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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드로후서 강해

김효성 목사

2018년 6월 12일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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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머리말

주 예수 그리스도와 사도 바울의 증거대로(마 5:18; 요 10:35; 갈 3:16; 딤후 3:16),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다.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이며 우리의 신앙과 행위에 있어서 정확무오한 유일의 법칙이라는 고백은 우리의 신앙생활에 있어서 매우 기본적이고 중요하다.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의 진술대로(1:8), 성경 원본은 하나님의 영감으로 기록되었고 그 본문은 “그의 독특한 배려와 섭리로 모든 시대에 순수하게 보존되었다.” 이것이 교회의 전통적 견해이다. 그러나 19세기 말 웨스트코트와 호트가 주장한 불확실한 가설에 의해 많은 교회들이 신약성경의 전통적 다수 본문을 버리고 불완전하고 오류투성이의 사본들(א와 B)을 중시하는 잘못을 범하였다. 그러나 신약성경의 헬라어 비잔틴 다수 사본들의 본문은 순수하게 보존된 성경 원본의 본문에 가장 가까운 것으로 채택되어야 할 것이다.

성경을 가지고 설교할지라도 그것을 바르게 해석하고 설교하지 않으면, 하나님의 말씀의 기근이 올 것이다(암 8:11). 중세 시대 말, 종교개혁 직전과 같이, 오늘날 벌써 하나님의 말씀의 기근이 오는 것 같다. 그 어느 때보다도 많은 설교와 성경강해가 있지만, 순수한 기독교 신앙 지식과 입장은 더 흐려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오늘날 요구되는 성경 해석과 강해는 복잡하고 화려한 말잔치보다 성경 본문의 바른 뜻을 간단 명료하게 해석하고 적절히 적용하는 것일 것이다. 사실상, 우리는 성경책 한 권으로 충분하다. 성경주석이나 강해는 성경 본문의 바른 이해를 위한 작은 참고서에 불과하다. 성도는 각자 성령의 도우심을 구하면서 성경을 읽어야 하며, 성경주석과 강해는 오직 참고로만 사용해야 할 것이다.

 

제목 차례

1장: 신앙의 성숙

2장: 거짓 교사들

3장: 주의 날

 

서론

베드로후서의 저자는 사도 베드로이다(1:1). 3:1, “내가 이제 이 둘째 편지를 너희에게 쓰노니.” 유다서 17-18절은 본 서신을 인용한 가장 오래된 증거이다. 베드로전서와의 문체의 차이는 베드로전서에서 실루아노를 대서자로 사용한 것과 달리 베드로 자신이 썼거나 다른 대서자를 사용한 것에 기인할 것이다. 룸비(Lumby)는 베드로후서가 사도 베드로가 쓰지 않은 가짜 서신(僞書)일 수 없음에 대하여 말하기를, “거짓 교사들을 경고하고 진리에 관심을 가지고 글을 쓰고 있는 위조자가 고의적으로 그런 사도의 이름을 가지며 또 자기가 주장할 수도 없는 체험을 내세운다는 것은 거의 상상할 수 없는 문제이다”라고 하였다.1)

본서의 저작 연대는 베드로전서가 기록된 후 즉 주후 66년 내지 67년경일 것이다. 베드로후서의 특징적 주제는 이단에 대한 경고이다. 본서는 거짓 교사와 거짓 교훈을 조심할 것을 경고한다. 베드로후서는 장차 나타날 거짓 교사들에 대해 말하는데 비해, 유다서는 현재 나타나 활동하는 거짓 교사들에 대해 말한다.

베드로후서의 각 장의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다.

1장, 신앙의 성숙

2장, 거짓 교사들

3장, 주의 날

 

1장: 신앙의 성숙

1-2절, 문안 인사

[1-2절] 예수 그리스도의 종과 사도인 시몬 베드로는 우리 하나님과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의를 힘입어 동일하게 보배로운 믿음을 우리와 같이 받은 자들에게 편지하노니 하나님과 우리 주 예수를 앎으로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더욱 많을지어다.

베드로는 자신을 ‘예수 그리스도의 종과 사도’라고 불렀다. ‘예수 그리스도의 종’은 예수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인정하고 의지하며 그에게 절대 복종하는 자임을 고백한 것이며, ‘사도’라는 말은 예수님께 사명을 받아 파송된 자임을 증거한 것이다. 그가 받은 사명이란 하나님의 복음 진리를 널리 전파하고 가르치는 것이었다.

‘우리 하나님과 구주 예수 그리스도’라는 원어는 ‘우리의 하나님과 구주이신 예수 그리스도’라는 뜻이다(NASB). 예수님의 완전한 신성(神性)은 그에게 돌려지는 신적 명칭들과 속성들, 그가 행하신 신적 사역들, 그리고 그가 받으시는 신적 영광 등에서도 충분히 증거된다. 예수께서는 ‘하나님’(요 1:1; 20:28), ‘크신 하나님’(딛 2:13), ‘참 하나님’(요일 5:20)으로 불리신다. 그는 신성(神性)을 가진 구주이시다.

‘우리의 하나님과 구주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의’란 신적 구주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이루신 대속(代贖)의 의(義)를 가리킨다. 신적 구주께서 우리를 위하여 율법의 의를 이루셨다. 로마서 10:4, “그리스도는 모든 믿는 자에게 의를 이루기 위하여 율법의 마침이 되시니라.” 또 그는 우리의 의가 되셨다(고전 1:30). ‘의를 힘입어’라는 말은 ‘의로 말미암아’라는 뜻이다. 우리의 믿음은 예수 그리스도의 의(義) 때문에 시작되었고 또 견고케 된다(롬 3:24; 고전 6:11).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은 그가 십자가에서 이루신 대속의 의를 믿는 것이다. 이것이 구원이요 영생의 근거이다.

베드로는 서신을 받는 성도들을 ‘동일하게 보배로운 믿음을 우리와 같이 받은 자들’이라고 표현하였다. 성도들의 믿음은 ‘보배로운’ 믿음이다. 세상의 금은 보화로는 천국과 영생을 얻을 수 없으나 참된 믿음으로는 그것을 얻을 수 있다(막 16:16; 요 3:16). 성도의 믿음은 하나님의 은혜이며 천국을 기업으로 받을 매우 값진 것이다.

‘동일하게 보배로운 믿음’이라는 말은 참 믿음이 모든 성도들에게, 남녀노소, 빈부귀천, 또는 유대인과 이방인 모두에게 동일하게 보배로움을 증거한다. 보배로운 성도의 믿음은 모든 믿는 자들에게 공통적이다. 디도서 1:4, “같은[공통적] 믿음(common faith)을 따라 된 나의 참 아들 디도에게 편지하노니.”

베드로는 “하나님과 우리 주 예수를 앎으로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더욱 많을지어다”라고 말한다. 그는 지식을 강조한다(벧후 1:6; 3:16). 우리가 하나님과 주 예수님을 아는 것이 은혜이며 구원이다. 예수께서는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의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라고 말씀하셨다(요 17:3). 우리는 하나님과 주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의 사랑을 깨닫고 믿음으로 죄사함과 의롭다 하심의 구원을 얻었고 마음의 참된 평안을 얻었다. 우리는 육신의 건강이나 물질적 여유도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 속에서 누린다(잠 3:7-10; 마 6:33). 이제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께 대한 우리의 지식이 더할수록 하나님의 은혜와 평안도 더욱 많아질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대속의 의(義)를 우리에게 주신 것을 감사하자. 또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 모두에게 동일하게 보배로운 믿음을 주신 것을 감사하자. 또 우리는 하나님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앎으로 은혜와 평안을 더 많이 누리기를 기도하자.

3-4절, 구원의 내용과 목적

[3절] 그의 신기한(데이오스)[신적인] 능력으로 생명과 경건에 속한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셨으니 이는 자기의 영광과 덕으로써 우리를 부르신 자를 앎으로 말미암음이라.

예수 그리스도의 신적 능력은 생명과 경건에 관한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셨다. 구원은 하나님의 능력의 일이다. 죄로 인하여 죽었던 영혼들을 다시 살게 하시는 것은 오직 하나님께서만 하실 수 있다. 예수께서는 그의 신적 능력으로 우리를 구원하셨고 우리에게 참된 생명 곧 영원한 생명을 주셨고 또 하나님을 섬길 수 있는 참된 경건을 허락하셨다. 우리는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중보사역과 그의 이름을 의지하지 않고서는 하나님을 섬길 수 없었고 지금도 그러하다.

또 하나님께서는 영광과 덕으로써 우리를 부르셨다. 그의 구원의 사역은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이 세상에 보내심으로 이루어졌고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셨다. 요한복음 1:14,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또 ‘덕으로써’라는 말은 구원이 하나님의 선하신 성품 곧 그의 긍휼과 사랑에서 시작되었음을 의미한다. 우리는 이런 구주 하나님을 앎으로써 죄사함과 의롭다 하심과 영생에 이르는 구원을 얻었다.

