동반할 것이다. 그것이 구원이며 회복이다. 또 그 결과,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하나님이 될 것이다. 그것이 구원으로 회복된, 하나님과 그 백성과의 바른 관계이다.

[24-25절] 내 종 다윗이 그들의 왕이 되리니 그들에게 다 한 목자가 있을 것이라. 그들이 내 규례를 준행하고 내 율례를 지켜 행하며 내가 내 종 야곱에게 준 땅 곧 그 열조가 거하던 땅에 그들이 거하되 그들과 그 자자손손이 영원히 거기 거할 것이요 내 종 다윗이 영원히 그 왕이 되리라.

하나님께서는 그의 종 다윗이 그들의 왕이 될 것이며 그들에게 다 한 목자가 있을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이스라엘의 회복 시대의 한 특징은 예언된 다윗이 오시는 것이다. 그 다윗은 다윗의 자손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켰다. 그는 왕과 목자로 오실 것이다. 또 그들은 하나님의 규례를 준행하고 그의 율례를 지켜 행할 것이다. 또 하나님께서 야곱에게 주셨고 그 조상들이 거하였던 가나안 땅에 그들과 그 자손들이 영원히 거하고 다윗은 영원히 그들의 왕이 될 것이다. 예언된 이스라엘의 회복은 단순히 외적, 물질적 회복이 아니고, 내적, 영적 회복이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모든 죄를 씻음 받고 하나님의 계명과 율법을 지키는 회복이다.

[26-28절] 내가 그들과 화평의 언약을 세워서 영원한 언약이 되게 하고 또 그들을 견고하고 번성케 하며 내 성소를 그 가운데 세워서 영원히 이르게 하리니 내 처소가 그들의 가운데 있을 것이며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내 백성이 되리라. 내 성소가 영원토록 그들의 가운데 있으리니 열국이 나를 이스라엘을 거룩케 하는 여호와인 줄 알리라 하셨다 하라.

하나님께서는 또 그들과 화평의 언약을 맺으셔서 영원한 언약이 되게 하리라고 말씀하셨다. ‘화평의 언약’(베리스 솰롬)은 심령의 평안과 하나님과의 화목을 다 포함한다. 또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거기 두시고 번성케 하실 것이며 그의 성소를 영원히 그들 가운데 세우실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하나님께서 다시는 그들을 떠나지 않으시고 그들과 영원히 함께 하실 것이다. 또 하나님께서는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내 백성이 되리라”고 말씀하셨다. 그때 세상의 모든 나라들은 여호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거룩케 하시는 자임을 알게 될 것이다.

본문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우리는 하나님의 구원을 감사하자. 이스라엘의 회복은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으로 신약교회 안에서 이미 시작되었고 우리는 그 은혜에 참여하였다. 구주 예수께서는 약속된 다윗이시다. 우리는 주 안에서 연합되었다.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주님이시요 목자이시다. 그는 우리의 모든 옛 죄를 깨끗케 씻어주셨고 우리 속에 참 평안을 주셨고 우리를 하나님과 화목케 하셨고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로 삼아주셨다. 구원받은 성도들은 주 안에서 일치단합하며 참된 평안을 누리면서 하나님의 구원을 항상 감사하자.

둘째로, 우리는 성도답게 살자. 이스라엘의 회복은 영적, 내적 회복을 포함한다. 그것은 죄씻음과 하나님의 계명 순종을 포함한다. 이것이 구원이다. 이것은 오늘날 신약교회 속에서 이루어졌다. 신약성도는 구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그의 피로 죄씻음을 받았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제 모든 죄를 멀리하고 성경에 교훈된 하나님의 모든 말씀을 즐거이 지키자. 우리는 하나님을 경외하며 믿고 의지하며 말씀과 기도로 살고 그의 교훈대로 거룩하고 의롭고 선하게 살자.

 

 

38장: 곡이 이스라엘을 치러 옴

[1-6절]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하여 가라사대 인자야, 너는 마곡 땅에 있는 곡 곧 로스와 메섹과 두발 왕에게로 얼굴을 향하고 그를 쳐서 예언하여 이르기를 주 여호와의 말씀에 로스와 메섹과 두발 왕 곡아 내가 너를 대적하여 너를 돌이켜 갈고리로 네 아가리를 꿰고 너와 말과 기병 곧 네 온 군대를 끌어내되 완전한 갑옷을 입고 큰 방패와 작은 방패를 가지며 칼을 잡은 큰 무리와 그들과 함께 한 바 방패와 투구를 갖춘 바사와 구스와 붓과 고멜과 그 모든 떼와 극한 북방의 도갈마 족속과 그 모든 떼 곧 많은 백성의 무리를 너와 함께 끌어내리라.

창세기 10장에 보면, 마곡이나 메섹이나 두발은 다 야벳의 아들들의 이름으로서 그 자손들을 가리키고 후에 그들이 사는 지역을 가리키게 되었을 것이다. 메섹은 오늘날 터어키 중부를, 두발은 터어키 동남부를, 마곡은 오늘날 터어키 동부와 이란의 북부 사이의 땅을 가리킨 것 같다. ‘로스’(NASB)는 지명인지, 혹은 ‘으뜸’(KJV, NIV)이라는 말인지 분명치 않다. 후자(後者)라면, 2절, 3절은 “메섹과 두발의 상왕[으뜸 되는 왕] 곡아”라는 뜻일 것이다. 바사(페르샤)는 오늘날 이란을, 구스는 에디오피아(KJV, NASB)를, 붓은 리비아(KJV)를, 도갈마는 터어키 동북부를 가리킨다고 보인다. 어떤 이는 오늘날 러시아는 로스라는 말에서, 모스코바는 메섹에서, 토볼스크는 두발에서 나왔다고 한다(JFB).

[7-9절] 너는 스스로 예비하되 너와 네게 모인 무리들이 다 스스로 예비하고 너는 그들의 대장이 될지어다. 여러 날 후 곧 말년에 네가 명령을 받고 그 땅 곧 오래 황무하였던 이스라엘 산에 이르리니 그 땅 백성은 칼을 벗어나서 열국에서부터 모여들어 오며 이방에서부터 나와서 다 평안히 거하는 중이라. 네가 올라오되 너와 네 모든 떼와 너와 함께한 많은 백성이 광풍같이 이르고 구름같이 땅을 덮으리라.

‘대장’이라는 원어(미쉬마르)는 ‘감시자, 보호자’라는 뜻이다. 곡은 연합군의 보호자 곧 우두머리가 될 것이다. “여러 날 후 곧 말년에” 곡은 명령을 받고 오래 황무하였던 이스라엘 산들에 이를 것이다. 이것은 이스라엘이 바벨론 포로생활에서 돌아온 후 오랜 후의 일이라고 보인다. 그 땅 백성 곧 이스라엘 백성은 칼을 벗어나서 열국에서부터 모여들어 왔고 다 평안히 거하고 있는 중일 것이다. 곡과 그의 모든 무리와 그와 함께한 많은 백성은 이스라엘 땅에 올라오되 광풍같이 이르고 구름같이 땅을 덮을 것이다.

[10-13절] 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그 날에 네 마음에서 여러 가지 생각이 나서 악한 꾀를 내어 말하기를 내가 평원의 고을들로 올라가리라. 성벽도 없고 문이나 빗장이 없어도 염려 없이 다 평안히 거하는 백성에게 나아가서 물건을 겁탈하며 노략하리라 하고 네 손을 들어서 황무하였다가 지금 사람이 거처하는 땅과 열국 중에서 모여서 짐승과 재물을 얻고 세상 중앙에 거하는 백성을 치고자 할 때에 스바와 드단과 다시스의 상고와 그 부자들(케피레하)[그 젊은 사자들=건장한 상인들]이 네게 이르기를 네가 탈취하러 왔느냐? 네가 네 무리를 모아 노략하고자 하느냐? 은과 금을 빼앗으며 짐승과 재물을 취하며 물건을 크게 약탈하여 가고자 하느냐 하리라 하셨다 하라.

곡은 평안히 살고 있는 이웃나라 이스라엘을 침략하고 물건들을 빼앗으려 할 것이다. 그때 스바와 드단과 다시스의 상인들은 곡이 탐욕을 품고 이스라엘 땅을 침략한 것을 알 것이다.

[14-16절] 인자야, 너는 또 예언하여 곡에게 이르기를 주 여호와의 말씀에 내 백성 이스라엘이 평안히 거하는 날에 네가 어찌 그것을 알지 못하겠느냐? 네가 네 고토 극한 북방에서 많은 백성 곧 다 말을 탄 큰 떼와 능한 군대와 함께 오되 구름이 땅에 덮임같이 내 백성 이스라엘을 치러 오리라. 곡아, 끝날에 내가 너를 이끌어다가 내 땅을 치게 하리니 이는 내가 너로 말미암아 이방 사람의 목전에서 내 거룩함을 나타내어 그들로 다 나를 알게 하려 함이니라.

하나님께서는 곡의 연합군이 이스라엘 땅을 침공하게 하실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땅을 “내 땅”이라고 부르셨다. 하나님께서 그를 그 땅으로 부르시는 목적은 그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나타내셔서 이방인들로 하나님을 알게 하시기 위함이었다. 그것은, 다음 구절들이나 다음 장의 내용을 보면, 하나님께서 그때 곡의 연합군을 이스라엘 땅에서 크게 패하게 하실 것이라는 뜻이다.

[17-20절] 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가 옛적에 내 종 이스라엘 선지자들을 빙자하여 말한 사람이 네가 아니냐? 그들이 그때에 여러 해 동안 예언하기를 내가 너를 이끌어다가 그들을 치게 하리라 하였느니라 하셨다 하라. 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그 날에 곡이 이스라엘 땅을 치러 오면 내 노가 내 얼굴에 나타나리라. 내가 투기와 맹렬한 노로 말하였거니와 그 날에 큰 지진이 이스라엘 땅에 일어나서 바다의 고기들과 공중의 새들과 들의 짐승들과 땅에 기는 모든 벌레와 지면에 있는 모든 사람이 내 앞에서 떨 것이며 모든 산이 무너지며 절벽이 떨어지며 모든 성벽이 땅에 무너지리라.

하나님께서는 또 곡의 침공이 옛적에 하나님의 종 이스라엘 선지자들을 통해 여러 해 동안 증거한 바라고 말씀하신다. 요엘과 스바냐의 어떤 예언들이 그것과 관계되는 것 같다. 요엘 3:2, 12, “내가 만국을 모아 데리고 여호사밧 골짜기에 내려가서 내 백성 곧 내 기업된 이스라엘을 위하여 거기서 그들을 국문하리니,” “. . . 내가 거기 앉아서 사면의 열국을 다 심판하리로다.” 스바냐 3:8, “내가 뜻을 정하고 나의 분한과 모든 진노를 쏟으려고 나라들을 소집하며 열국을 모으리라. 온 땅이 나의 질투의 불에 소멸되리라.” 곡의 연합군의 침공 때에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향해 노하실 것이며 자기 백성을 위해 투기하실 것이며 온 땅의 모든 생물이 떨 정도로 천재지변을 동반한 징벌을 그들에게 내리실 것이다.

[21-23절] 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가 내 모든 산 중에서 그를 칠 칼을 부르리니 각 사람의 칼이 그 형제를 칠 것이며 내가 또 온역과 피로 그를 국문하며 쏟아지는 폭우와 큰 우박덩이와 불과 유황으로 그와 그 모든 떼와 그 함께한 많은 백성에게 비를 내리듯하리라. 이와 같이 내가 여러 나라의 눈에 내 존대함과 내 거룩함을 나타내어 나를 알게 하리니 그들이 나를 여호와인 줄 알리라.

곡의 연합군은 자체 안의 갈등으로 인한 내전(內戰)과 온역과 폭우와 큰 우박덩이와 불과 유황 등 자연재해로 하나님의 징벌을 받을 것이다. 또 곡의 연합군에 대한 징벌로 인해, 하나님의 크심과 거룩하심이 나타날 것이며 이방인들이 여호와 하나님을 알게 될 것이다.

본장이 주는 교훈이 무엇인가? 첫째로, 본장은 세계의 역사가 하나님의 손안에 있음을 증거한다. 역사는 하나님의 손안에 있다. 하나님께서는 살아계셔서 모든 세상 나라들과 지도자들을 홀로 다스리신다. 우리는 그 사실을 깨닫고 인정하고 하나님만 의지하고 바라자.

둘째로, 본장은 하나님께서 악한 자들을 결국 심판하심을 증거한다. 곡은 악한 꾀를 내고 강포한 마음과 탐심의 마음으로 이스라엘 땅을 침공할 것이다. 평안히 거하는 이웃 나라를 침공하는 것은 악한 일이다. 하나님께서는 그러한 곡을 대적하시며 그에 대해 노하시며 특히 자기 백성을 위해 투기하시고 맹렬한 노를 발하실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그들 자체의 내전(內戰)과 온역과 폭우와 큰 우박덩이와 불과 유황으로 그들을 징벌하실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악한 자를 심판하실 것이다. 우리는 결코 이웃에게 악을 행하는 자가 되지 말자.

셋째로, 본장은 이 모든 일을 통해 하나님의 영광과 거룩이 드러날 것과 또 열방이 하나님을 알게 될 것을 증거한다. 역사를 섭리하시는 하나님의 섭리는 결국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다. 역사의 주관자 하나님께서는 자기 백성을 위하시고 그들을 위해 질투하시고 그의 영광을 나타내신다. 그러므로 우리는 세상을 두려워하지 말고 하나님만 의지하며 그에게 영광을 돌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의만 의지하고 담대히 믿음으로 살고 성경말씀을 즐거이 순종하자.

 

  

39장: 곡의 멸망

[1-5절] 그러므로 인자야, 너는 곡을 쳐서 예언하여 이르기를 주 여호와의 말씀에 로스와 메섹과 두발 왕 곡아, 내가 너를 대적하여 너를 돌이켜서 이끌고 먼 북방에서부터 나와서 이스라엘 산 위에 이르러 네 활을 쳐서 네 왼손에서 떨어뜨리고 네 살을 네 오른손에서 떨어뜨리리니 너와 네 모든 떼와 너와 함께한 백성이 다 이스라엘 산 위에 엎드러지리라, 내가 너를 각종 움키는 새와 들짐승에게 붙여 먹게 하리니 네가 빈들에 엎드러지리라, 이는 내가 말하였음이니라, 나 주 여호와의 말이니라,

본장은 곡의 멸망에 대한 예언이다. 하나님께서는 에스겔에게 곡을 쳐서 예언하라고 말씀하셨다. 하나님께서는 로스와 메섹과 두발 왕, 혹은 메섹과 두발의 상왕(上王), 곡을 대적하여 그를 돌이켜서 이끌고 먼 북방에서부터 나와서 이스라엘 산 위에 이르러 엎드러지게 하실 것이다. 그는 그의 활을 쳐서 그의 왼손에서 떨어뜨리고 그의 살을 그의 오른손에서 떨어뜨리게 하시고 곡과 그의 모든 무리와 그와 함께한 백성들을 다 이스라엘 산 위에 엎드러지게 하시고 그들을 각종 움키는 새와 들짐승에게 먹히게 하실 것이다. 그들은 빈들에 엎드러질 것이다. 반드시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될 것이다.

[6-7절] 내가 또 불을 마곡과 및 섬에 평안히 거하는 자에게 내리리니 그들이 나를 여호와인 줄 알리라. 내가 내 거룩한 이름을 내 백성 이스라엘 가운데 알게 하여 다시는 내 거룩한 이름을 더럽히지 않게 하리니 열국이 나를 여호와 곧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인 줄 알리라 하셨다 하라.

하나님께서는 또 불을 마곡과 및 섬에 평안히 거하는 자에게 내리실 것이다. 그들은 하나님을 여호와인 줄 알 것이다. ‘섬’이라는 원어(이임)는 ‘연안 지역들’(coastlands)이라는 뜻이다. 또 하나님께서는 그의 거룩한 이름을 그의 백성 이스라엘 가운데 알게 하셔서 다시는 그의 거룩한 이름을 더럽히지 않게 하실 것이다. 열국은 그가 여호와 곧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신 줄 알 것이다. 하나님께서 그의 거룩한 이름을 알리시고 그 이름을 더럽히지 않게 하신다는 것은 그의 거룩한 심판을 열방에 시행하심으로 그렇게 하신다는 뜻이다.

[8-10절] 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볼지어다, 그 일이 이르고 이루리니 내가 말한 그 날이 이 날이니라. 이스라엘 성읍들에 거한 자가 나가서 그 병기를 불 피워 사르되 큰 방패와 작은 방패와 활과 살과 몽둥이와 창을 취하여 7년 동안 불 피우리라. 이와 같이 그 병기로 불을 피울 것이므로 그들이 들에서 나무를 취하지 아니하며 삼림에서 벌목하지 아니하겠고 전에 자기에게서 약탈하던 자의 것을 약탈하며 전에 자기에게서 늑탈하던 자의 것을 늑탈하리라. 나 주 여호와의 말이니라.

