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다서 강해

김효성 목사

2018년 6월 12일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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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말

예수 그리스도와 사도 바울의 증거대로(마 5:18; 요 10:35; 갈 3:16; 딤후 3:16),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다.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이며 우리의 신앙과 행위에 있어서 정확무오한 유일의 법칙이라는고백은 우리의 신앙생활에 있어서 매우 기본적이고 중요하다.

성경 원본은 하나님의 영감으로 기록되었고 그 본문은 그의 독특한 배려와 섭리로 모든 시대에 순수하게 보존되었다고 본다. 이러한 교회의 전통적 견해를 버릴 타당한 이유는 없다. 그러므로 신약성경의 헬라어 비잔틴 다수 사본들의 본문은 순수하게 보존된 성경 원본의 본문에 가장 가까운 것으로 채택되어야 할 것이다.

성경은 성도 개인의 신앙생활뿐 아니라, 교회의 모든 활동들에도 유일한 규범이다. 오늘날처럼 다양한 풍조와 운동이 많은 영적 혼란의 시대에, 우리는 성경으로 돌아가 성경이 무엇을 말하는지 묵상하기를 원하며 성경에 계시된 하나님의 모든 뜻을 알기를 원한다.

성경을 가지고 설교할지라도 그것을 바르게 해석하고 적용하지 않으면, 하나님의 말씀의 기근이 올 것이다(암 8:11). 오늘날 하나님의 말씀의 기근이 오고 있다. 많은 설교와 성경강해가 있지만, 순수한 기독교 신앙 지식과 입장은 더 흐려지고 있는 것 같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오늘날 요구되는 성경 해석과 강해는 복잡하고 화려한 말잔치보다 성경 본문의 바른 뜻을 간단 명료하게 해석하고 적절히 적용하는 것일 것이다. 사실상, 우리는 성경책 한 권으로 충분하다. 성경주석이나 강해는 성경 본문의 바른 이해를 위한 작은 참고서에 불과하다. 성도는 각자 성령의 도우심을 구하며 성경을 읽어야 하고, 성경주석과 강해는 오직 참고로만 사용해야 할 것이다.

 

서론

유다서의 저자는 열두 사도 중 하나인 유다(눅 6:16)이든지 혹은 예수님의 동생인 유다(막 6:3)라고 본다. 그는 자신을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요 야고보의 형제’라고 말하였다(1절). 유다는 17절에서 “너희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들의 미리 한 말을 기억하라”고 말했는데, 이 말은 자신을 사도들과 구별시키는 것 같다. 그러면 후자가 더 타당할 것이다. 예수님의 동생 야고보가 예루살렘 교회의 중요한 지도자이었고 사도적 권위를 가진 인물이었으므로(행 15:13; 갈 1:19; 2:9) 그의 동생 유다가 본 서신의 저자이었다면 그는 자신을 ‘야고보의 형제’라고 표현할 수 있었을 것이다. 2세기 경에 벌써 허마와 폴리갑은 본 서신을 인용하였다. 초대교회는 본 서신을 영감된 책으로 받아들였다. 본 서신의 9절과 14절에 인용된 말들이 모세의 승천이나 에녹서 같은 가경서(假經書)를 인용했으므로 영감된 책이 될 수 없다는 주장이 있지만, 공통적 원천인 구전(口傳)에서 인용되었을 것이라고 보는 것이 좋을 것이다.

본 서신의 저작 연대는 베드로후서가 기록된 지 여러 해 후일 것이다. 디이슨은 그것을 주후 75년경으로 본다. 본서의 특징적 주제는 ‘진리를 위한 싸움’이다. 3절, “내가 우리의 일반으로 얻은 구원을 들어[공통적 구원에 관하여] 너희에게 편지하려는 뜻이 간절하던 차에 성도에게 단번에 주신 믿음의 도를 위하여 힘써 싸우라는 편지로 너희를 권하여야 할 필요를 느꼈노니.” 유다는 이단들에 대해 자세히 묘사하였다(4-19절). 본서의 교훈은 말세를 당하여 배교와 타협과 혼란이 극심한 오늘날 매우 적절하고 요긴하다. 우리는 우리에게 단번에 주신 믿음을 위해 이단들을 대적하여 힘써 싸워야 한다.

 

진리를 위한 싸움

1-4절, 믿음을 위해 힘써 싸우라

[1-2절]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요 야고보의 형제인 유다는 부르심을 입은 자 곧 하나님 아버지 안에서 사랑을 얻고[거룩해졌고](전통사본) 예수 그리스도를 위하여 지키심을 입은 자들에게 편지하노라. 긍휼과 평강[평안]과 사랑이 너희에게 더욱 많을지어다.

유다는 자신을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요 야고보의 형제인 유다’라고 부른다. ‘야고보의 형제’라는 말은 그 야고보가 당시에 잘 알려져 있는 인물임을 암시하는 것 같다. 그가 자신을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라고 부른 것은 예수 그리스도께 대한 그의 신앙과 순종을 나타낸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그에게 신앙의 대상이요 순종의 대상이셨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그에게 ‘주님’이셨다. 그에게만이 아니라 모든 시대의 성도들과 오늘 우리 모두에게까지 그러하시다. 우리는 그를 하나님과 구주로 믿으며 그에게 절대적 순종을 바친다.