[4절] 이로써 그 보배롭고 지극히 큰 약속을 우리에게 주사 이 약속으로 말미암아 너희로 정욕을 인하여 세상에서 썩어질 것을 피하여 신의 성품에 참여하는 자가 되게 하려 하셨으니.

우리의 구원은 하나님의 보배롭고 지극히 큰 약속이다. ‘이로써’라는 말은 앞절에 말한 ‘영광과 덕으로써’라는 말을 가리킨다. ‘그 보배롭고 지극히 큰 약속’은 바로 우리가 받은 구원의 내용, 즉 영생과 천국과 부활의 소망을 가리킨다. 하나님께서는 이 영광스런 구원을 약속하셨다. 디도서 1:1-2, “하나님의 종이요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인 바울 곧 나의 사도된 것은 하나님의 택하신 자들의 믿음과, 경건함에 속한 진리의 지식과 영생의 소망을 인함이라. 이 영생은 거짓이 없으신 하나님이 영원한 때 전부터 약속하신 것인데.”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신 목적은 우리로 하여금 그의 성품에 참여하게 하려 하심이었다. ‘신(神)의 성품’이라는 원어(데이아 퓌시스)는 ‘신적인 성품’이라는 뜻이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사람을 자기 형상대로 지으신 그 성품이라고 말할 수 있다. 우리의 구원은 구원받기 전의 상태, 즉 아담의 범죄로 모든 인류에게 전가(轉嫁)된 죄책(罪責) 즉 죄인이라는 신분과 법적 책임과, 모든 인류에게 전달된 죄성(罪性)의 상태와 매우 대조된다. 사람이 본래 하나님의 형상대로 거룩하고 의롭게 창조되었으나, 인류의 시조 아담과 하와가 범죄한 후, 사람들은 ‘정욕을 인하여 세상에서 썩어질 것을’ 구하는 자들이 되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주시는 구원은 사람의 본성이 회복되어 거룩하고 의롭고 선하고 진실한 하나님의 성품을 가지게 되는 것이다. 하나님의 구원의 목적은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게 하는 것이다.

본문은 구원의 내용과 목적에 대해 증거한다. 구원은 영원한 생명이며 그것은 하나님의 보배롭고 지극히 큰 약속이다. 그것은 영광스런 부활과 천국에서의 복된 삶을 포함한다. 이것은 세상의 금은 보화로 살 수 없는 보배이다. 하나님의 구원의 목적은 우리로 하여금 정욕을 인해 세상에서 썩어질 것을 피하여 신적 성품을 가지게 하는 것이다. 신적 성품은 거룩하고 의롭고 선하고 진실함을 가리킨다.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으로 신자들에게는 법적으로 이루어졌고 장차 온전히 이루어질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제 죄악된 생활을 버리고 하나님만 바라며 성경말씀과 성령의 인도로 거룩한 삶을 힘써야 한다.

5-11절, 힘써야 할 일곱 가지 내용과 그 이유

[5-7절] 이러므로 너희가 더욱 힘써 너희 믿음에 덕을, 덕에 지식을, 지식에 절제를, 절제에 인내를, 인내에 경건을, 경건에 형제 우애를, 형제 우애에 사랑을 공급하라.

‘더욱 힘써’라는 원어는 ‘모든 열심을 보이라’는 뜻이다. 사도 베드로는 우리가 우리의 믿음에 다음 일곱 가지의 내용을 공급하는 일에 모든 열심을 보여야 한다고 교훈한다. 사도 바울도 데살로니가전서 4:1에서 “형제들아, 우리가 주 예수 안에서 너희에게 구하고 권면하노니 너희가 마땅히 어떻게 행하며 하나님께 기쁘시게 할 것을 우리에게 받았으니 곧 너희 행하는 바라 더욱 많이 힘쓰라”고 말했다. 사도 베드로가 교훈한 그 일곱 가지 내용은 무엇인가?

첫째는 덕이다. 덕은 선한 성품을 가리킨다. 참된 믿음에는 선한 성품이 필요하다. 믿음이 선한 성품의 인격으로 나타나지 않는다면 죽은 믿음이든지 아니면 심히 부족하고 결함이 있는 믿음일 것이다. 그러므로 믿는 자는 선한 인품, 즉 덕스러운 인품을 갖추도록 힘써야 한다. 믿는 모든 성도에게는 덕, 곧 선한 성품이 필요하다.

둘째는 지식이다. 우리의 믿음은 덕뿐 아니라, 지식도 필요하다. 그 지식은 하나님의 진리에 대한 지식이다. 하나님의 진리는 하나님의 뜻을 나타내는데, 그것은 성경에 기록되어 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를 참으로 믿은 자는 성경말씀을 주야로 읽고 듣고 배우고 묵상하고 연구하기를 힘써야 하고, 또 그렇게 함으로 하나님의 진리의 지식이 풍성해져야 할 것이다.

셋째는 절제이다. 절제는 특히 지식에 있어서 필요하다. 우리는 하나님에 관하여 지극히 조금 알고 있을 뿐이다. 또 그 지식은 전적으로 성경책에 의존하고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경에 밝히 계시된 것만큼만 하나님을 알도록 해야 할 것이며, 하나님께서 성경말씀에 계시해주시지 않은 것을 지나치게 상상하거나 또 그가 교훈하시지 않은 것을 단언하고 규정하는 것은 좋지 않다. 고린도전서 4:6, “내가 너희를 위하여 이 일에 나와 아볼로를 가지고 본을 보였으니 이는 너희로 하여금 기록한 말씀 밖에 넘어가지 말라 한 것을 우리에게서 배워 서로 대적하여 교만한 마음을 먹지 말게 하려 함이라.”

또 절제는 우리가 누리는 즐거움에 있어서도 필요하다. 물론 죄 되는 것이 아닌 즐거움, 곧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합법적 즐거움이 있다. 먹는 즐거움이 있고 결혼의 즐거움이 있다. 성경도 그것은 인정한다. 전도서는 사람이 먹고 마시며 심령으로 낙을 누리는 것이 선하고 아름답다고 반복해 말하였고(2:24; 3:13; 5:18; 8:15) 또 아내와 함께 즐겁게 사는 것도 복이라고 말했다(9:9). 그러나 우리는 비록 죄 되는 것이 아니라 하더라도 육신적 즐거움에 빠지지 않는 절제가 필요하다. 고린도전서 6:13, “식물은 배를 위하고 배는 식물을 위하나 하나님이 이것저것 다 폐하시리라. 몸은 음란을 위하지 않고 오직 주를 위하며 주는 몸을 위하시느니라.” 고린도전서 9:25, “이기기를 다투는 자마다 모든 일에 절제하나니 저희는 썩을 면류관을 얻고자 하되 우리는 썩지 아니할 것을 얻고자 하노라.”

넷째는 인내이다. 우리는 세상에서 겪는 여러 가지 고난 중에서 오래 참고 인내해야 한다. 우리는 말세에 대 환난의 시대에 믿음과 인내를 가져야 한다(계 13:10). 또 우리가 형제를 사랑할 때도 인내가 필요하다. 바울은 “사랑은 오래 참고 . . . 사랑은 모든 것을 참으며 . . . 모든 것을 견디느니라”라고 말하였다(고전 13:4, 7). 우리는 또 우리의 기도에 대한 하나님의 응답을 기다릴 때에도 오래 참고 기다려야 한다. 참된 믿음의 걸음에는 인내가 필요하다.

다섯째는 경건이다. 경건은 항상 하나님을 의식하며 두려워하며 하나님 앞에서 사는 것을 말한다. 그것은 하나님께 예배하는 태도요 범사에 하나님을 인정하는 태도이다. 그것은 성경말씀을 읽고 기도하기를 힘쓰며 하나님과 항상 교제하고 그와 동행하는 것이다. 모든 신자는 경건하게 살아야 한다.

여섯째는 형제 우애이다. 베드로는 베드로전서에서 우리가 서로 같은 생각과 같은 감정을 가지고 형제를 사랑하고 상대에 대해 부드러운 마음을 가지고 친절한 생각을 해야 한다고 가르쳤다(벧전 3:8). 바울도 로마서 12:19에서, “형제를 사랑하여 서로 우애하라”고 말하였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서로 사이좋게 지내며 살기를 원하신다.

일곱째는 사랑이다. ‘사랑’이라는 말(아가페)은 ‘형제 우애’라는 말(필라델피아)보다 더 강한 뜻을 가진다. 이것은 우리를 사랑하신 하나님의 사랑과 같은 사랑, 즉 ‘무조건적, 희생적 사랑’을 나타내는 말이다. 주 예수께서는 우리에게 이런 사랑으로 ‘원수까지도 사랑하라’고 명령하셨고 우리에게 용서를 비는 형제의 죄를 일흔 번씩 일곱 번이라도 용서하라고 명하셨다(마 5:44; 18:22). 사랑은 허다한 허물을 덮는다. 또 사랑은 율법의 완성이다(롬 13:10).