하나님의 말씀하신 날이 올 것이다. 그 날에 이스라엘 성읍들에 거한 자들이 나가서 곡의 군대들의 병기들, 큰 방패와 작은 방패와 활과 살과 몽둥이와 창을 취하여 7년 동안 불 피울 것이다. 불 피울 것들이 많으므로 그들은 들에서 나무를 취하거나 삼림에서 벌목하지 않을 것이며 그들은 전에 자기에게서 약탈하던 자들의 것을 약탈하며 전에 자기에게서 늑탈하던 자들의 것을 늑탈할 것이다.

[11-16절] 그 날에 내가 곡을 위하여 이스라엘 땅 곧 바다 동편 사람의 통행하는 골짜기를 매장지로 주리니 통행하던 것이 막힐 것이라. 사람이 거기서 곡과 그 모든 무리를 장사하고 그 이름을 하몬곡의 골짜기라 일컬으리라. 이스라엘 족속이 일곱 달 동안에 그들을 장사하여 그 땅을 정결케 할 것이라. 그 땅 모든 백성이 그들을 장사하고 그로 말미암아 이름을 얻으리니 이는 나의 영광이 나타나는 날이니라. 나 주 여호와의 말이니라. 그들이 사람을 택하여 그 땅에 늘 순행하며 장사할 사람으로 더불어 지면에 남아 있는 시체를 장사하여 그 땅을 정결케 할 것이라. 일곱 달 후에 그들이 살펴보되 순행하는 자가 그 땅으로 통행하다가 사람의 뼈를 보면 그 곁에 표를 세워 장사하는 자로 와서 하몬곡 골짜기에 장사하게 할 것이요 성의 이름도 하모나라 하리라. 그들이 이와 같이 그 땅을 정결케 하리라.

그 날에 곡의 군대의 전사자들이 많으므로 하나님께서는 곡을 위해 이스라엘 땅 곧 바다 동편, 사람들의 통행하는 골짜기를 매장지로 주실 것이며 통행하는 일이 막힐 정도일 것이다. 사람들은 거기서 곡과 그 모든 무리를 장사하고 그 이름을 하몬곡의 골짜기라 일컬을 것이다. ‘하몬곡’이라는 원어는 ‘곡의 무리’라는 뜻이다. 이스라엘 족속은 일곱 달 동안 그들을 장사하여 그 땅을 정결케 할 것이다. 그 날은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나는 날이다. 사람들은 그 땅을 늘 순행하며 장사할 시체를 하몬곡 골짜기에 장사하여 그 땅을 정결케 할 것이다. 그 성의 이름도 ‘하모나’(‘큰 무리’)라고 할 것이다. 그들은 이와 같이 그 땅을 정결케 할 것이다.

[17-20절] 너 인자야, 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너는 각종 새와 들의 각종 짐승에게 이르기를 너희는 모여 오라. 내가 너희를 위한 잔치 곧 이스라엘 산 위에 예비한 큰 잔치로 너희는 사방에서 모여서 고기를 먹으며 피를 마실지어다. 너희가 용사의 고기를 먹으며 세상 왕들의 피를 마시기를 바산의 살찐 짐승 곧 숫양이나 어린양이나 염소나 수송아지를 먹듯 할지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예비한 잔치의 기름을 너희가 배불리 먹으며 그 피를 취토록 마시되 내 상에서 말과 기병과 용사와 모든 군사를 배불리 먹을지니라 하라. 나 주 여호와의 말이니라.

각종 새와 들의 각종 짐승은 모여 와서 그들을 위해 이스라엘 산 위에 준비된 잔치, 곧 곡의 군사들의 고기와 피를 먹고 마시되 바산의 살찐 짐승 곧 숫양이나 어린양이나 염소나 수송아지를 먹듯 할 것이다. 그것들은 그것들을 위해 준비된 잔치, 그 말들과 기병들과 모든 군사들의 기름을 배불리 먹고 그 피를 취하도록 마실 것이다. 그것은 무서운 심판이다.

[21-24절] 내가 내 영광을 열국 중에 나타내어 열국으로 나의 행한 심판과 내가 그 위에 나타낸 권능을 보게 하리니 그 날 이후에 이스라엘 족속은 나를 여호와 자기들의 하나님인 줄 알겠고 열국은 이스라엘 족속이 그 죄악으로 인하여 사로잡혀 갔던 줄 알지라. 그들이 내게 범죄하였으므로 내 얼굴을 그들에게 가리우고 그들을 그 대적의 손에 붙여 다 칼에 엎드러지게 하였으되 내가 그들의 더러움과 그들의 범죄한 대로 행하여 그들에게 내 얼굴을 가리웠었느니라.

하나님께서는 그의 영광을 열국 중에 나타내셔서 열국으로 그의 행한 심판과 그가 그 위에 나타내신 권능을 보게 하실 것이다. 곡의 멸망은 하나님의 영광과 권능을 나타내는 심판이다. 그 날 후 이스라엘 족속은 하나님을 여호와 자기들의 하나님인 줄 알 것이며 열국은 이스라엘 족속이 그 죄악으로 인해 사로잡혀 갔던 줄 알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이 그에게 범죄하였으므로 그들의 더러움과 그들의 범죄한 대로 행하셔서 그의 얼굴을 그들에게 가리우셨고 그들을 그 대적자들의 손에 붙여 다 칼에 엎드러지게 하셨었다.

[25-29절] 그러므로 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가 이제 내 거룩한 이름을 위하여 열심을 내어 야곱의 사로잡힌 자를 돌아오게 하며 이스라엘 온 족속에게 긍휼을 베풀지라. 그들이 그 땅에 평안히 거하고 두렵게 할 자가 없게 될 때에 부끄러움을 품고 내게 범한 죄를 뉘우치리니 곧 내가 그들을 만민 중에서 돌아오게 하고 적국 중에서 모아내어 열국 목전에서 그들로 인하여 나의 거룩함을 나타낼 때에라. 전에는 내가 그들로 사로잡혀 열국에 이르게 하였거니와 후에는 내가 그들을 모아 고토로 돌아오게 하고 그 한 사람도 이방에 남기지 아니하리니 그들이 나를 여호와 자기들의 하나님인 줄 알리라. 내가 다시는 내 얼굴을 그들에게 가리우지 아니하리니 이는 내가 내 신을 이스라엘 족속에게 쏟았음이니라. 나 주 여호와의 말이니라.

하나님께서는 그의 거룩하신 이름을 위하여 열심을 내어 야곱의 사로잡힌 자를 돌아오게 하시며 이스라엘 온 족속에게 긍휼을 베푸실 것이다. 이스라엘의 회복은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일이며 그가 그의 거룩한 이름을 위해 행하시는 일이며 그가 친히 열심을 내셔서 행하시는 일이며 그가 긍휼을 베푸시는 일이다. 구원은 하나님의 일이며 그의 영광을 위한 일이며 그의 긍휼의 일이다. 또 그때 그들은 과거에 하나님께 범한 죄를 뉘우치며 부끄러워할 것이다. 전에 그들을 열국에 포로로 잡혀가게 하신 자도 하나님이셨으나, 이제 그들을 모아 고향으로 돌아오게 하실 자도 하나님이시다. 하나님께서는 그들 중 한 사람도 이방에 남기지 않고 다 돌아오게 하실 것이다. 하나님의 택하신 자들은 하나도 남김 없이 다 구원을 얻을 것이다. 특히 하나님께서는 그의 영 곧 성령을 그들에게 쏟으셨기 때문에 다시는 그의 얼굴을 그들에게 가리지 않으실 것이다.

본장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하나님의 심판이 있다. 하나님께서는 곡을 대적하시고 그를 먼 북방에서 이끌어내셔서 이스라엘 산에 이르게 하실 것이며 거기서 다 엎드러져 멸망케 하실 것이다. 마지막 날에 온 세상의 심판이 있을 것이다. 우리는 그 심판을 두려워하자.

둘째로, 이스라엘 족속이 열방에 포로로 잡혀간 것이나 곡과 그 연합군이 이스라엘 산들에서 멸망하는 것은 다 그들의 죄 때문에 일어나는 일이다. 세상에 하나님의 심판이 있는 것은 인간들의 죄 때문이다. 죄가 인간의 불행과 죽음의 근본 원인이다. 죄가 우리의 삶의 평안을 가로막는 요인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모든 죄를 회개하고 모든 죄를 멀리하고 죄를 버리자. 우리가 세상에서 조심할 것은 죄밖에 없다.

셋째로, 이스라엘은 오직 하나님의 긍휼로 회복될 것이다. 이스라엘의 회복은 하나님께서 친히 행하시는 일이며 그가 그의 거룩한 이름을 위해, 그의 열심으로 이루시는 일이다. 특히 그것은 그의 긍휼의 일이다. 그는 흩어진 이스라엘 백성을 하나도 남김 없이 다 돌아오게 하실 것이다. 그는 그들에게 그의 영을 쏟으셨다. 우리는 하나님의 긍휼과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대속(代贖)으로 죄씻음과 의롭다 하심의 구원을 받은 자들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긍휼의 구원을 감사하고 찬송하며 오직 하나님만 의지하고 그에게 즐거이 순종하며 살아가자.

 

 

40장: 새 성전

[1-4절] 우리가 사로잡힌 지 25년이요 성이 함락된 후 14년 정월 10일 곧 그 날에 여호와의 권능이 내게 임하여 나를 데리고 이스라엘 땅으로 가시되 하나님의 이상 중에 나를 데리고 그 땅에 이르러 나를 극히 높은 산 위에 내려 놓으시는데 거기서 남으로 향하여 성읍 형상 같은 것이 있더라. 나를 데리시고 거기 이르시니 모양이 놋같이 빛난 사람 하나가 손에 삼줄과 척량하는 장대를 가지고 문에 서서 있더니 그 사람이 내게 이르되 인자야, 내가 네게 보이는 그것을 눈으로 보고 귀로 들으며 네 마음으로 생각할지어다. 내가 이것을 네게 보이려고 이리로 데리고 왔나니 너는 본 것을 다 이스라엘 족속에게 고할지어다 하더라.

유다 왕 여호야긴과 에스겔과 유다 백성이 바벨론에 포로로 사로잡혀 간 지 25년, 예루살렘 성이 함락된 지 14년이 되는 해, 즉 주전 572년 정월 10일에 여호와의 권능이 에스겔에게 임하여 그를 데리고 이스라엘 땅으로 가셨다. 에스겔은 하나님의 이상 중에 이스라엘 땅에 이르러 극히 높은 산 위에서 남으로 향해 성읍 형상 같은 것을 보았다. 그것은 성전의 모습이었다. 그때 놋같이 빛난 한 천사가 손에 삼줄과 측량하는 장대를 가지고 문에 서서 있었다. 그는 에스겔에게 네가 본 것을 다 이스라엘 족속에게 고하라고 말했다.

[5-6절] 내가 본즉 집 바깥 사면으로 담이 있더라. 그 사람의 손에 척량하는 장대를 잡았는데 그 장이 팔꿈치에서 손가락에 이르고 한 손바닥 넓이가 더한 자로 6척이라. 그 담을 척량하니 두께가 한 장대요 고도 한 장대며 그가 동향한 문에 이르러 층계에 올라 그 문통을 척량하니 장이 한 장대요 그 문 안통의 장도 한 장대며.

에스겔이 보니 집 바깥 사면에 담이 있었다. 그 사람은 손에 측량하는 장대를 잡았는데, 그 길이가 팔꿈치에서 손가락에 이르고 한 손바닥 넓이가 더한 자, 즉 약 50센티미터의 자로 여섯 자, 즉 약 3미터이었다. 그 담을 측량하니 두께가 한 장대 즉 약 3미터이며, 높이도 한 장대 즉 약 3미터이었다. 그 담은 성전 바깥뜰을 둘러싼 담이다. 그것은 두께나 높이로 보아 튼튼하여 외부인의 침입이 어려운 담이었다. 그가 동쪽으로 향한 문에 이르러 층계에 올라 그 문통 즉 문입구를 척량하니 길이가 한 장대요 그 문 안쪽 입구의 길이도 한 장대이었다. 동쪽문은 성전을 출입하는 정문이다. 그 입구에는 층계가 있어서 성전으로 올라가게 하였다. 성전은 우리가 하나님께로 올라가는 곳이다.

[7-13절] 그 문간에 문지기 방들이 있는데 각기 장이 한 장대요 광이 한 장대요 매방 사이 벽이 5척이며 안 문통의 장이 한 장대요 그 앞에 현관이 있고 그 앞에 안 문이 있으며 그가 또 안 문의 현관을 척량하니 한 장대며 안 문의 현관을 또 척량하니 8척이요 그 문벽은 2척이라. 그 문의 현관이 안으로 향하였으며 그 동문간의 문지기 방은 좌편에 셋이 있고 우편에 셋이 있으니 그 셋이 각각 한 척수요 그 좌우편 벽도 다 한 척수며 또 그 문통을 척량하니 광이 10척이요 장이 13척이며 방 앞에 퇴가 있는데 이편 퇴도 1척이요 저편 퇴도 1척이며 그 방은 이편도 6척이요 저편도 6척이며 그가 그 문간을 척량하니 이 방 지붕 가에서 저 방 지붕 가까지 광이 25척인데 방 문은 서로 반대되었으며.

그 문간에는 문지기 방들이 있었다. 그 방은 각기 길이가 한 장대, 즉 약 3미터이며 너비가 한 장대요 매 방 사이 벽이 다섯 자이었고, 안쪽 문입구의 길이가 한 장대요 그 앞에 현관이 있고 그 앞에 안 문이 있었고, 그가 또 안 문의 현관을 측량하니 한 장대며 안 문의 현관을 또 측량하니 여덟 자이며 그 문의 벽은 두 자이었다. 그 문의 현관은 안으로, 즉 뜰 안으로, 향하였으며 그 동문간의 문지기 방은 좌편에 셋이 있고 우편에 셋이 있으니 그 셋이 다 길이가 같고 그 좌우편 벽도 다 길이가 같으며 또 그 문입구를 측량하니 너비가 열 자이며 길이가 열 석 자이었다. 또 방 앞에 퇴가 있는데 이편 퇴도 한 자이며 저편 퇴도 한 자이며 그 방은 이편도 여섯 자이며 저편도 여섯 자이었다. 그가 그 문입구를 측량하니 이 방 지붕가에서 저 방 지붕가까지 너비가 스물 다섯 자이며 방문은 서로 반대되었다.

[14-16절] 그가 또 현관을 척량하니 광이 20척이요 현관 사면에 뜰이 있으며 바깥 문통에서부터 안 문 현관 앞까지 50척이며 문지기 방에는 각각 닫힌 창이 있고 문 안 좌우편에 있는 벽 사이에도 창이 있고 그 현관도 그러하고 그 창은 안 좌우편으로 벌여 있으며 각 문 벽 위에는 종려나무를 새겼더라.

그가 또 현관을 측량했는데, 너비가 스무 자이며 현관 사면에 뜰이 있으며 바깥 문입구에서부터 안 문 현관 앞까지 쉰 자이었다. 문지기 방에는 각각 닫힌 창이 있고 문 안 좌우편에 있는 벽 사이에도 창이 있고 그 현관도 그러하고 그 창은 안 좌우편으로 벌여 있으며 각 문 벽 위에는 종려나무를 새겼다. 종려나무는 승리를 상징한다.

[17-19절] 그가 나를 데리고 바깥뜰에 들어가니 뜰 삼면에 박석 깔린 땅이 있고 그 박석 깔린 땅 위에 여러 방이 있는데 모두 삼십이며 그 박석 깔린 땅의 위치는 각 문간의 좌우편인데 그 광이 문간 길이와 같으니 이는 아래 박석 땅이며 그가 아래 문간 앞에서부터 안뜰 바깥 문간 앞까지 척량하니 그 광이 100척이며 동편과 북편이 일반이더라.

그가 에스겔을 데리고 바깥뜰에 들어갔다. 성전 뜰은 안뜰과 바깥뜰이 있다. 물론 이 두 뜰은 다 성전의 담 안에 있다. 바깥뜰 삼면에 박석 즉 얇은 돌 깔린 땅이 있고 그 박석 깔린 땅 위에 여러 개의 방들이 있는데 모두 30개이었다. 그 박석 깔린 땅의 위치는 동쪽, 북쪽, 남쪽 각 문간의 좌우편이며, 그 너비는 문간 길이와 같았다. 또 그가 담 바깥 문간 앞에서부터 안뜰 바깥 문간 앞까지 측량하였는데, 그 너비가 100자, 즉 약 50미터이며 동편과 북편도 같았다.

[20-23절] 그가 바깥뜰 북향한 문간의 장광을 척량하니 장이 50척이요 광이 25척이며 문지기 방이 이편에도 셋이요 저편에도 셋이요 그 벽과 그 현관도 먼저 척량한 문간과 같으며 그 창과 현관의 장, 광과 종려나무가 다 동향한 문간과 같으며 그 문간으로 올라가는 일곱 층계가 있고 그 안에 현관이 있으며 안뜰에도 북편 문간과 동편 문간과 마주 대한 문간들이 있는데 그가 이 문간에서 맞은편 문간까지 척량하니 100척이더라.