유다는 편지 받을 성도들을 세 마디로 표현한다. 첫째로, 그들은 부르심을 입은 자들이다. 그것은 단지 전도로 죄인을 부르시는 외적 부르심을 의미하지 않고 죄인들의 마음을 감동하셔서 회개하고 주께로 나오게 하시는 효력 있는 부르심을 의미한다. 둘째로, 그들은 하나님 아버지 안에서 거룩해진 자들이다. ‘사랑을 얻고’라는 말은 전통사본에는 ‘거룩해졌고’(헤기아스메노이스)라고 되어 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사랑하셔서 그들의 죄를 씻으셨고 그들을 거룩케 하셨다. 셋째로,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지키심을 입은 자들이다. ‘예수 그리스도를 위하여’라는 원어(예수 크리스토)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라고 번역할 수 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지키심을 입은 자들이다.

유다는 성도들에게 긍휼과 평안과 사랑이 더욱 많기를 기원한다. 우리는 이미 하나님과 주 예수 그리스도의 긍휼과 사랑을 입어 구원을 받은 자들이고 그 안에서 하나님의 주시는 영육의 평안을 소유하고 누리는 자들이다. 그렇지만 이 세상이 너무 악하고 우리가 너무 약하기 때문에 하나님의 긍휼과 평안과 사랑은 날마다 시간마다 우리에게 더욱 많이 요구되는 것이다.

[3절] 사랑하는 자들아, 내가 우리의 일반으로 얻은 구원[공통적 구원]을 들어 너희에게 편지하려는 뜻이 간절하던 차에 성도에게 단번에 주신 믿음의 도를 위하여 힘써 싸우라는 편지로 너희를 권하여야 할 필요를 느꼈노니.

우리의 구원은 몇몇 사람들의 것이 아니고 모든 믿는 자가 공통적으로 얻은 것이다. ‘우리의 일반으로 얻은 구원’이라는 원어(테스 코이네스 소테리아스)는 ‘공통적 구원’이라는 뜻이다. 또 우리가 믿는 바는 ‘성도에게 단번에 주신 믿음의 도’이다. ‘믿음의 도’라는 원어(피스티스)는 단순히 ‘믿음’이라는 말로서 믿는 마음가짐보다는 믿음의 내용을 가리킨다고 보인다.

유다는 우리가 공통적으로 받은 구원에 대해 성도들에게 몇 마디 쓰고 싶은 간절한 마음을 평소에 가지고 있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주신 감동이었을 것이다. 그러다가 성도에게 단번에 주신 믿음의 도(道)를 위하여 힘써 싸우라고 권면해야 할 필요성을 느끼게 되었다. 그것은 다음에 말한 대로 교회 안에 가만히 들어온 이단들 때문이었다. 그들은 우리가 공통적으로 받은 구원에 대해 도전하고 성도에게 단번에 주신 믿음의 도를 부정하고 있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믿음의 내용은 단번에 확정된 것이며 시대마다 변하는 것이 아니다. 사도 바울은 말하기를, “다른 복음은 없나니 다만 어떤 사람들이 너희를 요란케 하여 그리스도의 복음을 변하려 함이라. 그러나 우리나 혹 하늘로부터 온 천사라도 우리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 우리가 전에 말하였거니와 내가 지금 다시 말하노니 만일 누구든지 너희의 받은 것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라고 하였다(갈 1:7-9). 기독교 진리는 확정되었고 고정되었다.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成肉身)은 단번에 이루어졌고 그의 십자가 속죄사역도, 그의 부활도 단번에 이루어졌고 우리의 사죄(赦罪)와 칭의(稱義)도 법적으로는 단번에 이루어졌다. 이 기독교 진리 외에 다른 진리는 없다. 성경이 증거하는 예수님 외에 다른 예수가 없으며, 성경이 증거하는 복음 외에 다른 복음이 없고, 또 성경적 예수와 성경적 복음을 믿고 고백하게 하는 영 외에 다른 성령이 없다.

그런데 이 불변적 진리를 부정하고 혼잡케 하는 이단들이 교회에 들어왔다. 그러므로 주의 종들은 하나님께서 성도에게 단번에 주신 믿음의 도를 위해 힘써 싸워야 하는 것이다. 그것은 선한 싸움이다. 우리는 선한 싸움을 싸워야 한다(딤전 1:18; 딤후 4:7). 우리는 어떻게 싸워야 하는가? 우선, 우리는 이단에 대해 침묵하지 말아야 하고 또 이단을 포용하거나 이단과 협력하고 연합하여 무엇을 하지 말아야 한다. 우리는 이단을 분별하고 그것을 반박해야 하고 이단자들과 교제하지 말고 그들로부터 분리해야 한다. 이것은 성경의 교훈이다. 디도서 3:10, “이단에 속한 사람을 한두 번 훈계한 후에 멀리 하라.” 요한이서 7, 10-11, “미혹하는 자가 많이 세상에 나왔나니 이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체로 임하심을 부인하는 자라. 이것이 미혹하는 자요 적그리스도니,” “누구든지 이 교훈을 가지지 않고 너희에게 나아가거든 그를 집에 들이지도 말고 인사도 말라. 그에게 인사하는 자는 그 악한 일에 참여하는 자임이니라.” 그렇지만 우리는 온유하고 겸손한 마음을 잃지 말고 상대에 대해 바른 말을 하고 잘못 표현하거나 잘못 정죄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갈 6:1; 딤후 2:24-26).