[8-9절] 이런 것이 너희에게 있어 흡족한즉 너희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알기에 게으르지 않고 열매 없는 자가 되지 않게 하려니와 이런 것이 없는 자는 소경이라. 원시(遠視)치 못하고 그의 옛 죄를 깨끗케 하심을 잊었느니라.

만일 우리에게 위와 같은 내용들이 있으면 우리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참 지식에 있어서 열매 없는 자가 되지 않겠지만, 이런 것이 없는 자는 내세와 천국을 바라보지 못하는 소경과 같고 하나님께서 그의 옛 죄들을 깨끗케 해주셨음을 잊어버린 자와 같다.

[10절] 그러므로 형제들아, 더욱 힘써 너희 부르심과 택하심을 굳게 하라. [이는] 너희가 이것을 행한즉 언제든지 실족지 아니하리라[아니할 것임이니라].

베드로는 다시 “더욱 힘써 너희 부르심과 택하심을 굳게 하라”고 강조한다. ‘부르심과 택하심’은 우리의 구원을 표현하는 말이다. 우리가 하나님의 부르심과 택하심을 얻은 증거는 우리의 참된 믿음과 회개이다. 그러나 우리는 앞에서 언급한 일곱 가지 내용, 즉 믿음에 덕과 지식과 절제와 인내와 경건과 형제 우애와 사랑을 공급함으로써 우리의 구원을 굳게 해야 한다는 것이다. 베드로는 우리가 더욱 힘써 우리의 구원을 굳게 해야 할 이유로 다음의 두 가지를 언급했다. 첫째는 우리가 이것을 행한즉 언제든지 실족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순종의 행위를 통하여 믿음의 승리자가 될 수 있다. 승리의 비결은 계속 순종하기를 힘쓰는 데 있다.

[11절] [이는] 이같이 하면 우리 주 곧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원한 나라에 들어감을 넉넉히 너희에게 주시리라[주실 것임이니라].

본문은 우리가 더욱 힘써 우리의 구원을 굳게 해야 할 두 번째 이유를 증거한다. 그 이유는 우리가 이런 것들을 소유하면 우리 주 곧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원한 나라 즉 영원한 천국에 넉넉히 들어가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성도의 구원은 순종 생활 속에서 더욱 확실해진다. 범죄함은 성도에게서 구원의 확신을 빼앗아 갈 수도 있다. 그러나 다윗의 고백처럼, 그가 회개할 때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구원의 즐거움을 회복시켜 주실 것이다(시 51:12).

본문은 성도가 구원받은 후에 신적 성품에 참여하기 위해 자신의 믿음에 더하여야 할 일곱 가지 내용을 증거하였다. 그 일곱 가지 내용은 덕 곧 선한 성품과 지식과 절제와 인내와 경건과 형제 우애와 사랑이다. 또 성도가 이 일곱 가지의 덕을 힘써야 할 이유는 이렇게 함으로써 우리가 믿음의 걸음에서 실패치 않고 영원한 천국에 넉넉히 들어갈 수 있기 때문이다. 성도의 믿음은 이와 같이 정도의 차이가 있다. 그것은 성화의 정도의 차이이다. 우리는 우리의 믿음에 덕과 지식과 절제와 인내와 경건과 형제 우애와 사랑을 더하기를 더욱 힘쓰자.

12-21절, 예수님의 영광에 대한 두 가지 증거

[12-15] 이러므로 너희가 이것을 알고 이미 있는 진리에 섰으나 내가 항상 너희로 생각하게 하려 하노라. 내가 이 장막에 있을 동안에 너희를 일깨워 생각하게 함이 옳은 줄로 여기노니 이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내게 지시하신 것같이 나도 이 장막을 벗어날 것이 임박한 줄을 앎이라. 내가 힘써 너희로 하여금 나의 떠난 후에라도 필요할 때는 이런 것을 생각나게 하려 하노라.

우리는 성경 진리들을 이미 알고 있어도 그것들을 항상 기억해야 한다. 베드로는 자신의 장막을 벗어날 것 곧 자신의 죽음이 임박함을 느끼고 있었고 그러기 때문에 더욱 성도들을 교훈하였다. 베드로후서는 베드로의 유언적 내용이었다. 베드로는 자신의 죽은 후에도 성도들에게 필요한 때 이 진리가 생각나게 하려고 죽기 전에 힘써 교훈하였던 것이다. 여기에 하나님께서 성경을 기록하게 하신 목적이 있고 성도들에게 성경이 필요한 이유가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목적대로 성경을 주야로 묵상함으로써 하나님의 뜻을 늘 기억하며 교훈을 얻고 충만한 은혜와 유익을 얻어야 할 것이다.

[16-18절]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과 강림하심을 너희에게 알게 한 것이 공교히 만든 이야기를 좇은 것이 아니요 우리는 그의 크신 위엄을 친히 본 자라. 지극히 큰 영광 중에서 이러한 소리가 그에게 나기를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하실 때에 저가 하나님 아버지께 존귀와 영광을 받으셨느니라. 이 소리는 우리가 저와 함께 거룩한 산에 있을 때에 하늘로서 나옴을 들은 것이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신적 능력과 강림하심 즉 그의 성육신(成肉身)과 신적 영광을 바로 아는 것은 기독교 신앙의 기본적 내용이다. 베드로는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신적 영광이 ‘공교히 만든 이야기를 좇은 것이 아니고 자신들이 그의 크신 영광을 친히 본 자라고 증거하였다.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사실들은 사람이 만들어낸 창작물이 아니다. 그것은 역사적 사건들에 대한 진실한 증인들의 증거들이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그 사실들에 대한 증인들이었다.

베드로는 자신이 친히 보았던 주의 크신 위엄과 영광에 대해 증거한다. 그것은 마태복음 17장에 기록된 대로 그와 다른 두 제자들이 주와 함께 높은 산에 올라갔을 때에 주께서 영광스럽게 변화되셨고 하나님 아버지께서 하늘로부터 친히 음성으로 그에 대해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고 증거하신 내용이었다. 이 때 예수께서는 하나님 아버지께로부터 존귀와 영광을 얻으셨다. 이것이 예수님의 신적 영광에 대한 베드로의 첫 번째 증거이다.

[19-21절] 또 우리에게 더 확실한 예언이 있어 어두운 데 비취는 등불과 같으니 날이 새어 샛별이 너희 마음에 떠오르기까지 너희가 이것을 주의하는 것이 가하니라. 먼저 알 것은 경의 모든 예언은 사사로이 풀 것이 아니니 예언은 언제든지 사람의 뜻으로 낸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의 감동하심을 입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받아[하나님의 거룩한 사람들이 성령의 감동을 받아](전통본문)2)말한 것임이니라.

베드로는 예수님의 신적 영광에 대한 두 번째 증거를 말한다. 그것은 구약성경의 증거이다. 그것은 그가 친히 보았던 증거보다 더 확실한 증거이다. 성경은 인간의 그 어떤 증거보다 더 확실한 증거의 책이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믿음의 확실함을 위해 성경을 우리에게 주셨다. 그것은 어두운 곳을 비취는 등불과 같다. 어두운 밤에 불빛이 없다면 얼마나 답답하고 불편할 것인가? 성경이 없었다면, 우리는 이 어둡고 죄악된 세상에서 하나님과 인간과 구주에 대하여 바로 알지 못했을 것이다. ‘날이 새어 샛별이 너희 마음에 떠오르기까지’라는 말은 우리가 성경을 읽고 연구하고 묵상할 때 바른 깨달음이 생기는 것을 가리킨다고 본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경책을 통해 하나님의 아들이신 구주 예수 그리스도와 그 속죄의 복음을 바로 깨달을 때까지 성경책을 가까이 하며 읽어 나가야 할 것이다.

베드로는 성경이 예수님에 대한 중요한 증거이지만 그것을 사사로이 해석해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그것은 주관적 해석을 주의하라는 뜻이다. 이것은 우리가 먼저 알아야 할 것, 즉 기본적으로 중요한 것이다. 성경이 중요한 만큼 그것을 해석하는 것도 중요하다. 건전한 성경 해석의 방법은 우선 문법적으로 해석하고 그 다음 역사적 배경을 이해하면서 해석하고 마지막으로 성경을 전체적으로 통일성 있게 해석하는 것이다. 물론, 성경을 깨닫게 하시는 이는 오직 하나님이시므로 성경을 연구하는 이들은 하나님의 깨닫게 하시는 은혜를 구하면서 읽고 묵상하고 연구해야 할 것이다.