그가 바깥뜰 북쪽을 향한 문간의 길이와 너비를 측량하니 길이가 쉰 자이며 너비가 스물 다섯 자이며 문지기 방이 이편에도 셋이요 저편에도 셋이요 그 벽과 그 현관도 먼저 측량한 문입구와 같고 그 창과 현관의 길이, 너비와 종려나무가 다 동쪽을 향한 문간과 같았다. 그 문간으로 올라가는 일곱 층계가 있었다. 성전 밖에서 문으로 처음 들어올 때 층계는 일곱 단이다. 그 안에 현관이 있으며 안뜰에도 북편 문간과 동편 문간과 마주 대한 문간들이 있는데 그가 이 문간에서 맞은편 문간까지 측량하니 역시 100자이었다.

[24-27절] 그가 또 나를 이끌고 남으로 간즉 남향한 문간이 있는데 그 벽과 현관을 척량하니 먼저 척량한 것과 같고 그 문간과 현관 좌우에 있는 창도 먼저 말한 창과 같더라. 그 문간의 장이 50척이요 광이 25척이며 또 그리로 올라가는 일곱 층계가 있고 그 안에 현관이 있으며 또 이편, 저편 문 벽위에 종려나무를 새겼으며 안뜰에도 남향한 문간이 있는데 그가 남향한 그 문간에서 맞은편 문간까지 척량하니 100척이더라.

그가 또 에스겔을 이끌고 남으로 갔는데 거기엔 남쪽을 향한 문간이 있었다. 그는 그 벽과 현관을 측량했으며 그것은 먼저 측량한 것과 같고 그 문간과 현관 좌우에 있는 창도 먼저 말한 창과 같았다. 그 문간의 길이가 쉰 자이며 너비가 스물 다섯 자이며 그리로 올라가는 일곱 층계가 있고 그 안에 현관이 있으며 또 이편, 저편 문 벽 위에 종려나무를 새겼으며 안뜰에도 남쪽을 향한 문간이 있는데 그가 남쪽을 향한 그 문간에서 맞은편 문간까지 측량하니 100자였다.

[28-31절] 그가 나를 데리고 그 남문으로 말미암아 안뜰에 들어가서 그 남문간을 척량하니 척수는 장이 50척이요 광이 25척이며 그 문지기 방과 벽과 현관도 먼저 척량한 것과 같고 그 문간과 그 현관 좌우에도 창이 있으며 그 사면 현관의 장은 25척이요 광은 5척이며 현관이 바깥뜰로 향하였고 그 문 벽 위에도 종려나무를 새겼으며 그 문간으로 올라가는 여덟 층계가 있더라.

그가 에스겔을 데리고 그 남문으로 말미암아 안뜰에 들어가서 그 남문간을 측량하니 척수는 길이가 쉰 자이며 너비가 스물 다섯 자이며 그 문지기 방과 벽과 현관도 먼저 측량한 것과 같고 그 문간과 그 현관 좌우에도 창이 있으며 그 사면 현관의 길이는 스물 다섯 자이며 너비는 다섯 자이며 그 현관은 바깥뜰로 향했고 그 문 벽 위에도 종려나무를 새겼으며 그 문간으로 올라가는 여덟 층계가 있었다. 이와 같이, 성전의 처음 문, 즉 담을 통과하는 바깥문은 안뜰을 향하였고 두 번째 문은 바깥뜰을 향했고, 처음 문을 올라가는 데는 일곱 층계가 있었고 두 번째 문을 올라가는 데는 여덟 층계가 있었다.

[32-34절] 그가 나를 데리고 안뜰 동편으로 가서 그 문간을 척량하니 척수는 장이 50척이요 광이 25척이며 그 문지기 방과 벽과 현관이 먼저 척량한 것과 같고 그 문간과 그 현관 좌우에도 창이 있으며 그 현관이 바깥뜰로 향하였고 그 이편, 저편 문 벽 위에도 종려나무를 새겼으며 그 문간으로 올라가는 여덟 층계가 있더라.

그가 에스겔을 데리고 안뜰 동편으로 가서 그 문간을 측량했는데, 척수는 길이가 쉰 자이며 너비가 스물 다섯 자이었고, 그 문지기 방과 벽과 현관은 먼저 측량한 것과 같았고 그 문간과 그 현관 좌우에도 창이 있고 그 현관이 바깥뜰로 향했고 그 이편, 저편 문 벽 위에도 종려나무를 새겼고 그 문간으로 올라가는 여덟 층계가 있었다.

[35-37절] 그가 또 나를 데리고 북문에 이르러 척량하니 척수는 장이 50척이요 광이 25척이며 그 문지기 방과 벽과 현관이 다 그러하여 그 좌우에도 창이 있으며 그 현관이 바깥뜰로 향하였고 그 이편, 저편 문 벽 위에도 종려나무를 새겼으며 그 문간으로 올라가는 여덟 층계가 있더라.

그가 또 에스겔을 데리고 북문에 이르러 측량하였는데, 그 척수는 길이가 쉰 자이며 너비가 스물 다섯 자이었고, 그 문지기 방과 벽과 현관이 다 그러하여 그 좌우에도 창이 있으며 그 현관이 바깥뜰로 향하였고 그 이편, 저편 문 벽 위에도 종려나무를 새겼으며 그 문간으로 올라가는 여덟 층계가 있었다.

[38-43절] 그 문 벽 곁에 문이 있는 방이 있는데 그것은 번제물을 씻는 방이며 그 문의 현관 이편에 상 둘이 있고 저편에 상 둘이 있으니 그 위에서 번제와 속죄제와 속건제의 희생을 잡게 한 것이며 그 북문 바깥 곧 입구로 올라가는 곳 이편에 상 둘이 있고 문의 현관 저편에 상 둘이 있으니 문 곁 이편에 상이 넷이 있고 저편에 상이 넷이 있어 합이 여덟 상이라. 그 위에서 희생을 잡는 소용이며 또 다듬은 돌로 만들어서 번제에 쓰는 상 넷이 있는데 각 장이 1척 반이요 광이 1척 반이요 고가 1척이라. 번제의 희생을 잡을 때에 쓰는 기구가 그 위에 놓였으며 현관 안에는 길이가 손바닥 넓이만한 갈고리가 사면에 박혔으며 상들에는 희생의 고기가 있더라.

그 문 벽 곁에 문이 있는 방이 있는데 그것은 번제물을 씻는 방이며 그 문의 현관 이편에 상 둘이 있고 저편에 상 둘이 있으니 그 위에서 번제와 속죄제와 속건제의 희생을 잡게 한 것이며 그 북문 바깥 곧 입구로 올라오는 곳 이편에 상 둘이 있고 문의 현관 저편에 상 둘이 있으니 문 곁 이편에 상이 넷이 있고 저편에 상이 넷이 있어 합이 여덟 개의 상이 있었고 그것은 그 위에서 희생제물들을 잡는 데 쓰는 상이었다. 또 다듬은 돌로 만들어서 번제에 쓰는 상 네 개가 있는데 각 상의 길이가 한 척 반이며 너비가 한 척 반이고 높이는 한 척이었다. 번제의 희생제물을 잡을 때 쓰는 기구가 그 위에 놓여 있었고 현관 안에는 길이가 손바닥 넓이 만한 갈고리가 사면에 박혔으며 상들에는 희생제물의 고기가 있었다.

[44-47절] 안 문안 안뜰에는 방 둘이 있는데 북문 곁에 있는 방은 남으로 향하였고 남문 곁에 있는 방은 북으로 향하였더라. 그가 내게 이르되 남향한 이 방은 성전을 수직하는 제사장들의 쓸 것이요 북향한 방은 제단을 수직하는 제사장들의 쓸 것이라. 이들은 레위의 후손 중 사독의 자손으로서 여호와께 가까이 나아가 수종 드는 자니라 하고 그가 또 그 뜰을 척량하니 장이 100척이요 광이 100척이라. 네모 반듯하며 제단은 전 앞에 있더라.

안 문안 안뜰에는 방 둘이 있었다. 북문 곁에 있는 방은 남으로 향하였고 남문 곁에 있는 방은 북으로 향하였다. 입구가 서로 마주보는 방이었다. 남향한 이 방은 성전을 수직하는 제사장들의 쓸 것이요 북향한 방은 제단을 수직하는 제사장들의 쓸 것이다. 이들은 레위의 후손 중 사독의 자손으로서 여호와께 가까이 나아가 수종 드는 자이다. 그가 또 그 뜰을 측량했는데, 그 길이가 100자이며 너비도 100자이어서 네모 반듯하였고 번제단은 성전 앞, 곧 성소 앞에, 아마 안뜰 가운데 있었다.

[48-49절] 그가 나를 데리고 전문 현관에 이르러 그 문의 좌우 벽을 척량하니 광이 이편도 5척이요 저편도 5척이며 두께가 문 이편도 3척이요 문 저편도 3척이며 그 현관의 광은 20척이요 장은 11척이며 문간으로 올라가는 층계가 있고 문 벽 곁에는 기둥이 있는데 하나는 이편에 있고 하나는 저편에 있더라.

그가 에스겔을 데리고 성전 문 현관에 이르러 그 문의 좌우 벽을 측량했는데, 그 너비는 이편도 다섯 자이며 저편도 다섯 자이었고, 그 두께는 문 이편도 석 자요 문 저편도 석 자이었다. 그 현관의 너비는 스무 자이었고 길이는 열한 자이었다. 또 문간으로 올라가는 층계가 있었다. 이 층계는 세 번째 층계이다. 첫 번째는 성전 밖에서 바깥뜰로 들어오는 입구에 일곱 층계가 있었고, 두 번째는 바깥뜰에서 안뜰로 들어오는 입구에 여덟 층계가 있었고, 이 번은 세 번째이다. 또 문 벽 곁에는 두 개의 기둥이 하나는 이편에 있고 하나는 저편에 있었다. 그것은 솔로몬의 성전 앞 낭실의 두 기둥, 즉 야긴과 보아스라고 불리는 기둥과 같았다.

에스겔에게 주신 새 성전의 환상은 신약교회 시대를 예표한 것이라고 본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성전이시며 우리가 하나님께로 들어갈 수 있는 문이시다. 이스라엘의 회복의 예언은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과 십자가 대속 사역으로 이루어질 신약시대를 예표하였다고 본다. 왜냐하면 그것은 이스라엘 백성이 스룹바벨 때 바벨론 포로생활로부터 고향으로 돌아온 것에서 부분적으로 성취되었을 뿐이기 때문이며, 또 신약시대 이후에는, 히브리서가 증거하는 대로, 성전과 제사 제도의 회복 같은 예언들이 문자적으로 성취되기 불가능하다고 보기 때문이다. 우리는 에스겔 40장 이하의 예언들이 신약교회 시대를 상징적으로 예언하였다고 이해한다. 물론 신약시대는 장차 예수님의 재림으로 임할 천국으로 완성될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성전이시며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성전이 되었다(고전 3:16).

본장은 몇 가지 교훈을 준다. 첫째로, 우리는 하나님의 보호를 감사하자. 성전 담은 각각 약 3미터 두께와 높이의 담이었다. 그것은 튼튼한 보호를 상징한다. 또 성전으로 들어가려면 문지기 여섯 명이 지키는 문입구를 두 개나 통과해야 했다. 즉 그곳은 엄격히 통제된 곳이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성전된 우리를 우리를 안전하게 보호하실 것이다.

둘째로, 우리는 각자의 위치에서 임무를 다하며 충성하자. 에스겔의 성전구조는 설계도면과 같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일을 세밀하게 계획하시며 행하신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몸의 지체로서 그가 주신 은혜의 분량에 따라 믿음으로 건전하게 생각하고 각자의 직무에 충실하자.

셋째로, 우리는 더욱 경건하고 거룩하게 하나님을 섬기자. 성전으로 들어가는 데는 문이 세 개 있었고 각 문에 들어가려면 처음에는 일곱 개, 두 번째는 여덟 개, 또 세 번째도 층계들을 올라가야 했다. 또 문벽에는 종려나무가 새겨져 있어서 승리를 기대하게 된다. 우리는 주께로 가까이 나아갈수록, 주님과 더 깊은 교제를 가질수록, 우리는 더욱 경건하고 거룩하게 살자. 그때 승리는 우리의 것이다.  

 

에스겔이 본 성전 평면도

(이병규, 성경강해: 에스겔-다니엘, 39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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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장: 성소

[1-2절] 그가 나를 데리고 성소에 이르러 그 문벽을 척량하니 이편 두께도 6척이요 저편 두께도 6척이라. 두께가 이와 같으며 그 문통의 광(廣)이 10척이요 문통 이편 벽의 광이 5척이요 저편 벽의 광이 5척이며 그가 성소를 척량하니 그 장이 40척이요 그 광이 20척이며.

천사는 에스겔을 데리고 성소에 이르러 그 문벽을 측량하였다. ‘문벽’이라는 원어(아일)는 ‘기둥’이라는 뜻이다. 기둥의 이편 두께는 여섯 자요 저편 두께도 여섯 자이었다.11) 그 문통의 너비가 열 자이며 문통 이편 벽의 너비가 다섯 자요 저편 벽의 너비도 다섯 자이었다. ‘문통’이라는 원어(페사크)는 ‘문간’이라는 뜻이다. 그가 성소를 측량하니 그 길이가 마흔 자 즉 약 20미터이며, 그 너비가 스무 자 즉 약 10미터이었다.

[3-4절] 그가 안으로 들어가서 내전 문통의 벽을 척량하니 두께가 2척이요 문통이 6척이요 문통의 벽의 광(廣)이 각기 7척이며 그가 내전을 척량하니 장(長)이 20척이요 광이 20척이라. 그가 내게 이르되 이는 지성소니라 하고.

그가 안으로 들어가 내전(內殿) 곧 지성소의 문통의 벽 즉 문간의 벽기둥을 측량하니 그 두께가 두 자이며 문통이 여섯 자이며, 이것은 문간의 높이가 여섯 자라는 뜻일 것이며, 문통의 벽의 너비, 원문에는 단순히 문간의 너비가 각기 일곱 자이었다. 그는 내전을 측량했는데 길이가 스무 자, 즉 약 10미터이며 너비가 스무 자, 즉 약 10미터이었다. 그 천사는 에스겔에게, “이것이 지성소니라”고 말했다.

[5-7절] 전의 벽을 척량하니 두께가 6척이며 전 삼면에 골방이 있는데 광이 각기 4척이며 골방은 삼층인데 골방 위에 골방이 있어 모두 삼십이라. 그 삼면 골방이 전 벽 밖으로 그 벽에 의지하였고 전 벽 속은 범하지 아니하였으며 이 두루 있는 골방이 그 층이 높아갈수록 넓으므로 전에 둘린 이 골방이 높아갈수록 전에 가까워졌으나 전의 넓이는 아래 위가 같으며 골방은 아랫층에서 중층으로 윗층에 올라가게 되었더라.

전의 기둥을 측량하니 두께가 여섯 자이며 전 삼면에 골방이 있는데 너비가 각기 넉 자이며 골방은 삼층인데 골방 위에 골방이 있어 모두 삼십 개이었다. 그 삼면 골방이 전 벽 밖으로 그 벽에 의지하였고 전 벽 속은 범하지 아니하였으며 이 두루 있는 골방들이 그 층이 높아갈수록 넓으므로 전에 둘린 이 골방이 높아갈수록 전에 가까워졌으나 전의 넓이는 아래위가 같으며 골방은 아래층에서 중층으로 위층에 올라가게 되었다. 이 골방은 아마 레위인들의 찬송과 기도의 방으로 사용되었을 것이다. 역대상 9:33, “또 찬송하는 자가 있으니 곧 레위 족장이라. 저희가 골방에 거하여 주야로 자기 직분에 골몰하므로 다른 일은 하지 아니하였더라.”

[8-11절] 내가 보니 전 삼면의 지대 곧 모든 골방 밑 지대의 고가 한 장대 곧 큰 자로 6척인데 전을 의지한 그 골방 바깥 벽 두께는 5척이요 그 외에 빈터가 남았으며 전 골방 삼면에 광이 20척 되는 뜰이 둘려 있으며 그 골방 문은 다 빈 터로 향하였는데 한 문은 북으로 향하였고 한 문은 남으로 향하였으며 그 둘려 있는 빈터의 광은 5척이더라.

전 삼면의 지대(地臺) 곧 모든 골방 밑 지대의 높이는 한 장대 곧 큰 자로 여섯 자, 즉 약 3미터이었다. 그 3미터는 안뜰에서 성소로 들어가는 층계(겔 40:49)의 전체 높이가 된다. 그러면 그 층계는 한 계단이 30센티미터이면 10개이며, 25센티미터이면 12개이었을 것이다. 또 전을 의지한 그 골방 바깥벽 두께는 다섯 자이며 그 외에 빈터가 남았으며 전 골방 삼면에 너비가 스무 자 되는 뜰이 둘려 있었다. 그 골방 문은 다 빈터로 향했는데 한 문은 북으로 향하였고 한 문은 남으로 향했으며 그 둘려 있는 빈터의 너비는 다섯 자이었다.

[12-15절] 서편 뜰 뒤에 건물이 있는데 광이 70척이요 장이 90척이며 그 사면 벽의 두께가 5척이더라. 그가 전을 척량하니 장이 100척이요 또 서편 뜰과 그 건물과 그 벽을 합하여 장이 100척이요 전 전면의 광이 100척이요 그 앞 동향한 뜰의 광도 그러하며 그가 뒷뜰 뒤에 있는 건물을 척량하니 그 좌우편 다락까지 100척이더라.