[4절] 이는 가만히 들어온 사람 몇이 있음이라. 저희는 옛적부터 이 판결[정죄]을 받기로 미리 기록된 자니 경건치 아니하여 우리 하나님의 은혜를 도리어 색욕거리로 바꾸고 홀로 하나이신 주재 곧[주재 하나님](전통사본)1)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부인하는 자니라.

본문은 이단에 대해 몇 가지로 증거한다. 첫째, 이단은 은밀하게 교회 안에 들어온다. 이단은 드러나게 말하거나 처신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우리는 항상 깨어 있어야 이단을 분별할 수 있다.

둘째, 이단은 불경건하다. 이단은 특히 ‘홀로 하나이신 주재’ 혹은 ‘주 하나님’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부정한다.

셋째, 이단은 정욕적이다. 이단은 음란하며 하나님의 은혜를 색욕거리로 바꾸는 자들이며 방종에 떨어지는 자들이다.

넷째, 이단은 옛적부터 정죄를 받기로 작정된 자들이다. 이단은 하나님의 종들이 아니고 마귀의 종들이다. 그들은 구원받은 자들이 아니고 만세 전부터 정죄를 받기로 작정된 자들이다.

1절부터 4절까지의 교훈은 무엇인가?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공통적으로 주신 구원과 단번에 주신 믿음의 진리를 귀중하게 여기고 이단을 분별하여 힘써 싸워야 한다. 이단은 주 하나님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부정하며 하나님의 은혜를 색욕거리로 바꾸는 음란한 자이다. 우리는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神性)과 그의 속죄사역을 믿고 확신하고 그의 재림과 죽은 자들의 부활과 천국과 영생을 확신해야 한다. 또 그 거룩한 소망을 가진 자답게 땅 위에서 죄악된 육신적 정욕을 다 버리고 경건하고 거룩하고 선하고 진실한 삶을 살아야 한다. 또 우리는 이단에 대해 침묵하거나 이단을 포용하거나 이단과 연합하여 활동하지 말고 이단을 분별하고 교제를 끊고 비평하고 배격해야 한다.

5-10절, 이단들의 죄악과 심판

[5절] 너희가 본래 범사를 알았으나 내가 너희로 다시 생각나게 하고자 하노라. 주께서 백성을 애굽에서 구원하여 내시고 후에 믿지 아니하는 자들을 멸하셨으며.

유다는 겸손하게 권면한다. 그는 자신의 권면의 말이 성도들에게 새로운 것이 아니고 그들이 이미 알고 있는 바이지만, 다시 생각나게 하려고 한다고 겸손하게 말한다. 이것이 말씀을 전하는 자들이 가져야 할 바른 태도이다. 사도 바울도 로마서 15장에서 비슷하게 말했다: “내 형제들아, 너희가 스스로 선함이 가득하고 모든 지식이 차서 능히 서로 권하는 자임을 나도 확신하노라. 그러나 내가 너희로 다시 생각나게 하려고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은혜를 인하여 더욱 담대히 대강 너희에게 썼노니”(롬 15:14-15).

유다는 거짓 교사들 곧 이단자들의 죄악과 심판을 역사상 몇 가지 사실들에 비교한다. 첫째로, 그는 이단자들의 죄악과 심판을 애굽에서 나온 후 광야에서 멸망한 이스라엘의 선조들에 비교한다. 하나님께서는 사랑하는 자기 백성을 큰 능력으로 애굽에서 구원해내셨으나 그들이 하나님을 믿지 않고 하나님을 거역할 때 그들을 광야에서 다 멸망시키셨다. 이와 같이, 교회에 속한 것 같은 이단자들도, 만일 그들이 진정으로 하나님을 믿고 순종하지 않는다면, 멸망을 당하고 말 것이다. 그러므로 외적으로 교회에 소속하고 교회 생활을 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고 내적으로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순종하는 것이 중요하다. 참된 경건은 마음에서 나와야 한다.

[6절] 또 자기 지위를 지키지 아니하고 자기 처소를 떠난 천사들을 큰 날의 심판까지 영원한 결박으로 흑암에 가두셨으며.