우리가 성경을 사사로이 해석해서는 안 되는 것은 성경이 하나님의 감동으로 기록된 책이기 때문이다. 예언은 사람의 뜻으로 낸 것이 아니고 오직 하나님의 거룩한 사람들 곧 선지자들이 성령의 감동을 받아 말한 것이다.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되었다(딤후 3:16). 그러므로 우리는 성경을 해석할 때 매우 조심해야 한다. 성경을 제멋대로 잘못 해석하는 것은 큰 죄가 된다.

우리는 이미 아는 진리도 계속 다시 기억하고 복습해야 한다. 그것이 베드로가 편지를 쓴 목적이었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성경을 주신 목적이다. 또 우리는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신적 영광이 사람의 공교히 만든 이야기를 좇은 것이 아니고 제자들이 친히 본 바요 구약성경이 확실히 예언한 바임을 알고 믿고 확신해야 한다. 그를 바로 알고 믿어야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고 이단 사설에 유혹받지 않을 수 있다. 우리는 하나님의 진리들이 마치 샛별이 떠오르듯이 밝히 깨달아질 때까지 성경을 경건하게 읽고 묵상해야 하고, 또 성경을 제멋대로 잘못 해석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우리는 성경의 건전한 해석 방법을 유념하고 또 성령의 지도하심을 구하며 성경을 읽어야 한다.

2장: 거짓 교사들

1-3절, 거짓 교사들의 교훈

[1-3절] 그러나 민간에 또한 거짓 선지자들이 일어났었나니 이와 같이 너희 중에도 거짓 선생들이 있으리라. 저희는 멸망케 할 이단을 가만히 끌어들여 자기들을 사신 주를 부인하고 임박한 멸망을 스스로 취하는 자들이라. 여럿이 저희 호색하는 것을 좇으리니 이로 인하여 진리의 도가 훼방을 받을 것이요 저희가 탐심을 인하여 지은 말을 가지고 너희로 이(利)를 삼으니 저희 심판은 옛적부터 지체하지 아니하며 저희 멸망은 자지 아니하느니라.

구약교회에는 거짓 선지자들이 종종 나타났다. 참 선지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代言)하는 자이지만, 거짓 선지자는 진리와 다른 말, 즉 거짓말을 하는 자이다. 사탄은 모든 거짓말의 근원이다. 요한복음 8:44,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게서 났으니 . . . . [저는] 거짓말쟁이요 거짓의 아비가 되었음이니라.” 이와 같이, 신약교회에도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의 영광에 대한 말씀과 복음 진리가 확실함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부정하는 거짓 교사들이 나타나게 될 것이다.

참과 거짓, 또 진리와 이단의 구별 기준은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이다. 이사야 8:20, “마땅히 율법과 증거의 말씀을 좇을지니 그들의 말하는 바가 이 말씀에 맞지 아니하면 그들이 정녕히 아침빛을 보지 못하고[그들 속에 빛이 없음이니라].”

신약교회에도 거짓 교사들이 있을 것이라는 것이 성경의 예언이며 또 이 예언은 역사상 성취되었다. 예수께서도, “거짓 그리스도들과 거짓 선지자들이 일어나 큰 표적과 기사를 보이어 할 수만 있으면 택하신 자들도 미혹하게 하리라”고 말씀하셨다(마 24:24).

거짓 교사 곧 이단자는 ‘멸망케 할 이단’을 가르치는 자이다. 즉 이단 사상은 하나님의 구원의 진리와 아주 다르다. 그것은 사람에게 멸망을 준다. 왜냐하면 이단의 본질은 구주 예수 그리스도를 부정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예수 그리스도를 부정하는 곳에는 오직 멸망만 있다. 요한복음 3:36, “아들을 믿는 자는 영생이 있고  아들을 순종치 아니하는 자는 영생을 보지 못하고 도리어 하나님의 진노가 그 위에 머물러 있느니라.” 요한일서 5:12, “아들이 있는 자에게는 생명이 있고 하나님의 아들이 없는 자에게는 생명이 없느니라.”

이단은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神性)과 그의 속죄사역을 부정한다. 즉 하나님의 아들께서 사람이 되셔서 우리 죄를 담당하시고 우리 죄의 형벌을 대신 받으셨다는 것을 부정하는 것이다. 요한일서 4:1-3, “영을 다 믿지 말고 오직 영들이 하나님께 속하였나 시험하라. 많은 거짓 선지자가 세상에 나왔음이니라. 하나님의 영은 이것으로 알지니 곧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체로 오신 것을 시인하는 영마다 하나님께 속한 것이요 예수를 시인하지 아니하는 영마다 하나님께 속한 것이 아니니 이것이 곧 적그리스도의 영이니라.” 바울은 이단자들이 결국 다른 예수를 전하는 자들이며(고후 11:3-4), 실상 하나님의 종들이 아니고 마귀의 종들이라고 말했다(고후 11:13-15).

이단적 거짓 교사들의 다른 하나의 특징은 음란함이다. 본장의 뒷부분에도 이런 특징이 계속 언급되어 있다. 10절, “육체를 따라 더러운 정욕 가운데서 행하며.” 14절, “음심이 가득한 눈을 가지고 범죄하기를 쉬지 아니하고 굳세지 못한 영혼들을 유혹하며.” 18절, “저희가 허탄한 자랑의 말을 토하여 미혹한데 행하는 사람들에게서 겨우 피한 자들을 음란으로써 육체의 정욕 중에서 유혹하여.”

이단자들의 이런 부도덕함으로 인하여 진리의 도가 세상 사람들에게 비난을 받게 될 것이다. 음란함은 인간의 양심에도 거스르는 일이다. 그런데 하나님의 구원의 진리를 전한다는 자들이 거룩과 의(義)를 저버리고 음란함에 빠진다면 구원의 진리는 여지없이 땅에 떨어지게 될 것이다. 이런 점에서도 이단자들은 하나님께 욕을 돌리며 하나님의 거룩한 구원 운동을 방해하는 하나님의 원수들이다.

이단적 거짓 교사들의 또 다른 하나의 특징은 탐심이다. 하나님을 참으로 섬기지 않는 자들은 대체로 이 세상을 최고의 가치로 여기며, 특히 돈과 물질적 부요를 사랑할 것이다. 이단자들은 세상의 물질적 이익을 구하는 자들이다. 또 그들은 물질적 이익을 위해 말을 지어내며 거짓말도 한다. 그들은 진리의 사람들이 아니다.

그러나 거짓 교사들이 받을 심판과 멸망은 옛날부터 지체하지 않고 잠자지 않는다. 이단적인 거짓 교사들의 결말은 멸망이며 그들의 멸망은 임박하다. 마태복음 25:41, “또 왼편에 있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저주를 받은 자들아, 나를 떠나 마귀와 그 사자들을 위하여 예비된 영영한 불에 들어가라.” 요한계시록 19:20, “짐승이 잡히고 그 앞에서 이적을 행하던 거짓 선지자도 함께 잡혔으니 이는 짐승의 표를 받고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던 자들을 이적으로 미혹하던 자라. 이 둘이 산 채로 유황불 붙는 못에 던지우고.” 이단적 교사들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과 그들의 멸망은 반드시 이루어질 것이다.

우리는 거짓 교사들 즉 이단자들을 분별해야 한다. 어떻게 분별할 수 있는가? 오직 신구약 성경이 분별 기준이 된다. 그러므로 우리에게는 성경의 바른 지식이 필요하고 성경적, 역사적 기독교 신앙의 개요에 대한 바른 지식이 필요한 것이다. 그 핵심은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속죄에 관한 교리들이다. 우리는 새로운 사상을 항상 조심해야 한다.

또 우리는 거짓 교사들의 특징들인 음란과 탐심을 경계해야 한다. 이 세상이 성적으로 문란할지라도, 우리는 거룩하며 절제해야 한다. 또 이 세상이 물질만능주의를 따를지라도, 우리는 돈을 사랑하지 말고 먹을것과 입을 것이 있은즉 자족하며 사는 자가 되어야 한다.

4-9절, 거짓 교사들의 결말

[4절] 하나님이 범죄한 천사들을 용서치 아니하시고 지옥에 던져 어두운 구덩이에 두어[어두움의 사슬에 묶어]3) 심판때까지 지키게 하셨으며.

신약교회에 나타날 거짓 교사들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이 확실하다는 것은 몇 가지 사실에서 증거된다. 첫 번째 사실은 하나님께서 범죄한 천사들을 지옥에 던져 넣으신 사실이다. 4-5절에 ‘용서하다’는 원어(페이도마이 )는 ‘아끼다, 용서하다’는 뜻이다. 하나님께서는 범죄한 천사들을 아끼거나 용서하지 않으시고 어두움의 사슬로 묶어 지옥에 던져 넣으셨다. 범죄한 천사들 중 일부는 지금도 세상에서 활동하고 있으나, 나머지는 어두운 지옥에 갇히어 있고 마지막 심판을 기다리고 있다.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는 거짓 교사들도 아끼거나 용서하지 않으시고 지옥에 던지실 것이다.