서편, 즉 성전의 뒤편 뜰 뒤에 건물이 있는데 너비가 칠십 자이며 길이가 구십 자이었고 그 사면 벽의 두께가 다섯 자이었다. 그가 전을 측량하니 길이가 100자 곧 약 50미터이며, 또 서편 뜰과 그 건물과 그 벽을 합해 길이가 100자 곧 약 50미터이었다. 전 전면의 너비와 그 앞 동향한 뜰의 너비도 100자, 곧 약 50미터이며, 또 그가 뒤뜰 뒤에 있는 건물을 측량하니 그 좌우편 다락까지도 100자 곧 약 50미터이었다. 이와 같이, 성전의 구조도는 매우 수학적이었다.

[15-17절] . . . 내전과 외전과 그 뜰의 현관과 문통 벽과 닫힌 창과 삼면에 둘려 있는 다락은 문통 안편에서부터 땅에서 창까지 널판으로 가리웠고 (창은 이미 닫히었더라.) 문통 위와 내전과 외전의 사면 벽도 다 그러하니 곧 척량한 대소대로며.

내전(內殿)과 외전(外殿)과 그 뜰의 현관과 문간 기둥들과 닫힌 창과 삼면에 둘려 있는 다락은 문간 안편에서부터 땅에서 창까지 널판으로 가리웠고 창은 이미 닫히었다. 문간 위와 내전과 외전의 사면 벽도 다 그러하니 곧 측량한 크기대로이었다.

[18-20절] 널판에는 그룹들과 종려나무를 새겼는데 두 그룹 사이에 종려나무 하나가 있으며 매 그룹에 두 얼굴이 있으니 하나는 사람의 얼굴이라. 이편 종려나무를 향하였고 하나는 어린 사자의 얼굴이라. 저편 종려나무를 향하였으며 온 전 사면이 다 그러하여 땅에서부터 문통 위에까지 그룹들과 종려나무들을 새겼으니 성전 벽이 다 그러하더라.

널판에는 그룹들과 종려나무를 새겼는데 두 그룹 사이에 종려나무 하나가 있으며 매 그룹에 두 얼굴이 있으니 하나는 사람의 얼굴이며 이편 종려나무를 향했고 하나는 어린 사자의 얼굴이며 저편 종려나무를 향했으며 온 전 사면이 다 그러하여 땅에서부터 문간 위까지 그룹들과 종려나무들을 새겼으니 성전 벽이 다 그러하였다. 종려나무는 기쁨과 승리를 상징할 것이다(계 7:9). 그룹 천사들의 두 얼굴도 상징적이다. 사람의 얼굴은 그의 지혜를, 어린 사자의 얼굴은 그의 용맹을 상징할 것이다. 그것은 천사들이 지혜롭게, 용맹스럽게 하나님의 일을 수행하고 있음을 나타낼 것이다.

[21-22절] 외전 문설주는 네모졌고 내전 전면에 있는 식양은 이러하니 곧 나무 제단의 고가 3척이요 장이 2척이며 그 모퉁이와 옆과 면을 다 나무로 만들었더라. 그가 내게 이르되 이는 여호와의 앞의 상이라 하더라.

외전 문설주는 네모졌고 내전 전면에 있는 나무 제단의 높이는 석 자이며 길이는 두 자이며 그 모퉁이와 옆과 면을 다 나무로 만들었다. 그것은 여호와 앞의 상이었다. 이것은 분향단이라고 보인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중보 기도를 상징한다.

[23-26절] 내전과 외전에 각기 문이 있는데 문마다 각기 두 문짝 곧 접치는 두 문짝이 있어 이 문에 두 짝이요 저 문에 두 짝이며 이 성전 문에 그룹과 종려나무를 새겼는데 벽에 있는 것과 같고 현관 앞에는 나무 디딤판이 있으며 현관 좌우편에는 닫힌 창도 있고 종려나무도 새겼고 전의 골방과 디딤판도 그러하더라.

내전과 외전에 각기 문이 있는데 문마다 각기 두 문짝 곧 접치는 두 문짝이었고 이 문에 두 짝, 저 문에 두 짝이었다. 이 성전문에 그룹과 종려나무를 새겼는데 벽에 있는 것과 같았다. 현관 앞에는 나무 디딤판이 있으며 현관 좌우편에는 닫힌 창도 있고 종려나무도 새겼고 전의 골방과 디딤판도 그러하였다. ‘디딤판’(아브)이라는 원어는 건축용어일 것이나 그 정확한 뜻을 모른다고 한다(BDB, KB). 그것은 영어번역에서는 ‘두꺼운 널판’(KJV), ‘문지방’(NASB), ‘돌출부분’(NIV) 등으로 번역되었다.

본장의 교훈은 무엇인가? 구약시대의 성전은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사역을 상징하며 예표하였다. 에스겔에게 계시된 이스라엘의 회복과 성전의 환상은 주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으로 시작되고 그의 재림으로 완성될 일들을 예표할 것이다.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의 중보자이시며 지금도 하나님 보좌 오른편에서 중재사역을 하고 계신다. 에스겔 40장 이하의 새 성전 환상은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과 신약교회를 상징적으로 표현한 것일 것이다. 그러나 본장은 부수적으로 몇 가지 교훈을 담고 있다.

첫째로, 우리는 골방에서의 찬송과 기도를 힘쓰자. 성소와 지성소의 둘레에는 30개의 골방들이 있었다. 그것은 성전 봉사에 수종 드는 레위인들의 찬송과 기도의 골방이었을 것이다(대상 9:33). 그것은 하나님의 성전에 합당하다. 하나님을 섬기는 자들은 늘 찬송과 기도의 골방에 들어가기를 힘써야 할 것이다. 우리는 찬송과 기도를 힘쓰자.

둘째로, 우리는 하늘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의 보좌를 바라보며 올라가는 생활을 하자. 에스겔의 환상에 의하면, 바깥세상에서 성전 뜰 즉 바깥뜰로 들어갈 때 일곱 층계가 있었고, 바깥뜰에서 안뜰로 들어갈 때 여덟 층계가 있었으며, 안뜰에서 성소로 들어갈 때 10개 내지 12개의 층계가 있었다(겔 40:49; 41:8). 우리는 천성을 바라보며 올라가자. 우리는 하나님 중심, 천국 중심, 의 중심으로만 살자.

셋째로, 우리는 지혜와 용맹을 가지고 하나님을 섬기자. 문과 문간과 내전과 외전의 사면 벽의 널판들에 새겨진 그룹 천사들은 사람과 어린 사자의 두 얼굴을 가지고 있었다. 그것은 지혜와 용맹을 상징할 것이다. 우리는 지혜와 용기를 가진, 하나님의 일꾼이 되자.

넷째로, 우리는 기쁨과 승리의 확신을 가지고 하나님을 섬기자. 문과 문간과 내전과 외전의 사면 벽의 널판들에 새겨진 종려나무는 기쁨과 승리를 상징한다. 우리는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할 수 있고 하나님께서 주시는 승리를 확신할 수 있다. 우리는 이 확신을 가지고 살자.

 

 

42장: 제사장을 위한 방

[1-2절] 그가 나를 데리고 밖으로 나가 북편 뜰로 가서 두 방에 이르니 그 두 방의 하나는 골방 앞뜰을 향하였고 하나는 북편 건물을 향하였는데 그 방들의 자리의 장(長)이 100척이요 광(廣)이 50척이며 그 문은 북을 향하였고.

천사는 에스겔을 데리고 밖으로 나가 북편 뜰로 가서 한 방에 이르렀다. ‘두 방’이라는 원어(리쉬카)는 ‘방’이라는 단수명사이다. 그 방은 ‘골방 앞뜰,’ 원문에는 ‘거룩한 곳’ 즉 안뜰 건너편, 북편 건물 건너편에 있었다. 그 방들의 자리의 길이는 100자, 즉 약 50미터이며 너비는 쉰 자, 즉 약 25미터이며 그 문은 북을 향하였다.

[3-5절] 그 방 삼층에 툇마루들이 있는데 한 방의 툇마루는 20척 되는 안뜰과 마주 대하였고 한 방의 툇마루는 바깥뜰 박석 깔린 곳과 마주 대하였으며 그 두 방 사이에 통한 길이 있어 광(廣)이 10척이요 장(長)이 100척이며 그 문들은 북을 향하였으며 그 상층의 방은 제일 좁으니 이는 툇마루들을 인하여 하층과 중층보다 상층이 더 줄어짐이라.

그 방은 삼층으로 되었고 각층에 툇마루, 원문의 뜻은 ‘복도’(아티크)가 있었다. 그 복도는 스무 자 되는 안뜰과 마주 대하였고 또 박석 깔린 바깥뜰과도 마주 대하였다. 그 사이에 통한 길이 있어 너비가 열 자, 즉 약 5미터이며 길이가 100자, 즉 약 50미터이었다. 문들은 북을 향했다. 그 상층의 방은 제일 좁았다. 그것은 복도 때문에 상층이 하층과 중층보다 더 줄어지기 때문이었다.

[6-9절] 그 방이 삼층이라도 뜰의 기둥 같은 기둥이 없으므로 그 상층이 하층과 중층보다 더욱 좁아짐이더라. 그 한 방의 바깥 담 곧 뜰의 담과 마주 대한 담의 장(長)이 50척이니 바깥뜰로 향한 방의 장이 50척임이며 성전 앞을 향한 방은 100척이며 이 방들 아래에 동편에서 들어가는 통행구가 있으니 곧 바깥뜰에서 들어가는 통행구더라.

그 방은 삼층이라도 뜰의 기둥 같은 기둥이 없기 때문에 그 상층이 하층과 중층보다 더욱 좁아졌다. 그 방의 바깥 담 곧 바깥뜰의 담과 마주 대한 담의 길이가 쉰 자, 즉 약 25미터이며, 성전 앞을 향한 방의 길이는 100자, 즉 약 50미터이었고, 그 방들 아래에 동편에서 들어가는 통행구가 있었다. 곧 바깥뜰에서 들어가는 통행구이었다.

[10-12절] 남편 골방 뜰 맞은편과 남편 건물 맞은편에도 방 둘이 있는데 그 두 방 사이에 길이 있고 그 방들의 모양은 북편 방 같고 그 장광(長廣)도 같으며 그 출입구와 문도 그와 같으며 이 남편 방에 출입하는 문이 있는데 담 동편 길머리에 있더라.

10-11절의 원문은 “동쪽으로 향한 뜰 맞은편과 건물 맞은편에도 방들이 있는데 그 방들 앞에 길이 있고 그 모양은 북편 방 같고 그 길이와 너비도 같으며 그 출입구와 문도 그와 같으며”라고 번역해야 맞을 것이다(KJV, NASB, BDB). 그러나 문맥적으로 보아, 한글개역성경처럼, 1-9절은 북편 뜰의 방에 대해, 또 10-12절은 남편 뜰의 방에 대해 설명하는 것으로 번역한 성경도 있다(LXX, NIV).

[13-14절] 그가 내게 이르되 좌우 골방 뜰 앞 곧 북편 남편에 있는 방들은 거룩한 방이라. 여호와를 가까이 하는 제사장들이 지성물을 거기서 먹을 것이며 지성물 곧 소제와 속죄제와 속건제의 제물을 거기 둘 것이며 이는 거룩한 곳이라. 제사장의 의복은 거룩하므로 제사장이 성소에 들어갔다가 나올 때에 바로 바깥뜰로 가지 못하고 수종 드는 그 의복을 그 방에 두고 다른 옷을 입고 백성의 뜰로 나갈 것이니라 하더라.

‘좌우 골방 뜰’이라는 원문(기즈라)은 ‘구별된 곳’ 즉 구별된 뜰이라는 뜻으로 이해된다. 본문은 앞절에서 말한 북편의 방들과 남편의 방들의 용도에 대해 말한다. 그 방들은 하나님을 섬기는 제사장들이 지극히 거룩한 제물을 먹는 곳이며 또 소제물과 속죄제물과 속건제물을 두는 곳이다. 그 방들은 거룩한 곳이다. 또한 그 방들은 제사장들이 성소에 들어갈 때 입는 옷을 두는 곳으로도 사용되었다.

[15-20절] 그가 안에 있는 전 척량하기를 마친 후에 나를 데리고 동향한 문 길로 나가서 사면 담을 척량하는데 그가 척량하는 장대 곧 그 장대로 동편을 척량하니 5백척이요 그 장대로 북편을 척량하니 5백척이요 그 장대로 남편을 척량하니 5백척이요 서편으로 돌이켜 그 장대로 척량하니 5백척이라. 그가 이와 같이 그 사방을 척량하니 그 사방 담 안 마당의 장과 광이 5백척씩이라. 그 담은 거룩한 것과 속된 것을 구별하는 것이더라.

천사는 안에 있는 전 측량하기를 마친 후에 에스겔을 데리고 동향한 문 길로 나가서 사면 담을 측량하였다. 그는 측량하는 장대 곧 그 장대로 동편을 측량하니 500자, 즉 약 250미터이며 그 장대로 북편을 측량하니 500자, 즉 약 250미터이었다. 그가 그 장대로 남편을 측량하니 500자, 즉 약 250미터이며 그 장대로 서편을 측량하니 500자, 즉 약 250미터이었다. 그가 이와 같이 그 사방을 측량하니 그 사방 담 안 마당의 길이와 너비가 500자씩이었다. 그 담은 거룩한 것과 속된 것을 구별하는 것이었다.

본장에서 우리는 두어가지 교훈을 찾는다. 첫째로, 우리는 거룩한 옷을 입고 거룩한 제물을 먹는 제사장이 되어야 할 것이다. 신약성경은 예수 믿는 신자를 제사장이라고 말한다(벧전 2:5, 9). 그러므로 우리는 거룩한 옷을 입는 제사장처럼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우리의 옷을 항상 깨끗하게 빨고(계 7:14), 또 거룩한 제물을 먹는 제사장처럼 항상 예수 그리스도의 피 흘리신 속죄사역을 믿고 하나님을 섬기자.

둘째로, 신약교회는 세상과 구별되어야 한다. 에스겔이 본 새 성전의 바깥뜰의 사면 담은 길이와 너비가 250미터씩이었다. 그것은 거룩한 것과 속된 것을 구별하는 것이다. 교회는 세상과 구별되어야 한다. 경건과 도덕성으로 구별되어야 한다. 그러므로 신약교회는 세속주의를 경계해야 한다. 우리는 세상을 본받지 말아야 한다(롬 12:2). 우리는 세상과 구별되게 경건하고 바르고 선하고 진실하게 살아야 한다.

 

 

43장: 번제단

[1-5절] 그 후에 그가 나를 데리고 문에 이르니 곧 동향한 문이라. 이스라엘 하나님의 영광이 동편에서부터 오는데 하나님의 음성이 많은 물소리 같고 땅은 그 영광으로 인하여 빛나니 그 모양이 내가 본 이상 곧 전에 성읍을 멸하러 올 때에 보던 이상 같고 그발 하숫가에서 보던 이상과도 같기로 내가 곧 얼굴을 땅에 대고 엎드렸더니 여호와의 영광이 동문으로 말미암아 전으로 들어가고 성신이 나를 들어 데리고 안뜰에 들어가시기로 내가 보니 여호와의 영광이 전에 가득하더라.

천사는, 지난 장에서 읽은 대로 제사장들을 위한 방들을 측량하고 성전 바깥뜰 담까지 측량한 후에, 에스겔을 데리고 동향한 문에 이르렀다. 이스라엘 하나님의 영광이 동편에서부터 오는데 하나님의 음성이 많은 물소리 같고 땅은 그 영광으로 인하여 빛났다. 하나님의 영광의 모습은 에스겔이 이전에 그발강가에서 이상 중에 본 것(에스겔 1장)이나 예루살렘의 멸망을 예언하기 위하여(에스겔 5장 등) 본 이상과 같았다. 그는 곧 얼굴을 땅에 대고 엎드렸다. 여호와의 영광은 동문을 통해 전으로 들어가셨고 성령이 그를 데리고 안뜰에 들어가셨다. 그가 보니 여호와의 영광이 성전 안에 가득하였다.

[6-9절] 들은즉 누구인지 전에서 내게 말하더니 사람이 내 곁에 서서 내게 이르시되 인자야, 이는 내 보좌의 처소, 내 발을 두는 처소, 내가 이스라엘 족속 가운데 영원히 거할 곳이라. 이스라엘 족속 곧 그들과 그 왕들이 음란히 행하며 그 죽은 왕들의 시체로 다시는 내 거룩한 이름을 더럽히지 아니하리라. 그들이 그 문지방을 내 문지방 곁에 두며 그 문설주를 내 문설주 곁에 두어서 그들과 나 사이에 겨우 한 담이 막히게 하였고 또 그 행하는 가증한 일로 내 거룩한 이름을 더럽혔으므로 내가 노하여 멸하였거니와 이제는 그들이 그 음란과 그 왕들의 시체를 내게서 멀리 제하여 버려야 할 것이라. 그리하면 내가 영원토록 그들의 가운데 거하리라.