둘째로, 유다는 이단자들을 자기 위치를 떠난 천사들에 비교한다. 자기 지위를 지키지 않고 떠난 천사들은 사탄과 악령들을 가리킬 것이다. 물론 모든 악한 천사들이 다 지금 흑암에 결박되어 있는 것은 아니지만, 그 중에 일부는 그러할 것이다. 이것은 베드로후서 2:4의 말씀과도 일치한다. 거기에는, “하나님이 범죄한 천사들을 용서치 아니하시고 지옥에 던져 어두운 구덩이에 두어 심판때까지 지키게 하셨으며”라고 말했다. 사탄과 악령들은 하나님께서 정해주신 위치, 즉 하나님을 섬기는 피조물로서의 위치를 지키지 않고 교만함으로 타락하게 되었다고 보인다. 사도 바울은 디모데전서 3:6에서 새로 입교한 자를 장로로 세우지 말라고 말하면서 그 이유로 그가 교만해져서 마귀를 정죄하는 그 정죄에 빠질까 염려함이라고 말했다. 악한 천사들을 흑암에 결박되게 하셨다는 말씀은 하나님께서 악한 천사들의 일부를 세상에서 현재 활동하도록 허락하셨으나, 그 나머지는 이미 큰 날의 심판까지 영원한 결박으로 흑암에 가두셨다는 뜻일 것이다. 하나님께서 자기를 섬기도록 만드셨던 천사들이라도 타락할 때 이렇게 벌하셨듯이, 그는 이단자들도 지옥에 던지실 것이다.

[7절] 소돔과 고모라와 그 이웃 도시들도 저희와 같은 모양으로 간음을 행하며 다른 색을 따라 가다가 영원한 불의 형벌을 받음으로 거울이 되었느니라.

셋째로, 유다는 이단자들을 소돔과 고모라의 죄악과 심판에 비교한다. 옛날 소돔과 고모라와 그 이웃 도시들에 사는 사람들은 심히 음란하므로 마침내 유황불비의 심판을 받아 멸망을 당하였다. ‘저희와 같은 모양으로’라는 말은 ‘이 사람들과 같은 모양으로’라는 뜻으로 이단자들을 가리킨다. ‘다른 색을 따라 가다가’라는 말은 정상적 남녀관계를 벗어난 관계 즉 동성애를 가리킬 것이다. 성적인 타락의 한 형태가 동성애이다. 성경은 그것을 ‘가증한 일’이라고 표현하였다(레 18:22). 하나님께서는 심히 음란했던 소돔과 고모라 성을 유황불비를 내려 완전히 멸망시키셨다. 이와 같이, 이단자들은 음란한 죄 때문에 소돔과 고모라 백성들과 같은 심판을 받을 수밖에 없다.

[8절] 그러한데 꿈꾸는 이 사람들도 그와 같이 육체를 더럽히며 권위를 업신여기며 영광을 훼방하는도다.

이단자들의 죄악은 앞에서 언급한 세 경우와 비슷하였다. 그들은 교회의 지도자인 것처럼 처신한다. ‘꿈꾸는 이 사람들’이라는 말은 그들이 꿈으로 하나님과 교통하고 있다고 선전함을 암시한다. 그들은 마치 자신들만이 하나님의 뜻을 잘 이해하는 것처럼 주장한다. 그러나 실상 그들은 하나님의 종들이 아니고 마귀의 종들이다. 왜냐하면 그들은 육체를 더럽히는 자들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음란한 자들이다. 또 그들은 권위를 업신여기며 영광을 훼방하기 때문이다. 본문에 권위와 영광이라는 말은 하나님께서 교회에 주신 합법적인 권위를 가리킬 것이다. 이단자들은 교회의 합법적인 교훈과 치리에 복종치 않는다. 물론 우리가 사람의 종이 될 필요가 없고 오직 하나님께 복종해야 하지만, 하나님께서 교회에 주신 합법적 권위에 복종하는 것은 성경이 가르친 바이다(마 16:19; 18:18; 히 13:17). 교인들이 교회의 합법적 교훈과 권위에 복종치 않는다면, 교회는 이단을 막아낼 수 없고 분파의 죄악과 혼란을 막아낼 수 없을 것이다.

[9-10절] 천사장 미가엘이 모세의 시체에 대하여 마귀와 다투어 변론할 때에 감히 훼방하는 판결을 쓰지 못하고 다만 말하되 주께서 너를 꾸짖으시기를 원하노라 하였거늘 이 사람들은 무엇이든지 그 알지 못하는 것을 훼방하는도다. 또 저희는 이성 없는 짐승같이 본능으로 아는 그것으로 멸망하느니라.

유다는 이단자들이 교회의 합법적 권위자들을 함부로 비난하는 잘못에 대해 지적하면서 천사장 미가엘이 모세의 시체에 대해 마귀와 변론한 일을 언급한다. 이것은 구약성경에는 나오지 않는 내용이지만 옛날부터 입으로 전해 내려오는 내용이었던 것 같다. 유다는 천사장 미가엘이라도 마귀에 대하여 감히 훼방하는 판결을 쓰지 못하고 다만 “주께서 너를 꾸짖으시기를 원하노라”라고 말하였는데 저 이단자들은 무엇이든지 그 알지 못하는 것을 훼방하고 비난한다고 지적한다. 교회의 합법적 권위자들을 비난하는 것은 악한 일이다. 왜냐하면 그들에게는 주께서 주신 권위가 있기 때문이다.