[5절] 옛 세상을 용서치 아니하시고 오직 의를 전파하는 노아와 그 일곱 식구를 보존하시고 경건치 아니한 자들의 세상에 홍수를 내리셨으며.

거짓 교사들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이 확실하다는 두 번째 증거는 노아 시대의 홍수 심판의 사실이다. 노아는 의를 전파하는 자(디카이오쉬네스 케뤽카)이었다. 음란하고 강포한 그 시대에 노아는 아내를 사랑하고 가정의 거룩을 지킨 자이었음에 틀림없었고 또 방주를 만들라는 하나님의 명령에 겸손하게 순종한 자이었다. 노아는 하나님의 의(義)를 말과 행실로 증거한 자이었다. 하나님께서는 노아의 여덟 식구 외에 불경건한 당시의 모든 사람들을 홍수로 멸하셨다. 그들은 하나님을 부정하고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하나님의 뜻을 저버린 자들이다.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는 거짓 교사들에게도 멸망의 심판을 내리실 것이다.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경건한 자들만 구원을 얻을 것이다.

[6절] 소돔과 고모라 성을 멸망하기로 정하여 재가 되게 하사 후세에 경건치 아니할 자들에게 본을 삼으셨으며.

거짓 교사들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이 확실하다는 세 번째 증거는 소돔과 고모라의 멸망의 사실이다. ‘멸망하기로 정하여’라는 원어는 ‘뒤집어엎어 정죄하여’라는 뜻이다. 하나님께서는 하늘에서 유황불비를 내려 소돔과 고모라와 그 주위의 모든 백성을 다 엎어 멸하셨다(창 19:24-25). 이 사건은 후세에 경건치 않은 자들에게 본이 된다.

[7-9절] 무법한 자의 음란한 행실을 인하여 고통하는 의로운 롯을 건지셨으니 (이 의인이 저희 중에 거하여 날마다 저 불법한 행실을 보고 들음으로 그 의로운 심령을 상하니라.) 주께서 경건한 자는 시험에서 건지시고 불의한 자는 형벌 아래 두어 심판날까지 지키시며.

소돔과 고모라의 성도덕은 극도로 문란해져 공공연히 동성애가 행해졌다. 의로운 롯은 그들 가운데 거하여 날마다 저 불법한 행실을 보고 들음으로 그 의로운 심령을 상하였다. 이런 악은 오늘날도 세계 곳곳에 있다. 현대 사회는 음란한 사회이며 하나님의 진노와 심판은 점점 더 가까워지고 있다. 그러나 이 세상이 아무리 악하고 음란할지라도 노아처럼 롯처럼 경건하고 거룩하게 살고자 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구원을 받고 하나님의 보호하심을 받을 것이다. 그러나 불의한 자들의 영혼들은 지옥에 던지우고 수감되어 마지막 심판날을 기다리게 될 것이며 거짓 교사들의 결말도 그러할 것이다.

본문의 교훈은 무엇인가? 우리는 하나님의 심판, 특히 지옥의 형벌을 두려워해야 한다. 노아 시대의 홍수 심판과 소돔과 고모라 시대의 유황불 심판은 역사적 사건들이었고 그것은 하나님께서 공의의 심판자이심을 증거한다. 심판자 하나님께서는 오늘날도 변함이 없으시다. 세상은 결국 불경건과 음란으로 멸망을 당할 것이다. 지옥은 악인들을 위해 예비되어 있다. 그러나 경건한 성도는 구원을 얻을 것이다.

10-22절, 거짓 교사들의 특징들

앞부분에서도 거짓 교사들의 특징들이 언급되었으나 본문은 그들의 도덕적 탈선의 특징들을 좀더 자세히 증거한다.

[10-13절] 육체를 따라 더러운 정욕 가운데서 행하며 주관하는 이를 멸시하는 자들에게 특별히 형벌하실 줄을 아시느니라. 이들은 담대하고[건방지고] 고집하여 떨지 않고 영광 있는 자를 훼방하거니와 더 큰 힘과 능력을 가진 천사들이라도 주 앞에서 저희를 거스려[거슬러] 훼방하는 송사를 하지 아니하느니라. 그러나 이 사람들은 본래 잡혀 죽기 위하여 난 이성 없는 짐승 같아서 그 알지 못한 것을 훼방하고 저희 멸망 가운데서 멸망을 당하며 불의의 값으로 불의를 당하며[불의의 보응을 받으며]4) 낮에 연락(宴樂)을 기쁘게 여기는 자들이니 점과 흠이라. 너희와 함께 연회(宴會)할 때에 저희 간사한 가운데 연락(宴樂)하며.

거짓 교사들의 첫 번째 특징은 음란이다. 그들은 육체의 감정을 따라 더러운 정욕 가운데 행한다. 음란이 더러운 까닭은 하나님께서 정해주신 부부관계를 벗어나 몸으로 짓는 죄이기 때문이다. 음란의 죄는 자기 몸을 더럽히고 결국 가정을 불행케 만든다.

거짓 교사들의 두 번째 특징은 교만하여 하나님의 종들을 멸시하고 비난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교회 안에 합법적 권위를 가진 다스리는 자들을 세우셨다. 그들이 목사와 장로들이다. 그러나 거짓 교사들은 하나님의 참된 종들을 멸시하고 건방지게 그들을 비난하기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담대하다’는 원어(톨메테스)는 ‘건방지다, 주제넘게 행하다’는 뜻이다.

물론 교인들이 목사들과 장로들을 전혀 비평할 수 없는 것은 아니다. 목사들과 장로들도 인간이기 때문에 부족들과 실수들이 있을 것이고 그것들을 지적하는 것은 정당할 수 있다. 그러나 교인들은 그들을 비평하는 것을 매우 조심해야 한다. 아니, 그들을 자주 비평하지 않는 것이 좋다. 하나님께서 그러한 비평을 기뻐하지 않으실 것이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세우신 종들이며 그의 사랑하시는 종들이기 때문에 그들을 비난하는 것은 하나님의 명예에 손상이 될 것이다. 또 하나님의 종들을 비난하는 것은 자신들에게도 유익이 되지 못한다. 왜냐하면 그들을 통해 교훈을 받고 인도함을 받기 때문이다. 또 하나님의 종들을 비난하는 것은 교회에 덕과 유익이 되지 않는다. 그런 비난은 교회를 건설하는 대신 그것을 파괴시키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목사와 장로들에 대한 비난은 매우 조심해야 한다.

저 거짓 교사들보다 더 큰 힘과 능력을 가진 천사들이라도 하나님 앞에서 그들을 거슬러 비난하는 송사를 하지 아니했다. 그만큼 남을 비난하는 것은 조심스런 일이다. 그러나 거짓 교사들은 이성 없는 짐승같이 자신들이 알지 못하는 것들을 비난하였다. 그들의 비난은 이치에 맞는 정당한 비평이 아니었다.

그들은 본래 잡혀 죽기 위해 난 짐승과 같으며 멸망 중에 멸망을 당하고 불의의 보응을 받을 자들이라고 다시 언급된다. 거짓 교사들의 행위는 또 육체적 쾌락을 구하는 것으로 표현된다. 그들은 다른 사람들이 땀 흘려 일하는 낮에 육신적 쾌락을 기쁘게 여기는 자들이다. 그들은 먹고 즐기는 것을 좋아하는 자들이다. 이런 자들이야말로 거룩한 교회 안에서 점과 흠이다. 그들은 선생이라는 이름을 가졌으나 실상 마귀의 종들이며 세상적인 사람들이다.

[14-16절] 음심이 가득한 눈을 가지고 범죄하기를 쉬지 아니하고 굳세지 못한 영혼들을 유혹하며 탐욕에 연단된 마음을 가진 자들이니 저주의 자식이라. 저희가 바른 길을 떠나 미혹하여[저버리고 곁길로 가] 브올의 아들 발람의 길을 좇는도다. 그는 불의의 삯을 사랑하다가 자기의 불법을 인하여 책망을 받되 말 못하는 나귀가 사람의 소리로 말하여 이 선지자의 미친 것을 금지하였느니라.

거짓 교사들의 음란함을 다시 말한다. 그들은 음심이 가득한 눈을 가지고 범죄하기를 쉬지 않고 굳세지 못한 영혼들, 즉 신앙적으로, 인격적으로 연약한 자들을 유혹한다. 음란한 세상 속에서 또 거짓 교사들의 음란한 유혹에 대항하여, 성도들은 성령을 따라 행하며 또 성경의 가르침대로(고전 7:1-5) 좋은 부부관계를 유지해야 한다.