성전은 하나님께서 거하시는 곳이다. 그러나 그들은 영적인 음란, 곧 우상숭배로 하나님의 거룩한 이름을 더럽히며 하나님께서 성전을 멀리 떠나시게 했다. 신약교회도 성전이다(고전 3:16). 그러나 교회가, 성도들이, 범죄하고 회개치 않으면 하나님께서는 교회를 버리실 것이며 그 촛대를 옮기실 것이다(계 2:5). 신약교회와 성도들이 하나님과 교제하며 밀접히 연합하는 복을 계속 누리려면 무엇보다 신앙적으로, 도덕적으로 거룩해야 한다.

[10-12절] 인자야, 너는 이 전을 이스라엘 족속에게 보여서 그들로 자기의 죄악을 부끄러워하고 그 형상을 측량하게 하라. 만일 그들이 자기의 행한 모든 일을 부끄러워하거든 너는 이 전의 제도와 식양과 그 출입하는 곳과 그 모든 형상을 보이며 또 그 모든 규례와 그 모든 법도와 그 모든 율례를 알게 하고 그 목전에 그것을 써서 그들로 그 모든 법도와 그 모든 규례를 지켜 행하게 하라. 전의 법은 이러하니라. 산꼭대기 지점의 주위는 지극히 거룩하리라. 전의 법은 이러하니라.

‘형상’이라는 원어(토크니스)는 ‘도면’ 즉 성전 구조에 대한 도면이라는 뜻이라고 본다(NASB, NIV).12) 하나님께서는 완전한 성전예배와 온전한 율법 순종을 요구하셨다. 전에는 그들이 범죄함으로 성전이 파괴되었었다. 또 그는 성전의 법을 말씀하셨고 또 “산꼭대기 지점의 주위는 지극히 거룩하리라”고 하셨다.

[13-17절] 제단의 척수는 이러하니라. (한 자는 팔꿈치에서부터 손가락에 이르고 한 손바닥 넓이가 더한 것이라.) 제단 밑받침의 고가 1척이요 그 사면 가장자리의 광이 1척이며 그 가으로 둘린 턱의 광이 한뼘이니 이는 제단 밑받침이요 이 땅에 닿은 밑받침 면에서 아랫층의 고가 2척이요 그 가장자리의 광이 1척이며 이 아랫층 면에서 이층의 고가 4척이요 그 가장자리의 광이 1척이며 그 번제단 윗층의 고가 4척이며 그 번제하는 바닥에서 솟은 뿔이 넷이며 그 번제하는 바닥의 장이 12척이요 광이 12척이니 네모 반듯하고 그 아랫층의 장이 14척이요 광이 14척이니 네모 반듯하고 그 밑받침에 둘린 턱의 광이 반척이며 그 가장자리의 광이 1척이니라. 그 층계는 동을 향하게 할지니라.

그는 번제단에 대해 말씀하신다. 한 자는 팔꿈치에서부터 손가락에 이르고 한 손바닥 넓이가 더한 것, 즉 약 50센티미터이다. 제단 밑받침의 높이는 한 자이며 그 사면 가장자리의 너비가 한 자이며 그 가로 둘린 턱의 너비가 한 뼘이니 이는 제단 밑받침이다.13) 14절 이하에서 ‘아랫층’ ‘윗층’의 ‘층’이라는 원어(아자라)는 ‘울타리’(enclosure, ledge)라는 뜻이다(NASB, NIV, BDB, KB). 또 ‘번제단 윗층’(하르엘)과 ‘번제하는 바닥’(아리엘)이라는 원어는 ‘번제단 화로’라는 뜻이다(BDB, NASB, NIV).

밑받침 면에서 아랫울타리의 높이는 두 자, 즉 약 1미터이며 그 가장자리의 너비는 한 자이며 이 작은[낮은] 울타리에서 큰[높은] 울타리의 높이는 넉 자, 즉 약 2미터이며 그 가장자리의 너비가 한 자이다. 번제단 화로의 높이는 넉 자, 즉 약 2미터이며 그 번제하는 바닥에서 솟은 뿔이 넷이며 그 번제단 화로의 길이는 열두 자, 즉 약 6미터이며 너비가 열두 자, 즉 약 6미터이니 네모 반듯하다. 그 울타리 즉 높은 울타리의 길이는 열 넉 자, 즉 약 7미터이며 너비는 열 넉 자, 즉 약 7미터이니 네모 반듯하고 그 밑받침에 둘린 턱의 너비는 반 자이며 그 가장자리의 너비는 한 자이다.

번제단의 밑받침, 낮은 울타리, 높은 울타리, 그리고 화로를 다 포함하면, 번제단의 전체 높이는 열한 자, 즉 약 5.5미터이며, 밑받침의 길이와 너비는 열여덟 자 즉 약 9미터이다. 이전에 솔론몬 성전의 놋단의 높이는 10규빗, 즉 약 4.5미터이었고 길이와 너비는 20규빗, 즉 약 9미터이었다(대하 4:1). 또 그 층계는 동을 향할 것이다.

[18-21절] 그가 내게 이르시되 인자야, 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이 제단을 만드는 날에 그 위에 번제를 드리며 피를 뿌리는 규례가 이러하니라. 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나를 가까이 하여 내게 수종 드는 사독의 자손 레위 사람 제사장에게 너는 어린 수송아지 하나를 주어 속죄제물을 삼되 네가 그 피를 취하여 제단의 네 뿔과 아랫층 네 모퉁이와 사면 가장자리에 발라 속죄하여 제단을 정결케 하고 그 속죄제물의 수송아지를 취하여 전의 정한 처소 곧 성소 밖에서 불사를지며.

하나님께서는 속죄제물과 피 뿌리는 규례를 말씀하셨다.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완전히 이루실 일들이라고 본다.

[22-26절] 다음 날에는 흠 없는 숫염소 하나로 속죄제물을 삼아 드려서 그 제단을 정결케 하기를 수송아지로 정결케 함과 같이 하고 정결케 하기를 마친 후에는 흠 없는 수송아지 하나와 떼 가운데서 흠 없는 숫양 하나를 드리되 나 여호와 앞에 받들어다가 제사장은 그 위에 소금을 쳐서 나 여호와께 번제로 드릴 것이며 칠일 동안은 매일 염소 하나를 갖추어 속죄제물을 삼고 또 어린 수송아지 하나와 떼 가운데서 숫양 하나를 흠 없는 것으로 갖출 것이며 이와 같이 7일 동안 제단을 위하여 속죄제를 드려 정결케 하며 봉헌할 것이요.

하나님께 드리는 속죄제물은 ‘흠 없는’ 것들이어야 하였다(22, 23, 23, 25절). 그것은 장차 오실 예수 그리스도의 완전한 제물 되심을 예표하였다. 제물에 소금을 뿌리는 것은 무슨 뜻이 있는가? 소금은 음식물의 변질을 방지하기 위해 쓰는 재료이다. 그러므로 소제물에 소금을 치는 것이나(레 2:13) 번제물들에 소금을 뿌리는 것은 하나님의 언약의 불변성과 영속성을 상징할 것이다. 그러므로 성경에는 하나님의 언약을 ‘소금 언약’이라고 표현했다(민 18:19; 대하 13:5). 또 7일 동안 번제단을 위해 속죄제를 드려 정결케 하는 것은 완전한 속죄제사를 예표하는 것 같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자기 피로 한 영원한 제사를 드리셨고(히 10:12) 영원한 속죄를 이루셨다(히 9:12).

[27절] 이 모든 날이 찬 후 제8일에와 그 다음에는 제사장이 제단 위에서 너희 번제와 감사제를 드릴 것이라. 그리하면 내가 너희를 즐겁게 받으리라. 나 주 여호와의 말이니라 하시더라.

‘감사제’라는 원어(솰메켐)는 ‘화목제물들’이라는 뜻이다. 번제물이나 화목제물도 일차적으로는 속죄의 의미가 있으나 또한 각각 성도들의 헌신과 순종, 그리고 교제와 감사의 의미도 있다.

본장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예수 그리스도의 완전한 속죄사역을 기억하자. 번제단은 흠 없는 짐승 제물로 7일 동안 정결케 했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흠 없는 속죄제물 되심과 완전한 속죄사역을 예표하였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완전한 속죄사역을 기억하자.

둘째로, 우리는 우상숭배와 음란을 버림으로써 하나님과 동거하며 동행하자. 이스라엘 백성의 영적 음란 곧 우상숭배는 하나님을 진노케 하였고 그로 하여금 그들을 멀리 떠나게 하였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의 피 안에 거하며 거룩과 의와 선을 힘써 행하자.

셋째로, 우리는 이제 하나님의 모든 교훈을 지켜 행하자.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족속에게 성전 도면을 보이시며 그 모든 규례와 법도와 율례를 알게 하시고 지켜 행하게 하셨다(11절). 회복될 이스라엘은 이제 하나님의 모든 법도를 지켜 행해야 하였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그의 모든 교훈을 지켜 온전케 되기를 원하신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온전함을 원하신다.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온전히 행해야 한다.

넷째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하나님께 헌신하며 순종하며 교제하며 감사하자. 27절, “이 모든 날이 찬 후 제8일에와 그 다음에는 제사장이 제단 위에서 너희 번제들과 화목제들을 드릴 것이라. 그리하면 내가 너희를 즐겁게 받으리라.” 하나님의 은혜와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 사역으로 구원받은 우리는 이제 우리의 몸을 하나님께 드리며 그의 뜻에 온전히 순종하며 하나님과 교제하고 그에게 항상 감사의 찬송을 올려야 한다. 이것은 성도의 마땅한 삶이다.

 

 

44장: 제사장의 법들

[1-3절] 그가 나를 데리고 성소 동향한 바깥문에 돌아오시니 그 문이 닫히었더라.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이 문은 닫고 다시 열지 못할지니 아무 사람도 그리로 들어오지 못할 것은 이스라엘 하나님 나 여호와가 그리로 들어왔음이라. 그러므로 닫아 둘지니라. 왕은 왕인 까닭에 안 길로 이 문 현관으로 들어와서 거기 앉아서 나 여호와 앞에서 음식을 먹고 그 길로 나갈 것이니라.

하나님께서 에스겔을 데리고 성소 동향한 바깥문에 돌아오시니 그 문이 닫히었다. 그것은 안뜰의 동문일 것이다. 끝의 두 문장은 뜻이 분명치 않으나, 아마 “왕은 왕으로서 그 안에 앉아 여호와 앞에서 음식을 먹을 것이니라. 그는 그 문 현관길로 들어올 것이며 같은 길로 나갈 것이니라”(원문, NASB)인 것 같다.

[4-6절] 그가 또 나를 데리고 북문을 통하여 전 앞에 이르시기로 내가 보니 여호와의 영광이 여호와의 전에 가득한지라. 내가 얼굴을 땅에 대고 엎드린대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인자야, 너는 전심으로 주목하여 내가 네게 말하는 바 여호와의 전의 모든 규례와 모든 율례를 귀로 듣고 또 전의 입구와 성소의 출구를 전심으로 주의하고 너는 패역한 자 곧 이스라엘 족속에게 이르기를 주 여호와의 말씀이 이스라엘 족속아, 너희의 모든 가증한 일이 족하니라.

하나님께서 또 에스겔을 데리고 북문을 통하여 전 앞에 이르르셨고 에스겔이 보니 여호와의 영광이 여호와의 전에 가득하였다. 그는 얼굴을 땅에 대고 엎드렸는데, 여호와께서는 그에게 “이스라엘 족속아, 너희의 모든 가증한 일이 족하니라”고 말씀하셨다.

[7-9절] 대저 너희가 마음과 몸에 할례받지 아니한 이방인을 데려오고 내 떡과 기름과 피를 드릴 때에 그들로 내 성소 안에 있게 하여 내 전을 더럽히므로 너희의 모든 가증한 일 외에 그들이 내 언약을 위반케 하는 것이 되었으며 너희가 내 성물의 직분을 지키지 아니하고 내 성소에 사람을 두어 너희 직분을 대신 지키게 하였느니라. 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이스라엘 족속 중에 있는 이방인 중에 마음과 몸이 할례를 받지 아니한 이방인은 내 성소에 들어오지 못하리라.

옛날 이스라엘 백성은 마음과 몸에 할례를 받지 않은 이방인들을 성전 안에 데려옴으로 성전을 더럽혔었다. 그러나 이제 회복된 시대에는 그들 중에 마음과 몸이 할례를 받지 않은 이방인들은 하나님의 성전에 들어오지 못하게 해야 할 것이다. 구약의 할례, 특히 ‘마음과 몸의 할례’는 분명히 심령의 새로움, 즉 중생(重生)을 가리킬 것이다. 중생치 않은 자는 하나님의 교회의 참 교인이 될 수 없다.

[10-14절] 이스라엘 족속이 그릇하여 나를 떠날 때에 레위 사람도 그릇하여 그 우상을 좇아 나를 멀리 떠났으니 그 죄악을 담당하리라. 그러나 그들이 내 성소에서 수종 들어 전문을 맡을 것이며 전에서 수종 들어 백성의 번제의 희생과 및 다른 희생을 잡아 백성 앞에 서서 수종 들게 되리라. 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그들이 전에 백성을 위하여 그 우상 앞에서 수종 들어서 이스라엘 족속으로 죄악에 거치게 하였으므로 내가 내 손을 들어 쳐서 그들로 그 죄악을 담당하여 내게 가까이 나아와 제사장의 직분을 행치 못하게 하며 또 내 성물 곧 지성물에 가까이 오지 못하게 하리니 그들이 자기의 수욕과 그 행한 바 가증한 일을 담당하리라. 그러나 내가 그들을 세워 전을 수직하게 하고 전에 모든 수종 드는 일과 그 가운데서 행하는 모든 일을 맡기리라.

하나님께서는 또 레위인들을 새롭게 하여 다시 하나님을 섬기는 자들이 되게 하실 것을 말씀하셨다.

[15절] 이스라엘 족속이 그릇하여 나를 떠날 때에 사독의 자손 레위 사람 제사장들은 내 성소의 직분을 지켰은즉 그들은 내게 가까이 나아와 수종을 들되 내 앞에 서서 기름과 피를 내게 드릴지니라. 나 주 여호와의 말이니라.

사독은 아론의 아들 엘르아살의 후손으로서 압살롬의 반란 때에는 다윗에게 충성하였고(삼하 15장), 아도니야의 반란 때에는 솔로몬에게 충성하였다(왕상 1장). 그는 하나님의 나라에 끝까지 충성한 인물이었고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사독의 후손들을 회복된 이스라엘 나라의 제사장들로 삼겠다고 말씀하신 것이다.

[16-20절] 그들이 내 성소에 들어오며 또 내 상에 가까이 나아와 내게 수종 들어 나의 맡긴 직분을 지키되 그들이 안뜰 문에 들어올 때에나 안뜰 문과 전 안에서 수종 들 때에는 양털 옷을 입지 말고 가는 베 옷을 입을 것이니 가는 베 관을 머리에 쓰며 가는 베 바지를 입고 땀나게 하는 것으로 허리를 동이지 말 것이며 그들이 바깥뜰 백성에게로 나갈 때에는 수종 드는 옷을 벗어 거룩한 방에 두고 다른 옷을 입을지니 이는 그 옷으로 백성을 거룩케 할까 함이니라. 그들은 또 머리털을 밀지도 말며 머리털을 길게 자라게도 말고 그 머리털을 깎기만 할 것이며.

하나님께서는 사독의 자손 제사장들이 지킬 규례들을 말씀하셨다.

첫째로, 그들은 거룩한 옷을 입어야 했다. 그들은 성전 봉사 때에 양떨 옷을 입지 말고 가는 베옷을 입고 가는 베로 만든 관을 쓰고 가는 베 바지를 입어야 했다. 그 옷은 성전 봉사의 용도로만 사용하고 바깥뜰로 나갈 때는 다른 옷, 즉 평상적인 옷을 입어야 했다.

둘째로, 그들은 머리털을 밀지도 말고 그것을 길게 자라게도 말고 그것을 적당하게 깎기만 해야 했다. 그런 머리는 너무 과격하게 치우친 모양이 아닌, 단정한 모양일 것이다.

[21-24절] 아무 제사장이든지 안뜰에 들어갈 때에는 포도주를 마시지 말 것이며 과부나 이혼한 여인에게 장가들지 말고 오직 이스라엘 족속의 처녀나 혹시 제사장의 과부에게 장가들 것이며 내 백성에게 거룩한 것과 속된 것의 구별을 가르치며 부정한 것과 정한 것을 분별하게 할 것이며 송사하는 일을 재판하되 내 규례대로 재판할 것이며 내 모든 정한 절기에는 내 법도와 율례를 지킬 것이며 또 내 안식일을 거룩케 하며.

셋째로, 그들은 안뜰에 들어갈 때 포도주를 마시지 말아야 했는데, 그것은 취하여 실수치 않게 하기 위함일 것이다.

넷째로, 그들은 과부나 이혼한 여인에게 장가들지 말고 오직 이스라엘 족속의 처녀나 혹시 제사장의 과부에게 장가들어야 했다. 그것은 결혼에서도 제사장 직분의 품위를 지키기 위함인 것 같다.

다섯째로, 그들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거룩한 것과 속된 것의 구별을 가르치며 부정한 것과 정한 것을 분별하게 해야 했다.

여섯째로, 그들은 백성의 분쟁의 일을 재판하되 하나님의 규례대로 재판해야 했다. 그들은 공의의 판단자가 되어야 했다.