또 그들은 육신적 죄악성으로 인하여 멸망을 당하고 있다. ‘본능으로 아는 그것’이라는 말은 인간이 가진 본능적 욕망을 가리킨다. 그것은 이성 없는 짐승이 가진 것과 비슷하다. 인간이 단지 그런 것만을 가지고 있는 존재라면 짐승과 다를 바 없다. 그러나 인간은 그런 것보다 고상한 영혼의 생각과 감정과 소원이 있고, 특히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마음과 양심 즉 도덕적 분별력이 있다. 그것은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된 증거들 중의 하나이다. 인간의 가치는 육신적 감정보다 이런 정신적 요소에 있다. 그렇지만, 저 이단자들은 결국 육체적인 것을 추구하는 자들인 것이다. 저들은 그 육신의 죄악된 감정과 욕망 때문에 마침내 멸망을 당할 것이다.

5절부터 10절까지의 교훈은 무엇인가? 본문은 여러 가지 악한 예들을 말한다.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의 사랑을 받아 애굽에서 구원을 받았으나 하나님을 믿지 않음으로 광야에서 멸망을 당했다. 악한 천사들은 자기 위치를 지키지 않고 자기 처소를 떠나 영원한 결박을 당하여 흑암에 던지웠다. 소돔과 고모라 사람들은 동성애의 음란한 죄악 때문에 영원한 불의 형벌을 받았다. 이단들은 하나님과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았고 육체를 더럽혔으며 주께서 교회에 세우신 합법적 권위자들을 업신여기고 훼방하였다. 저들은 다 지옥의 형벌을 받을 자들이다. 우리는 이 악한 예들을 통해 교훈을 받아야 한다. 우리는 겸손히 우리의 위치를 지키고 하나님께서 교회에 주신 권위자들을 업신여기거나 함부로 비난하지 말아야 한다. 우리는 교회의 성경적 교훈과 치리에 겸손히 복종해야 한다. 또 우리는 음란으로 육체를 더럽히지 말고 거룩함과 정결함을 지키는 자들이 되어야 한다.

 

11-19절, 이단들의 죄악과 심판(계속)

[11절] 화 있을진저 이 사람들이여, 가인의 길에 행하였으며 삯을 위하여 발람의 어그러진 길로 몰려갔으며 고라의 패역을 좇아 멸망을 받았도다.

유다는 이단들을 역사상 세 명의 인물들에 비교하면서 하나님의 화가 있을 것을 선포한다. 첫째로, 이단들은 가인의 길을 가고 있다. 가인은 하나님께서 자기의 제사는 받지 않으시고 자기 동생의 제사를 받으셨다는 이유 때문에 자기의 동생을 미워하여 들판에서 그를 죽였다. 이와 같이 이단자들은 마음 속에 하나님의 종들과 성도들에 대한 미움을 가득히 품고 그들을 죽이려 한다.

둘째로, 이단들은 발람의 어그러진 길을 가고 있다. 발람은 하나님께서 모압 왕 발락의 요청대로 그 사자들을 따라가지 말라고 말씀하셨으나 세상적 욕심 때문에 하나님의 명령을 거슬러 행하다가 큰 책망을 받았다. 이와 같이 이단들은 세상적 욕심을 가지고 행하는 자들이다. 그들은 하나님보다 세상을 사랑하는 자들이다.

셋째로, 이단들은 고라의 패역을 따르고 있다. 고라는 이스라엘 백성의 광야 시대에 다른 동료들과 더불어 하나님께서 백성의 지도자로 세우신 하나님의 종 모세를 대적하다가 하나님의 큰 벌을 받았고 땅이 갈라져 산 채로 삼키웠다. 이와 같이 이단들은 하나님의 참된 종들을 대적하다가 마침내 멸망에 이를 것이다.

[12-13절] 저희는 기탄 없이 너희와 함께 먹으니 너의 애찬의 암초요 자기 몸만 기르는 목자요 바람에 불려가는 물 없는 구름이요 죽고 또 죽어 뿌리까지 뽑힌 열매 없는 가을 나무요 자기의 수치의 거품을 뿜는 바다의 거친 물결이요 영원히 예비된 캄캄한 흑암에 돌아갈 유리하는 별들이라.

유다는 여러 가지 표현으로 이단자들에 대해 평가한다. 첫째로, 이단들은 애찬의 암초와 같다. 암초는 배를 파선시키는 무서운 원인이다. 교회는 배와 같다. 이단들은 교회의 사랑의 식탁 교제에 기탄 없이 참여하지만 실상 교회를 파괴시키는 무서운 요소이다.

둘째로, 이단들은 자기 몸만 기르는 목자와 같다. 목자는 양을 기르는 자요 선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목숨까지 버리지만(요 10:11), 이단들은 양을 기르지 않고 자기의 몸만 기르는 목자이다.

셋째로, 이단들은 바람에 밀려가는 물 없는 구름과 같다. 구름은 비를 기대하게 하지만, 물 없는 구름은 그 기대를 헛되게 한다. 비는 생명의 은혜를 상징한다. 그러나 이단들에게는 생명의 은혜가 없다. 그들은 세상의 풍조에 밀려다니는 물 없는 구름과 같다.