거짓 교사들의 세 번째 특징은 물질적 탐욕이다. 그들은 탐욕에 연단된 마음을 가진 자들이다. 그들은 바른 길을 저버리고 곁길로 간 자들이며 마치 옛날 불의한 선물을 사랑하여 가다가 말 못하는 나귀가 하나님의 시킴을 받아 말로 책망하였던 선지자 발람의 길을 좇는 자들이다. 베드로는 물질적 탐심과 세상적 명예심을 따라 간 발람의 행위를 ‘미친 것’이라고 표현한다. 또한 그는 저 거짓 교사들을 ‘저주의 자식’이라고 말함으로 그들의 결말이 어떠할 것을 다시 한 번 더 분명하게 증거한다.

[17-19절] 이 사람들은 물 없는 샘이요 광풍에 밀려가는 안개니 저희를 위하여 캄캄한 어두움이 [영원히]5) 예비되어 있나니 저희가 허탄한 자랑의 말을 토하여 미혹한 데 행하는 사람들에게서 겨우[참으로]6) 피한 자들을 음란으로써 육체의 정욕 중에서 유혹하여 저희에게 자유를 준다 하여도 자기는 멸망의 종들이니[저희가 그들에게 자유를 약속하지만 저희 자신이 부패의 종들이니](원문, KJV, NASB, NIV) 누구든지 진 자는 이긴 자의 종이 됨이니라.

거짓 교사들은 ‘물 없는 샘’과 같아서 그 속에 생명수 같은 진리의 말씀이 없다. 그들은 광풍에 밀려가는 안개에 불과하다. 그들을 위해 캄캄한 어두움이 영원히 예비되어 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내리실 영원한 지옥 형벌이다. 거짓 교사들의 음란한 특징이 다시 언급된다. 그들은 허영의 부풀린 말을 하면서 미혹한 데 행하는 자들에게서 피한 자들을 음란으로써 육체의 정욕 중에서 유혹한다. 그들이 사람들에게 자유를 약속하지만, 그들 자신이 부패한 종들이다. 누구든지 진 자는 이긴 자의 종이 된다. 사람이 자꾸 범죄하면 죄의 종이 되고 그러면 멸망의 종이 될 것이다.

[20-22절] 만일 저희가 우리 주 되신 구주[주와 구주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앎으로 세상의 더러움을 피한 후에 다시 그 중에 얽매이고 지면 그 나중 형편이 처음보다 더 심하리니 의의 도를 안 후에 받은 거룩한 명령을 저버리는 것보다 알지 못하는 것이 도리어 저희에게 나으니라. 참 속담에 이르기를 개가 그 토하였던 것에 돌아가고 돼지가 씻었다가 더러운 구덩이에 도로 누웠다 하는 말이 저희에게 응하였도다.

사람이 주와 구주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앎으로 세상의 더러움을 피한 후에 다시 그 더러움 가운데 떨어져 산다면, 그의 형편은 주를 알기 전보다 더 나쁘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그 죄는 주와 구주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알지 못했을 때보다 더 나쁘기 때문이다. 그런데 저 거짓 교사들은 바로 그런 자들인 것이다. 그것은 마치 개가 토한 것을 다시 먹는 것과 같고 돼지가 씻은 후에 더러운 구덩이에 누운 것과 같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듣고 알고 믿고 구원을 받은 자들은 다시는 죄악된 옛 생활로 돌아가지 말아야 한다.

본문은 거짓 교사들의 도덕적 탈선의 특징들을 열거하며 설명한다. 거짓 교사들의 첫 번째 특징은 음란함이다. 그것은 인간의 뿌리깊은 죄악성에서 나온다. 거짓 교사들의 두 번째 특징은 교만하여 하나님의 종들을 멸시하고 비난하는 것이다. 실상, 이것은 하나님 앞에 큰 죄가 된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그의 종들을 귀하게 사용하시기 때문이다. 거짓 교사들의 세 번째 특징은 물질적 탐욕이다. 참 하나님을 진심으로 경외하지 않는 자는 이 세상의 부귀영화와 돈을 사랑한다. 그러나 돈을 사랑하는 거짓 교사들의 결말은 멸망이요 캄캄한 지옥이다. 우리는 거짓 교사들을 조심하고 음란과 비방과 탐욕을 경계해야 한다.

3장: 주의 날

1-7절, 주의 재림을 부정하는 자들

[1-2절] 사랑하는 자들아, 내가 이제 이 둘째 편지를 너희에게 쓰노니 이 둘로 너희 진실한 마음을 일깨워 생각하게 하여 곧 거룩한 선지자의 예언한 말씀과 주 되신 구주께서 너희의 사도들로 말미암아 명하신 것을 기억하게 하려 하노라.

사도 베드로가 두 개의 편지를 쓴 목적은 성도들의 진실하고 순진한 마음을 일깨워서 하나님의 말씀을 기억하게 하려 함이었다. ‘거룩한 선지자의 예언한 말씀’은 구약성경을 가리키며, ‘주 되신 구주께서 너희의 사도들로 말미암아 명하신 것’은 신약성경을 가리킨다. 그가 쓰고 있는 본 서신도 그 중에 하나이다. 여기에 하나님의 의도하신 바가 나타나 있다. 우리는 구약성경과 신약성경을 항상 읽고 들음으로써 하나님의 말씀을 기억해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속에 그의 진리와 교훈이 풍성히 거하여 우리가 그것을 다 믿고 행함으로 그의 뜻이 이루어지고 그에게 영광이 되기를 원하신다.

[3-4절] 먼저 이것을 알지니 말세에 기롱하는 자들이 와서 자기의 정욕을 좇아 행하며 기롱하여 가로되 주의 강림하신다는 약속이 어디 있느뇨? 조상들이 잔 후로부터 만물이 처음 창조할 때와 같이 그냥 있다 하니.

하나님의 말씀 가운데 하나는 말세에 주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을 부정하는 불신앙적인 목사들이 나타날 것이라는 내용이다. 그들은 자기들의 정욕을 좇아 행하며 재림의 진리를 비웃고 조롱할 것이다. 앞장에서 말한 대로, 정욕적 삶과 음란은 거짓 교사들의 특징이다. 또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의 약속을 부정하며 말하기를 조상들이 죽은 후에도 여전히 만물이 처음 창조할 때와 같이 그냥 있다고 말한다. 예언된 종말적 대변혁의 징조들이 없다는 것이다.

오늘날 자유주의 신학은 이러한 성경 예언의 성취이다. 자유주의 신학자들은 주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을 믿지 않고 공공연히 부인한다. 라인홀드 니이버는 비극을 너머서라는 그의 책에서 “기독교의 교리 중에 그리스도의 재림의 소망보다 더 속임과 착각으로 인도한 교리는 없다”고 말했다. 이런 자들은 하나님의 백성들을 넘어뜨리려고 불신앙과 이단을 전파하는 사탄의 종이다. 교회 역사상 끊임없이 일어났던 배교 운동들의 은밀한 사령탑에는 가장 우두머리에 사탄이 있다. 우리는 이런 불신앙적 사상들을 분별하고 대항해야 한다.

[5-7절] 이는 하늘이 옛적부터 있는 것과 땅이 물에서 나와 물로 성립한 것도 하나님의 말씀으로 된 것을 저희가 부러 잊으려 함이로다. 이로 말미암아 그때 세상은 물의 넘침으로 멸망하였으되 이제 하늘과 땅은 그 동일한[그의]7) 말씀으로 불사르기 위하여 간수하신 바 되어 경건치 아니한 사람들의 심판과 멸망의 날까지 보존하여 두신 것이니라.

베드로는 주의 재림을 부정하는 이단자들을 두 가지 점에서 반박한다. 첫째로, 그는 하늘과 땅이 옛적부터 있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되었음을 상기시킨다. 창세기 1장에 기록된 대로, 하나님께서는 하늘과 땅과 그 가운데 모든 것을 그의 말씀으로 다 창조하셨다. ‘땅이 물에서 나와 물로 성립한 것’이라는 말은 ‘땅이 물에서부터 또 물로 말미암아 만들어진 것’이라는 뜻으로 창세기 1:9에 “하나님이 가라사대 천하의 물이 한 곳으로 모이고 뭍이 드러나라 하시매 그대로 되니라”는 말씀을 가리킨다고 본다.

둘째로, 베드로는 옛 세상이 물의 넘침으로 멸망하였음을 상기시킨다. 이것은 노아 시대의 홍수 심판을 가리킨다. 이것도 하나님의 말씀대로 된 사건이었다. 하나님께서는 노아에게 땅에 강포가 가득함으로 홍수를 일으켜 멸할 것을 선언하셨다(창 6:13, 17). 그는 그의 말씀대로 홍수 심판을 세상에 내리셨다.