일곱째로, 그들은 하나님의 모든 정한 절기들에 하나님의 법도와 율례를 지켜야 하며 하나님의 안식일을 거룩히 지켜야 했다.

[25-27절] 시체를 가까이하여 스스로 더럽히지 못할 것이로되 부모나 자녀나 형제나 시집가지 아니한 자매를 위하여는 더럽힐 수 있으며 이런 자는 스스로 정결케 한 후에 7일을 더 지낼 것이요 성소에 수종 들려 하여 안뜰과 성소에 들어갈 때에는 속죄제를 드릴지니라. 나 주 여호와의 말이니라.

여덟째로, 그들은 시체를 가까이하여 자신을 더럽히지 말아야 했다. 단지 부모나 자녀나 형제나 시집가지 않은 자매를 위해서는 허용되었다. 그들은 자신을 정결케 한 후 7일을 더 지낸 후에 성소에 수종 들 것이며 그때 속죄제를 드려야 했다. 그것은 제사장의 특별한 정결함을 강조하는 것 같다.

[28-31절] 그들은 기업이 있으리니 내가 곧 그 기업이라. 너희는 이스라엘 가운데서 그들에게 산업[소유]을 주지 말라. 나는 그 산업[소유]이 됨이니라. 그들은 소제와 속죄제와 속건제의 제물을 먹을지니 이스라엘 중에서 구별하여 드리는 물건을 다 그들에게 돌리며 또 각종 처음 익은 열매와 너희 모든 예물 중에 각종 거제 제물(레쉬스)[처음 것]을 다 제사장에게 돌리고 너희가 또 첫 밀가루를 제사장에게 주어 그들로 네 집에 복이 임하도록 하게 하라. 무릇 새나 육축의 스스로 죽은 것이나 찢긴 것은 다 제사장이 먹지 못할 것이니라.

제사장이 지킬 이런 규례들을 말씀하신 후,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기업이 하나님 자신이라고 말씀하셨다. 하나님께서 그들의 기업과 소유이므로 그들은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께 드린 제물들을 그들의 소유로 받았다. 이스라엘 백성의 소득의 십일조는 레위인들에게 주었고 레위인들의 소득의 십일조는 제사장들에게 주었다. 그것은 ‘처음 것’(KJV, NASB) 혹은 ‘제일 좋은 것’(NIV)이었고 또 민수기 18: 28-32의 표현대로는 ‘아름다운 것’(켈렙) 혹은 ‘가장 좋은 것’ (KJV, NASB, NIV)이었다. 또 무릇 새나 가축의 죽은 것이나 찢긴 것은 제사장이 먹어서는 안 되었다.

에스겔이 본 내용은 우선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사역과 신약 성도가 누리는 복을 나타내지만, 또한 신약 성도에게 몇 가지 교훈을 준다.

첫째로, 성전에는 더 이상 마음과 몸에 할례를 받지 않은 이방인이 들어와서는 안 된다. 마음과 몸의 할례는 중생(重生)을 가리킬 것이다. 신약교회의 참 교인은 중생한 자이다. 우리는 참 교회를 세워야 한다.

둘째로, 우리는 충성된 사독의 자손이 되자. 우리는 죽도록 충성해야 한다. 요한계시록 2:10, “네가 장차 받을 고난을 두려워 말라. . . .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면류관을 네게 주리라.”

셋째로, 우리는 거룩한 제사장들이 되어야 한다. 사독의 자손 제사장들은 자신을 거룩히 구별하여 성별된 옷을 입고 머리를 단정히 하고 포도주를 마시지 말고 결혼에도 품위를 지키고 성속(聖俗)과 정결, 부정결을 구별해야 했다. 그들은 절기와 안식일을 지키고 시체로라도 자신을 더럽히지 않도록 해야 했다. 한마디로, 그들은 거룩함을 유지해야 했다. 신약 성도는 거룩한 제사장이 되어야 한다.

넷째로, 우리는 하나님만 기업으로 삼아야 한다. 우리는, 시편 73편의 저자와 같이, “하늘에서는 주 외에 누가 내게 있으리요 땅에서는 주밖에 나의 사모할 자 없나이다. 내 육체와 마음은 쇠잔하나 하나님은 내 마음의 반석이시요 영원한 분깃이시라”(시 73:25-26)고 고백하자.

 

 

45장: 왕을 위한 법들

[1-2절] 너희는 제비 뽑아 땅을 나누어 기업을 삼을 때에 한 구역을 거룩한 땅으로 삼아 여호와께 예물로 드릴지니 그 장(長)은 2만 5천척이요 광(廣)은 1만척이라. 그 구역 안 전부가 거룩하리라. 그 중에서 성소에 속할 땅은 장이 5백척이요 광이 5백척이니 네모 반듯하며 그 외에 사면 50척으로 뜰이 되게 하되.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땅의 분배에 대해 말씀하시되, 먼저 구별된 땅에 대해 말씀하셨다. 그는 이스라엘 백성이 제비뽑아 땅을 나누어 기업을 삼을 때 한 구역을 거룩한 땅으로 삼아 여호와께 예물로 드리라고 말씀하셨다. 그 거룩한 땅의 길이--이것은 동서의 길이일 것--는 2만 5천자, 즉 약 12.5킬로미터이며, 그것의 너비--이것은 남북의 길이일 것--는 1만자, 즉 약 5킬로미터이었다.14) 그 구역 안 전부가 거룩할 것이다. 그 중에서 성소에 속할 땅은 길이가 500자, 즉 약 250미터이며, 너비가 500자, 즉 약 250미터이니 네모 반듯하며 그 외에 사면으로 50자, 즉 약 25미터씩 뜰이 있었다.

[3-6절] 이 척량한 중에서 장 2만 5천척과 광 1만척을 척량하고 그 가운데 성소를 둘지니 지극히 거룩한 곳이요 그 땅의 거룩한 구역이라. 여호와께 가까이 나아가서 성소에서 수종 드는 제사장에게 돌려 그 집을 위하여 있는 곳이 되게 하며 성소를 위하여 있는 거룩한 곳이 되게 하고 또 장 2만 5천척과 광 1만척을 척량하여 전에서 수종 드는 레위 사람에게 돌려 그들의 산업을 삼아 촌 20을 세우게 하고 구별한 거룩한 구역 옆에 광 5천척과 장 2만 5천척을 척량하여 성읍의 기지를 삼아 이스라엘 온 족속에게 돌리고.

측량한 거룩한 땅 가운데 성소를 둘 것이다. 그곳은 지극히 거룩한 곳이다. 나머지 땅은 여호와께 가까이 나아가 성소에서 수종 드는 제사장들에게 돌려 그들의 집을 위해 사용할 것이다. 또 그 거룩한 땅만큼 길이 2만 5천자와 너비 1만자를 측량하여 전에서 수종 드는 레위 사람들에게 돌려 그들의 소유로 삼아 성읍 20개를 세우게 하고, 그 구별한 구역 옆에 길이 2만 5천자와 너비 5천자를 성읍의 기지로 삼아 이스라엘 온 족속에게 돌려야 하였다. 이 성읍 기지는 에스겔 48장에 나오는 성을 가리킨다(48:15-20, 30-35).

[7-8절] 드린 바 거룩한 구역과 성읍의 기지된 땅의 좌우편 곧 드린 바 거룩한 구역의 옆과 성읍의 기지 옆의 땅을 왕에게 돌리되 서편으로 향하여 서편 국경까지와 동편으로 향하여 동편 국경까지니 그 장이 구역 하나와 서로 같을지니라. 이 땅으로 왕에게 돌려 이스라엘 중에 기업을 삼게 하면 나의 왕들이 다시는 내 백성을 압제하지 아니하리라. 그 나머지 땅은 이스라엘 족속에게 그 지파대로 나눠줄지니라.

하나님께 드린 거룩한 구역(제사장 구역과 레위인 구역)과 성읍의 기지된 땅의 좌우편, 곧 하나님께 드린 거룩한 구역의 옆과 성읍의 기지 옆의 땅을 왕에게 돌리되 서편으로 향해 서편 국경까지와 동편으로 향해 동편 국경까지 돌릴 것이며, 그 길이--아마 남북의 길이인 것 같음--는 구역 하나와 서로 같았다. 하나님께서는 “이 땅으로 왕에게 돌려 이스라엘 중에 기업을 삼게 하면 나의 왕들이 다시는 내 백성을 압제하지 아니하리라”고 말씀하셨다. 그 나머지 땅--이렇게 구별된 땅들의 북쪽과 남쪽의 땅들--은 이스라엘 족속에게 그 지파대로 나눠줄 것이다. 이것은 에스겔 48:1-7, 23-28에 나온다.

[9-12절] 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이스라엘의 치리자들아, 너희에게 족하니라. 너희는 강포와 겁탈을 제하여 버리고 공평과 공의를 행하여 내 백성에게 토색함을 그칠지니라. 나 주 여호와의 말이니라. 너희는 공평한 저울과 공평한 에바와 공평한 밧을 쓸지니 에바와 밧은 그 용량을 동일히 하되 호멜의 용량을 따라 밧은 호멜 10분지 1을 담게 하고 에바도 호멜 10분지 1을 담게 할 것이며 세겔은 20게라니 20세겔과 25세겔과 15세겔로 너희 마네가 되게 하라.

하나님께서는 또한 이스라엘의 치리자들이 지켜야 할 도덕적 기준의 요점을 말씀하셨다. 그는 권력자들이 행하기 쉬운 강포와 겁탈과 토색(강제로 빼앗는 것)을 버리고 공평과 공의를 행하라고 강조하셨다. 그것은 공평한 저울과 공평한 에바와 공평한 밧을 사용하는 데서 증거될 것이다. 저울은 무게를 다는 용도에 쓰였고, 에바와 밧은 부피를 재는 용도에 쓰였다. 밀가루는 에바로, 기름은 밧으로 재었는데, 에바와 밧은 부피가 같고, 그것은 약 22리터이었다. 한 에바 혹은 한 밧은 10분의 1 호멜이었다. 세겔은 무게의 단위로서 약 10그램이었다. 한 세겔은 20게라이었고, 한 마네는 60세겔이었다.

[13-15절] 너희의 마땅히 드릴 예물이 이러하니 밀 한 호멜에서는 에바 6분지 1을 드리고 보리 한 호멜에서도 에바 6분지 1을 드리며 기름은 정한 규례대로 한 고르에서 밧 10분지 1을 드릴지니 기름의 밧으로 말하면 한 고르는 10밧 곧 한 호멜이며 (십 밧은 한 호멜이라.) 또 이스라엘 윤택한 초장의 떼 2백 마리에서는 한 어린양을 드릴 것이라. 백성을 속죄하기 위하여 이것들로 소제와 번제와 감사제물을 삼을지니라. 나 주 여호와의 말이니라.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이 그에게 드릴 예물에 대해서도 말씀하셨다. 그는 밀 한 호멜에서는 에바 6분지 1을 드리고, 보리 한 호멜에서도 에바 6분지 1을 드리며, 기름은 한 고르에서 밧 10분지 1을 드리라고 말씀하셨다. 한 고르는 한 호멜과 같았다. 또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의 윤택한 초장의 떼 200마리에서는 한 어린양을 드리라고 말씀하셨다. 또 그는 백성을 속죄하기 위해 이것들로 소제와 번제와 화목제물을 삼으라고 말씀하셨다.

[16-17절] 이 땅 모든 백성은 이 예물로 이스라엘 왕에게 드리고 왕은 본분대로 번제와 소제와 전제를 절기와 월삭과 안식일과 이스라엘 족속의 모든 정한 절기에 드릴지니 이스라엘 족속을 속죄하기 위하여 이 속죄제와 소제와 번제와 감사제물을 갖출지니라.

하나님께서는 그 땅의 모든 백성이 이 예물로 이스라엘 왕에게 드리고 왕은 본분대로 번제와 소제와 전제를 절기와 월삭과 안식일과 이스라엘 족속의 모든 정한 절기들에 드릴 것이며 이스라엘 족속을 속죄하기 위하여 속죄제와 소제와 번제와 화목제물을 준비하라고 말씀하셨다. 본문의 ‘감사제물’은 ‘화목제물’을 가리킨다.

[18-20절]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정월 초 하룻날에 흠 없는 수송아지 하나를 취하여 성소를 정결케 하되 제사장이 그 속죄제 희생의 피를 취하여 전 문설주와 제단 아랫층 네 모퉁이와 안뜰 문설주에 바를 것이요 그 달 7일에도 모든 그릇 범죄한 자와 부지중 범죄한 자를 위하여 역시 그렇게 하여 전을 속죄할지니라.

하나님께서는 정월 초하룻날에 흠 없는 수송아지 하나를 취하여 성소를 정결케 하되 제사장이 그 속죄제 희생의 피를 취하여 성전 문설주와 제단 윗울타리 네 모퉁이와 안뜰 문설주에 바를 것이며 그 달 7일에도 부지중에 범죄한 모든 자들과 어리석은 자들을 위하여 역시 그렇게 하여 성전을 속죄하라고 말씀하셨다.

[21-25절] 정월 14일에는 유월절 곧 7일 절기를 지키며 누룩 없는 떡을 먹을 것이라. 그 날에 왕은 자기와 이 땅 모든 백성을 위하여 송아지 하나를 갖추어 속죄제를 드릴 것이요 또 절기 7일 동안에는 그가 나 여호와를 위하여 번제를 갖추되 곧 7일 동안에 매일 흠 없는 수송아지 일곱과 숫양 일곱이며 또 매일 숫염소 하나를 갖추어 속죄제를 드릴 것이며 또 소제를 갖추되 수송아지 하나에는 밀가루 한 에바요 숫양 하나에도 한 에바며 밀가루 한 에바에는 기름 한 힌씩이며 7월 15일 절기 7일 동안에도 이대로 행하여 속죄제와 번제며 그 밀가루와 기름을 드릴지니라.

그는 정월 14일에는 유월절 곧 7일 절기를 지키며 누룩 없는 떡을 먹으며, 그 날에 왕은 자기와 이 땅 모든 백성을 위해 송아지 하나를 갖추어 속죄제를 드릴 것이며 또 절기 7일 동안에는 그가 여호와를 위해 번제를 갖추되 곧 7일 동안에 매일 흠 없는 수송아지 일곱과 숫양 일곱이며 또 매일 숫염소 하나를 갖추어 속죄제를 드릴 것이며 또 소제를 갖추되 수송아지 하나에는 밀가루 한 에바이며 숫양 하나에도 한 에바며 밀가루 한 에바에는 기름 한 힌씩이라고 말씀하셨다. 힌은 약 4리터이었다. 하나님께서는 또 7월 15일 절기, 즉 초막절 7일 동안에도 이같이 행하여 속죄제와 번제며 그 밀가루와 기름을 드리라고 말씀하셨다.

본장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우리는 하나님 중심으로 생각하고 행동하자. 하나님께서는 땅의 분배를 지시하실 때 먼저 여호와께 예물로 드릴 땅을 구별하라고 말씀하셨다. 우리의 세상 생활에서 중요한 것은 먼저 하나님을 섬기는 일이다. 주께서는 “너희는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고 말씀하셨다(마 6:33).

둘째로, 우리는 교회 가까이에 거하며 교회를 지키는 자가 되자. 왕은 거룩하게 구별된 땅의 동서쪽에 거해야 했다. 그것은 성전을 보호하고 성전 가까이에 거하는 것이다. 그것은 복된 일이다. 교회 가까이에서 하나님을 섬기며 말씀의 교훈을 받는 것은 복이다(시 84:1-4).

셋째로, 우리는 바르고 선하게 살자. 왕은 강포와 겁탈과 토색을 버리고 공의를 행해야 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성경에 교훈하신 대로 바르게 살고 어려움을 당한 자들을 돌아보고 서로 사랑하자.

넷째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을 섬기자. 왕과 백성은 절기와 제사의 법을 지켜야 했다. 구약의 의식법은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한다(골 2:16-17).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를 위해 속죄사역을 이루셨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에 근거하여 우리의 몸을 하나님께 드리며 그에게 감사하며 그를 섬기며 늘 그와 교통하자.

 

 

46장: 예배의 방식

[1-3절] 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안뜰 동향한 문을 일하는 6일 동안에는 닫되 안식일에는 열며 월삭에도 열고 왕은 바깥문 현관을 통하여 들어와서 문벽 곁에 서고 제사장은 그를 위하여 번제와 감사제를 드릴 것이요 왕은 문통에서 경배한 후에 밖으로 나가고 그 문은 저녁까지 닫지 말 것이며 이 땅 백성도 안식일과 월삭에 이 문통에서 나 여호와 앞에 경배할 것이며

안뜰 동향한 문은 일하는 6일 동안에는 닫되 안식일에는 열며 월삭(매월 초하루)에도 열어야 했다. 왕은 바깥 문 현관을 통해 들어와서 문벽(메주자) 즉 ‘문기둥’(gate-post) 곁에 서고 제사장은 그를 위하여 번제와 감사제 즉 ‘화목제’를 드릴 것이며 왕은 문통(미프탄), 아마 ‘문 복도’(threshold)에서 경배한 후에 밖으로 나가고 그 문은 저녁까지 닫지 말아야 했다. 그 땅 백성 곧 장차 회복될 이스라엘 백성도 안식일들과 월삭들에 이 문통(페사크), 즉 문 입구에서 여호와 앞에 경배해야 했다.