넷째로, 이단들은 죽고 또 죽어 뿌리까지 뽑힌 열매 없는 가을 나무와 같다. 열매는 의와 선과 영혼 구원을 가리킨다. 그러나 이단들은 영적으로 죽은 자들이므로 그들에게는 그런 열매가 없다.

다섯째로, 이단들은 자기의 수치의 거품을 뿜는 바다의 거친 물결과 같다. 그들은 거짓과 미움과 탐욕, 음란과 강포 등의 말과 행위로 인격의 수치를 드러낸다. 그들은 교회의 수치거리이다.

여섯째로, 이단들은 영원히 예비된 캄캄한 흑암에 돌아갈 유리하는 별들과 같다. 영원히 예비된 캄캄한 어두움은 지옥을 가리킨다. 이단들이 마지막으로 갈 곳은 지옥밖에 없다. 예수께서는 외식하는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에게 “뱀들아, 독사의 새끼들아, 너희가 어떻게 지옥의 판결을 피하겠느냐?”라고 말씀하셨다(마 23:33). 요한계시록 13장에 보면, 말세에 새끼양 같은 모양으로 나타날 거짓 선지자는 마침내 지옥 불못에 던지울 것이다(계 19:20).

[14-15절] 아담의 칠세 손 에녹이 [이] 사람들에게 대하여도 예언하여 이르되 보라, 주께서 그 수만의 거룩한 자와 함께 임하셨나니 이는 뭇사람을 심판하사 모든 경건치 않은 자의 경건치 않게 행한 모든 경건치 않은 일과 또 경건치 않은 죄인의 주께 거스려[거슬러] 한 모든 강퍅한 말을 인하여 저희를 정죄하려 하심이라 하였느니라.

에녹의 예언은 가경 에녹서의 내용과 같다고 한다(1:4; 60:8). 그러나 그것은 공통적 구전(口傳)에서 기원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본문은 주께서 재림하실 때 이단자들을 심판하실 것을 증거한다. ‘이 사람들’은 이단자들을 가리키고 ‘수만의 거룩한 자’는 구원받은 성도들을 가리킬 것이다. 사도 바울은 재림의 주께서 죽은 성도들의 영들을 데리고 오실 것이며 그들이 다 부활할 것이라고 말하였다(살전 4장). 주의 재림의 목적은 악인을 심판하고 정죄하는 것이다. 본절은 ‘경건치 않은’이라는 말을 여러 번 반복한다. 불경건은 실제로 하나님을 부정하는 것인데, 그것은 죄 중에서 가장 크고 근본적인 죄악이다. 불경건은 사람으로 하여금 하나님을 대항하는 신성모독적인 말을 하게 한다. 이것은 하나님 앞에서 큰 죄악이다. 재림의 주께서는 오셔서 이런 불경건한 자들을 다 심판하고 정죄하실 것이다.

[16절] 이 사람들은 원망하는 자며 불만을 토하는 자며 그 정욕대로 행하는 자라. 그 입으로 자랑하는 말을 내며 이(利)를 위하여 아첨하느니라.

유다는 이단자들의 죄악상을 다시 증거한다. 그들의 죄는 앞에서 말한 대로 불경건이며 하나님을 거슬러 하는 모든 강퍅한 말들이다. 그래서 유다는 그들을 하나님을 향해 원망과 불만을 토하는 자들이라고 말한다. 또 그는 그들이 그 정욕대로 행하는 음란한 자들이라고 말한다. 또 그들이 그 입으로 자랑하는 말을 내는 교만한 자들이라고 한다. 또 그는 그들이 물질적 이익을 위해 아첨하는 말을 하는 삯꾼들이라고 한다. 탐심은 하나님 대신 돈을 섬기는 우상숭배이다. 또 탐심은 사람으로 하여금 이익을 위해 아첨의 말을 하게 만든다.

[17-19절]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들의 미리 한 말을 기억하라. 그들이 너희에게 말하기를 마지막 때에 자기의 경건치 않은 정욕대로 행하며 기롱하는 자들이 있으리라 하였나니 이 사람들은 당을 짓는 자며 육에 속한 자며 성령은 없는 자니라.

유다는 사도의 말을 인용한다. 그는 자신을 사도들과 구별하는 듯하다. 유다가 인용한 내용은 사도 베드로가 그의 두 번째 서신에서 한 말씀이다: “먼저 이것을 알지니 말세에 기롱하는 자들이 와서 자기의 정욕을 좇아 행하며 기롱하여”(벧후 3:3). 유다서는 베드로후서를 사도의 글로 인용한 가장 오래된 책이다. ‘당을 짓는 것’은 교회를 분리하고 분열하는 행위이다. 이단은 교회의 일치와 화평을 깨뜨리는 자이다. 또 ‘육에 속한 자[들]’이라는 원어(프쉬키코이 yucikoiv)는 ‘육욕적인 자들, 호색적인 자들’이라는 의미이다. 이것은 그들이 음란한 자들임을 증거한다. 또 그들 속에는 성령께서 계시지 않는다.