베드로는 현재의 하늘과 땅도 하나님의 말씀으로 불사르기 위해 마지막 심판의 날까지 보존되어 있다고 말한다. 우리가 과거의 역사에서 밝히 증거된 하나님의 말씀의 능력과 신실함을 믿는다면, 미래의 마지막 불 심판의 경고를 믿는 데 아무런 어려움이 없을 것이다. 그러나 저 불신앙적 교사들은 이 모든 사실을 고의로 잊으려 한다.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과 능력을 의도적으로 부정하는 자들이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그대로 믿어야 한다. 우리는 성경에 기록된 모든 말씀을 믿고 하나님의 모든 약속과 경고를 의심치 말아야 한다. 우리는 특히 신약성경에 밝히 증거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을 확신하고 간절히 소망해야 한다.

본문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우리는 항상 성경을 읽음으로써 하나님의 말씀을 기억하고 그 말씀의 능력과 신실함을 깨달아야 한다. 여기에 하나님께서 성경책을 우리에게 주신 목적이 있다. 우리는 성경을 늘 읽음으로써 하나님의 교훈을 받고 행하는 자가 되어야 한다.

둘째로, 우리는 말세에 나타나는 불신앙자들의 말에 미혹되지 말아야 한다. 많은 교회들이 성경의 근본 진리를 부정하는 자유주의 신학 사상을 용납하고 있다. 또 많은 보수적 교회들과 목사들이 자유주의 교회들과 목사들과 거리낌 없이 교제하고 협력하고 있다. 이것은 배교이며 타협이다. 우리는 이런 배교와 타협을 반대해야 한다.

셋째로,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주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을 믿고 바라며 또 하나님의 마지막 불 심판을 믿고 두려워해야 한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은 주님 자신과 사도들에 의해 밝히 증거된 진리이며 소망이다. 또 하나님의 마지막 불 심판도 성경의 근본 교리이다. 우리는 성경의 모든 교훈과 약속과 경고를 다 믿고 확신하자.

8-13절, 주의 날

[8절] 사랑하는 자들아, 주께는 하루가 천년 같고 천년이 하루 같은 이 한가지를 잊지 말라.

주님께는 하루가 천년 같고 천년이 하루 같다. 매튜 풀은 다음과 같이 주석하였다. “인간은 시간에 종속되고 시간에 의해 측정되지만, 하나님께는 과거와 미래가 없고 모든 일들이 현재이며 시간의 길고 짧음도 없다. 하나님께는 천년이, 아니 창세 이후의 수천년이 단지 하루와 같다. 그러므로 우리는 주의 재림의 지연됨을 우리 자신의 생각으로 판단하지 말고 하나님의 영원하심의 잣대로 판단해야 한다.” 하루가 천년 같다는 표현도 우리에게 짧은 시간도 하나님께는 길게 느껴지실 수 있음을 보이는 것 같다.

[9절] 주의 약속은 어떤 이의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같이 더딘 것이 아니라 오직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치 않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주의 재림이 더딘 것 같음은 실상 더딘 것이 아니고 그가 우리를 향해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치 않고 다 회개하기를 원하시기 때문이다. 이 말씀은 넓게는 모든 사람을 향한 하나님의 일반적 의지를 나타내는 것으로 볼 수 있지만, 엄격히 말하면 하나님께서 만세 전에 택하신 모든 사람에 대한 하나님의 구원 의지를 가리킨다. 하나님께서 택하신 모든 사람은 세상에 살았거나 살고 있거나 장차 출생할 모든 자들 가운데 하나님께서 구원하기를 원하시는 모든 사람이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이 다 회개하여 구원받기를 원하신다.

[10절] 그러나 주의 날이 [밤에]8) 도적같이 오리니 그 날에는 하늘이 큰 소리로 떠나가고 체질[원소들]이 뜨거운 불에 풀어지고 땅과 그 중에 있는 모든 일이 드러나리로다[불타버리리라](전통사본).9)

주의 재림의 날은 더딘 것 같지만 밤에 도적같이 갑작스럽게 올 것이다. 마태복음 24:42-43, “그러므로 깨어 있으라. 어느 날에 너희 주가 임할는지 너희가 알지 못함이니라. 너희도 아는 바니 만일 집 주인이 도적이 어느 경점에 올 줄을 알았더면 깨어 있어 그 집을 뚫지 못하게 하였으리라.” 데살로니가전서 5:1-2, “형제들아, 때와 시기에 관하여는 너희에게 쓸 것이 없음은 주의 날이 밤에 도적같이 이를 줄을 너희 자신이 자세히 앎이라.” 주의 재림의 날에 이루어질 일들은 무엇인가? 첫째로, 주의 재림의 날에는 현재의 하늘과 땅이 불타 없어질 것이다. 하늘은 큰 소리로 떠나가고 체질은 뜨거운 불에 풀어질 것이다. ‘체질’이라는 원어(스토이케이아)는 ‘원소들’을 가리킨다. 땅과 그 중에 있는 모든 것이 불타 버릴 것이다. ‘땅과 그 중에 있는 모든 것’에는 인류가 이루어 놓은 모든 문명도 포함될 것이 분명하다. ‘드러나리로다’라는 말은 전통사본에는 ‘불타 버리리라’는 말(카타카에세타이)이다.

[11-12절] 이 모든 것이 이렇게 풀어지리니 너희가 어떠한 사람이 되어야 마땅하뇨? 거룩한 행실과 경건함으로 하나님의 날이 임하기를 바라보고 간절히 사모하라. 그 날에 하늘이 불에 타서 풀어지고 체질이 뜨거운 불에 녹아지려니와.

베드로는 계속하여 주의 재림의 날에 하늘이 불에 타서 풀어지고 땅의 원소들이 뜨거운 불에 녹아지고 세상의 모든 것들이 불에 타서 풀어질 것이라고 증거한다. 주의 재림의 날은 한마디로 심판의 날이다. 죄와 저주로 더러워진 현재의 세상은 다 불타 버릴 것이다.

베드로는 이런 사실 앞에서 성도들이 어떤 사람이 되어야 마땅한가라고 물으면서 중요한 교훈을 한다. ‘거룩한 행실과 경건함’이라는 원어(복수형)는 강조하는 뜻을 가진다고 본다. 성도들은 주의 재림의 날을 간절히 사모하면서 더욱 온전히, 계속 거룩한 삶을 살아야 하고 또 날마다 하나님만 소망하며 주야로 성경말씀을 묵상하고 또 쉬지 않고 기도하기를 힘쓰는 경건한 삶을 살아야 한다.

[13절] 우리는 그의 약속대로 의(義)의 거하는 바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도다.

주의 재림의 날에 이루어질 다른 하나의 일은 새 하늘과 새 땅이다. 이것은 주님의 약속의 성취이다. 요한계시록 21:5, “보좌에 앉으신 이가 가라사대 보라 내가 만물을 새롭게 하노라 하시고 또 가라사대 이 말은 신실하고 참되니 기록하라 하시고.” 천국은 의(義)의 거하는 세계요 새 하늘과 새 땅이다.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은 죄인들이 거하는 세상, 죄가 충만한 세상이지만, 장차 오는 세상인 천국은 의인들만 거하는 세상, 의(義)가 충만한 세계이다. 거기에는 죄인들이 들어갈 수 없다. 그곳은 죄의 더러움과 저주와 허무함이 전혀 없는 완전히 새로워진 세계이다.

본문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주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의 날은 더딘 것이 아니고 영원하신 하나님, 온 세상의 창조자와 섭리자이신 그가 만세 전에 택하신 모든 사람들의 회개와 구원을 위해 오래 참으시는 것이다. 그러나 그 날은 마침내 밤에 도적같이 갑자기 올 것이다.

둘째로, 주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의 날에는 현재의 하늘과 땅과 그 가운데 있는 모든 것들이 다 불타 없어질 것이요, 의의 거하는 바 새 하늘과 새 땅이 이루어질 것이다. 죄악된 세상은 다 불타 버리고 새 세계가 이루어질 것이지만, 죄인들은 거기에 들어가지 못할 것이다.

셋째로,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구원받은 성도들은 주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의 날을 간절히 사모하면서 거룩하고 경건한 생활을 힘써야 한다. 우리는 장차 멸망할 이 세상에 속한 자처럼 살지 말고, 복되고 영광스럽고 영원한 천국에 속한 자답게 바르게 살아야 한다.

14-18절, 온전한 성화를 위해 힘쓰라

[14절] 그러므로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이것을 바라보나니 주 앞에서 점도 없고 흠도 없이 평강 가운데서 나타나기를 힘쓰라.

사도 베드로는 본장에서 본서를 받는 성도들을 ‘사랑하는 자들아’라고 거듭 불렀다(1, 8, 14, 17절). 이것은 성도들을 향한 그의 사랑을 잘 드러낸다. 주의 종들은 성도들을 사랑하며 그들을 위해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려 한다. 또 성도들은 주의 종들을 사랑하며 그 입에서 나오는 바른 교훈을 성심으로 받고 순종해야 할 것이다.