[4-5절] 안식일에 왕이 여호와께 드릴 번제는 흠 없는 어린양 여섯과 흠 없는 숫양 하나라. 그 소제는 숫양 하나에는 밀가루 한 에바요 모든 어린양에는 그 힘대로 할 것이며 밀가루 한 에바에는 기름 한 힌씩이니라.

안식일에 왕이 여호와께 드릴 번제는 흠 없는 어린양 여섯과 흠 없는 숫양 하나이며, 그 소제는 숫양 하나에는 밀가루 한 에바 즉 약 22리터이며 모든 어린양에는 그 힘대로 할 것이며 밀가루 한 에바에는 기름 한 힌 즉 약 3.7리터씩이었다.

[6-8절] 월삭에는 흠 없는 수송아지 하나와 어린양 여섯과 숫양 하나를 드리되 모두 흠 없는 것으로 할 것이며 또 소제를 갖추되 수송아지에는 밀가루 한 에바요 숫양에도 밀가루 한 에바며 모든 어린양에는 그 힘대로 할 것이요 밀가루 한 에바에는 기름 한 힌씩이며 왕이 올 때에는 이 문 현관을 통하여 들어오고 나갈 때에도 그리할지니라.

월삭에는 흠 없는 수송아지 하나와 어린양 여섯과 숫양 하나를 드리되 모두 흠 없는 것으로 할 것이며 또 소제를 갖추되 수송아지에는 밀가루 한 에바요 숫양에도 밀가루 한 에바며 모든 어린양에는 그 힘대로 할 것이요 밀가루 한 에바에는 기름 한 힌씩이었다. 왕이 올 때에는 이 문 현관을 통해 들어오고 나갈 때에도 그리해야 했다.

[9절] 그러나 모든 정한 절기에 이 땅 거민이 나 여호와 앞에 나아올 때에는 북문으로 들어와서 경배하는 자는 남문으로 나가고 남문으로 들어오는 자는 북문으로 나갈지라. 들어온 문으로 도로 나가지 말고 그 몸이 앞으로 향한 대로 나갈지며.

모든 정한 절기, 즉 안식일과 월삭을 비롯해 유월절, 맥추절, 초막절, 나팔절 등의 절기들에 이 땅 거주자들이 여호와 앞에 나아올 때에는 북문으로 들어와서 경배하는 자는 남문으로 나가고 남문으로 들어오는 자는 북문으로 나가야 했다. 그들은 들어온 문으로 도로 나가지 말고 그 몸이 앞으로 향한 대로 나가야 했다. 이것은 질서 있게 하나님을 섬기는 태도를 보이는 것 같다(고전 14:33, 40).

[10-12절] 왕은 무리 가운데 있어서 그들의 들어올 때에 들어오고 그들의 나갈 때에 나갈지니라. 절기와 성회 때에 그 소제는 수송아지 하나에 밀가루 한 에바요 숫양 하나에도 한 에바요 모든 어린양에는 그 힘대로 할 것이며 밀가루 한 에바에는 기름 한 힌씩이며 만일 왕이 자원하여 번제를 갖추거나 혹 자원하여 감사제를 갖추어 나 여호와께 드릴 때에는 그를 위하여 동향한 문을 열고 그가 번제와 감사제를 안식일에 드림같이 드리고 밖으로 나갈지며 나간 후에 문을 닫을지니라.

왕이 하나님을 섬기려면 그는 무리 가운데 있어서 그들의 들어올 때에 들어오고 그들의 나갈 때에 나가야 했다. 절기와 성회 때에 그 소제는 수송아지 하나에 밀가루 한 에바요 숫양 하나에도 한 에바요 모든 어린양에는 그 힘대로 할 것이며 밀가루 한 에바에는 기름 한 힌씩이었다. 만일 왕이 자원하여 번제를 갖추거나 혹 자원하여 감사제 즉 화목제를 갖추어 여호와께 드릴 때에는 그를 위해 동향한 문을 열고 그가 번제와 감사제 즉 화목제를 안식일에 드림같이 드리고 밖으로 나가야 했고 그가 나간 후에 문을 닫아야 했다.

[13-15절] 아침마다 1년 되고 흠 없는 어린양 하나로 번제를 갖추어 나 여호와께 드리고 또 아침마다 그것과 함께 드릴 소제를 갖추되 곧 밀가루 에바 6분지 1과 기름 힌 3분지 1을 섞을 것이니 이는 영원한 규례를 삼아 항상 나 여호와께 드릴 소제라. 이와 같이 아침마다 그 어린양과 밀가루와 기름을 갖추어 항상 드리는 번제를 삼을지니라.

아침마다 1년 되고 흠 없는 어린양 하나로 번제를 갖추어 여호와께 드리고 또 그것과 함께 드릴 소제를 갖추어 드려야 했다. 이것은 매일 아침마다 하나님께 드릴 영원한 번제와 소제의 규례이다.

[16-18절] 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왕이 만일 한 아들에게 선물을 준즉 그의 기업이 되어 그 자손에게 속하나니 이는 그 기업을 이어 받음이어니와 왕이 만일 그 기업으로 한 종에게 선물로 준즉 그 종에게 속하여 희년까지 이르고 그 후에는 왕에게로 돌아갈 것이니 왕의 기업은 그 아들이 이어 받을 것임이니라. 왕은 백성의 기업을 취하여 그 산업에서 쫓아내지 못할지니 왕이 자기 아들에게 기업으로 줄 것은 자기 산업으로만 할 것임이니라. 백성으로 각각 그 산업을 떠나 흩어지지 않게 할 것이니라.

왕의 기업은 아들에게 선물로 줄 수 있었다. 그러나 왕이 그 기업을 한 종에게 선물로 주면, 그것은 그 종에게 속하여 희년, 즉 자유의 해(원문)까지 이르고 그 후에는 왕에게로 돌아갈 것이다. 또 왕은 백성의 기업을 취해 그 주인을 그 소유지에서 쫓아내서는 안 된다. 왕은 자기 소유지에서만 자기 아들에게 기업을 줄 수 있었다. 그는 백성이 그 소유지를 떠나 흩어지지 않게 해야 하였다.

[19-20절] 그 후에 그가 나를 데리고 문곁 통행구로 말미암아 제사장의 북향한 거룩한 방에 들어가시니 그 방 뒤 서편에 한 처소가 있더라. 그가 내게 이르시되 이는 제사장이 속건제와 속죄제 희생을 삶으며 소제 제물을 구울 처소니 그들이 이 성물을 가지고 바깥뜰에 나가면 백성을 거룩하게 할까 함이니라 하시고.

에스겔은 이끌림을 받아 문곁 통행구로 말미암아 제사장의 북향한 거룩한 방에 들어갔는데, 그 방 뒤 서편[뒷편]에 한 곳이 있었다. 이 방은 에스겔 42장에 말한 제사장들을 위한 방인 것 같다. 그곳은 제사장이 속건제와 속죄제 제물을 삶으며 소제 제물을 굽는 곳이다.

[21-24절] 나를 데리고 바깥뜰로 나가서 나로 뜰 네 구석을 지나가게 하시는데 본즉 그 뜰 매 구석에 또 뜰이 있는데 뜰 네 구석에 있는 그 뜰에 담이 둘렸으니 뜰의 장이 40척이요 광이 30척이라. 구석의 네 뜰이 한 척수며 그 작은 네 뜰 사면으로 돌아가며 부엌이 있고 그 사면 부엌에 삶는 기구가 설비되었는데 그가 내게 이르시되 이는 삶는 부엌이니 전에 수종 드는 자가 백성의 제물을 여기서 삶을 것이니라 하시더라.

바깥뜰 네 구석에는 길이 40자, 즉 약 20미터, 너비 30자, 즉 약 15미터의 뜰이 있고 그 작은 네 뜰 사면으로 돌아가며 부엌이 있고 그 사면 부엌에 삶는 기구가 설비되어 있었다. 이곳은 성전에 수종 드는 자가 백성의 제물을 삶는 부엌이었다.

본장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절기들에 대한 말씀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성취되었다. 그것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사역과 그 결과에 대해 보인다(골 2:16-17). 구약의 절기들은 모든 시간이 하나님의 것임을 보인다. 우리의 모든 시간은 하나님의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항상 하나님을 섬기며 그를 영화롭게 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둘째로, 제사들에 대한 말씀은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사역과 성도의 삶을 예표한다. 번제는 속죄의 의미와 더불어 성도의 온전한 헌신과 순종을 교훈하는 뜻이 있다고 보며, 소제는 감사의 뜻이 있다고 본다. 기름은 성령의 은혜를 상징한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 안에서 하나님께 감사하며 헌신하며 하나님과 교제하며 살아야 한다.

 

 

47장: 성소에서 흘러나오는 강물

[1-2절] 그가 나를 데리고 전 문에 이르시니 전의 전면이 동을 향하였는데 그 문지방 밑에서 물이 나와서 동으로 흐르다가 전 우편 제단 남편으로 흘러내리더라. 그가 또 나를 데리고 북문으로 나가서 바깥 길로 말미암아 꺾여 동향한 바깥문에 이르시기로 본즉 물이 그 우편에서 스미어 나오더라.

이것은 역사상 문자적으로 성취될 일이라기보다 신약교회를 상징하는 예언일 것이다. 구약의 선지자들이 예언한 이스라엘의 회복과 메시아 시대 전반에 대한 내용이 그러하다고 본다. 그러면 여기의 물은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사역과 성령의 활동으로 말미암은 복음운동, 즉 구원운동을 가리킬 것이다(요 4:14; 7:37-38). 복음운동은 예루살렘으로부터 시작하여 온 세상으로 퍼져나갈 것이다. 죄사함을 얻게 하는 회개가 모든 족속에게 전파될 것이다(눅 24:47).

[3-5절] 그 사람이 손에 줄을 잡고 동으로 나아가며 1천척을 척량한 후에 나로 그 물을 건너게 하시니 물이 발목에 오르더니 다시 1천척을 척량하고 나로 물을 건너게 하시니 물이 무릎에 오르고 다시 1천척을 척량하고 나로 물을 건너게 하시니 물이 허리에 오르고 다시 1천척을 척량하시니 물이 내가 건너지 못할 강이 된지라. 그 물이 창일하여 헤엄할 물이요 사람이 능히 건너지 못할 강이더라.

1천자씩 네 번이나 측량하고 마침내 건널 수 없는 강이 된 것은 복음운동이 시간이 지남에 따라 또 거리적으로 퍼져나감에 따라 더 풍성해지다가 마침내 온 세상에 충만해질 것을 암시하는 것 같다. 이것은 세계복음화의 일이다. 온 세상에 하나님의 복음이 전파되어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사람들이 구원 얻을 것이다. 물이 바다를 덮음같이 여호와를 아는 지식이 세상에 충만할 것이다(사 11:9). 다니엘 2:34-35는 사람의 손으로 하지 않고 채석된 돌이 금 신상을 부숨으로 그 신상은 여름 타작마당의 겨같이 되어 바람에 불려 간 곳이 없고 우상을 친 돌은 태산을 이루어 온 세계에 가득하였다고 예언하였다. 이것은 다 신약교회 시대를 가리킨다고 본다.

[6-12절] 그가 내게 이르시되 인자야, 네가 이것을 보았느냐 하시고 나를 인도하여 강가로 돌아가게 하시기로 내가 돌아간즉 강 좌우편에 나무가 심히 많더라. 그가 내게 이르시되 이 물이 동방으로 향하여 흘러 아라바로 내려가서 바다에 이르리니 이 흘러내리는 물로 그 바다의 물이 소성함을 얻을지라. 이 강물이 이르는 곳마다 번성하는 모든 생물이 살고 또 고기가 심히 많으리니 이 물이 흘러 들어가므로 바닷물이 소성함을 얻겠고 이 강이 이르는 각처에 모든 것이 살 것이며 또 이 강가에 어부가 설 것이니 엔게디에서부터 에네글라임까지 그물 치는 곳이 될 것이라. 그 고기가 각기 종류를 따라 큰 바다의 고기같이 심히 많으려니와 그 진펄과 개펄은 소성되지 못하고 소금 땅이 될 것이며 강 좌우 가에는 각종 먹을 실과나무가 자라서 그 잎이 시들지 아니하며 실과가 끊치지 아니하고 달마다 새 실과를 맺으리니 그 물이 성소로 말미암아 나옴이라. 그 실과는 먹을 만하고 그 잎사귀는 약 재료가 되리라.

그 물은 강을 이루어 사해로 흘러 들어갔다. 엔게디와 에네글라임은 사해 중부 서해안에 있다. 강 좌우편에는 나무가 심히 많았다. 그 나무들은 달마다 새 실과를 맺고 그 열매는 먹을 만하고 그 잎사귀는 약 재료가 될 것이다. 또 그 강물이 사해에 들어가서 그 죽음의 바다를 회복시킴으로 사해에 고기들이 심히 많을 것이다. 강 좌우편의 나무들이나 사해의 고기들은 다 구원받은 성도들을 가리킬 것이다. 신약시대에 구원받을 자들의 수는 심히 많을 것이다. 또 그들은 선한 열매를 많이 맺는 자들일 것이다. 복음운동은 소금의 바다, 즉 죽음의 바다와 같은 멸망할 세상에 생명의 변화를 줄 것이다.

그러나 회복되지 못하고 소금 땅이 될 진펄과 개펄은 신약시대에도 하나님의 은혜에 형식적으로만 접촉하고 참으로 그 은혜를 받아 구원받지 못한 자들을 가리키는 것 같다. 신약교회에도 그런 자들이 있다. 성경은 그런 자들을 가라지, 쭉정이, 쓴 뿌리라고 부른다. 열두 제자 중 가룟 유다가 그러했고, 초대교회에 아나니아와 삽비라가 그러했고, 갈라디아 교회의 율법주의 이단들이 그러했다. 믿음에 파선한 후메내오와 알렉산더(딤전 1:20), 바울을 배신한 부겔로와 허모게네(딤후 1:15), 이단을 전파했던 후메내오와 빌레도(딤후 2:17), 바울을 심히 대적했던 구리장색 알렉산더(딤후 4:14), 교회 안에서 으뜸 되기를 좋아하고 주의 종들을 접대치 않고 오히려 그들을 부당하게 비난하고 형제들을 접대하지 않고 접대하려는 자를 금하고 교회에서 내어쫓았던 디오드레베(요삼 9) 같은 이들이 그러하다. 히브리서 12:15는 “너희는 돌아보아 하나님 은혜에 이르지 못하는 자가 있는가 두려워하고 또 쓴 뿌리가 나서 괴롭게 하고 많은 사람이 이로 말미암아 더러움을 입을까 두려워하라”고 교훈하였다.

[13-20절] 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너희는 이 지계대로 이스라엘 12지파에게 이 땅을 나누어 기업이 되게 하되 요셉에게는 두 분깃이니라. 내가 옛적에 맹세하여 이 땅으로 너희 열조에게 주마 하였었나니 너희는 피차 없이 나누어 기업을 삼으라. 이 땅이 너희의 기업이 되리라. 이 땅 지계는 이러하니라. 북방은 대해에서 헤들론 길로 말미암아 스닷 어귀까지니 곧 하맛과 브로다며 다메섹 지계와 하맛 지계 사이에 있는 시브라임과 하우란 지계 곁에 있는 하셀핫디곤이라. 그 지계가 바닷가에서부터 다메섹 지계에 있는 하살에논까지요 그 지계가 또 극북방에 있는 하맛 지계에 미쳤나니 이는 그 북방이요 동방은 하우란과 다메섹과 및 길르앗과 이스라엘 땅 사이에 있는 요단강이니 북편 지계에서부터 동해까지 척량하라. 이는 그 동방이요 남방은 다말에서부터 므리봇 가데스 물에 이르고 애굽 시내를 따라 대해에 이르나니 이는 그 남방이요 서방은 대해라. 남편 지계에서부터 맞은편 하맛 어귀까지 이르나니 이는 그 서방이니라.

하나님께서는 또한 그 땅을 이스라엘 열두 지파에게 나누어 기업이 되게 하고 요셉에게는 두 분깃을 주라고 말씀하셨다. 북쪽은 대해 즉 지중해에서 다메섹 경계에 있는 하살에논까지이며 그 경계가 또 극북방에 있는 하맛 경계에 미쳤다. 동쪽은 북쪽으로는 하우란과 다메섹으로부터 길르앗과 이스라엘 땅 사이에 있는 요단강이며 북편 경계에서부터 동해 즉 사해까지이다. 남쪽은 다말에서부터 므리봇 가데스 물에 이르고 애굽 시내를 따라 대해 즉 지중해에 이른다. 서쪽은 대해 즉 지중해이다. 이것이 동서남북의 경계이다.

[21-23절] 그런즉 너희가 이스라엘 모든 지파대로 이 땅을 나누어 차지하라. 너희는 이 땅을 나누되 제비 뽑아 너희와 너희 가운데 우거하는 외인 곧 너희 가운데서 자녀를 낳은 자의 기업이 되게 할지니 너희는 그 외인을 본토에서 난 이스라엘 족속같이 여기고 그들로 이스라엘 지파 중에서 너희와 함께 기업을 얻게 하되 외인이 우거하는 그 지파에서 그 기업을 줄지니라. 나 주 여호와의 말이니라.