11절부터 19절까지는 우선 이단들의 죄악을 증거한다. 첫째로, 그들은 교만하다. 이 교만은 미움과 분열로 나타난다. 그들은 가인과 같이 형제를 미워하고 고라와 같이 하나님께서 세우신 지도자를 대항하고 대적한다. 그들은 원망하고 불만을 토하는 자들이며 하나님의 약속을 조롱하는 자들이며 당을 지어 교회를 분열시키는 자들이다. 둘째로, 그들은 탐욕적이다. 그들은 불의의 삯을 위해 발람의 어그러진 길로 갔고 물질적 이익을 위해 아첨하는 말을 한다. 셋째로, 그들은 정욕적이다. 그들은 육욕적이며 호색적이며 음란하다.

또 본문은 이단들을 여러 가지 표현으로 평가한다. 이단들은 교회의 애찬의 암초요, 자기 몸만 기르는 목자요, 물 없는 구름이요, 열매 없는 가을 나무요, 자기의 수치만 드러내는 자요, 영원한 흑암에 던지울 별들이다. 그들에게는 화가 있을 것이다. 그들의 운명은 영원한 흑암의 처소인 지옥이다. 그들은 하나님의 심판과 정죄를 받을 것이다.

본문의 교훈은 명백하다. 우리는 이단들을 분별하며 멀리해야 한다. 또 우리는 이단들같이 되지 말아야 한다. 첫째로, 우리는 이단들처럼 교만하지 말고 권위자들에 대해 겸손히 복종해야 한다. 둘째로, 우리는 이단들처럼 탐욕적이지 말고 자족하며 검소하게 살아야 한다. 셋째로, 우리는 이단들처럼 음란하지 말고 성결한 삶을 지켜야 한다.

 

20-25절, 권면과 송영

[20-21절]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는 너희의 지극히 거룩한 믿음 위에 자기를 건축하며 성령으로 기도하며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자기를 지키며 영생에 이르도록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긍휼을 기다리라.

유다는 우리가 우리 자신을 위해 할 일에 대해 권면한다.

첫째로, 우리는 지극히 거룩한 믿음 위에 자신을 건립해야 한다. 유다는 성도의 믿음을 ‘너희의 지극히 거룩한 믿음’이라고 표현한다. 그것은 참된 믿음의 성격을 나타낸다. 성도의 믿음은 세상적인 일이 아니다. 성도의 믿음은 세상적 욕심이나 목적을 가지고 세상의 것들을 구하는 일이 아니다. 성도의 믿음은 참 하나님과 그의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일이다. 그것은 세상의 일이 아니고 하나님의 일이다. 그것은 죄를 버리고 죄사함과 의롭다 하심을 얻는 거룩한 일이며, 지옥에 들어갈 자가 구원을 받아 천국으로 들어가게 되는 일이다. 성도에게 꼭 필요한 덕인 믿음은 지극히 거룩한 덕이다. 우리는 믿음으로 구원 얻고 영생을 얻는다. 만일 성도인 우리가 믿음이 없다면 우리는 모든 것이 없는 자이다. 성도의 인격은 믿음 위에 건립된 인격이다. 우리는 아름답고 튼튼한 집을 짓듯이 지극히 거룩한 믿음 위에 우리 자신을 건립해야 한다.

둘째로, 우리는 성령으로 기도해야 한다. 기도는 믿음의 증거이다. 믿는 자는 기도한다. 믿음이 없이는 기도할 수 없다. 우리는 기도하되 성령으로 기도해야 한다. ‘성령으로’라는 말은 ‘성령 안에서, 성령의 감동과 도우심으로’라는 뜻이다. 바울은 에베소서 6:18-19에서 “모든 기도와 간구로 하되 무시로 성령 안에서 기도하고” 또 여러 성도를 위해 기도하고 자기를 위해서도 기도해달라고 말했다. 그는 또 로마서 8:26에서 “성령도 우리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가 마땅히 빌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고 말하였다. 성령께서는 보혜사 곧 우리의 위로자이시다. 그는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신다. 그는 우리의 기도 생활을 도우신다. 그러므로 우리는 기도가 잘 안 될 때 성령의 도우심을 구하며 기도해야 한다.

셋째로,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자신을 지켜야 한다. 자기를 지키라는 말은 교리적 이단 사상들과 윤리적 죄들로부터 자신을 지키라는 뜻이다. 유다는 이단들에 대해 많이 말했다. 그는 본 서신의 초두에 하나님께서 성도들에게 단번에 주신 믿음의 도를 위하여 힘써 싸워야 한다고 말하였다. 우리는 이단 사상들로부터 우리 자신을 지켜야 한다. 우리는 우리의 사상이 이단에 물들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또 우리는 더러운 죄들로부터 우리 자신을 지켜야 한다. 성도는 온갖 더러운 죄들로부터 자신을 깨끗하게 지켜야 한다.

우리는 자신을 지키되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그렇게 해야 한다.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라는 말은 ‘하나님의 사랑을 믿고 그 사랑을 힙입어’라는 뜻이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의 사랑은 확실하다. 그 사랑으로 인해 우리는 예수님을 믿었고 죄씻음과 영생의 구원을 얻었다. 그러므로 사탄과 악령들의 활동이 아무리 크고 강하다 할지라도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을 확신하고 악과 싸워야 하며 악으로부터 자신을 지켜야 한다. 바울은 로마서에서 “만일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리요?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어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은사로 주지 아니하시겠느뇨?”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핍박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고 말했다(롬 8:31-32).