사도 베드로는 앞에서 말한 주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과 의의 천국을 생각할 때 우리가 마땅히 흠과 점이 없는 완전한 성결(聖潔)을 위해 힘써야 한다고 교훈한다. 그것은 우리가 불타 없어질 이 세상에 속한 자처럼 죄 가운데 살지 말고, 의(義)만 가득한 천국에 속한 자답게 거룩하고 의롭고 흠 없는 자로 살아야 한다는 뜻이다. 천국은 “의의 거하는 바 새 하늘과 새 땅”(벧후 3:13)이다.

우리는 죄로부터 구원을 받은 자들이다. 죄 없는 상태, 흠과 점이 없는 완전한 성결의 상태는 하나님의 구원의 목표이다. 그것은 하나님의 예정의 목표이었다. 에베소서 1:4-5,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그러므로 완전한 성결은 하나님께서 보내신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사역의 목표이었다. 에베소서 5:26-27, “이는 곧 물로 씻어 말씀으로 깨끗하게 하사 거룩하게 하시고 자기 앞에 영광스러운 교회로 세우사 티나 주름잡힌 것이나 이런 것들이 없이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려 하심이니라.”

완전한 성결은 법적으로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에게 이미 이루어졌다. 고린도전서 1:2, “고린도에 있는 하나님의 교회 곧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거룩하여지고(헤기아스메노이스, 완료분사)[거룩하여졌고] 성도라 부르심을 입은 자들과 또 각처에서 우리의 주 곧 저희와 우리의 주 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는 모든 자들에게.” 고린도전서 6:11, “너희 중에 이와 같은 자들이 있더니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과 우리 하나님의 성령 안에서 씻음과 거룩함과 의롭다 하심을 얻었느니라.” 히브리서 10:10, “이 뜻을 좇아 예수 그리스도의 몸을 단번에 드리심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거룩함을 얻었노라(헤기아스메노이, 완료분사).” 히브리서 10:14, “저가 한 제물로 거룩하게 된 자들을 영원히 온전케 하셨느니라.” 그러므로 구원받은 성도들은 이 죄가 많고 마귀의 시험과 유혹이 많은 세상에서도 마땅히 거룩한 삶을 살아야 한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 때에 완전한 거룩의 상태로 주님 앞에 설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이 세상에서도 완전한 거룩을 목표로 삼고 살아야 한다. 완전 성화는 성도의 신앙생활의 목표이어야 한다. 물론 거룩한 삶은 하나님께서 은혜로 주시는 것이다. 데살로니가전서 5:23-24, “평강의 하나님이 친히 너희로 온전히 거룩하게 하시고 또 너희 온 영과 혼과 몸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강림하실 때에 흠 없게 보전되기를 원하노라. 너희를 부르시는 이는 미쁘시니 그가 또한 이루시리라.” 그러나 우리 자신도 완전 성화를 위해 힘써야 한다. 데살로니가전서 4:1, “더욱 많이 힘쓰라.” 베드로후서 1:5, 10, “더욱 힘써[모든 열심을 보여].”

[15-16절] 또 우리 주의 오래 참으심이 구원이 될 줄로 여기라. 우리 사랑하는 형제 바울도 그 받은 지혜대로 너희에게 이같이 썼고 또 그 모든 편지에도 이런 일에 관하여 말하였으되 그 중에 알기 어려운 것이 더러 있으니 무식한 자들과 굳세지 못한 자들이 다른 성경과 같이 그것도 억지로 풀다가 스스로 멸망에 이르느니라.

사도 베드로는 우리 주의 오래 참으심이 아직 회개치 않은 택한 자들에게 구원이 된다는 사실을 다시 상기시킨다. 주의 재림이 지연되는 것은 바로 아직 회개치 않은 택자들의 구원을 위함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주께서 곧 오시는 것도 기다리는 바이지만, 그가 지체하시는 것도 회개할 영혼들을 위함인 줄 알고 감사해야 한다.

사도 베드로는 바울을 ‘우리의 사랑하는 형제 바울’이라고 표현하면서 바울도 이런 일들 곧 주의 재림과 불 심판과 새 하늘과 새 땅에 관해 그의 서신들에서 썼음을 언급한다. 특히 베드로는 바울의 모든 편지가 성경과 같은 권위를 가짐을 암시한다. ‘그 모든 편지에도’라는 표현은 바울 서신이 벌써 그 당시에 많이 알려졌고 수집되어 있었음을 나타낸다. 또 ‘다른 성경과 같이’라는 표현은 그가 바울 서신들을 성경과 같은 권위를 가진 것으로 간주했음을 보인다. 여기에 사도들의 글들의 권위가 있다. 사도들은 구약시대의 선지자들과 같이 하나님의 특별계시의 전달자들이었고 하나님의 아들 주 예수 그리스도께로부터 말씀 전파의 특별한 임무와 권위를 부여받은 자들이었기 때문에 그들의 글들은 신적 권위의 책으로 간주되었다.

단지, 베드로는 무식한 자들과 굳세지 못한 자들이 바울 서신들의 어떤 어려운 부분들을 잘못 해석함으로 멸망에 이르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고 말했다. ‘억지로 푼다’는 원어(스트레블로오)는 ‘왜곡시키다, 변개시키다’는 뜻이다. 성경을 잘못 해석하고 잘못 적용하여 하나님께서 계시하신 복음 진리와 다른 것을 말하고 정로(正路)에서 이탈하게 하는 것은 멸망할 큰 죄가 된다. 우리는 성경을 바르게 취급해야 한다. 성경의 어려운 부분은 억지로 해석하지 말고 차라리 그대로 두는 것이 나을지도 모른다. 우리는 성경의 전체적 뜻을 잘 파악하고, 모든 성경을 거기에 조화시켜 해석해야 한다.

[17-18절] 그러므로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이것을 미리 알았은즉 무법한 자들의 미혹에 이끌려 너희 굳센 데서 떨어질까 삼가라. 오직 우리 주 곧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저를 아는 지식에서 자라 가라. 영광이 이제와 영원한 날까지 저에게 있을지어다. [아멘.]10)

베드로는 성도들이 이단자들의 미혹에 이끌려 믿음의 확신에서 이탈하지 말고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 안에서와 그를 아는 지식에서 자라가야 할 것을 권면했다. 우리는 복음 진리를 확신하고 그 지식 안에서 점점 더 자라가야 한다. 바울도 말하기를,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리니 이는 우리가 이제부터 어린아이가 되지 아니하여 사람의 궤술과 간사한 유혹에 빠져 모든 교훈의 풍조에 밀려 요동치 않게 하려 함이라. 오직 사랑 안에서 참된 것을 하여 범사에 그에게까지 자랄지라. 그는 머리니 곧 그리스도라. 그에게서 온 몸이 각 마디를 통하여 도움을 입음으로 연락하고 상합하여 각 지체의 분량대로 역사하여 그 몸을 자라게 하며 사랑 안에서 스스로 세우느니라”고 하였다(엡 4:13-16).

우리는 지식에서 자라가고 흠이 없는 완전한 성화를 위해 힘써야 한다. 이것이 하나님의 구원의 목표이다. 하나님께서는 창세 전에 이것을 예정하셨고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십자가 위에서 이것을 이루셨다. 완전한 거룩함은 법적으로 이미 이루어졌다. 그러나 이 거룩함은 또한 하나님의 은혜와 우리의 성실한 노력으로 우리의 인격과 삶 속에서 나타나야 한다. 완전 성화는 우리의 신앙생활의 목표이어야 한다.

이와 더불어, 본문은 주의 오래 참으심이 택자들의 구원이 될 것을 알고 우리가 인내할 것과, 신약성경의 권위와 성경을 왜곡시키는 큰 죄를 범치 말아야 할 것과, 믿음의 확신에서 떨어지지 말아야 할 것도 교훈한다. 이런 것들도 다 성도들의 완전 성화의 요소들이다. 우리는 주 앞에서 흠과 점이 없이 나타나는 완전 성화를 향해 달려가자. 또 오래 참고 성경을 귀히 여기며 바르게 해석하고 믿음에 굳게 서자.

 

미주

1) Expositer's Bible, VI, 675; 디이슨, 신약개론, 422쪽에서 재인용함.

2) Byz א A vg copsa-mss 등이 그러함.

3) Byz p72 vg copbo arm 등이 그러함.

4) Byz A C vg copsa bo 등이 그러함.

5) Byz A C copbo-ms 등에 있음.

6) Byz א* C arm 등이 그러함.

7) Byz א C syr 등이 그러함.

8) Byz C vgmss 등에 있음.

9) Byz A vgcl copbo eth 등이 그러함.

10) Byz p72 א A C vg copsa bo arm 등에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