하나님께서는 그들 가운데 우거하는 이방인들도 이스라엘 족속같이 여기고 그들 가운데서 함께 기업을 얻게 하라고 말씀하셨다. 이것은 이방인들의 구원을 암시한다. 신약시대는 이방인들이 하나님의 은혜에 참여하는 시대가 될 것이다.

본장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복음은 예루살렘에서부터 시작되어 온 세상에 충만히 전파될 것이다. 신약교회는 하나님의 구원운동의 산물이며 그 도구이다. 우리는 하나님께 감사하며 충성해야 한다.

둘째로, 구원 운동은 갈수록 충만케 될 것이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이며 만물 안에서 만물을 충만케 하시는 자의 충만이다(엡 1:23). 이것은 개인적으로도, 시대적으로도 그러하다(엡 4:13; 롬 11:25-26).

셋째로, 구원받은 성도들은 선한 열매를 맺을 것이 기대된다. 그들은 좋은 물고기와 좋은 나무의 열매처럼, 남에게 유익을 끼치는 자들이 되어야 한다. 신약 성도들은 세상에서 빛과 소금이 되어야 한다.

넷째로, 그러나 우리는 진펄과 개펄을 경계해야 한다. 우리는 교회 안에 있는 중생치 못한 형식적 교인들을 조심하고 경계해야 한다.

 

 

48장: 땅 분배

[1-7절] 모든 지파의 이름대로 이 같을지니라. 극북(極北)에서부터 헤들론 길로 말미암아 하맛 어귀를 지나서 다메섹 지계에 있는 하살에논까지 곧 북으로 하맛 지계에 미치는 땅 동편에서 서편까지는 단의 분깃이요 단 지계 다음으로 동편에서 서편까지는 아셀의 분깃이요 아셀 지계 다음으로 동편에서 서편까지는 납달리의 분깃이요 납달리 지계 다음으로 동편에서 서편까지는 므낫세의 분깃이요 므낫세 지계 다음으로 동편에서 서편까지는 에브라임의 분깃이요 에브라임 지계 다음으로 동편에서 서편까지는 르우벤의 분깃이요 르우벤 지계 다음으로 동편에서 서편까지는 유다의 분깃이요.

장차 하나님의 은혜로 회복될 이스라엘은 하나님께서 주신 가나안 땅에서 다시 땅 분배를 받을 것이다. 땅의 경계는 47:15-20에서 이미 말씀하셨다. 맨 북쪽에서부터 단과 아셀과 납달리와 므낫세와 에브라임과 르우벤과 유다의 순으로 일곱 지파는 땅을 획일적으로 분배받을 것이다. 그 순서나 크기는 여호수아 때에 가나안 정복 후 분배받은 것들과는 다르다. 그러나 그때와 같이 이제도 그들은 제비뽑기를 통해 땅을 분배받는다(47:22; 48:29).

[8-12절] 유다 지계 다음으로 동편에서 서편까지는 너희가 예물로 드릴 땅이라. 광이 2만 5천척이요 장은 다른 분깃의 동편에서 서편까지와 같고 성소는 그 중앙에 있을지니 곧 너희가 여호와께 드려 예물로 삼을 땅의 장이 2만 5천척이요 광이 1만척이라. 이 드리는 거룩한 땅은 제사장에게 돌릴지니 북편으로 장이 2만 5천척이요 서편으로 광이 1만척이요 동편으로 광이 1만척이요 남편으로 장이 2만 5천척이라. 그 중앙에 여호와의 성소가 있게 하고 이 땅으로 사독의 자손 중 거룩히 구별한 제사장에게 돌릴지어다. 그들은 직분을 지키고 이스라엘 족속이 그릇할 때에 레위 사람의 그릇한 것처럼 그릇하지 아니하였느니라. 이 온 땅 중에서 예물로 드리는 땅 곧 레위 지계와 연접한 땅을 그들이 지극히 거룩한 것으로 여길지니라.

유다 지파의 땅 다음으로 동서 전체와 남쪽으로 2만 5천자, 즉 약 12.5킬로미터의 땅은 하나님께 거룩하게 구별해 드릴 땅이다. 그 땅은 그 중앙에 성소가 있을 거룩한 땅이다. 8절, “성소는 그 중앙에 있을지니.” 10절, “그 중앙에 여호와의 성소가 있게 하고.” 그 거룩한 땅은 동서로도 2만 5천자, 즉 약 12.5킬로미터이며 남북으로도 2만 5천자, 즉 약 12.5킬로미터, 다시 말해 네모 반듯한 땅이다(48:20).

또 그 땅은 다시 남북 방향으로 셋으로 구분되는데, 하나는 제사장 사독에게 돌려진 땅이며, 다른 하나는 레위인들의 땅이며, 또 나머지 하나는 성이 중앙에 있을 땅이다. 그 셋은 동서의 길이는 2만 5천자, 즉 약 12.5킬로미터로 동일하지만, 남북의 길이는 제사장의 땅은 1만자, 즉 약 5킬로미터이며, 레위인의 땅도 1만자, 즉 약 5킬로미터이며, 또 성의 땅은 5천자, 즉 약 2.5킬로미터이다.

[13-14절] 제사장의 지계를 따라 레위 사람의 분깃을 주되 장이 2만 5천척이요 광이 1만척으로 할지니 이 구역의 장이 2만 5천척이요 광이 각기 1만척이라. 그들이 그 땅을 팔지도 못하며 바꾸지도 못하며 그 땅의 처음 익은 열매를 남에게 주지도 못하리니 이는 나 여호와에게 거룩히 구별한 것임이니라.

이 레위인들의 땅은 제사장들의 땅보다 북쪽에 있는 것 같다. 왜냐하면 제사장들의 땅에 있는 성소가 그 구별된 전체 땅의 중앙에 있다고 표현되기 때문이다(8, 10절). 레위인들은 이 땅을 팔거나 바꾸지 말고 또 그 땅의 첫열매를 남에게 주지도 말아야 한다.

[15-20절] 이 2만 5천척 다음으로 광 5천척은 속된 땅으로 하여 성읍을 세우며 거하는 곳과 들을 삼되 성이 그 중앙에 있게 할지니 그 척수는 북편도 4천 5백척이요 남편도 4천 5백척이요 동편도 4천 5백척이요 서편도 4천 5백척이며 그 성의 들은 북으로 2백 5십척이요 남으로 2백 5십척이요 동으로 2백 5십척이요 서으로 2백 5십척이며 예물을 삼아 거룩히 구별할 땅과 연접하여 남아 있는 땅의 장이 동으로 1만척이요 서으로 1만척이라 곧 예물을 삼아 거룩히 구별할 땅과 연접하였으며 그 땅의 소산은 성읍에서 역사하는 자의 양식을 삼을지라. 이스라엘 모든 지파 중에 그 성읍에서 역사하는 자는 그 땅을 기경할지니라. 그런즉 예물로 드리는 땅의 도합은 장도 2만 5천척이요 광도 2만 5천척이라. 너희가 거룩히 구별하여 드릴 땅은 성읍의 기지와 합하여 네모 반듯할 것이니라.

이 땅은 제사장들의 땅의 남쪽에 있고 남북으로 5천자, 즉 약 2.5킬로미터 길이의 땅일 것이다. 그것은 위의 두 땅과 비교하여 세속적인 땅이다. 거기에는 성이 있을 것이다. 그것이 아마 새 예루살렘 성이라고 불릴 성이다. 그 크기는 동서남북의 길이가 각각 4천 5백 자, 즉 약 2.25킬로미터이며, 성밖으로 동서남북에 들이 각각 250자, 즉 약 125미터가 있다.

[21-22절] 거룩히 구별할 땅과 성읍의 기지 좌우편에 남은 땅은 왕에게 돌릴지니 곧 거룩히 구별할 땅의 동향한 그 지계 앞 2만 5천척과 서향한 그 지계 앞 2만 5천척이라. 다른 분깃들과 연접한 땅이니 이것을 왕에게 돌릴 것이며 거룩히 구별할 땅과 전의 성소가 그 중간에 있으리라. 그런즉 왕에게 돌려 그에게 속할 땅은 레위 사람의 기업 좌우편과 성읍의 기지 좌우편이며 유다 지경과 베냐민 지경 사이에 있을지니라.

거룩히 구별할 땅 즉 제사장들의 땅과 레위인들의 땅과, 성읍의 기지 좌우편에 남은 땅은 왕에게 돌릴 것이다. 그것은 동쪽으로 남북의 길이 2만 5천자, 즉 약 12.5킬로미터로 요단강까지이며, 또 서쪽으로 역시 남북의 길이 2만 5천자, 즉 약 12.5킬로미터로 대해, 즉 지중해까지이다. 거룩히 구별된 땅의 동서로 두 개의 땅이 왕에게 돌려지는 땅이다.

[23-29절] 그 나머지 모든 지파는 동편에서 서편까지는 베냐민의 분깃이요 베냐민 지계 다음으로 동편에서 서편까지는 시므온의 분깃이요 시므온 지계 다음으로 동편에서 서편까지는 잇사갈의 분깃이요 잇사갈 지계 다음으로 동편에서 서편까지는 스불론의 분깃이요 스불론 지계 다음으로 동편에서 서편까지는 갓의 분깃이며 갓 지계 다음으로 남편 지계는 다말에서부터 므리바가데스 물에 이르고 애굽 시내를 따라 대해에 이르나니 이것은 너희가 제비 뽑아 이스라엘 지파에게 나누어 주어 기업이 되게 할 땅이요 또 이것들은 그들의 분깃이니라. 나 주 여호와의 말이니라.

그 나머지의 땅, 즉 거룩히 구별된 땅과 왕의 땅의 남쪽에 남은 땅은 베냐민과 시므온과 잇사갈과 스불론과 갓 지파의 순으로 나머지 다섯 지파에게 분배될 것이다. 그것들은 다 제비뽑아 분배될 것이다.

[30-35절] 그 성읍의 출입구는 이러하니라. 북편의 광이 사천 5백척이라. 그 성읍의 문들은 이스라엘 지파들의 이름을 따를 것인데 북으로 문이 셋이라. 하나는 르우벤 문이요 하나는 유다 문이요 하나는 레위 문이며 동편의 광이 4천 5백척이니 또한 문이 셋이라. 하나는 요셉 문이요 하나는 베냐민 문이요 하나는 단 문이며 남편의 광이 4천 5백척이니 또한 문이 셋이라. 하나는 시므온 문이요 하나는 잇사갈 문이요 하나는 스불론 문이며 서편도 4천 5백척이니 또한 문이 셋이라. 하나는 갓 문이요 하나는 아셀 문이요 하나는 납달리 문이며 그 사면의 도합이 1만 8천척이라. 그 날 후로는 그 성읍의 이름을 여호와 삼마라 하리라.

본문은 성읍에 대해 언급한다. 새 예루살렘 성이라고 불릴 그 성의 출입구는 동서남북에 각각 셋씩 있으며, 그 문 이름은 이스라엘 열두 지파의 이름을 따를 것이다. 그 성은 앞에서도 말했지만, 동서남북의 길이가 4천 5백 자, 즉 약 2.25킬로미터로 동일하다. 본문은 “그 날 후로는 그 성읍의 이름을 여호와 삼마라 하리라”고 말한다. ‘여호와 삼마’라는 원어(예호와 솸마)는 ‘여호와께서 거기 계신다’는 뜻이다. 하나님께서는 그 성에 함께 계실 것이다.

본장이 주는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회복될 이스라엘은 골고루 땅을 분배받을 것이다. 이스라엘의 열두 지파가 땅을 분배받는 것은 장차 신약교회가 천국을 유업으로 받는 것을 상징한다고 본다. 신약 성도들은 하나님의 은혜로 천국의 기업을 동일하게 이어받을 것이다. 마태복음 5:3, 5,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요,”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임이요.” 요한복음 14:1-2,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일렀으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러 가노니.”

둘째로, 땅 분배가 성소 중심으로 이루어진 것은 회복될 새 세계에서 성도들이 하나님 중심, 성소 중심의 삶을 살 것을 보인다. 또 그런 삶에 참 평안이 있다. 성도는 하나님 중심으로 살아야 한다. 우리는 이 세상에서 항상 성경 읽고 기도하며 살고 하나님 중심, 성경말씀 중심, 교회 중심으로 살아야 한다. 그것이 바르고 복된 삶이며, 거기에 참된 평안이 있다. 우리는 천국에서도 하나님 중심으로 살 것이다.

셋째로, 사독 자손 제사장들은 인정을 받았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이 직분을 지켰으며 이스라엘 족속이 그릇할 때에 레위 사람의 그릇한 것처럼 그릇하지 아니하였다고 증거하셨다. 제사장 사독은 다윗 왕을 위해 끝까지 충성한 인물이었다(삼하 15:24-29; 왕상 1:7-9). 하나님께서는 끝까지 충성한 자와 그 자손을 복 주실 것이다. 충성된 종은 마지막 날 칭찬과 상을 받을 것이다(마 25:14-23). 우리가 주를 위해 수고하는 것은 결코 헛되지 않을 것이다(고전 15:58).

넷째로, 회복될 땅의 새 성은 ‘여호와 삼마’ 즉 ‘하나님께서 거기 계신다’는 이름으로 불릴 것이다. 이 성은 신약교회와 장차 임할 새 예루살렘 성을 상징한다. 물론, 요한계시록 21-22장에 예언된 새 예루살렘 성은 길이와 너비와 높이가 각각 약 2210킬로미터나 되는 성으로 본문의 성보다 1000배나 더 크고 높은 빌딩 같은 성으로 묘사되었다. 하나님께서는 오늘날 신약교회 가운데 거하신다. 신약교회는 ‘여호와 삼마’이다. 그러나 장차 신천신지의 새 세계 천국에서, 새 예루살렘 성에서 우리는 더 영광스럽게 하나님과 교제하며 복된 삶을 누릴 것이다. 거기서 우리는 하나님께서 주시는 복된 영생의 삶을 누릴 것이다.

 

미주


1) 2:5, 6, 7, 8; 3:9, 26, 27; 12:2, 2, 3, 9, 25; 17:12; 24:3; 44:6.

2) 쓰여진 원문(K) 로 바흐는 ‘그 일에 대해 그에게’(NASB)라는 뜻이며 제안된 원문(Q) 로 바는 ‘오는 그에게’(KJV)라는 뜻이다.

3) “자기를 위하여 내게 묻고자 하여”라는 원문은 “나에 관해 그에게 묻고자 하여”(KJV)라는 뜻일 것이다.

4) 에스겔서에만 16번이나 나온다. 5:11; 14:16, 18, 20; 16:48; 17:16, 19; 18:3; 20:3, 31, 33; 33:11, 27; 34:8; 35:6, 11.

5) ‘두려워한다’는 원어(와이르에)는 ‘본다, 관찰한다, 생각한다’는 뜻이다(KJV, NASB, NIV). 고대 헬라어 70인역이나 어떤 옛 라틴어역, 및 라틴어 벌겟역 등은 와이라 (두려워한다)라고 읽는다.

6) 1:2; 8:1; 20:1; 24:1; 26:1; 29:1, 17; 30:20; 31:1; 32:1, 17; 33:21; 40:1.

7) 마소라 본문은 바트 아슈림‘앗수르 사람들의 딸’[KJV])이지만, 고대의 역본들(Vg, Targ.)비트아슈림(‘회양목으로’)이라고 읽는다(Gesenius, BDB, NASB).

8) 이나 이라는 전치사가 사용되었다. la이 9번 사용되었고(13:8; 21:3; 26:3; 29:10; 30:22; 34:10; 35:3; 38:3; 39:1), l[이 4번 사용되었다(5:8; 26:3; 28:22; 29:3). 영어로는 보통 against라고 번역되었다.

9) 탄닌 이 정자(正字)이지만, 두 말이 통용하여 쓰인 것 같음.

10) 마소라 학자들은 원문을 ‘나의 두려움’(킷티시)이라고 읽기를 제안하지만(KJV), ‘그의 두려움’(킷티소)이라고 쓰여진 대로 읽는 것이 옳을 것이다(BDB, NASB, NIV).

11) “두께가 이와 같으며”라는 구절은 원문에는 “그것은 성막의 너비이었으며”(KJV)라고 되어 있다. 그 뜻은 불분명하다.

12) 이 단어의 뜻은 '도면(plan)'(NASB, NIV, Langenscheidt 사전) 외에도, 'proportion, measurement'(BDB), '(perfect) example'(KB), 'pattern'(KJV) 등이 제안되었다.

13) 가브는 'higher place'(KJV), 'height'(NIV)로도 번역되지만, 그것보다 ‘밑받침’(basement--BDB, base--NASB)이라는 뜻이 더 나은 것 같다.

14) 원문에는 ‘자’라는 말이 없지만, 근래의 영어성경들은 그 단위를 ‘자’ (cubit)라고 이해하고 삽입하여 번역하였다(NASB, NIV). 그러나 옛날 영어성경(KJV)은 ‘장대’라고 번역했는데, 그것은 에스겔 40:5에 나온 대로 6자 즉 약 3미터의 장대다. 그 경우에는 길이 2만 5천은 약 75킬로미터가 된다. 유대 땅의 요단강 서쪽의 동서의 길이는 약 90킬로미터 정도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