넷째로, 우리는 영생에 이르도록 주 예수 그리스도의 긍휼을 기다려야 한다. 우리는 주 예수 그리스도의 긍휼로 구원을 받았다. 우리의 구원은 시작도, 진행도, 완성도 주 예수 그리스도의 긍휼로 되는 것밖에 없다. 우리의 중생(重生)과 칭의(稱義)도 주의 긍휼로 이루어졌고, 우리의 성화(聖化)도 주의 긍휼과 성령의 역사하심으로 이루어진다. 우리는 부족하며 시시때때로 실수하고 넘어지지만, 하나님의 긍휼로 다시 일어선다. 또 우리의 구원의 완성 곧 영화(榮化)도 주의 긍휼로 이루어질 것이다. 주께서는 피흘려 사신 영혼들을 결코 잃어버리지 않으실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오직 주의 긍휼을 기다리면서 영생을 향해 달려가야 하고 끝까지 그러해야 한다.

[22-23절] 어떤 의심하는 자들을[구별하면서 어떤 자들을](전통사본)2) 긍휼히 여기라. 또 어떤 자를 [두려움으로] 불에서 끌어내어 구원하라. 또 어떤 자를 그 육체로 더럽힌 옷이라도 싫어하여[싫어하라](전통사본). [두려움으로 긍휼히 여기라](전통사본은 생략함).

유다는 우리가 다른 사람들을 위해 할 일들에 대해서 권면한다. 우리는 죄인들을 긍휼히 여겨야 한다. 우리는 믿는 자들과 믿지 않는 자들을 구별해야 하고, 확고히 믿는 자들과 믿음이 연약한 자들을 구별해야 한다. 우리는 연약한 죄인들을 긍휼히 여겨야 할 것이다. 또 우리는 다른 자들을 두려움으로 불에서 끌어내어 구원해야 한다. 이것은 다른 사람들보다 믿음과 심령이 굳은 자들에게 주는 교훈이다. 또 우리는 그들이 육체로 더럽힌 옷이라도 싫어해야 한다. 우리는 죄인을 긍휼히 여기되, 그의 죄는 미워해야 한다.

[24-25절] 능히 너희를 보호하사 거침이 없게 하시고 너희로 그 영광 앞에 흠이 없이 즐거움으로 서게 하실 자 곧 우리 구주 홀로 하나이신 [지혜로우신](전통사본) 하나님께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전통사본에는 생략됨) 영광과 위엄과 권력과 권세가 만고 전부터 이제와 세세에 있을지어다. 아멘.

구원은 하나님께 달려 있다. 우리를 구원하신 분은 하나님이시다. 지금도 우리를 보호하시고 넘어지지 않게 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시고 우리로 그의 영광 앞에 흠이 없이 큰 즐거움으로 서게 하시는 분도 하나님이시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구원의 시작과 진행과 완성을 주관하신다. 빌립보서 1:6, “너희 속에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우리가 확신하노라.” 히브리서 12:2, “믿음의 주[시작자]요 또 온전케 하시는 이[완성자]인 예수를 바라보자.”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은 하나님의 긍휼과 은혜로 구원받은 모든 성도의 마땅한 일이다. 구원받은 성도의 삶의 목표는 ‘오직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이다.

본문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우리는 지극히 거룩한 믿음 위에 우리 자신을 건립해야 한다.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께 대한 믿음은 인생에게 있어서 가장 귀하고 기본적인 덕목이다. 믿음 없으면 아무것도 없고 믿음 있으면 모든 것을 얻는다. 우리는 참된 믿음의 사람이 되어야 한다. 믿음은 성경말씀을 통해 생기고 견고케 된다(롬 10:17; 눅 1:4). 그러므로 우리는 성경을 읽고 들음으로 지극히 거룩한 믿음을 가지고 그 믿음의 견고함 위에 우리 자신을 건립해야 한다.

둘째로, 우리는 성령으로 기도해야 한다. 성령께서는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신다. 기도는 하나님의 능력과 도우심을 얻는 방법이다.

셋째로,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자신을 지키며 영생에 이르도록 주 예수 그리스도의 긍휼을 기다려야 한다.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을 확신하고 교리적 이단 사상과 윤리적 부패들로부터 자신을 지켜야 한다. 우리의 구원은 시작도, 진행도, 완성도 주님의 긍휼밖에 없다.

넷째로, 우리는 우리 주위의 사람들, 가족들, 친구들, 이웃들을 주께로 인도해야 한다. 우리는 모든 사람들을 긍휼히 여겨야 한다. 또 우리는 때때로 사람들을 불에서 끌어내듯이 구원해야 한다. 그러나 우리는 그들의 죄악되고 더러운 행위들은 멀리하고 싫어해야 한다.

미주

1) p72 78 א B A C vg copsa bo arm 등은 한글개역과 같음.

2) Byz가 그러함. 그러나 א B A C vg copbo 등은 한글개역과 같음.